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것에 감사하며 고통을 마주하는 태도 필요청년들을 위한 생명 지킴 안내서(35) 중독에 빠지는 원인 가운데에는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고통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자리한다. 출처=픽사베이 제9장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전개 2. 중독 이해하기(2)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중독을 일으키는 술·도박·게임·성관계 등 어떤 물질이나 행위에 의존하는 현재 삶의 방식과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중독을 벗어나기 위하여 어떤 삶의 방식과 태도가 필요할까요? 첫째, 지금 현재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를 알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입니다. 보통 술이나 마약처럼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에 계속 의존하게 되면 점점 ‘내성’이 생깁니다. 곧 같은 자극에 익숙해지면 만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더 강력한 자극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성’이 생기는 것을 삶의 태도와 연관해 보면 늘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은 목표를 이루어도 거기에서 만족이나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더 큰 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삶의 태도는 ‘내성’이라는 중독적 삶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더 나아가 무엇인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그것이 자신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지니고 나를 채워 주시는 하느님께 의탁하며 감사하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둘째, 중독에 빠지는 원인 가운데에는 내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고통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있는데,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직면함으로써 극복해야 합니다. 고통 없는 삶을 바랄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낼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는 태도입니다. 중독에 빠지는 원인에는 스스로 내리는 선택의 순간이 두렵고 불안하기 때문에 이런 불안감에서 벗어나려는 태도가 있습니다. 그 불안감을 건강하게 잘 다루고 선택을 잘할 줄 아는 것이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넷째,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빨리빨리’의 태도가 중독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쉽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삶의 태도는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술·마약 등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에는 중독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기다리고 참아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쉬운 방법을 찾기보다 어려움을 견디는 것이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5 덧붙이는 묵상 한국의 아이돌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영어 단어 'Idol'은 본래 '우상'을 의미한다. 출처=넷플릭스 한국 문화와 아이돌을 소재로 8월 27일 기준 누적 시청 수 2억 3600만을 기록한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화제입니다. 보통 아이돌이라고 하면 소년·소녀부터 청년에 이르는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그룹 가수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Idol’이라는 단어는 본래 ‘우상’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모두의 우상이 된 이가 어느 순간 술과 약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망치는 과정을 종종 접합니다. 팝스타·유명 정치인·거대 기업 총수 등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게 된 이들도 한때는 꿈 많은 젊은이였을 겁니다. 그러나 명성에 취하거나 사회적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망가지는 일명 ‘아이돌(우상)의 나락’을 목격하곤 합니다. 반면 부와 명예를 모두 갖췄음에도 한결같이 건강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비결을 살펴보면 공통되게 자신이 이룬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 겸손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명성을 얻은 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자신을 갈고 닦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현재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를 알고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태도는 스스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듭니다. 신앙인이라면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내 손에 쥐어진 모든 것을 온전히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룬 것으로 여긴다면 마치 성경 속 바벨탑을 쌓아올린 이들처럼 겸손함은 잊고, 자만 속에 가진 것조차 잃고 맙니다. 이때 느껴지는 상실감을 혼자 견딜 수 없게 되고 무언가에 의존하며 곧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감사했던 일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것이 진정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함께 돌아봅시다. 박예슬2025.09.02

노후에 가장 소중한 친구[월간 꿈 CUM] 꿈CUM 수필 지난 8월 무더위가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문학의 집’ 행사가 있어 3호선 전철을 타고 가다가 재미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양재역을 지나는데, 한 노파가 들어와 내 옆에 앉으며 대뜸 하는 말. “아이고, 시원하다. 하루 종일 전철만 타고 지내면 좋겠구먼. 더워도 너무 더워.”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아니 한 바가 아니어서,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응수했더니, 여인은 이야기를 계속 한다. “할 일이 많으니, 전철만 타고 있을 수도 없고.” “무슨 일이 그렇게 많으세요?” “교회도 나가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하고, 운동 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시도 외워야 하고….” 시도 외워야 한다는 마지막 말에 적이 놀라,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쭈었더니 80이란다. 나는 더욱 흥미가 당겨 무슨 시를 외우시느냐고 물었다. 그네는 “구약 시편의 시도 외우고, 우리나라 서정시도 외우지요” 하면서 시편 중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로 시작하는 23편을 줄줄 암송한다. 내가 눈을 반짝이며 즐겁게 들어 주자, 영어로도 외운다며 바로 그 부분을 줄줄 외운다. 발음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술술 흐른다. 내가 입을 다물지 못하자 노인은 더욱 신이 난 듯 우리나라 현대시를 꺼낸다. 맨 처음 조지훈 선생의 ‘승무’가 주루루 쏟아져 나왔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 후유! 정확히 끝낸다. 오히려 문학인인 나는 중간 중간 생각이 안 나서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노인은 그 긴 시를 술술술 물 흐르듯 외워버린다. 세상에…. “정말 대단하시네요. 문학 전공하셨나요?” “아니요. 그냥 좋아했어요. 문학이 얼마나 좋아요. 특히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겐 최고지요. 좋은 책 읽거나 시 외우고 있으면 세상 근심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져요. 부자가 따로 있나요. 나는 젊어서도 시를 많이 외웠지만 요즈음 더 열심히 외워요.” “젊을 때와 달라서 잘 안 외워지시지 않던가요?” “아니요, 오히려 속도가 붙어서 사흘이면 한 편씩 외워요.” “네? 사흘 만에요?” “치매 안 걸리려면 시 외우고, 노래 부르고, 이런 게 아주 좋대요.” 그렇게 말하고는 또 소월을, 영랑을, 목월을 줄줄 읊어댄다. 내가 중간 중간 끼어들어 함께 소리를 맞추자 더욱 신이 나서 계속 외워대다가 묻는다. “당신도 문학 좋아했우?” “네. 아주 좋아해요. 지금 충무로 ‘문학의 집’ 행사에 가는 겁니다” 하며 문학의 집에 대한 소개를 잠깐 했더니, 그렇게 좋은 곳이 있었냐며 기뻐한다. 문학은 외로운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준다고. 무엇보다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마음을 순화시켜 준다고. 좋은 시 외우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문학 장려 운동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노인의 목소리가 제법 크고 또렷해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노신사에게도 들렸는지 그도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곧 내가 내릴 충무로역이 나왔다. 노인에게 ‘행복하십시오’ 인사하고 내리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짧은 동안이었지만 산뜻한 만남이라 나도 행복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독서의 생활화를 역설할 때마다 새로이 강조하는 것이 있다. 사고력과 문장력 증진, 인생의 길잡이 역할 모델 만남, 등등 이미 알려진 것 외에 내가 삶에서 체득한 중요한 항목이라며 꼭 하나를 덧붙이는 것이다. “노후에 가장 소중한 친구!” 몸 아프고 다리 아파, 외출할 수 없어질 때, 끝까지 나를 지키며 함께 놀아줄 친구 문학. 그런데 다 늙은 다음에 새로 사귈 수는 없다. 젊어서부터 독서 습관이 들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책과 친구 될 수 있겠는가. 대부분 한두페이지 읽다가 눈 아프다고 팽개쳐 버린다. 그러니 일찍부터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러한 설명으로 독서의 생활화를 강조하면 젊은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준다. 요즈음 혼자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할 일 없는 노인들은 그 외로움을 어떻게 견딜까. 건강할 때는 나들이라도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아플 때는 그 쓸쓸함이 오죽하랴. 몇 년 전 여름, 버스를 타려고 뛰다가 왼발을 접질려 깁스를 하고 50일을 지낸 적이 있다. 그 막막함이라니! 그때 나는 오디오 성경을 듣고, 문학 서적을 읽으며 그 축축한 무더위를 이기고, 심심함을 달랬다. 고맙고 고마운 문학! 그런데 전철에서 만난 노인은 나보다 한 수 더 높았다. 단순한 독서 차원을 넘어서 ‘시 암송’이란 새 지평을 열어 보이지 않았는가. ‘노후에 가장 소중한 친구’ 라는 나의 발견을 뒷받침이라도 해주듯이. 