
예수 부활의 의미와 전례빈무덤, 우리 신앙의 정수·생명 예수 부활은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 신앙의 정수다. 신앙이 예수의 부활을 믿는 행위이므로, 부활은 하느님의 순수한 선물, 곧 은총이다. 신앙생활은 부활한 생활이며(에페 2,6; 골로 3,1) 몸의 부활을 향하는 생활(로마 8,11; 요한 5,29)이어야 한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예수 부활의 의미와 전례를 알아본다.'무덤으로 달려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 위젠느 뷔르낭 작,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소장. ▨예수 부활의 의미 예수 부활과 관련해 가장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시신을 모셨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이다. 빈 무덤 자체가 부활을 직접 증거하지 않지만, 빈 무덤은 예수 부활의 핵심적 징표다. 다른 증거는 부활한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사도들, 엠마오의 제자 등 5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1코린 15,6). 예수는 제자들이 당신을 만지게 하고 함께 식사함으로써 자신이 유령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부활한 예수는 시공간을 초월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마태 28,9.16-17; 루카 24,15.36; 요한 20,14.19.26; 21,4 참조)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부활은 죽은 시신이 다시 살아나는 재생(再生)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가 지상의 삶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 부활이 역사적 신빙성이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에는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굳은 신앙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구원자라 믿었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자, 제자들은 각자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예수 부활을 증언하며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부활한 예수의 육신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은 부활이 초월적 사건임을 알려준다. 초월적 사건이란, 부활은 하느님이 이루신 사건을 뜻하며 이는 신앙의 신비다. 예수를 죽음에서 부활시킨 분은 하느님이라는 신앙이다. 이에 교회는 부활이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믿음으로 도달하는 '신비'라고 가르친다. 예수 부활의 의미는 구약에서 예언된 약속과 예수가 지상에서 한 약속이 실행됐음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즉 부활은 예수가 구약에서 예고된 메시아며,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나아가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구해주시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다. 이는 우리도 부활한 예수의 은총에 힘입어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날 부활을 기념하는 것은 단순히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되새기는 게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부활한 예수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부활시기 및 전례 교회는 예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을 부활시기로 정해 성대히 기린다.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은 정해져 있지만 예수 부활 대축일은 해마다 다르다. 부활 대축일은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에서 유래된 것으로, 춘분(3월 20일)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뜨고 난 다음 첫 주일에 지낸다. 올해는 3월 20일 이후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음력 15일)이 4월 10일이어서, 바로 그 다음 주일인 12일을 부활 대축일로 지내는 것이다. 부활 시기의 전례적 특징은 '기쁨과 찬미'다. 사제는 기쁨을 상징하는 백색 제의를 입고, 사순시기에 부르지 않은 알렐루야와 대영광송을 부른다. 또 매 미사마다 부활초를 켜 예수 부활을 경축한다. 부활 성야 전례의 핵심은 '빛의 예식'이다. 부활초에 불을 옮겨 밝히고 성당으로 행렬하는 빛의 예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세상에 새 생명을 가져왔음을 상징한다. 교회는 또 부활의 기쁨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활시기 첫 8일을 대축일로 정해 축제처럼 지내는데,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 때 모두 일손을 놓고 매일 미사를 참례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09.04.07
![[출판/신간]로마 유학 중인 송현 신부 예화집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발간](//cpbc.co.kr/CMS/newspaper/2008/06/rc/253335_1.0_titleImage_1.jpg)
