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가장 훌륭한 문학서정점길(요한)국어교육연구회 문학작품의 효과적 학습을 위해 먼저 문학 일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작품으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문학의 정의 문학이란 작가의 체험을 통해 얻은 진실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언어 예술로서 인생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창조의 세계라고 일반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장 완전한 문학 작품이라고 말하는 성서와 비교해 봅시다. '성서, 혹은 성경이란 하느님이 자기 자신과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의지에 관해 계시한 바를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기록자가 작성한 책들의 집합체이다' 라고 가톨릭 대사전에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문학작품은 작가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기록한 것임에 반해 성서는 하느님 영감을 받은 필자가 하느님 계시에 의해 하느님 세계를 기록하고 있으므로 성서 저자는 하느님인 것이 일반 문학 작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문학 작품을 직접 쓰거나 공부할 때, 성서를 읽을 때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 문학과 현실의 관계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는 현실은, 작가에 의해서 취사, 선택되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창조된 현실입니다.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를 보았나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왜병 총에 맞아 전사하는 마지막 장면이 작가마다 다르게 표현되고 있지요. 박종화님의 임진왜란에서는 자살한 것으로, 김훈님의 '칼의 노래'에서는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로 끝을 맺으며 이순신 장군이 노을을 바라보며 서서히 숨지는 것을 그렸습니다. 이것을 드라마 작가는 마지막을 자살로 할 것인가, 전사로 할 것인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문학작품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크게 작용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큰 주제를 바탕으로 하느님이 필자의 손을 빌어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가르침을 기록한 책이지요. ▨ 문학의 요건 1. 감동성: 작가의 사상, 감정의 요소가 독자에게 감명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2. 평이성: 전문적이거나 일부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쉬워야 합니다. 3. 쾌락성: 독자에게 예술적, 미적 감동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4. 언어성: 언어가 지니는 미적 요소가 드러나야 합니다. 5. 개연성: 있었던 사실만의 나열이 아니라, 있음직한 사건을 언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건들을 잘 갖춘 문학작품을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는 성서를 가장 완전한 문학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우리의 정신적 양식이 될 성서를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으며 국어 실력도 기르고, 신앙을 다져가도록 합시다. 안녕.cpbc2005.09.08
58- 대가들에게 배우는 기도(2)어떤 기도에도 응답하시는 하느님 성경에 나오는 응답받은 기도들을 비교해 보면, 서로 다른 방향의 기도들이 모두 응답받았음을 보게 된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응답받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을 일소해 준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기도도 들어주시고 '저런' 기도도 들어주시는 것이다. 요컨대, 틀린 기도는 없다는 것이다. 서로 대조를 이루는 대표적 예가 히즈키야의 기도와 한나의 기도이다. 히즈키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과거 자신의 공적을 늘어놓으면서 '그러니 좀 봐 달라'는 식으로 하느님께 매달렸다. 이를 테면 '공치사' 기도를 바친 것이다. 반면에 한나는 자식없는 서러움을 토로하면서 '앞으로 어찌어찌하겠으니' 자식 하나 낳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렸다. '외상' 기도를 바친 셈이다. 우리는 이 두 기도가 모두 응답받았다는 데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그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두 기도는 괄호를 이룬다. 그 괄호 안에 우리 기도가 들어가 있다. 유다 왕 히즈키야는 당시 왕들 중에서 비교적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살려고 했던 왕이다. 그는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고 충성을 다해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계명들을 준수했고, 하느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시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이루어 주셨다(2열왕 18, 1-8 참조). 전쟁 중의 간절한 기도는 하느님께 좋은 모습으로 보여 승리를 가져다 주셨고(2열왕 19, 15-19; 35-37 참조), 또 백성들이 하느님께 죄지은 것을 대표하여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들으시고는 백성들의 아픈 마음을 고쳐 주신다(2역대 30, 18-20 참조). 그런 히즈키야가 어느날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곧 죽게 될 것이며 다시 회복하지 못하리라"는 청천벽력 같은 하느님 메시지를 듣게 된다.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고난에 처한 그는 벽을 쳐다보며 기도하고 통곡한다. "'오, 야훼여, 제가 항상 당신 앞에서 참되게 살았으며, 충성스럽게 당신을 섬겼고, 당신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하였음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매우 슬프게 울었다.…"(2열왕 20, 3-6). 그는 눈물을 흘리며 절박하게 하느님께 매달리고 호소한다. 죽음 앞에 선 히즈키야의 기도 내용은 단순하다. 하지만 거기에 그의 심정이 속속들이 담겨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간절한 기도에 다음과 같이 응답하셨다. "네 기도를 내가 들었고 네 눈물을 내가 보았다. 내가 너의 병을 낫게 해주리라. 삼일 만에 너는 야훼의 전에 올라가게 되리라"(2열왕 20, 5). 과연 약속 그대로 됐다. 병을 고쳐 주시고, 앗시리아로부터 나라를 보호해 왕권도 튼튼하게 해주셨다. 우리는 여기서 '눈물' 흘려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보게 된다. 기도와 눈물은 하느님께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 병은 기도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며, 건강은 기도의 응답으로 오기도 한다. 그의 기도는 하느님을 향한 기도였다. 하느님께서 재고(再考)하여 마음을 돌리시게 한 기도였다. 기도의 엄청난 힘은 하느님을 움직였고 하느님 명령을 변경시켰으며, 히즈키야에 대한 하느님의 목적을 번복시키기에 이른다. 기도가 해낼 수 없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를 통해 이룰 수 없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네 가지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즉 하느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에 주의를 기울이시며, 기도에 응답을 하시며, 기도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정 정치로 넘어가는 과도기는 매우 혼란스러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안정이 되지 않던 때였다. 이러한 때에 하느님 뜻을 이뤄낸 사람이 사무엘이다. 그런 사무엘을 낳은 이가 한나였다. 한나의 기도는 성서에 두 번 나오는데, 하나는 울며불며 하느님께 매달리는 기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기도이다. 그는 "야훼께서 잉태하게 해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1사무 1, 5)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이 일로 인해 한나는 자식이 있는 또 다른 부인 브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그는 마음이 아파 흐느껴 울며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이 계집종의 가련한 모습을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 계집종을 저버리지 마시고 사내아이 하나만 점지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그 아이를 야훼께 바치겠습니다. 평생 그의 머리를 깎지 않도록 하겠습니다"(1사무 1, 11). 그의 기도는 맺힌 한에서 시작됐다. 인간이 풀래야 풀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조롱과 비웃음 속에서 처참하게 서 있는 처지에서 기도하게 된다. 한나는 그런 처지에서 자신을 생각해 달라고 기도한다. 아들을 달라고 한 그 기도는 당장은 한나 개인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지만, 그 한을 풂과 동시에 아들을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기도였다. 기도하여 얻는다고 해도 그를 자신의 자식으로 함께 데리고 살 수 없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는 그런 기도를 드린다. 또 하나, 한나의 기도에서는 부르짖음 가운데서 뜻을 이루기 원하시는 하느님 섭리를 읽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한나가 임신을 못하도록 하셨지만, 억울하고 분해 기도하게 하시고, 그런 가운데 얻은 아들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느님 뜻을 위해 바쳐지는 아들이 되게 하신다. 그가 '야훼께 빌어서 얻은 아기'(1사무 1, 20)가 사무엘이다.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아들 사무엘을 주신 것이다. 그녀는 기뻐하며 감사 기도를 올린다. "내 마음은 야훼님 생각으로 울렁거립니다. 하느님의 은덕으로 나는 얼굴을 들게 됐습니다. 이렇듯이 내 가슴에 승리의 기쁨을 안겨 주시니 원수들 앞에서 자랑스럽기만 합니다"(1사무 2, 1).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한나가 하느님 섭리를 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한을 풀려고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기도하는 과정에 하느님께 바쳐질 아들로 알았고, 그 아들을 통해 이루실 하느님 뜻까지 헤아리며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열악한 처지와 형편을 통해 기도하게 하시고, 그분께 부르짖는 가운데서 하느님 뜻에 이르게 하신다. 개인의 한이 민족을 위한 부르짖음으로 그리고 하느님이 이루실 계획을 위한 준비로 승화되게 하실 수 있다.cpbc2006.03.23

한국 천주교회를 다시본다-2장점<1> 평신도 열성과 헌신- 평신도 신앙열정이 한국교회 눈부신 성장 '원동력'외국교회 관계자들은 역동적인 한국교회 모습, 특히 평신도들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적 봉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서울 대신학교 운동장에서 거행된 서울대교구 성체대회에서 성체거동에 참여하고 있는 평신도들. 평화신문 자료사진 "천국을 보았습니다." 2002년 7월3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세페 추기경이 기자회견에서 한국교회를 둘러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답한 말이다. 짧은 일정이지만 한국교회 구석구석을 살펴본 세페 추기경은 평신도들이 열성적으로 교회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평신도들 힘이 한국교회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또 한국교회를 '봄을 맞아 활짝 꽃피우고 있는 역동적 교회'라고 평가한 세페 추기경은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의 능동적 활동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평신도들의 노고에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세페 추기경의 이러한 발언과 평가는 한국교회와 한국교회 평신도에 대한 세계교회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한국을 찾는 외국교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열성과 봉사 정신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주일미사 때마다 성당을 가득 메우는 것은 물론 본당이나 교구에서 개최하는 각종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신앙의 열정을 쏟는 신자들 모습은 한국교회의 활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자신의 집안 일하듯 땀방울을 흘리는 여성 봉사자들, 일년에 한번밖에 없는 여름 휴가를 피정이나 본당 봉사활동으로 보내면서도 즐거워하는 남성 신자들이야말로 활기 있는 교회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큰 행사가 열리면 전국 각지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해 행사장에 도착해서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몇시간이나 걸리는 행사에 참석하고서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이들, 신자가 아니라면 돈을 받고도 하기 힘든 일을 자기 돈 써가면서도 하느님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바로 오늘날 한국교회 평신도의 자화상이다. 