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기도(2) :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기도를 못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도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바람직한 기도 자세에 대해 「가톨릭교회교리서」를 중심으로 알아봅니다. ◇기도 자세 기도할 때에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자세는 겸손입니다. 겸손한 마음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오만한 사람은 자신의 원의를 하느님의 뜻보다 위에 두지만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위에 둡니다. 자신의 뜻을 하느님 뜻에 맞추고자 합니다. 또 자신의 뜻을 하느님 뜻에 맞추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고 뉘우칩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은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느님 앞에 나아가게 합니다. 겸손한 자세와 관련해 성경에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루카 18,9-14)가 나옵니다.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루카 18,13)하고 바치는 세리의 기도는 겸손한 마음, 회개하는 마음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겸손은 기도의 초석"이며 "기도의 선물을 무상으로 받기 위한 마음 가짐"이라고 가르칩니다(2559항). 기도할 때에 요청되는 또 한 가지 기본 자세는 신뢰, 곧 믿음입니다. 신뢰 역시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인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참으로 아버지 하느님으로 믿고 고백한다면 하느님께 자녀다운 신뢰심을 지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18). 그러나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믿음의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마음을 가져야 믿음의 기도가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마태 6,32-33 참조). 기도할 때에 믿음과 함께 요구되는 것은 간절함과 끈기입니다. 루카 복음에 나오는 '친구의 청을 들어 주는 사람의 비유'(11,5-8)와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18,1-8)는 기도에서 간절함과 끈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비유의 끝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한 가지 더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드리신 두 편의 기도에 관해 언급합니다. 첫째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기도(마태 11,25-27; 루카 10,21-22)이고, 둘째 기도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실 때에 바친 기도(요한 11,41-42)입니다. 이 두 편의 기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두 기도 모두 감사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첫째 기도에서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하고 감사를 드리신 예수님은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고백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모든 기도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603항). 둘째 기도에서 예수님은 감사를 드리신 후에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도 끊임없이 청하고 계신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며 이렇게 "감사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제시합니다. 곧 "선물을 받으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그선물과 함께 당신 자신도 주시는 분(하느님 아버지)과 일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베풀어진 선물보다도 그 선물을 주시는 분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선물은 곁들여 주어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2604항). 따라서 기도할 때는 언제나 감사로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고, 얻고자 하는 기도의 선물을 구하기에 앞서, 먼저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바치신 두 편의 기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점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오세택2008.01.29

이스라엘 성지순례-나자렛ㆍ갈릴래아"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 물음 '생생'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가장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순례의 땅, 성경의 고향 이스라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경하는 거룩한 땅이다. 이스라엘 관광청 후원으로 6월 6일부터 6박 7일간 '예수님과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특히 이번 순례는 그리스도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이스라엘의 성지만 집중적으로 순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나자렛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순례 경로는 성경에 기록돼 있는 시간적 흐름보다는 지리적 위치나 교통편, 거리 등에 따라 결정되지만, 나자렛은 성지순례를 하면서 가능한 맨 먼저 방문해야 할 성지다. 하느님께서 크신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시리라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 알려진 주님 탄생 예고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하다보니 나자렛은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지 특별히 마음이 끌린다. 