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1/20/XUT1768865670497.jpg)
[신앙단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김성범 에지디오(아동문학가, 작곡가) 김성범 제공 누구나 가슴에 담고 다니는 자기만의 성경 구절이 있을 것이다. 나의 성경 말씀은 마태오 복음 18장 1-5절이다. 특히 3-5절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남들에게도 읊어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아동문학가인 까닭에 조선의 천주교 박해 이야기 「천주의 아이들」은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쓰기 전부터 출판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유박해부터 을해·정해·기해박해까지 어린이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는 무거운 소재이기도 하지만, 신앙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출판사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고를 했고, 출판사를 찾으려드니 가톨릭 계열 출판사들까지 아동문학 창작 라인이 없었다. 어찌 이럴 수가!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하느님 말씀을 들려주는 창작동화는 출판할 곳이 없다고? 출판을 포기할 즈음 ‘청동거울’이란 출판사 대표께서 청소년 소설로 다시 써줄 수 있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야 「천주의 아이들」이 출판될 수 있었다. 어쩌면 동화보다 소설로 태어날 수 있어서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기회를 얻은 듯하다. 고학년 어린이들부터 성인들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책이 되었기 때문이다. 출판이 되었고, 인세를 모두 출판물로 받았다. 하느님 이야기로 소득을 취할 순 없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조선 교회의 박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강의료 역시 전액 책을 구입하였다. 제목처럼 이야기는 어린이가 주인공이고, 어린이가 청년이 되어서 교우촌을 이끌었으나, 결국 관군들에게 다시 쫓겨, 어린이들을 이끌고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 떠나면서 끝을 맺는다. 마지막 구절을 소개해본다. ‘천주의 성모님, 하느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이들입니다. 오늘 당신의 보호 아래 피신하오니 당신 눈동자처럼 아이들을 보호하시어 당신의 품에 아이들을 품어주소서. 어려울 때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모든 위험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하소서.’ 나는 「천주의 아이들」에 가장 걸맞은 성경 구절이며, 나의 가슴에 상감이 되어 새겨진 마태오 복음 18장 3-5절 말씀으로 노래를 지어 책에 QR 코드를 넣었다. 딸과 함께 노래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면 좋겠다. 더불어 절판되지 않을 정도만 오랫동안 함께 읽어주는 책이 되면 좋겠다. “내가 진실로 너희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4) 김성범 에지디오 cpbc2026.01.20

무슬림 사회 속 규제와 검열에도30년간 꺼지지 않은 가톨릭 등불[아시아 가톨릭 미디어를 가다] (3) 헤럴드 말레이시아 헤럴드 편집국이 위치한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사목센터 전경.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다민족·다종교 국가다. 인구 3240만 명 가운데 무슬림이 63.5%다. 불교 신자 18.7%, 그리스도교 신자가 9.1%로 뒤를 잇는다.(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가톨릭을 믿는 이들은 120만 명 남짓으로 추산된다. 무슬림 사회에서 가톨릭 신자는 소수 공동체다. 이같은 현실에서 가톨릭 언론은 단순한 교회 소식지를 넘어선다. 흩어져 살아가는 신자들의 연결 고리이자, 교회 공동체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등불이 돼주기 때문이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사목센터에 자리한 ‘헤럴드(HERALD)’ 말레이시아가 그런 역할을 해왔다. 4개 언어 지면으로 교회 일치 증언 쿠알라룸푸르 시내 한복판, 오래된 사목센터에 자리한 헤럴드 편집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상주 직원은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과 산드라 앤 인바라즈 부편집장을 포함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취재 기자와 소셜미디어 담당자, 그래픽 디자이너, 회계 담당자가 편집국을 지키고 있다. 각 교구나 본당 주요 행사 소식이나 교리교육·성경 해설·외신·논평은 시민 기자단과 분야별 전문가들이 보내오는 기사와 기고로 꾸리고 있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AI 활용이 보편화되면서 사실 확인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며 “이젠 뉴스 전달을 넘어 설명하고 교육하며 신앙을 나누는 기사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럴드는 ‘소식을 알리는 사람’, ‘선포자’란 뜻이다. 1994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창간한 헤럴드는 영어판 격주간지(12개면)로 출발했다. 초대 편집장은 로렌스 앤드류(예수회) 신부였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에서 시작한 헤럴드는 이후 말레이반도(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섬 북부 사바·사라왁주(동말레이시아)까지 독자층을 넓히며 교구 신문을 넘어 말레이시아 가톨릭 공동체 전체를 잇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말레이시아 교회는 말레이반도에 쿠알라룸푸르대교구·페낭교구·말라카-조호르교구가 있으며 동말레이시아 사바주에 코타키나발루대교구·케닝아우교구·산다칸교구, 사라왁주에 쿠칭대교구·미리교구·시부교구 등 9개 교구로 이뤄져 있다. 특히 동말레이시아 지역은 말레이반도보다 가톨릭 공동체 기반이 뚜렷하다. 동말레이시아 일부 교구에는 가톨릭 신자 비율이 10%를 훌쩍 넘는다. 헤럴드는 영어 외에 중국어·타밀어·말레이어(바하사) 담당자를 두고 각 언어 지면을 함께 발행한다. 네 가지 언어를 한 신문에 담아 언어·문화가 다른 신자들이 하나의 교회 안에 있음을 지면으로 증언해 온 셈이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언어는 번역 수단에 그치지 않고 교회 일치를 위한 핵심 도구”라고 강조했다. 헤럴드는 현재 총 32개 면을 발행하고 있으며 영어 19개 면을 중심으로 중국어 3개 면, 타밀어 2개 면, 바하사어 8개 면으로 구성돼 있다. 헤럴드 사무실은 전례주기에 맞춰 꾸민다. 올해 초 사순 시기에 맞춰 보라색 천과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십자가상으로 장식한 사무실 입구. ‘알라’ 용어 사용으로 발행 중지 위기 헤럴드는 2001년 격주간지에서 주간지로 전환했다. 더 자주, 더 꾸준히 신자들에게 교회 가르침을 전하고,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제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해 웹사이트를 개설하며 새로운 독자층과 만날 길을 열었다. 그러나 헤럴드가 걸어온 길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헤럴드가 말레이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신문이 겪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헤럴드 말레이어 지면에 사용했던 ‘알라’(Allah)라는 단어가 발단이었다. 알라는 아랍어로 하느님, 곧 유일신을 뜻한다. 무슬림에게 ‘알라’는 신앙의 핵심 언어이자, 이슬람 공동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도 오래전부터 하느님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사용해왔고, 말레이어 성경과 교회 전통 안에서도 ‘알라’는 하느님을 뜻했다. 창세기 1장 1절 ‘창조주 하느님’을 가리킬 때도, 마태오 복음 27장 46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을 부르짖을 때도 말레이어 성경은 하느님을 알라로 표기해왔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07년 헤럴드 말레이어 지면의 ‘알라’ 사용을 문제 삼았다. 가톨릭 신자들이 쓰는 표현이 무슬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논쟁은 헤럴드의 발행 허가 문제로까지 번졌다. 정기간행물은 정부의 출판 허가를 받아야 했고, 교회는 해마다 이를 갱신해야 했다. 알라 논쟁 직후 헤럴드의 허가 갱신은 지연됐고, 발행 중지 압박도 커졌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는 법적 대응에 나섰고, 당시 편집장 앤드류 신부는 이 사안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무슬림 사회에서 가톨릭 소수 공동체가 홀로 맞서기엔 힘든 싸움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종교와 민족 정체성, 신앙과 출판의 자유가 맞물리며 알라 논쟁은 말레이시아 사회를 넘어 세계 교회의 관심사가 됐다.