극소수 신자들 이야기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개인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성당에 나오는 대다수 신자들은 대체로 그만큼 열심이다. 평신도들 열성, 특히 선교에 대한 뜨거운 열의는 한국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통계에 따르면 2004년말 현재 복음화율은 9.3%(453만여명). 즉 우리나라 사람 열명 중 한명 정도는 가톨릭 신자라는 얘기다. 1950∼60년 사이에 천주교 신자가 3배 가까이 늘어났고, 현재 신자 수는 1960년에 비해 열배가 넘는다. 가히 폭발적 증가세라 할만하다. 물론 전통 가톨릭 국가인 유럽이나 남미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겠지만 전통 문화와 종교가 뿌리 깊은 아시아에서 이만큼 성장한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아시아 대륙 전체 복음화율은 2.9%. 300년 넘게 스페인 식민 통치를 받은 필리핀이 82%(6600만명)에 달하는 가톨릭 국가일 뿐, 우리보다 200여년 앞서 가톨릭이 들어온 일본 0.4%(51만명), 대만 1.3%(30만명), 인도 1.6%(1725만명) 등 대부분 그만그만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화율 9.3%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특별히 한국교회가 아시아 복음화에 적극 나서길 기대하는 세계교회의 바람은 이같은 교세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교회 평신도의 열성과 적극성은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교회 초창기부터 두드러졌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외국인 선교사가 아닌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교회를 설립한 것. 세계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220여 년 전 일단의 학자들이 사회개혁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와중에 천주교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연구는 점차 신앙으로 발전해갔다. 그들은 동료 이승훈을 중국으로 보냈고, 그는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 해는 한국교회 출발점으로 기록된다. 이승훈(베드로)이 중국에서 돌아와 동료들에게 세례를 베풂에 따라 한국에서 첫번째 천주교 공동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교회 창설과 초기교회 지도자 역할을 담당했던 평신도들 신앙은 매우 진취적이고 능동적이었으며 공동체적 지향이 강했다. 초기 한국교회는 성직자나 수도자 없이 자발적으로 교회 활동을 전개했고, 박해가 시작되자 깊은 산중에 교우촌을 형성해 굳건한 신앙과 사랑 나눔을 이어갔다. 한국교회는 박해를 겪을 때마다 순교로 성직자들을 잃었다. 한국 평신도들의 남다른 열정은 이같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었다. 성직자 없는 교회를 이어가기 위한 평신도들의 처절한 노력으로 한국 교회는 면면히 그 맥을 이어갈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 평신도들은 창설 초기부터 교회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라도 적극 대응, 극복하는 진취적 신앙 전통을 세웠다. 평신도들이 교회 안팎에서 적극적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를 빼놓을 수 없다. 밖으로는 급변하는 사회와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세상과 함께할 것을 천명하고 안으로는 '하느님 백성의 친교 공동체'를 지향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평신도를 당당한 교회 주역으로 그 위상을 인정함에 따라 평신도들의 교회활동 참여가 대폭 늘어나게 된 것이다. 특히 전례 개혁으로 1965년부터 우리말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더욱 많은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미사에 참례하게 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1968년 결성된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평신도 역할 증대와 교회활동 참여를 조직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후 교회는 '평신도주일'을 제정하고 신자들에게 주일미사 때 강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으며, 평신도들은 교구나 본당에서 여러 형태의 조직을 통해 자문 임무을 수행하는 한편 성경 독서와 성체 분배 등 전례에도 참여해왔다. 평신도들의 다양한 교회 활동 참여는 교회 성장과 그 궤를 같이하면서 평신도 위상과 역할이 제고된 것은 물론이다. 속속 탄생한 신심단체들도 평신도들의 뜨거운 신앙열을 하나로 모으고 발전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해 꾸르실료, 성령쇄신봉사회, 매리지 엔카운터(ME), 푸른군대 등이 평신도들의 열과 성을 한데 모아 한국교회 발전의 기틀을 다진 대표적 평신도 단체들. 이 가운데서도 레지오 마리애는 1953년 도입된 이래 '성모 마리아의 정신으로 복음전파에 앞장서는 단체'로 가정방문ㆍ환자방문ㆍ상가방문ㆍ가두선교 등을 통해 선교에 앞장서면서 한국교회 발전을 견인해왔다. 평신도들의 열성과 헌신적 자세가 한국교회 성장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평신도들의 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평신도 활동영역이 주로 교회에 머무르고 있다는 자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는 지금까지 교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평신도의 역동적 활동은 이제 세상 삶의 현장에서 수행돼야 하며, 교회는 이를 지원해야 할 때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평신도 역시 교회 밖으로 눈을 돌려 지금까지 교회활동을 통해 보여주었던 폭발적 에너지를 세상 복음화에 사용하도록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사목자들은 평신도들에게 교회는 물론 세상에 그들의 사도직 영역이 있음을 깨우쳐주면서 일상생활에서 신앙의 열정을 꽃피울 수 있도록 지도하고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신도가 교회 안팎에서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는 교회 관계자들의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교회 장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40∼60대는 '평신도 평생교육'을, 10∼30대는 '평신도 사회 참여'를 들었다. 또 평신도 활성화를 위해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으로 과반수가 '평신도들의 교리 지식 부족'을 꼽았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평신도가 교회 가르침에 따라 빛과 소금 역할을 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사회 제 분야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이제 우리 평신도들은 세계교회가 부러워하는 최대 무기, '열정과 헌신'을 변화하는 세상에 새롭게 투자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 준비 첫걸음은 물론 '교육'이다. 여기에 성직자들 역시 귀를 활짝 열고 신자들의 목소리를 보다 열심히 듣고자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신현만(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 원주교구 정선본당 주임) 신부는 "백성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신자들을 일방적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를 가진 평신도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할 때 평신도 사도직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cpbc2006.05.24

청주교구 시노드 남부지구 1차 열린마당 이모저모자유로운 의견 개진… 교구 쇄신 한마음 기원1. 청주교구 남부지구 시노드 1차 열린마당을 개막하며 교구장 장봉훈 주교가 지구 안팎 사제단, 신자들과 함께 교구 쇄신을 지향으로 기도를 바치고 있다. 2. 청주교구 남부지구 시노드 1차 열린마당 자유발표 시간 중 농촌공소와 노령화 문제 등을 집중 점검하는 한 신자.3. 청주교구 남부지구 시노드 1차 열린마당 자유발표 시간 중에는 공소 활성화와 노령화 사목대책, 선교 문제, 전례와 신심생활, 사회사목 방안 등이 집중 거론됐다. 올 연말까지 10개월에 걸쳐 이뤄질 시노드 의안 준비단계 첫 의견수렴의 장으로 마련된 이날 열린마당은 사목주제별 의견 발표와 자유로운 발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주제별 의견 발표는 지난해 10월 남부지구 7개 본당 신자 2505명에 대한 의견수렴 결과에 따라 선교, 신자재교육, 사회사목, 소공동체, 청소년사목, 전례와 신심 등 6개 사목분야별로 이뤄졌다. 자유로운 발표는 7개 본당 남녀 신자 22명이 앞서 열린 6개 사목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제각기 자유롭게 자신들과 관련된 사목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때론 발표주제와 관련없는 발언에 폭소가 터지기도 하고, 때론 의미심장한 발언에 장내 분위기가 진지해지기도 했지만 참석자들은 대부분 자유롭게 의견을 발표하고 그 의견에 귀 기울이며 교구 쇄신을 위해 한마음을 이뤘다. ○…가톨릭성가 146번 '임하소서 성령이여'를 부르며 시작된 이날 열린 마당은 곽동철(옥천본당 주임) 신부 말씀 봉독, 교구 기도문 및 시노드 한마음기도 봉헌, 지구 안팎 사제단 소개, 남부지구장 장병철(보은본당 주임) 신부 개회인사 등이 이어지며 따뜻한 환영 박수와 함께 개막. 장 신부는 이날 개회인사를 통해 "남부지구 시노드 1차 열린마당은 지난해 지구 의견수렴을 통해 나온 내용을 여섯개의 큰 사목주제별로 통합, 교구장님과 신자분들께 정리 보고하는 자리이자 교구가 반드시 개선하거나 꼭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되는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는 자리"라고 그 의미를 설명. 장 신부는 이어 "준비과정에서 미흡한 점도 많았지만 신자들의 다양하고 신선한 의견을 접하며 신자들 잠재 역량과 영적 욕구를 발견하게 됨으로써 열린마당과 같은 자리가 시도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은총이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많이 체험했다"고 첨언. ○…1차 열린마당 백미는 역시 지난해말 지구민 의견 수렴 결과 확인된 6개 사목주제별 의견을 발표하는 자리. 가장 많은 의견이 제시된 '선교' 분야 발제자로 나선 보은본당 구필회(미카엘)씨는 "남부지구는 해마다 인구가 감소하는 농촌지역으로 특히 노령인구가 20%에 이를 만큼 노령사회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한 뒤 미신자 복음화 방향과 쉬는신자 대책을 집중 제시. 구씨는 바람직한 선교활동 방안으로 △연령ㆍ환경ㆍ성격ㆍ가치관에 따른 '맞춤형 선교' △지역사회 이웃과 함께 하는 '인격 선교' △바람직한 교회상과 신자들 삶을 통해 선교하는 '모범을 보이는 선교' △매스컴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매체 선교' △굳건한 믿음과 기도가 함께하는 '기도를 통한 선교' 등을 꼽았다. 이어 지구 신자들이 두번째로 많은 관심을 보인 전례와 신심 분야 발제에 나선 정진해(요셉, 학산본당)씨는 "전례에 대한 이해와 습득은 교회가 주도적으로 체계를 세워 끊임없이 신자재교육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지적한 뒤, 특별히 성체신심 활성화와 성가 토착화를 촉구했다. 신자재교육 분야 발제에 나선 서정철(베네딕토, 영동본당)씨는 평신도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재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요청했고, 사회사목분야 발제를 한 정태순(솔로몬, 옥천본당)씨는 사회사목 활동에 대한 전문적 교육과 시스템 구축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소공동체를 주제로 발제를 한 박봉욱(베드로, 청산본당)씨는 소공동체를 남녀, 직장, 청년 등 다양한 소공동체 모임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청소년사목을 주제로 발표를 한 임복환(비오, 이원본당)씨는 교구 차원 청소년사목전문기구 설립과 청소년을 위한 행사와 연수, 모임 등의 다양화, 다채로운 교리 교육 프로그램 마련 등을 요청했다. ○…자유발표는 남부지구가 대부분 농촌지역이어선지 농촌지역 공소 활성화와 도농 연대에 초점이 우선 맞춰졌다. 도농본당간 자매결연의 교구 차원 추진(이재삼 라우렌시오, 보은본당)이나 도시본당 내 직거래장터 상설화(정근영 레오, 청산본당), 교구 공소사목부 신설 및 공소선교사 파견(우명환 아우구스티노, 황간본당), 농촌 공소를 2~3곳씩 묶어 사제가 상주하는 방안(이종성 바오로, 보은본당) 등이 제안됐다. 또 노령인구가 20%대인 농촌지역답게 어르신교리서 편찬사업이나 성가 토착화 문제도 집중 거론됐다. 「노인문답」을 현대화시킨 새 어르신교리서 편찬(이광재 헨리코, 학산본당), 어르신 대상 의료봉사 정례화(이명자 아녜스, 황간본당) 발언 등이 그 예다. 영적 욕구에 대한 갈증도 가감없이 표출됐다. 매일 「성경」 읽기 생활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김순옥 데레사, 옥천본당), 흥미를 유발하는 교리ㆍ영성교육 절실(이명자 아녜스, 황간본당) 등이 그런 취지 발표. 교구ㆍ본당ㆍ공소 부동산문제나 본당별 건축 관련 장기 종합계획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금수(빈첸시오, 옥천본당)씨는 지난 25년간 본당 부속건물 건축과 관련된 소요예산을 일일이 거론한 뒤 "본당별 건축 관련 마스터플랜을 세워 기금을 적립하고 건물을 신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곤(클레멘스, 황간본당)씨는 "농촌지역 공소 관할 부동산은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못하고 방치돼있다"고 지적했다. 곽래의(베드로, 이원본당)씨는 "불필요한 공소 관할 부동산은 팔아서 기금으로 적립하거나 필요한 땅을 구입해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을 주문했다. 이밖에 장애인을 배려하는 성당 신축 및 리모델링(최길수 로베르토, 학산본당), 상장례 예식 및 교육 관장 교구 부서 신설(현삼용 바오로, 보은본당), 남편이나 아버지학교 프로그램 신설(조미라 데레사, 영동본당), 사무장 순환 근무제 시행이나 사무장학교 신설(이재삼 라우렌시오, 보은본당) 등 의견도 나왔다. ○…이같은 의견 발표에 대해 장 주교는 "교구 역사상 첫 시노드, 첫 열린마당을 100주년을 맞는 옥천성당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섭리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며 "여섯 분의 주제발표와 자유의견 발표는 참으로 진솔하고 유익한 발표였다"고 총평. 장 주교는 이어 "교구 시노드를 통한 교구 쇄신과 변화, 발전은 기도로 뒷받침하고 좋은 말씀을 해주시며 적극 참여해주시는데 달려 있다"며 "앞으로 시노드를 통해 2000년대 복음화에 교회가 제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신자 공동체와 수도자, 성직자들께서 열심히 참여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6.03.16

