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교구 설정 80돌 기획 - 고원익 평양교구 신우회장의 '사부곡'아! 꿈에서도 그리던 그 이름, 아버지...▲월남 때 생이별한 자신의 부친(뒷줄 가운데)과 본당 주임 사제 등 모습이 담긴 1935년 3월께 중화본당 사진을 들어보이며 감회에 젖은 고원익 평양교구 신우회장. ▲1935년 7월께 촬영한 사진(아래). 중화본당 4대(1935. 7~39. 1) 주임으로 사목한 강영걸(왼쪽) 신부와 메리놀외방전교회원 기본스 신부가 앉아 있고, 그 뒤로 본당 어린이들과 남녀 어른들이 함께하고 있다. 네모 점선 안에 중화본당 복사시절 고원익(위 확대한 부분 아래 둥근 점선) 회장과 큰 형 원근(위 둥근 점선, 2001년 선종)씨가 보인다. 60여년 만에 그리운 아버지 얼굴을 사진을 통해 접한 고원익(마티아) 평양교구 신우회장 눈가엔 눈물이 맺힌다. 어느덧 팔순을 눈 앞에 둔 희수(喜壽, 77살), 그 나이에 빛 바랜 사진을 통해서나마 접한 중화본당 유치원 코흘리개 동무들과의 기막힌 만남. 아픔과 설움, 가슴에 맺힌 그리움이 교차한다. 평양교구 설정 80돌을 기념, 평화신문이 기획한 특집연재에서 평생을 가슴에 담고 삭인 가족과 친구들 얼굴을 막 확인한 터였다. 머리카락이 사뭇 희끗히끗해진 고 회장은 1935년 7월께 촬영된 중화본당 공동체 사진(평화신문 1월21일자)을 보자마자 돌아가셨을 아버지, 형, 친구들을 금세 찾아냈다.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절이었지만 사진을 보니 '신앙의 꽃'을 피우던 10대 시절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당시엔 멀리에 사는 공소 신자들도 턱수염에 고드름이 달라붙는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미사를 거르지 않았지요. 북에 두고 온 동무들도 이런 신앙을 아직도 간직하며 살아있을 것입니다." 동강난 한반도. 그 허리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갈려 60성상 신앙의 불을 끄지 않았을 형제들을 생각하는 그의 눈시울이 이내 붉어진다. 고 회장의 부친 고인덕(인노첸시오, 1896~ ?)옹은 1927년 중화본당 설정 당시 초대회장을 맡아 자신의 집을 공소로 쓰도록 했던 인물. 고옹의 아들 4형제 중 셋은 교회에 대한 공산정권의 박해를 피해 1946년 1월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붙잡혀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월남에 성공했지만 부친과 막내는 북에 남았다. "형과 같이 중화본당 복사를 할 때 메리놀회 고 신부님이 절대 신사참배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던게 생각이 나네요. 그래서 저와 형은 신사참배를 하라는 학교의 지시를 거부하다가 의자를 들고 종일토록 벌을 서고 결국엔 형이 퇴학을 당해 멀리 평양성모보통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고 회장은 당시 중화본당은 사제에 대한 순명과 천주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찬 공동체였다고 회고했다. "70년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신부님은 어렵기만하고 판공 때 외우는 것이 많아 신부님께 종아리 맞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태중 교우라지만 첫영성체를 하려면 교리공부가 아주 엄격해 주요기도 12단과 요리문답, 주요 성경내용을 외워야 했지요. 너무 길어서 때론 회초리도 맞아가며 교리를 배웠어요." 그러나 그런 순명의식과 투철한 믿음이 고 옹을 비롯한 중화본당 공동체의 신앙을 굳세게 해준 원동력이 됐다. "요즘엔 꿈만 꾸면 고향 성당과 친구들 모습이 보입니다. 60년전 고향, 그 성당이며 그 자리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50여명이나 되던 평양교구 신우회 형제들이 이제 15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덤으로 살지만 아직도 고향에 갈 꿈을 버리지 않고 삽니다. 실향 1세대들이 죽기 전에 꼭 통일이 돼 성당터를 확인하고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늘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전대식 기자 jfaco510@pbc.co.krcpbc2007.02.01

그리스도교의 생명 이해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인간 생명은 소중하다''인간은 존엄하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유엔 인권선언문에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생명을 위한 종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 6)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교는 생명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 그 가운데서 특히 인간 생명을 신성하게 여긴다. 