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 참 묘하셔라살아있고 힘이 있는 한늼 말씀에 대한 단상 40편예수님께서는 먼 길에 지쳐 우물가에 앉아서 쉬고 계셨습니다. 그때 막 우물가에 나와 물을 긷는 여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다오" (요한 4, 7). 하느님, 참 묘하셔라 고하퐁 지음/이미화 옮김/분도출판사/9000원 ----------------------- "하느님을 찾고 싶습니까? 그러면 군중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면 끝자리를 향하여 걸어가십시오. 분명히 거기 계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묘하신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이시면서도. 그러나 하느님이 묘하신 것은 그 때문만이 아니다. 당신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 혼을 사로잡아 당신 안에 빠져들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다"(히브 4, 12)고 고백한다. 「하느님, 참 묘하셔라」는 이렇게 살아 있고 힘이 있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단상 40편을 담고 있다. 글쓴이는 마카오 출신 살레시오회 수녀로, 로마 교황청립 아욱실리움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홍콩에서도 신약성서학과 교부학을 가르치고 있는 신학자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전문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게 아니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무슨 두드러진 동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전문 영역을 다룬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다만 독자들이 '하느님, 참 묘하셔라!'하고 다같이 찬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들어가며' 중에서)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하느님, 참 묘하셔라!"하고 찬탄하는 일은 독자들에게 달려 있다. 부록으로 실은 고하퐁 수녀의 글 두 편 '아시아 상황에서 성서 읽기'와 '성서에 관한 상징들'은 본문과는 상관 없이 성경을 맛들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읽고 새겨볼 만하다. 고 수녀의 성경 단상은 이 책을 시작으로 「사람, 참 묘하여라」 「세상, 참 묘하여라」 「인생, 참 묘하여라」는 제목으로 모두 네 권으로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6.12.27

「성경직해광익」 이후 200여년만에 새 「성경」 나와간추린 한국교회 우리말 성경 번역사한국 천주교회는 창립 초기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성경을 우리말로 옮겨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기본 경전으로 보급해 왔다. 사진은 한국 천주교회가 우리말로 옮긴 성경들. 사진 위쪽 왼편부터 시계방향으로 우리말 첫 성경인 「성경직해광익」 「사사성경」 「성경직해」 「성경광익」, 한국 천주교 첫 우리말 완역 신구약 공용성경인 「성경」, 「200주년 신약성서」, 세계 첫 천주교ㆍ개신교 공동번역본인 「공동번역 성서」. 자료제공=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번역한 우리말 신구약 「성경」이 마침내 신자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한국 교회는 언제부터 우리말 성서를 번역,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성서주간'을 맞아 한국 천주교회가 주도한 우리말 성경 번역사를 간추렸다. ▲ 최초의 우리말 성경 「성경직해광익」 한국 천주교회는 창립 초기부터 하느님 말씀을 담은 성경을 우리말과 글로 옮겨 보급해 왔다. 우리 민족이 한글로 최초로 옮긴 우리말 성경은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이다. 역관 출신 최창현(요한)이 1784년~1800년께 번역한 이 책은 서학서 「성경직해」와 「성경광익」을 모두 우리말로 옮겨 하나로 합한 필사본이다. 「성경직해광익」은 전례용 성경으로 분량이 적고 복음서 완역이 아니라는 한계에도 초기 박해시대 신자 개개인의 신앙생활을 이끌어주는 기본 경전으로 사용됐다. 「성경직해광익」은 초기 교회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근 100년간 필사돼 보급됐고, 한불조약(1886년)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활판본으로 대량 출판됐다. 「성경직해광익」은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1844~1890)의 지시로 김기호(1824~1903)가 전면 재번역해 총 9권의 「성경직해」로 출간, 한동안 한국 천주교회의 유일한 성경이자 공소 예절 전례서로 애독됐다. ▲ 「사사성경」과 일제 강점기 성서 번역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는 1906년경부터 한기근ㆍ손성재ㆍ홍병철ㆍ김성학ㆍ김문옥 신부 등을 성서 번역위원으로 임명, 라틴어 성서인 불가타 역본을 대본으로 삼아 신약성서 중 네 복음서를 번역, 1910년 「사사성경」(四史聖經)을 간행했다. 「사사성경」은 본격적 천주교 한글 성서의 효시로 평가되고 있다. 네 복음서인 「사사성경」에 이어 「종도행전」(사도행전)이 한기근 신부 번역으로 1922년 출간됐다. 또 1935년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신약성서 서간문과 묵시록 번역 책임을 맡은 덕원 베네딕도 수도회 슐라이허 신부(1906~1952)는 한국 교회 최초로 그리스어 본문을 직역, 1941년 「신약성서 서간편ㆍ묵시편」을 선보였다. 