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은 2009년 가톨릭교회의 손을 들어주며 헤럴드에 ‘알라’ 사용의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판결 직후 일부 성당과 가톨릭 시설을 향한 공격이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항소에 나섰고, 오랜 법정 다툼 끝에 2013년 항소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헤럴드는 결국 ‘알라’를 지면에 쓸 수 없게 됐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이는 헤럴드지에만 해당되는 사안으로 미사나 전례, 성경에서 사용되는 것까지 막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하느님을 부르는 말조차 공적 논쟁과 법적 제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무슬림 사회 속 가톨릭 언론이 처한 현실을 보여줬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인종(Race)·종교(Religion)·왕실(Royalty), 이른바 3R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와 관련된 표현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거나 공공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보고 강하게 검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앙의 자유·인권·사회 정의·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선적 배려 문제는 가톨릭 사회 교리와 직결되는 주제지만, 3R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 헤럴드는 대립의 언어보다는 신중하고 절제된 표현을 택했다. 침묵하지 않되 갈등을 키우지 않고, 교회 가르침을 전하되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균형을 지켜온 것이다. 헤럴드 편집국 직원들. 왼쪽부터 산드라 앤 인바라즈 부편집장, 레이첼 샤르마 행정 담당,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 아만다 마 그래픽 디자이너. 팬데믹·독자 감소에도 교회 가치 실천 코로나19 팬데믹은 헤럴드의 또 다른 위기였다. 2020년 3월 이동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 일상도 멈췄다. 미사가 중단되고 신자들이 성당에 모일 수 없던 시기에 신문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헤럴드는 신문 인쇄를 멈추고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고, 2022년 9월부터 종이신문을 다시 발행했다. 신문 독자가 줄고 제작비, 우편료 부담이 커진 상황에도 헤럴드가 인쇄를 재개한 것은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신자들과 종이신문을 기다리는 이들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튜브를 비롯해 다양한 SNS 플랫폼을 운영하며 여러 세대와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2024년 창간 30주년을 맞은 헤럴드는 나무를 심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강조한 ‘공동의 집 돌봄’에 응답하는 일이었다. 사바주 수카우의 로워 키나바탕간 야생동물보호구역에 나무 100그루를 심고, 신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생태 캠페인을 마련했다. 신문을 만들고 배포하는 일을 넘어 교회가 말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시도였다. 30년 넘게 헤럴드는 신자들이 더 넓은 교회와 연결돼 있음을 알게 하고, 교회가 세상 안에서 무엇을 보고 말해야 하는지 식별하게 하며, 소수자의 자리에서도 신앙의 언어를 잃지 않도록 앞장서왔다. 말레이시아 가톨릭 공동체가 자신들의 언어와 전통을 잃지 않도록 헤럴드는 오늘도 네 개 언어로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박수정 기자 catherine@ 첫 여성 평신도 편집장 - 패트리샤 페레이라 “복음에 뿌리 둔 진실 전한다” 2021년 패트리샤 페레이라(Patricia Pereira) 편집장의 취임은 말레이시아 교회에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헤럴드 창간을 이끌고 27년간 편집장을 맡아온 로렌스 앤드류(Lawrence Andrew, 예수회) 신부 이후 첫 여성 평신도 편집장이기 때문이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자신의 임명에 대해 “교회가 리더십과 식별, 선교 영역에서 평신도, 특히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사였다”고 평가했다. “교회는 성직자만이 이끄는 공동체가 아니니까요. 가톨릭교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각자 역할을 맡아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입니다.” 이는 말레이시아 사회에도 교회가 시대에 발맞춰 포용성을 넓히고, 여성의 역량과 리더십을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취임 후 ‘알리고, 양성하며, 영감을 준다’는 헤럴드 사명을 이어가며 현장 목소리를 더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그는 “신자들의 생생한 삶의 경험, 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전하는 데 더 무게를 두는 변화를 추구했다”며 “스토리텔링의 렌즈가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에서 홍보학을 전공하며 교구와 본당 일을 돕곤 했다. 졸업 후엔 주말마다 헤럴드에서 번역하던 인연이 이어져 1996년 헤럴드 기자 겸 부편집장으로 합류했다. 2006년까지 10년간 기자로 일하다 일반 기업 카피라이터 겸 홍보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정적 이유에 따른 선택이었지만, 성과와 속도를 중시하는 기업에서 여러 고객을 만나며 새로운 소통방식을 배웠다. 그러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요청으로 2017년 다시 교회 현장으로 돌아와 교구 커뮤니케이션 및 대외 협력 업무를 맡았다. “일반 기업과 교회 기관의 가장 큰 차이는 ‘근본적 동기’에 있습니다. 기업은 수익과 성과를 좇지만, 교회는 사명·가치·사목적 돌봄을 지향하죠. 교회는 기업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기업은 교회의 인간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배우며 상호 보완할 수 있습니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가톨릭 언론의 정체성을 “양심을 지닌 저널리즘”이라 설명하며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음에 뿌리를 두고 진실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톨릭 언론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영감을 주며 성찰로 초대해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전문 사도직’”이라고 덧붙였다. 헤럴드 역시 신문 독자 감소와 디지털화라는 세계 언론의 공통된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기가 아닌 새 도약의 기회로 바라봤다. 온라인 입지를 강화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기사를 보도하겠다는 구상이다. “헤럴드가 가톨릭 공동체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를 연결하며, 영감을 불어넣는 ‘신뢰받는 목소리’로 남길 바랍니다. 나아가 사회와도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는 매체가 돼야 합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변화무쌍한 미디어 환경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빛을 비추는 ‘희망과 진실의 등대’로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박수정 기자박수정2026.06.09

말씀 새기고 희망 수놓다글·그림·피규린으로 복음 표현한 전시 유임봉 작 ‘성모찬송’ 복음을 글과 그림, 피규린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돌에 새기고 화폭에 수놓고 인형으로 빚는 등 다양한 형태로 담은 하느님 말씀을 만날 수 있다. 엠마오 가톨릭말씀새김예술가회 부회장이면서 글아캘리아카데미 대표 유임봉(스테파노) 작가의 개인전 ‘엠마오 - 루카 복음서를 쓰고 새기다’가 서울 명동 갤러리 1898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2019년 마르코 복음서를 주제로 한 ‘에피타’, 2021년 마태오 복음서를 주제로 한 ‘마라나타’에 이은 세 번째 전시로, 복음을 화선지에 필사한 작품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입구 명례글판에 선보였던 작품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려면 칼로 돌을 깎으며 끊임없이 비워내는 과정과 하얀 백지 위에 다양한 붓으로 끊임없이 채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종이에 쓰고(캘리로고스그라피) 돌에 새기는(말씀새김) 과정을 통해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제자에게 오셨듯 주님께서 곁에 와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와 묵상을 관객들과 함께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전시 기간 행사를 통한 수익금은 전액 이주민과 난민들의 인권보호와 권익증진을 위해 의정부교구 사회사목국 ‘의정부 엑소더스’에 기부할 예정이다. 23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김옥순 작 ‘엄마의 휴식’ 희망의 순례자들 같은 기간 갤러리 1898 제1전시실에서는 김옥순(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의 17번째 개인전이 개최된다. ‘희망의 순례자들’을 주제로 복음의 사건 또는 소소한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희망을 마음으로 느끼고 작은 기쁨과 평화를 맛볼 수 있는 장면들을 25개의 화폭에 담았다. 