어떤 환경운동가들은 인간 생명뿐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도 소중하다고, 심지어 인간 생명과 똑같이 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 생명이 다른 모든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 31). 생명에 대한 과학과 신학의 접근 방법은 다르다. 과학은 생명 현상을 관찰하지만 신학은 생명의 의미를 묻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러한 종교와 과학이 상호의존적이라고 했다. 과학의 특성 또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할 수 있으면 그게 옳든 그르든 하고야 만다. 원자폭탄 개발이 그러했고, 최근 황우석 박사 연구도 그러한 것이었다. 구약성경에도 생명은 소중한 것으로 나온다. 생명은 하느님에게 속해 있으 며,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이 하느님 모상이기에 인간 생명은 더욱 귀한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았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한 복음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다. 예수는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라고 했다. 인간을 구원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다. 예수가 영원한 생명을 중시했다고 해서 현세 생명을 무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는 병자를 치유했고, 배고픈 이들을 위해 빵의 기적을 베풀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며 생명을 구하는 데 유다교의 안식일법을 어기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예수는 인간 생명을 왜 그토록 소중하게 여긴 것일까. 인간은 바로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가 가르친 인간 사랑의 바탕이자 핵심이다. 예수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도 예외없이 하느님의 귀하디 귀한 자녀들이다. 옳거나 그르거나, 착하거나 악하거나, 남자나 여자나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질 않는다. 인간이 보기에 아무리 하잘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에게는 똑같이 소중한 자녀들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살인을 반대한다. 낙태와 안락사,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인간생명의 존엄성에는 남녀노소, 장애자, 태아, 배아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오늘날 일부 과학자들은 수정된 후 14일이 지나지 않은 인간생명은 온전한 생명이 아니라며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생명 여부를 특정 일수로 따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인간 생명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느님이 주신 것이다. 예수님 말씀은 준엄하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편이 낫다."(마태 18, 6) 인간은 '하느님 모상'으로서, '하느님 자녀'로서 영원하신 하느님 생명에 초대받은 존재이다. 하느님으로부터 긍정된 존재이자 사랑받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분께 초대받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에도 인간의 현세 생명은 매우 소중하다. 또한 단 한번의 인생, 곧 삶의 유일회성 역시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인간 생명을 구하는 일에 헌신했다. 마침내는 자신의 목숨을 인간을 위해 바치셨다.cpbc2006.08.30

33- 십자가의 길 기도 유래와 의미가 궁금합니다(상)예루살렘에서 14처를 따라 가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는 순례자들. 십자가의 길 기도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나요? ------------------------------------------- 성당 안에 들어가면 보통 양쪽 벽면에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는 모습부터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모습, 십자가에 못박히는 모습, 무덤에 묻히시는 장면 등이 조각이나 그림, 또는 색유리화 등으로 묘사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는 14개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를 십자가의 길 14처라고 하지요. 