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회의 나주 율리아 문제 인식, 생명문화 운동에 힘 실어줘 [해설]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 결과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 참석한 전국 주교들이 2월 26일 주한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앞줄 가운데)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교회의 출간 승인에 따라 곧 발행될 청년교리서 제1권 「믿음은 삶의 첫걸음」은 고령자를 위한 '어르신 교리서'에 이어서 출간되 연령별 교리서다. 젊은이들 교리 및 성경지식을 끌어 올리기 위해 전체 7권으로 기획된 이 교리서는 한국교회의 첫 공식 청년교리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 주입식에서 대화식으로 「믿음은 삶의 첫걸음」은 청년들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제작하느라 구성 틀을 잡는데만 1년이 걸렸다는 게 교리교육위원회 총무 이무연(살레시오수녀회) 수녀 설명이다. 교리교육위원회 위원들이 집필에 앞서 전국 5개 본당과 서울 가톨릭노동청년회 등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젊은이들은 △신앙생활 중에 겪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교리서 △주입식에서 벗어난 대화식 △문체는 간결하고 여백이 많은 교리서 등을 원했다. 이 교리서는 설문결과를 기초로 8명 안팎 인원이 봉사자 도움 없이 한 과(課)를 60분 안에 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매 과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나눔과 새김'→교리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배움'→배우고 느낀 점을 실천하도록 이끄는 '다짐'→모범이 되는 성인성녀들 삶을 소개하는 '귀감'→배운 것을 정리하는 '풀어보기'로 구성했다. 특히 청년들이 지루하지 않게 공부할 수 있도록 삽화를 많이 넣었다. 한 예로 제4과 '성경과 성전(聖傳)' 편에서는 책꽂이<아래 삽화>에 꽂혀 있는 신약 27권, 구약 46권 이름을 직접 써보도록 하고, '이노주사' 리더 현정수 신부가 성경 73권 목록을 갖고 랩 형식으로 작곡한 노래 악보를 함께 실었다. 제2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제3권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 등 나머지 6권은 3년 안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청년 재교육용으로 나온 이 교리서는 청년들이 학업, 군복무, 취업 등으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데다 교리지식마저 빈약해 쉽게 냉담의 길로 빠지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주 윤 율리아 문제 인식 공유 주교회의는 이번에 나주 윤 율리아 문제에 대해 장시간 논의했으나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가 1월 21일 발표한 교령을 각 교구별로 공지하는 선에서 대응 수위를 결정했다. 지역교구 안에서 발생하는 신앙교리적 문제에 대한 판단과 조치는 해당 교구장 고유 권한이기에 주교들은 문제를 충분히 공유하고 보조를 맞추는 선에서 대응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최창무 대주교는 교구장 공지(1998년, 2005년)와 사목적 지침(2001년)을 따르지 않는 나주 윤 율리아 측이 더 이상 가톨릭교회와 일치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 지난 1월 '파문 제재'와 '교구사제 특별권한 일체 취소'라는 매우 강력한 조치를 내렸다. 광주대교구는 이미 이 교령을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들에게도 보내 지역교회에 공지토록 요청한 상태다. #생명문화운동 강화 주교회의는 생명문화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신앙교리위원회 산하단체인 생명윤리연구회를 독립 위원회인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안명옥 주교)로 위상을 높였다. 이로써 주교회의 전국위원회 수는 19개로 늘어났다.<표 참조> 연구회 인원과 활동은 그대로 위원회로 이전됐다. 연구회는 그동안 장기이식과 생명윤리에 관한 국제학술대회, 생명의 날 담화 발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개정안에 대한 수정안 제시, 생명교육 세미나 등의 사업을 전개해왔다. # 혼인면담 시 혼인관계증명서 필요 1월 1일 호주제가 폐지됨에 따라 혼인면담 신청자는 호적등본 대신 가족관계증명서와 혼인관계증명서를 준비하면 된다. 교회는 혼인면담 시 구비서류로 세례문서, 호적등본, 혼인강좌 수료증 등을 요구하는데 호적등본(혼인관계증명서)은 이중 혼인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 서류들은 호적등본처럼 관공서에서 손쉽게 발급받을 수 있다.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는 이에 관한 공지문을 따로 발표키로 했다. 아울러 동성동본 금혼 규정이 사라짐에 따라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에 명시된 '동성동본 혈족 사이에는 혼인하지 못한다'(제109조 8항)는 조항도 삭제된다. 이는 동성동본 금혼 규정이 부계와 모계의 8촌 이내 등 일정 범위 내 결혼을 금지하는 근친혼 금지로 전환된 데 따른 것이다.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인간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헌법 이념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1997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법적 효력이 중지된 상태였고, 최근 민법 개정으로 명문화됐다. 교회법은 교회 외적 사안의 경우 교리와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 한 그 나라 법률에 준용해 운용된다.