이 달의 교계 잡지 ▨가톨릭 디다케=10월 전교의 달을 맞아 '교회의 창'이라 할 주보와 학생 주보, 주보 제작과정 등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우리 교사회 자랑' 꼭지에서는 전주교구 금암동본당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회를 소개하고, 아울러 2005 세계청년대회 참가기를 실었다.(서울대교구 교육국, 3500원) ▨경향잡지='경향 돋보기' 꼭지에서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와 서정홍(안젤로) 시인의 만남 △노인사목 방향 △묵주기도에 대한 오해와 이해 등을 다뤘다. 38회 군인주일(2일)을 맞아 강형섭(군종교구 부사관학교 성요셉본당 주임) 신부 '변화하는 군선교' 주제 기고와 의정부교구 용현동본당 군입대자 미사를 취재 게재했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3300원) ▨내친구들=중학생 일상을 일기 형식으로 그린 '고사리'(이현주 글ㆍ그림), '한국천주교회사'(손옥희 글, 맹상수 그림) 등 재미있는 만화 11편으로 가득하다. '가볼만한 곳' 꼭지에선 서울 신문로 화봉책박물관을 소개했다.(다솜, 3000원) ▨레지오 마리애=10월 묵주기도 성월을 맞아 특집으로 '묵주기도'를 다뤘고, '사진으로 보는 레지오 50년'도 실었다. '현장 속으로' 꼭지에선 이관영(토마스)ㆍ윤종애(체칠리아)씨 얘기를 게재했다.(한국세나뚜스협의회, 1800원) ▨사목=특집으로 '교회의 지상과제, 복음화'를 마련, △선교와 소공동체 △새 신자의 신앙생활 지속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대전교구 새 복음화를 위한 조사연구결과를 중심으로 △한국천주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은 시작됐나 등을 게재했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3500원) ▨생활성서=특집으로 시인 천상병(시몬, 1930~1993)씨 삶을 조명, △상납금의 기억(성춘복 시인) △사랑의 열림, 그 만남(정진규 시인) △내 남편 천상병(목순옥, 부인) 등 3편을 실었다.(생활성서사, 3900원) ▨성모기사=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4일)을 맞아 '클라라와 프란치스코'를 게재하고, '나가사키의 인간 콜베' 8번째 연재에선 야마키 목사 개종 이야기를 썼다. 소설가 권태하(도미니코)씨 신앙체험 기고 '아내의 묵주기도'도 읽어볼 만하다.(성모기사회, 1000원) ▨성서와함께=새로봄 꼭지에서 '새 번역 「성경」이 나오기까지'를 주제로 이기락(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 총무 겸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장)ㆍ김영남(가톨릭대 교수)신부와 평신도 말씀봉사자 이병일(요셉)ㆍ이현애(가타리나)씨 특별좌담을 실었다.(성서와함께, 3000원) ▨소년=우리 땅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전래동화로 풀어가는 새 연재 '옛날에 거기서 이런 일이 있었더란다'(이현주 글)를 기획했다. '알기 쉬운 컴퓨터 이야기'꼭지에서는 컴퓨터를 괴롭히는 컴퓨터 바이러스 악동 3총사를, '모니카 수녀님과 성지순례 떠나요' 꼭지에서는 오아시스 도시 예리고를, '아빠와 함께하는 경제교실' 꼭지 마지막회에선 하느님의 경제 원리를 소개했다.(가톨릭출판사, 4000원) ▨야곱의 우물=군인주일을 맞아 표지인물로 김대건(대건 안드레아, 21) 상병과 이요한(세례자 요한, 21) 일병, 명석(바오로, 20) 이병 등 해병대 청룡부대 신세대 장병들을 소개한다. '교회와 사회' 꼭지에선 이기우(서울대교구 봉천3동선교본당 주임) 신부 기고 '집ㆍ땅 그리고 불평등의 곤경'을 실었다.(바오로딸, 2000원) ▨참 소중한 당신=특집으로 곽승룡 신부의 '종교수행 요가, 몸짱 상품으로 둔갑'을, '청소년 교육의 예술-예방교육 영성' 꼭지에선 평신도 신학자 황종렬(레오) 박사의 '배추벌레의 색깔은'을 게재했다.(에우안겔리온, 2000원) 오세택 기자cpbc2005.09.28

기도는 성령의 은사 흘러드는 통로 평화신문은 이번호부터 'EP-1234, 본당, 이렇게 하면 활성화된다' 연재를 속개합니다. 미래사목연구소(소장 차동엽 신부)와 공동으로 기획하는 이 연재물은 본당 활성화 원리가 되는 10가지 인자를 뽑아 10계명으로 제시함으로써 일선 본당 공동체들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833호 2005년 8월7일자 13면, 837호 2005년 9월4일자 19면 참조). ----------------------------------- 본당 활성화 방안 'EP-1234'에서 EP(Evangelical Pastoral, 복음적 사목)는 사목전체를 총괄하는 복음적 비전 교육을 말하고, 1234는 교회 유기체의 각 기관에 배속되는 열가지 활성화 인자를 말한다. <그림 참조> 그중 EP-1은 교회 활성화를 위한 동력원 곧 토양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성령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령이 현동(現動)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 활성화 10계명 중 제1계명이다. EP-2는 교회 유기체의 뿌리에 배속되는 2가지 인자를 말한다. 그것은 곧 기도(영성)와 전 신자 은사계발이다. 성령의 무한한 은사는 '영적 인프라'요 '뿌리'격인 '기도'를 통해서 '전신자 은사 계발'로 드러나게 된다. 뿌리는 토양에 있는 성령의 은사가 줄기로 전달되는 통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본당 활성화 십계명의 제2계명은 '합심하여 기도한다'이다. 본당 활성화의 동력원으로 토양에 속하는 성령이 교회라는 유기체(나무)에서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일차 통로인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한 은사들, 곧 교회 활성화를 위한 무한한 가능성들은 뿌리를 통해서 줄기로 옮아가고 마침내 가지에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기도다. 뿌리가 기도로 토양 속에 튼튼히 박혀 있을 때 토양으로부터 성령의 은사를 빨아들여 줄기에 전달할 수 있다. 기도는 성령의 은사가 교회 조직 안으로 흘러들게 하는 통로이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곧 교회 공동체가 기도로 충만해 있지 않으면 성령의 은사를 나무 전체에 전하는 통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기도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통로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당 공동체가 활성화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개인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기도하는 일이다. 실제로 평화신문 등 교회 매체들을 통해서 소개된 모범 사례나 성공 사례를 모아보면 많은 본당들이 기도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가톨릭 본당협의회 연구팀이 조사한 탁월한 본당들도 '기도하는 깨어 있음'의 자세를 교회 활성화 인자로 꼽았다. 기도는 이처럼 신자들 자신과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하느님의 강력한 개입을 이끌어내기에 가장 강력한 교회 활성화 인자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기도는 본당 공동체에 성령의 불씨를 살려 불길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통로, 성령을 수용하는 펌프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고 당부했는데(1테살 5,19), 성령의 불을 끄지 않도록 하려면 기도가 필수적이다. 기도가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령의 불길을 일으킬 수 없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믿음을 두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믿음을 두는 공동체는 기도하는 공동체다. 기도가 성령이 활동하시는 통로임을 보여주고 또 기도를 통해 활성화된 가장 대표적 사례로 예루살렘 교회를 꼽을 수 있다. 사도들은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고"(사도 1,14),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 사도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셨으며 그 성령에 힘입어 3000명이나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예루살렘 공동체는 이후 교회의 모델이 되고 있는데 이는 이 교회 공동체가 기도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사도 2,43-47 참조). 기도는 개인기도, 공동기도 할 것 없이 이처럼 활기찬 신앙생활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 EP-1234에서 더욱 강조하는 기도는 공동기도다. 공동기도란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기도를 통해서 활성화된 본당 사례들을 보더라도 공동기도가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동기도를 어떻게 바치느냐 하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모임, 구역모임, 단체회합, 기도모임 등 공동기도의 형식은 참으로 다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이사 56,7)고 가르친다. 기도 지향이 공동체의 현안과 활성화를 위한 것일 때 공동기도는 더욱 중요하다. 본당의 선교 성공 사례들을 보면 하나같이 선교가 기도의 열매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신자들이 마음을 모아 지속적으로 바친 기도가 신자들을 성령의 은사로 무장시켜 열심히 뛸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기도 없이는 본당이 활성화될 수 없다. 기도에 관한 마지막 한 가지. 개인으로든 공동체로든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기도로 꽉 차 있어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호흡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 삶은 죽은 것과 다름 없다. 개인도 그렇고 본당도 그렇다.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06.01.27

수원교구 분당요한본당 '빠로키아 2000심포지엄'미래 향한 통합, 공동,동반자 사목 제안수원교구 분당요한본당이 개최한 `빠로키아 2010 심포지엄`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종합토론을 벌이고 있다. 수원교구 분당요한본당(주임 한상호 신부)은 9일 대성전에서 본당 설립 12주년을 맞이하며 '빠로키아 2010 심포지엄'을 열고 본당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진단하면서 시대 흐름에 발맞춘 보다 나은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한 시간을 마련했다. 빠로키아(Parochia)는 라틴말로 본당 공동체란 뜻이다. '새하늘 새땅을 향한 본당사목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개최한 이번 심포지엄에는 곽승룡(대전교구 사목기획국장) 신부와 변미리(가타리나,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박사가 발제에 나섰다. 노길명(사도 요한, 고려대) 교수 사회로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이찬종(수원교구 복음화국장) 신부와 박문수(프란치스코, 한국사목연구소) 박사, 박종철(부르노) 본당 사회복지분과장과 최재희(비비안나) 본당 청년회장이 논평과 토론에 참가,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며 본당의 중ㆍ장기 사목방향 정립을 위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변미리 박사가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신앙생활 실태와 사목적 욕구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 객관적 현황 파악으로 신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목 방침을 수립하기 위한 근거를 제시했다. 곽승룡 신부는 '현대 종교문화의 흐름과 복음화의 과제'를 통해 "분당요한성당 복음화 보고서(2000~2005년)와 10년사를 분석해보니 대형 본당이면서도 살아있는 공동체임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역시 한국 천주교회가 지닌 사목적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복음화 영성과 미래사목(통합사목ㆍ공동사목ㆍ동반자사목), 기초복음화, 새 신자를 위한 지속적 신앙생활 방안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신부는 "무엇보다 복음화 영성은 성경 읽기와 기도가 바탕이 돼야 한다"면서 "이를 기초로 성직자, 수도자, 신자가 복음화를 위한 동반자로 일치해가며 통합과 공동사목을 시도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친교를 이룰 수 있는 사목적 대안들이 개발돼야 한다"고 말한 뒤 "이를 위해 사회 복음화, 문화 복음화를 위한 준비를 전문적으로 진행하고 가톨릭 지도자 양성을 체계적, 지속적으로 이뤄나갈 것"을 주문했다. 변미리 박사는 '가톨릭교회 신자들의 종교인식과 신앙생활; 분당요한성당 신자들을 중심으로'에서 "전체 교적 등록 신자 1만5748명(2004년 말 기준) 가운데 10%를 표본으로 종교적 배경, 종교생활, 소공동체애 대한 인식, 본당 사목자 평가 등 신앙실태 파악과 본당 평가를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변 박사는 "그 결과 신자들이 대형 본당에서 나타나는 일체감 부족을 드러냈고 교회 공동체 본질이 되는 친교와 교회 공동체 사명인 하느님 나라 증거, 봉사, 선포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나타났다"면서 "신앙 재교육 및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신자들 욕구가 상당이 크다"고 분석했다. 변 박사는 세대별 대안 제시를 통해 "30~40대 청장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영성 차원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며 신자들 개별적 특성을 고려, 그룹화를 통해 친교 공동체를 이루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50~60대 이상 집단은 이미 교회 내 주요 활동가이자 버팀목인 만큼 이를 잘 유지하면서 다른 세대와 친교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청년층을 위해선 청년층이 원하는 영적 갈망을 교회가 채워주며 그들 가치관을 교회 원칙 안에서 수용하고 조화를 이루는 열려 있는 인격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박수정 기자 crystal@pbc.co.krcpbc2005.10.19

