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할랍과 디마슈크를 그리며(송영은 가타리나,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선임연구원)](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7/02/ehu1719910269634.jpg)
[신앙단상] 할랍과 디마슈크를 그리며(송영은 가타리나,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선임연구원) 은은하게 도시를 감싼 회색빛이 오랜 역사에 걸쳐 도시 속에 꼭꼭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성채에서 알레포를 내려다봤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신비로운 회색빛은 눈덩이라도 흩뿌려놓은 양, 화창한 하늘과 초록 풀 사이로 산재해 있던 연회색 돌들로 도시가 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2011년 겨울이 봄으로 바뀌던 무렵 시리아의 알레포, 아랍어로는 할랍(halab)에서 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마을 중 하나를 지나쳐 외곽에 있는 시메온 성인의 유적지로 갔다. 1500여 년 전 군중들의 맹목적 추앙과 권력자들이 주는 달콤한 영예를 피해서 높은 기둥 위에 올라가 고행을 이어간 시메온 성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성인이 올랐떤 기둥 주위에 세워졌던 거대한 교회는 이제 폐허가 돼버렸지만, 높은 연회색 돌기둥 위에서 군중을 내려다보며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설교했을 고행자는 왠지 시야를 가리는 커다란 성전을 꺼렸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시메온 성인 유적에 비해 훨씬 젊기만 한 대(大)모스크는 탁 트인 안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담소를 나누는 어머니들, 벽에 기대서 쉬거나 기도하는 사람들을 담아 안은 채 알레포 시내를 1200여 년간 지키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스크 안에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즈카르야의 유해 일부를 모셨다고 하는 성인의 무덤이 있어, 그리스도교, 이슬람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찾아와 청원을 드린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알레포에 오기 전 한 달여간 머물렀던 디마슈크(Dimashq), 즉 다마스쿠스에서는 우마이야 모스크 안에 있는 요한 세례자의 무덤을 방문한 터였다. 그뿐인가. 사울을 사도 바오로로 다시 태어나게 한 기적적 낙마사건이 일어났던 그 거리를 걸어도 보고, 바오로 사도가 세례받았다는 하나니아 교회에 앉아 성경 속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 보기도 했으며, 아직도 예수님의 아람어로 미사를 봉헌하는 마룰라의 수도원과 교회들도 눈과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시리아에 머무는 한 달 반 남짓, 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역사와 하느님 백성들이 살아온 다채로운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에서 시간과 공간 감각이 어그러진 채,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묘한 기분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시리아를 떠나기 얼마 전부터 시위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시리아를 떠난 지 두 달 후 시위 소식은 내전 뉴스로 바뀌었고, 조금 더 지나자 국제전 양상의 전쟁 소식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알레포 대모스크의 첨탑은 허리가 부러져서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한때를 선사하던 안마당에 흩뿌려졌고, 폭격으로 깨지고 건물에서 찢겨나간 회색 잔해들은 도시를 우울한 잿빛으로 뒤덮었으며, 일부 남아있던 시메온 성인의 돌기둥도 기단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전쟁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어요.” 뉴스 속 폐허가 된 알레포에서 한 노인이 던진 말은 묵직했다. 다시 갈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시리아 땅, 그 사람들의 영혼만큼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길 기도드린다. 송영은(가타리나,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cpbc2024.08.06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1)가나안 정복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대표들을 스켐으로 불러 모아 부족 동맹을 맺고 하느님만을 섬기기로 했다. 이스라엘이 정복한 예리코 전경.(여호 6장 참조)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이집트 탈출 후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다 이룬 결실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모세는 느보 산에서 죽고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앞까지 도착했다는 이야기로 모세오경을 마무리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리라는 약속이 온전히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세오경은 요르단 강변을 배경으로 끝을 맺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모세오경을 읽을 때, 모세오경이 약속된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할 임무를 여호수아에게 맡기면서 요르단 강변에서 끝맺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인 예수님의 생애를 요르단 강변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의 약속들이 충만히 실현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경 역사 지도」 67쪽 참고) 여호수아기 1─12장에 나오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는 도식적이고 이상적인 하느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사건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침공 전투가 연이어 빠르게 단시일에 일어난 것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기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중앙 산악 지역을 쳐들어간 후(1─9장) 숨돌릴 새도 없이 남부 지역을 정복하고(10장), 북부 지역을 점령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11장). 하지만 판관기 1─3장은 여러 사건이 섞여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이 아주 서서히 이루어졌음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과 가나안 원주민들 간의 격렬한 전투가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오랜 세월에 걸친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역사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느님의 구세사를 살펴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과 당시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던 아모리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타이트족, 기르가스족, 히위족, 여부스족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혈통, 곧 서부 셈족계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나안에 살던 셈족 가운데 이스라엘 12지파 조상 중 일부만 이집트에 내려가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집트 탈출 후 시나이 산에서 야훼 하느님께 대한 유일한 신앙 체험을 합니다. 이들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하느님의 백성이 됩니다. 반면, 가나안 땅에는 셈족의 성읍들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성읍의 백성들은 자신의 임금들뿐 아니라 이집트 파라오의 착취를 당하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피를 가진 사람들이 요르단 강 동쪽에 나타나서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었습니다. 계급 차별이 없고 누구나 평등한 하느님의 십계명은 가나안의 셈족들에게는 ‘복음’이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신앙은 분명히 착취와 억압을 당하던 가나안의 셈족들에게 구원의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쳐들어왔을 때 적극 호응하였습니다. 군사력이 열등했던 이스라엘이 차례차례 가나안의 성읍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을 듣고 하느님의 율법으로 살려고 회심한 가나안 셈족들의 협조 때문이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기원전 13세기 말엽 곧 기원전 1200년께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마무리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집트 공식 문서에는 히브리인들의 탈출 사건이 한 줄도 기록돼 있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람세스 2세의 후계자인 메르넵타 파라오(재위 기원전 1234~1220)가 기원전 1220년께 팔레스티나를 정벌하고 이집트의 옛 수도 테베에 세운 전승 기념비에 ‘이스라엘’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경 이외의 기록물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기념물입니다. 따라서 메르넵타 전승 기념비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을 알려주는 성경 이외의 유일한 고고학적 자료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 12지파에 땅을 나누어 줍니다. 여호수아기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에 선물로 주어진 땅의 진정한 정복자는 ‘주님이시다’라고 이스라엘은 고백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한 후 장엄한 계약 의식을 거행합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온 히브리인들과 예로부터 가나안에서 살다가 이스라엘에 호응한 같은 혈통의 종족들이 동맹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주례한 계약 의식은 모세의 시나이 산 계약과 비슷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 판관들, 관리들을 불러내어 오직 야훼 하느님만을 섬길 것을 권고하고 이스라엘의 대표들은 자신들이 증인이 되어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들은 그 증거로 낯선 신들을 치워버리고 하느님의 율법을 받습니다.(여호 24장 참조) 이 부족 동맹으로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2.14