# 관구 연합법원 폐쇄 주교회의는 사도좌 대심원 승인에 따라 서울ㆍ대구ㆍ광주관구 연합법원을 폐쇄한다. 앞으로 관구 소속 교구 법원의 2심 심리는 해당 관구의 대법원에서 진행하고, 각 대교구 법원의 2심 심리는 서울은 광주, 광주는 대구, 대구는 서울대교구 법원에서 할 수 있도록 했다. 교회 재판은 제1심은 교구 법원, 2심은 관구 법원, 3심은 교황청에서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교회법 전공자가 부족해 교구가 1심 법원을 설립할 수 없던 시절 관구내 교구들이 연합해 세운 법원이 관구 연합법원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법학자가 많아 대부분 교구 법원을 갖고 있기에 연합법원을 폐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원교구는 교구 법원에서 1심을 하고, 2심은 서울대교구 법원에서 진행한다. 서울대교구 법원의 2심 심리를 광주대교구 법원에서 하는 이유는 동일 사건의 1, 2심을 같은 법원에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예비신자 신앙체험 안내서 곧 출간 남녀수도회장상연합회가 주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하는 예비신자 신앙체험 프로그램 안내서 「참 신앙 살아보기」가 곧 출간돼 전국 본당에 배포된다. 예비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기획된 이 안내서는 △신앙체험을 할 수 있는 수도회 △교구별 성지 △예비신자용 서적과 영상물 등을 소개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또 오는 6월 8일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에서 거행되는 파리외방전교회 창립 350주년 기념행사에 즈음해 한국교회 차원에서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숱한 희생과 도움으로 한국교회 기초를 놓은 전교회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김원철2008.03.05
[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2 - '다리 저는 사람' 아스라한 추억의 끝자락에는 망각의 강이 있다. 내가 체험했으되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은 유아시절이다. 그러나 내 인생 편력을 이야기하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내용이 이 대목이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유난히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1943년 3월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돌을 맞은 내가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와서 까닭 없이 울어댔다고 한다. 처음에는 오른쪽 발을 바닥에 딛지 못한 채 괴로워하더니 샅에 염증이 생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제야 한의원에 간다, 병원에 간다, 어머니 발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시일이 흘러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발병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오늘날 같으면 엑스레이 한 장으로 병증을 알아냈을 터인데, 당시는 일본 강점 치하여서 의술이나 의료장비가 부실했다. 그래서 모두들 염증이 생긴 샅에만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한의사에 의해 엉덩이가 화농이 되었음을 알았다. 즉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으나 완치된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다만 고름을 제거했을 뿐이다. 대퇴부 관절이 탈골되어 발병했음을 알게 된 것은 나중 일이었다. 필경 돌날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다가 그리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고름은 네 살이 되어서야 멎었다. 그러나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 내가 걸을 때마다 다리를 절었던 것이다. 내 기억 저편에 있는 유아시절은 이처럼 뒤죽박죽이 되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어린 육신을 모질게 짓밟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먼저 내가 듣게 된 것은 절름발이라는 비속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놀림감이 된 나는 정상인과 다른 자신을 깨달았다. 더욱이 내 걸음을 흉내 내며 들려주는 그 말들이 나의 가슴을 얼마나 후볐는지 모른다. 이 절름발이라는 말은 오늘에 이르도록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나 자신이 장애인이면서도 여전히 듣기 싫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다리를 저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지체장애인의 인격을 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성경에서는 '다리 저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여기에 덧붙이면, 장애인과 전혀 상관없는 말에 대단한 표현을 하는 양 절름발이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무엇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때 절름발이라 한다. 세상에 하고많은 말을 두고 구태여 이 말을 써야 하는지, 그들의 양식이 의심스럽고 얄밉다. 