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성경(유치부, 1학년) 가정은 신앙의 겨자씨를 뿌려 키우는 못자리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교리를 배우고 익히며 신앙을 키우는 기회를 주고자 평화신문이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초등부와 공동으로 '교리 쏙쏙 신앙 쑥쑥'을 마련했습니다. 이 난은 유치부와 초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저학년(2ㆍ3학년), 초등학교 고학년(4ㆍ5ㆍ6학년)을 각각 대상으로 한 교리를 차례대로 실을 예정입니다. 부모들님들께서 '이렇게 지도하세요' 등을 통해 주제를 알고 먼저 익힌 뒤 자녀들과 함께 교리에 관한 문제를 풀면서 신앙에 대해 대화하고 교리를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갖도록 구성했습니다. ------------------------------------------------------------------------------------------------- <교리내용>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마음을 더욱 더 잘 알려주는 이야기책인 성경에 대해 알아보아요.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이 책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하트(♡) 표시가 된 부분만 색칠해 보세요. ★ 성경은 우리들을 사랑해 주시는 가장 소중한 분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실까요? 착한 일이 무엇일까 열심히 생각하면서 길을 따라 가면 그 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림 아래에 있는 그 분의 이름을 예쁘게 따라 써 보세요. ♠ 네모 안에는 어떤 글자가 들어갈까요? 네모 안의 선들을 연결하여 색칠해 보세요. 그리고 네모 안에 들어갈 책의 이름을 오른쪽 그림에서 찾아 적어보세요. [이렇게 지도하세요] ♠ 성경에 대해 알아보아요. 성경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돌봐주시는지 알려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느님을 알려 주십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무한하신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사람들에게 드러내신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신념의 발전을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육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외형상 단행본이 아닙니다. 여러 책들을 모아 놓은 것이지요. 하느님 백성이 만든 고유의 문학이며, 오랜 세월을 두고 점차 형성된 구약 46권, 신약 27권, 총 73권의 책입니다. 구약은 오경, 역사서, 시서, 지혜서, 예언서로 구분할 수 있으며, 제2경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이야기와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돌보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신약은 4복음서, 사도행전, 서간문, 묵시록으로 구분되며, 그 내용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하신 이야기와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잘 따르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기쁨과 감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cpbc2007.01.03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17-첫 단계의 세 가지 방법독서, 읽고 마음에 품고 되뇌이고 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 렉시오 디비나의 단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귀고 2세이다. 그는 영적 사다리의 네 단계를 통해 렉시오 디비나를 설명하고 있다. 독서, 묵상, 기도, 관상이 그것이다. 이번 주엔 그 첫 단계인 '독서'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독서는 '정신을 집중해서 성경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며, 복된 삶의 부드러움을 찾는 외적 수련'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유학자들은 이 단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유학에서 제일 먼저 강조하는 것 역시 독서하는 자세다. 주자는 이렇게 말한다. "배우는 사람이 독서할 때는 모름지기 몸을 가다듬어 바르게 앉고 시선을 누그러뜨려 가볍게 읊으며, 마음을 비우고 책 속에 푹 빠져서 자신에게 간절히 성찰해야 한다"(學者讀書, 須要檢身正坐, 緩視微吟, 虛心涵泳, 切己省一作體察.「朱子語類」, 讀書法). 한 구절 한 구절 깊이 새겨둘 만한 내용이다. 몸을 가다듬는 것, 바르게 앉는 것, 시선을 처리하는 법, 작은 소리로 읊는 것, 마음을 비우는 것, 책 속에 푹 빠지는 것, 절실하게 성찰하는 것…. 모두 몸에 밸 때까지는 오랫동안 수련해야 가능한 것들이다. 이제 구체적으로 경전을 읽는 법을 알아보자.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저 독서할 때는 우선 읽으려고 해야지, 단지 생각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입 속에서 읽다 보면 마음 속은 한가해져 바른 이치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나도 처음 배울 때는 역시 이와 같이 했을 뿐, 다른 방법은 없었다"(大凡讀書且要讀, 不可只管思, 口中讀, 則心中閑而義理自出, 某之始學, 亦如是爾, 更無別法. 「同上」). 주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누가 경전을 읽는 법을 물었을 때도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역시 법칙은 없으니, 단지 마음을 비우고 그냥 읽어라"(亦無法. 只是虛心平讀去). 다음으로 수없이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은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주자는 이렇게 말한다. "글을 볼 때는 모름지기 마음을 비워야 한다. 먼저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뜻을 내세우면 조금 지나서 모두 틀리게 된다." 또 말한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에게 간절하게 하라. 마음을 비우면 도리는 분명하게 이해되고, 자신에게 간절하면 도리를 자연스럽게 몸으로 터득하게 된다"(看文字, 須是虛心, 莫先立己意, 少刻都錯了. 又曰, 虛心切己, 虛心 則見道理明, 切己, 自然體認得出. 同上).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것은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지녀왔던 전통적 방법으로 다독(多讀)을 통한 암송(暗誦)이다. 