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셀름 그륀 신부의 특별 영성 강연 지상중계(중)두려움과 우울증, 영성 되찾는 첫 걸음 자기 과신 완벽 추구하는 생활에서 비롯스스로 자기 한계 인정할 때 하느님 만나▨제3강의 : 두려움을 다루는 영적 길 두려움을 다루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 피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께 두려움을 없애달라고 기도할 게 아니라 두려움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둘째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은 없애려고 할수록 더 강해진다. 두려움은 인간이 지닌 한계를 보여주고 하느님께서 삶의 가장 깊은 근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두려움 없는 삶은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 역시 그렇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한다. 이들은 내면에 있는 부정적인 것을 볼 수 없도록 벽을 쌓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두려움은 삶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실수하면 나를 우습게 볼 것이다'는 생각이다. 내면세계는 하느님께서 만드셨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 사신다면 어둠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은 사랑의 빛으로 내 안의 모든 것을 비추신다. 두려움은 사람의 평가에 연연해하는지, 하느님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는지를 알게 한다. 마음 깊은 곳에는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갑옷을 만들어 아무도 상처를 줄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갑옷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하느님께서 계시는 내적 공간에는 어느 누구도 상처를 주는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다. 혼자 내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 중에는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다. 이들은 살면서 배우자나 친구가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에게 매달려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수많은 참새보다 더 가치있는 존재다. 하느님은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게 지켜주신다. 두려움을 치유하는 두 가지 심리치료 방법이 있다. 먼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가치를 심화시키면 혼자 내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면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째는 하느님께서 나를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믿음이다. 듣기 좋은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믿음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런 상황을 견뎌내게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하느님을 생각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손에 맡겨진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게 아니라, 하느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고,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도 언제나 하느님 품 안에 있다.▨제4강의 : 우울증을 다루는 영적 길 우울증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멀어지는 중요한 원인으로, 성취와 성공만이 존중되는 사회에 대해 반작용으로 등장한다. 우울증은 하느님과 자신에 대한 표상에 있어 하나의 도전이다. 우울증을 대면하면 영혼의 깊은 바닥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마르 1,40 참조). 우울 증세가 있는 사람은 혼자 있으려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거부를 당할까봐 두려움을 지닌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가족이나 친구들이 항상 자신을 인정하고 돌봐주기를 바란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죄의식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기를 거부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마르 2,1-12참조). 우울한 사람들은 사물의 외적 모습은 보지만 내면의 모습은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그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다. 우울 증세가 심해지면 성경도 읽지 못한다. 이들은 벌하고 심판하는 구절만 눈여겨 본다. 적극적으로 살아가라는 경고의 말씀을 다르게 이해한다. 