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과 함께하는 어르신 성서' 수업 현장성경공부, 그림치료 '함께'`그림과 함께하는 어르신 성서` 수업시간, 배광하 신부가 어르신들이 색칠하는 것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가 되면 서울 등촌동성당에는 정체 모를 가방을 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미사도 끝난 시간인데, 무엇 때문일까? 바로 평화방송 TV '그림과 함께하는 어르신 성서' 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올해로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는 매주 어르신 70~80명이 참석한다. 배광하(춘천교구 겟세마니 피정의 집 원장) 신부 강의도 듣고, 성경말씀을 그린 그림 색칠도 한다. 가방에는 색연필 등 색칠도구와 큼지막한 글씨로 만들어진 교재가 들어있다. "우리세대는 가난해서 고생만 했지,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그림도 그리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뻐요." 몇명 되지 않는 남학생(?) 중 3년째 이 수업을 듣고 있는 김명성(안드레아, 70)씨는 아픈 아내가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없어 안타깝지만, 이 수업을 통해 영적으로 풍요로워졌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엔 얼굴을 까맣게 색칠하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고스란히 담아내던 그림들도 이제는 밝은 색으로 바뀌었다. 어르신들에게 성경공부뿐 아니라 그림치료 효과도 있다는 것이 PD 김경숙(데레지나) 수녀 설명. 이 수업의 특징은 그림 색칠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업 끝에 '실천합시다'를 통해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전화 한통 하기' 같은 그 주에 해야할 숙제가 나간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이런 숙제를 통해 고부간 갈등이 해소되기도 하고, 가족간에 화해와 사랑을 체험하기도 한다. 김 수녀는 "사고로 절망한 50대 아들이 80대 어머니의 성경 그림 색칠하는 모습을 보고 재활 의지를 갖는 등 이 프로그램의 은총이 크다"며 "이러한 어르신들을 위한 사목활동에 본당 사목자들이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매주 방송을 위해 강원도에서 4~5시간씩 걸려 등촌동성당에 오는 배광하 신부는 "어르신들이 알아듣기 쉽게 강의하기 위해 1주일 내내 준비한다"며 "그림 색칠이 처음이라며 기뻐하시는 분들을 보거나 성경공부를 통해 변화되시는 분들을 보면 가장 보람있다"고 말했다. 구자화(시메온, 75) 등촌동본당 노인대학장은 "교재도 쉽고, 강의도 나이든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해 주셔서 너무 좋다"며 "직접 수업에 참석하지 않아도 TV를 통해 전국 노인들이 쉽게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mksophia@pbc.co.krcpbc2006.11.08

성경전문출판사 '성서와 함께' , 성경 관련 신간 세권 잇따라 내놔'독서의 계절' 가족과 성경 속으로 여행을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가 운영하는 성경전문출판사 '성서와함께'가 성경 관련 신간 세권을 잇따라 출간했다. 「성서사십주간 오경」과 「성경 길라잡이」, 「어린이 성경 퍼즐」이다. 「성서사십주간 오경」은 신자들의 성경공부에 도움을 주고자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가 지난 1982년부터 교재로 발행해온 「성서사십주간」을 전면 개정한 첫째 권이다. 구약 4권과 신약 1권, 전체 5권으로 이뤄진 「성서사십주간」은 지난 30여년 간 신자들을 하느님 말씀인 성경에 맛들이게 하고 성경공부를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그 동안 성경 안내서 및 주석서들이 다양하게 소개된 데다 성경 연구와 주석 내용도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성경사십주간 공부를 위한 새로운 교재 발간이 요청돼 왔다. 게다가 새 번역 「성경」이 발간됨에 따라 전면적 개정 작업은 필수적이었다. 「오경」은 이에 부응해 나온 첫 결실로, 판형을 비롯해 본문 구조와 내용을 바꾸면서 가장 최근의 학계 견해를 수용했다. 이 책은 먼저 성경에 대한 전체적 입문과 오경에 대한 입문을 다루고 이어서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오경을 차례대로 소개해 나간다. 오경 각 권은 단락으로 나눠 △주간 읽기 안내 △본문 줄거리를 통한 해설 △읽기 참조 등으로 구성했다(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 편저/1만2000원) 「성경 길라잡이」는 제목 그대로 성경의 세계를 한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종합 안내서다. 