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서울 환경사목위 만남종교인 힘 모아 생명 사랑 외침김운회 주교가 도법 스님과 만나 그간 전국을 순례하며 모색한 생명평화의 길과 그 여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생명과 평화를 가꾸고 실현하고자 결성된 생명평화결사(대표 도법 스님)가 5년 가까이 걸어온 탁발(托鉢) 순례 발길을 2일 오후 서울대교구 주교관에서 멈췄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조대현 신부)와 함께 명동을 순례하고 김운회(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를 예방하고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서울대교구본부 활동가 대상 강연 및 대화마당을 갖기 위해서다. 교구 주교관으로 김 주교를 예방한 도법(실상사 주지) 스님은 "전 국민이 모두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고 평화의 가치를 드높이며 삶의 방식을 바꾸는데 종교계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선 순례가 4년이 훌쩍 넘어섰다"며 "그간 생명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거룩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에 김 주교는 "이번 순례가 생명과 평화, 환경에 대한 국민들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기를 바란다"며 "도시 문화가 농촌과 상생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명동 순례여정은 우리농 서울대교구본부 활동가들과 만남으로 한층 뜻이 깊었다. 가톨릭회관 7층 대강당에서 활동가 100여 명과 마주한 순례단은 그간 순례 감회가 새로운 듯 다들 상기된 표정이다. 도법 스님은 '생평평화의 길 위에서 만난 예수'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는 성경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며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낮추고 비우고 나누며 살아가시길 바란다"고 자신의 깨달음을 전했다. 최종수(전주교구 안식년) 신부 등 13명으로 이뤄진 순례단은 이어 명동 전진상교육관에서 활동가들과 대화마당을 갖고 "농촌과 농업, 농민을 팽개치는 사회 현실에 대한 뼈 아픈 성찰과 반성, 참회가 절실하다"는데 공감했다. 또 그간 순례를 통해 지역주민들과 만나 대화모임을 갖고, 농촌 일손도 돕고, '움직이는 생명평화학교'와 '생명평화 한마당'을 운영하며 가진 값진 체험을 나눴다. 순례단은 2004년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 전국 시ㆍ군ㆍ면 단위 지역을 찾아 생명ㆍ평화 메시지를 전했다. 총 12만㎞(3만 리)에 이르른 순례 여정은 서울 지역 단체 방문을 끝으로 13일 마무리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8.12.09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베트남공동체 '안정적 보금자리' 절실하게 호소](//cpbc.co.kr/CMS/newspaper/2007/06/rc/213535_1.0_titleImage_1.jpg)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베트남공동체 '안정적 보금자리' 절실하게 호소"기도하고 성경 공부할 공간 필요해요."베트남공동체 신자들이 6월 3일 서울 보문동5가 상가 건물 4층에 새로 마련한 사목센터에서 꽃을 봉헌하고자 입당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5가 베트남공동체사목센터 옥상 6.6~10.9㎡ 남짓한 옥탑방.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교리실로 쓰이는 옥탑방은 마치 한증막에라도 들어온 듯, 무덥고 답답하다. 겨울이면, 그 혹한에 어떻게 공동체활동을 할까 싶을 정도로 열악한 공간이다. 그래도 짠 민 주(프란치스코,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와 레 티 밧 뜨위(사랑의 성 십자가수녀회) 수녀는 한글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어를 배워 이주민들을 돕고 선교를 해야 한다는 소명에서다. 베트남공동체 담당 팜 탄 빈(살레시오회) 신부는 곁에서 이들과 함께하며 공동체 사목에 머리를 맞댄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허윤진 신부)가 6월 3일 노동사목회관 인근에 세를 들어 마련한 4층 경당과 옥탑방 교리실이 베트남 출신 이주민들에게 신앙의 보금자리로 떠오르고 있다. 주일이면 300명이 넘는 베트남 신자들이 찾는데도, 남미ㆍ타이ㆍ몽골 공동체와 기타 국가 이주노동자들도 찾아오고 노동사목회관도 공간이 협소해 교리 공부와 혼인교리, '성서백주간' 공부, 모임 등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던 베트남 노동자들에겐 새 노동사목센터는 참으로 소중하기만한 공간이 됐다. 타이 빈ㆍ남 딘ㆍ녜 안ㆍ하 띤ㆍ꽝 빈ㆍ사이공(호치민) 등 6개 출신 지역별 공동체 모임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일산의 한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우엔 반 딘(37)씨는 특히 감회가 깊다. 2001년 평신도들의 기도 공동체로 닻을 올린 베트남공동체가 7년만에 사목센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비록 상가에 세든 처지지만, 그는 하도 기뻐 독서대와 성모상ㆍ성요셉상 받침대를 만드는 데 신자들과 힘을 합쳤다. 