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야말로 성소의 비결, 가정에서 신앙 심어줘야” [앵커] 성소, 즉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특히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긴 사람들이 있죠. 바로 성직자와 수도자들인데요. 이들을 배출한 가정은 가장 작은 성소못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55차 성소주일을 앞두고 올해 사제품을 받은 서울대교구 김주신 신부의 부모 김민수, 양희란씨를 이힘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성인호칭기도가 운동장에 가득 울려퍼지고, 32명의 사제서품대상자들이 엎드린 부복의 자세로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합니다. 이날 서품을 받고 위례성모승천본당 보좌로 발령받은 새 사제 김주신 신부의 부모 김민수(발타사르), 양희란(스피리타)씨 부부는 사제서품식 미사 때 처음 운동장으로 걸어 나올 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김주신 신부는 부부의 2남 2녀 가운데 막내. 이름 ‘주신’은 하느님께서 ‘주신’이라는 뜻입니다. 첫째인 장녀 김봄에나씨와 열두 살 터울인 늦둥이여서 지은 이름입니다. 부부는 평생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김 신부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낀 것은 가족들에게 가장 힘든 일이 생겼을 때입니다. 예비신학생 반에서 사제의 꿈을 키워가던 김 신부의 형 주용씨가 2005년 교통사고로 선종했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형을 잃고 큰 충격에 빠진 막내아들에게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해줬는데, 그것이 사제성소로 이어졌습니다. <양희란(스피리타) / 김주신 신부 어머니> "성경을 밤새도록 읽고나서 예수님이 사시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는가봐요. 나도 예수님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들어서 결정을 했다고 해요.“ 부부는 앞으로 사제가 된 아들이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 기도하는 사제, 기쁘고 행복한 사제로 살아가기를 희망했습니다. <양희란(스피리타) / 김주신 신부 어머니> “무엇보다도 본인이 기도하는 사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힘을 받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기도를 하고, 건강하고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아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 부부는 ‘기도’야말로 성소의 비결이라면서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신앙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민수(발타사르) / 김주신 신부 아버지>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신앙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도록 성경을 읽어주고 같이 함께 기도해주고, 늘 우리가 현세뿐 아니라 내세의 이야기도 해줌으로 인해서 아이들 마음 속에 신앙을 심어주는 그런 부모가 됐으면...” cpbc 이힘입니다. 신익준2018.04.20
![[인터뷰] 나승구 신부 "가난 구조적 원인 없애려면 섬김·나눔 실천해야"](//cpbc.co.kr/CMS/news/2019/11/rc/766850_1.3_titleImage_1.jpg)
[인터뷰] 나승구 신부 "가난 구조적 원인 없애려면 섬김·나눔 실천해야"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나승구 신부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이들의 희망은 하느님,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사람들, `새로운 노예화` 주거권은 가난한 이들의 생존 위한 기본 토대 교회가 가난한 이웃 돌보는 데 나서고 사회에 촉구해야 빈곤의 구조적 원인 없애려면 섬김과 나눔 실천해야 [인터뷰 전문] 이번에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나승구 신부님 전화로 연결해서 우리 사회 고통스러운 가난의 현 주소를 짚어보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나승구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한 배경이 따로 있는 건가요? ▶왜 굳이 연중 33주일로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셨는지는 저한테는 안 가르쳐 주셨는데요. (웃음) 가난한 이들의 날을 선포하신 배경은 분명 우리 사회에서 가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이죠. 연중시기를 마감해가고 위령 성월을 보내고 있는 이때에 인간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와 함께 우리 교회의 처지와 세상의 상황에서 가난한 이들이 아주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는 안타까움을 드러내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느님의 품 안에 안긴 모든 주체들이 그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소홀히 여겨지지 않고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뜻에 이르고자 하신 그런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가련한 이들의 희망은 영원토록 헛되지 않으리라.’ 시편 9장 19절의 말씀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제3차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서 발표한 주제던데요. 가련한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은 어떤 의미일까요? ▶대부분 가난한 이들, 가련한 이들에게 희망은 없다고 생각하죠. 가진 게 없는 이들은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가련한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은 그야말로 구원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봤을 때 가련한 이들은 늘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고 하느님께 호소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권력과 재물을 바라본다면 권력과 재물로부터 버림받은 가난한 이들은 오히려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죠. 그래서 신앙적으로 본다면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은 하느님이십니다. 이게 바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돼야 한다는 이유이고 교회가 하느님을 희망으로 삼는 것이 그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리포트에서도 전해드렸습니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세기가 흘러도 빈부격차가 변함이 없다고 지적하시면서 일자리가 없어서 방황하는 젊은이들, 온갖 폭력의 피해자들, 이민자, 노숙자, 소외된 이들까지 새로운 노예화 문제를 지적하셨어요. 오늘날 수많은 형태의 `새로운 노예화` 지적을 신부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노예란 말 그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죠. 요즘에 자신의 의지 그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선한 의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우리 중에 얼마나 될까 생각됩니다. 자신이 성장하고 하느님께 닿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성공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자체로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동떨어진 것이죠. 원치 않는 곳에서 원치 않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노예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게 없어서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얼마나 불행한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가난한 이들을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지 않는 한 돈과 권력을 가진 분들의 행복 또한 진짜 행복은 아닐 것 같아요. 노예로 사는 자들뿐만 아니라 노예를 부리는 사람 역시 자유롭지 못한 영혼이기 때문이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다는 성경 말씀이 떠오르는데요. 신부님, 이 세상의 약한 것, 가난과 궁핍이 가진 힘은 뭐라고 보십니까? ▶아까도 말씀을 드렸는데요. 하느님의 눈으로 본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분명하고 절실하게 드러나죠. 당신만 바라보는 사람들이니까요.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갖고 있는 힘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하느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불행히도 가난한 사람들도 부를 축적함으로써 가난을 유발한 사람들도 힘이 주는 성실한 기쁨을 바라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죠. ▷현대사회에서 가난의 문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하면 주거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홍보책장 맨 첫 장에도 ‘삶의 자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라는 말이 있던데요.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주거권 이거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바잉(buying)이 아니라 리빙(living)이라는 뜻이죠. 참새에게도 집을 마련해 주시고 제비들에게 새끼 치는 둥지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이시잖아요. 인간이 삶을 이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라고 하는데 그 의식주 중에서 주, 자신의 생존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죠. 이 토대가 무너지면 생명을 지킬 수 없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지키는 토대로 여겨야 한다는 바탕에서 저희는 주거권을 기본권으로 여겨야 한다고 권장합니다. 삶의 자리가 투기나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될 때 정작 그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쫓겨나는 불안한 생활이 지속 되는데요. 이것을 막아내고 집이 편안한 쉼과 충전의 자리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빈민사목위원회도 우리 사회 곳곳의 주거 취약계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까? ▶늘 부족하기는 하지만 교회가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세상의 공동체잖아요. 세상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요. 그래서 정치공동체와 지역공동체에 끊임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삶을 살아가자고 요구하는 한편 저희도 우리 교회도 역시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신자건 신자가 아니건 함께 나서야 한다고 교회 내부에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빈곤과 관련한 다른 사회단체들과 연대해서 특별히 쪽방이라든지 노숙을 하시는 홈리스라든지 주거문제로 어려운 처지에 계신 분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저 주거권 보장, 법적으로는 돼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서 가톨릭교회가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고 세입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도 함께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교회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요? 취약한 주거환경에 대한 문제 어떻게 연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물론 우리 주변의 이웃을 돌보는 역할을 계속 해나가면서도 사실은 지금 최저 임금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아주 주거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 전세, 월세 사람들 문제가 아주 심각하죠.