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님과 함께] 사제수품 50돌 금경축 맞는 전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cpbc.co.kr/CMS/newspaper/2008/03/rc/243892_1.0_titleImage_1.jpg)
[주교님과 함께] 사제수품 50돌 금경축 맞는 전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한 평생 은총으로 감싸주신 하느님께 감사"올해로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을 맞는 전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82)를 인터뷰하러 19일 마산 성지여고 내 주교관을 찾았을 때 마침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꽃눈을 돋우는 감미로운 봄비였다. 주교관 주변을 감도는 봄기운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는 박 주교 표정에서 고위성직자라기보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참 빠르네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다소 상투적 표현일지 모르지만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뭐라 달리 표현할 길이 없네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박 주교는 "사제로서 부족함이 많은 저를 잘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살아오면서 저와 관계를 맺어온 사제, 수도자, 교구 신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라며 '감사'의 말로 소회를 밝혔다. 아울러 "내 능력과 힘에 겨운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50년을 순탄하게 사제생활을 해왔다"고 회고하며 "다만 제주와 전주, 마산교구장을 거치면서 뚜렷이 이바지한 일도 없이 물러난 것 같아 '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덧붙였다. 한국교회에서 3개 교구 교구장을 역임한 주교는 박 주교가 유일하다.사제 되기까지 우여곡절 많아 1926년 평안남도 평원군 동송면 청룡리에서 태어난 박 주교는 일제 강점기에 소년기를 보냈고, 20대 초반을 북녘 공산 치하에서 살았으며,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사실 박 주교만큼 우여곡절 끝에 사제가 된 이도 드물다. 처음에는 비신자인 부모님 반대로 신학교 입학이 좌절됐다. 모교의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으나 사제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3년 만에 사표를 냈다. 반대하는 부모님과 거듭된 냉전으로 신경성 위장병에 걸려 몸이 쇠약해진 그에게 부모님은 "신학교에 못 가게 하니까 속상해 병이 난 모양인데 네 마음대로 해라"고 허락을 내렸고, 마침내 48년 9월 그토록 바라던 덕원신학교에 입학했다. 숭인상업학교 동창인 백민관(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2년 먼저 입학해 앞서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렵게 입학한 신학교 생활은 채 두 학기를 넘기지 못했다. 공산 정권이 1949년 5월 덕원신학교를 강제로 폐쇄했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신학교가 폐쇄됐을 때 무척 난감했어요. 사제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님과 의논도 하지 않고 1950년 3월 해주를 거쳐 38선을 넘으려다 체포돼 2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요. 또 북한군의 강제 징집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가던 중 다행히 고향 가까운 곳을 지날 때 달아날 수 있었죠." 사제가 되기까지 파란 많았던 박 주교의 인생 역정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사제생활을 비교적 순탄하게 보냈다고 하지만 나름대로 애환도 적지 않았을 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무엇보다 본당 내에서 불협화음이 생겼을 때 가장 힘들었지요. 또 어떤 신부님이 어려움에 닥쳤는데 도와줄 길이 없을 때도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나 교구 내에 본당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사회에 꼭 필요한 복지시설들이 설립됐을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박 주교는 "특히 전주교구 설정 50주년을 지내면서 한국교회에서 처음으로 남미 페루에 '교구 선교사'(Fidei Donum, 신앙의 선물)를 파견한 일과 천호성지를 조성한 일이 떠오른다"고 회고했다. "마산교구로 옮긴 뒤에도 몇 차례 천호성지를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감회가 남달라요. 또 마산교구에서는 에콰도르에 선교 사제를 파견했는데 성 김대건 신부를 수호성인으로 모신 원주민 성당을 지은 일을 가장 보람되고 기뻤던 일로 기억합니다." 다시 태어나 사제가 된다면 주교와 신부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물었다. "신부가 되고 주교가 되는 것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정해주시는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어느 것을 하겠냐고 물어보시면 아마도 신부를 택할 것 같습니다. 본당신부 시절이 참 즐거웠어요."후배 사제들 충실하게 살길 "주교가 된 후로는 책임감 때문인지 큰 재미는 없는 것 같아요. 대신 신부들은 유혹에 빠질 위험이 더 크지요." 후배 사제들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박 주교는 "사제로서 정도를 걸으며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기도(성무일도)와 성사집행, 강론 준비, 사목에 충실할 것을 주문했다. "사제 수품 때에 택했던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시편 88,2)는 성경 구절이 생각나네요. 주교 수품 때 관례적으로 택하는 성경 구절을 '충성과 온유'(In fide et lenitate. 집회 45,4)로 정하고 나름대로 '하느님께 충실하고, 사람에게 온유하게 살기'로 노력하고자 했어요. 신부님들도 이렇게 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건강은 어떠하냐는 질문에 박 주교는 한마디로 "혈압도 정상이고 따로 약을 먹는 것도 없다"고 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허리도 굽지 않고 너무나 꼿꼿하다. 화제를 운동으로 돌렸다. "젊어서는 테니스를 즐겼고, 나이가 들어서는 골프를 조금 했어요. 중학교 다닐 때 기계체조를 했거든요. 그래서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평균은 따라 해요. 전주교구장으로 있을 때부터 볼링도 즐겨 쳤지요. 운동도 되고 여럿이 시간 보내기에도 좋고, 본당 볼링 동호회나 국장 신부님들과 어울려 다니곤 했는데 요즘은 아무도 같이 가자고 불러주는 사람이 없네요. 허허." 평균점수가 얼마냐는 질문에 "잘 던질 때는 235점을 기록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 정도 점수라면 프로 선수들 수준이다. 요즘은 매일 주교관 근처 무학산에 올라 산책을 즐기곤 한다.시복시성에 관심과 기도 당부 박 주교는 고희를 넘어서도 볼링을 즐기고 젊은이들과 PC통신을 하던 이른바 'X세대' 주교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 PC 통신이 유행일 때부터 '천리안', '하이텔' 가톨릭동호회에 가입해 대화방에서 젊은이들과 교류하고 자신의 강론을 올리기도 했다. 컴퓨터 실력도 수준급이다. 요즘도 한글 워드 프로그램을 이용해 손수 만든 상본이나 책갈피를 신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즐긴다. 짧은 성구나 기도문을 적어 넣고 직접 촬영한 사진이나 인터넷에서 내려 받은 성화를 삽입해 만든 상본과 책갈피를 컬러 프린터로 출력한 뒤 코팅까지 해서 선물하는 것이다. "내가 사제가 되기 전에도 그러했지만 사제가 된 뒤에도 오늘까지 여러 가지 어려울 때에 나를 은총으로 감싸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뼈저린 감사를 느끼면서 여생을 하느님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박 주교는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은퇴 후에도 교회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교회 차원에서 진행한 시복재판 내용을 정리, 문서화하는 작업을 거의 마무리하고, 이를 번역해 교황청 시성성에 보내게 된다고 밝혔다. 박 주교는 "124위 순교자들 시복시성이 빨리 이뤄지려면 한국교회 모든 신자들이 간절히 원해야 한다"며 시복시성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많이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박 주교는 현관 문 밖까지 나와 기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박 주교 등 뒤로 큰 나무가 인심 두터운 할아버지처럼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 박정일 주교 약력 △1926년 12월 평남 평원 출생 △1944년 숭인상업학교 졸업 △1948년 덕원신학교 고등과 입학 △1951년 가톨릭대 철학과 입학 △1955년 로마 우르바노대학 철학 석사 △1959년 로마 우르바노대학 신학 석사 △1962년 그레고리안 대학, 안젤리꿈대학 사회학 석사 △1958년 로마에서 사제 수품 △1962년 부산 초량본당 보좌 △1964년 문산본당 주임 △1970년 광주 가톨릭대학 교수 △1975년 중동본당 주임 △1975년 광주 가톨릭대 교수 △1977년 5월 주교수품 및 제주교구장 착좌 △1982년 6월 전주교구장 전보 △1988년 12월 마산교구장 전보 △1981~1984년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회의 위원장 △1999~2002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한국 종교 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2002년∼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2002년 11월 마산교구장 은퇴 cpbc2008.03.25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3) 코린토 1서](//cpbc.co.kr/CMS/newspaper/2008/09/rc/266899_1.0_titleImage_1.jpg)