신자들은 이 14처를 한 처씩 찾아 그 아래에서 기도를 바치는데 이 기도를 십자가의 길 기도라고 부릅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길을 따라가면서 바치는 기도여서 신자들이 특히 사순시기에 개인적으로나 단체로 많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물론 십자가의 길은 사순시기에만 바치는 기도가 아니라 다른 시기에도 얼마든지 바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 유래와 이 기도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 유래 성경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바위로 깎아 만든 무덤, 곧 돌무덤에 묻히셨다고 전합니다(루카 23,53). 그러나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면서 예수님 무덤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으로 그리스도교가 자유를 얻게 되자 예수님 무덤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습니다. 특히 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는 예수님 무덤을 찾는 데 열성적이었습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헬레나 성녀는 꿈에 예수님 무덤이 땅 속에 묻혀 있는데 그 위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세워져 있다는 말을 듣고는 무덤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 성당이 예루살렘의 예수님 무덤 성당입니다. 예수님 무덤 자리에 성당이 세워지자 사람들은 자연히 이 무덤 성당을 찾아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기에 예수님 무덤 성당은 특히 참회하는 고행자들의 순례지가 됐습니다. 여기에는 사제들이 중죄를 지은 이들에게 예루살렘 성지순례, 특히 예수님 수난과 관련된 장소들을 순례하라는 보속을 준 영향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순례의 중심은 예수님 무덤 성당이었습니다. 그곳은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곳이기도 하니까요. 예루살렘을 순례해 예수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것 자체가 은총의 체험이었지만 또한 성지를 순례하고 온 이들은 전대사를 받는 특전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교통편이 발달한 것도 아닌 중세기에 예루살렘 성지순례는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사람들, 신분이 높은 사람들, 건강한 사람들만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하고 전대사를 받는다는 것은 공평치 못해 보였지요. 그래서 일부 수도회들을 비롯해서 교회 단체들은 유럽 여러 도시에 예루살렘 예수님 무덤 성당을 본딴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성당에는 조각이나 그림 등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관련된 장소들을 표시했지요. 이제는 굳이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성당들이 있는 도시들로 가서도 예수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영적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가난한 농부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은 또 다른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각 성당마다 예수님 수난의 길을 묵상할 수 있도록 성당 안에 나무 십자가로 수난과 관련된 주요한 지점(처)들을 표시해 놓은 것입니다. 처는 조금씩 차이가 있긴 했지만 보통 14처로 이뤄졌습니다. 이때가 14세기 쯤이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교황청에 청원을 해 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하는 이들이 전대사를 얻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자들은 예루살렘을 가지 않아도, 또 큰 도시에 가서 순례하지 않아도 가까운 성당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전대사를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십자가의 길을 오늘날처럼 14처로 고정하면서 교구 직권자(교구장 주교나 또는 교구장에게서 위임을 받은 책임자, 예컨대 총대리)의 허가를 얻어 합당한 방법으로 세운 14처가 있는 성당이나 경당, 순례지 등지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때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계속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7.02.28