아무튼 나는 신체적인 놀림 때문에 매일 눈물바람이었고, 그로 인해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고자질을 듣고 우시는 어머니를 본 다음부터는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께 잘못을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그 무렵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겉돌았다. 그들의 놀이에 방해가 될지언정 아무런 도움이 안 되어서다. 자연히 웃음을 잃은 채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으며, 유달산이나 학교 동산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만의 시간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내가 어떤 처지에 있으며,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고 골똘하게 생각했다. 일찌감치 자아에 눈뜬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 위안과 평화로움을 발견했다. 마음 둘 곳 없는 소년에게 자연은 진솔한 벗이었다. 박광호 (모세, 시인ㆍ소설가) cpbc2008.07.29
성경은 여성을 어떻게 말하는가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그리스도교 성경은 남녀평등과 자유와 해방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성경이 형성되던 시대의 가부장적 문화의 산물로서 여성 억압적 요소가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이런 배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를테면 구약성경에는 남녀 모두 하느님 모습을 닮은 존재라고 하면서도, 여성은 공적 경신례에 참여할 수 없고, 인구 조사에서 제외될 정도로 독립된 인격이 아닌 남성 소유물로 간주됐다. 여성들의 출산, 생리 등은 불결하게 여겼고, 하느님께 드리는 서원을 비롯해 여성이 내리는 결정은 남성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던 시대였지만,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이 적지 않다. 모세 누이인 예언자 미르얌 (탈출 15장), 용감한 여성 판관 드보라 (판관 5장), 자기 민족을 구한 왕비 에스테르 (에스 7장)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하느님은 여성에게도 특별한 사명과 재능을 주셨고, 가부장 사회에서 겪어야하는 여성들 고통을 들어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셨던 분이시다. 또한 성경 여러 군데에서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젖먹이를 보살피는 어머니로 묘사하신 것은(호세 11, 3; 이사 49, 15 등), 여성성을 하느님 품성으로 긍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세기 2~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에 대한 창조와 타락설화는 오랫동안 여성의 위상을 격하시키는데 자주 인용됐지만 여성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되면서 오히려 남녀평등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신약에서도 가부장 체제에서 남성에게 예속된 존재로서 간주됐던 여성 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바오로 편지에 나오는 몇몇 내용들, 이를테면 여성들이 공적 모임에서 입을 다물고(1고린 14, 34), 머리를 가려야 한다거나(1고린 11, 5),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권고(에페 5, 21) 등은 가부장적인 그 시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친구였던 예수님은 그런 시대 경향을 거슬러서 여성들을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하셨다. 당시 랍비 문헌을 보면 여자와 이야기를 많이 해서는 안 되고 여성들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공개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셨고(요한 4장), 여성들을 제자로 받아들이시고 여행에 동행시키셨으며(루카 8, 2-3), 사람들이 불결하게 여겼던 여인들 병을 고쳐주었고 (루카 8, 40), 음식 장만보다 하느님 말씀을 배우려하는 마리아 태도를 칭찬하기도 했다(루카 10, 39). 예수님 십자가 길에 끝까지 동참한 이들과 부활의 첫 목격 증인이 여성들이었다는 것은 예수님과 여성들과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앞서 말한 바오로의 편지 내용은 교회 안에서 여성 지위와 역할을 억압하는데 이용돼왔고, 따라서 바오로는 여성차별주의자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바오로 권고는 그 시대 특수한 상황에서 요구됐던 내용이지 모든 여성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새롭게 이해되고 있다. 사실 바오로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모두가 평등하며 하나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 27-28). 요약하면 구약, 신약, 서간을 통틀어서 성경 메시지는 남자 여자 모두 하느님 모상을 닮고, 하느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로서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cpbc2006.09.13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5 성인(聖人)들과 우리, 무엇이 다른가?그분 향해 걷다 보면 어느새 성인이?