김 수녀는 “우리의 고향인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 위해 순례의 길을 시작할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씨앗 하나를 주셨기에 우리는 절망하는 순간에도 일어설 채비를 한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꾸준히 성화전을 이어오고 있는 김 수녀의 작품은 특유의 파스텔톤 화풍으로 주목받는다. 예쁜 엽서나 동화책에 실릴 법한 화사하고 포근한 색감은 김 수녀만의 비법으로, 시간을 들여 물감을 굳히고 다시 바르는 과정을 반복해 구현한다.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작 ‘마르타와 마리아’ 성경인물 전시회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기획한 제4회 ‘성경인물 전시회’는 대구 바틀로 교육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피규린(figurine)’은 작은 인물상 또는 사람의 형상으로, ‘피규린 비블리크(Figurine Biblique)’는 성경인물, 즉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1964년 스위스의 한 수도원에서 개발해 성경 공부와 묵상, 신앙교육을 위해 보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2004년부터 도입해 확대하고 있다. 올해로 4번째 열리는 전시회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믿음의 여인들’을 주제로 미르얌·유딧·한나·성모 마이라·엘리사벳·하혈병에 걸린 여인·가나안 여인·마르타와 마리아 등을 선보이고 있다. 수녀회 측은 “하느님께서는 당신 구원계획을 실행에 옮기실 때 사람의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고유한 역할을 주셨다”며 “성경 안 여성들의 영적 체험과 믿음,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숙고하고 묵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23일까지 이어진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11.12

코린토 (02) : 먼지 뽀얗게 쌓인, 주인 잃은 편지[월간 꿈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8) 기원전 5세기에 건립된 코린토 유적지의 아폴론 신전. 바오로도 이 신전 옆을 걸어 지나갔을 것이다. 바오로가 재판받았던 코린토 유적지의 비마(Bema, 연단)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 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갔다.”(사도 18,12) 1년 6개월 넘게 코린토에 머물며 복음을 선포하던 바오로가 하루아침에 피고발자 신세가 되어 재판정으로 끌려갔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유대인들이 바오로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코린토 총독은 철저히 중립을 지킨다. 유대인들의 고발장을 접수한 후, 간단한 조사만 마치고 바오로를 방면한다. 바오로가 살인이나 방화, 간통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치안을 해치는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고발 사건은 바오로가 코린토를 터나 에페소와 안티오키아로 돌아가는 계기가 된다. 바오로가 공개적으로 조사받았던 자리가 지금도 남아있다. 코린토 성에서 내려와 찾은 코린토 유적지. 사람 사는 모습은 시대를 초월해 모두 비슷했다. 종교 시설 및 목욕탕, 공중 화장실, 상점, 관공서, 술집 터 등이 촘촘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코린토 유적지 광장 중심부에 ‘비마’(Bema)가 있다. 비마는 ‘연단’이라는 뜻으로, 총독이나 지방 자치 단체 관리가 연설하던 곳이다. 원전 희랍어 성경은 이곳을 ‘베마’(βημα)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말 성경은 이 단어를 ‘재판정’ 으로 번역했다. 바오로는 이곳에 끌려와 총독으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가 1년 6개월 동안 쾌락의 도시에 머물며 선포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함과 시기, 질투, 고발, 환난을 각오하고 반드시 말하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더 나아가 당시 코린토에 살던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으며, 어떻게 신앙을 이어나갔을까. 그 내용을 톰 홀랜드(Thomas Holland)가 저서 「도미니언 :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에서 잘 정리하고 있다. 이곳에 그 내용을 옮겨본다. “그리스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코린토스는 용광로 같은 도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해방된 로마 자유민들의 후손이 흘러들어와 그리스인 부자들과 뒤섞였다. 선박왕들이 구두 수선공과 섞여서 살았고, 순회 철학자들이 유대인 학자들과 교류했다. 이런 도시이니만큼 사람들의 정체성은 별로 뿌리 깊지 않았다. 과거 알렉산드로스 시대에, 저명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이 도시에서 커다란 통 속에서 살았고 또 사람들이 보는 데서 자위행위를 함으로써 그 사회의 규범에 대한 경멸을 악명 높게 선언했다. 그러나 바오로는 코린토스 사람들에게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아주 강력한 요구를 하고 나섰다. 부를 자랑하는 도시에서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비천한 자와 가난한 자, 즉 아무것도 아닌 자를 선택했다고 과감하게 선언했다. 최고가 되기 위한 경쟁이 우선인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이 현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 어리석은 자를 선택했고, 강자에게 수치심을 안기기 위해 약자를 선택했다고 선언했다. 노예와 주인의 위계질서를 당연시하는 세계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노예의 죽음을 당하신 마당에 노예와 자유인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스인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바오로는 이 메시지를 끊임없이 설교했지만, 딜레마(서로 다른 습속의 조화)로 고심했다. 그는 세상을 널리 여행했으므로 서로 다른 민족의 습속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바오로의 코린토 선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린토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 아니다. 자연 안에서 유유자적하며 하느님의 섭리를 찬미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가진 전원도시가 아니다. 돈과 명예, 쾌락을 위해 질주하는 인간 군상이 모인 곳이다. 그래서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편지는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집 우편함에 도착한 편지이기도 하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편지를 보면, 당시 코린토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이었다. 코린토 신자들은 자신이 각자 추종하는 사도와 설교자들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여러 파벌로 쪼개진 코린토 교회를 바라보는 바오로 사도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게다가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신자들 사이에 다툼도 잦았다. 고소 고발이 난무했다. 불륜으로 인한 혼인의 정체성 문제, 우상, 교리해석 문제도 심각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호소한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1코린 1,10)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1코린 6,7) 바오로 사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저지르는 타인에 대한 단죄’를 경고한다. 타인을 죄인이라고 함부로 단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윤리적으로 몹쓸 짓을 했어도, 하느님은 그 죄인을 감싸신다. “그리스도께서는(여러분이 죄를 지었다고 단죄하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1코린 8,11-12) 성경에 나타나는 코린토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읽혀지는 것은, 아마도 코린토가 현대사회의 결핍과 모순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코린토로의 여행은 현대사회라는 광장에 외롭게 서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저런 자잘한 심적 고통들을 안고, 코린토 유적지들을 둘러 보았다. 바오로 사도가 조사받았던 비마(연단, 재판정)가 눈에 들어왔다. 연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 보았다. 2000년 전 고발되어 끌려온 바오로 사도의 긴장한 모습,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냐며 웅성거리며 모여드는 군중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유 없는 고난 앞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연단 위에 있는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바오로의 눈에선 확신이 담겨 있었다. 