[바오로의 해 2부] 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3) 코린토 1서코린토 공동체의 일치와 단합 호소죽은 이들 부활이 없다는 일각의 주장 일축부활이야말로 복음의 핵심 메시지임을 강조코린토 유적지. 뒤에 보이는 높은 언덕에는 환락과 매춘의 온상인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다. ◇코린토는 기원전 1000년쯤에 세워져 상업과 문화 중심지로 번영하던 도시였으나 기원전 146년에 로마인들에게 점령당하면서 파괴돼 거의 폐허가 됐습니다. 약 100년 동안 방치되던 코린토는 기원전 44년 로마제국의 식민도시로 재건되기 시작했으며, 곧 제국의 속주 아카이아의 수도가 됐지요. 코린토는 남북으로는 그리스 본토와 펠레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교량 역할을, 동서로는 에게해와 아드리아해를 잇는 해상통로의 요충지 역할을 하면서 급성장했습니다. 국제적 상업과 문화 중심지로서 다인종, 다종교가 혼합된 개방적 도시로, 바오로가 복음을 전하던 당시 코린토 인구는 5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바오로와 코린토 바오로가 코린토에 복음을 전한 것은 2차 선교여행 때(50~52년쯤)입니다. 소아시아에서 그리스 본토로 건너온 바오로는 필리피, 테살로니카, 베로이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다인들의 박해를 피해 아테네까지 내려옵니다. 거기에서 다시 코린토로 거처를 옮기지요. 50년쯤입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코린토에 처음 왔을 때 약했고 무척 떨었다고 고백합니다(1코린2,3). 필리피, 테살로니카, 베로이아 등 가는 곳마다 유다인들에게 박해를 받아 몸을 피신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은 데다 아테네에서도 아레오파고 광장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신통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여파인 것 같습니다. 이런 외적 요인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바오로의 결의를 꺾지는 못했지만 복음을 전하는 바오로 사도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자극제 역할은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1코린 2,2)라는 말에서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아퀼라라는 유다인을 만나는데 생업이 같아서 그와 함께 천막짜는 일을 하면서 코린토의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바오로가 테살로니카1서를 집필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18개월 동안 코린토에서 지낸 바오로는 배를 타고 소아시아의 에페소로 건너갑니다. 그리고는 곧 다시 배를 타고 카이사리아에 가서 그곳에서 육로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루살렘 교회에 인사한 후에 안티오키아로 내려갑니다. 이로써 바오로는 두 번째 선교여행을 마치게 됩니다. ◇집필 장소와 배경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1서를 집필한 곳은 에페소입니다. 그러나 집필 시기는 2차 선교여행 때가 아니라 3차 선교여행 때입니다. 바오로는 3차 선교여행(53~58년쯤) 중에 에페소에서 3년 가량 머물렀는데 그때에 코린토1서를 쓴 것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집필 시기는 54~55년으로 추정됩니다. 바오로가 코린토1서를 쓰게 된 동기 또는 배경은 무엇일까요. 한편으로는 코린토 교회에서 여러 가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질의를 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코린토 교회에 대한 좋지 못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코린토는 국제적 상업도시요 문화 중심지여서 문물 교류가 잦았기에 새로운 사상이나 종교에 대해서도 그렇게 폐쇄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필립비나 테살로니카, 베로이아와 달리 코린토에서는 큰 어려움 없이 18개월이나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코린토에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린토는 개방적이고 번화한 도시 답게 이교의 좋지 못한 사상이나 풍습에 대해서도 관대했습니다. 코린토의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매춘부가 수천 명 있을 정도로 성 윤리가 문란했으며, 음란과 환락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에 복음을 전하면서도 코린토의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 쉽게 빠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코린토1서를 집필하기 전에 별도로 써 보낸 편지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과 상종도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1코린 5,9 참조). 그런데도 코린토 교회에서 달갑지 않은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불륜이 계속 저질러지고 있을 뿐 아니라 공동체가 분열돼 있다는 것입니다. 교우들이 이방인 법정에서 소송을 하고 성찬례 때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뿐 아니라 죽은 이들의 부활을 부인하는 교우들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린토 교회는 바오로에게 서신을 보내 당면한 문제에 대해 질의를 해왔습니다. 혼인 문제를 비롯해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문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문제 등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거나 지침을 제시하는 편지를 코린토 신자들에게 써 보냅니다. 이것이 코린토1서입니다. ◇주요 내용 바오로는 우선 코린토 교회의 분열과 관련한 문제에 편지의 상당 부분을 할애합니다(1~4장). 코린토 교회가 바오로파, 아폴로파, 케파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갈라져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어야"(1,10)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바오로는 세상의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를 대비시키면서 지혜롭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에게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 곧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바오로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의 지혜이고 하느님의 힘이라고 설파하면서 코린토 공동체의 일치와 단합을 호소합니다. 바오로는 이어 불륜과 교우간의 송사 문제에 대해 언급합니다(5~6장). 불륜은 그리스도의 지체이자 성령의 성전이 된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교우들간 송사는 교우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교우들끼리 서로 고소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적하지요. 바오로는 코린코 교회가 질의한 혼인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자세히 밝히고 나서(7장),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지에 대해서 원칙을 제시합니다(8~11장). 혼인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바오로 특전'에 관한 대목입니다(7,12-16). 또 음식 문제와 관련해서는 음식으로 인해 형제를 죄짓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는,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10,31)하고 당부합니다. 주님 만찬과 관련해서 바오로는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부당하게 주님의 몸인 빵을 받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만찬 때 가지고 온 음식을 혼자 먹음으로써 형제를 배고프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11장). 이어 바오로는 한 분이신 성령과 성령의 다양한 은사에 대해 설명합니다. 모두가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지만,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는 다양하기에 서로가 이를 존중해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라고 당부합니다(12~14장). 그리고 모든 길 가운데서 으뜸인 사랑의 길에 대해서 설파합니다(13장). 코린토1서의 마지막 부분은 부활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을 일축하면서 부활이야말로 복음의 핵심 메시지임을 강조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5,13-14). ◇코린토1서의 특징 위에서 살펴본 주요 내용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코린토1서는 그리스도 신자 생활과 관련한 여러 가지 원칙과 규범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규범은 머릿속에서 생각해 낸 피상적 규범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파생되는 문제들과 관련됩니다. 