그래서 주자는 말한다. "익숙하게 외어야 비로소 확 깨우칠 수 있다. 만약 외우는 것이 익숙하지 못하면, 역시 사색할 수 없다"(誦得熟, 方能通曉, 若誦不熟, 亦無可得思索. 同上). 내가 성균관대에서 공부할 때 우리 대학원생들에게 경전을 강독해 주시던 인사동 할아버지, 언젠가 우리들을 호통치시며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야 이놈들아, 너희는 아직도 사서(四書)를 들고 다니냐? 경전은 머리와 마음 속에 지니고 다니며, 끊임없이 되새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빨리 외우거라. 그래야 유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을까? 또 우리가 가슴에 품고 늘 되뇌이며 살아가는 성경구절은 얼마나 될까? 아니 읽기나 하는 걸까?cpbc2008.04.29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부활한 예수 만난 이방인의 사도 회심에 의미 커1월25일은 '성 바오로 사도 개종 축일'이다. 바오로 해를 기념해 사도 바오로의 개종과 교회 전례을 소개한다. ▨ 역사적 사건 사도 바오로는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역사의 예수님을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바오로가 만난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였다. 바오로가 개종하게 된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바오로에게 당신을 직접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만남으로 바오로는 회심했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이 만남을 구원사에서 결정적 사건으로 보고,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연대기로 볼때, 사도 바오로의 개종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5년 여가 지난 서기 33년께 바오로가 예루살렘 대사제로부터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 압송하라는 임무를 받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도중에 일어났다. 사도 바오로가 진술한 개종 체험담을 구성하면 이렇다. 율법주의자인 바오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예수 제자들을 모세 율법을 파괴하는 이단자로 생각하고 이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섰다. 바오로는 그 날도 예루살렘 대사제와 원로단의 명을 받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이었다. 정오쯤 다마스쿠스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바오로 둘레를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오로는 그 광채에 눈이 멀게 되고 소리에 놀라 땅바닥에 엎드린 채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묻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부활한 예수의 현현을 목격한 바오로는 그간 자신의 죄를 보속하려고 3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진실한 통회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예수가 지시한 대로 다마스쿠스에 사는 하나니아스에게 가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다(사도 9,1-19; 22,3-21; 26,9-18 참조). 바오로는 자신의 개종에 대해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갈라 1,15-16)하고 고백했다. 바오로 사도는 이처럼 자신에게 일어난 개종을 회심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은 '부르심'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부르심 받은 사도"(로마 1,1), "하느님의 뜻으로 부르심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1코린 1,1;2코린 1,1), "이방인들의 사도"(로마 11,13), "사람들에 의해서도 아니고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사도"(갈라 1,1)로 밝혔다. ▨ 전례 가톨릭교회가 매년 1월 25일에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을 지내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다. 예로니모 순교록에 따르면 로마에 있는 바오로 문도의 유해를 운구하는 예식이 처음으로 행해진 날에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로 지냈다고 한다.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이 되면, 교황이 바오로 사도의 유해가 묻혀있는 로마 외곽의 성 바오로 대성전을 방문,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한다. 이날 사제들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며 영광과 결백, 기쁨을 드러내는 '백색'제의를 입고 미사를 주례한다. 이날 미사 독서는 '바오로 사도의 개종 체험담'(사도 22,3-16)과 1코린 7,29-31 말씀이 봉독되고,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15-18)는 복음이 선포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해 올해 1월 25일이 전례력으로 '연중 제3주일'이 되지만 모든 성당에서 미사 한 대만은 로마 미사 전례서에 있는 '성 바오로 사도 개종 축일 기도문'에 따라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 경우 제2독서는 로마 미사 전례 성경에 있는 연중 제3주일 것을 읽는다. 아울러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해 1월 18일 '성 베드로 사도의 교황좌 축일'부터 25일 '성 바오로 사도 개종 축일'까지 한 주간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백영민2009.01.21