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적으로 안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권고 에서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을 촉진하도록 일하라고 권고를 하신 바 있는데요. 그런데 과연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어떻게 해야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앨 수 있을까. 신부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조적 원인을 없애는 건 그야말로 섬김과 나눔이죠. 우리 교회의 삶의 방식이 끊임없이 섬김과 나눔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섬김과 나눔을 통해서, 내가 축적하는 힘이 내가 축적하는 권력과 재력이 나만의 노력과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것이 구성되면서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재화의 공동사용권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서 교회와 정부 또 교회와 사회가 연대한 모범사례 같은 게 있습니까? ▶몇 가지 사례가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부산지역에서 일어난 일인데 1964년에 부산교구가 오스트리아 부인회의 원조를 받습니다. 자선아파트를 지어서 빈민들의 거처로 내어준 적이 있고요. 세계교회 차원에서 보면 호주 교회 같은 경우는 교회와 수도권에 땅을 사회 주택의 부지로 내주고 정부와 협조해서 사업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빈민사목위원회도 서울시와 함께 협약을 맺어서 특히 아동주거빈곤 아동들에게 서울시에서는 주택을 제공하고 저희는 이에 따른 보증금, 이주비 등을 마련해 주는 그런 협약도 맺은 적이 있습니다. 단지 이주뿐만 아니라 교회 지원을 통해서 이웃을 돌보는 일도 계속해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끝으로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 가난을 선택하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반적으로 가난을 선택한다면 사람들이 다 비웃죠. 부자 되는 세상에서 가난을 선택하는 거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님도 그러셨듯이 바보로 살아가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세상에 대해서 가장 강력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은 내 것을 축적하고 안전한 성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에서 스스로를 내려놓고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힘있는 신앙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이신 나승구 신부님과 우리 사회의 가난, 빈민사목에 관한 이야기 나눴습니다. 신부님,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윤재선2019.11.15
[인터뷰] 사은숙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 기르며 생기 뿜뿜, 친권 행사했으면"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 진행 : 김혜영 앵커 ○ 출연 : 사은숙 위탁모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자식 농사라고 하죠. 내 아이를 키우는 것도 버거운 시대인데요. 가슴으로 낳은 딸을 둘이나 키운 부모가 있습니다.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서요. 위탁부모로 활동 중인 분을 만나볼까 합니다. ▷ 사은숙님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 17년째 위탁부모로 활동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아이의 부모님이 되어 주셨는데요.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시게 됐나요? ▶ 제가 17년 전에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하고, 일을 하다가 쉬게 되니까 돈을 벌어야 되나 뭘 해야 되나 고민을 하던 중에 성경을 읽으면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까 성경 속에 이런 말씀이 있더라고요. "이와 같이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일까 생각 중에 보니까, 매일 그때 당시 뉴스에 IMF 후유증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아이들이 시설에 보내진다. 이런 뉴스가 상당히 많이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럼 저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 중에 입양도 생각하고 하면서 찾아 보았어요. 그렇게 찾다 보니까 대안가정운동본부라고 있더라고요. 입양을 원치 않으면서 아이하고는 연락을 하고 싶고 그런 가정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도 그러면 이 일에 동참해야 되겠구나’ 하고 알아보니까 서울 경기 지역에는 한국수양부모협회라고 있어서, 그런 일들을 그러니까 가정이 어려운데 대신 돌봐주고 가정이 회복되면 아이들을 돌려 보내는 일들을 하는 분들이 벌써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얼른 마음이 변하기 전에 해야지 하고서는 거기에 연락을 해서 보니까 또 가정위탁 지원제도가 생겼더라고요. 그때 당시 2003년도에. 그래서 저도 얼른 신청을 해서 그 때 9개월된 아이를 제가 기르기 시작을 했습니다. ▷ 그리고 5년 있다가 한 아이를 더 키우기 시작하신 거죠? ▶ 네. 그러고 나서 잠시 후에 또다시 남자아이를 하나 또 맡게 되었어요. 그 가정학대로 인해서 떠돌던 아이를 제가 돌보다가, 그 아이는 3년 반 정도 키우고 나서 아빠에게 돌아갔고요. 그 이후에 다시 또 아이가 돌아가고 나니까 하나가 남겨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 때 당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어요, 9개월 된 아기는. 그래서 이 아이 말고 또다시 내가 오래도록 키울 수 있는 아이가 누가 있을까 하다가, 집 주변에 있는 보육원에 가서 봉사를 하면서 보니까 거기에 아이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이 하나를 데려온 게 그 때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아이. 그래서 둘을 계속 키웠습니다. ▷ 남자아이는 키웠다가 가정으로 돌려보내신 거고, 계속 키우신 게 두 딸 아이신 거군요. 그런데 아까도 잠깐 얘기해주셨지만, 위탁과 입양이 다르잖아요. 입양을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위탁모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 그 때 당시에 알아보니까 입양은 부모와의 단절이지만, 제 느낌에 이 아이들이 계속 부모와 연락을 하면서 내가 돌보다가 돌아간다면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상처도 훨씬 적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그 한 가정이 힘들 때 내가 힘이 되어 준다면 더 없이 이것도 귀한 일이겠구나 생각을 해서 가정위탁을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 어쨌든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일이 쉬운 게 아닌데요. 남편이나 자녀들의 반대는 없으셨습니까? ▶ 그 때 당시 저는 남편이랑 저랑 우리 아이 둘이 있었어요. 딸이랑 아들이랑. 그리고 저희한테 시어머니가 계셨어요. 결혼하고 계속 시어머니랑 살고 있었는데, 저희 남편은 적극 좋다고 같이 하자고 했고, 아이들도 엄마가 예쁜 아기 기른다는데 나도 찬성이다. 둘 다 찬성을 했는데. 단지 어머님이 좀 걱정을 많이 하셨죠.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이러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막상 아이가 오고 보니까 갓난아이가 왔잖아요. 막 기어다니는 아이가 왔는데, 어머님이 훨씬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 아기가 너무 예쁘니까. ▶ 네. 그냥 얘가 잘 잤는지, 뭘 잘 먹었는지. 오히려 저보다 더 관심을 가지시고. 또 집안에 아기가 하나 딱 오니까 온 가정에 정말 생기가 뿜뿜뿜뿜(웃음). 그렇게 웃을 일이 없었는데 아기 보면서 그냥 매일 웃고 아기를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 나누고 하다 보니까, 갑자기 집이 그냥 웃음꽃이 활짝 피고 매일 웃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했어요. ▷ 가슴으로 받아들이신 두 딸이 17년 동안 훌쩍 커버렸습니다. 딸들 자랑 좀 해주세요. ▶ 자랑이요? 하하. 먼저 큰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와서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금년에 얘가 위탁이 종료가 됐어요.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얘는 회사에 취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일할 수 있는 곳이 괜찮은 곳이 있어서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자기 나름대로 자립 준비를 하면서 매달 저축 기본적으로 120만 원씩 저축을 하게 하고요. 또 나머지 돈으로 자기가 여행도 하고, 엄마 아빠 소소한 선물도 사주고, 조카들 용돈도 주고, 지금 남아 있는 우리 고등학교 1학년 딸 고등학교 입학한다고 가방 사주지, 신발 사주지, 가끔 용돈 주지. 언니 노릇을 아주 톡톡히 하고 있어요.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고 행복한지. 제가 대학 진학을 안 한다고 해서 상당히 염려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자기는 엄마 나는 너무 잘했다고. 내가 대학을 다니면 4년 동안 돈도 최소한 4000만 원씩 들 것이고, 내가 4년 동안 엄마 일을 해서 저축을 하면 나는 5000만 원 정도 모으고 이자하고 이래서 보면 1억은 차이 날 거야. 이러더라고요. ▷ 그런 것까지 다 계산해서. ▶ 네. 제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생각을 해냈는지 그런 생각을 하고, 저한테 얘기를 해 주고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는데. 그렇게 또 열심히 저축도 하고 하다 보니까 자기도 뿌듯한 것 같아요. 아주 자존감이 그냥 높고. 회사에서도 지난달에는 우수사원으로 표창도 받았더라고요. ▷ 회사 생활도 잘하고 있네요. ▶ 네. 회사에 제가 전화를 했더니 거기 같이 일하는 선배 언니가 전화를 받았어요. 그러더니 얼마나 칭찬을 하는지 제가 그냥 가슴이 다 떨리더라고요. 너무 행복해요. ▷ 둘째 따님 자랑도 해주세요. ▶ 우리 둘째 딸 9개월에 와서 저희들을 아주 행복하게 해주었는데, 사춘기가 좀 많이 힘들었어요. 사춘기가 되면서 화장도 많이 하지, 요즘은 고등학교 가니까 염색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자기 발언도 세지고 그래서 이제는 자기 의사 표현을 분명하게 하고 그러면서 학교 생활 열심히 잘하고 있어요. ▷ 늦둥이는 뭘 해도 다 예쁘다고 합니다만, 혹시 자녀들이 샘을 내거나 질투하지는 않던가요? ▶ 다행히 저희 딸이 22살인가 그 때 오고 우리 아들이 20살 때 왔는데. 저희 딸은 대학 다닐 때고, 우리 아들은 군대 가 있을 때여서 얼마나 아이를 예뻐하고. 맨날 데리고 학교에도 가고. 직장 다니면서 직장에도 데리고 가고 했어요. ▷ 오히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더 챙겨주게 되는 거군요. ▶ 네. 얼마나 예뻐했는지. 저희는 정말, 저희 가정은 아이들을 위탁함으로 인해서 신세계를 맛보았습니다. ▷ 그런데 아이 키우시다 보면 혼낼 일도 생기잖아요. 혹시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또다시 마음을 다칠까 봐 망설여지지는 않으셨는지 어떻게 하셨어요? ▶ 그런 생각을 하면 제가 많이 위축이 되는데, 그냥 저는 이 아이들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얘네들을 확실하게 자립시키려면 야단칠 때도 분명하게 야단을 쳐야 되겠다 해서, 저는 그냥 잘못했을 때는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혼내고 했어요. 우리 아이들이랑 마찬가지로 키웠어요, 똑같이. ▷ 오늘 어버이날입니다. 혹시 딸들한테서 선물이나 카네이션 받으셨습니까? ▶ 문자 받았고요. 직장 생활하고 또 학교 가고 이러다 보니까 그렇긴 한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어머님도 계시고 또 친정엄마도 있고 이래서 저희 가족들은 어린이날 기념해서 가족여행을 갔어요. 가족 몽땅 다 해서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저는 오늘은 우리 엄마랑 어머니를 뵙고 와야 되죠. ▷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친부모랑 스스럼 없이 만나게 하셨다고 들었거든요. 아이들이 친부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 제가 그랬죠.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낳으면 다 너무 금쪽같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사정도 생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너희들을 우리가 만날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또 봐라. 요즘 낙태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낙태를 해서 너희들을 우리가 만날 수 없었다면 얼마나 불행했겠니. 