아마도 예수님 어린 시절이 녹아 있는 곳이라는 애틋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잠시 어린 예수를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펴봤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러 나서기 전까지 잠시 이집트로 피난했던 때를 제외하고 이곳에서 맨발로 언덕을 뛰어 다니며 양들과 놀고,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수 일을 하면서 사셨을 것이다. 나자렛의 대표적 순례지는 '주님 탄생 예고 성당'(성모영보성당).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하시며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리라는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동정 마리아의 티 없는 믿음과 위대한 신앙고백의 현장이다. 웅장한 석조 건축물의 이 성당은 예수 일생을 주물 동판에 부조한 현관문과 백합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형상으로 만들어진 천장이 매우 아름답다. 성당 앞마당에는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의 주님 탄생 예고상이 있는데,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는 마리아 표정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지하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순례에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을 기억하며 성가정의 참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려본다.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을 빠져 나와 정원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성 요셉의 목공소 자리에 세워진 '성 요셉 성당'(성가정 성당)이 나온다. 지하에는 요셉의 정혼과 꿈, 임종을 형상화한 세 개의 유리화가 말없는 봉사로 예수와 마리아에게 힘이 되어 주신 그의 삶 만큼이나 소박하고 드러나지 않게 자리잡고 있다. ▨ 갈릴래아 지방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갈릴래아 호숫가는 예수께서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그물을 드리우신 곳이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기적 가운데 대부분이 갈릴래아에서 이뤄졌다. 특히 갈릴래아 호수 서북쪽 연안 타브가(Tabgha) 지역은 성경에 기록된 산상설교(마태 5,3-12)와 빵과 물고기의 기적(마태 14,13-21),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신 사건(요한 21,15-19)이 이뤄진 곳이다. 둘레가 50여 ㎞에 달하는 갈릴래아 호수는 바다라고 착각할 만큼 매우 넓다. 평화로운 풍광과는 달리 날씨가 변덕스럽다. 집채만 한 파도가 일기도 하고, 잔잔하다가도 일교차가 커지면 풍랑이 거세어진다. 그러나 순례단이 갈릴래아를 찾던 날은 축복인듯 날씨가 마냥 순했다. '빵과 물고기 기적 성당', '베드로 수위권 기념성당'을 거쳐 호수 북쪽에 산 언덕에 위치한 '참행복선언기념성당'에 오르면 믿음이 부족해 세 번씩이나 배반한 베드로마저 당신 도구로 쓰신 주님의 깊은 뜻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을 기념한 '빵과 물고기 기적 성당'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중앙 제대 아래 예수께서 빵을 올려놓으셨다고 전해지는 큰 바위와 작은 초를 켜놓은 가녀린 불빛이 인상적이다. 제단 앞 바닥에 빵과 물고기 기적을 형상화한 모자이크도 일품이다. 그런데 광주리에 담겨있는 빵은 4개뿐이다. 빵 한 개는 어디로 갔을까. 내 마음 속에 있다는 뜻이란다. 혹은 성체성사를 나타나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예수께서 행하신 여러 기적 중 네 복음서 모두가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빵과 물고기의 기적'이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참 행복을 선언하시며, "마음이 가난하고, 의로움에 주리고,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고통과 좌절이 '일용할 양식'이 없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또 일용할 양식이 없는 이들에게 작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우리들 또한 축복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2000년 전 어느 날 부활한 예수께서 스승을 잃고 낙심해 있는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셨다는 '베드로 수위권 기념성당'.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신 이곳에서 마음이 저려옴을 느꼈다. 이미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했던 사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에게 무한한 사랑을 표출하시며 교회의 반석(초대 교황)으로 삼아 수위권을 부여해 주신 예수님. 우리는 또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가? 바로 옆 갈릴래아 호수와 어우러진 해질녘 성당의 풍광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제자들과 빵과 구운 생선으로 함께 식사를 했다(요한 21,1-14)는 '멘사 크리스티'(Mensa Chrisi, 그리스도의 식탁)라 불리는 큰 바위와 베드로를 안수하는 예수상을 보니 인간적 실패와 아픔을 이겨내고 사랑이신 하느님께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듯하다. 예수께서 특히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도시 카파르나움에는 공생활을 시작한 예수께서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고 선포하던 회당(시나고그)과 베드로 집터 성당이 있다. 베드로의 집터에는 원래 집터가 파묻히지 않도록 큰 기둥을 세우고 바닥을 들어 올리는 공법으로 지어진, 어부 베드로가 탔던 배 모양의 성당이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바닥이 강화유리로 돼 있어 아래 집터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예정보다 늦게,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성당에 도착했으나 성당을 관리하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회) 한국인 수사가 편의를 봐주어 거룩한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음을 마음 속으로 감사드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 간 곳이 '참행복기념성당'. 진복팔단성당 또는 산상설교성당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예수께서 군중들에게 여덟가지 참된 행복의 가르침을 준 것을 기리는 뜻에서 팔각형 모양의 돔을 얹은 성당이다. 여덟가지 행복을 의미하는 글이 팔각형 성당의 내부에 각각 걸려 있다. 각자 개인적으로 성당 안에서 잠시 묵상하며 기도를 드리는데 얼마나 가슴 떨리고 행복한지 감사의 눈물이 울컥 쏟아질 듯 했다.예수께서 산상설교를 하신 참행복선언기념성당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cpbc2007.06.27
