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교리상식- 120] 치유의 성사(3) : 병자성사병자성사는 말 그대로 질병으로 말미암아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에 있는 환자가 받는 성사입니다. 이 성사를 통해서 병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얻고 또 주님의 뜻이라면 치유 은혜까지 받기도 하기 때문에 병자성사는 고해성사와 함께 치유성사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종부성사라고도 했지요. ◇병자성사의 근거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죄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병자의 질병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셨을 때도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그 말씀대로 병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지요(마르6,7-13). 또 초대 교회에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5,14-15). 이를 근거로 교회는 앓는 사람을 위한 이 예식을 예수님에게 기원을 두는 일곱 성사 가운데 하나, 곧 병자성사로 인정했습니다. ◇병자성사의 수혜자와 집전자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세례를 받은 신자여야 합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병자성사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병자성사는 말 그대로 병자가 받는 성사입니다. 그러나 감기 몸살에 걸린 사람이 받는 성사가 아니라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곧 생명이 위중한 경우에 받는 성사입니다. 그렇다고 죽음에 임박했을 때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자성사는 질병으로 또는 노령으로 급격히 쇠약해졌을 때에 또 중병을 앓고 있거나 큰 수술을 받기 직전에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병자성사는 여러 번 받을 수 있습니다. 곧 병자성사를 받은 후에 병이 회복했다가 다시 중병에 걸렸을 경우나 병이 더욱 위중해졌을 경우에도 받을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는 사제들만, 곧 주교와 신부만이 집전할 수 있지요. 부제는 병자성사를 집전할 수 없습니다. ◇병자성사의 거행 방법 병자성사는 성당에서 가정에서 또는 병원에서 한 사람을 위해서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위해서도 거행할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는 참회 예식으로 시작하며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말씀 전례로 이어집니다. 말씀 전례가 끝나면 사제는 침묵 중에 병자에게 안수하며 기도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성된 성유를 병자의 이마와 두 손에 바르면서(도유) 기도를 바칩니다. 이 안수와 도유가 병자성사의 핵심이지요. 그러고 나서 환자에게 성체를 영하게 합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집전하기 전에 먼저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병자성사 후에는 성체를 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성체는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에로 건너가기 위한 마지막 순례길에 필요한 '노자'(路資) 성체로서, 전에는 봉성체라고도 불렀습니다만 천주교 용어위원회에서는 '병자 영성체'로 통일하도록 했지요. 병자성사는 미사 중에 거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사 중에 거행하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고 교회는 권고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정이나 병원 입원실에서 거행하는 병자성사라 하더라도 공적 전례로서 공동체 예식이기에 가족이나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서 거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병자성사의 효과 병자성사는 무엇보다도 중병에 걸린 또는 노쇠한 환자가 그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위로와 평화와 용기를 주는 성사입니다. 성령의 힘을 통해 주시는 이런 은총은 우선적으로 환자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느님의 뜻이라면 환자의 육체적 질병도 치유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치유에 집착하기보다는 병고를 통해 주시는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며 그 뜻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하며 의탁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합니다. 나아가 병자성사를 통해 환자는 고해성사로 미처 고하지 못한 죄들에 대해서도 용서받습니다. 병자성사의 은총은 또한 환자가 자신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시키도록 도와줍니다. 여기에서 환자의 고통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곧 환자는 자신의 고통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고, 이를 통해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선익에 기여하게 되지요.