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베로니카가 만난 하느님(김혜진 베로니카,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4/30/M3u1714461349362.jpg)
[신앙단상] 베로니카가 만난 하느님(김혜진 베로니카,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30대 초반,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저서 「50가지 예수 모습」에서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제 나이와 예수님 나이가 비슷하다는 데서 오는 친밀감과 안셀름 신부님께서 해석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다양하면서도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예수님을 구세주·나그네·여성의 벗·화해 주선자·자유인·가정 문제 상담원·이야기꾼·고독자·이방인 등 성경 말씀을 토대로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먹보·술꾼·광대 등으로 비유한 몇몇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대체로 예수님이 지니신 모습을 잘 짚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세례를 받았는데 본명은 ‘베로니카’로 정했습니다. 성녀의 축일과 제 생일이 같고, ‘참된 모습’이라는 베로니카의 어원이 제 이름의 ‘진(眞)’과 딱 맞아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골고타 언덕에서 넘어지신 예수님께 손수건을 건네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와 땀을 닦아 주신 분을 제 수호성인으로 모시면서 제 신앙의 여정에서 만난 예수님의 첫 번째 모습은 진리의 예수님이셨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을 무렵, 저희 본당에는 갓 사제가 되어 오신 보좌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명쾌한 복음 강론은 물론, 신자들을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천국의 열쇠」의 치셤 신부님이 우리 본당에 오셨네!’라고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의 본명은 라이문도였는데, 신부님의 청렴함과 신실함이 본명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열정적인 복음 선포가의 모습으로 청년들과 함께하신 마티아 신부님, 침묵과 인내의 표상이신 바실리오 주교님, 기도와 묵상이 삶 자체이신 베네딕토 주교님, 진리 탐구에 진심이신 스테파노 신부님, 청빈한 생활을 실천하시는 크리스티나 수녀님 등 성인의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시는 성직자들을 만나면서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일상에 지쳐 용기와 힘을 얻고 싶을 때 제 주위를 둘러보곤 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빛깔과 향기를 지니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형제의 병간호에 애쓰고 있는 루치아, 네 형제를 키우면서도 인내심과 평정심을 잃지 않는 살로메, 가정 성화에 온 힘을 쏟으며 매일 기도하는 율리안나, 자유인의 삶을 추구하면서도 이웃을 위한 봉사를 쉬지 않는 리베라타, 특별하고 아름다운 옷을 디자인하여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스텔라, 가난한 이웃을 위해 거금을 기꺼이 쾌척하는 헬레나,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환경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안젤라, 엉뚱하지만 어린이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마르티나, 인품과 학식을 겸비한 스테파노⋯. 모두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50가지 예수 모습」에 ‘나는 어디에서 실제로 예수님을 만나고 있나?’라는 질문이 있는데,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씀과 사람’을 통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게 말씀으로, 사람으로 오십니다. 저는 그분의 현존을 제 주위 사람들의 말과 행동,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느낍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네. 그분 그리스도이시네.” 오늘따라 유별나게 로고스 찬가가 입안에 맴돕니다. 김혜진(베로니카, 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cpbc2024.06.18

회개와 절제로 그리스도의 부활 준비합시다사순 시기 읽을 만한 책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다. 일상에서 회개와 보속, 절제와 희생의 삶을 되새길 수 있는 책들을 골라봤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창조론 / 베네딕토 16세 / 조한규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성경의 모든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일까요? 실제로 어떤 신학자는 얼마 전에 창조라는 것이 이제는 비현실적 개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지성을 생각했을 때 이제는 더 이상 창조에 관해서 말해서는 안 되고, 대신 돌연변이나 자연 선택에 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말씀들은 과연 참된 것일까요?”(33쪽)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독일 뮌헨-프라이징대교구장이던 1981년 뮌헨 주교좌 성모대성당에서 행한 네 번의 사순 특강이 책으로 엮여 번역·출간됐다. 1996년 출간 당시 독일어 원제는 「Im Anfang schuf Gott: Vier Predigten ber Schpfung, Fall und Konsequenzen des Schpfungsglaubens(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 창조와 타락에 관한 네 개의 강론과 창조 신앙의 결론)」으로, 이번에 국내에서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창조론: 창조와 타락에 관한 네 개의 사순 특강」으로 소개되었다. 저자는 1980년대 이미 교회 내에서 창조 신앙에 대한 논의와 관심이 사라지고 있고, 교회 밖에서는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의 영향으로 전통적 창조 교리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는 교리는 세계가 영원한 과거로부터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과거의 특정한 시점에 생성되었고, 그 생성도 ‘무’(無)로부터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받아들인 창조 개념이고, 그리스 철학을 비롯해 그 당시 어떤 문화권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설명이다. 또한 그리스도교는 ‘지속적인 창조’(creatio continua), 즉 하느님께서 창조 이후에도, 지금도 계속해서 창조적 힘을 유지하고 계신다는 의미다. 저자는 그리스도교 신학 내에서 창조에 관한 문제가 더 관심을 받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발전을 기대하며 △창조주이신 하느님 △성경의 창조 이야기가 주는 의미 △인간의 창조 △죄와 구원 △창조 신앙의 결론 등 5개 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말씀처럼, 사랑을 배우다 / 송성호·강은형 / 리북 「말씀처럼, 사랑을 배우다」는 꼰솔라따 선교수도회의 한국 첫 평신도 선교사인 송성호(토마스 데 아퀴노)·강은형(로사) 부부의 아프리카 선교 에세이다. 가톨릭대학생회에서 만나 3년 연애 후 결혼한 이들은 아이들을 낳고, 각자 사회생활을 하고, 성당에 다니던 보통의 부부였다. 어느덧 은퇴기를 맞은 부부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떠나 만 3년을 살았다. 해외 선교를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부부는 낯선 곳에서 험한 바람과 출렁이는 파도를 만났지만, 그 안에서도 엄마 등에 업혀 잠든 아기처럼 깊은 평화와 감사, 충만함을 느꼈다. 낯선 길을 기꺼이 나섰을 때만 볼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의 아름다움과 비우고 맡기니 오히려 풍성하게 차오름을 경험했다. 이 책은 ‘왜 가게 되었는가?’를 시작으로 초기의 당혹감과 좌절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선교사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등 선교사로서 부부의 생생한 체험, 신앙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그저 부르심을 받았고, 파견되었으며, 가서 살았다. 우리의 삶 안에 진정한 사랑이 있었다면 몇 알의 씨앗이 심겨져 자라고 있을 테고, 그렇지 않았다면 헛일을 한 셈이다. (중략)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느님께는 가능하다.’(루카 18,27) 그러니 우리가 초보 선교사로서 소임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 고백한다. 만약 한국의 익숙한 환경에서만 살았다면 우리가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문화적 배경으로 오늘의 ‘나’가 되었는지 의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교만함은 아마 죽을 때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다.”(‘에필로그’ 중에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 이소연 / 돌고래 “새 옷에 만족하는 유효기간은 턱없이 짧았다. 어쩌면 옷이 많을수록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옷이 이렇게 많은데 입을 옷은 없다니? 쇼핑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내 삶을 고립시켰다.”(27쪽)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는 기쁘나 슬프나 옷을 사다, 2019년부터 새 옷을 사지 않는 ‘제로웨이스트 의생활’을 실천하며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코리아에서도 활동 중인 저자의 기록이다. 개인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패션이라는 명분하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착취적 현실을 탐구하고 고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옷은 해마다 1000억 벌 이상 만들어지고 330억 벌씩 버려진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산업용수 폐수 중 20%가 직류 처리와 염색 과정에서 발생한다. 