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1) 거짓 복음들신비한 문서일뿐 성경 아니다 2006년 4월6일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TV와 인터넷을 통해 「유다복음서」를 전면 공개했다. 「유다복음서」는 영ㆍ불ㆍ독어 등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돼 동시에 공개됐다. AD 130~170년 무렵 영지주의의 한 분파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유다복음서」 원래 본문은 그리스어로 되어 있었으나, 4세기 무렵 이집트에서 사용하던 콥트어로 번역돼 파피루스에 기록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은 모두 26쪽 분량이다. 이 사본은 지난 1976년 이집트의 한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됐다. 「유다복음서」는 "예수가 유다와 나눈 계시에 대한 비밀스런 이야기"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 복음서는 예수가 열두 제자를 불러 천국 비밀과 세상 종말에 대해 언급한 것을 기록하는 도입 부분에서 유다가 다른 제자들에 비해 우위에 있음을 기술한다. "너는 그들 모두를 능가할 것이다. 너는 인간의 형상을 빌려 이 땅에 온 나를 희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다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예수가 '육신을 벗어야 부활할 수 있음'을 유일하게 인식한 수제자로 그려지고 있다. 참고로 육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당시 성행하던 이단 '영지주의' 사상에 속하는 것이다. 또 이 책은 '유다의 예수 배반'이 사실은 예수가 인류구원이라는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 유다와 모의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유다의 배반이 없었다면 인간 구원을 이루려는 신의 계획도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 제자의 배반을 합리화하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유다복음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열두 제자를 대한 강한 부정과 성찬례에 대한 무시다. 이 복음서는 열두 제자는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반면 유독 유다만이 예수의 신비로운 가르침을 온전하게 알아들은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가 제자들과 만나는 첫 장면에서 과월절(파스카) 만찬의 감사기도를 조롱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 사제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많은 죄악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결국, 전례 자체와 사제들의 제사행위 자체, 마침내 성찬례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담고 있다. 「유다복음서」는 유다가 예수를 고발하는 것으로 끝난다. 부활 대목이 없다. 예수가 육신을 벗어나는 것으로 영생을 얻기에, 굳이 무덤에서 되살아나 승천하는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당시 영지주의(Gnosticism) 주장과 똑같다. 영지주의는 육체와 정신을 나누는 이원론으로, 인간이 어떤 직관(신비로운 지식)을 통해 육체를 벗어남으로써 신과 같은 영적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구원을 위해서 부활 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예수는 구세자로서 하늘의 참된 지식을 전하려 이 세대에 왔으며 그 목적을 이루면 거룩하고 위대한 세계로 가기 위해 육체적 모습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구조다. 따라서 유다의 예수 배반은 예수가 자신의 목적을 이룬 뒤 거룩하고 위대한 세대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기 180년대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교부 이레네우스(Irenaeus)는 「이단논박」을 통해 반역자 유다에 대해 언급하면서 「유다복음서」가 이단적 책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바로 그 책인 「유다복음서」가 오늘 우리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약 150년께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다복음서」는 그리스도교 저술이 아니라 1945년에 나일강 유역에서 일시에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와 마찬가지로 영지주의 신봉자들의 저술이다. 그러기에 '신비한 문서'일 뿐 성경이 아니다. 이 책에 대해 미국 댈러스 신학교의 다렐 보크 교수는 "이 문서는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초반의 영지주의 한 분파인 '카인파'(Cainites)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카인파는 카인이나 소돔인, 이스카리옷 유다 등 보편적으로 악인으로 인식되는 성경 인물들을 '예언의 실현 도구'라는 관점에서 재평가하려고 했다. 따라서 이 카인파가 유다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복음'이라는 이름을 붙여 만들었을 것이란 해석인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엔 카인파 외에도 마르시온파ㆍ몬타누스파 등 많은 영지주의파가 나타났고 이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 짜깁기한 것으로 유명했다. 요컨대, 이런 종류의 책은 기존 4 복음서 내용과 사실을 뒤집을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신약성경 4복음서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1세기 내에 쓰여졌고 그 내용도 완벽하게 전달된 데 반해서, 외경 복음서는 2∼4세기에 기존 정통 복음서에 대한 반감에서 일종의 소설 형식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신뢰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공개된 「유다복음서」는 성경의 유사품에 지나지 않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유다복음서」는 학자들이 연구할 대상이지 만민이 따를 진리는 아니다. 