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밝힌 여성 순교자[2] 이순이](//cpbc.co.kr/CMS/newspaper/2007/09/rc/220782_1.0_titleImage_1.jpg)
조선을 밝힌 여성 순교자[2] 이순이주체적으로 동정생활 선택한 주님의 딸"…9월에 시댁에 와서 10월에 우리 두 사람은 동정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4년을 오누이처럼 지냈습니다. 그런 중에 육체적 유혹을 근 십여 차례 받아 하마터면 동정서약을 깰 뻔 했어요. 그 때마다 저희는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겪으신 고통과 피를 흘리신 사랑에 의지하여 무사히 그 유혹을 이겨냈답니다.…" 이순이(루갈다, 1782~1802)가 순교하기 직전 옥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결혼을 하고서도 동정(童貞)을 지키며 이순이와 오누이처럼 지낸 남편은 유중철(요한, 1779~1801). 육체적 유혹을 물리친 채 동정을 지키다 순교한 이순이ㆍ유중철은 세계교회사에서 드문 동정 순교자 부부이다. 이순이가 옥중편지에 적은 대로, 동정 부부로서의 삶은 십자가에서 고통받고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순이는 또한 당시 남성 중심 유교사회에서 여성의 독자성을 일깨운 선각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송종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는 "다른 그 무엇보다 자신의 신앙을 위해 주체적으로 동정을 선택하고 또 남편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한 것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동정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실천한 점은 당시 일반 여성들의 의식을 뛰어넘는 선구적 행동"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어린 시절이순이(李順伊)는 1782년 서울에서 아버지 이윤하(마태오)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수광의 8대손이며, 외할머니는 성호 이익의 딸이다. 어머니는 권철신과 권일신의 누이동생이다. 이처럼 그의 본가와 외가는 대대로 높은 벼슬을 했던 남인 세족으로, 천주교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집안이었다. 이순이는 1784년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직후 아버지가 세례를 받을 때 함께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1793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는 어머니에게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비록 몸은 약했지만 신앙생활 만큼은 빈틈이 없었다. 이순이는 14살 되던 1795년에 주문모 신부에게 첫영성체를 했다. 나흘 동안 두문불출하며 첫 영성체 준비에 전념한 끝에 교리시험을 무난히 통과하고 4월 5일 첫 영성체의 기쁨을 맛보았다. -동정, 유중철과 인연 이순이와 유중철이 일찍부터 동정생활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사실 갑작스런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독창적 신념에서 나온 생활방식이라기보다는 성경과 복음적 권고에 따른 선택이었다. 당시 신자들이 공소 예절서로 사용하던 「성경직해」와 「성경광익」 그리고 윤리생활 지도서였던 「칠극」과 기도서인 「천주성교일과」는 동정생활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고, 그 결과 동정생활은 한국교회 초기부터 하나의 신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동정생활은 특히 여성 신자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는데, 혼자 사는 사람은 오매불망 천주의 일에만 헌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문모 신부 입국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영성체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몸이 된다는 의식이 깊어지면서 동정의 의미는 한층 더 승화됐다. 1797년 어느 날, 이순이는 어머니에게 동정생활을 결심했다는 뜻을 고백했다. 딸의 결정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긴 어머니는 어렵사리 승낙을 했고, 승낙을 얻은 이순이는 곧장 주문모 신부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때 주 신부 머리에 떠오른 이가 유중철이다. 2년 전 전주 유항검의 집에 머물 때 유항검의 아들 중철이 아버지와 주 신부에게 동정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밝혔기 때문이다. 주 신부는 두 사람이 동정을 지키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끝에 혼인을 맺어주기로 했다. 건강한 처녀 총각이 결혼을 하지 않고 산다면 천주교의 동정 교리를 아는 사람들에게 천주교 신자로 의심받기 십상이고, 결국에는 화가 닥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이순이와 유중철의 신앙과 사람됨을 신뢰한 주 신부는 두 사람을 부부로 맺어줘도 오누이처럼 지내며 동정을 지킬 것으로 믿은 것이다. -동정부부 생활 마침내 1797년 10월 이순이의 집에서 혼사가 치러졌다. 겉으로는 부부지만 실제로는 오누이처럼 살기로 약속한 결혼식이다. 신랑은 열아홉, 신부는 열여섯이었다. 1년 동안 친정에 있다가 이듬해 9월 전주 초남리 시댁으로 간 이순이는 첫날 밤 어려서부터 꿈꿔오던 생활이 비로소 이뤄졌다고 유중철과 함께 기뻐하면서 이 은혜를 굳은 신심과 철저한 실천으로 보답하자고 맹세했다. 부인으로서 덕에도 충실했다. 매사 찬찬하고 자상했으며, 시부모와 남편에게 공순했다. 이순이의 이러한 덕행은 천주교를 믿지 않는 초남리 사람들 입을 통해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육욕을 참는 것은 예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부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 육신의 욕망을 극복했다.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자기 극복으로 이어진 영신 수련의 삶이었다. 