패딩 점퍼 생산에 동원되는 오리는 생후 10주부터 평생 동안 가슴 털을 뽑히다가 죽음을 맞는다. 저자는 옷의 생산·유통·폐기 등 패션업계 안팎의 현실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의생활을 낱낱이 고하며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실천 방법을 본인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안내한다. 멋을 내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옷을 사고 싶을 땐 중고품부터 찾아보고, 유행은 돌고 보니 부모님 옷장도 살펴보고, 옷을 눈에 보이게 잘 정리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며, 무엇보다 자신의 취향을 분석하는 과정이 선행될 것을 강조한다. 나는 소고기입니다 / 김주연 글 · 강혜원 그림 / 씨드북 손질된 고기를 먹으면서 그 고기를 내어준 동물이 한때는 생명을 가진 존재였음을 인식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소고기입니다」는 한 소가 태어나 고기가 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따뜻한 그림과 함께 따라가 보는 책이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반가움, 두려움 등 소의 담담한 목소리와 소의 시선에 비친 풍경을 통해 농장 동물의 짧은 삶을 함께 체험해 볼 수 있다. 채식을 하자거나 모든 소를 자연 방목하여 키우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고기 요리가 어떤 생명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한 번쯤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또 원래부터 고기였던 것이 아니라 숨 쉬던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식탁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달라지지 않을까.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2.22

제 탓이요[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5)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재앙이 닥쳤는지 말해 보시오.”(요나 1,8)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아담인 남자가 홀로인 것이 안타까운 나머지 하느님께서는 그의 짝인 여자 하와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때 아담은 넘치는 기쁨을 주체할 길이 없어 그야말로 “부르짖었다”(창세 2,23)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 같은 사랑의 탄성은 둘을 한 몸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2,24) 이 말씀을 성경 주석은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성경 저자는 남자가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아낸 기쁨을 서술한 뒤(23절), 24절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끌리는 매력을 당연시한다. 새로운 사랑의 관계는 혈연관계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밝혀진다.” 그러면서 성경 주석은 그 사랑의 강력한 관계의 예를 아가서의 다음 말씀으로 제시합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정열은 저승처럼 억센 것, 그 열기는 불의 열기, 더할 나위 없이 격렬한 불길이랍니다. 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강물도 휩쓸어 가지 못한답니다.”(아가 8,6-7) 그런데 이 뜨거운 사랑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으로 하느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따서 아담과 함께 먹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남자인 아담을 추궁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3,11) 그러자 남자인 아담이 너무도 치졸하고 비겁하고 유치하게 그토록 뜨거웠던 사랑의 배우자 하와를 고발합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3,12) 이렇듯 남자가 인류 최초의 고자질을 저지릅니다. 이 치사한 고자질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아름다웠던 사랑의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원죄는 인간이 감히 하느님과 같아지려 하였던 ‘교만’의 죄가 첫 시작이었지만 그 내면에는 잘못의 탓을 자신이 아닌 남에게 돌린 죄가 있었습니다. 하와도 죄의 탓을 뱀에게 돌립니다. 결국 인간의 첫 죄는 “제 탓입니다”가 아닌 ‘남의 탓’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모든 잘못의 탓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인정할 때는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가 생깁니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내게는 조금도 잘못이 없고 모두 남의 탓일 때는 억울함의 분노가 나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평화와 사랑의 관계를 깨트리게 되며 죄가 자신을 지배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죄는 죽음을 가져오게 됩니다. 요나는 비록 하느님의 부르심에 도망치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 있었지만,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솔직했고 용감했습니다. 진실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잘못에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는 “제 탓이오!”를 고백한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요나였기에 하느님께서 그를 예언자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과 선택은 인간의 판단과 기준을 뒤집을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가 부족하거나, 배움이 없거나, 우유부단하거나, 성격이 모나고 불같은 사람이거나 때론 한없이 연약하더라도 기꺼이 뽑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가장 큰 은총인 ‘기다림’을 발휘하시어 부족한 인간의 성숙을, 변화를, 회개를 기다려 주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느꼈던 분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 1,27–28) 그래서 다시 요나는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아! 모든 잘못된 일들을 처음 평화의 상태로 만들고 싶다면, 단 한 마디로 충분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작은 아들, 탕자의 고백입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루카 15,18) 모든 잘못의 원인은 바로 제 탓이었습니다.”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cpbc2023.10.30
「천상의 책」과 관련 도서… 출판 허가 취소교회 가르침에 맞지 않아, ‘하느님의 뜻 영성 연구회’도 금지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1월 25일 교령을 발표하고, 「천상의 책」과 관련한 도서 출판 허가를 취소하고, ‘하느님의 뜻 영성 연구회’ 관련 모임과 기도회를 금지했다. 정 대주교는 교령에서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천상의 책」에 대해 검토한 후 내린 의견과 주교단의 일체성을 존중해 「천상의 책」과 관련한 도서 출판 허가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정 대주교는 “내용과 형식이 성경과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거나 심지어 반대되는 교의적, 영성적 오류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며 “사적 계시가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한국 교회의 현 상황에서 신자들에게 그릇된 신심을 퍼뜨리고 교회 내 혼란과 분열을 조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출판 허가가 취소된 도서는 「천상의 책」 20권과 「하느님 뜻의 나라 동정 마리아」, 「하느님의 뜻이 영혼을 다스리실 때」, 「영적 순례 24시간」, 「하느님의 뜻 영성」, 「하느님의 뜻 기도 모음」,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 「거룩한 미사」 등이다. 정 대주교는 ‘하느님의 뜻 영성’ 관련 모임과 기도회에 대해서도 “의도치 않게 자칫 그릇된 신심을 퍼뜨리거나 교회 내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1일부터 ‘하느님의 뜻 영성’ 관련 모임과 기도회를 일체 불허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많은 교우가 공인된 신심 활동과 영성 생활에 더 깊은 관심과 열의를 갖고 임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재진2024.01.28
![[신앙단상] 사랑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김혜진 베로니카,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4/30/M3u1714461349362.jpg)
