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성당 성모성월특강(4) 조규만 주교하느님 걸작은 바로 '인간'인간 생명의 존엄성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반생명 문화에 반대한다. 그리스도교는 생명의 종교, 생명을 위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구약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예수님은 바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으로 이해하고, 육화 사건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을 만큼 인간이 하느님께 긍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한다. ▲육체적 근거 - 신비롭고 정교한 걸작품 창세기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은 모두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보시기 좋은 작품이 바로 인간이라고 말한다. 「당신의 몸, 얼마나 아십니까?」라는 책에 의하면 인간 세포는 60조 개다. 신경세포는 300억 개나 된다. 우리 피부와 피막은 1억 장이 겹쳐져야만 1㎝가 될 정도로 얇다. 340g밖에 안 되는 심장 역시 놀랍다. 매일 9만6000㎞에 달하는 혈관에 1만5000ℓ의 피를 공급하며 70~80년을 버틴다. 우리 몸의 신비스러움 자체가 인간의 귀중함을 알려준다. ▲구약에서 인간 존엄성의 근거 - 하느님의 모상 창세기에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는 하느님 말씀이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세기에는 하느님의 창조에 대해 '하느님이 보시니 좋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만큼 인간 창조는 다른 어떤 창조보다 하느님에게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성경은 하느님 모습을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근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초월의 하느님이다. 곧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만져질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또 하느님을 인간동형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남자와 여자가 모두 동등한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사실이다. ▲신약에서 인간 존엄성의 근거 - 하느님의 자녀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 죽음 모두가 인간 사랑을 위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삶 전체를 인간 사랑으로 일관하셨던 예수님은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셨다. 이 표현은 '하느님의 모상'보다 적절하고 실제적으로 인간 존엄성을 드러낸다. 언제부터 인간이냐는 과학자들 질문에 교회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라고 주장한다. 죽음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기 전에는 생명으로 다루는 일이 절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 권한인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교황청 생명학술원은 「인간복제에 관한 성찰」(1997)에서 배아와 태아에 대한 실험, 인간 복제를 비도덕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인간 존엄성의 근거 - 하느님의 육화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으로 고백한다. 신학은 이를 하느님의 육화 또는 강생이라 표현한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육화사건은 하느님이 사람이 될 만큼 인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는 하느님과 대화와 친교를 나누는 상대라는 점에 있다. 하느님 대화 상대자란 교부들이 신화(神化)라고 표현한 것처럼, 하느님과 같은 위치에 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도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셔서' 하느님의 생명을 나눠 받게 하는 무한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현상학적 근거 - 유일회적 삶 사람은 단 한 번의 삶을 산다. 그리스도교 교리도 인간 생명의 유일회성을 말한다. 불교는 윤회설을 얘기한다. 해탈은 그 끝없는 반복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역시 영원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지니고 있지만 불교 윤회설과는 다르다. 윤회의 삶은 반복되는 삶 때문에 현재 삶을 하찮은 것으로 여길 수도 있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무시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불교의 윤회설을 거부하는 이유는 바로 삶의 유일회성 때문이다. 국제신학위원회는 삶의 유일회성에 근거한 소중함과, 현세 삶은 영원한 내세 삶을 위한 영원한 흔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인간적 삶을 사는 만큼, 우리 삶이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08.06.04
![[바오로의 해 심포지엄] 기조연설-"바오로, 진정한 복음의 사도"](//cpbc.co.kr/CMS/newspaper/2008/09/rc/266131_1.0_titleImage_1.jpg)
[바오로의 해 심포지엄] 기조연설-"바오로, 진정한 복음의 사도"최덕기(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주교선교 사명 지닌 한국 교회에 요구되는 영성 최덕기 주교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오로 서간은 복음 성경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이루는 커다란 부분이고, 이민족들의 선교사로서 보여 준 그분의 열정은 거의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큰 감동을 준다. 바오로는 이토록 위대한 분인데도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저평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바오로 사도는 세대를 이어 모든 교회에게 사도요 선교사로서의 열정과 삶의 자세를 똑똑히 보여 주셨고, 그리스도교를 팔레스티나 유다인들만의 종교가 아니라 세계 종교로 알리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분은 율법과 죄, 유다인, 팔레스티나가 중심인 종교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비와 믿음, 의화가 중심인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를 이민족들에게 소개했다. 