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동양철학)내가 어렸을 때, 그 당시 교회 분위기는 성인들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인들을 공경할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했고, 또 힘들 때 그들에게 전구를 청하며, 일상생활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교우 자신들도 그들처럼 성인이 되고자하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마치 성인들과는 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그분들과는 별 관계없이 따로 놀면서 다른 것에 마을을 빼앗기고 있다. 이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하느님께 축성되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불리운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6).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 몸 바친 거룩한 백성이 아니냐?"(신명 7,6)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브 12,14). 유학 또한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율곡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여,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똑하거나 어리석거나 모두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거늘 성인은 무슨 까닭에 유독 성인이 되고, 나는 왜 유독 보통사람이 되었는가? 진실로 뜻이 세워져 있지 않고(志不立), 아는 것이 명확하지 않으며(知不明), 행하는 것이 독실하지 않기(行不篤) 때문이다"(원문생략, 「擊蒙要訣」, '立志章'). '모두 같은 사람인데'라는 표현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왜 나는…. 율곡 선생의 원인분석이 명료하다.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 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지식은 충분히 쌓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힘써 행했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성인이 되고 싶은 걸까? 실상 성인이 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것이 가능한가?'라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송대 유학자들 특히 주렴계 선생은 '가능하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럼에도 그 당시의 많은 학자들은 비웃거나 스스로 포기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宋代의 구산양씨(龜山楊氏)는 이렇게 한탄하면서 충고한다. 조금 길긴 하지만 차분히 들어보자.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聖人을 스승으로 삼았는데도 그 배움이 지극하지 못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덕(德)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어려움을 보았다. 이 때문에 모든 배우는 자들이 '聖人의 경지를 배워서 이를 수 있다'고 말하면 반드시 미쳤다고 여기며 속으로 비웃는다. 聖人은 진실로 쉽게 이를 수 없으나 만약 聖人을 버리고 배운다면 장차 무엇을 법칙으로 삼겠는가. 聖人을 스승으로 삼음은 활쏘기를 배울 때에 과녁(的)을 세우는 것과 같다. 과녁을 저기에다 세운 뒤에야 활쏘는 자가 이것을 보고서 적중(的中)하기를 구할 수 있으니, 과녁에 적중하고 적중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지만 과녁을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을 표준으로 삼겠는가"(원문생략, 「心經附註」, '聖可學章'). 성인들은 많은 영적 보화들을 남겨주면서, 하느님께 이르는 여정을 우리보다 먼저 가신 분들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얼마나 많은 분들이 기쁘고 훌륭하게 이 길을 갔는지 되새긴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는가. 우리도 그분들과 함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충실하게 이 길을 걷다보면, 언젠가 하느님 대전에서 그분들처럼 聖人이 되어있지 않을까? 조은일2008.07.22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5 성인(聖人)들과 우리, 무엇이 다른가](//cpbc.co.kr/CMS/newspaper/2008/07/rc/259387_1.0_titleImage_1.jpg)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5 성인(聖人)들과 우리, 무엇이 다른가그분 향해 걷다보면 어느새 성인이? 내가 어렸을 때, 그 당시 교회 분위기는 성인들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인들을 공경할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했고, 또 힘들 때 그들에게 전구를 청하며, 일상생활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교우 자신들도 그들처럼 성인이 되고자하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마치 성인들과는 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그분들과는 별 관계없이 따로 놀면서 다른 것에 마을을 빼앗기고 있다. 이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하느님께 축성되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불리운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6).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 몸 바친 거룩한 백성이 아니냐?"(신명 7,6)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브 12,14). 