[출판/신간]로마 유학 중인 송현 신부 예화집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발간"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다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루카 24,15). 도살장에 돼지를 순순히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완두콩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도살장으로 가는 길에 계속 몇 알씩 흘려주면 된다. 이 말을 들은 영국의 어느 주교는 마귀가 유혹하는 방법 또한 이와 같다며, 우리 앞에 뿌려지는 달콤한 쾌락과 욕망의 콩을 주워 먹으며 계속 따라간다면 우리는 어느새 영혼의 도살장으로 들어서게 된다는 자신의 묵상을 전한다. 아무리 작은 죄일지라도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큰 죄악에 빠지게 되므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숨어 있다. 이처럼 재밌는 예화를 담은 송현(부산교구, 로마 유학 중) 신부의 묵상집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가 최근 발간됐다. 지난 2003년부터 4년간 평화신문 미주판에 연재돼 북미주 교포 신자들에게 신앙 지침이 된 '송현 신부의 엠마오로 가는 길'을 모아 엮었다.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던'(루카 24,13-16) 제자들의 모습을 상기하며, 저자는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신앙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은이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명료한 해설은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를 깨우쳐줄 뿐 아니라 지혜롭게 신앙생활을 가꿔가는 방법도 넌지시 전해준다. 이 책의 미덕은 실존 인물의 삶이나 사건, 혹은 교훈적 이야기나 예화가 153편이나 소재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딱딱한 신학적 논리나 복잡한 성경 해설 등으로 야기될 중압감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신자들이 신앙의 산책을 즐기도록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등장 인물의 가르침이나 그에서 비롯되는 교훈은 신앙의 길에 '이정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153편의 이야기를 6개 장으로 나눠 우리 신앙을 엠마오 여정에 비유해 정리했다. 마치 성경 말씀이 살아서 우리 자신을 비추고, 변화될 우리 신앙을 예시해주는 듯하다. '콜베 신부'의 예화는 세례성사를 통해 세상과 육체, 자신에 대해 죽기로 약속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일깨우고, '물이 잘 스며들도록 단단한 흙덩이를 깸'에 대한 예화는 우리 삶도 깨지고 부서져야만 온전히 하느님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깨어짐의 영성을 깨우쳐준다. 이처럼 다양한 예화를 통해 여러 각도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조명함으로써 올바른 신앙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하고 신앙인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일궈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아울러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삽화는 하삼두(스테파노) 화백이 그렸다.(가톨릭출판사/9800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08.06.11
[2009년은 '천문의 해'] 우주시대의 신학적 지평을 열며파괴적 삶 생명의 삶, 갈림길에 서다우주 생성과 성장에 관한 신우주론 등장과학적 발견 통해 하느님 신비 수용 가능신우주론 시대, 갈릴레오 사례서 배워야 대부분의 문화는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기원 이야기를 갖고 있다. 우리에게는 전통적 창조 이야기, 즉 창세기 1-3장이 있다. 오늘날 130억 년 된 우주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과학적 탐구를 통해 등장한다. 이것을 우리가 흔히 신우주론이라고 부른다. 창세기 제6일 토마스 베리 신부는 자신의 저서 「지구의 꿈」에서 우리는 현재 멋진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아서 큰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두 이야기 중간에 끼어있다.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여기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옛 이야기'는 더 이상 빅뱅(우주발생)을 이야기하거나, 우주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토마스 베리 신부가 '새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옛 이야기'는 여전히 전통적 우주론에 매여 있다. '옛 이야기'는 이런 신우주론의 발견들을 통합해야만 한다. '새 이야기'는 어떻게 우주가 만들어졌으며,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지구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리 행성에는 어떻게 생명이 나타나 그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진화하는 우주 이야기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을 겨우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살펴보기로 하자.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역사를 3대 주요시기로 구분한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지구 자신이 가장 위대한 생명의 만발을 이룩한 시대인 신생대에 살고 있다. 신생대는 지난 6500만 년의 기간을 일컫는 것으로, 이 시기에는 모든 생물 종들이 다양하게 지구상에 존재한다. 신생대란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 을 보시고 그것이 "아주 좋다"고 말씀하신 제6일을 은유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생활기능들은 자연의 그물망처럼 우주전체의 존재와 기능에 완전히 의존해 있다. 우리의 사고, 감정, 감각 능력은 우리들의 경이롭고도 장엄한 지구행성의 존재에 의존해 있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 역시 경이로운 창조주(로마 1,19-21)를 계시하는 우주경험에 의해 일깨워진다. 그런데 인류가 지구행성을 환경호로몬, 유전자 조작, 장기매매, 엄청난 소비 그리고 지구온난화로 위기를 몰아가고 있는 지금, 지구행성이 미래에 존재할 수 있게 될 것인지는 의문시되고 있다. 파괴적 생활 방식 경고 21세기는 인류에게 있어서 아주 결정적 순간이다. 지구가 본래의 통합성을 잃게 되면 지구상에는 그 어떤 생명도 살아남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근본적 창조질서가 인간의 탐욕에 의해 파헤쳐지고, 자연과 인간이 동시에 멸망할 위기에 있다. 특히 기후변화와 그 회복의 총 규모를 평가할 도구가 우리에게는 전혀 없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간다면 우리는 신생대 종말을 초래하는 장본인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나 있다. 