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동식물]55-작고 미소한 존재의 상징인 벼룩](//cpbc.co.kr/CMS/newspaper/2007/07/rc/213828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동식물]55-작고 미소한 존재의 상징인 벼룩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벼룩의 간을 빼먹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진짜 벼룩의 간은 있을까? 그런데 정작 벼룩에게는 간이 없다고 한다. 간의 기능 중 하나가 단백질 대사산물인 암모니아를 요소로 바꿔서 소변에 섞어 배출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곤충은 요산을 배출한다. 사람의 간과 같은 기능을 하는 기관이 곤충에는 없다. 따라서 벼룩이 워낙 작아 "벼룩의 간"이란 말은 아주 작은 것을 의미한다. 이밖에도 "벼룩도 낯짝이 있다" "벼룩의 등에 육간대청을 짓겠다" 등 벼룩이 들어간 속담이 비교적 많다. 벼룩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교훈을 주는 곤충이다. 벼룩은 세계 각지에 널리 분포하며 약 1500종이 알려져 있다. 벼룩은 흔히 빈대, 이, 바퀴벌레와 더불어 4대 혐오곤충으로 분류된다. 벼룩은 피를 빨아먹고 산다. 벼룩은 쥐, 고양이, 개, 닭, 비둘기, 다람쥐, 오소리, 박쥐, 두더쥐, 토끼, 사람 등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숙주에 빌붙어 살아간다. 벼룩의 유충은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에 붙어서 살기에 불결한 곳에서 번식한다. 벼룩이 옮기는 가장 중요한 병은 흑사병이라 불리는 페스트다. 쥐에 붙어 있는 벼룩이 페스트를 옮긴다는 것은 영국의 리스튼이 인도에서 확인했다. 벼룩은 쉽게 볼 수 있는 곤충의 모습과 달리 옆으로 매우 편평한 형태로 등쪽으로 털들이 상당히 많이 나있다. 그 중에서도 뒷다리는 현저하게 발달해 도약하기에 매우 유리하다. 벼룩이 점프하는 높이가 약 30㎝정도 되는데 이를 사람의 경우로 환산하면 약 17m 정도를 도약하는 높이다. 성경 시대에 팔레스티나의 건조한 조건에서도 벼룩들은 많이 있었다. 다윗과 사울의 대화에서 벼룩이 등장한다. "누구를 찾아 이렇게 출동하셨단 말씀입니까? 누구를 추격하시는 것입니까? 죽은 개 한 마리를 쫓아 오셨습니까? 벼룩 한 마리를 쫓아오셨습니까?"(1사무 24,15). 다윗은 자기를 벼룩으로 비유했다. 벼룩처럼 보잘 것 없는 벌레라는 의미다. 또한 사울에게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는 뜻도 내포한다. "이제 제가 주님 앞에서 멀리 떨어진 채, 땅에 피를 흘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스라엘 임금님께서 정녕 산에 있는 자고새를 뒤쫓듯이, 벼룩 한 마리를 찾아 나서셨으니 말입니다"(1사무 26,20). 이처럼 성경에서 언급된 벼룩은 무가치하고 미소한 존재의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벼룩같이 작은 존재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지혜가 중요하다. 세상의 어떤 것도 무가치한 존재는 없다. 다만 우리가 가치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cpbc2007.07.04

성령, 세속적인 이 시대에 영적 쇄신을 위한 보물성령쇄신운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상)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바르고 건전한 성령쇄신운동을 위해 지난해 말 소책자 「올바른 성령 이해」를 발행했다. 31일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아 「올바른 성령 이해」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한 기회을 마련했다. '성령쇄신운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란 제목으로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대표담당) 신부의 글을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주 1. 성령쇄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령강림의 볼 수 있는 표지로서 신약성경이 전하는 사건들은 사라진 옛 역사가 아니며 이 역사는 오늘날 솟아오르는 사건입니다. 개인적 체험이 없는 교의적 믿음은 공허하고, 교회의 믿음과 연결이 없는 순수한 체험은 맹목적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성령쇄신은 하나의 희망이고 시대의 적극적 징표요, 우리 시대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세속적 합리주의 결과로 무미건조해진 이론과 실천에 대한 기도의 기쁨과 풍요함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영' 성령쇄신은 바로 생명을 주시는 영에 대해 재인식하고 끊임없이 새롭게 재발견하고 삼위일체 안에서 우리 모두 하나 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동안 성령쇄신운동이 가톨릭 안에서 잠자고 있던 많은 신앙인들을 깨어나게 했고 회개하게 했으며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고백하게 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성령운동이 불같이 일어나면서 엄숙하기만 하던 성당은 활기가 넘쳐나고 찬미와 찬양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유기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이렇게 성령쇄신 운동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령쇄신의 모습은 지나치게 외향적으로 치우치거나 치유나 예언, 구마 또는 기복신앙으로 흐르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은 것도 사실입니다. 2005년 10월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에서 발표한 신앙생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령쇄신 참여자의 60% 이상이 고졸 이하 학력이며, 50% 이상 참여자들이 월수입 200만 원 이하 서민층으로, 여성이 86% 이상이며, 연령층은 50대 이상입니다. 