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위기 해설거룩한 신앙생활 위한 전례예식 규정십계명을 가르치는 모세(위)와 부정한 동물에 관한 법을 가르치는 모세(아래), 12세기 작품. 성경의 세번째 책인 '레위기'는 모세오경의 가운데에 놓여 있지만, 아마도 오늘날 구약성경에서 가장 덜 읽혀지는 책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레위기는 거의 대부분이 전례 예식과 관련이 있는 율법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문 용어가 많이 나오고 대부분 전례 예식의 법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읽기에 딱딱하고 재미없게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인내를 갖고 읽다보면 이스라엘인들이 얼마나 열심한 마음으로 전례 예식에 참여했는지를 알게 되면서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1)명칭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이 책을 그 첫 구절을 따서 '와이크라'그리고 주님께서 부르셨다)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희랍어 성서인 칠십인 역본(LXX)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대부분 레위 지파의 사제들을 위해 정해진 전례 예식의 규정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책을 레위 지파의 이름을 따라 '레위티콘'(λευιτικον=레위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 성경(Vulgata)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레위기'(Liber Levitici)라고 부릅니다. (2)의의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기원전 587년 신바빌론에게 예루살렘을 함락당하면서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이스라엘인들은 타지로 유배를 가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이스라엘인들 중 일부는 지난날 가나안의 다른 신들을 섬기고 하느님께 대한 전례 예식에 소홀히 임한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 충실해지고 이스라엘의 신앙을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이스라엘의 전례 예식을 올바로 규정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사제들을 중심으로 여러 자료들이 수집되고 보충되었는데, 그 최종 편집본이 오늘날의 '레위기'입니다. 비록 비교적 후대에 쓰여졌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레위기'는 전례 거행을 통해 하느님과 통교하고자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인 이스라엘인들이 남긴 소중한 책입니다. (3)내용 '레위기'는 하느님께서 모세를 만남의 천막으로 부르신 다음 이스라엘 백성이 "예물을 바칠 때"(1, 2)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느님이 이렇게 내려주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19, 2). '레위기'를 내용적으로 구분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 희생제사의 예배에 관한 규정 : 1~7장 ② 성소에서의 성직위임 예배 : 8~10장 ③ 불결한 것에 관한 규정 : 11~16장 ④ 성결법전 : 17~26장 ⑤ 서원과 십일조 : 27장 (4)메시지 ① 어떻게 거행하는 미사가 가장 거룩할까요? 미사 거행 규정을 세심하게 지키면서 정성을 다해 바치는 미사가 아마도 가장 거룩한 미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위기'에서 우리는 생각지 못한 답을 듣게 됩니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19, 18). 정성을 다해 바치는 미사와 기도도 중요하지만, 참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우리의 미사와 기도가 '완전'해지고 '거룩'해집니다. ② 우리는 '레위기'를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들이 유독 '피'의 신성함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컨대 17장 12절을 보면 "너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 머무르는 이방인도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여호아의 증인' 같이 극단적인 일부 교파들은 수술을 받으면 안 된다고도 주장합니다. 수술을 받으면 피를 흘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레위기'에서 '피'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생물의 생명이 그 피에 있기 때문"(17, 11)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피를 먹거나 흘리면 안 되는 이유는 모든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명을 구해주는 수술을 거부한다는 것은 오히려 '레위기'에서 드러난 하느님 뜻을 거역하면서 자기 생명을 손상시키는 행위가 됩니다. 이렇게 '레위기'는 만물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낙태, 전쟁, 학살, 배아줄기세포 연구, 자살, 살인, 사형 등 온갖 생명경시 사상이 득세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레위기'는 생명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 우리 자신을 투신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cpbc2007.01.03

거장들 그림 세밀히 설명'명화를 만나다...' 연작 네권 나와 올 여름엔 '나만의 큐레이터'와 매혹적인 명화 여행을 떠난다. 신ㆍ구약 「성경」과 성인을 형상화한 성화와 그리스ㆍ로마 신화 관련 성화를 집약한 '명화를 만나다-아트 가이드(Art Guide)' 연작이 출간됐다. 서양 그림과 조각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은 창작의 원천을 제공해온 성경과 그리스ㆍ로마 신화 관련 성미술과 미술작품이 총 4권으로 묶여 나온 것.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샤갈, 고흐 등 서양미술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거장들 붓끝에서 흘러나온 성화는 마치 숨결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림은 문맹자를 위한 성서'라는 오래된 말을 상기시켜 주는 연작 저작이다. '명화를 만나다' 연작은 성화를 주제별로 모아 친절한 큐레이터가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하는 것처럼 안내한다. 연작은 단순히 성화를 나열하는 데서만 그치지 않는다. 이들 저작의 진정한 매력은 그림 속을 파고드는 실선(實線)을 통해 성화 구석구석을 세밀히 설명해 준다는데 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성경 속, 신화 속 이야기가 다양한 시대, 다양한 작가들을 아우르며 새롭게 태어나는 듯하다. 연작은 명쾌한 그림 설명뿐 아니라 전반적 구성면에서도 쉽고 간결한 그림 안내서다. 신ㆍ구약 성경은 성경 구성을 토대로 읽기 쉽게 정리했고, 신화 또한 인물별로 소개했다. 그림을 읽어내는 데는 나름 일정한 규칙이 있게 마련. 비록 지금은 의미를 알 수 없거나 모호하게 느껴지지만 그림 제작 당시엔 그림 속 인물들 몸짓이나 작은 사물들은 당대인들에겐 잘 알려진 표지였다. 털가죽 옷을 입고 있는 황야의 남자는 세례자 요한, 열쇠를 들고 있는 남자는 베드로, 초상화가 그려진 천을 들고 있는 여인은 베로니카라는 식이다. 