순간, 바오로가 나에게 보낸 편지가 집 우편함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미 반송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편지를 뜯어봐야겠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연단을 내려오려는데, 오른편에 바오로의 말이 희랍어로 새겨진 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삶이 힘들어 지쳐있었을 때 이 편지를 읽었다면 큰 힘이 되었을 텐데…. 내가 아직 뜯지 않아 먼지 뽀얗게 쌓인 그 편지의 말씀,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 4장 17절이었다. “το γαρ παραυτικα ελαφρον της θλιψεως καθ υπερβολην εις υπερβολην αιωνιον βαρος δοξης κατεργαζεται ημιν.”(2코린 4,17)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cpbc2026.05.20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살길 막막](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2/11/boE1770776289119.jpg)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살길 막막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 이어와 최근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전재순씨가 침대에 누워 요양하고 있다. 자영업하는 자녀들도 어려운 처지 매일 성경 쓰며 연령회 봉사 꿈꿔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 그래도 하느님께서 잘 이끌어주시겠죠. 확신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하느님께 맡기는 전재순(데레사, 73)씨. 지난해 말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그는 이제 혼자 힘으로는 거동조차 쉽지 않다. 지난 세월 또한 삶을 긍정하기엔 버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시절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이 마지막 학력이지만, 전씨는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으로 큰 굴곡 없이 살아왔다.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자녀 셋을 낳았고, 부유하진 않았지만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로 전씨 가정은 직격탄을 맞았다. 설상가상 어음 사기까지 당하며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 결국 지금 살고 있는 임대주택 아파트로 쫓기듯 이사해야 했다. 치매를 앓던 친정어머니까지 여섯 식구가 한집에 모여 살았다. “아들은 베란다에서, 딸 둘은 한 방에서, 나머지는 거실에서 뒤엉켜 잤어요. 그래도 가난을 부끄러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속 깊은 아이들이었어요. 그 힘으로 버텼죠.” 최근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전재순씨는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매일 성경쓰기를 하고 있다. 이후 전씨는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2002년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또 한 번 큰 시련이 찾아왔다. 다행이라면 자녀들이 모두 출가할 만큼 성장해 자신의 몸만 돌보면 되는 상황이었다. 전씨는 횟집 주방에서 야간 종업원으로 10년 일했고, 최근 수술 전까지는 요양보호사로 16년간 일했다. 그러나 삶의 무게가 쌓인 탓인지 몸은 하나둘 망가지기 시작했다. 심장 폐동맥협착증 수술을 비롯해 허리 수술, 백내장 수술, 최근에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았다. 이제는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버겁다. 매달 받는 기초연금 34만 원은 월세로 고스란히 나가고, 유족연금 20만 원이 전부다. 오랜 투병으로 모아둔 돈은 남아있지 않다. 자영업을 하던 자녀들 또한 코로나19 이후 빚에 시달리고 있다. 최소 1년간 재활이 필요하지만, 도수치료비 100만 원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중단했다. 전씨는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게 되면 다시 요양보호사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주변에서는 “요양을 받아야 할 사람이 어떻게 요양보호사를 하느냐”며 만류하고 있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된 현실에서도 전씨는 매일 성경을 쓰며 작은 소망을 간직한다. “본당에서 연령회 봉사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심장 수술하고 쉬는 동안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거든요. 죽음을 곁에서 함께하는 건 숭고한 일이잖아요. 그렇게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자녀들을 도와주신다고 들었어요.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제가 겪은 이 지독한 가난을 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후견인 : 서울 중계동본당 김나경(비비안나) 사회사목분과장 “자매님은 60대 초반에 발병한 무릎 통증과 허리 병으로 70대 초반인 현재까지 10여 년 동안 힘겹게 투병 중입니다. 최근 병원치료비뿐 아니라 주거 문제 등 경제적 타격까지 겹쳐 막막한 처지에 있는 전재순씨에게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금계좌 (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전재순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15일부터 21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3)에게 문의 바랍니다.박민규2026.02.10

늙음과 죽음 앞에서 한 가족의 결말이 결정된다[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24. 아니·클로드 보듀셀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실 때」 구글 제미나이 제작 사람은 안 변할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니 변한다 나는 그것에서 어떤 희망을 본다 아니 보듀셀·클로드 보듀셀은 프랑스인 부부 작가다. 부부는 죽음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을 돕는 일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책으로 썼다. 책은 코헬렛 12장으로 시작한다.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코헬 12,1) 코헬렛 12장 제목은 ‘늙음과 죽음’이다. 모든 것이 허무라고 말하는 그 유명한 성경 구절이 바로 이 장에 들어있다. 불행의 날들이란 바로 노년이라는 사실을 서글프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보듀셀 부부는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는 것을 인식하면 “부모님과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부모님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고. 즉 부모 돌봄의 시기가 왔음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이 문장에서 정반대의 맥락을 읽었다. 노년을 맞은 당사자 역시 자식과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비단 자식에게 노후를 의지하고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노년기 부모와 장년기 자식의 결말에 관한 이야기.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유아기 때 관계가 좋았던 가족이 청년기 때도 좋고, 청년기 때 좋았던 가족이 장년기 때도 좋다. 희망적이기도 절망적이기도 한 진리다. 책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실 때」 작가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예전의 부모님과 맺었던 관계에 따라 나이 든 부모님에 대한 연민이 달라질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껏 맺어온 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거라고. 혹시 부모가 노년이 되었을 때 관계가 삐걱거리는 중이더라도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테니 잘 한번 해보자는 의미이리라. 부모님께서 나이 들어 가시면서 나는 종종 삶의 새로운 국면들을 만난다. 판단력·기억력·순발력·문제해결 능력·체력. 그분들의 모든 능력이 점점 쇠함을 서로가 느낀다. 그리고 쇠하는 것들은 본래의 성정이 바뀌도록 조금씩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안 변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니 변한다. 나는 그것에서 어떤 희망을 본다. 나와 부모 간에 풀리지 않던 어떤 것이 어느 날 ‘탁’ 풀려버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나는 일흔다섯의 시어머니를 만나 그분의 나이 아흔셋까지 함께했다. 너무나도 나이 차이가 많던 고부 사이는 세월이 가며 점차 달라졌다. 나를 그저 어린 손주 보듯 하던 어머니는 차츰 어른을 대하는 눈이 되더니 마지막에는 기대고 의지하는 눈이 되었다. 나도 그랬다. 시골에 계신 내 할머니를 상대하듯 그저 예쁨 받으려고 했던 나는, 그분의 병원 동행자가 되고 마지막에는 보호자가 되었다. 