또한 믿음 안에서 유다인과 이민족, 남자와 여자, 자유인과 종 할 것 없이 온갖 장벽이 허물어지고 모두가 하나 되었음을 분명히 하시어, 유다인 중심의 초기 그리스도교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놓았다. 지금도 이 신학사상의 토대에서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민족들의 선교사' 바오로는 복음을 전파하고자 2000년 전에 엄청난 거리의 선교여행을 세 번씩이나 했다. 그분이 쓴 서간 첫머리를 보면, 자신을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로서 분명히 의식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교회의 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교율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 열정이 많이 떨어져 있음을 선교율이 말해준다. 한국교회가 세계 여러 대륙 많은 나라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선교사들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지만, 교황님께서 그리고 세계교회가 바라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 선임 교황님이 그러하셨듯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한국교회가 해외선교에 큰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고 계신다. 또 바오로가 모금을 해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줬듯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의 교회들을 돕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희망하고 계신다. 이런 시점에서 선교 영성으로 가득했던 저 유명한 선교사 바오로의 해를 맞게 됐으니,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외쳐야 할 것이다. 이 심포지엄을 통해 한국교회가 바오로의 선교정신과 선교사로서의 자세를 잘 배워 실천함으로써 선교적 교회가 되기를 기원한다.cpbc2008.09.23
[사설] 전북이주사목센터 개소를 축하하며 전주교구가 3월 28일 교구 이주 사목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될 전북이주사목센터를 마련해 문을 열었다.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배려를 올해 주요 사목 과제로 삼고 있는 교구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전주교구는 올해 교구장 사목교서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교구민의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우리나라 이주민은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전북 지역은 이주민 거주 비율이 다른 지역에 견줘 높다. 이주민, 즉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요청은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근거한다. 구약성경에는 "너희 땅에서 이방인이 너희와 함께 머무를 경우, 그를 억압해선 안된다…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레위 19,33)고 했다. 예수께서도 '최후의 심판'을 설명하면서 "너희는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했다"(마태 25,35)며 이방인을 환대할 것을 예언적으로 선언했다. 이에 교회는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자기 고유의 사고방식, 자기 언어, 자기 문화, 자기 종교를 그대로 가지고 온다. 이 모든 것은 조국 밖에서도 보존되어야 할 사상, 전통, 문화의 정신적 유산이므로 어디서나 높이 존중돼야 한다"(「이주사목에 관한 훈령」 11항)고 가르치고 있다. 새로 문을 연 전북이주사목센터가 문화 간의 대화의 장소, 인종ㆍ민족간의 연대의 자리, 가난한 이민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삶터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또 이번 센터 개소를 계기로 전국 각 교구에 다양한 민족 교회들의 전통과 체험을 나누는 이주사목센터가 건립 운영되길 희망한다.cpbc2008.04.02
[교회상식 교리상식 105] 열두 사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9)-마태오마태오는 세리이며 마태오복음을 쓴 복음사가로 알려져 있는 사도입니다. 이번 호에는 마태오 사도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성경에서 본 마태오 마태오는 열두 사도 명단 가운데서 일곱 번째(마르 3,18; 루카 6,15) 혹은 여덟 번째(마태 10,3; 사도 1,13)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태오복음에서는 그를 세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마태 9,9). 이에 비해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에서는 마태오를 열두 사도 명단에 포함시키면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신 세리의 이름이 마태오가 아니라 레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르 2,14; 루카 5,27). 이런 차이로 인해 마태오와 레위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동일인으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이름을 갖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시몬에게 케파(베드로)라는 다른 이름을 주셨지요. 마태오에 대해서도, 원래 이름은 레위였는데 예수님께서 마태오라는 이름을 주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마태오와 레위가 동일인이라면 마태오는 갈릴래아 지방 카파르나움에서 세리로 일하면서 예수님에 관한 소문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세리는 유다인들 사이에서 마치 창녀나 죄인들처럼 멸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는 과도한 세금 징수를 통해 부정하게 돈을 착복하는 일이 많은 데다 로마제국을 위해 일하는, 유다인들 편에서 보면 매국노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상종하기를 꺼려하고 죄인 취급을 하는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 부르심에 대한 마태오의 처신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마태오는 부르심을 받자 "모든 것을 버려둔 채"(루카 5,28) 예수님을 따랐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기까지 하지요(마태 9,9-13 ; 마르 2,13-17 ; 루카 5,27-32). 