그렇지만 정말 용기 있게 너희들을 낳아주고 또 이렇게 잘 자랄 수 있게 나한테 보내줘서 나는 더없이 감사하다. 그 낳았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너희 엄마들은 굉장히 큰 일을 한 거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줬어요. ▷ 위탁부모로 아이들을 키우시면서 홍보대사로도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혹시 좀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할 점, 지원이 필요한 점도 있다고 보십니까? ▶ 네, 있죠. 지금 현재 위탁부모는 시설이나 그룹홈 그런 관리자들처럼 저희들은 아이들을 잘 돌보라는 것만 있고 그 아이들의 생활에 필요한 친권 행사를 전혀 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친권이 필요한 아이들이 긴급하게 수술을 할 때요. 보호자 사인을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또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여행이라도 가려면 여권을 발급을 해야 하는데, 여권 발급도 친권이 없어서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지만 발급을 받을 수 있고. ▷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 그렇죠. 아주 불편한 게 아주 많이 불편하고. 제일 중요한 게 핸드폰 개설을 할 수가 없어요. 저희 아이들이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눈물 질질 짜고. 또 엄마랑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은 말도 못 하게 고생을 합니다. 아이들이야말로 요즘 핸드폰은 거의 존재감이거든요. 그런데 그 핸드폰이 고장나든가, 어떻게 돼서 교환을 하든가 새로 개설을 하든가 이럴 때는 정말 위탁부모 힘들다. 이런 호소들을 굉장히 많이 하세요. ▷ 그런 점들은 제도 보완이 꼭 돼야 될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여권 발급을 할 때 저희 아이 같은 경우는 작은 아이는 엄마가 있고 큰아이는 부모님을 잘 몰라요.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인데. 둘을 데리고 해외를 나가는데 여권을 발급을 하는데, 작은 아이는 엄마를 통해서 복수 여권을 발급 받았어요. 그런데 큰아이는 단체 여권을 발급 받다 보니까 얘가 굉장히 가슴이 아파요. 여권 색깔이 다르고. 막 유효기간 이런 게 다르고 하다 보니까, 아이가 굉장히 상심을 많이 했어요. ▷ 그런 부분은 정말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겠네요. ▶ 그렇죠. 아이들을 위해서 그런 배려는 좀 해줘야 되겠다 싶더라고요.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어버이날 맞아서 가슴으로 낳은 두 딸 키우신 위탁부모 사은숙 님 만나봤습니다. 이른 아침 인터뷰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김혜영2019.05.08
장애인을 위한 ‘무장애지도’를 아시나요? [앵커] 혹시 자주 가는 카페 입구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는지 확인해본 적 있으신가요? 한 청년이 장애인과 이동 약자들이 방문하기 편한 상점을 조사하며 특별한 지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은지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집 밖으로 나서는 게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상점 입구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는지, 근처에 장애인 화장실은 있는지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편함을 겪는 장애인을 위해 한 청년이 직접 나섰습니다. 비영리 스타트업 ‘위에이블(Weable)’을 운영하는 송덕진 씨입니다. 송 씨는 ‘무장애 여행지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무장애 여행지도는 장애인이나 이동 약자가 접근하기 쉬운 상점과 문화 공간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휠체어가 상점에 쉽게 진입할 수 있는지, 출입문은 어떻게 열리는지 꼼꼼히 조사한 후 지도에 표시했습니다. 그야말로 장애인을 위한 ‘대동여지도’입니다. 송 씨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일을 계기로 무장애 여행지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송덕진 가브리엘 / ‘위에이블(Weable)’ 대표> “휠체어를 타고 외식이나 여행이 힘들기 때문에 그런 걸 계속 미뤄두다가 결국 하지 못한 거잖아요. 그게 한이 돼서, 이걸 창업할 때 휠체어를 탄 가족분들이나 친구분들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공간들을 내가 직접 찾아서, 그리고 직접 가봐서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도를 만들게 됐고요.” 송 씨는 지도를 만들기 위해 직접 휠체어를 타고 한 달간 제주도를 누비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며 불편한 점을 조사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성동구 자원봉사센터와 협업해 15cm 높이의 삼각형 경사로를 만들어 상점에 배포했습니다. 주문제작부터 설치까지.... 송 씨의 손끝으로 설치된 경사로는 성동구에 10개, 서대문구에도 9개나 됩니다. 경사로 설치를 거절당하고,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힘든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송 씨는 좌절할 때마다 복음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송덕진 가브리엘 / ‘위에이블(Weable)’ 대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이 제 사업을 하는데, 제 인생을 살아가는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고요. 실제로 인간은 누구나 장애를 향해가고 있다는 말을 어떤 교수님께서 해주셨어요. 이게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에게 필요한 정보고,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정보라고 생각을 하고….” 송 씨는 자신이 하는 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변화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송덕진 가브리엘 / ‘위에이블(Weable)’ 대표> “장애가 있다고 못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좋은 환경을 만들고, 각자의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위기만 형성되면 많은 장애인이 사회 활동을 할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이런 경사로가 설치된 공간들에 큰 칭찬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cpbc 전은지입니다.전은지2019.01.02
![[인터뷰] 김종구 한글 운동가 "천주교 빠른 전파는 한글 덕분…새롭게 인식해야"](//cpbc.co.kr/CMS/news/2019/10/rc/764069_1.2_titleImage_1.jpg)
[인터뷰] 김종구 한글 운동가 "천주교 빠른 전파는 한글 덕분…새롭게 인식해야"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김종구 한글운동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도입 불과 3년 만인 1787년쯤 한글 교리 서적 번역 필사 천주교 선교 특성은 ‘문서 선교의 성공사례’ 정약종 성인이 쓴 최초 한글 교리책 `주교 요지` `장 주교 윤시제우서`, 한글 보급의 역사적 사건 한글과 천주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천주교, 한글에 대한 인식 새롭게 했으면 [인터뷰 전문] 오늘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한 지 573돌이 되는 한글날이죠.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한 국경일인데요. 교회 역사가들은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던 조선 시대에 천주교가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던 비결은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한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한글 역시 ‘천주교’ 덕분에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는 건데요. 신앙의 꽃을 피운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을 연구하고 알리는 일에 애쓰고 계신 한글운동가 김종구 선생님 스튜디오에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김종구 베르나르도입니다. ▷제가 한글운동가라고 소개를 했는데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 퇴임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한글 사랑`에 푹 빠지게 되셨어요? ▶제가 서울 온수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교직원 50명과 학생 천 오백 명이 힘을 합쳐 공연과 전시를 일주일 동안 열었는데요. 그해 한글학회에서 로 선정되어 한글 사랑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이시기도 한데요. 을 주제로 한 강의도 하고 계시다면서요? ▶서울대교구 노인대학 지금은 시니어 아카데미로 명칭을 바꾸어 부르고 있지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을 강의하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이라서 감동하며 경청할 때 참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는 사제나 수도자가 없었어도 준비된 한글로 “맞춤식 교리”를 가르쳐 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한글이 있어서 “믿음의 꽃과 순교의 꽃”을 피우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지요. ▷ 한글과 천주교의 첫 만남,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1784년 한국최초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 성인은 중국에서 세례를 받고 와서 권일신, 권철신 형제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는데 초기에는 `가성직제도`가 있어서 신부가 아닌 평신자가 세례를 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초기 중국 한자 교리서를 가지고 와서 양반들은 한자를 알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한자 모르는 평민들을 위해 곧바로 한글 교리서로 번역해 하느님의 진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불과 2~3년 안에 한글로 된 번역 교리책으로 믿음을 키우게 되었지요. ▷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이 하느님의 섭리였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하느님의 능력은 “천년도 하루같이, 하루도 천년으로 보시는 지혜”를 지니신 분입니다. 세종대왕께서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셨는데 주님께서 미리 한글을 창제하도록 예정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창제 후 최만리 같은 학자들이 임금께 상소를 올려 백성들이 한글사용을 반대해 한글 보급에는 실패했지요. 그런데 338년이 지난 후 1784년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는데 신부나 수도자가 없었어도 한문 교리책를 한글로 번역해 백성들이 하느님을 알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받아 드리는 도구인 한글이 미리 마련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 천주교는 박해 시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성장한 교회인데요. 초기 박해시대, 한글이 선교를 하는 데 어떻게 이용됐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나 미뤄 짐작할 만한 전승들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지요. ▶팔십 평생을 교회사를 연구하신 호남교회사 연구소장을 역임하신 김진소 신부께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한국 천주교 선교 특성은 ‘문서 선교의 성공사례’라 하시며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와서 직접 선교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자국민의 노력에 의해 교회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글 덕분이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글 교리책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세계 어느 나라를 찾아보아도 이런 예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박해시기 당시 천주교인들에게 한글이 더욱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던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천주교가 한글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장 주교 윤시제우서`라는 것인데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시메온 주교가 선포한 내용인데요. 