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수원교구, 의정부교구, 인천교구 ▨서울대교구 ◇창4동 : 성모성심 유소년축구단 모집 ◇쌍문동 : 청년주보 군입대 청년신자에게 발송 ◇마장동 : 신바람나는 '하상 성경대학'개교 ◇개봉동 : 봄철 성서 특별강좌(3월부터 격주로 6차례) ◇길동 : 건강한 가족 공동체 교육 실시 ◇반포4동 : 부모님을 위한 기도 모임(3/26) ◇압구정1동 : '참 부모가 되는 길' 프로그램 실시(3/26) ◇세종로 : 본당 60주년 사진전(4월 한달) ◇해방촌 : 가톨릭성모병원 이동진료(3/29) ◇수색 : 일본어 회화 교실 개강 ◇역촌동 : '하늘 한 조각' 어린이 집 개원 ▨인천교구 ◇연수 : 성령 세미나(4/20~6/9, 8주간 매주 목 오후 8시) ◇원미동 : 부활 맞이 한마음 척사대회(4/16) ◇숭의동 : 선교운동(체험) 사례 공모(~4/12) ◇고잔 : 전 신자 사순 피정(3/26, 4/2) ◇부개동 : 아버지 피정(3/25~26, 미리내 묵상의 집) ▨수원교구 ◇평촌 : 청년 강연회(26일) ◇화서 : 영상으로 드리는 십자가의 길 기도(24일) ◇정자 : 청년 기초 신앙 성경 공부(매 주일미사 후) ◇진사리 : 전 신자 걷기대회(26일) ▨의정부교구 ◇운정 : 동패리 공소 주말 농장 분양 신청, 평당 1만원, 019-262-5608 ◇의정부1동 : 한식 합동 위령미사 (4/5 오전 6시, 10시) ◇금곡 : 본당 홈페이지 개통, http://www.kumgok.or.kr ◇능곡 : 혈압, 당뇨 검사 (매주 목 10시 미사 후) ◇주엽동 : 가톨릭 마라톤 동호회 초보회원 모집 ◇양주백석 : 사순 전신자 음악피정 (4/9 교중미사 후) ◇청학 : 재활용품 수거(우유팩, 신문지, 파지, 고철, 의류 등)cpbc2006.03.23
2학기 영성, 교양 교육강좌 수강생 모집가톨릭교리신학원, 29일부터 매주 화, 수요일 4개 강좌 개설 가톨릭교리신학원(원장 이기락 신부, 서울 혜화동 소재)은 2006년도 2학기 영성ㆍ교양 교육강좌 수강생을 모집한다. 29일 개강하는 영성강좌는 '수도회와 영성' 및 '순례 영성' 두 과목. 오상선(작은 형제회)ㆍ박병해(가르멜 수도회)ㆍ심종혁(예수회)ㆍ양승국(살레시오회) 신부와 강운자(성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 등이 강사로 나서는 '수도회와 영성'은 각 수도회의 창립 배경과 창설자 영성을 살펴보고, 수도회들이 시대적 위기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지혜를 배우는 강좌이다. 11월28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서울 혜화동성당에서 마련되며, 수강료는 2만원이다. 교회가 속죄 방법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성지순례가 지닌 인간학적ㆍ신학적ㆍ영성적 의미를 살펴보는 '순례 영성'은 29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4시 교리신학원에서 개설되며, 강좌가 끝나면 겨울방학을 이용해 스페인 성지를 순례할 예정이다. 수강료는 14만원. 교양강좌는 중국 도가(道家)철학의 이상적 인간상과 수양론을 그리스도교 영성과 비교 분석하는 '도가 수양론과 그리스도교 영성'(이향만 교수, 성균관대), 그리스어로 쓰여진 신약성경을 읽기 위해 그리스어 기초 어휘와 문법을 공부하는 '성서 그리스어'(백운철 신부, 가톨릭대 신학대)가 있다. 30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와 4시 신학원에서 진행되며, 수강료는 각 14만원이다. 문의 : 02-747-8501, ci.catholic.ac.kr.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 책 특집 기사 관계로 연재물 '시가 있는 평화마을' 이번 주 쉽니다.cpbc2006.08.02
![[교회상식 교리상식]2- 십자가와 십자성호에 대해 알고 싶어요](//cpbc.co.kr/CMS/newspaper/2007/03/rc/45145_1.0_titleImage_1.jpg)
[교회상식 교리상식]2- 십자가와 십자성호에 대해 알고 싶어요 십자가가 그리스도교 상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 배경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또 천주교 신자들은 밥 먹을 때나 기도할 때 손으로 몸에 십자가 표시를 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상징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주님이요 하느님'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이지요. 십자가는 예수님 시대 이전부터 근동 아시아와 로마 제국에서 사형(死刑) 수단으로 사용됐습니다. 로마제국에서는 중죄인, 특히 제국에 반기를 든 모반자들이나 강도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치욕이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이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신 것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는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을 체험하고 난 후부터는 십자가를 더는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구원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십자가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 코린 1,23). 그런데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로마 제국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 곧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박해가 일어납니다. 처형 수단인 십자가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혐오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합쳐지면서 신자들은 드러내놓고 십자가 표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비신자들이 모르도록 십자가를 삼지창이나 닻 형태로 변형해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임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 모르게 개인적으로 이마나 가슴에 십자 표시를 하는 관습이 신자들 사이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십자가를 공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에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용인되면서부터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4세기초 로마에서는 두 장군 콘스탄티누스와 막센시우스가 서로 황제가 되려는 야망에서 결전을 벌이게 됩니다. 전투를 하기 전날 밤 콘스탄티누스가 환시를 봤는데 하늘에 큰 십자가 표시가 보이면서 '이 표지로 그대는 승리하리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는 싸움에 이겨 마침내 황제 자리에 오릅니다. 