죄인인 자신을 불러주시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버리고 기꺼이 응답하는 마태오의 자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해줍니다. 마태오라는 이름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지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야기와 열두 사도 명단을 제외하고는 마태오에 관한 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사도행전 1장을 토대로 볼 때, 마태오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 때가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승에서 본 마태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는 처음에는 주로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약 15년 동안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히브리어로 복음을 써서 남겨주고는 다른 나라로 복음을 전하러 갔다고 하는데 마케도니아와 파르티아, 시리아, 카스피해 남쪽의 에티오피아(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가 아님)도 활동 무대였다고 전하지요.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마태오 사도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자료들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순교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순교하지 않고 죽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순교 장소 및 순교 방법과 관련해서도 주장이 엇갈립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했다는 전승도 있고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는 전승도 있습니다. 또 칼에 찔려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고, 화형을 당하고 돌에 맞아 순교했다는 기록도 있지요.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마태오 사도 유해는 이탈리아 남부 티레니아 해(海) 연안 항구도시 살레르노의 대성당에 모셔져 있다고 전해집니다. 마태오 사도 축일은 9월 21일이며, 은행원을 비롯해 회계업무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마태오 사도는 장부를 펼쳐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집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 있는 열두 사도 조각상에서도 마태오 사도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요. ◇사도 마태오는 마태오복음의 저자인가 사도가 된 세리 출신의 마태오가 실제로 마태오복음을 썼을까요? 2세기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가 "마태오가 히브리어로 말씀들을 편찬했는데 저마다 힘 닿는 대로 이를 번역했다"고 주장한 이후 사도 마태오가 마태오복음의 저자라고 일반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세리 출신의 사도 마태오가 마태오복음의 저자라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됐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마태오복음의 저자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면서도 유다교 계율과 유다인들의 관습을 잘 아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마태오는 이 복음서가 씌어지는 과정에서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마태오복음이라고 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마태오 사도를 마태오복음의 저자로 여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8.08.19
[교회상식 교리상식 108]-열두 사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12)유다 이스카리옷이번 호에는 예수님을 팔아 넘긴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 알아봅니다. ◇출신 성경에서는 유다 이스카리옷이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라는 것과,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 그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 외에는 그에 관한 별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디 출신인지, 어떻게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요한복음에서는 그를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6,71; 13,26)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몇 가지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 우선, 이스카리옷은 히브리어로 '카리옷 사람'이란 뜻을 지니는데, 카리옷은 유다 지방에 있는 도시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기 15장 25절에는 유다 지파의 성읍 가운데 하나라 크리욧 헤츠론이 나오는데 이 크리옷과 카리옷이 같은 곳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유다 이스카리옷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갈릴래아가 아닌 유다 지방 출신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카리옷이 '자객'을 뜻하는 그리스말 '시카리오스'(σικαριοs)와 관련된다고 보아, 유다가 자객 활동을 한 집단, 곧 당시에 로마 제국에 맞서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젤롯당원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방 카리옷 출신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는 것 같습니다. ◇배반 왜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은 배반과 관련해 유다 이스카리옷이 주도적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도합니다. 