[생활속의 복음]연중 제2주일- 예수님, 하느님의 어린양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공동사목 오금동본당 주임)"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세례자 요한은 왜 예수님을'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하는가? 요한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예수님을'하느님의 어린양'이라 호칭합니다. 성찬 전례가 시작되고 평화 예식이 끝나면 신자들은 사제가 축성된 빵을 나누는 동안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하느님의 어린양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평화를 달라고 기도하지요. 또 성체를 영하기 직전에 사제는 미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을 만큼 성체를 높이 들어 외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에 깊은 뜻이 담겨 있지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때 이집트 왕 파라오가 완고하여 말을 듣지 않자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는데 마지막 재앙이 이집트에 있는 모든 맏이의 죽음이었습니다.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맷돌 앞에 앉은 여종의 맏아들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들이 모조리 죽을 것이다"(탈출11,5). 이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하여 살리시기 위해 한 집에 한 마리씩 새끼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고 그 피를 집의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탈출12,13). 이렇게 이스라엘은 죽음에서 살아나게 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너뛰다'라는 의미의 파스카 축제가 대대로 전해지게 됩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의 맏이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은 희생양을 파스카의 어린양이라고 부릅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짓게 되면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속죄의 제물로 어린양을 잡아 바쳐드리면서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청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과 우리는 왜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칭할까요?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돌아가신 어린양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되어 돌아가셨고 우리는 이를 통해 죽음에서 구원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소리 높여 부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불렀으며 실제로 예수님의 삶 자체가 하느님의 어린양의 삶이었음을 우리는 십자가상 제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리숙해 보일 정도로 하느님의 길을 따른 예수님의 삶이 실패처럼 보였지만 결국 승리했음을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가야할 길이지요.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신자들은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청하고 평화를 빌면서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은 이제는 내가 예수님처럼 세상의 죄를 없애고, 평화를 주는 어린양으로서 살겠다는 결심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미움과 보복의 고리를 끊고 평화를 끌어내는 삶이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 삶처럼 고생스럽고 초라해 보이며 답답할 정도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현명한 신앙인의 길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cpbc2008.01.16

흑산도 공동체, 더불어 평화를 누리리라바다가 허락지 않으면 욕심내지 않으면 되고 "신부님, 왜 우리가 섬 놈이라 불리는 줄 아십니꺼." 유기종 신부가 흑산도본당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자 한 명에게 대뜸 이런 질문을 받았다. 유 신부는 누구나 생각하듯 "섬 사람들이 험한 바다일로 투박해져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라는 대답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게 아니었다. "신부님, 여기선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뭍에 있는 사람들과 한 약속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관계 맺기가 힘들어지지요. 설령 부모님이 돌아가셨대도 바다가 보내주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것이 우리들 삶입니다. 그저 가슴에 묻어야 합니다. 뭍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섬 놈이라서 그렇다 합디다. 우리 삶이 그렇습니다." 유 신부는 선뜻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다. 육지와 단절된 외로움을 이겨내고 바다와 싸우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바라고 기대할 수록 마음을 비워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비우면 비울수록 평화로워진다는 것을….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파도가 일면 출렁이는대로 그렇게 순리에 따라 사는 흑산도본당 사람들 삶을 들여다보자.흑산도로 놀러오세요. 유기종 신부(오른쪽 두번째)와 흑산도본당 신자들이 가자미를 말리는 판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흑산도(黑山島)는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목포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2시간을 시원스레 달리면 짙은 푸르름으로 뒤덮인 흑산도를 만날 수 있다. 