이로써 한국 천주교회는 1790년경 우리말 성서를 번역한 이래 1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완전한 우리말 신약성서를 갖게 됐다. ▲ 구약성경 출간 1945년 해방 직후부터 한국천주교회는 라틴어 대역본이 아닌 히브리어ㆍ그리스어 성경 본문을 직접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한국 천주교회 첫번째 성서학자인 선종완 신부(1915-1976)는 1948년 「사사성경」과 「종도행전」에 외국 전문 서적에서 옮긴 입문과 주해를 새롭게 덧붙이고, 성경 이름을 한문식 표기에서 그리스어 원어 표기(예: 마두 복음→마태오 복음)로 바로잡아 「신약성서 상편」을 출간했다. 선종완 신부는 1952년부터 우리말 구약성경 번역 작업에 돌입, 1958년 「창세기」를 첫 출간했다. 이 책은 한국 천주교회 사상 최초로 인쇄된 구약성경이며, 라틴어 불가타 역본이 아닌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 대본으로 한 최초의 번역본이었다. 또 선 신부는 1959년에 「출애급기ㆍ레위기」 「요수에기ㆍ판관기ㆍ루트기」 「열왕기 상하」 「민수기ㆍ신명기」를 간행했고, 1963년에 「예레미야ㆍ애가ㆍ바룩」을 출간했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공동번역 성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교회는 여러 나라 말로, 특히 성경 원문에서 적절하고 올바르게 번역하도록 힘쓰고, 만일 기회가 되고, 교회 권위가 승인하여,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공동으로 번역한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 성경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계시헌장 「하느님의 말씀」 22항 참조). 한국 천주교회는 공의회 정신에 따라 1965년 성서위원회를 설립하고, 교회 일치 차원에서 개신교와 공동으로 성서를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우리말 성경 번역에 박차를 가해 1968년 최민순 신부가 불가타 역본에서 「시편」을 우리말로 옮겨 세상에 선보였다. 1968년 개신교와 '성서 번역 공동위원회'를 결성한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최초로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와 1977년에는 신약성서 개정판과 구약성경 완역본을 합본해 「공동번역 성서」를 간행했다. 「공동번역 성서」는 이후 오늘에 이르까지 한국 천주교회 내에서 사용되면서 신자들의 성서 생활화에 크게 기여했다. ▲ 「200주년 성서」 「공동번역 성서」의 한계를 느낀 천주교 성서학자들과 분도출판사는 성경 본문에 충실한 학문용 신약성경을 번역키로 하고 1974년부터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 성서' 간행 사업에 착수했다. 분도출판사는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인준을 받고 1991년 「200주년 신약성서」를 발간했다. ▲ 한국교회 첫 공용성경 「성경」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8년 성서위원회를 중심으로 성경 본문에 충실한 공용성경을 번역, 출간하기로 결정하고 1989년 3월 본격 번역에 착수했다. 고 임승필 신부가 주축이 된 번역팀은 1992년 6월 「시편」 을 시작으로 1999년 12월 「마카베오 상하」까지 구약성경 새번역 단행본 18권을 출간했다. 또 2001년 7월 「마태오 복음서」를 시작으로 2002년 12월 「요한 묵시록」까지 신약성경 새번역 단행본 10권을 간행했다. 이후 성서위원회는 2003년 6월 '새번역 성서 합본위원회'를 구성, 윤문과 용어통일 작업을 착수, 공청회와 설문조사를 거쳤다. 주교회의는 2005년 3월 봄정기총회에서 「성경」 출간을 승인하고 지난 10월 가을정기총회 개막식 때 출판기념회를 갖고 「성경」을 한국 천주교 공용성경으로 공식 사용함을 선포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05.11.16

참행복기념성당"행복하여라, 이 땅을 밟는 사람들!"▲예수께서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참행복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 장소에 세워진 성당. 이 성당은 8가지 참행복의 가르침과 당신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상징해 팔각형에 돔을 얹은 모양으로 지어졌다. ▲한 순례자가 참행복선언기념성당 감실 뒤편에 마련된 십자가상 밑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성당 뒤편 회랑에서 바라본 갈릴래아 호수 전경. 절기에 따라 새 옷으로 갈아입는 구릉이 변화무쌍한 갈릴래아 호수와 조화를 이뤄 순례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참 행 복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1-12; 루카 6,20-23).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톨스토이, 간디뿐 아니라 시공을 넘어 수많은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이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다. 우리말 성경에서 '진복팔단''참행복'으로 소개되는 이 예수의 가르침은 '하느님 나라의 대헌장'이다.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던 예수는 참행복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오늘날 '쉐이크 알리'(영어로 는 Mount of Beatitudes)로 불리는 갈릴래아 호숫가 구릉에서 선포했다. 카파르나움에서 남쪽으로 약 2~3km 떨어진 이곳은 그리 높지 않은 구릉이지만, 성경에 '산'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예수 시대 사람들 눈에는 제법 높은 지대로 보였나 보다. 그래서 성경은 이곳에서 행한 예수의 가르침(마태 5-7장)을 '산상설교' '산상수훈'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마치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받은 것처럼 이 산에서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면 받을 축복을 선언하셨다. 