유다가 수석 사제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주는 대가에 대해 흥정을 하는 점이 그렇습니다(마태 26,14-16 ; 마르 14,10-11). 그런데 이 두 복음은 유다의 배신 기사 바로 앞에 어떤 여자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렸다는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마태 26,6-13; 마르 14,3-9).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는 것을 본 제자들(마르코복음에서는 '몇 사람')이 불평을 하지요.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는 게 더 좋지 않느냐는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내용을 전하는 요한복음(12,1-8)에서는 여인의 행위에 불평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제자들 또는 몇 사람)이 아니라 유다 이스카리옷 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요한복음의 저자는 유다가 불평한 것은 그가 도둑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도들의 돈주머니를 맡고 있는 경리로서 평소에도 틈틈이 돈을 빼돌리곤 했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비교해보면 공관복음에서는 왜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됐는지 결정적 이유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단정적으로 제시되는 것 같습니다. '돈에 눈이 먼 도둑'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단지 돈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견해를 종합하면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에게서 기대한 메시아 상과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보여주신 메시아 상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께서 세우실 하느님 나라, 메시아 왕국이 현세적 왕국 이 지상의 왕국이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는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인정하시면서도 오히려 당신이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8,27-31). 이 말씀에 유다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유다만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다른 제자들은 이 충격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유다는 그렇게 극복할 만큼 믿음이 강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을까요? ◇죽음 유다 이스카리옷의 죽음과 관련해 성경에서는 두 가지 다른 설명이 나옵니다. 마태오복음은 유다가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결국 예수님 몸값으로 받은 은돈을 성전 안에 내던지고는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전합니다(마태 27,3-10). 이에 비해 사도행전은 유다가 예수님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밭을 산 후에 "거꾸로 떨어져서 배가 터지고 내장이 모조리 쏟아져서" 죽었다고 전하지요(사도 1,15-20). 학자들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이 다른 것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신학적 의미를 제시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은 다윗의 친구였다가 배반자가 된 아히토펠이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2사무 17,23)을 상기시킵니다. 아히토펠의 죽음 방식은 이후 배반자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본보기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과 같이 거꾸러 떨어져 배가 터지고 내장이 쏟아져 맞는 죽음은 죄인의 최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8.09.09

지친 몸과 마음, 주님 향기로 충전 이 여름, 수도회로 떠나볼까? 무더운 날씨로 몸과 마음이 지치기 쉬운 요즘. 일상을 떠나 하느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수도회가 여름을 맞아 마련한 다양한 캠프 및 피정을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향으로 삶의 활기를 되찾아 보자.예수마음 배움터 피정에 참가한 신자들이 반가부좌 자세로 기도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제1회 남녀 수도자와 함께하는 젊은이 열린캠프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연합회 성소계발팀은 8월 22~24일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와서 보아라'(요한 1, 39)를 주제로 캠프를 연다. 대학생 및 직장인(35살 미만)을 대상으로, 다양한 수도 성소에 대해 알아보고 수도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참가비 : 3만 원. 문의 : 010-7141-5549, 이병우 신부 ▨2008년 작은형제회 여름 성소캠프 작은형제회는 △대학생 및 직장인(18~20일, 대전 목동 수도원)과 △중ㆍ고등학생(23~25일, 경남 산청 성심원)을 대상으로 여름 성소캠프를 연다. '순례자와 나그네처럼'을 주제로 여는 대학생 캠프는 친교시간 및 도보 성지순례 등으로 진행된다. '프란치스코처럼 자유롭게'를 주제로 열리는 중ㆍ고등학생 캠프는 조별 묵주기도와 야간 추적놀이, 래프팅 등으로 짜여져 있다. 참가비 : 3만 원. 문의 : 02-6364-5500, 작은형제회 ▨젊은이의 피정 '길을 찾아서' 예수회는 8월 8~10일 서울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35살 이하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하느님을 체험하는 '길을 찾아서' 피정을 실시한다. 이냐시오식 관상기도 및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자신의 신앙과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참가비 : 대학생 2만5000원, 직장인 3만5000원. 