배에서 내려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솟은 흑산도성당이 눈에 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여 명당이 따로 없다. 다만 성당 전경을 가리고 들어선 호텔이 아쉬울 따름이다. "요 며칠 날씨가 사나웠는데 오랜만에 바람이 잠잠하고 화창하네요. 날씨를 기막히게 맞추셨어요. 참 잘 오셨습니다." 따뜻한 봄날임에도 두툼한 겨울 조끼를 입고 나온 유 신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바람이 차고 거센 섬 특성상 주민들은 겨울옷을 일년내내 걸어두고 틈틈이 챙겨 입는다. 처음엔 유 신부를 알아보지 못하고 기자를 마중나온 신자나 성당 차량 기사인 줄 알았다. 그러다 지나가던 신자가 "신부님, 어쩐 일로 선착장까지 나오셨대요"하며 유 신부에게 인사를 건네는 통에 눈치를 챘다. "신부같지 않죠? 여기서 살다보면 그렇습니다. 마을 지기 정도 될까요? 참, 기사노릇도 잘 해야 합니다. 하하하." 소박하고 겸손한 말투엔 여유가 묻어났다. 선착장에서 성당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차를 타고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마음씨 좋은 유 신부가 혼자 걸어가거나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기 때문이다. "할매, 어디까지 가시는교? 태워다 드릴게요"라며 몇 번이고 차를 세웠다. 차에 타는 어르신들은 미안해하면서도 "고맙다"며 반색이다. 마을에 버스가 있긴 하지만 정거장에서 몇 십분을 기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우연히 얻어타는 성당 차량만큼이나 흑산도 주민들에게 '천주교 성당'은 고마운 존재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던 1950년대 본당에서는 흑산도 주민들에게 미국 가톨릭구제회를 통해 얻은 구호품을 나눠줬다. 1960년에는 흑산도 최초로 중학교를 세우고 무료급식을 실시하는 등 교육사업에 앞장섰고 약국 운영, 신용협동조합 설립, 대건 조선소 및 발전소 설립, 감귤단지 조성 등 지역사회 발전에 굵직한 기여를 해왔다. 때문에 50~60년대에는 주민 대다수가 천주교 신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밀가루 신자'들이 하나둘씩 '쉬는신자'로 돌아섰고 여느 도서지역처럼 젊은 사람들은 대거 도시로 떠나 이제는 본당이 지역사회 도움을 받아야하는 처지가 됐다. 본당 부회장을 맡고 있는 흑산도 토박이 조인기(마르코, 59)씨는 "그래도 신자들은 레지오 마리애, 반모임을 착실히 꾸려나가고 성당 일이라면 발벗고 나선다"면서 "따로 선교는 못하지만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먼저 나서며 모범을 보이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들쭉날쭉한 바다일에 어쩔 수 없이 미사를 거르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성당에서 큰 맘 먹고 일을 벌여도 날씨가 궂으면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 하는 일을 한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니기에 신자들은 '그 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신자들은 주로 가까운 바다에서 가두리 양식을 하면서 전복이나 우럭 등을 키워 생계를 유지한다. 또 선착장 주변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민박집과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한다. 라파엘 수산, 요한 수산 등 성인 이름이 들어간 식당들은 대부분 신자 가게다. "흑산도가 홍어로 유명하지만 주민들 중에 홍어잡이 배를 가진 사람은 드물어요. 이젠 먼 바다로 나갈 기력이 없는데다 큰 배를 소유할 형편도 안되죠. 그저 하루하루 욕심 부리지 않으며 그렇게 삽니다." 선착장 주변에서 요한 수산을 운영하는 이세길(미카엘, 69)씨는 "섬에 살다보면 무엇보다 욕심을 버리게 되고 모든 것을 하느님 섭리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섬에서 배운 깨달음을 이야기했다. 거칠고 투박하다는 섬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평화로움은 섬과 바다가 이뤄낸 절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올해는 흑산도 신자들에게 본당 설립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13일에는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를 비롯해 여러 사제들과 신자들을 초청해 모처럼 큰 잔치를 벌였다. 기자가 찾아간 때는 행사가 열리기 전이라 손님 맞이로 신자들 마음이 가장 바쁠 때였다. "날씨가 안 좋으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그 부분이 제일 걱정이지만 어쩌겠습니까. 하느님께 맡겨야지요. 배만 뜰 수 있을 정도만 되면 됩니다. 더 바라지도 않아요"라는 초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을 비우고 자연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삶이 몸에 배 있었다. 섬은 이들에게 평정심과 순응의 지혜를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흑산도성당은 50년 전 꼭 그대로다. 건물이 노후됐지만 마땅히 수리할 형편은 못된다. 바다를 건너 기자재를 실어와야 하는 터라 공사비는 육지보다 갑절이 든다. 그래도 성당 앞 마당에 가득한 갖가지 꽃나무들과 야생화가 아늑한 정취를 풍긴다. 성당 옆 사무실은 작은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고기잡이에 쓰이는 도구들은 물론 본당 사진 및 역사 자료들로 볼거리가 풍성하다. 마당에 세워진 관할구역 표지판을 보니 홍도, 대둔도, 영산도 등 근처 섬에 퍼져있는 공소 6곳이 표시돼 있었다. 공소 신자들은 한 달에 한두 번 유 신부가 방문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 날은 반모임도 하고 모처럼 성경도 읽고 성가도 부른다. 유 신부 혼자 사목활동을 하기엔 벅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 신부는 기자 생각을 알아챘는지 "성당과 공소 이곳저곳 손 볼 곳도 많고 신자분들도 자주 찾아뵈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왜 쉽지가 않은지 더 이상 설명은 없었지만 바닷 바람에 실어 보내는 소탈한 웃음은 더 많은 것을 얘기해 주고 있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08.05.14