성화로 보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교회 반석 베드로, 양떼 앞엔 연민... 죽음 앞엔 초연 2월22일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이다. 이 날은 예수가 베드로를 사도들 가운데서 으뜸으로 선택해 온 세상의 교회에 봉사할 권한을 주고, 지상의 대리자로 삼은 것을 기념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 바오로 사도 개종축일과 함께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을 기념해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과 '성 베드로 사도의 순교'를 주제로 한 그림을 제단 양 쪽에 즐겨 배치했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카라바조와 귀도 레니의 '성 베드로 사도 순교' 두 작품을 감상하며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의 의미를 알아보자. 사진 자료제공=한국교회사연구소 ---------------------------------------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복음(마태 16,13-19)처럼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이며 기초이고, 구심점이다. 예수는 이 날 복음에서 베드로에게 △너를 초석 삼아 교회를 세우겠다 △하늘 나라 열쇠를 주겠다 △매고 푸는 권능을 주겠다는 3가지 약속을 했다. 이 약속은 예수가 부활한 후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 특별히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 15-17)며 사목권을 부여하는 장면에서 성취됐다. 베드로는 이로써 '목자들의 으뜸'(1베드 5,4)으로서'그리스도의 양떼'를 보호하고 사목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1베드 5,2-3). 같은 장소에서 부활한 예수는 베드로에게 그의 순교를 예언하면서 "나를 따르라"(요한 21,19)고 촉구했다. 이 말은 예수를 대신해 양떼를 돌보듯이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에도 동참하라는 뜻이었다. 베드로는 십자가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뜻을 완성했다. 17세기바로크 미술의 선구자인 이탈리아 출신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바티칸 파울리나 경당의 벽화에 영감을 받아 1601년 유화 작품 '성 베드로 사도의 순교'를 완성했다. 로마 산타마리아 데 포폴로 성당 제단화로 그려진 이 그림은 망원렌즈로 포착한 현장 사진처럼 사실적이다. 카라바조는 극단적 명암대비를 사용해 극적 효과를 높이는 '테너브리즘'의 창시자답게 배경 전체를 어둡게 표현해 미동도 허락치 않는 긴장감을 안겨준다. 그림의 등장인물은 십자가에 못박힌 베드로와 3명의 집행관뿐. 카라바조는 지극히 단순한 구도에서도 관람자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등장인물 중 베드로의 얼굴만 드러나도록 했다. 3명의 집행관들은 죄없는 베드로를 처형하는 일이 내키지 않은듯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고개를 떨군채 묵묵히 형을 집행한다. 집행관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베드로를 거꾸로 매달고 있다. 테르뚤리아누스 교부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받고 집정관에게 "나는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달릴 자격이 없으니 십자가를 돌려서 내 머리가 아래로 오도록 매달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형집행이 막 시작된듯 하다. 구덩이를 판 삽을 쥐고 있는 집행관의 발바닥에 묻은 흙이 아직 젖어 있다. 큰 쇠못이 박힌 베드로의 양 손과 발은 아직 피가 흐르지 않아 깨끗하다. 가장 건장해 보이는 집행관은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앞으로 상체를 숙인채 십자가를 묶은 외줄을 양손으로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바로 뒤 중년의 집행관은 무게중심을 뒤로한 채 양손으로 베드로의 양 다리와 십자가를 감싸고 십자가를 곧추세우며 거들고 있다. 깊이 패인 미간의 주름, 금방이라도 터질듯 부풀어오른 팔근육이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다는 집행관의 의지를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맨 앞 어깨로 십자가를 밀고 있는 가장 어려보이는 집행관은 베드로를 매단 십자가가 바로 세워지기만 하면 재빨리 구덩이를 다지고 자리를 뜰 기세로 삽자루를 불끈 쥐고 있다. 벗어진 이마에 수염까지도 백발인 베드로는 마지막 힘을 다해 머리를 들고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스승 예수를 따르기 위해 거꾸로 매달려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베드로가 마지막까지 연민을 버리지 못하고 젖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교회'다. 베드로가 돌보던 그리스도의 양떼는 이제 갓 태어나 겨우 걸음마를 하는 힘없는 어린 양들이었다. 목자 잃은 양들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십자가형 고통마저 잊은 듯한 베드로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잘 우는' 베드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성경에는 베드로가 '슬픔에 빠져'있고, '눈물을 흘렸다'는 등 그의 인간적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카라바조는 베드로의 젖은 눈을 통해 그가 '삯꾼이 아니라 착한 목자'(요한 10,11-13)였음을 고백하고 있는 듯하다. 카라바조가 '성 베드로 사도 순교'작품을 통해 '하느님 백성'과 세상을 향한 목자의 사랑을 표현했다면, 제2의 라파엘로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 화가 귀도 레니(1575~1642)는 같은 주제의 작품에서 '으뜸 사도'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적극 동참하는 용맹한 베드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바티칸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귀도 레니의 '성 베드로 사도의 순교' 작품에도 카라바조의 작품처럼 사도 베드로와 3명의 사형 집행관이 등장한다. 베드로와 집행관들의 옷색깔도 똑같다. 하지만 레니는 베드로가 아닌 주변인들을 중심인물로 표현하고 있다. 레니의 작품에서 집행관들은 얼굴을 드러내 놓은 채 일을 즐기듯 당당하다. 따라서 베드로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카라바조가 베드로의 시선을 통해 사람들을 순교의 현장으로 동참시켰다면, 레니는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모두 엇갈리게 분산시켜 순교 현장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구경꾼으로만 머물게 하고 있다. 레니의 집행관들은 카라바조의 집행관들과 달리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사다리를 타고 십자가 위로 올라온 빨간 모자의 집행관은 왼손으로 베드로의 오른 발에 쇠못을 고정시킨 채 오른 손으로 허리춤에 찬 장도리를 빼어내고 있다. 그 아래 빨간바지의 집정관은 베드로의 양발을 묶은 밧줄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양손으로 힘껏 당기고 있다. 맨 앞의 집행관도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베드로가 꼼짝 할 수 없도록 허리춤을 꽉 붙잡고 곧 베드로의 살을 꿰뚫을 쇠못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양팔만은 자유로운 베드로 사도는 부자유스럽게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고 손을 뻗은 채 마지막 기도를 하는 듯 하다. 벗겨진 이마에는 세월을 이기지 못한 희미한 잔주름만 어렴풋이 보일 뿐 그 어떤 두려움과 고통의 일그러짐도 보이지 않는다. 죽음을 이겨낸 초인적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 장면에서 착한 목자로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겹쳐진다.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요한 10,15-18).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06.02.15

하느님의 자비 주일과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인류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정의 아닌 자비"▲하느님의 자비 상본 ▲성녀 파우스티나 ▲사회가 보다 인간다워지려면 자비로운 사랑을 도입하는 길밖에 없다. 그림은 하느님 자비를 상징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1890년)으로,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나귀에 태워 데려가는 장면. ▨하느님의 자비 주일 유래ㆍ의미 교회가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낸 것은 5년 전인 2001년부터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4월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알려진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면서 특별히 하느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했고,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그해 5월5일 교령을 통해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했다. 교황이 파우스티나 수녀를 새천년기 첫 성인으로 선포하면서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정한 것은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자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황은 이미 1980년에 발표한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에서 "물리적ㆍ윤리적 악이 팽배하고 그로 말미암은 세계가 대립과 긴장으로 얽혀 있고, 아울러 인간 자유와 양심과 증오에 대한 위협으로 가득한 현대세계에서 교회는 자비의 관리자이며 분배자가 돼야 한다"면서 "교회는 말로만이 아니라 생활의 증거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전해야 한다"(13항)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사회가 보다 인간다워지려면 다각적 인간관계와 사회관계에 정의만이 아니라 '자비로운' 사랑을 도입하는 길밖에 없다"면서 "어느 시대에나 그렇지만 특히 이 현대에 하느님 자비의 신비를 선포하고 생활에 옮기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14항)고 자비를 적극 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교황의 이와 같은 가르침은 정의라는 이름을 가장한 전쟁과 수많은 폭력이 횡행하는 오늘날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엄정한 정의가 아니라 사랑에 용서를 더한 자비임을 강력히 일깨우고 있다. 다시 말해 끊임없는 분쟁과 폭력을 종식하고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고 확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교회를 비롯한 전 세계 교회는 부활 제2주일 미사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인간을 보살피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념하는 미사로 봉헌한다. 이 미사에서는 입당송, 본기도, 예물기도, 영성체송, 영성체 후 기도를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고유기도로 바꿔 바친다.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1905∼1938년)는 1905년 8월25일 폴란드 글라고비에츠에서 아버지 스타니슬라우스 코발스카와 어머니 마리안나 바벨 사이에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비록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었지만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 부지런함으로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이런 부모 영향을 받은 파우스티나는 어린 시절부터 화살기도 바치는 법을 알고 있었고, 성격이 온순하고 잘 순종했으며 다른 이를 돕는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각별했다. 어려운 가정 환경과 러시아의 폴란드 강점 등으로 초등학교 3학년을 채 마치지 못한 파우스티나는 15살 때 집을 떠나 남의 집 가정부로 들어갔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던 파우스티나는 20살 때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했고, 주방 일과 정원사, 문지기 등 소임으로 13년을 살았다. 