앞으로 독서도 힘들게 될 때를 생각해, 젊은 날 숱하게 외웠던 애송시들을 찾아 즐거운 여행을 떠나 봐야겠다. 글 _ 안 영 (실비아, 소설가, 수원교구 분당성요한본당) 1940년 전남 광양시 진월면에서 출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만남, 그 신비」, 소설집 「가을, 그리고 山寺」 「가슴에 묻은 한마디」 「비밀은 외출하고 싶다」, 수필집 「아름다운 귀향」 「나의 기쁨, 나의 희망」 「나의 문학, 나의 신앙」, 시집 「한 송이 풀꽃으로」, 동화 「배꽃마을에서 온 송이」 등을 펴냈다. 2023년 9월, 장편소설 「만남, 그 신비」로 ‘황순원 문학상 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가톨릭문인협회 회원이다.2025.09.27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빛의 성경’[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49-끝) 생트샤펠, 그리고 스콜라 철학 생트샤펠 내부. 출처=Wikimedia Commons 완벽한 레요낭 양식의 프랑스 왕실 경당 파리에 있는 생트샤펠(Sainte-Chapelle)은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 프랑스 왕들이 거주하던 팔레 드 라 시테(Palais de la Cit) 안에 있는 완벽한 레요낭(Rayonnant) 양식의 왕실 경당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13세기 스테인드글라스, 더구나 그것을 모두 남기고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이 경당은 후에 성인 된 루이 9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통치한 마지막 라틴 황제 볼드윈 2세(Baldwin II)에게 2년간의 협상 끝에 1239년에는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1241년에는 참 십자가 조각을 포함해 모두 22개의 다른 유해를 얻었다. 그 비용은 13만 5000 리브르였는데, 왕국 연간 수입의 절반이 넘었다. 그는 이 유해가 파리 외곽에 도착했을 때 그 유해와 함께 맨발로 길을 걸어 왕궁으로 모셔갔다. 생트샤펠은 이 유해를 모시고자 1239년에 계획되어 1243년부터 짓기 시작해 1248년에 헌당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전체를 포함한 경당을 짓는 데는 4만 리브르가 들었다. 그러나 이 유해를 보관하는 유해함에는 10만 리브르를 썼다. 경당은 위아래 두 층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은 궁궐의 신하, 시종, 군인들이 사용했고, 거룩한 유해가 보관된 위층은 왕실과 측근만을 위한 것으로 왕의 거실과 직접 이어졌다. 동로마 황제가 궁전에서 하기아 소피아로 가듯이, 루이 9세도 궁전에서 생트샤펠로 직접 나갈 수 있었다. 참 십자가와 가시관 등 그리스도 수난의 유해를 담은 유해함은 대혁명에 녹았다. 따라서 지금은 경당에 성유물을 보관하고 있지는 않으며, 가시관은 1806년부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이 경당의 건축가로 추정되는 피에르 드 몽트뢰유(Pierre de Montreuil)는 석조물을 최소화하고 15개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거대한 개구부를 만들었다. 철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돌을 보강하고 가벼운 볼트 천장을 설계했다. 벽과 창문은 풍압에 견디도록 두 개의 철제 사슬 벨트로 밖에 고정했다. 그 결과 그 하중을 외부 버팀벽에 전달해 크고 거대한 베이 4개로 덮인 단랑식 경당을 지을 수 있었다. 이로써 벽은 사라지고 찬연히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라는 빛의 벽이 내부 전체를 감쌌다. 2층의 경당은 길이 36m, 폭 17m, 높이 42.5m로 프랑스의 새 고딕 대성당과 크기가 비슷하다. 서쪽 끝의 장미창을 제외하고 동쪽 끝은 7개의 창을 포함하여 낮은 징두리 벽 위는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져 있다. 그 면적은 670㎡나 된다. 무거운 아케이드도, 어두운 트리포리움도, 고창층도 없다. 빛의 벽을 지지하는 모든 수직 구조는 7개의 가느다란 원기둥 다발로 만들어 기둥의 두께는 가늘게 ‘보이도록’ 했다. 또한 회중석의 창(15m)이 반원 제단의 창(13m)보다 약간 높아 경당은 실제보다는 더 길게 보인다. 생트샤펠 스테인드글라스. 출처=Peter Nijenhuis 스테인드글라스 빛에 감싸인 은총의 집 생트샤펠 안은 천상의 예루살렘 건축 재료인 귀금속과 보석에 빗대어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빛과 색채로 물들어 있어 우리가 이미 그곳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15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창세기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르는 1113개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둥근 제단을 향해 오른쪽 측면에서 입구에 가장 가까운 곳에는 수난의 유물에 관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그중 14개는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연속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 수난과 대면하는 서쪽 장미창 중앙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려져 있는데, 15세기 말 플랑부아양(Flamboyant) 양식으로 바꾸었다. 그야말로 찬연하다고밖에는 더 할 말이 없는 저 공간은 한 권의 책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빛의 성경’이요, 빛에 감싸인 은총의 집이다. 생트샤펠의 공간과 형태는 한마디로 ‘입자적(粒子的)’이다. 천장, 낮은 벽, 천장, 가느다란 기둥 위에서 모두가 심지어는 점으로 분해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많은 입자는 스테인드글라스다. 그래서 그 안을 계속 움직이면 마치 보석을 돌리듯이 고딕 공간은 다양한 빛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무한히 변화한다. 고딕 대성당 정면은 랑스처럼 탑을 포함해 네 개의 층으로 나뉜다. 제일 아래층은 세 개의 포탈로 나뉜다. 중앙 포탈이 우월하지만, 세 포탈은 체계가 같다. 포탈 위의 아키볼트(archivolt)는 띠 모양으로 분할되면서 문을 향해 수렴한다. 아키볼트는 다시 작은 조각물로 나뉘지만, 그 띠도 작은 조각으로 동등하게 분할된다. 문의 옆 벽도 원기둥으로 나뉘고, 원기둥은 다시 문설주 상으로 나뉜다. 이러한 분할 방식은 내부 평면에서도 중랑 벽에서도 계속 반복된다. 고전건축에서 부분은 전체의 통제를 받지만, 고딕은 돌로 만든 요소를 체계 안에서 계속 나뉘며 분절된다. 그러나 체계 안에서는 동등하다. 기둥은 가는 기둥 여러 개가 묶여 있는 듯이 보이며, 위로는 제각기 볼트의 리브로 이어진다. 이리하여 고딕 대성당의 공간과 벽체는 계속 분할되고 물질은 작은 입자로 분해된다. 중량감은 사라져 비물질적이고 가벼운 공간이 되어 나타난다. 왜 그랬을까? 하느님은 결코 형상이 있는 구체적인 공간 안에 한정될 수 없는 분이시고, 여러모로 나타나시되 사람에게 제각기 동등하게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생트샤펠 천장. 출처=Javi Masa 하늘과 땅을 조화시킨 돌로 지어진 신학 미술사가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 sky)는 역저 「고딕 건축과 스콜라 철학」(1957)에서 당대의 스콜라 철학과 고딕 대성당과 동시에 평행하게 나타났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고딕 대성당이 스콜라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설계되고 지었다고 건너짚어서는 안 된다. 스콜라 철학과 고딕 건축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서 평행하다. 스콜라 철학의 기술 형식과 대성당의 건축 방식은 같다. 스콜라 철학의 모든 기술(記述)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전개된다. 전체는 ‘책’으로, ‘책’은 숫자가 붙은 ‘장’으로 분할하고, ‘장’의 순서는 논리적 종속 체계를 따른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전체가 ‘부(部, partes)’로, ‘부’는 더 작은 ‘부’로 분할된다. 부는 ‘부분’, ‘문제’, ‘구분’으로, 이들은 각각 다시 ‘항(項, articuli)’으로 나뉘며 세부를 향해 계속 계층적으로 분해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카를로 크리벨리 그림, 15세기. 출처=Wikimedia Commons 로마네스크에는 이런 계층성이 없고 구성하는 부분도 더 이상 분할되지 않으니, 부분은 등가(等價)가 아니다. 그러나 고딕 대성당에서는 전체가 회중석, 횡랑, 슈베(제단부)라는 세 부분으로, 각 부분은 ‘랑(廊)’으로 분해된다. 슈베도 또 같은 방식으로 제단과 주보랑으로 분할된다. 지주는 피어로 분할되고, 피어는 다시 작은 기둥(샤프트)으로 분할되며, 작은 기둥은 다시 가는 작은 기둥으로 다시 분할된다. 이와 같은 계층성은 고딕 대성당 전체를 덮고 있다. 이러한 분할의 극한이 바로 생트샤펠이다. 「신학대전」이 신학과 인간 철학을 조화시켰듯이, 고딕 대성당은 새 예루살렘을 그리며 하늘과 땅을 조화시켰다. 바로 그래서 「신학대전」은 신학의 고딕 대성당이며, 고딕 대성당은 돌로 지어진 신학이라 말하는 것이다. 고딕 대성당은 그런 존재였다. ※ 지난 1년 동안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를 연재해주신 김광현 안드레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cpbc2023.12.20

형제자매가 된 남북 청년들,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제2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획] 남북 청년 멘토링 공동체 ‘띠앗머리’ 탐방 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남북 청년 멘토링 사도직 ‘띠앗머리’ 멘토·멘티 청년들이 수도회 피정의 집 소성당에서 한장호 신부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오른쪽부터 임수진, 김지향, 신명도, 문성영씨) 멘토링으로 출발해 동아리 활성화 풋살·시·성경·댄스 등 분야도 다양 서로의 일상·고민 나누며 결속 탄탄 14년 동안 13기까지 174명 활동 ‘통일을 미리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 분단 80년의 아픔과 기구한 역사 속에서 평화를 향한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이러한 현실 앞에 피로감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짊어진 3만여 명의 북향민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수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통일부는 올해 1~3월에도 38명이 탈북했다고 전했다. 그중 20~30대가 절반이 넘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칠 수도 있는 이웃이자 동료이며 친구다. 평화와 통일 담론에 대한 피로감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지 않을까. 제2회 북한이탈주민의 날(7/14)을 맞아 분단된 현실 속에서 ‘통일을 먼저 살아가는’ 공동체 ‘띠앗머리’(지도 한장호 신부)를 만났다. 형제자매가 된 남남북남 남녀북녀 “명도야 야구장 가자.” “저 그날 약속 있어요!” 문성영(바오로)씨가 우스갯소리로 동생 신명도(마르첼리노)씨에게 또 거절당했다며 투덜거린다. “관장님이 빨리 시합 준비하자고 하네.” “언니는 왜 이렇게 운동을 좋아해? 우린 취미가 참 달라.” 이번엔 동생 김지향(루치아)씨가 언니 임수진(율리안나)씨에게 취미활동 좀 맞춰보자고 보챈다. 툭툭 내뱉는 말 속에 남남북남, 남녀북녀가 이룬 사소하지만 따뜻한 가족의 풍경이 담겨 있다. 따로 설명하지 않으면 평범한 청년들인 이들은 ‘띠앗머리’가 연결해준 남북 형제자매다. 함께 캠핑도 가고 여행도 다니면서 어디서도 말 못할 속 이야기까지 터놓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 문씨는 “누나·여동생만 있었는데, 남자 형제가 생겨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고 흐뭇해했고, 임씨도 “지향이는 오히려 저를 챙겨주는 야무진 친구”라고 자랑스레 소개했다. 