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권째 책 '히브리어..' 펴낸 교리신학원장 이기락 신부"후학들에게 디딤돌 된다면 만족" 성서학자 이기락(서울대교구 가톨릭교리신학원장) 신부가 최근 「히브리어-우리말 소예언서」(성서와함께)를 펴냄으로써 총 25권의 저서 및 역서를 선보였다. 1995년 첫권으로 역서 「성서 히브리어」(가톨릭출판사)를 내놓은 지 꼭 10년만에 이뤄낸 결실이다. 산술적으로 보자면 10년간 1년에 2.5권씩 선보인 셈이다. 우연찮게 이 신부는 지난 2월25일로 사제품 25주년을 맞았고, 이번에 25번째 저서를 출간했다. 특히 이 신부는 사제생활 25년을 결산하며 최근 들어서만 「소예언서」(성서와 함께, 2005년)를 비롯해 「히브리어-우리말 소예언서」, 「아남네시스」(성서와함께, 2004년말), 「구약성서의 기도」(가톨릭교리신학원, 2004년말), 「후기예언서」(가톨릭교리신학원, 2005년) 등 5권을 집중적으로 쏟아내 자신의 은경축을 기념했다. 이 신부 저서 및 역서는 옮긴 책이 5권, 엮은 책 및 역주가 3권, 지은 책이 17권. 성서학자들을 위한 전문저술에서 평신도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신앙서적까지 고루 망라돼 있다. 공통점이라면 성서학과 연관돼 있다는 점. 히브리어문법교재로 「성서 히브리어」와 「토마스 O. 램딘의 성서 히브리어 분석과 해설」(가톨릭대 출판부, 96년), 「성서 히브리어 문장론」(가톨릭대 출판부, 99년) 등 3권을 냈다. 최근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히브리어 원문 행간(行間)에 우리말을 삽입한 행간 성서 번역서 「히브리어-우리말 소예언서」를 냈다. 또 현실 경험 세계와 너무 동떨어져 난해하기로 짝을 찾을 수 없는 「에제키엘 예언서」(가톨릭대 출판부, 2004년) 주석서도 그가 처음으로 냈다. 99년부터 2002년까지는 사목자와 일반 신자들을 위해 가ㆍ나ㆍ다해 3년치 매일미사 독서/복음(축일) 해설서 12권을 펴내기도 했다.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 총무이자 새번역 「성경」 번역위원이기도 한 이 신부는 「열두 소예언서」(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99년)를 번역한 데 이어 열두 소예언서 본문을 여러 각도에서 비평, 번역의 여러 가능성을 제시한 「소예언서」도 최근 내놓았다. 성서학적으로 미개척 분야에 해당하는 주제를 다룬 책을 중점 출간했지만, 이 신부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고백한다. "완제품을 내려고 했다면 아무 것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간 저술은) 제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부끄럽긴 하지만 제가 하나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족합니다." 그래선지 이 신부는 "저를 밟고 가세요"라는 말로 25권을 내놓은 소회를 대신했다. 가톨릭교리신학원장으로 최근 다양한 교양ㆍ영성강좌를 마련해 일반 신자들에게도 성큼 다가선 이 신부는 "올 가을엔 성령론을 개설하고 내년엔 뉴에이지운동 등 건전한 신앙을 해치는 흐름과 수도회 영성을 다룰 계획"이라며 "사회와 교회가 요청하는 풍부한 교양ㆍ영성강좌를 마련해 발전시켜 가겠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5.05.26

김수환 추기경에게 듣는다"어떻게 이런 일이.." 줄기세포 파문에 '눈물'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이윤자 편집국장과 가진 성탄절 특별대담에서 황우석 교수 논문 진실공방, 사학법 개정안 통과에 따른 사학계 반발 등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특별 대담 /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이윤자 편집국장 세상이 시끄럽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끝 자락에서조차 갈등과 반목이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기 예수님이 다시 오셨다. 온통 잿빛처럼 희뿌연 세상속으로 한 줄기 빛이되어 오신 아기 예수님, 과연 그분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실까. 그 성탄절에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은퇴 후 격려와 사랑으로 많은 이들의 벗이 되어 주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어른이 없는 사회, 진정한 어른으로 갈 길을 밝혀 주는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복잡한 세상사속을 살아나가는 신앙인들의 삶의 지혜를 들어보았다. ------------------------------------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며칠 전 성탄시기가 상업주의로 얼룩지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셨듯, 캐럴 소리는 요란하지만 성탄의 참 의미에 대한 얘기는 별로 들리지 않습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십시오. "하느님 사랑이 가장 크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 성탄입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지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죄로 당신을 거스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죄를 용서해주시고, 죄의 결과로 오는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고자 외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를 선사하고, 우리를 당신의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그런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어둠이 닥쳐도 빛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탄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구원계획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셨듯 용서와 사랑, 나눔을 실천하는 성탄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생명 문제가 올 연말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으로 한국 과학계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국제사회의 신뢰도 추락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하겠습니까. "어제 저녁 TV 뉴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황우석 교수 연구성과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솔직히 속으로는 '그런 일이 없기를…'하고 바랐습니다. 전체 상황이 혼돈 속에 빠져들어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지만 '의혹 일부'가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한국 사람이 세계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김 추기경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떨구었다. 침묵은 2~3분간 지속됐다. 추기경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 뒤 떨리는 입술로 힘겹게 말문을 다시 열었다.) 하느님은 한국인에게 좋은 머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머리를 좋게 쓰지 않고….(추기경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가톨릭은 애초부터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인간 생명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저 역시 4일 서울대교구 생명미사에 참례해 그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신문ㆍ방송에는 사기 행위와 관련된 뉴스가 너무 많아요.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기를 치다 붙잡힌 사람 얘기가 수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토를 주지 않으신 대신 똑똑한 머리를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척박한 땅에서 이만큼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풍족하게 사는 것 아닙니까.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우직한 자세입니다. 우직한 사람은 정직합니다. 왜 한국인은 세계 무대에서 정직하지 못하다는 눈총을 받아야 합니까. 논문에 관한 진실공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무엇을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를 황 교수 논문에 국한시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부정직하게 살았는지, 또 진실을 외면하고 살았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게 바로 치유책이자 수습책입니다." ▲생명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 문제의 발단이 된 배아줄기세포 대신 성체줄기세포라는 대안이 있습니다. 가톨릭계 병원에도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조혈모세포 이식은 이미 임상에서 난치병 환자에게 적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교회가 '그것 봐라. 우리가 옳지 않았느냐'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 역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불치병 치료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성체줄기세포 치료법은 환자 골수나 신생아 탯줄혈액(제대혈)에 존재하는 줄기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생명윤리 문제에서도 자유롭습니다. 현재 서울대교구는 이 연구에 100억원 지원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쪼록 가톨릭계 의료진이 힘을 합해 불치병 환자들의 기다림에 응답하는 결과를 내놓기를 기대합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가톨릭 교육계는 물론 국내 사학계 전반이 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설립 이념과 정신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들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교회는 개정 사학법 상정 단계에서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제 이름으로도 관계 기관에 그 뜻을 전달했습니다. 사학법 개정 목적은 사학비리 척결이라고 합니다. 물론 비리는 척결돼야 합니다. 하지만 소수의 비리를 전체 다수의 문제로 비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국내 중고등학교 3분의 1을 사학재단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사립대가 국립대보다 많습니다. 