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모든 것에서 배우려는 자세[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55) 삶이라는 양성의 학교 지속 양성이라고 대체로 교리를 다시 배우거나 특별한 양성 과정에 등록하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양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여기서는 삶 자체가 양성의 장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한 양성 학교를 따로 만들지 않으셨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생활 자체가 양성의 장이었고, 함께 걷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양성의 방법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시며 스스로 생각하도록 양성하셨다. 정해진 답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하느님 자녀로 사는 삶을 찾아가도록 하셨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 이야기(루카 24,13-35 참조)는 예수님의 양성 방법을 잘 드러내 준다. 먼저 양성은 함께 걷고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진행된다. “무슨 일이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시며, 그들 스스로 자신이 살아온 삶과 경험을 나누도록 초대하신다. 이어서 성경 말씀을 풀이해 주시며, 말씀에 비추어 삶을 다시 바라보도록 인도하신다. 제자들은 구세주의 본래 모습을 새롭게 깨닫고, 빵의 나눔을 통해 자기들과 함께 계셨던 주님을 알아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양성하신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신다. 제자들이 그분을 몰라본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주님께서는 우리 삶에 관심을 기울이시며, 우리가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도록 초대하신다. 그리고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우리 삶을 다시 바라보도록 인도하신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스스로 만들어놓은 너무나 인간적인 구원에 대한 기대와 생각을 조금씩 깨고, 그분께서 알려주시는 하느님 나라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분과 빵의 나눔을 통해 우리의 눈이 밝아져, 우리 안에 함께 계신 그분을 알아보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양성이란 이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신앙의 눈으로 삶을 새롭게 바라보며 그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그분과 함께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삶 자체가 양성의 장이며 학교다. 거기에는 삶이라는 소재가 있고, 함께 걷는 공동체가 있으며, 말씀이 있고 성찬의 나눔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 삶이 지속되는 동안 다양한 만남과 사건이 이어질 것이며, 양성은 지속될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더욱 잘 알아가고, 우리 자신도 더욱 잘 알아갈 것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을 양성의 장으로 생각하는 생각과 자세의 변화다. 그리고 삶을 이야기로 담아내려는 의지다. 그렇기에 노트를 준비해 삶의 이야기를 담아놓는 것은 중요하다. 삶에서 겪는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는, 내 삶을 구성하는 소중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 겪는 일들, 심지어 시련과 위기, 병고와 고통, 죽음까지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양성하시기 위해 재료로 사용하신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평범한 삶에서 겪는 모든 것, 모든 만남이 기록해야 할 배움의 내용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다. 어린아이의 말 한마디가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병자의 말 한마디가 마음을 울린다. 세상을 떠난 이들, 그들의 유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삶의 깊은 차원에 다가서게 한다. 이러한 양성을 통해 우리 안에 형성되는 내적 인간이 굳세어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에페 3,16-17 참조) 한민택 신부이정훈2024.06.18

중남미 선교사들, 아미칼 통해 고충·기쁨 나누며 힘을 얻다[선교지에서 온 편지] 콜롬비아에서 김현진 신부 (상) 지난 7월 1~5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제26차 아미칼(라틴아메리카 한국가톨릭선교사회) 모임에서 한정현 주교와 선교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현진 신부 제공 최근 있었던 남미 지역 선교지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지난 7월 1일~5일 페루 리마의 성 프란치스코 솔라노 피정의 집에서는 제26차 아미칼(AMICAL, 라틴아메리카 한국가톨릭선교사회)이 열렸습니다. 총 57명의 참가자 가운데 사제 16명, 수도자 37명, 그리고 평신도 선교사 1명이 참석했습니다. 특별히 한국에서는 주교회의 해외선교교포사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계신 한정현 주교님, 총무 김동원 신부님, 그리고 서울대교구 해외선교 봉사국 차장 유동철 신부님께서 동참해주셨습니다. 올해는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루카 24,14)란 주제 성구를 함께 묵상하며 ‘대화’라는 큰 흐름 안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첫째 날에는 ‘쉼’을 주제로 오후에 저녁 성무일도와 오리엔테이션을 했고, 회장 신부 주례 개회 미사로 본격적인 아미칼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사 마지막에는 모든 참가자가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둘째 날에는 ‘나 자신과 대화하기’를 주제로 오전과 오후에 교황청 복음화부 국장 한현택 몬시뇰께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도’에 관해 온라인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특별히 선교지에서 살아가는 선교사들에게 가장 본질이며 핵심이 되는 ‘기도’에 대해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신학대전」에 담긴 17개 항을 하나씩 되짚으시며 아미칼 회원들에게 기도가 가진 힘과 은총에 대해, 또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할 수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선교사는 ‘수확하는 사람’이 아니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기에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주님의 복음을 잘 뿌려주기 바란다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강의 후에는 선교사들이 조별로 강의 주제에 따른 나눔과 발표를 했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각 조의 조장 신부님들 주례로 조별 미사를 봉헌하며 더욱 풍성한 나눔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미칼 모임에서 한현택 몬시뇰이 선교사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다. 