파우스티나는 수도생활을 하는 동안 계시와 환시 같은 특별한 은사들을 체험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사명이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1934년 고해사제의 뜻에 따라 '나의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라는 제목으로 특별한 영적 체험을 통해 받은 하느님의 메시지들을 일기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했다. 이 일기는 여러 나라 말로 옮겨져 '하느님 자비 신심'을 널리 전파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교황청은 한때 이 일기와 하느님의 자비 신심에 대해 제재 조치를 내리기도 했지만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한 후 이전 조치가 잘못됐음을 확인하고 1978년 이를 철회했다. 폐결핵 등 질병으로 1938년 10월5일 33살 나이로 생을 마친 파우스티나 수녀는 1993년 4월18일, 수녀에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자비 축일로 지내라고 명한 부활 제2주일에 시복됐으며, 2000년 대희년 같은 부활 제2주일인 4월30일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우스티나 수녀 시성식 강론을 통해 예수께서 수녀에게 '내 자비를 신뢰하지 않는 한 인류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자비 메시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을 던져주는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파우스티나 수녀가 전하는 하느님의 자비 신심 하느님의 자비 신심의 핵심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일깨우고,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신심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또 말과 행동과 기도로써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이 두가지를 바탕으로 하느님의 자비 신심을 전하기 위해 성녀가 받은 메시지들은 하느님의 자비 상본을 만들고, 하느님의 자비 축일을 지내며, 오후 3시에 하느님의 자비 기도 시간을 갖고, 하느님의 자비 신심을 널리 전하는 것 등이다. ▲하느님의 자비 상본=1931년 2월22일 환시 중에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난 그리스도는 수녀가 본 당신 모습 그대로 상본을 그린 다음 그 아래에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라는 글을 넣도록 하셨다. 이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표시가 나타나 있고, 심장에서는 붉은 빛과 옅은 빛의 두 광채가 발산되는 모습이다. 그리스도의 깊은 자비에서 흘러나온 이 두 광채는 성체성사(붉은 광채)와 교회(옅은 광채)를 뜻한다. ▲하느님의 자비 축일=성녀 일기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제2주일에 교회가 공식적으로 하느님의 자비 축일을 지낼 것을 요청하면서 이 축일이 모든 이들, 특히 불쌍한 죄인들의 피난처가 되기를 바라셨다. 또 이 축일을 합당하게 지내기 위해서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하고, 모든 성당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성체조배 시간을 갖도록 당부하셨다. 이와 함께 성 금요일부터 9일 기도로 이 축일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자비 시간=파우스티나 수녀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시각인 오후 3시에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가능하다면 오후 3시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하느님 자비를 묵상하며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화살기도라도 바치자는 것이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자비와 관련한 신약성경 성구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 36)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 37)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 33)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 7)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 13)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로마 12, 8)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티토 3, 5) -자비를 베풀지 않은 자는 가차 없는 심판을 받습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 2, 13)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 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야고 3, 17) -끝으로, 여러분은 모두 생각을 같이하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처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1베드 3, 8)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2요한 1, 3)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유다 1, 21) -의심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유다 1, 22) -어떤 이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해 주십시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살에 닿아 더러워진 속옷까지 미워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십시오.(유다 1, 23)cpbc2006.04.19
52- 십계명 속의 보물찾기: 제9,10계명하느님을 뵈오리라 사람은 '보는' 것에 의해 지배받는다. 학교에서 급우를 충동적으로 칼로 찌른 학생이 그 까닭을 묻자 영화 '친구'를 여러 차례 봤더니 자신도 모르게 그만 모방을 하게 됐다고 답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가문'이라는 것, '가풍'이라는 것을 따지는 것도 결국은 무엇을 '보고' 자랐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딸들은 20~30대 의욕 왕성할 때는 '절대로 엄마의 단점을 안 닮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지만, 이럭저럭 40대를 넘기게 되면 그 안 닮겠다던 '엄마의 단점'을 붕어빵처럼 반복한다. '보는' 것이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잠복해 있다가, 시간이 흐르고 의지(意志)가 약해질 때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좋은 것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에 떡을 만들어 이웃집에 돌리는 자매를 봤다. 그 마음 참 넉넉하다고 칭찬을 했더니,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 떡 심부름을 다녔던 것이 마음에 남아 있어서 떡을 하면 나눠줘야 기분이 개운하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보는' 것의 영향력을 반영하는 얘기다. 하느님께서는 '보는' 것의 힘을 이용해서 믿음의 성조들을 축복하셨다.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축복할 때 무수한 별과 모래알을 '보여주시고' 그 숫자만큼 자손에 대한 꿈을 꾸게 했다. 땅을 주실 때에도 꼭 가나안 땅과 동서남북을 '보게 하신' 후 그 약속을 실현해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보는' 것의 힘을 비전(vision)과 믿음에 적용하셨던 것이다. 유혹하는 자, 사탄(Satan)은 태초에 하와를 '보게' 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유혹에도 성공했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창세 3,6).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유혹에 빠졌던 것도 옥상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2사무 11,2-4 참조).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윈도우 쇼핑 갔다가 성공하고 돌아온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의 원리를 알고 계셨기에 유혹자가 도시를 '보여주며'(마태 4,8; 루카 4,5 참조) 유혹했을 때 중심을 지키고 물리치실 수 있었다. 본래 성경에는 9계명과 10계명이 한 문장 속에 묶여 있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탈출 20,17). 그러니까 이 두 계명은 결국 한 묶음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계명은 그 앞의 계명들과 관계가 있다. 제9계명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는 제6계명과 관련되고 제10계명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는 제7계명과 관련된다. 얼핏 보면 이들 두 계명은 앞의 두 계명의 귀찮은 반복인 듯이 보인다. 또 약간의 저항감도 생긴다. 행하지만 않으면 됐지 마음으로 욕심을 품는 것까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두 계명을 조금만 영성적으로 깊이 새겨보면 이 두 계명은 우리 영성생활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곧 우리 마음이 육체와 물질에 탐욕을 품고 우리 눈이 그것들에 사로잡히게 될 때 우리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는 원리를 가르쳐 준다. 이 두 계명의 요지는 마음이 탐욕(貪慾)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 마음이 보다 소중한 가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선언하실 때 바로 이 점을 파고드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신앙생활의 목적을 단 하나로 요약한다면 '하느님을 뵙는 것'이다. 하느님을 뵙게 되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 기도의 응답, 사랑의 나눔, 지복직관 등 모두 가능해진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뵈올 것이며, 하느님을 닮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깨끗한 마음은 하느님을 뵙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깨끗한 마음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지금부터 벌써 하느님께서 보시는 대로 모든 것을 보고, 타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육체와 이웃의 육체, 곧 인간의 육체를 성령의 성전으로, 하느님 아름다움의 표현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519항). 결국, '탐내지 말라'는 9번째와 10번째 계명은 우리의 참 행복을 보장해 주기 위한 계명인 것이다. 참 행복을 갈망하는 인간은, 현세 재물에 대한 무절제한 애착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뵙고 참 행복을 누리게 될 때 그 갈망이 충족된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그의 「진복팔단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을 뵈오리라는 약속은 모든 행복을 초월합니다. 성서에서 본다고 말하는 것은 곧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뵙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것을 모두 얻은 것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548항). 그러므로 하느님을 뵙는 데 방해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당장 물리쳐야 한다. 남의 아내를 탐내는 것도 남의 재물을 탐내는 것도 결국 자신의 마음을 더럽힌다. 탐욕은 기도할 때 분심 잡념이 들게 하는 주범이 된다. 마음에 때가 덕지덕지 묻으면 기도할 때 도무지 하느님을 볼 수가 없다. 우리 마음이 탐욕으로 점령되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온다"(마태 15,19). 그러니 우리 마음을 이를 대체할 대안(代案)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필리 4,8). 요즘 세상에는 온통 9계명과 10계명을 거스르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볼거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기에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리스도교적 정결에는 사회 분위기의 정화가 요구되며, 또한 대중 홍보 수단들은 타인을 존중하는 신중한 보도를 내는 것이 요구된다.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만연된 선정적 풍토에서 해방되고, 변태적 호기심과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을 피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25항). 그렇다고 환경 탓만 하는 것도 금물이다.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잠언은 우리게 권고한다.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언 4,23).cpbc2006.02.08