그 축복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비참한 현실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오기에 행복하다는 축복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선포뿐 아니라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드러내실 때(마태 17,1)도,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부여할 때(마태 28,16)도 산 위에서 행하셨다. 성서학자들은 예수께서 참행복을 선포하신 장소에서 12사도를 뽑고, 마귀를 쫓아낼 권한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예수께서 참행복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던 장소에 예쁜 성당이 세워져 있다. 1937년 작은 형제회가 세운 '참행복기념성당'(The Church of the Beatitudes)이다. 예수께서 8개의 참행복에 대한 가르침을 준 것을 기념해 팔각형 모양에 가운데 돔을 얹은 아담한 성당이다. 가운데 돔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11)는 예수님 말씀을 상징한다. 성지를 들어서는 순간 너 나 할 것 없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마치 하느님 나라에 들어선 듯한 평화로움에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이다. 세상의 속된 티끌까지 털어내려는 듯 온 몸을 감싸는 공기의 청량함, 행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대지의 고요함, 높고 낮음도 잘남도 못남도 없는 조경의 소박함이 새색시의 수줍은 입맞춤 마냥 천상에서 누릴 참행복의 달콤함을 살짝 맛보여준다. 바람이 전해주는 들꽃의 찬미와 이를 화답하는 새들의 절제된 합창이 순례자의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 "행복하여라, 이 땅을 밟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이미 보았다." 성지가 품고 있는 참행복감에 젖어 성당에 들어서면 한 가운데 제대와 감실이 있고, 성당 입구에는 그 날의 복음이 담긴 라틴말 그레고리오 악보가 펼쳐져 있다. 신자석은 팔각형 성당 벽면에 배치돼 있다. 제대는 돔과 통해 있고 제대 정중앙과 돔 가운데 종탑이 일직선으로 돼 있다. 돔을 바치는 8개 벽면 색유리화 창에는 예수께서 선포하신 참행복 내용이 라틴말로 새겨져 있다. 성당 안에서는 '절대침묵'이다. 물론 사진 촬영도 금지돼 있다. 여행에 들뜬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묵상을 통해 2000여년 전이 곳에서 행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생히 들으라는 무언의 권고일 것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고 싶다면 감실 뒤편으로 가보라. 큰 십자가 밑에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무릎틀이 있다. 기도를 마친 후 성당을 나와 회랑을 따라 돌면 갈릴래아 호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성당 왼편 정원을 따라 호수 쪽으로 내려가면 야외 성당이 나오고 좀 더 가면 조그마한 동굴이 나온다. 1933년에 발굴한 이 동굴에는 비잔틴 시대(4~7세기경)때 제작된 모자이크가 남아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동굴이 예수의 참행복 선포를 기념하는 경당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알아두면 좋은 정보> 1. 갈릴래아 호수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면 참행복기념성당 뒤편 회랑에서 촬영하라. 2. 참행복기념성당을 멋지게 찍으려면 성당 양 측면보다 언덕 밑으로 내려와 성당과 언덕을 다함께 넣어 촬영하는 게 좋다. 특히 봄철에는 노란 유채꽃이 만발해 화려한 색감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3. 순례의 피로도 풀고 휴식의 여유를 갖고자 한다면 성당 주차장 앞 과일주스 가게를 추천한다. 계절별로 석류와 오렌지를 직접 갈아 만든 신선한 과일주스를 맛볼 수 있다.cpbc2007.03.14

28- 인간의 영원한 삶을 상징한 몰약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몰약은 성경에 자주 나오는 중요한 향료의 일종으로 동박박사 세 사람이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드린 예물 중 하나다. 사진은 아기예수에게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리는 동방박사. 몰약은 방부제로서 예전부터 사용됐고, 특히 미라를 만들 때 많이 쓰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로부터 햇빛이 건조하고 강렬한 이집트에선 피부를 보호하려고 화장술이 발전했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애용돼 왔던 대표적 화장품 소재가 몰약이었다. 화장품 원료가 부족했던 고대에는 몰약이 중요한 화장품 소재로 쓰였고 향이 진하고 방부효과가 있어 강장제, 방부제로도 쓰였다. 몰약은 부패방지와 냄새를 없앨 뿐만 아니라 악마를 제거한다는 믿음이 있어 각종 향유와 함께 종교적 제사에 많이 사용했다. 처음에는 왕이나 사제들 몸에 바르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귀족이나 특권층 부인들이 바르면서 귀한 화장품 원료로 많이 쓰였던 것이다. 몰약은 아라비아, 에티오피아 등 동부 아프리카지역이 원산지로 관목의 일종이다. 몰약은 흰색 꽃을 피우며 열매는 달걀 모양 타원형을 이룬다. 몰약은 목재와 수피에 강한 향이 있어서 줄기에 상처를 내서 생기는 나무진을 모아 활용했다. 몰약은 향이 매우 강하고 쓴 맛을 낸다. 몰약은 유향과 함께 성경에 자주 나오는 중요한 향료의 일종으로 동박박사 세 사람이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드린 예물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마태 2, 11). 또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 병사가 몰약을 탄 포도주를 드렸지만 드시지 않으셨다(마태 27, 34). 몰약을 탄 포도주는 약간의 진통작용이 있다. 몰약의 향기는 청정제로서도 귀중하게 여겼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잠언에 보면 "잠자리에 몰약과 침향과 육계향도 뿌렸다"는 언급이 있다(잠언 7, 17). 