[교회상식 교리상식-98] 열두 사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2)-베드로(상) 이번 호부터는 12사도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 사도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알아봅니다. 이번 호에는 먼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베드로의 삶을 살펴봅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는 요나(또는 요한)의 아들이었고, 안드레아의 형이었습니다. 고향은 벳사이다였고, 직업은 어부였지요. 예수님을 만났을 당시에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카파르나움에서 장모와 함께 살았던 것 같습니다(마르 1,29-31). 시몬은 무식하고 평범한 어부였습니다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첫 제자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그를 케파, 곧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케파란 '바위'라는 뜻의 아람어이고, 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마태오복음(16,13-20)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에 대해 제자들에게 물으시자 시몬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고 하십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길지만 중요한 대목이어서 성경 본문을 그대로 적습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6,18-19). 이 대목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 곧 반석으로 삼으신 이유인데, 시몬의 신앙고백이 결정적인 것 같습니다. 사실, 시몬 베드로가 고백한 내용은 그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기에 오히려 행복하다고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 친히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시고 이어서 계속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특별히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몬을 베드로 곧 초석으로 삼아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몬 베드로에게 맺고 푸는 권한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의 성경적 근거가 되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를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주신 것입니다. 도대체 시몬은 어떤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교회의 초석으로 삼으시고 하늘나라 열쇠까지 주신 걸까요?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시몬 베드로의 성격을 조금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우선 베드로는 용기 있고 과단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자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서는 모습(마르 1,16-20),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지니고 있던 칼로 대사제의 종을 내리치는 모습(요한 18,1-11) 등은 이런 면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덤벙대는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물 위를 걷겠다고 나섰다가 바람이 불자 두려워져 물에 빠지게 되자 살려 달라고 외치는 모습이라든가(마태 14,22-33),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해 칭찬을 받았지만 곧 이어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자 안 된다고 펄쩍 뛰는 모습(마태 16,13-23) 등이 그러합니다. 비겁하고 소심한 성격도 있는 듯합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이방인 신도들과 어울리며 음식을 나누다가 할례받은 유다인 신도들이 내려오자 음식 규정을 어긴다는 지탄을 받을까봐 몸을 사리는 태도가(갈라 2,11-14) 그러하지요. 붙잡히신 예수님을 뒤따라 대사제 집으로 갔다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가 예수님과 눈길이 마주치자 밖으로 나가 슬피 우는 모습은(루카 22,54-62) 심성이 착하지만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충정이 대단한 제자였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시신이 없어졌다는 전갈에 무덤으로 달려가고(루카 24,1-1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주님이십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호수로 뛰어드는( 요한 21,1-14) 모습이 이를 말해줍니다. 이런 시몬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로 부르시고 마침내 교회의 반석으로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 교회의 양떼를 잘 보살피라고 간곡히 당부하십니다(요한 21,15-19).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8.06.25

창조보전전국모임 제4회 창조보전축제, 작은 실천 강조생활 속 작은 실천, 환경엔 큰 도움11일 '하늘ㆍ땅ㆍ물ㆍ벗 체험마당'에서 농민들과 함께 유기농 볏 짚단을 묶어세우며 땀을 흘리는 천주교 환경단체 활동가와 수도자들. '안미도감'(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도와드릴까요?, 감사합니다) 표현을 자주 쓴다,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함께한다,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다…. 10~12일 경북 예천군 지보면 농은수련원에서 천주교 창조보전전국모임(대표 조대현 신부) 주최로 열린 제4회 창조보전축제에선 '환경을 지키기 위한 작은 생활지침'이 작은 화제가 됐다. 특별하고 거창한 실천보다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창조 보전에 디딤돌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에제 47,9)를 주제로 열린 이번 축제는 교회 내 환경단체 활동가 13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진행한 워크숍과 생명의 강 걷기 순례, 체험마당, 생태농활 체험을 통해 창조 보전이 신앙인으로서 가장 큰 의무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10일 축제에 잠시 함께한 권혁주(안동교구장) 주교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과 생명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는 축제 주제에 걸맞게 여러분 스스로 세상을 살리고 정화하는데 앞장서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첫날 워크숍은 △성경을 통해 본 물의 의미(황종렬 박사, 생태영성연구원 담당) △생태적 관점에서 본 물의 영성(한순희 수녀, 성심수녀회) 주제 발표를 통해 물에 관한 생태적 감수성과 영성을 새겼다. 이튿날 이어진 생명의 강 걷기 순례는 농은수련원에서 안동 하회마을을 마주보는 절벽 부용대까지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8㎞를 걸으며 강과 습지를 통해 하느님 현존을 느끼는 기회가 됐다. 또 '하늘ㆍ땅ㆍ물ㆍ벗 체험마당'을 통해 천연 화장품과 면 생리대, 천연 밀랍초, 유용미생물(EM, Effective Microorganisms) 발효액, 친환경 아크릴 수세미, 천연비누 만들기 등을 실습했다. 마지막 날에는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쌍호분회(회장 최재호 마르티노) 생태농업 현장을 찾아 볏짚 묶기와 고추 따기, 결명자 베기 등 유기농법 농사 현장을 체험했다. 조대현(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 신부는 이번 축제에서 "창조보전축제를 여는 가장 큰 이유는 하느님 창조물과 함께하는 기쁨을 느끼자는데 있다"며 "이번 축제 주제 성구 말씀대로 우리 모두 강이 돼 우리가 닿는 곳, 우리가 만나는 사람, 모든 창조물을 살리는 데 기여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장훈 명예기자 hoon2275@pbc.co.krcpbc2008.10.14