[신앙단상] 사랑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김혜진 베로니카,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 캄보디아 하비에르 학교는 캄보디아에서도 가장 가난하다고 알려진 시소폰 지역에 있습니다. 예수회가 설립한 학교로 초중등 교육을 함께 하고 있는 곳입니다. 십여 년 전에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 건립을 위한 자선 공연의 연출을 도와드리면서 인연을 맺게 된 저는 여전히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연말, 캄보디아의 첫 예수회 사제이신 다모 신부님의 첫 미사에 초대받아 성당에 들어섰는데 십여 명의 앳된 소년과 소녀들이 밝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눈에 캄보디아의 하비에르 학교에서 온 친구들임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다모 신부님의 성소 이야기와 강론 말씀이 끝나고 축하 공연이 있다는 안내 이후, 캄보디아 전통 의상을 입은 학생들이 제단 위로 올라가 귀에 익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에 문외한인 저는 특정 멜로디나 가사를 듣고 단번에 곡명을 맞히지 못하는 편인데 왠지 모르게 첫 소절부터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 노래는 바로 떼제 성가 중의 하나인 ‘사랑의 나눔(Ubi Caritas)’이었습니다. 멜로디는 익숙했지만 캄보디아어로 시작했기 때문에 무슨 노래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어린 친구들은 캄보디아어에 이어서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라고 한국어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퍼서 운 것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 놀람으로 인한 감격의 눈물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떼제 성가는 제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20대 청년 시절, 프랑스의 떼제 마을에서 2주 동안 침묵 피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전에는 성경 공부, 오후에는 화장실 청소와 급식 지원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성당에 모여 떼제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사람과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단 앞의 수사님들을 중심으로 해서 한목소리로 찬양하되 각자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자세로 기도하였습니다. 제가 떼제에 머무를 당시는 로제 수사님께서 살아 계실 때라서 공동체의 기도를 친히 이끌어 주셨습니다. 성·인종·언어·문화·국적·종교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반목하고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를 청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25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체험이 워낙 선명해 잊지 못하고 있는데, 인간이 구분 지어 놓은 모든 것을 초월해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됨을 캄보디아 하비에르 학교 학생들의 떼제 찬양을 통해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맑은 눈을 지닌 10대 친구들이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손에 손을 맞잡고 찬양하는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떼제 성가는 아주 단순한 가사와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지만 반복해 부르면서 내 안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시간을 갖게 합니다. 성모님께 바치는 묵주 기도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떼제 성가 ‘사랑의 나눔’을 듣고 부르며 예수님의 기도를 새깁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저 또한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 또한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파견하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요한 17,21) 김혜진(베로니카, 성균관대 학부대학 초빙교수)cpbc2024.05.28

성모 신심 다시 일깨우고 아이들 신심도 키우고성모 성월이자 가정의 달에 읽을 만한 책 바르톨로메오 에스테반 무리요 작 ‘로사리오의 성모’, 1675~1680년. 성모 성월이면서 가정의 달인 5월이다. 예수님의 어머니이자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성모님을 더 깊게 묵상할 수 있는 책과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봤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철학자, 믿음의 여인을 묵상하다 베른하르트 벨테 신부/ 조규홍 옮김 가톨릭출판사 “은총은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우리 인간이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며 변화를 일으킨다. 그렇게 교회는 가르친다. 하지만 은총이란 용어는 현대인들에게 어느덧 추상적이며 난해하게 들리는 용어가 되어 버렸다. 도대체 그와 같은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을까? 또 어째서 성모님이 은총의 모범적인 인물이 되실 수 있다는 말인가?”(114쪽) 성모님은 모범적인 신앙의 표징이다. 마리아에서 예수님의 어머니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 성모님에 대해 바로 알고 그 삶을 따르는 데 지침이 될 만한 책이 나왔다. 독일의 종교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베른하르트 벨테(1906~1983) 신부가 쓴 「철학자, 믿음의 여인을 묵상하다」이다. 저자는 자신이 몸담았던 프라이부르크 알버트 루드비히 대학교 성당에서 주기적으로 성모님에 대해 강연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성경 속에 나타난 성모님과 예수님의 일화를 섬세하게 살피며 이를 구원 역사 전체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또 가톨릭의 전통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성모님 호칭과 그에 관련된 용어, 여러 상징의 유래와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바로 세우고 더욱 깊이 묵상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저 원죄 없이 태어나신 여인에게 눈을 떼지 않으면서 요한 세례자가 그랬던 것처럼, 그 빛을 증언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빛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만큼 그 빛은 우리를 위해서도 더 확고하게 증언해 줄 것이요, 우리의 마음을 훨씬 더 밝고 더 기쁘게 이끌어 줄 것이다.”(91쪽) 스무 개의 YES 데니스 M. 맥닐 신부 / 한덕현 신부 옮김 바오로딸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모든 이와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모든 이를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일과 이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께 기쁘게 ‘예’라고 대답하십니다.”(99쪽) 성모님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묵주 기도가 떠오른다. 성모님과 함께 바치는 묵주 기도의 환희·빛·고통·영광의 신비에는 저마다 예수님의 생애와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신 성모님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깊게 묵상할수록 신앙적으로 한층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무 개의 YES」는 이 묵주 기도의 신비를 ‘스무 개의 예’라는 관점에서 묵상한 책이다. 미국 클리블랜드교구 원죄없는잉태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는 저자 데니스 M. 맥닐 신부는 묵주 기도의 모든 신비 안에 스무 개 이상의 ‘예’라는 응답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예수님이, 때로는 성모 마리아가, 때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모든 사람이 각각 ‘예’라는 응답으로 서로 이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묵주 기도의 모든 신비에 ‘예’라는 응답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구원 신비가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며, 그 모범적인 사례를 상세히 소개한다. 독자들 또한 묵주 기도가 주는 값진 선물을 발견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반항 천사와 충실 천사 바르바라 바페티 / 김희중 대주교 옮김 생활성서 아이가 ‘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네 아이의 엄마이자 이탈리아 페루자의 ‘테네레짜의 집’ 가정 공동체 일원인 바르바라 바페티는 “성경에서 ‘죄’라는 단어는 원래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가게 쏘는 걸 의미한다”며 “‘과녁’대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바꿔보면 어렴풋이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항 천사와 충실 천사」는 그녀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신앙 도서다. 하느님께 반항한 교만한 천사 루치펠과 주님께 한결같이 충실한 미카엘 대천사의 이야기부터 원죄·용서 등 죄와 관련된 10여 개의 소주제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라는 큰 주제를 설명하고 있다. 36쪽의 짧은 분량에 글의 이해를 돕는 그림까지 더해 부담감을 줄인 대신, 깊이 있는 내용으로 교회의 주요한 가르침과 신앙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핵심적인 교리를 충실히 담았다. “하느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도,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도 모두 알고 계셔요.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우리를 용서해 주세요.”(6쪽)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겁내지 마세요. 그러면 우리는 죄에서 더 멀어지고 하느님의 마음에는 더욱 가까워질 거예요.”(15쪽) 광주대교구장을 지낸 김희중 대주교가 번역했다. 욕 좀 하면 어때서 정진 글·서희주 그림 북스토리아이 말은 실체가 없다. 그래서 언어적인 폭력이 마음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면, 고운 말 역시 타인에게 눈에 띄지 않는 감흥을 남기는 동시에 쓰는 이의 올바른 성품을 드러낸다. 「욕 좀 하면 어때서」는 어린이를 위한 대화의 기술을 수록한 책이다. 정진(로사) 동화 작가가 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을 인터뷰한 뒤 현장감 있는 이야기로 어린이들이 노출될 수 있는 언어폭력의 종류와 각각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대개 뜻도 알지 못한 채 친구들끼리 재미로 주고받는 욕과 나쁜 언어 습관의 사례를 재미난 삽화와 함께 풀어내 흥미를 더한다. 저자는 “아름다운 우리말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잘못된 언어 습관을 고쳐 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며 “바르고 좋은 말을 배워서 쓰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훨씬 행복해지고 함께 사는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윤하정2024.04.30