두 사람의 가정이 곧 수도원이었고, 순간순간이 유혹과 투쟁하는 수도생활이었던 셈이다. -순교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유중철은 이른바 대박청래(大舶請來) 사건에 연루됐다는 죄목으로 체포됐고, 10월 9일 전주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유중철의 시신에서 이순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발견됐다. 유중철은 이 편지에서 "나는 누이를 권면하며 위로하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적었다. 유중철이 끝까지 이순이를 누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들의 철저한 동정생활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이순이도 편지에서 남편을 '충실한 벗(忠友)'으로 불렀다. 죄수의 아내로 유배형을 받은 이순이는 전주 감영에 들어가 "우리들은 천주를 공경하니 국법대로 죽어야 마땅합니다. 저도 제 집안 식구들처럼 천주를 위하여 죽기를 원합니다"라고 청했다. 관헌에서 이를 들어주지 않아 귀양길에 올랐던 이순이는 100여 리를 갔을 무렵 갑자기 유배형이 취소됨에 따라 다시 전주로 와서 옥에 갇혔다. 이때 이순이는 "하마터면 치명(致命)의 큰 은혜를 받지 못하고, 평생 죄인으로 살 뻔하지 않았겠는가?"라는 생각에 한없이 기뻐했다. 이튿날 심문을 받는 자리에서 이순이는 하느님을 공경하며 죽기를 원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순교를 '더할 수 없는 은총'으로 굳게 믿은 이순이가 그해 12월 요서(妖書)를 선전했다는 이유로 사형판결을 받은 것은 분명한 신앙고백으로 자초한 죽음이었다. 1802년 1월 31일 전주 숲정이 형장으로 끌려간 이순이는 망나니가 관례대로 그의 옷을 벗기려 하자 "내가 비록 네 손에 죽기는 한다마는 어찌하여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려 하느냐"며 품위있게 꾸짖고는 스스로 윗옷을 벗었다. 이순이는 편안한 모습으로 참수(斬首)당했는데, 잘려진 목에서 젖빛 같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전한다. 갓 스무살이었다. 유해는 전주 제남리 바위백이에 가매장됐다가 1914년 4월 부활절에 전주 중바위산에 가족 유해와 함께 이장됐다. 이후 이 산은 치명자산(致命者山)으로 불리게 됐다. -옥중 편지 이순이는 옥에 갇혀 있을 때 친정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을 위로하고자 두 통의 편지를 썼다. 이 편지들은 1802년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큰오빠 이경도(가롤로)가 순교 전날 어머니 권씨에게 보낸 편지, 1827년 전주옥에서 옥사한 동생 이경언(바오로)의 일지 등과 합쳐져 「루갈다 초남이 일기남매」라는 제목으로 필사돼 전해 내려온다. 이순이의 편지는 문장이 아름답고 깊으며 수식과 표현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호소력이 강하고 교훈적이며 정확하고 기품있는 문장으로 알려졌다. 이순이는 편지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또 진정한 효는 하느님께 대한 순명(順命)이라고 했으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기본 관계를 '효(孝)의 영성'으로 표현했다. 아울러 "모든 도덕을 구함이 좋으나 그 중에 으뜸은 신망애(信望愛) 삼덕이니 이 삼덕이 영혼에 참으로 들어가면 다른 모든 도덕이 절로 따르리라"며 신망애를 중시했다.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cpbc2007.09.05

37-신성한 상수리나무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마므레 상수리나무에서 세 천사를 대접하다 , 지거 쾨더 성경에 수없이 등장하는 상수리나무는 참나무 일종이다. 열매로 도토리가 열린다고 해 도토리나무라는 별명도 있다. 또 진짜나무라는 뜻으로 참나무라 부른다. 우리 조상들은 재상(公)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소나무(松)가 아니면 모든 나무는 잡목(雜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참나무만은 진짜나무라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우리나라 옛 선비들은 상수리나무에 절(節), 의(義), 도(道)가 있다고 해 품위 있는 나무로 받들었다. 또한 들판에 곡식이 풍년이 들면 도토리가 적게 달리고 흉년에 오히려 많은 열매가 달린다고 보았다. 그래서 상수리나무를 인(仁)까지 갖춘 나무라 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상수리나무 열매를 꿀밤이라 한다. 그러나 실제는 맛이 떫어서 날로 먹을 수 없지만 묵을 쑤어 먹을 수 있는 고마운 나무여서 꿀밤이라는 좋은 이름을 붙여준 것 같다. 참나무류 중에서도 상수리나무를 상목(橡木)이라 했다. 유럽에서는 예로부터 참나무는 신이 깃들어 있는 '신성한 나무'로 여겼다. 참나무는 그리스나 로마신화에서도 신성한 나무로 여겨 많은 전설에 전해져 온다. 여러 종교에서 힘과 장엄함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참나무는 성서시대에 가장 많이 있는 나무였다. 시리아, 레바논, 하란, 팔레스타인의 산지에서 자라며 바위가 많은 구릉지를 2∼3m 높이 관목으로 뒤덮는다. 특히 드문드문 있을 때는 크게 자란다. 대체로 가지를 잘 쳐서 잎이 무성하고 옆으로 퍼져서 아름다운 나무 모양을 만든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상수리나무는 실제로 우리나라 참나무와 유럽 참나무와도 많은 차이점이 있다. 다만 도토리가 열매로 맺어지는 것만 같을 뿐인데, 그 도토리도 모양이나 크기가 다르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느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땅에 오는 장면에 처음 등장한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을 거쳐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세겜 성소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창세 12,6). 이스라엘에서 상수리나무는 특히 큰 나무로 자란다. 또한 이 나무의 도토리는 매우 커서 사람들의 양식이 되기도 했다. 또한 상수리나무가 신성한 나무라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세 명의 천사를 통해 나타나실 때 극적으로 보여준다. 어느날 야훼께서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문 어귀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웬 사람 셋이 자기를 향해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손님들에게 가능하면 쉬어가라고 간청했다(창세 18,1-4).