교회 일치 운동사'갈라진 형제들' 주님 아래 '하나'로한국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일치교령에 따라 교회 일치를 위한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서울 연동교회에서 열린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회에서 김희중 주교가 그리스도인 일치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는 모습. 평화신문 자료 사진 교회 일치 운동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시라고 고백하는 개인과 공동체가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재건하려는 운동(일치교령 「일치의 재건」 제1항)이다. 가톨릭과 동방교회는 성찬례때 누룩을 넣지 않는 빵을 사용, 사제 독신제, 신경에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filioque) 나온다'는 교리상의 차이로 1054년 갈라졌다. 이후 16세기 들어 교황권이 약해지고, 인문주의가 발달하면서 독일의 루터, 스위스 취리히의 츠빙글리, 스위스 제네바의 칼뱅 등에 의해 유럽 대륙의 종교변혁이 일어나 가톨릭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2006년 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을 맞아 교회 일치를 위한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회의 노력을 간략히 정리했다. ----------------------------------------------------------------------------------------- ▲교황청의 교회 일치 노력 가톨릭의 교회 일치 운동은 19세기 중반 교황청이 그리스도인 일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표면화했다. 교황청은 교회 일치에 대해 동방교회와 개신교가 자신들의 오류를 버리고 일치의 원천인 베드로와 그 후계자인 로마 사도좌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는 것이 교회 일치'라는 교황청의 단호한 입장으로 교회 일치 운동은 시작부터 난항을 보였다. 가톨릭 교회의 교회 일치 정책을 처음으로 새롭고 긍정적으로 실시한 교황은 레오 13세(재위 1878~1903)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동방교회를 지칭하는 '열교자'와 개신교도를 일컫던 '이단자'란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갈라진 형제들'이라고 호칭했다. 또 동방교회 총대주교들의 특권과 고유한 전례를 인정하고 가톨릭 교회와 큰 차이가 없다고 해 현대 가톨릭 교회 일치 운동의 초석을 놓았다. 교황 비오 11세(재위 1922~39)는 1922년 동방 교회 연구소를 설립해 동방 교회의 신학과 전례에 대한 연구를 장려했고, 후임자인 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58)는 '가톨릭 교회 일치 운동의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훈령 「가톨릭 교회」(1949년)를 반포, 교회 일치는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추진되는 운동이라고 선포했다.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63)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개최, 교회 일치 차원에서 동방 교회와 개신교회의 대표들을 초대했고,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 사무국'을 창설했다.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78)는 1964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를 방문, 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의 일치 운동의 신기원을 이룩했고, 1965년 12월에는 가톨릭과 동방교회간 상호 파문(1054년)을 취소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바오로 6세는 또 교회 일치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원칙과 실천을 제시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을 1964년 반포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일치의 재건」을 통해 일치운동은 가톨릭교회 구성원 모두가 실천해야 하는 의무이고(5항), 참된 일치 운동에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회심(7항)이라고 강조했다. 또 교회 일치를 '모든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일치를 회복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해 △공동 대화 △공동 활동 △공동 예배를 권장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이같은 가르침에 따라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는 바오로 개종 축일(1월25일)을 정점으로 1월18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으로 정하고 1968년부터 매년 일치 기도 행사를 펼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1998년 6월 루터교와 함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을 공동 발표, 가톨릭과 루터교간에 지난 450년간 계속된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의 교회 일치 노력 한국에서 교회 일치 운동은 시대별로 차별화한 양상을 띤다. 한국 그리스도교는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말까지는 '성경 번역'중심으로, 70년대 중ㆍ후반부터 80년 후반까지는 '현장에서의 민주화 투쟁'을 통해 일치 운동을 전개해 왔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일치교령 지침에 따라 1965년 7월 '전국 그리스도교 재일치 위원회'를 설립하고, 공식적으로 교회 일치 운동의 첫 발을 내디뎠다. 한국 천주교회는 1968년 1월 서울 명동 성당에서 400여명의 개신교계 인사들과 함께 한국 최초로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합동 기도회를 개최하고, 가톨릭과 개신교 성서학자들로 구성된 '성서 공동번역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성서 공동번역 위원회는 교회 일치 차원에서는 세계 최초로 1971년 신약을, 1977년 신구약 공동번역 성서를 출간하는 역사적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공동번역 성서는 한국 천주교와 성공회를 비롯한 일부 개신교단에서만 사용해 그 의미가 퇴색했다. 교회 일치 운동은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군사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했다. 양심적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복음적 소명을 갖고 연대해 인권회복과 정의구현, 민주화와 공동선 실현을 위해 투신하면서 교회 일치 운동이 사회 참여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됐다. 90년대 들어 한국 사회가 민주화하고 안정되면서 교회 일치 운동은 더 이상의 발전 없이 답보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그 이유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교회 일치 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지 못했고 교회 구성원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무관심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운동은 2000년 대희년을 지내고 새천년기를 들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주축이 돼 2002년 12월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회의'를 공식 구성했다. 가톨릭과 KNCC 회원교단, 한국 정교회, 한국 루터회 등 한국 그리스도교 10여 교단이 참가한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회의는 2003년부터 매년 신학자 연구 모임과 에큐메니컬 포럼, 실무자 회의, 성직자 및 신학생 교류 모임 등을 추진해 오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06.01.11

휴가철에 챙겨갈 만한 영적 '(상)/성서 교부학따분한 성서? 이렇게 흥미진진한데요 주5일 근무제 확대 시행에 여름 휴가까지 겹쳤다. 알찬 휴가를 가려면 각종 준비물도 마련해야겠지만, 영적 독서를 통한 충전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하다. "휴가에 무슨 책이냐"고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렇지만 '일용할 양식'으로 책 한 권쯤 끼워넣는 여유도 필요하다. 지친 영혼을 활력있게 해주는 것은 산과 바다뿐만이 아니기 때문. 한 모금 생수처럼 영혼의 갈증을 풀어줄 영적 도서를 교회출판사들 추천으로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예수와 만난 사람들」=읽어도 읽어도 마른 껍질 씹듯 따분한(?) 성경이 이렇게도 흥미진진한 책이 될 수 있다니…,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책. 예수 시대, 세리 자캐오와 마리아, 중풍병자, 나병환자들이 보고 느끼고 체험한 예수 이야기다.(이현주 지음/홍성담 판화/생활성서사/5000원) ▲「성서의 악당들」=성서 등장 인물 중 '악당'이라고 일컬을 만한 사람들 중 10명에 관한 일화. 독재자 파라오, 판관 에훗, 우리야의 부인을 탐해 속임수를 쓰고 살인까지 하는 다윗, 사기꾼 게하지, 하느님 말씀 전하기를 거부하고 도망간 요나, 헤로데 왕, 세리 자캐오, 정치가 빌라도, 예수와 함께 처형을 당한 십자가의 좌도, 겁쟁이 베드로 등을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재미있게 엮었다.(밥 하트만 지음/전경아 옮김/한호진 그림/바오로딸/7800원) ▲「성서를 읽기 위하여」=성서읽기를 지루해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성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성서를 가까이에 두고 친숙하게 읽을 수 있을지 돕는 성서입문서.(박영식 신부 지음/성바오로/6000원) ▲「자기 자신 잘 대하기」=금욕의 참된 뜻을 성서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살핀다. 자기 자신부터 긍정하고 자비롭게 대할 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영성서.(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한연희 옮김/성서와함께/5500원) ▲「성서옆에 논어놓고 논어옆에 성서놓고」=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한 제45차 청소년권장도서. 천주교 사제와 유학자가 성서와 논어의 핵심사상을 견줘가며 그 가르침을 면밀히 살핀다.(최기섭ㆍ김형기 공저/성서와함께/1만원) ▲「요나와 피노키오」=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리드비나)씨의 성서인물 산책. 성서를 현대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성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의 폭을 넓히고 성서는 지금도 우리네 삶에 끊임없이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이나미 지음/생활성서사/7600원) ▲「내가 사랑한 교부들」=교부들의 믿음과 사랑, 그 치열한 삶에 대한 짧고 생생한 보고서. 오늘의 교리와 전례, 그리고 교회생활을 이해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한국교부학연구회 지음/분도출판사/1만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5.07.13

주교회의 봄 총회 주교 의결 내용, 의미성서, 교리교육, 한국 교회 상황 맞게 적용7일부터 나흘간 서울 중곡동 주교회의 사무처에서 봄 정기총회를 가진 한국 주교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 의결사항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 모든 신자들이 공용할 성서가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채택됐다는 소식이다. 이는 한국 천주교회가 지난 1988년 성서 새번역 작업에 착수한 지 17년 만에 신ㆍ구약성서 전체를 아우르는 독자적 번역본을 갖게 됐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성경」은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전례위원회 관계자들이 모여 우리말이 매끄럽지 못한 일부 부분에 대해 3개월간 수정 보완한 뒤 7월께 인쇄에 들어가 출판될 예정이다. 출판을 담당하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휴대가 간편한 소형을 비롯해 노트 크기 등 모두 5종을 내놓을 예정이다. 주교회의가 발행을 승인한 「한국천주교회 교리교육 지침서」는 한국 가톨릭 교회 교리교육의 길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가 교리교육 전문가 의견을 수렴, 수년간에 걸쳐 완성한 이 지침서는 교황청이 1997년에 발표한 '교리교육 총지침'을 한국교회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자 교황청 각종 문헌과 200주년 사목회의 교리교육의안, 각 교구 시노드 문헌 등을 기초로 한국교회 교리교육의 이론과 실제에 적용한 구체적 원칙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76항(A4 61쪽 분량)으로 꾸며져 곧 출간될 지침서는 한국 교리교육 상황, 본질, 과제, 목표, 내용은 물론 교리교육의 방법과 대상, 기구와 도구 등 실천적 대안까지 포괄하고 있어 일선 사목자와 신학생, 수도자, 교리교사, 소공동체 봉사자, 선교사 등 교리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교리교육의 정도(正道)를 알려주는 안내서가 될 전망이다. 「주일학교 교리교재 진도표」 발행을 승인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진도표는 본당마다 교리교육 내용과 과정이 달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경우 주일학교 학생들이 교리 내용을 반복해 배우거나 어떤 내용은 누락돼 배우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함에 따라 교과 과정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 제기돼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가 만든 것이다. 진도표는 유치부부터 초ㆍ중ㆍ고등부까지 각 학년 교리교육의 기본 방향, 학습목표, 예시 교리 주제 등을 세밀하게 구분하고 있어 주일학교 현장에서 확산 적용될 때 체계적이고 통합된 교리교육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가 '사목행정연구위원회'를 설립키로 결정함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 전산 시스템 구축과 행정업무 표준화 작업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전국 각 교구 전산담당 사제와 사무처장 신부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출범한 사목행정연구위원회는 1998년 개발돼 서울과 타교구에서 분리 운영되고 있는 양업 시스템을 보완해 교적제도 개선을 비롯한 사목행정 관련 업무를 표준화하는 작업을 맡게 된다.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가동하게 되는 위원회는 각 교구 사무처장과 전산담당 사제로 구성되며, 위원장에는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최창화 몬시뇰이 선임됐다. 박주병 기자 jbedmond@pbc.co.krcpbc2005.03.16