베르뇌 주교를 우리나라 이름을 지어 ‘장경일 주교’라 불렀습니다. 장 주교가 각 공소 회장들에게 보내 편지인데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한글을 배우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합니다.” 한글을 배워서 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시오. 그리고 윤시란 말은 이 편지를 돌려가며 읽어 보라는 뜻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한글을 배우라는 명령을 내린 일이 없는데 오직 천주교 교구장이 교서를 내린 것은 왕명과 같은 권위와 위력이 있는 것입니다.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하고 최초로 한글을 배우라는 명령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한글로 된 교회서적들이 출판되기 시작한 건가요? ▶실제로 1784년 천주교가 도입된 이후 불과 3년 만인 1787년쯤부터 한글로 된 교리 서적이 발견되기 시작되었는데 한문 교리 책을 한글로 번역해 붓으로 필사해서 전달되고 서로 돌려가며 보거나 바꾸어 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천주교 박해시대 임에도 불구하고 신자 수가 늘어나게 되자 인쇄된 교리 책이 나와 쉽게 교리 책을 구할 수 있게 되었지요. ▷ 엄혹한 박해시대에 한글로 쓰여지고 한글로 읽혀지는 교리서나 관련 책자가 어떻게 전파됐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고 하느님을 믿게 되었으니까요. 첫 번째 소개하는 책은 초기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복자가 지은 최초 한글 교리책 “주교요지”는 하느님에 대한 핵심 내용인 천지 창조, 강생구속, 삼위일체. 권성 징악에 대한 내용을 읽고 하느님을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역관 최창현 요한 복자는 “성경직해광익”이란 책을 번역해서 지금의 미사 책을 보듯 각 공소 회장들이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것과 같이 순으로 역은 책입니다. 이렇게 선조들은 신부가 없었어도 주일을 잘 이끌어 갔지요. ▷조선에 온 파란 눈의 선교사들은 한글의 위대함을 익히 알았던 걸까요? 한글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했다면서요? ▶선교사들도 한글의 위대함 즉 독창적이고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도 한글을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지만 우리 말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동사의 변화와 말의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되기 때문에 글보다 말을 배우기가 힘들은 거죠. 처음 선교사가 다음에 오는 선교사들이 한국을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말의 뜻을 알려면 먼저 한불사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전 작업을 서두른 것이지요. 이 한불사전과 자전은 해방 후 한글 사전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천주교는 한글로 쓰여진 책 이외에도 한글로 된 노래로도 전파됐다고 하던데요, 어떤 노래인가요? ▶한글은 젊은이들에게는 하룻밤이면 배울 수 있는 한글이지만 나이든 어른들은 문맹으로 사는 분들도 많았지요, 그럼 글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느님 진리를 가르쳤을까요? 조상들의 지혜는 대단했습니다. 우리 고유 가사(노래)에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담아서 외우기만 하면 되는 천주가사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집안에는 어른 있고 나라에는 임금 있네/ 내몸에는 영혼 있고 하늘에는 천주 있네/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 공경 으뜸일세/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 남아 무궁하리. 이렇게 문맹자라도 외우기만 하면 하느님 진리를 깨닫게 가사로 믿음을 전파하였지요. 그 종류가 무려 23종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 한국 천주교회와 신자들이 한글을 어떻게 대하고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십니까? ▶저 역시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이란 것을 몰랐을 때는 한글의 역할이 천주교에 큰 영향을 주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에서 정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이제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한글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1784~1874 100년 동안 오직 천주교만이 한글을 널리 보급하는 큰일을 해냈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할 때입니다. 한국 천주교는 “문서 선교”로 성공한 나라, “맞춤식 교리” 즉 “한글 천주교 교리책”과 “한글 천주가사”로 “선교의 꽃”이 “순교의 꽃”으로 승화 되어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가 태어났지요. 앞으로도 더 많은 증빙자료가 찾아지면 더 많은 성인이나 복자가 태어나리라 확신합니다. “역사는 한 치의 거짓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사실 그대로 남아야 합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천주교는 한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한글에 대한 고마움도 다시 생각하면서 한국천주교회는 한글 기념미사와 강론을 준비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한글 운동가` 김종구 베르나르도 선생님과 말씀 나눴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윤재선2019.10.09
![[바티칸은 지금] 이창욱 "교황, 법관들이 예수님 모범 따르도록 기도 요청"](//cpbc.co.kr/CMS/news/2019/07/rc/757545_1.2_titleImage_1.jpg)
[바티칸은 지금] 이창욱 "교황, 법관들이 예수님 모범 따르도록 기도 요청"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이창욱 번역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정리하고 의미를 짚어보는 코너죠. , 오늘도 이창욱 번역가님 나와 주셨습니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바티칸뉴스 이창욱 펠릭스입니다. ▷ 교황님의 7월 기도지향부터 살펴볼까요? ▶ 네. 교황님은 7월 기도지향을 “법을 집행하는 모든 이가 공정하게 일하여 이 세상에 더 이상 불의가 만연하지 못하도록 기도합시다”라고 발표했는데요. 정의를 구현하는 법관, 법원, 재판관과 변호사들이 성실하게 일하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를 수 있도록 기도하자는 초대입니다. ▷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지네요. ▶ 그렇습니다. 법관들의 독립성은 편애나 편파성이 판결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됩니다. 교황은 최근 범미 법관 회담 연설을 통해 진실을 거래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부패, 파멸의 희생자요, 불평등의 대상은 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죠. 사회정의구현이 요청됩니다. ▷ 삼종기도에서 교황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 지난 7월 7일 연중 제14주일 삼종기도를 통해서 교황은 교회의 사명, 곧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사명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모든 이에게” 선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복음말씀이 루카 10장인데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는 장면입니다. 일흔둘이라는 숫자는 모든 민족을 나타냅니다. ▷ 72라는 숫자가 모든 민족을 뜻하는군요. 성경 안에 숫자 상징이 많지 않습니까? ▶ 네,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숫자 4는 사방, 곧 세상 전체를 뜻하고 3은 신적 존재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3+4=7, 7은 완전한 숫자고, 그 절반인 3과 1/2은 부분을 뜻하며, 6은 불완전한 숫자지요. 1000은 무한을 나타내고 12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지요. ▷ 666은 악마의 숫자를 상징한다지요. ▶ 네, 숫자에 해당하는 글자를 조합하면 로마 네로 황제를 뜻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묵시록에는 숫자상징 뿐 아니라 색깔상징, 동물상징 등이 나오는데 묵시문학적인 표현방식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0장에 보면 서로 다른 일흔두 민족이 언급되는데요, 이 일흔두 제자의 파견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사명을 예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 우리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일꾼을 청해야 합니다. ▷ 결국 선교사명에 관한 말씀이군요. 선교사명의 특징적인 표현이 따로 있나요? ▶ 먼저 예수님의 말씀에서 몇 가지 특징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청하여라. 두 번째는 가거라. 그런 다음에 아무 것도 지니지 말고 평화를 빌어주며, 병자를 고쳐주고 선포하라는 명령어들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즉 선교사명이 기도에 토대를 두고 있고, 선교는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순회하는 것이요, 아울러 가난이 요청됩니다. 교황님의 말씀을 들어보실까요?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왔다”(루카 10,17). 이는 선교사명의 성공에서 비롯한 하루살이 기쁨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루카 10,20)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에 뿌리를 둔 기쁨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따르라고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파괴될 수 없는 기쁨, 내적인 기쁨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분의 제자가 되는 기쁨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우리 각자는 이곳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세례성사 날에 받았던 이름(세례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고,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 안에 기록되었습니다.“ 삼종기도 훈화를 마친 후 교황은 리비아 난민구금시설 공습의 희생자들과 최근 폭력사태가 발발한 아프가니스탄, 말리, 부르키나 파소를 위해 기도하기를 초대했습니다. 교황은 “도움이 가장 필요한 난민들을 위해 인도적인 통로가 집중적이고 광범위하게 조직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리비아에서는 두 차례의 공습으로 최소 53명이 사망했고 130여명이 다쳤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수요일에는 일반알현이 없었습니다. ▷ 해외순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혹시 다른 일정 때문에 없었나요? ▶ 아마 7월 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예방, 그리고 7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우크라이나 그리스 동방 가톨릭교회 주교들과의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그렇군요. 러시아 대통령의 예방이 처음인가요? ▶ 푸틴 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포함해서 총 여섯 차례 바티칸을 찾았고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은 세 번째입니다. 양측은 양국의 관계 발전에 만족하며 교황청 산하 ‘밤비노 예수’ 소아병원과 러시아 내 소아병원 간의 협력에 관해 합의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 내 가톨릭 신자들의 생활에 관한 문제를 비롯해 환경문제와 시리아,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사태 등 다양한 국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첫해인 2013년 첫 만남에 이어 2015년에도 바티칸을 예방했는데 중동 및 시리아 지역 평화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특히 2015년에는 우크라이나 지역의 분쟁에 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교황청과 러시아의 관계가 대전환을 맞이한 것은 소련 말기인 지난 1989년 12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만남을 기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지난번 러시아 심해잠수정 사고도 있었지요? ▶ 네, 지난 7월 1일 월요일 러시아 해군 심해 연구 함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승조원들이 화재로 인한 연기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승조원 14명이 숨진 참사 소식을 전해 듣고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했습니다. 당시 잠수정은 러시아 북부 영해 해저에서 바다 깊이를 측정하던 중이었습니다. ▷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 주교들과의 만남도 있었지요? ▶ 지난 7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프란치스코 교황과 우크라이나 그리스 동방 가톨릭교회 주교들의 회의가 있었는데요, 사목, 복음화, 교회일치, 우크라이나의 사회-정치적 상황, 전쟁과 인도적 위기 상황이 이번 성찰의 주제였습니다. 이번 회의를 통해 교황은 자치권이 있는(sui iuris) 우크라이나 가톨릭교회와 가까이 있겠다는 뜻을 밝혔고, 우크라이나 교회가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하는 충실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 네. 교황의 말씀과 행보를 살펴보는 , 이창욱 번역가와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유리2019.07.10