어느 여름날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뵈러 간 적이 있다. 간다고 연락드리면 새벽부터 아니 그 전날부터 기다리며 고속도로 운전을 걱정할 것을 뻔히 알기에, 그날은 연락없이 간 참이었다. 어머니 얼굴에는 반가움의 희색이 아니라 놀라움의 사색이 먼저 번졌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나)한테 무슨 일이 있어? 왜 이렇게 연락도 없이 왔어.” 나는 그때 어머니의 늙음을 보았다. 본인의 안위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어지는 시기가 왔구나. 어머니께서 전적으로 우리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자립심이 강한 어머니께 상상하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본인에게도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내가 해. 그냥 둬”를 하루에 백 번씩 반복하시던 어머니가 “엄마는 이제 못 해. 해주고 가”를 반복하는 어머니로 바뀌었다. 새로운 국면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그것은 차츰 서서히 진행된다. 책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실 때」에는 한편 이런 이야기들도 나온다. 노쇠한 부모님을 연민하고 아이를 돌보듯 돌봐야 하지만, 여전히 부모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즉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노년을 지켜드리되, 부모님께 받은 모든 것을 받은 만큼 되돌려 드리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서로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식으로서의 나, 형제·자매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지켜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신앙과 숙고다. 지침은 성경에서 얻을 수 있고 용기는 기도에서 얻을 수 있다. 크게 갈등하는 가족들의 서사에 꼭 등장하는 강렬한 문구들이 있다. “나 죽어도 오지 말아라”, “장례식 때나 만나자” 등.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죽음은 가족 서사의 핵심이다. 구성원의 죽음으로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때로 완결된다. 여느 희극처럼 가족도 서사를 전개하는 때가 있고 마무리하는 때가 있다. 그러니 죽음은 여러모로 무겁다. 어두워서가 아니라 중해서 무겁다. 가족의 결말은 구성원 모두의 결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늙음과 죽음 앞에서 구성원 모두가 그것을 소중하고 무겁게 다룰 일이다. cpbc2026.06.10

기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사제가 답하다 배런 주교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먼저 기도하셨다” 전례·신심·성경 통해 일상에서 하느님 만나는 법 집대성 마틴 신부 “느낌 없어도 마음 깊은 곳 무언가 일어나” 전통 기도·성모 기도·전례력 따른 기도 생활까지 쉽게 안내 신앙인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어려운 단어인 ‘기도’. 기도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빎’이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구하라 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바라는 기도만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때로는 각종 기도문들이 나와는 한참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도대체 기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도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기도 - 내 안에서 기도하시는 하느님 / 로버트 배런 주교 / 허찬욱 신부 옮김 / 생활성서 “기도는 초월적인 영역이 우리의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초월적인 영역에 가닿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뻗는 우리의 손길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손길과 만나게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17쪽) 「기도 - 내 안에서 기도하시는 하느님」은 교회의 가장 뛰어난 메신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미국 미네소타 위노나-로체스터교구장 로버트 배런 주교가 기도의 모든 과정을 집대성한 책이다. 배런 주교는 “기도는 결국 ‘청원’이며, ‘어떻게 기도하는지 모른다’라는 말이 곧 기도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특히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먼저 기도하고 계셨고,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간절히 찾으신다”며 기도를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자 신비적인 응답으로 재정의한다. 책은 총 7장으로 나눠 기도의 기초적인 정의부터 의미, 구체적인 실천 방법까지 안내한다. 토마스 머튼과 십자가의 성 요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등 영성가들의 기도 체험을 통해 ‘바라봄’과 ‘머묾’의 관점으로 기도를 풀어낸다. 전례 기도를 통해 가톨릭교회의 공적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법과 신심 기도 및 성경을 읽으며 일상의 순간마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방법도 제시한다. “기도란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습관이 자리 잡으면, 우리는 어떤 일도 하느님과 떨어져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만물 안에서, 일상의 모든 자리에서 하느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 안의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이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79쪽)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먼델라인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0부작 TV 다큐멘터리 ‘가톨리시즘’의 진행자로 활동했고, 저술·강연·SNS 등 여러 매체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기도, 할수록 좋네요 / 제임스 마틴 신부 / 가비노 김 옮김 / 바오로딸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숨김없이 마음을 드러내 보이길 바라십니다. 정말 가까운 친구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듯이, 하느님께도 그대로 이야기하면 됩니다.”(26쪽) 「기도, 할수록 좋네요」는 제임스 마틴(예수회) 신부가 집필한 「기도, 이렇게 하니 좋네요」의 후속작이다. 기도에 대한 기초 지식과 삶의 모든 순간에 필요한 지향으로 바치는 기도, 다양한 기도 방법에 대해 안내한다. 쉽고 단순하게 풀어낸 짤막한 글에 자신의 이야기도 버무려 친근감을 더했다. 전통 기도부터 성모님과 함께하는 기도, 전례력에 따른 기도 생활도 영성적으로 이끌어준다. 마틴 신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하고 청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기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기도에) 아무런 느낌이 없더라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기도하는 중에 문득 떠오르거나 의식하게 되는 생각(깨달음), 감정, 기억, 이미지, 열망, 몸의 느낌, 그리고 때로는 어떤 단어나 구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들을 통해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하시는 하느님의 간절한 바람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238쪽) 시카고 로욜라대학교와 웨스턴 예수회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마틴 신부는 신문·잡지·웹사이트 등에 글을 기고하고, 피정 지도와 강연 등을 통해 신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번 책은 월간지 「Give Us This Day」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칼럼에 기고한 글을 발췌해 엮은 것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6.05.19