이후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공식으로 인정하고 세례까지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십자가는 무덤을 비롯해 기념비나 동전, 관공서 서류 등 곳곳에서 사용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리스도교가 4세기 말 로마제국 국교가 되면서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상징이 된 것입니다. 이와 함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마나 가슴에 하던 십자표시를 이마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두 어깨를 연결하는 큰 십자가 표시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발전해서 오늘날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를 바칠 때나 식사를 할 때 긋는 십자성호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 국교로 공인되고 널리 확산되면서 아무런 형상이 없는 민십자가를 보석이나 포도넝쿨 등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하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표현한 십자고상(十字苦像)도 등장했습니다. 십자고상은 그리스도교 예술가들에 의해 고통 당하는 예수님 상, 영광스럽게 왕의 옷을 입고 팔을 벌리는 모습의 예수님 상 등 시대 상황에 따라 여러 형태를 띠었습니다. 성당에서 또 천주교 신자들 집에서 볼 수 있는 십자고상들은 이런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알아둡시다>> 십자성호와 성호경 천주교 신자들은 기도할 때나 마칠 때, 식사를 할 때나 마칠 때, 그 밖에 일과를 시작하거나 마칠 때도 언제나 손으로 자기 몸에 십자 모양을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고 기도를 바칩니다. 이때 십자 모양을 긋는 것을 '십자성호', 함께 바치는 기도문을 '성호경'이라고 합니다. 「예비신자 교리서」는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호경을 바치는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성자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음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천주교 신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십자성호 긋는 법 십자성호를 그을 때는 먼저 왼손은 손가락을 붙여서 가슴에 붙입니다. 그리고는 오른손은 손가락을 다 모아 먼저 이마에 대고 "성부와" 이어서 가슴에 대면서 "성자와" 다시 왼편 어깨에 대고는 "성" 마지막으로 오른편 어깨에 대며 "령의" 하고 십자표를 그은 후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붙이면서 나머지 부분 "이름으로. 아멘"을 바칩니다. 손을 모을 때는 왼손 엄지손가락이 오른손 검지 쪽을 잡고,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왼손 엄지 위로 포개 엄지 손가락이 대각선으로 십자표시를 이루도록 합니다. 성호경을 바칠 때는 언제나 이렇게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바칩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호경을 바치는 이 행위로써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성령 안에서 행동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니다. 이 십자성호는 또한 세상의 온갖 유혹과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를 굳세게 해줍니다. 이제부터는 십자성호를 그을 때마다 정성을 다해 그으면서 성호경도 정성스럽게 바칩시다. 천주교 신자들은 미사 중 복음 말씀을 읽기 전에도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십자표시를 합니다. 이것은 복음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며(이마), 입으로 고백하며(입술), 가슴에 새겨 실천한다(가슴)는 의미를 지닙니다.cpbc2007.03.30
![[공의회 과정] 12 -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나타난 구원론적 전망/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수)](//cpbc.co.kr/CMS/newspaper/2007/06/rc/209410_1.2_titleImage_1.jpg)
[공의회 과정] 12 -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나타난 구원론적 전망/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수)교회 밖에서도 구원 가능-하느님 자비 강조박준양 신부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라는 근거가 성경적, 신학적으로 제시되는데도 전통적으로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비가시적 은총의 가시적 표징인 성사를 통해 구원을 받지만 교회 밖에는 이런 성사 경로가 차단돼 있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하 공의회)에서 이같은 배타적 표현을 시대적, 역사적 지평에서 재해석했다. 교회 안에 구원이 있지만 교회 밖에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그 외연을 넓혔다. 교회 안 진리를 강조하던 것에서 하느님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는 것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마치 감추어진 현존과도 같이 이미 민족들에게 있는 진리와 은총은 그 무엇이든 악의 오염에서 건져 내어 그 주관자이신 그리스도께 돌려드린다.…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또는 민족들의 고유 의례와 문화에 심겨 있는 좋은 것은 무엇이든 없어지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과 악마의 패배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치유되고 승화되고 완성되게 한다"(「선교교령」 9항). 아직 그리스도의 은총이 전달되지 않았지만 감추어져 현존하기에 그 말씀의 씨앗이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그 민족의 좋은 것들, 즉 그 씨앗을 그리스도 복음의 빛으로 열매 맺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민족적, 종교적 전통에 익숙해져야 하고 그들 안에 감추어진 말씀의 씨앗을 기꺼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내야 한다"(「선교교령」 11항). 