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인 보리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지만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다.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지난해 가을 수확한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농촌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비유로 이르는 말이다. 이솝우화에 보리 한 알에 욕심을 내다가 덫에 걸린 종달새 이야기가 있다. 종달새는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그 누구에게서도 금과 은처럼 귀중한 것을 하나도 훔친 일이 없다. 한갓 작은 보리 알갱이 하나로 목숨을 잃게 됐으니 나는 얼마나 운이 없고 불쌍한 새인가." 아주 하찮은 이익을 위해 크나큰 위험을 저지르는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보리는 일반적으로 값싸고 하찮은 가치 없는 것을 비유할 때 곧 잘 사용한다. 밀, 벼,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식량작물에 속하는 보리는 맥류 중에서도 생육기간이 가장 짧아 여름이 짧은 곳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며 온대, 아열대 지역에서 널리 재배한다. 구석기 유적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니 보리 재배 역사가 오래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보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밀 다음가는 주요 식량자원이다. 밀에 비해 값이 싸서 중동지역에서는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의 주된 식량으로 이용된다. 우리나라도 쌀이 귀한 1970년대에 쌀과 보리를 반반씩 섞어 먹자는 혼식운동을 펼쳤다. 성경에서도 보리는 가난의 상징으로 쓰였다. 미디안족이 가난하고 겸손한 기드온을 업신여겨 보리빵으로 비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골짜기에 진을 쳤다. 기드온은 하느님이 이르신 대로 밤중에 미디안 진중으로 들어갔다. 그때 마침 어떤 사람이 동료에게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는데 꿈 내용은 보리빵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중에 굴러와 장막을 쳐서 무너뜨렸다는 것이었다. 그 보리빵은 이스라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었다(판관 7, 12-15). 그러나 하찮게 여겼던 보리빵이 하느님 손으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나타났음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보리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이다. 이 기적에서 어린이가 내 놓은 하찮은 보리빵이라도 하느님 축복으로 큰 능력이 됨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요한 6, 1-15). 성경에서 보리는 죄악과 연관됐고 비열한 사람, 하찮은 것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베드윈족은 '보리빵의 영혼'이라는 말을 적에 대한 철저한 경멸의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내 간통을 의심하며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아내를 사제에게 데리고 와야 하는데 이때 보릿가루 십분의 일 에파를 예물로 가져와야 했다. 그 예물에는 기름을 따라서도 안 되고 유향을 얹어서도 안 됐다. 그것은 질투의 곡식 제물이며, 죄를 상기시키는 기억의 곡식 제물이기 때문이다(민수 5, 14-15). 룻기에도 보리와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 나오미는 흉년이 들자 베들레헴에서 기근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는데 남편과 두 아들을 잃게 된다.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모압인 며느리 룻도 함께 따라온다. 보리 수확 때 보리 이삭을 주워 홀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는 룻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룻 2, 1-23). 웰빙 열풍이 불면서 가난을 상징하던 보리가 오늘날에는 훌륭한 건강식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보리는 쌀에 비해 열배 이상 풍부한 식이섬유를 함유하고 있어 장 운동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등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보리는 더 이상 가난을 상징하는 식량이 아닌 것 같다. cpbc2006.10.25

18-축복의 근원이 된 밀가나안 축복 약속에 등장한 첫 식물`가라지의 비유`, 12세기, 유리화, 영국 켄터베리 대성당. 상단에는 밀을 수확하는 농부가 있고 하단에는 주인 명령에 따라 가라지를 불태우고 있다. `가라지의 비유`는 세상에 선인과 악인이 뒤섞여 있지만 주님의 심판날이 되면 분명히 구별되어 영생과 영벌에 처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오늘날 밀이라고 하면 대부분 밀가루로 쓰인다. 서구 문화는 밀에 기초했다고 할 수 있다. 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물로 수십억 인류의 주식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밀은 지리학적 식물학적 고고학적으로 빙하기 말기인 기원전 1만5000년~l만년 께부터 이미 있었던 식물이라고 한다. 밀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코카사스까지에 이르는, 서아시아 지역이 원산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인류와 오랜 역사를 함께한 대표적 농작물이다. 그 흔적을 살펴보면 67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옛 유적지에서 밀이 발견됐다. 이집트 고분과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도 밀이 발견됐다. 또한 기원전 3000년 께 고대 이집트인들이 발효 빵을 만들었다는 학설도 있다. 발효 빵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이집트 어떤 게으른 사람이 밀가루를 반죽했다가 빵을 굽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하룻밤이 지난 뒤에 보니, 껍질이 썩은 것처럼 거품이 생겼다. 