김현진 신부 제공 아미칼 모임 중 한정현 주교가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김현진 신부 제공 셋째 날에는 ‘이웃과 대화하기’를 주제로 한정현 주교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콜롬비아에서 열린 제24차 아미칼에 이어 이번 제26차 아미칼에도 참석하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이 모임에 오는 것이 멀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셀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아미칼 선교사들은 어떠한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하루하루 일상을 단순하고 또 소박하게 살아가기에 그 모습이 참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교님은 “더더욱 이곳 선교사들은 돈으로 해결하는 선교가 아닌, 있는 삶 안에서의 선교를 한다”면서 저희 선교사들에게 “참으로 자랑스럽고, 감사드리고,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점심 시간에는 브라질에서 선교하고 계시는 올리베따노 베네딕도회 수녀님들께서 동료 선교사들을 위해 팥빙수와 달고나 등 한국의 옛 추억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후식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오후에는 선교사들 안에서 나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선교 연차별 나눔이 아니라 사도직별(현지 본당 및 공소·교포·교육·의료·사회복지·어린이 공부방·무료 급식소·성경 공부·노인·환자 방문·양성 및 빈민선교 등) 나눔을 진행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각자 맡은 선교 사도직 안에서의 어려움, 또 그 안의 은총들에 대해 공감대를 갖고 풍성히 나눔을 가졌습니다. 이후 제26차 정기총회를 통해 아미칼 회원들의 연회비와 참가비에 대한 회칙을 개정했고, 차기 제27차 개최국으로 ‘멕시코’를 선정했습니다. 총회 후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현지 선교 및 교포사목을 하고 있는 양경모 신부님 주례로 저녁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식사 후 다음날 있을 조별 리마 성지순례 및 시내 투어에 대한 안내를 재미있는 퀴즈 방식으로 준비해 함께 내용을 숙지한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넷째 날은 ‘세상과 대화하기’를 주제로 오전에는 리마 주교좌 대성당에서 한정현 주교님 주례로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이후 조별로 자유롭게 리마의 문화와 역사, 신앙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역사지구에 위치한 리마의 로사 성녀 및 포레스 성인의 생가터를 많은 선교사가 순례할 수 있었고, 또 그 성인들의 유해(두개골)가 있는 도미니코 성당을 찾아 기도를 바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아미칼 기간 중 잠시나마 외출해 조별로 친교와 기쁨을 나눌 수 있었기에 참으로 소중하고 의미 있었습니다. 오후에 다시 피정의 집으로 돌아와 저녁 기도 후 다 함께 아가페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페루 리마 한인 공동체에서 김밥·떡볶이·치킨·잡채·떡 등 많은 한국 음식을 준비해주셔서 선교사들이 감사하고 또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은 ‘하느님과 대화하기’를 주제로 다시금 선교지로 파견되는 미사를 봉헌하며 4박 5일간의 아미칼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아미칼(AMICAL, la Asociación de los MIsioneros Catolicos coreanos en America Latina)이란? 중남미에서 선교하던 사제들의 모임으로 시작됐다. 그 성격과 평가가 긍정적으로 이어져 수도자와 평신도도 함께하게 됐다. 이후 주교회의 해외선교교포사목위원회 산하로 소속되면서 오늘에 이르러 현재 회원 200여 명이 중남미 대부분 지역에 선교를 나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 매년 7월께 한자리에 모여 전체 모임을 갖고 나눔과 전례로 선교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아미칼 25주년을 맞아 메시지를 통해 “지리적으로 한국과는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에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나누는 데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한국 가톨릭교회 선교사들에게 깊이 감사드리고 있다”며 “한국 선교사들은 그들의 특징인 근면함과 진실함으로 이미 세상 여러 곳에서 풍부한 열매를 거두고 있다”고 격려했다. 김현진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아미칼 회장 및 서울대교구 보고타 선교센터장, 콜롬비아) 김현진 신부 서울대교구 해외선교봉사국 후원 : 우리은행 454-035571-13-101 예금주 : (재)천주교서울대교구 cpbc2024.10.08

구약의 축제를 통해 알게 되는 예수님[신간] 요한 복음에 나오는 구약의 축제들을 아십니까? 요한 복음에 나오는 구약의 축제들을 아십니까? 김동규 신부 기쁜소식 이스라엘에는 하느님께서 명하신 일곱 가지 축제와 유다인이 정한 자체 축일들이 있다. 이 일곱 개의 핵심 축제는 당시 가나안에서 농사를 짓는 풍속에서 유래되었으나 이집트를 탈출하게 하신 구원의 하느님과 연결되면서 결국 ‘하느님 백성들의 구원에 관한 축제’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런데 요한 복음은 신약인데 왜 구약의 축제들을 묻는 걸까? 요한 복음서의 배경이 구약시대의 안식일을 포함해 핵심 축제인 파스카와 초막절·성전 봉헌 축제 등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이들 축제의 장소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간절에는 새 밀로 구운 빵 2개를 봉헌한다. 갓 구운 빵을 살펴보는 유다인. OSV 초막절에는 예루살렘을 찾아 제물을 바친다. 사진은 예루살렘의 구 시가지 모습. OSV 김동규(대전교구 갈마동본당 주임) 신부는 “요한 복음의 초미 관심사인 예수님이라는 분이 하느님을 알리고 증언하는 역할을 맡아 등장하는 곳이 항상 이스라엘의 핵심 축제”라며 “구약의 축제에 함축되어 있는 예언적 의미들을 당신의 몸으로 완성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고 전한다. 김 신부가 쓴 「요한 복음에 나오는 구약의 축제들을 아십니까?」에서는 이스라엘 핵심 축제들의 원체험이 기록된 탈출기와 축제의 제례를 자세히 다룬 레위기, 율법의 내용을 담은 신명기의 내용을 요한 복음의 내용과 연계하면서 그 축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떻게 예수님의 자기 계시(그리스도론)로 드러나는지 풀어간다. 즉 구약의 축제에 계시된 내용을 토대로 태초부터 예언되어 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한다. “요한 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날이 파스카 축제 준비일’(요한 19,14 참조)이었다고 언급하고 있고 (중략)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될 바로 그때, 새로운 해방을 주실 하느님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이를 통해 속죄양의 완전한 ‘희생 제물’을 당신의 몸으로 완성해 당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요한 6,22-58 참조)이심을 말씀해 주십니다.”(34쪽) “새롭게 봉헌된 성전은 ‘아버지를 만날 유일한 성전’이신 그분,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성전 봉헌 축제가 함축하고 있는 예언적 의미입니다. 요한 복음 저자는 10장에서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요한 10,22)라고 하며 성전 봉헌 축제가 한창 열릴 때 예수님께서 성전 내 ‘솔로몬 주랑에 계시며 걸으셨다’(요한 10,23 참조)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92쪽) 책에는 요한 복음서가 집필된 사목적·역사적 배경과 복음서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축제들도 시기별로 설명돼 신구약 성경의 맥을 연결하며 깊이를 더한다. 저자는 예비신자를 위한 「보물을 찾아 다 함께 가는 길 동행」, 신자 재교육 및 견진자를 위한 「구원을 향해 다 함께 가는 길 동행」 등의 책도 펴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5.14