성경의 형성 과정과 주요 번역본들을 소개하는 '성경과 성경들', 아브라함부터 예수 시대에 이르기까지 신ㆍ구약 성경의 시대사를 안내하는 '성경의 역사', 구약 46권과 외경 위경까지 소개하는 '구약성경', 신약 27권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신약성경', 신구약 성경의 핵심 본문 16단락을 뽑아 소개하고 해설하는 '성경본문', 성경 연구의 핵심 사항을 정리한 '성경 해석' 등 6부로 이뤄져 있다. 성경에 맛들이고자 하는 신자들은 물론 성경을 처음 대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했으며, 전면 원색에 지도와 그림 등을 적절히 섞어 보기에도 좋다(앙드레 폴 지음/서석칠 신부 옮김/1만3000원) 「어린이성경 퍼즐」은 주일학교 유치부와 초등부 저학년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 「성경 속의 아이」 「성경 속의 동물」 「성경 속의 여행」 「성경 속의 직업」 등 네가지 주제를 각각 퍼즐 형태의 책으로 꾸몄다. 다섯 가지 같은 색끼리 맞추면 해당되는 성경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클라이레 무사띠 글ㆍ실비아 가스딸디 그림/이무연 옮김/4권 1질 1만8000원)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6.10.25

가난한 이들과 함께 울고 웃고서울대교구 삼양동선교본당 10주년10년 전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미아7동 가이주단지부지에서 봉헌한 부활대축일 미사 장면. 1998년 4월 12일. 서울 강북구 미아7동 가이주단지 부지에서 조촐한 부활절 미사가 봉헌됐다. '집 없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대축일미사'라는 현수막 아래 옹기종기 모인 이들은 가난하지만 정이 넘쳤던 달동네 사람들이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주최한 이 미사 5개월 뒤 이곳에 처음으로 도시빈민 사목을 위한 삼양동선교본당이 설립된다. 가난한 이들 속에서 초대교회공동체 모습을 지향하며 청빈을 실천해온 삼양동선교본당(주임 임용환 신부)이 오는 9월 4일 설립 10주년을 맞는다. 선교본당은 마을 주민과 똑같이 낡은 다세대 집에서 방 한 칸을 빌려 미사를 봉헌하고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웃고 울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다. 본당은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을 뒤돌아보고 지역주민과 어울려 청빈을 실천하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다지고자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9월 4일 오후 7시 염수정(중서울지역 교구장대리) 주교 주례로 10주년 기념미사와 성전 축복식을 거행하며 9월 6일 삼양동사거리 주당천하에서 일일호프를 마련, 수익금으로 지역 내 어려운 어르신, 청소년들을 도울 예정이다. 보다 내실있게 1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신자들은 릴레이 성경 필사, 기도 봉헌, 영상자료 제작 등을 진행 중이다. 본당 측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3~8월 매달 마지막 주일 강론시간에 '이 시대 선교본당과 소공동체운동의 의미'를 주제로 특강을 실시해 왔으며, 본당 지하 나우리심리상담센터(소장 장경혜 아녜스)를 주축으로 주민 상담도 실시할 계획이다. 빈민사목위원회는 1980년대 후반부터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활동해온 이들과 함께 1992년 서울 동서남북 빈민지역에 도시공소를 세우고 '지역복음화위원회'를 조직했으며 1998년 9월 이후 교구 소속 빈민사목 선교본당(삼양동ㆍ금호1가동ㆍ무악동ㆍ봉천3동)을 세워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성서적 신앙공동체를 지향하며 활동해왔다. 이 중 제일 먼저 세워진 삼양동선교본당은 서울북부, 삼양동 일대 저소득층 밀집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선교본당을 중심으로 강북평화의집, 봉제생산협동조합 솔샘일터, 재활용협동조합 살림, 푸른솔지역대(스카우트) 등으로 이뤄진 솔샘공동체가 형성됐다. 본당은 미아뉴타운 개발로 지난 7월 20일 미아1동 3층 다세대주택으로 이전했다. 임용환 주임신부는 "선교본당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상징적 모습으로서 의미가 크다"며 "행사 위주가 아닌, 주인공인 주민들이 신자 여부를 떠나 함께 기뻐할 수 있는 10주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cpbc2008.08.26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골수 이상형증에 생활고까지 겪는 사진작가 박요한씨](//cpbc.co.kr/CMS/newspaper/2008/01/rc/237512_1.0_titleImage_1.jpg)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골수 이상형증에 생활고까지 겪는 사진작가 박요한씨아, 다시 카메라 잡을 수 있을까…사진 인생 40년, 사고와 사기로 건강?