50대 이상 연령층이 65%인 점을 감안한다면 성령쇄신운동의 노령화와 쇠퇴는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성장을 위해 42.4%, 치유 및 삶의 어려움 해결을 위해 32% 라는, 즉 75% 이상 사람들이 영적성장 및 삶의 갈망을 채우고자 성령기도회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성령쇄신운동이 개인 영성 생활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각 본당 성령기도회는 여전히 교회 사목의 저변에 놓여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성령쇄신운동의 영적 가치는 재조명돼야 하고 또한 그 가치는 공유돼야 합니다. 성령쇄신의 명암을 직시하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에서 2008년 12월에 발행한 소책자 「올바른 성령 이해」를 통해 바르고 건전한 '성령쇄신운동'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를 마련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식별력을 키우고, 바르고 건전한 쇄신 운동에 일조하여 개인 신앙생활은 물론이고 교회 공동체에도 올바른 지침을 주는 소책자가 발간된 것과 관련해 다시 한 번 성령쇄신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2. 교회 쇄신 운동인 성령쇄신 가톨릭 성령쇄신 운동의 시작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대학교의 몇 명 대학생 그룹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들은 1967년 피정 중에 성령이 그들 안에 넘치는 경험을 시작했으며,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3만5000명의 전 연령층 가톨릭 신자들이 성령을 찬미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려는 성령의 능력과 힘을 구하기 위해 노틀담대학 전국 집회에 모였습니다. 역사적으로도 하느님께서 성령의 돌풍으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셨던 파도가 절정에 달한 것 같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4세기 수도원 운동 또는 중세시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 의해 시작된 교회 쇄신운동을 그렇게 볼 수 있고 20세기도 그러한 시대 중 하나였습니다. 결정적 순간들을 예로 들어보면, 교황 레오 13세가 신자들에게 보낸 성령에 관한 회칙 「하느님의 직무」(Divinum Illud Munus, 1897)를 말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성공을 위해 교황 요한 23세는 새로운 성령강림을 청하면서 "새로운 성령강림으로 우리 일상을 당신의 경이로움으로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가장 최근 성령쇄신 운동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은 성령과 은사의 현존에 대해 기술합니다.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 이런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와 세계 안에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이런 은사를 사용할 권리와 의무가 각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은사는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요한 3,8)는 성령의 자유로우신 인도를 받아 행사되어야 한다." 1975년 제9회 성령쇄신에 관한 로마 국제회의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회와 세계는 성령강림의 기적이 역사상 계속되기를 어느 때보다 더 바라고 있습니다. 갈수록 급속도로 세속화되어가는 이 세계에 성령이 일으키는 '영적 쇄신'을 증거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이 '영적 쇄신'이 교회와 세계에 '하나의 기회'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는 인사로 그들을 맞았습니다. 미국에서는 가톨릭 주교들이 몇 편의 긍정적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1969, 1975, 1984, 1997). 성명서들의 핵심 부분이 가장 최근에 발표된 문서 「새로운 봄을 위한 은총」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우리는 성령세례(사도 1,4)라고 알려진 성령의 선물과 은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확인과 지원과 격려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작용이 수백만 명 사람들의 삶과 또한 그들을 통해 교회의 삶에 미치게 된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또한 교회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격려를 보냅니다." 주교들은 1969년 문서를 통해 재차 말합니다. "쇄신운동이 스스로 복음의 지속적인 현실화를 위해 중요한 활동을 하는 한, 교회의 삶에 부수적인 일이라고 경시될 수 없습니다." 주교들은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79년 연설을 인용합니다. 교황은 그 연설에서 성령쇄신을 "성령이 작용한다는 신호이며 교회 전체의 쇄신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입문할 때 받게 되는, 그리고 성령의 현존과 작용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의 기회로 이해되는 성령세례는 보통의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의 한 부분입니다. 이는 가톨릭 성령쇄신운동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광범위한 은사로 명백히 드러납니다." 문 종 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봉사회 대표 담당) cpbc2009.05.12