그래도 버릴 수 없어서 구웠더니, 딱딱한 무교병보다 연하고 맛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부터 밀가루에 효모를 넣는 제빵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밀은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신라, 백제의 유적에서 밀이 발견된다. 확실한 도입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중국과 문물교환이 빈번했던 삼국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밀은 성경에 수없이 등장하는 중요한 농작물이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 가나안 축복 약속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식물(밀,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 대추야자) 중에서 첫째로 등장하는 중요한 곡물이 밀이다(신명 8, 8). 성경에서 밀이 처음 나오는 대목은 창세기에서 인간 형상을 한 하느님을 만나는 대목이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만나서 자기 천막에 초대한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고운 밀가루로 빵을 굽게 한다. 아브라함의 지극한 손님 접대로 사라가 자식을 얻을 것이라는 축복을 받게 된다(창세 18,1-15). 이런 이유로 밀은 축복의 근원이 됐다. 하란 고원은 밀의 풍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11~12월에 파종해 그 다음해 4~5월에 수확한다. 밀 수확기는 계절 구분의 하나다(탈출 34,22). 보리 수확기보다 약 1개월이 늦다. 밀의 첫 수확은 오순절 제사에 바쳤다. 이 시기에는 한 달씩이나 이삭줍기를 할 수 있었다. 고대 바빌론이나 시리아, 팔레스티나 등은 관개시설이 없어 자연강우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었다.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서 기근에 허덕이는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요셉 시대나 룻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집트는 관개시설이 잘 돼 있어서 농사가 잘 되기에, 기근으로 허덕이는 이웃나라들을 도왔다. 이처럼 이집트의 부유함은 나일강 물로 재배한 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는 로마제국이나 비잔틴제국의 곡창지대였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조 이후 곡물을 수출하는 나라로 번성했다. 솔로몬왕은 성전 건축을 위해 티로임금 히람에게서 건축재를 제공받고 밀을 보내주었다(1열왕 5, 25). 밀은 가루로 만들어 하느님 제단에 드리는 제물용 빵을 만드는 재료였고(탈출 29,2), 혼합빵의 재료이며(에제 4,9), 발효빵을 만드는 재료였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을 신앙에 비유했다(요한 12,24). 밀과 가라지 비유에도 나온다(마태 13,24-30). 예수님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30배, 60배, 100배 결실을 낸다고 하셨다(마태 13,3-8). 실제로 밀은 보통 한 알에서 평균 30배 수확을 거두며, 옥토에서는 지금도 100배 수확도 올릴 수 있으니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cpbc2006.09.27

부산 마리아구호소 김희명(스테파노)씨▲`붕어빵 아저씨` 김희명씨가 받은 사랑을 가족들에게 나눠주려고 붕어빵을 굽고 있다. 붕어빵은 맛이 좋아 굽기 무섭게 동이 난다. ▲구호소 근처 홀몸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설 인사를 하는 마리아구호소 가족들. '오늘은 붕어빵 먹는 날!' 부산 사하구 장림동 마리아구호소(원장 김경숙 수녀) 가족들이 신났다. '붕어빵 아저씨' 김희명(스테파노, 55)씨가 올 겨울 장사를 접으면서 가족들에게 한턱 내는 날이다. 김씨가 봄볕 따스한 구호소 마당 한 쪽에서 붕어빵을 굽기 시작하자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 나온다. "자, 자 줄을 서야지." "나는 두개. 빨리. 두개." 가족들은 고소한 냄새를 못 참겠는지 자꾸 재촉한다. 김씨는 "올 겨울 장사는 오늘로 끝이니 우리 식구들 실컷 때려 먹기나 하자"며 손을 바쁘게 놀린다. 마리아구호소 가족인 김씨는 올 겨울에 처음 붕어빵 장사를 했다. 손수레와 틀만 있으면 별다른 기술 없이도 하루 몇 만원 벌이는 하는 장사라 특별할 게 없지만 김씨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붕어빵 장사는 세상으로 다시 나가는 걸음마이자 받은 것을 나눠주려는 마음의 표시였다. ▶산전수전 다 겪고 구호소 들어와 김씨는 한때 뱃사람이었다. 경찰에서도 손을 못 댄다는 부산대교 아래 부랑인들 무리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왕초' 노릇을 해보고, 여인숙에서 새우잠을 자며 구두닦이도 해봤다. 주먹질로 교도소를 서너번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험하게 살아온 데는 술탓이 크다. 고깃배를 타기 시작한 1980년대초부터 마리아구호소에 목발을 짚고 들어오기 전까지 20여년간 술독에 빠져 살았다. 뱃사람은 폭풍으로 피항지에 정박하거나 고된 바닷일을 끝내고 육지에 올라오면 술 유혹을 떨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그는 친구와 선후배를 좋아했던 터라 더더욱 입에서 술 냄새 가실 날이 없었다. 그 바람에 가정이 파탄났다. 그는 "육지에 올라오면 집에 생활비만 던져놓고 밖에 나가 술에 절어 살았으니 누가 좋아하겠느냐"며 "돌이켜보면 처자식을 돌보지 못한 죄가 가장 크다"고 말한다. 부산대교 밑에서 부랑인 생활을 할 때는 삶을 포기한 상태였다. 50살까지만 살고 죽겠다는 심정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다. 다리 밑 20~30명 부랑인들은 모두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이었다. 저마다 가슴에 큰 상처가 있었다. 그래서 술을 더 마셨다. 구두를 닦아 몇 푼 벌어도 그날 밤 술값으로 다 나갔다. 그는 "술과 친구를 좋아했을 뿐이지 그렇게 살면서도 남의 눈에서 눈물나게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왼쪽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날이 갈수록 힘이 빠지더니 일어서려면 벽을 잡아야 할 정도로 악화됐다. 병원에서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혈관이 막히는 병이라고 일러줬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갈 곳이 없었다. 구두닦이로 밥벌이를 한다해도 술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00년 제발로 찾아간 곳이 마리아구호소다. 하지만 답답해서 6개월만에 뛰쳐 나왔다. 또 구두를 닦아 번 돈으로 술을 마시다가 2003년 가을 구호소 문을 다시 두드렸다. 