![[연길교구 설정 80돌 특별기획] 연길 5000㎞ 대장정(12) 연길교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cpbc.co.kr/CMS/newspaper/2008/09/rc/264737_1.0_titleImage_1.jpg)
[연길교구 설정 80돌 특별기획] 연길 5000㎞ 대장정(12) 연길교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간도교회,그 생명력 꽃피워 영원하라!김영렬 감도교회 사상 첫 세례자로 신앙기초 다져연길교구 1945년 당시 19개 본당 지린교구에 병합 내전과 문화혁명에도 살아남은 간도교회 이제 새 복음화의 길로'간도의 로마'로 불리는 팔도구공소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2003년 8월 5일에 이미 팔도구 교우촌 건설 100주년 기념축제'를 벌일 만큼 유서깊은 공동체로, 간도교회의 주추다. "그래서 심는 사람도 거두는 사람도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요한 4,36ㄴ). 그곳에는 겨레가 있었다. 한 핏줄과 한 말글, 한 문화, 한 전통으로 살아온 배달 겨레였다. 그곳엔 또 한 핏줄 형제자매들이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신앙을 고백하는 한민족 천주교 공동체였다. 그래서 간도 복음화 현장을 돌아보는 여정은 힘에 부쳤지만 행복했다. 총 12회로 '연길 5000㎞ 대장정' 기획 연재를 마무리하며 연길교구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돌아본다. #'간도 사도' 김영렬, 복음화 로드를 개척하다 연재를 하며 꼭 조명하고 싶었던 인물은 김영렬(세례자 요한, ?~1931)이다. '간도의 사도'가 된 그가 박해를 딛고 공동체를 이루기까지 과정이 한국교회에 공개된 적이 거의 없어서다. 김영렬은 한국교회 첫 세례자 이승훈(베드로, 1756~1901)과 특히 닮았다.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교회 주추를 놓은 게 너무도 비슷하다. 함북 온성 태생인 그는 원래 동학 교도인 김이기(?~1895)의 제자였다. 참된 진리 탐구에 목말랐던 그는 스승이 1895년 3월 동학농민전쟁으로 체포돼 조선 회령 관부에서 처형당하자 이듬해 4월 평소 스승이 권하던 서학을 공부하고자 서울로 향하던 중 원산에서 발길을 멈춘다. 그 때 만난 인물이 베르모렐(J. Vermorel) 신부다. 밤을 새워 진리에 대해 베르모렐 신부와 토론한 김영렬은 입교를 결심하고 3주간 교리교육을 거쳐 그해 5월 17일 세례를 받고 간도교회 사상 첫 세례자가 된다. 곧바로 간도에 돌아온 김영렬은 고향 호천포(湖泉浦, 후첸푸, 현 회경촌)에서 용정(龍井, 룽징)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조선인마을에 전교한다. 이로써 1898년 간도 첫 공소 대교동(大敎洞, 따쵸우둥)공소가 세워지고, 1909년 첫 본당 삼원봉(三元峰, 싼웬펑)ㆍ용정(龍井, 룽징)본당이 설정된다. 호천포에서 용정에 이르는 길을 '복음화 경로(로드)'로 만든 게 그였다. 그가 전교한 박연삼(루카), 김진오(바오로) 등은 훗날 '간도 12사도'로 불린다. 1928년 7월 19일 지목구 설정 당시 신자 1만1764명에 8개 본당이던 연길교구는 1945년까지 11개 본당을 추가 설정, 신자 1만8000여 명에 19개 본당(1951년 「오딜리아연합회 편람」 기준)에 이른다. 한민족 성직자도 김충무ㆍ한윤승ㆍ신윤철ㆍ이태준ㆍ김성환ㆍ한도준ㆍ허창덕ㆍ박태산 신부와 김남수(전 수원교구장) 주교 등 9명이나 배출했다. 연길대목구(1937년 4월 13일 승격)는 1946년 4월 중국에 교계제도가 설정되면서 교구로 승격되고 봉천(奉天, 현재의 瀋陽)관구 관할로 넘어간다. 그렇지만 연길교구장 직은 연길 선교사였던 독일 뮌슈터슈바르작수도원 악커만(R. Ackermann, 1950. 11~1954. 4)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초대 원장 비테를리(T. Bitterli, 1954. 4~1980. 10) 몬시뇰 등이 2대, 3대 교구장 서리를 맡았다. 하지만 연길교구는 현재 지린교구에 병합돼 있다. 연길교구 소속 마지막 사제로 1969년 부산교구에 입적한 박태산 신부는 "덕원에서 1943년 팔도구로 이주했다가 1945년에 소신학교에 입학하며 2년 만에 덕원에 돌아왔기에 팔도구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면서도, 어쩌면 평생 사목지가 됐을지 모를 연길교구에 대한 향수를 전했다. #간도교회, '신앙의 증거'로 서다 간도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지 112주년. 교구 설정으로 치면 80주년을 맞은 연길교구는 한마디로 '신앙의 증거'다. 눈부시다고 할 수밖에 없는 연길교구의 영광은 그러나 구원의 은총을 잉태하는 '어둔 밤'의 시기로 접어든다. 1945년 구 소련군 침략과 1946~48년 중국 인민해방군 진주 및 국공내전, 1948~52년 외국인 성직자 추방, 1966~76년 문화혁명 등은 간도교회를 초토화했다. 그럼에도 간도교회는 살아남았다. 중국 당국이 북녘에서처럼 성직자를 처형하지 않고 노동개조형에 처하면서 '3자교회'를 표방했던 게 이유였다. 중국교회는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고(自養), 복음은 중국인 스스로 전파하며(自傳), 자율적으로 다스린다(自治)는 3자교회 원칙은 1957년 8월 중국 천주교 애국회 창립 이후 중국 교회정책의 근간이 됐다. 현재 간도교회는 조선족 출신 사제들이 사목을 도맡고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지린(吉林)교구 소속 중국 사제들이 있었지만, 1979년 중국의 개혁ㆍ개방 이후 10년 만인 1989년 10월 엄태준(현 혼춘본당 주임) 신부가 조선족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사제품을 받은 이후 염창원(연길본당 주임)ㆍ윤덕헌(안도ㆍ돈화본당 주임)ㆍ조광택(화룡ㆍ용정본당 주임) 신부와 리광필(연길본당 보좌, 왕청공소 담당) 신부 등 4명이 잇따라 사제품을 받게되면서 이제 연변 사목은 5명의 조선족 사제들에게 넘어왔다. 교세는 연길(延吉, 옌지)ㆍ용정(龍井, 룽징)ㆍ화룡(和龍, 허룽)ㆍ혼춘(琿春, 훈춘)ㆍ안도(安圖, 안투)ㆍ돈화(敦化, 둔화) 본당 등 6개 본당에 신자가 700명에서 3000명 선(중국인 포함)이다. 정확한 신자 수 파악이 어려운 이유는 잇따른 박해로 신자들이 만에 하나 박해 빌미가 될까봐 이름을 교적에 올리길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도교회는 최근 들어 성모신심 단체 등을 결성하고 신자재교육과 함께 영성을 심화하는 데 힘을 쏟으면서 사제 및 수도 성소 발굴을 통해 복음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다는 연길본당 김춘수(마크리나, 79) 할머니의 고백이 눈물겹다. "성경을 쓰고는 싶은데 글을 모르니 어떡해요. 