주님은 나의 목자[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11)연중 제16주일의 화답송(시편 23)은 성경 말씀 중 가장 포근하고 전원적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이 구절을 읊으면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색 하늘 아래 푸른 언덕에 기대어 있는 목가적 풍경을 떠올릴 수 있다. 초여름의 한적한 초원에서 즐기는 평화로운 한때가 저절로 상상이 되는 동화 같은 구절이다. 시편 23장을 가사로 쓴 「가톨릭 성가」 50번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깔끔하면서도 호소력 깊은 선율, 안정된 화성은 가사와 멋진 조화를 만들면서 마음을 적신다.(https://youtu.be/1BQObHkvakY?si=0GWdZ_0zhuvD5e6W) 시편 23장에 다른 선율을 붙인 곡도 감상해 보자. 영국 작곡가 존 루터(John Rutter, 1945~)가 작곡하고 오보에와 오르간, 그리고 혼성합창이 연주하는 ‘주님은 나의 목자’는 전원을 그리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https://youtu.be/WOtsuzM6h7M?si=hp5pK0okeNMsmGgz) 루터는 대중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영국음악의 전형적인 형식을 담아내는 성가 작곡가로,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가스펠과는 조금 다르게 보다 고전적이고 전통적이면서 고귀한 느낌이 있다. 영성 넘치는 선율과 안정된 평온한 화성 진행은 루터의 성가곡들이 가지는 특성이다. 아일랜드 작곡가 스탠포드(Charles Villiers Stanford, 1852~1924)의 ‘주님은 나의 목자’도 들을 때마다 행복을 주는 음악이다. 아일랜드는 영연방에 속해 있었지만, 주종교가 가톨릭이며 1949년에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스탠포드의 음악은 아일랜드의 험난한 역사를 달래주고 위안해 주는 것처럼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이 곡은 어려운 조국에 잠시나마 평온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는 작곡가의 소망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https://youtu.be/CAst6SdG_hU?si=LZj7eXT8u6Csu7B7) 젬린스키(Alexander Zemlinsky, 1871~1942)의 작품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젬린스키는 브람스·드보르작·말러·쉔베르그 등 빛나는 별 같은 작곡가들과 함께 활동했고 당대를 대표했다. 그의 조부는 가톨릭이었으며 어렸을 때부터 종교적인 배경에서 자랐다. 젬린스키의 작품은 극적이고 활기찬 전개와 순간적으로 클라이맥스에 다가서는 긴장감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그의 작품을 연주하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데, 시대를 뛰어넘은 몇 안되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시편 23장을 가지고 작곡한 이 작품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https://youtu.be/YXyEqCz2QtU?si=exZtphCI50xHm3pM)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되뇔수록 평화로운, 축복 같은 구절이다.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cpbc2024.07.17

가톨릭 전인 교육, 대학 입시에 통했다왜관 순심여고 대입 성과 비결 순심여고 교직원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성경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순심여고 제공 순심여고 재학생들이 교목 최정규 신부 지도 아래 종교 활동을 하고 있다. 왜관 순심여고(교장 송미혜)가 2024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서울대와, 한림대 의예과 수석 입학 등 눈에 띄는 학업 성과를 내 주목받고 있다. 순심여고는 서울대 4명을 비롯해 고려대, 경희대, 한양대, 순천향대 의대에 5명, KAIST 2명, UNIST 2명, 연세대 5명, 성균관대 4명 등 서울권 대학에 43명, 경북대, 부산대 등 지역 거점 국립대학교에 60여 명의 합격자를 배출해 지역 사회에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이 운영하는 학교법인 순심교육재단(이사장 박현동 아빠스)에 속한 순심여고는 2021학년도부터 경북 칠곡 관내 최초로 서울대 의예과 합격자를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의대 합격자와 서울권 대학, KAIST 등 특수목적 대학에 다수의 합격자를 내며 지역 명문고로 인정받고 있다. 칠곡의 작은 학교가 괄목할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데엔 특별한 비결이 있다. 바로 가톨릭 학교 교육 이념을 기반으로 한 전인교육 프로그램이다. 순심여고는 2017년부터 순심교육재단과 협력해 전인교육 프로그램을 체계화했다. 순심여고 재학생들이 교목 최정규 신부 지도 아래 종교 활동을 하고 있다. 송미혜(베아트리체) 교장 주도로 시행된 이 프로그램은 먼저 학생들의 소통과 나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학교 환경 개선 사업으로 시작됐다. 순심여고는 우선 일방적 강의식 수업에서 탈피해 학생들이 토론할 수 있는 교양 과목을 대폭 편성해 수업 방식을 혁신했다. 환경 과목에선 학생들 스스로 지구 온난화 문제를 개선할 실천 방향을 토론하고, 심리학 과목에서는 고1 때 배운 철학 과목의 사상가들과 연계해 사회성을 키우는 수업을 진행했다. 여러 교양 과목을 통해 학생들이 긍정적ㆍ비판적 사고를 동시에 키워나가도록 했다. 또 교정 구석구석 ‘세인트 메리 가든’ 등 예쁜 정원을 조성한 것을 시작으로, 스터디 카페 ‘오틸리아’, ‘세인트 페트릭 포럼’ 등을 마련해 면학 분위기에 활기를 더하고, 학술제와 작은 음악회, 시화전, 순심분도오케스트라 연주회 등 행사를 개최하는 등 학생들이 전인적 인격체로 성장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순심여고에는 ‘성경 읽기 모임’이 있다. 가장 중요한 가톨릭의 기본 정신을 구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교사와 학생들은 교목 최정규 신부 지도로 점심시간에 성경을 읽고 나누며 영적인 힘을 얻는다. 이처럼 학기 내내 다양한 종교 및 인성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활과 성탄 때에는 ‘세계 평화 희망 주간’을 운영해 전교생이 축하 인사를 나누고, 성모님과 함께하는 친교 주간, 미사와 세례ㆍ견진성사, 종교반 운영 등으로 학업ㆍ문화ㆍ종교활동을 두루 경험하도록 하고 있다. 순심교육재단 교직원 가족들이 인성교육 지역 문화 순례를 하고 있다. 송미혜 교장은 “순심여고가 모범적인 지역 명문고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교사들의 헌신과 학생들의 열정 덕분”이라며 “가톨릭 교육 이념을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전인 교육이 학생들 성장에 밑거름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2.29

수원교구 사이버성경학교 10년간 2만 3539명 수강수원교구 제2대리구 복음화3국, 2013년 ‘오경’ 강의로 시작… 기초·심화·단과 과정 등 강좌 다양 수원교구 사이버성경학교 수강자들이 오프라인 연수를 받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사이버성경학교 홈페이지 성경 공부를 하고 싶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성당에 가서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건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방법이 바로 온라인 성경 공부다.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개설된 사이버성경학교가 바로 그런 곳이다. 수원교구 제2대리구 복음화3국이 운영하는 이 학교는 2013년 3월 4일 김혜윤 수녀의 ‘오경’ 강의로 첫 문을 열었다. 2023년 1월 12일 현재 누적 수강 인원은 2만 3539명, 현 학습자는 560명이다. 수원교구 305명을 비롯해 인천교구 42명, 서울대교구 41명, 대구대교구 35명, 광주대교구 21명 등 수원뿐 아니라 전국에 걸쳐 수강자가 있다. 또 해외에서 수강하거나 예비신자와 비신자들이 신청한 경우도 있었다. 사이버성경학교는 다양한 성경 강좌를 운영 중이다. 새롭게 성경공부를 시작하는 신자들을 위한 첫걸음으로 △오경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간과 요한묵시록까지 총 6개의 강좌가 있다. 보다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성경 공부를 원하는 신자들을 위한 강좌로는 △마르코 복음서 △요한 복음서 △가톨릭 서간 △요한 묵시록 △역사서 등이 준비돼 있다. 또 단과 과정으로 △복음서의 그리스도 △성경 이해를 위한 배경지식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 하기가 개설돼 있다. 사이버성경학교도 일반 오프라인 강좌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단순히 지식을 익히는 것을 넘어 말씀에 대한 이해와 깊은 묵상을 삶으로 연결하는 게 목표다. 아울러 신자들이 이단과 오류의 위험에 빠지는 걸 막는 것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강사진은 모두 성서신학을 전공한 성경 전문가들이다. 사이버성경학교지만 무조건 온라인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학기마다 오프라인 특강을 진행해 전문가들과 직접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성경 퀴즈, 온라인 성경 일기 필사 등 흥미를 돋우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학기가 마무리되면 모든 수강생이 한자리에 모여 연수와 수료식을 하고 수료증과 성적 우수자 장학 증서 수여를 진행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물론 2020년 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이런 오프라인 행사들까지 큰 제약을 받기도 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점차 수그러들면서 거의 정상화됐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로 오프라인 교육이 중단됐을 때 사이버성경학교는 온라인이라는 특성을 발휘해 성경공부를 중단없이 계속할 수 있도록 한 주인공이었다. 신자들이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10대부터 80대 신자들을 비롯해 신학생, 수도자 등 다양하고 폭넓은 수강자가 속속 온라인의 문을 두드렸다. 오는 3월 만 10년이 되는 사이버성경학교는 더욱 업그레이드된 프로그램과 수강료 인하 이벤트 등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제2대리구 복음화3국은 “성경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지만 바쁜 일상 가운데 성경 공부를 지속하는 일은 쉽지 않다”며 “성경의 의미를 알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좋은 강의를 더욱 많이 제공하겠다”고 말했다.문의 : 031-360-7635, 010-7470-7966, 사이버성경학교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3.01.17
