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10) 사목서간](//cpbc.co.kr/CMS/newspaper/2008/12/rc/274248_1.0_titleImage_1.jpg)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10) 사목서간기도의 역할 · 교회 지도자 자격과 자세 제시바오로 서간 가운데 티모테오1, 2서와 티토서를 사목서간이라고 부릅니다. 이 편지들은 각각 티모테오와 티토라는 개인에게 보낸 것이지만 이들은 단지 한 개인이 아니라 지역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 곧 핵심 사목자였습니다. ◇특징 사목서간은 바오로 사도의 다른 서간들에 비해 문체나 형식, 내용에서 차이를 보이는 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에 따라 신학 사상에서도 비슷한 측면이 많지만 차이점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사목서간에 사용된 어휘 가운데 36%는 바오로 친서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20%는 다른 신약성경 전체에서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목서간에 쓰인 용어들은 바오로 친서보다 후대의 언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문체에 있어서도 사목서간에 사용된 어투가 바오로 사도 친서들에 비해 부드럽고 차분하며 이해하기 쉽다고 합니다. 내용 및 그에 따른 신학 사상과 관련해서 보면 사목서간에서는 이방계 그리스도인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간의 갈등 그리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바오로의 반박 같은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단에 맞서 교리와 건전한 말씀과 신심에 부합되는 가르침을 따를 것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바오로 친서들에서 볼 수 있는 종말과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 사상이 사목서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재림에 대한 기다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임박했다기보다는 늦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조직과 제도를 정비하고 신자들이 건전한 가르침과 신심에 따라 살아가도록 하라는 내용이 부각됩니다. 이런 여러가지 특징으로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는 사목서간이 바오로 사도의 친서라기보다는 바오로의 제자 또는 바오로를 존경하던 사람이 당시 교회상황을 반영해서 썼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수신인 사목서간의 수신인은 티모테오와 티토입니다. 티모테오에 대해서는 사도행전을 비롯해 바오로 서간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티모테오는 그리스인인 아버지와 유다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바오로의 제자가 된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2차 선교여행 때 리스트라에서 티모테오를 데리고 떠나면서 협력자로서 또 제자로서 자주 함께 지냈으며 코린토와 테살로니카 교회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티모테오는 바오로의 지시에 따라 에페소에서 머물고 있을 때 이 편지를 받았을 것입니다(1티모 1,3 참조). 티토는 사도행전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다른 바오로 서간들을 통해서 어떤 인물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계 출신으로 유다계에서 보면 이방인 출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티토 역시 티모테오와 마찬가지로 바오로의 충실한 협력자였습니다. 바오로는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티토를 데리고 갔습니다(갈라 2,3 참조). 또 코린토 신자들과 바오로 사이에 마찰이 생겼을 때 티토가 훌륭하게 중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2코린 7장 참조). 바오로는 티토에게 크레타 섬에 있는 공동체들을 맡겼습니다(티토1,5 참조). ◇집필 시기와 장소 사목서간들이 바오로 사도의 친서라면 그 집필 시기는 바오로가 순교하기 직전인 60년대 후반으로, 집필 장소는 로마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바오로의 친서가 아닐 가능성이 크고 이를 고려한다면 집필 시기는 기원 후 1세기 말 곧 90년대 또는 100년까지 늦춰질 수 있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구성과 주요 내용 ▨티모테오1서 6장으로 이뤄진 티모테오 1서는 여느 서간들과 마찬가지로 인사로 시작합니다(1,1-2). 서간은 이어 에페소에 머물고 있는 티모테오에게 그곳 일부 사람들이 신화와 족보로 신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지 말도록 하라고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아울러 율법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건전한 가르침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이들 때문에 율법이 있다는 것입니다(1,3-11). 바오로는 이어 자신의 사도적 소명에 대해 확신하면서 티모테오에게 직분에 충실하도록 하라고 당부합니다(1,12-20). 서간은 이제 기도의 역할과 자세, 교회 지도자들, 곧 감독과 봉사자들의 자격과 자세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2-3장). 아울러 거짓 교사들에 관해 경고하면서 티모테오에게 모범적 처신으로 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이 되라고 권고합니다(4장). 서간은 계속해서 신자들을 대하는 자세를 비롯해 과부들에 관한 지침, 원로들에 관한 지침, 종들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면서 티모테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현합니다.(5,1-6,2). 이어 이단과 탐욕에 관해 거듭 경고하면서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라고 당부합니다. 또 부자들에 관한 지침을 내린 후 마지막 권고와 인사로 끝을 맺습니다(6,3-21). ▨티모테오2서 인사와 함께 티모테오의 진실한 믿음에 대한 감사로 시작합니다. 이와함께 바오로 자신의 사도직 소명을 확인하면서 바오로 자신을 본보기로 삼으라고 당부하고 격려합니다(1,1-14). 