분단의 상처가 새로운 가족형태 안에서 치유되고 있는 모습이다. 가족공동체 띠앗머리 ‘띠앗머리’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남북 청소년·청년 멘토링 사도직으로 2011년 4월 4일 발족했다. 남한 청년을 ‘띠앗’, 북한 청년을 ‘나무’라 부르며 1대1 관계를 맺어주는 형태다. 띠앗머리는 ‘가족애’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북향민 청소년·청년들을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정서적 멘토링이 그 시작이었다. 개별적으로 만나 일상을 공유하며 즐기기도 하고, 수도원이나 피정의 집에서 교육과 캠프에 함께하는 등 삶을 가족처럼 동반한다. 그렇게 남북 젊은이들의 관계가 이어진 지도 어느덧 만 14년을 넘겼다. 흐른 시간만큼 수많은 이가 참여하며 하나의 큰 공동체를 이뤘다. 현재 13기까지 멘토 72명, 멘티 102명을 합쳐 총 174명이 띠앗머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동체가 커지면서 멘토링 관계를 넘어 자체적으로 동아리도 결성했다. 풋살·시·성경·독서·등산·댄스·언어부터 봉사와 육아까지 본인이 원하는 취미 하나는 있을 정도로 분야도 다양하다. “풋살하는 날만 기다려요. 함께 땀 흘리고 한 잔하는 게 요즘 가장 큰 낙입니다.” 동아리 활동은 북한 청년뿐 아니라 남한 청년도 비슷한 또래와 소통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북향민을 위한 여러 단체가 사회부적응과 정신적 고통 등에 집중하는 가운데, 띠앗머리는 그들이 가족으로서 실질적으로 이 땅에 뿌리내리고 성장하도록 동반하고 있다. 신명도씨는 “동향인끼리 모이려는 문화가 있는데, 그럴수록 더 고립되는 것을 본다”며 “띠앗머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평범한 청년 중 한 명이라는 소속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띠앗머리 유아세례식. 한장호 신부 제공 띠앗머리 결혼식. 한장호 신부 제공 평범한 한국사회 청년 김지향씨와 신명도씨는 여느 북향민처럼 생사를 넘나들며 한국 땅을 밟았다. 그만큼 운도 따랐기에 가능했다. 이들이 목숨 걸고 혈혈단신 한국행을 택한 이유는 자유를 찾아서다. 잘 알려졌다시피 K-문화의 영향은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김씨와 신씨도 한국 노래와 드라마에 매료돼 자유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남한에 정착해 여대에 입학한 김씨는 10살 어린 학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니며 밥 먹을 친구 하나 만들지 못했다. “북한에서 왔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중국 유학생 한 명이 유일한 친구입니다.” 낙담할 수 있는 상황에서 띠앗머리는 김씨의 숨통을 틔웠다. 말 그대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김씨는 뛰어난 노래 실력을 살려 띠앗머리 음반에 보컬로 참여하면서 가진 재능을 맘껏 펼치는 중이다. 김씨 멘토 임수진씨는 “이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참 무지했던 저를 반성한다”고 했다. “북한 하면 일단 정치 등 여러 부분에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잖아요. 그들에게 익숙지 않은 정말 사소한 단어나 문화 정도 알려주는 점 말곤 크게 신경 쓸 게 없었습니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신씨는 비교적 어린 18살에 홀로 압록강을 건넜다. 가톨릭계 학교인 동성고등학교에 입학해 남다른 친화력으로 순식간에 ‘인싸’가 됐다. 사소한 문화 차이는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친구들이 미용실에 간다는 거예요. 제가 이발소를 가야지 왜 미용실을 가느냐고 바로 반문했죠. 북한에서 미용실은 여자만 가거든요.” 잘 적응하며 대학생까지 됐지만, 마음 한편엔 북에 두고 온 가족이 늘 자리 잡고 있다. 그럴 때마다 신씨는 띠앗머리 가족들을 불러 엄마가 해준 요리를 직접 만들어 대접하기도 한다. 신씨 멘토 문성영씨는 “최근 여러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북향민은 ‘갈등의 비주류’에 속하는 것 같아 오히려 다행인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조부모가 북향민이라 개인적으로 이질감이 없기도 하지만, 매스컴에서 자극적인 내용만 다루는 점은 아쉽다”며 “이들은 북이 고향일 뿐 취업과 연애·결혼을 고민하는 평범한 이 시대 청년”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조금만 더 편견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줬으면 합니다” 통일을 사는 사람들 인원이 200명 가까이 되다 보니 띠앗머리는 이제 하나의 작은 사회가 됐다. 그 안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린 이들도 있고, 사소한 오해가 쌓여 갈등 중인 이들도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여느 친구 사이에서 있을 법한 오해와 의견 차이 때문이다. 한장호(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는 “띠앗머리는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동체를 이뤄왔다”면서 “우리는 ‘통일을 미리 살아본 사람들, 지금도 통일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훗날 통일이 되면 띠앗머리가 만든 문화는 분명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랑받고 싶고, 노래하고 싶고, 춤추고 싶고, 맛있는 거 먹고 싶고, 친구들과 대화하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있지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잖아요. 이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거죠. 거창하게는 ‘자아실현’이라고 할까요. 그저 ‘사람답게’ 살자는 겁니다. 때론 갈등도 생기지만, 다시 오해를 풀면서 함께 성장해가는 중입니다. 신앙적으론 하느님 나라를 함께 건설하는 거고요.” 정서적 멘토로 시작한 띠앗머리는 ‘가족애’라는 뜻처럼, 이제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를 진심으로 지지하는 가족공동체가 됐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 통일을 미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띠앗머리’ 가족들이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5.07.10

주님을 경외하고 율법을 따르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2)집회서 집회서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율법에 충실하면 축복이 따를 것이라고 가르치는 삶의 지침서이다. 귀도 레니, ‘십계명을 든 모세’, 유화, 1624, 보르게제미술관, 로마. 집회서는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책입니다. 가톨릭교회 구약 성경에 포함된 제2경전이지요.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집회서를 ‘Σοφια Σιραχ’(소피아 시락스)라고 표기합니다. 우리말로 ‘시라의 지혜’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이 책을 ‘Ecclesiasticus’(에클레시아스티쿠스)라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말로 ‘교회(집회, 모임)의 책’이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은 라틴어 대중 성경의 표기에 따라 ‘집회서’라 표기합니다. 가톨릭교회는 교회 공동체를 위해 신앙 윤리의 여러 지침을 수록하고 있는 이 책이 새로 입교한 교우들을 가르치는 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어서 ‘교회의 책’, 곧 ‘집회서’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한편, 유다 문학에서는 이 책을 ‘벤 시라의 잠언’ ‘벤 시라의 책’이라 불렀습니다. 벤 시라는 ‘시라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아울러 헬라어 수사본들은 이 책을 ‘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 또는 ‘시라의 지혜’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집회서 저자는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의 아들, 시라의 아들 예수’(50,27)입니다. 집회서는 구약 성경 정경 가운데 저자 자신이 이름을 밝힌 유일한 책입니다. 시라의 아들 예수는 기원전 200년께 예루살렘에서 살던 율법학자로 학교를 열어 자신의 오랜 명상의 결실과 삶의 체험을 도성의 귀족 청년들에게 전해주고자 고심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지혜의 열렬한 탐구자(51,13-30)로 잦은 해외여행(34,9-12)을 통해 귀중한 교훈들을 깨닫습니다. 그는 여행 중 수차례 고비를 맞았으나 그때마다 주님께서 구해 주십니다.(34,13; 51,1-12) 저자 예수 벤 시라는 현명한 아내(36,26-31)와 엄격하게 교육을 받은 자녀들(30,7-13; 42,5)과 함께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고위 관직에 올라(33,4) 대사제의 감독 아래 공무를 수행했던 인물로 추정됩니다. 그는 성전과 사제직, 경신례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나 사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50,5-21) 집회서는 본디 히브리어로 작성됐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히브리어 수사본들은 두 시대의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하나는 벤 시라의 손자가 이집트에서 헬라어로 번역할 때 대본으로 삼았던 것(성경학자들은 이를 G-Ⅰ이라 표기함)이고, 다른 하나는 서기 50년에서 150년 사이에 바리사이 사상을 바탕으로 개정된 수사본으로서 130년에서 215년 사이에 헬라어 번역본을 수정할 때 사용된 수사본(G-Ⅱ)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 집회서는 G-Ⅱ의 내용을 G-Ⅰ내용과 구별하기 위해 ‘기울어진 글씨체’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예수 벤 시라가 기원전 180년께 집회서를 저술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그의 손자가 에우에르게테스 임금(프톨레마이오스 7세, 기원전 170~기원전 116년) 통치 38년 곧 기원전 132년 이후 집회서 히브리어 본문을 헬라어로 옮기기 시작했다고 밝힙니다.(머리글 참조) 이 글을 근거로 성경학자들은 헬라어 번역 작업 시작 때부터 약 50년 앞서서 예수 벤 시라가 집회서를 저술했으리라 추정하는 것입니다. 집회서는 크게 전반부(1,1─23,28)와 후반부(24,1─50,29)로 구분합니다. 이를 세분해 머리글, 지혜와 금언들(1─16,23), 하느님과 창조, 금언들(16,24─23,28), 지혜와 율법, 금언들(24,1─32,13), 하느님 경외와 처세(32,14─42,14), 하느님의 영광(42,15─50,29), 부록(51,1-30)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집회서는 모든 사람이 “율법에 따른 생활을 하여 더욱 진보하게 하려고”(머리글 10) 고 쓰였습니다. 집회서는 우정, 자선, 자녀 교육, 여자, 의사와 질병, 부와 가난, 종, 연회와 예절, 이스라엘의 역사, 제사와 경신례, 하느님, 율법, 창조, 인간의 자유,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집회서의 중심 사상은 ‘주님께 대한 경외심’입니다. 주님을 경외함은 결국 율법에 대한 충실성으로 드러나며 넓은 의미에서 지혜 개념과 동일시됩니다. 이 경외심 안에서 율법을 연구하고 지혜를 추구하는 일은 유다교 안에서 유일한 과업입니다. 집회서 저자는 유다교의 전통 신앙을 옹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분이시며(18,1; 36,4; 42,21) 완벽한 창조의 주인(42,21)이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라고 합니다.(2,11) 집회서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율법에 충실하면 건강과 장수, 많은 후손, 안락과 명성이 보상으로 따르고, 율법을 거스르는 이는 단명의 징벌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악인은 의인보다 훨씬 더 참혹한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10,6-13) 이처럼 집회서는 유다교 전통에 충실한 히브리인들의 삶의 지침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의 야고보서는 집회서와 관련된 병행구들이 나옵니다. 이는 집회서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었음을 입증하며 이러한 평가는 초대 교회에서 구약 성경 정경으로 집회서를 받아들이게 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2.13