유학 또한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율곡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여,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똑하거나 어리석거나 모두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거늘 성인은 무슨 까닭에 유독 성인이 되고, 나는 왜 유독 보통사람이 되었는가? 진실로 뜻이 세워져 있지 않고(志不立), 아는 것이 명확하지 않으며(知不明), 행하는 것이 독실하지 않기(行不篤) 때문이다"(원문생략, 「擊蒙要訣」, '立志章'). '모두 같은 사람인데'라는 표현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왜 나는…. 율곡 선생의 원인분석이 명료하다.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 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지식은 충분히 쌓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힘써 행했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성인이 되고 싶은 걸까? 실상 성인이 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것이 가능한가?'라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송대 유학자들 특히 주렴계 선생은 '가능하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럼에도 그 당시의 많은 학자들은 비웃거나 스스로 포기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宋代의 구산양씨(龜山楊氏)는 이렇게 한탄하면서 충고한다. 조금 길긴 하지만 차분히 들어보자.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聖人을 스승으로 삼았는데도 그 배움이 지극하지 못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덕(德)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어려움을 보았다. 이 때문에 모든 배우는 자들이 '聖人의 경지를 배워서 이를 수 있다'고 말하면 반드시 미쳤다고 여기며 속으로 비웃는다. 聖人은 진실로 쉽게 이를 수 없으나 만약 聖人을 버리고 배운다면 장차 무엇을 법칙으로 삼겠는가. 聖人을 스승으로 삼음은 활쏘기를 배울 때에 과녁(的)을 세우는 것과 같다. 과녁을 저기에다 세운 뒤에야 활쏘는 자가 이것을 보고서 적중(的中)하기를 구할 수 있으니, 과녁에 적중하고 적중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지만 과녁을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을 표준으로 삼겠는가"(원문생략, 「心經附註」, '聖可學章'). 성인들은 많은 영적 보화들을 남겨주면서, 하느님께 이르는 여정을 우리보다 먼저 가신 분들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얼마나 많은 분들이 기쁘고 훌륭하게 이 길을 갔는지 되새긴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는가. 우리도 그분들과 함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충실하게 이 길을 걷다보면, 언젠가 하느님 대전에서 그분들처럼 聖人이 되어있지 않을까? 임영선2008.07.22
![[기도맛들이기]-거룩한 독서(1)](//cpbc.co.kr/CMS/newspaper/2007/07/rc/215948_1.1_titleImage_1.jpg)
[기도맛들이기]-거룩한 독서(1)이연학 신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토 수도회) 마리아 어머니, 뜬금없이 평화신문 지면을 통해 글월 드리니 놀라셨지요?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에 대한 글을 청탁받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진솔하고 쉽게 쓸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단지 마리아 어머니께만 드리는 사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제 수도생활의 여정에서 만났던 많은 참 신앙인들 모두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저는 몇 년 전부터 거룩한 독서에 대해 말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러나 제 얘기가 사람들에게 정작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장황하고 식자연(識者然)한 이야기로 거룩한 독서의 지극히 단순한 본질을 오히려 가리기나 한 것이 아닌지 두렵기까지 합니다. 특히 어머니처럼, 어쩌면 수도자인 저보다 더 진짜 '수도자'의 모습으로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하느님 말씀을 살고 계시는 분들 앞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사실 여러 이유로, 거룩한 독서 자체에 관해서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무한경쟁의 소비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요즘은 영성이나 기도마저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상품'으로 포장되어 진열된 채,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사회 안에서 고객을 모으는 '마케팅'의 주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거룩한 독서를 전파하는 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거룩한 독서라는 '영성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바, 즉 하느님 말씀이 중요할 따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말씀은 참으로 살아있고 힘이 있어서, 창세 이래 사람들 가운데서 끊임없이 활동해 오셨습니다. 