베트남공동체는 그렇지만 기쁨 속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1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188.43㎡의 비좁은 공간에 200~300명 신자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간이의자에 앉거나 서서 미사를 봐야하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물 전세금 상환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도요안(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외국인사목 담당, 살레시오회) 신부가 한국에서 선교한 40년 동안 생활비와 용돈을 아끼고 지난해 9월 칠순 축하잔치 축하금을 모은 1억원을 출연했지만, 나머지 2억2500여만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비좁은 건물 4층까지 가파른 계단을 오를라치면 모두들 답답하기만 하다. 허윤진 신부는 "베트남 신자들이 워낙 많아 타 공동체들이 미사나 교리교육, 상담활동, 회합 등에 큰 지장을 받아 하는 수 없이 빚을 내 필리핀공동체에 이어 두번째로 노동사목회관 인근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며 "베트남공동체가 정상적으로 미사전례와 자체 공동체활동, 이주사목을 할 수 있도록 사랑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달라"고 후원을 호소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07.06.27

설날, 차례 이렇게 지내요몸과 마음 단정히, 정성스럽게 준비 명절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를 갖추고 조상 은덕(恩德)을 기리는 것이다. 한국 가톨릭에도 조상에 대한 효와 하느님께 대한 감사, 가족의 화목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제사(차례)예식안이 있다. 하지만 이 예식안은 「상장예식서」(주교회의 인준) 별책으로 나와서 그런지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설날 아침, 가족이 함께 예를 올릴 수 있는 이 예식을 소개한다. 이 예식은 기제사와 설날, 한가위, 한식 등 모든 제사와 차례 때 사용할 수 있다. # 준비사항 차례를 올리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한다. 혹시 불목하고 있는 이웃이 있는지 살펴 화해하기로 다짐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한다. # 예식순서 1) 제사 준비를 모두 마치면 영정(위패)을 모시고, 제주(祭主)는 제사의 시작을 알리며 십자 성호를 긋는다. 2) 참석한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두 번 절한다. 3) 제주가 영정(위패)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분향한 후 잔을 받아 미리 준비한 그릇(모사기-茅沙器) 위에 삼제(三祭-술을 세 번 조금씩 따르는 것)한 다음 돕는 이에게 주면 돕는 이는 잔을 올리고 밥그릇 뚜껑을 열어놓는다. 제주는 두 번 절하고 물러난다. 참석한 모든 이가 차례로 나아가서 잔을 올린다. 그러나 제주 이외에 다른 사람은 삼제를 하지 않는다. 4) 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제주가 조상께 고한다. "주님의 보살핌으로 오늘 다시 ( )께 차례(제사)를 올리게 되었나이다. 이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드리는 저희의 정성과 사모하는 마음을 받아 주소서. 저희는 언제나 ( )를 기억하여 이 차례(제사)를 올리오니 ( )께서는 저희가 주님의 뜻을 따라 화목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전구하여 주소서. 5) 제주는 아래의 말로 참석자들에게 함께 조상을 기억할 것을 권한다. "성경에는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 두셨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1고린 2, 9)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로마 14, 7~9) 이 말씀으로 우리 ( )께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시며 주님 안에서 우리와 하나 되시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안에 한 백성입니다. (주례는 다른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권고할 수도 있다) 6) 주부가 나아가 숟가락을 밥그릇 위에 놓는다. 제주와 모든 참석자는 두 번 절한다. 절한 다음 조상을 생각하며 잠시 묵상한다. 7) 제주인 주인과 주부는 국그릇을 거두고 냉수나 숭늉을 올린다. 8) 제주는 모든 참석자와 함께 두 번 절하며 작별배례를 한다. 제사를 마치면서 조상과 가족, 친척들과의 통교를 더욱 깊게 할 것을 결심하고 주님께 감사하며 성가를 부른다. 9) 영정(위패)을 따로 모신 다음, 참석자들은 술과 음식을 나눈다. 이 식사는 사랑과 일치의 식사이며 조상과 가족간의 통교를 더욱 깊게 하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축제의 기쁨은 이웃, 특히 소외된 형제들에게도 확장되어야 한다. 정리=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 차례상은 이렇게 1) 차례상은 집안 관습에 따라 차리되, 향상(香床)에는 향로와 향합, 촛대 외에 중앙에 십자가를 모신다. 차례상 앞에는 깨끗한 돗자리나 다른 깔개를 편다. 영정 대신 위패를 모셔도 좋다. <그림 참조> 2) 첫 줄은 숟가락을 놓는 대접과 잔, 받침대와 송편(추석의 경우)을 놓는다. 3) 둘째 줄은 어동육서(漁東肉西)다. 오른쪽(동쪽)에 어적(생선 구운 것)을, 가운데에는 소적(두부 구운 것)을, 왼쪽(서쪽)에는 육적(고기 구운 것)을 놓는다. 4) 셋째 줄은 3가지 종류(육탕, 소탕, 어탕)의 탕을 놓는다. 5) 넷째 줄에는 좌포우혜(左捕右醯)라 해서 왼쪽에는 포를, 오른쪽에는 식혜를 놓는다. 6) 다섯째 줄에는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여 붉은 과일은 오른쪽에,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차례상에는 각 가정 고유의 차례 음식을 올릴 수 있으며, 평소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이나 가족이 즐기는 음식을 올려도 무방하다. ▨ 조상제사에 대한 교회 가르침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앞서간 조상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설을 맞아 조상제사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살펴본다. 