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8.12.09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2) 테살로니카 1ㆍ2서](//cpbc.co.kr/CMS/newspaper/2008/09/rc/266973_1.0_titleImage_1.jpg)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2) 테살로니카 1ㆍ2서박해 속에도 복음 뿌리 내리자 감사 편지이번 호부터는 바오로 서간들을 차근 차근 살펴봅니다. 「성경」의 목차에는 바오로 서간 순서가 로마서부터 시작되지만, 여기에서는 서간의 집필 연대순으로 살펴보기로 합니다. 그 첫번째로 테살로니카 1, 2서입니다. ◇테살로니카는테살로니카는 그리스 중부 테르마이코스 만에 위치한 그리스 최대의 항구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 대황 통치 시절인 기원 전 315년쯤에 카산드로스 장군이 세운 도시로, 테살로니카라는 도시 이름은 그의 부인 이름을 딴 것입니다. 테살로니카가 위치한 마케도니아 지방이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면서 테살로니카는 그 수도가 됩니다. 해상으로뿐 아니라 육로로도 로마에서 아시아로 연결되는 길목에 있어서 항구도시로서 또 무역 중심지로서 번창합니다. 자연히 유다인들도 적지 않게 있었겠지요. 그들은 자체 회당과 옥외 집회장소도 갖추고 유다교 율법을 충실히 지키며 살았습니다. 바오로가 테살로니카에 갔을 때가 이러했을 것입니다. ◇바오로와 테살로니카의 관계바오로는 2차 전도여행(50~52년쯤) 때에 테살로니카에 가지요. 사도행전에 따르면(16장-18장), 바오로는 실라스와 티모테오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 해안 도시인 트로아스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이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저희를 도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환시를 봅니다. 그래서 바오로 일행은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먼저 필리피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에게서 박해를 받자 그곳을 떠나 두 번째로 머무른 도시가 테살로니카입니다.바오로는 테살로니카의 유다인 회당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서"(사도 17,2) 유다인들과 토론하며 복음을 전했고, 유다인 몇 사람과 많은 그리스인들이 그리고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믿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테살로니카 교회가 출범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유다인들의 시기와 박해로 바오로 일행은 베로이아로 떠났는데,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이 그곳까지 쫓아와 군중을 선동하고 박해를 계속하는 바람에 바오로는 일행(실라스와 티모테오)과 떨어져서 아테네로 갑니다. 아테네에서 선교한 후 다시 코린토로 간 바오로는 그곳에서 1년 6개월 동안 지냅니다. ◇서간의 배경바오로는 코린토에서 천막 만드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복음을 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세운 필리피와 두번째로 교회를 세운 테살로니카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전한 복음이 그곳 신자들에게 채 뿌리도 내리기 전에 박해로 인해 그 도시들을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 자식을 홀로 두고 먼 길을 떠난 아버지가 자식을 염려하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티모테오가 테살로니카 교회의 소식을 갖고 왔습니다. 박해를 받으면서도 튼튼히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물론 테살로니카 교회에 몇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안도해도 좋을 정도로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도의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편지를 써보냅니다. 물론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충고도 함께 담았지요. 이것이 신약성경 가운데서 가장 먼저 집필된 테살로니카1서로 집필 연도는 50~51년쯤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테살로니카 교회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곳 신자들이 종말과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 작심하고 써 보낸 편지가 테살로니카2서입니다. 【※지난 호(985호, 9월7일자)에서 살펴봤듯이 테살로니카2서는 바오로 사도의 친서가 아니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테살로니카2서는 바오로 시대가 아니라 그 후대의 테살로니카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제자들이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빌어 썼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친서라는 주장도 만만찮은 데다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 글에서는 함께 다룹니다. 그렇게 해도 서간을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요 내용테살로니1카1서는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믿음을 지키고 있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대한 염려와 안도, 칭찬과 격려, 기쁨과 감사가 주 내용을 이룹니다. 