[교회상식 교리상식(128)] 십계명풀이 3-제2계명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십계명의 둘째 계명은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인데,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는 첫째 계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최상 경배 행위인 흠숭을 드려야 마땅한 하느님이시라면 그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둘째 계명에 대해 좀 더 살펴봅니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또 간절한 청을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면 자신의 말에 하느님 이름이 함부로 오르내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둘째 계명은 하느님뿐 아니라 하느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와 모든 성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하느님 이름으로 한 약속은 바로 하느님 명예와 성실과 권위를 내세우고 한 약속이기에 마땅히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 이름으로 약속을 해놓고도 성실하게 지키지 않는다면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쓰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이나 말로써 하느님을 증오하거나 비난하거나 불경스럽게 대하는 것은 모두 신성 모독으로 둘째 계명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나아가 교회와 성인들, 그리고 성물들에 대해서 그렇게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드려야 할 존경과 흠숭을 거스르는 불경, 신성 모독은 그 자체로 중죄가 됩니다. 또 하느님을 모독할 뜻이 없다 하더라도 하느님 이름을 부르며 욕설을 하거나 또는 하느님 이름을 마술적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둘째 계명에 위배됩니다. 거짓 맹세는 거짓을 믿게 하려고 하느님 이름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으면서도 하느님 이름을 걸고 거짓으로 약속을 하거나 반대로 하느님 이름으로 맹세를 해놓고서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역시 거짓 맹세에 해당하지요. 이렇게 거짓으로 하는 맹세는 당신의 약속에 한결같이 충실하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중대한 과오로, 둘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에 하느님 이름을 거는 것 역시 둘째 계명에 위배됩니다. ◇생각해 봅시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을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누구에게 알려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표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실 때에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 말로는 '있는 나'로 번역되는 '야훼'라는 이름이지요(탈출 3,14-15 참조).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이름을 친히 알려주시면서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이름을 직접 알려 주시면서 그러나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도록 명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셨다는 것은 그만큼 당신을 친밀하신 분으로 드러내신 것을 의미합니다.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시어 당신 이름을 알리시면서 당신 자신을 건네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 이름을 우리가 어찌 함부로 부르거나 헛되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알아둡시다 주교회의는 지난해 가을 정기총회에서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보내온 지침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야훼(YHWH)'로 표현된 하느님 이름을 전례 때나 성가, 기도 때에 사용하거나 발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는 둘째 계명과 관련된 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이름인 야훼라는 표현이 나오면 그 거룩하신 이름을 부르는 것이 두려워 '아도나이'라고 곧 '우리 주님'으로 바꿔서 읽었지요. 새 번역 성경에서도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을 직접 계시하신 대목(탈출 3,15; 6,2 등)을 제외하고는 야훼라는 표현을 모두 '주' '주님' '하느님' 등으로 바꿔 표현하고 있는데 같은 맥락입니다. ◇한 가지 더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는 누구나 세례명을 받게 됩니다. 세례명은 성인 이름을 본따 짓는 것이 보통인데, 누가 어떤 성인 이름으로 자신의 세례명을 짓게 되면 그 성인은 그 사람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신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수호성인을 닮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수호성인의 모범을 본받고자 노력하며 성인의 전구를 청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와 교회법은 세례명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대부모 및 본당 사목구 주임(본당 신부)은 그리스도교적 감정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붙이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156항; 교회법전 제855조).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9.02.10