이런 점에서 코린토1서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의 신학은 사목적 성격이 강합니다. 법정 송사 문제, 파벌 문제, 혼인 문제, 공동체의 질서와 일치에 관한 문제 등이 특히 그러합니다. 구체적 문제에서 출발해 그리스도인들의 행동 원리 또는 생활 규범을 제시하고 있기에 훨씬 힘이 있어 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코린토1서는 교회사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체성사의 기원이 되는 최후 만찬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11,24-25)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언급(15,3-5)입니다. 이 두 대목은 최후 만찬 및 예수님 부활과 관련한 신약성경 기록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어서 그만큼 사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코린토1서는 교회론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 학자들 견해입니다. 바오로는 한편으로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3,17)이라며 "하느님의 성전"으로서의 교회상을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12,27)이라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상을 제시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므로 거룩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로서 다양성 속에 일치를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코린토 교회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힘있게 선포되는 메시지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바오로의 서간과 신학 사상' 기사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과 신학」(바오로딸) 「서간에 담긴 보화」(생활성서) 「바오로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 「바울로와 그의 서간들」(생활성서) 「바오로 스케치」(빅벨) 「바울로」(분도출판사) 「신약성서입문」 (분도출판사).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분도출판사) 「신약성서 새번역」(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서못자리 그룹공부 교재-나눔터」(기쁜소식) 이창훈2008.09.30

그림이 있는 성경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구약성경 그림이 있는 성경 엮은이 표동자/그린이 김옥순/성경풀이 정태현 /바오로딸/1권 1만원, 2권 1만2000원 ----------------------------------------------- 신앙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양식이 성경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어린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촘촘히 씌어 있는 성경을 읽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춘 성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기대에 딱 맞아 떨어지는 책이 나왔다. 「그림이 있는 성경」 1, 2권이다. 구약성경 전체를 2권으로 엮은 「그림이 있는 성경」은 성경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쓰고 내용 이해를 돕는 그림과 당시 생활을 알게 해주는 사진과 지도 등을 곁들였다. 성경 내용만 풀어쓴 것이 아니라 각 이야기 꼭지마다 그 이야기가 전하는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한 성경풀이가 있어 성경을 읽으면서 삶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먼저 읽으려 할지 모른다. 제1권은 천지창조 이야기를 비롯해서 아브라함 이야기, 이사악과 야곱, 요셉 이야기, 그리고 이집트 탈출과 십계명 이야기, 판관들 이야기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제2권은 사울과 다윗, 솔로몬 등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부터 북 왕국 이스라엘 및 남 왕국 유다의 멸망과 유배, 고국 땅으로의 귀환과 예언자들의 이야기, 마카베오 항쟁 등을 다루고 있다.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수도자인 표동자 수녀의 글과 김옥순 수녀의 삽화, 성서학박사인 정태현 신부의 성경풀이가 잘 어우러져 그림 이야기 성경의 참 맛을 느끼게 해준다. 김운회(서울대교구) 주교는 추천글을 통해 "그림이 있는 성경은 지금까지 출간된 어떤 성경보다 알차고 아름다운 책으로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손색이 없다"며 적극 추천했다. 바오로 딸 수도회는 이번 구약편 1, 2권 발행에 이어 올 가을 셋째 권인 신약 편을 발행할 계획이다. 이창훈 기자cpbc2006.03.02
서울대교구, 춘천, 대전, 원주, 의정부, 부산, 마산, 전주, 제주교구 ▨ 서울대교구 ◇여의도 : 이혈요법 무료 치료(매주 목요일 오후 1시) ◇방배동 : 연극동아리 '옹기마을' 신입단원 모집 ◇마천동 : 영정 사진 무료 촬영 접수(선착순 100명) ◇서초3동 : 제1차 형제 하루 피정(4/29) ◇개포동 :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알뜰 바자(4/29) ◇반포4동 : 스카우트 단복 나눔 행사(4/14) ◇수유동 : 성전 보수 기금 마련을 위한 기부 바자(5/12∼13) ▨ 춘천교구 ◇퇴계 : 매주 일요일 오후 1시~3시 영화상영 ▨ 대전교구 ◇대흥동 : 은혜의 밤(4/16 오후 6시30분) ◇천안 두정동 : 천안 서부지구 사순절 피정(4/3 오후 2시) ▨ 원주교구 ◇용소막 :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상영(4/6) ◇우산동 : 원주 2지구 체육대회(4/22, 횡성) ◇대화 : 그림성경 묵상반 모집 ◇사직동 : 불우이웃돕기 쌀 봉헌 ▨ 의정부교구 ◇운정 : 토막초 모음 ◇호원동 : 향심기도 안내(4/10 저녁 8시, 5000원) ◇대화동 : 본당 10주년 기념 알뜰장터(5/20) 기증품 받음, 사무실 ◇창현 : 성전봉헌식(5/20) 사진전시회 사료사진 기증 받음. ◇신곡2동 : 성모의 날 헌시 공모(4/22까지) ▨ 부산교구 ◇토현 : 성경 애니메이션ㆍ댄스 스포츠ㆍ뮤지컬 잉글리시 등 노는 토요일(놀토) 프로그램 운영 ▨ 마산교구 ◇가음동 : 무료 법률상담 실시(매달 둘째 월요일 오후 6~7시) ◇사파 공동사목 : 선교 축구단 모집(매주일 오전 7시 사파지구운동장) ▨ 전주교구 ◇고창 : 순교자 현양사업 추진회 창립 총회(4/8 오후 2시) ◇줄포 : 치명자산 십자가의 길(4/2 오후 2시 출발) ◇신풍 : 본당 소풍(4/29 보성 녹차밭) ◇소룡동 : 성경쓰기(로마서) 봉헌 (부활대축일 성야 미사 중) ◇평화동 : 평화성서대학(4/17부터) ▨ 제주교구 ◇서귀복자 : 엠마오 행사(오름기행), 4/8 오후 4시 ◇효돈 : 환자를 위한 미사(4/13 오후 8시) ◇성산포 : 가족이 함께하는 성경쓰기 시작cpbc2007.04.05
![[특집]제10차 민족화해 가톨릭 네트워크](//cpbc.co.kr/CMS/newspaper/2007/11/rc/229202_1.0_titleImage_1.jpg)
[특집]제10차 민족화해 가톨릭 네트워크민족화해 일치 위한 봉사는 한국천주교회에 맡겨진 시대적 징표... 북녘 식량난 심각해 내년엔 240만t 부족 예상... 전문 효율성 강화하고 재원 마련 방안 강구김정수 통일부 인도협력단장이 전국 각 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남녀 수도회가 함께한 가운데 북측의 인도적 위기상황과 우리나라의 대응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하느님과의 화해는 한국천주교회의 민족 화해와 일치 운동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김운회 주교)는 8~9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 성모교육원에서 전국 각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남녀 수도회와 함께 제10차 민족화해 가톨릭 네트워크를 갖고, 한국교회의 대북 지원 문제를 집중 성찰했다. 올해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대북 지원'으로 △신약성경을 통해 본 화해와 나눔의 의미(김영남 신부, 가톨릭대 성서신학 교수) △북측의 인도적 위기 현황과 한국의 대응(김정수 박사, 통일부 인도협력단장) △가톨릭 대북 지원의 의의 및 성과, 그리고 발전방향(김훈일 신부, 주교회의 민화위 대북지원소위원회 간사) 등을 다뤘다. 100여 명에 이르는 성직ㆍ수도자, 평신도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첫날(8일) 심포지엄은 한정관(주교회의 민화위 총무) 신부의 기조강연에 이어 세 주제 발표, 토론, 질의응답으로 진행했다. 이어 둘째 날에는 각 교구 민화위 및 수도단체의 올해 활동과 내년 활동계획을 공유하고 주제별 그룹토의 및 발표, 파견미사 차례로 마무리했다. 한정관(주교회의 민화위 총무) 신부는 기조강연에서 "사랑으로 이뤄지는 대북 지원은 북녘 교회의 재건과 선교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제 대북 지원에 대한 교회의 그동안 노력을 살펴보고 새로운 방향과 새로운 시도를 계획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첫 발제에 나선 김영남 신부는 바오로 서간, 특히 '화해의 편지'(2코린 1-9장)를 통해 본 화해와 나눔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본 화해와 나눔의 의미로 나눠 성경상 화해와 나눔의 뜻을 파고들었다. 김 신부는 화해에 관한 바오로의 신학은 2코린 5,18-20에 농축돼 있다며 △화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은총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화해를 주도한 분은 전적으로 하느님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화해는 다른 모든 화해(공동체와의 화해 및 인간 개별적 화해 등)를 위한 기초이고 △헌금이라는 나눔은 하느님과의 화해가 참되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지라고 확인했다. 