연작은 그림에 숨겨진 이러한 규칙을 하나하나 파헤친다. 그림 속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게 될 때마다 독자들은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연작은 서구문화의 기반 중 하나인 그리스ㆍ로마 신화의 신과 영웅들 그림을 1권으로 묶었고, 모세5경에서부터 역사서, 시편, 예언서로 이어지는 구약 관련 성화를 해당 성경 구절과 함께 실어 2권으로 발간했다. 복음서 저자에 대한 내용부터 시작해 성모 마리아 사화, 예수 탄생과 유년기, 공생애, 기적과 비유들, 수난사화와 뒤이은 부활사화까지 다룬 신약성서 명화는 3권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마리아 막달레나, 안나, 요셉 등 120여명의 성인 성화는 4권에 각각 소개됐다. 각권은 380쪽 안팎으로, 1권은 도상학자이자 건축가인 루치아 임펠루소, 2권은 이탈리아 밀라노 IULM대학 연구원인 키아라 데 카포아, 3권은 이탈리아 미술사학자 스테파노 추피, 4권은 도상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로사 조르지가 각각 집필했다.(도서출판 예경/각권 1만8600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6.08.16
예루살렘-시온산최후 만찬, 성령강림 이뤄진 교회 발상지 성경에서 시온 산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시온 산에 하느님의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봉우리'란 뜻의 시온은 예루살렘 남서쪽 힌놈 계곡과 티로포에온 계곡 사이 하단부 해발 765m의 고원 지대를 말한다. 시온 산은 유다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귀중한 성지다. 시온 산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곳이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차례 오시어(요한 20,19-23; 20,24-29) '사죄권'을 부여하시고, 토마스의 의심을 풀어주신 장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교회를 탄생시킨 곳이 바로 이 곳 시온 산이며, 예수님 승천 후 성모 마리아께서 사도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셨다고 전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부 성경고고학자들은 첫 공의회인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1-35)가 개최된 곳도 시온 산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이유로 시온 산에는 1세기 말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던 '사도들의 교회'가 있었다. 신앙의 자유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382년 사도들의 교회 터에 팔각형 기념 성당을 건립했다. 이때부터 이 지역이 오늘날의 시온 산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오늘날 시온 산에는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을 중심으로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등이 있다. 시온 산 관문인 '시온 성문'을 지나 골목길로 곧바로 올라가면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이 나온다. 예수 시대 이곳은 제관들과 고관들이 거주하던 윗도시 지역으로 대사제 가야파의 집과도 멀지 않았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파스카 양을 잡는 무교절 날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지시로 먼저 가 파스카 음식을 차려놓은 큰 이층 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했다(루카 22,7-13; 마태 26,17-19; 마르 14,12-16). 안타깝게도 복음서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 장소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교회 전승에 따라 오늘의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 터는 비잔틴 시대 때부터 성지로 개발됐다. 4세기 초대 성당이 건립됐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됐다. 이후 십자군 시대 때 성당이 다시 지어졌지만 또다시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1333년 나폴리 왕 로베르토와 왕비 산치아가 이집트 술탄 말렉 알 나시르 마호멧에게서 폐허로 방치돼 있던 최후의 만찬 성당 터를 매입해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봉헌했다. 작은 형제회는 이 터에 수도원과 고딕 양식 성당을 지어 지상 층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기념 경당''다윗 무덤 경당'(사도 2,29), '사도 토마스 경당'(요한 20,24-31)을, 2층에는 '성령강림 기념 경당'(사도 2,1-13)과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Coenaculum)을 마련했다. 라틴어 체나쿨룸(Coenaculum)은 '식당', '다락방'이란 뜻이다. 이 성당은 1517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투르크족에 의해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 다윗 무덤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슬림은 다윗을 예언자로 공경하고 있다. 이후 최후의 만찬 경당은 400여 년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후 독립전쟁 때 빼앗은 이곳을 정부재산으로 귀속시키고 건물 1층을 다윗 무덤과 유다인 회당(시나고가), 탈무드 학교로 개조했다. 또 2층 성령강림 경당을 폐쇄시키고,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만을 개방하고 성 목요일과 성령강림 대축일 때에만 말씀의 전례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다.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지나 2층 최후의 만찬 경당에 들어서면 경건함보다 공허함이 먼저 밀려든다.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성화가 화려하게 장식됐을 천정과 벽들이 모두 회칠이 돼 있다. 벽에는 뜻 모를 아랍 문자와 이슬람 문양들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고, 무슬림이 기도할 때 메카 방향을 가리켜 주는 '미랍'이 벽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계단을 따라 성령강림 기념 경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폐쇄돼 굳게 닫혀 있다. 유다인들은 성령강림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심히 살펴보면 위안을 주는 성당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경당 입구 기둥이 '포도나무'로 장식돼 있다. 포도나무 덩굴은 하느님의 백성, 바로 교회를 상징한다(요한 15,1-10). 또 성당 천장을 바치고 있는 돌기둥은 '펠리컨' 조각으로 장식돼 있다. 중앙에 어미 펠리컨이 있고, 양 옆으로 굶주린 새끼들이 어미의 가슴에서 피를 받아먹고 있는 형상이다. 이렇게 기둥 네 면에 모두 12마리 펠리컨이 있다. 펠리컨은 '성체성사'를 상징한다. 펠리컨은 모성애가 매우 강해 먹이가 떨어져 새끼가 굶게 되면 어미 새가 자기 가슴을 부리로 쪼아 피를 내 먹인다는 전설이 있다. 