- 8월 ▨경향잡지='경향돋보기'를 통해 △성모공경의 길잡이 올바른 성모신심 △여름캠프를 앞둔 보좌신부의 단상 △학교급식으로 들여다본 오늘 △바람직한 교정사목을 위해 △해양사목의 역사와 의미 등을 다뤘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300원) ▨내친구들=이번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돼 유성식(마태오) 사장 수사의 폐간에 따른 인사 말씀과 기획동화 '세상의 물을 가져다준 달팽이 소녀'(서진선 그림, 이정환 엮음)를 실었다. 총 9편에 이르는 연재만화는 모두 이번호로 종결되지만 마무리되지 않는 만화는 인터넷 누리방(www. myfriends.or.kr)을 통해 계속 만날 수 있다. (다솜/3000원) ▨레지오마리애=특집으로 '아름다운 사람'(정지풍 대전교구 성거산성지 주임 신부, 유병란, 안명현, 신범수)을 다뤘고, '내 인생의 레지오'(양철화 요셉, 미국 성 크리스토퍼한인본당 '구세주의 어머니' 쁘레시디움 단원) 이야기를 들어봤다.(한국세나뚜스협의회/1800원) ▨사목='성전건축'을 특집으로 △주님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한국교회 성전 건축의 현주소와 미래를 위한 제언 △성전 건축에서 본당 사제의 역할 등 9편의 글을 게재했다. 이밖에 본당 건축위원회 역할과 기능, 성전 리모델링, 친환경 교회건축, 지역공동체와 성전 건축 등 문제도 아울러 다뤘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4000원) ▨성모기사=특별기고로 '13호 아사감방과 예수님의 골고타 언덕'을 싣고, '한국 순교성지를 찾아서' 꼭지에선 삼성산 와고개를 소개했다. 꼴베 성인 대축일(14일)을 맞아 성모기사회에서 새로 제작한 성모승천대축일과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대축일을 위한 9일 기도문을 실었다.(성모기사회/1000원, 후원회원 무료) ▨생활성서='순례'를 특집으로 △하느님의 특별한 초대 △그리스도교 순례의 역사 △삼소회, 성자들의 자취를 따라 걷다 △"성지는 마음 속 또 다른 성지입니다"등을 게재했다.(생활성서사/3900원) ▨성서와함께='새로봄' 꼭지에선 '생명의 터'를 주제로 생태계의 현장인 바다와 갯벌을 조명했다. △갯벌과의 만남 △새만금 방조제 끝막이 공사를 바라보며 △갯벌 생태계 복원을 위한 생태학적 원리 등이다. 백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과)가 집필하는 '문자의 기원과 성경' 연작을 새로 시작해 첫회로 '진리는 믿음이다'를 내보냈다.(성서와함께/3000원) ▨소년=가톨릭출판사가 걸어온 길 120년 발자취를 조명하고 '신나는 게임세상' 꼭지에선 온몸으로 즐기는 비디오 게임을 소개했다. '우리가 만들어요' '아기자기 한마당' '마음 키우기'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글잔치 한마당' 등 알찬 꼭지들로 가득하다.(가톨릭출판사/4000원) ▨야곱의우물=표지인물로 노래와 함께하는 나그네 여정을 걸어온 원로가수 최희준(디모테오)씨를 인터뷰했고, '성경 속 하느님' 꼭지에선 '한결 같으신 분 하느님'을 다뤘다. '「다빈치 코드」 유감'도 읽어볼 만하다.(바오로딸/2000원) ▨착한이웃='내 삶의 향기' 꼭지에선 △언제나 사랑의 문제가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일과 쉬는 것 △마지막 사진 △내 곁에 머무는 고향 △빈 마음으로 길을 떠나라 △포토 포엠-내 쉴 집이 그곳에 있었네 △고독, 그리고 행복 등을 게재했다.(착한이웃/3000원) ▨참소중한당신='여행지에서 만나는 하느님'을 특집 주제로 △관광사목의 빠른 정착을 위해 △찜찜하지 않게 주일 지키기 △하나여서 너무 좋은 것 등을 실었다.(에우안겔리온/2900원) 오세택 기자cpbc2006.08.02

해외 봉사, 그 가치를 찾아서김원형(바오로, 서울 사당동본당)청년 빈첸시오 회원들이 방글라데시 사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필자. 빈첸시오 한국이사회 소속 청년 빈첸시오 회원 13명은 지난해 12월16~23일 방글라데시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서울, 인천, 대전, 청주에서 모인 청년들은 7박8일간 빈민촌 방문, 집짓기 등을 전개하며 가난하지만 행복한 이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다음은 봉사활동에 참여한 김원형(바오로, 서울 사당동본당)씨 체험기다. -------------------------------------------------- 내가 처음 방문했던 슬럼가는 집 자체가 형태를 갖추지도 못하고 있었다. 일부는 지붕과 벽이 허물어져서 철거 중인 폐허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길거리에는 온갖 쓰레기가 바다의 모래알만큼 많이 널부러져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군데군데 짐승 배설물이 섞이고 특유의 카레 냄새와 섞여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치안마저 전혀 보장되지 않는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차림새는 보통 대한민국 빈민들 차림새를 부자인양 느끼게 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허름한 집 한 가운데에서는 흥겨운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는 젊은이들 모습을 보았다. 