더 깊고 재미있게 성경 속 예수님 만나보세요[성서 주간]흥미로운 복음 해설서 성경은 비유와 예화로 가득하다. 그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면 더 깊고 재미있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성서 주간을 맞아 복음서와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흥미로운 안내서들이 잇따라 출간됐다.비유에 깃든 하느님 얼굴제라르 로쎄 지음박문수 신부 옮김 / 바오로딸이탈리아 소피아대학교의 성서신학 교수인 제라르 로쎄가 쓴 「비유에 깃든 하느님 얼굴」은 공관 복음서에 나오는 하느님 나라와 관련된 비유들에 대한 해설서이다. 책은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비유로 가르치기를 선호하셨던 예수님의 교육적 재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분이 들려주신 비유들의 원래 형태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비유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다.(중략) 마지막 순간에 불려 온 포도밭 일꾼들의 비유(마태 20,1-16)가 어떻게 끝나는지, 또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루카 18,9-14)가 어떤 내용인지를 생각해 보라. 이 비유들은 청중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이고 습관적인 논리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알고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논리에 마음을 열라는 초대다.”(20쪽) 책의 중심 부분은 회개의 필요성과 결단의 순간인 현재의 중요성 등을 다룬 비유들에 대한 해설이다. 여기에 소개된 비유는 대부분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하느님을,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지극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얼굴을 제시한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마르 13,28-29) (중략)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를 ‘종말론적 담화’라 불리는 곳에 배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배경이 다름 아닌 예수의 부활 사건 이후임을 알 수 있게 된다.”(97쪽) 책은 이 시대에 예수님을 따르려는 모든 이에게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삶의 방식인 ‘이웃 사랑’에 관한 두 가지 비유로 마무리된다.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루카 10,34)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에서 예수는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가늠하는 데 있어 율법의 완벽한 준수 여부를 기준으로 삼으려는 종교성의 위험에 대해 강조했다.(중략) 일반적으로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적이 있어야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용서받아온 사람이 용서할 줄도 안다.(235쪽)복음서의 비유 이야기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시대적 상황이나 문화적 여건은 물론 비유를 전달하는 이들의 사목적 관심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책은 모든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담긴 비유들이 역사의 다양한 순간을 거치며 새로이 갖게 된 풍요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해준다.양승국 신부의 흥미진진성경 읽기양승국 신부 지음 / 생활성서사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셨을까?이는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계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교회 학자들과 교부들은 물론 평신도들에게도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물음일 것이다. 그 무수한 연구만큼이나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도 수많은 해석들이 제기된다. 양승국 신부는 예수님을 ‘아재 개그’를 유창하게 구사하시는 분, 탁월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 오늘날 계셨다면 어깨를 툭 치시며 부족한 죄인인 우리와 소주잔을 주고받았을 분일 것 같다고 한다. 따라서 복음서 이면에는 예수님의 유머와 즐거움, 따뜻함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양 신부는 「흥미진진 성경 읽기」에서 특유의 재치와 예화에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덧붙여 복음서의 주요 내용을 더욱 쉽고 재미있게 해설해준다. 성경의 내용에 저자가 생각한 예수님의 유머 감각을 덧붙여 말씀을 더욱 풍성하고 친숙하게 전달한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예수님께서 땅바닥에 무언가 쓰셨다고 복음사가는 전하고 있는데 사실 그 땅바닥은 죄와 타락과 방황으로 얼룩진 여인의 마음이자 우리 각자의 마음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땅바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마음 하나하나에 당신 손가락이 아프도록 꾹꾹 눌러 또 다른 한 말씀을 새겨 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딸들아, 너희들이 아무리 죄가 많다 할지라도, 너희들이 아무리 몹쓸 짓을 했다 할지라도,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럼에도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단다.’”(예수님께선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중 102쪽)현재 살레시오회 내리피정센터에서 사목하고 있는 양승국 신부는 단순히 자신의 생각과 묵상만으로 성경을 설명하고 풀이하지 않았다. 일상에서의 소중하고 감동적인 체험을 더했지만,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예로니모와 돈 보스코 성인 등 교회의 공신력을 지닌 문헌이나 어록을 더해 교리적 근거를 다졌다. 리처드 로어 묵상 선집리처드 로어 신부 지음이현주 옮김 / 분도출판사“내가 여태 받아 왔고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랑과 가르침은 대체로 유다-그리스도교 성서들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나는 그것들을 사십 년 동안 전하고 가르쳤다. 나는 성경이 얼마나 많은 해악을 인류 역사에 끼쳤는지 그리고 또 같은 성경이 얼마나 많은 선을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자주 놀란다. 그 안에 담긴 가능성들을 세상의 선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위하여 최대한으로 살려낼 무슨 방도가 있어야 한다. (중략) 여러분은 내가 무엇으로 성스러운 본문들을 해석하는지 그것을 알아볼 자격이 있다. 그건 ‘해석학’이라 불리는 것이다. 내 방법론은 간단하다. 나는 예수님이 하신 그 방법으로 성서를 해석코자 노력할 것이다.”(들어가는 말)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뉴멕시코관구 사제이며 영성전문가인 리처드 로어 신부의 책과 강연은 물론 발표되지 않은 온갖 자료를 간추리고 선별해 엮은 묵상집이 출간됐다. 성경을 오랫동안 해석하며 가르쳐 온 저자는 성경을 역사적 사실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고 무엇을 강조할 것인지’, 또는 ‘무엇을 덜 강조하거나 아예 무시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해석학의 지평으로 인도한다. 책에서는 그의 오랜 가르침의 바탕에 깔린 주제를 ‘방법론’, ‘바탕’, ‘틀’, ‘에큐메니컬’, ‘변형’, ‘진행 과정’, ‘목적지’ 등 7개의 주제로 나누고, 각각의 주제에 맞는 짧은 묵상글을 더했다.“성경은 갈등을 통하여 인간의 경험을 조명한다. 성경은 인간의 경험을 대변하는 책이 아니다. 갈등 자체로 초대하는 것이다. 어떤 본문은 우리를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갈등을 통하여, 특히 하느님이나 성스러운 본문들과의 갈등을 통하여 의식이 깨어난다. 만일 우리가 온갖 투쟁과 딜레마, 패러독스, 부조리, 충돌을 피한다면 거의 아무 의식도 없이 살게 될 것이다.”(방법론 중 32쪽)“그리스도는 나자렛 예수보다 더 크고, 더 먼저고, 더 오랜 분이시다. 하지만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과 용기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순종이 당신의 예수(his Jesus)를 놓게 하였고 마침내 그리스도로 부활하시어 압도적 승리 안에 우리 모두를 품고 앞으로 나아가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방인, 힌두교도, 아브라함, 사라가 모두 영원한 그리스도 신비의 부분이다. 외람돼 보이는 내 말을 용서하시라. 그래도 반복한다. 이것이 중요한 요점이다! (에큐메니컬 중 253쪽)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cpbc2022.11.16