[인터뷰] 최준규 신부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성 갖춘 인재 양성"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 진행 : 서종빈 앵커 ○ 출연 : 가톨릭대학교 대학발전추진단장 최준규 신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가톨릭대 `4차 산업혁명 선도대학` 선정 인공지능 시대, 인성과 공동체성 갖춘 인재 양성 [인터뷰 전문] 요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요. 이 같은 기술들은 모두 대학의 실험실에서 시작이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미래세대 인재양성, 그리고 기술개발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4차 산업혁명 혁신선도대학에 가톨릭대학교가 선정됐습니다. 그래서 가톨릭대 대학발전추진단장이신 최준규 신부님 연결해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최준규 신부님. ▶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대학이 미래의 인재를 길러내는 산실이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한 움직임이 많을 것 같은데요. 가톨릭대학교는 현재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는지요. ▶가톨릭대학교의 대처를 말씀드리자면 세 가지 국가 재정지원 사업을 먼저 소개를 좀 드리는 게 좋겠는데요. 가톨릭대학교에서는 2012년부터 링크사업, 2017년 링크플러스사업 그다음에 조금 아까 말씀하신 4차 산업혁신선도대학사업을 2019년 올해에 수주하게 됩니다. 링크사업을 많은 청취자께서 아시겠지만 간단히 설명 드리면 링크라고 하는 것은 대학과 산업계와 협력해서 대학이 그동안 관념적인 지식위주의 교육을 실천했다면 이제는 산업계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실사구시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인데요. 몇 년 동안 이 사업들을 하면서 저희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군요. 많은 분들이 가톨릭대학교 하면 인문학이 강점이다.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이번에 자연계열, 기초과학, 융합학문 쪽에 상당한 시스템을 갖추고 성과도 많이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실제로 이번에 4차 산업혁명 혁신선도대학으로 선정되지 않았습니까? 선정과정에 대해서 좀 신부님,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4차 산업혁명 이 사업이라고 하는 것을 사실 의미가 있게 보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링크플러스사업 그것이 링크사업의 제2단계 사업이었는데 거기에 전국 250개 대학 중에서 55개 대학이 선정되었고 그중에서 11개 대학만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선정이 되었는데 저희 대학이 거기에 들어가게 된 것인데요. 이번에 4차 산업혁명 선도대학사업은 링크플러스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대학만 지원할 수 있는 제한조건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다시 10개의 대학을 선발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가톨릭대학교가 선발이 되어서 굉장히 의미를 두고 베스트 중에 베스트다. 이렇게 나름대로는 자부심을 갖는 중에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혁신선도대학으로 선정이 되면 앞으로 어떤 지원을 받게 되는 거죠? ▶지원 자체는 간단히 말씀드리면 산학협력과 관련된 제4차 산업과 연관된 데이터 사이언스 라고 하는 분야를 특화해서 지원을 했는데요. 그 프로그램의 지원과 사람에 대한 직접 투자를 위해서 매년 10억씩 3년간 지원을 받게 됩니다. ▷2021년까지 3년 동안 연간 10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는다는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기술이 사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명윤리를 훼손하는 문제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습니까? ▶그렇죠. ▷가톨릭정신에 입각한 대학으로서 이 부분에 대한 교육 그리고 인재양성에 상당히 신경을 쓰실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인공지능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맞이하고 또 잘 적응해야 되는 환경이니까 그것을 탓할 수는 없고요. 단지 인간의 존엄성 생명윤리 훼손 등을 염려하면서 가톨릭대학교가 인재양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하고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가톨릭대학의 강점인 인성을 갖춘 또 공동체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데요. 제일 중요한 것은 함께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고 함께 일할 줄 아는 그런 인재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측면은 무엇보다도 그에 못지않게 실력과 경쟁력을 갖춘 그런 인재를 양성해야 되겠죠. 이것은 가톨릭대학교가 추구하는 인재양성의 두 바퀴 혹은 새의 두 날개 같은 것인데요. 저도 이것을 생각해보면서 사마리아인의 비유라고 하는 게 성경에 나오는데 사라마리아인의 비유가 바로 저희가 추구하는 인재양성과 어느 정도 맥이 닿아있다고 생각해서 잠깐 소개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네, 소개해주시죠.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면 사마리아인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반쯤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을 보게 되죠. 다른 사람들은 다 그냥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은 불쌍한 사람을 상처를 씻어주고 자기가 타고 왔던 나귀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두 데나리온이라는 돈을 주게 되는데 데나리온은 건장한 남자의 하루 일당이니까 두 데나리온이라고 하면 이틀 치 인건비가 되겠죠. 그거를 주면서 이 사람 잘 돌보아주기를 여관주인에게 부탁하고 만약에 돈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은 착한 심성도 갖고 또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기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라고 볼 수 있는데요. 가톨릭대학교가 인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인재를 양성하는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인성을 갖추고 공동체성을 갖춘 인재를 교육하기 위해서 특화된 교양교육도 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이게 어떤 교육인가요. ▶저희는 학부대학이라고 하는 부서에서 저희 학교에 모든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사실 교양교육이라고 하면 아주 역사가 대학 안에서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오래된 것이고 오늘날도 모든 대학에서 교양교육을 안 하는 곳이 없으며 또 생각해보면 인성교육이라고 하는 것도 모든 대학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가톨릭 대학의 교양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교양교육 혹은 인성교육의 프로그램 자체 혹은 그 내용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저희의 강점은 아무래도 교양교육의 목적 혹은 교양교육의 도달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저희가 강조하는 것을 두 측면에서 말씀드리면 하나는 영성교육을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영성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 구조 중에서 몸, 혼, 영 중에서 마지막인 영에 해당되는 것이고 인간의 영적 존재로서 영성을 갖고 있거든요. 영적인 능력이 있는데 주로 양심과 직관, 통교 같은 능력을 말하는 것인데요. 이런 점을 키울 수 있도록 인간 안에 담겨져 있는 영을 불태울 수 있도록 저희가 초점을 맞춰서 교육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고 두 번째는 윤리적인 측면이죠. 윤리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원칙과 질서 혹은 그 질서를 존중하는 정신 같은 걸 말하는 것인데 저희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책임감이나 질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도 안전한 또 영성적으로도 풍요로운 인재들을 양성하고자 저희가 교양교육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시간이 됐는데 마지막 질문 한 가지만 더 드리겠습니다. 가톨릭대학 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장학제도로 유명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북한이탈주민 학생을 위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몇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는지요. ▶저희는 학부, 대학원 포함해서 현재 20여 명이 있고요. 좀 더 많이 지원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인터뷰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가톨릭대학교 대학발전추진단장이신 최준규 신부님 만나봤습니다. 신부님,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서종빈2019.08.19
손희송 주교, 「칠성사 믿음의 문을 열다」 개정판 출간 하느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 은총을 부어주고 계시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성사’인데요. 서울대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가 최근 가톨릭교회의 칠성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문답 형식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을 펴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시절 20여 년 동안 성사론을 가르친 손희송 주교는 성사의 의미를 일깨우는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손 주교가 최근 펴낸 ‘칠성사 믿음의 문을 열다’는 1997년 출간한 ‘열려라 7성사’를 새롭게 보완한 책입니다. 칠성사의 기본 의미와 성사의 기원, 변천을 비롯해 관련된 성경 구절, 궁금증 등 성사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겼습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은총을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의 7가지 은혜를 얻으며, 세례 때 받은 은혜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게 됩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체성사, 영혼의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고해성사까지... 이처럼 7가지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생애 전체에 걸쳐 하느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사의 깊은 의미를 미처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성사를 어렵게 생각하고 두려워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미사 전례의 의미와 성체를 모시는 기쁨, 고해성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회개의 뜨거움까지... 이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 작업임을 되새긴다면, 어렵게만 여겨지던 성사생활이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신익준2018.08.16