순박한 아이들이 우리들을 쫓아다니며 미소를 짓고, 어른들도 우리가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나름대로 각자 포즈를 지어주며 웃어주었다. 사실, 우리가 실질적 봉사활동을 펼친 곳은 지독한 가난에 빠져 있는 슬럼가가 아니라, 어느 정도 생활수준이 있는 가톨릭 신자 마을이었다. 물론 그곳 마을 사람들 역시 우리나라 빈민들보다 그 이하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내가 처음 생각했던 고통스런 모습이 아니었던가? 왜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서도 활짝 웃고 있었던가? 이런 현실에서 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곳 사람들을 돕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국내에서는 갖출 것을 다 갖추고도 고통스럽게 느끼며 죽어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내가 이런 곳에 있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고민 속에서 꿈을 꾸었다. "아들아, 네가 나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느냐!" 나는 크게 느꼈다. 국내에 있든, 해외에 있든 내가 나보다 못한 사람, 또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각자 아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인간인지에 대해 생각했어야 했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가 과연 해외 봉사를 할 가치가 있었던가? 데레사 수녀께서도 큰 봉사보다는 자기 주위에서 가까운 나눔을 찾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성경에서 우리는 또 다른 시점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사도들은 자기가 근거하는 이스라엘 근처에서 그 신앙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떨어진 신앙 저편까지 나아가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했던 것이다. 분명 국내에서의 봉사도 중요하지만, 누군가가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해외 지원율이 낮은 국가 중 하나이며, 한국전쟁 이래 해외로부터 가장 많은 지원을 받은 나라 중 하나이다. 아직 젊고 가능성 있는 내가 하느님 나라의 대표로서, 대한민국의 대표로서 자부심을 갖고, 나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 제 존재는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은 존재이지만, 당신 안에서 당신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이끌어주소서. 아멘."cpbc2007.01.10

복음화율 46% 옛 명성 회복 다짐청주교구 영동본당 설정 50돌 감사미사, 기념행사장봉훈 청주교구장 주교(가운데) 등이 10일 영신중 예지관에서 떡을 자르며 영동본당 설정 50돌을 축하하고 있다. 감과 포도, 국내 첫 포도주 생산지로 유명한 고장, 충북 영동군. 그 한복판에서 기도와 열심으로 복음화 여정을 걸어온 청주교구 영동본당(주임 김성규 신부)이 본당 설정 50돌을 맞아 10일 교구장 장봉훈 주교 주례로 5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새로운 복음화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날 미사엔 특히 영동본당 설립의 초석이 됐던 메리놀외방전교회에서 함제도(메리놀회 한국지부장) 신부, 방 로베르토(9대 주임) 신부 등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장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이제 100주년을 향해 나아갈 영동본당 공동체는 특별히 50주년을 맞아 고령사회에 접어든 지역사회 상황을 감안, 어르신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뇌하고 계획을 세워나가길 바란다"며 특별히 선교 공동체가 돼 줄 것을 당부했다. 미사에 이은 기념식에서 여만구(니코메데스)ㆍ이원훈(루도비코)ㆍ최송(마루타스)씨 등이 김성규 주임 신부에게서 공로패를 받았다. 김 신부는 "50주년을 함께해 주시기 위해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지난 1967년 영동군 통계에서 당시 군내 인구 1만여명 중 천주교 신자가 4610명에 이르렀던 것을 상기하고, "앞으로 전 신자공동체와 함께 전성기를 이뤄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50년을 보낸 영동본당 공동체의 50돌 기념행사는 '지역에 하느님 사랑을 전하는 공동체'를 주제로 외적 사업보다는 공동체의 내적 성장을 위한 위한 기도운동과 성경 공부에 치중했다는 점이 특징. 묵주기도 100만단 봉헌을 통해 본당 설정 50주년을 감사하면서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한 내적 기반을 마련하고 100일기도로 새벽미사를 봉헌하면서 성경 공부에 돌입했다. 또 본당 빈첸시오회를 통해 충청북도에서 전개하는 사회복지 결연 릴레이에 참여하고 물덴동산 요셉의 집 등 시설에서 마사지 및 이ㆍ미용, 청소 봉사활동을 벌이는 한편 어려운 이웃 38가정을 돕고 있다. 1956년 6월1일 옥천본당에서 분리, 설정된 영동본당은 이듬해 황간본당을, 1959년엔 청산본당을, 1995년엔 학산본당을 분가하는 등 군 내 복음화의 산실이 돼 왔다. 그간 최광조ㆍ이준연ㆍ정남규 신부 등 3명의 사제를, 최경희(마르가리타, 예수성심시녀회) 수녀 등 8명의 수도자를 배출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6.06.15