이어 "그리스도인은 화해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이뤄주시는 선물이라는 점을 명심하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며 "한국천주교회는 민족 화해와 일치에 대한 봉사야말로 이 시대가 교회에 요구하는 가장 큰 시대적 징표의 하나로 이해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를 한 김정수 단장은 북측의 인도적 위기 배경은 경제 침체에 있다고 보고, 북녘의 식량난과 보건의료 문제, 수해 피해 및 파급효과, 산림 황폐화 문제를 개관하며 우리나라 대북 지원 현황과 부문별 지원 현황을 공개했다. 김 단장은 북녘의 식량 수요량은 매년 650만t에 이르지만 전년도 생산량은 450만t 안팎에 불과해 해마다 200만t이 부족한 형편이라며, 지난 8월 수해로 북녘은 식량 생산이 올해 40만t이나 감소해 내년 식량수급이 심각한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역대 정부의 대북지원 현황을 보면, 민간 차원 지원을 합쳐 문민 정부 당시 2314억 원, 국민의 정부에서 5990억 원, 참여 정부에서 1조1654억 원 등 12년간 모두 1조9958억 원을 무상지원했지만 국민 1인당 연평균 부담액은 문민정부 때 1886원, 국민의 정부 때 3565원, 참여 정부 때 7777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 주제를 발표한 김훈일 신부는 "대북 지원은 그리스도적 사랑의 실천이라는 당위성과 함께 민족적 갈등을 치유하고 해소하는 실용적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며 "어려운 형편에 있는 북녘 주민들을 돕는 것은 먼저 화해 손길을 내미는 용기 있는 신앙 실천"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교회의 민화위를 중심으로 한 각 교구 민화위와 남녀 수도회, 한국 카리타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북지원 활동을 개괄한 뒤 교회 대북 지원 문제점으로 △초기에 어느 민간단체보다 활발했으나 점차 활력이 떨어지고 있고 △지원 방식과 내용이 단조롭고 △대북 지원금 모금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꼽았다. 따라서 향후 △개별 지원의 독자성을 살리되 일부 공동 지원 사업장을 운영하고 △의료ㆍ보건ㆍ교육 분야 지원을 통해 대북 지원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며 △새로운 대북 지원 재원 마련을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북녘 상주 지원센터' 건립과 같은 장기적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아울러 북녘에서도 취약 지역 및 계층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고 형제적 사랑을 재확인하며 기도운동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pbc.co.kr오세택2007.11.13
![[예수님 흔적 따라 장벽을 넘다] <4> 라자로를 살리심-베타니아](//cpbc.co.kr/CMS/newspaper/2008/06/rc/253338_1.0_titleImage_1.jpg)
[예수님 흔적 따라 장벽을 넘다] 라자로를 살리심-베타니아일어나 나와라, 주님의 빛으로 나아가라 동예루살렘이스라엘의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해 관광안내소에서 나눠주는 지도를 받아보면 어디가 팔레스타인인지 알 수 없다. 1967년 이후 이스라엘 군사점령지인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지도에 표기하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법으로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이 동, 서로 나뉘어 있고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 의해 군사 통치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이라는 사실을 아는 외국인은 많지 않다. 이스라엘은 1948년과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각각 서, 동 예루살렘을 군사점령했다. 이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정책은 일관된 것이었다. 그것은 통일된 예루살렘(United Jerusalem), 대 예루살렘 (Greater Jerusalem)으로 요약된다. 동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수를 최대한 줄이고 유다인 수를 늘리며,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로부터 분리시켜 이스라엘에 완벽하게 합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수를 줄이려는 여러 가지 차별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동예루살렘의 약 40%에 이르는 땅을 그린벨트 혹은 공공택지로 묶어 놓고 유다인 정착촌이나 유다인만을 위한 도로 건설에 사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해서는 한 가구의 집도 짓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구 자연증가로 인한 주택부족과 인구 밀집은 동 예루살렘의 많은 지역을 빈민가로 만들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스스로 예루살렘을 떠나도록 하려는 고도의 점령정책이다. 동예루살렘 거리 풍경 평화에 목마른 예루살렘예루살렘은 '평화의 기초' 혹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어느 한 신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예루살렘은 지난 기나긴 역사 동안 각기 다른 시기에 받아들인 세 자녀를 갖고 있다. 이는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지칭하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자녀들 중 하나가 주권자임을 주장할 때마다 그는 다른 형제의 권리를 부정하고 그들을 억압했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비잔틴 제국시대와 십자군 전쟁시대에 취한 행동방식이고 무슬림들이 그들의 지배기간 동안 취한 방식이며 이스라엘이 오늘날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각각의 지배시기마다 그들은 높은 도덕성을 운운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지배자가 되었을 때마다 그들은 군사적 오만함과 종교적 우월감, 그리고 다른 형제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그들을 말살하려 했다. 이스라엘도 역시 이전에 다른 지배자들이 했던 것처럼 배타적이고 광신적 애국주의로 정착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이렇게 예루살렘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특히 동예루살렘의 아랍 팔레스타인 마을에 머무는 동안, 예루살렘이 겪는 고통을 지켜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평화에 목말라하는 예루살렘을 통해 진정한 평화의 열쇠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다. 라자로의 무덤 이스라엘 성지 중에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라자로의 무덤이었다. 절망 속을 헤맬 때마다 나를 불러 일으켜 세우시던 주님의 목소리, 무덤 속에 있는 라자로를 생각하시며 눈물 흘리시던 예수님 모습은 항상 내게 큰 위로가 돼줬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께였다. 라자로 무덤 앞 쪽에 세워진 기념 성당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성당 앞 기념품 가게 아저씨가 성당은 점심시간에 문을 닫지만 라자로 무덤은 언제나 열려 있다며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언제나 열려있음.' 2000년 전 예수님께서 그 문을 여신 후 누가 그 문을 닫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며 나는 열려진 문으로 들어섰다. 계단은 10m 정도 아래로 내려가게 돼 있었다. 작은 전구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의지해서 무덤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내가 성경책을 펴 라자로를 일으켜 세우심에 대한 장면을 읽으려는 순간 불이 나갔다. 잠시 당황했다. 암흑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계단 위로부터 흘려 들어오는 태양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시간은 내게 또 다른 선물이었다. 나는 라자로 무덤 안에 있다. 계단 위쪽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제외하고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예수님은 죽음에 대한 깊은 명상으로 나를 이끄셨다. 여러 날 라자로는 이곳에 누워있었다. 아마도 내가 앉아 있는 바로 이곳에 천에 싸여 어둠 속에 누워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흘째 되던 날 강한 명령의 목소리가 바위를 뚫고 울려 퍼졌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 43). 이것은 '명령'이었다. 그리고 죽은 자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볼 수 없었으나 그는 들을 수 있었다. 바위는 굴려 치워졌고 빛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빛으로 나왔다. 나는 어둠 속 무덤 안에 앉아 있었다. 한 시간 동안 계속 말씀을 들었다. "일어나 나와라." 나는 알 수 있었다. 만일 내가 예수님께 보다 큰 믿음으로 머물러 있다면 어느 날 그 말씀을 듣게 되리라는 것을…. 온 우주의 어떤 것도 나를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 목소리, 그 말씀 "나오너라"는 나를 어둠으로부터, 죄와 죽음으로부터, 모든 낡은 껍데기와 너울을 벗고 예수님의 품에 안기게 할 것이다. 라자로의 무덤 안에서 나는 나 역시 죽음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를 풀어주어 걸어가게 하여라"(요한 11,44).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 빛으로 나아갔다. 이승정(한국 카리타스 대북지원 실무책임자) cpbc2008.06.11