자업자득(自業自得)! 흩어지지 않는 기억으로…[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10)오늘은 아침부터 내 몸이 나에게 호소가 아닌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3주 정도 전부터 위가 쓰려왔는데 오늘은 참다못해 요동을 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아닌 누구에게 탓할 일도 아닌 듯합니다. 아침에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이 오랜 변비를 해결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쁨과 해방감에 하루, 이틀, 긴 시간의 반복이 내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술이 술을 마시듯 모닝커피가 모닝커피를 마시는 패턴이 위장을 화나게 한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준 자업자득의 고통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고통이 호통칩니다. 불교에서 ‘업’(業)은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업이라하면 불교를 떠올리며 죽고 사는 삶의 반복인 윤회 혹은 환생과 연결 지어 생각합니다. 그러나 굳이 윤회와 연결 짓지 않더라도 업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삶과 행동의 인과적 패턴입니다. 자기의 행위(행업)는 과거 행위(행업)의 결과이며, 그 결과는 원인이 되어 새로운 결과로 돌아옵니다. 이런 인과적 패턴에 따른 업에서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법염경」(正法念經)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쉽게 말해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가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삶이라는 습관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이었다. 영웅의 왕관은 거의 그의 손에 들어왔으며 그는 자랑스럽게 법정을 떠났다. 이 악명 높은 사건이 결과적으로 안 씨의 승리로 끝나고 만 것은 아닐까?” 이 내용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재판을 지켜본 영국 기자가 쓴 기사 내용입니다. 이 기사에서 ‘삶이라는 습관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 눈에 잡힙니다. 습관은 우리의 행동이 반복되면서 몸에 밴 버릇을 말합니다. 지금의 행위가 다시 그 행위를 낳고 그 행위가 또 그 행위를 낳는 것이죠. 욕도 해본 사람이 잘하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뭔가 어색합니다. 욕이 욕을 낳듯, 강도질이 강도질을 낳고, 거짓이 거짓을 반복합니다. 자기 행위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며, 돌아온 행위는 그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더욱 자신을 옭아매게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과적 패턴의 자업자득이 사회 안에서 관습, 고정관념,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자리 내리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가 너무 당연히 여기는 삶의 습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익숙한 사회적 습관의 업보에서 벗어난 영웅이었습니다. 잘못된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방은 조건을 바꾸어 인과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일본이 강제로 맺은 조건의 굴레를 새로운 조건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보인 행동은 동양평화를 위한 행업, 그리고 우리 민족을 새로운 자주 독립 국가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행업, 일본의 한 부분이 되어 사는 삶이라는 습관을 포기한 순교행위였습니다. 일본의 신민(臣民)이 아니라 자주독립국을 선택해 업을 바꾼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의 현재 모습은 영국 기자의 말처럼 ‘안중근은 승리자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잘못된 인과적 업보에서 벗어나는 길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 칼을 쓰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칼이며, 죽이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입니다. 일본은 총과 칼로 일어서 총과 칼로 무너졌습니다. 고통은 누가 아닌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 인과적 결과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과적 업이 있다면 불의의 업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업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하느님을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행업은 반드시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얻고, 열리는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며 구원입니다. 그 약속의 결과인 구원은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유입니다. 우리의 행업은 그 약속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3월이 되면 3.1만세 운동을 기념합니다. 그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이들은 일본 신민(臣民)으로서의 인과적 고리의 악습에서 벗어나려 한 순교자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특정 국가에, 잘못된 역사관에, 물질과 권력에, 특정 이데올로기에 신민(臣民)적 업보가 남아있다면 우리 안에서 다시 독립 만세를 외쳐야 합니다. 위장도 호통을 치는데 우리 정신이 호통을 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깊은 한숨 바람에 흩어지고.’(영화 「영웅」 노래 가사의 일부) 그러나 기억만큼은 흩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독립 만세!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5.02.24

“부활의 기쁨, 안방까지 전달합니다” cpbc 부활 특집 프로그램 풍성[부활특집] cpbc프로그램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cpbc 가톨릭평화방송 TV와 라디오가 부활의 기쁨을 나누고, 그 의미를 더욱 체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TV 2026 신앙체험수기 다큐멘터리 ‘나에게 오신 빛’ 3부작 인생 한 페이지에서 만난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다큐멘터리로 재탄생했다. 가톨릭평화신문이 13년째 공모받아 연재하는 신앙체험수기는 하느님과 진솔한 만남을 담은 신자들의 작품으로 주님 사랑을 찬미할 기회를 선사하고 독자들에게는 신앙을 성숙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 당선작들이 지면을 넘어 안방극장에도 찾아간다. 방송 : 5~19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재방송 : 6~20일 월요일 오후 8시 / 8일~22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 9~23일 목요일 오전 10시 20분 / 11일~25일 토요일 오후 4시 김대우 신부의 부활 편지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 신자들에게 보내는 김대우(수원교구) 신부의 부활 영상 편지, 성주간을 앞두고 1박 2일 다녀온 수도원 피정에 대한 나눔 등 김 신부의 묵상을 바탕으로 삶 안에서 부활을 사는 데 필요한 노력을 성찰한다. 방송 : 5일 오전 10시 30분 / 오후 8시 허규 신부와 듣고 보는 신약 성경 “부활이 뭔가요?” 청년의 물음에 허규(서울대교구) 신부가 답했다. 드라마 ‘예수 그리스도 생애’ 가운데 부활 이야기를 꼽아 전하는 일대일 부활 밀착 과외, 어렵게만 느껴지는 성경을 청년과 대화하면서 풀어낸다. 방송 : 5일 오전 11시 / 오후 7시 30분 주님의 마지막 일주일 머리에 재를 얹고 단식하며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는 사순 시기, 네 복음서 속 수난기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여정을 김덕재 서울대교구 신부와 함께 묵상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수난과 죽음, 부활에 이르기까지 복음서별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는 시간.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전례인 사순과 부활의 의미를 한껏 집약했다. 방송 : 3~4일 오전 2시 (라디오 : 2~4일 오전 5시) 특집 다큐 ‘바티칸 사람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밀착 취재한 프랑스-이탈리아 공동 제작 다큐멘터리. 일반인은 접근이 불가한 바티칸 내부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히 담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종교인과 평신도 약 5000명의 일상을 조명한다. 방송 : 4일 오후 5시 애니메이션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꿈’ 박해받는 조선의 신자들을 위해 이 땅에 당도하고자 온갖 애를 쓰다 중국 땅에서 선종한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신앙, 조선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볼 수 있다. 방송 : 4일 오전 6시 30분, 재방송 : 5일 오전 2시 40분 애니메이션 ‘홀리 몰리’ 아이들을 위한 10분짜리 짧은 만화로 고전 성경 이야기를 재구성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기 쉽게 돕는다.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빈 무덤’을 주제로 다룬 만화가 생생하게 안방 극장을 찾는다. 방송 : 2~4일 오전 8시 50분, 재방송 : 5일 오전 3시부터 3편 연속방송 영화 ‘마태오 복음’ 이탈리아 거장 피에르 파오로 파솔리니 감독의 영화(1964). 