또한 시편에는 "몰약과 침향과 계피로 당신 옷들이 모두 향기로우며 상아궁에서 흘러나오는 현악 소리가 당신을 즐겁게 합니다"(시편 45 ,9)는 말처럼 왕의 옷에 사용할 정도로 중요한 향료였다. 일반적으로 몰약은 자연적으로 수액이 분비되지만 인공적으로 줄기에 상처를 내면 수액의 분비가 증가되므로 많은 양을 수확하고자 일부러 상처를 냈다고 한다. 이것은 몰약이 비싸고 귀한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몰약은 유다인만 종교의식에 쓴 것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도 사원에서 사용했고, 태양신 제단에 매일 정오에 피웠다고 한다. 또 몰약은 죽은 시체를 썩지않고 보존하는 데 사용했는데 미라를 만들 때에 사용했다. 유다인도 몰약을 시체가 썩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로 사용했다.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요한 19, 39-40). 이처럼 성경시대에 몰약은 값비싼 향료일 뿐만 아니라, 치료와 향수, 화장품으로 많이 사용됐다.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도 몰약을 유다인 못지 않게 많이 애용했다. 이집트에서는 화장품 제조기술이 미라를 만드는 기술에서 자연스레 발전했다고 하니 재미있는 일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시신에 내장을 제거하고 몰약 등 항료를 채워 넣어 봉합하고 건조함으로써 죽기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가 보다.cpbc2006.12.13
분석 5.끝- 신명나는 본당 공동체를 위한 제언서울 잠실7동본당 사례-복음적 사목으로 하느님과 만남 이끌어 신앙생활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복음과 교회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의지'와 '실천적 활력'이 아닐까 싶다. 이 둘의 조화를 삶 속에서 절묘하게 잘 이뤄 신명나는 공동체로 가꾸어가고 있는 본당이 있다. 바로 서울 잠실7동본당(주임 이기양 신부)이다. 1993년에 설립된 잠실7동본당은 9년에 걸친 성전건립공사로 신자들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2001년에 주임사제로 부임한 이기양 신부는 신자들의 영적 성숙을 위한 '5개년 사목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실천해 엄청난 결실을 거뒀다. 우선 수치상으로 드러난 지난 5년간의 사목 결과를 보자. 이 신부가 부임할 당시(2002년 3월) 2940명이던 본당 신자수는 2006년 7월 현재 3808명으로 늘었다. 연 6억원이던 본당 예산도 12억원으로 두배 증가했다. 교구 납부금 역시 2002년도 2억200만원이던 것이 2006년에는 4억1175만원으로 배가됐다. 교무금은 2001년 3억6300만원이던 것이 2006년 7억원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고, 감사헌금도 2001년 1800만원에 불과하던 것이 2006년에는 1억100만원으로 5배가 넘게 늘었다. 불우이웃돕기 사회복지기금도 2001년 2400만원이던 것이 2006년에는 2억3500만원으로 9배 가까이 증가했다. 불과 5년 사이 어떻게 본당 교세가 이렇게 성장했을까? 여기에는 주임 신부의 리더십과 체계적 사목계획,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삼위일체 요소가 유기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잠실7동본당 5개년 사목의 인상깊은 장면 몇가지를 보자. ▲첫해 - 사목방문 이기양 신부는 부임 첫해를 신자들과 직접적 만남인 사목방문을 통해 가정과 구역에 하느님의 축복을 전달한다는 목표로 '사목방문의 해'로 정했다. 사목방문 결과 사목협의회 임원과 단체장들이 특정 구역에 편중돼 있고, 교무금 책정과 납부 문제에 신자들이 많은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을 파악했다. 이 신부는 전체 신자들에게 교무금 책정과 쓰임새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한편 사목협의회 임원들과 협의해 본당 전 구역에서 임원이 나오도록 안배해 사목협의회 틀을 새로 짰다. ▲둘째 해 - 성경쓰기 본당 신자들을 파악하고 사목협의회를 새롭게 구성한 이 신부는 임원들과 신자들의 영적 성숙을 위한 사목계획을 수립했다. 그 첫번째가 '성경쓰기'였다. 성경쓰기는 본당 신부 총괄하에 사목협의회 교육분과가 책임을 맡아 1년간 진행했다. 교육분과는 1년 동안의 성경쓰기 전체 일정표를 제작해 신자들에게 배부하고, 본당에서 성경쓰기 공책을 구입, 무상으로 나눠줬다. 주임 신부는 신자들이 다 쓴 공책을 제출할 때마다 좋은 성경 구절과 함께 격려의 말을 적어 주었다. 성경쓰기를 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평일미사 참례자' 수가 늘기 시작한 것이다. 신자들 스스로 말씀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가슴 깊이 체험했다며 성당에 나오는 것을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이 해 성경을 완필한 신자만 239명이나 됐다. ▲셋째 해 - 신심서적 100권 읽기 본당은 성경쓰기를 통해 다진 신앙의 기초를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 '신심서적 100권 읽기'를 추진했다. 2004년 10월부터 2006년 3월까지 2년6개월간 진행된 이 운동에서 초등학생이 207권을 읽었고, 170명이 100권 목표를 달성했다. 이 기간 동안 본당 성물방에서 판매한 서적 수가 3만5000권이나 됐다. 신심서적 100권 읽기는 '도서선정위원회'를 조직, 신자들의 여론을 수렴해 책을 선정했다. 본당에선 신자들이 책읽기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이해인 수녀, 최인호ㆍ박완서씨 등 저자들을 초대, '작가와의 만남' 강좌를 열었다. 또 개인별 독서카드를 만들어 선정 도서를 읽은 다음 독서카드를 본당 사무실에 제출케 하고, 본당 홈페이지에 매달 독서 현황 통계를 게재했다. 