공책을 사다 놓고 무작정 그렸지요(?). 하루에 한 장씩 그렸어요. 다음에는 두 장, 그 다음에는 세 장…, 그렇게 한글을 깨우쳤죠. 요즘은 아침에 기도를 드리고 2시간 쓰고, 점심 뒤에 5시간 쓰고, 저녁 식사 후에 기도를 바치고 1시간 쓰지요. 종일 성경만 필사합니다. 성경에서 하느님 역사를 알았어요. 이제는 1분 1초도 하느님 없이는 못살아요."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중국 내 조선족 사제인 염창원,창일 형제 신부 인터뷰 중국 내 조선족 사제 8명 중 유일하게 형제 사제인 염창원(필립보)ㆍ창일(요셉) 신부를 만났다. 형은 지린(吉林)성 지린교구에서 조선족을, 동생은 산시(陝西省)성 한중(漢中)교구서 한족을 각각 사목하는 특이한 경우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자무쓰(佳木斯)시 태생인 이들 형제 신부의 세례와 신학 공부, 사제수품은 현재 조선족 교회의 어려움을 압축한다. 공무원이던 부친 염성천씨가 1974년 타계하자 어머니 정천긍(우슬라)씨와 함께 무단쟝(牧丹江)으로 이주한 형제(4남 2녀 중 셋째와 넷째)는 1990년, 1991년에 각각 세례를 받았다. 두부 사업 차 연길을 찾았던 염창원 신부가 우연찮게 연길성당에 들렀다가 먼저 입교했고, 염창일 신부는 1년 뒤 형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다. 사업을 하던 중 뒤늦게 성소를 느낀 염창원 신부는 1992년 지린신학교에 입학, 7년 만인 1999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염창일 신부는 1993년 지린신학교에 입학했다가 탕산(唐山)신학교를 거쳐 쓰좌쟝(石家莊)신학교을 졸업하고 12년 만인 2005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돌아보면 모든 게 하느님 은총이었지요. 신학교에 다닐 땐 책 살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위생 환경도 열악했지만 기쁘게 살았습니다. 나중엔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큰 내적 갈등을 겪었지만 사제가 돼 늘 기쁘게 삽니다." 특히 염창원 신부는 "어머니 병환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신학교를 나오려던 즈음 중국에 온 서울대교구 반포본당 순례단을 안내하고 받은 사례금으로 어머니 치료비와 수업료를 충당하고 신학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며 "지금도 반포본당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감사를 전했다.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간도애서 만난 우리 교우들[[그림11]]cpbc2008.09.09

명동성당 성모성월특강(4) 조규만 주교하느님 걸작은 바로 '인간'인간 생명의 존엄성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반생명 문화에 반대한다. 그리스도교는 생명의 종교, 생명을 위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구약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예수님은 바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으로 이해하고, 육화 사건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을 만큼 인간이 하느님께 긍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한다. ▲육체적 근거 - 신비롭고 정교한 걸작품 창세기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은 모두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보시기 좋은 작품이 바로 인간이라고 말한다. 「당신의 몸, 얼마나 아십니까?」라는 책에 의하면 인간 세포는 60조 개다. 신경세포는 300억 개나 된다. 우리 피부와 피막은 1억 장이 겹쳐져야만 1㎝가 될 정도로 얇다. 340g밖에 안 되는 심장 역시 놀랍다. 매일 9만6000㎞에 달하는 혈관에 1만5000ℓ의 피를 공급하며 70~80년을 버틴다. 우리 몸의 신비스러움 자체가 인간의 귀중함을 알려준다. ▲구약에서 인간 존엄성의 근거 - 하느님의 모상 창세기에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는 하느님 말씀이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세기에는 하느님의 창조에 대해 '하느님이 보시니 좋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만큼 인간 창조는 다른 어떤 창조보다 하느님에게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성경은 하느님 모습을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근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초월의 하느님이다. 곧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만져질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또 하느님을 인간동형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남자와 여자가 모두 동등한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사실이다. ▲신약에서 인간 존엄성의 근거 - 하느님의 자녀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 죽음 모두가 인간 사랑을 위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삶 전체를 인간 사랑으로 일관하셨던 예수님은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셨다. 이 표현은 '하느님의 모상'보다 적절하고 실제적으로 인간 존엄성을 드러낸다. 언제부터 인간이냐는 과학자들 질문에 교회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라고 주장한다. 죽음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기 전에는 생명으로 다루는 일이 절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 권한인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교황청 생명학술원은 「인간복제에 관한 성찰」(1997)에서 배아와 태아에 대한 실험, 인간 복제를 비도덕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인간 존엄성의 근거 - 하느님의 육화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으로 고백한다. 신학은 이를 하느님의 육화 또는 강생이라 표현한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육화사건은 하느님이 사람이 될 만큼 인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는 하느님과 대화와 친교를 나누는 상대라는 점에 있다. 