마태오 복음을 바탕으로 예수님 생애를 전기 다큐 형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 방송 : 2일 오후 10시 40분 영화 ‘벤허’ 로마의 압제와 친구의 배신으로 왕자에서 죄수로, 노예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바뀌며 기구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한 유다 청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차시켜 보여준다. 1959년 개봉 당시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휩쓰는 대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방송 : 4일 오후 10시 40분 미사 중계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 부활 제2주일 자비 주일을 맞아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공개 미사를 천주교 사도직회(팔로티회)와 공동으로 서울 동성고등학교 대강당에서 봉헌한다. cbp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 성기헌 신부와 천주교 사도직회 김태광 신부가 공동집전한다. 2023년부터 이어진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 중계는 죄에서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신자들이 자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마련되고 있다. 방송 : 12일 오후 3시 라디오 미니 드라마 ‘2026 신앙체험수기’ 제13회 신앙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이 성우들의 열연으로 엿볼 수 있는 듣는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7분 분량의 미니 드라마로 각색된 일상 속 신앙의 신비가 청취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방송 : 3월 30일~4월 3일 오후 4시 50분 재방송 : 4일 오후 12시부터 5편 연속방송 기도의 오솔길 전영금 수녀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올리브 산에 이르기까지 40일간의 약 330㎞ 여정. 그분의 발길이 닿은 다양한 장소에서 선포하신 부활 메시지를 음악과 함께 되새겨본다. 전쟁과 상처로 지친 오늘날 예수님이 전하신 ‘평화’란 무엇일까? 방송 : 6일 오후 4시, 재방송 : 6일 오후 11시 이 주의 책 ‘사제의 책’ 가톨릭 사제가 쓰고 번역하며 추천하는 영성 도서를 통해 부활 대축일의 기쁨을 온전히 맞이한다. 서울대교구 햇살사목센터 소장 조재연 신부가 전하는 「우리 아이도 신앙을 가지면 좋겠다」는 성가정을 꿈꾸는 모든 신자 가정에 희망의 등불을 선사할 예정이다. 방송 : 5일 오전 8시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회개와 절제, 성찰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정화하고, 부활의 의미를 더욱 깊이 체험하는 영성의 시간을 갖는다. 가톨릭찬양크루 ‘열입곱이다’부터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 이희천 신부, 반주하는 시인 박은지(소화데레사)씨 등 활기를 선사하는 초대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방송 : 3월 31일~4월 3일 오후 12시 15분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박예슬2026.04.01
![[생활속의 복음] 보라, 십자 나무!](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3/11/1QN1773195886755.jpg)
[생활속의 복음] 보라, 십자 나무!사순 제4주일 요한 9,1-41 가브리엘 뷔거 작 ‘슬픔의 성모’, 1868년 감각기관의 분류를 기준으로 오감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으로 구성된다. 선천적인 오감을 잘 활용함으로써 인간은 삶의 질을 향상하고, 타인과 함께 느끼는 공감력을 형성한다. 한 감각기관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면, 다른 기관이 이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도록 신체는 대응체계를 수립한다. 보는 눈으로 듣거나 맛보는, 듣는 귀로 맡거나 만지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 오감은 오용되거나 남용될 수 있다.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기에 오류를 범하고, 한시적 감각에 치우친 무분별한 생활 태도로 인해 죄악을 행한다.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오감과 결합한다. “이스라엘아, 들어라(쉐마)!”(신명 6,4)로 시작하는 구약의 대표적 신앙고백과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로마 10,17 참조)고 설파한 바오로 사도의 훈시는 청각과 관련된다. 신앙인의 합당한 품위를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는 후각과,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안내하는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1베드 2,3)는 미각과 연동된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루카 8,44 참조)으로 성사된 하혈하는 여자의 치유와 “믿음과 사랑의 갑옷”(1테살 5,8)을 피부에 밀착하여 입으라는 권고는 촉각과 연관된다. 신앙의 궁극적 완성 상태를 시사하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1코린 13,12)는 시각을 통해 묘사된다. 성경의 치유 기적에는 오감과 직결된 사례가 비교적 많다. 복음서 중 가장 후대에 집필된 요한 복음의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치유’에는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하나는 ‘치유의 재료’다. 재료 없이 말씀(의지)만으로 성취된 ‘하느님의 창조 업적’(창세 1장 참조)처럼, 대개의 치유 기적은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실현된다. 반면 눈먼 사람의 치유에는 재료 사용(흙과 예수님의 침: 요한 9,6 참조)이 인상적이다. 이는 인간 창조의 재료인 ‘흙과 하느님의 숨’(창세 2,7 참조)을 연상케 한다. 다른 하나는 ‘치유의 절차’다. 치유 사건이 예기치 않게 한순간 벌어지지 않고, 흙으로 기존의 눈을 완벽히 차단한 후에 실로암 못의 물로 씻는 일련의 순서로 진행된다. 옛 눈에서 새로운 눈으로의 변화를 주도한 정화하는 물은 옛 인간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변모시키는 세례성사의 물을 암시한다. ‘복된 들음’(복음)으로 시작된 신앙은 맡고 맛보며 만지는 ‘복된 여정’을 거친 후에 ‘복된 봄’(지복직관)으로 완성된다. ‘멀어 있는’ 눈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있는’(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인간 실존의 한계를 표상한다.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하느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측정 가능한 시력과 다른 ‘새로운 눈’이 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듯 ‘하느님을 보는 때’를 고대하는 이들에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보라”(1,36; 12,15)고 조언한다. 사순 시기는 부활한 예수님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기 위한 재료와 절차를 고민하는 기간이다. 이 재료와 절차를 안내하는 전례 문구는 다음과 같다. “보라, 십자 나무.”(성금요일의 십자가 경배예식 중) cpbc2026.03.11
![[특별기고] 호르무즈에 발묶인 선원들의 고통을 기억하자](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4/14/8wh1776130861445.jpg)
[특별기고] 호르무즈에 발묶인 선원들의 고통을 기억하자중동전쟁 발발 50여 일 ‘바다 위에 멈춰진 시간’(손지호 신부)미국은 2월 28일 ‘장대한 분노’ 작전으로 이란을 대규모 공습한 이후 때마다 자신들의 전쟁 정당성을 위해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교회는 이에 “전쟁에 하느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중대한 죄에 해당한다”고 비판했지만, 미 정부는 멈추지 않고 있다. 아울러 전쟁 후 현재 세계 원유 수송의 약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유조선들의 발이 묶인 상황이다. 12일 기준 해협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선박은 26척, 선원은 173명에 이른다. 본지는 전쟁을 둘러싼 미 정부의 잘못된 발언에 대한 주교의 기고와 평소 선원들을 위해 사목해온 사제의 글을 통해 전쟁을 향한 어긋난 진실과 이면의 고통을 돌아봤다. 정리=박민규·박예슬 기자 부산교구 해양사목 관계자들과 선원들이 선박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손지호 신부 제공 매일 들려오는 전쟁의 소식 한복판에서,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다 위의 선원들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많은 선박이 발이 묶였고, 그 안의 선원들은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사실 선원들의 삶은 평소에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몇 달씩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 위에서 고립된 시간을 살아갑니다. 바다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그래서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은 평소의 어려움을 훨씬 넘어섭니다. 전쟁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위협 속에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멀리서 갈매기 한 마리가 스쳐 지나가도 혹시 공격용 드론은 아닐지 불안을 느끼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점점 줄어드는 식량을 바라보며 막막함과 두려움을 함께 견뎌야 합니다.