현재와 같은 파괴적 생활방식을 계속하거나, 혹은 우리의 삶의 양식을 성찰해 건강한 지구-인간 관계에 돌입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경제위기라기보다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위기이다. 지금까지 근대화 패러다임이 몰고온 세계관의 위기이다. 교회는 갈릴레오로 하여금 저술활동을 중단케 했다. 갈릴레오는 지구가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연중 태양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지지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는 구약성경의 창세기 창조론이 쓰여졌던 당시나 문학에 대한 문헌비판이 개발되지도 않던 시대의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과학적 통찰력을 발견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시대에는 사람들이 종교는 물론, 역사와 과학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성경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전자현미경이나 천체 망원경 같은 과학적 도구들은 전혀 개발되지 않았다. 그 이후 몇 세기 동안 과학이 우리에게 우주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보다 발전된 통찰력 있는 지식들을 배우게 되면서, 교회는 이 새로운 지식들을 받아들였다.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진화에 대한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진화에 관한 의문은 인간의 근원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교회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생태위기와 관련해 계시와 창조에 대한 보다 풍부한 관점을 포용할 수 있도록, 하느님이 우리를 새로운 파스카 즉 대탈출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다양한 생물종의 실종, 석유위기, 그리고 광우병이나 구제역과 같은 폭력적 생활에 대해 성찰하고, 다시 우주와 일치를 이루는 삶, 즉 단순 소박한 생활양식으로 인도하기 위해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창조주 하느님이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을 찾아 사막을 헤맨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역시 낡은 세계관을 버리고 하느님이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지에 대한 도전적인 문제에 수용하도록 우리에게 소명하고 있는 것이다. 신우주론 도전에 직면 갈릴레오 시대 대다수 사람들도 역시 오랜 사고방식을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이전의 지구와 태양에 대한 통념을 버리지 못했다. 갈릴레오 시대 후 300년이 지나서 교회는 갈릴레오와 당면했던 딜레마를 인정했다. 이와 같은 신우주론의 도전에 직면한 우리에게는 갈릴레오 사례에서 배울 점이 있다. 새로운 천문학과 우주선, 인공위성과 같은 도구로 우리는 지구가 어떻게 시작되어 진화와 이 우주가 어떻게 팽창을 계속하고 있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과학적 발견을 통해 계시되는 하느님의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구우주론에서. 새로운 세계관으로의 대탈출, 즉 토마스 베리 신부가 명명한 '생태대'로 향한 돌입은 지구의 미래 그 자체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떼이야르 샤르뎅 신부가 말한 바와 같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우리 앞에 놓여있는 과제는 우리가 가진 묵은 편견을 떨쳐버리고 지구를 건설하는 것이다."정 홍 규 신부(대구대교구 경산본당 주임, 산자연학교 교장) 임영선2009.01.06

제7차 소공동체 전국모임(중)-사례발표(2) 대전교구 괴정동본당소공동체 활성화되면 본당 활성화는 저절로3년 전부터 사목방향으로 정해 본격 착수봉사자 교육부터 차근차근 기초 다져나가소공동체 덕에 새가족ㆍ쉬는 교우 찾기 결실발표 : 임 기 선(대전교구 사목기획국장) 신부 괴정동본당은 본당 설립 30주년(2007년)을 준비하면서 2005년 7월부터 본당 사목회와 각 단체, 구역반장들 토론과 의견수렴을 거쳐 2005년 8월 '주일미사 1500명, 반모임 700명이 참여하는 열린 본당 공동체를 이루자!'를 사목목표로 정했다. 이를 위해 △본당 사목방향을 소공동체에 맞춰 모든 단체는 소공동체를 지원하거나 소공동체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맡고 △구역반 모임의 질적 향상을 위해 소공동체 봉사자 양성 교육을 실시하고 모임 자료를 개선하는 한편 소공동체를 계속 분화시키며 △최종적으로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가 힘을 합쳐 말씀과 활동으로 복음화 기적을 일으킬 것을 결의했다. 본당 활성화는 소공동체 활성화에 달려 있고, 소공동체 활성화는 소공동체에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봉사자들에게 달려 있다는 인식에 따라 괴정동본당은 2005년 9~12월(1차), 2006년 1~4월(2차) 두 차례에 걸쳐 각 12주씩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을 이수한 사람이 봉사 직무를 맡게 하고 △200개 이상 소공동체로 확대하며 △월 2회 모든 교우가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봉사자 교육의 취지였다. 교육은 미사와 과제물 점검 및 발표, 교재 공부, 종합교리 순서로 진행됐다. 교육생 편의를 위해 목요 야간반과 금요 주간반으로 나눠 운영했으며, 교육이 끝나면 1박 2일 피정을 가졌다. 교육 기간 동안 수강생들은 매주 성경 공부 및 소공동체 이론 학습을 위해 주어지는 과제물을 냈고, 개인적으로 복음나누기 7단계를 한 다음 마음에 와닿는 말씀과 복음 나눔을 제출했다. 교육 프로그램은 구약성경 주요주제에 대한 성경공부와 주임신부 종합교리 8시간, 소공동체 이론 8시간, 말씀 묵상생활 이론과 활동토의 방법 2시간, 반모임 실습 8시간 등으로 짜여졌다. 교육 이수자는 81명(1차)과 117명(2차)이다. 1ㆍ2차 봉사자 교육으로 많은 봉사자들이 배출됨에 따라 구역과 반을 재조정했다. 구역 단위로 이뤄지던 남성 소공동체를 40개 반으로 확대했으며, 직장 여성들을 위한 야간 여성반을 12개에서 20개로 늘였다. 남성은 12개 구역 40개 반, 여성은 12개 구역 125개 반(주간 105반, 야간 20반)으로 재편된 것이다. 같은 지역에서 봉사자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구역마다 대기 반장을 편성, 반장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소공동체 모임을 주관할 수 없는 경우 대신 주관토록 하는 등 모임을 원활하게 하는 데 협조하도록 했다. 