작은 형제회는 200여 년간 수도회 본부이기도 했던 이 곳을 회복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으나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작은 형제회는 하는 수 없이 1936년 최후의 만찬 경당 바로 옆 부지를 매입, 수도원을 짓고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을 꾸며 놓았다. 작은 형제회 수도원 바로 옆 골목길 어귀에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Dormitio Beatae Mariae Virginis)이 자리하고 있다. 초세기 사도들의 교회 터 위에 세워진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 부활 후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셨던 장소라고 한다(사도 1,13-14). 대부분의 책자가 이곳을 성모 마리아가 죽은 장소라 소개한다. 이는 가톨릭 교리상 매우 잘못된 표현이다. 가톨릭교회는 동방교회와 달리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시기에 원죄의 결과인 죽음을 극복하고 영혼과 육신이 함께 승천해 천상 영광을 받으셨다고 신앙 고백을 한다. 성당 이름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라틴 말 '도르미시오 베아테'(Dormitio Beatae)는 우리말로 '복된 잠'이란 뜻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382년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을 건립했으나 614년 페르시아군과 1009년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이후 1100년에 십자군이 폐허 위에 다시 큰 성당을 지어 '시온 산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 불렀다. 이 성당은 다시 1219년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된 후 600여 년간 폐허로 방치됐다. 그러다 1898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술탄 압둘 하미드가 빌헬름 2세에게 선물로 이 성당 터를 기증했다. 빌헬름 2세는 쾰른대교구장에게 이 성당 터를 이양했고, 가톨릭성지개발독일재단이 1910년에 오늘날의 성당을 완공해 봉헌했다. 현재 독일 베네딕도회가 관할하고 있는 이 성당은 원형 지붕(돔)과 종탑이 어우러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화려한 성당으로 시온 산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성당 내부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12사도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또 지하 성당 한 가운데에는 복된 잠에 빠져 있는 동정 마리아 상이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오대석2007.06.07
![[이달의 교계 잡지] 2006년 11월](//cpbc.co.kr/CMS/newspaper/2006/11/rc/165912_1.0_titleImage_1.jpg)
[이달의 교계 잡지] 2006년 11월 ▨가톨릭 디다케=특집 '보물상자'에서는 위령성월을 맞아 '새 생명의 문을 열어라'를 주제로 △영원한 삶을 향한 길 △미디어가 묘사하는 죽음에 대한 이해 △준비하는 자에게는 죽음도 축제다 △청소년에게 죽음을 이야기하다를 실었다. '천국의 별을 만났습니다'에서는 서울 태릉본당 초등부 주일학교 쌍둥이 자매 교사(최윤정 루치아, 최윤미 모니카)를 만나봤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3500원) ▨경향잡지=진리의 그루터기에서는 경향잡지 창간 100주년 기념식, 가톨릭 점자 성경 봉헌 미사와 기념식, 주교회의 2006년 가을 정기총회ㆍ성명서 등을 다뤘다. 교리 연재만화에서는 영성체 예식에 대해 알아본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그물=지난 9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솔선자 탄생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한국 회원들의 인상을 실었다. 복음 실천 경험담 '복음살이', '주간 묵상', '나의 성인' 등도 이어진다.(마리아사업회/3000원) ▨레지오 마리애=특집으로 꼰칠리움 방문기(한관섭)를 실었고 '가톨릭 인물 이야기'에서는 장 마리 레티시아의 삶에 대해 알아본다.(한국세나뚜스협의회/1800원) ▨사목='우리 시대 우리 교회'에서는 '장묘문화'를 주제로 △우리들의 빈 무덤(최원오 신부) △현대 종교와 장례 문화(송현동) △장사법 개정안 논의와 한국 천주교회의 대응(허윤석 신부) 등을 실었다. '사목 현장을 찾아서'에서는 사별 가족 모임을 찾았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4000원) ▨성모기사='한국 순교 성지를 찾아서'에서는 단내ㆍ어농 성지를 찾았고, '주춧돌'에서는 '영혼의 불을 밝히며'(현정수 신부)를 다뤘다.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에서는 '군종, 제2의 성소'(서상범 신부)를 실었다.(성모기사회/1000원, 후원회원 무료) ▨생활성서=눈물을 주제로 한 특집에서는 △눈물, 그 적절한 선택의 문제(이나미) △눈물 없는 눈물(권은정) △예수님의 눈물, 사랑의 눈물샘(민경철) △대중문화와 눈물의 사회사(김창남)를 다뤘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 함께='교부들의 말씀'에서는 '체념과 자유'(이상규)를 실었고, '이미지로 여는 마르코 복음'에서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하영호)을 다뤘다.(성서와 함께/3000원) ▨소년='별을 만나요'에서는 개그맨 김미진씨를 만나보고 '모니카 수녀님과 성지 순례 떠나요!'에서는 '유구한 이집트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내 손으로 뚝딱'에서는 비들기 메모지 함을 만들어 본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 우물=표지인물로 광주대교구 인덕본당 섬마을 공소지킴이 양현식씨를 실었고 '성격이야기'에서는 성 이냐시오를 다뤘다. 새로 나온 음반은 나무자전거의 '그대를 사랑해'를 소개한다.(바오로딸/2000원) ▨착한 이웃='문화의 현장'에서는 '땅끝마을 유우코씨-일본인 며느리 부녀회장 되다(김성현)', 콩트 '구두닦이 소년의 유산' 등을 다뤘다. '생활과 과학'에서는 '물과 건강'(조영일), '웰빙 육아'(이인호)에 대해 알아본다.(착한이웃/3000원) ▨참 소중한 당신=특집 '살아 숨 쉬는 주님 말씀'에서는 △항상 새로운 시각으로 성경 읽기(홍승모 신부) △성경을 쓰는 아내를 지켜보며(이우철) △말씀은 바로 네 곁에 있고,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양보경)를다뤘다.(에우안겔리온/2900원) 김민경 기자 mksophia@pbc.co.krcpbc2006.11.02