예루살렘- <2>올리브산"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하늘에서 내려다 본 올리브 산 전경. 올리브 산에는 겟세마니 성당을 비롯해 예수님 승천 경당, 주님의 기도 성당, 주님 눈물 성당 등이 산재해 있다. ▲겟세마니 바위. 예수님께서 수난 전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던 곳으로 전해지는 이 바위는 겟세마니 성당 중앙 제대 앞에 자리잡고 있다. ▲예수님 승천 경당. 예수님 승천 자리로 전해지는 이 경당 안에는 예수께서 남기셨다고 전해지는 발자국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오늘날 아랍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높이는 해발 820m 정도다. 예루살렘이 해발 720m이니 100m 정도 높은 셈이다. 올리브 나무가 많아 예수 시대부터 올리브 나무 숲이란 뜻의 '엘라이온'이란 불린 이 산은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올리브 산은 구약성경에 단 2번 나온다. 다윗이 압살롬 소동으로 올리브 산으로 피신했다(2사무 15장)는 기록과 즈카르야 예언자가 '주님의 날'에 벌어질 일(즈카 14,4)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올리브 산은 또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과 관련돼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고(루카 19,41-44), 종말에 관해 설교(마르 13,3-13; 마태 24,3-14; 루카 21,7-19)를 하셨다. 예수께서는 낮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고 밤엔 올리브 산에 올라가 쉬셨다(루카 22,37-38). 또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후 제자들을 데리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 후 그 곳에서 체포되셨다(마르 14,26-50; 마태 26,31-56; 루카 22, 31-53; 요한 13,36-38; 요한 18,1-11).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올리브 산에서 승천하셨다(사도 1,6-12). 이처럼 올리브 산에는 예수님과 관련한 성지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올리브 산에는 신앙의 자유을 얻은 후 4세기 중엽부터 성당이 지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겟세마니 성당과 동굴 경당, 주님 눈물 성당(Dominus flebit), 예수님 승천 경당, 주님의 기도 성당(Pater Noster) 등이다. ▨ 겟세마니 성당 아람어 겟세마니는 '기름을 짜는 기계'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수난 전 이 곳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그래서 겟세마니 성당이 '고난의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베드로와 제베데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겟세마니에 오셨다. 성경학자들은 겟세마니는 베다니아와 벳파게로 가는 길목에 있어 예수께서 자주 들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때는 과월절을 앞둔 니산달(4월) 초 목요일 저녁,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 세 제자와 함께 겟세마니에 갔다. 수난과 죽음이 닥쳐온 것을 안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는 말씀으로 세 번이나 같은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고 있는 제자들을 세 번 흔들어 깨우셨다. 아울러 예수께서 체포되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예수께선 유다인 최고의회와 빌라도, 헤로데 앞에서 세 번 재판을 받으셨다. 그리고 사형선고 후 골고타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고, 예수께서 죽으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성경학자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이 3의 구도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겟세마니에 성당이 세워진 것은 4세기 후반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재위 379~395년) 때다. 비잔틴 양식의 우아한 이 성전은 614년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이 성전 자리에 1170년경 십자군에 의해 다시 성전이 세워졌으나 14세기 이후 폐허로 변했다. 지금의 성당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여러 나라에서 건축비를 지원받아 프란치스코회가 1919년에 착공, 1924년에 완공했다. 그래서 '여러 민족의 성당' 또는 '만백성 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실리카 양식의 이 성당 중앙 제대 앞에는 예수께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던 곳(마태 26,39; 마르 14,35; 루카 22,41)으로 전해지는 넓다란 바위가 놓여있다. 가시 면류관 장식에 둘러싸인 바위!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예수님의 간절하고 비통한 절규에 순례자 가슴에 흐르는 참회의 고백은 단 한 마디뿐. "주님! 제가 회개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바위 외에도 4세기 비잔틴 성당 모자이크 잔해가 남아있다. 또 성당 뜰에는 예수 시대 때부터 있던 올리브 고목 여덟 그루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증거하고 있다. ▨ 겟세마니 동굴 경당 겟세마니 성당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여m를 가면 겟세마니 동굴 경당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신 곳이라 한다(마르 14,41-46). 1681년부터 프란치스코회가 관리하는 이 경당에는 비잔틴 시대 모자이크와 십자군 시대 벽화가 남아 있다. ▨ 주님 눈물 성당 주님 눈물 성당은 겟세마니 성당에서 동쪽으로 약 300여m 떨어진 올리브 산 중턱에 있다. 이곳 역시 프란치스코회가 관리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전 이 곳에서 도성을 바라보고 우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셨다(루카 19,42-44). 돔 형태 비잔틴 양식의 아담한 이 소성당에선 예루살렘 시가지를 한 눈에 내다 볼 수 있다. 성당 제대에 장식된 새끼를 품고 있는 펠리칸 모자이크가 인상적이다. ▨ 주님의 기도 성당 주님 눈물 성당에서 오르막 길로 약 200m 올라가면 주님의 기도 성당이 나온다. 가르멜 수녀원이 관리하는 이 성당에는 예수님께서 가끔 머무시면서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다고 전해지는 동굴이 있다(마태 6,9-13; 루카 11,2-4). 일부 성경고고학자들은 이 곳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최후의 심판(마태 24,1-26,2)에 대해 말씀하신 곳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 부활 기념 성당,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 기념 성당과 함께 콘스탄티누스 시대 3대 대성당으로 불린 주님의 기도 성당은 614년 이슬람 군에 의해 파괴됐다. 지금 성당은 1875년에 건립한 것으로 60여개국 언어로 쓰여진 주님의 기도문 판이 현시돼 있다. 부산교구가 기증한 우리말 기도문도 있다. ▨ 예수님 승천 경당 예수님 승천 경당은 올리브 산 정상에 있다. 예수님 승천 이야기는 루카복음서(24,50-52)와 사도행전(1,1-12)에만 나온다. 이 경당 안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남겨 놓았다고 전해지는 오른발 자국이 찍힌 바위가 보관돼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07.05.03