그래서 오직 부정적이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인지한다(마르 8, 22-26).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첫 단계는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되,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스스로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다던지 대화를 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우울증과 대면하는 것이다. 우울증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물어봐야 한다. 우울증은 자신이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언제나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네 번째 단계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울증은 스스로 완벽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생긴다. 중세시대에는 우울함을 창조적 활동을 위한 하나의 샘으로 봤다. 우울증을 잘 견뎌내면 창조적 작업을 하는 데 에너지가 된다. 하느님께 나가는 길은 우울증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울증에 내재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이지혜2007.11.13
[기도맛들이기]거둑한 독서(8-끝0주님 높이고 자신은 낮춰이연학 신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마리아 어머니, 오늘 어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에서 저는 거룩한 독서에서 (나아가 기도 일반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거룩한 독서(혹은 기도)를 잘 하고 있다는 표징은 무엇인지 질문하십니다. 몇 년 전부터 저는 아주 단순한 대답을 얻었습니다. 기도 중에 무슨 체험을 하느냐가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직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아는 법(마태 7,16), 어떤 사람이 기도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는 오직 그가 맺는 인간관계에서만 검증될 따름입니다. 어떤 공동체를 막론하고 교회의 친교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구성원들 사이 성격이나 노선 혹은 전망의 차이가 아니라 흔히들 '사심'(私心)이라고 표현하는 이기심입니다. 저는 널리 알려진 필리피서의 그리스도 찬가(2,1-11)를 두고 기도하면서 이 점을 더욱 깊이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공동체들이 겪는 거의 모든 종류의 알력의 원인은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단순히, 중심(中心)을 차지하려는 욕구입니다. 이것은 교회 바깥 정치 단체는 물론 시민 단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중심을 향해 질주할 때 이웃은 형제가 아니라 경쟁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한복판에서는 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자기 자리를 두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주님께서 지니셨던 '철부지 어린이'의 마음(루카 9,46-48 참조),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그 마음'(필리 2,5)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거룩한 독서를 참으로 잘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의 뒤치다꺼리에 충실함을 자기 소명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저마다 '성공'하기 위해 온통 중심을 향해서만 질주하며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이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변방, 그 '디아스포라'에 충실히 머무는 태도야말로 거룩한 독서의 열매가 아닐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크고작은 헤게모니(주도권) 싸움에서 벗어나 이런 열매를 맺으려면 무엇보다 하느님 말씀이 개인 뿐 아니라 공동체 삶 구석구석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시게 해 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이 가능하려면 저마다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는 세력들을 말씀의 빛으로 비추는 영적 투쟁 작업을 날마다 충실히 수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저는 거룩한 독서가 바로 이런 작업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독서가 '흥행'이 되는 기도 프로그램 중 하나가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왜냐면, 오직 이런 방식으로만 교회는 세상에 희망의 표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만 우리는 '점점 더 깊이 세상 안에 존재하되 점점 덜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소금이요 빛으로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럴 때에만 우리가 전하는 믿음의 말씀도 신빙성과 설득력을 얻습니다. 