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차 한 잔 드세요하느님과 함께하는 한국 전통예절과 차 예절교육15일 전남 목포 산정동성당 지하 강당. 한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가부좌 자세로 앉아 하느님께 차(茶)를 올리기 위해 먼저 따뜻한 물을 천천히 다관(茶罐)에 붓는다. 장난치기 좋아하는 청소년들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이어 차를 따르고 명상이 시작된다. 명상차 시간이다. 서울대교구 가톨릭 경제인회 사회사목분과위원회(위원장 임만택)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이사장 김운회 주교)는 14일부터 사흘간 광주대교구 목포 산정동성당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한국 전통예절과 차 예절교육'을 처음으로 마련, 공부방 아이들을 초청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와 차상위계층 자녀 36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 헌다례(獻茶禮)와 전통예절 등을 체험했다. "명상차는 자신을 잘 다스려서 하느님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명상차를 즐겨 마셨지요. 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며 집중력도 생기고, 여학생들은 얼굴도 예뻐져요." 여학생 몇몇이 예뻐진다는 말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지만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예절교육 강사로 나선 이 벤자민(성가소비녀회) 수녀가 차의 효능과 다례에 대해 설명하자 아이들 눈빛이 반짝인다. 명상차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하늘과 땅의 기를 통하게 한 다음, 복식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예수님 잔과 자신의 잔을 마련하고 '예수님, 차 한 잔 드세요'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차를 준비하는 것이다. 차를 따를 때도 다관을 잡고 예수님 잔, 자신의 잔을 세 번 번갈아가며 따른다. 성경을 읽고 침묵하며 차를 든다. 첫날부터 차 예절을 연습한 청소년들은 이날 오경섭(광주대교구 산정동본당 보좌) 신부 주례로 봉헌된 저녁미사에서 정성껏 준비한 최고급 세작 차를 하느님께 봉헌했다. 미사에 이은 전통예절 배우기 시간에는 설날 가족과 친지들에게 선보일 절하기를 실습했다. 이 수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세요.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가게하고. 지금은 하느님께 올리는 절이니 손은 이마까지 높게 올려야 합니다"라며 바른 자세로 절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번 행사는 청소년들의 목포 겨울바다 여행과 함께 △도자기 체험 △달집태우기 △천연 염색 체험 △봉운 다례원 방문 △유달산 등반 등 다채롭게 진행됐다. 김성철(가명, 중3)군은 "평소에 다소 산만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예절교육을 받고 차분해진 것 같다"며 "설날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번에 배운 바른 자세로 절하고, 헌다례를 보여드리고 싶다"며 웃음을 지었다. 임만택(제노) 위원장은 "개인주의 성향이 다분한 요즘 아이들이 전통예절을 통해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행사를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많은 청소년들이 전통예절을 체험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예절의 기본 원칙 ▲아홉 가지 기본 마음가짐 ◇시사명(視思明): 밝고 바르게 본다 ◇청사총(聽思聰): 들을 때는 똑똑히 들어 참뜻을 알도록 한다 ◇색사온(色思溫): 얼굴빛과 표정은 온화하게 한다 ◇모사공(貌思恭): 태도 전체의 모습은 공손하게 한다 ◇언사충(言思忠): 말은 거짓 없이 참되게 할 것을 생각한다 ◇사사경(事思敬): 무슨 일이나 잘못됨이 없도록 경건하게 한다 ◇의사문(疑思問): 의심나는 것은 묻도록 한다 ◇분사난(忿思難): 분할 때는 곤란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참는다 ◇견득사의(見得思義): 이로움이 생기면 정당한가 생각한다 ▲아홉 가지 기본 몸가짐 ◇두용직(頭容直): 머리는 곧게 세운다 ◇목용단(目容端): 눈은 단정하게 바르게 뜬다 ◇기용숙(氣容肅): 숨소리는 고르게 해서 기를 가라앉힌다 ◇구용지(口容止): 말은 신중하게 한다 ◇성용정(聲容靜): 목소리는 나직하고 조용하게 한다 ◇색용장(色容莊): 얼굴빛은 장엄하게 가진다 ◇수용공(手容恭): 손의 자세를 공손히 한다 ◇족용중(足容重): 발걸음은 정중하게 해야 한다 ◇입용덕(立容德): 서 있는 모습은 의젓하게 품위 있도록 가진다 이힘2009.01.21