23- 예수님의 호칭과 상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14). 2001년 성지순례를 나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요르단 느보산 모세의 구리뱀을 형상화한 곳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다.평화신문 자료 사진 예수님을 가리키는 이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데 설명을 부탁합니다. 예수님을 표시하는 상징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 먼저 예수님 이름이 지니는 뜻부터 알아봅시다. '예수'라는 이름은 '주님(야훼)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 말 '여호슈아'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여호슈아가 줄어서 '예슈아'가 됐는데, 이 말이 그리스말인 '예수스'로 번역되면서 '예수'가 된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마태 1,18-25)에서는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약혼녀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고 말하고는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아기 이름을 예수로 지으라는 이유를 설명하지요. 이어서 구약성경 예언을 빌어 예수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고는 그 뜻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풀이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생은 '구원이신 하느님께서 이제 우리와 함께,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니, 예수님 탄생은 실로 천지가 우주가 개벽하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관련된 중요한 호칭들과 그 의미에 대해 하나씩 살펴봅니다. ◇그리스도, 메시아: '예수'라는 이름에 항상 붙어 다니는 명칭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님의 고유한 이름으로 이해합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신앙 고백문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 말(또는 아람 말) '메시아'를 그리스 말로 번역한 것인데, '기름 부음을 받은 이'를 뜻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왕이나 예언자, 사제 등 백성의 지도자가 취임할 때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성별(聖別)하는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일종의 취임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의 압제에 시달리면서 '기름 부음을 받은 이' 곧 메시아가 오시면 자기들을 억압의 사슬에서 풀어 구원(해방)해 주실 것이라고 고대했습니다. 이런 사상이 발전해서 메시아를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앞에서 예수님 이름과 관련해서 알아보았듯이 예수님이 바로 그 구세주, 메시아이십니다. ◇주님: '주님'은 하느님의 주권(주권) 또는 하느님이 주인이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며, 하느님과 같은 신성을 지니신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미사 영성체 예식 부분에서 신자들은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기도하는데 하느님의 어린양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될 때 어린양을 잡아 제물로 바쳤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종: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종'(이사 52,13-53,12)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심으로써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주(天主) 성자(聖子)'라고 부르지요. ◇사람의 아들(人子):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구약성경(다니엘서)에 나오는데, 종말에 나타나 세상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을 뜻합니다. ◇사람이 되신 말씀(로고스): 삼종 기도에는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라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로고스'란 '말' '말씀'이란 뜻의 그리스 말입니다. 요한 복음에서는 '한처음에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바로 하느님이셨다'고 하는데, 사람이 되신 하느님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말씀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알아둡시다>> 예수님을 가리키는 호칭 외에도 예수님과 관련한 상징들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밖에 중요한 몇 가지 상징 또는 표시들을 알아봅니다. * ΑΩ : Α는 그리스말 첫 글자이고 Ω는 그리스말 마지막 글자입니다. 그래서 Α와 Ω는 일반적으로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끝을 나타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Α요 Ω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때부터 세상 마지막까지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 I.N.R.I. : 십자고상을 보면 윗부분 명패에 'I.N.R.I.'라고 표기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내준 로마 총독이 써 붙인 죄목으로,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라는 라틴말의 약자입니다. 복음서는 이 죄목이 라틴말과 그리스말 히브리말로 쓰여 있었다고 전합니다(요한 19,19-20). * 물고기 :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 신자들을 박해하던 때에 신자들이 서로 신원을 확인하고자 사용하던 암호인데, 물고기를 암호로 표시한 것은 물고기를 뜻하는 그리스말 익튀스(ΙΧΘΥΣ)가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Ιησυs Χριστοs Θεου Υιοs Σωτηρ)라는 그리스말의 첫 글자를 합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 키로: 그리스말 그리스도(ΧΡΙΣΤΟΣ)처음 두 글자 키(Χ)와 로(Ρ)를 붙여서 만든 표시입니다. 요즘에도 천주교 신자 집임을 알리는 명패에 이 표시를 하지요. * 구리뱀 : 모세에게 불평하다 불뱀에 물려 죽게 된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기둥에 달아놓은 구리뱀을 쳐다보고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민수 21,4-9 ; 요한 3,14 참조). 그래서 구리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cpbc2006.12.13

14-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상징하는 뱀죽음, 구원, 야누스의 두 얼굴성경에서 뱀은 간교하지만 지혜로운 동물로, 선과 악 두가지 의미를 다 지니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 3월20일 요르단 느보산 `모세의 구리 뱀` 아래서 기도하고 있다.CNS 자료사진 허 영 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뱀처럼 이중적 가치를 지닌 동물도 드물 것이다. 뱀은 사람들이 지극히 혐오하는 대표적 동물인 반면에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도 인식되니 말이다. 몸통과 꼬리가 가늘고 길며 사지가 없이 기어 다니는 뱀은 두가닥으로 갈라진 혀를 항상 날름거리며 먹잇감을 찾는다.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뱀을 징그러운 동물로 꼽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뱀을 악의 화신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신교 사회에서는 뱀을 신으로 숭배했다. 