![[송향숙 평화칼럼] 미션과 편견](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5/27/RAj1748327700638.jpg)
[송향숙 평화칼럼] 미션과 편견송향숙 그레고리아(생활성서사 교재연구팀 팀장) 생활성서사는 지난해만도 브뤼기에르 주교 관련 책을 세 권 펴냈다. 사람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아무리 ‘하느님의 종’이고 서울대교구에서 시복을 추진 중이라고는 하나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분 관련 책을 몇 개월 사이에 세 권이나 펴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살기」(이하 「~살기」) 원고 작성이라는 미션이 내게 왔을 때 “이 미션은 패스~”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그분의 전기나 평전을 내는 건 알림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런 책들보다 더 내면화하는 「~살기」는 책 성격상 지나쳐 보였다. 「~살기」는 그분의 삶을 반년 동안 매주 읽고 명상하고, 그분 삶을 성경과 연결해 묵상하며, 그 묵상에 비추어 오늘날 자기 상황에서 삶을 되돌아보고 기도와 실천으로까지 나아가도록 안내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따지는 편인 내게 그 일은 아무래도 낭비 같았다. 미션에 착수하기 전, 이런 생각으로 거부할 핑계가 계속 나의 뇌리를 맴돌았다. 5년여 전 펴냈던 같은 성격의 「성 김대건 신부 바로 살기」와는 관심도에서 비교가 안 됐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영성은 늘 우리 모두가 알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브뤼기에르 주교의 경우에는 ‘뭐, 그렇게까지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브뤼기에르 소 주교님이 좀처럼 내 관심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제 와 생각하니, 내가 그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조선대목구 초대 감목, 조선 입국 실패.’ 이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땅에 발도 딛지 않았던 분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직접 쓰신 서간과 일기, 한수산 선생님의 「내가 떠난 새벽길」 등을 읽으면서 목자 없는 양의 처지였던 당시 조선 교우들을 그분이 얼마나 걱정하고 사랑했는지, 그래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견디시며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오시다가 결국 조선 입국을 눈앞에 두고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 안타까운 사연 등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분이 견디신 어려움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다. 박해 시대였던 당시의 조선 입국은 곧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고, 이미 맡은 전교 지역만도 버거우니 조선 선교는 아예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회원들의 반대와 무관심, 심지어 조선 교우들로부터도 소 주교님의 입국을 원치 않는다는 편지를 받게 된 외사랑의 아픔까지, 그분의 애끓는 여정은 결코 여느 순교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분 삶이 나의 선입견과 얼마나 다른가. 문득 소설과 영화의 동명 제목인 「오만과 편견」이 내 마음을 스쳤다. 주인공 다아시는 첫 만남에서 엘리자베스를 무시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를 보였고, 엘리자베스는 그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오해와 갈등을 겪으며 차츰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그래서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하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라는 그 유명한 경구가 태어났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겸허하셨으나 나는 그분에 대한 편견으로 애써 그분을 외면했다. 만일 「~살기」 작성이라는 미션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그 편견에 갇혀 있을 것 같다. 힘겨웠지만 그 미션으로 인해 나는 마침내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전구를 청하게 되었다. 모든 이가 편견 없이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영성을 살아가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cpbc2025.07.02

온 마을이 별천지… 불교 국가 태국의 ‘성탄 퍼레이드’[해외 르포] 태국의 특별한 성탄 12월 23일 태국 타래-농생대교구 주교좌 성 미카엘 대성당 일원에서 카퍼레이드 중 가톨릭 미션스쿨의 브라스 밴드가 행진하고 있다. 브라스밴드와 화려한 카 퍼레이드 불교 신자도 행사 기획에 참가 종교 상관없이 지구촌 축제로 성장 태국관광청, 올해의 3대 축제 선정 가톨릭 행사 넘어 지역 구심점 역할 태국 동북부 싸컨나콘(Sakon Nakhon)은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가량, 그중에서도 더 깊숙한 타래(Tha Rae)는 공항에서 차로 1시간을 내달려야 닿는다. 태국 동북부의 낯선 땅인 이곳은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1884년 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낯선 땅이었다. 박해를 피해 뗏목을 타고 넘어온 태국 가톨릭 선조들은 타래에 교우촌을 형성했다. 작은 공동체는 140년이 지난 현재 태국 최대의 가톨릭 공동체를 일구어냈다. 이곳에서 주님 성탄 대축일마다 이뤄지는 ‘크리스마스 별 퍼레이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대나무와 종이로 별을 만들어 불을 밝히며 마치 동방 박사가 별을 따라간 것처럼 자신들의 이주 역사의 정체성을 지켰던 축제다. 이제는 태국만이 아니라 지구촌에서도 이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타래와 싸컨나콘을 찾을 만큼 유명해졌다. 태국정부관광청이 선정한 ‘올해의 타이 시그니처’ 3대 축제에도 이름을 올렸다. 방콕에서 왔다는 찰리씨는 “불교 신자이지만 성탄 때마다 이곳을 방문한다”고 했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모하메드씨는 “스웨덴보다 성탄 분위기가 물씬 난다”며 “놀랍고 즐거운 체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본지는 태국정부관광청과 타래-농생대교구 주교좌 성 미카엘 대성당과 싸컨나콘 시내에서 벌어지는 빛의 축제, 크리스마스 별 퍼레이드를 동행 취재했다. 박해를 피해 이주한 베트남계 신자 타래 마을에 들어서면 거대한 방주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배 모양의 타래-농생대교구 주교좌 성 미카엘 대성당 모습은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한다. 독특한 성당의 외관은 신앙 선조들의 탈출 역사와 무관치 않다. 1884년 싸컨나콘 시내에서 차별과 박해로 고통받던 베트남계 신자 150여 명과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하비에르 게고(Oliver-Jean Xavier Guego) 신부는 종교 박해를 피해 태국 북동부의 최대 호수인 농한 호수를 건넜다. 나무 판자로 만든 뗏목에만 의지해서다. 이들은 호수를 건널 당시 거친 풍랑을 만났고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기도하며 보호를 청했다. 고생 끝에 무사히 타래에 도착한 신자들은 이곳에 정착해 선교를 이어나갔다. 타래-농생대교구는 정착기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주교좌 성당 기념관 안쪽에는 신자들의 정착했던 시절부터 당시 주교의 모습과 게고 신부의 동상·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태국은 불교 국가임에도 타래 지역에만 약 1만 5000명의 신자가 있을 만큼 교세가 성장했다. 과거 방콕대목구 소속이었지만 현재는 싸컨나콘·나컨파놈·칼라신·묵다한 등 4개 지역을 관할하는 대교구로 거듭나 5만여 명의 신자가 있다. 1950년대부터는 외국 선교사가 아닌 현지인 주교와 신부가 교구를 맡아 사목하고 있다. 타래 토박이 성 미카엘 대성당 주임 찰름 신짤라 신부는 “태국에서 단일 지역으로는 신자가 가장 많은 곳”이라며 “불교 신자들도 함께 살지만 갈등 없이 아주 평화롭게 지낸다”고 말했다. 동방 박사의 별 성경에서 별은 동방 박사 세 사람을 아기 예수가 있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으로 인도했던 상징이다. 이곳 신자들은 동방 박사를 이끌어 준 별처럼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신앙 고백을 한다. 타래에 처음 발을 들여놨던 신자들의 여정은 별 하나만 보고 낯선 길을 나선 동방 박사의 여정과 닮았기 때문이다. 별은 타래 신자들의 역사적 정체성이기도 하다. 싸컨나콘과 성 미카엘 대성당을 찬란히 밝히는 별 퍼레이드는 소박하게 시작됐다. 신짤라 신부는 “별 예식은 대나무와 종이로 만든 작은 별을 손에 들고 성당 주변을 돌며 기도를 바친 것에서 시작됐다”면서 “프랑스 선교사들이 적극 참여하며 성당 주변을 행진하는 예식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의 축제로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별 퍼레이드는 신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큰 의미를 지닌다. 타래 파티마 학교 담당 존 차차이 신부는 “이곳을 찾는 이들 중엔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많다”며 “그들에게 별은 종교적 상징을 넘어 ‘인생의 길잡이’이자 ‘행운’을 의미한다. 그래서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가 별을 들고 함께 기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2월 23일 태국 타래-농생대교구 주교좌 성 미카엘 대성당이 핑크빛 조명으로 밝게 빛나고 있다. 12월 23일 태국 타래-농생대교구 주교좌 성 미카엘 대성당 일원에서 열린 카퍼레이드 중 부스에서 어린 아이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본당 축제에서 시민들의 축제로 교구 신자 공동체의 작은 행사가 싸컨나콘 시민들의 축제로 거듭난 지는 40여 년이 됐다. 1980년부터 2004년까지 교구장을 지낸 카이 샌폰-온 대주교는 1982년 성탄의 기쁨을 모든 시민과 함께 나누자는 취지로 별 퍼레이드를 싸컨나콘 시내 중심가까지 확장했다. 이때부터 대나무와 종이로 만든 별을 가지고 거리를 행진하는 게 싸컨나콘만의 지역 축제가 됐다. 2025년 12월 23~24일 성 미카엘 대성당 일원, 25일 싸컨나콘 시내에서 열린 퍼레이드에 동원된 차량은 각각 50여 대. 모든 차량이 행진을 마치기까지는 2시간이 걸렸다. 카 퍼레이드의 출발점에 서서 차들의 행렬을 바라보면 끝 지점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근 가톨릭 학교 브라스 밴드 단원들의 행렬을 기점으로 시작된 카 퍼레이드는 본당 복사단, 나자렛회 등이 네온사인 별을 휘감은 트럭을 타고 타래와 싸컨나콘 시내 곳곳을 누비며 시민들과 주님 성탄의 기쁨을 함께했다. 