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수리 나무 밑에 묘지로 쓸 정도로 이 나무를 영험한 나무로 생각했다. "베델 아래쪽 상수리나무 밑에는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묻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곳을 알론바긋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창세 35,8). 또한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쌓기도 했다. 그래서 이 나무는 예배와 제물, 종교의식 등에 관련되어 있어서 신성하게 생각했다. "아브람은 천막을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있는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거기에서 제단을 쌓아 야훼께 바쳤다"(창세 13,18). 또한 상수리나무는 성경에서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도망가다가 매달려 죽은 나무로도 중요하다(1사무 18,9-10). 상수리나무는 위용이 모두 건장하고 장수하며 그늘이 수려하다. "아모리인들은 그 키가 잣나무 같았고 힘이 상수리나무 같았으나, 나는 그 열매를 가지째 땄고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다"(아모 2,9). 상수리나무는 성경에서 힘, 성실, 보호, 장수, 영광, 거짓 가르침에 대한 저항 등의 상징으로 인용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뽐내는 인간도 위대한 상수리나무를 통해 비천한 존재임을 다시금 생각해본다.cpbc2007.02.14

35-성 요셉에 대해 알고 싶어요나자렛 성가정 성당 지하에 색유리화로 그려져 있는 '성 요셉의 임종' 모습. 3월 19일은 성 요셉 대축일인데, 요셉 성인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성 요셉은 성모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님을 기르신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직업은 목수이지요.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는데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 남몰래 파혼하기로 맘 먹었다가 꿈에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와 혼인해 예수님의 양부가 되지요. 이런 요셉을 두고 성경은 "의로운 사람"(마태 1,19)이라고 부릅니다. 이상이 신자들이 일반적으로 요셉 성인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사실 요셉 성인에 대해서는 더 알려진 게 별로 없습니다만 그래도 조금 더 살펴봅니다. ▶생애 우선 요셉 성인의 가계를 볼 때 성경에서 전하는 내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이지만(1,16), 루카 복음에서는 요셉이 엘리의 아들이라고 전합니다(3,23). 이렇게 성경에서는 요셉의 아버지 이름조차 서로 다르게 표현하지만 공통되는 점이 있습니다. 요셉이 다윗 가문이라는(마태 1,1 ; 루카 1,27) 사실입니다. 요셉 성인의 출신지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는데 베들레헴은 다윗 왕의 고향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게 된 것은 요셉이 아기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등록하러 본향인 베들레헴으로 갔기 때문입니다(루카 2,4). 따라서 요셉은 베들레헴이 고향이었으나 마리아와 약혼할 무렵에는 이미 나자렛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를 낳은 후 잠시 이집트로 피난 생활을 했다가(마태 2,13-15 참조), 다시 갈릴래아로 돌아와 나자렛에서 목수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성 요셉의 출신과 생애에 관한 내용은 이 정도가 거의 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몇 살까지나 살았을까요. 유감스럽게도 확인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다만 학자들은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시기 전에 이미 요셉은 세상을 떠났으리라고 추정합니다. 「목수 요셉 이야기」라는 위경(僞經)에서는 요셉이 111살 때에 죽었다고 전하지만 신빙성은 없습니다. 요셉은 나자렛에서 죽고 나자렛에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성 요셉 신심 교회는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정해 신자들이 성 요셉의 모범을 본받고 성 요셉의 전구를 청하라고 할 정도로 성 요셉 신심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 요셉은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이는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 성 앵베르(1796~1839) 주교 요청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1841년 8월 22일자로 '성 요셉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 교회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정한 데 따른 것입니다. 성 요셉은 캐나다와 중국, 베트남 교회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또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1870년에 보편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여러 지역 교회와 수도회들이 성 요셉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성 요셉은 또한 의심하는 이들, 망설이는 이들, 임종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또 장인(匠人)들, 임신부들, 이주민들, 태아들, 여행객들의 수호성인입니다. 예수님과 마리아와 함께 성가정의 가장으로 모범을 보이신 성 요셉은 당연히 가정의 수호성인이기도 하지요. 성 요셉은 또한 노동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특히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지내는데, 교황 비오 12세가 1955년에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해 이 날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정한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조용히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성가정의 가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의로운' 성 요셉은 가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오늘날의 아버지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성 요셉 대축일과 성요셉 성월을 지내면서 특별히 이 땅의 '아버지'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7.03.14