바오로딸 성경학교, ‘e-러닝 단과과정’ 신설정규과정과 달리 수시입학 가능, 첫해 과정은 세 강좌로 구성 ‘과학, 성경을 만나다-진화론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김도현 신부의 강의 녹화 현장. 바오로딸수도회는 최근 45년 전통의 ‘바오로딸 성경학교’ 교육과정을 개편해 ‘이러닝 단과 과정’을 신설했다. 해마다 11월에서 다음 해 2월까지로 정해진 모집기간을 놓치면 입학할 수 없었던 정규과정과는 달리 수시입학이 가능한 별도의 교육 과정을 개설해 성경 공부를 하려는 신자들의 목마름을 채웠다. 성경학교는 1978년 우편으로 성경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고자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으로 시작했다. 이후 2020년 11월 ‘바오로딸 성경학교’로 개칭하고, 기존 우편 성경공부와 온라인 동영상 강의인 이러닝(e-learning) 성경공부 과정을 운영하다 이러닝 단과 과정을 개설하게 됐다. 이러닝 단과과정은 1학년에서 6학년까지 학년제로 6년간에 걸쳐 성경의 권별 개관과 성경 본문의 의미를 배우도록 이끌어주는 이러닝 정규 과정과는 달리 성경 본문의 세밀한 주해뿐 아니라 타 학문과의 접점을 찾아 성경의 세계를 좀더 흥미롭게 탐구할 수 있도록 했고 수시입학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닝 단과 과정 첫해 강좌는 △염철호 신부와 함께하는 이스라엘 성지순례(염철호 신부, 부산교구, 부산가톨릭대 부총장)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자기선언’(최광희 신부, 서울대교구 성 앵베르센터 부센터장) △과학, 성경을 만나다-진화론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김도현 신부, 예수회) 등 세 강좌로 구성됐다. ‘염철호 신부와 함께하는 이스라엘 성지순례’ 강좌는 코로나19로 성지순례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바오로딸)을 번역한 염철호 신부의 강의를 통해 성지순례를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주고,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의 내용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 안내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강좌다. 6강에 수강료는 2만 원.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강좌는 네 복음서 중 신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복음서이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워하는 복음서이기도 한 요한복음의 다양한 상징 중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에고 에이미(γ μι)’의 일곱 가지 표현을 자세히 풀어줌으로써 요한복음의 전체 내용을 파악하도록 해주고, 동시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이끌어준다. 8강에 3만 원. ‘과학, 성경을 만나다’는 신앙인들이라면 맨 먼저 마주치게 되는 의문 중 하나인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의문에 현역 이론물리학자이면서 가톨릭 사제이기도 한 예수회 한국관구의 김도현 신부의 답변으로 풀어간다. 그는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에도 과학과 신앙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밝혀주고 과학과 조화를 이루는 성경 해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6강에 2만 원. 이러닝 단과 과정은 내년 2023년에 △교부들에게 배우는 성경 해석(변종찬 신부, 서울대교구, 가톨릭대 교수) △유다이즘과 그리스도교 공동 모태로서 신ㆍ구약 중간 시기(이진수 신부, 마산교구 거창본당 주임) 등 두 강좌를 준비 중이다. 바오로딸 성경학교 담당 전로사 수녀는 “강의를 통해 성경이 단순히 문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것, 또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주는 마중물이 되고자 한다”면서 “저희 성경학교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이들 듣고 싶어하는 강좌를 선별해 먼저 강좌를 개설했고, 앞으로도 성경에 다양한 주제를 접목한 강좌를 개설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08.17

영상언어에 익숙한 MZ세대, 힙하게 책 놀이하며 독서[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86. MZ세대의 새로운 독서 방식 독서는 인내와 사고를 필요로 하는 앎의 과정이다. 읽는다는 것은 기호의 의미를 습득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역량이다. 출처=Pixabay 재미의 시대다.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가 어느 순간 우리 삶 깊숙이 핵심가치로 들어와 있다. 참고 인내하면서 ‘재미’보다 ‘의미’를 찾으라는 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무엇이든 ‘재미’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의미’도 ‘가치’도 만나는 세상이다. 재미는 무엇일까?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감정일까? “재미는 놀라움이 있는 즐거움이다.” 게임 디자이너 제시 셀(Jesse schell)의 말이다. 놀라움은 새로워야 한다. 늘 반복해온 당연하고 익숙한 것은 놀랍지 않다. 물론 ‘재미’는 주관적이다. 하지만 새로움과 놀라움은 어떤 영역에서든 흥미를 주고 활력을 준다. 「재미의 본질」 저자 김선진은 문자언어 시대에서 영상언어 시대로 들어서면서 재미에 변화가 왔다고 말한다. 문자의 재미는 느리게 서서히 녹아들어 가지만 영상의 재미는 빠르고 즉각적이고 직관적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영상언어의 재미에 익숙해지면 ‘노잼’(재미없음)을 견디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결국 나도 모르게 도파민 중독자로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책 읽기는 습관이 되어 재미를 느낄 때까지 지루한 학습과 지난한 수련과정을 필요로 한다. 독서는 인내와 사고를 필요로 하는 앎의 과정이다. 읽는다는 것은 기호의 의미를 습득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역량이다. 독서를 통해 은유와 상징을 읽어내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내면의 자아를 만난다.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면서 사고와 지각, 창의력, 심리발달의 많은 과정의 행위를 거친다. 무엇보다 독서는 몰입 상태에서 인내심과 집중력을 키워주고 산만함을 줄여준다. 단순히 지식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변화와 성장을 향한 놀라운 창조 과정에 들어서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침묵과 사색의 여백을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믿어왔던 독서의 가치이며 신념이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내적 몰입으로 관조하고 사색하는 책 읽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1권도 읽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우리 인간은 화학적인 존재다. 디지털 환경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생각과 행동의 자극에 반응하기 위해 뇌가 만들어내는 감정과 화학물질에 영향을 받는다. 감각적이고 자극적이고 빠른 영상언어를 통한 재미에 길들여지면서 생존과 관계없는 독서나 기도를 통한 사유의 행위가 퇴보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저서 「고백록」에서 스승인 암브로시오 주교가 성경을 읽을 때 입술로 소리 내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눈으로만 심취하고 가슴으로 의미를 새겨나가는 모습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수도승들은 글을 읽을 때 눈으로 대충 빨리 읽지 않으려고 작은 소리로 낭독하고 그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기억하는 것이 일반적인 독서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용히 침묵으로 책을 읽는 모습은 그 시대에 너무도 놀랍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묵독하는 스승의 모습에서 놀라운 경험을 한 아우구스티노가 디지털 시대 새로운 방식의 독서 방식을 만난다면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MZ세대가 독서를 새로운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책은 더 이상 지식 습득이나 정보 전달만의 수단이 아니라고 한다. 글자는 정적이고 고전적이지도 않다. 책에서 힙한 놀이요소를 찾아내 독서놀이를 경험하고 공유한다. 독서는 내적 몰입 상태에서 자아를 만나기보다 힙하고 우아한 취미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낸다. 지루하고 집중해야만 하는 독서활동이 아닌, 가벼운 놀이로 공유하면서 나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즐기는 문화적 현상, ‘텍스트힙’이다. 텍스트와 힙하다는 말이 합쳐진 신조어다. 책의 문구를 인용하고 텍스트를 꾸미고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감성을 전시한다. 있는 척을 넘어 아는 척으로 ‘있어빌리티’(있다와 어빌리티(ability)를 결합한 신조어)까지 누릴 수 있다. 행복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듯 꼭 알아야 지식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는 척만 잘해도 아는 것이고 능력이란다. 독서를 리뷰하고 인증하고 기록하고 즐기는 텍스트힙, 자신들만의 고유한 트렌드와 문화를 창출하면서 우월감을 과시하는 새로운 방식의 책 읽기다. <영성이 묻는 안부> 우리나라 노년층의 독서율은 점점 낮아지는 반면,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인 연령층은 20대라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책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사는 줄 알았던 20~30대가 더 많이 책을 읽는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전통적인 독서의 가치에 비춰보면 ‘텍스트힙’이라는 새로운 문화현상이 그들만의 ‘지적 허영’이고 외적인 것에 치우친 허세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제이며 미디어학자인 월터 옹에 의하면 ‘구술’이냐 ‘문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 자체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무엇으로 소통하고 사느냐에 따라 사고방식과 인식체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지요. 태어날 때부터 ‘영상언어’에 의존하면서 세상과 소통방식을 배워온 우리 젊은 세대들이 힙하게 책 놀이를 하며 창조적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늘 새로운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 세상과 어떤 소통 관계를 맺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내적·영적 풍경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cpbc2024.09.25