일치 십자가 맞바꾸며 친교 다져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의 해 준비위 일치기도모임 이모저모'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의 해' 준비위원회가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개최한 일치 기도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일치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뜻 깊은 자리였다. 예년에 비해 매우 성대하게 치러진 올해 기도회를 계기로 한국교회 일치운동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평가다. ○…기도회는 가톨릭성가인 동시에 개신교 찬송가이기도 한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교회 한국대교구 등 각 교단 대표들과 봉사자들이 행렬을 지어 화해와 일치의 상징인 성경과 십자가, 일치 상징물들을 들고 입장하면서 막을 올렸다. 가톨릭의 미사전례와 개신교의 예배가 융합된 이날 행사에서 특별히 시편과 제1독서는 거문고와 춤이 함께하는 시조창으로, 제2독서는 한편의 연극 대사처럼 봉독돼 눈길을 끌었다. 교회 일치의 정신처럼 동양과 서양의 조화로운 만남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 350여 명으로 구성된 혼합합창단은 기도회 내내 멋진 화음을 선사했다. 또 포콜라레 청년들은 청아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하모니로 '평화의 기도'를 노래로 불러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이와 함께 목사와 수녀, 외국인 선교사, 장기수, 이주 노동자, 기업인 등 각계 각층을 대변하는 10명이 나와 각기 다른 지향으로 바친 청원기도는 교회 일치는 물론 남북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기도회의 절정은 '일치 십자가 세우기'. 무대로 올라온 교단 대표들이 두 개로 갈라진 2.8m 높이의 나무 십자가를 하나로 끼워 맞춤으로써 갈라진 그리스도교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무대 위에서 일치 십자가가 세워지는 동안 참석자들은 입장할 때 받은 나무토막 두 개를 붉은색 푸른색 두 끈으로 묶어 일치 십자가를 만들었다. 이어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며 평화와 일치의 도구가 될 것을 다짐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 찬송을 부를 때 친교의 의미로 이 십자가를 옆사람과 교환했다.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한 정진석 추기경은 그리스도교 일치는 결코 그리스도인만의 구원과 해방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그리스도교는 교회 일치를 이뤄 폭력과 증오로 물든 사회 현실 속에서, 도덕과 가치가 상실된 이 땅의 어둠 속에서, 이기심과 교만으로 편향된 종교적 현실 속에서, 가진 자의 욕심으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적 모순 속에서, 불의와 탄압으로 의사소통이 단절된 세상 속에서 참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날 기도회에서는 가톨릭측 오스발도 파딜랴(주한 교황대사) 대주교와 개신교측 새뮤얼 코비아(세계교회협의회, WCC) 총무가 축사를 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파딜랴 대주교는 "세계 교회의 일치주간 기도 주제를 한국 교회가 준비했다는 점에서 이번 기도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며 교황 베네딕토 16세 이름으로 축복을 전했다. 코비아 총무는 "교회 일치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가 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반드시 이뤄야 하는 것"이라면서 "한국교회의 일치 노력이 분단된 한반도를 하나되게 할 수 있도록 세계교회협의회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유인촌(토마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독한 축하 메시지를 통해 "천주교와 개신교, 정교회가 하나되어 전 세계 국가 모두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본받아야할 아름다운 모습"이라며 앞으로도 서로 화합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한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길 요청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정진석 추기경(오른쪽)이 일치 기도회에서 개신교와 화합을다지는 의미에서 김삼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을 손을 잡고 퇴캉하고 있다. cpbc2009.01.21
평화화랑 전시회 김철호씨 성지사진전, 17~23일 순교자 성월을 맞아 서울 명동 평화화랑에 들러 사진을 통해 성지순례를 떠나보자. 사진기자 김철호(스테파노, 서울 대치4동본당)씨가 17~23일 서울 명동 평화화랑에서 첫 사진전 '순교자의 땅 믿음의 못자리'를 갖는다. 전국 성지를 찾아다니며 성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5년 전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시작으로 냉담을 풀고 하느님 앞에 "제 탈렌트를 당신을 위해 쓰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전시작품은 30여 점. 전시되지 못한 작품들은 400쪽이 넘는 책에 담아 출간했다. 김씨는 아침에 일어나 하늘부터 보는 습관이 생겼다. 날씨가 맑으면 그 길로 성지로 달려갔다. 얕은 신앙이 사진에 드러날까 성서 100주간도 수료하고 성경 필사도 했다. 