청주교구 영동본당 '성서공부' 바람'여정' 프로그램 구약과정 마치고 신약과정 준비 모세5경을 배운 영동성당 신자들이 지난 2006년 7월 파스카축제를 갖고 신은미 수녀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주교구 영동본당(주임 신광호 신부)에 성경공부 바람이 불고 있다. 2006년 본당 설정 50주년을 맞은 바 있는 영동본당은 그해 2월 성경공부를 위해 '여정' 프로그램을 도입, 딱딱하게 굳어있는 듯했던 공동체에 신앙의 열기를 불러왔다. 조용했던 시골 본당은 성경공부와 뜨거운 신앙 체험을 통해 열심한 공동체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신은미(아넬로, 예수성심시녀회) 수녀의 열정적이고도 적극적인 교육이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6년 5월 창세기 교육 직후엔 성극 발표회를 가졌고, 7월 중순께 모세5경 교육이 끝나던 무렵에는 파스카 축제를 열어 신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복장으로 분장하고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준비해 먹어보며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는지 체험했다. 이어 1학기 종강 때엔 조별 대항 퀴즈 풀이를 통해 그간 공부를 점검했다. 또 방학 때마다 지혜서와 집회서, 잠언, 아가서, 이사야서 등을 필사토록 했으며, 2007년 3월 3학기 개강 때엔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 등을 직접 순례하는 12박 13일 성지순례를 30여 명이 다녀오는 열성을 보였다. 대전교구 성거산 성지나 갈매못 성지 등 국내 성지도 직접 찾아다니며 우리 신앙선조들의 신앙과 삶을 되새겼다. 또 지난 12월초엔 구약성경 교육을 마치는 기념으로 포항 갈평 피정의 집에서 2박 3일간 피정을 갖기도 했다. 구약성경 교육과정을 마친 신자들은 지난 12월 23일 영동성당에서 봉헌한 주일미사 중 구약 수료식을 갖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향후 4학기에 걸쳐 이뤄질 신약성경 교육에도 참가키로 했다. 신약 공부에 앞서 참가 신자들은 마태오 복음부터 시작해 4복음서 필사에 들어갔다. 구약성경 교육 과정 수료증을 받은 신자는 당초 신청자 117명 가운데 92명으로, 이사를 하거나 병환 중에 있는 신자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생부터 85살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수강생들은 학기 중 화ㆍ수ㆍ목요일에 이뤄지는 강의 시간 중에 다들 빠지지 않은 열성을 보였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8.01.02

1- 성경(유치부, 1학년) 가정은 신앙의 겨자씨를 뿌려 키우는 못자리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교리를 배우고 익히며 신앙을 키우는 기회를 주고자 평화신문이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초등부와 공동으로 '교리 쏙쏙 신앙 쑥쑥'을 마련했습니다. 이 난은 유치부와 초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저학년(2ㆍ3학년), 초등학교 고학년(4ㆍ5ㆍ6학년)을 각각 대상으로 한 교리를 차례대로 실을 예정입니다. 부모들님들께서 '이렇게 지도하세요' 등을 통해 주제를 알고 먼저 익힌 뒤 자녀들과 함께 교리에 관한 문제를 풀면서 신앙에 대해 대화하고 교리를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갖도록 구성했습니다. ------------------------------------------------------------------------------------------------- <교리내용>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마음을 더욱 더 잘 알려주는 이야기책인 성경에 대해 알아보아요.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이 책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하트(♡) 표시가 된 부분만 색칠해 보세요. ★ 성경은 우리들을 사랑해 주시는 가장 소중한 분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실까요? 착한 일이 무엇일까 열심히 생각하면서 길을 따라 가면 그 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림 아래에 있는 그 분의 이름을 예쁘게 따라 써 보세요. ♠ 네모 안에는 어떤 글자가 들어갈까요? 네모 안의 선들을 연결하여 색칠해 보세요. 그리고 네모 안에 들어갈 책의 이름을 오른쪽 그림에서 찾아 적어보세요. [이렇게 지도하세요] ♠ 성경에 대해 알아보아요. 성경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돌봐주시는지 알려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느님을 알려 주십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무한하신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사람들에게 드러내신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신념의 발전을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육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외형상 단행본이 아닙니다. 여러 책들을 모아 놓은 것이지요. 하느님 백성이 만든 고유의 문학이며, 오랜 세월을 두고 점차 형성된 구약 46권, 신약 27권, 총 73권의 책입니다. 구약은 오경, 역사서, 시서, 지혜서, 예언서로 구분할 수 있으며, 제2경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이야기와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돌보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신약은 4복음서, 사도행전, 서간문, 묵시록으로 구분되며, 그 내용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하신 이야기와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잘 따르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기쁨과 감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cpbc2007.01.03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부활한 예수 만난 이방인의 사도 회심에 의미 커1월25일은 '성 바오로 사도 개종 축일'이다. 바오로 해를 기념해 사도 바오로의 개종과 교회 전례을 소개한다. ▨ 역사적 사건 사도 바오로는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역사의 예수님을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바오로가 만난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였다. 바오로가 개종하게 된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바오로에게 당신을 직접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만남으로 바오로는 회심했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이 만남을 구원사에서 결정적 사건으로 보고,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연대기로 볼때, 사도 바오로의 개종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5년 여가 지난 서기 33년께 바오로가 예루살렘 대사제로부터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 압송하라는 임무를 받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도중에 일어났다. 