비그리스도인 안에서 은총의 작용은 「비그리스도교 선언」에서도 드러난다. "가톨릭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 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양식과 행동방식 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2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성령이 교회 안에서 집중적으로 작용하지만 교회 밖에서도 신비롭게 작용한다고 회칙 「인간의 구원자」(12항) 「생명을 주시는 주님」(53항) 「교회의 선교사명」(28항)에서 비그리스도인 안에서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작용을 설명했다. 앞서 얘기했듯이 교회는 전통적으로 비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여겼으나 공의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성령론적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 문헌을 살펴보자.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톨릭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로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 받을 수 없을 것이다"(「교회헌장」 14항). 공의회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개방적 입장을 나타내지만 교회를 명백하게 반대하는 경우에는 구원 적용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반면 그리스도 신앙은 모르지만 하느님이 그들과 함께 있기에 바르게 살려는 이들에겐 구원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의 섭리는 자기 탓 없이 아직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교회헌장」 16항). 개방적 구원관은 「사목헌장」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파스카 신비에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화돼 부활을 향한 희망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그 마음에서 은총이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고 또 인간의 궁극적 소명도 참으로 하나 곧 신적 소명이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파스카 신비에 동참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22항). 착하게 사는 불교 신자도 구원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구원 효력은 부처, 석가모니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파스카 신비에서 나온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원 은총을 성사라는 경로를 통해 얻지만 성사를 받지 못하는 비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작용으로 구원 은총을 받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섭리, 작용하신다. 성부 하느님의 사랑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성령의 전달(친교)이라는 삼위일체론적 구원 전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의문을 갖기도 한다. 비그리스도인에게도 구원이 열려있기에 하는 말이다. 하느님이 사람을 부르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구원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사랑이신 하느님에 대한 나의 자세다. 나 자신이 하느님 사랑에 젖어들면 구원 여부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느님 사랑에 충만하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성사는 하느님과 나와의 구체적 사랑 표현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일미사에 빠지면 죄를 지었다는 소극적 자세를 갖기보다는 주일미사에 빠져 사랑이신 하느님을 뵐 수 없고 하느님과 관계가 소홀해졌다는 것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과 교황청 문헌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 구원 경륜 속에서 성령과 그리스도 사이에는 내밀한 끈으로 이어진 관계가 있다(7항). 실상 이 모든 곳, 또는 시대를 망라하고 모든 사람 안에까지 구원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이 활동은 진행됐으며 이 영원한 구원 계획 안에서 성령의 활동은 강생의 신비와 구속의 신비에 긴밀하게 연결됐다(53항).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제공된 것이라면 모든 사람이 구원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계시를 알거나 받아들이거나 교회에 들어올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 이러한 사람에게도 은총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이 가능하다. … 이러한 은총은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이고, 그분의 희생 제사의 결과이고, 성령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이 은총은 각자로 하여금 그들의 자유로운 협력으로 구원에 도달하게 한다(10항).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와 양자택일을 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29항). ▲199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 예수님께서는 유일한 보편적 중개자이시다. 비록 명시적으로 그분을 구세주로 믿는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은 성령의 통교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은총으로서 오는 것이다(14항).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예수님 안에 있는 보편적 구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16항). ▲2000년 신앙교리성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 그분의 성령과 함께 그리고 성령을 통해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은 교회 눈에 보이는 경계선들을 넘어 모든 인류에게 펼쳐진다. … 성령께서는 단 한 가지 목표로 하느님께 부름 받은 모든 민족의 삶 안에 사람이 되어 계시는 성자의 구원 효력을 현실화하신다. …하느님 아들의 강생과 죽음, 부활의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고 성령의 협력으로 실현되었으며, 인류 전체와 우주 전체에 그 구원 가치를 펼치시는, 단 한 분이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구원 경륜만이 있을 뿐이다(12항).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그리스도 복음을 당당히 선포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한 나의 열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리=이연숙 기자 mirinae@pbc.co.krcpbc2007.06.13