괴정동본당은 소공동체 모임을 좀더 풍요롭게 하고자 '복음나누기 7단계' 중 3단계와 4단계 대신 간단한 성경공부를 하게 하는 소공동체 모임 양식 '말씀 묵상생활'을 2005년에 만들어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괴정동본당 소공동체 모임은 주님초대하기→말씀읽기→말씀 깨닫기 묵상→ 말씀 살아가기→활동토의→알림→마침기도→나눔 시간으로 이어진다. 2006년 1월부터는 첫째ㆍ셋째 수요일을 소공동체의 날(월 2회)로 정해 소공동체 모임을 독려하고, 소공동체 모임이 있는 날에는 성직자ㆍ수도자가 참관해 소공동체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했다. 아울러 「말씀 생활 묵상」이라는 소공동체 모임 소책자를 2006년 1월부터 월보로 발행했다. 괴정동본당은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이 끝난 2006년 7월부터 10월까지 100일간 신자 1명이 새 신자 1명을 입교시켜 입교자 1000명을 봉헌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새 가족 찾기 운동에 돌입했다. 그 결과 636명의 입교신청서를 받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쉬는교우를 제외한 성인 신자 1155명의 55%에 해당하는 숫자로, 소공동체가 활성화되지 않았더라면 이룰 수 없었던 결실이다.cpbc2008.06.17
대상에 서울 은하유치원 '나의 친구 예수님'제1회 가톨릭 유아 노랫말 공모전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담당 지영현 신부)는 '나의 친구 예수님'(은하유치원, 서울 당산동본당, 아래 가사)을 '제1회 가톨릭 유아노랫말 공모전'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천국 주인'(원당 어린이집, 서울 사회복지회)과 '예수님은 놀라워'(천호유치원, 천호동본당) 등 3편은 우수상으로, '어린 순교자 유대철'(동정성모 유치원, 예수수도회) 등 5편은 장려상으로 선정하는 등 모두 24편의 수상작을 냈다. 유아부는 지난 8~9월 교구 내 유아교육기관과 교사를 대상으로 유아들이 성경말씀과 성인에 대해 즐겁게 따라 부르며 배울 수 있게 하고자 유아노랫말 공모전을 마련, 10일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아부는 이번 수상작들을 음반에 담아 유아 신앙교육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심사를 맡은 지영현ㆍ이용현 신부는 "예수님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현직 유아 교사들이 지은 현장감 있는 노랫말들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아동문학가 김원석(대건 안드레아)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전무는 "'나의 친구 예수님'은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유아의 마음으로 자연스레 표현해 대상으로 뽑았다"고 말했다. 상금은 대상 30만 원, 우수상 20만 원, 장려상 10만 원, 입상 5만 원이다. 시상식은 11월 15일 오후 3시 30분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 성의교정 본관에서 열린다. 이힘 기자 <가사>1.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를 보고 웃으시는 나의 친구 예수님. 예쁜 생각과 고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도록 오늘 하루 사랑 가득 주세요. 2. 오늘 저녁 잠자기 전에 나를 보고 미소짓는 나의 친구 예수님. 친구들과 다투고 슬퍼했던 저를 꼭 안아주시는 나의 친구 예수님. 이힘2008.10.14
![[고전의향기에취하다]-<8>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cpbc.co.kr/CMS/newspaper/2009/09/rc/308079_1.0_titleImage_1.jpg)
[고전의향기에취하다]-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땅의 나라'와 '하느님 나라', 어디에 속할 것인가... 방대하고 치밀한 구성, 저자의 해박한 통찰력 빛나...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 열정적 문체로 기술... 그리스도교 비판에 반박하기 위해 13년간에 걸쳐 집필... 하느님 뜻에 따르는 사회가 바로 하느님 나라 강조... 분도출판사에서 간행된 「신국론」 전 3집 중 1~10권. 이 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아우른 천재적 사상가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의 걸작으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인간사 전반을 집대성하고 이론화한 일대 사건으로 평가될 정도이며 인류 최초 역사철학서이자 역사신학서로 꼽힌다. 젊은 날 방탕과 극적 회개로 유명한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스승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 그의 개인적 고백과 찬양으로 가득찬 「고백록(Confessiones)」은 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신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적 발전의 정점에는 해박한 지식과 규모의 측면에서 「고백록」을 능가하는 「신국론(De civitate Dei)」이 자리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열심한 신자들에게조차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실로 여러 측면에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우선 분량에서 그가 평생 저술한 책 가운데 가장 방대하다. 분도출판사에서 라-한대역 3권으로 출간된 번역본의 경우, 본문만 매우 작은 글씨로 1500쪽에 달한다. 단순히 분량만이 아니라 그 책에 담긴 저자의 해박함과 놀라운 통찰력은 과연 이 책이 왜 서구지성사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방대함과 치밀한 구성에서 이 책을 능가하는 토마스 데 아퀴노의 「신학대전」도 있다. 그렇지만 「신국론」을 읽고 있을 때, 우리는 「신학대전」과는 다른 독특한 감동을 받는다. 바로 이 책 안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지녔던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이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열정적 문체로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수사학 전문가였던 노주교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른 '백조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성직자가 수도원의 고요한 명상 속에서 성찰한 내용을 적은 영성서적이 아니다. 