사도 바오로가 진술한 개종 체험담을 구성하면 이렇다. 율법주의자인 바오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예수 제자들을 모세 율법을 파괴하는 이단자로 생각하고 이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섰다. 바오로는 그 날도 예루살렘 대사제와 원로단의 명을 받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이었다. 정오쯤 다마스쿠스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바오로 둘레를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오로는 그 광채에 눈이 멀게 되고 소리에 놀라 땅바닥에 엎드린 채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묻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부활한 예수의 현현을 목격한 바오로는 그간 자신의 죄를 보속하려고 3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진실한 통회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예수가 지시한 대로 다마스쿠스에 사는 하나니아스에게 가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다(사도 9,1-19; 22,3-21; 26,9-18 참조). 바오로는 자신의 개종에 대해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갈라 1,15-16)하고 고백했다. 바오로 사도는 이처럼 자신에게 일어난 개종을 회심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은 '부르심'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부르심 받은 사도"(로마 1,1), "하느님의 뜻으로 부르심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1코린 1,1;2코린 1,1), "이방인들의 사도"(로마 11,13), "사람들에 의해서도 아니고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사도"(갈라 1,1)로 밝혔다. ▨ 전례 가톨릭교회가 매년 1월 25일에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을 지내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다. 예로니모 순교록에 따르면 로마에 있는 바오로 문도의 유해를 운구하는 예식이 처음으로 행해진 날에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로 지냈다고 한다.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이 되면, 교황이 바오로 사도의 유해가 묻혀있는 로마 외곽의 성 바오로 대성전을 방문,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한다. 이날 사제들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며 영광과 결백, 기쁨을 드러내는 '백색'제의를 입고 미사를 주례한다. 이날 미사 독서는 '바오로 사도의 개종 체험담'(사도 22,3-16)과 1코린 7,29-31 말씀이 봉독되고,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15-18)는 복음이 선포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해 올해 1월 25일이 전례력으로 '연중 제3주일'이 되지만 모든 성당에서 미사 한 대만은 로마 미사 전례서에 있는 '성 바오로 사도 개종 축일 기도문'에 따라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 경우 제2독서는 로마 미사 전례 성경에 있는 연중 제3주일 것을 읽는다. 아울러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해 1월 18일 '성 베드로 사도의 교황좌 축일'부터 25일 '성 바오로 사도 개종 축일'까지 한 주간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백영민2009.01.21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17-첫 단계의 세 가지 방법독서, 읽고 마음에 품고 되뇌이고 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 렉시오 디비나의 단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귀고 2세이다. 그는 영적 사다리의 네 단계를 통해 렉시오 디비나를 설명하고 있다. 독서, 묵상, 기도, 관상이 그것이다. 이번 주엔 그 첫 단계인 '독서'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독서는 '정신을 집중해서 성경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며, 복된 삶의 부드러움을 찾는 외적 수련'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유학자들은 이 단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유학에서 제일 먼저 강조하는 것 역시 독서하는 자세다. 주자는 이렇게 말한다. "배우는 사람이 독서할 때는 모름지기 몸을 가다듬어 바르게 앉고 시선을 누그러뜨려 가볍게 읊으며, 마음을 비우고 책 속에 푹 빠져서 자신에게 간절히 성찰해야 한다"(學者讀書, 須要檢身正坐, 緩視微吟, 虛心涵泳, 切己省一作體察.「朱子語類」, 讀書法). 한 구절 한 구절 깊이 새겨둘 만한 내용이다. 몸을 가다듬는 것, 바르게 앉는 것, 시선을 처리하는 법, 작은 소리로 읊는 것, 마음을 비우는 것, 책 속에 푹 빠지는 것, 절실하게 성찰하는 것…. 모두 몸에 밸 때까지는 오랫동안 수련해야 가능한 것들이다. 이제 구체적으로 경전을 읽는 법을 알아보자.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저 독서할 때는 우선 읽으려고 해야지, 단지 생각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입 속에서 읽다 보면 마음 속은 한가해져 바른 이치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나도 처음 배울 때는 역시 이와 같이 했을 뿐, 다른 방법은 없었다"(大凡讀書且要讀, 不可只管思, 口中讀, 則心中閑而義理自出, 某之始學, 亦如是爾, 更無別法. 「同上」). 주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누가 경전을 읽는 법을 물었을 때도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역시 법칙은 없으니, 단지 마음을 비우고 그냥 읽어라"(亦無法. 只是虛心平讀去). 