![[전교주일특집 1] `SNS로 복음 전하는 성직자들`](//cpbc.co.kr/CMS/news/2018/10/rc/736193_1.1_titleImage_1.jpg)
[전교주일특집 1] `SNS로 복음 전하는 성직자들` [앵커] 유튜브 전성시대입니다.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유튜브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구독자만 50만 명을 보유한 초등학생이 있는가 하면, 재밌는 욕으로 ‘인기 유튜버’가 된 72살 할머니도 있습니다. <전교주일>을 맞아, SNS로 대표되는 유튜브를 통해 신자들과 소통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성직자들을 만나봤습니다. 이지혜 기자입니다. [기자] SNS 슈퍼스타로 꼽히는 사람은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9개국 언어로 개설된 교황의 트위터 계정은 팔로워만 4700만 명이 넘습니다. 교황의 트윗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리트윗 됩니다. 또, 유튜브 채널에 가톨릭을 검색하다보면 또 한명의 신부가 나옵니다. 닭 울음소리가 나는 인형을 흔들고, 트로트가 나오면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을 춥니다. 서울대교구 이영제 신부가 유튜브에 개설한 ‘가톨릭 주유소’입니다. 주님을 당신에게 소개합니다의 줄임말로,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경과 교리를 쉽고 편안하게 알려주기 위해 기획했습니다. 구독자 수는 2900여 명으로 지금까지 80여 편의 영상을 직접 찍어 올렸습니다. 페이스북에서 ‘겸손기도’로 알려진 신부도 있습니다. 대구대교구 마진우 신부는 볼리비아 선교 사제였습니다. 마 신부는 볼리비아의 선교 현장에서 느낀 단상과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복음풀이 강의 영상을 직접 제작해 유튜브에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올린 강의 영상만 1000편이 넘고, 구독자는 4100여 명입니다. 영적으로 목마른 현대인들에게 따끔하면서도 깊은 영성 강의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SNS에서 유통되고 있는 먹방과 신제품 리뷰와는 달리 사목자들이 올리는 영상과 콘텐츠는 영적으로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깊은 영성과 위로를 전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겸손기도 마진우 신부는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에게 유일한 제약은 거리와 시간이었다”며 “SNS를 유용하게 잘 쓰면 사람의 영혼을 파고드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겸손기도 마진우 신부/ 대구대교구> “피드백이 국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해외 여러분에게 반응이 오고요, 당신들이 현지 본당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기회들이고, 강론의 영역을 제가 하는 것들을 통해 채울 수 있다고 해서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cpbc 이지혜입니다. 신익준2018.10.16
[인터뷰] 나호견 이사장 "화성 8차, 억울한 옥살이 버티게 한 힘은 신앙"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나호견 뷰티플라이프 교화복지회 이사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사)교화복지회 뷰티플라이프, 재소자와 출소자 자립 도와 2006년 ‘빈첸시오’로 영세,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나 억울한 누명 쓰고도 남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 지녀 불편한 몸 불구하고 미사 거르지 않는 열심한 신앙인 출소자, 재소자에게 돌 던지려 하지 말고 격려해주기를 [인터뷰 전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이춘재가 특정되면서 또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감옥에서 살았던 윤 아무개씨도 그 중의 한 명인데요. 30년 만에 판결을 다시 바로잡아달라며 재심을 청구했다지만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그의 삶은 누가, 어떻게 대신해 줄 수가 있을까요? 교도소 교정위원으로 윤 씨를 만나 출소 이후 꾸준히 곁에서 힘이 되어준 분이 계십니다. 사단법인 교화복지회 뷰티플라이프 나호견 엘리사벳 이사장 연결해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나호견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먼저 뷰티플라이프가 어떤 단체인지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교도소에서 생활하시고 출소하시는 분들을 출소자라고 해요. 그분들이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데 돌아갈 수 없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나와서 다시 재범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는 분들을 가족처럼 숙식제공하고 직업도 알선해 주고 또한 저금도 해 주고 2년 동안 매달 100만 원 정도씩 저금을 해서 2년 후에 전세방 하나 얻어서 나갈 수 있는 자립의 집입니다. ▷8차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서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 씨를 교도소 교정위원으로 처음 만나셨다고 들었는데요. 윤 씨와의 첫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십니까? ▶제가 교도관님이나 재소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생활이 어려워서 가족도 오지 않고 다리가 많이 좋지 않아서 장애인시고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윤** 빈첸시오 형제가 나와서 참회를 하는데 굉장히 활발하고 아주 씩씩하게 자기의사도 잘 표현하고 옆에 있는 재소자들과도 농담도 하면서 제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그분이 거기에서 씩씩하게 잘 살고 계시더라고요. ▷그때는 윤 빈첸시오 형제님이 복역 중에 교정위원으로 만나신 거네요. 그렇게 윤 씨를 만날 때마다 어떤 말씀을 가장 많이 해주셨습니까? ▶교도소 안에서는 거기에 있는 분들에게 10명이 같이 모여 있을 때 매달 성경공부하고 그렇게 했고 이분이 출소해서 나오시고 나서는 제가 3년간 같이 살고 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제가 빈첸시오 형제가 다리가 많이 아파요. 통증이 많고 그래서 다리가 어떤가 많이 물어봤고 가족 중에 아프신 분이 계셔서 건강이 어떠신가 이런 얘기를 많이 해 주고. ▷윤 빈첸시오 형제님이 다리가 많이 안 좋으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선천적인 병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니면 경찰에서 수사를 받다가 고문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까? ▶선천적으로 소아마비 주사를 맞지 못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다리가 좋지 않아요. ▷그렇군요. 하지도 않은 살인을 했다고 누명을 쓰고, 그래서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의 억울함, 서러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겠습니다만 그 20년이라는 시간을 빈첸시오 형제님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이분이 20년을 사시고 2009년 8월 14일 저희 집에 오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이분하고 첫 대면을 했는데 제 손을 잡고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저를 살인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지만 원장님이라도 저를 믿어주시면 저는 소원이 없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저는 빈첸시오 형제에게 어떻게 20년을 참고 살았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자백을 하지 않으면 죽겠더라고요. 그래서 살기 위해서 자백을 했습니다.’라고 얘기했어요. 빈첸시오는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가. 자기는 죽이지 않았지만 믿어주지 않지만 자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로 아무리 세상 누가 나를 살인자라고 하더라도 나는 하지 않았으니까 떳떳하다. 그래서 나는 내 길을 걸어간다고 하고 흔들림 없이 자기 자신을 이끌어 나갔고 특히 2006년도에 영세를 했어요. 2009년도에 출소를 했고 3년이죠. 세례를 받고 나서 그때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 하느님께서 자기를 믿어주신다는 그 믿음이 더 큰 용기를 준 것 같습니다. ▷윤 씨의 세례명이 빈첸시오잖아요. 사형수나 무기징역수 같은 장기수들에게 과연 종교, 특히 세례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해지는데 이사장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사형수나 무기수는 희망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는 자기가 이미 죽었지만 하느님은 자기를 다시 살리셔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해주셨기 때문에 이제 자기는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세계로 진입을 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면에서는 안 되는 삶이 하느님의 신앙의 삶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 때문에 세례는 이분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이분들의 삶을 이끌어간다고 저는 생각을 해서 정말 신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빈첸시오 형제님이 하느님을 만나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 것은 빈첸시오 형제님만의 자기 의지가 굳건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우리 집에서 저하고 3년을 했고 또 우리 집 바로 옆에 이사를 가서 10년을 함께하고 있는데 보통 주일에도 근무를 해요. 그러면 토요일 저녁에 미사를 가요. ▷꼭 빠지지 않고 주일 저녁미사도 봉헌을 하고. ▶특별한 경우 외에는 꼭 미사를 가고 다리를 절뚝거리고 불편한 몸을 가지고도 미사에 참여하는 걸 보고 제가 감동했어요. 정말 신앙 생활 열심히 했습니다. ▷무기징역수에서 모범수로 20년형으로 감형을 받아서 출소를 했다고는 하지만 20대의 청년이 마흔이 넘어서야 세상에 나온 거 아니겠습니까. 강산이 두 번은 더 변했을 시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보니까 빈첸시오 형제님이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미움과 원망은 없고 감사만 가득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잘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되는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정말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실 겁니다. 그런데 빈첸시오 형제는 자기가 그러한 누명을 쓰고 살게 된 것이 누구의 탓이라고 얘기하기 이전에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주어진 운명인데 어떻게 하나. 받아들여야지. 그래서 그거를 그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나는 아무리 내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관없으니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열심히 살면 되고 그리고 그 열심히 사는 도중에 나를 도와주고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들이 많았어요. 