전체 5장 가운데 전반부인 1-3장이 특히 그러합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보이는 애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며 기쁨입니다"(2,20)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굳건히 서 있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살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덕분에 우리의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이 기쁨을 두고 하느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3,8-9) 같은 대목에서 이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4-5장)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와 관련, 당부하고 권고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하나는 성(性) 도덕에 관한 것입니다. 성적 문란은 당시 이교 사회에서 만연해 있었습니다.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이교인들처럼 불륜에 빠지지 말고 또 색욕으로 아내를 대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다른 하나는 종말에 관한 문제입니다. 바오로를 비롯해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이 임박했다고 여겼고 그리스도께서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테살로니카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신자들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신자들 사이에서는 종말과 그리스도 재림에 관한 혼란이 빚어졌습니다.'먼저 죽은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러다가 우리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그래서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던 것입니다.이에 대해 바오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이들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는 다시 살아나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 것이라고 안심시킵니다. 아울러 주님께서 오실 때를 대비해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라고 당부합니다. 테살로니카2서는 1서에 비해 훨씬 짧은 3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도 심판과 종말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1서와는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서의 내용은 테살로니카 교회에서 주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은 신자들이 생기면서 생겨난(1테살 4,13) 문제에 대한 바오로의 답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2서는 이미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는(2테살 2,2) 사람들로 인한 문제에 대한 바오로의 처방을 담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말라고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나아가 그릇되이 종말을 주장하는 이들을 멀리하라고 당부합니다. 또 그런 이들에게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하고 권고하며 지시합니다(2 테살 3,13). 단순히 권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시"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바오로의 어조가 상당히 단호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면서 제 할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이들에게 내리는 따끔한 일침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 '바오로의 서간과 신학 사상' 기사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과 신학」(바오로딸) 「서간에 담긴 보화」(생활성서) 「바오로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 「바울로와 그의 서간들」(생활성서) 「바오로 스케치」(빅벨) 「바울로」(분도출판사) 「신약성서입문」 (분도출판사).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분도출판사) 「신약성서 새번역」(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서못자리 그룹공부 교재-나눔터」(기쁜소식)cpbc2008.09.30

성서주간, 성경과 친구할까?바오로딸 ,성경 관련 신간 잇따라 내놔「그림이 있는 성경 3」에 나오는 그림.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사람들이 성지를 흔들며 반기고 있다. 출판사도직을 펴고 있는 성 바오로 딸 수도회가 성서주간을 앞두고 의미있는 신간을 잇따라 냈다. 「예수 시대의 생활 풍습」과 신약 성경 이야기인 「그림이 있는 성경 3」이다. 「예수 시대의 생활 풍습」(미리암 파인버그 바머시 지음/임숙희 옮김/9000원)은 말 그대로 예수님 시대 생활 풍습을 그림과 사진, 지도를 곁들여 설명해주는 성경 공부 참고서. 성경을 읽으면서도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왜 저렇게 행동하셨을까' 하고 궁금증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신자들에게는 「예수 시대…」가 유익한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루살렘을 비롯한 당시 팔레스티나 지형은 물론이고 유다인들 축제, 최고의회, 고급 주택과 서민 가옥, 대장장이, 목수, 혼인 잔치, 농경 생활 등 다양한 생활 풍습을 원색 그림과 사진 등을 적절히 섞어가며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준다. '아아! 