교회가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포용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대표적 경우다. 가톨릭교회에서 조상제사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16세기 중국에서였다. 당시 중국에서 선교하던 선교회들 가운데 예수회는 조상제사를 조상에 대한 효성을 드러내는 미풍양속으로 본 반면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는 미신으로 여겼다. 선교회들의 이 같은 견해 차이는 '제사논쟁'을 촉발시켰고, 100여 년간 계속된 제사논쟁은 1715년 교황 클레멘스 11세와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조상제사를 미신행위로 간주하면서 엄하게 금지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이에 따라 신자들은 제사에 참례할 수 없었고, '신주'(神主) 또는 '신위'(神位)라고 쓴 위패를 집안에 두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교황청의 제사금지 지침은 1790년께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유교문화가 지배하고 있던 당시 조선사회에 제사를 엄격히 금한다는 천주교 가르침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천주교가 박해를 받게된 계기도 결국 제사문제 때문이었다. 전라도 진산에 살던 윤지충(바오로, 1759~1791)은 제사를 금하는 교회 가르침에 따라 집에 모시고 있던 신주를 불태워 버렸고, 1791년 5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외사촌 형 권상연(야고보, 1751~1791)과 상의한 끝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천주교식 장례를 치렀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전주 풍남문 밖에서 참수당하고 말았다. 한국교회 첫 번째 순교자들이다. 조상제사를 금지하는 교황청 가르침이 바뀌는 데는 200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1939년 교황 비오 12세는 「중국 의식(儀式)에 관한 훈령」을 통해 조상제사에 대해 관용적 조치를 취했다. 조상제사가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니라 문화적 풍속이라고 전향적으로 해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교회는 이후 이 훈령에 따라 시신이나 무덤, 죽은 이의 사진(영정)이나 이름이 적힌 위패 앞에서 절을 하고 향을 피우며 음식 차리는 행위 등을 허용했다. 다시 말해 제사를 인정한 것이다. 한국교회 지역교회법인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는 제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사의 근본 정신은 선조에게 효를 실천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뿌리 의식을 깊이 인식하며, 선조의 유지를 따라 진실된 삶을 살아가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 한국 주교회의는 이러한 정신을 이해하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한 사도좌의 결정을 재확인한다"(제134조 1항). "설이나 한가위 등 명절에는 본당 공동체가 미사 전이나 후에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조상에게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 의식을 거행함이 바람직하다"(제135조 2항).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김원철2009.01.21
47-성경의 장과 절 구분은 언제부터 생겼나요성경 쓰여진 후 장절 구분 생겨성경의 장 절 구분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인가요, 아니면 나중에 추가된 것인가요. 우리가 지금 보는 성경은 각 권마다 장과 절로 나뉘어 있어서 찾아보기가 편리합니다. 그러나 장 절 표기는 성경이 씌어질 때 함께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을 찾아보기 쉽도록 나중에 붙여진 것입니다. 성경의 장 절 구분 역사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성경의 장 절 표기 구분 역사는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이 조금 차이가 납니다. 먼저 신약성경의 경우 2~3세기부터 성경 연구자들이 복음서를 중심으로 구분하기 시작해 5~6세기에 이르면서 복음서들은 318 부분으로, 서간서들은 254 부분으로 구분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에 앞서 4세기에 필사된 바티칸 사본에서는 마태오 복음을 68장, 마르코 복음은 48장 등으로 구분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완전하지 못했고 그래서 실제로 이용하는 데 불편한 점이 무척 많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신약성경의 장 구분은 1205년 스티브 랑톤(1150~1228)이 창안했다고 합니다. 파리 대학 교수 출신으로 나중에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랑톤의 장 구분은, 불가타역 성경에 채택됐습니다. 불가타역은 성 예로니모(347~420)가 신구약 성경 전체를 당시 라틴어로 번역한 성경으로, 16세기 트렌토공의회에서 가톨릭 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채택한 성경이지요.