부디 이 글월이, 하느님 말씀의 기운이 우리 교우들로부터 시작해서 이 땅에 널리 세력을 확장하시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 따름입니다. 나중에 더 말씀드리겠지만, 거룩한 독서는 이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거룩한 독서를 배우고자 할 때 우선 중요한 것은, 기도와 성경 독서가 깊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깊은 기도생활은 성경 독서와 별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세기 신앙인들 기도는 성경 독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음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말씀드리기로 하고, 거룩한 독서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 한 마디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저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고,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도 기도로 마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 독서가 "기도로 말미암아 자주 중단돼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읽어왔던 방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기도하느라 중간 중간에 자주 멈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독서' 혹은 '렉시오 디비나'같은 유식하고 대단해 보이는 말투에 주눅 드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이 자연스런 일이 무슨 영적 비법이라도 되는 양 누가 굳이 폼 잡고서 가르쳐 줄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당장 오늘부터 어머니께서도 거룩한 독서를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실천하시면서 제 말씀을 더욱 잘 알아들으실 뿐 아니라 제 이야기의 부족한 점에 대해 조언해 주실 수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 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cpbc2007.07.25

현대판 바오로 사도가 되어 열렬한 사도로 변신한 김기섭 전 안기부 차장 수감생활 중 주님 만나 참회, 출소자 위해 봉사 다짐출소자 위한 '기쁨과 희망은행' 후원회장으로 활동열렬한 사도로 돌아온 전 안기부 운영차장 김기섭씨. 김원철 기자 wckim@ 12년 전 김영삼 정권의 안풍사건 주역 전 안기부 운영차장 김기섭(요셉, 70)씨가 바오로 사도가 돼 돌아왔다. 안기부 예산 1197억 원을 선거자금으로 전용한 혐의로 9시 뉴스에 오르내린 인물이다. "하느님이 좋아하실 거야. 고마워!" 김씨가 출소자들에게 무담보로 창업자금을 빌려주는 '기쁨과 희망은행'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성금을 보태겠다는 정치인과 기업인들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수화기에서 "참 좋은 일을 한다"는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털어놓는다. 서울대 정치학과, 삼성 계열사 전무,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 의전 등을 거쳐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으로 '최고'를 누린 그가 열렬한 사도가 된 건 2005년 7월 안기부 자금 전용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서부터다. 바오로 사도가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번개 같은 하늘의 빛을 쐰 후 눈에서 비늘 같은 게 떨어져 복음의 투사가 됐다면, 김씨는 11년간 5번의 검찰조사와 70번의 재판, 3번의 수감생활을 통해 사도로 거듭났다. 한 평 남짓한 교도소 독방은 기고만장한 삶을 산 안기부 차장에게 하느님을 만나게 해줬다. 그는 빛 한줄기 자유로이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서 김종국 신부(서울 신림4동본당 주임)가 건넨 예비신자 교리서를 받아 들고, 차츰 하느님과 대면하기 시작했다. 절대고요한 세계에서 그는 지나온 영욕의 세월을 돌아다봤다. 그는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쥐었던 손을 펴니 모든 건 은총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김씨는 출소를 앞둔 어르신이 갈 곳이 없어 길 바닥에 나 앉게 됐다는 사연을 들었다. 그날 이후 그의 마음 속엔 출소자를 위해 봉사하라는 말이 방망이질 했다. 그는 하느님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기도했다. '저를 감옥에서 빼내어 주시면, 출소자를 위해 살겠습니다.' 그는 세 번의 수감생활을 하며 성경을 세 번 완독했다. 마지막 수감생활 후에는 명동성당에서 환시로 눈부신 성모님 모습을 봤다. 그는 이제껏 느끼지 못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맛봤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았고, 이틀 동안 가톨릭 성가 4번 '찬양하라'를 목놓아 불렀다. 그는 '다시 감옥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런데 정말로 10일 후 무죄판결을 받았다. 지금 그의 곁에는 함께 수감생활을 한 김대중 전 청와대 비서실장 박지원(요셉)씨가 있다. 당시 정적 관계였지만 서로의 방을 노크하며 정치가 아닌 신앙 이야기를 나눴다. 박지원 의원은 현재 은행 고문으로, 하느님 사업에 동참해줘 김씨는 힘이 난다.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이영우 신부)는 6월 25일 기쁨과 희망은행 창립식을 열고 출소자의 재활을 위한 닻을 올렸다. 김기섭 회장은 자신이 후원회장이 되기까지 하느님이 자신을 훈련한 시간을 발표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의 씨앗은 장내에 퍼져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씨앗은 출소자를 위한 사랑으로 모아지고 있다. 후원: 우리은행 1005-301-263350, 천주교사회교정사목위원회, 문의: 02-921-5093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08.07.01