그래서 그랬구나!'하며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한다. 이스라엘을 가보지 않은 이들은 이 책을 길잡이로 삼아 책상 앞에서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맛볼 수 있고, 성지순례를 다녀온 이들은 이 책을 보면서 성지순례 당시 감격을 새롭게 추억해 볼 수도 있어 좋다. 「그림이 있는 성경 3」(표동자 엮음/김옥순 그림/성경풀이 정태현/1만5000원)은 지난 봄 '구약 이야기'로 내놓은 「그림이 있는 성경 1」과 「그림이 있는 성경 2」에 이은 신약 이야기로 「그림이 있는 성경」 시리즈 완결편이다. 1, 2와 마찬가지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쓴 데다 내용 이해를 돕는 그림과 사진을 곁들이고 각 꼭지마다 성서학자 정태현 신부의 성경풀이도 담았다. 초등학생 뿐 아니라 큰 글씨로 된 성경을 찾는 어르신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바오로 딸 수도회는 완간 기념으로 한 질 3권을 다 구입하는 이들에게 기념 선물로 가방을 증정한다. 또 그림을 그린 김옥순 수녀의 원화 전시회와 사인회를 서울 명동서원(11월27~12월4일)과 부산서원(12월11~18일)에서 갖는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6.11.23

인천ㆍ마산ㆍ춘천교구 바오로의 해 전대사 수여지침 발표 인천ㆍ마산ㆍ춘천교구는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의 해 전대사 수여지침을 발표했다. 인천교구(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공문을 통해 교구 모든 본당에서 바오로의 해를 시작하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토요 특전미사 포함) 및 바오로의 해를 마치는 2009년 같은 날 대축일 미사(토요 특전미사 포함)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교구는 또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2008년 9월 20일) 및 교구 설립일(2009년 6월 6일)에 성 바오로를 주보로 모신 성당(답동주교좌 성당)을 순례하고 바오로 성년 기도문을 바치면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고 공지했다. 마산교구(교구장 안명옥 주교)는 전대사의 일반 조건(고해성사, 영성체, 교황 뜻에 따른 기도)을 올바로 이행하고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을 순례하거나 △성 바오로 사도를 주보로 모시는 교구 성당(남성동ㆍ합천)과 지구장 성당(주교좌 양덕동과 옥봉동ㆍ가음동ㆍ태평동)을 순례하거나 △교구 순교자 묘소(함안 대산의 구한선 타대오, 진영 박대식 빅토리노와 신석복 마르코, 거제 옥포의 윤봉문 요셉, 진주 사봉의 정찬문 안토니오)를 참배하거나 △교구가 실시하는 각종 바오로의 해 관련 행사에 경건한 마음으로 참여하면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마산교구가 실시하는 바오로의 해 행사는 △바오로 사도 영성 특강(마ㆍ창지구 : 6/30 오전 10시 사파공동성당, 진주지구 : 7/1 오전 10시 신안동성당, 통영지구 : 7/2 오전 10시 장평성당) △연극제 및 문화 행사(마산 MBC홀 10월 예정) △바오로 서간 성경 퀴즈 및 암송대회(마산체육관 2009년 6월 예정), 사도행전과 바오로 서간 완필 등이다. 춘천교구(교구장 장익 주교)도 바오로의 해를 시작하고 마치는 날 교구 내 모든 본당에서 전대사 은총을 얻을 수 있다고 공지했다. 그외 다른 날에는 죽림동성당(춘천 지역), 퇴계성당(남춘천 지역), 홍천ㆍ양구(성바오로)성당(중부 지역), 포천ㆍ철원성당(서부 지역), 임당동성당(영동 지역), 교동성당(영북 지역)에서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김원철ㆍ남정률ㆍ서영호 기자김원철2008.06.25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35-칠극(七克) 이야기(10)사랑이란 소명의 길, 끝까지 성실하게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이제 긴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인 것 같다. 처음에는 「칠극」이라는 책에서 일곱 가지 주제만 가져오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좋은 것들이 많아, 결국은 유학적 내용들과 섞어가면서 스케치하듯 그 책을 소개하는 형국이 돼버렸다.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이런 기회에 많은 이들이 「칠극」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이 책의 마지막 주제는 '게으름'(懈怠)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부지런함'(勤德)이다. 이 주제는 가장 평이한 주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주제일 수 있다. 왜냐면 '성실'과 '근면'을 빼놓고 인간됨이나 수행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성경을 묵상하면서 가끔 두려움에 빠지는 대목은 '탈렌트의 비유'에서이다. 내가 재주가 많아서가 아니다. 하느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사용하는 문제에서, 특히 시간 사용에 있어서는 정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분은 일의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을 보시는 분이 아닌가! 그리고 그 과정은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언젠가 공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의 삶은 곧게 마련인데, 곧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요행히 화나 면하고 있는 것이다."