서간 본론격인 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일꾼 곧 사목자들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실해야 하며 개인의 일상사에 얽매이지 말고 규칙대로 행하고 그리스도의 군사답게 고난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인정받는 일꾼이 되려면 속된 망언이나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피하고 하느님께서 놓으신 튼튼한 기초에 충실하며 주인에게 요긴하게 쓰일 그릇이 되도록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지요. 또 반대자들을 온유하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훈계합니다(2,1-26). 바오로는 계속해서 마지막 때에 닥칠 타락상을 열거하면서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합니다. 이어 바오로 자신이 어떻게 박해와 고난을 겪어냈는지를 설명하면서 어려서부터 배워서 믿은 것을 확실히 지키도록 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뿐 아니라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해서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타이르고 격려하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직무를 완수하라고 권고합니다(3,1-4,5). 바오로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면서 개인적 부탁과 마지막 인사로 서간을 끝맺습니다(4,6-22). ▨티토서 3장으로 이뤄진 비교적 짧은 분량인 티토서는 바오로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를 들면서 사도직의 기원과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1,1-4). 서간은 이어 티토를 크레타 섬에 남겨둔 이유가 고을마다 공동체 지도자들을 임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를 기회로 공동체의 사목자 또는 지도자는 어떤 자격을 지녀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1,5-9). 아울러 크레타 신자들이 헛된 신화와 그릇된 가르침에 속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들을 바로 잡아줄 것을 당부합니다(1,10-16). 서간은 이제 공동체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어떻게 처신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가운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근거를 교리적으로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그렇게 살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2,11-15). 서간은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 특히 통치자들과 이웃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는 어리석은 논쟁과 족보 이야기 등에 빠지지 말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3,1-11). 그리고 개인적 부탁과 함께 마지막 인사로 끝을 맺습니다(3,12-15).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바오로의 서간과 신학 사상' 기사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과 신학」(바오로딸) 「서간에 담긴 보화」(생활성서) 「바오로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 「바울로와 그의 서간들」(생활성서) 「바오로 스케치」(빅벨) 「바울로」(분도출판사) 「신약성서입문」 (분도출판사)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분도출판사) 「신약성서 새번역」(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서못자리 그룹공부 교재-나눔터」(기쁜소식) cpbc2008.12.02
서울 혜화동본당 설립 80주년 행사100년을 향한 새 복음화의 여정 시작서울대교구 혜화동본당(주임 김철호 신부)은 10월 28일 대성전에서 설립 80주년 기념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100주년을 향한 새 복음화의 여정을 시작했다. 감사미사에서는 혜화동본당을 거쳐간 역대 사목자의 축하인사와 새로운 100년을 향한 공동체의 발전을 바라는 영상물이 상영돼 80주년의 의미를 더했다. 또 미사 중에 31쌍의 부부가 혼인갱신식을 통해 혼인서약 때 하느님 앞에 서약한 약속을 새롭게 하고 작은 교회인 가정공동체를 주님께 봉헌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본당은 감사미사 전ㆍ후에 성경가훈 짓기, 80주년 사진전, 전 신자 음식나누기, 성경 골든벨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었다. 이날 기념행사에 앞서 27일에는 구역별 성가경연대회를 열어 구역 신자들이 지난 60여 일간 갈고 닦은 성가 실력을 발휘하며 친목을 다졌다. 본당은 80주년 기념사업으로 소공동체 활성화와 신앙심 고취를 위해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의미의 봉헌명찰을 만들고 쉬는신자 찾기에 나서는 등 내적 결속을 다지는데 힘썼다. 김철호 주임신부는 "이번 기념 행사가 본당 역사를 잘 보전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그동안 공동체 발전을 위해 힘써준 모든 이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젊은이의 거리이자 문화의 중심지인 혜화동지역 복음전파를 위해 전 신자가 힘써 나가겠다"고 밝혔다. 명동, 중림동성당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혜화동본당(1927년)은 제기동본당(1942년), 미아리본당(1945년), 돈암동본당(1955년), 성북동본당(1975년)등을 분할했다. 현재 신자는 5000여 명. 또한 1960년에 건립된 현 성전은 한국교회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기념비적 성당으로 성전 내부의 십자가상, 유리그림, 103위 순교성인화 등 교회미술의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백영민2007.10.31