이집트인들은 뱀의 여신인 '부토'를 파라오를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했고, 가나안 지방의 대표적 풍산신인 '바알'의 상징도 뱀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뱀이 모든 악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주기적으로 낡은 허물을 벗기에 영생과 치유의 상징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전설에는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요괴로도 등장하지만 임산부가 꿈에서 뱀을 보면 길한 태몽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뱀을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지만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는 훌륭한 보양식으로 식도락가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기도 한다. 성경에서 뱀은 50여 차례나 언급되는데 그 역할도 다양하다. 뱀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존재라고 소개한다(창세 3,1).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아 하느님이 금지하신 나무 열매를 따 먹고 하느님을 피해 숨는다. 이 때문에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뱀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어야 하는 가련한 존재가 됐다(창세 3, 1-15).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에 등장하는 뱀은 무척 인상적이다. '죽음'의 상징이었던 뱀이 역설적으로 '구원'의 수단이 된 것이다. 모세의 지도아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과 모세를 거슬러 대들고, 하느님께서는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불 뱀을 보내신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뱀에 물려죽자 그들이 모세를 찾아와 하느님의 진노를 거둬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간청한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놓게 하셨다. 뱀에 물린 사람들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민수 21, 4-9). 신약성경에서는 구리 뱀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 됐다.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 13-14)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뱀에 비유해 당부하신 말씀은 흥미롭다. 제자들에게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 16)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신약성경에서 이 부분을 제외하고 뱀은 일관되게 부정적 의미로 언급되고 있다. 신약성경은 뱀을 죽음의 세력, 하느님에 의해 짓부서져 사도들의 발아래 밟히는 사탄으로 표현한다(로마 16, 20). 선악 두가지의 의미를 다 가진 뱀의 양립적 성격은 교부들에게도 잘 나타나고 있다.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나무에 걸린 뱀"이라 불렀다. 중세시대에는 지혜를 의인화해 묘사할 경우 뱀이 그 상징이 됐다. 또 비잔틴이나 콥트 교회 주교들의 지팡이 손잡이 부분에는 뱀 모양이 있는데, 이것은 뱀처럼 지혜롭게 회중을 인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성경에서 뱀은 간교하고 교활하지만 또한 지혜로운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cpbc2006.08.23
제주교구 성서주간 맞아 성서전회 열어"늘 성경과 함께하는 삶이 되길"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와 사제들이 성서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오상철 명예기자 osach@pbc.co.kr 제주교구는 19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강우일 주교 집전으로 성서주간 개막미사를 봉헌하고 25일까지 가톨릭회관에서 성서와 성서관련 전시회를 열었다. 강 주교는 개막미사 강론에서 "한국교회도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을 갖게됐다"며 "이는 그동안 제주교구 출신 고 임승필 신부를 주축으로 한 성서번역팀의 노력으로 이뤄진 결실"이라고 밝히고, "많은 신자들이 새 성경을 구입해 늘 성경과 함께하는 삶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사 후 강 주교 등 관계자들은 성서전시회 개막 테이프를 자르고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가톨릭회관 1층과 2층 에 마련한 전시장에는 각 본당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별로 이어 쓴 성서, 성서 가훈, 사제들이 필사한 성서, 평신도들이 필사한 성서, 성서연대와 관련 사진 및 이스라엘 지도, 청년 성서그룹 모임이 필사한 성서, 예수 그리스도 일생에 관한 이콘 등이 전시됐다. 특히 강 주교가 필사한 성서, 황페리(남원본당 주임) 신부가 영어와 한글로 필사한 성서, 한지에 쓴 성서, 붓글씨로 쓴 성서 등 다양하게 쓴 성서들이 눈길을 끌었다. 김승호 명예기자 k-ambrosio@pbc.co.krcpbc2005.11.23

비우면 행복이 채워집니다두부요리 전문점 '백년옥' 대표 최재영씨, 홀몸어르신께 무료식사 대접 꾸준히, '100원 나누기'도 동참, 나눔이 생활 "조금만 주머니를 비우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서울 예술의 전당 바로 맞은편에 있는 두부요리 전문점 '백년옥' 대표 최재영(미카엘, 67, 서울 서초동본당)씨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1991년, 너무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이곳에 음식점을 낸 그는 "하느님께서 힘을 주시면 교무금도 제일 많이 내고 나누며 살겠다"고 기도했다. 기도 덕분일까. 사업이 번창해 서초동 음식점 공간을 넓히고 분당에 분점을 낸 그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를 식당 입구에 두고 손님들이 가져가면서 자율적으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게 한 것은 92년부터다. 이렇게 모은 돈은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했다. 또 매달 첫째 월요일에는 '서초 예술의 마을 노인당' 어르신들에게, 둘째 월요일에는 서초종합사회복지관 어르신들에게, 셋째 월요일에는 까리따스방배종합사회복지관 홀몸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는 등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런 그의 선행이 알려져 2004년엔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을 정도. 그뿐 아니다. 지난달부터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진행하는 '100원 나누기' 운동에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부인 김정희(데레사)씨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다가 안하면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 계속하는 거니까 솔직히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 하는 거예요." "돈은 하느님께서 잠깐 관리하라고 주신 것일 뿐"이라는 그는 "어르신들이 맛있게 식사하시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 있다"면서 "이익이 적더라도 드시는 분들 건강을 생각해 좋은 원료를 써서 최고 품질의 음식을 내놓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음식점 캐치프레이즈가 '음식으로 고객을 속이지 않는다'"라고 소개하고 "국산 콩 가격이 수입 콩의 두 배여도 국산 콩만을 사용하고, 강원도에서 가져온 자연 간수를 사용해 두부를 만든다"면서 "고급 재료를 써 원료 자체의 맛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라고 자랑했다. 