![[공의회 과정]13- 제2차 바티칸공의회 성사론/손희송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교수)](//cpbc.co.kr/CMS/newspaper/2007/06/rc/210443_1.2_titleImage_1.jpg)
[공의회 과정]13- 제2차 바티칸공의회 성사론/손희송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교수)성체 성사는 모든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손희송 신부성사론은 2000년 교회 역사에서 트렌토공의회(1545~1563) 때 가장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당시 루터 등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총'을 부르짖으며 신학과 신앙생활을 재구성하려 했다. 하느님 말씀에 더 초점을 둠으로써 성사도 성경에 명시적으로 언급한 세례와 성체성사만을 인정했다. 또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사효성(事效性)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성경, 믿음, 은총 뿐만 아니라 전통, 이성, 선한 행위도 중시했던 가톨릭은 트렌토공의회를 열어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에 대처하면서 성사 교리를 재정립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 중에 긍정적 측면인 성사에서 말씀과 신앙의 중요성, 성령의 역할을 부각시킨 점 등을 수용하지 못했다. 트렌토공의회가 남긴 아쉬운 점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많이 극복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사론을 별도로 다루진 않았지만 여러 대목에서 성사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 이 부분을 살펴보자. 첫째, 성사는 표징이다. 보고 만질 수 있는, 즉 빵, 기름, 반지 등 표징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정의한 대로 하느님의 비가시적 은총의 가시적 표징인 것이다. "성사는 인간 성화와 그리스도 몸의 건설, 또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지향하며 표징들로서 교육에도 기여한다"(「전례헌장」 59항). 둘째, 성사는 말씀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는, 특히 자주 거행하는 신비를 충분히 이해하지도 믿지도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말씀 선포가 성사 집전 그 자체에 필요하다. 성사는 모두 신앙의 성사이며 신앙은 말씀에서 생기고 자라나기 때문이다"(「사제직무교령」 4항). 이런 배경에서 전례의 모국어 거행을 허락했고 이에 따라 신자들이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길이 열렸다. 셋째, 성사는 근본적으로 신앙의 성사이다. "성사는 신앙을 전제할 뿐 아니라 말씀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건하게 하고 드러낸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들이라고 한다"(「전례헌장」 59항, 「교회헌장」 21항). 넷째, 성사의 효력은 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유래한다.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어 누가 세례를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다"(「전례헌장」 7항). 교회가 정한 지향대로 성사가 거행되면, 성사 집전자의 성덕과는 상관 없이, 다시 말해 성사 집전자가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성사의 은총은 주어진다는 얘기다. 사효성을 재확인한 것이다. 성사 집전자는 본래 그리스도이시고 집전 사제는 그 도구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성사는 교회 공동체 전체가 거행한다. "전례 행위는 사적 행위가 아니라 '일치의 성사'인 교회, 곧 주교 아래 질서있게 모인 거룩한 백성인 교회의 예식 거행이다"(「전례헌장」 26항). 여섯째, 교회의 성사 생활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 성령은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합치되도록 이끌고, "신자들은 수난을 당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성사들을 통해 신비롭게 실제로 결합된다"(「교회헌장」 7항). 일곱째, 성사의 영역에서 갈라진 교회들과의 근본적 공통성이 확인된다. ♠일곱성사 * 세례와 견진성사 세례와 견진성사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과거 고대교회에선 세례성사에 견진성사도 포함돼 있었고, 세례 준비 기간이 무척 길었다. 3년간 단계적 과정을 거쳤으며, 신앙과 배치되는 직업을 가진 이가 세례를 받으려면 그 직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엄격했다. 250년 께 로마교회 세례예식을 보면, 이처럼 엄격한 예비신자 교육을 거쳐 선발된 이들이 세례식 전날 밤부터 모였다. 세례 집전자인 주교에게 밤새 마무리 교육을 받은 뒤 새벽에 닭이 울 무렵 물에 잠기는 침례(세례)를 3번 하고 기름 바르는 예식(견진성사)을 거쳐 안수를 받고 미사를 봉헌했다. 그러다가 견진 예식이 독립됐다. 세례 성사는 교회에 입문하는 성사다. 19세기 말 베네딕도 수도회를 중심으로 벨기에와 독일에서 일어나 각국으로 퍼진 전례운동은 고대교회 신학과 실천에서 영감을 받아 세례의 경우 입문적 성격을 강조했다. 이 정신을 받아들인 공의회는 세례를 "입교 성사"(「선교교령」 14항, 「전례헌장」 65ㆍ71항)라고 지칭했다. 