27- 일곱 성사에 대해 알고 싶어요일곱성사는 영적 인생살이인 신앙생활의 주요한 단계나 과정과 관련된다. 사진은 성품성사인 사제서품식의 한 모습. 성사에는 모두 7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어떤 것들인가요. 왜 일곱 성사밖에 없나요? -------------------------------------- 가톨릭교회는 성사가 모두 7가지, 곧 일곱 성사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세례, 견진, 성체, 고해, 혼인, 성품, 병자 성사가 그것이지요. 우선 각 성사들에 대해 간단히 알아봅시다. 세례성사는 물과 성령으로 죄를 깨끗이 씻고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성사이고, 견진성사는 하느님 자녀로서 성령을 더욱 충만히 받아 더욱 어른답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성사입니다. 또 성체성사는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재현하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그리스도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영적 생명을 얻게 하는 성사입니다. 이 세 가지 성사를 입문(入門) 성사라고 하는데 이 세 가지 성사를 통해서 가톨릭 신자로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서입니다. 참회의 성사 또는 화해의 성사라고도 하는 고해성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은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이웃과 다시 화해하게 해주는 성사이고, 병자성사는 죽을 위험에 처한 병자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은총을 주는 성사입니다. 이 두 가지를 치유의 성사라고 하지요. 혼인성사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의 연을 맺고 가정을 이뤄 평생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도록 해주는 성사입니다. 그리고 성품(聖品)성사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직무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해주는 성사입니다. 이 두 성사는 그 성격상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사가 처음부터 일곱 성사로 고정돼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곱 성사가 확정되기 전에는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예식이라든가, 장례 예식, 심지어는 신앙고백 예식, 십자성호를 긋는 행위 등도 지방에 따라서는 성사라는 이름으로 거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성사에 속하는 행위나 예식이 약 30개나 됐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2~14세기에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성사에 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성사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정의하게 됐습니다. 결정적 기준은 그 기원이 예수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느냐,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셨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성사는 성사 집전자 개인의 성덕과 상관 없이 성사를 집전하는 행위 그 자체로서 성사 은총의 효과 곧 성사의 사효성(事效性)을 지닌다는 교리도 마련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일곱 성사가 확정된 것입니다. 따라서 왜 하필이면 일곱 성사냐 하는 물음에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고 답변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성경의 세계에서 7은 완전함, 충만함을 뜻하는 수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는 쉬심으로써 한 주간을 7일로 지내게 됐다든가, 예수님께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들은 모두 이와 연관이 됩니다. 그래서 일곱 성사는 바로 은총의 충만함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일곱 성사는 우리 인생살이의 중요한 단계들과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세례는 태어남과 견진은 어른이 돼서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과 연결되고, 성체성사는 생명을 유지고자 먹고 마시는 것과 연결되지요. 또 고해성사는 용서 및 화해의 삶과 연결되고, 혼인성사나 성품성사는 결혼 생활과 연결되지요. 그리고 병자성사는 육체의 질병이나 죽음과 관련됩니다. 이렇게 일곱 성사가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생에서 중요한 고비가 되는 단계나 과정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신앙 생활에서 성사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얼마나 풍요로움을 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7.01.10