[사설] 한국 교회, 성소자 급감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서울·대구대교구 등 전국 교구가 21일 청소년과 예비 신학생들을 초대해 다채로운 성소 주일 행사를 열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21), ‘여기에서 나와 함께’(신명 5,31),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등 성경 구절을 주제로 청소년들은 신학생과 수도자·성직자들과 살을 부대끼며 함께 신앙의 장을 만끽했다. 저출산 시대에 ‘성소 기근’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전국 6개 가톨릭대 신학대학 및 신학과는 입학 정원을 간신히 넘겼거나 대규모 미달 사태를 몇 년째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최근 3년간 입회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수도회도 꽤 많다. 성소 모임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성소 상담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성소자 급감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 결혼·출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현상도 또 다른 위기다. 성소자 및 신학생 급감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 교회 차원의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성소자 급감 배경에는 저출산, 학령인구 감소 외에도 직결된 문제가 많다. 기존 방식대로만 성소를 계발하고 발굴한다면 미래는 밝지 않다. 시대에 맞는 성소 계발로 돌파구를 찾는 일이 시급하다. 성소 주일이 많은 젊은이에게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거룩한 성소의 선물을 청하는 시간이었길 희망한다. 끊임없는 하느님과의 대화로 자신을 발견하고 하느님 사랑을 발견한다면 지상에서 희망의 순례자요, 평화의 건설자로 살아갈 수 있다. 성소의 씨앗은 혼인성사의 삶을 기쁘게 사는 부부, 하느님 부르심에 기쁘게 살아가는 성직·수도자의 삶이라는 텃밭에서만 싹을 틔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cpbc2024.04.24
![[신간] 오늘의 기도 : 극복해야 할 도전 /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8/27/wv91724747058798.jpg)
[신간] 오늘의 기도 : 극복해야 할 도전 /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기도의 은총 풍성히 누리고 싶다면…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 / 김영훈 신부 옮김 / 성서와함께 잔프랑코 라바시 추기경 / 안소근 수녀 옮김 / 성서와함께 프란치스코 교황, 올해 ‘기도의 해’ 선포 교황청, 기도 소책자 시리즈 8권 발간 성서와함께, 1·2권 잇따라 펴내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4년을 ‘기도의 해’로 선포했다. 2025년 희년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기도의 위대한 가치와 절대적 필요성을 재발견하는 데 전념’하기 위함이다. 교황은 “기도는 하느님을 믿고 자신을 맡기는 이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침묵 속의 외침과도 같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루카 18,1) 낙심하지 않고 개인과 공동체의 기도가 끊임없이 바쳐질 때 하느님의 나라가 자라나고,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간구하는 모든 이에게 복음이 선포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교황청 복음화부는 신자들이 모든 활동의 바탕이 되는 기도에 더 마음을 모아 기도의 은총을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기도 소책자’ 시리즈를 발간했다. 전 8권으로 국내에서는 주교회의가 다섯 권을, 도서출판 성서와함께가 세 권을 발간한다. 성서와함께는 최근 1권 「오늘의 기도 : 극복해야 할 도전」과 2권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를 잇달아 펴냈다. 「오늘의 기도 : 극복해야 할 도전」의 저자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은 성 베드로 대성전 전 수석 사제이자 바티칸시국 총대리로, 영성 분야의 저명한 저술가다. 추기경은 이 책에서 성경의 가르침, 겸손과 성실로 기도의 열매를 맺은 성인들의 증언, 영적인 영감이 가득한 시인·소설가·철학자의 글을 통해 기도의 열망에 불을 지핀다. 용서와 자비로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걸음에 희망을 북돋운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란 하느님께서 참으로 자신을 비우시고 강생하시어 우리 가까이 오셨다는 놀라운 말씀을 늘 가슴에 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란 죄로 인해 짓눌리고 상처 입은 자녀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때 체험하는 사랑과 위로의 눈물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눈을 들어 바라보면 원망은 찾을 수 없고 오히려 미소를 보며 아버지의 한없는 온정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64쪽) 2권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는 교황청 문화교육부 명예위원장인 잔프랑코 라바시 추기경이 집필했다. 책은 영혼의 호흡인 기도에 관한 일반적인 고찰을 시작으로, 시편 본문들을 개관하고, 교회 전통과 전례에서 특히 소중히 여겨지는 시편들을 짧게 해설한다. 저자는 희년을 향해 가는 우리들이 강렬한 영성의 시간을 지나고 있음을 역설하며, 시편 본문은 끊임없이 기도자를 재촉하여 사랑의 자리·연대의 자리로 옮겨가도록 이끈다고 강조한다. “시편에는 고통의 색깔이 지배적으로 나타납니다. 기쁨의 색깔보다 분명 더 많습니다. 시편의 거의 3분의 1이 탄원과 고통을 특징으로 합니다. 삶에 행복보다 어둠이 더 많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37쪽) “시편 기도가 지금도 전례 안으로 흘러들어 그 안에서 강하게 표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공동체 없이 고립된 채 혼자 기도하는 개인은 없습니다. 그 개인은 언제나 계약의 하느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느님과 대화하는 선택된 백성의 일원입니다. 계약과 ‘거룩한 민족’이라는 후광이 주님께 목소리를 높여 기도하는 모든 사람을 감쌉니다.”(46쪽) 5권 「기도의 비유」는 9월 중 출간될 예정이며, 3권 「예수님의 기도」, 4권 「성인과 죄인의 기도」, 6권 「기도 안의 교회」, 7권 「마리아와 성인들의 기도」, 8권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기도 : 주님의 기도」도 독자들과의 만남을 예고하고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8.28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월간 꿈 CUM]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 (12) 그리스 테살로니카 Q. 테살로니카 1서는 어떤 편지입니까? A. 테살로니카 1서는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쓰여진 서간입니다. 따라서 이 서간은 신약성경 27권 중에서도 제일 처음에 기록된 문서인 셈입니다. 테살로니카는 오늘날 그리스 북부에 있는 도시로서, 사도 바오로가 2차 선교여행 때 필리피로부터 테살로니카에 이르러(1테살 2,2) 거기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테살로니카 1서는 코린토에서 발송된 서간이며 대체로 서기 50~51년경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Q. 테살로니카 교회 구성원들은 누구입니까? A. 테살로니카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던 교우들은 그리스-로마 신(神)을 섬기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입니다. Q. 테살로니카 1서는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A. ① 1,1-2 : 서문 ② 1,3-10 : 감사의 글 ③ 2,1-5,24 : 본문 ④ 5,25-28 : 마지막 인사 Q. 테살로니카 1서가 쓰여진 동기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A. 테살로니카 1서가 쓰여진 동기와 목적은 박해문제, 재림 지연 문제, 교우들의 그릇된 행동입니다. Q. 재림의 원 의미와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A. 재림’(再臨)을 뜻하는 그리스어 ‘파루시아’(parousia)란 말은 ‘도착’의 의미로, 특히 신(神)이나 왕의 도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기쁨, 설렘, 긴장과 함께하는 기다림입니다. 중요한 인물이 방문하니 반가움을 갖고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이 단어를 취해서 주님의 재림에 사용합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기쁨과 설렘으로 이제나저제나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시지만, 신자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구원입니다. 과연 우리 중에 얼마나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까? “마라나타! 오십시오, 주 예수님!”(1코린 16,22; 묵시 22,20) Q. 테살로니카 교회 교우들이 받은 박해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A. 박해의 원인은 이교도 신앙을 버리고 새롭게 받아들인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일 것입니다. 테살로니카 교우들이 받아들인 새로운 믿음으로 인해 자기 동족들과의 단절, 문화적·관습적 단절, 나아가 정치적으로도 동료 비신자들과 단절되었습니다. 테살로니카 교우들이 혈연관계, 사회적 관계를 다 끊어 버리고 자기들만의 배타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자 주위 이방인들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로 보아 박해하였습니다. 이에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보내어 박해 중에 동요하지 말고 신앙 안에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1테살 3,2-3) Q. 테살로니카 1서에 나타난 재림 지연의 문제란 무엇입니까? A.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교우들에게 주님께서 심판관으로서 재림할 것임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재림을 보기도 전에 주변의 동료 교우들이 죽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떠오른 질문은 ‘죽어버린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는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죽어 버린 형제들이 언젠가 주님이 다시 오신다 해도 종말복락의 영광을 누릴 수 없다고 보고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또 살아 있는 자기들도 주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지금의 이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죽은 이들은 예수님 재림 시(時)에 어떻게 될 것이며, 예수님은 언제 재림할 것인지. 사도 바오로는 1테살 4,14-16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죽은자 들이라 하더라도 재림 시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합니다. 또 1테살 5,1-11에서 재림 시기는 결정되어 있지 않기에 깨어 기다려야 한다고 사도 바오로는 대답합니다. Q. 테살로니카 1서에 나타난 도덕적 삶에 대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A. 종말이 꼭 올 것이라고 믿었던 종말론 열광론자들은 현실의 책임과 윤리를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임박한 재림 안에서 테살로니카 교우들 중 일부는 일상적 삶에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 종말이 곧 올 것이기에 일하지 않고 수고하지 않으면서 남의 도움에 의존한 것입니다.(1테살 4,11-12) 사도 바오로는 교우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손으로 일해 충당하며, 조용히 살고, 자기 자신의 일에나 신경 쓰도록 권고합니다.(1테살 4,11-12), 또한 하느님의 뜻은 음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1테살 4,3.7)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등의 주임을 지냈다. cpbc2024.10.07