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절이 구분된 것은 훨씬 후대인 1500년대 중반의 일입니다. 인쇄업자인 로베르 에티엔(1503~1559)이 파리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신약성경을 출판하면서 기존에 구분된 장에 다시 절을 구분했습니다. 전해지는 말로는 당시 에티엔은 말을 타고 리옹에서 파리로 여행하면서 절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의 경우에 유다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회당에서 읽기 쉽게 주제별로 문단을 나누거나 한 줄을 띄우거나 해서 구분했습니다. 이런 흔적은 1947년 사해 동굴에서 발견된 꿈란 사본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사본들이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사용되던 것이라는 점에서 그만큼 그 구분이 오래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회당에서 회중 앞에서 히브리어 성경을 낭독할 때에 통역자가 아람어로 번역할 수 있도록 일정하게 끊어서 낭독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절을 구분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6세기에 와서는 구약성경의 절 구분에 해당하는 표시들이 히브리어 성경 본문에 첨가됐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오늘날과 같은 장 구분은 히브리 성경이 아니라 라틴어 불가타역 성경을 통해서 이뤄졌고, 그 주역은 위에서 언급한 스티븐 랑톤 대주교입니다. 랑톤 대주교는 신약성경을 장으로 구분했을 뿐 아니라 구약성경도 숫자 형태로 장을 구분했습니다. 이 구분은 1330년에는 필사본 히브리어 성경에, 1516년에는 인쇄본 히브리어 성경에도 적용됐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인쇄업자 로베르 에티엔은 랑톤 대주교의 장 구분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의 절을 구분하면서 구약 성경의 경우 전해져오던 절 구분 표시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1571년에는 인쇄된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 처음으로 절이 구분돼 출판됐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장 절 구분과 관련해서 랑톤 대주교와 로베르 에티엔 두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편리하게 성경의 해당 본문을 찾아 읽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알아 둡시다 성경의 장 절을 표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새 번역 「성경」을 편찬하면서 성경 구절 표기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예컨대 창세기 5장을 줄여서 표기할 때는 '창세 5'로, 창세기 3장 15절을 줄여서 표기할 때는 '창세 3,15'로 각각 표기합니다. 또 창세기 3장 5절부터 10절까지로 절이 이어질 때는 붙임표를 써서 '창세 3,5-10'으로, 창세기 4장부터 6장까지로 장이 이어질 때는 줄표를 써서 '창세 4─6'으로 표기합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성경」 '일러 두기' 10항에 나와 있습니다. 성경 장 절을 표기할 때 이 원칙을 잘 새겨두었다가 틀리지 않게 표기하면 좋겠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7.06.07

대화하듯 재미있게 성경 공부하며 살아계신 하느님 직접 만나보세요'차동엽 신부의 맥으로 읽는 성경' 9월 17일 첫선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차동엽 신부의 새로운 특강 시리즈 '맥(脈)으로 읽는 성경'이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방대한 신ㆍ구약 성경의 내용을 알기 쉽게 짚어보고 실제 생활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도록 돕고자 기획된 '차동엽 신부의 맥으로 읽는 성경'은 구약 24강, 신약 18강으로 평화방송 TV 가을철 프로그램 개편이 시작되는 9월 17일부터 구약은 매주 월요일 오후 3시, 신약은 매주 화요일 오후 3시에 각각 방송된다. 지난 7월 23일부터 11일 동안 인천교구 부천시 상동 가톨릭교육관에서 진행된 녹화 현장에는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초등학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150여명이 빠지지 않고 참석, 성경을 알고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드러냈다. 이 강의를 들으려고 인천, 서울, 수원, 의정부교구뿐만 아니라 춘천교구에서도 두세 시간씩 걸려 달려왔을 정도. 차 신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하루에 네 번의 강의를 진행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강의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차 신부는 "처음엔 내가 강의를 하는 줄 알았는데, 강의를 하면 할수록 주님께서 직접 지휘하시고 함께하시는 강의임을 깨달았다"며 "이번 강의를 통해 교회에 성경 읽기 붐이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강의 구석구석 은혜가 숨겨져 있어, 어디에서 은혜가 쏟아질지 모르니 하루도 빠뜨리지 말고 꼬박꼬박 들어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강의를 들으러 왔다는 주형석(요셉, 12, 서울 구의동본당)군은 "강의를 듣기 전에는 '구약성경'하면 답답하고 까다로운 내용인줄 알았는데, 강의를 듣고나니 구약성경도 재미있게 느껴진다"며 "대화하듯이 재미있게 성경공부를 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경숙(데레지나) 수녀는 "'맥으로 읽는 성경'은 단순히 머리로 하는 성경공부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고 영성적 목마름을 채워주는 강의가 될 것"이라며 "강의를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차 신부는 지난 3년 동안 '여기에 물이 있다' '밭에 묻힌 보물'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등 프로그램을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일상 삶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재미있고 명쾌하게 해설해 화제를 모아왔다. 