정리해 보자. 「유다복음서」는 신약성경 4복음서를 대신하거나 보충할 수는 없다. 아무리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다양했다고 할지라도, 이미 그 시대에 정통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경전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명하게 식별했다. 거짓이 난무했기 때문이었다. 초기 교부들은 이 「유다 복음서」를 영지주의 문서로 간주했고, 그 문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단적 주장의 반복일 뿐이다. 복음서는 본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을 기록한 글이다. 하지만 「유다복음서」는 예수를 배신한 한 제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일 뿐이다. 다른 모든 교리적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메시아가 아닌 그의 제자가 복음서 주인공이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음서 형식 자체에 맞지 않는 것이다. 「유다복음서」 공개 파문은 현대의 무차별 상업주의의 산물일 따름이다. 「유다복음서」 복원 과정에서 메세나 재단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것을 만회하려는 고도의 계산된 상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유다복음서」의 이슈화는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를 음모론으로 다룬 소설 「다 빈치 코드」 인기에 편승한 또 다른 선정주의에 불과하다. 이단 종파의 고문서 한권으로 2000년간 인류 역사를 지탱해온 성경의 권위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사도 바오로의 경고를 우리는 예사로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갈라 1,6-8).cpbc2006.06.01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 -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공동사목 오금동본당 주임)라자로가 죽게 됐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요한 11,4). 덴마크의 실존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이 성경 구절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 제목을 따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죽음에 이르는 병'은 과연 무엇일까요? 철학가는 절망이라고 답하고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곧 회개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망의 끝인 죽음에서도 살아나는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생전에 죽었던 사람을 살리는 놀라운 기적을 세 번씩이나 행하셨는데 죽었던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주는 기적(루카 7,11-17),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사건(루카 8,40-56)이 그것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부활 사건이 오늘 복음인 라자로의 부활입니다. 죽어서 사흘이나 지나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도 생명을 불러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생명과 죽음의 주재자가 당신임을 드러내시며 신자들에게 사순시기의 절정인 수난과 부활을 준비시켜주십니다. 신자들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는 예수님을 말씀을 확신하며 부활신앙을 살아갑니다. 부활신앙은 죽어야만 이루어지는 먼 훗날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 우리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현실인 것입니다. 부활신앙을 산다는 것은 마치 이런 것입니다. 아침마다 호루라기를 불며 자전거를 타고 두부를 팔러 다니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두부를 팔아서 하루하루를 사는 분이었지요. 주부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필요한 만큼의 두부를 사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루라기 소리가 마을 초입에서 갑자기 끊어져버리더니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깜짝 놀라 주부들이 나와 보니 자전거는 내동댕이 쳐져있고 두부는 흙바닥에 쏟아져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주부들은 땅바닥에 흩어진 두부를 주워서 자신들이 가져갈 만큼씩 봉투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들 평소에 내던 두부 값의 두 배를 할아버지에게 건넸습니다. 땅에 흩어진 두부가 그 마을에서 팔릴 양보다 많았기 때문이었지요. 예상치 못한 주부들의 행동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습니다. 다음날부터 이 마을에 들어와 두부 파는 일은 할아버지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그 마을을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고이고 기쁨으로 설레었지요. 아침에 두부를 실으며 가장 신선하고 따뜻한 두부가 이 마을에서 개봉되어 팔리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생활에서 부활신앙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요? 