주님은 왜 최후의 만찬 ‘네 번째 잔’을 안 드셨나미국 개신교 목사였던 스콧 한, 파스카에 얽힌 비밀 밝히려 성경·초대교회 기록 등 탐구 네 번째 잔의 비밀 / 스콧 한 지음 / 이형규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최후의 만찬 이야기가 만들어 내는 어려움에는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찬을 완료하지 못하고 일찍 끝냈다는 데 있다. (중략)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면서 마셔야 하는 ‘네 번째 잔’을 마시지 않았다. 이는 만찬의 순서를 명백히 빼먹은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 빠진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시며,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신호를 보내신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잔을 드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마르 14,25) (123쪽) 파스카 만찬은 네 과정으로 되어 있고, 각 과정마다 물을 섞은 적포도주 한 잔을 곁들인다. 랍비들은 각 잔의 포도주와 물의 비율까지도 설명했다. 모든 유다교 전례에서 잔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파스카 축제를 기념하며 제자들과 가진 최후의 만찬에서 네 번째 잔을 드시지 않았다. 왜일까? “’그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셨다.’(마르 15,23)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건네진 포도주를 한 차례 거부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에 이르자 ‘신 포도주’가 예수님께 건네졌다. (중략)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요한 19,30) (133쪽) 무엇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일까? 미국의 개신교 목사였던 스콧 한 박사는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성경과 초대 교회의 기록, 학자들의 연구 자료와 전례를 탐구했다. 그 여정이 담긴 책이 「네 번째 잔의 비밀」이다. 저자는 책에서 파스카 축제를 기념하여 제자들과 가진 최후의 만찬, 십자가 죽음 등 예수님 지상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둘러싼 사건을 하나씩 되짚으며 파스카 신비와 가톨릭 미사의 의미를 드러낸다. 마지막 장 ‘내 삶의 파스카’에서는 우리도 주님과 함께 네 번째 잔을 마실 수 있는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지, 구원을 가져다주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지 묻는다. “‘다 이루어졌다’는 당신께서 숨을 거두심으로써 지금 이루어진 파스카를 뜻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파스카 만찬에서 빠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완결되었고 완성되었다. 주님께서 숨을 거두시면서 마신 포도주로 결말을 이끌어 냈다.”(134쪽) 성찬례가 가장 장엄한 예식이면서 계약과 연관된 예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1986년 부활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이후 스투벤빌 프란치스코 대학교에서 신학·성서학을 가르치고 있고, 2002년부터는 성바오로 성서신학센터를 운영하는 등 성경과 가톨릭교회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책과 강의를 통해 알리고 있다. 글을 번역한 이형규(부산교구) 신부는 “「네 번째 잔의 비밀」은 성경의 관점, 특히 계약의 관점으로 미사를 바라보고, 미사의 의미를 새롭게 알아보도록 이끌어 준다”며 “책을 통해 성찬례라는 예수님의 파스카 완결이 하느님 계약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며, 지금 이 순간을 포함한 모든 시대의 사람을 어루만지는 선물임을 깨닫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3.06.01

1700여 년 신앙 역사 이어온 ‘주님 성의(聖衣) 성지’ 트리어 대성당[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13. 독일 트리어 성 베드로 대성당·성모 성당 트리어 성 베드로 대성당(좌)과 성모 성당(우). 너비 38m, 길이 95m로 그중 약 40m는 4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서쪽 정면과 후진을 포함해 35m는 11세기에 증축됐다. 중세 전성기에 옛 로마네스크 성당 대신 고딕 양식의 성모 성당과 회랑을 완공해 연결했다. 필자 제공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주교좌 도시 트리어 트리어는 모젤강이 흐르는 골짜기에 있는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입니다. 기원전 18년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트레베리아인이 살던 곳에 로마식 다리를 세운 날을 트리어의 시작으로 봅니다. 트리어는 로마 제국을 동서로 나누던 시기 서방 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전성기에는 약 8만 명이 거주하던, 알프스 북쪽에서 가장 큰 도시였지요. 현재 주민이 11만 명이 조금 넘으니 그 규모를 가늠하실 겁니다. 아담한 시내에 도시 랜드마크인 ‘포르타 니그라’ 뿐 아니라 원형극장·온천탕·바실리카가 모여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중으로 나란히 붙어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트리어 대성당과 초기 고딕 양식의 성모 성당은 색다른 느낌을 줍니다. 트리어 대성당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주교좌 성당입니다. 고대 후기부터 중세를 거쳐 현재까지 모든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건축물일 뿐 아니라, 알프스 이북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태동해 현재까지 1700여 년 신앙 역사가 숨 쉬는 곳입니다. 우리의 시간 여행은 3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곳에는 이미 270년 무렵부터 에우카리우스 등 초대 주교가 이끄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처음 이들은 아마 성벽 안에 있는 가정교회에 모였을 텐데요. 311년 서로마 제국의 젊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호의를 베풀고 박해를 중지하면서 번듯한 주님의 집을 갖습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에 앞서 311년 ‘관용 칙령’으로 이미 그리스도교는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성 헬레나는 자기 궁을 신생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선뜻 내놓았고, 그 부지에 로마 다음으로 큰 주교좌 성당이 트리어에 들어서게 된 것이죠. 대성당 지하 유적에 당시 궁의 흔적이 있고, 화려한 천장화의 일부를 대성당 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의 소성당의 ‘예수님의 성의’, 대성당 박물관의 ‘거룩한 못’과 성물함. 성의는 1996년·2012년엔 순례자들이 지나가면서 볼 수 있도록 현시했지만, 평소에는 성의 소성당 내 특수 장치가 있는 진열장에 보관하고 있어서 볼 수 없다. 성 헬레나가 찾아온 거룩한 못은 대성당 박물관에 있는데, 당시 예루살렘의 유다 시키라쿠스 주교 앞에서 빛의 기적으로 진위를 검증했다고 한다. 필자 제공 트리어 대성당 주제대(좌)와 돔슈타인(우). ‘생명의 나무’를 주제로 한 현재 주제대 공간이 사실상 대성당에서 가장 오래된 공간으로 4세기 후반에 지어진 25m 높이의 사각형 성당의 중심이었다. 성당 밖에 놓인 ‘돔슈타인’은 당시 건물을 지탱하던 네 개 기둥 중 하나이다. 필자 제공 성 헬레나가 찾아온 예수 그리스도의 성의(聖衣) 성 헬레나와 트리어에 얽힌 여러 이야기는 이런 배경에서 생겼을 겁니다. 그중 예수님의 속옷이 중세의 화두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골고타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겉옷은 로마 군인들이 네 조각으로 나눠 가졌지만 속옷은 통으로 짠 것이라 한 명이 차지합니다. 그 튜닉(tunic)을 헬레나가 성지 순례 중 찾아 트리어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헬레나가 327/328년 무렵이나 328년에 성지로 여행한 것은 분명합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설하기 전이었으니, 동방에 새 황실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헬레나가 성지 순례 중 골고타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했다는 주교들의 보고들이 있습니다. 다만 성의(聖衣)에 대한 기록은 고대 문헌에는 없고, 11세기 말 트리어의 성 마티아스 수도원에서 제작된 트리어 연대기 「게스타 트레베로룸」에 처음 나옵니다. 12세기 중반 레겐스부르크에서 쓰인 「왕실 연대기」에는 헬레나가 다른 성유물과 성의를 트리어로 보낸 기록도 있습니다만, 사료라기보다 문학 작품에 가깝습니다. 성의가 역사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196년 5월 1일입니다. 요한 1세 대주교는 새로 지은 트리어 대성당을 처음 봉헌하면서 주제대 안에 성유물을 안치합니다. 그 뒤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트리어는 중세 독일어권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중요한 순례길에 있었고, 시내에 알프스 이북에 유일하게 성 마티아 사도의 유골이 모셔진 성 마티아 베네딕도회 수도원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튜닉이나 성유물의 진위는 현대인에게 중요한 관심사겠지만, 중세 순례자에게는 거룩한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위), 트리어 성의를 소재로 한 11세기 문학 작품 「오렌델」(아래 왼쪽), 1844년의 트리어 순례 포스터(아래 오른쪽). 