인근 가톨릭 학교에 다니는 케이트 겁키엔 양은 “이 축제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예수님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타래와 싸컨나콘에서는 곳곳에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이들이 퍼레이드 차량에 올랐으며, 길가의 아이들은 차에서 뿌려지는 사탕을 얻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 면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관광객과 현지인 가릴 것 없이 휴대전화로 퍼레이드 분위기를 담기에 바빴다. 대성당 일대와 싸컨나콘 시내에서는 야시장도 열려 다양한 먹거리와 장식품으로 사람들 입과 눈을 즐겁게 하며 축제 분위기를 한층 더했다. 행사를 기획하는 이들 중엔 불교 신자도 있을 만큼, 별 퍼레이드는 가톨릭 교회 행사를 넘어 타래와 싸컨나콘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싸컨나콘에서 사는 노르웨이 출신 아르넨씨는 “수년 간 이곳에서 축제에 참여했는데, 이 축제가 마을 공동체를 묶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사제들은 한국 청년들과 함께 이 축제를 즐기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한국 신자들의 깊은 신심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곳 타래의 별 축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특별한 경험입니다.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와서 빛의 축제를 함께 즐기고, 서로의 문화를 나누었으면 합니다.”(차차이 신부)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잘 알고 있습니다. 태국 청년들도 많이 참가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신자들도 타래에 오셔서 기쁨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 환영합니다.”(신짤라 신부)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 이준태 2025.12.31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로 이뤄지는 ‘새로운 계약’[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4)예레미야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남 왕국 유다 말기 다섯 명의 임금이 통치하던 혼란스러운 때에 40년간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는 ‘새로운 계약’을 강조합니다. 이 새로운 계약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미켈란젤로, ‘예레미야’,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소성당.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예레미아서를 ‘이르메야후’라고 표기합니다. 우리말로 “야훼께서 던지다” “야훼께서 급히 보내다”라는 뜻입니다. 이를 헬라어 성경 「칠십인역」은 ‘이에레미아스’(Ιερεμιαs)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예레미아스’(Jeremias)라고 음역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은 ‘예레미아서’라고 표기합니다. 예레미야서는 기원전 627~587년 약 40년간 남왕국 유다를 무대로 펼친 예레미야 예언자의 활동과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므나쎄 임금(기원전 687~642) 통치 말기에 예루살렘 동북쪽 벤야민 지파 땅 아나톳에서 사제 가문의 에비야타르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 멸망 40년을 앞두고 20세 청년 예레미야를 당신의 예언자로 부르십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 요시아 임금 13년(기원전 627년)에 부르심을 받아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함락되던 치드키야 11년(기원전 587년)까지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활동하던 40년 동안 유다 왕국은 요시야,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킨, 치드키야 다섯 임금이 바뀔 만큼 정국이 불안하고 멸망으로 치닫던 매우 혼란한 때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처한 위기를 내다보며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고 주님께 의탁하지 않으면 백성이 기다리는 ‘하느님의 날’은 구원과 승리의 날이 아니라 패배와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의 고독한 예언자’라 불릴 만큼 고난과 고통, 고독으로 점철된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가족과 동족, 사제, 예언자, 정치가들로부터 외면당해 ‘외톨이’로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외적으로 동포와 동료들의 살해 위협 속에서, 내적으로 본성에도 맞지 않는 예언자의 소명을 수행해야 하는 데서 오는 끝없는 갈등 속에서 자기 사명을 완수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바빌론으로 가서 편하게 살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합니다. 그는 유다 지방관으로 임명된 그달야와 함께 황폐한 유다에 남습니다. 결국, 그는 친이집트 세력에 의해 그달야가 살해된 후 바룩과 함께 이집트로 끌려간 후 행방이 묘연해집니다. 예레미야서는 이사야서와 더불어 대예언서라 불립니다. 예레미야서는 바빌론 유배 시대 초기에 이미 여러 문서와 기록들로 흩어져 있었고, 신명기계 학파에 속하는 인물이 최종 편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레미야서는 52장으로 편집돼 있습니다. 이를 도입부(1,1-3), 1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신탁(1,4─25장), 2부 예레미야 전기(26─45장), 3부 이민족에 대한 신탁(46─51장), 4부 역사, 부록(52장)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하느님을 두고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가 벌이는 첨예한 갈등입니다. 거짓 예언자 무리를 대표하는 하난야계 대부분은 관료와 사제, 제도권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후원을 받아 바빌로니아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친이집트 세력 구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원전 587년 8월 예루살렘 함락 후 바빌론으로 끌려가진 전에는 ‘예루살렘의 안정과 견고함을 위한다’는 내용의 신탁을, 유배 후에는 ‘왕과 추방된 지도자들이 신속히 돌아온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참 예언자 예레미야를 따른 무리는 아히캄의 아들 그달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 신명기계 개혁에 적극 가담한 소수의 궁정 관리들, 키르얏 여아림 출신 우리야, 일부 사제들로 바빌론에 복종하고 그들과 함께할 것을 추구하는 친바빌론 세력 구성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유배 전 ‘거짓 예언자들은 스스로 조작해낸 환시와 그럴듯한 말로 유다의 부만 축내는 자들’이라고 고발합니다. 유배 후에는 ‘바빌론 유배 기간이 수십 년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레미야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는 ‘새로운 계약’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신 것은 당신 백성을 무조건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뉘우치게 해 그들을 구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3,14-18; 16,14-15; 24,4-7) 하느님과 이스라엘은 ‘혼인’ 관계입니다. 신랑이신 하느님께서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주시지만, 신부인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배신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것입니다.(2,20-25) 따라서 악으로 기울어진 완고해진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인간 스스로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하느님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죄를 벗기 위한 ‘마음의 할례’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마음속에 당신의 법을 새겨주실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하느님을 바로 알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31,31-34) 하느님의 이러한 개입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는 ‘새로운 계약’이 될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계약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이 계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풀이합니다.(히브 8,8-12; 10,16-17)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2.27
![[생활속의 복음]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5/27/saQ1748328027802.jpg)
[생활속의 복음]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윤웅렬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가톨릭청년성서모임 담당) 벤베누토 티시 작 ‘그리스도의 승천’, 1510~1520년. 저마다 한 번쯤 상상해 보지 않았던가요.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시절, 아주 유명한 무협 만화를 재밌게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고전 소설 「서유기」의 내용에서 따온 ‘근두운’이라는 구름이 나왔는데,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만이 이 구름을 타고 날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 만화를 보면서 괜스레 저 스스로를 가늠해 보곤 하였습니다. ‘나도 근두운을 탈 수 있을까?’ 오늘 우리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승천. 말 그대로 ‘하늘에 오른다’는 뜻입니다. 승천이라는 말에는 우리 신앙인의 ‘갈급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을 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날아서, 우리가 믿는 하느님 곁으로 빨리 간다는 것. 구약성경에 승천하여 하느님 곁으로 간 인물이 두 사람 나옵니다. 에녹과 엘리야.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창세 5,24) 고작 한 구절에 불과한 에녹의 이야기와 달리, 엘리야에 대해서는 열왕기에 훨씬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1열왕 17,1-2 ; 열왕 2,18 참조) 한평생을 주님 말씀의 선포를 위한 예언자로 살았던 사람.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 삶을 살았던 사람.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 이야기는,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사는 이를, 매우 드물게, 직접 빨리 데려가시기도 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승천은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모든 일에서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언제나 성령 안에서 사셨던 분. 그럼에도 가장 사람답게 사셨던 분. 보통의 경우라면 매우 드물었어야만 할 일이, 이 하느님의 아드님에게는 마땅히 일어나야만 할 일이라고, 제자들은 하늘에 오르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11) 승천의 사건은 하느님과 인간을 급격히 만나게 합니다. 그렇기에 신심 깊은 신앙인일수록,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만큼 얼른 날아가 주님 곁에 머물고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늘만 쳐다보고 있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승천이, 염원이 되지 않고 현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제자들도 그 뜻을 깨닫고, 하늘을 바라보듯 땅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루카 24,52) 돌아가는 제자들의 발걸음이 구름처럼 가볍게 느껴집니다. 복음을 싣고 기쁨 속에 파견되는 이들은 이제 땅 위를 하늘처럼 날아다닐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사는 이들을 통해 하늘과 땅이 급격히 만나게 될 것입니다. 윤웅렬 하상 바오로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가톨릭청년성서모임 담당)cpbc2025.05.28