교회 내 장애인 신앙생활 먼저 돌봐야[진단] 장애인에 대한 교회 배려 갈길 멀다. 장애인들은 "하느님 만나러 가기도 힘들다"고 호소한다. 휠체어를 타고 진입할 수 없는 성당이 여전히 많은 데다, 성당에 들어가 앉는다해도 수화봉사자와 점자 성가책이 없어 미사를 제대로 봉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신문이 서울대교구 195개 본당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1개 본당(10.8%)은 "미사 참례자들 가운데 장애인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정말 장애인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장애인들이 편의시설이 없어 미사 참례를 아예 포기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 휠체어 진입 힘든 성당 35%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본당 신자 중 장애인이 있다고 응답한 본당은 150곳(76.9%), 없다고 응답한 본당은 21곳(10.8%)이다. 나머지 24곳(12.3%)은 장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195개 본당 가운데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별 어려움 없이 진입할 수 있는 성당은 126곳(64.6%)으로 집계됐다.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모두 갖췄거나 성전이 1층에 있어 엘리베이터가 필요치 않은 경우, 또는 엘리베이터가 외부로 연결돼 있어 경사로가 필요치 않은 경우다. 휠체어 진입이 힘든 성당은 69곳(35.4%)에 달한다. 이 중 경사로는 있으나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또는 엘리베이터는 있으나 경사로가 없어서 성전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한 본당은 24곳(12.3%)이다.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둘 다 없는 성당은 45곳(23%)이다. 또 장애인용 화장실을 갖춘 성당은 112곳(57.4%), 갖추지 않은 성당은 83곳(42.6%)이다.▧ 시각장애인의 고충은?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로 제작된 주보ㆍ성가책ㆍ기도서ㆍ성경 등을 갖춘 본당이 거의 없어 시각장애인선교회 건물에 모여 미사를 봉헌한다. 집에서 가까운 성당에 나가는 신자들이 더러 있지만 소외감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게 시각장애인들 말이다. 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회장 윤재송, 서울 강남구 개포동) 회원은 450여 명. 이 가운데 주일미사 참례자 수는 100여 명이다. 선교회는 주일 아침마다 신자들을 태워오기 위해 상계동ㆍ일산ㆍ강서ㆍ종로 방면으로 승합차 4대, 선교회 인근에 5대를 운행한다. 상계동 지역은 미사 참례 희망자는 많은데 차편이 부족해 다 태워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차량을 증편하기도 쉽지 않다. 운전기사 인건비와 기름값, 보험료, 수리비 등 승합차 운행에 드는 비용이 선교회 전체 예산의 10%에 달하는 상황에서 그 부담을 더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윤재송(시몬) 회장은 "교회 내 출판사 중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책을 출판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어 안타깝다"며 "예비신자 교리교육은 선교회 자체적으로 「예비신자 교리서」를 요약, 점자로 제작해 봉사자가 찾아다니며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에게 미사는 '묵상시간' 서울대교구 내에서 수화미사가 봉헌되는 곳은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를 비롯 낙성대ㆍ상도동ㆍ성산동본당 네 곳뿐이다. 지방교구는 이보다 더 열악하다는 게 관계자들 전언이다. 이원정(베아타, 대전교구 대흥동본당)씨는 "선교회 담당사제나 수도자가 수화를 모르는 경우가 많고, 수화를 웬만큼 익히면 또다시 인사이동돼 깊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또 미사 참례시 수화봉사자가 턱없이 부족하고 통역도 70% 이상 이해하기 어려워 묵상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들은 수화를 할 줄 모르는 사제에게는 종이에 적어 고해성사를 본다. 하지만 고해사제에게 메모를 건넬 창구가 막혀있어 성사를 포기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있다.▧ 특수교육 등 전동 전문가 시급 장애아부 주일학교 교사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게 가장 힘들다"며 '인식부족'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수교육이나 유아교육을 전공한 전문가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봉사자도 찾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또 장애특성에 맞게 교리수업을 진행할 교재와 프로그램이 없어 자체 제작해 사용하거나, 서울대교구 장애아부 주일학교 교사연합회 월례교육 자료에 의존한다. 지적장애 아동을 위한 장애아부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본당은 가락동ㆍ광장동ㆍ금호동ㆍ노원ㆍ등촌1동ㆍ명동ㆍ명일동ㆍ목5동ㆍ문정동ㆍ번동ㆍ신당동ㆍ연희동ㆍ오류동ㆍ화곡본동ㆍ창동본당 등 15곳이다. 이 가운데 가락동(10지구)ㆍ노원(7지구)ㆍ번동(6지구 성인)ㆍ창동(6지구 어린이)ㆍ연희동(2지구)본당은 지구 차원으로 주일학교를 운영한다. 서울대교구 장애아부 주일학교 교사연합회 윤준호(클레멘스) 회장은 "특히 강남지역은 장애아부 주일학교가 한 곳도 없어, 가톨릭 장애아들이 조직적이고 전문화된 대형 개신교회로 흡수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장애아부 주일학교는 질적 성장보다 양적 성장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애아부 주일학교를 담당했던 한 수녀는 "교회는 장애아동뿐 아니라 장애아를 둔 부모도 돌봐야 한다"며 "부모들을 죄의식과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주고, 그들이 자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작업 등 다양한 신앙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은 한두 해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장애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신앙생활의 어려움은 여전히 '인식과 이해 부족'이다. 아울러 장애인 선교회들은 공통적으로 전담 사제 배치를 요청하고 있다. 전담 사제가 없어 매주 미사를 집전해 줄 사제를 수도회 등지에 부탁하고 있는 실정이다. 봉사자들은 "교회가 사회복지사업 등으로 장애인 복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교회 내 장애인들의 신앙생활 고충을 한 번쯤 들여다봐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장애인 배려한 서울 동작동본당】 "성당에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가 있나요?" "그럼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성가책도 있는 걸요." 서울대교구 본당들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하면서 장애인 편의시설은 물론 시각장애인용 점자 성가책과 성경까지 갖춘 본당을 찾아냈다. 동작동본당(주임 우대근 신부)이다. 동작동본당은 2년 전 시각장애 신자들을 위해 점자 성가책 3권을 마련, 성전 맨 앞자리에 비치했다. 맨 앞자리는 봉헌과 영성체에 쉽게 참여하도록 장애인과 노약자들을 위해 배려한 지정석. 점자성경(1질 23권)은 성당 1층 만남의 방 책꽂이에 꽃혀 있어 시각장애인들이 언제든 읽을 수 있다. 지난해에는 휠체어를 타고 오는 지체장애인들과 노약자들을 위해 성당 뒤편 문턱과 계단을 없애고 경사로를 만들었다. 사무실 진입로도 경사로로 바꾸려 했으나 마당이 너무 좁아 리프트 설치를 고민 중이다. 시각장애인 윤주상(미카엘, 66)ㆍ박현숙(체칠리아, 60)씨 부부는 "성당에 점자 성가책이 비치되기 전에는 그 큰 성가책(가로 28㎝ 세로 28.5㎝ 두께 9㎝)을 들고 다녔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책이 젖을까봐 맨손으로 와야 했다"면서 "다른 본당에도 앞좌석은 장애인들을 위해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cpbc2008.02.20