성경은 무지개빛 성공을 약속하는 책이 아니라, 근원적 문명비판의 서(書)라고 믿습니다. 왜냐면 교회 안에도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어쩌면 복음 이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세상의 정신을 알아차리도록, 우리 안에 난무하는 '세상 말들'을 '하느님 말씀'으로 예리하게 식별해 내도록 지치지도 않고 요구하며 훈련시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행복은, 우리가 이런 과정을 충실히 거쳐 주변부의 작고 가난한 사람으로 머물 때만 주어지는 것 아닌가요. 마리아 어머니, 이미 실천하고 계신 분께 너무 많은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어머니께서 사람들 사이에서 늘 살아오신 모습 그대로가 저에게는 이미 복음 단락입니다. 어머니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 하느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알아듣고 자유롭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곁에서 함께 걸어 주시길 기도드리며 이만 맺습니다. cpbc2007.09.19
![[특집] 예술혼 살아있는 가톨릭 미술의 '보고'](//cpbc.co.kr/CMS/newspaper/2007/11/rc/228412_1.0_titleImage_1.jpg)
[특집] 예술혼 살아있는 가톨릭 미술의 '보고'가톨릭 등록문화재를 찾아서-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등록문화재 제54호) 춘천 죽림동성당(주임 문양기 신부) 잔디밭에 쏟아지는 만추(晩秋)의 빛이 영롱하다. 울굿불긋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죽림동성당. 춘천교구 역사와 교회미술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성모자상 옆 단풍은 한낮 햇살을 안고 반짝거린다. 마당에 떨어진 낙엽들은 바람을 타고 한가로이 나뒹군다. 파란 하늘을 향해 솟은 종탑도 가을 정취를 더해준다. 춘천시내 약사리 고개 정상에 자리잡은 죽림동주교좌성당은 아일랜드에서 진출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건축한 석조성당의 대표작이다. 이 성당에서 보듯 서양 선교사들이 건축한 성당들은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마을 한가운데 고지대에 들어서 있다. 첨탑과 색유리화, 장방(長房)형이 특징인 고딕식 또는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그 연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오랜 박해 속에서 숨죽였던 교회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죽림동성당은 교구 역사와 빼어난 건축 예술미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성당 입구에서 올려다 보이는 종탑 십자가는 서울 명동대성당의 옛 십자가와 똑같은 모양이다. 1939년 서울대목구에서 분리돼 지목구(知牧區)로 출발한 교구임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청동문 윗단에는 옛 아일랜드풍 십자 문양 한 쌍이 새겨져 있다. 척박한 강원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한국전쟁 전후의 궁핍한 시기에 주교좌성당을 건축한 성골롬반회의 업적을 기리는 표식이다. 성당건축 기공일은 벽에 붙어있는 라틴어 초석이 말해주듯 1949년 4월 5일이다. 부지는 교구 요람인 곰실공소(춘천시 동래면 고은리)의 신자들이 마련한 아랫터와 구 토마스 신부가 매입한 윗터를 합해 마련했다. 실제 건축은 전남 광주에서 온 '자'씨 성을 가진 중국인 기술자와 또 한 명의 기술자가 맡았다. 지금도 흠잡을 데 없이 튼튼한 석재는 멀리 홍천 발산리 강가에서 실어왔다. 그러나 외벽을 쌓고 동판 지붕까지 얹고 나자 전쟁이 일어났다. 공사를 지휘하던 구 토마스 신부는 미사 집전 도중 인민군에게 끌려갔다. 성당은 유엔군 공습으로 인해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 때문에 1956년에야 봉헌식을 가질 수 있었다. 죽림동성당뿐 아니라 춘천교구 역사를 얘기할 때 곰실공소 엄주언(마르티노, 1872~1955)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엄 회장은 외로이 공소를 세워 춘천 전역으로 신앙을 전파한 평신도 지도자다. 가족을 이끌고 천진암에 가서 교리를 배우고 돌아와 열렬하게 복음을 전한 그의 헌신적 활동은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그는 수년간 공을 들인 끝에 1920년 김유용 신부를 모셔오고, 성당을 짓기 위해 전답까지 처분했다. 성당 아래에 있는 '말딩회관'은 교구가 그의 업적을 기리려 1999년에 건축한 것이다. 죽림동성당은 흔히 한국 가톨릭미술의 보고(寶庫)라고 불린다. 특히 성당 내부는 '전례공간 구성의 교과서'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래서 요즘 성당 신축을 준비 중인 타 교구 사목자들이 심심찮게 찾아와 살펴보고 간다. 이런 명성은 1998년 대대적 보수공사를 벌인 덕분에 얻었다. 성미술과 전례에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는 교구장 장익 주교와 가톨릭 미술계의 내로라하는 예술가 20여 명이 야외 성상부터 촛대까지 구석구석에 예술적 혼을 불어넣었다. 