남들은 다 잘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잘 안되나 하며 절망 속에 있거나 또 누구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다니는데 우리 아이들은 실패만 하니 차라리 이런 세상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깊은 절망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부활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패한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 인간적인 약점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아서 위태로워진 가정에서도 새롭게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대학에 실패한 자녀에게 살아온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을 심어주어 더 크게 일으켜 세우는 부모, 이런 사람이 부활을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을 사는 신자들은 절망하거나 비난하는 말로써 사람을 쓰러뜨리지 않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도 격려와 희망의 따뜻한 말로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 부활신앙을 믿는 신자들의 소명인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내 주위에서 어렵고 힘든 상황이 일어나고, 실의에 빠진 이웃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삶을 꾸준히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사는 삶이 바로 부활을 사는 산 증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cpbc2008.03.05

유다인의 삶과 밀접한 염소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인류는 일찍부터 염소, 양 등을 거느린 유목생활을 했다. 염소는 양과 아주 비슷해 구별하기가 어려우나, 염소 수컷에는 턱수염이 있다. 꼬리 밑부분 아랫면에 고약한 냄새를 분비하는 샘이 있다. 네 다리와 목은 짧고, 코끝에는 털이 있다. 뿔 단면은 삼각형 또는 호리병박 모양이며, 뿔 앞면에는 혹처럼 생긴 것이 있거나 주름이 많다. 뿔은 소용돌이 모양 또는 나사선 모양으로 비틀려 있다. 뿔은 암수 모두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염소는 보통 험준한 산에서 서식한다. 먹이는 나뭇잎, 새싹, 풀잎 등 식물성이고, 사육하는 경우에도 거친 먹이에 잘 견딘다. 염소가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사육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약 2000년 전 삼한시대 말이라고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털색이 검고 키가 작은 염소는 육용과 약용으로 현재까지 널리 이용되고 있다. 특히 흑염소의 약효가 뛰어나 허약체질, 폐결핵, 위장병, 양기부족, 산후와 모든 병후에 보신ㆍ보양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소와 양 다음으로 소중한 것은 염소였다. 염소 고기, 특히 새끼염소 고기는 맛있다. 새끼염소 고기는 잡아서 곧바로 요리하면 새끼양의 고기와 맛이 비슷해 잘 분간할 수 없다. 양은 털을 깎아야 하기에 새끼를 함부로 잡지 않는다. 제사 때나 특별한 경우에 잡는다. 염소가 나오는 루카복음 탕자의 비유는 무척 인상적이다(루카 15,29-30). 성경에도 가축으로 염소가 자주 등장하게 된다. 풀이 많은 들에는 양이 잘 자라고 관목이 무성한 언덕에서는 염소가 잘 자란다. 염소는 해변가나 호숫가의 풀은 물기가 많아 좋아하지 않는다. 헤브론에서 레바논에 이르는 서팔레스티나의 중부가 염소를 기르기에 적합하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염소를 키우고 있다. 양은 사철쑥 같은 지상의 풀을 먹고, 염소는 조금 높은 구릉 지대에서 관목의 어린 싹을 즐겨 먹는다. 그리고 저녁 때 우리에도 양과 염소는 따로 들어간다. 성경에서 염소에 관한 대목은 대단히 많다. 숫염소는 보통 속죄 제물로 사용했다(레위 16,7-10). 가나안에서는 옛날에는 염소를 경배했던 것 같다(2역대 11,15). 또한 에돔의 멸망을 예고한 성경 대목에서는 염소가 궁전이 황폐하고 괴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곳에서는 사막 짐승들이 늑대들과 만나고 염소 귀신들이 서로를 부르리라. 도깨비도 그곳에 쉬면서 안식을 얻으리라"(이사 34,14). 숫염소는 용기도 있고 생김도 훌륭한 동물로 묘사된다. "의젓한 수탉과 숫염소 그리고 자기 백성 앞에 선 임금이다"(잠언 30, 31). 새끼양으로는 옷을 지어 입고 숫양은 팔아서 밭을 사고 염소젖은 넉넉해서 식구와 함께 먹고 계집종들까지 먹여 살릴 수 있었다(잠언 27,26-27). 염소 젖은 날 것으로 먹기도 하고 응고시켜 버터나 치즈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털은 직물의 원료가 된다(탈출 26,7). 염소 가죽은 물과 젖, 포도주 등을 넣는 주머니를 만든다(시편 119,83). 염소는 양보다는 못하지만 유다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재산 목록이었다.cpbc2007.05.30

50년 역사 딛고 화려한 비상 한국 스카우트 가톨릭연맹 서울지구연합회 50돌 한국 스카우트 가톨릭연맹 서울지구연합회(회장 박경근 신부, 이하 서울 스카우트)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캠퍼리와 국제야영 등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캠프(1월 8~25일)와 제11회 동계 도보성지순례(1월 17~20일)를 시작으로 가톨릭연맹 국제야영과 잼버리(8월 9~13일), 창립 50주년 캠퍼리(8월 9~11일, 8월 11~13일), 50주년 창립제(10월 26일) 등이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한국교회 최초로 열리는 스카우트 관련 국제행사도 준비돼 있다. 7월 10~13일 제주교구 이시돌목장에서 전 세계 가톨릭스카우트 지도자 세미나(ICCS)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7월 14~18일 제주 컨벤션센터에서는 전 세계 스카우트 회원국 대표들이 모이는 세계 스카우트 총회가 이어 열린다. 아울러 7월 9~22일 호주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에도 한국 가톨릭스카우트 청년대인 로버스카우트 대원과 담당자 등이 참가한다. 서울 스카우트는 지난해 10월 창립 49주년 기념식에서 '4950 프로젝트'를 선포하고 올해 스카우트 대원과 대장 전체가 참여하는 임무(실천사항)를 발표했다. 임무는 성경필사와 진급, 친교, 국제야영 참가, 봉사 등 5개 사항으로 50주년 창립제가 열리는 10월 26일까지 이를 모두 마쳐야 한다. 임무를 마친 대원이나 대장에게는 임무 완수에 해당하는 패치를 지급한다. 지급된 패치는 스카우트 단복에 부착할 수 있다. 