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교리상식-100] 열두 사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4)-토마스예수님의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명인 토마스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은 의심 많은 사도로 알려져 있지요. 토마스 사도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성경에서 본 토마스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열두 사도 이름을 나열하는 가운데 토마스를 언급할 뿐(마태10,3 ; 마르 3,18 ; 루카 6,15 ; 사도 1,13) 그 이상은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이에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토마스 사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토마스의 신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선 토마스는 '쌍둥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요(요한 11,16 ; 20,24 ; 21,2). 그렇지만 누구와 쌍둥이인지 아니면 왜 쌍둥이라는 별명을 가졌는지는 성경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토마스 행전」이라는 위경(僞經)에서는 토마스를 예수님의 쌍둥이 형제라고 적고 있는데 신빙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좋겠네요. 요한복음에서 제시하는 토마스 사도의 면면을 잠시 분석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합니다. 첫째, 11장에서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러 베타니아로 가실 때에, 토마스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11,16)하고 동료 제자들에게 말하지요. 여기에서 토마스는 스승이신 예수님과 함께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충성심이 강하고 의지가 굳은 제자로 나옵니다. 둘째, 14장에서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14,4)고 하시자 토마스가 이렇게 반문합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14,5)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는 기개 대신에 다소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의 토마스 사도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셋째, 20장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난 후에 신앙을 고백하는 장면입니다(20,24-29).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15절)라는 토마스의 반론은 예수님께 대한 부정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우리도 함께 죽으러 갑시다"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드레 후에 예수님을 보았을 때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8절) 하고 고백하지요. 이런 장면들을 통해서 우리는 토마스가 용감하면서도 의심이 많은 또 소신을 굽히지 않지만 일단 승복하고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마지막 21장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에 토마스가 시몬 베드로를 비롯해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과 함께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들 제자들의 출신지가 모두 갈릴래아 지방인 것으로 미뤄 토마스 역시 갈릴래아 출신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볼 수 있겠지요. 이런 정도가 성경에서 우리가 토마스 사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전승에서 본 토마스 전승에 따르면,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러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 토마스는 인도를 배당받았다고 합니다. 토마스가 인도에 가기를 주저하자 예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시어 인도의 군다포르 왕실의 궁전을 짓는 목수로 팔려가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토마스 사도는 그곳에서 왕궁 건축 기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다 써버렸고, 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됐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기적적으로 탈출했고 왕도 회심했다고 전해지지요. 잠시 샛길로 빠집니다만, 토마스 사도가 건축가, 목수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는 것도 이런 전승에서 유래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는 12사도의 석상이 모셔져 있는데 토마스 사도는 목수들이 사용하는 ㄱ자를 들고 있는 형상입니다. 인도 서남부 케랄라 주에는 말라바르 전례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토마스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면서 자기들 교회의 기원이 토마스 사도에게서부터 유래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토마스 사도는 군다포르 왕에게서 탈출한 후 말라바르 지방으로 내려와서 7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기원 후 72년 7월 3일 마드라스 시 북쪽에 있는 밀라포레 근처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토마스 사도의 유해는 4세기에 메소포타미아 북부 에데사(오늘날 터키의 우르파)로 옮겨졌고, 나중에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치 지방 키에티 주의 오르토나로 옮겨졌다고 하지요. 