처음 이 운동을 할때 신자들 반응은 무척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서적 독서율이 3%에 미치지 못하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런데 이 운동을 지속하면서 신자들의 변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미사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가기 바빴던 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책 속의 좋은 내용을 서로 나누며 친교를 위한 적극적 만남의 자리를 확산시켜 나갔다. 신자들 반응도 "오랫동안 성당을 다니면서도 신앙에 대해 채워지지 않던 부분이 꽉 채워진 느낌" "이제서야 신앙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신심서적을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며 영성적으로 더욱 성숙해 질 수 있었다"며 긍정적이었다. ▲넷째 해 - 기도학교와 단식수행 본당은 신자들이 성경을 쓰고 신심서적을 읽으며 하느님과 더욱 깊은 만남을 갈망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해 나가길 원하자 1년간 '기도학교'를 실시했다. 신자들이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정통적이고 체계적 기도방법을 통해 스스로 하느님과 만나고 대화하며 하느님과의 보다 내밀한 일치의 삶을 생활화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기도학교는 5주간 일정으로 3단계로 진행됐다. 1단계 '수덕단계'는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의 기도 내용을 중심으로 구송ㆍ묵상ㆍ정감ㆍ단순함의 기도 방법을 교육했다. 2단계는 매주 영성 지도 신부와의 면담을 통해 관상ㆍ고요ㆍ일치ㆍ순응일치 기도 등 더 깊은 기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했고, 마지막 3단계는 '단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박순원ㆍ정규한ㆍ김보록ㆍ류병일 신부 등 뛰어난 영성가들이 지도한 기도학교는 매 강좌 때마다 성당을 가득 메울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특히 올해 성주간 동안 실시한 단식 프로그램을 통해 모아진 300여만원의 성금으로 행려자 4300여명에게 따뜻한 한끼 식사를 제공하고 500여명의 노숙자들에게 부활 선물을 나눠줬다. ▲다섯째 해 - 성경박사 되기와 이웃돕기 본당은 개인 신심과 하느님 체험을 이웃과 나눔으로 실천하고자 5개년 사목계획 마지막 해를 '이웃돕기'에 집중했다. 일반인의 '봉사'와 차원이 다른 신앙인의 '나눔'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 '성경박사 되기' 프로그램을 올해 병행해 실천하고 있다. '성경박사 되기'는 신자들이 성경에 관한 얘기들을 잘 요약해 놓은 「주머니 속 성경박사 시리즈」를 매달 한권씩 읽고, 그에 해당하는 성경 읽기와 성서학자 특강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더욱 정확히 이해하도록 했다. 잠실7동본당 9개 구역은 각 구역별로 사회복지시설과 관계를 맺고 땀흘리며 몸으로 하는 봉사뿐 아니라 매달 한차례씩 이들 시설 가족들을 초대해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모금액을 전달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5차례 구역미사를 통해 실시한 2차 헌금과 이와 별도로 구역별로 자체 모금한 사회복지기금이 모두 1억여원 가까이 된다. 이기양 신부는 "기도하고 또 신자들과 혼연일체가 돼 함께 노력했던 지난 5년간이 사목자로서 얼마나 큰 은총의 시기였는지 매일 매일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으로 깊이 느끼고 있다"며 "그간 사목자를 믿고 열심히 동참했던 신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본당 5개년 사목자료는 조만간 책자로 간행돼 사목자들과 새사제들, 그리고 사목협의회 임원들에게 '본당 운영 메뉴얼' 기초자료로 제공될 예정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06.08.23

16-힘을 상징하는 곰힘과 폭력... 압제자로 의인화성경에 나오는 곰은 힘과 폭력을 상징한다. 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아프리카ㆍ오스트레일리아ㆍ남극을 제외한 전 대륙에 널리 분포하는 포유류 동물 곰은 뭍에 사는 육식성 동물 중 몸집이 가장 크다. 몸체가 육중하고 다리가 짧다. 몸무게 27~46kg의 작은 태양곰에서부터 780㎏의 거대한 알래스카 갈색곰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곰은 나무에 쉽게 기어오를 수 있으며 수영도 잘한다. 또 발바닥을 지면에 대고 사람처럼 걸어다닐 수 있다. 발가락은 5개로 발톱을 안으로 구부릴 수는 없지만 느림보곰의 발톱은 특히 땅을 파기에 적합하게 돼 있다. 우리나라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곰은 몸집에 비해 조그마한 눈에 얼핏 보기에 느릿한 행동을 하고, 둥글고 큰 덩치에 성질도 온순한 편이라 맹수라기보다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우리 속담과 민담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챙긴다", "미련하기가 곰과 같다"처럼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곰에 비유한다. 그러나 동물 생태학자들은 곰의 지능이 상당히 높다고 말한다. 지리산에는 방사한 멸종위기 반달가슴곰 14마리가 현재 적응훈련을 받고 있다. 벌꿀을 좋아하는 반달가슴곰은 곧잘 농가 벌통을 습격하는데 빈 벌꿀통에 몇번 허탕을 치면 으레 뚜껑을 열어보고 꿀이 가득 찬 것만 건드릴 정도로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곰은 구약시대 팔레스티나 지방에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성경에서 표범은 빠른 속력을, 곰의 발은 엄청난 힘을, 사자의 입은 용맹스러운 공격을 상징한다. 곰은 성경에 여러 번 언급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곰을 위험한 동물로 간주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곰은 사자처럼 힘과 폭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됐다. 