그는 "신자들이 제 사진을 보고 직접 성지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그는 스포츠서울, 국민일보, 중앙일보 사진기자를 지냈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SPORTSPRESS(스포츠프레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화가 서미전씨 개인전, 24~30일 화가 서미전(체칠리아, 대구대교구 본리본당)씨가 24~30일 서울 명동 평화화랑에서 '사랑의 빛'을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대림, 성탄, 사순, 부활 등 전례시기와 성월, 십자가의 길 14처를 묵상하며 그린 그림은 화려한 색채로 표현돼 있다. 그림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꽃은 그리스도의 향기와 기쁨, 빛을 상징한다. 오랜 냉담을 풀고 10년 전 스스로 찾은 신앙은 그에게 새로운 작품 세계로 길을 열어줬다. 어두우면서도 사회 비판적 내용을 담은 그림을 고집했던 그가 180도 달라진 것. 서씨는 "하느님께서는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면서 "그 뒤로 그림도 밝아지고 신앙을 담게 됐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박수정2008.09.09
![[성경 속 동식물]55-작고 미소한 존재의 상징인 벼룩](//cpbc.co.kr/CMS/newspaper/2007/07/rc/21382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동식물]55-작고 미소한 존재의 상징인 벼룩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벼룩의 간을 빼먹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진짜 벼룩의 간은 있을까? 그런데 정작 벼룩에게는 간이 없다고 한다. 간의 기능 중 하나가 단백질 대사산물인 암모니아를 요소로 바꿔서 소변에 섞어 배출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곤충은 요산을 배출한다. 사람의 간과 같은 기능을 하는 기관이 곤충에는 없다. 따라서 벼룩이 워낙 작아 "벼룩의 간"이란 말은 아주 작은 것을 의미한다. 이밖에도 "벼룩도 낯짝이 있다" "벼룩의 등에 육간대청을 짓겠다" 등 벼룩이 들어간 속담이 비교적 많다. 벼룩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교훈을 주는 곤충이다. 벼룩은 세계 각지에 널리 분포하며 약 1500종이 알려져 있다. 벼룩은 흔히 빈대, 이, 바퀴벌레와 더불어 4대 혐오곤충으로 분류된다. 벼룩은 피를 빨아먹고 산다. 벼룩은 쥐, 고양이, 개, 닭, 비둘기, 다람쥐, 오소리, 박쥐, 두더쥐, 토끼, 사람 등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숙주에 빌붙어 살아간다. 벼룩의 유충은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에 붙어서 살기에 불결한 곳에서 번식한다. 벼룩이 옮기는 가장 중요한 병은 흑사병이라 불리는 페스트다. 쥐에 붙어 있는 벼룩이 페스트를 옮긴다는 것은 영국의 리스튼이 인도에서 확인했다. 벼룩은 쉽게 볼 수 있는 곤충의 모습과 달리 옆으로 매우 편평한 형태로 등쪽으로 털들이 상당히 많이 나있다. 그 중에서도 뒷다리는 현저하게 발달해 도약하기에 매우 유리하다. 벼룩이 점프하는 높이가 약 30㎝정도 되는데 이를 사람의 경우로 환산하면 약 17m 정도를 도약하는 높이다. 성경 시대에 팔레스티나의 건조한 조건에서도 벼룩들은 많이 있었다. 다윗과 사울의 대화에서 벼룩이 등장한다. "누구를 찾아 이렇게 출동하셨단 말씀입니까? 누구를 추격하시는 것입니까? 죽은 개 한 마리를 쫓아 오셨습니까? 벼룩 한 마리를 쫓아오셨습니까?"(1사무 24,15). 다윗은 자기를 벼룩으로 비유했다. 벼룩처럼 보잘 것 없는 벌레라는 의미다. 또한 사울에게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는 뜻도 내포한다. "이제 제가 주님 앞에서 멀리 떨어진 채, 땅에 피를 흘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스라엘 임금님께서 정녕 산에 있는 자고새를 뒤쫓듯이, 벼룩 한 마리를 찾아 나서셨으니 말입니다"(1사무 26,20). 이처럼 성경에서 언급된 벼룩은 무가치하고 미소한 존재의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벼룩같이 작은 존재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지혜가 중요하다. 세상의 어떤 것도 무가치한 존재는 없다. 다만 우리가 가치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cpbc2007.07.04

성령, 세속적인 이 시대에 영적 쇄신을 위한 보물성령쇄신운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상)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바르고 건전한 성령쇄신운동을 위해 지난해 말 소책자 「올바른 성령 이해」를 발행했다. 31일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아 「올바른 성령 이해」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한 기회을 마련했다. '성령쇄신운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란 제목으로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대표담당) 신부의 글을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주 1. 성령쇄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령강림의 볼 수 있는 표지로서 신약성경이 전하는 사건들은 사라진 옛 역사가 아니며 이 역사는 오늘날 솟아오르는 사건입니다. 