교황 바오로 6세는 토마스 사도의 순교 1900주년인 1972년에 사도를 인도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셨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8.07.08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13) 바오로의 그리스도 이해](//cpbc.co.kr/CMS/newspaper/2009/01/rc/279701_1.0_titleImage_1.jpg)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13) 바오로의 그리스도 이해 우리 죄 때문에 죽었다가 되살아나신 분그리스도ㆍ주(님)ㆍ하느님의 아들이란 표현은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는 단어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성령강림 때에 베드로 사도가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사도 2,36)라고 선포했는데, 메시아를 그리스말로 옮긴 단어가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달리 표현하자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삼으셨다'가 되지요.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치 한 단어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에서 '예수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 예수'라는 표현이 160회 이상 사용된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지요.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말을 그토록 많이 사용했지만 정작 자신은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과 달리 역사의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바오로가 만난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오로 사도에게서 예수님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은 바로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 바오로 사도에게서 그리스도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에 비춰서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는 코린토1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 이 대목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죽음 이유에 관해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것은 우리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은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죄값을 대신 치르셨다는 것, 곧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것을 뜻하지요(로마 3,24 ; 1코린 7,23 참조). 바오로 사도는 이 속량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1코린 6,20).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 곧 하느님 뜻에 따라 된 일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4,8).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우리 죄로 인한 죽음, 달리 말해 죄인인 우리의 구원을 위한 죽음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죽음이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 사랑의 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구원적 죽음은 또한 하느님의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통해 당신 사랑을 입증해 보이신 것이지요. 둘째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해서입니다. 부활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도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이라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하느님께서 이렇게 깊이 개입하신 걸까요? 바오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 사용하는 여러 호칭들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이 물음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답이 어떠한지를 알아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호칭들 ◇그리스도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기름부음받은이'를 뜻하는 히브리말 '메시아'를 그리스말로 옮긴 것이지요.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뽑으신 지도자 곧 왕이나 예언자로 내세울 때에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민족들의 숱한 압제에 시달리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언젠가는 다윗 가문 후손 가운데서 자신들을 억압에서 구해줄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벤야민 지파의 정통 바리사이 출신인 바오로 사도는 구약의 이 메시아 기대 사상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극적 체험을 한 후에 사람들이 못박아 죽인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박해했던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며 복음을 선포하지요. 바오로가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구약의 다윗 왕가의 혈통을 이은 메시아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죽었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로마 8,34 참조). 예수 그리스도란 예수님이 바로 그 그리스도라는 고백이요 선포인 것입니다. ◇주(님) 바오로 사도는 서간들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 또는 '주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한다"(2코린 4,5)는 표현도 쓰지요. '주(님)'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라는 하느님 이름을 부르지 못해 대신 '아도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주(님)'는 이 '아도나이'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권능을 지닌 곧 신적 주권을 지닌 초월적 그리스도, 메시아임을 고백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주목할 것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부르는 배경입니다. 