엘리사가 베텔로 올라가는 도중에 어린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대머리라고 놀려대자 암곰 두마리가 숲에서 나와 그 아이들 가운데 42명을 물어 죽인 이야기가 나온다(2열왕 2, 23-24). 다윗은 목장을 지키다가 양을 물고 가는 곰의 이빨에서 양을 구해낸 일이 있다(1사무 17,34). 곰은 새끼에 대한 모성애가 강한 동물이라고 한다. 겨울에 새끼를 낳고 봄이 되면 새끼들이 어미 뒤를 졸졸 따라 다닌다. 성경은 새끼를 빼앗긴 어미 곰의 격분을 비유로 말하기도 했다. "새끼 잃은 암곰과 마주칠지언정 미련함을 고집하는 바보는 만나지 마라"(잠언 17,12). 여기서 '미련'의 뜻은 '살찐', '어리석은', '경건치 않은', '신앙심 없는', '사악한', '바보'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성경에 비유된 것처럼 새끼를 빼앗긴 곰은 잔인한 행동을 한다. 곰의 이러한 특성을 두고 악한 관리를 곰에게 비유하기도 했다. "가난한 백성을 사악하게 다스리는 자는 포효하는 사자와 덮치는 곰과 같다"(잠언 28,I5). 곰은 발의 힘이 무척 강해 큰 발과 발톱을 적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한다. 그래서 성경은 곰을 가난한 이들을 압제하는 통치자로서 의인화해 표현하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하느님 심판을 곰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자를 피해 도망치다가 곰을 만나고 집 안으로 피해 들어가 손으로 벽을 짚었다가 뱀에게 물리는 것과 같으리라"(아모 5,19). 이 말씀은 설상가상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 하느님의 심판을 면할 수는 없고 하느님 사랑과 은총만이 가능하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교만해 망할 수밖에 없는 죄를 경책하며 사나운 짐승들과 새끼 잃은 곰에 비유하여 심판을 설명했다(호세 13:7-8).cpbc2006.09.06

가톨릭 디다케 등 ▨가톨릭 디다케='교회박물관을 찾아서'에서는 성 유스티노 신학교 기념관, 대구가톨릭대학교 박물관을 찾았다. '뚝딱뚝딱'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만들어요'를, '토요 놀이터'에서는 '기찻길 옆 작은 학교의 정기공연'을 다뤘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경향잡지='성경의 조연들'에서는 '아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알아봤고, 교리 연재만화에서는 감사예식과 마침예식에 대해 알아봤다. '영화이야기'에서는 '나니아 연대기'를 소개했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그물=특집에서는 'Run4unity' 일치를 향한 청소년운동의 행사'를 다뤘다. '나의 성인'에서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소개하고 '성경이야기'에서는 '모세'를 실었다. '행복한 실버'에서는 치매에 대해 알아본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내 인생의 레지오'에서는 이혜심씨를 만나봤고, '가톨릭 인물 이야기'에서는 보혈선교수녀회를 소개한다. '성경의 식물과 한의학(신재용)', '평의회는 지금',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현황'도 실었다.(한국세나뚜스협의회/1800원) ▨사목=특집 '2006년 교회와 사회'에서는 △공동사목은 현재진행형 △나날이 새로워지는 교회 △공룡 골프장, 그 이후의 보고 △장애는 하느님 사랑의 메시지다 등을 다뤘다. '사목 현장을 찾아서'에서는 '봉사로 사랑을 실천하는 반포 카리타스'를 만나봤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4000원) ▨성모기사=성모기사회 한국진출 30주년 기념 축하행사 사진을 실었고, 30주년 특별기획 '두물머리의 영혼, 정약용'이 이어진다. 특별기획 '교회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9'에서는 '냉담 신자를 다시 생각하자!(박영대)'를 다뤘다.(성모기사회/1000원, 후원회원 무료) ▨생활성서='꿈이 있는 세상'에서는 '서울역 6번 지하도의 어떤 초대'를 다뤘고, '아, 교우시군요!'에서는 성우 박신영씨를 만나봤다. '더불어 사는 삶'에서는 '요셉의 집 미혼모들의 홀로서기'를 들여다본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 함께=제1부 '이사악과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창세기 25~36장을 살펴보고, 제2부 '요셉 이야기'에서는 창세기 37~50장을 살펴본다.(성서와 함께/3000원) ▨소년=성탄절을 맞아 성탄 특별 동화 '시몬이 가진 네 개의 촛불'을 실었고 '내 손으로 뚝딱'에서는 성탄 장식 벽걸이를 만들어 본다. '피아, 바티칸에 가다!'도 새로 연재된다. 특별부록으로 '어린이 다이어리 2007'을 준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새 하늘 새 땅'에서는 △교회가 해야 할 일 △이밤에 새벽을 살아야지를 다뤘고, 만화 '창문을 열어라'에서는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에 대해 알아본다. '성격 이야기'에서는 순교자 강완숙에 대해 알아봤다.(바오로딸/2000원) ▨착한 이웃='영육간 건강을 위해'에서는 '노인다운 노인이 멋지다'를 다뤘고, '한 번 더 생각하기'에서는 '약점'에 대해 생각해본다. '요셉의원 이야기'에서는 △제4회 요셉의원 돕기 자선미술전람회 △술이 뭔데 인간을 저렇게 피폐하게 만드나'를 다뤘다.(착한이웃/3000원) ▨참 소중한 당신=특집 '오소서, 주 예수님'에서는 △대림시기에 외치는 소리 △내가 꾸민 대림환 △엉망진창 와장창 연극과 함께를 다뤘다. '이것이 궁금해요'에서는 '이슬람교가 우리와 더 가깝다는데'를 실었다.(에우안겔리온/2900원) 김민경 기자 mksophia@pbc.co.krcpbc2006.11.29