29- 교회가 어떻게 갈라지게 됐나요(2) 이번 호에는 지난 호에 이어 그리스도 교회가 갈라지게 된 과정을 계속해서 알아봅니다. -------------------------------------------------------------------------------------------------- 1054년 '동방이교'로 하나인 가톨릭 교회는 로마 교회(또는 라틴 교회)와 동방 교회로 갈라섭니다. 동방 교회는 자신들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정통 신앙을 지닌다고 주장해 스스로를 정교회(正敎會)라고 합니다. 정교회는 지역(또는 나라) 이름을 따서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한국 정교회 등으로 부릅니다. 그러나 이후 교회는 다시 한번 큰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16세기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프로테스탄트 종교 혁명이 그것입니다. 15세기 이후 유럽 사회는 중세봉건제도가 무너지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민족국가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서로 자기 나라 이익을 앞세우면서 교황권을 정략적으로 이용했고, 교황권은 영적 권위는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세속 권력과 결탁하거나 이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이와 함께 상공업의 발달은 부의 편중을 초래하면서 빈부 격차와 함께 황금만능주의 풍조를 심화시켰고, 민족국가들의 출현으로 수입이 줄어든 교황청은 수입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면서 문제의 소지를 만들었습니다. 또 돈으로 성직을 사고파는 행위가 성행하면서 교회 지도층의 부패도 만연했습니다. 다른 한편 이 시기는 문예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건축ㆍ미술ㆍ문학ㆍ음악 등 학문과 예술이 크게 진흥합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재건도 이 시기에 이뤄집니다. 대성전 재건에 따른 막대한 재원 마련을 위해 교황청은 대사(大赦)를 시행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대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2006년 11월12일자 895호 참조) 대사는 원래 기도나 선행에 대해서만 주기로 돼 있는데 이것이 중세말에는 남용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동전이 상자 안으로 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독일의 마르틴 루터(1483~1546)였습니다. 그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도자로서 비텐베르크 대학 성서학 교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죄스러운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고심하던 그는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마 1,17)라는 성경 말씀에서 위안을 얻고'신앙에 의한 의화'를 내세우게 됐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대성전 재건과 관련해 대사가 남용, 오용되자 그는 1517년 10월 대사 문제를 비판하는 것을 비롯해 선행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등 95개 명제를 내걸었습니다. 처음에 루터는 가톨릭 교회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하면서 교황청은 1521년 1월3일 파문 교서를 발표했고, 루터는 이 교서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교파가 루터교입니다. 루터에 이어 독일어 사용권인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츠빙글리(1484~1531)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제네바에서는 칼뱅(1509~1564)이, 각각 가톨릭 교회에 대항해 종교 혁명을 시작하는 등 종교 혁명의 여파는 유럽 여러 지역으로 확산돼 나갔습니다. 오늘날 프로테스탄트라고 하는 개신교는 바로 이들에게서 갈라져 나온 여러 그리스도 교파들을 가리킵니다.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항거자" 또는 "항의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당시 가톨릭 교회에 항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헨리 8세 국왕(1491~1547)의 혼인 문제가 발단이 돼 종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헨리 8세는 교회법이 금지하는데도 아내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 앤 볼린과 결혼을 강행함으로써 1534년 파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교황권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영국의회는 1534년 11월 '수장령'을 통해 국왕을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 선언함으로써 교황권과 결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영국 성공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1054년 동방이교에 이은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 혁명은 그리스도 교회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는 쇄신 노력을 새롭게 하게 됐는데 트렌토 공의회(1545~1563)를 통한 교회 쇄신 작업이 그것입니다. 트렌토 공의회의 쇄신 작업들은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때까지 약 400년 동안 가톨릭 교회 신앙과 생활의 규범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와 함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 동안의 분열 역사를 청산하고 그리스도 교회들이 다시 일치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을 열어놓았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7.01.24
68- (2) 거짓 복음들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그동안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다빈치 코드'의 뚜껑이 열리자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현재 이 영화는 여전히 관람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관람객 대부분이 30대 미만의 젊은이들이라고 들린다. 과연 '다빈치 코드'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들은 흔히 말하는 대로 이 소설과 영화를 단지 재미삼아 보고 말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인터넷에 나타난 영화 후기들을 보면 금세 그 후유증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소개한다.