하느님 대화 상대자란 교부들이 신화(神化)라고 표현한 것처럼, 하느님과 같은 위치에 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도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셔서' 하느님의 생명을 나눠 받게 하는 무한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현상학적 근거 - 유일회적 삶 사람은 단 한 번의 삶을 산다. 그리스도교 교리도 인간 생명의 유일회성을 말한다. 불교는 윤회설을 얘기한다. 해탈은 그 끝없는 반복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역시 영원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지니고 있지만 불교 윤회설과는 다르다. 윤회의 삶은 반복되는 삶 때문에 현재 삶을 하찮은 것으로 여길 수도 있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무시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불교의 윤회설을 거부하는 이유는 바로 삶의 유일회성 때문이다. 국제신학위원회는 삶의 유일회성에 근거한 소중함과, 현세 삶은 영원한 내세 삶을 위한 영원한 흔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인간적 삶을 사는 만큼, 우리 삶이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08.06.04
![[바오로의 해 심포지엄] 기조연설-"바오로, 진정한 복음의 사도"](//cpbc.co.kr/CMS/newspaper/2008/09/rc/266131_1.0_titleImage_1.jpg)
[바오로의 해 심포지엄] 기조연설-"바오로, 진정한 복음의 사도"최덕기(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주교선교 사명 지닌 한국 교회에 요구되는 영성 최덕기 주교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오로 서간은 복음 성경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이루는 커다란 부분이고, 이민족들의 선교사로서 보여 준 그분의 열정은 거의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큰 감동을 준다. 바오로는 이토록 위대한 분인데도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저평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바오로 사도는 세대를 이어 모든 교회에게 사도요 선교사로서의 열정과 삶의 자세를 똑똑히 보여 주셨고, 그리스도교를 팔레스티나 유다인들만의 종교가 아니라 세계 종교로 알리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분은 율법과 죄, 유다인, 팔레스티나가 중심인 종교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비와 믿음, 의화가 중심인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를 이민족들에게 소개했다. 또한 믿음 안에서 유다인과 이민족, 남자와 여자, 자유인과 종 할 것 없이 온갖 장벽이 허물어지고 모두가 하나 되었음을 분명히 하시어, 유다인 중심의 초기 그리스도교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았다. 지금도 이 신학사상의 토대에서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민족들의 선교사' 바오로는 복음을 전파하고자 2000년 전에 엄청난 거리의 선교여행을 세 번씩이나 했다. 그분이 쓴 서간 첫머리를 보면, 자신을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로서 분명히 의식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교회의 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교율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 열정이 많이 떨어져 있음을 선교율이 말해준다. 한국교회가 세계 여러 대륙 많은 나라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선교사들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지만, 교황님께서 그리고 세계교회가 바라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 선임 교황님이 그러하셨듯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한국교회가 해외선교에 큰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고 계신다. 또 바오로가 모금을 해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줬듯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의 교회들을 돕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희망하고 계신다. 이런 시점에서 선교 영성으로 가득했던 저 유명한 선교사 바오로의 해를 맞게 됐으니,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외쳐야 할 것이다. 이 심포지엄을 통해 한국교회가 바오로의 선교정신과 선교사로서의 자세를 잘 배워 실천함으로써 선교적 교회가 되기를 기원한다.cpbc2008.09.23
[사설] 전북이주사목센터 개소를 축하하며 전주교구가 3월 28일 교구 이주 사목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될 전북이주사목센터를 마련해 문을 열었다.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배려를 올해 주요 사목 과제로 삼고 있는 교구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전주교구는 올해 교구장 사목교서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교구민의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우리나라 이주민은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전북 지역은 이주민 거주 비율이 다른 지역에 견줘 높다. 이주민, 즉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요청은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근거한다. 구약성경에는 "너희 땅에서 이방인이 너희와 함께 머무를 경우, 그를 억압해선 안된다…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레위 19,33)고 했다. 예수께서도 '최후의 심판'을 설명하면서 "너희는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했다"(마태 25,35)며 이방인을 환대할 것을 예언적으로 선언했다. 이에 교회는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자기 고유의 사고방식, 자기 언어, 자기 문화, 자기 종교를 그대로 가지고 온다. 이 모든 것은 조국 밖에서도 보존되어야 할 사상, 전통, 문화의 정신적 유산이므로 어디서나 높이 존중돼야 한다"(「이주사목에 관한 훈령」 11항)고 가르치고 있다. 새로 문을 연 전북이주사목센터가 문화 간의 대화의 장소, 인종ㆍ민족간의 연대의 자리, 가난한 이민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삶터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또 이번 센터 개소를 계기로 전국 각 교구에 다양한 민족 교회들의 전통과 체험을 나누는 이주사목센터가 건립 운영되길 희망한다.cpbc2008.04.02