초대 교장 최창무 대주교 기조강연 주요내용예수가 사회교리ㆍ성경은 사회교리서최창무 대주교가 사회교리학교 개설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의 자각과 사명을 크게 일깨웠고, 사회교리의 중요성과 가치도 더 깊고 넓게 인식시켰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사회교리다", "성경은 사회교리서다", "교회가 사회교리다"고 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회교리는 결코 '과외'가 아니다. 예수는 세상 한 분뿐이신 구원자요 스승이시다(마태 23,10-12).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왜 사회교리가 되는지를 여러 가지 말씀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3,16 ; 루가4,16-21 참조).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가 5,31-32). 예수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하시며 인간에게 화해와 관용이 얼마나 필요한지 가르치시고,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고 타이르시며 자유와 책임지는 삶을 권고한다. 예수가 구세주임을 알고 고백하며 그분이 약속한 생명 나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사람들은 그분처럼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새롭게 살아간다(콜로 2,20-4,6). 이것이 참 사회교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성경은 예수께로 인도하는 책이고, 세상에 생명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히브 1,1-3;4,12). 성경은 신ㆍ구약 모두 하느님 말씀이며, 세상 구원의 길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예수가 하느님 말씀이며 하느님 뜻을 가르쳐주신 것과 세상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내용이다. 구약성경을 구성하고 있는 세 부분 중 첫째, 모세오경 '토라'라고 하는 부분은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상의 기본관계를 설정해주며 윤리적 근간을 가르쳐준다(탈출기20,1-21 ; 신명 30,11-20 참조). 둘째, 예언서들은 위의 의미로 해석해 계약 파기, 배신의 죄를 고발하고 하느님께서 심판하시며 회개와 재계약으로 재생 재활의 길을 걷도록 가르치는 사회교리서라 할 수 있다. 셋째, 지혜서들은 자연질서와 인생의 지혜를 논하고 가정윤리, 우정, 직업윤리 등을 문화와 전통 안에서 밝혀주며 사회부조리와 불의를 고발하고 인류 공존에 노력할 것과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선에 항구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신약성경은 구세주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을 알려주고 그분께 대한 구약성경 의 약속과 예언이 성취됐음을 알려주며,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대로 새 시대, 새 질서가 시작됐음을 새로운 공동체를 통해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새로운 희망을 세상에 알려준다. 사도들의 서간에서는 새 질서, 새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곧 새 질서와 윤리를 요구하고 묵은 삶을, 구태의연한 무질서를 질책하고 새로운 삶,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사회건설을 촉구하고 새 삶을 격려한다. 만민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회교리라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도 사회교리로서 세상을 구원하는 성사이며(교회헌장 9), 세상 구원을 위한 표지가 돼야 한다. 교회가 개인 구령이나 집단이기적 게토 안에만 머무른다면 세상의 빛도, 소금도, 더구나 구원의 누룩도 아닐 것이며 중차대한 사회구원 사명을 망각하는 것이다. 후기 산업사회로 전이되고 지구촌화, 정보화, IT산업과 인터넷으로 과거 시공개념을 초월하는 현실사회 안에서 신앙인은 누구나 교회의 사회구원 사명을 자기 것으로 인지하고 사회교리 의의와 내용을 깊이 성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알리고 본받는 것이 그의 신비체인 교회의 사명이며 그런 교인들의 삶이 진정한 사회교리가 될 것이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5.11.09

사고. 병마와 싸우며 교회사 연구 35년고희 맞는 호남교회사연구소장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장 천산(天山) 김진소 신부의 '고희 논총 봉정식'이 15일 호남교회사연구소에서 열린다. 35년 사제 생활 거의 전부를 교회사 연구에 바쳐온 김 신부의 삶을 나눈다. 김 신부는 1972년 7월 5일 전주교구 사제로 수품했다. 그의 나이 만 34살 때였다. 한양공대 토목과를 다니다가 군대에 갔다 온 후 뒤늦게 사제가 됐다. 김 신부 집안은 원래 가톨릭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보학(譜學)을 하는 유학자였다. 아버지(김용규, 요셉)는 1920년 경성제일고보(경기고등학교 전신)를 졸업하면서 세례를 받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충청도에서 살던 김 신부 가족은 해방 후 군산으로 내려왔는데 이웃에 살던 교회사가 김구정(이냐시오, 1898~1984) 선생의 인도로 김 신부 아버지는 온 가족과 함께 개종했다. 1947년 9월 25일이었다. 이후 김 신부 아버지는 평생을 신앙 안에서 교회와 더불어 살다가 김 신부가 사제품을 받기 열 달 전 하느님 품에 안겼다. 교우촌 찾아다니며 사료 수집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제가 된 김 신부는 전주 중앙 주교좌본당에서 두 달간 보좌로 지내다가 임실본당과 순창본당 주임으로 겸임 발령을 받았다. 이듬해 5월에는 남원본당 주임까지 겸했다. 그만큼 사제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혼인성사를 집전하러 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김 신부는 4일 후에 깨어났다. 뇌를 크게 다쳐 치료와 휴양을 위해 몇 달 쉬던 중 1973년 8월 대건신학대학 교수로 발령받았다. 