(子曰 人之生也 直 罔之生也 幸而免. 「論語」, 雍也篇) 삶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모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질책으로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빤또하가 말하는 게으름의 문제는 삶의 외적 태도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참된 목표와 희망을 지니고 그것에 투신하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한 번은 루카복음으로 피정을 하면서 피정 지도자로부터 '예수의 하루 일과표'를 작성해보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단편적 장면들이었지만, 성전에서의 가르침, 세리와 죄인들과의 만남, 끝없는 병자치유 그리고 새벽까지의 기도와 다른 지방으로 떠나는 장면까지…. 그 하루는 정말 자신의 소명에 충실히 투신하는 모습이었다. 공자 자신도 자신의 삶을 그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언젠가 섭공(葉公)이 제자 자로에게 공자의 사람됨에 대해 물었을 때, 자로가 대답을 못했다고 하자 이렇게 말하며 서운해 했다. "너는 왜 그 사람됨이 학문에 발분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근심조차 잊어 버려서, 늙음이 장차 닥쳐오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亡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論語」, '述而') 대단한 경지이다. 이러한 주제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새로이 다지며 떠올리는 구절이 있다. 증자(曾子)의 말이다. "선비는 포용력이 잇고 강인해야 할 것이니,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후에야 그칠 것이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論語」, '泰伯') 우리 그리스도교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랑하는 것으로 소명을 삼았으니, 그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 또한 죽은 다음에야 완성될 것이니, 얼마나 먼 길이 되겠는가? 강인한 의지와 큰 열정을 지녀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권고해 주고 계신다.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히브 6,11-12).조은일2008.10.21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18-둘째 단계: 묵상과 숙독(熟讀)묵상, 잘게 씹어 그 맛을 느끼는 것 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내가 성경이나 경전의 독서법을 이렇게 지루하도록 소개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동안 사제로 살아오면서 내게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가장 소중한 것은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경건하게 성사를 집행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 말씀에 깊이 머물며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 들이는 것이다. 아직도 잘 안되지만 끝까지 이런 능력과 은총을 주시도록 청하고 싶다. 렉시오 디비나의 둘째 단계는 묵상으로, 이것은 하느님 말씀 안에 숨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 적극적으로 인간의 이성과 정신을 사용하는 능동적 단계를 말한다. 귀고는 이 단계를 입에 넣은 음식을 씹어 분해하는 것에 비유했다. 주자의 독서법에서는 이것을 '숙독'(熟讀)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많은 분량에 걸쳐 자세히 소개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만 살펴보자. 먼저 경전을 읽는 중요한 세 가지 수칙을 제시한다. "무릇 글을 볼 때는 조금씩 보면서 숙독하는 것이 첫째이고, 천착(穿鑿)하여 주장을 세우려고 하지 않고 단지 반복해서 체험하려는 것이 둘째이며, 몰두하여 이해하되 효험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셋째이다. 이 세 가지는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한다"(大凡看文字, 少看熟讀, 一也. 不要鑽硏立說, 但要反覆體驗, 二也. 埋頭理會, 不要求效, 三也. 三者, 學者當守此. 「朱子語類」, 讀書法).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조금씩 깊이 읽는 것, 자기 생각에 빠지지 말고 반복해서 느끼는 것 그리고 깊이 생각하여 이치를 깨우치되 이 글을 읽어 깨달은 것을 어디에 쓸까 혹은 어떤 이득을 챙길까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글 자체에 잠기는 것이다. 또 주자는 귀고와 같은 비유를 들어 숙독(熟讀)을 설명한다. "무릇 독서는 모름지기 숙독해야 한다. 숙독하면 글의 이해도 저절로 정밀해지고 깊어진다. 정밀해지고 깊어진 뒤에 이치를 저절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치 과일을 먹는 것과 같다. 처음에 과일을 막 깨물면 맛을 알지 못한 채 삼키게 된다. 그러나 모름지기 잘게 씹어 부서져야 맛이 저절로 우러나고, 이것이 달거나 쓰거나 감미롭거나 맵다는 것을 알게 되니, 비로소 맛을 안다고 할 수 있다"(원문생략. 「朱子語類」,위의 책) 그러나 숙독(熟讀)의 의미를 실감나게 표현한 것은 다음과 같은 주자의 말이다. "무릇 책을 볼 때는 우선 깊이 읽어서 책의 말이 모두 자신의 입에서 나온 듯하고, 다음으로 정밀하게 사유해서 책의 뜻이 모두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듯해야 깨닫는 것이 있게 된다"(大抵觀書先須熟讀, 使其言皆若出於吾之口, 繼以精思, 使其意皆若出於吾之心, 然後可以有得爾.「朱子語類」,同上). 결국 숙독(熟讀)이란 경전의 말씀을 잘게 씹어서 마치 그것이 내 입에서 나온 말처럼 느껴질 만큼 익을 때까지 읽는 것이요, 정밀하게 생각한다(精思)는 것은 그 말씀의 뜻이 마치 나의 내면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지도록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그 안에 담긴 뜻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읽었을까? 어쩌면 너무 쉽고 가볍게 읽은 것은 아닐까? 그 말씀들이 지닌 맛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그저 겉으로 드러난 문자의 의미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cpbc2008.05.06