술 마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을 때였다. ▶하느님 사랑 갚으려고 붕어빵 장사 그는 구호소에서 난생 처음 미사 광경을 봤다.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매달려 고개를 떨구고 있는 한 남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보다 몸이 더 불편한 사람들이 다리를 질질 끌고 무엇인가를 받아 먹으러 앞으로 나가는 풍경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정신지체장애인들도 성체를 받아 모시러 나가는데 자신은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개신교는 예배당, 천주교는 마리아교라는 정도밖에 아는 게 없었어요. 영성체 시간에는 내가 비정규직처럼 느껴지더라구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보다 떨어지는 데도 성체를 영하는 사람들은 정규직처럼 보이고. 그래서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는 2005년 성탄대축일에 세례를 받았다. 그때 술 때문에 가정을 지키지 못한 죄를 통회했다. 그러자 서서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손발이 주체할 수 없이 뒤틀리는 몸으로 식사 배식을 거드는 장애인들이 가족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손발이 마비돼 입으로 컴퓨터 자판을 누르며 뭔가를 하는 장애인을 TV에서 봤다. 자신이 부끄러웠다. 구호소에서 한쪽 다리 불편한 것은 장애 축에도 끼지 못한다. 문득 성경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약성경을 펼쳐 놓고 하루 4쪽씩 필사를 해나갔다. "손은 멀쩡하니까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었어요. 성경을 쓸 때는 마음이 참 평화롭더라구요.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살았는지도 하나하나 깨닫게 되고…." 그는 "왼쪽 다리는 하느님이 나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일부러 부러뜨려 놓으신 것 같다"며 "구호소에 들어와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면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늦가을부터 신평동 거리 한 구석에 터를 잡고 붕어빵 장사를 했다. 한 독지가가 기증한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가 겨우 내내 붕어빵을 구웠다. 손수레는 발이 튼튼한 구호소 가족이 끌어다 주고, 끌어 왔다. 손이라도 움직이게 해주신 하느님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다. 김 원장수녀는 보온도시락에 점심을 싸주면서 김씨를 응원했다. ▶받은 것 가족들과 나눠 그가 돈을 벌어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족 100여명에게 자장면 파티를 열어 준 것이다. 밖에서 요리사가 와서 면발을 삶았기에 20만원 밖에(?) 들지 않았다. 또 예수님 앞에 예쁜 꽃을 꽂아 놓으라고 10만원을 내놓고, 설날 불우이웃돕기에 10만원을 썼다. 퇴소하는 가족에게 "방 얻는 데 보태라"며 17만원을 쥐어주기도 했다. 나머지 돈은 꼬박꼬박 수녀들에게 맡겼다. 통장잔고는 160만원. "아깝다니요? 제가 받은 사랑이 얼마인데. 하느님 사랑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붕어빵 장사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에요. 밖에 나가 일하니까 가슴이 탁 트이는 게 기분 좋던데요." 붕어빵은 겨울 한철 장사다. 그는 요즘 자동차운전면허증 시험준비서를 들여다보고 있다. 면허증을 취득하고, 0.5t 중고 소형트럭을 장만하면 과일이나 옛날과자 행상을 다닐 계획이다. "이제 돈 벌어서 팔자를 고치겠습니까, 아니면 부귀영화를 누리겠습니까? 여기 구호소에서 받은 것 조금이라도 갚는 마음으로 살아갈 거예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나누며 사는 가족들] 마리아구호소(051-263-3902)에는 부랑인, 장애인, 무의탁 노인 등 100여명이 살고 있다. 이들이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난 설날에는 가족들이 돈을 모아 구호소 근처에 사는 홀몸 노인들에게 냄비를 선물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선물을 받은 한 할머니는 "젊었을 때 구호소에 봉사를 자주 다녔는데 구호소 사람들이 나를 돕다니…"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 성탄절에는 영아원(미혼모 아동시설)에 과자값 20만원을 보냈다. 선물비는 가족들이 재활작업장에서 번 돈으로 마련한다. 가족들은 요즘 훌라후프 자석 끼우는 일을 한다. 한개 끼우면 2원을 받는다. 마리아구호소는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한다. 마리아수녀회 창설자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행려환자들이 최악의 환경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구호소 실태에 충격을 받고 1969년 인수 운영을 자처했다. 부산시로부터 인수받던 날, 그가 휘파람을 불면서 대소변 묻은 정신병자들과 시체나 다름없는 피부병 환자들 몸을 깨끗이 씻긴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김원철 기자cpbc2007.03.07

열아홉, 평화신문에게 띄우는 편지그대! 영원한 벗, 스승, 이웃으로 젊은 그대에게 #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벌써 열아홉 나이가 되었군요. 정말 장합니다. 그대는 건강하고 품격까지 갖춘 잘 생긴 청년의 나이답게 아름답습니다. 든든한 외모와 마음을 헤아리는 깊은 심미안은 우리들 생의 화살표가 되어주고 미지근한 신앙을 뜨거운 가슴으로 끓어 오르게도 하였습니다. 피로에 지치거나 아픈 사람들은 그대에게 더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동안 너무 힘드셨습니다. 그대, 평화신문을 만드는 모든 분들께 깊이 절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평화신문으로 마음의 비를 막고 마음의 천둥을 견디며 나약한 신앙을 따뜻하게 키웠습니다. 쓰러지더라도 일어서는 법을 배워왔습니다. 그대에게서 정신적 편식에서 골고루 마음에 익히는 종합영양제의 신앙 고양을 받아왔습니다. # 고맙습니다 어디 한국에서 뿐인가요. 