오늘날 아시아에서의 선교 사명(상)-정진석 추기경제삼천년기, 생동하는 아시아 선교 시대아시아 대륙에서 가톨릭은 여전히 박해 위협에 시달리는 `소수의 양떼`이다. 사진은 박해 위협에 시달리는 인도 가톨릭교회 여성들이 그리스도교, 이슬람, 힌두교 상징물을 들고 종교간 평화를 호소하는 모습. CNS 자료사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은 3월9일부터 11일까지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열린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반포 40주년 기념 회의에서 '오늘날 아시아에서의 선교 사명(아시아에서의 첫 복음화)'을 주제로 발표했다. 정 추기경의 주제 발표 내용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1, 머리말 오늘날 "교회의 선교 활동은 주로 아시아를 향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37항) "제일천년기에는 십자가가 유럽 땅에 심어지고, 제이천년기에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심어졌던 것처럼, 제삼천년기에는 이처럼 광대하고 생동적인 이 대륙에서 신앙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권고 「아시아 교회」 1항) 복음화는 아시아 교회의 중요하고도 최우선의 사명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아시아 교회가 자신의 숙명적 섭리를 완수하여야 한다고 할 때" 우리는 복음화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합니다.(앞의 권고 2항) 이는 복음화에 있어서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합니다. 주위의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교회로서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 60억에 이르는 전 세계 대다수의 인류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라는 성경 말씀에 우리는 직면합니다. 2. 전반적 상황에 대한 거시적 조망 아시아 대륙은 다양한 문화, 종교, 사회구조와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세계 인구의 거의 2/3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아시아는 그 자체가 교회에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종교적 상황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는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와 같은 세계 주요 종교들 사이에서 아주 미미한 소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단지 3.1%로 38억명 중 1억1800만명인 데 반해 비그리스도인들은 35억명(91.5%)입니다. 그들 중 8억7000만명(22.8%)은 무슬림, 8억3100만명(21.8%)은 힌두교도, 3억9700만명(10.4%)은 유교도를 포함한 민속종교인들, 3억6700만명(9.6%)은 불교도, 6억2000만명(16.3%)은 비종교인들이고 1억2100만명(3.2%)은 무신론자들입니다.(2004년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연감 참조) 필리핀을 예외로 치면, 가톨릭 신자들은 단지 1.3%, 즉 5000만명입니다. 세계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10.8%와 비그리스도인들의 82.8%가 아시아에서 살고 있습니다(앞의 책). 2) 경제적 상황 아시아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대조적 모습을 보여주는 대륙입니다. 기술ㆍ경제적으로 굉장한 진보를 이루었음에도 극단적 빈곤과 불의가 아직까지도 존재합니다. 선진국으로 알려진 일본, 대한민국, 대만, 싱가포르는 별개로 치더라도, '친디아(Chindia)'로 약칭되는 인도와 중국은 현재 세계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극심한 빈곤과 불평등, 사회 불의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명백하고도 슬픈 현상입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빈곤의 기준을 하루 1달러로 정할 경우 극단적 빈곤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략 6억9000만명, 발전도상의 아시아 인구의 21.5%에 이릅니다. 약19억명에 이르는, 발전도상의 아시아 인구의 60%가 하루 생활비 미화 2달러 이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시아 대다수 국가들이 인적 개발의 측면에서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3) 사회ㆍ정치적 상황 (1) 사회적 상황 카스트 제도, 식민지주의, 국가적 혹은 국제적 기득권, 부패, 정치적 불안정과 같은 상황은 '죄의 구조'(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6항)의 결과입니다. 사실상 아시아의 발전도상에 있는 국가 대부분은 공공 부문의 부패, 인간적ㆍ정치적 권리에 대한 존중, 언론 자유의 측면에서 민주화 달성도가 가장 낮은 단계로 평가됩니다(World Audit, 세계 민주화 목록, 2005년 10월). 세계감사협회는 런던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입니다. 인구가 최소 100만명 이상의 150개 국가들을 조사하여 공공부문 부패,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권리에 대한 존중과 언론의 자유와 같은 다양한 변수들을 조합해 민주화 목록에 올려 그들 국가들의 서열을 정했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북한이 82위, 중국이 128위, 베트남이 138위, 맨 마지막에 최소 민주화 국가로 미얀마와 투르크메니스탄이 각각 149위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도시화와 이민, 무거운 해외 부채의 부담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스미디어와 정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성장과 보급으로 종교적, 도덕적, 문화적 가치를 훼손하고 삶을 위협하는 문화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카스트 제도, 식민지주의, 국가적 혹은 국제적 기득권, 부패, 정치적 불안정과 같은 악의 메카니즘, '죄의 구조'(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6항)의 결과입니다. 아시아에 만연하고 있는 많은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사회에는 또한 많은 긍정적 희망의 표징들이 있습니다. 민주적 가치에 대한 열망은 물론이고 문맹 퇴치 수준과 교육, 연구 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지역 기구들이 날로 늘어나는 아시아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2) 아시아적 방식 아시아 근대화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지난 몇십년 동안 아시아에서 근대화는 서구화를 의미했습니다. 서구적 방식이 서구의 물질적 진보를 위한 기초를 놓았다고 생각했기에 아시아는 서구적 방식을 무조건적으로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가 근대화함에 따라 아시아의 양심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시아의 아시아화입니다. 아시아적 방식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 이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생활 양식에 있어서 아시아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3. 아시아에서의 선교 사명의 대차대조표 인도의 성 토마스 그리스도 교회들을 제외하고는(고고학적 자취와 그리스도교 역사를 더듬어보면, 성 토마스 사도가 52년에 남인도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아시아의 첫 복음화는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16세기가 되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선교활동을 시작한 지 거의 5세기가 지났는데도 가톨릭 신자는 아직도 미미한 소수에 불과합니다. 필리핀을 제외한 전 아시아에서 수세기에 걸친 활동과 많은 사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아직도 이방 종교로, 때로는 사실상 식민지 세력과 결탁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에서는 교회가 평화와 자유 속에 선교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대부분 나라들에서는 교회가, 때로는 종교적인 이유로, 때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없어져야 할 위험 요소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 작은 공동체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극도의 긴장과 갈등, 박해를 겪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그런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입니다.(UCAN 통신 참조) 외국 자본으로 교회가 제공하는 교육과 자선활동들은 존중을 받는 한편, 대부분의 경우 그 동기를 의심받는데, 이는 그러한 활동들이 종종 복음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경험에서 교회의 자선 활동이 소위 개종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1항 "그러나 이것은 어찌되었든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제쳐두고 자선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의 복음화를 어렵게 하는 또 다른 문제들이 있습니다. 몇 가지를 예로 들면 이주 노동자 문제, 인권의 파괴,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 생태계 악화, 낙태, 가정 해체 등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 문제들은 복음화의 우선적 사명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함께 하며 우리의 믿음을 증언하는 장소와 기회로서 우리의 주의와 관심을 요구합니다. 4. 순교: 복음화의 강력한 수단 새천년기가 시작되는 오늘날조차도 아시아 교회는 순교자들의 교회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과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박해와 힌두교와 이슬람 국가들의 여러 곳에서 행해지는 박해를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주민 일부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때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은 인도의 힌두교 신자들뿐만이 아닙니다. 아쌈 지방의 무속신앙 지역에서는 개종자들을 추방하거나 마을의 우물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공유 경작지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는 것조차 금지합니다. 친척들이 자신들과 관계를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겨도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1990년대에는 그 지역에서만 세 명의 새 가톨릭 신자가 순교했습니다. 피데스 통신스에 따르면 "하느님의 위대한 뜻을 위하여 싸우는, 이를테면 ‘무명 용사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권고 「제3천년기」 37항)"은 말할 것도 없고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162명이 전 세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에 살해되었습니다. 21세기의 처음 6년 동안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27명이 아시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에 살해되었습니다. 그들 중 17명은 인도에서 살해되었고, 나머지는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시베리아와 필리핀에서 살해되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점차 자신들의 기본적 안전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cpbc2006.03.08