다음으로 수없이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은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주자는 이렇게 말한다. "글을 볼 때는 모름지기 마음을 비워야 한다. 먼저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뜻을 내세우면 조금 지나서 모두 틀리게 된다." 또 말한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에게 간절하게 하라. 마음을 비우면 도리는 분명하게 이해되고, 자신에게 간절하면 도리를 자연스럽게 몸으로 터득하게 된다"(看文字, 須是虛心, 莫先立己意, 少刻都錯了. 又曰, 虛心切己, 虛心 則見道理明, 切己, 自然體認得出. 同上).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것은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지녀왔던 전통적 방법으로 다독(多讀)을 통한 암송(暗誦)이다. 그래서 주자는 말한다. "익숙하게 외어야 비로소 확 깨우칠 수 있다. 만약 외우는 것이 익숙하지 못하면, 역시 사색할 수 없다"(誦得熟, 方能通曉, 若誦不熟, 亦無可得思索. 同上). 내가 성균관대에서 공부할 때 우리 대학원생들에게 경전을 강독해 주시던 인사동 할아버지, 언젠가 우리들을 호통치시며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야 이놈들아, 너희는 아직도 사서(四書)를 들고 다니냐? 경전은 머리와 마음 속에 지니고 다니며, 끊임없이 되새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빨리 외우거라. 그래야 유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을까? 또 우리가 가슴에 품고 늘 되뇌이며 살아가는 성경구절은 얼마나 될까? 아니 읽기나 하는 걸까?cpbc2008.04.29
[교회상식 교리상식-98] 열두 사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2)-베드로(상) 이번 호부터는 12사도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 사도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알아봅니다. 이번 호에는 먼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베드로의 삶을 살펴봅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는 요나(또는 요한)의 아들이었고, 안드레아의 형이었습니다. 고향은 벳사이다였고, 직업은 어부였지요. 예수님을 만났을 당시에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카파르나움에서 장모와 함께 살았던 것 같습니다(마르 1,29-31). 시몬은 무식하고 평범한 어부였습니다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첫 제자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그를 케파, 곧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케파란 '바위'라는 뜻의 아람어이고, 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마태오복음(16,13-20)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에 대해 제자들에게 물으시자 시몬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고 하십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길지만 중요한 대목이어서 성경 본문을 그대로 적습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6,18-19). 이 대목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 곧 반석으로 삼으신 이유인데, 시몬의 신앙고백이 결정적인 것 같습니다. 사실, 시몬 베드로가 고백한 내용은 그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기에 오히려 행복하다고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 친히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시고 이어서 계속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특별히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몬을 베드로 곧 초석으로 삼아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몬 베드로에게 맺고 푸는 권한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의 성경적 근거가 되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를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주신 것입니다. 도대체 시몬은 어떤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교회의 초석으로 삼으시고 하늘나라 열쇠까지 주신 걸까요?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시몬 베드로의 성격을 조금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우선 베드로는 용기 있고 과단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자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서는 모습(마르 1,16-20),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지니고 있던 칼로 대사제의 종을 내리치는 모습(요한 18,1-11) 등은 이런 면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덤벙대는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물 위를 걷겠다고 나섰다가 바람이 불자 두려워져 물에 빠지게 되자 살려 달라고 외치는 모습이라든가(마태 14,22-33),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해 칭찬을 받았지만 곧 이어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자 안 된다고 펄쩍 뛰는 모습(마태 16,13-23) 등이 그러합니다. 비겁하고 소심한 성격도 있는 듯합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이방인 신도들과 어울리며 음식을 나누다가 할례받은 유다인 신도들이 내려오자 음식 규정을 어긴다는 지탄을 받을까봐 몸을 사리는 태도가(갈라 2,11-14) 그러하지요. 