마당 한 켠에서 약사리 고개를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예수성심상은 조각가 최종태(요셉) 선생 작품이다. 이보다 더 뜨겁게 예수 성심을 찬미할 수 있을까 하는 신앙고백이 성상 좌대에 적혀 있다. "십자가에서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성심은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 마음 자체이며, 온 인류 구원의 중심이자 원천이시다." 청동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시선은 자연스레 화강암 제대 쪽으로 쏠린다. 시선을 빼앗는 장식물이 극도로 절제된 덕분이다. 제대는 미사전례의 중심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기념되고 재현되는 장소이자 성체성사로 마련된 주님의 식탁이다. 최영심(빅토리아) 선생 작품인 22개 유리화는 '색과 빛으로 쓴 성경'이라고 할만하다. 도금 동판의 감실, 주교좌(主敎座), 독경대, 십자가의 길 14처, 성수대 등 모든 것이 소박하면서도 정갈하게 배치돼 있다. 성당 내부에 열주(列柱, 줄기둥)가 사라지고 평면이 하나의 강당처럼 통합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앞서 건축된 용소막(1915년)ㆍ공세리(1921년)ㆍ구 합덕성당(1929년) 등은 열주가 있다. 하지만 종탑과 아치 등 형태에 관심이 집중된 데다 시공이 불완전해 열주가 갖는 공간 분절화 기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게 건축가들 평이다. 죽림동성당 건축을 기점으로 원주 원동(1954)ㆍ서울 돈암동(1955)ㆍ강릉 임당동성당(1955) 등은 열주 없이 평면이 통합됐다. 이를 놓고 볼 때 죽림동성당은 성당 공간의 전환기적 성격을 띠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김원철2007.11.07
'세계 종교 산책' 등 세계 종교 산책 몬시뇰 토머스 하트먼, 랍비 마크 젤먼 글/김용기 옮김 /가톨릭출판사/1만2000원 ------------------------------------------------ 가톨릭 사제와 유다교 랍비가 들려주는 세계 종교 이야기. 종교는 무엇인지, 각 종교의 같은 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각 종교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이며 삶의 방식은 어떠한지 등을 살펴본다. 이웃 중교들을 더 잘 이해하고, 자신의 종교에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할아버지의 축복 레이첼 나오미 레멘 지음/류해욱 신부 옮김 /문예출판사/1만원 ------------------------- 삶에서 축복의 중요함과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주는 책. "누군가를 축복할 때 물을 먹은 새싹이 자라듯 우리의 삶 역시 성장한다"는 지은이는 "삶을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며 "축복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고 설파한다. 믿는 자는 혼자가 아니다 부크하르트 멩케 엮음/조순 옮김/바이북스/ 8000원 ---------------------------------------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저서들 가운데서 주옥 같은 글들을 모았다. 삶, 구원, 신앙, 성경, 교회, 전례, 기쁨, 희망 등 주제별로 나누어 핵심 대목들만 뽑았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이전의 저서들에서 뽑은 글들이지만 교황의 깊은 영성과 내적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전쟁과 평화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장혜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9800원 ------------------------- 동물들은 전쟁을 하지 않는데 왜 사람은 전쟁을 할까. 누구나 평화로운 삶을 꿈꾸지만 인간 역사는 오히려 전쟁으로 점철돼 있다. 이 책은 폭력과 전쟁의 이야기를 통해서 평화의 가치를 깨닫고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도록 초대한다. 이창훈 기자cpbc2007.04.12

새 '성경' 인쇄. 제본 준비 완료분도출판사, 320평 규모 새 인쇄시설 '비투스관' 축복식이형우 아빠스(왼쪽)가 8월31일 축복식 직후 수도자들과 함께 국내는 물론 한국천주교회에서 최초로 도입된 양장제본기에서 제본된 책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분도출판사와 가톨릭출판사가 함께할 「성경」 인쇄 및 제본 준비가 완료됐다. '시대의 징표를 함께 읽어가는' 분도출판사(사장 선지훈 신부)는 8월31일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134의1 인쇄ㆍ제본실 증축 현장에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이형우(시몬 베드로) 아빠스 주례로 새로운 인쇄ㆍ제본 설비를 갖춘 공장(비투스관) 축복식을 갖고, 새 번역 「성경」 인쇄 공정에 돌입했다. 「성경」 인쇄ㆍ제본 작업은 이달 중 본격화돼 10월 중 입ㆍ출고를 거쳐 보급에 들어가 11월27일 대림 첫주일부터 교회에서 공식 사용된다. 인쇄는 가톨릭출판사와 분도출판사에서 나눠 맡지만, 제본은 분도출판사에서 전적으로 이뤄진다. 320평 규모 인쇄시설 '비투스관'에는 ▲4색 인쇄기(기종 독일 하이델베르크사 Speed Master102) 1대 ▲32쪽용 접지기(독일 하이델베르크사 stahlfolder) 3대 ▲양장제본기(콜부스사) 1대 ▲엮음기(사철기, 이탈리아 메카노테크니카사 Aster180) 2대 ▲국산 3면 재단기 및 정합기(선원동출사) 각 1대 등 6개 기종에 총 9대 설비가 설치됐다. 