남편과 아들 잃은 박완서의 절규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문학을 통한 사도적 삶,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 (1)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어린 시절의 아들 호원태와 함께 보문동 집에서. 아들 원태는 평소 연극에 관심이 많아 생전에 연극 ‘세일럼의 마녀’에서 주연을 맡았고, ‘코뿔소’를 연출하기도 했다. 1988년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묘비명 ‘평생 인간과 의학과 연극을 사랑하다 간 젊고 아름다운 영혼 여기 잠들다’를 손수 썼다.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느닷없이 찾아온 참척의 고통 소설가로 성공 가도 달리던 1988년 폐암으로 남편 떠나고 스물여섯 살 아들 갑작스러운 죽음 죽고 싶다던 절규 끝에 움켜쥔 생 하느님 원망하며 종교 버릴 결심 기차역 계단서 죽음의 공포 느끼고 간사하고 위선적인 자신과 조우 ‘하느님, 결국 당신은 안 계셨군요?’ 밤낮으로 기도를 해도 하늘에 가 닿지 않음을 느낄 때 우리는 무력감을 넘어선 절망에 빠지고 만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기도에 절실함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기 반성에 이어 종국에는 원망의 화살을 내가 아닌 하늘로 돌려버린다. ‘내가 아는 주님은 힘없고 아픈 이들 가운데 계시는 분이다. 약한 자의 편에 계시는 주님이라면 이렇게 불쌍한 나의 기도를 모른 척 지나치실 리가 없다. 그러니 결국 주님은 계시지 않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온 나라가 서울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축제의 환희에 휩싸여있던 1988년, 박완서는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맞닥뜨린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연달아 잃었기 때문이다. 등단 이후 작품마다 평단의 찬사를 받았으며 대중적으로도 인기 작가로 손꼽히고 있었으니 소설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때였다. 화목한 가정에 4녀 1남의 자녀들은 모두 반듯하게 자라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무엇하나 모자람이 없었고 외려 복이 너무 많아 불안할 정도의 삶이었다. 불현듯 찾아온 시련은 평탄한 일상을 단박에 무너뜨렸다. 창문 너머 바깥세상은 올림픽 성화의 불길이 타오르는데 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남편은 폐암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평생의 든든한 울타리 같았던 남편을 보내며 나도 함께 데려가라 통곡했다. 그로부터 고작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그는 정신을 놓고 말았다. “나를 데려가라니 왜 그 아이를 데려갔소? 아직 날개 한 번 펼쳐보지 못한 우리 아들. 당신도 가고 그 아이마저 데려가다니, 나는 어찌 살란 말이오!” 아들은 이제 고작 스물여섯. 앞날 창창한 젊은 아들을 남편 곁에 묻고는 햇볕이나 잘 드는지 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자식을 앞세운 어미를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서 그런 어머니를 ‘자식 잡아먹은 사람’이라고 부르던 기억이 떠올라 그를 괴롭게 했다.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의 말조차 고깝게 들려 곧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림픽 경기에서 한국이 메달을 딸 때마다 들리는 이웃들의 환호성이 죄 많은 어미를 야유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얼마 후 맞이한 생일을 박완서는 생애 가장 욕된 생일날이었노라 고백한다. 자기의 탄생마저 저주한 구약 성경 ‘욥기’의 욥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1985년 남편 호영진(하상 바오로)씨의 회갑 잔치에서.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내가 태어난 날이여, 차라리 사라져 버려라.’(욥기 3,3) 자식이 사랑스럽기야 누구인들 다르겠냐마는 5남매의 막내이자 하나뿐인 아들 ‘원태’는 어머니 박완서에게 보물이요 자랑이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의학부를 졸업해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던 아들은 활달할 뿐 아니라 사려 깊은 젊은이였다. ‘원태’가 ‘마취과’를 선택했을 때 어머니 박완서는 못내 아쉬웠다. 소위 말해 잘나가는 과는 얼마든지 있을 텐데, 어미로서의 허영심에 영 흡족하지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장에서 환자의 의식과 감각이 없는 동안 환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가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별볼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으로부터 고맙다든가 애썼다는 치하를 받는 일이 거의 없지요. 자기가 애를 태우며 생명줄을 붙들어준 환자가 살아나서 자기를 전혀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어요. 전 그 쓸쓸함에 왠지 마음이 끌려요.”(「한말씀만 하소서」 중) 부모를 잃으면 고아요, 남편을 잃으면 과부, 아내를 잃으면 홀아비라 하지만 자식을 앞세운 사람을 이르는 말은 없다. 그만큼 인간의 언어로 그려내기 어려운 아픔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 슬픔을 짐작게 하는 ‘참척(慘慽)’이라는 말이 있다. ‘참혹할 참(慘)’과 ‘슬플 척(慽)’을 붙여 만든 것이다. 참척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박완서는 신앙에 강한 배신감마저 느낀다.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데 어찌 인간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실 수 있단 말인가. 기도방 안에 모셔져 있던 십자고상도, 친구가 위로의 뜻으로 건네준 묵주도 내동댕이치며 종교를 버릴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 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 당신의 거룩한 모상(模相)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렇게 막 가지고 장난을 쳐도 되는 겁니까.”(「한말씀만 하소서」 중)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꿈인지 생시인지, 눈을 뜨고 있어도 꿈속 같고, 꿈을 꾸어도 잠든 것 같지 않은 아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부산에 살고 있는 큰딸이 그를 찾아온다. 아버지에 이어 남동생마저 떠나버린 집에 어머니 홀로 남은 것이 걱정되어 얼마간이라도 부산의 집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곡기를 끊는 심정으로 몇 날 며칠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상태였다. 부산행 열차 시간에 맞춰 급히 기차역의 계단을 내려가다 그만 두 다리가 휘청였다. 순간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두 손이 계단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우르르 오르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발아래 계단이 활처럼 휘면서 맹렬한 속도로 달려드는 것 같은 공포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죽고 싶다고 내내 절규했던 나의 속마음은 얼마나 간사하고 위선적이었던가!’ 내 자식보다 못한 남의 자식을 보며 겉으로는 위로를 건넸지만 속으로는 잘난체했던 지난날. 잘난 이를 보면 입에 발린 축하를 건네며 실상으로는 ‘기껏 저 정도 일에 기뻐하다니 얼마나 불쌍한가’하는 생각으로 혀를 찼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게 교만이라는데 그래서 이런 벌을 받는 것일까? 그때 이해인 수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음도 추스를 겸 기간이 얼마가 되든 상관없으니 원하는 대로 수녀원에서 지내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완서는 광안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성 베네딕도 수녀원’으로 향한다. 작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 1931~2011) 1931년 현재 개성 인근의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생하여 일곱 살에 서울로 이주.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곧 한국전쟁이 발발해 학업을 중단하였다. 전쟁 중에 미8군 PX에서 일하며 화가 박수근을 만나게 되고 훗날 박수근을 소재로 한 소설 「나목」으로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입상하며 등단하였다. 1970년 박완서 나이 40세 때의 일이다. 1984년 ‘정혜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잇따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때의 절망과 고통을 일기 형식으로 엮어낸 묵상집이 「한 말씀만 하소서」다. 등단 이후 40여 년간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660여 편의 에세이를 비롯해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집을 남겼다. 여러 작품에서 종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으며 솔직하고 깊이 있는 묵상집은 종교를 넘어 비종교인에게도 감동을 전했다. 전쟁과 삶, 억압받는 여성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때로는 날카롭게 꼬집고 때로는 따스한 문체로 그려내어 사후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생전 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만해문학상·황순원문학상·호암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사후에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정혜린 클라라(프리랜서 작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6.01.14
![[전문]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4/16/RBu1744803354953.jpg)