붙잡히신 예수님을 뒤따라 대사제 집으로 갔다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가 예수님과 눈길이 마주치자 밖으로 나가 슬피 우는 모습은(루카 22,54-62) 심성이 착하지만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충정이 대단한 제자였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시신이 없어졌다는 전갈에 무덤으로 달려가고(루카 24,1-1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주님이십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호수로 뛰어드는( 요한 21,1-14) 모습이 이를 말해줍니다. 이런 시몬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로 부르시고 마침내 교회의 반석으로 사도들의 으뜸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 교회의 양떼를 잘 보살피라고 간곡히 당부하십니다(요한 21,15-19).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8.06.25

창조보전전국모임 제4회 창조보전축제, 작은 실천 강조생활 속 작은 실천, 환경엔 큰 도움11일 '하늘ㆍ땅ㆍ물ㆍ벗 체험마당'에서 농민들과 함께 유기농 볏 짚단을 묶어세우며 땀을 흘리는 천주교 환경단체 활동가와 수도자들. '안미도감'(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도와드릴까요?, 감사합니다) 표현을 자주 쓴다,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함께한다,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다…. 10~12일 경북 예천군 지보면 농은수련원에서 천주교 창조보전전국모임(대표 조대현 신부) 주최로 열린 제4회 창조보전축제에선 '환경을 지키기 위한 작은 생활지침'이 작은 화제가 됐다. 특별하고 거창한 실천보다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창조 보전에 디딤돌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에제 47,9)를 주제로 열린 이번 축제는 교회 내 환경단체 활동가 13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진행한 워크숍과 생명의 강 걷기 순례, 체험마당, 생태농활 체험을 통해 창조 보전이 신앙인으로서 가장 큰 의무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10일 축제에 잠시 함께한 권혁주(안동교구장) 주교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과 생명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는 축제 주제에 걸맞게 여러분 스스로 세상을 살리고 정화하는데 앞장서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첫날 워크숍은 △성경을 통해 본 물의 의미(황종렬 박사, 생태영성연구원 담당) △생태적 관점에서 본 물의 영성(한순희 수녀, 성심수녀회) 주제 발표를 통해 물에 관한 생태적 감수성과 영성을 새겼다. 이튿날 이어진 생명의 강 걷기 순례는 농은수련원에서 안동 하회마을을 마주보는 절벽 부용대까지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8㎞를 걸으며 강과 습지를 통해 하느님 현존을 느끼는 기회가 됐다. 또 '하늘ㆍ땅ㆍ물ㆍ벗 체험마당'을 통해 천연 화장품과 면 생리대, 천연 밀랍초, 유용미생물(EM, Effective Microorganisms) 발효액, 친환경 아크릴 수세미, 천연비누 만들기 등을 실습했다. 마지막 날에는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쌍호분회(회장 최재호 마르티노) 생태농업 현장을 찾아 볏짚 묶기와 고추 따기, 결명자 베기 등 유기농법 농사 현장을 체험했다. 조대현(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 신부는 이번 축제에서 "창조보전축제를 여는 가장 큰 이유는 하느님 창조물과 함께하는 기쁨을 느끼자는데 있다"며 "이번 축제 주제 성구 말씀대로 우리 모두 강이 돼 우리가 닿는 곳, 우리가 만나는 사람, 모든 창조물을 살리는 데 기여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장훈 명예기자 hoon2275@pbc.co.krcpbc2008.10.14
![[연길교구 설정 80돌 특별기획] 연길 5000㎞ 대장정(12) 연길교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cpbc.co.kr/CMS/newspaper/2008/09/rc/264737_1.0_titleImage_1.jpg)
[연길교구 설정 80돌 특별기획] 연길 5000㎞ 대장정(12) 연길교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간도교회,그 생명력 꽃피워 영원하라!김영렬 감도교회 사상 첫 세례자로 신앙기초 다져연길교구 1945년 당시 19개 본당 지린교구에 병합 내전과 문화혁명에도 살아남은 간도교회 이제 새 복음화의 길로'간도의 로마'로 불리는 팔도구공소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2003년 8월 5일에 이미 팔도구 교우촌 건설 100주년 기념축제'를 벌일 만큼 유서깊은 공동체로, 간도교회의 주추다. "그래서 심는 사람도 거두는 사람도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요한 4,36ㄴ). 그곳에는 겨레가 있었다. 한 핏줄과 한 말글, 한 문화, 한 전통으로 살아온 배달 겨레였다. 그곳엔 또 한 핏줄 형제자매들이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신앙을 고백하는 한민족 천주교 공동체였다. 그래서 간도 복음화 현장을 돌아보는 여정은 힘에 부쳤지만 행복했다. 총 12회로 '연길 5000㎞ 대장정' 기획 연재를 마무리하며 연길교구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돌아본다. #'간도 사도' 김영렬, 복음화 로드를 개척하다 연재를 하며 꼭 조명하고 싶었던 인물은 김영렬(세례자 요한, ?~1931)이다. '간도의 사도'가 된 그가 박해를 딛고 공동체를 이루기까지 과정이 한국교회에 공개된 적이 거의 없어서다. 김영렬은 한국교회 첫 세례자 이승훈(베드로, 1756~1901)과 특히 닮았다.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교회 주추를 놓은 게 너무도 비슷하다. 함북 온성 태생인 그는 원래 동학 교도인 김이기(?~1895)의 제자였다. 참된 진리 탐구에 목말랐던 그는 스승이 1895년 3월 동학농민전쟁으로 체포돼 조선 회령 관부에서 처형당하자 이듬해 4월 평소 스승이 권하던 서학을 공부하고자 서울로 향하던 중 원산에서 발길을 멈춘다. 그 때 만난 인물이 베르모렐(J. Vermorel) 신부다. 밤을 새워 진리에 대해 베르모렐 신부와 토론한 김영렬은 입교를 결심하고 3주간 교리교육을 거쳐 그해 5월 17일 세례를 받고 간도교회 사상 첫 세례자가 된다. 