언젠가 저는 딸이 있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그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가한 시골거리 작은 카페에서 평화신문을 보고 있는 한 아주머니를 만난 것입니다. '평화신문'을 들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나는 덥석 그분의 손을 잡았고 그분은 곧 내 손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마치 외국에서 하느님을 혹은 성모님을 만난 것 같은 흥분으로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맞잡고 그저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평화신문은 그렇게 민들레 씨앗처럼 먼나라까지 날아가 뿌리를 내리고 그들 신앙의 영성으로 꽃피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서울에서는 성의없이 그대, 평화신문을 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평화신문은 글자 하나 하나가 보석처럼 빛났고 사진 한 장은 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슴에 안겨들었습니다. 먼 타국에서 그대가 얼마나 외로운 가슴들의 복음이 되고 감격의 위로가 되는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전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후 저는 서울에서도 평화신문을 아무렇게나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평화신문을 만드시는 모든 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일들을 하시는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생의 기둥이 주저앉을 것 같은 위기의 순간에 평화신문을 가슴에 안고 우는 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은 자가 길을 찾는 지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 칭찬받으세요 그래서 전 지금 평화신문을 꼼꼼히 봅니다. 어디 꼭 집어내어 핀잔을 줄 만한 것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칭찬할 것들만 줄줄이 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만큼 평화신문이 사명감을 가지고 신앙적 가치에 중심을 놓고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기사가 살아있는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굳이 지적한다면 '성경 하루 한 장 읽기', '사목일기', 이동익 신부님의 '아하 생명윤리', 허영엽 신부님의 '성경속의 동식물', 이기양 신부님의 '생활속의 복음'도 눈부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성소주일 특집으로 '예비 신학생의 하루'를 소개하는 난도 감동이었습니다. 그들이 왜그리 소중한지요. 그들을 위해 순간 두 손을 모으며 기도드렸습니다. 평화신문은 그런 감동의 순간을 자주 느끼게 합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긴급진단으로 소개한 것은 사회적인 현실을 신앙적 가치로 이해하도록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신앙만이 아니라 신앙인이 참여하는 광장도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까. 나이를 잊고 젊음을 입는다는 '은빛시대'도 노령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배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지구 온난화 주범 '이산화 탄소 배출 이젠 멈춰'입니다. 외면할 수 없는 미래와 현실에서 비켜갈 수 없는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명동성당 사순절 특강을 지상으로 보여준 것도 전 그대가 해야할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사따라 성지따라'도 우리의 눈을 넓히는 등불 중 하나였습니다. 청소년 상담코너 '도와 주세요'도 애교있는 지면이었고 부부문제 가정문제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는 평화신문이 앞으로도 부부와 가정문제에 더 깊게 넓게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고 봅니다. 흔들리는 위기의 가정과 부부문제를 여러 각도로 분석하고 지향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교회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까. 그중에서도 청소년란을 만들어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흡족하지는 않지만 방황하고 절망하는 청소년들이 평화신문을 손에 쥐고 마음을 열 수 있는 가교역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그대, 평화신문이 그 일에 제격이 아닐까요. 그래서 '청년 그 열정속으로'꼭지는 좀 더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가톨릭 정신을 일깨우고 사랑, 이해, 봉사, 실천, 희생정신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일을 저는 젊은 평화신문이 짐 지기를 바랍니다. 젊은이들이 좀더 기쁘고 즐겁게 신앙인이 되는 법을 고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이들이여 명동을 노래하자'는 좋은 기사였지요. 그러나 젊은이들의 본격 인터뷰도 넣어 참여하게 했다면 더 빛나지 않았을까요. # 고민하세요 그리고 지금 생각납니다. '교황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최근 게재된 한 장의 사진 기사는 그 자체로 묵상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아쉬웠습니다. 교황께서 제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진이 너무 인색하게 배치되지 않았을까요? 전면을 할애했다면 그 사진 하나로도 우리 영성이 뜨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대도 이미 알듯 침묵의 사진 한 장이 외침이며 절규일 수도 있습니다. 가톨릭 교수협회 세미나 같은 보도에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톨릭 교수협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무엇을 강조하는지, 짧지만 궁금하기도 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문화면은 대체로 잘 꾸려간다고 생각합니다. 장기간 시와 동시를 소개했으며 미술, 음악, 문학에 대한 배려가 눈에 뜨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가 '심장'이라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신앙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신문이지만 문화는 바로 정신의 위상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이 시대의 덕목입니다. 소홀히 할 수 없는 대목이지요. # 이제부터 시작!