[교회상식 교리상식 105] 열두 사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9)-마태오마태오는 세리이며 마태오복음을 쓴 복음사가로 알려져 있는 사도입니다. 이번 호에는 마태오 사도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성경에서 본 마태오 마태오는 열두 사도 명단 가운데서 일곱 번째(마르 3,18; 루카 6,15) 혹은 여덟 번째(마태 10,3; 사도 1,13)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태오복음에서는 그를 세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마태 9,9). 이에 비해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에서는 마태오를 열두 사도 명단에 포함시키면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신 세리의 이름이 마태오가 아니라 레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르 2,14; 루카 5,27). 이런 차이로 인해 마태오와 레위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동일인으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이름을 갖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시몬에게 케파(베드로)라는 다른 이름을 주셨지요. 마태오에 대해서도, 원래 이름은 레위였는데 예수님께서 마태오라는 이름을 주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마태오와 레위가 동일인이라면 마태오는 갈릴래아 지방 카파르나움에서 세리로 일하면서 예수님에 관한 소문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세리는 유다인들 사이에서 마치 창녀나 죄인들처럼 멸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는 과도한 세금 징수를 통해 부정하게 돈을 착복하는 일이 많은 데다 로마제국을 위해 일하는, 유다인들 편에서 보면 매국노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상종하기를 꺼려하고 죄인 취급을 하는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 부르심에 대한 마태오의 처신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마태오는 부르심을 받자 "모든 것을 버려둔 채"(루카 5,28) 예수님을 따랐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기까지 하지요(마태 9,9-13 ; 마르 2,13-17 ; 루카 5,27-32). 죄인인 자신을 불러주시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버리고 기꺼이 응답하는 마태오의 자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해줍니다. 마태오라는 이름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지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야기와 열두 사도 명단을 제외하고는 마태오에 관한 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사도행전 1장을 토대로 볼 때, 마태오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 때가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승에서 본 마태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는 처음에는 주로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약 15년 동안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히브리어로 복음을 써서 남겨주고는 다른 나라로 복음을 전하러 갔다고 하는데 마케도니아와 파르티아, 시리아, 카스피해 남쪽의 에티오피아(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가 아님)도 활동 무대였다고 전하지요.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마태오 사도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자료들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순교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순교하지 않고 죽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순교 장소 및 순교 방법과 관련해서도 주장이 엇갈립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했다는 전승도 있고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는 전승도 있습니다. 또 칼에 찔려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고, 화형을 당하고 돌에 맞아 순교했다는 기록도 있지요.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마태오 사도 유해는 이탈리아 남부 티레니아 해(海) 연안 항구도시 살레르노의 대성당에 모셔져 있다고 전해집니다. 마태오 사도 축일은 9월 21일이며, 은행원을 비롯해 회계업무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마태오 사도는 장부를 펼쳐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집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 있는 열두 사도 조각상에서도 마태오 사도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요. ◇사도 마태오는 마태오복음의 저자인가 사도가 된 세리 출신의 마태오가 실제로 마태오복음을 썼을까요? 2세기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가 "마태오가 히브리어로 말씀들을 편찬했는데 저마다 힘 닿는 대로 이를 번역했다"고 주장한 이후 사도 마태오가 마태오복음의 저자라고 일반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세리 출신의 사도 마태오가 마태오복음의 저자라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됐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마태오복음의 저자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면서도 유다교 계율과 유다인들의 관습을 잘 아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마태오는 이 복음서가 씌어지는 과정에서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마태오복음이라고 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마태오 사도를 마태오복음의 저자로 여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8.08.19