1- 부모와 함께 하는 '가정교리'함께 공부하며 신앙도 사랑도 키워요가정교리를 하고 있는 한 가정의 모습. 사진제공=가정교리연구소 가정사목 관련 단체들은 가정성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가정이 '작은 교회'가 되도록 돕고 있다.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 또 어려운 가족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러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 어떨까. 가정의 달을 맞아 평화신문은 가족 관계를 돕는 교회 가정 관련 프로그램들을 안내한다. -------------------------------------- "엄마, 주일학교 선생님이 엄마랑 아빠랑 같이 성경을 읽어오래요." 예은(아녜스, 초4)이가 숙제를 해야 한다는 바람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았다. 켜 놓았던 텔레비전도 껐다. "어디를 읽어가면 되니?" 10년간 냉담 중이었던 아버지(박균배 요한, 40, 의정부교구 일산본당)가 물었다. 온 가족은 큰 소리로 성경을 읽어 내려갔다. 이 가정이 성가정이 된 것은 지난해 예은이와 오빠 진국(대건 안드레아, 초5)이가 첫영성체를 받으면서다. 본당에서 첫영성체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부모와 함께하는 '가정교리'를 실시하고 있었고, 예은이와 진국이는 성당에서 내 준 가정교리 숙제를 하며 냉담 중이던 아버지를 자연스럽게 다시 교회로 이끌었다. 현재 가정교리 부모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 권서양(안나, 38)씨는 "가정교리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남편이 냉담을 푼 게 가장 큰 수확"이라며 "예은이가 우리집은 성가정이라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흐뭇해했다. 1991년 인보성체수도회가 칠레교회에서 도입한 가정교리는 1년 과정으로, 부모가 매주 본당에서 모임을 통해 부모 교재로 공부한 후 집에서 자녀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교육. 박씨 부부는 가정교리를 통해 아이들과 기도문을 외우고 각종 전례를 통해 신앙심이 돈독해졌다. 이렇듯 '가정교리'는 부모가 자녀 신앙교육의 1차 책임자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아울러 미신자 부모는 입교로 이끌고, 쉬는 부모는 냉담을 풀게 하는 등 선교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가정교리는 현재 전국 270여개 본당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인보성체수도회 가정교리연구소는 가정교리 교사 양성을 위해 초중급 과정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가정교리연구소 소장 한미란(사비나) 수녀는 "가정 문제를 푸는 열쇠는 가정을 복음화하는 데 있다"며 "가정교리를 통해 좀더 많은 가정이 신앙공동체가 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의:02-926-7170, 가정교리연구소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cpbc2007.05.03

1- 부모와 함께 하는 '가정교리'함께 공부하며 신앙도 사랑도 키워요가정교리를 하고 있는 한 가정의 모습. 사진제공=가정교리연구소 가정사목 관련 단체들은 가정성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가정이 '작은 교회'가 되도록 돕고 있다.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 또 어려운 가족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러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 어떨까. 가정의 달을 맞아 평화신문은 가족 관계를 돕는 교회 가정 관련 프로그램들을 안내한다. -------------------------------------- "엄마, 주일학교 선생님이 엄마랑 아빠랑 같이 성경을 읽어오래요." 예은(아녜스, 초4)이가 숙제를 해야 한다는 바람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았다. 켜 놓았던 텔레비전도 껐다. "어디를 읽어가면 되니?" 10년간 냉담 중이었던 아버지(박균배 요한, 40, 의정부교구 일산본당)가 물었다. 온 가족은 큰 소리로 성경을 읽어 내려갔다. 이 가정이 성가정이 된 것은 지난해 예은이와 오빠 진국(대건 안드레아, 초5)이가 첫영성체를 받으면서다. 본당에서 첫영성체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부모와 함께하는 '가정교리'를 실시하고 있었고, 예은이와 진국이는 성당에서 내 준 가정교리 숙제를 하며 냉담 중이던 아버지를 자연스럽게 다시 교회로 이끌었다. 현재 가정교리 부모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 권서양(안나, 38)씨는 "가정교리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남편이 냉담을 푼 게 가장 큰 수확"이라며 "예은이가 우리집은 성가정이라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흐뭇해했다. 1991년 인보성체수도회가 칠레교회에서 도입한 가정교리는 1년 과정으로, 부모가 매주 본당에서 모임을 통해 부모 교재로 공부한 후 집에서 자녀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교육. 박씨 부부는 가정교리를 통해 아이들과 기도문을 외우고 각종 전례를 통해 신앙심이 돈독해졌다. 이렇듯 '가정교리'는 부모가 자녀 신앙교육의 1차 책임자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아울러 미신자 부모는 입교로 이끌고, 쉬는 부모는 냉담을 풀게 하는 등 선교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가정교리는 현재 전국 270여개 본당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인보성체수도회 가정교리연구소는 가정교리 교사 양성을 위해 초중급 과정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가정교리연구소 소장 한미란(사비나) 수녀는 "가정 문제를 푸는 열쇠는 가정을 복음화하는 데 있다"며 "가정교리를 통해 좀더 많은 가정이 신앙공동체가 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의:02-926-7170, 가정교리연구소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cpbc2007.05.03