북경으로 오는 조선 교우 만나기 위해 만리장성 넘어 서만자로[‘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 24. 만리장성을 넘다 대주 성문은 태원에서 만리장성으로 가는 첫 관문이다. 산서에서 만리장성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대주 성문을 지나야 했기에 브뤼기에르 주교 역시 이 성문을 통과했을 것이다. 기현 출발 일주일 만에 만리장성 남쪽 도착 1834년 9월 17일 왕 요셉을 북경으로 급하게 보냈습니다. 조선 교우들이 음력 9월에 북경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어서입니다. 저 역시 그들을 만나기 위해 9월 22일 서둘러 서만자로 떠났습니다. 그곳은 북경에서 가깝고, 제가 조선 교우들을 만나기 훨씬 수월한 곳입니다. 산서대목구장 살베티 주교·알폰소 신부와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살베티 주교는 내게 주려고 상당한 금액을 꾸어 보려고 했습니다. 저는 주교님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가중시킬까 봐 걱정돼 살베티 주교에게 “긴급한 상황에 부닥치면 그때 주교님의 도움을 청하겠습니다”라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살베티 주교는 제게 훌륭한 길 안내인을 붙여줬습니다. 덕분에 서만자로 가는 여정은 이전보다 훨씬 즐겁고 수월했습니다.(필자 주- 브뤼기에르 주교의 산서대목구에서 서만자까지의 여정은 그의 여행기나 서한에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만리장성을 넘어 서만자로 갔다는 내용이 거의 전부다. 하지만 그의 행적은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의 조선 입국 여정을 살펴보면 상세히 알 수 있다. 앵베르 주교는 서한에서 “산서에서 서만자까지 갔다가 이후 갑사의 명의 주교(브뤼기에르 주교)와 그 밖의 동료(모방)가 다닌 무인지대 평원을 가로지르는 길보다 더 수월하고 덜 추운 달단만(요동만) 해변을 따라가는 국도로 갔다”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앵베르 주교가 1837년 12월 8일 자로 마카오 극동대표부장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브뤼기에르와 앵베르 주교는 적어도 산서대목구청에서 서만자까지 같은 길을 이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 글은 앵베르 주교의 여정을 기초로 브뤼기에르 주교의 서만자 여정을 재조명한 내용이다.) 산서대목구청이 자리한 기현(祁縣)에서 출발해 산서성의 성도인 태원부(太源府)로 갔습니다. 이곳을 통과해야만 만리장성으로 가는 관문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현에서 태원부까지 하루 반나절 길입니다. 태원은 중국 춘추시대(기원전 770~476) 때부터 형성된 고도입니다. 진(晋)의 땅이었던 태원은 전국시대에는 조나라에 속했다가 명ㆍ청 이후 산서성 성도로 자리해 오고 있었습니다. 태원부로 들어가기 위해선 통행세를 내야 합니다. 저와 길 안내인은 태원의 서쪽에서 동북쪽으로 가로질러 북경으로 가는 성문을 빠져나간 후 대동부(大同府)로 가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 길로 5일을 쉼 없이 가야만 만리장성의 남쪽 성벽에 다다릅니다. 우리는 1834년 9월 22일 산서대목구청을 떠나 일주일 만인 9월 29일 만리장성의 외벽에 도착했습니다.(필자 주- 브뤼기에르 주교의 여정은 앵베르 주교의 여행 일정과 딱 들어맞는다. 앵베르 주교 역시 산서대목구청에서 태원까지 하루 반나절, 태원에서 만리장성 남쪽 성벽까지 닷새가 걸렸다.) 제법 높았지만, 사람들이 제게 겁을 준 위험들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은 산을 하나 오른 다음 만리장성 외벽을 만났습니다. 여러 곳에 구멍이 나고 무너져 있지만, 예전에는 사방이 모두 벽돌로 덮여 있었다고 합니다. 몇 개의 초소가 있습니다. 초소는 밀수를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여행자들의 금품을 강탈하기 위해 세워졌다고들 말합니다. 저의 길 안내인도 초소를 지키는 관원들과 가벼운 언쟁을 벌였습니다. 길 안내인은 충분히 돈을 주지 않으려 하고, 관원들은 지나치게 뇌물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타협점을 찾았고 저는 무사히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돈 앞에서 서양인인 저의 존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안문관은 대상들의 무역로였다. 바위에 난 수레바퀴 자국이 얼마나 많은 교역이 이뤄졌는지를 보여준다. 브뤼기에르 주교 일행은 안문관을 지키는 관원들에게 통행세 형식의 뇌물을 쥐여주고 아무 탈 없이 통과했다. 대주 관문 관원들에게 돈 주고 통행증 구해 만리장성 남쪽 성벽 입구가 있는 도시가 바로 대주(代州)입니다. 만리장성을 통과하려면 이곳에서 관문 통행증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대주의 주막에서 관문 관원들에게 돈을 주고 통행증을 구했습니다. 대주에서 만리장성 남쪽 산기슭에 있는 안문관(雁門關)과 산 정상, 그리고 성벽 북쪽 산 밑에 있는 광무(廣武) 등 세 관문을 거쳐야만 대동부(大同府)로 갈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만난 만리장성 관문은 바로 안문관이었습니다. ‘기러기가 지나가는 길’이라는 뜻의 안문관은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해발 1700m의 깊은 산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 고대 춘추시대 때 북방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어진 이곳은 “안문을 얻으면 천하를 얻고, 안문을 잃으면 중원을 잃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최후의 방위선이자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중국인들은 만리장성 동쪽 끝인 산해관을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 하고, 고비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만리장성 서쪽 관문인 가욕관을 ‘천하웅관’(天下雄關)이라 부르며, 안문관을 ‘중화제일관’(中華第一關)이라 합니다. 안문관은 또한 서역 대상의 주요 교통로였습니다. 대상들의 무거운 짐수레가 바위를 닳게 해 바퀴 길을 낼 정도로 왕래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관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짐수레의 크기와 수에 따라 상인들로부터 뇌물을 챙겼습니다. 만리장성은 평야지대, 그리고 산맥들 사이의 협곡들에서 성벽의 높이가 10~12m로 방어용 보루를 갖춘 큰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산맥 위로 올라가면 이 성벽의 높이가 3m나 될까 의심스럽습니다. 산맥 위의 성벽은 각면보루 형태를 취하고 있는 작은 언덕들과 아주 가까운 구릉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방 신부는 다른 문 한 곳으로 만리장성을 통과했고, 왕 요셉도 2개의 각기 다른 문으로 북경을 드나들었습니다. 이 성벽은 중국과 달단을 물리적으로 갈라놓고 있습니다. 남쪽 산비탈은 청나라에 속하고, 북쪽의 것은 달단에 속합니다. 이 북쪽 관문이 있는 도시가 ‘장가구(張家口)’입니다. 저 역시 장가구를 통과해 서만자로 갈 예정입니다. 러시아인들이 북경에 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안문관을 무사히 빠져나온 우리는 왜웨라는 하급 관리가 지키는 산꼭대기 관문을 지나 마지막 관문인 ‘광무(廣武)’로 향했습니다. 안문관에서 광무까지 만리장성은 토성입니다. 이 토성은 무너지고 여기저기 끊어져 있습니다. 광무는 산서성 산양현 남쪽 40㎞ 지점에 있습니다. 이곳은 한나라 당시 흉노와 동이가 서로 땅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싸우던 지역입니다. 고조선과 흉노가 다투다가 한 무제가 이곳을 점령했고, 고구려가 강해지면서 고구려 땅이 되었다가 나중에 발해, 요에 넘어간 곳입니다. 안문관을 통과한 후 광무까지의 만리장성은 주로 토성으로 이뤄져 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이 길을 걸어갈 때에도 토성 곳곳이 무너지고 끊겨 있었다. 대동에서 방앗간 운영 왕푸의 집에 머물러 광무 고성은 돌로 쌓은 입구 벽을 보면 마치 명나라 시대 옹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구려성’입니다. 고구려성의 특징인 ‘치(雉)’가 군데군데 확연하게 설치돼 있습니다. 치는 성벽 일부를 앞으로 나오게 쌓아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과 좌우 측면에서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물입니다. 한족들은 성문을 일(一)자 형태로 만들지, 절대로 휘어지게 쌓지 않습니다.(필자 주- 브뤼기에르 주교의 「여행기」를 보면 정작 그는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한 우리 민족의 삶 터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다만 만리장성을 설명하기 위해 진나라 시황제를 비롯한 중국 연대기만 장황하게 적고 있다. “그들의 제국이 설립된 것은 약 4000년, 다시 말해 70인역 성경의 연대기를 채택한다면 대홍수 훨씬 이전으로 그리고 히브리어 텍스트와 불가타 성경의 연대기를 따른다면 노아가 신아르 평야로 내려간 얼마 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식으로.) 광무를 빠져나오면서 우리는 관리들에게 대주에서 받았던 만리장성 통행증을 반환했습니다. 그리고 광무 고성에서 약 8㎞ 떨어진 곳까지 더 가서 숙박했습니다. 광무에서 잠을 자는 것은 신분을 들킬 위험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일을 더 걸어 산서성의 마지막 관문인 ‘대동(大同)’에 도착했습니다. 대동은 선비족인 북위(386~534)가 처음 도읍을 정했던 고도(古都)입니다. 이곳은 돈황 막고굴·낙양 용문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는 ‘운강석굴’로 유명한 곳입니다. 운강석굴은 약 1㎞에 달하는 사암층 40여 개 동굴에 5만여 개의 불상이 조각돼 장관을 이룬다고 합니다. 대동은 정사각형의 성채를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입니다. 우리는 대동 동문(東門)인 ‘화양문(和陽門)’으로 들어가 방앗간을 운영하는 왕푸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필자 주- 브뤼기에르 주교보다 3년 늦게 같은 길을 간 앵베르 주교는 대동 왕푸의 집에 머물렀다. 일반적으로 박해시대 때 선교사들의 길 안내인들은 발각되지 않는 이상 고정된 비밀 루트와 신변이 보장된 특정 교우 집에 머문다. 앵베르 주교는 이 길을 오는 서양 선교사들에게 반드시 왕푸를 만나도록 권고했다. 앵베르 주교는 “왕푸는 훌륭한 교리교사이고 그의 가족들은 참으로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추천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도 대동에서 이 집에 머물렀음이 분명하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7.17