출입문에 붙여놓은 ME, 꾸르실료 스티커부터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라고 쓴 글귀, 벽에 건 십자고상, 명함에 적힌 세례명까지 누가 봐도 천주교 신자인 것을 한눈에 알게 한 이유를 묻자 "신자로서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 그는 "신앙심이 깊지는 않지만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1데살 5,16-18)'라는 성경 말씀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던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주 예원예술대학교 회화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과에서 최고령자인 그의 꿈은 3년 뒤 개인전을 여는 것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멋지게 살아야 돼요. 하느님이 할 수 있는 힘을 주셨으니까 봉사, 창작, 나눔 모두 능력껏 해야지요!"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cpbc2007.06.13
나눔은 행복입니다-최재영씨"조금만 주머니를 비우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서울 예술의 전당 바로 맞은편에 있는 두부요리 전문점 '백년옥' 대표 최재영(미카엘, 67, 서울 서초동본당)씨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1991년, 너무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이곳에 음식점을 낸 그는 "하느님께서 힘을 주시면 교무금도 제일 많이 내고 나누며 살겠다"고 기도했다. 기도 덕분일까. 사업이 번창해 서초동 음식점 공간을 넓히고 분당에 분점을 낸 그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를 식당 입구에 두고 손님들이 가져가면서 자율적으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게 한 것은 92년부터다. 이렇게 모은 돈은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했다. 또 매달 첫째 월요일에는 서초 예술의 마을 노인당 어르신들에게, 둘째 월요일에는 서초종합사회복지관 어르신들에게, 셋째 월요일에는 까리따스방배종합사회복지관 홀몸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는 등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런 그의 선행이 알려져 2004년엔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을 정도. 그뿐 아니다. 지난달부터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진행하는 '100원 나누기' 운동에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부인 김정희(데레사)씨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다가 안하면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 계속하는 거니까 솔직히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 하는 거예요." "돈은 하느님께서 잠깐 관리하라고 주신 것일 뿐"이라는 그는 "어르신들이 맛있게 식사하시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 있다"면서 "이익이 적더라도 드시는 분들 건강을 생각해 좋은 원료를 써서 최고 품질의 음식을 내놓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음식점 캐치프레이즈가 '음식으로 고객을 속이지 않는다'"라고 소개하고 "국산 콩 가격이 수입 콩의 두 배여도 국산 콩만을 사용하고, 강원도에서 가져온 자연 간수를 사용해 두부를 만든다"면서 "고급 재료를 써 원료 자체의 맛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라고 자랑했다. 출입문에 붙여놓은 ME, 꾸르실료 스티커부터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라고 쓴 글귀, 벽에 건 십자고상, 명함에 적힌 세례명까지 누가 봐도 천주교 신자인 것을 한눈에 알게 한 이유를 묻자 "신자로서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 그는 "신앙심이 깊지는 않지만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1데살 5,16-18)'라는 성경 말씀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던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현재 전주 예원예술대학교 회화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과에서 최고령자인 그의 꿈은 3년 뒤 개인전을 여는 것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멋지게 살아야 돼요. 하느님이 할 수 있는 힘을 주셨으니까 봉사, 창작, 나눔 모두 능력껏 해야지요!"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cpbc2007.06.13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등록문화재 제230호)근대적 성당 건축의 모태2007년 10월 현재 정부가 지정한 등록문화재 357건 가운데 가톨릭교회 관련 건축물은 모두 19건. 그 중에서 서울에 있는 것은 단 하나, 혜화동성당(주임 김철호 신부)이다. 서울 한복판 종로구에 있는 혜화동은 한국교회 '믿음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제 양성의 요람인 대신학교와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 가톨릭의 명문 동성고등학교, 중림동본당(1892년)과 명동본당(1898년)에 이어 서울에서 세번째(1927년)로 설립된 혜화동본당이 자리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혜화동이 믿음의 고향이 된 데는 독일 성베네딕도회의 공이 컸다. 조선대목구장 뮈텔 대주교가 한국교회 교육사업을 맡아줄 것을 요청함에 따라 한국에 진출한 독일 '성 오틸리엔의 베네딕도 수도회' 회원들은 1909년 혜화동 일대 전망 좋은 땅 10만여㎡을 구입해 수도원을 세웠다. 이후 베네딕도회가 1927년 수도원을 덕원으로 옮겨가자 서울대목구가 수도원 땅을 매입했고, 이 수도원 터에 지금의 대신학교와 혜화동성당, 동성고(1929년에 이전)가 들어섰다. 2006년 3월 2일에 등록문화재 제230호로 지정된 혜화동성당은 80년 전 본당 설립 당시 성당이 아니라, 1960년 5월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문화재청은 아직 50살도 되지 않은 혜화동성당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붉은 벽돌조 종탑의 대비를 통한 균형미, 비대칭 입면구성 등은 당시 고딕 양식으로 정형화되어 있던 성당 건축의 틀을 깨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건축되는 근대적 성당 건축의 모형이 되는 기념비적 건물이다. 또한 조각가 김세중의 부조 작품으로도 유명하며, 종교사적ㆍ건축사적ㆍ미술사적 가치가 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 건축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기념비적 성당이라는 설명이다. 