신약성경 주석서 번역, 복음이 밝게 드러난 놀라운 시간대전교구 원로사목자 조장윤 신부「SACRA PAGINA」 원서 18권 완역 자신이 번역한 신약성경 주석서 「SACRA PAGINA」 히브리서 편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 조장윤 신부. 사제로 산 지 30년쯤 되던 2005년 무렵, 대전교구 원로사목자 조장윤(베르나르도, 73) 신부는 회의에 빠졌다. ‘내가 설교하고 강론하는 게 하느님의 복음에 맞는 건가? 혹시 내 생각을 나누는 건 아닌가?’ 그렇게 깊이 회의하던 중 조 신부는 「SACRA PAGINA」(싸크라 빠지나, ‘거룩한 페이지’라는 뜻의 라틴어)를 떠올렸다. 몇 해 전, 교구에서 안식년을 받아 1년간 미국 보스턴 예수회 신학대학원(Weston Jesuit School of Theology)에서 공부할 때 몇몇 교수들이 추천해 줬던 신약성경 해설서가 갑작스럽게 생각난 것. 해서 조 신부는 본당과 병원사목을 하면서도 밤만 되면 「SACRA PAGINA」를 원서로 읽기 시작했고, 2년 6개월 만에야 18권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영어로 읽었기 때문에 물론 다 이해하진 못했어요. 그렇지만 자신감이 생겼어요. 성경의 전체적 내용이나 배경, 전후 관계를 알게 되니까, 복음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알게 됐어요.” 조 신부는 「SACRA PAGINA」를 세 단어로 요약됐다. 복음을 전후 관계나 맥락에서 보고(contextuality), 복음서 안에서의 원문의 자체적 관련성을 파악하고(intratextuality), 텍스트가 되는 구약성경과 다른 복음서, 교부들 해석, 현대 성서학자들의 해설을 통해 복음의 관련성을 돌아보게(intertextuality) 되니 ‘눈이 밝아진’ 느낌이었다는 것. “복음을 듣고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당시 상황과 배경, 예수님 뜻, 사도들의 생각, 현대 주석들, 저자의 생각마저 망라해 보니 복음이 밝히 드러나 놀라웠다”고 조 신부는 설명했다. 그제야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조 신부는 2016년 은퇴에 1년 앞서 틈틈이 저녁 시간에, 은퇴 뒤엔 온종일 번역해 7년 만인 지난 7월 15일에 번역을 마무리했다. “운동하거나 때로 식사 약속이 잡힐 때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마치 전쟁하듯 번역했어요. 심지어는 술을 마셔도 소주 1병까지는 똑같이 일했지요. 설과 추석을 빼고는 안식일도 안 지키며 작업했는데, 그런데도 하루에 힘껏 해봐야 두세 쪽 번역이 고작이었어요. 권당 500∼600쪽, 분량이 많은 책은 1000쪽이 넘는 해설서도 있었지만, 그렇게 번역한 게 쌓여 한 권의 책이 번역됐고, 마침내 총 18권을 다 번역할 수 있었어요.” 조 신부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번역은 그야말로 간난신고였다. 번역 중 오른쪽 눈에 포도막염이 생겨 3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홍채에 수술 자국이 남는 바람에 오른쪽 눈은 글자를 읽지 못하게 됐다. 다행히도, 하느님의 섭리였는지 눈은 더 나빠지지 않았고, 번역은 무사히 마쳤다. 그렇게 힘겹게 번역해 대전가톨릭대 출판부에서 펴낸 「SACRA PAGINA」에 대해 조 신부는 “예수회 다니엘 J. 해링턴 신부님이 총 편집자를 맡아 국제적 가톨릭 성서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현대적 성경 연구 방법을 총동원해 신약성경 전체를 새롭게 연구하고 해석한 기념비적인 주석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주석서를 접한 사제나 수도자, 평신도들은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이에 대해 조 신부는 “저는 본당과 병원사목을 하면서 2년 반 동안 「SACRA PAGINA」를 원서로 다 읽었다”며 “어렵다거나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일 뿐이고, ‘필요한 사람만 읽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를 겪으며 본당이 텅텅 비게 된 건 한국 교회에 바탕이 없다는 게 드러난 것”이라며 “그 바탕을 다시 찾는 방법이 바로 성경이고, 복음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SACRA PAGINA」 같은 주석서가 도움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 신부는 이어 “나는 사제들에게 이 「SACRA PAGINA」를 소설 읽듯이 빨리 읽으라고 권하는데, 그건 성경의 전체적 흐름을 알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기 때문”이라며 “그러고 나서 한 부분씩 필요한 부분을 다시 읽으면 신약의 세계라는 현장에 온 것처럼 느낄 수 있고 많은 묵상 소재를 받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요즘 들어서는 자신이 번역한 18권을 다시 읽어가며 내용을 숙지하고 오ㆍ탈자를 바로잡는다는 조 신부는 “다시 읽으니까, 더 좋고, 학자들이 온 힘을 기울여 쓴 책이라는 걸 새롭게 알았다”며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같은 영적 독서에 필요한 교재로 꼭 「SACRA PAGINA」를 추천하고 싶다”고 밝혔다. 문의 : 02-762-1194, 기쁜소식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11.16

붓글씨로 성경 필사, 아프던 허리도 멀쩡! 손녀 신앙도 전수! 신·구약 성경 전권을 붓으로 필사한 이춘자씨가 세필을 쥐고 있다. “어떤 젊은 부부가 그러더라고요. ‘연세 드신 분도 이렇게 쓰는데, 그동안 성경을 등한시한 것 같다. 붓으로는 못 써도 날마다 쓰겠다’고요. 그럴 때 제 마음이 굉장히 흐뭇했습니다.”구약과 신약성경을 모두 붓글씨로 필사한 82세 이춘자(구둘라, 월계동본당)씨가 환하게 웃는다. 2010년쯤 시작한 신약은 1년이 걸렸고, 구약은 양이 많아 꺼리다가 딸의 권유로 2019년부터 2년 8개월 동안 필사를 했다. 제본된 필사본은 모두 32권. 이씨는 필사를 모두 마치고 붓을 내려놓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눈물이 났어요.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리 건강한 몸을 주셔서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면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기뻤어요.” 팔순이 지난 만큼 필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눈은 침침했고, 정자세를 유지하며 서예를 하다 보니 목과 팔목 통증이 이어졌다. 글씨를 쓰면서 책상에 대고 있는 팔꿈치에는 피딱지가 앉았다 벗겨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견딜만했다”고 웃어넘겼다. 더 큰 고통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필사를 하기 전 허리 통증을 심하게 앓았다. 분량이 많은 구약 필사를 주저한 것도 이 이유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래, 다시 시작해보자’ 하고 마음먹을 때 기도했다. “마무리 지을 때까지만이라도 건강을 주세요.” 놀랍게도 필사를 하는 내내 이씨는 허리가 아파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필사를 마친 지금도 마찬가지다.이씨의 정성이 담긴 필사본은 많은 이에게 신앙의 귀감이 됐다. 완성된 필사본을 들고 월계동본당을 찾았을 때 이를 본 사제는 전시를 권했고, 전시를 찾은 신자들은 감탄을 자아냈다. 이씨의 필사본이 전시된다고 하여 성당을 방문한 사위와 손녀는 그 자리에서 예비신자가 됐다. 이씨의 둘째 딸인 김영지(소피아, 월계동본당)씨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신랑이 ‘성당을 다녀야겠다’고 말한 게 처음이었다”며 “성경을 쓰는 과정과 완성을 모두 지켜보고 나서 매우 큰 감동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딸이 할머니의 삶을 되짚어보면서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어머니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마음을 드러냈다. 이씨는 “요즘 애들은 억지로 성당을 다니라고 하면 싫어한다”며 “그저 영적으로 ‘당장은 성당에 나가지 않더라도 외면하지 마시고 꼭 불러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성가정을 이루는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한 자씩 마음을 다해 쓴 필사에도 할머니의 그러한 기도가 담겼다.이씨가 꼽은 성경 필사의 매력은 스치듯 지나갈 수 있는 구절이라도 꼭꼭 씹어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귀한 생명을 주신 덕분에 보람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도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다. 이씨는 “기도하고 바라면 이루어지더라”며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자식들이 잘 자라 바르게 사는 것, 또 성경 필사를 완성하게 해주신 것 모두 하느님께서 들어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강상의 이유로 이제 성경 필사는 힘들겠지만, 죽을 때까지 굳건한 믿음 속에서 하느님 나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cpbc2022.11.16