한편 가톨릭 스카우트는 최근 2년 동안 조용하면서도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인천지구 제1ㆍ2 지구연합회 공동 발대와 마산교구 첫 가톨릭 스카우트 삼위일체대(진주 하대동본당) 발족이 그것이다. 2006년 11월에는 의정부교구 가톨릭 스카우트 서부지구 연합회도 창립했다. 또 지난해 9월 서울대교구 사제인사에서 박경근 신부가 서울 스카우트 담당 사제로 발령을 받았다. 서울 스카우트 전담으로 발령받은 사제는 서울대교구에서 박 신부가 처음으로 스카우트 운동에 한층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힘 기자 "올해를 가톨릭 스카우트 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습니다." 50주년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박경근 신부는 올해가 가톨릭스카우트 운동이 새롭게 시작하는 또 하나의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 스카우트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됐지만 교구 안에서만 보더라도 200여 개 본당 중 본당 단위대는 33개, 2120여 명(2007년 말 기준)이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말이다. 그동안 가톨릭 스카우트가 뿌리를 내리는데 주력해 왔다면, 올해부터는 그 뿌리에서 빨아들이는 자양분으로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타 단체보다 소극적이었던 홍보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지도자와 대원들이 스카우트 운동을 통해 활기찬 신앙인의 모습과 올곧은 표양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가톨릭 스카우트는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사목적 배려 중 하나입니다. 또 주일학교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 운동입니다." 박 신부는 스카우트 운동이 주일학교 보완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이것을 발판으로 또 다른 대안 프로그램이 개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대장들과 봉사자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50주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봉사하는 대장들에게 감사합니다. 시간뿐 아니라 현장에서 삶을 나누는 모습은 각자 소임에 따라 하느님을 전하는 모습이며, 하느님 안에서 성장해가는 우리 모습입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이힘2008.01.16
63-성경의 표현들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지옥, 우리 의지 양심 일깨워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대해 무시무시한 표현들로 묘사하셨다.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마르 9,48). 사도가 환시로 본 지옥 모습 역시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그 연기는 영원무궁토록 타오르고, 짐승과 그 상에 경배하는 자들, 그리고 짐승의 이름을 뜻하는 표를 받는 자는 누구나 낮에도 밤에도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묵시 14,11). 그 지옥에는 이처럼 짐승과 우상을 숭배한 낙인찍힌 사람들뿐 아니라 악마와 그 하수인인 거짓 예언자들도 함께 던져질 것이라고 사도는 환시로 보았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그들을 속이던 악마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졌는데,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이미 들어가 있는 그곳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묵시 20,9-10). 종말에 대한 이러한 성경 가르침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종말에 대한 성경 가르침은 대부분 상징(象徵)과 비유(比喩)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천국의 이미지들인 하프나 면류관, 금 등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하프는 기쁨과 평안을 강렬하게 암시하는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고, 면류관은 하느님과 영원히 일치된 사람들이 하느님 광채와 힘, 기쁨을 함께 누린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 금은 시간에 매이지 않는 천국의 영원함과 귀중함을 암시한다. 이처럼 지옥의 유황불이나 구더기 등은 이승에서처럼 실재하는 것들이 아니라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상징 언어다. 3차원 공간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4차원 이상인 세상을 짐작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분명한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상징 언어로 묘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은, "비둘기처럼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을 낳으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여기서 잠깐 상징에 대해 좀 더 짚어보자. 상징은 개념으로 표현된 것보다 더 많은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누가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나의 태양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말은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태양은 희망이 될 수 있고, 영웅이 될 수 있고, 우상도 될 수 있고, 또 그 밖의 여러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 전해주는 종말에 대한 표현들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종말 사건은 3차원 공간의 오관(五官)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그런 현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만약 종말에 대해 "모두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장님들이 코끼리의 부분만을 만지고 몽둥이라느니, 무라느니, 돌이라느니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종말이 담고 있는 폭넓은 의미, 우리에게 개방되지 않은 저 너머의 세계를 인정해야 한다. 