서울대교구, 수원교구, 의정부교구, 인천교구 ▨서울대교구 ◇난곡동 : 수의 제작 및 염가 판매(02-863-8405) ◇세종로 : V.I.S(청년봉사단체) 필리핀 현장체험 봉사자 모집 ◇구로3동 : 레지오 마리애 '사랑의 모후' 꾸리아 신설 ◇여의도 : 인순이씨 잠비아 어린이 돕기 사랑의 징검다리 콘서트(4/26) ◇반포 : 반디회(디지털 카메라 동호회) 회원 모집 ◇상도동 : 미션수행 경진대회(6월말까지 수행) ◇포이동 : 가두선교 발대식(4/23) 및 1차 가두선교(5/6까지) ◇시흥백산 : 시흥5동본당으로 이름 변경 ▨인천교구 ◇오정동 : 60살 이상 어르신 효도관광(5/6 충남 덕산온천 및 수덕사) ◇용현5동 : 청년회 산행 및 성지순례(5/14 강화 마니산, 갑곶성지) ◇대야동 : 혼인 갱신식 및 부부 피정(5/13~14 성 안드레아 피정의 집) ◇여월동 : 어르신 교리반 모집(70살 이상 어르신, 3개월 교리+세례 후 3개월 성경공부) ◇상동 : 티 없으신 어머니 Pr. 1000차 주회 ◇하성 : 성지순례 및 야유회(5/14, 충남 보령 갈매못 성지, 70살 이상 어르신 무료) ◇신천 : 유소년 및 청소년 축구교실 개설 ◇삼정동 : 65살 이상 어르신 경로 나들이(5/9 강화 일만위 순교자 현양성지와 갑곶성지) ▨수원교구 ◇곤지암 : 한글 서예 교실 개강 ◇구미동 : 거룩한 독서 특강(매주 토) ◇과천 :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위한 묵주기도 ◇고등동 : 본당의 날 행사(4/30) ◇꽃뫼 : 고3 첫 기도모임(4/30) ◇본오동 : 30대 청년 성경공부(매주 토) ◇산본 : 사물놀이 수업(매주 화) ◇중앙 : 마라톤 동호회원 모집 ▨의정부교구 ◇3, 4지구 : 축구대회(4/30, 동두천공설운동장) ◇창현 : 새성전 착공미사(4/30) ◇의정부1동 : 우리농 농산물 주말장터 개장(5/7) ◇천마 : 본당 전신자 야유회(5/14) ◇광적 : 유치원~초등학교 6학년 대상 미술 무료교육, 사무실 접수 ◇주엽 : 어르신들을 위한 건강강좌(4/30 소성전) ◇정발산 : 가톨릭 신학대 견학(5/8)cpbc2006.04.26

대전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돌 기념 복음화 대회성모님 본받아 '희망의 표징'으로 거듭나자▲천안 유관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전교구 레지오 도입 50주년 복음화대회에 참여한 단원 7000여명이 경축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경축행사 중 어린이 단원들이 부채춤 공연을 하고 있다. ▲축하연에서 떡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심대평 의원, 한광석 신부, 에밀 폴 체릭 대주교, 유흥식 주교, 이석구 단장(왼쪽부터). ▲단원들이 손을 들고 대전교구 레지오 도입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마음가짐인 `우리들의 다짐`을 선서하고 있다. ▲50주년 기념 복음화대회에 참여한 단원들이 경축미사에서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 바치고 있다. 5일 천안시 유관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전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돌 기념 복음화대회는 교구 레지오 단원 수의 절반에 가까운 7000여 명이 모여 지난 반세기 동안 성모님의 군사로서 활약을 되돌아보며, 앞으로도 교구 중심으로 활동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2005년 10월부터 지금까지 레지오 도입 5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며 실천운동을 벌여온 교구 평화의 모후 레지아는 2008년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아 내년까지 지속적으로 이 실천운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경축미사 강론에서 "레지오 마리애는 기도와 활동이 조화를 이룬 열성적인 단체로 단원들의 기도와 활동은 하느님의 뜻으로 알찬 열매를 맺을 것"이라며 단원들 활동을 격려했다. 이날 행사에는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와 사제단, 국민중심당 심대평(임마누엘) 의원 등이 참석했으며, 어린이날을 맞아 부모 단원을 따라온 200여 명의 어린이 레지오 단원이 축하공연과 성극 등에 참여해 화기애애한 잔칫집 분위기를 자아냈다. ○…신명나는 풍물단 연주를 선두로 교구기와 레지아기, 13개 꼬미시움과 꾸리아기 입장으로 막을 올린 이날 행사는 경축행사와 경축미사로 이어졌다. 