47- 유다인에게 생소했던 돌고래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유다인들에게 돌고래 가죽은 매우 귀한 것으로, 성막과 성전 등 소중하고 특별한 곳에 사용했다. 몇년 전 페루에서는 돌고래 소리가 뱃속 태아의 두뇌 발달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돌고래가 내는 초음파 에너지가 태아의 두뇌에 긍정적 자극을 줘서 뇌 활동과 청각 능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페루에서는 돌고래 수족관이 있는 곳에서는 임산부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들이 아이 머리가 좋아진다면야 무엇을 못하겠는가. 인간에게 사랑받는 동물중 하나인 돌고래는 환경 친화력과 생존 능력, 의사소통 능력 등이 뛰어난 동물이다. 돌고래는 물돼지라고도 하며 주로 오징어와 물고기를 즐겨 먹는다. 돌고래 천적은 상어와 범고래다. 사람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돌고래는 대개 물속에서 사람과 함께 놀며 사람으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것을 좋아해 수족관에서 사육되기도 한다. 돌고래 두뇌는 약 1700g으로 약 1450g인 사람보다 무게가 더 나간다. 대뇌에 주름이 많고 지능이 뛰어나다. 몸동작이 민첩하고 학습능력도 뛰어나다. 먹이 사냥에 도구를 사용하고 그 방법을 새끼에게 교육한다는 놀라운 언론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호주 서해 연안에 사는 돌고래들은 바다 밑바닥에서 먹이를 찾을 때 원뿔 모양의 해면을 주둥이에 쓴다고 하니 놀랍다. 돌고래는 바다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것은 포유류로서 가족 개념이 강하며 종족 보존과 약탈 방어를 위한 것이다. 돌고래는 적을 만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재빨리 연합전선을 형성한다. 또한 돌고래는 사회성이 강한 동물이다. 돌고래들은 바다에서 무질서하게 헤엄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계질서에 따라 성별, 연령에 따라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자리매김한다고 한다. 돌고래는 인간의 청각능력을 넘는 고주파 음향을 발산해 멀리서도 동료, 새끼들과 쉽게 의사소통을 한다. 외국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고래 인형을 선물하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 우리나라 설화에서는 고래는 큰 동물, 또는 은혜를 베푸는 동물로 나타난다. 풍파에 조난을 당한 어부의 배를 고래가 밀어주어 구출해 그 어부 자손들은 대를 이어 고래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호남 해안지방에서 전승된다. 성경에서 고래로 추측되는 동물은 요나의 이야기에서 나타난다.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는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그 물고기 배 속에 있었다"(요나 2,1).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마태 12,40). 성경에서 돌고래에 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또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으로 천막 덮개를 만들고, 돌고래 가죽으로 그 위에 덧씌울 덮개를 만들어라"(탈출 26,14). 이처럼 만남의 천막 안에 모셔진 증언궤를 이동할 때 그 궤를 돌고래 가죽으로 덮었다고 한다(민수 4,6).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푼 하느님 사랑을 표현할 때 고래가죽으로 만든 신이 등장하기도 한다. "수놓은 옷을 입히고 돌고래 가죽신을 신겨 주었고, 아마포 띠를 매어 주고 비단으로 너를 덮어 주었으며…" (에제 16,10). 성경에 등장하는 돌고래 혹은 고래 가죽은 매우 귀한 것으로 서민들 생활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재료였다. 따라서 소중하고 특별한 곳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막과 성전 등에 사용했다는 성서 구절이 이를 반영한다(민수 4,25). 유다인에게 고래 가죽은 매우 특별한 것임에 분명했다. 그들이 양가죽, 염소가죽, 쇠가죽 등은 쉽게 구할 수 있었겠지만 돌고래, 고래 가죽은 매우 귀하고 구하기도 어려웠고 생소했을 것이 분명하다.cpbc2007.05.03
![[공의회 과정]14-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마리아론/손희송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교수)](//cpbc.co.kr/CMS/newspaper/2007/06/rc/213514_1.0_titleImage_1.jpg)
[공의회 과정]14-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마리아론/손희송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교수)손희송 신부성모 마리아에 관한 가르침은 1964년 11월 24일 반포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교회헌장) 마지막 장(제8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내용을 다루기에 앞서 마리아론 배경부터 살펴보자. 초세기(3~4세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두었다. 신약성경 초점은 하느님 아들이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마리아도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에서 이야기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다. 그 당시, 특히 2~3세기엔 영지주의 흐름이 강했다. 그리스도교에 위협을 준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부정했다. 인간은 영혼(靈魂)과 육(肉身)으로 이뤄졌다. 영지주의자들은 영혼은 거룩하고 선한 것으로, 육신은 더럽고 죄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구원은 육신에서 벗어나 영혼만 하느님께로 간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더러운 육신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는 가톨릭 신앙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과 육신을 함께 지녔다.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성령으로 인해 육신을 취하셨다. 신성(神性)과 함께 인성도 지니게 된 것이다. 인성을 부정하는 영지주의 흐름에 대항해 초기 교회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명확히 하고자 구원론적 관점에서, 또 교회와 관련 속에서 마리아를 고찰했다. 로마서(5,12-21 참조)를 보자. 한 사람(아담)을 통해 죄가 세상에 왔지만, 또 한 사람(예수 그리스도)을 통해 구원이 세상에 왔다. 그리스도는 새 아담이다. 그리고 한 사람(하와)의 불순종과 반대로 한 사람(성모 마리아)의 순종으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실 수 있게 길을 열어 놓았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마리아의 순종적 응답은 하와의 불순종을 극복한 것이다. 마리아는 새 하와다. 