그 많은 사립학교들에서 2%가 비리에 관련돼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걸 사학 전체의 문제인양, 사학이 비리의 온상인양 몰아붙여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사학 전체가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서면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2% 사학비리 문제가 얼마나 화급한 사안이길래 전체 목소리를 외면하고 법안을 통과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사학계는 많은 어려움에도 계속 투자해가면서 교육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 여당은 이런 사학계에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망정 모두가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의욕을 꺾어놓았습니다. 앞으로 개방이사제 등이 시행되면 학교 당국과 교사, 교사와 전교조 사이의 갈등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교육 문제를 더 키워놓은 셈입니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 삼간 태우는 격'이죠. 따라서 대통령이 사학계 의견을 존중해 법안 거부권을 행사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정치문제는 현안 가운데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아직도 당리당략 차원의 정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정치판이 나쁜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정치인들도 우리 가운데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신뢰받는 정치인에 대한 기대는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자녀와 학생에게 진실된 가치관을 심어줘야 합니다. 즉 진실한 인간을 길러 사회로 내보내야 합니다. 그런 교육 환경에서 정치인과 기업가가 나와야 합니다. 세계인이 한국 사람은 정직하다고 인정하게끔 노력하는 것보다 더 큰 투자는 없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무역 규모가 50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또 자타가 인정하는 IT 강국이 됐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국제사회 신뢰를 얻지 못하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제값을 받지 못합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견이 상충할 경우 합의점을 도출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에서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제각기 목소리가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이치를 따져가며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또 상대방 얘기를 경청하면서 합의점을 찾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옳다고 생각되면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 사회에 갈등만 증폭될 뿐 시원스레 해결되는 일이 없는 이유는 합의점을 찾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토론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상대방 주장에 수긍할 줄 아는 포용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사회든 가정이든 위기가 닥치면 적절한 해법과 조언을 주고, 때로는 거침없는 질타로 방향을 바로 잡아주는 어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른 없는 사회, 가장 없는 가정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심각성은 이미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과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정치인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신문을 읽으십시오.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해결 실마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산적한 현안들에 대한 의견은 제각기 다릅니다. 저 역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쓴 신문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세상사를 보고, 판단하고, 해법을 찾아봅니다. 원로의 말이라고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원로든 원로가 아니든 그가 진실된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사설이나 칼럼 등에 보면 사회 현안에 대한 해법이 어느 정도는 제시돼 있습니다. 실제 정치하는 사람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진실된 주장도 많습니다. 그런 주장을 적극 참고해서 사학법안 문제와 이번 황 교수 논문파동 문제를 풀어나가길 바랍니다. 아울러 교회는 진실된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야 합니다. 교회 매스컴은 신문ㆍ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려야 하고, 사제들은 강론대에서 진실을 외쳐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근 교회 성장세가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습니다. 통계 수치로 볼 때도 신자 증가율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야말로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인생이 그러하듯 교회도 부침(浮沈)하면서 성장합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이죠. 현재의 침체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반성의 기회와 은총의 시간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성장했다고 자기 만족에 빠져 우쭐했습니다. 인간이든 공동체든 자기 만족에 빠지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현재 신자수의 3분의 1은 쉬는 상태이고, 3분의 1은 미사 참례에 소홀합니다. 나머지 3분의 1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숫자만으로도 미사시간에 좌석이 차니까 위기의식을 못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청소년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청소년은 교회 미래이자 한국사회 미래입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꼭 전해줘야 합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그들이 복음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지난달 청년성서모임 대표자 연수에 참석해 하느님 말씀에 맛들인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전국 10개 교구 말씀 봉자자들이 한데 모인 자리였는데 저는 그곳에서 교회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말씀 안에서 올바른 가치관과 정신을 키워가는 젊은이들이야 말로 교회와 사회의 희망입니다. 젊은이들이 한 마디 복음이라도 매일매일 접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십시오. 복음과 함께 사는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현존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현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 하느님 현존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 현존을 느끼면 신앙은 저절로 되살아납니다." ▲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교회에 아시아 복음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신 바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아시아, 나아가 세계교회에서 그 몫과 역할을 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4번째 생신을 맞아 발간한 회고록 「일어나 갑시다」에서도 한국과 필리핀 교회의 역동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아시아 복음화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셨습니다. 아시아 복음화 사명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입니다. 현재 많은 이들이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무적 일입니다. 한 예로 박신언 몬시뇰과 주변 사람들이 북방선교에 투신할 사제를 양성하기 위해 옹기장학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취지가 좋아 선뜻 동참했습니다. 중국과 북한에도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 많은 선교회와 수도회들이 중국 등지에서 기술학교와 사회복지시설 등을 운영하며 간접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골롬반외방선교회의 경우 평신도 선교사를 양성해 해외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한일 주교 교류모임은 선교사목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단계로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모두 아시아 복음화 노력의 일환입니다. 조그만 것이라도 준비해서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신앙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선교는 신앙의 본질이며, 선교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대대적 선교운동으로 예비신자를 많이 초대한 본당들에게 보듯 선교하면 성장합니다." ▲남북 화해와 통일은 한민족의 크나큰 과제입니다. 현재의 통일논의와 대북지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교회는 그동안 식량배분의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북녘 형제들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북녘 형제들에 대한 지원은 계속돼야 합니다. 아울러 햇볕정책도 북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합니다. 특히 인권개선 문제는 북한뿐 아니라 통일 한국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북에 압력을 가하라는 말이 아니라 민족적 동질감을 바탕으로 우리 의견을 전달해야 합니다. 인권은 인간의 천부적 권리입니다. 인권은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똑같이 누려야 할 기본권입니다. 법학을 포함해 어느 학문도 인권을 학문적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천부적, 즉 하느님이 주신 권리라고 얘기하잖습니까. 독일 통일 전 서독은 동독을 향해 인권 문제만큼은 기회 있을 때마다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 거론 자체를 터부시합니다. 통일을 위해서라도 인권개선 문제는 거론해야 합니다. 