오히려 조국이 멸망해 가는 위급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저술된 긴장감 넘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410년 게르만족의 일파인 동고트족 왕 알라리쿠스가 영원한 도시라고 불린 로마를 함락시켰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지 얼마 안 되는 로마인들은 로마 함락이 전통적 신을 버리고 이교도인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퍼부었다. 이러한 비판은 북아프리카로 피신해 온 로마 상류층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가 주교로 활동하던 히포에까지 퍼져 나갔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그에게는 이미 통상적 사목활동을 뛰어넘는 펠라지우스나 도나투스파 등과의 치열한 논쟁들 자체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부당한지 체계적으로 반박하기 위해 그는 이 대작을 사망하기 4년 전인 426년까지 무려 13년에 걸쳐 완성하기에 이른다. 「신국론」은 두 부분, 다섯 단원, 전체 22권으로 나눠진다. 첫째 부분의 첫 단원(1-5권)에서는 이교도들의 다신교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부적절함을 논한다. 둘째 단원(6-10장)에서는 다신교가 정신적 차원에서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데도 실패했고 사후 영생과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둘째 부분에서는 인류 역사를 구원 역사로 관조하는 그리스도교 사상을 제시하고 옹호한다. 이 부분은 세 단원으로 나누어져 하느님 도성의 기원(11-14권)과 전개(15-18권), 종국적 목표(19-22권)를 논한다. 여기에는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주제가 망라돼 있기에 다뤄진 주제를 열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신국론」을 구성하는 거창하고도 체계적인 구조를 고찰해 보는 것이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여러 책에서 이미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행하라"라고 외쳤다. 이처럼 윤리의 핵심을 사랑에서 찾았던 그는 자신의 오랜 체험을 기반으로 인간을 두 유형으로 구분했다. 즉 육체에 매여 살아감으로써 여전히 변할 줄 모르는 낡은 사람과 하느님의 성령으로 재생해 거듭난 새 사람이 그것이다. 이런 구분에는 원죄의 결과로 육정에 사로잡혔던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젊은 시절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회개를 통해 새 생명을 얻게 된 삶이 반영되어 있다. 그는 이런 구분을 토대로 대상에 대한 사랑의 일치, 즉 공통된 대상으로 향하는 각 사람의 사랑은 자연히 거기에 하나의 집단을 이룩한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하느님을 무시하고 자기만을 추구하는 사랑을 하는 인간들은 바빌론, 즉 '땅의 나라'에 속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언제나 영원한 행복을 바라는 희망에 사는 내적인 사람은 하느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므로 예루살렘, 즉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의 나라가 교회 안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했듯이, 이교적 제국에서 대표적으로 땅의 나라를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나라와 땅의 나라라는 관념은 도덕적이며 영성적인 것이고, 그 둘은 어떤 현실적인 체제, 즉 교회와 국가 등과 정확하게 상응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만일 한 국가 관리 행위가 하느님 사랑에 의해 다스려져 그가 정의와 사랑을 추구한다면, 그는 영성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속해 있다.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교도이면서 교회에 속해 있을지라도, 만일 그가 행위하는 원리가 자기에 대한 이기적 사랑이라면, 그는 영성적으로는 땅의 나라에 속해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와 땅의 나라를 구별하는 데서는 교회와 세속국가를 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사회인가, 그의 뜻을 거역하는 사회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럼에도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두 나라의 구별은 중세 전성기 때 여러 교황에 의해 세속 군주국가에 대한 가시적 교회의 우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됐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사상이 정치적 논쟁의 토대로 사용됐을 때, 과연 이를 기꺼이 동의할 수 있었을까? 더 나아가 이 두 나라의 차이를 더 본질적으로 고찰하려는 노력 안에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철학이 등장한다. 때때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지나치게 인류 원죄를 강조한 부정적 인물로 비판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신국론」에서 역사 안에서 저질러진 인간의 악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이 하느님 은총으로 반드시 극복되리라는 종말론적 희망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인류 역사는 우연적이거나 운명론적인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하느님 섭리가 개입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기에 종말론적 완성을 향하는 목표지향적인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그리스 철학의 저 고귀한 지혜의 발전이 그리스도교 계시 안에 포섭된다. 