곧바로 간도에 돌아온 김영렬은 고향 호천포(湖泉浦, 후첸푸, 현 회경촌)에서 용정(龍井, 룽징)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조선인마을에 전교한다. 이로써 1898년 간도 첫 공소 대교동(大敎洞, 따쵸우둥)공소가 세워지고, 1909년 첫 본당 삼원봉(三元峰, 싼웬펑)ㆍ용정(龍井, 룽징)본당이 설정된다. 호천포에서 용정에 이르는 길을 '복음화 경로(로드)'로 만든 게 그였다. 그가 전교한 박연삼(루카), 김진오(바오로) 등은 훗날 '간도 12사도'로 불린다. 1928년 7월 19일 지목구 설정 당시 신자 1만1764명에 8개 본당이던 연길교구는 1945년까지 11개 본당을 추가 설정, 신자 1만8000여 명에 19개 본당(1951년 「오딜리아연합회 편람」 기준)에 이른다. 한민족 성직자도 김충무ㆍ한윤승ㆍ신윤철ㆍ이태준ㆍ김성환ㆍ한도준ㆍ허창덕ㆍ박태산 신부와 김남수(전 수원교구장) 주교 등 9명이나 배출했다. 연길대목구(1937년 4월 13일 승격)는 1946년 4월 중국에 교계제도가 설정되면서 교구로 승격되고 봉천(奉天, 현재의 瀋陽)관구 관할로 넘어간다. 그렇지만 연길교구장 직은 연길 선교사였던 독일 뮌슈터슈바르작수도원 악커만(R. Ackermann, 1950. 11~1954. 4)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초대 원장 비테를리(T. Bitterli, 1954. 4~1980. 10) 몬시뇰 등이 2대, 3대 교구장 서리를 맡았다. 하지만 연길교구는 현재 지린교구에 병합돼 있다. 연길교구 소속 마지막 사제로 1969년 부산교구에 입적한 박태산 신부는 "덕원에서 1943년 팔도구로 이주했다가 1945년에 소신학교에 입학하며 2년 만에 덕원에 돌아왔기에 팔도구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면서도, 어쩌면 평생 사목지가 됐을지 모를 연길교구에 대한 향수를 전했다. #간도교회, '신앙의 증거'로 서다 간도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지 112주년. 교구 설정으로 치면 80주년을 맞은 연길교구는 한마디로 '신앙의 증거'다. 눈부시다고 할 수밖에 없는 연길교구의 영광은 그러나 구원의 은총을 잉태하는 '어둔 밤'의 시기로 접어든다. 1945년 구 소련군 침략과 1946~48년 중국 인민해방군 진주 및 국공내전, 1948~52년 외국인 성직자 추방, 1966~76년 문화혁명 등은 간도교회를 초토화했다. 그럼에도 간도교회는 살아남았다. 중국 당국이 북녘에서처럼 성직자를 처형하지 않고 노동개조형에 처하면서 '3자교회'를 표방했던 게 이유였다. 중국교회는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고(自養), 복음은 중국인 스스로 전파하며(自傳), 자율적으로 다스린다(自治)는 3자교회 원칙은 1957년 8월 중국 천주교 애국회 창립 이후 중국 교회정책의 근간이 됐다. 현재 간도교회는 조선족 출신 사제들이 사목을 도맡고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지린(吉林)교구 소속 중국 사제들이 있었지만, 1979년 중국의 개혁ㆍ개방 이후 10년 만인 1989년 10월 엄태준(현 혼춘본당 주임) 신부가 조선족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사제품을 받은 이후 염창원(연길본당 주임)ㆍ윤덕헌(안도ㆍ돈화본당 주임)ㆍ조광택(화룡ㆍ용정본당 주임) 신부와 리광필(연길본당 보좌, 왕청공소 담당) 신부 등 4명이 잇따라 사제품을 받게되면서 이제 연변 사목은 5명의 조선족 사제들에게 넘어왔다. 교세는 연길(延吉, 옌지)ㆍ용정(龍井, 룽징)ㆍ화룡(和龍, 허룽)ㆍ혼춘(琿春, 훈춘)ㆍ안도(安圖, 안투)ㆍ돈화(敦化, 둔화) 본당 등 6개 본당에 신자가 700명에서 3000명 선(중국인 포함)이다. 정확한 신자 수 파악이 어려운 이유는 잇따른 박해로 신자들이 만에 하나 박해 빌미가 될까봐 이름을 교적에 올리길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도교회는 최근 들어 성모신심 단체 등을 결성하고 신자재교육과 함께 영성을 심화하는 데 힘을 쏟으면서 사제 및 수도 성소 발굴을 통해 복음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다는 연길본당 김춘수(마크리나, 79) 할머니의 고백이 눈물겹다. "성경을 쓰고는 싶은데 글을 모르니 어떡해요. 공책을 사다 놓고 무작정 그렸지요(?). 하루에 한 장씩 그렸어요. 다음에는 두 장, 그 다음에는 세 장…, 그렇게 한글을 깨우쳤죠. 요즘은 아침에 기도를 드리고 2시간 쓰고, 점심 뒤에 5시간 쓰고, 저녁 식사 후에 기도를 바치고 1시간 쓰지요. 종일 성경만 필사합니다. 성경에서 하느님 역사를 알았어요. 이제는 1분 1초도 하느님 없이는 못살아요."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중국 내 조선족 사제인 염창원,창일 형제 신부 인터뷰 중국 내 조선족 사제 8명 중 유일하게 형제 사제인 염창원(필립보)ㆍ창일(요셉) 신부를 만났다. 형은 지린(吉林)성 지린교구에서 조선족을, 동생은 산시(陝西省)성 한중(漢中)교구서 한족을 각각 사목하는 특이한 경우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자무쓰(佳木斯)시 태생인 이들 형제 신부의 세례와 신학 공부, 사제수품은 현재 조선족 교회의 어려움을 압축한다. 공무원이던 부친 염성천씨가 1974년 타계하자 어머니 정천긍(우슬라)씨와 함께 무단쟝(牧丹江)으로 이주한 형제(4남 2녀 중 셋째와 넷째)는 1990년, 1991년에 각각 세례를 받았다. 두부 사업 차 연길을 찾았던 염창원 신부가 우연찮게 연길성당에 들렀다가 먼저 입교했고, 염창일 신부는 1년 뒤 형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다. 사업을 하던 중 뒤늦게 성소를 느낀 염창원 신부는 1992년 지린신학교에 입학, 7년 만인 1999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염창일 신부는 1993년 지린신학교에 입학했다가 탕산(唐山)신학교를 거쳐 쓰좌쟝(石家莊)신학교을 졸업하고 12년 만인 2005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돌아보면 모든 게 하느님 은총이었지요. 신학교에 다닐 땐 책 살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위생 환경도 열악했지만 기쁘게 살았습니다. 나중엔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큰 내적 갈등을 겪었지만 사제가 돼 늘 기쁘게 삽니다." 특히 염창원 신부는 "어머니 병환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신학교를 나오려던 즈음 중국에 온 서울대교구 반포본당 순례단을 안내하고 받은 사례금으로 어머니 치료비와 수업료를 충당하고 신학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며 "지금도 반포본당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감사를 전했다.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간도애서 만난 우리 교우들[[그림11]]cpbc2008.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