그것이 북한을 위하고, 미래 통일한국을 위하는 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통일이 된다면 인권 불모지에 살던 북녘 형제들이 우리와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갈등의 골이 깊을 것입니다. 아울러 통일보다 더 시급한 것은 남북 모두에서 인간 존엄성이 지켜지는 일입니다. 동포애 차원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는 정부가 강정구 교수 인권보호를 목적으로 불구속 조사를 지시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아울러 배타적, 폐쇄적 민족지상주의를 내세운 성급한 통일논의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세계 11위로 도약했습니다. 성장의 발목을 잡는 심각한 문제들이 많은데도 이같은 성장을 이뤄낸 것을 보면서 한국인 저력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저력이 사회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습니까. "저 역시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난 50년은 실로 격동의 세월이었습니다. 6ㆍ25 전쟁으로 우리나라는 폐허나 다름없었습니다. 내다 팔 천연자원도 없었습니다. 또 오랫동안 군사독재 속에서 신음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민주주의 꽃을 피우고 이만큼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기적 아닙니까. 산업화 이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70달러였습니다. 그때 필리핀은 180달러, 태국은 220달러였습니다. 그런데도 벌써 1만 달러 고지를 넘어서고 2만 달러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연간 교역규모가 5450억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멕시코를 제외한 남미 38개국 무역규모와 비슷하고, 아프리카 53개국 무역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국민이 피땀흘려 이룬 경제발전입니다. 정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저력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하느님은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인터뷰 서두에서 그 똑똑한 머리와 저력을 좋은 데 써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우리 장점을 살리려면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사회가 메말라갑니다. 경제지표는 높아졌지만 빈부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고, 행복지수도 후퇴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모든 가치 중에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부족한 게 사회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주된 원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나도 못 살고 상대방도 못 삽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고린토 1서 13장)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외아들이 우리 곁으로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닮는 길은 그분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올해 추기경님 삶의 지표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은퇴 이후 '사랑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는데 그걸 깜빡깜빡 잊는 것 같습니다. 다짐을 잊고 살다가 다시 정신차리기는 하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새해를 앞두고 평화신문 독자들에게 덕담을 부탁드립니다. "새해는 병술년 개띠해입니다. 제가 바로 개띠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이고 진리이신 하느님의 충견이 됩시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합니다. 우리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새해에는 더욱 하느님께 충성하면서 삽시다. 그러면 분명 행복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정리=김원철 기자 wckim@pbc.co.krcpbc2005.12.22

한국교회의 현재와 미래상(상)-정의채 몬시뇰평신도 활성화에 한국 교회 미래 달려있다 서강대학교 석좌교수 정의채 몬시뇰이 최근 심상태 몬시뇰(한국 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저서 '새 세기의 한국 교회와 신학' 출간을 계기로 '한국교회 현재와 미래상'이란 제목의 글을 보내왔다. 한국천주교회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각종 논문과 글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 현주소를 진단하고 내일의 모습을 제시해온 정 몬시뇰의 글을 두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 필자는 가끔 본당에 나가 미사 봉헌을 할 때마다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주임신부들에게 물어도 근자에 젊은이들이 대거 교회를 이탈하고 있으며 쉬는신자 급증으로 교회 앞날이 매우 어둡다는 것이 거의 공통된 견해로 보인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교회 공동화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 많이 늦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늦기 전에 왜 그렇게 되는지 원인 분석과 더불어 치유책을 강구해 봄이 좋을 것이다. 이런 일을 위해 글 몇 줄로 그 전모를 말 할 수는 없고 아주 다양한 연구와 대책 강구, 그리고 주교단을 위시해 성직자들, 평신도들의 총체적인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이런 일의 자체 반성적 연구와 실천은 교의적 오류가 아닌 한 어느 계층의 어떤 아픔이 있어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큰마음이 필요하다. 각(殼)을 깨는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급변하는 사회 현실 와중에 휘말린 교회가 오늘과 내일이 요구하는 교회상을 구현하기는 극히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매일 쉽게 또 때로는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회상도 그렇다. 지금 한국 주교단은 젊고, 학자 주교님들이 많기에 자기 반성적 견해를 받아들이는데 어느 나라 교회보다도 뛰어날 것으로 확신한다. 따라서 필자는 가능한 한 부드럽게 또 직설적 표현보다는 간접 표현을 쓰려 노력했으나 여의치 못한 곳이 있다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저서의 저자 견해는 충분히 살리려 노력했다. 심상태 몬시뇰의 이 책은 한국교회에서는 성직자와 지도적 평신도들에게 보기 드문 필독서로 필자는 생각한다. 이 저서는 가톨릭계뿐만 아니라 개신교계에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가득 담고 있다. 이 저서의 차례를 보면 제I부 새 세기의 신앙이해 제II부 새 세기의 한국교회 제 III부 새 세기 신앙의 기본원리와 입장 제 IV부 새 세기의 토착화론 등이다. 우리는 이 저서의 중심이 한국 교회에 있음을 잘 알 수 있으나 그것은 제2차 바티간공의회에 근거한 한국 교회상인 것이다. 4부로 구성된 내용은 13장으로 나뉘어 논술된다. 여기서는 서평이라는 제약으로 이 저서의 넓고 깊은 내용 중에서 오늘 한국 가톨릭에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는 부분들 중 몇을 가려 얼마간 해석을 곁들여 논하고자 한다. 먼저 제2장 '21세기 생명 문화와 가톨릭교회의 입장'이다. 여기서 저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당신의 선성(善性)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과 특수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여 현세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한 신적 삶에로 초대된 인간을 논하며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우리 가운데 오심과 십자가상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어진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생명을 얻게 하려는 하느님 사랑의 발로라는 것을 풍요로운 필치로 서술한다.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 삶에서 싹트는 것이기에 가톨릭 교회는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삶을 영원한 삶의 배아로 생각해 현세 생명의 존귀함을 간직하며 고양시키기에 전력을 기울인다는 점을 성경 구절들과 교황님들의 많은 교서를 인용 명시한다. 그렇기에 한국 교회도 살인, 낙태, 사형제도 폐지, 인권 존중과 신장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이런 운동을 저자는 한국 교회가 1992년 10월 낙태반대 100만명 서명서를 국회에 제출한 사례를 들어 상기시킨다. 또한 1991년 말 서강대 부설로 설립된 '생명문화연구소'는 당시 매일 같이 수없이 발생하던 어린이 납치 유괴 살인 사건을 전 국민의 열렬한 환호 속에 또 이 땅의 모든 언론과 TV 매체의 아낌없는 성원 속에 근절시켰으며 당시 낙동강 페놀 사건을 계기로 나타난 전국의 산하 오염과 죽음에 대해 자연보호의 국민적 의식고양에 큰 역할을 하게 된 것과 교황청에도 우리의 생명문화 연구소 설립 약 2년 후 생명 아카데미와 문화위원회가 설립됨을 보며 한국 교회는 교회의 생명 운동에 독특한 역할을, 결실 풍부한 선구자적 역할을 했음에도 자랑으로 삼을만하다. 저자는 제6장에서 한국교회는 공의회 이전 '교계제도 중심적 교회'로 퇴행이란 표현을 쓰는 데 주저치 않는다. 이 점의 지적은 한국 교회의 오늘날 현상의 가장 심각한 지적이다. 공의회는 평신도들도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의 참여를 선포함으로써 전통적 교계중심 일변도에서 진일보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에 근원을 두고 있는 하느님 백성이란 격조 높은 교리를 선포하며 그리스도의 몸 즉 신비체 교리를 강화함으로써 복음적 친교의 공동체 교회관을 정립하였다. 온 세계교회는 그 구현에 매진, 오늘의 교회상은 새로운 모습으로 인류에 다가선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교계제도가 권위적으로 더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교구장 주교들은 중세적 제왕처럼 지배권을 행사하고 최근 들어-상하 위계질서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친교 공동체의 봉사적 지도자로서가 아니라-절대 통치자처럼 처신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주교들의 극소수 측근에 속하지 못하는 대다수 일반 성직자들은 비인격적 관리 대상으로서 (임명권자의) 거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사목현장에 배치되어 시한부 사목을 수행하는 소외된' 처지가 된다는 것이다. 성직자조차 이런 처지이니 평신도들은 물론 말할 것조차 없어 '병신도'라는 유행어까지 나돌게 되었다는 것이라는 것을 저자는 제시한다. 