솔직히 「신국론」은 일반 신자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대작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질문이 해결되기보다는 더욱 깊어지는 경험을 한 지성인라면, 「신국론」을 펼쳐 일부라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 안에는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엄청난 지혜의 보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지성인들은 성서를 뿌리로 해 하나의 유기체로 성장해가는 그리스도교 사상의 가장 중요한 줄기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하느님의 나라를 파괴하려는 무수한 땅의 나라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느 나라에 속할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지금도 「신국론」을 통해 우리에게 도전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각자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 그러면 그는 자신이 어느 나라에 속하는 시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박승찬 교수(엘리야, 가톨릭대 철학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354-430)는.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모니카 성녀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마니교에 심취했지만, 어머니 기도로 회심했다. 밀라노 주교였던 암브로시오 성인의 영향으로 33살에 입교, 36살에 사제품을 받았고, 41살에 히포의 주교가 되었다. 수많은 저술을 남겼고,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수호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430년에 선종한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는 중세 초부터 '교회 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기념일은 8월 28일. 오세택2009.09.01
48-가톨릭과 개신교의 성경은 어떻게 다른가요가톨릭 73권 개신교 66권 인정가톨릭과 개신교는 똑같은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고,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데 왜 성경 권수는 차이가 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성경의 종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성경을 하느님 계시의 원천이자 경전으로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그리스도교이지만 가톨릭과 개신교는 경전으로 인정하는 성경 수에 있어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구약 46권, 신약 27권 등 모두 73권을 경전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66권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우선 구약성경에서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구약성경이 7권이 많습니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구약성경은 원래 히브리어로 씌었습니다. 이렇게 씌어진 구약성경은 모두 24권입니다. 유다인들은 기원 후 90년 쯤에 얌니아에서 회의를 열어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의 권 수를 24권으로 확정했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구약성경을 24권으로 확정하기 훨씬 이전인 기원 전 3세기 쯤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표해서 모인 70인(또는 72인)이 모여 히브리어로 쓰인 유다교 경전을 당시 널리 사용하던 언어인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약 100년 간에 걸쳐 이뤄진 이 작업으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 24권이 그리스어 성경 39권으로 나뉘어 번역됐습니다. 이렇게 늘어난 것은 열왕기ㆍ역대기ㆍ사무엘기 등 일부 성경을 각각 상ㆍ하 권으로 나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70인이 번역한 그리스어 구약성경(이를 '칠십인역 성경' 또는 70을 뜻하는 라틴어 '셉투아진타'나 숫자 'LXX'라고 부름)에는 24권의 히브리어 구약성경 외에도 다른 책들이 포함됐습니다. 토빗기, 유딧기 같은 7권의 책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없는 다니엘서 일부분 등도 포함시켰습니다. 이후 그리스도교가 출범하면서 초기 교회는 히브리어 성경보다는 그리스어 성경 곧 칠십인역 성경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지중해 연안 세계에서는 그리스어를 널리 사용했고, 신약성경들도 그리스어로 기록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라틴어가 사용되면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들도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성경 번역이 여기저기서 이뤄지다보니 번역의 질과 순수성이 떨어지는 등 심각한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이 문제는 예로니모(347~419)라는 위대한 성인의 등장으로 극복됩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 번역을 통일할 필요를 느끼고 독자적으로 라틴어로 번역을 했는데 이를 '불가타역' 성경이라고 부릅니다. 번역의 대본으로 사용한 구약성경이 바로 칠십인역 성경이었습니다. 이후 교회는 예로니모 성인이 번역한 불가타역 성경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에는 유다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성경 24권(그리스어 성경 39권) 외에 칠십인역 성경에 포함된 다른 성경들도 포함됐지요. 그러다가 1500년대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루터를 비롯한 프로테스탄트들은 구약성경에 대해서는 히브리어 성경만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 교회는 1548년 트렌토공의회에서 불가타역 성경을 정경으로 재확인하면서 원래 히브리어 성경(24권, 칠십인역에서는 39권)에 포함되지 않은 칠십인역의 다른 성경을 제2경전으로 구별했습니다. 그러나 '제2경전'이라고 해서 '제1경전'에 비해 경전으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씌어진 성경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에 비해 개신교에서는 제2경전을 경전 외의 책 곧 외경(外經)으로 봅니다. 구약성경에서 개신교와 차이가 나는 가톨릭 성경(제2경전)은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권, 마카베오 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이렇게 7권입니다. 이밖에도 다니엘서 3장 세 젊은이의 노래와 13장의 수산나 이야기, 14장의 벨과 뱀 이야기를 가톨릭은 제2경전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봅니다. 또 에스테르기 일부분에 대해서도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여깁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7.06.13