재산 모두 잃어세례 후 힘든 가운데서도 성경 묵상 사진찍기에 몰두과자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운다. 몇 날 며칠을 깊은 겨울산에서 혹한에 덜덜 떨어가며 새우잠을 잔다. 한 점 작품을 건지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생명이 살아 숨쉴 수 있기에 그는 가난과 배고픔을 마다하지 않았다. 외곬 사진인생 40년을 그렇게 살아온 박요한(69)씨에게 남은 것은 수만 장에 이르는 사진 밖에 없다. 그리고 누추해진 삶, 피폐해진 육신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불우했던 자신을 희망으로 이끌어준 교회에 보답키 위해 교회신문 등 여러 매체에 원고료 한 푼 받지 않고 창조주 하느님의 숨결이 살아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또 다시 카메라를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였다. 골수 이상형증으로 정상인에 견줘 피가 3분의 1밖에 생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그가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불굴의 의지로 견디고 있다. 한때 그도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부인도 학원을 여러 곳 운영해 남부러울 게 없었다. 산과 사진을 끔찍이 좋아했던 터라 회사도 그만두고 아예 전업작가로 나섰다. 그러던 그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사진 촬영을 하던 중 5층 높이 건물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이후 후유증으로 뇌막염에 걸리고 수개월 병원 신세를 지면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고, 부인도 사기를 당해 순식간에 그의 집안은 거덜이 났다. 그러다 1990년 중반께 친구와 함께 우연히 서울 서교동성당에 찾아갔다. 당시 서교동본당 주임이던 김종국(현 서울대교구 신림4동 본당 주임) 신부는 당장 잠잘 곳도 없는 그의 사연을 듣고 "방을 구할 때까지 성당 유아방에서 생활하라"고 했고, 그 말 한마디에 그는 두말없이 세례를 받고 교회에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카메라로 쓴 성경집」을 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서울 망원동 33㎡(10평) 남짓한 사글셋방에 쌓여 있는 필름들과 다 헤진 카메라 가방들 틈에서 성경을 수십 번 읽고 묵상하며 전국을 찾아다녔다. 현재 810컷을 선별해 마무리 단계지만, 악화된 병세와 생활고로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필름은행(사진원고 대행업)에서 이따금 식대라도 들어오곤 했지만, 디지털 카메라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그마저도 끊겼다. 부인 또한 부인암과 간암, 치매, 췌장암으로 서울 녹번동 무의탁 복지병원에서 요양 중이어서 희망은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사진전람회 초대작가, 한국사진가협회 회원, 한국사진기고가협회 창립회원이기도 한 박요한씨에게 올해 겨울은 버텨내기가 힘들고 춥기만 하다.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cpbc2008.01.29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50돌 기념 특강·미사더 낮은 자로 살아온 반세기 성찰 가난한 '탁발 성인'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사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가 한국 땅에 들어온 지 쉰 돌을 맞았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관구장 박문식 신부)는 10월 3일 서울 한남동 수도원 안토니오 교육관에서 '프란치스칸 영성'을 주제로 특강을 열고, 4일 부산 대연동성당에서 축하미사를 봉헌한다. 이 땅에서 숨쉰 지난 반세기를 반성하고, 앞으로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며 살아갈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덥수룩한 수염의 이탈리아인 신부, 한국행 배에 오르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가 한국에 들어온 해는 1958년이다. 그 해 10월 6일 복음선포의 열망에 찬 범덕례(Francesco Faldani, 1920~2007) 수사 신부가 덥수룩한 수염을 휘날리며 부산항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범 신부는 공산정권으로 강제출국을 당해 중국 선교가 어려워지자, 한국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 곁엔 한국인 허철 수사가 함께 있었다. 이들은 '가난'과 '나눔'의 프란치스칸 영성으로 부산 범일동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출신 수사들이 한국선교의 소명을 안고 차례로 입국, 대구ㆍ서울ㆍ인천 등지로 본당사목을 넓혀나갔다. 