진짜 일상 챙기려면 나 자신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82.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세상 다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관음적 요소를 자극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출처=pixabay 철저하게 계획된 각본에서 태어나 30여 년을 무대 세트에서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생방송으로 방영되면서 ‘리얼’을 욕망하는 대중에 의해 그의 단 하나뿐인 인생은 ‘쇼’로 소비된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주변의 모든 사람은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배우들이고 그가 진짜라고 믿었던 자신의 일상도 제작팀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연출가의 치밀한 대본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단 한 사람, 바로 트루먼 버뱅크뿐이다. 너무도 유명한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의 주인공 이름은 ‘진실한 사람(true man)’이다. 하지만 의도적인 접근, 인위적인 세팅, 진짜처럼 보이는 기술조작에 의해 트루먼은 쇼의 주인공으로 관음의 대상이 되고 만다. 해가 갈수록 다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예능인지 다큐멘터리인지 알 수 없는 장르 파괴의 ‘쇼’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예능의 다큐화로 관찰 형식의 수많은 프로그램은 유명 유튜버나 연예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따라가게 한다. 밥 먹는 것부터 시작해 강의 듣고 운동하고 캠핑 가고 쇼핑하고 해외여행까지 관음적 요소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쇼’에 ‘리얼’을 옷 입힌 리얼리티쇼(reality show)는 기존의 텔레비전 장르인 드라마·코미디·스포츠 등의 예능 요소가 고루 혼합되어 오락성을 자극하는 종합선물이다. ‘리얼’하다고 믿으니 그 재미는 배가된다. 사실적인 요소는 바로 옆에서 바라보는 엿보기 욕망을 채워준다. 그런데 정말 ‘리얼’일까? 영화에서 트루먼은 자신도 모르게 관음의 대상이 되지만 우리가 매일 보는 다큐 형식의 예능프로그램 주연은 드러나게 ‘리얼’을 옷 입고 ‘쇼’를 진행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실제 현실이나 가상현실보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에 더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증강 현실은 현실이라는 배경에 가상 이미지를 넣어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느낌을 준다. 그저 실제만으로는 지루하고 가상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나 보다. 진짜와 가상의 변형과 합성으로 인위적인 실재감을 높여주는 혼합현실(mixed reality)에 더 매력을 느낀다. 현실 세상에서는 길을 잃고, 만들어진 세상에서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세상에 열광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묻게 된다. 진짜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는, 불편한 현실을 버티기보다는 스크린 속 남의 인생을 틈만 나면 훔쳐보면서 즐기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나의 진짜 일상에 남의 가짜 일상을 끌어들여 마치 내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대리 만족의 달콤함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특정인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 뇌 속의 거울 뉴런은 활발하게 작동한다. 스크린 속 인물과 동일시하면서 공감하는 마음이 만들어지고 마치 내가 보는 대로 행동한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보는 것이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자주 혹은 매일 ‘리얼’에 예능을 옷 입힌 ‘다큐 형식’에서 오락적인 감성을 키워간다. ‘리얼리티’를 소비하면서 ‘쇼’에 갇혀 일상을 즐긴다. 부풀려진 진짜 같은 재미 감각으로 인해 현실로 돌아오면 밋밋하고 지루해서 곧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진짜 삶은 느리고 재미도 없고 문제 해결은 더디기만 하고 밋밋하다. 반면 스크린 속 남의 인생은 어찌 그리도 재미있고 빠르고 드라마틱하게 문제 해결도 잘하면서 톡톡 튀고 흥미로운지 모르겠다. 진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트루맨(true man)의 감각은 무뎌지고 남의 세상을 엿보는 대중으로서의 감각에 자극받으면서 점점 우리 영혼은 침식되어가는 것 같다. 나의 일상을 남의 일상 훔쳐보기로 채워간다면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스크린 속 남의 인생을 오락처럼 즐기는 시간을 줄이고 나의 진짜 일상을 챙겨야겠다. 심심할 때, 지루할 때, 밋밋할 때, 나의 하루를 돌아보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가야겠다. 지하철만 타면 습관처럼 열어보는 스마트폰을 가방 깊이 넣어두고,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또 어떤가? 요즘은 지하철 안에서 묵주를 들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반갑고 기쁘다. <영성이 묻는 안부> 가끔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할 때 가만히 관찰해보면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들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 않나요? 정치적 현안은 물론이고 올림픽 이야기도 그렇고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요. 그런데요. 또 그만큼 나에 관한 이야기나 내가 실제로 경험한 직장 동료나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나 할까요? 내가 읽은 책이나 성경 말씀을 나누시나요? 우리가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대체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에서 본 뉴스나 자극적인 이슈에 관한 것이지요. 직접 보고 들은 것도 아니면서 우린 그냥 ‘리얼’이라고 믿습니다. 가끔은 나 자신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화는 곧 우리 내면의 풍경이며 인격이니까요. cpbc2024.08.21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생생하고 진솔한 이야기‘세계 가난한 이의 날’ 추천 도서‘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 몸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을 소개한다. 가난할 권리 최준영 책고래 “우선 할 일은 가난한 사람들의 내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이어야 한다. 