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를 모르고 역사 속을 사는 우리에게 한번쯤 성경에 대해 하느님과 예수에 대해 의문을 던져 볼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예수는 그냥 인간 예수이고…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것 같다. 그게…미화되고 신격화되어 기독교라는 거대 종교를 만들어낸 건 아닐까. 다빈치코드는…영화이고 픽션이지만, 성경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역시…성경에도 모순이 많다는 걸~"(yuri010120, 5월28일, 네이버 영화 후기) -"종교에 대해 갈등하고 있던 요즘, 불교신자였음에도 얼마 전 성당에 가보았다. …그런 고민의 와중에 이 영화를 보았다. 내 물음에 대한 해답이 있을까 하고 더 진지하게 보았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갖게 하고, 볼거리가 풍부했고, 내용 또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에 기초하고 있어 즐겁게 보았다. 그리고 평화적인, 수용적인 불교를 그대로 믿기로 했다." (pink2tree, 5월27일 네이버 영화 후기) -"최제우가 천도교를 만든 것처럼,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만든 것처럼, 무속인들이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신앙을 만드는 것처럼, 종교와 신은 사람이 만들지 신이 만들지 않습니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자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도 보통 사람과 별 다를 게 없는 생물학적 인간입니다. 다만, 사람들에 대한 선행과 가르침이 타의 모범이 되셨던 분입니다." (kim63482000, 5월26일, 네이버 영화 후기) -"이 영화를 두고 말들이 참 많았다. 영화는 영화로 즐겨야지…너무 기독교 측에서 오버를 하니까 정말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도 참 딱딱 들어맞는 게 사실성이 강하기도 하고…그래도 그렇게 오버 할 정도는 아닌데…"(李箱 異常 以上2, 5월28일, 네이버 영화 후기) -"난 예전에 종교를 가져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번번이 실패 했다. 물론 믿음이 부족해서였지만, 그들이 내세운 교리에 많은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시원한 설명보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했다. 결국 완벽한 것은 없었고, 이젠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려 종교를 가질 수 없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사이비 종교에 사람들이 이렇게 해서 말려드는구나(?) 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foxofandy, 네이버 영화 후기) -"너무 유명한 책을 영화화해서 재미가 별로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단 괜찮았습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결론이 제일 중요한 것 같네요.… 누구를 믿든… 믿음은 필요한 것이다.… 자기 자신이 신이다… 자신을 믿어도 믿음은 중요한 것이므로…."(RedMagic, 5월29일, 인터파크 영화 후기) 개신교계는 이 영화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이는 오히려 '안티'들의 관심을 더 자극했다. 반면 가톨릭계는 이 영화에 대해 애써 초연한 입장을 견지하려 했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회의에 빠지는 신자들을 그저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왜 유독 젊은이들이 이 영화에 몰려들고 있는가.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심정적으로 교회에 나오지 않을 '핑계'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앙교리가 자유를 한껏 만끽하고 싶은 그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생활에 간섭하는 거추장스런 존재로 느껴져 그러지 않아도 무슨 '트집거리'를 찾고 있는 중에 '다빈치 코드'라는 기막힌 '거리'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고 이 소설이나 영화에 매몰되어 나오지 않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사람 심리는 묘해서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게 돼 있다. 결국 '영화 안 보기 운동'은 오히려 영화를 홍보하는 역효과를 내게 돼 있다. 이럴 때는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소극적 수비보다는 적극적 공격을 선택하는 정공법을 구사해야 한다. 우리는 영화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보다 영화를 보게 될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화의 허구를 알리고 이를 복음 코드를 전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를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뒤집는 그리스도교 변증이 가장 발달한 시기는 그리스도교 핵심교리를 왜곡하는 이단이 가장 왕성했을 시기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화 상영을 신자들과 비신자들에게 다시 한번 성경, 핵심교리, 그리고 그리스도교 역사를 올바로 교육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빈치 코드' 영화를 보고 나온 젊은이들은 동시에 묻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예수는 누구지?" 회의적이든 긍정적이든 비신자들이 예수에 대해 이렇게 동시적으로, 대규모적으로 "예수,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한 때는 많지 않았다. 이를 대비해 필자는 이미 지난해 '다빈치 코드'의 허구를 파헤치고, 그리스도교 진리를 변론하기 위해 「다 빈치 코드의 족보」(동이 간)를 펴냈다. 이 책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백신이 될 것이며, 이미 본 사람들에게는 치료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신자들에게는 설득력 있는 선교매체가 될 것이다. 또 필자는 차제에 예수와 교회에 대한 다양한 물음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책자 「이 사람을 보라」(구입문의: 031-985-5677)를 발간해 이 책 보급을 위해 '해피 가톨릭 캠페인'(Happy Catholic Campaign)을 전개하고 있다. 이 소책자를 군부대, 학교, 이웃, 친지들에게 배포하는 데 협조하기에 복음 코드 홍보에 동참할 수 있다. 열정과 사명으로 뛰고 있는 선교 역군들께서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으면 한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전화로 이 운동을 적극 지지하시는 격려를 보내시면서 귀한 말씀을 인용해 주셨다.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1요한 2,22).cpbc2006.06.08