개인적 체험이 없는 교의적 믿음은 공허하고, 교회의 믿음과 연결이 없는 순수한 체험은 맹목적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성령쇄신은 하나의 희망이고 시대의 적극적 징표요, 우리 시대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세속적 합리주의 결과로 무미건조해진 이론과 실천에 대한 기도의 기쁨과 풍요함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영' 성령쇄신은 바로 생명을 주시는 영에 대해 재인식하고 끊임없이 새롭게 재발견하고 삼위일체 안에서 우리 모두 하나 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동안 성령쇄신운동이 가톨릭 안에서 잠자고 있던 많은 신앙인들을 깨어나게 했고 회개하게 했으며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고백하게 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성령운동이 불같이 일어나면서 엄숙하기만 하던 성당은 활기가 넘쳐나고 찬미와 찬양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유기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이렇게 성령쇄신 운동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령쇄신의 모습은 지나치게 외향적으로 치우치거나 치유나 예언, 구마 또는 기복신앙으로 흐르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은 것도 사실입니다. 2005년 10월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에서 발표한 신앙생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령쇄신 참여자의 60% 이상이 고졸 이하 학력이며, 50% 이상 참여자들이 월수입 200만 원 이하 서민층으로, 여성이 86% 이상이며, 연령층은 50대 이상입니다. 50대 이상 연령층이 65%인 점을 감안한다면 성령쇄신운동의 노령화와 쇠퇴는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성장을 위해 42.4%, 치유 및 삶의 어려움 해결을 위해 32% 라는, 즉 75% 이상 사람들이 영적성장 및 삶의 갈망을 채우고자 성령기도회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성령쇄신운동이 개인 영성 생활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각 본당 성령기도회는 여전히 교회 사목의 저변에 놓여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성령쇄신운동의 영적 가치는 재조명돼야 하고 또한 그 가치는 공유돼야 합니다. 성령쇄신의 명암을 직시하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에서 2008년 12월에 발행한 소책자 「올바른 성령 이해」를 통해 바르고 건전한 '성령쇄신운동'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를 마련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식별력을 키우고, 바르고 건전한 쇄신 운동에 일조하여 개인 신앙생활은 물론이고 교회 공동체에도 올바른 지침을 주는 소책자가 발간된 것과 관련해 다시 한 번 성령쇄신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2. 교회 쇄신 운동인 성령쇄신 가톨릭 성령쇄신 운동의 시작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대학교의 몇 명 대학생 그룹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들은 1967년 피정 중에 성령이 그들 안에 넘치는 경험을 시작했으며,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3만5000명의 전 연령층 가톨릭 신자들이 성령을 찬미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려는 성령의 능력과 힘을 구하기 위해 노틀담대학 전국 집회에 모였습니다. 역사적으로도 하느님께서 성령의 돌풍으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셨던 파도가 절정에 달한 것 같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4세기 수도원 운동 또는 중세시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 의해 시작된 교회 쇄신운동을 그렇게 볼 수 있고 20세기도 그러한 시대 중 하나였습니다. 결정적 순간들을 예로 들어보면, 교황 레오 13세가 신자들에게 보낸 성령에 관한 회칙 「하느님의 직무」(Divinum Illud Munus, 1897)를 말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성공을 위해 교황 요한 23세는 새로운 성령강림을 청하면서 "새로운 성령강림으로 우리 일상을 당신의 경이로움으로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가장 최근 성령쇄신 운동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은 성령과 은사의 현존에 대해 기술합니다.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 이런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와 세계 안에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이런 은사를 사용할 권리와 의무가 각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은사는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요한 3,8)는 성령의 자유로우신 인도를 받아 행사되어야 한다." 1975년 제9회 성령쇄신에 관한 로마 국제회의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회와 세계는 성령강림의 기적이 역사상 계속되기를 어느 때보다 더 바라고 있습니다. 