룻기 해설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장 비서) 영웅이나 위인들의 이야기가 주제인 「판관기」와 「룻기」 뒤에 나오는 「사무엘기」와는 달리 「룻기」는 '지극히 평범한' 두 여인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어떤 극적 사건의 전개나 거창한 논리 전개 없이 '지극히 평범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분량이 적은 이 소책자는 우리로 하여금 흥미를 갖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을 지닌 수준 높은 문학 작품입니다. (1) 룻기의 분류 룻기는 새 성경 순서에 따라 판관기와 사무엘기 사이에 나오는데, 이는 그리스어 성경인 '칠십인역' 순서를 따르는 그리스도교 전통에 기인합니다. 칠십인역에서는 룻기가 판관기나 사무엘기 등과 함께 '역사서'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성문서'로 분류해서, 주요 축제 때 낭독되는 '축제 오경'(룻기, 아가,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의 첫 번째 소책자로 분류했습니다. (2) 룻기의 내용 이스라엘 땅에 심한 기근이 들어서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두 아들은 모압 여자들과 혼인하지만,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 일찍 죽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엘리멜렉의 아내인 나오미는 사랑하는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을 각자의 친정으로 되돌려보낸 후 고향으로 되돌아가서 친척들 도움을 받아 연명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오미의 설득을 받은 오르바는 자기 친정으로 되돌아갑니다. 하지만 룻은 막무가내로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따라갑니다. 마침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어서 부지런한 룻은 곧바로 이삭줍기에 나서는데, 우연히 베들레헴의 유지인 보아즈의 밭에 이르게 되고, 보아즈는 룻에게 친절을 베풀어 이삭을 많이 주울 수 있도록 배려해 줍니다. 마침 가까운 친족으로서 나오미 일가를 보호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 '구원자'(고엘)인 보아즈는 룻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룻은 아들을 낳아 시어머니 품에 안겨 드리는데, 그가 '오벳'입니다. 그런데 이 오벳은 '이사이'의 아버지이자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이로써 성경은 '성왕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모압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3) 핵심 신학 사상 신기하게도 룻기에는 어떠한 비난조의 말도, 논쟁적 언사도 찾아볼 수 없으며, 악인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친정으로 돌아간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이성적 권고에 따라 정상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며, 보아즈보다 룻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더 있는 '제일 구원자' 역시 경제적 손실을 계산한 뒤에 물러섰을 뿐입니다. 둘 다 룻과 보아즈의 덕성을 더욱 빛나게 해줄 따름입니다. 이렇게 룻기는 무엇을 비판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민족이나 종교나 자기 이해 관계 등에 따른 편협성이나 선입견 없이 호의와 존경심을 지니고 서로를 위해야 한다는 긍정적 목표를 지닌 이야기입니다. 민족이나 종교나 나라가 서로 다르다고 서로를 박해하고 미워하고 죽이는 모습은 불행하게도 오늘날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룻기의 주인공들은 그럴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cpbc2007.05.30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 순간이 행복 그 자체입니다!봉헌생활의 날 특집 「수련자들의 대화」 ▨ 방담 참가자 △이나영 수녀(발레리, 29,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2003년 입회) △한지연 수녀(마리토마스, 29,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2004년 입회) △홍훈표 수사(이시도르, 31, 살레시오회, 2006년 입회)깉은 길을 걷는 세 수도자의 표정이 무척 밝다. 봉헌생활의 기쁨을 보여주는 듯하다. 백영민 기자 heenel@pbc.co.kr"엄격한 공동체 생활 등 수도원은 군대랑 유사한 점이 많아요. " "저는 수도복을 입고 나서 제가 천사인 줄 알았다니까요." "하하하!" 봉헌생활의 날(2일)을 앞두고 '봉헌된 삶'의 여정에 발을 내디딘 젊은 수련자 3명이 서울 정릉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본원에서 만났다. 서로 초면인데도 만나자마자 웃음꽃을 피우는 이들에게서 개성과 젊음이 절로 느껴진다. 봉헌생활에 조금씩 맛을 들여가는 이들이 느끼는 기쁨과 보람은 무엇일까. 또 수도자가 되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는 이들만의 어려움은 무엇일까. 얘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젊은이란 점이 3명의 가장 큰 공통점이네요. 하지만 수도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동기는 각자 다를 텐데. "입회 전엔 평범한 대학생이었어요. 첫 영성체는 중학교 2학년 때 했고요. 저는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처음 느꼈어요. 성경을 알면 알수록 하느님이 저를 부르시는 것 같고, 그 분께 제 자신을 봉헌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성당 언니가 북한산 자락에 '영원한 도움…' 어쩌고 하는 수녀원이 있다길래 용감하게 문을 두드렸지요."(한지연 수녀) "저는 은행에 다니다가 입회했어요. 삶의 참된 의미를 찾고 싶었다고나 할까."(홍훈표 수사) -서로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은데. "수녀님들은 복장이 잘 갖춰져 있는데 저희는 자유복장이에요. 수도복을 입고 첫 외출할 때라든지 평소 복장이 신경쓰이지 않나요?"(홍 수사) "오히려 복장 덕을 본 경우가 많아요. 길을 가다가도 신자 분들이 차를 태워주신다든지, 시장에 장을 보러 가도 조금 더 얹어 주신다든지 하는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호감과 호의를 표해주시니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이나영 수녀) "저희는 수도복을 안 입으니까 특별히 잘 대해주는 게 없어서 아쉽네요. 대신 집 모양으로 생긴 수도회 배지를 달고 다니는데 누가 '어디서 오신 분들이세요?'하고 물어보면 '주택공사'라고 대답해요."(홍 수사) "하하~ ." -몇 년간의 봉헌생활 소감은. "조금 늦은 나이에 입회한 편인데 군 복무를 마치고 와서 그런지 엄격한 공동체 생활이 군 생활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군대보다 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수도원에 와서 보니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더군요. 번듯한 직장인이었기에 수도생활도 자신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우선 나를 버려야 수도원 형제들과 한 식구가 되고, 나아가 하느님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적으로 조금 성숙한 것 같아요."(홍 수사) "동감이에요. 저는 제가 천사인 줄 착각했었다니까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수녀원이 '천사들의 집합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죠."(한 수녀) -수련생활의 어려움이라면. "신앙도 부족하고 외동딸로 자라 친화력도 부족한 제가 과연 수도자의 길을 올바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어요. 부모님과 친구들도 '몇 달 뒤에 나오겠지'하며 보내주셨는데 벌써 5년이 됐어요. 그리고 하느님께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는 이 순간이 행복해요."(이 수녀) "특별히 힘든 점은 없어요. 그래도 가장 힘든 점이라면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자신을 비워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잖아요. 선배 수사님들은 가끔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하세요. 영적으로 허기를 느끼기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저는 지금 채우기커녕 비우는 단계의 수련자라서…."(홍 수사) "수련기간에는 신문이나 방송은 금지에요. 하지만 수련자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알아야 하기에 태안 기름유출사고나 대통령 선거 등 큰 소식은 함께 모여 TV로 접해요. 물론 평화신문은 언제든지 볼 수 있어요. 호호~ ." (한 수녀) -그동안 어떤 보람을 느꼈나요. "저희는 교육 수도회답게 여름에 한 달 동안 안동교구 농은수련원으로 교육 지원을 나가는데 아이들 프로그램 준비로 매일 새벽 2시에 잠들고 5시에 일어나야 하는 강행군이 계속되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 요즘 뉴스에선 아이들이 달라졌다, 무섭다 하는데 저는 오히려 아이들의 순수한 면만 보이더라구요. 