오늘날 세워지고 있는 다른 성당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근대적 건축미를 자랑하는 혜화동성당. 이 성당이 반백 년 전인 1960년에 세워진 건물이라고 하면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성당 건물만 문화재가 아니다. 소장하고 있는 성미술품 모두가 문화재급이다. 어느 것 하나 대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정웅모(서울대교구) 신부는 저서 「교회미술 이야기」에서 "이 성당 건립에 내로라하는 가톨릭 예술가들의 정성이 하나로 집결됐기 때문에 이 성당을 건축하면서 한국교회 미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성당 건립은 1950년대 후반 장발(루도비코, 1901∼2001년, 장면 전 국무총리의 동생) 당시 서울대 미대 학장의 지휘로 이뤄졌다. 설계를 맡은 이는 이희태(요한, 1925∼1981)씨. '절두산 순교 기념관' 설계자이기도 한 이씨는 기존 성당 개념을 거부하고 자신의 개성을 살려나간 독창적 건축가였다. 성당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현관 위에 있는 '최후의 심판도' 화강석 부조다. 1961년 김세중(프란치스코, 1928∼1986) 서울대 교수가 원도를 작성하고 장기은 교수와 함께 조각한 이 부조에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요한 14,6),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아니하리라'(루카 21,33)는 성경 구절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4명의 복음서 저자 상징이 좌우에 자리잡고 있다. 혜화동성당에 있는 수많은 성물들 가운데 일반 신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으로는 제대 앞 오른쪽 벽면에 걸려 있는 '103위 순교 성인화'(1977년, 285×330㎝)를 꼽을 수 있겠다. 1984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103위 성인 시성식을 계기로 한국교회 공식 성인화가 되다시피한 이 그림은 문학진(토마스) 화백이 10개월 동안 전례ㆍ역사ㆍ복식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은 뒤 한국적 주체성을 살려 103위 한분 한분 표정을 특색있게 그려낸 것이다. 시대와 신분이 각기 다른 순교자들이 기쁨에 가득찬 모습으로 천국 개선을 기다리는 이 그림은 보는 이에게 푸근한 감동과 평화를 안겨준다. 혜화동성당에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성미술품은 한둘이 아니다.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대작만 꼽아도 이남규(루카, 1931∼1993년) 교수의 유리화 29점이 있고, 권순형(프란치스코) 교수가 '성사'라는 주제로 제작한 제대 뒤편 도자 벽화가 있다. 김세중 교수가 1958년에 청녹색 대리석으로 제작한 제대는 당시 본당 사목회장이었던 장면(요한) 전 국무총리가 본당에 기증한 작품이다. 성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활 성수대도 빼놓을 수 없다. 이종상(요셉) 화백이 1994년에 제작한 성수대 위에 예수 부활상(임영선 교수 제작)을 얹은 합작품으로, 상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관을 쓴 채 못자국이 선명한 두 손을 포개 얹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최종태 교수, 최봉자 수녀 등 내로라하는 성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한 '교회 미술의 보물창고'가 혜화동성당이다. 전문적 식견은 없더라도 차분한 마음과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하나하나 음미한다면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숨결을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김철호 주임신부는 "성당 건물만 문화재가 아니라 영성적으로도 문화재급인 본당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면서 "특히 혜화동성당이 젊음과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와 붙어있는 만큼 젊은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cpbc2007.10.10
![[공의회 과정] 5 - 교회 헌장에 나타난 교회모습(상)/ 김영국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장)](//cpbc.co.kr/CMS/newspaper/2007/04/rc/188862_1.0_titleImage_1.jpg)
[공의회 과정] 5 - 교회 헌장에 나타난 교회모습(상)/ 김영국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장)"교회는 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한 보편적 성사"공의회 과정을 경청하는 수강자들. ▨ 교회헌장 형성과정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교회헌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제3회기 때인 1964년 11월 21일, 교황 바오로 6세가 반포했다. 교회헌장이 반포되기까지는 3단계 작성 과정을 거쳤다. 특히 초안에서 제2안으로 가는 과정이 중대 고비였다. 초안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준비위원회가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했다. 초안의 목차는 1)투쟁 중인 교회(神戰之會) 2)교회 구성원과 교회 구원 필요성 3)성품성사의 최상의 단계로서 주교직과 사제직 4)정주(定住) 주교 5)복음적 완덕의 신분 6)평신도 7)교회 교도직 8)교회 안에서 권위와 순종 9)교회와 국가 관계와 종교적 관용 10)만백성과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해야 할 필요성 11)교회일치 12)(부록) 동정녀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요 인류의 어머니 등 모두 12개 장이다. 이 목차에서 보듯 초안은 너무 많은 것들을 담아 일부 내용은 삭제됐고, 나중에 다른 문헌에 삽입되거나 독립된 문헌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 초안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교회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초안의 기본 사고가 '위에서 아래로'였다. '투쟁 중인 교회'라는 표현은 적대적인 세상에서 자신을 방어하고 권리를 주장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이를 관철하려는 19~20세기 초 교회 모습을 보여준다. '하느님의 백성'과도 거리가 있다. 교회 구성원들도 주교부터 시작해 평신도를 마지막 순서로 다뤘다. 초안에 대한 비판 내용을 보자. 초안은 논리적 전개가 부족하고 교회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스트라스부르크교구 엘킹어 주교는 어제의 사람들이 교회를 제도로 보았다면, 오늘의 사람들은 교회를 공동체로 본다며 이 초안은 '어제의 것'이라고 비판했다. "어제의 사람들이 교황을 바라보았다면, 오늘의 사람들은 교황과 함께하는 주교를 바라본다. 어제의 사람들이 개별 주교를 바라보았다면, 오늘은 사람들이 전체 주교를 바라본다. 어제의 신학이 교계의 의미를 강조했다면 오늘은 하느님 백성을 발견한다. 어제의 신학이 갈라놓음을 언급했다면 오늘은 일치를 언급한다. 어제의 신학자들이 교회 내부 생활을 관찰했다면 오늘은 외부세계로 지향하는 교회를 바라본다." 초안은 그리스도 신비체를 제도로서의 로마 교회와 동일시하는 등 너무 법률적으로 말하고 있고, 교회를 승리주의에 빠져있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또 겸손한 교회, 가난한 교회, 고통받는 교회에 대한 사상을 담지 못했다. 