![[크루즈 성지순례] '사도 바오로, 그 위대한 여정을 따라' (2)- 그리스](//cpbc.co.kr/CMS/newspaper/2008/12/rc/274244_1.3_titleImage_1.jpg)
[크루즈 성지순례] '사도 바오로, 그 위대한 여정을 따라' (2)- 그리스고난과 축복 가득한 전도길 에게 해. 코발트 빛 바다가 너무 잔잔하고 맑아 그 푸르름에 가슴이 먹먹하고 눈이 부시다. 크레타, 펠레폰네소스, 아테네,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등 수많은 문명들을 품에 안았던 고요의 바다. 307명의 순례자들은 사도 바오로의 선교 열정을 닮겠다는 '블루 로망'을 꿈꾸며 에게 해 크루즈를 시작했다. 사도 바오로에게서 에게 해 연안은 신화의 땅 그리스를 유일신 하느님의 나라로 탈바꿈하게 만든 '오라마'(ORAMA-비전)의 땅이었다. '다도해'라는 어원을 가진 에게 해는 수많은 섬들의 수만큼이나 사도 바오로에게는 축복의 땅이었다. 교회사와 인류 문화사에서 세계적 사건으로 손꼽히는 사도 바오로의 그리스 진출은 자신에게도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오로 자신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도 바오로는 제1차 전도여행 때는 예루살렘 교회에 영향을 받았지만, 제2차 전도여행, 특히 소아시아를 건너 유럽의 관문인 필리피에 진출하면서 '이방인의 사도'로 독자적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순례단은 아테네 피레우스 항에 정박 중인 '크리스탈호'에 오르기 전에 아테네와 코린토를 육로로 순례했다. 시차의 피로가 채 가시지도 않은 11월 6일 이른 아침 순례단은 아테네 시내에 있는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올랐다. 아레오파고스는 사도 바오로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문화와 정신생활에 여전히 중요한 장소였다. 수많은 세계인들이 매일 이곳을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가 이곳에서 인간 지혜의 오만과 맞닥뜨렸듯이 순례단에게도 자신들 모습을 바라보게 했다. 코린토는 아테네에서 90km 남짓 떨어져 있다. 사도 바오로 시대에는 로마 제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항구도시였지만 지금은 퇴적층에서 발굴해 놓은 유적지만 남아있다. 사도 바오로는 약 18개월간 이곳에 머물면서 코린토 교회를 세웠다. 이 코린토 교회는 사도 바오로가 세운 교회 가운데 가장 큰 교회로 발전했다. 순례단과 함께 코린토 유적지를 걷던 정진석 추기경은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자 순례자들에게 '바오로의 설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바오로 설교는 언제나 근본적으로 십자가 설교였어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났지요. 그 기적이 세례를 통해 드러났고 교회로 발전한 것입니다." 육로 순례를 마친 순례단은 피레우스항에 정박한 크리스탈호에 승선했다. 총 120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이 배는 승무원 수만 400명에 달한다. 승선 수속과 비상탈출 훈련까지 마친 순례단은 미국에서 온 600여 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사도 바오로의 여정을 따라 11월 7일 대망의 크루즈 순례를 시작했다. 미동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배가 8일 새벽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파도도 바람의 심술에 따라 사방에서 배를 때렸다. 선원들도 아직 우기가 아닌데 온난화 탓인 모양이라고 난감해 했다. 아침 미사를 위해 극장에 모인 순례자들 중 뱃멀미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성찬례를 시작할 즈음 성난 파도는 희한하게도 잠잠해졌다. 미사를 주례한 허영민(의정부교구 덕소본당 주임)신부는 "사도 바오로께서 당신이 겪으신 풍랑을 우리도 경험해 보라는 뜻에서 바람을 일으키셨나보다"며 순례자들을 격려했고, 순례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그리스 순례의 정점은 테살로니카를 거쳐 주일인 9일 순례한 필리피였다. 햇살이 아침 이슬을 영롱하게 비출 만큼 달아오르기 전에 순례단은 원형경기장터에 모였다. 정 추기경은 특별권한으로 순례단에게 전대사를 허락했다. 사제단은 원형경기장 여기저기에서 순례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줬고,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전대사의 특은을 받기 위해 정성껏 고해를 했다. 고해성사가 끝나자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주일미사가 봉헌됐다. 한국 순례단의 순례 책임을 맡은 크리스탈호 조정자 그리스인 알렉스씨는 "이 원형경기장에서 이렇듯 아름다운 미사를 봉헌한 한국인은 이번 순례단이 처음일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미사는 한마디로 은총의 시간이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눈물의 영성체를 했고, 하이 파이브를 하고 포옹으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ㆍ자매임을 체험했다. 