동정이 아닌 권리로서의 복지를 이해하도록 설득하고 설명해야 한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권리를 지켜주는 일이다. 세상에는 욕망할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살아가야 할 권리가 있다. 가난할 권리다.”(67쪽) 노숙인, 미혼모, 재소자, 자활 참여자 등 가난한 이웃과 함께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최준영씨가 신간 「가난할 권리」를 발표했다.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 교수’로 불리는 저자가 지난 20년간 자활센터나 보호시설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매일 생존의 문제와 싸우는 이들에게 곁을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스스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자고 응원한다. 국내 최초의 노숙인 인문학 과정인 성프란시스대학 교수를 거쳐 사단법인 인문공동체 ‘책고집’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인문학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 2023년 독서문화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고, 「결핍의 힘」, 「최준영의 책고집」,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등을 펴냈다. 어느 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숨쉬는미디어교육자몽 빈빈책방 “처음에는 여자 한 명이 귀에 대고 소곤소곤하길래 ‘이게 뭐지? 내가 초능력이 생긴 건가? 텔레파시가 통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그 목소리가 커지는 거예요. 나중에는 열 명 넘는 사람들이 귀 양쪽에서 떠들어 대는 것 같았어요.”(29쪽) 「어느 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는 정신장애 당사자 6명을 인터뷰한 뒤 기록한 책이다. 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발병 후 살아온 삶을 풀어냈다. 모든 인터뷰이는 당사자가 직접 만들어 가는 라디오 방송 ‘마인드라디오’에서 활동했다. 이 방송을 기획한 문화예술교육단체 ‘숨쉬는미디어교육자몽’은 정신장애 당사자들을 만나고 함께 라디오 방송을 만들면서 세상의 편견과는 사뭇 다른 그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됐고, 이를 알리기 위해 이 책을 기획했다. 복음서의 이름 모를 사람들 장 오브룅 수사 신부/이병애 옮김 기쁜소식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가족부터 열두 제자, 공생활 중에 만난 이들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사도들의 수장 베드로, 신학자 요한 등 그 이름 하나로 이미 수많은 책이 출간된 인물이 있는가 하면 사마리아 여인의 이웃들, 세관원의 동료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소년, 엠마오의 주막 주인 등 이름 모를 사람들도 있다. 「복음서의 이름 모를 사람들」은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여정에 잠깐, 성경의 몇 구절에 잠시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936년 서품 후 오랫동안 수도자이자 복음을 선포하는 사제로 살았던 장 오브룅(프랑스 생 마르탱 베네딕트 수도원) 수사 신부가 문학적인 상상력을 더해 성경 속 인물들의 삶이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려낸다. 어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요 이근후·이서원/ 샘터 50년 경력의 정신과 전문의와 30년 경력의 상담 전문가가 함께 책을 펴냈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이근후씨와 그의 제자인 나우리가족상담소 이서원(프란치스코) 소장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인생 고민을 들어왔던 두 사람은 함께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즉문즉답 형식으로 나눈 대화에서 핵심만 추렸다. 「어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요」라는 제목처럼 ‘자존, 관계, 위기, 욕망, 확신, 비움, 성장, 행복’ 등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할 법한 여덟 가지 주제에 대해 나눈 대화들이다. 책에는 ‘스승’과 ‘제자’로 표기되어 있지만, 결국 두 전문가의 비슷한 듯 서로 다른 경험이 실린 조언을 마주할 수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1.09

39권으로 구성된 유다교 정경[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유다교 정경 유다교 정경인 타낙 성경은 율법서와 예언서, 성문서 39권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은 13세기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구약 성경 필사본 두루마리로 바티칸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CNS 이번 호부터 2회에 걸쳐 구약 성경이 어떻게 ‘정경’으로 확정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정경 ‘정경’(正經, 헬라어 Κανων, 라틴어 Canon)은 교회의 성경 목록을 말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사도 전승에 따라 어떤 문서들이 성경 목록에 포함돼야 할지를 판단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느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성경은 모두 교회의 권위로 정경으로 확정한 책들입니다. 우리말 ‘정경’으로 옮긴 헬라어 카논(Κανων)은 본래 ‘갈대’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갈대는 대나무처럼 마디 길이가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고대 헬라와 로마 사람들은 갈대를 길이를 재는 ‘자’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갈대뿐 아니라 ‘잣대’ ‘기준’ ‘표준’ ‘지표’ ‘규율’을 뜻하는 말로 카논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조화와 이상, 구조와 분류에 일가견이 있었던 고대 헬라의 철학자들은 윤리, 철학, 미학 등의 학문 규준을 만들어 “카논”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 소장된 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카논”이라 불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카논은 기준ㆍ표준ㆍ법칙ㆍ목록ㆍ명단의 뜻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고대 교회 당시 헬라와 로마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던 카논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성경의 정경 곧 표준 성경의 목록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습니다. 유다교 정경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신약 성경이 있음에 따라 비로소 옛 계약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은 유다인과 유다교에서 우리가 말하는 구약의 거룩한 책은 ‘이스라엘 성경’, ‘유다교 성경’이라 불립니다. 이스라엘 성경 곧 유다교 성경은 창조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기원전 6세기, 곧 기원전 500년 중엽까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맺은 계약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로 유다인들이 바빌로니아에서 포로로 유배생활을 하던 때입니다. 에즈라와 느헤미야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기원전 6세기가 유다교 성경의 기록이 끝난 시기는 아닙니다. 