로마서 서두에서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닌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 1,3-4). 바오로는 부활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확인하는 증표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 '주(님)' '하느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는 단어들임을 확인할 수가 있지요.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빌어 종합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2장 6-11절로, 찬찬히 살펴보면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드러납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신 분, 곧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이십니다. (영원으로부터 계시는 하느님의 아들) ㉡ 그러나 이를 당연시 하지 않고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해 사람이 되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고 순명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구속) ㉢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높이 들어 올리시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부활과 승천 현양) ㉣ 그리하여 모든 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립니다. (이미 시작된 그러나 종말에 완성될 모습) 그리스도교가 2000년을 거쳐 내려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 관해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진리들을 이 대목이 함축적으로 거의 모두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 핵심 내용들이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 곳곳에서 -때로는 특정 부분이 강조되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필리피서에 나오는 이 내용은 좀 더 나중에 집필된 콜로새서 '그리스도 찬가'(콜로 1,15-20)에서 더욱 풍요롭게 확장됩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서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9.01.13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8- 칠극(七克) 이야기(3)고개 숙일수록 주님과는 가까워져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칠극(七克)은 교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것은 판토하가 성경을 인용해 말하고 있듯이, 교만이 모든 죄의 시작(집회 10,13)이며, 모든 악덕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교만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죄악이기도 하다. 그래서 판토하는 교만의 실마리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그 첫째는 선(善)이 자기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하느님(天主)께 돌리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선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공적으로 돌리는 것이고, 셋째는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고, 넷째는 남을 경멸하며 자신을 뭇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원문생략. 「七克」, 1권). 유학에서도 교만은 결정적인 악덕(惡德)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공자는 「論語」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주공과 같은 아름다운 재능을 갖고 있어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 不足觀也已. '태백편' 11). 공자는 늘 주(周)나라의 문물제도를 예찬하고, 그것을 이룩한 주공(周公)을 흠모해 이상적 인간으로 생각하며, 꿈에서라도 그를 만나고자 했다. 그런데 이러한 주공이 훌륭한 능력을 지녔다하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인간으로서 더 볼 것이 없다는 말이다. 놀랍다. 「大學」에서도 "군자에게는 큰 道가 있으니, 반드시 忠과 信으로써 얻고, 교만함과 방자함으로써 잃는다"(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10장)고 경고한다. 판토하가 겸손을 이야기하면서 인용한 또 하나의 중요한 성경구절은 "훌륭하게 되면 될수록 더욱 더 겸손하여라. 주님의 은총을 받으리라"(집회 3,18)는 말씀이다. 이것은 그가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마음 쓰지 말도록 권고하기도 하지만, 이미 높은 지위를 얻었다면 더 겸손하라는 충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많은 예화들은 대부분 서양의 임금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더 나아가 성덕(聖德)에 출중한 서양의 현인들이 오히려 얼마나 겸손에 힘썼는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유학에서도 '크고 넉넉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을 君子라고 말한다(子曰 君子 泰而不驕. 「論語」, 자로편). 이러한 사상은 주역(周易)의 흐름 안에서도 나타난다. 즉 정자(程子)는 주역의 겸괘(謙卦)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겸(謙)은 「서괘전」(序卦傳)에 '크게 소유한 자는 가득차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겸괘로써 받았다'고 했다. 