가장 낮은 사람들이란 뜻에서 '작은 형제'라 불린 이들은 작아짐으로써 수도자의 삶을 드러냈다. 이들의 복음적 청빈정신과 내적 신심은 사회복지ㆍ교육사업 등을 통해 깊이 스며들었다. 특히 한센인 자녀들을 주택에서 키우며 보육원을 운영, 경남 일광 삼덕마을과 오륙도 상애원에 사는 한센인들을 돌본 일은 성인을 닮으려는 몸짓이었다. #더 낮은 곳에서, 더 작은 형제로… "영적 삶보다 물질적, 안보다 밖을, 우리보다 나를, 뒤보다 앞만을 찾는 삶을 뒤돌아보며 뉘우치고 살게 해 주소서." 요즘 수도원에 울려퍼지는 형제들 기도소리다. 이들 마음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아 움직인다. 아시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 성인(1181~1226)은 한센인을 만나면서 가난한 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다. 그는 1209년 '작음' '형제애' '공동체정신'을 정신으로 삼는 최초 탁발수도회 '프란치스코회'를 설립했고, 수도회는 급속도로 퍼졌다. 그러나 수도회는 1517년 영성에 대한 다양한 이해로 세 개 수도회로 갈라졌다. 이 중 하나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다. 현재 장애아동 재활 시설 '프란치스코의 집'과 양로원, 무료급식소, 현대인들의 영성지도 등을 통해 많은 이들의 육체 고통을 덜어주고, 마음을 쓰다듬는다.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성인이 창설한 성모신심 단체 '성모기사회'도 빼놓을 수 없는 활동이다. 형제들은 더 낮은 자로 살아가려 「한국 관구 50년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형제들의 성소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또 신약성경을 필사하고, 생활비를 모아 해외 선교비 지원을 위한 모금활동도 하고 있다. 지난해 관구로 승격된 수도회에는 현재 78명 회원들이 9개 수도원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살고 있으며 전 세계에는 4500여 명(50여 개국)의 수도자들이 있다. 관구장 박문식 신부는 "처음 이 땅에 오셔서 땀 흘리며 복음을 전한 이탈리아 수사님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면서 "마음을 새롭게 다져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으로 좋은 열매를 맺는 수도자들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08.09.23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4) 엔도 슈사쿠의 「침묵」](//cpbc.co.kr/CMS/newspaper/2009/03/rc/288639_1.1_titleImage_1.jpg)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4) 엔도 슈사쿠의 「침묵」불러도 대답없는 주님, 눈물 흘리고 계셨네김윤성(가브리엘) 시인이 우리말로 옮겨 바오로딸에서 출간한 엔도 슈사쿠의 「침묵」 한국판. 정길연(베트라, 소설가) 고백하면, 나는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종교를 물으면 나는 종교주의자가 아닙니다, 라고 대꾸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지구상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그 어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모든 독선과 야만, 종교가 야기한 모든 갈등과 적대감에 대체로 아전인수하는 종교인들의 모습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현대 종교가 외적 성장에 치우쳐 지나치게 화려해지고 타성적이 돼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교회에 나가던 동안 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내 믿음을 믿지 못했다. 순정하지 않았고, 다분히 기계적이었다. 습관적 출석과 입에 밴 기도문 암송으로 외형상 착실하게 종교적 행위를 했을 뿐이었다. 물론 내 영혼이 허약한 탓이었다. 다시 조심스럽게 고백하면, 교회에 나가지 않는 동안 나는 오히려 더 꾸준히, 더 집중적으로 성경을 읽었다.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이는 듯했다. 회의하고 투정하고 고꾸라지고 일어나면서, 말씀 안에 모든 대답이 다 들어 있음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여전히 교회에 나가지는 않으면서, 비록 종교주의자는 아니지만 믿음은 가지고 있다고, 하느님은 존재한다고 떠듬거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완전한 승복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내 믿음에 대해 내놓고 말하기가 불편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악몽 같은 현실을 떠올리면 더더욱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총칼을 앞세운 군인들에 의해 제 땅 제 집에서 쫓겨나는 난민들, 핍박받는 하층민들,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맨발로 쓰레기더미를 뒤져야 하는 어린아이들……. 