50일 동안 약 50만 명이 트리어로 순례했으며, 순례 중 18번의 치유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필자 제공 트리어 대성당 파이프 오르간. 5500개의 파이프가 제비 둥지처럼 벽에 매달려 성당 전체로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필자 제공 현대까지 이어지는 트리어 성의 순례 1512년 신성 로마 제국 막시밀리안 1세가 제국의회에 참석하러 트리어에 왔을 때 성의를 참례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당시 대주교는 황제와 많은 주교 및 성직자들이 참석하는 가운데 제단을 열어 성의를 현시하는데, 이 모습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뒤로 지금 대성당 서쪽 후진에 로지아를 설치해 7년 주기로 시민들에게 현시했다고 합니다. 종교 개혁 이후 현시는 중단됐다가 1844년 트리어 순례 등 특별한 기간에 제대를 열어 현시한 후 같은 방법으로 다시 주제대에 넣어 봉했습니다. 지금 성의는 트리어 대성당 옛 제대 뒤편으로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새로 지은 성의 소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매년 130만 명이 대성당을 찾지만, 특별한 시기 외에는 소성당에 들어갈 수도, 성의를 보지도 못합니다. 19세기 복원 시도로 성의가 훼손되어 특수 장치가 있는 진열장에 모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97년부터 매년 열리는 트리어교구 축제 기간인 ‘성의의 날’에는 평소 닫혀 있는 성의 소성당을 개방해 순례자들이 참례할 수 있습니다. 축제 기간에는 성유물에 관심 있는 신자뿐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현재 교회의 과제를 두고 포럼도 열립니다. 순례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험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죠. “내가 믿는다는 것, 그것은 엄청난 일입니다”라는 2025년 모토처럼 우리에게 신앙이 있다는 것, 믿고 순례를 떠난다는 것 자체가 큰 은총이 아닐까 합니다. <순례 팁> ※ 룩셈부르크 공항(30분)이 제일 가깝고, 룩셈부르크에서 노선버스가 다닌다(117·118번, 30분 소요). 룩셈부르크·자르브뤼켄·코블렌츠에서 매시간 기차가 다닌다. 코블렌츠에서 코헴 거쳐 가는 드라이브 코스! ※ 올해 ‘성의의 날’ 기간 : 2025년 5월 1~11일. 마티아 사도의 성유물이 모셔진 성 마티아 베네딕도회 수도원 순례도 추천(83번 버스 18분 소요) ※ 대성당 미사 : 평일 7:00·9:00, 주일과 대축일 7:00·10:00·18:00(저녁기도) / 성 마티아 수도원 시간 전례 및 미사 : 평일 05:45·12:30·18:15·20:00, 주일 7:00· 10:00(미사)·12:00(미사)·18:00 cpbc2025.01.22

남 왕국 유다, 부흥과 쇠퇴를 반복[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0) 남 왕국 유다(아비야~아하즈) 남 왕국 유다는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멸망할 때까지 다윗 후손 20명의 임금이 다스렸다. 에드워드 버드 ‘요아스 임금 선포’, 유화, 1815년, 런던 왕립 예술 아카데미, 영국. 출처=Royal Academy of Arts 통일 왕국이 분열된 후 남 왕국 유다는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네부카드네자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을 완전히 파괴할 때까지 다윗 후손 20명의 임금이 다스립니다. 남 왕국 유다는 북 왕국 이스라엘보다 100년 이상 더 유지했습니다. 르하브암의 뒤를 이은 아비야(아비얌) 임금은 이스라엘의 예로보암과 전쟁을 벌였습니다.(2역대 13장) 유다의 군대는 베텔, 여사나, 에프론까지 추적해 이스라엘의 군대를 무찔렀습니다. 아비야의 뒤를 이은 아들 아사는 기원전 911년부터 870년까지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신전 남창들을 나라에서 몰아내고 조상들이 만든 우상들을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마아카를 우상 숭배 죄를 물어 폐위시킵니다.(1열왕 15,9-14) 그는 또 마레사에서 쿠슈족을 물리쳤습니다. 이스라엘 임금 바아사가 유다를 공격해 예루살렘에서 10㎞ 떨어진 라마를 점령했을 때 위기를 직감한 그는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람 왕 벤 하닷에게 보물을 바치며 이스라엘 공격을 부탁합니다. 아람 왕은 아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스라엘 국경을 쳐서 이욘, 아벨 벳 마아카, 단, 킨네렛 호수 일부를 점령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이스라엘 바아사 임금은 유다 공격을 멈추고 아람군을 대항하기 위해 회군합니다. 아사는 이 틈을 타서 라마를 수복하고 게바와 미츠파에 요새를 구축합니다.(1열왕 15,16-22) 여호사팟은 25년간 유다를 통치하면서 부흥기를 이끕니다. 그는 유다 땅에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없애버리고 백성에게 주님의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유다 전역의 모든 요새에 판관들을 세우고 주님의 법대로 판결하게 했습니다. 여호사팟은 또 이스라엘과 화평을 맺고, 모압과 암몬, 므운족의 연합군과 전쟁을 치러 승리합니다.(2역대 17-20장) 여호사팟의 아들 여호람은 8년간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아합 임금의 딸을 아내로 맞아 북 왕국과의 평화를 도모했습니다. 그가 유다를 다스리고 있을 때 에돔과 리브나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에돔은 차이르에서 여호람과 전투를 치러 독립을 획득합니다. 역대기는 이 사건에 필리스티아인의 적개심과 아카바 만 동쪽 지역 출신 아랍 민족들의 습격을 덧붙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까지 와서 왕국을 약탈하고 왕족들을 납치해 갑니다.(2열왕 8,16-24; 2역대 21,4-17) 여호람의 뒤를 이어 아들 아하즈야가 왕위에 올랐지만 1년도 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요람 임금과 동맹을 맺고 아람과 라못 길앗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자신의 부하 예후 장군에게 암살됩니다.(2열왕 8,25-29; 2역대 22,1-9) 아하즈야가 암살되자 그의 어머니 아탈야가 왕권을 잡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모든 왕위 계승자를 죽여버립니다. 그러나 아하즈야의 아들 중 어린 요아스만이 기적처럼 학살을 피했습니다. 아탈야는 재위 7년 되던 해에 여호야다 사제의 반란으로 죽임을 당합니다.(2열왕 8,18. 25-28; 11장) 왕좌에 오른 요아스는 성전을 보수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호야다가 죽자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 예언자가 이를 나무라자 요아스는 그마저 죽여버립니다. 요아스는 겁쟁이였습니다. 아람군이 유다를 쳐들어오자 그는 맞서 싸우기는커녕 성전과 예루살렘 왕궁의 모든 금을 꺼내 하자엘 임금에게 바쳤습니다. 이에 반발한 신하들이 그를 암살합니다.(2열왕 11─12장; 2역대 22─24장) 아들 아마츠야가 새 임금이 됐습니다. 그는 선한 임금이었으나 산당을 없애진 않았습니다. 또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인들을 몰아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으나 벳 세메스에서 참패를 당합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여호아스 임금은 여세를 몰아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성벽 일부를 파괴하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약탈합니다. 아마츠야는 라키스에서 숨어 살았는데 결국 모반자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2열왕 14장; 2역대 25장) 아자르야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역대기는 그를 ‘우찌야’라고 부릅니다. 그는 다시 한 번 유다 왕국의 번영을 이끕니다. 아자르야는 아카바 만에 헬랏 항구를 재건하고, 에돔에게 빼앗겼던 왕국 남쪽 국경선을 회복해 무역로의 지배권을 확보합니다. 그는 또 필리스티아인, 므운족, 네겝 지파 아랍인들과 전쟁을 벌여 승리합니다. 하지만 그는 나병에 걸려 왕좌를 아들 요탐에게 물려줍니다.(2열왕 15,1-7; 2역대 26장) 25살에 임금이 된 요탐은 16년간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즈르야처럼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한 착한 왕이었으나 여전히 산당을 없애지 않고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버려두었습니다.(2열왕 15,32-38) 아하즈는 아버지 요탐과 전혀 다른 길을 갔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에 빠져 자기 아들마저 불 속으로 지나가게 했고, 산당에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에돔, 필리스티아인들이 공격해 오자 아시리아 왕에게 공물을 보내며 도움을 청해 겨우 막아냅니다.(2열왕 16장)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4.13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12)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숱하게 많지만, 그중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만드신 기적은 특별하다. 사람들이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고 하니 공동체를 통해 기적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기적을 갈구하며 주님의 은혜와 손길을 기다린다. 항상 ‘나’를 구원해 주시길 바라며 ‘나’를 영원히 살게 해주시기를 원한다. 사람의 원초적인 행동을 살펴 보면, 모든 발현 원리는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뭐라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으셨고, ‘나’만의 구원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못했는데 ‘나’만 구원을 얻어 영생을 누린다고 생각해 보자. 이 얼마나 끔찍한 처벌인가.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주님이 주신 축복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지 계속 시험하고 계신다. 항상 교인으로서 모범을 다하고 전도에 힘쓰라는 성경의 말씀은 우리가 만들어야 할 공동체가 얼마나 지키기 힘든가를 역설한다. 음악에서도 공동체적인 삶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합창단이다. 한 사람의 멋진 노래로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여러 명이 노래 부를 때 보여지는 아름다움은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다. 각 성부의 보이스가 정확히 맞아 떨어질 때 공명되는 소리는 천상의 행복감을 준다. 좀 더 복잡한 음악 공동체는 오케스트라다. 수십 명의 연주자가 오랫동안 연마한 연주기술을 함께 발현하면서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은 꿈 같은 일이다. 