신자들, 본당운영에 능동·적극적으로 참여토록 해야제주교구 소공동체 현황과 전망을 위한 심포지엄 제주교구가 17일 제주 중앙 주교좌 성당에서 개최한 '제주교구 소공동체 현황과 전망을 위한 심포지엄'은 교구가 나아가야 할 사목적 비전과 활동 방향 및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이날 심포지엄 발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추세조사-통계로 본 서귀포성당 소공동체 현황과 과제 전원 신부(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2003년부터 소공동체 시범본당으로 운영된 서귀포본당 신앙생활 실태조사는 전 신자를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일반신자 367명, 쉬는신자 83명, 주일학교 학생 24명, 구역장ㆍ반장 49명 등 523명이 응답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대부분은 소공동체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목적과 가치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다. 소공동체에 참여하는 신자일수록 친교의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높아 모임에서의 친교와 개인의 영적 성장에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으며, 소공동체에서 복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것이 모임의 종요한 목적이라는 것에 높은 응답을 보였다. 그러나 소공동체를 통한 활동 실천에는 다소 낮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소공동체가 선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일반신자들은 소공동체 모임을 통해 얻고 싶은 것으로 소공동체 모임에 참여하는 신자와 참여하지 않는 신자 모두 이웃 신자와의 친교를 가장 많이 꼽았고, 두 번째로 본인의 영적 성장을 꼽았다<표 참조>. 설문 조사에 응답한 구역장ㆍ반장의 46.6%는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본당에서 지원받고 싶은 것으로 반원들이 소공동체 교육을 받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신자들의 소공동체에 대한 열의 정도가 소공동체 활성화의 근본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구역·반 소공동체 모임에서 50% 이상 참여율은 30.6%, 50% 이하 참여율은 69.4%로 나타났다. 모임 주기는 98%가 매주 1회였다. 그러나 희망하는 모임 주기는 22.2%가 매주 1회, 38%가 매달 1회라고 응답했다. 교회가 소공동체 모임을 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좀 더 실질적인 교육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모임 소요시간은 31.3%가 1시간이고, 67%가 1시간 이상이었다. 그러나 희망 모임 시간은 57%가 1시간 이내를, 41%가 그 이상의 시간을 원했다. 따라서 1시간 정도가 가장 무난한 모임 소요시간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실제로 83.3%가 복음나누기 7단계만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사항에서는 43.5%가 복음나누기 7단계만을 바라고 있다. 이에 대해 복음나누기 7단계+다른 복음나누기 병행, 성경공부, 기타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것을 바라는 신자를 합치면 대략 51%에 이르고 있다. 성경공부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공동체 봉사자로서 필요한 자질로는 반원들에 대한 배려 33.7%, 소공동체의 이해 21.1%, 책임감이 13.7%로 높게 나타났다. 이에 비해 지도력 6.3%, 성경 지식, 일반 지식이나 상식이 동일하게 2.1%로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깊은 신앙심은 12.6%로 비교적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봉사자의 자질에 대해 지식이나 상식, 지도력보다 봉사자 자신의 의식과 정신이 훨씬 중요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원들의 소공동체 이해 정도를 살펴보면 별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16.3%이며, 83% 이상이 보통이다를 넘어서서 대체로 이해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복음나누기 진행에 있어서 반원들의 적극성 정도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가 2.1%, 소극적이다가 22.9%이며, 75% 이상이 보통이다를 넘어서 잘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복음나누기 진행에 있어서 어려움의 원인은 반원들의 소극적인 태도가 61.7%로 나타났다. 구성원들이 열성을 가지고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모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제발표1-소공동체 현황 분석에 따른 제주교구 소공동체 사목신학적 과제 및 전망김정용 신부(광주가톨릭대 교수) 한국의 소공동체는 '신자들의 자발적 요청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위로부터의' 제도 내지는 '성직자 중심주의의 또 다른 형태'라는 차가운 비판이 있다. 아직 평신도의 자발성이 소공동체 안에서도 충분히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과제이다. 본당공동체 운영에 있어 신자들 의견을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는 대안적 사목구조가 필요하다. 신자들의 광범위한 의견수렴과 결정구조를 위해 소공동체 중심의 구조로 변화를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당 사목이 지나치게 인적 요인(본당 신부나 임원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본당사목을 통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통합사목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 통합사목위원회는 본당공동체의 사목적 현황을 전체적이고 유기적으로 꿰뚫어 보고 필요에 따라 단기 또는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한편 본당사목의 과제를 신자들과 함께 풀어가는 역할을 한다. 