이 불공평하고 절망적인 세계를 납득할 수 없어서다. 하느님의 손이 절대적으로 절실한 이 순간에도 어떻게 아무런 메시지가 없을 수 있는가? 도대체 왜 이런 세상을 내버려 두시는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다시 찾아 읽게 된 것도 어쩌면 그 질문과 새롭게 맞닥뜨리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엔도 슈사쿠의 1966년 작 소설 「침묵」은 17세기 일본 규슈 나가사키 지방의 가톨릭 박해 상황을 배경으로, 배교를 강요당하는 포르투칼 신부 페레이라와 로돌리코의 내밀한 고뇌와 번민을 다룬 소설이다. 스승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소문을 확인하고자 일본으로 밀항한 로돌리코 신부 일행은 교활하고 비굴한 인물 기치지로와 피할 수 없는 악연으로 얽힌다. 동료 신부 가르페가 순교한 뒤,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듯이 기치지로 또한 로돌리코를 팔아넘기지만, 그러면서도 끝까지 그의 주변을 맴돌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던 로돌리코를 후미에(성화판을 발로 밟음으로써 배교를 증명하는 행위)로 이끈 건 옥사 너머로 들려오던 코 고는 소리의 진실이었다.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 직전에 들었던 소리이기도 했다. '"나도 저 소리를 들었다.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말이다." 그 말이 그치자 다시금 코 고는 소리가 높게 낮게 귀에 들려 왔다. 아니, 그것은 이미 코 고는 소리가 아니고,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의 지쳐 떨어진 숨이 끊길 듯 끊길 듯한 신음소리라는 것이 신부에게도 지금은 뚜렷이 느껴졌다'(195쪽). 결국 로돌리코 신부 또한 '자기 생애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 온 것,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 온 것,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과 꿈으로 가득 차 있는' 성화판에 발을 올리고 만다. '발에 둔중한 아픔을 느꼈다.(……) 이 발의 아픔. 이때 밟아도 좋다고 목판 속의 그분은 신부를 향해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은 바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너희들의 아픔을 나눠 갖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다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먼 곳에서 울었다'(201쪽). 소설은 배교자 바오로, 오카다 산우에몬이 된 로돌리코가 고백성사를 애원하는 기치지로의 청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경멸하고 저주했던 기치지로야말로 나약한 인간의 표상이며, 그조차 용서하고 품는 것이 예수의 사랑임을 깨달으면서. '성직자들은 이 모독적인 행위를 몹시 책할 테지만,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그분을 배반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226-227쪽). 교회법으로 보자면, 페레이라와 로돌리코의 후미에는 배교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 종교적 불명예는 예수 사랑이라는 통찰에서 행해진 것이다. 그것은 처절하고도 숭고한 자기희생, 또 다른 의미의 순교다. 스스로 아름답고 자랑스럽고자 하는 순교는 종교적 명예심에 붙들린 제스처에 불과하다. 하느님은 이 참혹한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 「침묵」에서도 되풀이하는 이 질문은 우리가 크고 작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부당한 폭력 앞에 정의가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할 때마다, 또는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이나 가난으로 비참함을 느낄 때마다 하늘에다 종주먹을 들이대듯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가슴이 먹먹할 때, 그 먹먹한 가슴을 손바닥으로 짓누른 채 차오르는 설움을 토해낼 때, 모멸감과 무력감에 치를 떨 때에야 비로소 다급하고도 간절하게 하느님을 찾지 않는가.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 앞에 현현하지도, 직접 나서서 어떤 대답을 들려주지도 않는다. 신의 자비로 고통을 면할 방법은 없다. 고통은 오롯이 내 몫이다. 껴안아 내 뜨거움으로 녹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답이나 해결책을 듣지 못할 때 버릇처럼 하느님이 침묵한다고 절규한다. 