그 소유한 것이 이미 크면 가득차는 데까지 이르게 할 수 없고, 반드시 겸손하고 덜어내야 하기에, '대유괘'(大有卦) 뒤에 '겸괘'로 받은 것이다"(謙 序卦 有大者 不可以盈 故受之以謙. 其有旣大 不可至於盈滿 必在謙損 故大有之後 受之以謙也. 「周易傳」, 謙卦). 다시 말하면 주역의 64괘의 순서는 아무렇게나 결정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와 성덕(成德)의 과정을 일러주는 것인데, '겸괘'가 '대유괘' 다음에 온 이유는 이미 충분히 가진 자는 반드시 겸손하고 덜어내야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순리(順理)이며, 이상적 경지를 향해 가는 올바른 과정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교만의 시작은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시편10,4;예레 13,5)이며,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그리고 더욱 높아지려는 욕심과 그것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자기의 것으로 착각함으로 교만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 조은일2008.08.19
![[특집]대전교구 설정 60주년 감사미사 및 축하식 이모저모](//cpbc.co.kr/CMS/newspaper/2008/10/rc/268497_1.0_titleImage_1.jpg)
[특집]대전교구 설정 60주년 감사미사 및 축하식 이모저모대전교구 설정 60주년 감사미사, 축하식 이모저모 유흥식 주교 주례와 주교단 및 교구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3만 6000여 명의 신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12일 열린 대전교구 설정 60주년 기념 감사미사는 '감사와 나눔'의 대동한마당이었다. 또 복음화율 10%의 교구 설정 7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이었다. '기억하여 행하여라'(루카 22,19 참조, 1코린11,24-25)라는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표어가 새겨진 대형 광고 풍선이 대전월드컵경기장 상공에 띄워진 가운데 성대한 축제는 막을 올렸다. 1부 축하공연 및 감사기도를 시작으로 2부 감사미사 봉헌, 3부 축하식 및 파견 차례로 이어진 이날 감사축제는 교황청 국무원 차관보 페르난도 필로니(Fernando Filoni) 대주교가 교구에 보내온 서한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강복을 전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다음은 이날 감사축제 이모저모. # '하느님 사랑'에 힘입어 새 삶으로 ○…기념식장인 대전월드컵경기장엔 새벽부터 교구 내 12개 지구 114개 본당에서 3만6000여 명에 이르는 신자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각 지구 및 본당별로 대형 버스를 빌려 올라온 신자들은 아자리야 선교단(단장 함정남 스콜라스티카)과 함께하는 찬양을 통해 열심히 가톨릭 성가를 부르며 미사를 준비했다. 지구별 소개 인사에 이어 경기장에 등장한 가톨릭마라톤 동호회원들은 10일부터 이틀간 무박 2일로 대흥동주교좌성당을 출발, 지방리 공소와 성거산 성지, 공세리성지성당, 솔뫼성지, 합덕성당 등 18개 성지 및 성당 365㎞ 구간을 완주, 이를 봉헌했다. 1부 축하공연의 백미는 아자리야 선교단이 주최한 성극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연출 윤세연 율리아) 공연. 한 차례 '배교'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느님 사랑에 힘입어 새 삶, 곧 순교를 선택한 '내포(內浦) 사도' 이존창의 삶은 교구민에게 새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존창 역을 맡은 박환규(베드로, 28, 가양동본당)씨는 "비록 배교했지만 다시 삶을 추스려 하느님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순교의 길을 걸어간 이존창 사도의 삶은 두 달 가까운 연습기간 내내 큰 힘이 됐다"고 고백했다.#'생명 복음 선포와 사랑 실천'에 매진하는 교구로 ○…교구 주보인 '루르드 성모'상이 입장, 제대에 놓여지며 막이 오른 기념미사는 김한승(대전가톨릭대 전례음악연구소장) 신부 창미사곡으로 거행됐다. 가톨릭성가 4번 '찬양하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사제단과 주교단이 입당하자, 주례자인 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교구 설정 60돌을 맞기까지 무한한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신자들이 생명 복음을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용기와 열정을 허락해 주실 것을 기원했다. 미사 중 교구 공동체는 특히 △60년 역사 속에 교구가 감사해야 할 일들(박종우 신부, 교구 총대리) △교구 60년사 및 교구 성지 논문 책(김정환 신부, 대전교구사연구소장) △60주년 기념 도보 성지순례와 일일문화피정(박근수 모세, 모산본당) △60주년 맞이 묵주기도 5300만 단(이석구 대건 안드레아, 교구 '평화의 모후' 레지아 단장) △한 끼 100원 나눔 운동(황석찬 루치아노ㆍ남유정 가타리나, 어린이) △성경필사운동(박경숙 체칠리아, 평신도 성경교실 대표) △60주년 감사미사 헌금(신동혁 안드레아, 사회사목국) △빵과 포도주(이경식 마르코 교구 평협 부회장, 김미순 베로니카 교구 여성연합회 총무)를 봉헌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정영래(프란치스카, 예수성심수녀회) 수녀는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대전교구에서 설정 60주년 행사를 함께하며 끔찍한 박해 속에서 치명하신 순교자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됐다"며 순교자들의 뜻을 기리고 본받는 신앙인이 돼야 겠다고 다짐했다. #내포 복음화 씨앗은 이제 지역으로, 해외로 ○…3부 축하식 및 파견을 통해 교구는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며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특히 교구 홍보국 기획으로 두레영상(대표 김민수 라파엘)이 제작한 7분짜리 '천주교 대전교구 설정 60주년' 동영상은 1948년에 시작된 내포 복음화 씨앗이 큰 나무를 이뤄 이제 해외에까지 그 가지를 뻗어가는 활력과 교구 미래상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앞서 교황은 필로니 대주교를 통해 보내온 축하메시지에서 "대전교구의 삶 안에서 기념비적 이정표가 될 60주년 기념예식이 교구민들이 주님 빛의 증거자로 새로 나고 교회 사명인 복음화에 더 성실히 헌신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며 교황의 사도적 축복을 전했다. 이어 따가운 가을 햇살 아래 5시간 가까이 꼿꼿이 자리를 지킨 신자들에게 감사를 전한 유 주교는 "하느님 안에서, 사람 앞에서 올바른 신앙인이 되자"고 당부하고, 자신도 착한 목자로서 늘 교구민과 함께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조규남(요셉, 56, 대전 반석동본당)ㆍ강혜영(마리아, 54)씨 부부는 "우리 교구에 순교자가 가장 많이 나고 60년간 신자들이 많이 늘어난 것은 분명 하느님의 축복이었다"며 "우리 후손들도 이젠 선조들을 본받아 그 열심했던 신앙을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사진=백영민 heelen@pbc.co.kr이지혜2008.10.14