비투스관은 덕원수도원 시절인 1939년부터 65년간 '제본 장인(마이스터, Meister)'으로 활약하다 2003년 5월 선종, 이 땅에 묻힌 백오리(독일 이름, Vitus Stenger) 수사를 기려 '비투스관'으로 명명됐다. 도입된 설비 중 양장제본기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도입된 제본기로, 1분에 30권씩(30회전) 다품종 소량 제본이 가능하다. 1만권을 인쇄할 경우 수작업, 혹은 기존 양장기 작업으로 3개월 걸릴 작업을 새 양장기로는 하루 반나절인 36시간이면 책을 만드는 총 80개 공정을 마무리할 수 있다. 선지훈 사장 신부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최신 인쇄ㆍ제본 설비를 갖추게 됐으니 이제 백 수사님 정신만 구현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성경과 인쇄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축복식은 60년대 35종 수도생활ㆍ전례ㆍ영성ㆍ성서신학 서적 출간 이후 본격화돼 「교부문헌 총서」 「신학텍스트총서」 「신약성서주해 및 상해총서」 「중세철학총서」 발간으로 꽃을 피운 분도출판사 문서선교 여정을 보여주는 영상물 상영과 이 아빠스 주례 축복식, 축하오찬 차례로 진행됐다. 이형우 아빠스는 이날 축복식 강론을 통해 "분도출판사의 오늘이 있기까지 모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안배해주신 하느님께, 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두신 모든 분들, 공동체 형제들께 감사를 드린다"며 "이로써 인쇄작업 성능이 2배, 3배로 높아진 만큼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품위있게 최고 품질로 만들어줄 것"을 당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5.09.08
![[성서 속 동식물]60- 상상의 동물 용](//cpbc.co.kr/CMS/newspaper/2007/08/rc/218314_1.1_titleImage_1.jpg)
[성서 속 동식물]60- 상상의 동물 용구세주 활동 방해하는 적대자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머리에는 뿔이 있고 비늘이 있는 긴 몸통은 거대한 뱀과 같으며 날개와 네 발이 있어 하늘과 땅을 자유자재로 드나든다. 크고 마력적인 눈을 부릅뜨고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불을 뿜는 모습은 권위와 위엄을 드러낸다.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지만 우리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용은 이렇게 언제나 신비로운 모습이다.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서는 용이 물을 지배해 비를 뿌리고 어부를 보호한다고 믿었다. 바다, 강, 연못 등 물속에 살면서 물에 관한 모든 일을 주관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농민들은 비가 안 오고 물이 부족하면 '용'자가 들어간 연못이나 강, 바다, 산, 바위 등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경기도 용두산, 충청도의 용연, 황해도의 용정, 평안도의 구룡산, 경상도의 용수암 등은 효험이 큰 기우처로 널리 알려져 왔다. 어민들도 용을 상서로운 동물로 숭배했다. 어민들에게 바다는 생계를 위한 터전임과 동시에 언제 목숨을 앗아갈지 모르는 두려운 곳이었다. 바다 밑 용궁에 살고 있는 용왕에게 어부들의 목숨을 지켜주고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다. 동양에서는 용을 모든 동물들의 왕으로 여겼고, 용의 형상은 제국의 신성한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 역대 중국 황실의 문장으로 사용했다. 우리나라도 용안(임금의 얼굴), 용상(임금이 앉는 평상), 용포(임금의 옷) 등 임금과 관계되는 것에는 거의 빠짐없이 '용'이라는 접두어를 붙였다. 영어로 용을 뜻하는 '드래곤'은 그리스어의 '드라콘'에서 유래됐는데, 이 단어의 원래 뜻은 큰 뱀, 즉 바다뱀을 의미했다. 이 때문에 서양의 신화에서도 용을 뱀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뱀의 몸집이 크고 독이 치명적인 중동지역에서는 뱀과 용을 악의 원천으로 생각했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용을 악한 세력으로 여겼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용은 죄와 이교를 상징했다. 성화에 나오는 용은 성인과 순교자의 무릎 아래 굴복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성경에서는 창조설화에 용이 등장한다.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21). 또 하느님의 적대 세력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당신께서는 바다를 당신 힘으로 뒤흔드시고 물 위에서 용들의 머리를 부수셨습니다"(시편 74,13). 예레미야는 바빌론 왕을 용에 비유했다.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나를 잡아먹고 나를 무너뜨렸다. 그는 나를 빈 그릇으로 만들었다. 그가 용처럼 나를 삼켜 나를 진미로 삼아 자기 배를 채우더니 다시 뱉어 냈다"(예레 51,34). 요한묵시록에서 용은 구세주의 활동을 방해하려는 하느님의 적대자를 상징한다.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묵시 12,4). "그 천사가 용을, 곧 악마이며 사탄인 그 옛날의 뱀을 붙잡아 천 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하였습니다"(묵시 20,2). 