성당서 새 삶 찾은 황규현 할아버지열정 넘치는 '고참' 할아버지서울 행당동본당에서 노인대학에 나온 황규현 할아버지가 수업을 마치고 노인대학 할머니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올해 87살. 미수(米壽, 88살)를 앞둔 황규현(모세) 할아버지는 8년 전 서울대교구 행당동본당에서 예비자 교리를 받고, 노인대학에 다니기 시작한 후 자신보다 어린(?) 노인들과 어울려 젊은 시절만큼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황씨는 매주 나흘 오전 8시30분에 봉천동 집을 나선다. 이사 오기 전부터 다니던 행당동성당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 30분이나 걸려 미사와 노인대학에 나가기 위해서다. 황씨는 행당동본당 시몬 노인대학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고참'이지만 젊은 노인들 못지않게 에너지가 넘친다. 주일 교중미사, 수요일에 평일미사에 참례하고, 금요일에는 미사 참례 후 100여명 동료 학생들과 함께 노인대학 수업에 들어간다. 노인대학에서는 외부강사 특강과 성경 공부 등을 하고 춤과 노래 같은 레크레이션을 배운다. 방과 후 남는 시간에는 가끔 노인대학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를 치고, 잠실 석촌호수를 걸으며 운동을 하거나 독서를 즐기느라 하루 해가 짧다. 또 월요일에는 풍물동아리에서 사물놀이를 배운다. 사물놀이 연주에 몰입하는 이 순간만큼은 어떤 유명 연주자도 부럽지 않다. "힘들지 않냐고? 늙어서 펄쩍펄쩍 뛰고 쉼 없이 팔을 돌리려니 힘들지. 그래도 아직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아." 이처럼 황씨에겐 노인의 가장 큰 고통이라는 무위고(無爲苦)가 찾아올 틈이 없다. 그는 오히려 몸과 머리를 쓰니 치매도 안 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생활하는 그 자체가 삶의 활력을 준다고 했다. 황씨는 1985년 경남 남해상고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 40년 교단생활을 접었다. 그러나 아내 김종도(아녜스, 87)씨와 함께 경기도 광주시 퇴촌에 정착해 소일삼아 농사를 짓느라 퇴직 후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하지 않았다. 나이 들어 시작한 농사일이 힘들 법도 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직접 일군 텃밭에 배추와 무, 마늘, 고추 등을 가꿔 때마다 찾아오는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서울 막내아들과 살게 되면서 농사 대신 신앙생활과 노인대학에 재미를 붙여 활력 넘치는 일상을 꾸리고 있다. 황씨는 아직도 허리가 꼿꼿하다. 관절염으로 오른쪽 무릎을 약간 절고, 전화 수화기 너머 소리가 예전처럼 또렷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 흔한 혈압약 하나 챙겨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짱짱하다. "그나마 성당과 노인대학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일상생활이 삭막했을 거야. 혼자 있는 노인네들은 그저 잡담이나 나누지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딱해. 늙을수록 몸을 많이 움직여야 건강에도 좋은 거야."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cpbc2006.11.02

"가톨릭 교육 이념 전파에 힘써야"첫 교육주간에 만난 주교회의 교육위원장 이용훈 주교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교육주간이 제정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가톨릭 교육의 중요성은 몇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주교회의 교육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지난해 12월 사립학교 근본 이념과 설립취지를 부정하는 사립학교법 국회 통과로 사립학교 교육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다"면서 "가톨릭 학교 교육 이념을 재정립하고 대내외적으로 가톨릭 교육을 전파하는 데 힘써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톨릭 교육은 세상과 인간 구원을 위한 복음화 실천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 이 주교는 "특히 인간적 차원과 신적 차원을 망라한 전인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지적,영적,인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 교육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오늘날 지적 교육만을 중시하는 풍토와 이와 같은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가톨릭 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진학, 취업, 출세 위주의 지적 교육에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격형성에 가장 중요한 중ㆍ고등학교 시기는 공부제일주의로 물들어있습니다. 이는 사립학교들이 설립이념에 따라 교육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주교는 종립학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이러한 현상은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시작된 고교 평준화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평준화로 사립학교는 학생 선발권과 등록금 책정권한을 박탈당했고 학생들은 학교 선택권을 빼았겼다"며 "정부가 보조금을 주면서 학교를 통제하지만 사교육 문제, 고교 하향평준화 등 오히려 문제가 더 심해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영재 교육 목적 아래 과학고, 외국어고 등 '귀족학교'를 양성해 교육 양극화 현상을 낳았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주교는 "이러한 교육 현실에서도 가톨릭 교육자들이 혼신의 노력으로 가톨릭 교육에 힘을 쏟아온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학생 선발을 자유롭게 할 수 없어 학교 설립 이념을 주지시키고 신앙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한편으론 올 가을 주교회의 정기총회를 거치게 될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헌장'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가톨릭학교법인연합회 산하 사학법대책위원회가 준비하고 있는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헌장'은 가톨릭 학교의 정체성과 사명, 한국 가톨릭 학교 특성 및 교육 방법을 총 망라한 최초의 가톨릭 학교 교육헌장이다. 