서귀포본당 사례가 향후 한국 소공동체의 미래를 전망하는데 긍정적 차원을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주제발표2-제주교구 소공동체 사목구조 모범안 고병수 신부(제주교구 사목국장)소공동체 활성화 조건으로는 △소공동체 비전 공유 △본당 구역반 조직 개편 △빈번한 소공동체 모임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구조 적용을 들 수 있다. 기존의 구역ㆍ반 소공동체를 모든 교우가 거주하는 동네를 중심으로 소공동체 모임에 알맞은 정도로 재편해 본당 소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한다. 본당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평신도의 적극적 참여를 촉진하며 하느님 백성인 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도가 함께 연대의식과 책임의식을 갖고 복음적 삶을 살도록 지원하고 구역ㆍ반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구조로 개편, 운영돼야 한다. 새롭게 개편될 본당 사목구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바탕으로 소공동체협의회를 중심에 두면서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와 제분과위원회를 양쪽에 균형있게 조화해 서로 참여와 공동책임을 이루는 본당 구역ㆍ반소공동체 중심의 사목구조이다(표 참조). 구역ㆍ반이 본당사목의 실행적 주체가 되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본당운영에 참여와 협력을 다하게 되며, 사도직단체와 제분과위원회의 고유한 특성과 전문가적인 조언을 받기에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정리=김민경 기자 sofia@pbc.co.kr사진=오상철 명예기자 osach@ cpbc2008.02.20
[기도맛들이기] 거룩한 독서(6)내가 '그분을 좀 아는' 그날까지이연학 신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마리아 어머니, 지난주까지의 이야기 요지는, 의지의 노력보다 하느님 말씀이 나를 비추실 수 있도록 해 드리는 단순하고 열린 신앙의 마음이 거룩한 독서에서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나를 비추실 때 나는 그분께 '알려지게' 됩니다. 내가 그분께 알려질 때, 다시 말해 그분께서 나를 아실 때, 바로 이 순간부터 나도 그분을 알게 됩니다. 내가 그분을 찾고 뵙는다기보다는, 그분께서 나를 찾아오셨고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그 지점이 바로 기도의 현관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얼마만큼 사랑받고 있는지 아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 역시 그분을 사랑하게 됩니다. 성경 자체를 통해 볼 때, 우리 상식에 맞지 않는 이 순서야말로 절대불변의 진리처럼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을 알아드리지 못하던 나타나엘도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보고 알아주셨을 때에야 비로소 그분을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알아드리게 되었습니다(요한 1,43-50 참조). 코린토서의 유명한 사랑의 찬가에서도 마지막에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내가 하느님께 온전히 알려지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3,12)고 노래하고 있지요. 거룩한 독서는 사실 그분을 온 몸으로 겪어 아는 '지식'(필립 3,8 참조)의 성장을 목표로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평생을 이론이나 책이 아니라 온 몸의 실천을 통해 밑바닥 사람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오신 분이시므로 혹시 '지식'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틀어 '관상'과 가장 가까운 말이 있다면(성경에는 '관상'이라는 말이 없거든요), 그것은 '지식'입니다. 성경에서 지식 혹은 '앎'이란 말을 쓸 때는, 책상머리에서 생겨나 머리속에 차곡차곡 저장된 정보가 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겪어 알아들은 체험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여자가 남자를 '안다'고 할 때에는, 잠자리를 같이 해서 배가 불러오다가 마침내 아이를 낳게 되는 과정 전체를 뜻하는 것이지요. 어머니,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 생활의 목적, 나아가 기도와 거룩한 독서의 유일한 목적이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말한다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더 잘 알아들으셨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리스도를 두고 "내가 그분을 좀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무척 멉니다. 이 먼 여정을 일러 중세의 스승들은 '변모'(變貌, transformatio)라고 일컫기도 하고 혹은 '동화'(同化, conformatio)라고 일컫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습(forma)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점점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더 옛날의 교부들은 이 여정을 단순히 '회심'(悔心, conversio)이라 일컬었습니다. 어떻든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큰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처럼, 우리도 간절한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우리 마음의 '큰바위 얼굴'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바라보는 (혹은 관상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미사 참례와 거룩한 독서를 통해 이뤄지는 이 여정에서 우리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시인이 "그가 '꽃'이라고 말할 때 그의 입에서는 꽃향기가 났다"고 노래했는데, 누가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에는 절로 그 사람의 모습을 닮게 마련입니다. 눈에는 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얼비치고, 마음에도 늘 그 사람의 얼굴이 담겨 있게 마련입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기 마련입니다. 거룩한 독서를 통한 '지식'의 여정에서 우리에게 생기는 일도 얼추 이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cpbc2007.09.05
![[유학 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3 인간의 마음](//cpbc.co.kr/CMS/newspaper/2008/06/rc/255829_1.2_titleImage_1.jpg)