그러는 동안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페레이라와 로돌리코가 배교 직전에 깨닫게 된 것처럼, 침묵하고 계시는 게 아니라 함께 괴로워하고 계시는가?…라고. 정녕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라면, 고통의 눈물은 닦아주시리라.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비로소 평화를 허락하시리라.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엔도 슈사쿠는 가톨릭 신자였던 이모의 영향으로 열두 살 때 세례를 받았다. 1943년 게이오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50년 프랑스 리옹대학으로 건너가 현대 가톨릭문학을 공부하던 중 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반만에 귀국해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종교와 인간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는 묵직한 주제의 작품들을 많이 발표한 걸로 알려졌으나, 의외로 밝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일상적 이야기들을 써내려간 산문으로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가톨릭문학과 순수문학을 잘 아우른 격조 있는 작품들로 양쪽에서 모두 성공적 평가를 받은 행복한 작가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소설 「침묵」 「바다와 독약」 「그리스도의 탄생」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백인」 「여자의 일생」 「지금은 사랑할 때」 등 작품을 남겼다. 신쵸샤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으며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여러 번 거론됐다. 최근에는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등 영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2010년쯤 개봉 예정으로 「침묵」의 영화화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오세택2009.03.24

루게릭병 앓는 아버지와 아들 김부호 신부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성소주일 특집 성소주일이다. 한 사람의 사제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기도가 모아져야 할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기도를 바치는 이는 누가 뭐래도 사제의 부모일 것이다. 아들을 사제로 봉헌한 김선기(요셉, 71, 수원교구 송탄본당)ㆍ이옥희(마리아, 64)씨 부부도 마찬가지다. 이들 가정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들 사제는 수원교구 구산본당 주임 김부호(베드로) 신부다.김부호 신부가 루게릭병을앍고 있는 아버지를 위로하고 있다. "베드로야, 너 정말 신학교 갈 거니?" "네." "그러면 내가 널 업어주마." 어려서부터 아들은 아버지와 죽이 잘 맞았다. 낚시를 가면 아버지는 고기를 잡고 아들은 옆에서 매운탕을 끓였다. 그날은 이사 갈 집을 수리하고 오던 길이었다. 한 손에 연장통을 들고 나란히 걷던 아버지는 갑자기 아들을 업어주겠다고 했다. '창피하게 길에서….' 다 큰 고3 짜리 아들을 업어주겠다며 등을 내미는 아버지에게 하는 수 없이 업히자 아버지는 춤을 췄다. "베드로야, 10년 후 네가 사제가 되면 그때 너를 또 업어주마." 신학교(수원가톨릭대) 생활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들거나 어려운 일로 고민하고 있을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가 양복을 입고 어깨에 보온병을 메고 면회를 오곤 했다. 마시고 털어버리라는 의미였는지, 보온병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소주였다. 고민 끝에 휴학을 하게 됐다. 신학교로 아들의 짐을 실으러 온 아버지는 별 말씀을 하지 않았다. "베드로야, 힘들었지? 나는 너의 판단을 믿는다"는 말뿐. 1년 동안 아들은 일하고 여행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시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복학을 했을 즈음 아버지는 점점 쇠약해지고 힘이 없어졌다. 부제반이던 어느 날 밤 9시가 넘은 시각에 전화가 왔다. 차비만 달랑 들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도착한 병원에는 온 가족이 모여 있었다. 의사가 말했다. "루게릭병입니다." 처음에는 움직이지 못하고 두 번째는 숨을 잘 못 쉬고 세 번째는 소화를 못 시킬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일을 그만두고 간호에 매달렸다. 아버지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집부터 청산하고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2002년 1월 사제서품식 이틀 전, 피정을 마친 아들은 아버지 상태를 알기에 "서품식에 오시지 말라"고 전화를 했다. 