교회의 세가지 기본행동인 복음 선포, 봉사, 전례 생활 수행을 목표로 한 입교 과정은 △예비신자를 받아들이는 예식 △선발예식(등록 시기)으로 시작되는 정화와 조명의 시기(수련 시기) △입교성사와 신앙을 익히고 심화하는 신비교육 기간 등 단계를 거치게 됐다. 또 어린이 세례 예식도 별도로 만들어졌다. 견진성사 역시 입문성사의 하나이면서 세례의 은혜를 더 강화한다. 견진성사를 받기 전엔 적절히 세례 서약 갱신을 선행해야 한다. 현재 각 본당들이 견진 준비 교육을 다양한 내용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이미 받았던 예비신자 교육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다. *성체성사 공의회는 성체성사를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헌장」 11항)이라고 명시했다. 따라서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 능동적, 완전하게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전례 개혁을 시작했다. 또 모국어 사용과 평신도 양형영성체를 허락했다.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으로 사제는 더이상 공동체를 등지지 않고 마주 보면서 미사를 봉헌하게 됐고, 제단을 다시 초기 그리스도교 식사 공동체 형태로 구성하게 됐다.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성찬례와 성찬의 음식에 현존하시고 미사가 희생 제사라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미사는 성경적이다. 독서, 화답송, 복음 등 미사 전반부 말씀의 전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말씀을 통해 영적 양식을 얻고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신자들과 친교를 이룬다. 말씀, 성사, 친교로 교회 공동체는 성장하는데, 이 세가지 요소가 미사 안에 있기에 성체성사는 그리스교 생활 전체의 정점이자 원천인 것이다. 따라서 신자들이 미사 참례를 위해 미리 잘 준비를 하면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미사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다. 준비없이 미사에 참례하기에 미사가 지루하고 지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고해성사 공의회는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의 화해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화해도 이뤄진다고 명시한다. 이 또한 고대교회 참회 예식을 재발견, 고해성사의 공동체적, 교회적 차원을 강조한 것이다. 1973년 공포된 새 고해성사 예식서는 △개별적 화해양식 △개별고백과 개별사죄를 겸한 화해의 공동체적 양식 △공동고백과 공동사죄의 공동체적 화해양식 등 고해성사를 위한 세가지 양식을 제시, 제한적이지만 공동사죄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하지만 공동(일괄)사죄는 △죽음 위험이 임박한 참회자들의 개별적 고백을 들을 시간이 없는 경우 △참회자 수가 너무 많아 적절한 시간 안에 개별고백을 올바로 듣기에 고해 사제 수가 부족해 참회자들이 고해성사나 영성체를 오랫동안 못하게 될 경우 등 두 경우에만 가능하다. 공동사죄가 가능한 상황인지 여부는 주교가 판단하고 주교는 주교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의논해 결정해야 한다. 현재 한국교회의 부활, 성탄 판공은 이 두가지 일괄사죄 이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다. 공의회는 또 병자성사에 대해선 죽음을 준비하는 예식이기보다는 치유 예식이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또 성품성사의 경우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보편 사제직과 구분해 사제들에게 해당되는 직무 사제직이 '권한'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위한 '봉사'임을 강조했다. 혼인성사와 관련해선 예전처럼 혼인의 일차 목적이 자녀출산, 이차 목적이 부부애라고 구분하지 않고 둘을 동등한 위치에 놓았다. 정리=이연숙 기자 mirinae@pbc.co.krcpbc2007.06.20
[교리 쏙쏙 믿음 쑥쑥] 22-미사의 기원유치부, 초등1학년 [이렇게 지도하세요] **미사의 기원 미사는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거행하신 최후만찬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즉, 미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식사인 최후만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신약성경 코린토 1서 11, 23-26, 마르코 복음 14, 22-25, 마태오 복음 26,26-29, 루카 복음 22,19-20의 말씀은 미사의 기원이 되는 최후만찬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루카 22,19-20).라고 하셨습니다.> 최후만찬 과정을 살펴보면, 빵과 잔을 손에 들고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그 빵을 나누어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이렇듯 최후만찬은 빵과 잔에 대한 예수님의 행위와 말씀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현행 미사의 성찬 전례의 구성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빵과 잔에 대한 예수님의 행위와 말씀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요약하여 말하면, 교회는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 최후만찬을 기념하는 미사를 거행하는 것입니다. cpbc2007.06.27