똑같은 음을 여러 명이 연주하는 것만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며 감동과 전율을 준다. 미약한 씨앗이 공동체를 통해 몇 개의 광주리로 되돌아온다. 단순한 연주가 사실은 얼마나 축복인지, 그리고 함께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느끼고 감사해야 한다. 한 사람의 멋진 노래로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여러 명이 노래 부를 때 보여지는 아름다움은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다. OSV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의 작품은 영적이고 시적이다.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 형제들(Fratres)은 공동체에 대한 작곡가의 깊은 애정을 담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관객 없이 연주한 영상이 인상적이다. //youtu.be/TzqisNnFwMQ?si=SKXTgD7ItgwpEW3X 재미있는 것이, 우리가 합창 사운드, 현악 사운드라고 부르는 특징적인 소리들은 악기별·개인별 소리가 조금씩 다름으로써 얻어진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똑같은 소리를 가진 개인들이 정확히 같은 연주를 한다면 소리의 음량 차이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개인들이 차이를 가짐으로써 우리가 합창과 오케스트라 음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공동체는 개성 있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공동체가 그것이고 받아들여야 할 공동체의 본질이 이러하다. 우리가 만드는 공동체는 주님이 원하는 기적이 아닐까.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cpbc2024.07.24

이스라엘, 나라는 분열되고 우상숭배 성행[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8) 이스라엘 두 왕국으로 갈라지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사망한 후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진다. ‘프라고나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있는 예로보암’, 1752년, 아카데미 데 보자르, 파리, 프랑스.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 기원전 933년께 솔로몬이 죽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군합국’(君合國)이었습니다. 군합국은 최고 권력인 한 임금 아래에 둘 이상의 왕국이 결합해 이루어진 나라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의 지파가 합해져 이뤄진 왕국이었습니다. 남쪽 지파는 유다와 벤야민 지파를 말합니다. 북쪽 지파는 나머지 열 지파를 일컫습니다. 다윗이 먼저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선출된 다음 북쪽 지파 원로들이 다윗과 계약을 맺으면서 그를 왕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2사무 5,1-5) 이처럼 누군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려면 먼저 남북으로 양립된 열두 지파의 지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 출신인 르하브암은 북쪽 지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스켐에서 지파 원로들을 소집합니다. 이 자리에서 북쪽 지파 원로들은 르하브암에게 솔로몬 치하의 과중한 공물 징수와 강제 노역을 감해 달라고 청합니다. 르하브암은 이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북쪽 지파 원로들은 르하브암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지 않고 느봇의 아들 예로보암을 자신들의 왕으로 선포합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집니다.(1열왕 12장 참조) 유다와 이스라엘 두 왕국은 사해 북쪽 벳 아라바에서 유다 광야의 와디 엘 켈트와 와디 수웨이니트의 서쪽 산악 지역, 게바 북쪽과 벳 호론 남쪽, 아얄론 북쪽 필리스티아인의 영토를 경계로 분열됐습니다. 르하브암 르하브암은 41살에 즉위해 기원전 913년까지 유다를 다스립니다. 그는 북쪽 지파들이 자신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자 군사 18만 명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스마야 예언자가 르하브암에게 “동족끼리 싸워서는 안 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1열왕 12,22-24; 2역대 11,1-4) 다행히 르하브암은 스마야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예루살렘에 살면서 베들레헴과 헤브론 등 유다와 벤야민 지파 땅 15곳에 요새를 짓고 군대를 배치합니다.(2역대 11,5-12) 르하브암의 어머니는 암몬 출신 나아마였습니다. 이교인이었죠.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르하브암은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곳곳에 산당을 지어 아세라 목상을 세워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하게 했고, 신전 남창들이 그곳을 지키게 했습니다. 성경은 르하브암이 주님의 율법을 저버리고 하느님을 배신하였다고 비난합니다.(2역대 12,1-2) 그 결과 르하브암 재위 5년 때 이집트 파라오 시삭이 유다를 침략해 예루살렘을 약탈했습니다. 주님의 집은 물론 왕궁이 모조리 털렸습니다.(2역대 12장 참조) 르하브암은 기원전 913년께 사망합니다. 예로보암 북 왕국 이스라엘의 태조인 예로보암은 에프라임 지파 출신입니다. 예로보암은 우리말로 ‘백성은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실로 출신 아히야 예언자는 예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것이라면서 다윗처럼 하느님의 명령하는 바를 모두 귀담아듣고, 주님의 길을 걸으며 하느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고, 주님의 규정과 계명을 지키는 임금이 되라고 당부했습니다.(1열왕 11,38 참조) 하지만 예로보암은 왕위에 오르자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예로보암은 베텔과 단에 예루살렘 성전을 대치하는 이스라엘 왕국의 성소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는 성소에다 금송아지를 두고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면서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레위인이 아닌 자들을 사제로 임명해 자기가 마음대로 정한 축제일에 금송아지에게 제물을 바치게 했습니다.(1열왕 12,28-32) 예로보암이 이 같은 짓을 한 이유는 축제 때마다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버리고 유다 임금인 르하브암을 따르지 않을까 불안했기 때문입니다.(1열왕 12,26-27) 이 일로 예로보암 집안에는 하느님의 무자비한 재앙이 내려집니다. 하느님께서 예로보암에 속한 모든 사내를 치셨습니다. 성 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새가 쪼아 먹을 만큼 예로보암의 집안에 속한 이는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1열왕 14장 참조) 예로보암은 이스라엘을 22년간 통치하다 기원전 910년께 사망했습니다. 르하브암과 예로보암 중 누가 이스라엘 왕국 분열에 대한 책임이 더 클까요? 시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기원전 550년께 쓰인 신명기계 역사서 가운데 열왕기는 르하브암을 별로 탓하지 않고 오히려 예로보암을 비난합니다. 그 이유는 예로보암이 베텔과 단에 성소를 짓고 금송아지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기원전 180년대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하는 집회서는 르하브암과 예로보암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르하브암은 백성 가운데 우둔하고 지각없는 자로서 그의 정책 때문에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도 이스라엘을 범죄로 이끌었고 에프라임에게 죄악의 길을 걷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악이 무척 불어나서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온갖 악을 따르다가 마침내 자신들에게 징벌을 불러들였다.”(47,23-25) 집회서는 르하브암이 스켐 회의에서 백성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줬으면 솔로몬 통치 기간에 생겨난 불만들을 해소해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합니다. 집회서는 르하브암이 무지하지 않았다만 이스라엘 왕국은 분열은 없었을 것이라고 탓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3.31
정순택 대주교, 서울 수궁동본당 첫영성체반 축복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서울 수궁동본당 첫 영성체 반 어린이들에게 묵주를 선물하며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오실까요?”(정순택 대주교) “우리를 사랑하셔서요!”(서울대교구 수궁동본당 어린이)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4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서울 수궁동본당(주임 임동국 신부)의 첫영성체반 어린이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어린이들을 축복했다. 하느님과 신앙을 더 깊이 알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은 이날 대주교와의 특별한 만남과 격려에 더욱 힘을 얻었다. 정 대주교가 어린이들에게 첫영성체를 앞둔 소감을 묻자, 어린이들은 “기뻐요”, “좋아요”, “신기해요”, “뿌듯하고 설레요”라고 답하며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실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 대주교가 짧은 만남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막간 교리교육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이유를 물었는데, 한 어린이가 기특하게도 “우리를 사랑하셔서요”라고 답하자 큰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정 대주교는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첫영성체로 오시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유와 같다”며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만드신 것이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경을 통해, 그리고 신부님과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자”고 당부했다. 박윤경(마리아, 5학년)양은 “대주교님을 만나 기쁘고 설렌다”며 “대주교님께서 저희가 드린 꽃다발과 편지를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라온(라파엘, 3학년)군은 “정 대주교님을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어린이들은 직접 쓴 편지와 꽃다발과 함께 준비한 노래와 율동을 정 대주교에게 선물했다. 정 대주교는 어린이들에게 묵주를 선물하며 아이들의 신앙을 독려하고, 열심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길 기도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도재진2024.05.08