교도소에도 교도관들이 이번에도 많이 인터뷰를 했지만 모범수였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성실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동료들도 빈첸시오를 믿어주고 상당히 인간관계가 좋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남을 원망하고 한탄하고 이런 식으로 살지 않고 긍정적으로 고통도 받아들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표시를 내지 않고 기쁘게 사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그것이 너무나 우리 빈첸시오 형제가 오늘의 이 시간이 올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느님만은 빈첸시오 형제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시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빈첸시오 형제님이 지난 13일 30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무죄를 받고 명예를 찾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는 말을 했던데, 재심청구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빈첸시오 형제는 재심은 자기 자신은 혼자서 30년은 결백하다고 하고 살았잖아요.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나 혼자가 아니라 세상이 결백하다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시간이 왔잖아요. 그것은 기적 아닙니까? 그래서 빈첸시오 형제는 재심은 내가 30년을 묵묵히 나 혼자서 외치고 지키고 하느님께 기도했던 그것들이 이제 이루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윤** 빈첸시오의 30년의 보상이고 그다음에 윤** 형제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재심을 청구하고 와서, ‘원장님, 이제 저는 죽어도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있게 돼서 정말로 행복해요.’ 왜, ‘저는 만약에 누명을 벗지 못하고 죽으면 내가 부모님 얼굴을 어떻게 볼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어요. 사형수, 살인자가 어떻게 부모님 얼굴을 보겠어요. 그랬는데 정말로 내가 누명을 벗게 되면 부모님을 떳떳이 만나보게 돼서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이라고 그렇게 눈물을 흘렸어요. ▷나호견 엘리사벳 이사장님이 재소자, 출소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오고 계신데 우리 사회가 재소자나 출소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실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이춘재의 자백이 이런 부분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춘재가 자백한 것이 누구 때문인지 윤** 빈첸시오의 30년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성실이 하느님이 이춘재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래서 윤성여는 그에게 고맙다고 감사하다는 그 말을 듣고 하느님의 기적이, 마음의 움직임과 함께 미안하다, 법정에 서서 진실을 밝혀주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모든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춘재가 사람도 아니고 저주 받을 사람이라고 국민들은 알고 있지만 한 사람의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에 조그마한 바늘구멍이라도 이춘재도 사람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적인 면을 드러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많은 출소자, 범죄자가 있지만 1% 외에 99%는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 남편, 자녀이고 우리처럼 아주 작은 일로 아주 큰 어려움 속에서, 유혹 속에서 한 번씩 넘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돌을 던져주지 마십시오.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서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좀 믿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가족처럼 생각하시고 믿어주시고 후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다시 이 사회에 떳떳한 시민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단법인 교화복지회 뷰티플라이프 나호견 엘리사벳 이사장과 말씀 나눴습니다. 나호견 이사장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윤재선2019.11.29
![[인터뷰] 김운회 주교 "감사와 은총의 춘천교구 80년…`받는 교구`서 `주는 교구`로"](//cpbc.co.kr/CMS/news/2019/11/rc/767430_1.0_titleImage_1.jpg)
[인터뷰] 김운회 주교 "감사와 은총의 춘천교구 80년…`받는 교구`서 `주는 교구`로"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김운회 춘천교구장 주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춘천교구 80주년, 감사와 은총의 시간 신앙쇄신 나부터, 사랑으로 하나되기 지향 본당 11곳에서 61곳, 신자 9천명에서 9만명 성장 그동안 `받는 교구`에서 이제 `주는 교구` 로 변화 3040세대, 교회에서 설 자리 부족…미래 어두울수밖에 교회가 3040세대에게 적극 다가가야 분단 교구로 통일사목 열망 강렬…함흥교구 성소자 양성중 나부터 변해 교구 신앙쇄신 함께하길 [인터뷰 전문] 올해 교구 설정 80주년을 맞아 감사와 은총의 해를 지낸 곳, 바로 춘천교구입니다. 어제 폐막미사를 봉헌하며 지난 8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다고 하는데요. 춘천교구장이신 김운회 주교 연결해 80주년을 기념한 올 한 해의 성과를 짚어보고 교구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과 비전에 관해서도 들어보겠습니다. 김운회 주교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이시고 또한 함흥교구장 서리를 맡고 계십니다. ▷김운회 주교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교구 설정 80주년을 기념해서 교구민들과 함께 의미 있는 한 해를 지내오셨는데 소회가 어떠십니까?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또 80주년을 준비하는 동안에 열심히 따라준 신부님들이나 공동체 모든 분들에게 신자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죠. 또 훌륭하게 아름답게 마칠 수 있었어요. 저희가 사실은 80주년을 잘 보내기 위해서 5년 전부터 목표를 세웠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교구의 선교율이 10%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10%를 달성하자. 또 미사참여율도 그래도 다른 교구에 비해서 열심히 참여하는데 30%는 돼야 하는데 우리가 40%를 한번 해보자. 다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본당이 목표에 따라줬어요. 그 목표에 달성했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죠. 그런데 이런 외형적인 수치보다는 사실은 우리가 80주년을 3가지의 방향성 안에서 80주년을 맞이하자 했거든요. 그 방향성이라는 게 첫째로는 신앙쇄신 측면에서 나부터 바뀌자는 것. 둘째로는 공동체 일체 측면에서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 돼서 살아가자. 또 셋째로는 복음화 측면에서 신앙의 기쁨을 전하는 것. 이렇게 3가지 방향성을 정해서 80주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외형적인 수치의 변화보다는 우리 스스로 변화되는 모습을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 해야만 우리가 오늘 돌아보고 앞으로 맞이할 100주년을 준비하는 모습을 만들어 내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공동체가 열심히 해줬어요. 드러난 것을 평가할 수 없지만 내 나름대로 느낌을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감사했다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또 80주년 행사로서 여러 가지 행사가 이루어졌지만 우리 교구의 주보가 예수성심이거든요. 그래서 예수성심상을 각 본당에 순례를 하면서 기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제가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것들이 교구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정말 은총 속에서 감사드린다고 생각하죠. ▷말 그대로 감사와 은총의 한 해를 교구민들과 함께 지내오셨는데 1939년에 교구가 설정됐는데 지난 80년간 신앙공동체로서 어떻게 얼마나 성장해왔는지 다시 한 번 회고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구가 80년 전 1939년에 서울교구, 옛날에 경성대목구죠. 거기에서 춘천지목구로 분리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춘천교구에 11개 본당밖에 없었어요. 사제수도 14명이었고 신자수는 9000명 정도였는데 지금 춘천교구는 그 당시의 분리될 때 강원교구에서 원주교구를 빼고서도 분리하고 나서도 지금 현재 춘천교구에 61개 본당이 있거든요. 11개에서 61개면 더군다나 원주까지 하면 100개가 넘는 본당이 되는데 그리고 교구 사제수도 117명입니다. 옛날 14명에 비하면 신자수는 2018년 기준으로 보면 8만 9500명 정도인데 올 연말까지 하면 9만 명. 9000에서 9만 명으로 성장했으니까 참 크죠. 그런데 외적인 성장보다는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우리가 많은 신앙적인 성숙함을 보여 오고 있다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예컨대 우리 교구 안에는 아주 다양한 신심단체, 적지만 적은 교구지만 다양한 신심단체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아주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예를 들어서 소공동체 모임이나 각 단체들 신심단체들. 성경 공부하는 모든 팀들. 이런 팀들이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리고 더군다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동안에 춘천교구가 적은 교구이기 때문에 주로 받는 교구였거든요. 도움을 받는 교구인데 이제는 우리도 주는 교구가 됐다는 거죠. 그래서 해외에도 교구 신부님들이 5명이나 나가서 파견돼서 사목을 하고 있고요. 여러 가지 면에서 해외의 어려운 곳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게 아주 뿌듯하죠. ▷80주년 맞아서 교구민을 대상으로 신앙 설문조사도 했던데요. 주교님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다. 과거와 달라진 신앙생활이나 교구민들이 새롭게 요구하는 것들도 파악됐습니까? ▶나름대로 그런 것들을 설문조사로 파악을 했는데요. 일단은 그것을 보면서 우리 교구민들이 사제들에 대해서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고요. 그래서 사랑을 통한, 신자들이 그러면서도 그런 사랑을 통한 일치를 갖다가 많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 스스로도 구체적인 관심사로서 냉담교구 문제나 또는 우리 교회의 고령화 문제 그리고 미래세대의 젊은이들의 신앙에 대한 관심 이런 거에 대해서 교회가 더 많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갖다가 요구를 했어요. 그래서 이런 것을 우리가 교구 사목에 효과적으로 어떻게 적용을 해서 사목을 잘해야 되겠다. 앞으로 미래에 이런 데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말씀하셨으니까 사제의 영적쇄신 또 교회의 허리가 되는 3040세대요. 돌봄에 대해서 심포지엄에서 역시 이게 춘천교구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지는데요. 주교님, 의미 있는 대안들이 제시됐다고 보십니까? ▶우리가 3040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분석을 해보면 첫 번째가 청소년사목과 관련해서 청소년신앙문제를 단순히 청소년신앙문제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청소년들의 부모가 되는 3040과 맞물려서 그것을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의 신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이들의 신앙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뻔한 사실이죠. 지난번 심포지엄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는 현재 교회의 주축이 되고 있는 세대, 지금 주축이 되고 있는 세대 그다음 세대를 3040세대가 이어나가야 되는데 그들에 대한 신앙들을 보면 우리 교회가 관심이 부족하다. 교회 안에 젊은이들이, 청년들이 설 자리가 부족하니까. 우리 교회가 소홀하다고 할까. 