[전문]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 부활 메시지 “그리스도 우리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알렐루야!” † 찬미예수님,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제자들은 무덤을 향해 새벽길을 달렸습니다. 세상은 죄와 죽음의 어둠에서 동트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달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갔습니다. 무덤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외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르 16,6).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헛소리로 여겼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인사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리고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에게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 제자들은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1코린 15,12).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갑니다”(시편 19,5). 기쁨의 부활 소식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온 유다지방으로, 유다지방에서 유럽으로, 아시아로, 시간을 넘어, 세기를 넘어, 우리 시대 우리 귀에까지 퍼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셨습니다”(1코린 15,4). 주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 주님의 부활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보시게 좋게 창조한 세상을 보시기에 좋게 완성하시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인류는 오랜 옛적부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꿈을 꾸어 왔습니다. 아이들 동화 끝에 항상 빼놓지 않고 기록했습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사람들은 오래 사는 법을 여러 가지로 찾았습니다. 자손을 낳아 대대로 족보를 이어가기를 희망했습니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이름 석자 남기는 것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죽음을 건넜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지 않는다면, 주님도 부활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장차 부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1코린 15,20). 그러므로 우리는 기뻐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그리고 장차 우리의 부활을!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 장현민2025.04.19

주님이 주신 의로움으로 ‘거짓’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저는 믿나이다] (6)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은 의로움 이탈리아 로마 산탄젤로 요새에 굳건히 서 있는 성 바오로 사도 성상. OSV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처럼 사도들이 이끌던 초대 교회 때부터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벌어진 골이 점차 깊어 갔습니다. 특히 거짓 설교자들과 교리교사들, 영지주의자들, 지나친 금욕주의자들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완전히 갈라 세우듯 자기주장만 해댔습니다. 만일 인간 예수가 복음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그분, 사도들과 교회가 복음서에 기반을 두고 선포하는 그 예수와 다르다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믿음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교 신앙, 곧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는 믿음은 바로 이 땅에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란 성경적 믿음을 위해 다른 것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상징적 암호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근거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 실제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사실을 우리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베네딕토 16세 교황, 「나자렛 예수 1」 13쪽)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신 후 부활하신 역사의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20여 년 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놀라운 그리스도 찬가를 고백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6-11) 그리스도교 탄생 이후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런 그리스도론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하느님의 신비’에서만, 곧 ‘성령의 이끄심’으로만 이해 가능합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그리스도교 믿음은 하느님 말씀을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공적 계시는 ‘성경’ 안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성경 특히 신약 성경을 읽어나가면 그 안의 모든 말씀과 글에서 주님의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분리하려는 자들과 거짓 가르침으로 교회를 혼란에 빠뜨려 분열시키려 한 자들에 대해 사도들과 그들의 협력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에페 6,10-12)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세상의 유일한 참된 주님이신 분과 일치와 친교를 이루는 가운데, ‘하느님의 무기’를 선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무장을 갖추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모든 지체와 함께 일치와 친교를 나누면서 악의 권세들에 대항합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악의 권세를 물리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복음서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당신 열두 제자들에게 악마를 추방하라는 임무와 치유의 사명을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마태 10,1 참조) 이는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이 수행해야 할 사명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사명이기도 합니다. 악마를 몰아내고 인간을 치유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가르침에 대항해 ‘의롭게’ 살았습니다. 이 의로움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생겨납니다. 의로움은 구원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 6,11)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자가 된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로마 3,24-26)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선언한 것은 율법의 유다인보다 복음의 그리스도인으로 더 의롭게 됐고, 철학의 그리스인들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됐음을 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의로움은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은총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거저주신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은총으로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애와 공정, 의로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의로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성화의 길로 나아갑니다. “믿는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이 지금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계심을 깨닫는 것입니다.”(토마스 할리크, 「그리스도교의 오후」 196쪽)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12.11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53) 삼위일체(Trinity)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 중 하나이지만, 초대 교회 사도들이 구체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다. 후세의 신학자들과 교부들이 성부·성자·성령이 성경에 언급된 것을 숙고하면서 시작되었다. 삼위일체론은 신의 본질을 다루는 영역에 속한다.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못하는 명제이기 때문에 삼위일체는 ‘신비’로 인식되며, 인간의 이성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범주라고 신학자들은 규정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쉽게 풀어 물·얼음·수증기는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전부 똑같은 ‘H2O’라는 물질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설명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 이 세 형태가 동시에 존재하지 못하기에 형태의 동존이 자유로운 삼위일체론과는 거리가 있다. 양자역학에서 입자 파동의 이중성이나 블랙홀의 특이점을 들어 삼위일체를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당연히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했다. 많은 이가 음악에서 수리적인 구조와 논리성을 연구했다. 피타고라스는 음정의 어울림을 계산해 음계를 만들었고, 독일의 음악분석가 하인리히 쉥커(Heinrich Schenker)는 음악의 구조를 언어의 구조에 적용하고 도형화해 시각화했다. 하지만 임마누엘 칸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을 예술이라고 규정했다. 예컨대 우리가 꽃을 볼 때 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지, 식물학적인 지식이 미감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예술의 ‘논리적’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감각적인 이해는 후대에 ‘미학’이라는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게 된다. 작곡가의 입장에서 음악을 만들 때에는 큰 구조를 생각하고, 멋진 주제를 선택하며, 이 주제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보통 10분짜리 피아노곡일 경우 빠른 템포라면 2000~3000개의 음표가 필요한데, 이 모든 음이 제자리에 놓여있도록 고심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딱히 논리적으로 근거가 없지만 특정 자리에 결이 다른 음표를 넣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릴 때가 많다. 이 어색한 음이 잘 전개되면 음악의 매력이 되고 개성으로 변하지만, 잘못 운용하면 그대로 ‘실패작’이 된다. 음악의 논리성은 말과 비슷하기 때문에 반복할수록 명확해지지만 지루해지며, 같은 내용을 매력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좋은 작곡가는 절묘한 균형을 본능적으로 찾아내곤 한다. 작곡할 때 쓰이는 재료는 크게 가락·리듬·화성이지만, 내부의 변형과 조합에는 셀 수 없을 만큼 각기 다른 방향성이 존재한다. 이 모든 요소가 음악이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음악이라고 말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나름 신비로운 현상이다. 삼위일체의 위대한 신비를 고작 음악으로 설명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지만, 주님이 인간에게 준 멋진 선물이기도 한 ‘음악’으로 주님의 신비를 엿보는 것이 그다지 무례한 일은 아닐 것이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https://youtu.be/yLV8VH98pL0?si=stSkYKGCCZ7DmyO4 류재준cpbc2025.06.11