동행 _ 예수의 일생은총의 동산에서 : 렉시오 디비나 상상을 해 봅시다. 지금 우리는 제주도 성이시돌 목장 새미 은총의 동산 입구에 서 있습니다. 이곳 새미 은총의 동산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할 수 있는 12가지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성경 텍스트 중 특별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12가지 사건을 골라서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번 쭉 구경삼아 둘러보면 1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그 의미를 짚어가며 깊은 기도에 잠기다 보면 3시간도 부족합니다. 나는 이제 이 지면을 빌려 10분짜리 구경이 아니라, 3시간이 걸리는 관상을 하려 합니다. 자! 이제 제주 이시돌 목장 새미 은총의 동산으로 가서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상을 해 보겠습니다. 지금 교회의 전통적인 관상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상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 영적 독서)입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학문적 차원에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고 침잠해 들어가 는 방법입니다. 성경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선물합니다. 논리가 아닌 신비를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에 대해 가장 좋은 설명은 12세기 카르투시오회의 제9대 원장이었던 귀고(?~1188)의 저서 「수도자의 사다리」(The Ladder of Monks)에 나와 있습니다. 귀고는 렉시오 디비나를 천상으로 올라가는 ‘영적 사다리’에 비유하면서 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 (Contemplatio)의 네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의 일생에 접근하려는 방법이 바로 귀고가 말한 네 단계의 영적 사다리,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렉시오 디비나로 성경 속 예수님의 행적을 읽는다는 것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을 뜻하는 한자는 볼 시(視)입니다. 시력이 좋다고 할 때의 시가 바로 볼 시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보는 것, 눈으로 보지 않고 어떤 사물과 사건의 본질을 보는 것을 뜻하는 한자는 볼 관(觀)입니다. 여기서 관(觀)은 꿰뚫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술가 들이나 시인들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때 관(觀)찰력이 좋다고 말하지, 시(視)력이 좋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의 외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사건의 의미가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말이 관상기도입니다. 시력기도가 아니라 관상기도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관상기도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주 성이시돌목장 새미 은총의 동산에 오면 이렇게들 말합니다. “와! 조경이 잘되어 있네.” “잘 꾸며놨네.” “사진찍기에 좋겠다.” 이것은 볼 시(視)입니다. 볼 관(觀)해야 합니다. 시력으로 보면 우리 마음 안에 기도 의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봐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립니다. 뒤에 가서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모습을 관상할텐데, “예수님은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 “내가 받은 세 례는 뭐지?” “세례받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마음 기도에 머물 때, 우리 마음 안에는 성령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일생을, 제주 성 이시돌목장 새미 은총의 동산에서 하나하나 짚어가며 렉시오 디비나 작업을 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새미 은총의 동산 입구에 서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탄생 예고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눈 앞에 보이는(視) 천사는 어떤 분이실까요? 그렇죠! 대천 사 가브리엘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왜 이곳에 계시는 것일까요? 글 _ 안성철 신부(마조리노, 성바오로수도회cpbc2023.09.01

하느님 뜻 찾아내는 식별력 키우기[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56) 반석 위에 지은 집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마태 7,24) 살아오면서 많은 시련과 위기를 겪으며 삶이 흔들림을 누구나 경험하였을 것이다. 사회 초년생에서 노년에 이른 어르신까지.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에게도 위기는 닥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바다 위 폭풍우나 풍랑 같은 위기나 시련이 닥쳐왔을 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돈이나 재산, 권력이나 지위가 아닌 하느님뿐이시며 그분께 의탁하는 신앙뿐임을 고백하게 된다. 성경은 곳곳에서 어떤 시련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아 든든히 기댈 수 있는 바위와 같은 분으로 하느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주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 말씀은 어떤 뜻일까? 먼저 예수님의 산상 설교(마태 5-7장) 말씀을 그저 듣지만 말고 실행으로 옮기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이를 ‘순종’이라고 한다면, 순종이 맹목적인 복종이 아님은 분명하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제자를 바라지 않으셨다. 신앙에서 순종은 ‘식별’의 결과다. 그것은 자신의 뜻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처음에는 갈등을 겪지만, 조금씩 자기 뜻을 하느님 뜻에 맞춰가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진정한 순종은 ‘자발적인’ 순종이다. 이는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계획을 전해 듣고 곰곰이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며 오리무중과 같은 시간을 거친 후에 도달한 신앙의 확신과도 같다.(루카 1,26-38 참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에 옮기라는 말씀은, 그분의 말씀 하나하나를 글자 그대로 따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인간 삶은 복잡하고 예측 불가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답을 예견하여 알려주실 수 없으셨다. 혹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문답집처럼 정형화된 답을 그대로 반복하기를 바라지 않으셨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계속 아버지의 뜻을 찾아가도록 함께 길을 걸으며 격려해주고 동반해 주셨다. 복음서의 예수님과 우리의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존재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시며 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그 거리를 뛰어넘어 당신 말씀에 담긴 하느님 뜻을 헤아리고 그것을 실행하도록 안배하셨다. 불확실하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복잡한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영적인 귀를 쫑긋 세울 필요가 있다. 양성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식별력 함양이다. 양성의 관건은 스스로의 삶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읽어내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아기처럼 떠먹여 주는 것만을 받아먹는 수동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묻고 찾아 나서라고 재촉하신다. 오늘 주님께서 나에게, 공동체에 해주시는 말씀,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야 할 그분의 뜻은 어떤 것일까? 정형화된 답은 없다. 진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주님과 함께 묻고 찾아가는 길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주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한민택 신부cpbc2024.06.25
![[금주의 성인] 성 마르코 사도 (4월 25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4/16/sQz1713254076694.jpg)