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땀흘려 평화신문을 만들어 가십시오. 열아홉 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지금 우리 교회, 우리 사회는 그대, 평화신문의 역동적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이 시대 한국, 나아가 세계 복음화를 책임져야 하는 최고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소식의 폭증이 문제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알리려다보니 단순히 보여주는데 그치고 마는 것을 자주 발견합니다. 기사 하나 하나의 성실도가 떨어집니다. 압니다. 그래요 저는 잘 압니다. 너무 많은 소식들, 반드시 알려야하는 기사들을 어찌 간과하겠습니까. 그래서 좀 산만하게 되는 것을 뭐 그러냐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에서도 좀 더 '산뜻하고 깊이있는' 신문을 만들어가는 일이야 말로 젊은 그대, 평화신문의 의무이며 기쁨일 것입니다. 이제 열아홉, 그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나요. 미안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그대, 우리가 돕겠습니다. 그대가 잠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겠습니다. 든든한 어깨도 내어주겠습니다. '기쁜 소식 밝은 세상'을 열어가는 그대의 진정한 벗이 되겠습니다. 평화신문! 그대는 영원히 우리 벗이며 스승이며 이웃이며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희망입니다. 엎드려 절합니다. 발이라도 씻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신달자 (엘리사벳)cpbc2007.05.10
내 소원은 '방 한 칸'김기혜(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여성노숙인센터 '수선화의 집' 원장) "나는요, 혼자 자보는 것이 소원인데, 이 방 나 혼자 쓰면 안되나요?" 새로 이사한 1층의 1.5평 작은 방을 보고 복자(54)씨가 어눌하게 묻길래 그러라고 했다. 주민등록증도 없이 여러 명이 자는 시설을 전전한 지 40여년. 경찰서 과학수사반에 의뢰해 겨우 주민등록번호를 찾았다. 어릴 때 고아원에서 일하다가 넘어져 척추에 큰 흉터가 있고 그 척추 때문인지 목은 달라붙고 키는 140cm다. 일을 많이 해 손에 지문도 없어졌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식구 두 사람이 사소한 일로 머리채를 잡고 심하게 싸운 일이 있은 후, 1년간 사용했던 그 방을 복자씨가 양보하겠다고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그 방을 사용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복자씨가 시장에 나가 귤과 풀빵을 사서 자기는 두 개만 먹고 시장바닥에서 엎드려 구걸하는 아저씨에게 멀리서부터 풀빵 두 개를 들고가 건네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집에는 자는 방이 여덟 개, 한 방에 2~3명 혹은 4~5명이 함께 자야하는데 가끔 다툼이 생긴다. 누웠다하면 드렁드렁 코를 고는 사람, 푹푹 기차소리를 내는 사람, 뿌득뿌득 이를 가는 사람,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사람, 방 전체로 헤엄을 치는 사람, 목욕을 절대로 안하는 사람, 화장실을 열 번쯤 드나드는 사람, 방귀를 잘 뀌는 사람, 새벽 4시에 청소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 밤일 때문에 낮에는 자야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자기 복은 지지리 없어도 남에게 복을 베푸는 그 이름은 복자, 복자씨 소원은 통일이 아니고 '방 한 칸'이다. 부업을 해서 200만원만 모아지면 방 한 칸을 구해 나간다고 하는데 요즈음 이 동네에 전세값이 올라 2000만원이라고 한다. 더불어 살고 있지만 홀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아무 쓸모없다고 느낄 때 내가 넘어져도 아무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혼자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속옷을 마음대로 갈아 입고 좋은 음악을 혼자 듣고 싶은 때가 있는가 하면 텔레비전도 보기 싫고 사람들이 갑자기 싫어질 때가 있다. 잊혀지지 않는 사건과 사람이 문득 되살아 날 때는 잠이 오지 않는다. 까닭 없이 당한 폭행과 모욕은 어렵사리 청한 잠을 도망가게 한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면 새벽이 온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주님, 이 다음에 머리 맡에 묵주와 성경을 놓아두고 마음대로 읽고 기도할 수 있는 햇볕이 잘 드는 조용한 방을 이들에게 꼭 주시겠지요?'cpbc2007.03.28

20-용맹스럽고 신성한 동물 말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마테우스 메리안(Matthaus Merian, 1593~1650), '닫혀진 홍해와 이집트인의 죽음', 채색동판화, 독일. 가을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 계절이라 한다. 왜 하필 말일까? 말은 워낙 운동량이 많고 몸 움직임이 부지런해 여간해서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말마저도 살이 찌는 계절이라 하니 얼마나 좋은 때인가. 얼굴이 긴 사람을 말에 비유하는데 이것은 말의 치열이 길기 때문이다. 말은 전 세계에서 널리 사육하고 있는 중요한 가축 중 하나다. 옛날에는 인간 식량을 위한 사냥 대상이었지만 후에 군마나 밭갈이에 긴요하게 이용됐다. 최근에는 주로 승마로 이용한다. 말의 몸은 달리기에 알맞도록 네 다리와 목이 길다. 말은 고대부터 농업과 수레를 끄는 교통수단으로 사용했으며 후에는 전쟁에서 사용했다. 말은 다른 동물에 비해 용맹성이 뛰어나다. 전쟁터에서 진격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나면 다른 동물은 겁에 질려 도망가지만 말은 북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용맹하게 달린다. 동양 풍속에서 말은 제왕 출현의 징표였고 초자연적 세계와 교류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고구려 시조 주몽도 말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혼인 풍속에서 신랑은 백마를 타고 갔다. 이것은 말과 관련된 태양신화와 천마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말은 태양을 나타내고 태양은 남성을 의미한다. 흔히 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웅변력과 활동력이 강해 매사에 적극적이라 생각했다. 말에 대한 한국인 관념은 '신성한 동물'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신성한 존재, 하늘의 사신, 중요 인물 탄생을 알리고 알아볼 줄 아는 영물, 죽은 사람 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동물, 장수 등 희망을 가져다주는 인물들이 타는 동물로 인식했다. 