[교회상식 교리상식-105] 열두 사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8)-바르톨로메오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타나엘과 동일인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살갗을 벗기우는 형벌을 받으며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바르톨로메오 사도에 대해 알아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르톨로메오 바르톨로메오는 공관복음과 사도행전(1,13)에 이름이 나오지만 그 밖에는 성경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바르톨로메오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타나엘과 동일인이라고 봅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지요. 우선 사도 명단과 관련해서 공관복음에서는 바르톨로메오는 필립보와 짝을 이뤄 나오거나 아니면 필립보 다음에 나옵니다. 예컨대 마태오복음에서는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등으로 언급됩니다(마태 10,2-4). 또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에서는 "…필립보, 바르톨로메오…"(마르 3,18; 루카 6,14) 순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둘씩 짝을 지어 파견하셨습니다(마르 6,7; 루카 10,1 참조). 그렇다면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는 짝을 이뤄서 파견됐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또한 그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요한복음에는 바르톨로메오라는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대신에 나타나엘이 언급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대목에서 등장합니다(요한 1,35-51). 여기에서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제자가 됩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소개한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임을 알 수 있겠지요. 그뿐 아니라 나타나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그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요한 21,1-3). 이런 정황들로 짐작컨대 공관복음에 나오는 바르톨로메오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타나엘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동일인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열두 사도 명단에 이름이 나란히 있다고 해서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억측이며, 예수님께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를 짝지어 파견하셨다는 것도 추측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 명단(1,13)에는 바르톨로메오가 필립보와 짝이 아니라 마태오와 짝을 이루는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줍니다. 그렇지만 동일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렇다면 나타나엘(바르톨로메오)은 갈릴래아 카나 출신이며(요한 21,1), 예수님께서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고 말씀하실 정도로 깨끗하고 순수한 인품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는 또한 예수님을 뵙고는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요한 1,49) 하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 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의 행적과 관련해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것 외에는 성경에서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전승에서 본 바르톨로메오 바르톨로메오는 히브리 말로 톨마이 또는 탈마이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원래 이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예수였는데 예수님과 이름이 같아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고 하는 설도 전해집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성령강림 후 사도들이 흩어져서 복음을 전할 때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이란을 거쳐 인도에까지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또 그곳 신자들에게 마태오복음 사본을 전해주고 왔다고 하지요. 소아시아의 리카오니아를 비롯해 카스피해 남쪽 에티오피아(오늘날 이란 북부)까지 바르톨로메오의 선교지였다는 전승들도 있습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유다(야고보의 아들 유다) 사도와 함께 아르메니아에도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해지는데, 고대 아르메니아는 이미 4세기에 최초로 복음화가 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르메니아 복음화 1700주년을 기념해 아르메니아를 방문하기도 했지요. 