갈수록 급속도로 세속화되어가는 이 세계에 성령이 일으키는 '영적 쇄신'을 증거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이 '영적 쇄신'이 교회와 세계에 '하나의 기회'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는 인사로 그들을 맞았습니다. 미국에서는 가톨릭 주교들이 몇 편의 긍정적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1969, 1975, 1984, 1997). 성명서들의 핵심 부분이 가장 최근에 발표된 문서 「새로운 봄을 위한 은총」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우리는 성령세례(사도 1,4)라고 알려진 성령의 선물과 은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확인과 지원과 격려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작용이 수백만 명 사람들의 삶과 또한 그들을 통해 교회의 삶에 미치게 된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또한 교회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격려를 보냅니다." 주교들은 1969년 문서를 통해 재차 말합니다. "쇄신운동이 스스로 복음의 지속적인 현실화를 위해 중요한 활동을 하는 한, 교회의 삶에 부수적인 일이라고 경시될 수 없습니다." 주교들은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79년 연설을 인용합니다. 교황은 그 연설에서 성령쇄신을 "성령이 작용한다는 신호이며 교회 전체의 쇄신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입문할 때 받게 되는, 그리고 성령의 현존과 작용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의 기회로 이해되는 성령세례는 보통의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의 한 부분입니다. 이는 가톨릭 성령쇄신운동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광범위한 은사로 명백히 드러납니다." 문 종 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대표 담당) cpbc2009.05.12
[교회상식 교리상식(128)] 십계명풀이 3-제2계명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십계명의 둘째 계명은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인데,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는 첫째 계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최상 경배 행위인 흠숭을 드려야 마땅한 하느님이시라면 그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둘째 계명에 대해 좀 더 살펴봅니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또 간절한 청을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면 자신의 말에 하느님 이름이 함부로 오르내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둘째 계명은 하느님뿐 아니라 하느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와 모든 성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하느님 이름으로 한 약속은 바로 하느님 명예와 성실과 권위를 내세우고 한 약속이기에 마땅히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 이름으로 약속을 해놓고도 성실하게 지키지 않는다면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쓰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이나 말로써 하느님을 증오하거나 비난하거나 불경스럽게 대하는 것은 모두 신성 모독으로 둘째 계명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나아가 교회와 성인들, 그리고 성물들에 대해서 그렇게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드려야 할 존경과 흠숭을 거스르는 불경, 신성 모독은 그 자체로 중죄가 됩니다. 또 하느님을 모독할 뜻이 없다 하더라도 하느님 이름을 부르며 욕설을 하거나 또는 하느님 이름을 마술적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둘째 계명에 위배됩니다. 거짓 맹세는 거짓을 믿게 하려고 하느님 이름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으면서도 하느님 이름을 걸고 거짓으로 약속을 하거나 반대로 하느님 이름으로 맹세를 해놓고서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역시 거짓 맹세에 해당하지요. 이렇게 거짓으로 하는 맹세는 당신의 약속에 한결같이 충실하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중대한 과오로, 둘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에 하느님 이름을 거는 것 역시 둘째 계명에 위배됩니다. ◇생각해 봅시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을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누구에게 알려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표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실 때에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 말로는 '있는 나'로 번역되는 '야훼'라는 이름이지요(탈출 3,14-15 참조).