[유학 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3 인간의 마음어떤 말로도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신비 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인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몸과 마음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의 몸이야말로 연구하면 할수록 신비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또한 어떤 말로도 정의(定義)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다. 성경에서 '마음'은 생물학적으로 신체의 중심적 기관인 심장을 의미하지만, 상징적으로는 감정과 사유 그리고 의지의 자리를 나타내며, 신앙과 영성이 나오는 곳도 바로 마음이다. 즉 인간의 마음은 하느님의 영이 활동하시는 곳(예레 31,33;에제 36,26)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복심(程復心)이 지은 「심학도」(心學圖)에 따르면, 마음은 인간 전체를 주재(主宰)하는 기관으로(一身之主宰), 허령(虛靈), 지각(知覺), 신명(神明)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퇴계 선생은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의 마음은 비어 있으면서 신령스럽고, 지각 능력이 있으며, 天地의 神明이나 사후의 鬼神과 그 본질에서는 같은 神明을 지니고 있다"(「퇴계집」 권 29). 그런데 문제는 이 마음이 육체 안에 담겨있고 또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원적(二元的) 존재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로마 7,15-23). 더 나아가 그는 절규한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겠습니까?"(로마 7,24) 유학에서도 같은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이른바 유학의 오랜 전승으로 이어오는 '십육자심법'(十六字心法)으로, 서경(書經)에 나오는 구절이다. "순 임금이 말하였다. '人心은 위태롭고 道心은 미묘하니 精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야 진실로 中道를 잡을 것이다.'"(帝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書經」, '虞書 大禹謨') 주자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자. "마음의 지각능력은 하나인데 왜 人心 道心의 구분이 있다고 하는가? 그것은 인심은 형체와 기운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났고, 도심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의 바름에 근원한 것이어서 그 지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심은 위태로워 불안하고 도심은 미묘해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형체가 없을 수 없으므로 아무리 훌륭해도 인심이 없을 수 없으며,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 부여한 아름다운 본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아무리 모자란 인간도 도심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심과 도심 두 가지가 한 마음 사이에 섞여 있어서 다스릴 방도를 알지 못하면, 하늘의 보편적 진리가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지 못하게 된다."(원문 생략. 「心經附註」, '人心道心章') 장황하지만 꽤나 정교한 해석으로 평가된다. 결국 사도 바오로가 인간 내면에 대한 같은 이해의 관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주자는 같은 상황에서 인간 수양론의 두 갈래 방법을 도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 하늘이 부여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본성으로서의 도심을 이원론적 상황에서 어떻게 잘 식별하고 보존할 것인지, 그리고 위태롭고 불안한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으로서의 인심을 어떻게 잘 다스려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다음에 자세히 살펴보자. cpbc2008.06.25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6) 필리피서와 필레몬서](//cpbc.co.kr/CMS/newspaper/2008/10/rc/270208_1.0_titleImage_1.jpg)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6) 필리피서와 필레몬서필리피 신자들 후의에 감사와 축복 전해 필리피서와 필레몬서는 사도 바오로가 필리피 교회와 콜로새 공동체의 필레몬에게 각각 보낸 서간으로, 에페소서 및 콜로새서와 함께 옥중서간이라고도 부릅니다. 옥중서간이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썼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필리피서 ◇필리피와 바오로 필리피는 에게해 건너편 그리스 북부 지방인 마케도니아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폐허가 됐지만 바오로 사도 당시에는 제국의 수도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교통 중심지이자 무역 중심지로 아주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왕이 기원전 360년쯤에 건설한 도시로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필리피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제국이 마케도니아를 점령한 후 기원 전 31년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퇴역 군인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고 합니다. 바오로가 필리피에 처음 간 것은 2차 선교여행(50~52년쯤) 때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16,6-40), 바오로는 환시 중에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달라는 메시지를 받고 유럽 대륙에 첫발을 내디딥니다. 네아폴리스를 거쳐 필리피에 도착한 바오로는 자색옷감장수 리디아라는 부인을 만나 그 집안에 복음을 전하고 그 부인의 간청으로 그 집에 잠시 머물러 필리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리디아 집은 말하자면 필리피 교회의 요람이 된 셈입니다. 