물론 주교님들 측에서는 지금 우리 사목 상황이 그럴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말씀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주교님들은 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교회상이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그런 교계상, 즉 봉사하기보다는 군림하는 교계상이 아닌가 싶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 주교단의 구성은 젊은 분들 특히 저자와 비슷한 연배들이고 학문을 깊이 연마한 분들도 적지 않으니 가까운 미래에 선진국 교회들에서는 거의 다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주교님들의 진정한 봉사적 참 목자상이 이 땅에서도 구현되고 지금 인류 사상이 흘러가고 있는 문화 복음화에 더욱 힘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1970~80년대에 흥행 하던 교회가 90년대 후 급격히 쇠퇴의 길을 가게 된 근본 이유를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권위적 교계제도에 있음을 지적한다. 많은 식자들이 공감할 대목이다.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 부연 설명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70, 80년대 교세 증가율이 실제로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필자도 C.C.K. 2004년도 신자 증가율 발행 통계표를 보며 이 사실을 발견 깜작 놀란 적이 있다. 기실 놀라운 증가율을 보인 것은 6ㆍ25가 일어난 1950년에서부터인데 1954년에 약 19만 정도이던 신자 수가 1974년에는 100만을 돌파 20년간에 5배 즉 500%의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이 기간 중1958년에는 물경 24%의 증가율은 나타낸 때도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 한 두 해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계속 증가율 하락을 보이다가 82, 83년에는 즉 사목회 준비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9~9.6%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필자의 분석 결과로는 이런 높은 증가율의 두 시기는 평신도들의 선교열이 충천할 때였다. 교황님이 오신 두 번의 해에는 대대적 행사와 선전에도 불구하고 증가율이 소폭씩이지만 하향적 양상을 보였다. 여기서 우리교회는 출발 당시부터 평신도의 활성화에 교회의 운명이 걸려 있음을 실감케 된다. 이런 관점에서도 교계는 근본적인 자기 쇄신이 촉구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제6장에서 한국 교회는 영성 빈곤의 전형적 교회로 본다. 저간에 영성 영성 하는 말은 무성만 했지만 세속주의를 감싸는 옷 정도의 영성이 성직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물론 어디나 마찬가지로 예외적 일들은 인정하지만 말이다. 영성문제에 있어 가장 먼저 실천하며 몸에 익혀할 분들은 주교님들이고 성직자 일반인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필자가 보기에도 이 점은 오늘의 한국교회에 정곡을 찌르는 면이 아닌가 싶다.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금 한창 시성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현 교황님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 독일 사람이면 누구나 타는 폭스바겐 중고차를 손수 운전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여름 어느 날의 일이다.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회의 관계로 파리를 거쳐 로마로 가는 길이었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점심 식사 중 선교사 한분이 정신없이 뛰어들며 하는 말이 지하철에서 혈혈단신 허름한 손가방 하나 들은 파리 추기경님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추기경님 어떻게 이렇게' 했더니 '나는 평소에 중고차 하나를 운전하고 다니는데 오늘 또 차가 고장 났단 말이야. 그래서 차를 공장에 맡기고 이렇게 지하철을 타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의 성직계는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성과 부활의 영성이 골수까지 배어 복음적 섬김의 봉사자, 진정한 가난과 겸손과 사랑의 봉사자임을 그 체취에서 느끼게 된다. 그러기에 서구교회는 새싹을 낼 희망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때는 한참 늦어 거의 회복 불능이 아니냐는 실망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아마도 저자 심 몬시뇰의 논조는 남의 나라의 이런 전철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필자는 인천 국제공항이 개항하기 전 김포공항에서 작은 십자가 하나를 목에 걸친 프란치스코회 수사님으로 보이는 동남아인 한분을 만났다. 필자는 어떤 분이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자기는 동남아 어떤 교구의 주교라는 것이었다. 그분 의상은 아주 소박했으며 낡았다. 그분은 고물이 다된 트렁크 하나를 들고 있었다. 얼결에 그 트렁크를 들어 드리려 했더니 정중히 사절하며 자신은 항상 그렇게 여행을 하니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분의 의상은 소박했으며 많이 낡은 것이었다. 가난과 깊은 겸손과 봉사 정신이 온 몸에서 풍겨나는 것이었다.cpbc2006.02.08
32-하늘의 영능, 카리스마성령의 영감에 귀 기울여라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다. 당신 손에 있는 권세로 세계 역사와 운명이 좌우된다. 당신은 노련한 전문가인 수많은 보좌관을 데리고 있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보좌관이 제각기 자기의 전문적 지식을 당신에게 말할 것이고, 당신은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다 귀를 기울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된다. 당신은 당신을 보좌하고 있는 사람들 말을 모두 다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느님 앞에 묵상하고 가슴 속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을 들어라." 만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 조언을 자신을 위한 등불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 정치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꼭 붙어야 할 단서가 있다. '하느님 앞에' 앉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혼자' 앉는 시간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혼자' 앉아서 궁리해낸 정책구상은 인간 지혜에 지나지 않지만 '하느님 앞에' 앉아서 얻어낸 판단은 하늘이 준 영험한 경륜이 되기 때문이다. 취임 초기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수환 추기경이 다시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고했다고 들었다. 필시 이 권고는 한 사람의 '쉬는신자' 노무현에게 한 권고가 아니라 국사(國事)를 책임 지고 있는 '대통령' 노무현에게 한 권고였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추기경 충언은 그대로 드골 대통령의 조언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늘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다. 부디 노무현 대통령이 위기의 시대에 국기(國紀)를 확립했던 이스라엘 국부(國父) 사무엘의 권고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한다. "나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리라. 기도하지 않는 죄를 야훼께 짓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1사무 12,23).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는 믿음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줘야 한다.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수학적이고 논리 정연하고 사회학적이며 통계적인 것들을 내놓는다. 이 모든 것을 무시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최종 판단을 내릴 때는 성령의 영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사안이건 묵상하고 기도하는 중에 우리 영이 하느님 지혜와 하느님 지식과 하느님 판단을 얻어서 행하게 되면, 그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를 믿는 것이 우리 믿음이다. 성령께서 신앙인에게 주시는 영능(靈能)을 카리스마(charisma)라고 한다. 대표적 카리스마로서 전통적으로 '성령칠은'을 꼽는다. '성령칠은'이란 이사야서 11장 2~3절에 나오는 슬기ㆍ통달ㆍ의견ㆍ지식ㆍ굳셈ㆍ효경ㆍ두려워함 등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들은 실제 내용에 있어서 고린토 1서에 제시된 아홉가지 은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잠깐 이들 9가지 은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 지혜의 말씀 은사: 이 은사는 상황 속에서 하느님 뜻을 잘 알아듣게 한다. 특히 위기에서 최선의 판단을 하게 한다. 솔로몬의 재판(1열왕 3,16-28 참조), 세금 문제에 관한 예수님의 답변(마태 22,21 참조) 등에서처럼 개인 혹은 단체들의 어려움이나 문제점에 대해서 실천적 해결점을 제시해 주는 은사이다. ─ 지식의 말씀 은사: 신앙 진리를 가르치거나 설명할 때 영감을 받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게 하는 은사다(사도 2~3장 참조). 듣는 이의 수준을 고려해 설득력 있는 말씀을 전하게 하고, 성경을 잘 알아듣게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한다. ─ 믿음 은사: 어떤 일이나 기도가 꼭 이뤄질 것이라는 내적 확신(출애 14,21~22 참조)을 말한다. 특히 전혀 희망이 없을 때에 가치와 능력을 드러내는 은사다. 이 은사는 우리가 확신을 갖고 기도하고 행동하도록 해주며 중재기도, 치유기도, 기적 등 밑거름이 되게 해준다. ─ 치유 은사: 이는 이웃의 질병이나 심리적ㆍ영성적 문제를 치유하는 능력,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능력(사도 3,6~7; 9,34 참조)을 말한다. 영적 문제를 치유하는 고해성사와 영적 치유기도, 마음의 상처나 기억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담과 내적 치유기도, 그리고 병을 치유하는 외적 치유기도, 또한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기도를 통해 이 은사를 발휘할 수 있다. ─ 기적 은사: 하느님 영광과 인간 유익을 위해 하느님 뜻에 따라 기적을 행하게 한다. '중대한 병의 치유' 같은 물리적 기적과 믿음과 정신의 '완전한 변화' 같은 윤리적 기적 등이 있다. ─ 예언 은사: '말씀의 은사'라고도 하며, 하느님이 어떤 개인이나 단체 또는 공동체에 전하려는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예언은 사람들을 영성적으로 깨우쳐 주고 잘못을 회개하게 하고 방향과 지침을 제공한다. ─ 식별 은사: 생각, 활동, 사건, 은사의 원인과 근원이 성령의 힘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의 힘인지를 구분하는 능력을 말한다. 영의 식별은 개인 뜻을 하느님 뜻에 일치하게 해주고 평화를 지켜주며, 영적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게 한다. ─ 이상한 언어와 해석의 은사: 이는 영적 깨달음을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은사와 이상한 언어를 듣고 자국어로 해석해 주는 은사를 가리킨다. 이상한 언어의 은사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 주며 다른 은사들을 유발한다. 또한 믿지 않는 이에게 하느님 능력을 보여주는 표지가 된다. 이냐시오 드 라타꾸이 대주교는 오늘에 역사(役事)하는 성령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성령이 아니 계시면 하느님은 멀리 계시고, 그리스도는 과거 인물에 불과하고, 복음은 죽은 문자에 불과하고, 교회는 한낱 조직에 불과하고… 전례는 한낱 과거의 회상일 뿐이고 그리스도교인 행위는 노예들의 윤리에 불과하다." 성령께서는 오늘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도우신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필립 2,13).cpbc2005.09.08