문의 : 02-719-1803, 예수회 성소실 ▨제26차 젊은이들을 위한 수도생활 체험학교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8월 15~17일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 제26차 젊은이들을 위한 수도생활 체험학교를 실시한다. 수도자들처럼 기도하고 일하면서 수도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명상ㆍ기도ㆍ노동체험ㆍ거룩한 독서 등으로 진행된다. 대상은 대학생 이상 만 32살 이하 미혼남녀이다. 참가비 : 4만 원. 문의 : 019-9353-2323, cafe.daum.net/osbfriends ▨가르멜 수도회 성소피정 가르멜 남자 수도회는 22~25일 마산 가르멜 수도원에서 고3~33살 이하 남성을 대상으로 성소피정을 실시한다. 가르멜 수도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강의와 면담, 대침묵 등을 통해 성소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참가비 무료. 문의 : 032-542-2625, 가르멜 수도회 ▨예수마음 배움터 피정 성심수녀회는 경기도 파주시 예수마음 배움터에서 종교와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기도하며 예수님 마음을 체험하고 배우는 시간을 마련한다. 일정 : 14~18일/21~25일/8월 4~8일/8월 14~22일/8월 25~27일. 참가비는 20만 원(4박 5일)부터 40만 원(8박 9일)까지. 문의 : 031-946-2337, 예수마음 배움터 ▨3박 4일 침묵피정 예수 그리스도 고난 수도회는 28~31일, 8월 11~14일 서울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침묵피정을 실시한다. 3박 4일 내내 침묵 중에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기도와 미사, 강의가 진행되며 침묵 중에는 개별 면담시간이 따로 준비돼 있다. 참가비 : 15만 원. 문의 : 02-990-1004 ▨오순절 평화의 수녀회 성경 통독피정 오순절 평화의 수녀회는 19~27일 경남 밀양시 수녀회 본원에서 신구약 통독피정을 실시한다. 하루 11시간 동안 신구약을 통독하며 온전히 말씀을 듣는 피정이다. 오랜시간 앉아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신청(선착순 50명)할 수 있다. 참가비 : 25만 원. 문의 : 055-351-2285, 오순절 평화의 수녀회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08.07.09
72- 기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고 기록돼 있는데, 예수님의 기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기적이란 일반적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신기한 일, 또는 자연법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과학이나 이성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기적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은 이와 거리가 멉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아봅니다. ◇예수님 기적들은 역사적 사실인가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보아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들은 상당수가 첨가되거나 보충됐을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물 위를 걸으신 기적이라든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신 기적 같은 것들은 나중에 확대되고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대단히 큽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기적들을 다 엉터리라고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기적들과 관련된 어떤 사건이나 제자들의 체험이 분명히 있었고, 그 내용들은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첨가되거나 과장되기도 했을 것이고, 나중에 복음사가들은 이 자료들을 자신들의 신학적 의도에 따라 정리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들 중 신빙성이 높은 것만 받아들이고, 역사적 신빙성이 적은 것은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기적 이야기들은 역사적 사실 그대로는 아니지만 '신앙의 언어'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언어가 단지 객관적 사실을 기록하는 언어가 아니라 하느님 체험이라는 신앙의 반성에서 나온 신앙의 언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에서는 기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는 기적은 성경의 세계는 오늘날 상식이 되고 있는 자연과학의 세계와 거리가 멉니다. 자연과학의 세계에서는 자연법칙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기적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려면 이용할 수 있는 온갖 과학적 방법을 다 활용해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예컨대 치유 기적이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한 루르드 성모성지에서는 1858년 성모 발현 이후 지금까지 약 7000건의 치유 기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교회가 실제 기적으로 인정한 사례는 67건뿐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세계에서는 오늘날처럼 기이한 일에 자연법칙을 면밀히 적용한 후 '기적이다' 또는 '아니다' 하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이해하는 기적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하느님의 특별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특별한 행동이나 사건을 통해 당신의 뜻을 알리거나 실현하실 때 이를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자연법칙은 근대과학의 개념이기 때문에 성경의 세계와는 무관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세계에서 기적을 이해할 때는 특별히 두 가지가 중요시됩니다. 