그러나 필리피 사람들의 박해로 감옥에 갇히는 등 고통을 당한 바오로는 그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떠나지요. ◇집필 배경과 시기, 장소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편지를 써 보낸 것은 한마디로 필리피 신자들이 자신에게 보여준 후의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리피 신자들은 바오로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에 에파프로디토스를 보내 바오로를 시중들게 하고 선물도 딸려 보냈습니다. 바오로의 표현에 따르면 그 선물은 "향기로운 예물이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제물"(필리 4,18)이었습니다. 그런데 에파프로디토스는 바오로의 시중을 들다가 그만 병이 나 죽을 뻔했지요. 다행이 회복했습니다만 필리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을 본 바오로는 그를 필리피로 돌려 보내는 길에 필리피 신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또 그들을 격려하고자 이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사실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다른 공동체들에게서는 물질적 도움을 받지 않았지만 필리피 신자들에게서는 물질적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2코린 11,9 ; 필리 4,15-16)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필리피 신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바오로의 마음이 서간 곳곳에서 묻어나 있지요. 그렇다면 바오로가 감옥에 갇혔다는 곳은 어디일까요? 아직도 설이 분분합니다만 많은 학자들은 에페소를 꼽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큰 시련과 환난을 겪었는데(1고린 15,32 ; 2코린 1,8-10 ; 11,23) 그곳에서 3년 가까이 머무른 것으로 보아 감옥에 갇혀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지요. 집필 시기는 코린토2서를 썼을 때와 비슷한 시기 또는 그 직후인 55~56년쯤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주요 내용과 특징 서간은 특정 주제에 대한 바오로의 사상을 일관되게 담고 있다기보다는 감사 편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먼저 필립피 신자들을 위해 애정어린 마음으로 기도하면서(1,3-11),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합니다(1,12-26). 역경 속에서도 오히려 기뻐하는 사도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이어서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훈계합니다.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일치하며 겸손하게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할 뿐 아니라 기뻐하라고 당부하지요(1,27-2,18). 특히 그리스도 찬가(2,6-11)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겸손과 순종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런 다음 바오로는 티모테오와 에파프로디토스를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내려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합니다(2,19-30). 또 바오로는 이제 분위기를 바꿔 거짓된 할례를 주장하는 이단을 조심하라고 권고하고는 자신을 본받으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늘 기뻐하며, 참되고 고귀한 것들을 추구하라고 거듭 당부하지요(3,1-4,9).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이 자신에게 보여준 후의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인사와 축복을 전합니다(4,10-23). ▨필레몬서 필레몬서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짧은 분량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서간의 일차 수신인은 필레몬이라는 한 인물이지만 아피아라는 자매와 아르키포스, 그리고 필레몬 집에 모이는 이들 또한 공동 수신자입니다. 따라서 필레몬서는 개인적 서간이지만 또한 작은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집필 배경과 시기 학자들이 유추하는 집필 배경은 이렇습니다. 소아시아의 콜로새 공동체에는 필레몬이라는 유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는데 그 종이 주인을 버리고 도망쳐서 감옥에 갇혀 있는 바오로를 찾아왔습니다. 아마 바오로가 필레몬 집을 방문했을 때 대면한 적이 있었겠지요. 아무튼 바오로를 만난 오네시모는 회개하고 바오로를 가까이서 시중 들었고 바오로는 그를 "옥중에서 얻은 아들"(1,10)로 여기지요. 그런데 바오로는 오네시모를 마냥 곁에 두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 노예법에 따르면 노예가 도망치면 주인은 그를 엄벌에 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예를 도망치도록 도와준 이도 재산권 침해로 범죄의 공범이 됐다고 합니다. 따라서 바오로는 한편으로는 오네시모가 언제 주인에게 고발당할지 모르고 자신 또한 공범자로 몰려 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네시모를 주인인 필레몬에게 돌려주기로 하고 그를 노예가 아닌 "사랑하는 형제"(1,16)로 받아들여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써보내게 되지요. 집필 장소와 관련해서 바오로가 로마와 카이사리아에서 투옥된 적이 있는 데다가 편지에서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수인까지 된 몸"이라는 서간의 내용을 바탕으로 로마 또는 카이사리아가 아닌가 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집필 시기는 바오로가 3차에 걸친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돼 카이사리아 감옥에서 2년 동안 있던 시기(58~60년) 또는 로마로 압송된 후(61년?) 쯤으로 추정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바오로가 에페소에서도 투옥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들어 집필장소가 에페소이고 집필시기는 필리피서를 썼던 시기와 비슷한 55년 또는 56년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주요 내용과 특징 25절에 불과한 짧은 분량으로서 내용은 오네시모를 잘 받아달라는 부탁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에는 다른 서간들에서 볼 수 있는 강한 권고나 주장 같은 것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청원의 애절함이 편지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불같고 강직한 성격의 바오로에게 이런 유순한 인간적 면모가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오네시모의 주인인 필레몬에 대한 정중하고 겸손한 청, 그리고 늙어서 얻은 아들 오네시모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밴 편지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8.10.28