홍주읍성 순교성지 성역화 세미나홍주읍성, 내포지역 최대 순교지1. 지금의 홍성군청 입구에 있는 홍주성 입구 홍주아문. 2. 홍주읍성 순교성지 성역화 추진을 위한 세미나에서 발표자들이 종합토론을 벌이고 있다. 대전교구가 묻혀있던 홍주(홍성) 읍성 순교성지 성역화 추진에 뛰어들었다. 교구는 이 지역 순교성지 성역화 추진을 위한 첫 작업으로 이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는 '홍성지역 천주교 순교사와 순교터 개발'세미나를 9월24일 홍성문화원에서 열어 이곳이 교구 최대 순교지임을 확인했다. 아울러 정부가 추진하는 홍주읍성 복원사업과 연계해 성지 개발이 추진돼야 하는 당위성도 도출해냈다. 교회 순교록에 따르면, 홍성에서 순교한 순교자는 모두 212명. 그러나 순교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무명 순교자를 감안하면 실제 순교자는 7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측된다. 이날 세미나에서 '홍주읍성과 관아시설, 조선시대 형옥체제'에 대해 발표한 김경수(청운대) 교수는 "홍주는 조선시대 내포지역 정치ㆍ행정ㆍ군사ㆍ문화의 중심지로 그 한복판에 세워진 읍성 안 관아시설은 특히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형벌이 집행되었던 곳"이라고 밝혔다. 구체적 장소는 목사나 영장의 동헌 앞, 옛 저자거리와 홍주 옥(지금의 검찰청 및 법원 자리)이라고 지적한 김 교수는 이와함께 홍주성 북문 밖, 지금의 월계천변도 순교터로 추정했으며, 생매장터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대한 지속적 연구와 관심을 기대했다. 차기진(양업교회사연구소) 소장은 '홍성지역 천주교와 순교자 연구'발표에서 "홍성은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으로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 다음으로 순교자를 많이 낸 곳"이라고 밝히고 이 지역 순교를 크게 3시기로 나눠 설명했다. 초기 박해(1791~1801년) 순교자는 8명으로 이 중 원시장(베드로), 방프란치스코, 박취득(라우렌시오), 황일광(시몬) 등 4명이 시복시성이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이다. 중기(1812~1839년)에는 이여삼(바오로) 등 4명이 순교했으며, 이후 1866년부터 1870년대 초까지 계속된 병인박해 때 가장 많은 200명이 순교해 교회 순교록과 관변기록 등 기록상 확인된 홍성 순교자는 모두 212명에 달한다. 그러나 순교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무명 순교자를 감안하면 실제 순교자는 7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차 소장은 추측했다. 우리나라에서 100명 이상 순교자를 배출한 곳은 기록상으로 볼 때 홍성 외에 공주(240~250명), 해미(90~100명), 서소문밖(90~100명) 등이다. 차 박사는 "순교록을 보면, 홍성 순교자는 참수형보다는 교수형이 많고 생매장된 순교자도 있다"며 해미 순교지 외에 생매장당한 이곳 생매장터 위치에 대한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이처럼 중요한 순교 역사를 담고 있는 홍성 지역은 순교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순례지로 자리매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토사학자인 복익채(홍주향토문화연구회) 선생은 "인근 서천군은 18세기 초 마량리에서 영국 해군 함장에게 성경 한권을 받은 사실을 바탕으로 개신교가 한국에 처음 전래된 곳이라 해서 성지로 조성한다는 구상을 공약했다"며 이와 대비할 때 수많은 순교자가 탄생한 홍성은 당연히 천주교 순교성지로 조성돼야 한다는 주장했다. 임선빈(충청남도역사문화원) 연구원은 "향토사를 깊이 탐구한다는 점에서 무명 순교자 무덤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조사 연구가 필요하고 유적지로 보존 가치가 있는 곳을 선정, 문화재 지정도 추진해야 한다"고 밝히고, 주변 내포지역 천주교 유적지와 연계한 성지순례 관광 프로그램 개발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임 연구원의 발표는 홍성군이 용역 의뢰한 연구의 한 부분이다. 홍성지역 천주교 순교사를 재조명한 이날 세미나를 주관한 홍성지구장 나기순 신부는 개회 인사에서 "홍성 순교성지의 중요성을 너무 모르고 있었고 순교성지 안내간판 하나 없어 부끄럽다"며 우리 교회가 땅 한평 구입하지 못한 이 곳이 홍주읍성 복원 사업과 관련해 내포지역 중심 성지로 조성될 수 있도록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채현병 홍성군수는 "천주교 성지 성역화는 전문가 입증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현재 홍성 천주교 박해와 관련해 연구단체에 용역을 의뢰해 연구 중이기에 그 결과가 나오면 홍주성 복원사업과 연결해 추진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숙 기자 mirinae@pbc.co.krcpbc2005.09.28

민들레의 자리와 하늘- 이해인 수녀의 시 세계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 30주년 기념하며 -구중서(베네딕토, 문학평론가 이해인 수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1976년에 출간됐으니 올해로 만 30년이 된다. 첫 시집 발간 이후 이해인 수녀는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냈다. 이 수녀는 세속을 떠난 수도자의 몸이지만 언어가 문자로 찍혀 발간되는 과정은 어차피 사회 속 일이다. 동아일보가 작년에 지난 25년 동안의 서점가 실적을 조사해 보도했다. 한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의 기록을 보면 법정 스님이 9회, 이 수녀가 11회로 최정상의 베스트셀러 저자로 돼 있다. 이것은 단순한 상행위를 넘어서는 다른 의미로 볼 수 있다. 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는 한국에서 군부 독재가 지배한 세월이었다. 이 기간에 문학은 치열한 저항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적으로 진리의 차원을 지니는 종교적 심성의 글들이 상처받은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고 영원한 가치에 향하는 희망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이 위로와 희망의 지향에서 이 수녀의 시와 산문들이 한국 사회에 이바지한 바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초심(初心)을 잃지 말자"고 한다. 마음이 순수했고 저력과 조짐을 잘 드러내던 그 출발점에 대해 일깨우는 말이다. 이 수녀의 초심은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에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초심에도 이러저러한 차이는 있겠는데 「민들레의 영토」에는 이 수녀 시세계 모습과 규모가 충실히 담겨 있음을 30년이 지난 오늘에 새삼 발견하게 된다. 「민들레의 영토」에 최근 저작인 「작은 위로」와 「기쁨이 열리는 창」을 보탠 범위에서 이 수녀의 시세계를 살펴본다.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흘러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싶은 얼굴이여" ('민들레의 영토'에서) 길가 좁은 영토에 피는 고독한 민들레 꽃이지만, 어여삐 보는 하느님의 맑은 눈물이 빗방울인양 떨어지면 민들레는 기쁘게 꽃씨를 날려 보내려 한다. 오시기를 기다리는 그이. "보고싶은 얼굴이여" 원색의 아픔 속에서 연인을 기다리듯 보고싶어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사뭇 인간적으로 표현돼 있다. "유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 기슭에 엎디어// 찬 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유월엔 내가'에서) 하느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의 연속이다.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했고 하느님의 자녀이며 분신인 사람이니 하느님이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신비에만 가려져 있다기보다 바로 내 곁에 있다는 인식이 신앙을 생동케 한다. 그러면서 세속을 성직처럼, 성직을 세속처럼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하비에르 성인의 말처럼 수도자는 세속의 고향에 대한 사랑에도 소홀할 이유가 없다. "비오는 날/ 유리창이 만든/ 한 폭의 수채화// 선연하게 피어나는/ 고향의 산 마을" ('어느 수채화'에서) 이해인 수녀 고향이 강원도 양구인데 거기에 연유하는 향수일지, 고향은 삶의 뿌리이자 자연이다. 자연은 거의 하느님과 같으며 자연의 상징적 거점은 산이다. "나는/ 산에서 큰다/ 대답없는 대답/ 침묵의 말씀" ('산에서 큰다'에서) 레오나르도 보프의 「성사(聖事)란 무엇인가」에 실린 서문은 시처럼 아름답다. "산은 마치 하느님같습니다. 모든 것을 떠받치며 온갖 것을 겪어냅니다.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품 안에 안아 들입니다." 보프의 이 말은 이해인의 시 '산에서 큰다'와 뜻을 같이 한다. 자연에는 산과 더불어 강이 있다. "말없이 무한정/ 말이 깊은 강" ('저녁 강가에서'에서) 구상 시인의 시 '오늘'은 하루가 영원 속에 이어져 있다는 신비에 대한 깨달음이다. 강의 한 유역이 오늘이라면 이것은 옹달샘과 바다에 이어져 영원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쉼보르카의 시 '되풀이 되는 것은 없다'는 어느 찰나의 일도 꼭 같은 모양으로 되풀이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순간의 이 고유한 존재론적 본질이야말로 순간 속의 '영원'을 일깨운다. 영원을 희구하고 영원을 눈치채는 사람은 이미 큰소리로 외치며 주고 받은 말이 없다. "고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산물이지요." ('고운 말'에서) 신동엽의 시 '좋은 언어'가 있다. "외치지 마세요/ 때는 와요/ 그 때까진/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저항의 구호보다 본질적으로 이 좋은 언어, 고운 언어가 더 중요하고 심도 있다. 세례성사에 쓰이는 물의 의미는 과학자가 말하는 H쐝O와 다르다.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고 성경은 말한다."존재근원으로부터 오는 살아있는 원초적 언어로 시를 써야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언어를 다루는 시인은 사제와 같은 신분의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수도자라 할 수도 있다. 영원을 살고, 살아있는 언어로 수도생활을 하는 이에게는 삶이 오히려 단순해진다. "아름다움의 시작은 단순함임을/ 예수님께 다시 배우는/ 오늘이 기쁨이여" ('단순하게 사는 법'에서) 그리스도의 산상수훈, 어린이와 같이 돼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은 단순함의 경지이다. 그러나 수도자도 시인도 약하고 한계가 있는 '인간'이다. 때때로 외롭고 상처받고 절망한다. 그러다가 다시 회개하게 된다. "볼품없이 잊혀진 나를 억울해하면서 슬프디 슬픈 체념을 눈 아프게 울었습니다./ …내가 만든 자아의 성벽은 와르르 무너지고 느닷없이 솟구치는 새로운 물줄기, 이 기쁨…"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에서) 일찍이 공자도 이 대목을 지적했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데에 대해 섭섭해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큰 사람이 아니랴."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아닌 종교들에 대하여」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리스도교는 유교ㆍ불교ㆍ힌두교ㆍ이슬람교 등 다른 모든 종교들 안에 있는 옳고 성스러운 것들을 존중한다.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보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화해했음으로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 수녀는 산문 「웃으며 즐기는 세계 종교 이야기」 에서 세계 평화와 일치에 지향하는 마음을 펼쳐 보였다. 실로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 자녀이며, 마음이 착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하느님만이 아시는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완성을 향해/ 아픔의 씨앗을 품고/ 우주를 색칠하던 꽃/ 다함없는 믿음과/ '사랑으 학문'밖엔/ 가진 게 없던/ 우리가 닮고 싶은/ 고운 님이여" (「소화(小花) 데레사 성녀에게」에서) 이 수녀의 위 시에서처럼 소중한 것은'완성'이다. 인간본성과 자연법적 질서의 자기완성이다. 자유와 책임에 바탕을 둔 도덕적 힘에 의한 인간의 자기완성,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지향하는 '완성사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렇게 넓은 생각의 규모 안에서 다양하고 섬세한 감수성의 언어로 위로와 희망의 시를 쓰는 한 길에 벌써 30년을 걸어온 이 수녀는 계속 젊은 모습이다.cpbc2006.01.11
-<104>'성화가 새겨진 비누' 사용은 신성모독죄인가요?<질문> 최근 성당에서 기념품으로 화장 비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반투명체 비누 안에는 예수님을 품에 안은 성모상이 있었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이를 두고 신성모독이라고 말합니다. 더러운 몸을 닦는 비누에 성모자상을 그려 넣는 것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요. 이도근 (스테파노, 서울)씨 독성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대상은 일반적으로 사람, 장소, 물건 등 세가지로 나뉩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죄는 성직자나 수도자를 폭행하거나 정결서원 또는 독신서약을 깨뜨리도록 위협을 가하는 행위 등을 말합니다. 장소와 관련한 죄는 축성된 성당과 교회묘지에서 살인, 음행, 파괴, 방화 등 행위를 할 때 성립됩니다. 마지막이 바로 거룩한 사물에 대한 독성입니다. 이는 성체를 포함해 미사용 제구, 성경, 성상 등 하느님께 봉헌된 물건을 '세속적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에 성립됩니다. 그런데 질문하신 '성화가 새겨진 비누'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독성죄에 해당하느냐는 문제는 고민이 필요할 듯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성모님이 새겨진 비누로 더러운 내 몸을 씻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이 비누로 손을 씻으며 '불쌍한 이 죄인의 죄를 씻어 주소서'라고 묵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이처럼 성화를 접목한 생활용품들이 늘고 있지만 교회가 이에 대해 교리적 교의적으로 판단한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정확한 것이 있습니다. 만약 질문하신 비누 혹은 비누 안에 들어있는 성모자상이 축복을 받았을 때는 문제가 분명 있을 듯합니다. 준성사가 된 물건(성물)은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은총을 전달하는 도구인 까닭에 거룩합니다. 따라서 축복된 물건은 하느님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하고, 세속적 목적이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자문=서울대교구 교회법연구소>cpbc200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