지난해 말 출간한 「무지개 원리」는 지금까지 20만여 부가 팔려 유명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지난 6월부터 두 달 동안은 KBS에서 종교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연속 특강을 맡아 '행복 전도사'로서 교회 안팎에 명성을 얻고 있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cpbc2007.08.08

오선지에 그린 하느님의 선율작곡가 윤지환씨 "전에는 제가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받아적는 사람(writer)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곡가 윤지환(안토니오, 32, 서울대교구 개포동본당)씨는 작곡을 하게 된 건 주님의 이끄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에 작곡은 그에게 그냥 꿈이었다. '음악가'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고, 백댄서로 일하며 가수의 길도 준비했지만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진로를 바꿔 서울예술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키보드를 선물 받고 작곡의 꿈을 다시 키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작곡을 시작하니 어려움이 많았죠. 하나하나 독학으로 공부를 했고, 현장에서 뛰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고수들을 쫓아다니며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작곡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했다. '도대체 스트레스의 원인이 뭘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자신이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주님을 등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그제야 "곡을 잘 쓰려면 주님과 소통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와 닿았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자고 생각하고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주님께서는 손바닥 위에 '행복'을 올려놓으시더라고요." 욕심을 버리니 오선지에 음이 노래하듯 흘렀다. 그는 대중가요부터 게임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다. 특히 가수 '와와(Wawa)'의 '유(U)'는 작사, 작곡, 편곡까지 다 그의 손을 거쳤다. 편곡까지 직접 해야 가사의 느낌이 100% 살아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제 음악을 듣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 가장 보람 있어요." 처음 개포동 자신의 집에서 작업을 하던 그는 지금은 양재동에 마련한 조그만 작업실에서 작곡을 한다. 웃는 예수상, 십자가, 묵주, 말씀사탕 등이 곳곳에 놓여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그가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성경을 읽는 것이다. 양재천을 산책하다 노을이 지는 하늘이 너무 예뻐 '주님, 이 느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하고 기도하고, 좋은 곡이 생각나면 '감사합니다, 주님!' 소리부터 나오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신자라고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것 없이 살았어요. 술, 담배, 친구 좋아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속에서 뒤처질 것만 같았거든요." 그는 2006년 여름 성서연수에서의 체험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아이가 어른에게 칼을 달라고 졸랐어요. 어른은 주지 않다가 아이가 하도 조르니 건네주었지요. 아이가 그 칼을 마구 휘두르는데, 바라보니 어른의 품 안이었어요. 그 어른은 칼부림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도 환히 웃고 있었어요." 훤칠한 키에 잘 놀게 생긴(?) 외모 때문에 주위 사람들 편견으로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런 외모 덕에 청소년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착한 '척', 신앙심 깊은 '척' 하며 살지 않고, 주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택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 제가 원하는 것을 일치시키려는 노력만 하며 살려고요."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cpbc2009.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