따라서 교회는 마리아처럼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마리아는 교회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이처럼 예수를 잉태하는 과정에서 하느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교회의 자세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초기 교회 교부들의 이같은 관점에 따라 성모 마리아에 관한 4대 믿을교리가 확립됐다. 믿을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함께 지녔다. 마리아가 인성을 지닌 예수를 낳았지만 신성은 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시다. 둘째, 마리아는 평생 동정으로 사셨다. 성경에는 예수의 형제, 누이가 나온다. 그러면 그들은 친형제, 친자매인가? 당시 사촌이나 가까운 이도 형제, 자매로 표현했다. 사실 그들은 형제, 자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 교부들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인해 동정녀로 예수를 잉태했고, 평생 동정으로 살았다고 믿었다. 이는 가톨릭교회 전통 안에서 성경을 읽기에 가능했다. 종교개혁을 한 루터도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으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313년 신앙의 자유 이후 순교의 길이 없어지면서 '동정'이 부각됐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함께 지녔기에 우리와는 거리가 멀어 인성만을 지닌 마리아가 동정의 모델이 됐다. 셋째, 마리아는 승천하셨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거룩한 분이기에 생애의 마지막도 남달랐을 것으로 고대 교부들은 보았다. 그러면서 성모승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6~8세기에 교회 전례 안에서 성모승천 축일이 자리잡아갔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11월 1일 성모승천 교리를 믿을교리로 선포했다. 넷째, 마리아는 원죄없이 잉태되셨다. 마리아 생애 시작도 중요했다.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는 1854년 선포됐다. 가톨릭교회는 교회 전통 안에서 성모승천과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를 믿고 받아들이며 축일로 거행하고 있지만 개신교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예수가 마리아를 통해 우리 인간에게 왔기에 마리아는 또다른 중개자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성을 나눠받아 우리를 위해 중개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의 신성에 더 초점을 두고 하느님은 정의를 심판하는 무서운 분으로만 여겼다. 반면 성모는 자비로운 분으로 생각했다. 하느님에 대한 이런 잘못된 생각으로 중세시대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없어진 지나친 성모 신심이 나타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계속됐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모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교회와의 관계에서 고찰했던 고대 교부들의 사상을 받아들여 마리아론을 다뤘다. 마리아론을 집중적으로 다룬 「교회헌장」 제8장의 제목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다. 공의회 소집 당시에는 마리아에 관한 독자적 문헌을 발표하자는 요청에 따라 '하느님의 모친이며 인간의 모친,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관해서'라는 제목의 초안이 작성됐지만 첫 회기에서 토의되지 않았다. 이후 일부 주교들이 마리아 교리를 「교회헌장」에 첨부하자는 의견이 제시되면서 특히 마리아의 위치에 관한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표결 결과 절반이 약간 넘는 주교들의 찬성을 얻었다. 제목이 1차 초안과 비교해 마리아 개인의 특권과 영광에 초점을 둔 '특권 마리아론' 경향을 지양하고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안에서 고찰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교회헌장」에서 마리아에 관한 내용은 5절(52-69항)로 구성돼 있다. 제1절(52-54항)은 마리아론의 방향을 제시한 서론 부분이다. 53항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뛰어난 은총의 선물로" 다른 인간보다 특별히 앞서 계신다는 점을 밝히며 그 분 역시 우리와 같은 교회의 한 지체라는 점을 밝힌다. 제2절(55-59항)은 구원계획과 구세주 업적 안에서의 마리아 위치와 역할에 대해, 제3절 '복되신 동정녀와 교회'는 마리아의 이중 역할에 대해 다룬다. 제4절 67항에서는 올바른 마리아 공경에 대한 사목적 규범을 제시한다. 특히 마리아 공경을 거부하는 '협착한 마음'과 '거짓 과장' 두가지 극단을 피하도록 경고한다. 제5절은 종말론적 전망에서 마리아를 바라보며 마리아가 "하느님의 순례하는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라고 고백한다. 공의회는 과장된 마리아 공경에서 벗어나 성경적이고 교부학적인 바탕에서 마리아론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다. 신앙의 원천으로 되돌아가면서 마리아를 그리스도론적, 교회론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앞서 얘기했듯이 개인에 대한 새롭고 특별한 찬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서 마리아의 구세사적 역할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두었다. "아드님의 공로로 보아 뛰어난 방법으로 구원을 받으신"(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동정녀 마리아는 천주 성자를 낳으심으로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영예를 누린다(53항). 그런데 마리아 모성은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의 사건이 아니다. 하느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 신앙적 응답을 통해 그리스도 모친이 됐고 그 다음에 비로소 육체적 모친이 된 것이다. 마리아는 구세주를 보내시려는 하느님 뜻을 믿고 받아들여 끝까지 순종함으로써 하느님 구원 사업에 협력한 '새로운 하와'가 됐다. 마리아의 믿음과 순종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전형이 된다. 또한 천상에서 이미 영혼과 육신이 영광을 누리시는 마리아(성모승천)는 교회를 위한 중개를 계속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중개에 의지하는 것이다. 구세주가 오실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고 믿음과 순종을 끝까지 지속한 성모 마리아의 삶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야할 길이다. 정리=이연숙 기자 mirinae@pbc.co.krcpbc2007.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