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이름을 친히 알려주시면서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이름을 직접 알려 주시면서 그러나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도록 명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셨다는 것은 그만큼 당신을 친밀하신 분으로 드러내신 것을 의미합니다.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시어 당신 이름을 알리시면서 당신 자신을 건네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 이름을 우리가 어찌 함부로 부르거나 헛되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알아둡시다 주교회의는 지난해 가을 정기총회에서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보내온 지침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야훼(YHWH)'로 표현된 하느님 이름을 전례 때나 성가, 기도 때에 사용하거나 발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는 둘째 계명과 관련된 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이름인 야훼라는 표현이 나오면 그 거룩하신 이름을 부르는 것이 두려워 '아도나이'라고 곧 '우리 주님'으로 바꿔서 읽었지요. 새 번역 성경에서도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을 직접 계시하신 대목(탈출 3,15; 6,2 등)을 제외하고는 야훼라는 표현을 모두 '주' '주님' '하느님' 등으로 바꿔 표현하고 있는데 같은 맥락입니다. ◇한 가지 더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는 누구나 세례명을 받게 됩니다. 세례명은 성인 이름을 본따 짓는 것이 보통인데, 누가 어떤 성인 이름으로 자신의 세례명을 짓게 되면 그 성인은 그 사람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신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수호성인을 닮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수호성인의 모범을 본받고자 노력하며 성인의 전구를 청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와 교회법은 세례명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대부모 및 본당 사목구 주임(본당 신부)은 그리스도교적 감정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붙이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156항; 교회법전 제855조).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9.02.10

청주교구 영동본당 '성서공부' 바람'여정' 프로그램 구약과정 마치고 신약과정 준비 모세5경을 배운 영동성당 신자들이 지난 2006년 7월 파스카축제를 갖고 신은미 수녀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주교구 영동본당(주임 신광호 신부)에 성경공부 바람이 불고 있다. 2006년 본당 설정 50주년을 맞은 바 있는 영동본당은 그해 2월 성경공부를 위해 '여정' 프로그램을 도입, 딱딱하게 굳어있는 듯했던 공동체에 신앙의 열기를 불러왔다. 조용했던 시골 본당은 성경공부와 뜨거운 신앙 체험을 통해 열심한 공동체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신은미(아넬로, 예수성심시녀회) 수녀의 열정적이고도 적극적인 교육이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6년 5월 창세기 교육 직후엔 성극 발표회를 가졌고, 7월 중순께 모세5경 교육이 끝나던 무렵에는 파스카 축제를 열어 신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복장으로 분장하고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준비해 먹어보며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는지 체험했다. 이어 1학기 종강 때엔 조별 대항 퀴즈 풀이를 통해 그간 공부를 점검했다. 또 방학 때마다 지혜서와 집회서, 잠언, 아가서, 이사야서 등을 필사토록 했으며, 2007년 3월 3학기 개강 때엔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 등을 직접 순례하는 12박 13일 성지순례를 30여 명이 다녀오는 열성을 보였다. 대전교구 성거산 성지나 갈매못 성지 등 국내 성지도 직접 찾아다니며 우리 신앙선조들의 신앙과 삶을 되새겼다. 또 지난 12월초엔 구약성경 교육을 마치는 기념으로 포항 갈평 피정의 집에서 2박 3일간 피정을 갖기도 했다. 구약성경 교육과정을 마친 신자들은 지난 12월 23일 영동성당에서 봉헌한 주일미사 중 구약 수료식을 갖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향후 4학기에 걸쳐 이뤄질 신약성경 교육에도 참가키로 했다. 신약 공부에 앞서 참가 신자들은 마태오 복음부터 시작해 4복음서 필사에 들어갔다. 