![[순례기] "바오로 사도와 희망의 순례길에 오르다"](//cpbc.co.kr/CMS/newspaper/2009/04/rc/291062_1.2_titleImage_1.jpg)
[순례기] "바오로 사도와 희망의 순례길에 오르다"크루즈 성지순례기(上)-전지희 마리아 막달레나 '바다에 떠있는 호텔' 2만 6000톤급 크리스탈호. 말로만 듣던 크루즈 여행! 그것도 사도 바오로께서 살아 생전에, 실제로 걸어다니며 열정적으로 선교하셨던 바로 그 도시들을, 그 땅들을 똑같이 밟아 볼 수 있다니! 우리에게 늘 좋은 것, 유익한 것만을 주고 싶어 하시는 착한 목자, 나의 주님께서 이번에는 또 어떤 은총과 축복을 마련해놓고 계실까? 드디어 발대미사에 참례하였을 때 '아, 바로 이거구나' 절로 감격스러워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다른 어떤 개인 여행사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이 아름다운 시작! 우리가 걷게 될 순례여정 전체를, 그리고 열흘간 은총의 바다에 잠기게 될 나 자신을, 성모님을 통하여 오롯이 우리 주님께 봉헌한다는 것. 발대미사와 함께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이신 허영엽(마티아) 신부님 진행으로 설명회 시간도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허 신부님께서 평화신문에 기고하고 계신 '성경 속 상징'을 통해, 대단히 특별한 응답과 은총을 체험하고 있던 터라 실제 만나 뵈면 어떤 분위기를 갖고 계신 분일까, 가장 뵙고 싶었던 사제이기도 했다(실제로 만나보니 얼마나 밝고 따뜻한 분이던지, 열 번을 인사해도 열 번을 다 환한 햇살같은 미소로 응대해 주시는 분이셨다). 145명이나 되는 우리 순례 공동체는 믿음ㆍ희망ㆍ사랑ㆍ평화 4개 조로 나뉘어져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내가 속한 '희망'조의 담당사제는 2007년도에 수품하신 신지철(바오로) 신부님. 자, 이제 앞으로 열흘간은 꼼짝없이, 저 멋지게 굽슬거리는 파마머리를 휘날리며, 키는 훌쩍 크신, 마치 클래식 무대의 지휘자같은 신부님 휘하에서 38명이 한솥밥을 먹는거란 말이지…. 바오로의 해에, 바오로 신부님을 담당사제로 모시고 사도 바오로의 발자취를 따라 가게 되다니! 어쩐지 시작부터 조짐이 좋았다. 사람이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늘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언제나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필시 거짓말쟁이일 것이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요즈음의 나는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리고 싶은 유혹과 매순간 싸워야 하는, 비참함과 의욕상실의 파도가 들락날락하는 어두운 해변과도 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주님은 이런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이방인의 열정적인 사도이셨던 분의 선교지로 나를 초대하고 계신 거였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 24-25). 낮 12시에 공항에 모인 우리 조는 네덜란드 항공편으로 암스테르담을 거쳐, 그리스 아테네를 향해 본격적인 순례의 첫 장을 열었다. 감사한 것은 조원들이 온화하고 교양있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는 점. 자, 우리는 드디어 그리스로 간다! 다른 조들과 선박에서 합류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테네와 코린토를 돌아보았다. ▶파르테논 신전-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기리기 위하여 B.C 438년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웅장한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는 이 거대한 신전은 고대 아테네의 화려했던 한 시절의 영광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10m나 되는 기둥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런 기둥만 46개! 이건 정녕 하느님이 부어주신 영감과 재능이 아니고서는 이루어 낼 수가 없는 역사의 산물들이다. ▶아고라-그리스말로 '시장'을 뜻하지만 오늘날의 단순한 '마트' 개념이 아닌, 정치ㆍ종교 문화시설이 집중되었던 곳으로, 남성들은 이곳에서 정치를 토론하고 정보를 교환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이 아고라에서 활동한 대표적 철학자들이다. 아테네 아고라는 BC 6세기경 550x700m 크기, 직사각형 광장의 3면을 주당으로 에워싸고 있으며, 1931년 발굴되어 오늘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레오파고스-그리스의 군신 '아레스의 동산'이라는 뜻으로 유력한 재판관들과 원로들이 모여, 역사ㆍ종교ㆍ철학의 제반 문제들을 토론하던 재판소이다. ▶아크로폴리스-아크로폴리스는 '높은 언덕위의 도시'라는 뜻으로 도시국가 폴리스를 지키는 방위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니케 신전, 6명 소녀상을 기둥으로 한 에레크테이온,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다. ▶코린토 유적지들-사도 바오로께서 갈리오 총독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으셨던 자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유적 박물관에는 이 부근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로마시대의 다양한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코린토는 사도 바오로께서 제2차 여행 중 1년6개월 동안이나 머물러 계셨던 곳이고, 제3차 전도여행 때에도 들르셨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로마 식민지 당시 로마에 속해 있으면서 세속적으로 번창한 항구도시였기에, 당시 ‘코린토인’이란 속어는 음란하고 무도덕하고 사치스러운 사람을 일컫는 말로 통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피레우스 항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사도 바오로께서 유독 복음전도에 실패하신 곳이 아테네였다는 점에 대해 묵상해보았다. 간단한 원리, 유난히 잡신을 섬기는 풍조가 강했던 곳이었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그럼에도, 위대한 믿음으로 줄곧 달려가셨던 사도 바오로 성인! 그 불굴의 정신에 대해 묵상하는 동안, 어느덧 눈부시게 흰 크리스탈호가 그 세련된 자태를 뽐내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계속>김원철2009.04.14