[금주의 성인] 성 마르코 사도 (4월 25일) +74년쯤, 키프로스 출생 알렉산드리아 선종, 복음사가,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성 마르코 복음사가. 사진=굿뉴스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마르코 성인은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사도 12,12)과 동일 인물로 요한은 유다식, 마르코는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마르코는 성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를 수행해 안티오키아로 갔고(12,25), 그다음 키프로스로 가 바오로의 제1차 선교여행을 함께했습니다.(13,5) 이후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키프로스로 갔고(사도 15,39), 바오로가 로마에서 투옥되었을 때는 함께 갇혀 있었습니다.(콜로 4,10) 마르코는 성 베드로 사도의 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나의 아들 마르코’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1베드 5,13) 교회 전승에 따르면 마르코는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풀려났을 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사도 12,12)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마르코는 베드로와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초대교회 전승은 마르코가 베드로의 대변인이자 통역관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방 교회에서는 신약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요한 마르코와는 다른, 비블로스의 주교라고 여기며 9월 27일에 축일을 기념합니다. 마르코는 60~70년 사이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서를 기술했습니다. 이는 주로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소아시아 지방 히에라폴리스의 성 파피아스 주교는 마르코가 베드로의 통역자로서 직접 예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예수님을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전해 들은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클레멘스의 증언이나 교회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는 베드로에 의해 이집트로 파견되어 그곳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으로,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우고 초대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르코는 신자들과 함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드리던 중 이교도들의 습격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쳤고, 신자들은 그 틈에 마르코의 시신을 수습해 인근 성당에 모셨다고 합니다. 유해는 82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옮겨졌습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이를 기념해 성인의 이름을 딴 산마르코 대성당을 짓고 그곳에 유해를 모셨습니다.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상징으로는 날개 달린 사자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그의 복음서가 성 요한 세례자의 광야에서의 외침으로 시작하자 이를 포효하는 사자에 비유하며 생겨났습니다. 날개는 에제키엘 예언자가 환시로 본 네 마리 생물을 복음사가들에 적용한 데서 유래했습니다.cpbc2024.04.17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2)[월간 꿈 CUM] 노호영 신부의 사진 이야기 - 어둠 속 별을 바라보며, 따라가며 (2) 어둠이 찾아오는 순간. 호주 시드니 근교의 키아마(KIAMA) 호주에서 바라봤던 그 날의 밤하늘.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시간이면서 동시에 그동안 잠시 지쳐있었던 필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그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시선이 자주 하늘을 향하게 되었고, 점차 어두워진 하늘이,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별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화려한 도시 속에서만 사진의 대상을 찾고 있었는데, 점차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는 대상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밤하늘의 별을 만난 후로 점차 타국에서의 불안했던 마음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었던 것 같다. 뉴질랜드 남섬 레이크 테카포(Lake Tekapo) 시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물질만능주의의 만연과 더불어 장기화된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무엇을 희망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고민을 한 번쯤은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 내 눈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그리고 ‘내 바라봄의 대상은 무엇인가?’ ‘그 대상이 혹시 너무나 쉽게 변하며 모두의 욕심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멸망하는 소돔을 향해 뒤돌아본 ‘롯의 아내’와 메시아의 별을 바라보며 떠났던 ‘동방 박사들’은 결국 그들의 시선이 그들을 어디까지 가게 했는지, 그것이 절망이었는지 기쁨이었는지, 이미 그 결말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성경은 바라봄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마태 2,10) 밤하늘의 은하수를 기다리며. 뉴질랜드 남섬 레이크 테카포(Lake Tekapo) 글 _ 노호영 신부 (미카엘, 대전교구 고덕본당 주임) 사진으로 아름다움을 담아내려 노력하는 신부. 8년 전부터는 자연 속의 경이로운 순간들, 특히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를 쫓아다니며 하느님의 피조물을 촬영하고 정리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제13회 ‘서울시 빛공해 사진공모전’ 최우수상, 제26회·제28회 ‘천체사진공모전’ 금상 및 우수상을 비롯해 다수의 사진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cpbc2023.11.06

신앙 생활에 플러스 되는 ‘cpbc 플러스’ 1년가톨릭 콘텐츠 전문 온라인 서비스, 누적 조회 1086만 기록 가톨릭 신앙의 보물창고 ‘cpbc플러스’가 3일 첫돌을 맞았다. cpbc플러스는 cpbc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사장 조정래 신부)이 출시한 국내 최초 가톨릭 콘텐츠 전문 온라인 서비스(OTT)다. cpbc 자체 제작 콘텐츠뿐 아니라, 명작 영화를 비롯한 우수한 국내외 가톨릭 콘텐츠를 스마트폰 등 다양한 IT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즐길 수 있다. cpbc플러스는 지난해 3월 3일 출시 후 지금까지 150여 개 콘텐츠(VOD·AOD)를 공개, 1년 사이 누적 조회수 1086만 회를 기록했다. 전신인 cpbc홈페이지 대비 연간 신규 가입자 수는 약 5배 증가했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도 최근 2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한 해 동안 cpbc플러스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찾은 검색어는 ‘매일미사’였다. cpbc 최장수 프로그램인 ‘TV 매일미사’를 시청하기 위해서다. 유튜브로도 송출되는 TV 매일미사는 몸이 불편하거나 성당에 갈 수 없어 미사 참여하지 못하는 신자들의 전례 참여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그 역할과 중요성이 커져 2020년 가톨릭 매스컴대상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가톨릭의 모든 것’을 표방하는 cpbc플러스는 영상·음성(오디오)·뉴스·라이브러리·인터랙티브 등 다양한 양질의 콘텐츠를 선사한다. 영상은 강좌·교양·다큐멘터리·영화 등이, 음성은 오디오 성경·드라마 등이 꾸준히 게재돼 선보인다. 뉴스는 가톨릭평화신문과 TV 영상·온라인 기사가 두루 제공되고 있다. 라이브러리는 가톨릭평화신문 36년 역사가 축적된 한국 교회사·교리·영성·가톨릭 문화에 관한 연재물과 기획 기사 시리즈를 망라한 코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로는 ‘플러스 연구소’와 ‘모두의 세례명’ 등이 있다. 지난 1년간 cpbc플러스 이용자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콘텐츠는 △내 안에 머물러라(강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영화) △특별기획 미션3(다큐멘터리) △해시태그 안젤라(교양) △소리로 만나는 신앙체험수기(AOD) △루카 복음서(오디오 성경) △전동킥보드, 면허 필수인데…청소년들 어떻게 타는 걸까?(영상 뉴스) △한센인들 곁에서 43년…‘영원한 친구’ 유의배 신부(신문 기사) 등이다. 맞춤형 콘텐츠 제안 서비스 개시 예정 cpbc플러스는 다양한 콘텐츠 제공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 전례력에 맞는 콘텐츠를 알아서 추천해 신앙생활을 돕는 편리한 기능도 갖췄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의 삶에 신앙을 더해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중에는 이용자 취향과 경험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안하는 추천 서비스도 개시될 예정이다. 접근성과 편의성을 도모하고 있는 cpbc플러스 웹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도 청장년층 신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로물로(로물로) cpbc 미디어본부장은 “더 많은 가톨릭 신자와 비신자들에게 다채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앞으로 국제적인 가톨릭 방송사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해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K-가톨릭’ 콘텐츠를 알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앞서 cpbc 사장 조정래 신부와 이 본부장은 지난해 2023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 기간에 한국 주교단을 대상으로 cpbc플러스 비전과 운영에 관한 설명회를 진행했다. 1988년 ‘평화신문’ 창간을 필두로 1990년 ‘PBC FM’ 라디오 개국·1995년 ‘평화방송 TV’ 개국, 그리고 2023년 cpbc플러스 출시까지. 이로써 cpbc는 신문과 라디오·TV에 이어 OTT까지 갖춘 국내 유일 종합 매스컴으로 거듭났다. 한달간 댓글 참여 행사, 경품 증정 이에 cpbc플러스 1주년을 맞아 이용자들과 기쁨과 감사를 함께 나누는 자리도 마련했다. 2월 29일~3월 30일 한 달간 진행하는 온라인 댓글 참여 행사다. cpbc플러스에 1주년 축하 게시판을 열어 베스트 댓글을 뽑은 뒤 경품을 증정한다. 선정 결과는 주님 부활 대축일(3월 31일)에 발표된다. 1등(1명) 상품은 ‘모두의 세례명’ 굿즈, 2등(2명)은 cpbc 대표 캐릭터인 ‘폴라’·‘폴리’ 쿠션, 3등(5명)은 1만 원어치 커피 기프티콘이다. 폴라(Paula)와 폴리(Paulie)는 귀여운 흰 비둘기와 겨자씨로, 각각 홍보의 수호성인 바오로 사도의 영어 여성·남성 이름을 이어받았다. 폴(Paul)은 라틴어로 ‘작은(little)’이란 의미도 있다. 작디작은 존재인 폴라와 폴리는 하느님 말씀을 겸허하게 따르고 전파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아울러 cpbc는 2월 29일~3월 22일 인터랙티브 콘텐츠 ‘플러스 연구소’를 통한 1주년 퀴즈 행사도 진행한다. 무작위로 추첨한 10명에게 상품을 증정한다. 당첨 결과는 역시 주님 부활 대축일인 3월 31일 발표된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이학주2024.02.22