다니엘서가 기원전 2세기 곧 기원전 164년 무렵에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유다인들은 다니엘서가 바빌로니아 유배생활 시기에 한 지혜로운 유다인이 쓴 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 성경, 유다교 성경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쓰였고, 일부만 아람어로 기록되었기에 ‘헬라어’로 쓰인 신약 성경과 구별해 ‘히브리어 성경’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유다교 성경을 문학 유형에 따라 ‘토라’(Torah, 율법), ‘느비임’(Nbiim, 예언서), ‘케투빔’(Ktobim, 성문서)으로 구분해 그 첫 글자를 따서 ‘타낙(TaNaK) 성경’이라고도 합니다. 토라에 속하는 경전은 ‘모세 오경’으로 불리는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유다교 성경과 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느비임에는 전기(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ㆍ후기(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열두 소예언서) 예언서 각 4권이 속해 있습니다. 케투빔에는 토라와 예언서 외에 개인의 삶과 관련된 모든 책(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 다니엘서,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역대기 상ㆍ하)이 포함돼 있습니다. 서기 70년, 로마군은 무장 독립 항쟁을 벌인 유다인들을 제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합니다. 이 재앙이 닥치기 전인 68년, 요한나 벤 자카이 라삐는 로마 정권의 허락을 받아 야브네라고도 불리는 얌니아에 라삐학교를 세웁니다. 얌니아 라삐학교는 타낙 성경을 해석하는 모든 구전 전승들을 수집해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서기 90~95년 사이 얌니아 회의를 열고 타낙 성경을 유다교 성경 정경으로 확정했습니다. 얌니아 라삐학교가 유다교 성경 정경을 확정한 이유는 바빌로니아 유배 시절처럼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더는 사제들이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바칠 수 없게 되어 다른 형태의 신앙행위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라삐들은 모든 전승 자료를 기록해 탈무드의 핵심인 ‘미슈나‘를 작성했고, 정통 유다교는 아직도 이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유다교 성경 정경은 모두 39권입니다. 하지만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37?~95?, 100?)는 22권으로, 에즈라기 4서에서는 24권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24권은 사무엘기 상ㆍ하권, 열왕기 상ㆍ하권, 역대기 상ㆍ하권,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 열두 소예언서를 각각 한 책으로 셈한 것입니다. 또 22권은 이 책들 외에 판관기와 룻기, 예레미야서와 애가를 각기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24’와 ‘22’는 온전성, 완전성을 드러낸 수입니다. 22는 히브리어 알파벳 숫자입니다. 또 24는 열두 달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에 2를 곱한 것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2.12.07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 찾는 과정”가톨릭 미술상 특별상 수상 유리재 조상현 대표가 공방에 있는 다양한 유리 샘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여 곳 3000여 작품 제작·설치 작품 위해 여러 분야 사람들 협력 “공동체로서 수상한 데 의미”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그래서일까, 성경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빛’일 것이다. 성직자나 귀족들만 문자를 알던 중세시대부터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서민에게 알리기 위해 수많은 그림과 조각으로 나타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빛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유리화가 아닐까 한다.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라는 말이 더 익숙한 ‘유리화’는 색유리를 이어 붙이거나 판유리 뒷면에 아교를 녹인 물질로 무늬나 그림을 그린 것이다. 햇빛을 받으면 본연의 색과 더해져 신비로운 빛의 향연을 펼친다. 그래서 유리화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성당이 떠오른다. 15일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서상범 주교)가 주관하는 제27회 가톨릭 미술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은 ‘유리재’는 바로 이 유리화를 만드는 공방이다. 조상현(작가 겸 유리재 대표) : “유리화는 창에 설치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창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빛을 받아야만 우리에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거든요. 저희가 사용하는 유리는 모두 유럽에서 들여온 건데, ‘마우스 블론 글라스’라고 입으로 불어서 만들어요. 그야말로 장인의 숨결이 담긴 유리이고, 색깔도 한 장 한 장 다 다르죠.”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유리재는 말 그대로 공방이었다. 고혹적인 유리화가 설치된 성당과 달리, 수많은 유리조각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디자인 샘플과 작업 도구들이 도처에 놓여있다. 지하 공방에 있는 유리 조각도 햇빛을 받아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고 있다. 현재 유리재는 조규석ㆍ규선ㆍ규후 삼형제와 조상현(조규석의 아들) 대표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 작가로 활동했던 프랑스 떼제 공동체의 마르크 수사는 지난달 19일 선종했다. 조규석(요한)ㆍ규선(베드로) 형제는 1980년대 ‘한국 유리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 이남규(루카) 교수의 작업실에서 도제 수련을 받으며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전주교구 전동성당 등의 문화재 보수 복원, 혜화동성당을 비롯한 30여 개 성당의 유리화 제작 실무를 13년 동안 진행했다. 이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등에서 수학한 뒤 마르크 수사, 막내 조규후 장인과 함께 공방을 열었다. 조규후 장인 : “형님들이 20대 초반에 이남규 교수님에게 배우기 시작했는데, 색을 보고 그냥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많았는데, 지금까지 안 놓고 하셨어요. 저는 다른 일을 하다 뒤늦게 참여하게 됐는데, 보니까 그냥 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 색을 찾는 과정이 가장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유리화를 통해 드러나는 색은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같은 장소에서도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조규후 장인 : “정해진 색이 없다고 할까요. 공방에서는 이 색인데, 현장에서는 다른 색이 돼요. 그 동네에는 그 색이 없어요.(웃음) 유리화는 빛을 이용한 거라서 지역마다 색이 달라지고, 같은 장소에서도 햇빛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그 색을 찾아가는 게 가장 어려워요.” 조상현 대표 : “그게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빨간 유리화가 계절마다 다르고, 아침과 낮에도 달라지거든요. 오른쪽으로 한 걸음만 이동해도 빛의 각도가 달라지니까요.” 완성된 유리화는 물리적으로 한 점이더라도 빛에 따른 스펙트럼은 무한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유리화는 디자인을 시작으로 유리와 색을 정해 제작하고 설치하는 공정에 수많은 사람이 참여한다. ‘유리재’ 역시 1996년부터 2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과 협력해 200여 곳에 3000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설치해 왔다. 건강상의 이유로 당일 공방에 나오지 못한 조규석 작가 겸 장인은 “유리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분이 참여하고, 이 공방에서 지금껏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협력해왔기 때문에 공동체로서 수상한 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2.02