평신도는 사회교리 실천의 중심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레나토 마르티니 추기경 방한 강연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레나토 라파엘레 마르티노(Renato Raffaele Martino, 76) 추기경은 3박 4일간 첫 방한 일정을 통해 "평신도는 교회 사회교리 실천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한승수(다니엘, 72) 국무총리 공식 초청으로 10월 30일 내한한 마르티니 추기경은 31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한 총리와 유명환(62) 외교통상부 장관을 연이어 만나 북녘 형제들 인권과 식량난, 북핵 사태 등에 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한국 정부가 사형 폐지에 더 깊은 정책적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또 이날 서울 중곡1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방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 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가 2004년 10월 펴낸 「간추린 사회교리」에 관해 '온전한 인도주의를 위한 교회 사명'을 주제로 연설했다. ▶관련기사 7면 마르티니 추기경은 이 강연에서 평신도야말로 「간추린 사회교리」의 가장 좋은 동반자라며, 이 문서를 숙지함으로써 평신도들이 '현대 사회의 증인이자 순교자, 성인'이 돼 줄 것을 당부했다. 11월 1일 오후에는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를 방문해 먼저 한국 천주교 순교자박물관에 들러 1700여 점(소장품 3500여 점)에 이르는 유물과 성화 등을 관람한 뒤 성해실을 찾아 순교성인들에게 최상 공경을 표시했다. 이어 절두산순교성지 토요특전미사에서 평신도들과 만난 마르티니 추기경은 태국 등 5개국 주재 교황대사(겸직), 유엔(UN) 주재 상주 대표로 각각 6년, 16년 재임하며 한인 가톨릭공동체와 함께한 인연을 털어놓고,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 신앙의 뿌리"라며 순교자 후손으로 자부심을 갖고 참다운 신앙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또 이날 저녁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한국평협(회장 한홍순 토마스) 회장단과 각 교구 평협 회장단을 만나 격려하고, 「간추린 사회교리」에 관한 짤막한 연설과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의장을 겸직 중인 마르티니 추기경은 평협과 간담회에서 "한국교회에서 또한 이주사목이 현안으로 등장하는 데 이는 한국이 그동안 얼마나 고도성장을 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다"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 너희는 나를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 참조)는 성경 구절은 이주민에 관한 한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구절"이라며 이주사목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짧은 방한 일정을 마친 뒤 6~8일 태국 방콕에서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와 태국 주교회의 인간이주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주사목 회의에 참석하고자 2일 새벽 출국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8.11.04

대전교구 설정 60돌 기념 감사미사내포 공동체 신앙의 홀씨를 더욱 키워 70돌 해에는 교구 복음화율 10% 다짐유흥식 주교가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아 전 교구민이 함께 참여한 '한 끼 100원 나눔운동' 증서를 황석찬(루치아노, 관평동본당, 왼쪽), 남유장(가타리나, 옥계동본당) 두 어린이에게 받아 하느님께 봉헌하며 교구민들에게 들어보이고 있다. 올해로 교구 설정 60주년 '은총의 해'를 맞은 대전교구가 12일 내포 공동체 신앙의 홀씨를 더욱 키워 새 복음화에 헌신하고자 70주년을 향해 그 첫 발을 내디뎠다. 교구는 이날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봉헌된 '교구 설정 60주년 감사미사'를 통해 교구 설정 70주년이 되는 2018년에는 교구 복음화율 10%를 이뤄내기로 했으며, 나아가 나누는 교회로서 가톨릭교회의 보편적 일치를 실천키로 했다. ▶관련기사 9면 이날 미사 및 경축행사는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와 전임 교구장 경갑룡 주교 등 주교 7명, 교구 안팎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교구 12개 지구, 114개 본당 공동체에서 3만60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축하공연 및 감사기도와 감사미사, 축하식 및 파견 차례로 진행됐다. 교구 공동체는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대표 4명의 선창으로 발표한 '우리의 다짐'을 통해 △순교신앙을 묵상하며 일상기도에 충실한 신앙인 △성경 말씀을 읽고 쓰는 신앙인 △사도 성 바오로의 선교 열정을 본받아 이웃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신앙인 △'한 끼 100원 나눔운동'을 지속하는 신앙인 △자연과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일에 능동적 신앙인이 될 것을 다짐했다. 유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가톨릭교회는 모든 이에게, 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돼야 하며, 어려운 이들의 친구로 있으면서 희망을 주는 친교 공동체가 돼야 한다"며 '나누면서 더 큰 행복을 누리는 교구 공동체', 그리고 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행사에는 오스발도 파딜랴(주한교황대사)ㆍ윤공희(전 광주대교구장) 대주교, 장봉훈(청주교구장)ㆍ권혁주(안동교구장)ㆍ이용훈(수원교구 부교구장) 주교 등 주교단과 유장훈(전주교구 총대리) 몬시뇰 등 사제단, 박성효 대전광역시장, 이완구(바오로) 충남 지사, 심대평(임마누엘) 자유선진당 대표최고위원 등 지역 인사들이 함께해 축하를 전했다. 또 파리외방전교회 부총장 조르쥬 콜롱 신부와 6ㆍ25 전쟁 당시 순교한 필립 페랭 신부의 손자뻘인 필립 페랭ㆍ실비 페랭씨 부부, 외손자뻘인 폴 몽샬랭씨 등도 참석해 교구 60주년을 함께 축하하고 9일간 일정을 마친 뒤 18일 출국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8.10.14