![[월간 꿈 CUM] 삶의 길 (2)](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9/07/u5d1694051578219.jpg)
[월간 꿈 CUM] 삶의 길 (2)호가호위(狐假虎威) 어느 날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한 여우가 지혜를 발휘해서 호랑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늘이 정한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다! 만약 네가 나를 잡아먹게 되면 큰 후환이 닥칠 것이다!” 여우를 잡아먹으려던 호랑이는 여우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마! 내가 모든 짐승의 왕인데 어떻게 네가 왕이야?” 그러자 여우가 또다시 말했습니다. “만약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내 뒤를 따라와 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 멍청한 호랑이는 여우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모든 짐승이 혼비백산하면서 후다닥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멍청한 호랑이는 여우의 잔꾀에 넘어가 결국 여우를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사실 짐승들은 여우가 아닌 호랑이를 보고 도망갔는데 멍청한 호랑이는 그걸 몰랐던 겁니다. 여기서 생겨난 말이 바로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리다”라는 뜻을 가진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 호 狐, 거짓 가 假, 범 호 虎, 위엄 위 威)입니다. 이 말은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것을 꼬집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3) 당시 이스라엘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특별한 존경을 받았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의인으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관습, 민족애와 민족사명을 가르치는 소위 선생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613 조항이나 되는 율법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율법에 정통했기 때문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과 율법을 가르치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군림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행동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과 율법을 가르쳤지만, 그들의 행동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걸핏하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입만 떼면 희생과 봉사를 외치면서도 정작 그들 스스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성경과 율법의 근본정신인 정의와 사랑은 외면한 채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만 했던 것입니다. 위선적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앞세워 자기들이 하는 말들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인양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보다는 그들의 생각에서 나온 세부규정들을 더 앞세웠습니다. 남들에게는 지키기 어려운 규정을 만들어서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에게는 이웃 사랑과 겸손을 가르치면서도 자신들은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즐겨 찾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입술로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척 말하면서도 결코 그들은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철저히 자신들을 위장하고 그런 척하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철저히 위장하는 위선자들의 모습,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모습,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자인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 중에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을 입으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입으로만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참다운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월간 꿈CUM 고문)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을 지냈다 cpbc2023.09.11

원죄와 실낙원[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4) 아담과 이브. 바티칸 박물관 소장. OSV 원죄와 실낙원원죄(原罪, 라틴어 : peccatum originale)는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이브는 영어식 표현이다)가 주님과의 약속을 어긴 죄를 일컫는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에 손을 댄 아담과 하와의 선택으로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주님에게 죄를 짓게 되었다는 교리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성경에서는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시편 51장 7절에는 “정녕 저는 죄 중에 태어났고 허물 중에 제 어머니가 저를 배었습니다”라고 언급되었다. 구체적으로 원죄 탐구를 시작한 성인 아우구스티노의 연구에 기반하여 카르타고 공의회와 제2차 오렌지회의에서 원죄의 교리를 교회 정통 교리로 승인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종교개혁자들은 원죄가 욕정의 근원으로 세례 이후의 인간에게서도 유지되며, 자유 의지가 전적으로 타락하여 자발적으로는 선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지만, 가톨릭교회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원죄 역시 사해진다고 본다는 점이다. 원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예술 중 최고봉은 역시 영국의 시인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의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이다. 12권에 걸쳐 주님의 통찰력과 인간의 자유의지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장대한 드라마를 구원의 예언을 믿으며 낙원을 떠나는 아담과 하와로 끝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미술에서는 너무나 많은 작품이 있어 어느 하나를 최고라고 선정하기엔 불가능하다. 폴란드의 작곡가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 1933~2020)의 오페라 ‘실낙원’은 음악 쪽에서 손꼽힐 만한 성과다. 처음 폴란드로 작곡을 공부하러 갔을 때가 1992년이었는데, 공산주의에서 막 개방된 국가였다. 크라쿠프 공항에 내리니 온통 회색이었다. 건물과 구조물, 날씨, 그리고 폴란드 말까지 짙은 회색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돌이켜 보면 회색이라는 색감은 황폐하고 불안했던 내 마음이었다. 용기를 내 남이 가보지 못한 나라에 발을 내디뎠지만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미래를 생각하니 암울하기만 하였다. 학교의 기숙사는 말로만 듣던 수용소가 아닐까, 과연 먹고 살 수 있는 식료품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의문이었고 걱정거리였다. 단언컨대 쉽게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였으면 바로 포기하고 떠났을 수도 있었다. 아담과 하와가 낙원을 떠나 황무지로 향했을 때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한다. 마음에 안정을 가져온 것은 처음으로 미사에 참여했을 때다. 한국과 다르지 않은 전례와 폴란드에서 맞이한 첫 영성체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어렵고 암울한 순간에 위안을 준 것이 평생을 해왔던 미사였다. 최초의 인류가 낙원에서 쫓겨났을 때 그들에게 구원의 약속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 거다. 근래에 방문한 폴란드는 예전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이 번화했다. 주님께서 내게 1990년대 초의 폴란드를 보게 한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펜데레츠키 오페라 실낙원 중 Adagietto //youtu.be/6ryeC9E4GcE?si=C8s8D9H2CMx82bOC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윤하정202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