전례 기도문을 알면 일곱 성사의 의미가 보인다전례로 살펴본 일곱 성사 /주세페 페라로 신부 / 윤종식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전례로 살펴본 일곱 성사 /주세페 페라로 신부 / 윤종식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각 성사의 예식 구조 간략하게 설명 중요한 전례 본문 살펴보고 교리 도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 교리는 교도권의 문헌과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의해 성사들을 세 분야로 구분하는 항목에서 암시되고 소개되는데,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인 세례·견진·성체성사와 치유의 성사들인 고해·병자성사와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들인 성품·혼인성사가 그것이다.”(14쪽)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헌장」에서 “전 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라고 선언한다. 전례 거행은 구조와 전개에 있어서 인간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는 살아있는 가르침이다. 그 전례의 중심은 성사로 구성되어 있다. 성사는 모든 그리스도인 존재의 정점이자 원천으로 복음화와 성화의 순간들에서 교회에 의해 실행되는 모든 구원 활동의 기초와 영감을 제공한다. 일곱 성사는 신자 개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단계에 따라 진행되며, 신자들은 성사들의 전례적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지식과 해석과 이해를 넓힌다. 「전례로 살펴본 일곱 성사」는 일곱 성사의 전례 기도문에서 드러나는 성경과 교회 가르침인 교리를 밝혀내고, 신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책은 성사별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성사의 예식 구조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중요한 전례 본문을 살펴본 뒤 그에 따른 교리를 도출한다. 전례가 성경을 어떻게 활용하고 해석하는지, 교도권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견진·성체·병자·성품성사 등과 관련해 현재 라틴 전례 체계에서 여러 서품 직무자의 공동집전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제시한다. “세례수 축복 기도는 세례성사와 세례받은 이의 정체성에 대한 풍부한 교리를 담고 있다. 세례는 새 창조와 새 생명, 새로운 자손의 탄생을 위한 죄의 멸망과 죄에 대한 죽음의 신비이며 예배에서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우주적 신비이다. (중략) 이 모든 것은 물의 표지로 이러한 의미와 가치를 통합하는 성령에 의해 실현된다.”(‘세례성사’ 중에서) “고해성사에 관한 교리와 화해의 교회적 차원을 설명하는 지침에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변증법적인 이 두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교회는 그 자체로 거룩하다. 또한 교회는 그 공동체에 죄인들을 포함한다. 교회가 거룩하기 때문에 교회는 죄의 성사적 용서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이며, 이 성사를 준비하고 성사를 거행하고 성사에 뒤따르는 모든 일을 위한 도구이다. 교회가 죄인을 품고 있는 한, 교회는 지속적인 회개와 참회를 통해 달성되는 정화가 필요하다.”(‘고해성사’ 중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저자 주세페 페라로(1932~2013, 예수회) 신부는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레고리안대학 등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오랫동안 교황청 경신성사부의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2.31

성모 마리아의 집, 사도 성 요한의 무덤 에페소 (02)[월간 꿈 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0) 성모 마리아의 집 출처: 월간 꿈CUM ‘사랑과 우정 사이.’ 남녀간 사랑이라는 좁은 의미의 사랑은 분명 우정과 다르다. 하지만 종교적 사랑, 인류애, 환경 사랑 등 큰 틀에서의 사랑은 그 안에 우정을 품는다. ‘전설과 역사 사이.’ 인간적 욕망을 표현한 좁은 의미의 전설은 분명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하지만 큰 틀에서의 신앙적 전설은 그 안에 신앙 역사를 품는다. 전설의 시작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 ‘예수의 유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6-27) 성경에는 예수가 사랑한 제자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2000년 전부터 신앙인들은 그 제자가 사도 요한이라고 믿었다! 전설은 계속된다. 요한은 예수의 유언을 지킨다.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집에 마리아를 잠시 모신 뒤, 3000km 떨어진 에페소로 거처를 옮긴다. 스테파노 순교 사건 등 유대인들의 박해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예루살렘에서 마리아를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설은 에페소 야외극장에서 항구 쪽으로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집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요한이 마리아를 모셨다고 한다. 이 집에 살았던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세대에 세대를 거쳐 이어졌고, 대략 10세대 후 자손들이 그 집터 위에 마리아를 기억하는 성당을 지었다. 서기 431년 에페소 공의회 때 교부들이 이 성당에 모여 회의를 했다. 100년 후, 유스티아누스 황제(527~565 재위)는 마리아를 기억하기에 기존 성당이 소박하다고 생각했는지, 대규모 증축 공사를 했다. 이쯤 되면 이 이야기가 전설인지 사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사도 성 요한의 무덤 성 요한 출처: 월간 꿈CUM 전설은 계속된다. 에페소의 붐비는 시장통(현 에페소 성모 대성당 자리)에서 마리아를 모시던 요한이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한다. 그렇게 이사간 곳이 에페소 앞산이다. 지금도 에페소 앞산 남서쪽 능선에 마리아가 살던 집이 전설로 내려온다. 소아시아와 유럽의 신앙인들은 마리아가 이 집에서 노년까지 살다가 승천했다고 믿는다. 전설을 믿는다. 그렇다면 오늘 날 ‘마리아의 집’은 어떻게 발굴되었을까. 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4년 독일인 안나 카타리나 엠메리크 수녀(Emmerrick, 1774~1824, 아우구스티누스회)를 복자품에 올렸다. 이 수녀는 불의의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된 후 12년 동안 침대에서 생활했는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이 수녀가 직접 본 환시 ‘예수 수난 사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다. 그런데 이 수녀가 본 환시는 예수 수난뿐이 아니었다. 수녀는 환시 속에서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승천할 때까지 모든 것을 생생히 보았다. 수녀는 자신이 본 모든 것을 당대 최고의 시인 브렌타노(Clemens Brentano, 1778~1842)에게 말했고, 시인은 수녀의 증언을 바탕으로 ‘동정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을 1852년 펴냈다. 성 요한 대성당 유적 출처: 월간 꿈CUM 이 책에 마리아의 집과 주변 풍경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엠메리크 수녀는 독일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일이 없었다), 이를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1878년 앙리 융이라는 프랑스인 신부가 이 책을 들고 에페소 일대를 샅샅이 뒤졌고, 1891년 엠메리크 수녀가 묘사한 곳과 똑같은 장소를 찾아냈다. 이후 1961년 교황 요한 23세가 ‘에페소 성모 마리아의 집’을 공식 성지로 선포했다. 이어 1967년에 바오로 6세 교황이, 1979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06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이곳을 찾아 기도했다. 성모 마리아의 집이 에페소 앞산에 있다면, 에페소 뒷산 쉬린제 마을에는 사도 성 요한의 무덤, 그리고 그 무덤 위에 지어진 성 요한 대성당(Basilica Of Saint John)이 있다. 신자들이 종교 자유를 얻은 직후 4세기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작은 목조 성당을 세웠는데, 200여년 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그 자리에 대성당을 건립했다. 이 대성당이 성 요한 대성당이다. 발굴을 통해 드러난 성 요한 대성당은 1500년 전 건물이라고는 그 규모가 믿기 힘들 정도다. 길이만 110m에 2층 구조인데, 세례당, 지하 경당 등을 갖추고 있었다. 서기 557년 지진으로 일부가 부서지고 그 뒤 654년 이슬람 침공에 의해 파괴됐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요한 대성당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고 성으로 들어가는 3개의 문을 만들었는데 오늘날에는 ‘추적의 문’(Pursuit Gate, 박해의 문)만 남아있다. 이후 1300년대에 찾아온 대규모 지진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성당과 성벽이 무너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이 지역이 이슬람 세력 하에 들어가면서 재건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요한 대성당은 제대가 있었던 부분의 무덤과 기둥 일부, 대성당 터 일부만 남아있다.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성지로 선포했다. 오늘도 전 세계 수많은 신앙인이 에페소를 찾는다. 그들은 전설로 내려오는 성모 마리아의 집, 성모 마리아 대성당 유적, 성 요한의 무덤, 성 요한 대성당 유적을 찾아 무릎 꿇고 기도한다. 기도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행위다. 그 현실의 행위가 쌓이면 역사가 된다. 이렇게 전설은 역사가 됐다. 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