이들에 대해서 교회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면 우리 교회의 가까운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멀리 보지 않아도 이미 가까운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80주년을 맞는 교구가 3040에 대한 돌봄 심포지엄을 지난번에 했는데 이 심포지엄을 통해서 전문가들의 견해뿐만 아니라 3040세대의 생생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부모 부양과 자녀양육 사이에서 낀 세대. 그래서 제대로 자신의 신앙을 살아갈 여유를 갖지 못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소외됐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전 세대와 달리 외형적인 성공보다는 일과 가정의 균형에 힘쓰는 세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 이 3040 이들의 삶에 균형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심포지엄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지구별로 3040세대와 간담회를 통해서 그들과 그들의 신앙을 교회가 어떻게 돌보고 끌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함께 연구하고 찾아보자고 그런 결론을 냈습니다. ▷춘천교구는 분단교구로서 민족화해 또 통일을 위한 사목을 꾸준히 해 추진해오지 않았습니까? 주교님 보시기에 평가를 어떻게 해보고 계십니까? 앞으로 민족화해와 통일에 대비한 선교를 위해서 교구차원에게 추진하고 있는 사목이 있다면 어떤 게 있겠습니까? ▶춘천교구는 사실 분단과 교구 아니에요. 분단된 북녘 땅에는 이미 평강본당과 이천본당이 아직도 북녘 땅에 있습니다. 우리 교구 소속이죠. 이런 분단된 교구이기 때문에 통일사목의 목표는 다른 교구에 비해서 우리가 더 강렬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만 우리 교구가 한국 교회 전체의 일이니까 서로 협조해서 해야 되겠죠. 우리 교구가 그런 거로 전임 주교님 계실 때 이미 한솥밥 한 식구 운동을 했어요. ▷통일기금도 마련하고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매월 25일 날 기도하고 통일을 위한 교구의 염원과 준비를 내외적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기금을 모으고 실제로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를 하고 그리고 또 남북교류가 한동안 가능했을 때 우리가 북쪽 지역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연탄보내기를 했어요. 연탄 80만 장을 보내기도 하고 그 외에 다른 것도 지원을 하고 이런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혹시 교구 차원에서 함흥교구의 사제양성이라든지 함흥교구 신학생들을 키우는 그런 노력도 하셨습니까? ▶물론이죠. 제가 또 함흥교구장을 함께 맡고 있기 때문에 함흥교구의 성소자들, 앞으로 통일 이후에 함흥교구의 사목을 위해서 사제양성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저희들이 함흥교구 성소자들을 모집해서 여러 가지 심사를 거쳐서 신학교에 2명이 학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을 춘천교구 신학생들과 동등하게 똑같이 육성하고 그들을 지도하고 후원을 하는 춘천교구가 그런 모든 역할을 함흥교구의 통일과 사목에 대한 준비를 춘천교구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80주년을 잘 살아온 교구민들에게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당부의 말씀 전해주시겠습니까? ▶춘천교구가 굉장히 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서로 달라요. 우리가 동쪽에는 속초와 강릉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철원과 포천 가평까지 지역적으로도 넓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에는 교구민들 안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데 우리 교구민들이 참 순진해요, 시골이기 때문에. 환경도 있고 아주 착해요. 그리고 어떤 교구의 지시나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아주 열심히 따르는 그런 모습이 저뿐이 아니라 사제들의 사목에 대해서 열심히 따라주는 모습이 고맙고요. 그래서 이분들에게 더 우리가 열정적으로 무엇을 해드려야 되겠다는 그런 아쉬움이 늘 있습니다. 그래서 더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구민 모두에게 감사하고 새로운 100년을 향하는 교구민들이 다들 건강하게 우리들의 목표에 따라서 교구가 변화되고 또 변화됨 속에서 교구민들이 일치하면서 하느님이 보기에 아름다운 공동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알겠습니다. 김운회 춘천교구장 주교님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주교님 바쁘신 데도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김유리2019.11.25
 고 장동호 프란치스코 조각가 유작전](//cpbc.co.kr/CMS/news/2019/05/rc/754165_1.0_titleImage_1.jpg)
[문화확대경](19) 고 장동호 프란치스코 조각가 유작전 가톨릭 예술인들을 확대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코너죠. 시간입니다. 확대경을 들고 다니는 이힘 기자 나와 있습니다. ▷ 이 기자 어서오세요. ▶ 네, 안녕하세요. ▷ 오늘은 전시회 소식이네요? ▶ 네. 한국 가톨릭 성미술계에서 ‘천재 조각가’라고 불리고 분이죠. 故 장동호 프란치스코 작가의 전시회 ‘봄빛과 십자가’ 전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현재 서울 효창동 김세중미술관에서 전시가 한창입니다. ▷ 장동호 작가가 낯선 분도 계실 거에요. 대표작을 소개해주시면 청취자들도 친근하게 느끼실 것 같은데요. ▶ 명동대성당 앞마당에 장동호 작가의 작품이 있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모아이 예수님상이라고 불리는 예수님상 혹시 아시나요? ▷ 그럼요. 사제관 건물 앞에 있는 예수님상 말씀하시는 거죠? ▶ 네, 맞습니다. 아주 잘 아시네요. 1994년에 조각한 ‘사형선고 받으심’ 이라는 작품인데요. 눈을 감은 예수의 머리엔 가시 면류관이 씌워져 있고요. 얼굴엔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장동호 작가의 작품은 서울대교구 도봉동성당과 방학동성당, 방화3동성당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라디오 방송이라서, 작품을 말로 전해드리는 점이 못내 아쉽네요. 그래서 장동호 작가의 조각 작품을 음악으로 표현해봤다면서요? ▶ 네 그렇습니다. 김세중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장동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이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소프라노 임선혜 씨가 부른 ‘울게 하소서’ 인데요. 잠깐 들어보시겠습니다. “Lascia Ch`io Pianga......" ▶ 장동호 작가는 1961년에 태어나 2007년 선종했습니다. 46년이라는 길지 않은 삶 안에서 오로지 예수님과 조각을 위해 불꽃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장동호 작가가 젊은 나이에 두 아들과 아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건 ‘간암’ 때문이었습니다. 작가는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하듯, 선종하기 전까지 작품 제작에만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종 이듬해인 2008년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가톨릭미술상’ 본상을 받았습니다. ▷ 수상 소식을 기사로 접한 기억이 납니다. ▶ 당시 가톨릭미술상 심사위원이었던 교계 원로 화가와 조각가들은 장동호 작가를 극찬했습니다. ‘쇠뭉치로도 하느님의 온기와 사랑을 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조각가’라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입니다. ▷ 이번 전시회가 더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면서요? ▶ 네. 장동호 작가는 생전에 개인전을 한 번도 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전 형식의 유작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김세중미술관 김옥현 클라라 학예사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작년에 ‘한국 근현대미술의 미의식’이라는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께서 처음으로 장동호 작가의 작품을 보시게 됐어요. 많은 작품들이 나왔지만 장동호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시회 이후에도 정말 많은 요청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장동호 작가의 작품을 볼 수가 있느냐? 저희도 사실 그때 전시를 기획하고 보면서 장동호 작가에 대해 감동을 받았었는데요, 전시회를 기획을 하다보니 이분을 꼭 모시고 싶다. 어쩌면 첫 유작전이지만 저희가 성심성의껏 고인의 어떤 누가되지 않게끔 정말 좋은 전시회를 기획하고 싶다는 뜻이 많이 반영이 되어서...” ▷ 장동호 작가가 조각한 작품이 굉장히 디테일하다면서요? ▶ 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군더더기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조각에 문외한이신 분이 보더라도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김옥현 학예사의 설명을 더 들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장동호 작가의 작품을 보면 굉장히 섬세합니다. 근데 사실, 작품들이 사실적인 표현도 할 수 있고 굉장히 유려한 색을 쓸 수도 있고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런데 가장 단순화된 선으로서 표현한다는 거, 그게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떠한 예술가도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하시게 될 것같은데요, 장동호 작가(작품)에는 군더더기나 여과물들이 없습니다. 굉장히 단순합니다. 그 단순함 안에서 정말 그 진심, 어쩌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화두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더더기가 없는 정수를 맛봤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도 화려한 선이 없어도 그 어떠한 부연설명이 없어도 그 작가의 작품 만으로도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런 작품이지 않았나.. 그래서 대중들에게도...” ▷ 김세중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작가의 작품들은 어떤 것들인가요? ▶ 네. 프란치스코 성인을 유려한 선으로 표현한 ‘프란치스코 성인상’을 비롯해서요. 성모 마리아와 요셉, 예수로 이뤄진 성가정상 등 모두 60여 점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성가정상’은 보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성가정상을 감상할 때는 요셉 성인을 잘 살펴봐야 하는데요. 성경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주님의 양부인 요셉 성인이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안아 들어올리고, 자신은 성모자의 등 뒤에 낮은 자세로 숨어 있습니다. 김옥현 학예사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막연하게 결혼할 때 ‘성가정 이루세요’ 라고 많은 말씀을 해주시잖아요? 근데 사실 좀 어려웠어요. 요셉 마리아, 예수님 성가정. 인간적으로 봤을 때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런 부분도 많고 너무나 힘드셨겠다 생각했는데, 우리는 성가정 이루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이해가 갔어요. 진정한 성가정이구나. 요셉이 있었구나. 요셉의 그 큰 사랑이 있었구나. 아버지는 이렇구나. 아.. 장동호 작가의 성가정상은 많은 가정에서 보신다면은 정말 너무나 뜨겁게 이 시대 우리의 가정이 어떻게 나아가야하는지 어떤 사랑으로 살아가야하는지를 정말 의미있게 건네주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장동호 작가의 작품이 더 보고 싶네요. ▶ 네 그러시죠. 제가 문화 확대경 코너를 취재하면서 많은 신자 예술인들을 만나고 작품을 접해봤는데요. 신앙적으로 이렇게 묵직한 감동을 주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정말 혼자서 보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느님이 재능있고 능력있는 분, 신심이 깊은 분을 하늘나라에 먼저 데려가신 것 같은데요. 장동호 작가는 아마 하늘에서도 조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전시회, 언제까지 열리나요? ▶ 오는 6월 9일까지 진행됩니다. 열흘 남짓 남았으니까요. 더 더위지기 전에, 짬을 내서 가보시면 좋겠습니다.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 , 조각가인 故 장동호 프란치스코 작가의 유작 전시회인 ‘봄빛과 십자가’ 소식 전해드렸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힘2019.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