사제서품식 날 전례 예행연습을 위해 입장하는 아들의 눈에 제일 먼저 띈 건 휠체어를 타고 오신 아버지였다. 서품식 중에도 온 신경은 아버지에게 쏠렸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시려고….' 긴 서품식이 끝나고 새 사제와 부모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나오시지 마세요." 아들은 아버지가 행여나 쓰러지지 않을까 불안해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아들의 사제수품을 보는 게 소원이었던 아버진 이미 굽은 허리를 꼿꼿이 곧추세우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왜 나오셨어요, 나오지 마시라니까…." "내가 어떻게 안 나올 수 있니…?" 팔을 잡자 벌벌 떨며 몸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버지가 느껴졌다. 하루 종일 축하를 받으며 기진맥진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아버지가 부르셨다. "베드로야, 기억하니? 바로 오늘이다." "…." "업혀라." "아버지 어떡해요?" "괜찮다." 아들은 앉아계신 아버지의 등에 업혔다. "봐라. 내가 약속 지켰지?" "…. 이젠 제가 업어드릴게요." 아들은 아버지를 업고 그날처럼 춤을 췄다. "제가 삐딱하게 나가다가도 올바른 길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건 늘 아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부모님 뒷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진 고통 중에도 성경과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성경을 더 이상 스스로 넘길 수 없게 됐을 때부터는 딸(김혜숙 비비안나, 34)이 매일 스케치북에 큼지막하게 써서 TV 위에 올려놓은 성경구절을 보며 통째로 외웠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배에 호스를 연결해 유동식으로 식사를 하게 된 아버지는 어느 날 아들에게 고해를 했다. "베드로야, 미안하다. 한순간이지만 내가 나쁜 생각을 했었다. 날 용서해주렴." 감기로 숨쉬기가 고통스럽던 아버지는 침대 옆 창문을 보며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얼마 전 아버지의 요셉 영명축일을 맞아 가족을 찾은 김부호 신부는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러 온 송탄본당 신자들과 가족미사를 봉헌했다. 젊었을 때 열심히 봉사하며 살았기에 아버지를 찾아오는 신자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몸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마음은 항상 홀가분합니다." 아버지는 "온 가족이 모여 기도하는 것이 제일 기쁘고 행복하다"며 "하느님께서 우리 집을 축복해주시는 게 확실하다"고 한 마디, 한 마디씩 그렇지만 힘주어서 말했다. "늘 기도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며 사제생활을 반성하게 됩니다. 하느님 안에서 만난 우리들 모두 언제나 하느님 안에 머물면서 더 깊이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cpbc2008.04.10

6일 선종한 한국도예 거장 이종수씨 삶과 예술질박한 조선 도자의 멋 이어온 장인장인이자 도예가로 한 생애를 산 한국 현대도예의 거목 이종수씨는 전통 도자를 현대 도예에 맞닿는 지평으로 끌어낸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대전시립미술관 6일 74살을 일기로 선종한 원로도예가 이종수(안젤로)씨는 구도자적 삶을 통해 예술의 길을 걸어간 작가였으며, 특히 질박한 조선 도자의 멋을 현대에 이은 장인이자 도예가였다.<평화신문 8월 17일자 19면 참조> 1935년 대전에서 태어난 고인은 63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대전실업대(1964~75)ㆍ이화여대(1976~79) 교수를 지냈다. 하지만 작품에만 매달리는 '전업작가'로 살고자 그는 대학교수직을 미련없이 사임하고 대전 대덕구 갑천변과 충남 금산군 추부면 전통가마터에서 직접 흙을 개고 유약을 만들어 불을 다루며 작품제작에만 매진했다. 그의 작품은 질박하고 투박하지만 기품이 넘치는 백자와 유약의 미세한 금이 빚어내는 독특한 조형미의 도자로 생명을 얻었다. 특히 '전통 가마'를 고수해온 것으로 유명한 그는 평소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으로 도자를 굽고 아버지의 엄함으로 한 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도 자신에게 엄격했던 그는 지난 4월 25일부터 8월 3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관장 이지호 모니카)에서 자신의 '겨울 열매 도자전'을 가졌다. 이 전시가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되고 말았다. 1963년 12월 24일 대전 대흥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그는 작품을 통해서나, 외부활동을 통해서나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힘겨워하는 이들과 함께한 벗이기도 했다. 