자비로운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열자[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44) 자비로운 하느님의 얼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비의 선교사’이시다. 교황직에 즉위하신 이후 계속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강조하시며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하느님의 자비를 반영하는 교회가 되기를 촉구하셨다.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자비의 하느님을 선포하는 제자 공동체의 선교적 쇄신을 강조하셨고, 2015년에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셨다. 교황님에게 선교란 타인을 개종시키거나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 아닌, 세상 안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카스퍼 추기경님은 「자비」라는 저서에서, 성경 전체를 꿰뚫는 핵심 메시지로 자비를 강조하셨다. 보통 구약의 하느님을 무서운 하느님, 심판하고 벌주는 하느님으로, 신약의 하느님을 자비로운 하느님, 용서하는 하느님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한 분의 하느님이 계실 뿐이며,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자비로운 아버지시라는 말씀이다. 하느님과의 신뢰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자비로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심판하고 벌주는 분으로 하느님을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온 삶을 통해 보여주신 것은 바로 자비로운 아버지시다. 때로는 벌을 주시고 화를 내시며 질투도 하시지만, 결국 당신 자애를 기억하시고 당신 백성을 받아들이시며, 새롭게 살 길을 열어주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사람들을 초대하셨다. 세상 모든 자녀를 어머니의 사랑으로 품으시는 분, 갖은 정성으로 기르시고 돌보며 보살피시는 분, 한없이 자비로우시어 아무리 잘못이 커도 돌아오기만 하면 너그러이 받아주는 분으로 알려주셨다. 죄를 지은 자녀에게 분노하고 화내는 분이 아니라 죄를 지어 비참한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시며 가슴 아파하는 분이시다. “그동안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니. 이제 나의 품으로 돌아와 나의 사랑을 받아주렴. 그리고 나와 새롭게 시작하지 않겠니?” 성경에서 ‘자비’는 ‘동정’이며 ‘가엾은 마음’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느끼는 쓰린 아픔이다. 불행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 처지가 너무 딱해 자기 것처럼 아파하는 마음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비참한 삶을 보고 느끼신 마음이며,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고 느끼신 마음이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가엾은 마음’은 그분에게 실제로 든 마음이다. 애원하는 나병환자를 보고,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보고, 군중을 보고 목자 없이 시달리는 양들과 같이 느껴져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파스카 여정(수난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가 어떠한지를, 곧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까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자비임을 보여주셨다. 그러한 자비를 입은 우리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우리는 고아나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들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를 잊거나 저버리는 분이 아니라 당신 아드님을 통해 끝까지 지켜주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믿고 든든히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우리는 하느님의 고귀한 자녀이며 하느님께서는 자녀의 고귀한 품위를 끝까지 든든하게 지켜주실 것이다. 만약 고통과 시련·절망 속에 있다면, 자비의 얼굴이신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열어드리자. 하느님은 우리 고통을 모른 체 하지 않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시며 우리가 고통 중에도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주는 분이시기에,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보자.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cpbc2024.04.02

이집트 탈출로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9)이집트 탈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탈출을 통해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났다. 그림은 코시모 로셀리 작 ‘홍해를 건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탈출 1,8)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 탄생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요셉 이후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이집트로 이주해 나일 강 하류 델타 지역인 고센 지방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요셉을 모르는 파라오가 나타나 히브리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해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강해졌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고,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우리에게 맞서 싸우다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탈출 1,9-10)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는 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제 동원해 혹독하게 노동을 시켰습니다. 피톰은 텔 엘 아르타비, 라메세스는 타니스에서 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칸티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 히브리인 가정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모두 강에 던져 죽였습니다. 이 무렵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탈출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탄압받으며 종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서슴없이 밝힙니다. 어느 민족이든 자신의 기원에 관해선 으레 신화적으로 묘사하는데 이스라엘은 달랐습니다. 미천한 조상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민족과 비교할 때 아주 대조적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종살이와 속박,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실 분은 바로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의 사내 아기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기적같이 살아납니다. 모세는 성장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기 위해 파라오와 극적인 교섭을 합니다. 파라오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아 10가지 재앙이 내려집니다. 마지막 재앙은 하느님의 천사들이 이집트의 모든 짐승의 맏배와 모든 사람의 맏자식을 죽입니다. 이때 히브리인들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표시를 했기에 죽음의 천사들이 거르고 지나갑니다. 히브리인들은 기적같이 살아남아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 광야를 떠돌다가 시나이 산에서 야훼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율법 곧 ‘십계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합니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시기는 기원전 1550~1200년 후기 청동기 시대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탈출해 가나안 땅을 정복한 시기는 기원전 13세기로 이집트 19왕조의 세토스 1세와 람세스 2세 때라고 추정합니다. 성경학자들은 히브리인들이 세토스 1세 때부터 탄압을 받다가 람세스 2세 때 이집트를 탈출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은 이집트의 어떤 공식 문서에도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의 기록뿐 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은 구세사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탈출기 12장 37절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들을 빼고 장정만 60만가량이라고 합니다. 또 탈출기 38장 26절에는 인구 조사를 받은 20살 이상의 남자만 60만 3550명이라고 정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수를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게 되는 부족들의 모든 조상이 그때 전부 이집트에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또 탈출기 12장 38절에는 “많은 이국인이 그들과 함께 올라가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히브리인만이 아니라 그 기회를 이용해 별의별 사람이 섞여서 종살이에서 도망을 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조 시대 마지막 인물로 ‘요셉’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요셉의 씨족이 제일 먼저 이집트로 내려와 살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네 명의 아내를 두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레아에게서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 여섯 아들을 두었습니다. 