말은 성경에서 모든 전쟁 중에 등장한다. 성경에서 말은 용맹과 전쟁, 재난을 상징한다. 말의 두드러진 특징은 주인 뜻대로 신속하게 잘 달려가는 것이다. 나귀에 비해 몇갑절 더 주인 뜻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에 호흡이 맞는 말과 기수는 마치 한몸처럼 움직인다. 고대 전쟁부터 근세까지 말은 기병으로 사용됐다.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선 필수적인 것이었기에 말은 군사적 힘과 국가적 안전의 상징이 됐다(시편 20, 8). 기마부대는 오늘날 전차부대에 비유할 정도로 전투력이 높아 전쟁에서 중요하게 활동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하느님은 군마를 그리 높이평가 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임금은 군마를 늘리거나, 그것을 늘리려고 백성을 이집트로 돌려보내서는 안 되었다(신명 17, 16). 이스라엘 군대는 기마와 병거를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신명 20, 1). 이스라엘 역사에서 주님은 기마와 병거보다 우월하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하느님은 파라오 기마와 병거를 수장시키시고 한명의 군인도 살아남지 못하게 하셨다(탈출 14, 28). 말이 가진 특징으로 공격성과 완고함, 미련함을 들 수 있다. 구약 성경은 종종 이 특징들을 이스라엘 백성에 비유해서 언급했다. 예를 들면 예레미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을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지 않고 싸움터로 내닫는 말에 비유했다(예레 8, 6). 백성들 풍기문란을 "그들은 욕정이 가득한 살진 수말이 되어 저마다 제 이웃의 아내를 향해 힝힝거린다"고 꼬집었다(예레 5, 8). 또한 건장한 말을 찾아 헤매는 암말처럼 이방국가와의 동맹을 추구한다고 비난했다. 죄인들과 우둔한 자들을 채찍을 맞아야 하는 말의 미련함에 비유하기도 했다(잠언 26, 3).cpbc2006.10.19

30-재앙을 상징하는 메뚜기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세례자 요한은 고행과 극기의 양식으로 메뚜기를 먹었다. 티티안(Titian, 1488~1576), `세례자 요한`, 1540년경, 유채, 베니스 아카데미 미술관, 이탈리아. "메뚜기도 한철"이란 속담이 있다. 우연이 좋은 기회를 만나서 하던 일이 매우 잘되는 상태를 비유한 말이다. 농촌에서는 메뚜기가 벼의 잎을 먹으려고 몰려 오는데 벼잎을 먹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메뚜기는 그 때를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메뚜기는 서식처가 다양하지만 열대삼림의 저지대, 초원지대에 가장 많이 산다. 메뚜기 중에 떼지어 날며 작물에 엄청난 해를 끼치는 종들도 있다. 메뚜기들이 구름과 같이 공중에서 떼를 지어 다니고 지나간 곳을 황폐하게 만들기도 하고 메뚜기 떼가 온 하늘을 덮기도 한다. 2004년도 가을에는 서아프리카에서 엄청난 메뚜기 떼 습격이 있었다. 사하라 사막 남쪽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최악의 메뚜기 떼 재앙으로 농작물의 삼분의 일을 잃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메뚜기 떼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 만큼의 곡식을 먹어 치우며 수 초 만에 들판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메뚜기 떼가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파라오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을 떠나는 것을 거부했을 때 징벌로 메뚜기떼가 이집트를 습격한 사건이다(탈출 10, 12-15). 따라서 하느님께 불순종으로 인한 저주 가운데 메뚜기 재앙을 포함시킨 것은 하느님 백성들로 하여금 이집트 사람처럼 되지 말라는 경고이다. "메뚜기 떼가 이집트 온 땅에 몰려와, 이집트 온 영토에 내려앉았다. 이렇게 엄청난 메뚜기 떼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탈출 10, 14). 이처럼 메뚜기가 하느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다. "너희가 밭에 씨를 많이 뿌려도 메뚜기가 그것을 먹어 치워 버려서, 너희는 조금밖에 거두지 못할 것이다"(신명 28, 38). 메뚜기 떼를 보내는 분은 바로 하느님으로 묘사한다. "내가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않게 하거나, 메뚜기에게 명령하여 땅을 삼키게 하거나, 내 백성 가운데에 흑사병을 보낼 때"(2역대 7, 13), 이처럼 성경에서 메뚜기 떼를 재앙으로 묘사했다. "풀무치가 남긴 것은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은 누리가 먹고 누리가 남긴 것은 황충이 먹어 버렸다" (요엘 1, 4). 메뚜기의 재앙을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으로 비유했다. "그 땅에 깃발을 세우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팔을 불어라. 바빌론을 칠 민족들을 동원하고 그를 칠 왕국들 곧 아라랏과 민니와 아스크나즈를 불러들여라. 그를 칠 사령관을 임명하고 날개를 곤두세운 메뚜기 떼 같은 군마를 몰고 와라"(예레 51, 27). 메뚜기가 긍정적 이미지로 사용된 경우도 있다. "임금이 없지만 모두 질서 정연하게 나아가는 메뚜기"(잠언 30, 27). 또한 메뚜기는 구약의 유다인들이 식용으로 이용했던 곤충이었다(레위 11, 2).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의 고행과 극기의 양식으로 메뚜기가 등장한다. 음식 이미지로서의 이 메뚜기는 광야에서의 금욕적인 경건생활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낙타털로 만든 옷을 걸치고 그의 허리에는 가죽띠를 둘렀다. 그의 양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마태 3, 4). 요한 묵시록에는 요엘이 본 메뚜기의 환상이 두려움과 함께 나타난다. 요한 묵시록에서 메뚜기는 지옥의 아들, 악귀 즉 하느님을 적대하는 모든 힘을 상징한다(묵시 9, 5). 이처럼 성경에서의 메뚜기는 주로 공포와 농작물 파괴의 이미지로 대체로 불순종이라는 하느님 심판의 수단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메뚜기들은 힘과 파괴력을 가지고 몰려왔기 때문에 마치 전쟁을 위해 준비된 말들과 같다고 보았다. 메뚜기가 한마리일 때는 아무런 힘도 없는 곤충이지만 떼가 되었을 때 가공할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던가.cpbc2006.12.27