그게 바로 하느님 체험 아닐까요."(이 수녀) "저희도 그렇습니다. 청소년이 없으면 살레시오회는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많이 배우고 깨달아요. 입회 전에는 수도자하면 기도만 하는 무거운 분위기를 연상했는데 실제 살아보니 그게 아니에요. 끼있고 재치 넘치는 수도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선배 수사님들 옆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습니다."(홍 수사) -봉헌생활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수도생활이 어떻다고 말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실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피부에 와닿지 않을 거예요. 피정 형식으로라도 수도생활을 간접 체험해 보길 권합니다. 기도와 침묵 속에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중요해요. 저는 젊은이들에게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묻고 싶어요."(한 수녀) -만일 봉헌생활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현재 삶의 모습은. "사회생활에 충실하지 못했을 거예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하느님에 대한 갈망 때문에 여전히 고민하고 있겠지요. 저는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제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입회했어요. 그 선택을 기꺼이 받아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요."(한 수녀) "저 역시 한 수녀님처럼 뭔가 알 수 없는 갈증을 느낀 채 살아가고 있을 거에요."(이 수녀) "성과와 성취욕에 전전긍긍하고 있겠지요. 그런 것들을 떨쳐버리고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이 순간이 행복합니다."(홍 수사) 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 봉헌생활의 날이란?봉헌생활의 날(2월 2일)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7년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한 이들을 기억하고 격려하기 위해 제정했다. 성탄 후 40일째인 이 날은 성모 마리아가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고 아기 예수를 성전에 바친 것을 기념하는 주님 봉헌축일(루카 2,22-38)이다. 교회는 이날 수도회ㆍ사도생활단ㆍ재속회ㆍ은수생활ㆍ동정녀회 등에 몸담고 있는 이들, 특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하느님을 증거하는 수도자들을 기억한다. 이힘2008.01.29
![[연길교구 설정 80돌 특별기획] 연길 5000㎞ 대장정(5) 팔도구본당](//cpbc.co.kr/CMS/newspaper/2008/07/rc/256684_1.0_titleImage_1.jpg)
[연길교구 설정 80돌 특별기획] 연길 5000㎞ 대장정(5) 팔도구본당박해에도 지지않는 신앙, 연변전역으로팔도구본당 위치도 팔도구(八道溝, 빠또꺼우)는 '간도 신앙의 못자리'에 비유된다. 숱한 사제와 수도자 성소 발굴, 교우촌에서 비롯되는 끈끈한 결속력, 문화혁명을 이겨낸 단단한 믿음은 팔도구공동체를 간도교회 주추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래서 팔도구 신자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간도 신자 가운데 80%는 팔도구 출신"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이번 호는 '간도의 로마'로 꼽히는 팔도구본당을 살핀다. #수난과 박해, 마침내 꽃으로 핀 팔도구공동체 "윤 동무, 있소?" 1967~68년 어느 날 새벽. 당시 팔도구본당 주임이던 류위팅(劉裕庭, 중국인 사제) 신부가 윤영복(우르바노, 72)씨 집을 찾아왔다. 류 신부의 갑작스런 방문에 윤씨는 놀라서 방문을 열었다. "아니, 신부님! 이런 어둑새벽에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심상찮아요. 용정 제2고급중학교 홍위병들이 우리 성당을 허물려고 한대요." "예?" 깜짝 놀란 윤씨가 옷을 갈아입고 성당에 달려가니, 류 신부는 벌써 감실에 모신 성체를 영하고 있었다. 이에 윤씨는 류 신부에게서 제대 성석과 성광, 라틴어 미사경본 등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 10여 차례 비닐에 싸 뒷산에 묻었다. 성물을 묻자마자 용정에서 조선족 홍위병들이 달려와 망치와 도끼로 성당을 허물고 박해의 광풍이 불었다. 그 와중에 성당 지붕에 올라갔던 홍위병 1명이 떨어져 죽고 몇몇은 부상을 당했다. 팔도구본당 초대 주임 최문식(1881~1952, 서울대목구) 신부와 전 공동체가 1917년 정성 들여 짓고 후일 개축한 성당은 이처럼 집단적 광기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후 문화혁명 기간 내내 10여 년간 류 신부는 고깔모자를 쓴 채 온동네를 다니며 조롱을 당하고, 분뇨통을 담은 똥지게를 지고 강제노역을 해야 했고 밤엔 회계일도 봤다. 신자들 또한 성경과 성가책을 빼앗기고 수난을 당했다. 그럼에도 팔도구 공동체의 신앙과 열심까지 꺾지는 못했다.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쇠처럼, 그 엄혹한 박해에도 팔도구에선 집집마다 기도소리가 흘러나왔다. 1979년 중국에 개혁ㆍ개방이 이뤄지면서 공동체는 신앙을 되찾았고, 1992년 7월 19일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아 연합회의 지원으로 옛 성당 부지 위쪽 언덕에 성당을 재건축해 봉헌했다. 이 때 윤씨는 27년 전에 묻었던 성석과 성광, 라틴어 미사경본을 찾아내 봉헌 때 성당에 봉안했다. 공동체는 또 2003년 8월 5일 '팔도구 교우촌 건설 100주년 기념축제'를 거행하기도 했다. #끈끈한 공동체 결속력, '간도의 로마' 일궈내 이처럼 굳건한 신앙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1903년 용정공소에서 분가, 조양하(朝陽河, 초양허)에 자리잡은 조선이주민 10여 가구가 뿌린 복음이 그 씨앗이다. 당시 김계일 등은 이주하자마자 수남(水南)촌에 공소집을 마련해 신자 2100여 명의 공동체로 컸다. 조선대목구장 뮈텔(G. Mutel) 주교는 이에 1910년 9월 26일 최 신부를 파견, 간도 세 번째 본당으로 '조양하(훗날 팔도구)본당'을 설정하고 간도 북쪽 지역 사목을 맡긴다. '간도의 로마'로 불리는 팔도구본당의 출발이었다. 그러나 영광과 수난은 함께 뒤따랐다. 1917년 기존 공소터에 공사비 1000위안을 들여 벽돌로 '성모성심'성당을 신축하고 이듬해 1월 4년제 사립 조양학교(훗날 해성학교)와 조양정녀학교를 설립, 교육에도 힘을 쏟았지만, 최 신부와 신자 10여 명, 외교인 30여 명이 1919년 7월 마적들에게 납치돼 205일간 수난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성당에 총 400정이 있다는 헛소문 탓이었다. 이후 퀴겔겐(K. Kugelgen)ㆍ슈미트(C. Schmid)ㆍ에크하르트(A. Eckhardt)ㆍ차이라이스(V. Zeileis)ㆍ트라볼트(A. Trabold) 신부 등은 간도 최초 성체거동(1924년), 대령동(大嶺洞, 따링둥, 훗날 차조구)본당 분할(1926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전교ㆍ교육ㆍ의료 사업(1936) 등을 통해 지역의 등불이 된다. 하지만 1945년 9월 해방 직후 성당에 난입한 소련군에 의해 첼러(E. Zellner) 수사가 피살되고, 1946년 7월 중국 인민해방군 8군에 에그너(R. Egner) 신부와 수도자들이 체포돼 1952년 8월 추방되면서 본당은 폐쇄된다. #연변 전역으로 뻗어나간 팔도구 공동체 순교의 믿음은 연변 전역으로 뻗어나간 팔도구 공동체의 버팀목이다. 연길(延吉, 옌지)서 북서쪽으로 23㎞ 떨어진 용정시 조양천진 팔도구에 들어선 것은 5월 늦은 오후였다. 그런데도 이날 오후 4시 평일미사에 40여 명이나 참례했다. 이런 열심이 현재 중국 내 조선족 사제 8명 중 윤덕헌(안도ㆍ돈화본당 주임)ㆍ조광택(용정ㆍ화룡본당 주임)ㆍ리광필(연길본당 왕청공소 보좌)ㆍ권혁화(성 베네딕도회 수사, 길림교구 코첸[口前]본당 주임) 신부 등 4명을 배출한 저력이 되었다. 조선족 수녀 또한 개혁ㆍ개방 이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조금선(베네딕타)ㆍ권옥산(프란체스카, 이상 연길분원) 수녀와 길림성가회 윤덕향(마리아) 수녀 등 3명을 배출했다. 성당에서 나와 언덕에 오르니 팔도구공소(현재 연길본당 관할) 묘역이다. 묘역에는 첼러 수사와 공산 치하 용정에서 인고의 삶을 살다 2001년 선종한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감정옥(안나) 수녀 등 수도자들 묘소가 들어서 있다. 잠시 고인들을 기리며 화살기도를 바치고, 옛 성당터에 세워진 초가 양로원에 들렀다. 이정순(안나, 81) 할머니 등 4명이 노후를 보내는 보금자리다. 양로원에서 만난 김성숙(엘리사벳, 71) 할머니는 "왕(에그너) 신부님께서는 늘 어깨에 거는 서양식 앞치마를 두르시고 낡은 성당 구석구석을 고치며 노동하는 모범을 보여주신 것을 기억한다"고 회고하고 "이젠 아주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로원을 나와 전 함흥교구장 서리 겸 덕원자치수도원구장 이동호(플라치도, 1935~2006,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아빠스의 생가를 지나 내려오는 길에 서울 성 분도병원(2001년 폐쇄)과 용정시 인민정부가 1996년에 세운 '팔도진위생원'에 잠시 들렀다. 옛 의료사도직의 전통을 잇는 이 진료소는 건립 당시 의료진이 20여 명이나 있었지만 지금은 2명밖에 없다고 한다. 해성학교 또한 옛 모습이 아니다. 1989년 옛 학교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탓에 신축건물만 덩그라니 서 있고, 옛 수녀원 및 진료소 터가 유적지로 남았을 뿐이다. 연길로 돌아오는 길에서 돌아본 팔도구는 선홍빛 노을에 잠겨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cpbc2008.07.01