[ 교회상식 교리상식(129)] 십계명(4) 제3계명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제3계명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구약의 십계명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라'에서 안식일을 주일로 바꾼 것입니다. 왜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이 계명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봅니다. ◇안식일 규정 안식일은 한 주간의 마지막 날 곧 이렛날로서, 오늘날 토요일에 해당합니다. 탈출기는 셋째 계명과 관련해 이렇게 말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탈출 29,8-11) 안식일은 하느님을 위한 날이니 거룩하게 지키고 모든 일에서 쉬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창조사업 후 하느님께서 쉬신 것과 관계됩니다.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탈출 20,11). 둘째,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것과 관계됩니다. "너는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주 너의 하느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그곳에서 이끌어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 때문에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신명 5,15). 셋째, 숨을 돌리는 것과 관련됩니다. 주님께서 이렛날에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탈출 31,17)에 우리도 쉬면서 숨을 돌려야 합니다.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이는 너희 소와 나귀가 쉬고, 너희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23.12). 요즘말로 하면 가난한 사람, 이주노동자들에게 숨을 돌리게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하느님의 창조사업과 구원 행적을 기리며 찬미하고자 따로 거룩하게 남겨 놓은 날, 곧 주님을 위한 날이자 하느님께서 쉬신 것처럼 일상의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며 숨을 돌리는 날입니다. 이날은 "일의 속박과 돈에 대한 숭배에 대항하는 날"(가톨릭교회교리서 2172항)입니다. ◇안식일에서 주일로 구약에서 지내던 이렛날 곧 안식일 규정은 그리스도교로 넘어와서는 주간 첫날인 주일 규정으로 대체됩니다. 주간 첫날을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간 첫날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곧 주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간 첫날은 첫 창조를 상기시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대표적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성 유스티노는 「호교론」이란 저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해의 날(일요일)에 모두 함께 모입니다. 이 날은 하느님께서 암흑에서 물질을 끌어내시어 세상을 창조하신 첫째날(유다인들의 안식일 다음날이면서 또한 주간의 첫째 되는 날)이기 때문이며, 또 이 날이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로 말미암아 창조에서 새로운 창조로, 유다인들의 구원에서 모든 민족을 향한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으로 그 의미와 영역이 확장되면서, 주일은 안식일의 영적인 참 의미를 완성하고, 나아가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예고합니다. ◇주일의 의무 이제 신자들은 주일에 파스카 신비인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주님의 날을 경축합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들은 주일과 의무 축일에 미사에 참례해야 합니다. 이 의무는 당일이나 그 전날 오후 4시부터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이행합니다. 중대한 이유(예컨대 병이 났거나 유아를 보살펴야 하는 경우)로 면제되거나 본당 신부에게서 관면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일이나 의무축일에 미사에 참례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고의로 이행하지 않으면 중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직자가 없거나 또는 다른 중대한 이유로 미사에 참례하지 못할 때에는 공소예절로 의무를 대신할 수 있으며, 공소예절에도 참례할 수 없을 경우에는 묵주기도, 성경봉독, 선행 등으로 의무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또한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하느님께 드려야 할 예배, 주님의 날에 맛보는 고유한 기쁨, 자선 실천, 정신과 육체의 적당한 휴식 등을 방해하는 일이나 활동을 삼가야 합니다. 나아가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일을 쓸데없이 남에게 강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아가 자선 활동을 한다든지, 병자와 불구자, 노인들에게 겸손하게 봉사한다든지, 또는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평소에 내기 힘들었던 시간을 내 그들과 함께 함으로써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야 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9.02.18
 십자가 지고 '우리의 사도행전' 쓸 것 다짐](//cpbc.co.kr/CMS/newspaper/2009/04/rc/292776_1.0_titleImage_1.jpg)