미사를 마친 순례단은 바오로 감옥터와 고대 필리피 유적지를 둘러봤다. 감옥터를 둘러본 한 노부부는 "성경을 몇 번이나 읽고 필사도 했는데 사도 바오로가 엄청난 박해와 배척을 당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느낄 수 있게 됐다"며 이번 순례길이 제2의 사도행전이라고 말하며 이번 순례를 마련해 준 문화홍보국과 평화방송 평화신문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글=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사진=전대식 jfaco@김원철2008.12.02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37-사추덕(四樞德) (2) - 정의인간 모든 행위 기준점은 '의'플라톤에 의하면 사추덕은 네 가지 덕으로 구성돼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따로 떨어질 수 없는 통합적 체계의 덕들이다. 그래서 그는 "덕은 하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후에 그 덕들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한다. 마치 유학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인간의 핵심적 덕목으로 제시하고, 그 덕들의 관련성 안에서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논의하고 있는 것처럼…. 짧은 지면이라 여기에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추후라도 연구해볼 만한 주제다. 토마스 데 아퀴노는 사추덕의 연관성을 형이상학적 원리 안에서 이해한다. 크게 보면 이성(理性)의 영역에서 지혜와 정의의 덕이 나오고 정념(情念)의 영역에서 절제와 용기의 덕이 나온다. 따라서 지혜는 어떤 행위와 영역 안에서의 분별의 올곧음이며 정의는 정신의 올곧음인데, 인간은 그것을 통해 어떤 영역에서든 자신이 해야만 할 것을 행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도 '의'(義)는 모든 삶의 질서를 위한 최고의 생활 가치로 인식된다. 이것은 절대적 윤리 규범에 대한 인간의 방정한 품행과 법도의 의로움, 재판의 의로움 등을 의미한다. 이 義는 하느님의 속성이다.(시편 4,1; 7,17) 유학 또한 의(義)를 마땅함, 도리(道理), 정당(正當), 옳음 등의 뜻으로 이해하며, 항상 인간의 행위와 연관해 사용한다. 그러므로 의는 한 마디로 인간 행위의 준칙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공자가 늘 근심하던 것 중의 하나는 '의를 듣고 능히 실천하지 못하는 것(聞義不能徙, 論語」, 述而篇)이었고, 의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君子)라고 불렀던 것이다.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리에 밝다."(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論語」, 理仁篇) 공자 스스로도 이러한 점을 강조했고 또 그렇게 살았다. 즉 인간 삶에서 의식주와 관련된 물질적 측면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보다 더 높은 가치 즉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고 누웠어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의롭지 않으면서 돈 많고 벼슬 높은 것은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 「論語」, 述而篇) 예수도 산상설교 중에 같은 의미의 가르침을 전해준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7,31-33). 공자는 군자의 또 다른 특성으로, 의를 바탕으로 하여 모든 덕을 통합하는 인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마치 플라톤이 정의를 가장 완숙한 상태의 덕으로 파악한 것처럼…. 공자는 말한다. "군자는 義로써 바탕을 삼고, 禮로써 그것을 행하며, 겸손한 태도로 그것을 표현하며, 믿음으로써 그것을 이룩하니, 참으로 군자로다."(子曰 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論語」, 衛靈公篇) 예와 겸손함과 믿음은, 의라는 본질을 행동에 옮기고 외면으로 표현하며 완성하는 수단이요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 행위의 바탕이 義에 있다는 말이다. 군자는 더 나아가 모든 인간 행위를, 義라는 기준을 통해 판단하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군자는 천하의 일에 대하여, 오로지 주장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아서, 義를 따라 행동할 뿐이다."(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論語」, 里仁篇.) 왜냐면 정의는 인간관계 뿐 아니라 사회나 국가공동체의 공동선과 관련된 덕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이 관건이다. 미가 예언자가 넌지시 일러주는 말씀을 들어보자. "이 사람아, 하느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미가 6,8) 조은일2008.11.04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39(끝)-사추덕(四樞德) 4 - 절제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아야 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사추덕의 마지막 덕목인 절제는 정신의 경향인데, 이는 모든 정념과 행위에 그 한도를 정해 주어, 해야 할 바 이상을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이 절제는 중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덕은 과도함으로 말미암은 악덕과 부족함으로 말미암은 악덕 사이의 중용인데, 절제는 무감각과 방종 사이의 중용인 것이다. 