청각장애인 사목 현실과 과제 전망이젠 실질적 지원 이뤄져야아시아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인 박민서(베네딕토) 신부 탄생을 계기로 청각 장애인 사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 청각장애인 사목 현실과 과제, 전망 등에 대해 살펴본다. ▨현황 2005년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청각장애인은 모두 18만5000여 명이다. 청각장애 발생률은 0.4%로, 인구 1000명당 4명꼴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료는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거나 직업이 있는 장애인들로, 통계청에서 파악이 가능한 숫자에 불과하다. 정순오(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담당, 서울 번동본당 주임) 신부는 "국내 청각장애인은 적어도 30~4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청각장애인 수에 견줘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목적 배려는 상당히 부족하다. 현재 서울ㆍ부산ㆍ대구ㆍ인천교구와 부산교구 울산지역 등에 14개 농아선교협회가 활동하고 있지만, 수화미사가 개설된 곳에서만 미사와 교리를 진행하고 있어 사목적 배려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가톨릭농아선교협의회가 펴낸 '전국 가톨릭 농아선교회 사무실 현황 보고서 2005'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은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의 경우에도 등록인원 345명에 이용 인원은 절반 수준인 170명에 불과했다. 1992년 시작한 수화발표제 등 청각장애인 행사도 예산 부족으로 1996년 중단됐다. 타 지역은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하다. 인천가톨릭농아선교회는 등록인원중 25~30명만이 사목적 혜택을 누리고 있고, 전주가톨릭농아선교회는 회원 거주지가 군산과 전주 등 거리가 멀어 어려움이 많고 회원 수가 적어 활동이 미약하다. 이밖에 이용인원 10명 안팎에 연간 예산이 200만 원 미만인 선교회부터 상근 직원 하나 없이 봉사자들로만 운영되는 곳도 많다. 그나마 수화봉사자라도 있는 곳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또 충주 성심학교나 서울 애화학교 등 청각장애인 교육 시설도 대부분 인력난과 재정난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과제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목을 위해서는 한마디로 교회공동체의 관심과 재정적, 인적 지원이 절실하다. 30~40만 명으로 추산되는 청각장애인 중 천주교 신자 수는 3000여 명에 불과해 복음화율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전국 평균 복음화율(9.6%,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06」)에 견줘 사목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더욱이 비장애인 신자들은 청각장애인 상당수가 교육은커녕 수화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방치된 채 살아가는 현실을 잘 알지 못한다. 반면 개신교는 교단이나 해당 교회가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어, 청각장애인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고 청각장애인 목회자만 100명이 넘는다. 정 신부는 "청각장애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실질적으로 복음을 전하려면 재정 및 인력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각장애인 사목을 위한 재정적 지원이 거의 없는데 제대로 사목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고, "인력 지원도 봉사자 위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청각장애인 사목을 보조할 유급직원이 있어야 제대로 된 사목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봉사자들은 개인 사정에 따라 봉사를 그만둘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농아선교회 한 관계자도 "수화봉사자가 있지만 교리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해 사목에 큰 어려움이 있다"며 "미사 통상문이나 사제 강론을 수화로 통역해주는 것만으로는 청각장애인들에게 깊은 신앙심을 길러주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망 청각장애인들과 이들을 사목하는 일선 사제들은 박 신부의 사제수품으로 청각장애인 신자에 대한 사목 환경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신부는 "대부분(약 95%) 이중장애를 가진 청각장애인들은 신앙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은 수화통역 미사보다는 사제가 직접 수화로 미사를 집전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며 사제들의 수화에 대한 관심을 요청했다. 이번에 사제품을 받은 박 신부는 앞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미사 집전은 물론 △가정이나 수감자 방문 △환자 봉성체 △교리수업과 성경공부 지도 △가족 상담 △피정 및 영성 지도 △세미나 강연 △여름 캠프 및 성지순례 인솔 등 일반 신자들에 버금가는 청각장애인 사목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청각장애인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이힘2007.07.11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세 번째로 소개할 가톨릭 여성단체는 교수직, 전문직을 가진 가톨릭 여성신자들 학술 모임인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가여연)이다. 가여연 설립은 교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어려워하는 전문 여성들의 현실을 보면서 그들에게 활동할 자리를 마련해 주고자 했던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최혜영(성심수녀회) 수녀가 주축이 돼 이뤄졌다. 1996년 12월 첫 모임에는 교수, 대학 강사, 화가, 작가, 번역가 등 전문직 여성 14명이 참석했다. 