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직접적으로 전쟁 한가운데에 놓여있습니다. 이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쉽게 다른 이들의 고통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 원료 수급이 불안하다는 소식에 쓰레기봉투를 미리 사두고, 라면 생산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뉴스에 불편을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그것도 우리 삶에서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응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손가락 끝의 작은 불편에는 민감하면서도 누군가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고통에는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전쟁을 통해 평소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편안한 일상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과 자원들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언제나 이름 없는 선원들의 수고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했을 뿐 우리의 삶은 이미 그들의 헌신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바다 위에서 두려움 속에 머물러 있는 이들의 고통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지금까지 묵묵히 감당해온 삶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두려움의 공간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함께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두려워하던 이들에게 건네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어집니다.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기억하라는 초대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온이 누군가의 멈춰진 시간 위에 서 있지 않은지 돌아보며, 바다 위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마음에 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손지호 신부(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박예슬2026.04.14
[사설] 마산교구 60년, 희망의 공동체로 다시 서다마산교구가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아 새 교구청사를 봉헌했다. 새 교구청은 마산교구가 AI 대전환 시대의 사회 복음화에 부응하고 참 복음적 신앙 공동체로 쇄신하는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60년 전 설정 당시 마산교구는 21개 본당, 신자 수 2만 8165명에 복음화율 1.3%에 불과했지만, 2025년 말 현재 본당 75개소, 신자 수 18만여 명, 복음화율 7.7%로 크게 성장했다. 마산교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 계명에 따라 지난 60년간 지역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참 교회 모습을 구현하고, 오늘의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 징표를 확실히 읽고 사회 약자를 위해 투신하는 일에 집중해왔다. 마산교구민들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봉사와 증거의 삶을 사는 데 헌신해왔다. 성경과 교리교육에 집중하고, 젊은 그리스도인과 성소자 양성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또 사회 정의와 생명 운동,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에 적극 참여해 왔다.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은 마산교구는 여전히 변함없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희망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제6대 마산교구장 이성효 주교는 ‘감사와 겸손, 기도의 보화’를 마산교구민과 나누며 사회 모든 계층, 특별히 AI 시대에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산교구는 한국 교회 안에서 젊은 교구에 속하지만 가장 먼저 AI 시대에 대비해 기존 틀을 과감히 조정하고 새로운 사목 비전을 마련하고 있는 교구이다. 마산교구의 새로운 비전이 한국 교회 전반에 새 복음화의 바람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길 기대한다. 다시 한 번 마산교구민 모두에게 교구 설정 60주년과 새 교구청사 봉헌을 축하한다. cpbc2026.04.22

역사·문화·신학으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신학적 해석·영적 성찰·역사 비평까지 한 권에 담아 예수님 가이드 / 마이크 보몽 / 황대기 신부 / 생활성서 “아주 오래전에 사셨던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우리가 정말 알 수 있을까? (중략) 최근 발견된 쿰란 문서(사해 사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예수님에 관한 성경 기록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1세기 유다교의 삶과 사상, 신앙과 정확하게 일치함이 드러났다. 결국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매우 신뢰할 만하며, 더 나아가 복음서가 예수님에 대한 오늘날의 연구에 확고한 토대가 될 수 있음을 그 어느 시대보다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8쪽) 지난 2000년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일 것이다. 종교를 떠나 다양한 시대와 문화 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예수님이 직접 남긴 기록이나 당대 그 모습을 담은 그림조차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실제로 예수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그리스도교는 무너질 것이다. 「예수님 가이드」는 외형이나 구성 면에서 예수님을 담은 여느 책과 다르다. 교과서나 잡지에 가깝다고 할까. 하지만 책 제목에 충실하게 예수님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을 신학적인 해석은 물론 영적인 성찰과 역사 비평까지 한 권에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다양한 근거 자료와 사진·명화·지도·도표 등을 더해 이해를 돕는다. 예수님 시대의 정치와 주변 환경, 문화와 생활상,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지역과 용어에 대한 풀이도 곁들였다. 한 인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한눈에 다각도로 파악할 수 있는, 원제대로 ‘The One-Stop Guide to Jesus’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돼 예수님의 탄생과 삶, 그분의 사명과 가르침, 승천 이후 세상으로 나아간 교회와 오늘날까지 이어진 유산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룬다. 기원후 1세기 전후의 유다 사회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함께 설명함으로써 예수님을 실제 역사 속 인물로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신약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길잡이인 셈이다. 뉴욕주 사우샘프턴에 위치한 예수 성심 성모 마리아 성당 내부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 성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마태오는 요셉(예수님의 법적 아버지)의 계보를 따르고 루카는 마리아(예수님의 생물학적 어머니)의 계보를 따르며, 이는 요셉과 마리아 둘 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임금 다윗의 후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마태오 복음서의 족보는 유다교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느님의 약속을 이행할 권리를 가지셨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루카 복음서는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예수님이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오셨다는 점을 강조한다.”(19쪽) “최고 의회는 예루살렘의 최고 종교·정치·사법 기구로, 수석 사제와 율법 학자, 원로들 중에서 선출된 일흔한 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모세와 일흔 명의 원로를 반영한 것이다. 대사제가 의장을 맡았다. 최고 의회의 규정에 따르면 재판은 낮 시간에만 열어야 하고, 무죄를 입증할 증거부터 심리를 시작하며, 안식일이나 축제일 전날에는 재판을 열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재판에서는 이 모든 규정이 무시되었다.”(100쪽) 런던신학교를 졸업한 저자는 목사 및 강연가로 활동했다. 교황청립 성서연구원 성서학 박사과정에 있는 황대기(예수회) 신부가 우리글로 옮겼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