31-성령과 구원경륜나를 둘러싼 모든 것, 성령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성령'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서 뿔뿔이 도망친 겁쟁이 제자들을 당당한 '선포자'로 변화시켰다(사도 2,1-11 참조). 이 '성령'이 죽음이 두려워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을 '증거자'로 변화시켜 마침내 하나같이 그리스도를 뒤따라 대담하게 '순교'하게 했다. 한마디로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제자들이 이어서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바로 이 성령으로 인해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자들이 송두리째 바뀌어 예수님이 행한 일을 이어서 행할 수 있게 됐다. 성령을 받음으로써 베드로와 바오로도 예수님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성령의 능력이 절름발이를 낫게 했고(사도 3,1-10; 14,8-10 참조), 죽은 이를 살려냈고(사도 9,36-41; 20,7-12 참조), 악령을 몰아냈고(사도 16,16-18 참조), 열정적으로 설교하게 했다(사도 2,14-36; 17,22-31 참조). 이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워진 그들은 힘차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을 뿐 아니라(사도 2,38 참조), 사람들이 하느님 성령을 받도록 이끌어주기도 했다(사도 8,15 참조). 성령께서 이루신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것이었다. 성령으로 인해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영)'이 될 수 있었다(사도 4,32 참조). 성령은 모든 장벽을 허물어뜨렸다. 소유와 인종과 성별이 성령의 역사로 인해 의미를 잃게 됐다(갈라 3,28 참조). 이렇게 성령이 만민(萬民) 위에 내려옴으로써 지난날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사 64,7)에 지나지 않았던 하느님은 마침내 '만민의 아버지'(에페 4,6)가 되셨다. 그렇다면 성령은 삼위일체 하느님 가운데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실까? 이 물음은 우리 신앙생활과 동떨어진 물음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2000년간 삼위일체 논의는 사변적(思辨的)으로만 흘러왔다. 곧 "성령은 어떤 분이고 성령과 성부, 성령과 성자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이를 소위 내재적(內在的) 삼위일체론이라 한다. 그런데 이 내재적 삼위일체를 설명하려면 의당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게 돼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는 '사랑' 이외의 것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 한번 보자. 누구든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라는 성경 말씀을 즐겨 인용한다. 사랑이란 한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에게 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이 가능하려면 하느님 안에 최소한 두 인격이 공존해야 한다. 홀로는 그 누구도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이 삼위일체가 아니셨다면 세상이 창조되기 전까지 하느님은 사랑이셨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귀납적으로 접근할 때 사랑의 속성상 하느님은 삼위일체임이 입증되는 것이다. 그분들 사이의 문제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좀 이기적이고 실용적으로 물을 필요가 있다. "대관절 이 삼위일체가 나의 삶, 나의 구원과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를 알게 된다. 이 물음에 우리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 성부는 '우리 앞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성부 하느님은 근원이시고 목표, 시작이요 마침이시다. 생명을 주시고, 생명의 근거 되시고, 생명의 마감을 정하시는 분이시다. ─ 성자는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성자는 임마누엘(이사 7,14 참조), 곧 우리와 함께하신 하느님이시다. 죄인의 대변자, 억압받고 소외받는 자의 변호인, 찾는 이와 묻는 이의 스승(요한 14,26 참조), 고통받고 절망한 자의 목소리(루가 12,12 참조)시다. ─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우리 안에서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탄식해 주시는 분이시다. 새로움, 평화, 쇄신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성령을 파라클리토(paraclitus)라 불렀다. "내가 아버지께 청해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파라클리토)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 이는 우리에게서 성령께 대해 신뢰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훌륭한 '카피'였던 셈이다. 파라클리토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어로 파라클리토는 마치 대변인이나 변호사처럼 '곁에 서 계신 분'이라는 뜻이다. 심한 박해를 받았던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의미는 큰 위안을 줬을 것이다. 둘째, 파라클리토는 큰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병사들을 '위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을 위해 파라클리토는 큰 소리로 확신을 심어 주고 사기를 진작시킨다. 셋째, 파라클리토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하지 못할 '깊은 한숨', 곧 탄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며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신음)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이러한 파라클리토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신다. 그분은 내 편이시며 내게 힘을 주신다. 성령을 등에 업으면 '나'는 '나' 자신이 미덥고 자유롭다. 파라클리토 성령은 내 맘 속에서 진리를 드러내시며 '나'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신다. 그분은 모든 것을 덮은 막을 벗기신다. 성령께서 막을 걷어낼 때 우리는 온전한 진리를 깨닫는다. 통찰력이 생기고 근원을 볼 줄 안다. 현대인 영성에 유익한 양식을 대주고 있는 안셀름 그륀은 성령을 이렇게 말한다. "성령은 우리의 동반자요 위로자며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또한 생명의 샘이요 불이며, 빛이요 사랑이며 또한 기름 바름입니다. 성령은 생명의 샘입니다. 이 샘은 하늘스런 것이므로 퍼내도 퍼내도 고갈되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덥히는 불이며 밝히는 빛입니다. 성령은 기름 바름입니다. 우리 상처를 치유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를 짊어지게 합니다." 곧 우리는 우리를 동반하시면서 치유해 주시는 분인 성령께 의지해야 한다는 말이다.cpbc2005.08.31

콘클라베, 그 역사적 순간을 조명하며추기경들, 올바른 판단으로 이끄실 성령에 청원1. 새 교황을 선출한 추기경들이 19일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서서 새 교황 탄생을 축하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2. 추기경들과 신자들이 18일 오전 베드로 대성전에서 콘클라베에 앞서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며 교황 선출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제3천년기의 첫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 역시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미사로 시작됐다. 교황 선출권을 가진 52개국 추기경 115명은 18일 오전 10시(현지 시각)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선출을 위한 특별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의 성령이 자신들의 판단을 이끌어 줄 것을 기도했다. 추기경들은 교황 장례미사때처럼 붉은색 제의를 입고 입장했으며, 투표권 없는 80세 이상 추기경과 평신도 등 수천명이 이 미사에 함께 참례했다. 추기경단 수석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강론에서 교회를 '그리스도 사상을 실은 쪽배'에 비유한 뒤 "이 쪽배는 맑시즘, 자유주의, 집단주의, 물질주의, 과도한 개인주의의 격랑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라칭거 추기경은 또 "현대사상과 문화는 상대주의 독재의 방패막이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하도록 교회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상대주의는 사상의 조류에 이리저리 흔들리게 하고, 그것이 마치 시대흐름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지적했다.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 선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느님과 인간을 멀어지게 하는 현대사회의 여러 정신적, 문화적 조류에 용감히 맞설 수 있는 베드로의 후계자가 필요함을 역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미사를 마치고 바티칸내 성녀 마르타의 집 숙소에서 점심 식사에 이어 휴식을 취한 추기경들은 오후 4시30분 교황궁 축복홀에 모여서 모든 성인들의 도움을 전구하는 성인호칭기도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콘클라베 장소인 시스티나 경당으로 향했다. 