중세 로마네스크의 조각 및 서적의 첫 장 장식문자에 사용되는 용은 악의 패배를 상징한다. 이처럼 용과 싸워 이기는 것은 그리스도교 미술에 애용되는 주제였다. cpbc2007.08.14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순교자 현양 특별 강론(상)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최창화 몬시뇰)와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한홍순)가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5일부터 19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명동성당에서 공동 주최하는 '순교자 현양 특별 강론'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특별히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및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시기에 마련된 이번 특강은 거룩한 순교자들의 신앙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강의 내용은 서울평협 홈페이지(www.clas.or.kr)에서도 볼 수 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두봉 주교, 전 안동교구장)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은 박해시대인 2세기 로마의 교부 테르뚤리아노가 한 말이다. 그는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너무도 훌륭한 모습으로 순교하는 것을 보고는 신자가 된 사람이다. 순교자들이 믿는 것이 옳다는 확신이 섰던 것이다. 그는 순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 네 가지를 강조했다. ▲화목 주님을 닮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목숨까지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우리는 가정에서, 동네에서, 직장에서 화목하게 지낸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화를 내지 않는다. 기도하는 우리는 남의 잘못을 기꺼이 용서해준다.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 먼저 사랑을 실천하고 용서한다. 추잡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 상스러운 농담을 멀리한다. 에페소서는 "주님께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돼있는 우리는 우선 잘 지냅니다.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 서로서로 아끼고 서로서로 힘을 줍니다"라고 강조했다. 이것이 첫째 단계다. ▲고요함 안 믿는 사람들도 세상을 살면서 조용한 자리가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주님의 제자인 우리도 마땅히 조용한 자리,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곧 기도시간이다. 아침과 저녁에, 아니면 언제라도 10분 정도 고요한 시간을 갖자. 집에서 그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동안 조용한 시간을 갖고 기도하자. 매일 5분, 10분, 30분 조용히 성경를 읽고 주님을 생각하자. 세상을 사는 데 그 시간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자. 피정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그래야 무엇이든지 주님께 내놓을 수가 있게 된다. ▲절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회는 '고신극기'라는 말을 많이 썼다. '고신'(苦辛)은 제 몸을 힘들게 다룬다, '극기'(克己)는 자기 자신을 극복한다는 말이다. 최근까지 금요일을 지키는 방법은 금육이었다. 이제는 법이 달라졌다. 법이 달라졌기 때문에 금요일에 자기에게 맞는 절제를 하면 된다. 금육이나 금주를 할 수도 있고, 텔레비전을 안 볼 수도 있다. 주교단이 권하는 것은 '가정 기도'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날을 금요일로 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절제, 작은 희생을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원하기 때문에 기꺼이 절제를 한다. ▲희생 주님께서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고, 언제 데려가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원하지 않은 시간에 태어났고, 원하지 않는 시간에 세상을 떠날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야할 세상인데, 시시하게 살다가 시시하게 죽기를 원하는가. 주님께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주신 것이 아닌가. 주인이신 주님께서 언젠가 도로 달라고 하시면 우리가 주저할 수 있겠는가. 이왕 드리려고 한다면 웃으면서 드리는 게 좋다. 우리는 주저해서는 안된다. 주님께서 부르신다면 언제나 '예'하고 대답을 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많은 고통을 주신다고 해도 '네'하고 따라 나선다. 떳떳하게 웃으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교자 정신 아니겠는가. 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남정률2007.09.12