[교회상식 교리상식- 103]열두 사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7) 필립보필립보는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열두 사도 명단이 언급될 때에 이름만 나옵니다(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4; 사도 1,13). 이에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필립보와 관련된 일화를 여러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필립보 사도에 대해 알아봅니다. 필립보는 시몬 베드로 및 안드레아와 고향이 같습니다. 벳사이다 출신이지요(요한 1,44). 필립보라는 이름(Φιλιπποs)은 그리스어로 "말(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를 부르신 다음날 필립보를 만나시고는 "나를 따르라" 하고 부르십니다(요한 1,43). 이렇게 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필립보는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합니다.(나타나엘은 사도 바르톨로메오와 동일한 인물로 추정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호'에서 좀 더 자세히 언급하겠습니다.) 그런데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게 있습니다. 율법에 약속된 그분을 보았다는 필립보의 말에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게 나올 수 있겠느냐'고 핀잔을 주지요. 그러자 필립보는 "와서 보시오"(요한 1,46) 하면서 거듭 설득합니다. 여기서 필립보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는 확신에 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묵고 계시는 곳을 알고 싶다고 물었을 때 "와서 보아라"(요한 1,39) 하신 예수님 말씀을 상기시키지요. 이는 필립보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예수님께서 묵고 계신 곳을 직접 가서 본 안드레아나 요한의 다른 제자에게서 예수님에 관해 전해들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필립보 역시 요한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요한복음에서는 필립보가 예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도 세 번에 걸쳐 필립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첫째,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입니다.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군중에게 먹일 빵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 것인지를 묻자 필립보는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다"고 대답합니다(요한 6,5-7). 예수님께서 필립보를 시험하고자 하신 질문이었는데 필립보는 합당한 대답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타나엘에게 "우리는 그분을 만났소"라고 말하고 또 "와서 보시오"하고 거듭 설득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보면, 필립보는 계산에 치밀하고 현실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 사람들을 예수님께 안내하는 대목(요한 12,21-23)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필립보에게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청하자 필립보는 안드레아에게 이 말을 전하고 또 안드레아는 필립보와 함께 예수님께 전합니다. 여기서는 왜 필립보가 예수님께 직접 전하지 않고 안드레아를 통해서 전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중을 잘 몰라서였을 수도 있고 자기보다는 안드레아가 예수님과 더 가깝다고 여겨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경우를 헤아려서 행동하는 것이 필립보의 성격인 듯합니다. 셋째, 예수님께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고 청하는 대목(요한 14,8-11)입니다.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필립보의 말에서 계산을 깔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호된 질책을 당하지요.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예수님 부르심에 제자가 됐으면서도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지 못해 깨우침을 받곤 했던 필립보는 성령강림 후 사도단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성경에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필립보는 흑해 서부 스키티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말년에는 소아시아 프리기아 지방에 있는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에서 지내다 십자가에 매달려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하지요. 이때 필립보 나이는 87살이었다고 합니다. 필립보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두 딸 또한 아버지 곁에 묻혔다고 전해집니다. 필립보 사도의 유해는 그 후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로 이장됐다가 다시 로마에 있는 12사도 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필립보 사도의 축일은 5월 3일입니다. 필립보 사도는 포목업자와 모자 제조업자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도행전 8장에서 필리포스의 선교 활동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또 21장에는 바오로 사도와 카리사리아에서 복음 선포자인 필리포스 집에 머물렀으며 그에게는 네 딸이 있었다고 언급돼 있지요. 이 필리포스는 사도 필립보가 아니라 스테파노와 함께 일곱 봉사자(부제) 중 한 사람으로 뽑힌 필리포스(사도 6,4-5)를 가리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8.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