시스티나 경당에 도착한 추기경들은 합창단 선창에 따라 '성령송가'를 함께 부르며 성령의 도우심이 함께 해주기를 간절히 청했다. 노래가 끝나고 라칭거 추기경은 "교회를 이끌고 보호하시는 하느님, 여기 모인 당신의 종들이 하느님 뜻을 알 수 있도록 지혜와 진리와 평화의 영을 내려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이어 추기경들은 한명씩 차례로 나와 성경에 손을 얹고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선출 규정을 준수하고 △자신이 교황에 선출될 경우 보편교회 목자로서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동시에 영적, 세속적 권리를 충실히 옹호하겠으며 △선출에 관한 비밀을 끝까지 지킬 것 등을 서약했다. 115명 서약이 모두 끝나자 전례담당 피에로 마리니 대주교는 "엑스트라 옴네스(Extra Omnes, 모두 나가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이제 콘클라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니 투표와 관계없는 사람은 빠짐없이 나가달라는 고지였다. 투표권이 없는 체코의 토마스 스피들리크(85) 원로 추기경은 마리니 대주교와 함께 남아서 마지막으로 115명 추기경들에게 부여된 신성한 책무에 관한 묵상을 이끌었으며, 묵상이 끝난 후 두 사람도 경당을 빠져 나왔다. 한편, 이날 벌써 순례자와 관광객 5000여명이 성베드로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시스티나 경당 굴뚝을 바라보면서 21세기 가톨릭을 이끌어갈 새로운 목자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cpbc2005.04.22

<하>봉사자는 그리스도의 '섬기는 리더십' 본받아야 **소공동체 리더십 김영수 신부(전주교구 용머리본당 주임) 소공동체 봉사자 지도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도력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지도력의 원천은 '사랑'이며, 그 사랑의 실천은 '섬김'이다. 따라서 우리 교회의 리더십은 '세상을 위해 봉사'하러 강생하신 예수님 리더십을 본받고 실천하는 데 있다. 소공동체 봉사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성장하는 데 적합한 분위기를 만들고 공동체가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활성자(Activator) 임무를 띤 사람이다. 활성자 역할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적극 참여하고 협력하고 공동책임을 나눠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활성자(봉사자)는 일반사회 지도자와는 다른 리더십, 즉 '섬기는 리더십'을 익히고 수행해야 한다. 1.섬기는 리더십 : 공동체 구성원들을 섬기는 활성자 활성자는 구성원들이 소공동체에서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하고, 서로 배려하는 동반자(Companion)가 돼야 한다. 활성자는 또 공동체가 자기 자신 안에 갇히려는 경향을 보일 때 구성원들에게 그 경향을 알려줘야 한다. 봉사자는 신앙은 끊임없는 자아확장임을 알려주고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리스도인 삶은 공동체와 세상을 위해 몸바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안내자(Guider)이다. 활성자는 아울러 각 구성원이 공동체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자기 자신을 참되게 실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진자(Facilitator)가 돼야 한다. 2.활성자의 특징 활성자 기능을 단체 회장 또는 사회자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소공동체 봉사자로 부름받은 활성자는 모든 구성원들이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게 하고, 그 대화에 적극 참여토록 이끌어야 한다. 3.활성자의 태도 -구성원들이 활기를 띠고 적극적이 되도록 돕는다. -가장 미소한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은사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그들을 신뢰한다. -팀을 이뤄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구성원들이 가능한 동등하기를 바란다. -구성원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해결책을 찾기를 원한다. -가능한한 다른 사람을 키워준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위치에 서려고 다른 사람이 제안한 방법이나 의견을 억제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 내치지 않으며, 너무 지나쳐 공동체에 장애를 초래할 경우에는 복음적 방법으로 조정한다. 4.소공동체에서 하느님 나라 방식 결정을 위한 태도 -활성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대신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강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기호나 관점 또는 편견을 버린 공정한 사람이다.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말하고 행동하도록 항상 기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 의견은 좋고 어떤 사람 의견은 나쁘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모든 이들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토론을 요약해야 하며, 가능할 때마다 공동체가 일치하도록 도와야 한다. 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 **소공동체 교리교육- '함께하는 여정' 김엠마누엘라 수녀(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서울대교구는 1990년대 초기부터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를 교구 장기 사목정책으로 도입하면서 소공동체와 함께 하는 예비신자 교리서 「함께 하는 여정」을 제시했다. 선교가 가장 활발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개발된 「함께 하는 여정」은 현재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교리서로, '앎'에서 '삶'으로 중심을 옮겨가는 새로운 교리 양식에 기초한 것이다. 「함께 하는 여정」은 예비신자들이 세례를 받을 때까지 교회 공동체에서 신앙을 깊이 체험하고, 공동체와 함께 신앙의 길을 걸으며, 그들 삶에 동반하시는 예수님을 좀더 깊이 만나 그분 삶을 본받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발간됐다. 더불어 섬기는 리더십을 통해 하느님 백성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고 친교를 나누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의지도 담고 있다. 기존 예비신자 교리는 학교수업처럼 교리교사가 교회와 신앙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기에 예비신자들 신앙이 자라도록 이끌어주는 동반자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면 「함께 하는 여정」은 예비신자와 대부모, 신자들로 이뤄진 공동체를 통해 함께 기도하고 자신의 삶을 나누며 하느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케 해준다. 기존 교리서가 서론ㆍ본론ㆍ결론식으로, 사변적ㆍ이론적 개념을 사용한다면 「함께 하는 여정」은 삶으로 바로 들어가 삶을 나누며, 구체적이고 실천적 일상언어를 쓴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이는 교리교사 역할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존 교리교사에게 필요한 것이 지식과 책, 그리고 교리 내용을 잘 전달하는 기술이라면 「함께 하는 여정」 교사는 살아있는 삶과 예비신자들을 잘 참여시키는 것을 중요시한다. 또 기존 교리가 교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이건 이렇습니다'라는 설명조로 가르친다면 「함께 하는 여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유도형으로 모임을 이끌면서 예비신자들을 도와주고 그들과 함께 하는 봉사자가 참여한다. 「함께 하는 여정」은 본문 28과와 7가지 부록으로 짜여졌다. 「함께 하는 여정」은 각 과 주제를 △삶의 이야기 △하느님 말씀 △한걸음 더 나아가기 순서로 다룬다. '삶의 이야기'는 주제와 관련된 삶의 현실을 사진이나 글을 통해 보면서 이웃과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하느님 말씀'은 살아계신 주님 현존 안에서 그 삶을 비춰볼 수 있도록 성서말씀을 제시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기'는 말씀에 비춰 삶의 현실을 바라본 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결심하게 해준다. 「함께 하는 여정」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서로 생각들을 솔직하게 나누는 나눔 형식을 통해 각 단계를 진행시켜 나가기 때문에 이 교리를 마친 예비신자들은 성경을찾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몸에 배며, 하느님 말씀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 **소공동체와 지역복음화 류현수 신부(광주대교구 광영동본당 주임) 소공동체 사목을 정착시키려면 본당 공동체의 실제 사목이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본당 신부뿐 아니라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우리가 교회다''소공동체가 바로 교회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소공동체 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삶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가 교회임을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소공동체 중심 사목 사례를 몇가지 들어본다. 1.주일미사 준비-한 소공동체가 매주일 교중미사 전체를 준비한다. 주님의 기도 때 미사를 준비한 소공동체를 제대 위에 세워 구성원들을 소개하고, 봉사자는 소공동체 현황을 발표한다. 2.소공동체위원회 회의(소공동체 지도자 월례 모임)-4, 5개 소공동체 체험사례 발표시간을 갖는다. 발표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해 발표내용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본다. 발표한 체험사례는 본당 소식지를 통해 모든 신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 3.사목회 구성-소공동체에서 추천된 사람들로 사목회를 구성한다. 소공동체 추천을 통한 사목회 구성은 사목회 임원을 특정지역에 치우침 없이 본당 관할 지역 전체에서 선발하고, 숨은 인재를 찾아낼 수 있게 해준다. 또 사목회와 소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소공동체 신자 스스로 사목회 임원을 추천했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본당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효과를 낳는다. 4.매주 소공동체 소식지 발간-발간 목적은 소공동체를 소개하고, 소공동체 삶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다. 