[교회상식 교리상식 108]-열두 사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12)유다 이스카리옷이번 호에는 예수님을 팔아 넘긴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 알아봅니다. ◇출신 성경에서는 유다 이스카리옷이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라는 것과,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 그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 외에는 그에 관한 별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디 출신인지, 어떻게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요한복음에서는 그를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6,71; 13,26)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몇 가지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 우선, 이스카리옷은 히브리어로 '카리옷 사람'이란 뜻을 지니는데, 카리옷은 유다 지방에 있는 도시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기 15장 25절에는 유다 지파의 성읍 가운데 하나라 크리욧 헤츠론이 나오는데 이 크리옷과 카리옷이 같은 곳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유다 이스카리옷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갈릴래아가 아닌 유다 지방 출신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카리옷이 '자객'을 뜻하는 그리스말 '시카리오스'(σικαριοs)와 관련된다고 보아, 유다가 자객 활동을 한 집단, 곧 당시에 로마 제국에 맞서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젤롯당원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방 카리옷 출신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는 것 같습니다. ◇배반 왜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은 배반과 관련해 유다 이스카리옷이 주도적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도합니다. 유다가 수석 사제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주는 대가에 대해 흥정을 하는 점이 그렇습니다(마태 26,14-16 ; 마르 14,10-11). 그런데 이 두 복음은 유다의 배신 기사 바로 앞에 어떤 여자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렸다는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마태 26,6-13; 마르 14,3-9).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는 것을 본 제자들(마르코복음에서는 '몇 사람')이 불평을 하지요.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는 게 더 좋지 않느냐는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내용을 전하는 요한복음(12,1-8)에서는 여인의 행위에 불평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제자들 또는 몇 사람)이 아니라 유다 이스카리옷 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요한복음의 저자는 유다가 불평한 것은 그가 도둑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도들의 돈주머니를 맡고 있는 경리로서 평소에도 틈틈이 돈을 빼돌리곤 했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비교해보면 공관복음에서는 왜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됐는지 결정적 이유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단정적으로 제시되는 것 같습니다. '돈에 눈이 먼 도둑'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단지 돈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견해를 종합하면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에게서 기대한 메시아 상과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보여주신 메시아 상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께서 세우실 하느님 나라, 메시아 왕국이 현세적 왕국 이 지상의 왕국이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는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인정하시면서도 오히려 당신이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8,27-31). 이 말씀에 유다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유다만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다른 제자들은 이 충격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유다는 그렇게 극복할 만큼 믿음이 강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을까요? ◇죽음 유다 이스카리옷의 죽음과 관련해 성경에서는 두 가지 다른 설명이 나옵니다. 마태오복음은 유다가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결국 예수님 몸값으로 받은 은돈을 성전 안에 내던지고는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전합니다(마태 27,3-10). 이에 비해 사도행전은 유다가 예수님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밭을 산 후에 "거꾸로 떨어져서 배가 터지고 내장이 모조리 쏟아져서" 죽었다고 전하지요(사도 1,15-20). 학자들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이 다른 것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신학적 의미를 제시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은 다윗의 친구였다가 배반자가 된 아히토펠이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2사무 17,23)을 상기시킵니다. 아히토펠의 죽음 방식은 이후 배반자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본보기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과 같이 거꾸러 떨어져 배가 터지고 내장이 쏟아져 맞는 죽음은 죄인의 최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8.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