첫째는 기적이란 언제나 하느님이 주도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의 배후에 하느님이 계실 때에 기적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적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그 사건의 외형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기적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그 기적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드러나며 또 어떻게 실현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예수님 기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성경 저자들이 예수님 기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기적은 언제나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과 행동으로 당신의 전 인격으로 선포하시는 핵심 메시지인 하느님 나라와 연결돼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기적들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됐다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펼쳐지고 있다는 표징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기적들을 행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권능을 받고 있음을, 하느님의 권능과 뜻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예수님이 하느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표징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기적들은 이제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됩니다. 기적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해 주는 표징이 됩니다. 물론 기적 자체가 믿음의 전제 조건은 아닙니다. 믿기 위해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련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기적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내리도록 하는 자극이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적뿐 아니라 교회의 많은 성인들의 기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적들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기적을 믿음의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흥정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7.12.12
![[예수님께 고고씽!] 이승민 신부편](//cpbc.co.kr/CMS/newspaper/2008/10/rc/269467_1.0_titleImage_1.jpg)
[예수님께 고고씽!] 이승민 신부편일어나 젊음을 발산하라 성경에서 '일어나'란 단어는 560여 개 문장을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병자가 병을 고쳐 삶의 자리로 돌아갈 때를 비롯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갈 때나 예수님 부활을 확인하러 무덤으로 달려갈 때, 모두 일어서는 동작이 필요했습니다. 일어나는 동작은 어쩌면 생명력과 에너지의 증거인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면 일어나는 동작이 힘이 듭니다. 따라서 젊은이는 일어나고 또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 즉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생명력의 증거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젊음은 참 좋습니다. 저는 서울대교구에서 대학을 담당하는 사제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서울지역에는 전문대학을 포함해 큰 대학들이 57개가 나옵니다. 이 57개 대학 중에서 34개 대학에 '가톨릭학생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1개 대학에 '가톨릭학생회'가 준비중이고, 수원교구 지역 2개 대학이 서울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전공의 특수성 때문에 의대와 법대 등에서 별도로 활동하는 가톨릭학생회까지 포함하면 모두 46개 가톨릭학생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젊음이 주는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너지가 넘쳐야 할 대학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점점 더 많이 느낍니다. 전문지식을 키우고, 견문을 넓히고, 마음과 생각을 키우며 기뻐해야 할 대학생들 어깨 위에는 등록금과 취업, 아르바이트라는 무거운 짐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대학생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겨워 보입니다.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 정의를 외치고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힘차게 일어나 나아가야 할 교회에 젊음의 기운이 빠져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아직은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면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보기 때문입니다. 같은 신앙으로 모여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고민하면서 이뤄내는 움직임들 속에는 푸른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아직 세상과는 다른 순수함이 있습니다. 이 푸른 에너지들이 삶의 무게에 의해 꺼지지 않고, 함께 뭉치는 일이 최근 생겼습니다. 전국 교구 중 8개 교구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예전에도 전국 모임이 있었지만, 이제 새로운 세대에게 맞는 새로운 모습으로 그 첫 만남이 이뤄진 것입니다. 첫 만남에서 이뤄낸 것은 크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엄청난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기성세대는 흉내 낼 수 없는 젊음의 에너지는 큰 기쁨을 줍니다. 요즘 대학생들 현실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가톨릭 대학생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생명력을 뿜어내며, 대학 복음화를 위한 사도직을 수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자신과 대학, 사회 복음화를 위해 사도직을 수행하는 가톨릭학생회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젊은이여, 일어나라!"이힘2008.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