결국 토론 참가자들은 초안을 결론없이 위원회에 넘겨 총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제1회기와 제2회기 중에 많은 작업이 이뤄졌으며 이 때 참가한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에 이브 콩가르와 칼 라너가 있었다. 공의회 교부들은 1963년 가을에 다시 모였을 때 새로운 의안과 2권의 개선 제안을 받았다. 새 의안은 1)교회의 신비 2)교계제도적인 교회체제 그리고 특히 주교단 3)하느님의 백성 그리고 특히 평신도 4)교회 안에서의 성덕에로의 부르심 등 4개 장으로 구성됐다. 또 개선 제안 중에는 결정적 제안이 있었다. 즉, 교회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3장의 모든 내용을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하나의 고유한 장으로 서술해 1장과 2장 사이에 자리잡게 하라는 제안이다. 이는 단순한 편집상 제안이 아니라 공의회에서 성직자 중심의 교회상이 결정적으로 극복되는, 새로운 교회관을 제안하는 엄청난 '사건'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토의 마지막에 현재의 8장으로 된 안이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1)교회의 신비 2)하느님의 백성 3)교회의 위계 조직, 특히 주교직 4)평신도 5)교회의 보편적 성화 소명 6)수도자 7)순례하는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 그리고 천상 교회와 그 일치 8)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 등이다. ▲교회의 신비(De Ecclesiae Mysterio) 제1장 '교회의 신비'란 제목부터 논쟁거리였다. 대부분의 공의회 교부들이 성경에 나오는 '미스테리움'(mysterium)이란 의미에 익숙하지 않아 이 제목을 '교회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신비'는 교회가 하느님 '신비'의 일부분이라는 의미다. 신약성경을 보면 하느님 구원 업적의 일부인 것이다.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에페 3,9). 이같은 용어 해설은 교회 이해에 결정적 전기를 마련한다. 하느님의 구원활동은 하느님의 영원성 안에, 그리스도를 통해 알려주고 역사적으로 수행하신 하느님의 자애로우신 선택 안에 있다(에페 1,3-14; 3,1-12). 교회가 이 위에 기초해 유지된다면 교회의 가시적 외형, 구조, 직무, 권한과 권리 주장들을 언급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대해 먼저 언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헌장은 교회를 다른 맥락에서 하나의 복합체라고 표현한다. 이는 초안 1장 '투쟁 중인 교회 본질'이 의도했던 것과는 상반된다. 투쟁 중인 교회는 개념상 지상의 교회다. 말 그대로 싸우는 교회다. 중세 때처럼 경우에 따라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라도 자기방어를 해야하는 교회인 것이다. 초안은 한마디로 수세적 입장이었다. 1장 1~4항을 보면 교회는 삼위일체인 하느님의 신비 안에 기초를 둔다. 이는 교회가 궁극적으로 그 일체성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판단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교회 일체성은 교회의 복합적 특성을 지닌다. 교회는 가시적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영원성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교리서에서의 성사 개념 교회를 성사라고 표현한다면 '원(原)성사' '근(根)성사' '근본(根本)성사' '보편성사'라고 써야한다. 개별 성사들은 이 원성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성사로서의 교회는 개별성사들과 두가지 본질적 요소인 '가시성'과 '성사를 통한 은총의 수령'을 공유한다. 우선 교회는 비가시적 은총의 가시적 외형이라는 요소를 담고 있다. 하느님 은총, 용서, 하느님과의 일치는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보이는 교회의 존재를 통해, 특히 교회의 삶과 행위, 선포를 통해 감지될 수 있다. 교회는 자신이 선포하는 메시지와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어 성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이들이 교회에 등을 돌릴 수 있다. 그럼에도 교회가 있기에 복음이 세상에 선포됐고 미래에도 선포될 것이다. 또 교회는 은총의 보고다. 성사를 받아들이는 이가 합당하게 준비하고 이를 하느님 선물로 받아들이면 성사 안에서 하느님 은총을 만나게 된다. 교회 구성원도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객관적으로 은총을 받고 하느님 은총의 약속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를 근본성사라고 말할 수 있다. ▲사목적 기대 일반적으로 중세 때부터 하느님(그리스도)만이 성사들을 설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느님 자신만이 은총의 분배를 의미 있는 표징과 연결 지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일곱성사 설립 행위들을 입증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 신학은 성사의 설립 형태를 3가지로 구별했다. 첫째, 마태오 복음 28장 19절(세례성사)에서처럼 그리스도가 정확히 형상을 사용하고 둘째, 요한 복음 20장 23절(고해성사)과 관련해 그리스도가 성사의 기본 특성만 확정하고 성사의 구체적 구성을 교회에 맡겼으며 셋째, 신자 삶에서 성사가 필요하다(병자, 혼인성사)는 그리스도 자신의 뜻을 표현했다. 바로 여기에 '성사로서의 교회'라는 의미가 뿌리를 두고 있다. 교회 전체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달한 하느님 구원의 가시적-비가시적 현존이다. 교회는 하느님 은총이 필요할 때에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공시적 형태를 갖춰 분명하게 구원 은총을 베푼다. 성사로서의 교회라는 명제는 공의회에서 일곱성사 문제에 대답하려는 보조적 구조물이 아니라 고유한 권리를 지닌다. 이는 교회 본질에 관한 보편 명제로 1항과 48항을 비교하면 분명해진다. 교회가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그리스도 빛을 반사하기에 교회는 '성사'다(1장). 성사로서 교회는 결국 교회가 다른 무엇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교회의 이러한 도구성을 순수 기능 위주로 인식하는 오해를 피하게 된다. 성사로서 교회는 교회에 소속됨으로써 그리스도의 가시적-비가시적 은총을 통해 거룩해진 이들이 그 도구가 된다. 그리고 실제적이고 가시적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또한 도구이다. 교회를 성사라고 부르는 것은 교회 신비의 특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는 교회를 순수 제도로만 볼 수 없다는 얘기다. 교회를 성사라고 할 때는 사효성에 의존해 개인의 신앙과 무관하게 자동으로 은총이 주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신앙과 헌신을 통해 받아들여야 성사로서 효력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를 성사라고 말하는 것은 교회 구성원이 된다고 해서 하느님과 구원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성사처럼 받아들일 때에만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정리=이연숙기자 mirinae@pbc.co.krcpbc2007.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