사학법 사태 이후 가톨릭 내에서 가톨릭 교육에 관한 이렇다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돼 헌장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 헌장이 주교회의 인준을 받아 통과되면 현재 산발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이념을 재정립하며 가톨릭 교육에 대한 기본 지침이 될 예정이다. 이 주교는 이와관련 "헌장에도 드러나겠지만 가톨릭 교육 핵심은 지적 토대 위에 인격 성숙과 신앙 성장을 통합한 완숙한 인간, 참 신앙인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기도와 성경을 중심으로 한 가정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히 "천주교회 전체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각 교구, 본당 차원에서도 소년기ㆍ청소년기ㆍ중장년기ㆍ노년기 교육 프로그램을 확립해야 한다"면서 교육이 평생 걸쳐 이뤄지는 것임을 강조했다.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회와 교회에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문제며 사회와 세상 복음화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평생에 걸친 가톨릭 교육을 통해 예수를 우리 삶 중심에 모시고 그분 정신과 행동을 그대로 따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성경 가운데서도 예수 말씀과 생애를 담은 신약성경을 살아있는 교육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이 주교는 "모든 교육 목표가 영적 생명, 하느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거듭 강조하며 예수 가르침에 늘 귀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박수정 기자 crystal@pbc.co.krcpbc2006.05.18
가톨릭 여성신학회 및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끝>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마지막으로 소개할 단체인 가톨릭 여성신학회(가여신)는 신학석사 이상 학위를 가진 수녀와 여성 평신도로 구성된 학술모임이다.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장상련)의 1996년 총회 결정에 따라 1997년 1월 '여성의 존엄성과 한국 교회에서 여성의 소명감을 회복하고 여성의 눈을 통한 신학적 반성을 실천하기 위해서' 창설됐다. 가여신 창설 배경에는 여성 수도회 간에 자기중심적이고 경쟁적 관행을 바꿔서 서로 인재를 교류하고, 여성인재를 양성하며, 여성 평신도와 자매애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1996년 장상련 총회의 인식이 깔려있다. 특히 이 총회는 여성의식을 일깨우려는 신학적 필요를 강조했고, 평신도 여성과 수도자들이 함께 모임을 만든다는 것이 평등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가여신은 월례모임을 통해 자신들의 신학 연구 발표, 이미 출간된 논문 연구, 유명 학자 초청 강연, 여성신학 저술 번역 등 활동을 꾸준히 해왔고, 각종 국내외 학술대회에 참여해왔다. 2004년에는 월례모임에서 번역하며 공부했던 여성신학자 캐서린 모우리 라커그나의 「신학, 그 막힘과 트임」과 월례모임에서 발표했던 여성신학 논문들을 묶은 「열린 교회를 꿈꾸며」 두 권을 출간했다. 최근엔 교회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신비가들이나 성녀들 영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2000년 주교회의 가을총회 결정으로 2001년 4월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가 발족했다. 여성소위원회는 우선 여성 지도자 양성이 최우선 과제임을 인식하고 여성 지도자 양성을 위해 '가톨릭 여성지도자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단계별로 교육을 실시해왔다. 2002년에는 여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담은 「교회와 여성」을 발간했다. 2004년에는 가정폭력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한국 천주교 여성 사목 방향 정립을 위한 의식조사'를 실시하는 등 한국 교회 여성사목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남녀가 더 평등한 동반자로서 교회 모습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1960년대 이래 소위 '제2의 물결'이라는 서구 현대 여성 운동이 교회와 신학에도 영향을 주면서 가톨릭교회의 가부장적 전통을 비판하고 남녀 평등과 동등한 존엄성, 여성의 경험과 시각을 통해 새롭게 성경과 교회를 바라보려는 여성신학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1980년대 후반 이래 여성신학의 세례를 받은 한국 가톨릭 여성들도 남녀가 하느님 모상을 지닌 대등한 동반자임을 새롭게 의식하며 남성 중심으로 움직이는 가톨릭교회, 특히 유교적 가부장적 요소를 더한 한국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남녀 평등이 점점 강조되고 법과 제도로 확립되면서 젊은 세대일수록 성평등 의식이 높아가고 있지만 수백년간 여성의 열등성을 강조해온 유교적 가치관이 아직도 많은 한국 여성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나름대로 여성신학의 시각으로 새롭게 복음을 해석하고 사회와 교회 현실에 여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 요소를 개선하려는 가톨릭 여성단체의 노력은 희망적이고 시대 정신에 부합한다고 본다. 과거 가톨릭교회는 시대정신을 주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대정신에 뒤떨어져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여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실제로 교회에 여성의 자리를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21세기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는지, 아니면 뒤늦게 문을 열고 변화된 환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지가 결정될 것이다. ※그동안 집필해 주신 박정우 신부님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cpbc2006.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