부임 초, 은사들이기도 한 정양모ㆍ서인석 신부와 산책을 했다. "정 신부님은 명색이 김대건 신부님의 이름을 딴 대건신학대학인데 한국 교회사에 관한 종이쪽지 제대로 하나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또 나와 동갑인 서인석 신부는 외국 서적을 번역해서 전달하는 데서 벗어나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성경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고대 중국 현인들과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사상 비교'를 주제로 신학교 졸업 논문을 썼던 김 신부는 두 신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그래서 그해 9월부터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교우들에게 부탁하다가 곧 직접 교우촌을 찾아나섰다. 그해 늦가을 정읍 죽림리 교우촌에서였다. 장을 보러 갔다가 돌아온 교우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나누며 얘기하던 중, 한 교우가 흥얼거리며 노래하는 것을 들어보니 제의 색깔의 의미를 가사체로 노래한 '천주가사'였다. 천주가사가 적힌 책을 얻어서 신학교로 돌아갔다. 천주가사를 본 서인석 신부는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시편"이라고 탄복했다. 김 신부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머리가 아파 공부는 제대로 할 수 없지만 자료를 수집하면 교회사 학자를 키울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배낭을 짊어지고 본격적으로 자료 수집에 나섰다. 산골로만 다니다 보니 먹을 데가 없어 굶기를 예사로 했고, 잠자리를 구할 수 없어 칠흑 같은 밤에 산길을 홀로 걸어야 했다. 배낭에는 지도와 나침반, 녹음기, 카메라 등이 있어서 간첩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1977년에는 서울 교회사연구소에서 '천주가사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발표했고, 이후 최석우 신부(현 몬시뇰)를 통해 교회사 공부도 새롭게 시작했다. "천주가사를 통해 한국 천주교가 다문화(多文化)라는 것을 알았지요. 교회 역사뿐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삶으로 가지고 있던 문화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김 신부는 1980년 1월 9일 연탄가스에 중독됐다. 고압산소통 속에 두 시간이나 있은 후에야 깨어났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들 했다. "거의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요. 걸음마, 말, 글을 다 다시 배웠습니다. 이희승 선생이 펴낸 국어대사전을 들고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초인적 힘으로 몸을 회복한 김 신부는 81년부터 선교사들의 문서를 바탕으로 공소 답사를 다시 시작해 5년 여 동안 전국 564개 공소를 답사했다. 교우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신학을 배운 신부는 교리를 어렵게 설명하는데 신학을 모르는 신자들은 교리를 쉽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끄러웠다. 1983년 호남교회사연구소 설립 1983년 2월 교회사 연구 전담으로 발령을 받고 그해 5월 호남교회사연구소를 차리면서 교회사를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다.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는 프랑스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지식으로 쓴 것이어서 우리 생각과 감정과 지식으로 교회사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이렇게 뜻을 둔 교회사 다시 쓰기는 10여 년의 세월이 더 흘러서 1998년에야 「전주교구사」 1권과 2권으로 결실을 거뒀다. 다른 한편으로 김 신부는 순교자 유해 발굴 작업에도 나섰다. 천호산(지금의 천호성지)에서 병인박해 순교자 12위의 유해를 발굴하는 것을 비롯해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정문호(바르톨로메오)와 한재권(요셉) 두 성인의 유해를 찾아냈다. 1993년 전주 치명자산에 있던 호남의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 유해도 발굴했다. 1992년 연구소를 완주군 비봉면 천호마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고, 1994년부터 연구소 연구실을 개방, 젊은 사학자들이 마음 놓고 출입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학자들은 고전물 번역작업을 시작했고, 지난해 9월에는 사단법인 한국고전문화연구원으로 정식 출범했다. 김 신부는 2000년에 또 한 차례 시련을 겪었다. 연초에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하더니 그해 여름에는 뇌경색으로 2002년까지 힘든 투병 생활을 해야 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2005년에는 심장 수술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결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렇지만 병마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마와 끊임없이 싸우면서 지치지 않고 일했다.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교통사고 후 교회사연구 투신 김 신부는 "1973년 교통사고 후 덤으로 받은 삶에 대해 보은하는 마음으로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교회사 연구로 이어져 오늘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교회사를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 것 △책상에만 있지 말고 반드시 현장을 답사할 것 △서둘러 발표하려 들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7.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