40돌 맞은 꾸르실료 보속의 시간40일간 전국순회 도보성지순례 나서는 꾸르실료 담당 서유석 신부 "이번 도보성지순례는 도입 40주년을 맞는 한국 꾸르실료 운동의 보속의 시간이자 교회 발전과 민족 복음화를 위한 사순(四旬)의 여정입니다." 꾸르실료 한국협의회 담당 서유석 신부는 27명의 꾸르실리스따와 함께 25일 제주에서 출발하는 '40일간의 전국순회 도보성지순례'에 나선다. 17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만난 서 신부는 "주님과 선배 사제들을 본받아 감히 이웃들의 십자가를 지는 '40일간의 강행군'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막상 순례의 길을 나서는 것이 조금은 두렵다"면서도 전국 꾸르실리스따와 가정, 교회가 모두 새롭게 거듭나길 희망했다. 꾸르실료 한국협의회는 도입 40년을 맞아 꾸르실료 운동 전반에 대한 반성을 통해 '40'이 가진 성경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국교회에서 꾸르실료 운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리하고자 발전위원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전국연결 고리기도'와 '전국순회 도보성지순례', '제15차 전국 울뜨레야' 등 굵직한 기념사업을 마련했다. 순례단은 25일 제주교구 정난주(마리아)ㆍ황사평 순교자 묘역을 출발해 27일 신말구 묘역(마산교구), 9월 6일 치명자산과 천호성지(전주교구), 9월 18일 박상근 묘역(안동교구) 등을 지나 10월 2일 새남터와 절두산 성지(서울대교구)에 이르는 868㎞ 여정에 나선다. "사제로서 24년을 살아오면서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형제 자매님들께 지은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걷겠습니다. 순교자들의 피와 땀, 눈물이 어린 그곳을 40일간 걸으며 꾸르실리스따의 회개와 성화를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이번 순례에 각 지역마다 꾸르실리스따들이 부분적으로 동참해 함께 걷는다. 이 순례에 사정상 참여하지 못하는 꾸르실리스따들을 위해 서 신부는 몇 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순례단의 십자가를 여러분의 바람과 아픔, 슬픔의 기도지향으로 떠받쳐 주십시오. 성지에서 순교자들을 통해 이 기도를 미사 때 지향으로 봉헌하려 합니다. 순례단을 위해 기도와 희생, 나눔의 실천을 부탁합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이힘2007.08.22

"무궁화는 성모성심 잘 상징하는 꽃"성모님께 무궁화 봉헌…'무궁화신공' 보급하는 김제현씨"한국 교회 주보이신 성모님 전구로 민족 화해와 일치, 평화통일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나라꽃 무궁화를 봉헌하는 묵주 기도를 바칩시다."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나라꽃 무궁화 보급 운동을 펼치는 김제현(바오로, 62, 마산교구 월영본당)씨는 장미꽃 대신 무궁화 송이로 엮은 묵주 기도를 봉헌하자는 이른바 '무궁화 신공'을 보급하고 있다. 이를 위해 3년전부터 무궁화 신공으로 묵주 기도를 봉헌하는 '무궁화 신공 기도 모임'과 함께 성모 마리아의 영성과 무궁화의 영성적 의미, 민족 화해를 기원하는 기도문 등을 담은 「샤론의 장미 무궁화 신공」 묵주 기도서(사진)를 곧 펴낼 예정이다. 김씨는 "묵주알 하나가 '장미 한 송이'를 의미하고 묵주 기도는 성모님께 장미꽃을 봉헌하는 관습에서 유래했듯이, 성모 마리아께 나라꽃 무궁화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묵상하며 묵주 기도를 바치는 것이 무궁화 신공"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무궁화'와 '성모성심'을 접목해 남북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묵주 기도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궁화'와 '성모성심'은 정말 연관성이 없는 걸까? 김씨는 "매일 새벽 강렬하게 피었다가 저녁에 지면서 100여 일 동안 끊임없이 새로 피어나는 무궁화야말로 성모성심의 표양과 가르침인 믿음과 겸손, 청빈, 순명, 정결, 인내를 잘 상징하는 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모 마리아께 특별히 아름다운 나라꽃 무궁화를 봉헌하는 정성으로 매일 무궁화 신공(묵주 기도)을 바친다면 우리나라를 평화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무궁화는 학술적으로 장미과에 속하지는 않지만 영어로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고 하며, 이스라엘에서는 구세주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덧붙였다. 교직에 종사하다 20여년 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김씨는 1995년부터 '나라꽃사랑 시민모임' 상임대표를 맡아 무궁화 보급 운동을 펼치며 나라사랑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특히 김씨는 성무일도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매일 묵주기도 20단을 봉헌하고, 성경을 필사하는 등 복음의 도구로 살아가고 있다. 오석자 명예기자 hellen5@pbc.co.krcpbc2007.08.22
![[셩경속 동식물]52-중요한 식량인 잠두(蠶豆)](//cpbc.co.kr/CMS/newspaper/2007/06/rc/209375_1.1_titleImage_1.jpg)
[셩경속 동식물]52-중요한 식량인 잠두(蠶豆)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복구장)잠두(蠶豆)는 누에콩이라고 흔히 부른다. 중국어로 잠두는 꼬투리가 작을 때는 누에 모양을 하고 있고 누에가 고치를 지을 때쯤에 익어간다고 잠두라고 한다. 잠두는 그 원산지가 북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이며 재배기원이 가장 오래된 작물 중 하나이다. 잠두는 당질이 많아 감미롭고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과 회분 그리고 비타민 A, B, B??, C가 골고루 함유되어 영양도가 높은 식품의 하나이다. 약용으로도 이용되는데 지혈제, 이뇨제, 해독제 등으로 쓰인다. 잠두는 지중해와 근동지역 고대 문명국가들의 공통적 식량작물이었다. 또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강낭콩류가 유럽에 도입됐는데 그 이전에는 잠두가 곡류 및 사료용으로 널리 재배됐던 유일한 콩과 작물이었다. 초기에는 나일강을 따라 이집트로 전파됐다. 현재는 이집트가 가장 재배면적이 많고 생산량은 중국, 이디오피아, 이집트 순으로 많다. 잠두의 우리 나라 도입과 재배 내력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930년에 청과용과 종실용 등 3개 품종이 도입됐고, 제주도에서는 가을에 파종, 월동 재배해 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에 남부 해안지역을 대상으로 재배지역이 증가했으나 다시 소비가 줄어 재배면적이 감소했고 1994년부터 경남 남해군 및 사천 지역에서 일본과 수출계약체결로 재배면적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잠두는 유럽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발견될 정도로 먼 옛날부터 재배하기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 옛 무덤의 미라의 관 속에서도 잠두가 발견된다. 