우선 성경공부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차츰 모임 방향을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교회와 여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학술 모임으로 설정하고 연구와 교육, 강연 및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최혜영 수녀가 이 모임을 시작하면서 세운 목표는 첫째, 가톨릭 전문직 여성들이 교회 용어와 신학에 익숙해짐으로써 가톨릭교회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할 수 있는 교회 인재로 양성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전문적 학술 활동을 통해 신앙교육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냄으로써 교회 안팎 누구나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가여연은 회칙에서 이 모임 목적을 가톨릭교회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자기인식을 확인하고, 다른 여성들과 사회적 연대 및 활동을 통해 사회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는 성숙한 여성이 되도록 도와주고, 여성 삶과 경험을 여성의 눈으로 해석하며, 교회, 사회, 국가 안에서 정의와 조화를 이룩하는 데 공헌하려는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가여연은 초기 1997년에는 성경공부를 위한 독서 나눔으로 월모임을 하다가, 학술모임으로 변화된 1998년부터 자체적으로는 회원들을 위한 여성주의적 관점의 영화포럼, 독서 토론, 각 회원들의 전문 분야 논문 발표 등을 실시했다. 1997년 12월부터는 가톨릭계 잡지에 가여연 이름으로 여성과 관련된 이슈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1997년 11월부터 다음해 봄까지는 65개 여자 수도회 수녀 3000여명을 대상으로 '한국 여성 수도자와 성소자 실태조사'라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1998년 봄부터는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가 주최하는 수도자 양성을 위한 여성학 및 여성신학 과정에 강사로 나서기 시작했고, 각 교구에서 주최하는 구역ㆍ반장 교육 등에서 여성문제에 관해 강의하거나, 각종 교회 학술발표회에 참여했다. 2002년부터는 '관계 치유를 통한 여성리더 워크숍'을 비롯해 여성 및 가정과 관련된 주제로 워크숍을 실시하거나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고, 일반 신자를 위한 대중적 월례 강좌를 '열린 강좌'라는 이름으로 열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가 의뢰한 「교회와 여성」을 집필했고, 2000년 가을부터 집필을 시작한 「한국 가톨릭 여성사」는 현재 완성단계에 있다. 2003년부터는 '가정'과 '생명'을 주제로 학제간 연구모임을 시작했다. 특히 2004년부터 3년 동안 해마다 '도전받는 가정공동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열어 가족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연구를 실시해왔고 최근 그 연구 결과를 묶은 단행본을 같은 이름으로 출간했다. 이밖에도 가여연은 미디어 영성팀 운영, 피정, 회원을 위한 영적지도ㆍ상담, 문화 답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12월에는 서울 중구 정동에 갤러리, 카페, 세미나실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품사랑'이란 이름의 공간을 마련해 각종 전시회ㆍ연수, 워크숍, 학술발표 장소로 활용하면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cpbc2006.12.13
모든 배아 실험, 연구 중단 촉구주교회의 봄 총회 마치고 '생명 문화를 향하여' 성명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장 장익 주교)는 체세포복재 배아연구 허용 여부에 대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23일 최종 결정을 앞두고 "배아도 엄연히 인간 생명체"임을 천명하고, 배아를 이용한 모든 실험과 연구의 중단을 촉구했다. 주교회의는 봄 정기총회를 마치면서 15일 발표한 '생명의 문화를 향하여!'란 제목의 성명을 통해 정부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윤리 문제를 안은 채 체세포복제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권장하는 것은 생명을 이익 수단으로 삼는 위험한 시류의 소산이라며 반생명적 연구는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배아줄기세포 연구대안으로 성체줄기세포 활용을 촉구하고, 난치병 환자를 위한 조혈모세포 기증 운동과 연구를 권고했다. ▶관련기사 10면 주교회의는 이와 함께 인공수정을 통한 시험관 아기 출산도 비윤리ㆍ반윤리적 행위임을 지적하고,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책으로 시행하려는 인공수정 시술비 지원 정책을 반대했다. 주교회의는 이어 지난 30년간 낙태를 허용해온 모자보건법이 우리 사회에 죽음의 문화를 확산시킨 주범임을 밝히고 '모자보건법'의 독소 조항 개정을 거듭 촉구했다. 주교회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이뤄지는 낙태시술을 방임하는 정부의 태도는 분명 자기모순이며 직무유기"라고 부연했다. 주교회의는 생명과 가정의 존엄성이 경시되는 사회는 결코 진정한 진보와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밝히고, 생명문화 건설에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전 국민이 함께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한편, 주교회의는 12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2007년 봄 정기총회를 열고, 효율적이고 신속한 해외 원조를 위해 '주교회의 해외 원조 지침'을 승인했다. 주교회의 해외 원조 지침은 긴급 구호사업은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 북한지원 사업은 한국 카리타스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가, 선교ㆍ사제양성ㆍ성경ㆍ전례서 출판 지원 사업은 주교회의가 지원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아울러 한국 천주교 전산망 통일을 위해 주교회의 사무처가 상정한 사목 문서 양식 변경안을 승인했다. 주교회의는 또 주교회의 기관지를 일원화 하기 위해 2007년 4월호를 끝으로 「사목」을 폐간하고, 주무 부서인 한국사목연구소 해체를 결정했다. 아울러 군종교구 논산 훈련소 연무대성당 및 교육관 신축을 위해 각 교구에서 2008년 말까지 일정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주교회의는 또 2008년 10월 교황청에서 개최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2차 정기총회 한국 주교회의 대표로 이병호 주교를 선출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07.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