또 레아의 동생인 라헬에게서 요셉과 벤야민 두 아들 낳았습니다. 그리고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단과 납탈리를, 레아의 몸종 질파에게서 가드와 아세르를 두었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모두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계 씨족이 제일 먼저 이집트에 자리 잡았고, 다음으로 레위계 씨족들이 합류했으리라 추정합니다. 모세가 레위 지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탈출기 13─14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경로를 알려줍니다. 히브리인들은 피톰에서 조금 떨어진 수콧에 집결합니다. 여기서 팔레스티나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필리스티아인들의 길’(탈출 13,17 참조)이라 불리는 해안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 길이 아닌 에탐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곧 구릉 길을 택한 것이지요. 그 이유는 자기들을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이집트 군인들을 피하기 위해서죠. 모세와 히브리인들은 ‘갈대 바다’를 건너 마라와 르피딤을 지나 시나이 산으로 갑니다. 이집트 탈출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신앙의 근원이 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유로운 백성이 되고, 자유로워진 덕분에 구세주인 야훼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2.01

이콘에서는 왜 ‘하느님의 빛’을 검푸르게 그릴까[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6)빛의 감각의 현현- 부정의 미학 (작품1)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일부: 모자이크 이콘, 565~566경, 성 카타리나 수도원, 시나이. 인간의 개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 지구의 모든 존재 중 최고의 지성을 가진 인간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하느님이 계심을 알고, 또 내 안에 그분의 영이 존재함을 믿어왔습니다. 그렇기에 두 손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찬미가를 부릅니다. 그렇다 해도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얼굴’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 대해 많은 것을 비유를 들어 소상히 가르치십니다. 따라서 이콘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모습을 표현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표현의 한계를 설명합니다. 어느 날 두 친구가 밖을 내다보며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야! 밖에 하얀 눈이 내려서 정말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이네!” 그렇지만 한 친구는 시각장애인이었기에 하얀 눈이 차갑고 손바닥에서 녹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하얀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하얀 것이 어떤 것이야?” 친구는 색을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응, 하얀 것은 백조와 같지. 백조는 하야니까.” “백조는 어떻게 생겼는데?” “백조는 이렇게 생겼지”하며 친구가 오른 손가락을 모으고 팔목을 구부려 새 모양을 만들고 친구에게 만져보게 했습니다. 친구의 손과 팔뚝을 만져본 다른 친구는 이해했다는 듯 “아하, 하얗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과연 하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했을까요? 하느님의 빛은 ‘빛나는 어둠’ 하느님에 관해 설명할 때 인간의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적 공백이 생깁니다. 이럴 때, 부정(否定)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굳이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 즉 억지로 표현하려는 것을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이콘에서 표현하는 하느님의 빛에 대해 살펴보면, 하느님의 빛은 세상의 빛과는 다르게 어둡게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빛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물리적 빛(태양 빛, 전기나 불빛)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현현(顯現)하실 때는 오히려 어둠이 동반되는 경우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콘에서는 하느님의 알 수 없는 빛을 짙은 검푸른 색으로 표현하며, 이를 ‘빛나는 어둠’이라 부릅니다. 그 어둠은 태초 이전의 빛, 아마도 우주 탄생 이전의 빛으로 유한한 인간이 보는 빛과는 다른, 무한하신 하느님과 연결되는 빛으로 보이는 장면입니다.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그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창세 15,12-13) 하느님과의 계약을 위해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동물들을 반으로 갈라 양쪽으로 마주 보게 차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온종일 기다려도 하느님께서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독수리 떼들이 피 냄새를 맡고 하늘을 떠돌아, 그는 새들을 쫓기에 바빴습니다. ‘해 질 무렵’은 아직도 해가 있으므로 어두울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포와 암흑이 그를 휩쌌다’는 것은 하느님의 현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현현하실 때는 ‘공포와 깊은 잠과 암흑’이 동반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밖으로 드러난 성자 하느님으로 표현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솔로몬 왕은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계약의 궤를 모시는 의식을 열었습니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는데,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다”면서 솔로몬이 나오며 말합니다.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1열왕 8,12) 이콘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예수 승천에도 하느님의 현현을 의미하는 어두운 광휘를 그립니다(작품1 참조). 물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의 경우 성경에서는 빛이 눈부시게 예수님을 감쌌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이콘은 특정한 경우, 예수님을 밖으로 드러난 성자 하느님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복음서 저자 이콘에서는 그분을 중심으로 짙은 구름을 기하학적인 단순화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작품2 참조). (작품1)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의 대답은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거나 일부는 어느 예언자 중 하나가 부활했을 거라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마태 16, 16) 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위해 많은 기적을 베푸시고 사랑을 보여 주셨어도 그들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으며, 돌아오지도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보다는 인간이 주는 영광에 더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이사 6,10 참조) 예수님은 산(타볼) 위로 오르십니다. 산은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시편 121,1)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만을 데리고 산에 오르시고, 수난 저녁에 겟세마니 산에도 이 세 제자만을 데리고 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빛의 모습과 동시에 어둠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십니다. (작품2) ‘성자 하느님과 지혜의 천사군단’: 템페라, 18x16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예수님 둘러싼 짙은 구름은 성령의 추상적 형태 예수님의 얼굴과 옷은 태양과 같이 빛나고 주변의 모든 것은 그분에서 나오는 빛으로 ‘어둠 속으로 비치면서’(요한 1,5) 밝아졌습니다. 어둠은 믿음의 어둠을 상징화하고, 하느님의 현현을 상징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현현하실 때 ‘그분은 어두워진다’를 이콘에서는 보여 주며 이를 ‘빛나는 어둠’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손 엄지와 약지로 인성과 신성을 보여 주시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시며(요한 1,18; 12,45-46), 따라서 그리스도는 천상과 지상의 연결점 역할을 담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만돌라)로 둥근 것은 짙은 구름이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구름이 아니고 성령의 추상적인 구름 형태입니다. (작품2) ‘성자 하느님과 지혜의 천사군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옥좌에 앉아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면서 성자 하느님으로 표현합니다. 어두운 만돌라 형태로 둘러싸여 있으며, 붉은색으로 그려진 네 군데의 동물은 네 복음서를 상징합니다. 천사 모습은 예수님의 족보부터 시작하며 마태오 복음서를 상징합니다. 사자 모습은 마르코 복음서를 나타내고 시작은 사자처럼 소리치는 요한 세례자의 설교로 시작합니다. 루카 복음서는 희생 제물을 상징하는 소와 함께 사제의 역할을 하는 즈카르야가 처음부터 등장합니다. 독수리는 하늘을 나는 동물로 영성적인 면을 처음부터 도입한 요한복음서를 의미합니다. 발판은 관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나타내며, 발판의 붉고 둥근 원은 옥좌의 천사이며 수많은 눈이 박혀있습니다. 만돌라 안의 짙은 구름 안에는 수많은 지혜의 천사(케루빔)가 주님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들고 있는 성경의 내용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을 수 있으며, 그중 많이 그려진 것은 ‘짐 진 자는 나에게 오라’(마태 11, 28)라는 내용입니다. 김형부 마오로/ 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cpbc202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