일설에는 고대 이집트의 종교의식에 쓰였다고도 한다. 잠두는 용도가 다양했다. 가루로 만들어 기장과 섞어서 죽이나 스프도 만들고, 거친 빵을 만들었으며, 삶아서 통째로 먹기도 했다. 지금도 팔레스티나에서는 성경시대와 똑같이 빵을 만드는 데 이용하며,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으로 사용했다. 잠두의 잎줄기는 사료와 비료로 쓰인다. 한때 아프리카에서 서인도 제도로 흑인을 노예 삼아 운반해 갈 때 흑인의 식량으로 사용했다. 또한 괴혈병 예방을 위한 비타민의 공급원으로 잠두를 노예선에 대량 싣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잠두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옛날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사람의 영혼에는 죽고 나서 잠두 속에 들어가는 것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잠두를 먹지 못하게 금했다. 피타고라스가 적들에게 쫓길 때 큰 잠두밭이 나타났다. 이 잠두밭을 가로질러야 하는데 조상의 영혼이 깃든 콩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었다. 밭을 가로질러 가지 않고 머뭇거리다 뒤쫓던 적의 손에 붙잡혀서 죽임을 당했다는 전설이 있다. 공동번역 성서에 나오는 콩과 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콩과 팥이 아니다. 성서의 콩과 팥은 어떤 것을 지칭한 것일까? 공동번역 성서에는 콩을 잠두로, 팥은 불콩(창세 25,29-34)으로 번역하고 있다. 잠두는 성서시대에 널리 재배됐고 매우 중요한 식량이었다. 예리고에서는 잠두가 신석기 지층에서 발굴됐고 이 지역에서 아직도 재배하고 있다 잠두는 공동번역 성서에서 단 한 번 언급된다. "네가 한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백구십 일 동안 누워 있으면서 먹을 빵은 밀, 보리, 잠두, 제비콩, 조, 쌀보리를 섞어서 만들어야 한다"(에제 4,9). 새 번역 「성경」에는 잠두를 누에콩으로 번역했다.cpbc2007.06.13

48-인간에게 귀찮지만 긴요한 쐐기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식용 및 약용으로 유용한 쐐기풀. '놀라운 잡초' '건강에 좋은 야채' '신이 차려주신 밥상을 업신여기지 마라' 어떤 식물을 말하는 것일까? 정답은 쐐기풀이다. 사람들에게 높이 칭송 받아온 쐐기풀에 관한 동화도 있다. 안데르센의 「백조 왕자」에서 공주는 마법사의 저주를 받아 백조로 변한 오빠들을 위해 가시에 수없이 손을 찔리면서도 쐐기풀로 옷을 짜 입혀 마법을 푼다. 다년생초인 쐐기풀은 숲 가장자리에서 자라며 키는 1m 내외로 자란다. 포기 전체에 가시털이 나고 줄기에 세로능선이 있으며 잎의 가장자리에는 날카로운 겹톱니가 있다. 쐐기털에는 히스타민·개미산(포름산)·콜린·세로토닌 등이 들어 있고 잎에는 플라보노이드·카로티노이드·타닌 등이 들어 있다. 그래서 잎이나 가시에 찔리면 쐐기한테 쏘인 것처럼 아프고 심한 경우 물집도 생긴다. 쐐기풀의 가시는 단단하고 까칠까칠하며 잘 부러지고 주사기 바늘처럼 피부로 뚫고 들어가 독을 퍼뜨린다. 오래전 유럽에는 부활절에 쐐기풀로 몸을 치면서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관습이 있었다. 쐐기풀을 달인 차는 관절염, 통풍, 습진, 치질 등에 효과가 좋고, 쐐기풀 즙은 탈모, 비듬을 진정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쐐기풀은 뱀독의 해독제, 이뇨제, 요도염 치료에 이용되며 민간에서는 당뇨병 치료에도 사용한다. 유럽에서는 예로부터 쐐기풀 즙을 신경통 치료에 사용하고 또 가시로 환부를 찔러서 치료에 사용했다. 벌침으로 신경통을 치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약용이나 식용 외에는 사용하지 않지만, 오래전 삼이나 아마, 목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쐐기풀 줄기에서 섬유를 뽑아서 실을 만들고 천을 짰다. 16세기에도 쐐기풀을 침대시트, 돛대 등을 만드는데 이용했다고 하니 중요한 섬유식물이었던 것이다. 어린잎은 식용과 섬유를 뽑는데 다용도로 사용하고 녹색염료, 강장제로도 쓰였다. 뿌리는 황색 염료의 재료가 된다. 삶은 액은 진딧물 살충제로도 쓰여 무공해 농약 역할을 하기에 원예가들은 쐐기풀을 귀중히 여긴다고 한다. 어린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며 한방에서 포기 전체를 약용한다. 이처럼 쐐기풀은 약용 또는 식용 식물로도 활용했다. 성경에서 쐐기풀은 폐허와 몰락, 황량함을 상징한다.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올라오고 요새에는 쐐기풀과 엉겅퀴만 무성하여 승냥이들의 소굴이 되고 타조들의 마당이 되리라"(이사 34,13). "보아라, 온통 엉겅퀴가 우거지고 전부 쐐기풀이 뒤덮었으며 돌담이 무너져 있었다"(잠언 24,31). 성경에 언급된 쐐기풀의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고 쓸모없는 것이었다. "가시덤불 대신 방백나무가 올라오고 쐐기풀 대신 도금양 나무가 올라오리라. 이 일은 주님께 영예가 되고 결코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표징이 되리라"(이사 55,13). 그런데 인류와 함께한 쐐기풀의 역사가 4000년을 넘었다고 하니 하찮은 풀 한 포기가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이 새롭다.cpbc2007.05.17
여호수아기 해설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이야기 성경의 여섯 번째 책이자 '전기 예언서' 첫 번째 책인 '여호수아기'(Liber Iosue/ΙΗΣΟΥΕ)는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경위를 강렬한 종교적 열성과 흥분의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 (1) 전기 예언서 유다교 전승에 의하면 성경은 세 부분, 곧 '모세오경'과 '예언서'와 '지혜문학'으로 구성됩니다. 그 중에서 예언서는 좁은 의미의 예언서들만이 아니라, 그 저자가 예언자들이라고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와 열왕기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중세기에 예언서들을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전기 예언서들은 역사적 내용을 주로 담고 있기 때문에 자주 '역사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2) 주인공 여호수아 전기 예언서의 첫 번째 책인 여호수아기의 명칭은 이 책의 주인공인 여호수아가 저자라는 유다교 전승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오경의 저자가 모세가 아니듯이, 이 책의 저자 역시 여호수아가 아닙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여호수아기가 '신명기계 역사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뜻은 '야훼께서 구원하신다' 혹은 '야훼여 구원하소서' 입니다. '눈'의 아들인 여호수아는 원래 이름이 '호세아'였는데, 모세가 여호수아로 바꿔 불렀습니다(민수 13,16). 