[크루즈 순례기](하) 십자가 지고 '우리의 사도행전' 쓸 것 다짐 전지희(마리아 막달레나)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비잔틴 건축 최고 걸잘 소피아 성당은 916년간은 성당으로, 481년간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다. # 제5일-여행자들의 천국 이스탄불로! 크루즈선이 드디어 터키 이스탄불 항구에 닿았다. 유럽과 아시아 양쪽 문화를 흡수하고 있어 묘한 매력을 내뿜는다고 하는 여행자들의 천국, 이스탄불. 그곳에 비잔틴 건축 최고 걸작이라는 소피아 성당이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소피아 성당 안에는 기둥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높이가 56m나 되는데도 서로 떠받쳐주는 15층짜리 거대한 돔이 있을뿐, 그 둘레에 40개 창, 벽면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성화로 장식되어 가장 완벽한 비잔틴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소피아 성당 맞은 편에는 술탄 아흐멧 1세가 지은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이슬람 사원이 있다. 소피아 성당보다 더 크고 웅장한 모스크를 짓는 게 목적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내부가 푸른 타일로 아름답게 장식돼 있어 블루 모스크라 불린다는데 대형 돔과 4개 중간 돔, 30개 작은 돔으로 이루어져 있고, 260개 창과 6개 첨탑이 있는데 첨탑 높이가 43m나 된다. 이외에도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톱카프 궁전을 방문했는데 궁전 안 보물관은 특히 자매님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추리소설 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가 「오리엔탈 특급살인」을 집필했다는 호텔방에 더 관심이 갔다. 그 방은 3년간 예약이 끝나 있다고 한다. 시내 순례를 마친 후 그랜드 바자르라는 대형 재래시장에 갔다. 한국말을 배워 호객 행위에 열심인 터키 상인들 모습이 재미있었다. 무지하게 폭리를 취하는 곳이라서 반값으로 깎아서 사야 될 지경이긴 했지만…. # 제6일-디킬리에서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페르가몬 교회의 유적지. 성경 속에서 막연하게 상상하던 곳을 직접 와본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인 것 같다. 세계 최초 종합병원인 아스클레피온이 세워진 것이 BC 4세기경이라는데, 그 시절에 이미 정신과 치료에 해당하는 심리치료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 제7일-에페소, 어머니의 집으로! 나는 안 믿는 집안에서 달랑 혼자 믿어 개신교 신학교에 가고, 개신교 교육전도사로 일하면서 필리핀 선교사를 지망해 연수를 받던 중 성모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은 입교라서 그런지 집안에 사제나 수도자가 계신 분들을 뵈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당연히 주교님을 사석에서 가까이 뵌 적이 한 번도 없기에, 염수정(안드레아) 주교님과 처음부터 끝까지 순례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일단 우리와 어떤 점이 다르신가 줄기차게(?) 살펴보았지만 그냥 우리와 똑같으셨다. 옷차림도 어찌나 수수하고 검소하신지 평상복을 입으시고 일반 신자들 사이에 섞여 계시면 평신도와 다를 바 없으셨다. 오히려 너무 친근하고 편안하게 대해 주셔서 재밌는 진풍경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이스탄불 선물가게 앞에서 에피소드. 순례객들이 잠깐 안에 들어간 사이 염 주교님과 나, 그리고 몇몇 분들은 밖에 서 있었다. 염 주교님께서 밖에서 기다리는 우리에게 하얀 가루가 묻은 터키식 젤리과자를 일일이 나눠 주시기 시작하셨는데, 주교님을 알아 뵙지 못한 터키인 현지 가이드만 유독 '난 그런 거 안 먹는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앞에 서 계시던 마르티나 자매님께서 그 터키인에게 "비숍!(주교님이 주시는 건데)"이라고 외쳐 주자, 그는 자기만 축복권(?)에서 밀려난 현실을 감지한 듯 얼른 공손한 태도로 두 개를 청해받아 가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염 주교님은 미사 제단에서는 180도 다른 분으로 돌변하시는 게 아닌가! 강론하실 때는 열정적으로 주님께 사로잡힌 채, 굉장한 카리스마를 뿜어 내셨다. 나는 염 주교님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아, 이런 게 성령의 감동인가' 싶은 뜨거운 내면의 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 사랑과 희망, 열정과 의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오는 영적 체험을 했다. 아무리 참아보려 해도 뜨거운 눈물이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왔다. 우리가 에페소에서 미사를 봉헌한 날은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었다. 바람 불고 비까지 뿌려 몹시 추웠다. 염 주교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마리아라는 거푸집에서 형성되는 것이 얼마나 쉽고 안전한, 그러면서도 가장 완전한 방법인가"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동안 머리로만 알아 듣고 있었던 내 삶의 모범 답안지가 그 순간 비로소 가슴으로 녹아 들어간 것 같았다. #제8일-아쉽기만한 작별 하선하기 전 마지막 미사 강론을 하신 대전교구 사회사목국 차장 김경호 신부님은 정말이지 모든 신자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단체로 밀어(?) 넣으시면서 은총의 폭포 속으로 양들을 몰아 가셨다. 젊디 젊은 나이에, '리' 단위 촌락에 있는 노인 요양시설, 그것도 치매 노인 복지시설로 발령을 받아 가셔서, 난감한 인간적 현실을 어떻게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기쁘게 살고 계신지 들려주셨다. 당신 삶을 우리에게 나눠주신 절절한 신앙고백에 장내는 숙연해졌다. 이후 저녁식사 식탁에서는 온통 이 강론 말씀을 통해 받은 은총을 나누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어느덧 열흘간의 일정은 꿈결처럼 지나가고… 이제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사도행전을 쓰기 위해 기쁘게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할 것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담당신부님의 파견축복을 받았다. 모두들 행복해보였지만 아쉬움이 역력한 표정들이었다. 순례 덕에 이번 사순절은 내 생애 최고의 사순절이었다.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도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욥기 42장 참조). 김원철2009.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