가족사랑 편지쓰기 여섯째 주 으뜸글-내 동생 이름은 세 개!세상에 나올때 "응~애" 소리 한마디 못하고, 바로 중환자 응급실에 실려가 날카로운 바늘에 생명을 맡긴 안젤라. 딸은 어미 품에 안겨 보지도 못한 채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 눈물도 흐르지 않았습니다. 40여일 만에 집으로 안고 온 안젤라는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보챘습니다. 친정집에 부처님을 모셔놓고 30년을 지내왔기에 이런 기막힌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점쟁이를 찾아 다니며 방황했습니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아이와 함께 떨어져 죽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안젤라를 통해 저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어느날, 울며 보채는 안젤라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묵주와 기도서를 꺼내 안젤라 울음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울면서 묵주를 돌리고, 기도서를 읽었습니다. 모녀의 부르짖음은 새벽녘에야 끝났습니다. 아이를 업은 채 지쳐 잠든 제 모습을 '그분'은 보고 계셨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 뇌성마비 1급 진단을 받고 유아실에서 모녀가 울던 날! 책자 표지의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매일미사>를 삼년 동안 읽으면 신ㆍ구약성경의 모든 부분을 읽게 됩니다.'라는 구절. 그냥 성경을 읽다보면 안젤라가 나아질 것 같은 기대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아이 상태가 중증이라 삼년은 꿈같고 우선 일주일 만이라도 채워보려는 생각으로 일주일, 한달, 석달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1년, 마침내 3년을 채우던 날! 저 혼자만의 기쁨에 빠져 뭐라 형언할 수 없었고, 이제는 세상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니 안젤라가 힘겨웠던게 아니라 '나'를 버리기 위한 준비가 힘겨웠음을 고백합니다. 장애인 부모로 살아가야 하는 제 자신이 세상과 맞설 용기가 없어 두려움에 떨었던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2면으로 이어짐 ▶1면에서 이어짐 7살짜리 아들 라파엘. 주일학교를 처음 등록하던 날, 라파엘은 "엄마! 지선이 이름은 왜 세 개야?"라고 물었습니다. "유지선-안젤라-뇌성마비." 라파엘은 성당 사람들에게 "제 동생 이름은 세 개예요"라고 말합니다. 어른들이 동생 이름을 물으면 "뇌성마비예요~"라고 합니다. 안젤라는 5년만에 주일학교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그날도 모녀는 그림자처럼 함께 나가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값진 상으로 기억됩니다. 라파엘이 복사를 서면서 그 상을 건네줬습니다. 그날 오빠 라파엘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우리 셋은 많이 울었습니다.어느덧 13살이 된 안젤라는 지금 가족 곁에 없습니다. 지난 4월 1일 가족 품을 떠나 뇌성마비 재활원에 입소했습니다. 이 뼈아픈 이별 또한 견뎌 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5월 5일 어린이 날! 안젤라 없이 처음 지낸 아픈 날이지만, 안젤라의 새로운 삶을 위해 이제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다. 박연희 엘리사벳cpbc2007.06.27
![[공의회 과정]15 주교교령/ 조규만 주교(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cpbc.co.kr/CMS/newspaper/2007/09/rc/221763_1.2_titleImage_1.jpg)
[공의회 과정]15 주교교령/ 조규만 주교(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주님의 충실한 사도로 사제, 신자들에게 성덕의 모범돼야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한홍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평신도학교 '공의회과정' 2학기를 4일 개강했다. 이번 학기에는 9개 교령과 3개 선언, 공의회 정신에 입각한 종교간 대화, 공의회 정신과 한국교회 등을 다룬다. 1학기와 마찬가지로 공의회 과정을 지상 중계한다. ▨성경에 비추어 본 주교직 조규만 주교성경에는 오늘날 교회제도의 주교직과 꼭 맞아 떨어지는 직책은 없다. 하지만 오늘날 주교직과 관련되는 몇가지 직책이 있다. 첫째, 사도(αποστλοs) 직책이다. 성경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제도로, 초대교회에서는 12제자를 지시했지만 반드시 12제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생공동체 성장을 위한 건설에 투신한 초대 그리스도인들도 포함한다. 사도 바오로가 그렇다. 사도들은 최고 감독권들 지녔다. 문제가 생기면 사도들에게 문의하고 해결방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사도 15)가 그 대표적이다. 그 후 점차 '사도성'이 중요한 주제가 돼 오늘날까지 사도 전래성은 교회 정통성의 한 기준이 되고 있다. 주교들을 바로 그 사도들의 후계자로 간주한다. 둘째, 원로 또는 장로(πρεσβυτεροs)라는 직책이다. 초대 공동체부터 있었던 제도로,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 주변에는 일단의 원로들이 있었다(사도 11,30;15,2;21.28). 여기서 원로들은 '사도'들과 구별되지만 교회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했던 지도자들로 나타난다.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서간에서 장로들을 지도자로서 존경해야 할 것을 권고한다. 세째, 감독(επισκοποs)이라는 직책이다. 라틴어로 주교라는 단어 '에피스코프스'(Episcopus)는 이 희랍어에서 유래한다. 성경(1티모 3,2-7)에는 이들이 '가르치고 지도하며 교회를 돌봐야 하는' 사람들로 언급된다. '감독'은 원로단의 으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성경을 토대로 주교는 사도들의 후계자요, 사제들이라고 불리는 원로들을 거느렸던 중심인물로 초대교회 감독이라는 직책과 상응하다. ▨오늘날 교계제도에서 본 주교직 교계제도는 사도시대부터 부제, 신부, 주교 3가지로 구분해왔다. 그런데 공동체가 점점 커지면서 주교직에 여러 계급, 즉 교황, 추기경, 대주교, 총대주교, 교구장 주교, 보좌주교 등이 생겨났다. *교황 「주교교령」 내용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는 개정된 교회법 제331조에는 교황의 직책과 명의, 권한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주께로부터 사도들 중 첫째인 베드로에게 독특하게 수여되고 그의 후계자들에게 전달될 임무가 영속되는 로마 교회의 주교는 주교단의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이 세상 보편 교회의 목자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임무에 의하여 교회에서 최고의 완전하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직권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 교황은 주교가 아니어도 선출될 수 있다(교회법 제332조). 그러나 교황으로 선출되면 바로 주교로 서품돼야 한다. 또 교황직을 사퇴할 수 있지만 외부 강압에 의한 사임은 무효다. 교황은 △로마의 주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들의 으뜸 후계자(주교단 단장) △모든 교회의 최고 제사장 △이탈리아 교회의 수석주교 △로마지역의 수도교구장, 대주교 △바티칸 시국의 통치자 △종들의 종 등 칭호가 많다. 그만큼 일이 많다는 얘기다. "나는 너무 많은 일을 했습니다…쉬고 싶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외로웠습니다"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했을 만큼 교황의 직무는 과중하다. *주교단 "주교 임무는 교황과 일치하여 보편 교회에 대한 교도권과 사목 통치를 수행한다. 주교는 교계적 친교로 주교단의 구성원이 된다"(「주교교령」 3~4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들이 주교단 형태로 그들 교구만이 아닌 세계 교회를 통치하는 역할을 한다고 가르친다. 또 교황이 주교단 단장이고 그의 승인 없이는 주교단이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세계 모든 주교들은 세계공의회, 주교대위원회(주교 시노드), 주교회의, 교황청 사절 또는 관료, 관구 소속 등으로 참여해 주교단의 공동체성을 보여주고 교황 및 다른 주교들과 협력하게 된다. 교황과 유대 관계에 있는 공의회는 가르침과 통치에 있어서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나 공의회 소집과 결정은 교황이 승인하고 공포하지 않으면 구속력이 없다. 주교 시노드는 보통 3~4년마다 소집된다. 이 회의는 주교들의 연대성을 강조하고 교회 최고 목자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협력을 제공하려는 제도적 방법이다. 주교들은 교황청의 외교 업무를 관장하는 국무원과 신앙교리성 등 9개의 성, 평신도평의회 등 11개 평의회에도 참여한다. 서열상 성이 평의회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특권과 권한에 차이가 있다. 평의회 임원은 평신도도 있지만 성의 임원은 오직 추기경과 주교들로 구성된다. 주교들은 또 교구장으로서 자기 교구의 일만이 아니라 주교회의에 속함으로써 한 국가나 한 지역 신자들을 위해서도 공동책임을 진다. 주교회의는 개별교회를 넘어 여러 교회 공동선과 주교들간의 결속을 위한 조직 기구이다(「주교교령」37항). 주교회의 회원은 해당 지역 모든 교구장을 포함한 주교들이다. 교황대사는 여기에 속하지 않으며 은퇴한 주교는 회원에서 제외되나 특별한 임무를 맡으면 회원이 된다. 주교회의는 주교들의 협의기구이지 교구 상부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어떠한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 *추기경들 추기경에도 주교직급, 사제직급, 부제직급 등 서열이 있다. 주교직급 추기경에는 9명이 있고 이 중 3명이 동방전례 총대주교이다. 대부분 교황청에 근무하는 장관 추기경들이다. 사제직급에는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150명이 있는데, 이 중 김 추기경이 가장 서임이 빠르다. 부제직급에는 29명이 있으며, 대부분 교황청에 근무한다. 