신약성경 시대에도 널리 사랑을 받은 이 이름은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예수'라는 약칭으로 불렸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할 사명을 그에게 부여합니다. 이렇게 제2의 모세가 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요르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을 정복합니다. 이로써 그는 약속의 땅을 주기로 하신 하느님 약속을 실현하는 하느님 도구로서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합니다. (3) 내용 여호수아기는 모세의 죽음에서 시작해 여호수아의 죽음에 이르러 결말을 맺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 ① 1~12장 : 요르단 강 서편 정복 이야기. ② 13~21장 : 점령한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한 이야기. ③ 22장 : 요르단 강 동편 지파들의 귀향 이야기. ④ 23~24장 : 여호수아의 고별 연설. (4) 핵심 신학 사상 여호수아기에 의하면 이스라엘 연합군은 총사령관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가나안을 정복합니다(여호 1~12장). 하지만 판관기를 보면 가나안 정복이 긴 세월 동안 점차적으로 이뤄졌다는 상반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각 지파는 개별적으로 혹은 몇몇이 연합해서 부분적인 정복을 감행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아예 정복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판관기는 전해줍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에 대해 이렇듯이 상반된 보고에 접하면서 독자인 우리는 심히 당황해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마도 가나안 정복의 실제 역사는 여호수아기에서처럼 매끄럽게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빌론 유배 중에 나라를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수아기의 저자는 하느님 은총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다는 역사 자료를 이용해 하느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은 보통 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한 땅, 하느님 약속의 실현을 증언해 주는 땅입니다. 따라서 그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면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한 번 여호수아 때처럼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새 여호수아'의 지도를 받아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기는 광야에서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갖고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성적 의미를 던져줍니다. 우리를 '약속된 구원의 땅', 곧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주실 '새 여호수아'는 바로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장 비서)cpbc2007.04.12
창세기(11월12일~11월18일) '평화신문과 함께 성경을 읽읍시다!' 평화신문은 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민병덕 신부)과 함께 10월15일부터 '하루 한장 성경읽기'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한장 성경읽기'는 창세기 1장부터 요한묵시록 22장까지 매일 읽어야할 성경의 장과 그 장을 읽어야만 풀 수 있는 문제를 장당 1개씩 게재하는 것으로, 매일 한장씩 읽을 때 2010년 6월3일에 끝나는 기나긴 신앙의 순례입니다. 평화신문은 매호 그 주간에 읽고 풀어야 할 성경의 장과 문제를 날짜별로 싣습니다. 또 성경 각 권을 시작할 때마다 그 성경에 대한 해설을 실어 독자들 이해를 도울 예정입니다. '하루 한장 성경읽기'는 살아있는 하느님 말씀에 맛들이고 참다운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디딤돌이 되어줄 것입니다. 평화신문과 함께 하는 새로운 신앙의 여정에 신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하루 한장 성경읽기'는 서울대교구 사목국이 발행하는 소공동체 교재 「길잡이」를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 ▨창세기(11월12일∼11월18일) ▲29장(12일) : 라반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큰딸의 이름은 ( )였고 작은딸의 이름은 ( )이었다. ▲30장(13일) : 하느님께서는 라헬을 기억하시어 그의 태를 열어주셨다. 라헬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 )이라 하였다. ▲31장(14일) : 야곱이 장인 라반과 계약을 맺기 위하여 돌무더기를 만들었는데, 그 돌무더기를 라반은 ( )라 불렀고, 야곱은 ( )이라 불렀다. ▲32장(15일) : 네가 ( )과 겨루고 ( )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 )이라 불릴 것이다. ▲33장(16일) : 그는 그곳에 제단을 세우고, 그 이름을 엘 ( ) 이스라엘이라 하였다. ▲34장(17일) :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 )를 받은 것처럼 우리 가운데에 있는 남자들도 모두 ( )를 받는다는 조건이어야, 우리와 어울려 살면서 한 겨레가 되겠다고 합니다. ▲35장(18일) : 레아의 아들은 야곱의 맏아들 ( ), 시메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 )이고, ( )의 아들은 요셉과 벤야민이다. cpbc2006.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