소공동체 소식과 소공동체 탐방, 체험사례 발표 등을 싣는다. 5.소공동체와 함께 하는 생명ㆍ농민ㆍ환경 운동-광영동본당 경우,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을 위해 '되살이 매장'을 개설해 연중무휴로 신자들이 유기농 제품을 사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소공동체에서 추천받은 32명이 자율적으로 매장 봉사자로 활동한다. 6.소공동체가 순번제로 매주 학생미사 후 저녁식사 제공-토요일 오후 8시 중고등부 미사가 끝나면 80여명 학생이 소공동체에서 준비한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식사 준비 경비는 소공동체에서 부담하는데 내 이웃 아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장만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소공동체 사목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울러 소공동체는 예비신자 양성 주체가 돼야 한다. 지금까지 예비신자는 공동체 식구와 상관없이 본당신부나 수녀, 교리교사들에게만 의존해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세례를 받고 나서는 본당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한 채 냉담하든지, 아니면 개인신심 위주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예비신자들이 세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소공동체 모임에 참여해 친교와 나눔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소공동체 사목은 예비신자들이 세례받을 때까지 동반해주는 역할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예비신자 환영식, 공동체에서 받아들이는 예식, 세례자 선발예식, 세례식 등 입교에 필요한 4단계 모두 소공동체를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는 예비신자에게 소공동체를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며, 소공동체는 예비신자들과 함께 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cpbc2005.10.19

청주교구 사제서품식에서 10,11번째 형제사제 탄생'성소 싹'은 그냥 자라지 않습니다.후배 신학생들이 박수로 서품을 축하하는 가운데 꽃다발을 안고 신자들한테서 축하인사를 받는 청주교구 새 사제들. 이들 새 신부 중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조덕희 신부, 맨 오른쪽이 김선우 신부다. "하느님, 당신의 제단으로 나아가리이다. 나의 기쁨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리이다."(시편 43,4) 청주교구에 이같이 기쁨으로 하느님 제단에 나아간 '형제'신부가 10, 11번째 잇따라 탄생해 화제다. 20일 청주체육관에서 조중희(이월본당 주임, 1997년 서품)신부 동생 조덕희 부제, 김선영(충주 연수동본당 보좌, 2002년)신부 동생 김선우 부제가 사제품을 받음으로써 한 교구에서만 11형제 22명이 사제로 서품되는 이례적 기록을 세운 것. 교구 사제단 134명의 16.4%를 차지한다. 이처럼 형제 신부가 많이 탄생한 것은 성소와 가정 복음화가 그만큼 밀접하고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대목이라는 게 교구 내 자체 평가다. 조중희ㆍ덕희 신부 경우 매일 새벽미사 참례와 함께 기도생활에 열심인 어머니 심원춘(요안나, 62)씨 신앙이 성소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재산을 바쳐 예수 일행을 돕던 헤로데의 신하 쿠자 아내인 요안나(루가 8,3)를 떠올리게 한다. 삼촌 조성학(문의본당 주임) 신부까지 합치면, 한 집안에서 3명이 '하느님 종'으로 불리운 셈. 반대로 김선영ㆍ선우 신부는 아버지 김복중(야고보, 62, 증평군의회 전문위원)씨 영향이 크다. 자신은 뒤늦게 84년 세례를 받았다는 김씨는 세례 직후 첫영성체 때 "주님께서 원하시면 아들 둘 모두 사제로 불러달라"고 청원기도했던 것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셨다고 감격해 했다. 교구 형제사제는 김병철(청주 흥덕본당 주임, 64년)ㆍ유철(청주 사천동본당 주임, 70년) 신부가 최초. "가정생활 자체가 신학교 생활이었다"고 형 김병철 신부가 회고할 만큼 가정 내 신앙생활이 성소 토대가 됐고, 특히 매일같이 아침ㆍ저녁기도는 물론 성경강해와 성인전을 읽어주던 아버지 김응종(야고보, 52년 선종)씨 영향이 컸다. 그 뒤를 이어 신순근(꽃동네회장 겸 청주 복대동본당 주임, 75년)ㆍ성근(충주 안림동본당 주임, 86년) 신부, 교구장 장봉훈(76년) 주교와 홍훈(대전가톨릭대 교수, 93년) 신부, 장인산(교구 총대리 겸 수동본당 주임, 79년) 신부와 장인남(방글라데시 주재 교황대사, 76년) 대주교, 김웅열(진천본당 주임, 83년)ㆍ대열(일본 사이타마교구 시부카와본당 주임) 신부, 박청일(충주 연수동본당 주임, 90년)ㆍ치영(오창본당 주임, 92년) 신부, 황종현(증평본당 주임, 94년)ㆍ광현(생극본당 주임, 96년) 신부, 조영현(미국 버밍햄한인본당 주임, 95년)ㆍ정현(프랑스 선교 연수, 96년) 신부, 한필수(로마 우르바노대 성서신학과정, 98년)ㆍ지수(복대동본당 보좌, 2002년) 신부가 형제 신부로서 교구 안팎에서 열심히 사목하고 있다. 대부분 부모 신앙생활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데 의견이 일치된다. 또 김권일(청주 가경동본당 주임, 83년) 신부 동생인 김용일 신학생 또한 대전가톨릭대 5학년으로 신학과정을 밟고 있어 얼마 뒤면 교구 내 형제 신부는 12형제로 늘 전망이다. 이밖에 형제 신부는 아니지만, 숙질간 사제로 연제식(귀농사목, 76년)ㆍ용모(광혜원본당 주임, 96년)신부가 있고, 김병철ㆍ유철 신부의 조카인 김원택(충북재활원장, 72년)신부, 신순근ㆍ성근 신부 조카 신동운(청천본당 주임, 2000년) 신부도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05.01.26

9- 21세기 가톨릭 지성인의 역할과 사명9일 하상신앙대학에 참석한 수도자들이 정의채 신부 강의를 듣고 있다. 21세기 가톨릭 지성인의 역할과 사명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가톨릭 신자란 무엇인지 그 정체성부터 정립해야 한다. 가톨릭 신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구속에 힘입어 세례를 받고 모든 죄를 용서받아 하느님 자녀로 구원을 약속받은 사람이다. 이를 성경에서는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 일부가 돼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지위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톨릭 신자란 '사제직ㆍ예언직ㆍ왕직'에 참여한다고 그 위상을 밝혔다. 이는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 왕다운 사제, 거룩한 겨레, 하느님께 속한 백성이 되었습니다'(1베드 2,9)라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에게서 사제직을 받아 지상에 내려왔다. 그리고 한평생 희생하는 삶을 살다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고 3일만에 부활함으로써 자신의 사제직을 실천했다. 가톨릭 신자는 공동사제직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 일부에 참여한다. 공동사제직이란 신자들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향유하는 사제직이다. 그리스도가 사제직 일부를 평신도에게 부여함은 그들의 신심생활과 세속의 삶이 성령 안에서 이뤄져 그들 삶 전체가 하느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영적 희생을 위한 것이다. 공동사제직을 수행하는 평신도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기 삶 전부를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 또 평신도는 그리스도 예언직에 참여한다. 이 예언직은 평신도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복음을 통해 가정과 사회에서 빛을 발하는 데에 있다. 평신도들은 잘못된 세상질서를 하느님 진리와 선에 따라 바로잡고 복음 정신에 따라 세상을 올바르게 이끌며 살아가야 한다. 더불어 현대인들에게 정의와 희망을 일깨워줘야 한다. 평신도의 그리스도 왕직 참여는 자기희생을 통해 끊임없는 겸손과 인내로 사람들을 섬기며 이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이고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사랑과 평화의 나라다. 평신도들은 죄를 극복하고 선한 삶을 통해 그리스도 왕국을 건설해야 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와같은 사제직ㆍ예언직ㆍ왕직을 수행해야 하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현세 삶 전반에 걸쳐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금 처해있는 시대상황과 삶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기침체, 실업, 파업, 자살 등으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어지 럽다. 세대간 단절과 윤리 파괴 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은 대립을 일삼으며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들에 골몰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현상이다. 세계는 상호이해와 동서문화의 융합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며 나아가고 있다. 특히 생명권과 인권, 행복권은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되기 위한 인류 공통의 문화를 창출하는 핵심이다. 이는 동양의 도교ㆍ불교ㆍ유교 등의 근본사상이기도 하고 서구 그리스도교 문화의 근본사상이다. 현재 세계는 공존(共存)ㆍ공생(共生)ㆍ공영(共榮)을 바탕으로 세분화ㆍ구체화되고 있다. 가톨릭 신자의 사명은 이와 같은 현실 상황에서 선의(善意)을 가지고 이웃들과 함께 노력하며 이 난국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기도와 희생과 사랑 실천의 삶을 살며 영원한 삶을 위해 투신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운 목적은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땅에 그리스도 왕국을 실현하여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신비체 활동은 모두 '사도직'이다. 그리스도 신자는 본질적으로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한 소명을 하느님에게서 받았다. 따라서 신자들은 사도직을 행사함으로써 올바른 사회와 국가가 이룩될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정치ㆍ법ㆍ경제ㆍ예술ㆍ문화 분야 등 사회 전반에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하느님 창조 질서에 맞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이 시대에 하느님 뜻에 따르는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가톨릭 신자들의 몫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은 평화와 정의가 실현된 세상 건설을 강조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 평화는 정의의 실현이다. 인간 사회의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사회에 부여하신 질서, 또 항상 더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질서가 바로 평화다. 