추기경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교황선출과 교황을 자문하는 일이다. *교구장 주교들 교구장 주교는 자신에게 맡겨진 신자들의 영적 선익을 위해 특히 세가지 직무, 즉 가르치는 임무(교도직, 예언직), 거룩하게 하는 임무(성화직, 사제직) , 다스리는 임무(사목직, 왕직, 사제직)를 지닌다. 주교들의 교도직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유래하며, 일차적으로 주교에게 주어진 것이다. "교도 임무는 주교들의 임무 가운데 첫째가는 것이다.…교회 가르침에 따라, 육신 생명과 자유를 지난 인간, 가정과 그 단일성, 안정성, 자녀 출산과 교육, 시민 사회와 그 법규, 직업, 노동과 휴식 ,예술, 기술 발명, 빈곤과 풍요, 이 모든 것을 교회가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 밝혀 주어야 한다"(주교교령 12항). 그리스도교 사제직은 그리스도 삶의 희생을 재현하고 지속적으로 현재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성체성사 거행이다. 주교들의 왕직, 사목직은 본질적으로 봉사직이다. ▨주교 선발과 사퇴 교회법은 주교 후보자 적격성 요건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378조). △확고한 신앙, 풍행방정, 신심, 영혼에 대한 열정, 지혜, 현명 및 인간적 덕행이 뛰어나고 또한 담당할 직무를 완수하기에 적합한 자가 되게 하는 기타의 자질을 구비하고 있는 자 △좋은 평판을 받는 자 △적어도 35살이 된 자 △사제 수품 후 적어도 5년이 지난 자 △사도좌에 의해 승인된 고등 교육기관에서 성서학이나 신학이나 교회법학의 박사 학위나 적어도 석사 학위을 받은 자 또는 적오도 이러한 학문에 참으로 정통한 자. 또 교구장 주교나 보좌주교나 누구든 75살이 되면 교황에게 사퇴를 표명하도록 권고되고 있으며, 건강이나 그 밖의 중대한 이유로 자기 직무의 사토릴 표명하도록 권고되고 있다. 주교는 어려운 직무의 하나이다. 주교 직무는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참 스승' '대사제' '목자'여야 하고 '주님의 충실한 증인' '성덕의 모범'이어야 하고, 많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주교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한다. ◇교회법에 규정하고 있는 교구장 주교의 의무 사항 -사제들을 특별한 염려로 보살피고 적절한 생활비와 사회 보장도 법규범대로 마련해야 한다(384조). -사제 및 선교사 성소, 수도 성소를 최대한 증진시켜야 한다(385조). -강론과 교리교육에 관한 교회법 규정이 준수되도록 해야한다(386조). -성덕의 모범이 되며 신자들의 성덕을 향상시켜야 한다(387조). -매 주일과 의무 축일에 백성을 위한 지향으로 미사를 바쳐야 한다(288조). -자기에게 맡겨진 교회를 입법권과 집행권과 사법권으로 통치하는 소임이 있다(391조). -말씀 선포, 성사 거행, 성인들 공경, 재산 관리에 남용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392조). -교구의 모든 법률적 업무에서 교구를 대표한다(393조). -사제들과 평신도들의 사도직 활동을 조정하고 촉진해야 한다(394조). -교구 내에 상주해야 한다. 사도 묘소방문, 공의회, 주교대위원회, 주교회의 등 합법적 이유가 있으면 교구를 떠날 수 있다 .그러나 1개월을 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성탄, 성삼일, 부활, 성령강림,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에는 중대한 이유없이 교구를 떠나지 말아 야 한다(395조). -적어도 5년마다 교구 전역을 몸소, 또는 대리를 통해 방문할 의무가 있다(396조). -5년마다 교구 상황을 규정 형식에 따라 사도좌에 보고해야 한다(399조).정리=이연숙기자 mirinae@pbc.co.kr cpbc2007.09.12

뇌경색 이겨낸 한문교, 진부자씨 부부황혼길에 찾아온 '새 봄'왼손 성경필사를 통해 거듭난 한문교씨와 그를 격려하는 아내 진부자씨. 이들 부부의 눈물겨운 왼손 성경필사는 성경쓰기에 냉담하던 본당 공동체에 큰 자극이 됐다. "알~았~어~요." 갑작스런 남편의 말에 아내는 어리둥절해 한다. 한참을 생각한 뒤에야, 아내는 1주일 전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는 걸 어렵사리 알아챈다. '1주일'. 대화 간격은 꼭 그만큼 벌어져 있다. 말을 잊어버려 대답을 할라치면 긴 시간이 걸린다. 수원교구 이천본당 한문교(마르첼로, 68)ㆍ진부자(아가타, 63)씨 부부. 인천에 살다가 지난해 4월 경기도 이천시에 정착한 부부는 요즘 동화 속 그림 같은 집에서 예쁜 사랑을 나누며 알콩달콩 산다. 남편의 신체, 언어장애는 아내에게 '장애가 아니다'. 집 근처 2100여평 널따란 묵정밭을 일궈 부추와 쪽파, 고구마, 오이, 참외, 수박 등 17가지나 되는 씨앗을 뿌려 키우고 신ㆍ구약 성경을 필사하고 시를 쓰고 책을 읽으며 전원생활을 만끽한다. '행복하기만 한' 나날들. 얼마 안 있으면 송홧가루가 지천으로 날릴 솔밭 길을 새벽마다 걸으며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추억을 되새긴다. ------------------------------------------ ▶아, 지난 세월 같았으면! 지금이야 꿈결 같은 세월이지만 14년전 그날은 끔찍했다. 1993년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출판과장으로, 매리지 엔카운터(ME) 한국협의회 홍보분과 대표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남편 한씨는 월악산을 등반하던 중 쓰러졌다. 수안보, 대전, 인천을 전전하다 병원에서 내려진 진단은 '뇌경색'. 병원에서 다섯 차례나 수술이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뇌수술을 받았지만, 대ㆍ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고려대를 나온 뒤 1966년 학원사 기자로 출발, 「학원」 편집부장과 「주부생활」 차장으로 살던 일, ME 전국주말만 14년간 봉사하며 가정 성화를 위해 헌신하던 일, 교정사목 봉사자로 열심히 살던 일, 또 성가정입양원에서 여자아이를 데려와 친딸 셋과 함께 키우던 일이 다 옛 추억이 돼버렸다. 다 큰 딸들에게 아버지 수발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 남편은 온전히 아내의 몫이 됐다. 게다가 치매의 고통을 겪던 친정 어머니(고신화 보노사, 97년 선종)도 91년부터 모시고 있던 터여서 아내 진씨의 부담은 가중됐다. "죽으나 사나 제 몫이니까 제가 할 수밖에 없었지요. 본당에서, 주위에서 기도를 참 많이 해주셨어요. 기도 덕을 많이 봤어요." 아내는 그 와중에서도 상담학과 간병과정을 이수, 심리상담사와 간병사 자격을 얻을 만큼 억척스럽게 살았다. 91년 축농증으로 안면마비 수술을 받은 후유증에다가 2001년엔 임파성 결핵까지 걸려 엄청난 고통을 받는 가운데서도 아내 진씨는 하느님께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송두리째 흔들린' 14년의 세월을 기도로 '말없이' 견뎌냈다. ▶그리스도, 우리의 희망 남편이 대ㆍ소변을 가리고 스스로 밥을 떠먹기까지는 무려 6년이 넘게 걸렸다. 물론 이같은 거듭남이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다. 남편이 오른쪽 반신마비였던 터여서 왼손을 쓰도록 했다. 평생 오른손만 써온 남편은 힘들어했다. 하지만 6~7년간 아기처럼 떠 먹여주는 밥을 받아먹어야 했던 남편은 무섭게 연습했다. 우선 '말문'부터 터야했다. 그래서 98년 11월말 성당(인천교구 계산동성당)에 가서 성서공부과정에 등록했다. 3년간은 듣기만 했다. 그리고나서 성경 필사에 도전했다. 글씨는 '삐뚤빼뚤' 이쪽저쪽으로 기울어지며 흔들렸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에 매달렸다. 구약 2년, 신약 1년. 3년만에 힘들기만 한 성경 쓰기가 끝났다. 이에 자극을 받아 본당 신자들 사이에 성경 쓰기 바람이 불었다. 아무리 쓰라고 권해도 성경을 쓰지 않던 신자들이 필사를 하게 되자 본당에선 한씨에게 상패를 주고 격려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제가 4대째 구교우인데 정작 저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그냥 대충대충 살았어요. 그런 제가 성경을 필사하고나니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어요." 성경 필사가 끝나 왼손쓰기가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르면서 한씨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시 쓰기였다. 처음엔 세상을 살다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 자서전을 쓰려고 했지만 너무 힘들어 시작(詩作)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시도 때도 없이 매달렸다. 시상이 떠오르면 새벽같이 일어나 책상머리에 앉아 펜을 들었다. 그처럼 노력한 결과, 200여편의 시가 태어났다. 그 시를 딸들에게 보내니, "우리 아빠 그 예쁜 글씨를 못 봐서 어떡해"하며 눈물 짓던 딸들은 감동해 울어버렸다. 그래서 아내는 내년으로 칠순을 맞는 남편을 위해 시집을 내줄 구상을 갖고 있다. ▶"여보, 당신을 사랑해요" 지난해 11월부터 부부는 중단했던 10/10대화(10분 쓰고 10분 대화하기)를 새로 시작했다. 물론 부부기도 시간은 옛날보다 훨씬 오래 걸리지만, 예전에는 없던 애틋함이 있다. 애교가 없어 남편에게 '나무토막' 같다는 말을 듣던 아내에게는 '없던' 애교가 생겼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한다", "잘했다"는 말을 해주며 뽀뽀하고 칭찬했다. 그러면 남편은 아내 말에 공감하듯 큰 소리로 웃으며 천진난만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을 짓는다. 이처럼 부부의 황혼은 날마다 기쁨이다. 새봄, 생명의 움을 틔우는 대지처럼 푸르다. 새해 들어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한씨는 조만간 컴퓨터 문서편집 프로그램(워드 프로세서)으로 성경 필사를 할 작정이다. 오른쪽 반신이 마비된 이후 왼손으로 쓴 성경 필사가 가져다 준 기쁨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파란 새싹이 돋는 봄 들녘으로 부부의 환한 미소가 번져간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산 한문교 그저 끌어 안으면 산이요 또한 나 날마다 아늑하고 폭 안기는 산 내가 산이요 산도 또한 물 아! 오름마다 파란 하늘과 찡한 여름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 게다가 흐르는 물이 시리도록 저리다 어쩌면 내가 산이요 산도 또한 나cpbc2007.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