바르톨로메오와 유다 두 사도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아르메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 지역 왕의 동생을 개종시켰다는 이유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순교와 관련, 참수당했다는 설도 있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창에 찔려 순교했다는 설도 있고, 마치 나무 껍질을 벗기듯이 산 채로 살갗을 벗기는 고통을 당하며 순교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유해는 여러 경로를 거쳐서 10세기 말에 로마 시내를 흐르는 테베레 강에 있는 섬(이졸라 티베리나)의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에 모셔져 있다고 전해집니다. 또 두개골 일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에 모셔져 있다고 하지요.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축일은 8월 24일에 지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8.08.12

안동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돌 신앙대회그리스도 향한 성모님 삶과 신앙 본받자안동 실내체육관에서 단원들이 초대형 뗏사라 주변에 사열해 있다.지역 복음화를 위해 앞장서온 안동교구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 50돌을 맞아 더욱 성숙한 자세로 새로운 50년을 향한 전진과 비상의 발판을 마련했다. 안동교구 레지오 마리애 '사도들의 모후' 레지아(단장 지한동, 담당 안상기 신부)는 10월 25일 안동 실내체육관에서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 신앙대회를 열고, 이 땅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성모님 군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장엄미사 강론에서 교구 설정 이전부터 지역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온 레지오 단원들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지천명(知天命)을 맞아 그리스도를 향한 성모님 삶과 신앙 여정을 본받는 단원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안상기(교구 사목국장) 신부는 훈화에서 "레지오 단원들이 50년간 묵주를 손에 들고 교회와 세상 안에서 봉헌한 기도와 삶의 열정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며 "묵주기도와 우리 신앙을 뗄 수 없는 것처럼 가정 안에서 묵주기도를 통해 가정 공동체가 한마음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한동(사도요한) 단장은 개회사에서 "레지오를 시작한 초대 선배 단원들이 있었기에 오늘같이 영광스러운 날을 맞았다"면서 "한번 단원은 영원한 단원이라는 신념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궂은 일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달려가는 성모님 군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기쁘고 떳떳하게'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1부 신앙대회와 2부 장엄미사로 진행됐다. 신앙대회에서 레지오 단기를 들고 입장한 단원들은 성경과 교본 필사본을 봉헌한 뒤 대형 성모상 앞에 꽃을 봉헌하고 힘찬 경례로 성모님의 군사임을 드러냈다. 이어 장엄미사에서는 묵주기도 1083만7855단과 성체조배 5만7938회, 성경 및 교본쓰기 4만4927회, 쉬는신자 회두 1099명, 단원모집 268명 등이 담긴 영적 예물을 봉헌했다. 또 '우리들의 결의'를 통해 성모님 앞에서 희생과 봉사와 헌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조환길(대구대교구 보좌) 주교와 서울ㆍ광주ㆍ대구ㆍ청주ㆍ인천 등 각 교구 세나뚜스와 레지아 단장, 수도자와 단원, 신자 등 38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안동교구를 끝으로 2003년 5월 광주대교구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 기념 전국 신앙대회'부터 이어진 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 기념행사는 마무리 됐다. 안동 '사도들의 모후' 레지아는 교구 설정(1969년 5월) 이전인 1958년 8월 경북 상주시 함창 '천상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2월에는 교구 최초의 소년 레지오인 '그리스도의 도움' 쁘레시디움이 설립됐다. 같은 해 9월에는 '구세주의 모친'꾸리아가 설립됐고, 1975년 8월에는 '사도들의 모후' 꼬미씨움이 세워져 교구 최초의 꼬미씨움이 됐다. 2000년에는 사도들의 모후 꼬미씨움이 레지아로 승격돼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2008년 10월 현재 7개 꼬미씨움과 32개 꾸리아, 361개 쁘레시디움을 갖추고, 4815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정장훈 명예기자 hoon2275@"주님이 허락하는 날까지 활동"▨안동교구 레지오 마리애 50년 역사와 함께 한 4人안동 레지오 마리애 50주년 신앙대회에는 레지오 역사의 산 증인 4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안동 레지오 역사와 같은 50년 동안 단원으로 활동해온 공로로 이날 근속상을 받은 고윤환(파비아노, 78)ㆍ김월순(모니카, 84)ㆍ조순연(데레사, 78, 이상 함창본당)ㆍ김정순(아가타, 90, 점촌동본당)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교구 설정 이전부터 현재까지 안동지역 복음화를 이끌어온 5000여 명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을 길러낸 신앙의 씨앗이자 성모님 군사의 '현역 원로'다.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고윤환씨는 평소 '언제 하느님이 데려가실지 모른다'고 말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활동을 했다. 그는 "단원들이 점점 늘어 여러 쁘레시디움으로 분단됐을 때가 가장 보람있었다"고 말했다. 단원들은 성소 못자리 역할도 했다. 50년간 단 한 번도 주회합을 거르지 않았다는 조순연씨는 큰 조카(조성풍 신부, 서울 해방촌본당 주임)가, 김월순씨는 시동생과 조카 등 집안에 세 명이 사제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게 모두 성모님과 예수님 은총이었다"며 "주님이 허락하는 날까지 단원으로서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힘 기자 이힘200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