교회는 지옥의 존재와 그 영원함을 가르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옥은 유황불이 들끓고 있고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곳으로 묘사된다. 근래에 와서 신학자들은 지옥에 대해서 심각하게 물었다. "과연 성경이 말하는 그런 지옥이 존재할까?", "그리고 그런 지옥을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몸소 만들어 놓으셨을까?", "그렇다면 그 하느님을 우리는 과연 무한한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가톨릭교회는 다음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지옥은 불이 활활 타거나 사람을 질식시키는 그런 장소(라: locus)가 아니라,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며 인간이 갈망하는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신 하느님과의 영원한 단절에 처하는 고통의 상태(라: status)를 말한다는 것이다. 죽을 죄를 뉘우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죽기를 고집해 영원히 하느님과 단절(斷絶)되는 것 자체가 영원한 고통이며 심판이라는 것이다. 지옥이란 이처럼 하느님과 복된 분들과 이루는 친교(親交)를 스스로 결정적으로 거부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이런 고통을 이미 이 세상에서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져야만 할 때 맛보기로 치르게 된다. 둘째, 이런 지옥의 고통은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떨어져 나감으로써 초래하는 고통이라는 것이다. 곧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옥에 대한 성경의 단언과 교회 가르침은 우리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라는 호소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회개하라는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이 지상에서 지옥을 살 수 있다. 하느님을 등지고 하느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사는 이는 지상의 지옥을 살고 있는 셈이다. 한 인간이 이웃을 물리치고 그리스도 공동체를 배척한다면 그의 삶 안엔 이미 지옥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남을 바라볼 줄 모르고 영원히 자기 자신으로만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방식 자체가 이미 지옥이다. 그래서 흔히 "지옥의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다"고들 한다. 지옥이라는 주제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에서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 지옥은 주로 회개를 촉구하시는 말씀 중에 거론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이야기에서 "인간은 구원될 수도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계신다. 그러니 하느님 주권(主權)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라고 엄중하게 촉구하신다(히브 9,27; 마태 22,13; 25,26.30-46 참조).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의 주권을 자신의 것인 양 착각(錯覺)하는 자체가 지옥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지옥에 대한 예수님 말씀은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 주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양심과 의지를 일깨우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무시무시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킴으로써 우리를 회개의 행동으로 이끌 수 있다면, 예수님의 지옥에 관한 말씀은 원래 의도를 다 성취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cpbc2006.04.26
어려움 털어놓고 협력 방안 모색수원교구 안산대리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연수 "본당 봉사자들 교육이 세분화되고 직능별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대리구에 청소년들을 위한 수련관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원교구 안산대리구(대리구장 김한철 신부) 본당 상임위원들 목소리가 높아졌다. 10월 24일 안산대리구좌 대학동성당에서 개최된 '안산대리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합동 연수'에 참가한 신자들은 대리구 발전을 위한 방안은 물론 사목자들에게 바라는 점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며 모처럼 속시원한 자리를 가졌다. 또한 대리구 사회복지시설과 기관 종사자, 관계자들도 함께해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본당 및 대리구와 협력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번 합동 연수는 안산대리구가 교구 대리구제 시행 1년을 지내면서 1년 생활을 되돌아보고 교구장 사목교서를 중심으로 사목활동 및 공동체 일치, 발전을 이루기 위해 마련했다. 