31- 성수는 어떤 의미로 언제 사용하나요성당에 들어서면서 성수반에서 성수를 찍는 모습. 성수란 어떤 물을 말하는지요? 또 성수는 언제 사용하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도 알려 주세요. ------------------------------------------------------- 성수(聖水)란 말 그대로 거룩한 물이란 뜻인데 거룩하다고 하는 이유는 사제의 축복 예식을 통해서 거룩하게 된 물이기 때문입니다. ▶물의 상징 우선 성경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물이 지니는 의미를 살펴봅니다. 우선 물은 생명과 풍요를 상징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고 물이 부족하면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 영원한 생명을 주는 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3,10-14). 물은 반대로 죽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7장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대표적이지요. 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뒤쫓아 오던 이집트 군대가 홍해에 빠져 전멸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집니다. 물은 또한 정화(淨化)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 시편에는 "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 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51,9)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슬초라는 풀로 채를 만들어 물에 적셨다가 뿌리는 것인데, 정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선지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우슬초란 말 대신에 정화수라고 표현했습니다. 미사 중 성찬전례에서 사제는 빵과 포도주를 예물로 바칠 준비기도를 한 후에 손을 씻으면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정화의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지요. ▶성수의 종류 성수에는 일반 성수와 세례수가 있습니다. 같은 성수이지만 세례수는 세례식 때 영세자들에게 사용하기 위해 축복한다는 점에서 일반 성수와 구별됩니다. 세례수는 부활성야 예식 중에 축복했다가 세례 때에 사용하며, 세례성사 직전에 축복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일반 성수는 미사 중에 또는 미사 때가 아니더라도 별도 축복 예식을 통해 축복해서 사용합니다. 물론 세례수 역시 성수이기에 일반 성수로도 사용됩니다. 세례수(또는 성수)로 사용하는 물은 자연 그대로의 깨끗한 물이어야 합니다. 생수, 수돗물, 샘물, 냇물, 강물, 우물물 등은 성수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바닷물이나 빗물, 눈 녹은 물 등도 성수로 사용할 수 있지요. 그러나 술이나 침, 우유, 주스, 커피 같은 것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정결함, 순수함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성수로 사용할 물에는 소금을 약간 넣어서 축복했습니다. 상하지 않고 오래 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이제는 소금을 넣지 않은 채 축복해서 성수나 세례수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식에 사용되는 성수 앞에서 말씀드린 물의 상징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예식이 세례성사입니다. 세례성사에서 가장 핵심은 집전자가 영세자의 이마에 물(세례수)을 세번 부으면서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에게 세례를 줍니다" 하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이마에 물을 붓는 것은 옛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죽음과 정화) 하느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남(생명)을 의미하지요. 이는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을 뜻합니다. 또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갈 때 입구에 놓은 성수반(성수를 담아 놓은 그릇)에서 성수를 찍어 십자성호를 그으며 이렇게 기도하지요.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이때 성수를 찍어 이마에 바르는 것은 주님 집에 깨끗한 상태로 들어가도록 정화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 성당을 나올 때는 다시 성수를 찍어 기도할 필요가 없겠지요. 성수는 이 밖에도 사람이나 사물을 축복할 때도 사용합니다. 상가에서 고인의 영정에 성수를 뿌리며 기도하는 것은 고인의 모든 잘못을 깨끗이 씻어 달라는 청원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에는 장엄미사 때나 간혹 볼 수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주일 교중미사 때면 사제가 입당 후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리는 성수예식이 있었습니다. 이 예식은 참회예절을 대신했지요. 정화의 의미와 함께 신자들에게 죄에 죽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일깨워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밖에 집이나 자동차, 성물 등을 축복할 때도 성수를 사용하지요. 이때는 정화와 축복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7.02.08