관광버스 수십 대에 나눠타고 온 단원들은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묵주기도를 바치며 대회를 준비했다. 미사 전 봉헌에서는 한복을 곱게 입은 김민경(소화데레사)ㆍ원해인(루치아) 어린이 가 성인 단원과 함께 꽃다발과 초, 묵주기도 3000만단 봉헌문 족자, 단원들이 이어 쓴 성경 필사본 등을 봉헌해 눈길을 끌기도. ○…2부 경축행사에서는 단원들과 지역 연극인들이 성극 '성모님 대전교구 방문기'를 공연해 인기를 독차지. 레지오 마리애가 성모님 '군대'라는 것을 풍자해 북한군으로 분장한 출연진들은 북한군 장교의 구령과 질문에 맞춰 씩씩하게 대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대회 장소가 유관순 체육관인 점을 이용, 유관순 열사도 등장해 단원들 배꼽을 뺐다. 성극 중에는 한복을 입은 성모님이 모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천사로 분장한 여성 이주민들과 함께 등장해 눈길을 끌었으며, 어린이들 부채춤 공연이 이어지자 7000여 단원들은 힘찬 박수로 호응. 시상식에서는 옥수봉(루카, 탄방동본당) 초대 쁘레시디움 간부와 박승록(아우구스티노)ㆍ서우평(라파엘)ㆍ양상환(시몬) 단장이 공로상을 받았고 단체 선교상은 공주 신관동본당 '은총의 모후'가 수상했다. 개인 선교상은 정순영(데레사)씨를 비롯한 5명이, 모범단원상은 40년 이상 장기근속한 김금옥(마틸다) 단원 등 23명에게 돌아갔다.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는 축사에서 "하느님과 성모님 자녀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사랑이 죄와 죽음보다 강하고, 인류는 하느님 안에서 미래를 갖는다는 사실을 세상에 증거해달라"며 "레지오 단원 모두는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절망과 낙담으로 만연한 현대인을 위해 '희망의 표징'이 돼달라"고 당부. 평화의 모후 레지아 이석구(대건 안드레아) 단장은 기념사에서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단원들이 새로운 마음을 갖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이 됐으면 한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내년 교구 설정 60주년까지 레지오 마리애 정신과 실천사항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 팽종섭(그레고리오) 서울 세나뚜스 단장은 축사에서 "지난 50년간 레지오 마리애는 한국교회 내 꼭 필요한 존재로 충실히 사명을 수행하며 성장해왔다"면서 "우리나라 중심 도시인 대전교구 레지오 단원들의 활기찬 활동은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위상을 끌어올렸다"고 축하. ○…3부 경축미사에서는 시각장애인 단원 박송(야고보)씨가 제1독서를 봉독, 참여한 단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미사 예물봉헌식에서는 교구 관할지역에서 생산된 담배와 김, 사과, 호두, 봉숭아, 쌀 등 지역 특산물을 봉헌하기도. 1957년 3월 논산 부창동본당 '천지의 모후' 쁘레시디움 창단으로 시작한 대전교구 레지오는 1987년 8월 30일 평화의 모후 레지아로 승격했다. 현재 1747개 쁘레시디움과 137개 꾸리아, 1만5984명의 활동단원, 1만2825명의 협조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정완영 명예기자 0espresso@pbc.co.kr [첫 쁘레시디움 창단 주역 옥수봉 할아버지 인터뷰] "작은 겨자씨가 이렇게 큰 단체로 성장할 줄은 몰랐습니다." 대전교구 첫 쁘레시디움인 논산 부창동본당 천지의 모후 쁘레시디움 간부로 활동하다가 1958년 대전지역에 처음으로 쁘레시디움(대흥동본당 치명자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설립하는데 공헌, 이날 공로상을 받은 옥수봉(루카, 90, 탄방동본당)옹은 감개무량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 단원으로 활동해온 그의 역사가 대전지역 레지오 역사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레지오 단원도 현재 단원과 마찬가지로 선교와 쉬는신자 회두, 단원모집이 주된 활동이었다. 초창기에는 쁘레시디움이 설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개에서 3개로 분단이 됐을 정도로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쁘레시디움 설립 후 1년쯤 지나자 상급평의회인 꾸리아도 설립됐을 정도다. "손자 옥순보(정림동 보좌) 신부가 3년 전 사제품을 받았을 때가 가장 기뻤다"는 옥씨는 성모님의 도움으로 손자가 사제가 됐다며 모든 공로를 성모님께로 돌렸다. 고령으로 건강이 나빠져 최근 3개월간 주회합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그는 "요즘 젊은 레지오 단원들은 예전보다 너무 쉽게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따끔하게 충고한 뒤 "도입 50주년을 맞아 단원들이 심기일전해 기본에 충실했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정완영 명예기자cpbc2007.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