[생활 속의 복음]연중 제20주일- 혈통보다도 믿음을 보시는 예수님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공동사목 오금동본당 주임)'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이 바로 그렇습니다. 마귀가 들어서 시도 때도 없이 거품을 문 채 여기 저기 머리를 부딪치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백방으로 병을 고쳐보려고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지요. 그러던 중에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 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한걸음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께로 가까이 갈 수가 없자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고 소리도 소용없자 예수님의 길을 막고 엎드려서 애원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마태 15,25).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 예수님께서는 박정하게 거절하시지요. 그러나 이 어머니는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며 자녀를 위해서는 개가 되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더욱 간절하게 예수님께 달려듭니다. 그때서야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받아들이시지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 바로 그 순간에 여인의 딸이 나았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애절한 청에도 불구하고 큰 상처를 입을 정도로 한 이방 여인을 박정하게 대하셨던 이유는 당신의 구원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전 세계 모든 민족에 해당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1, 2독서 역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요. 이것이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가 알아들어야 하는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 메시지는 하느님께서는 집요하게 청하는 사람을 결코 물리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처녀가 인도에 선교사로 가려다가 출발 직전에 좌절하게 됐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님이 중환으로 몸져눕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 후 어머니는 3년 동안 병고로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고 병간호에서 자유를 얻은 서른 살이 다 된 처녀는 다시 선교사로 떠나기 위한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멀리 살고 있는 언니 집을 인사차 찾아갔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언니마저 중병으로 눕게 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언니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다섯 명의 어린 조카들은 울면서 그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는 도저히 어린 조카들을 버려둘 수가 없어서 언니 집에서 이들을 당분간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형부가 몸져눕게 됐습니다. 그는 선교사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됐지요. 얼마 후 형부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선교사 일보다도 어린 조카를 기르는 일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는 자기를 돌보지 않고 온전히 다섯 조카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초로의 할머니가 됐고 조카들은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그중 세 명은 인도의 선교사로 파견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른 지향을 가지고 정성껏 기도하고 노력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내 뜻대로, 그것도 지금 당장 이뤄지기를 바라지요. 그래서 기도하기가 힘들고,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뜻대로 내 욕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간구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덧붙여 나의 소망을 청하면 주님께서는 인간이 생각할 수도 없는 넘치는 열매를 주십니다. 오늘 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온 민족에게로 펼쳐나감을 강조하셨고, 그 누구도 끊임없이 구하면 들어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큰 은혜에 감사드리며, 무엇보다도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성심 성의껏 기도한다면 축복은 자연히 덤으로 따라 올 것입니다. 조은일2008.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