말수가 거의 없다시피했지만 예수와 성모를 닮고자 애를 쓰며 성경의 가르침을 도예적 이미지로 담아내는데 힘을 쏟은 진정한 예술가였다. 자신의 본당인 대전교구 자양동본당에선 특히 설립 초부터 21년간 성당 정면 동판부조화를 비롯해 제대, 성당 정면 유리화, 성수기, 십자가 타일화, 십자가의 길 14처 등을 제작하고 대전가톨릭대 성당 십자고상 등도 남겼다. 본당 사목회 산하 문화재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그는 2000년 2월에는 주교회의 문화위원회와 한국가톨릭미술가회가 주관하는 제5회 가톨릭미술상 본상(도예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각가 최종태(요셉, 76)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선 도자정신과 형태의 정통을 이어 아무도 가지 않은 비서구적 도자예술의 길에서 30년을 산 장인이자 작가"라고 높이 평가하고 "고인은 예술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마치 수행자처럼 살았고, 특히 신앙을 예술화하는데 주력했다"고 회고했다. 이창덕(대전교구 대흥동주교좌본당 주임) 신부는 9일 장례미사 강론을 통해 "고인은 기교나 손재주보다는 작품성이나 예술세계에 대한 예술관이 뚜렷했던 분이고, 누구보다 예수님과 성모님을 닮고자 노력했던 참된 예술가였다"고 추모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8.08.19

'벽난로 불꽃' 같은 사랑에 데이다포콜라레 영성을 사는 이민용ㆍ진옥식씨 가정 포콜라레 운동의 창시자 끼아라 루빅(1920~2008) 여사가 선종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스스로 끼아라 여사가 되어 살겠다고 다짐한 많은 회원 중 이민용(베드로, 49, 서울 창4동본당)ㆍ진옥식(데레사, 46)씨 가정을 찾아갔다. 이씨 가정엔 '벽난로'같은 따뜻함이 있다. 서로 바라보는 눈빛도 애틋하고 이유없는 사랑이 감돈다. 포콜라레 회원으로 살고 있는 이씨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환영 포콜라레, 1604호'라고 쓰인 종이컵이 붙어 있다. 포콜라레 영성을 사는 게 행복해 '포콜라레'라는 말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튀어나온다. 이 가정에 포콜라레 영성이 싹튼 지 10년이 넘었다. "전에는 가족들 모두 평행선의 삶을 살았어요. 하루일과를 마치면 각자 텔레비전 앞에 있거나 방에 있거나. 왜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거 있잖아요."(진옥식) 이들은 성당 문턱만 넘어다니는 신자일 뿐 세상 사람과 똑같았다. 낮에는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온갖 스트레스를 받고, 밤에는 자녀들 교육비로 잠을 설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마르 12,31)는 성경말씀은 두꺼운 성경에 박제된 좋은 글에 불과했다. "서로 사랑하라"는 구절이 가정에 살아 숨쉬게 된 건 1997년, 의류사업을 하던 이씨가 이탈리아 로피아노에서 한 사람의 잔잔한 기쁨의 미소를 발견하고서다. 로피아노는 종교와 이념, 연령과 배움의 차별없이 다민족이 일치의 삶을 살아가는 소도시다. 한국으로 돌아와 자세히 알아본 이씨는 아내와 함께 포콜라레 회원들의 3박 4일 모임 '여름 마리아폴리'에 참석하게 됐다. 포콜라레 회원들의 따뜻한 대우에 부부는 '여긴 뭐지'하며 어리둥절했다. 마치 지상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이들 같았다. 이들의 따뜻함과 포근함에 부부는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했다. 지난 생활에 대한 반성과 포콜라레를 알게 된 기쁨이 눈물로 쏟아졌다. 이씨 가정은 IMF 때 사업에 실패하고 진씨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등 삶의 굴곡이 많았다. 또 지난해에는 떨어져 지냈다. 진씨가 아이들의 어학공부를 위해 필리핀으로 떠나면서다. 기러기 아빠가 된 이씨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래도 이들은 사랑으로 포콜라레 일치의 영성을 따로 함께 살아나갔다. 저녁마다 수화기를 들고 저녁기도를 함께 드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가족의 간절한 기도였다. 이들은 매달 포콜라레 모임에 참석해 사랑한 경험을 터놓는다. 또 주어진 한 달 동안 복음말씀을 통해 사랑하는 연습을 한다. 큰 딸(이해인 데레사, 23)과 둘째 아들(이해진 바오로, 20), 막둥이(이해성 마태오, 11) 모두 포콜라레 젠(Gen, 같은 또래와 복음을 실천하는 모임) 모임에 나간다. 이들 부부는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우리 가족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느낀다"며 "끼아라 여사는 우리 가정의 삶을 하느님과 연결해줬다"고 미소 지었다. 이지혜 기자이지혜2008.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