인류의 공동선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법칙에 지배된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은 시대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기에 평화는 영구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꾸준히 건설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현세의 평화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결과이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그리스도의 평화다. 가톨릭 신자들은 사랑 속에서 진리를 실천하고 참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치하여 평화를 건설해야 한다. 신자들은 하느님의 힘인 영성으로 무장하고 하느님께 받은 건강과 재능, 지위와 재력 등을 활용하여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한다. 영성의 원천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하신 데 있다. 그리스도는 '먼저 그분(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시오. 그러면 그런 것(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도 다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마태 6,33)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 대해 도피하는 삶이 아니라 적극적 삶을 살면서 하느님 정의에 근거한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필요한 모든 것이 충족되는 세상이 실현될 것이다. 이에 신자들은 세상 어둠을 비추는 빛이 되고 세상 부패를 막고 맛을 내는 소금이 되며 하느님 뜻을 몇배로 부풀어 오르게하는 누룩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정리=박수정 기자 crystal@pbc.co.krcpbc2004.11.17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으로 '교횡쇄신' 추구가톨릭교회 최고 목자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대희년인 2000년 3월 12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지난 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참회 예식에서 성경을 들고 있다. 교황은 이날 특별 미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은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1년 10월 21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새로 임명된 추기경으로부터 입맞춤을 받고 있다. 3. 주교 시노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인 친교의 교회상을 드러내는 훌륭한 수단이다. 사진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1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주교들과 함께 제10차 주교시노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지난 26년간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가졌던 가장 큰 소명의식은 무엇이었을까. 교황이 1994년에 반포한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2000년의 준비는 본인의 교황직에 대한 해석학적 열쇠"(23항)라고 언급한 것처럼 교황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다름아닌 '대희년'이다. 아울러 그의 사상과 활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과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교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실제로 그는 교황 피선 이튿날인 1978년10월17일 추기경단 앞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처럼 교황 재위 27년은 대희년을 화두로 삼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교회와 신자들 삶에 구현되도록 하는 데 헌신하는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1979년에 반포한 첫번째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부터 2000년 대희년과 제삼천년기에 대한 열망을 표시해온 교황은 특별히 교서 「제삼천년기」를 통해 서기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하고,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할 것을 전 세계 모든 교회에 권고했다. 교황이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한 것은 지나온 한 천년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2000년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하느님 백성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희년 정신을 다시 활짝 피우겠다는 뜻에서였다. 제삼천년기를 맞는 교황의 대응은 1980년대 이래 '새로운 열의,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 '새 복음화'가르침에 집약돼 있다. 교황은 1988년에 발표한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시대적 도전에 직면한 교회는 '새 복음화'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천명하고, 교회공동체 구조 개선을 통한 그리스도화를 목표로 한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교황은 특별히 '새 복음화'작업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 개최된 전체 교회, 대륙, 지역, 국가, 교구 시노드들이 바로 일련의 새 복음화 과정이라고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시노드의 공식 결정들을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이 '새 복음화'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 작업이라는 것이다. 교황은 「제삼천년기」에서 "새로운 천년기를 위한 최상의 준비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을 각 개인과 온 교회 생활에 충실하게 적용하려는 새로운 투신이며, 대희년을 위한 직접적 준비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함께 실제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또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가 2000년 희년을 위한 더 직접적 준비를 시작했던 하나의 섭리적 사건이었으며, 그리스도와 그분 교회의 신비에 초점을 맞춘 동시에 세계를 향한 열린 공의회"라면서 공의회의 의미와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충실한 사도임을 자청했다. '새 복음화'를 위한 교황의 노력은 먼저 교회와 신자들이 과거에 범했던 비복음적 과오들을 과감히 인정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한 데서 출발한다. 교황은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 갈릴레오(1564∼1642년)에 대한 중세교회의 재판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한 데 이어 2000년 3월 '용서의 날' 참회예식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다인 학살에 저항하지 못한 점, 십자군전쟁, 13세기 종교재판 등 교회가 지난 역사 속에서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 교황은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며, 내가 변할 때 세상이 바뀐다"며 교회를 정화하고 면모를 일신하려는 결연한 쇄신의지를 드러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막을 내린 이래 지금까지 개최된 주교대의원회의 대부분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시에 열린 것은 교황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구현하는 데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교황은 1980년 네델란드 주교대의원회의 특별회의와 '가정'을 주제로 한 제5차 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를 시작으로 6차례의 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와 8차례의 대륙(또는 지역)별 특별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모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인 '친교의 교회'를 실현하고자 교황과 주교단이 모여 보편교회와 지역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한 자리였다.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에 반포한 「교회법전」과 1992년에 공표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이 결정적으로 반영된 공의회 정신의 진수로 꼽힌다. 교황이 '새 복음화'를 통해 달성하고자 한 목표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세계를 그리스도의 힘으로 질적 변화시킴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인 '사랑의 문화와 문명'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는 각종 문헌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에 입각해 현대세계의 물질주의를 극복하고 '사랑의 문화' 또는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관성있게 꾸준히 주장했다. 즉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현대 문명의 위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평화와 연대, 자유와 정의 같은 보편 가치들에 기초한 사랑의 문화ㆍ문명으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와 같이 제삼천년기를 맞는 현대사회가 제기하는 도전을 직시하고, 교회가 복음 진리를 토대로 내적 변화와 쇄신을 도모함으로써 자기 복음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회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범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하느님 나라'로서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는 데 진실된 자세로 투신할 것을 촉구했다. 제삼천년기를 늘 의식하고 살았던 교황의 이같은 활동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곧 교회의 내적 쇄신과 복음 선교를 추구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cpbc200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