유학에서 절제는 예(禮)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본시 "예란 인간됨의 근간이요, 예가 없으면 사람으로서 설 수 없다"(禮 人之幹也 無禮 無以立. 「春秋左氏傳」, '昭公 7년')고 해 예를 인간의 본질적 가치규범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유학에서 제시하는 많은 덕목들은 현실의 실천 과정에서 반드시 예의 조절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자는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 신중하되 예가 없으면 두렵고, 용맹하되 예가 없으면 어지럽고, 강직하되 예가 없으면 박절하게 된다"(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論語」 泰伯篇)고 말한다. 여기에서 예는 모자라거나 지나치지 않은 '중용(中庸)'의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즉 예는 모든 덕목들을 현실에서 중용에 맞게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군자가 널리 글을 배우고 예로써 단속한다면, 또한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君子 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不畔矣夫. 「논어」 雍也篇)는 공자의 말도 바로 현실의 실천 과정에서 예를 통한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학에서 禮는 핵심적 덕목인 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고, 현실에서 그것을 구현하고 완성하는 필수적 덕목이 된다.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더라도 仁으로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비록 얻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고 仁으로 그것을 지킬 수 있더라도, 장엄함으로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고 仁으로 그것을 지킬 수 있고 장엄함으로 임하더라도, 움직이기를 禮로써 하지 않으면 善하지 않다."(원문생략. 「論語」 衛靈公篇) 그래서 공자는 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제시하고, 그 구체적 조목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모두 禮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論語」 顔淵篇 참조) 주자는 '극기복례'를 '자기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이겨서 禮, 즉 天理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 이냐시오가 그의 '영신수련'에서 강조하고 있는 초연한 태도(indiferente)는 깊이 숙고할 만하다. 그는 먼저 인간의 창조 목적을 제시하고, 인간의 피조물 사용과 모든 행위는 이 목적에 부합되는 범위에서 선택돼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부합되면 될수록 더(magis) 활용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치 유학에서 극기(克己)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복례(復禮) 즉 '天理로 돌아가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연재를 마치며 근 1년, 유학사상과 함께 신앙생활과 연관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러나 돌아보면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다. 늘 급박하게 글을 쓰게 되어, 깊은 묵상에서 나오는 정갈한 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분들에게서 분에 넘치는 격려와 질책 그리고 제안을 받았다.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얼마 전에는 그동안 몇 번 공동번역을 사용한 부분, 인용된 성경의 틀린 장절까지 지적해주신 분도 있었다. 감사드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늘 시한을 넘겨 마지막으로 오는 원고를 인내와 사랑으로 기다려주신 편집국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때, 독자들을 포함한 모든 평화가족들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기쁜 한 해 맞으시기를 기원하고 마음 모아 기도드린다. 감사합니다.조은일2008.11.18
제주 청소년 말씀으로 하나됐다제주교구 첫 '주일학교 말씀잔치' 800여 명 참여제주교구 교육국(국장 김석주 신부)은 10월 28일 제주시 영평동 신성여중ㆍ고에서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를 주제로 '2007 주일학교 말씀잔치'를 열었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이번 주일학교 말씀잔치에는 교구 내 본당 초등부 3학년에서 고등부 2학년까지 학생 800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참가 학생들은 1부는 말씀팡(말씀 두루미, 말씀 나무 가꾸기, 말씀 빙고, 말씀 찾기, 말씀지도, 말씀 성쌓기, 말씀벽화, 말씀 성물전시, 말씀암송대회)ㆍ체험팡(석고상 만들기, 배지 만들기, 즉석 사진 찍기, 묵주 만들기, 풍선 아트)ㆍ놀이팡(나는 지게꾼, 단체 줄넘기, 제기차기, 비석 치기)ㆍ먹걸이팡 등 다양한 게임을 통해 말씀을 체험했다. 2부는 성경퀴즈대회 및 성경암송대회를 중심으로 진행됐으며, 주일학교 교사들로 새로 구성된 생활성가 찬양팀과 8월 한국청년대회에서 맹활약한 율동팀이 주일학교 학생들과 하나돼 신나는 무대를 선사했다. 이날 성경퀴즈대회 우승은 동광본당이, 성경암송대회 우승은 이다솜(렐린다, 신제주본당)양이 차지했다. 종합 우승은 동광본당이, 2위는 노형본당이, 3위는 성산포본당이 각각 차지했다. 또 참가자들은 모두 참가상으로 성모상을 받았다. 원종섭 명예기자 jswon@pbc.co.krcpbc2007.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