27-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갈망했던 마늘즐겨먹던 마늘 갈망하며 배고픔 호소우리 민족과 긴 역사를 함께해온 마늘은 성경에서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워한 이집트 식품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마늘은 우리 민족과 뗄 수 없는 긴 역사를 함께 해왔다. 특히 우리나라 개국 설화인 단군 이야기에도 마늘이 등장한다. 단군 신화 내용 중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장면에서 마늘과 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때 쌀을 수탈당해 식량이 부족해서 많은 고생을 했는데 특히 백미를 주식으로 삼던 일본인들은 각기병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각기병이 드문 것도 마늘을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몇년 전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중국 등지를 휩쓸어 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그때 한국인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김치에 들어있는 마늘 때문일지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마늘은 항암과 항균 효과가 뛰어나고 세포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효능을 지니고 있어 바이러스 변종으로 파악된 사스균에 대해서도 저항성을 가졌다는 설명이었다. 마늘에는 알린이라는 유기 화합물이 들어 있는데 이 물질은 마늘의 세포벽에 주로 분포돼 있는 알리나제라는 효소 작용에 의해 쉽게 알리신이라는 물질로 변한다. 그러면서 자극적 냄새가 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알리신은 여러 가지 생리적 작용을 한다. 특히 단백질의 흡수 이용률을 높이며, 비타민B군의 체내 이용률을 크게 높혀 인체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준다. 그런데 이 마늘 냄새 성분은 고기 비린내를 없애고 고기 맛을 돋워주며 소화도 도와준다. 따라서 우리나라 고기요리에 마늘이 들어가는 것은 매우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마늘은 심장과 근육의 작용에 활력을 주고 체표면 온도를 보호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이밖에 마늘에는 비타민 C나 유지의 산화를 막으며 체내 과산화지방 생성을 방지하는 노화방지 효능도 있음이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마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나 이집트로 추정된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500년께에 만들어진 피라미드 벽면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한 노동자들에게 나눠준 마늘 양에 관한 기록이 출토됐다. 이집트 노예들이 더운 지역에서 원기를 잃지 않도록 강장제인 마늘을 나눠줬다는 것이다. 기원전 고대 이집트, 그리스 및 로마시대부터 마늘을 재배했고 당시에는 주로 노동자나 병사들이 힘을 북돋기 위해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동 지역에서는 양파나 마늘에 마술적 힘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은 마늘의 독특한 냄새가 악마를 쫓는 신통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늘이 악령을 쫓는 부적이나 주술적 목적에 많이 쓰였다. 성경에서 마늘은 민수기에 유일하게 등장한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민수 11,1-5). 성경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브엘세바 남쪽 광야에서 40년간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지내야 했다. 원래 이집트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새로운 세대만이 여호수아의 인솔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세월이 경과했음을 암시하고 있다(민수 14,26-35. 26,63-65). 시나이 산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가데스바네아는 브엘세바 남쪽 어느 지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광야에서 머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불평하고 모세의 지도력에 반항했다. 그들은 만나에 싫증을 느끼고 이집트에서 먹던 고기, 생선, 오이, 수박, 부추, 파, 마늘 같은 것을 먹을 수 없다고 불평했다. 이처럼 성경에서 마늘은 광야에서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워한 이집트 식품 중 하나였다.cpbc2006.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