구약성경 교육 과정 수료증을 받은 신자는 당초 신청자 117명 가운데 92명으로, 이사를 하거나 병환 중에 있는 신자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생부터 85살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수강생들은 학기 중 화ㆍ수ㆍ목요일에 이뤄지는 강의 시간 중에 다들 빠지지 않은 열성을 보였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8.01.02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1주일-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공동사목 오금동본당 주임)"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을 만나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래, 나는 하느님을 만난 적이 있고,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단다. 너도 내가 만난 하느님을 알게 되기 바란다." 한 초등학생과 저와의 어느 날의 대화 한 토막입니다.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가로막던 청년시절, 신부가 되고자 마음을 먹고 신학생으로 산 지가 7년이 지났는데도 성직자로서 평생을 하느님께 헌신하며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간 방황의 시간을 뒤로하고 대학원으로 복학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제품을 위한 피정이 시작됐습니다. 성직의 길을 가든지 아니면 그 길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나오든지 결정을 내려야 했던 30일간 침묵피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까지 기도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기본 시간 외에 하루에 6~7시간씩 매일 무릎 꿇고 저의 길을 알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18일이 지나자 무릎에 이상이 생겨서 더 이상 피정을 할 수가 없었고 큰 수술을 앞두게 됐습니다. 그 정도 노력을 했으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미래에 대한 결정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끝까지 피정을 마쳐야 한다는 지도신부에게는 가시 돋친 말밖에는 안 나왔습니다. 이렇게 혼란 속에 반항하면서 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는데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이는 것이었습니다. 성경 구절이 환히 비치면서 하느님의 현존이 순간 온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필름이 한꺼번에 돌아가듯이 나의 지나온 인생이 처음부터 펼쳐지는데 눈물이 그치지 않고 쏟아졌습니다. 방황하고 다녔던 지난 모든 순간순간이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 어느 한 순간도 주님께서 함께 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지나온 삶의 여정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하느님 앞에 내가 너무나 큰 죄인이라는 것이 절절히 느껴지면서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길은 명백해졌고, 과거의 불안과 어둠은 새로운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바오로 사도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는 말씀을 늘 마음 깊이 새겨 넣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백했듯이 제 삶을 끌어가시는 분은 언제나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그 순간 모든 것이 깨달아지며 퉁퉁 부어서 수술 날짜를 잡았던 무릎의 상처 또한 놀랍게도 자연 치료가 되어 지금까지도 수술 한 번 안 하고 잘 다니고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은총과 성숙의 시간이었음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주님은 저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면 그때의 체험을 되새기면서 다시 정화의 길, 그리고 성숙의 계기로 삼곤 합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제자의 답변에 기뻐하시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이때부터 베드로에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굳게 자리 잡게 됩니다. 예수님께 충성도 하고 배반도 하며 회개와 순교의 삶을 이어간 베드로를 있게 한 힘은 바로 오늘의 체험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 체험이 저에게 이어졌고 저 역시 여러분에게 주님은 살아계신 분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베드로 사도가 체험했고 바오로 사도가 체험했으며 또 제가 체험했던 하느님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을 아는 순간 여러분이 있는 그 공간은 영원으로 열리며 바로 하늘나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조은일2008.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