이날 연수는 지난 8월 대리구 각 본당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와 기관 및 사회복지시설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안산대리구 복음화정책 수립을 위한 의견수렴' 설문조사에 대한 결과 발표와 참가자 토론 및 발표, 대리구장 신부 총평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리구 신자들은 대리구제 실시로 사목이 활성화된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봤지만 교구와 단절되고 대리구 영향력이 아직 미흡하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또 대리구가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서는 지역사회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복지시설 및 청소년 관련 시설 건립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연수 참가자들은 안산대리구 발전을 위해서는 △평신도,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 프로그램 강화 △청소년 신앙생화 활성화 방안 모색 △재복음화가 시급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대리구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또 이같은 자리가 자주 마련돼 서로를 잘 이해하고 열린 대리구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김한철 대리구장 신부는 "오늘 나온 의제들을 종합해 내년 대리구 사목 계획에 충분히 반영하겠다"며 "성경, 간부육성, 소공동체, 복음화, 청소년 등 교구장 5대 중심 사목과 사목교서 실현을 위해 대리구민들과 사제, 수도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 함께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07.10.31
[57] 가톨릭과 개신교의 십계명은 다른가요가톨릭과 개신교의 십계명은 어떻게 다른가요.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하느님께 직접 받은 열 가지 계명을 말합니다. 이 십계명은 유다교를 믿은 유다인들 뿐 아니라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등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이 십계명은 구약성경 탈출기 20장 1-17절에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5장 6-21절에도 있습니다만, 좀더 후대에 기록된 것으로 탈출기의 십계명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십계명 현재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루터교회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삼.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사.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오. 사람을 죽이지 마라. 육. 간음하지 마라. 칠. 도둑질을 하지 마라. 팔.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십.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반면에 정교회나 성공회, 여타 대부분의 개신교 십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있게 하지 마라. 이.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마라. 삼. 야훼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마라. 사.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오. 부모를 공경하라. 육. 살인하지 마라. 칠. 간음하지 마라. 팔. 도적질하지 마라. 구.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십. 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십계명 비교 이 두 가지를 비교하면, 가톨릭의 제1계명이 개신교에서는 제1계명과 제2계명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반면에 가톨릭의 제9계명과 제10계명이 개신교에서는 제10계명으로 합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탈출기 20장을 읽어 보면, 현재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사용하는 것처럼 '일, 이, 삼…'하는 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에 번호를 매겨 분류하다 보니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차이가 나게 된 것입니다. 가톨릭과 루터교는 5세기의 성 아우구스티노가 분류한 방식을 따르고 있고, 정교회와 성공회 그리고 대부분의 개신교는 초세기 유다교 학자인 필론이 분류한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개신교계 일각에서는 가톨릭교회에서 성화(聖畵)나 성상(聖像)을 모시는 것에 대해 '우상숭배'라고 하면서 이 때문에 가톨릭교회에서는 개신교의 제2계명을 일부러 빼고 제10계명을 9계명과 10계명으로 나누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성화나 성상을 모시는 것은 성화나 성상 자체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나 성상에 그려진 분을 공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는 제1계명에는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 당연히 포함돼 있습니다. 따라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십계명이 차이가 나는 것은 해당하는 성경 본문을 어느 계명에 포함시켰느냐에 따른 것이지 십계명 자체가 다르기 때문은 아닙니다. 결국 가톨릭과 개신교의 십계명은 모두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정확합니다. ◇한 가지 더 십계명을 찬찬히 살펴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세 계명은 하느님 사랑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칠 계명은 사람 사랑 곧, 부모(가족) 사랑과 이웃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골자는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39).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7.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