공동체 안에서 전진하는 신앙 여정[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54) 지속 양성의 장(場)인 작은 공동체 유년기에서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이뤄지는 교육활동을 ‘평생교육’이라 한다. 신앙과 관련해선 ‘지속 양성’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신앙인은 끊임없이 ‘되어가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자기 안에 갖춰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은 주일학교 교리교육이나 예비신자 교리교육으로 모든 양성이 끝났다는 생각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사회와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평생교육이 필요하다면, 신앙 역시 지속적인 양성이 필요하다. 상황이나 연령에 따라 세상과 삶, 신앙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변하기 때문이다. 양성에 대한 또 하나의 착각이 있다면 양성을 개인적인 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신앙 양성은 ‘함께’ 이루어진다. 신앙은 늘 교회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공동체 안에서 살아왔다. 세례부터 전 생애를 거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신앙인이 삶을 시작하는 곳도, 삶을 마무리하는 곳도 공동체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다. 양성은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지며, 공동체의 삶 자체가 양성의 방법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부르시고 공동 생활을 하신 것은, 공동체를 통해 제자들을 양성하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지속 양성을 위해서도 우리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본당 공동체가 비대해진 지금, 생활을 나눌 작은 공동체가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프랑스 파리의 대부분 본당은 ‘젊은 직장인 모임’을 운영한다. 10명 남짓한 젊은이들이 2주에 한 번씩 모이는 이 청년 모임은 세속화된 사회에서 경험한 것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누는 자리다. 참가자들은 성경이나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각자 신앙인으로서 겪는 다양한 경험들, 특히 어려움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리고 각자 삶의 자리에서 신앙인으로서 살아갈 의미와 목적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이 모임에는 다양한 활동도 있는데, 도보 성지순례나 피정, 저녁 식사 모임, 박물관 방문 같은 다양한 문화 활동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 사이에 신앙적 공감대뿐 아니라 인간적 관계도 돈독해질 수 있다. 프랑스 교회에서는 이러한 모임 말고도 결혼을 앞둔 커플, 부부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통해 지속 양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지속 양성이 이루어지는 여러 단체나 공동체가 존재한다. 매리지 앤카운터(ME)나 꾸르실료, 소공동체나 레지오 마리애 등이 작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양성의 좋은 예일 것이다. 이러한 작은 모임은 양성의 장이면서, 각자가 걷는 신앙 여정을 동반하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고민과 어려움 등이 공감받을 때 힘을 얻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게 된다. 공동체의 다양한 활동도 양성에 일조한다. 도보 순례·복음 나누기·생활 나눔·성지순례·피정·문화 활동·음악·전례·본당 내외 봉사 활동 등을 통해 공동체 신앙 문화 및 영성을 창출하게 된다. 환대하고 대화하며 경청하는 문화, 만남의 문화, 함께 걷는 문화, 함께 생각하고 생각을 귀 기울여 듣는 문화 등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통해 삶의 경험을 나누며 신앙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러한 모임이 단순히 모임으로만 끝나지 말고 진정한 양성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참석자가 지속 양성의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고, 양성 계획을 함께 구상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민택 신부cpbc2024.06.11
![[전문]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2024년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3/29/pMe1711675894565.jpg)
[전문]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2024년 부활 메시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여라.”(루카 24,6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이 전하는 부활의 사건을 떠올려 봅니다. 주간 첫날, 예수님을 지극히도 사랑했던 여인들은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덤이 비어있음을 발견합니다. 당황해 마지않던 그때, 천사는 그들에게 다가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 24,6) 죽음은 오로지 두려움이었기에 부활의 생명은 상상키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부활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리고는 부활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고백하며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러 나섭니다.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라고 부활 대축일 부속가에서 노래하듯 그들은 주님 부활의 기쁨을 외치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더없는 기쁨과 희망의 사건입니다. 부활은 죄와 죽음의 한계에서 인간을 구원한 사건이자, 주님께서 당신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 곧 새 생명의 길을 열어 보인 사건이기에 희망의 사건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654항 참조) 또한 그분께서는 죄의 권세를 누르시고 다시 살아나셨기에, 그리고 죄에서 죽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셨기에, 우리를 영원한 생명과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더없는 기쁨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라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믿음과 삶의 의미를 찾고 궁극적인 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이며,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이들이 즉시 부활을 깨달은 것은 아니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빈 무덤 앞에서 놀랐던 여인들의 모습(마르 16,4-5)에서 또,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자신들의 고향인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루카 24,13-35)에서, 그리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토마스 사도의 모습(요한 20,24-29)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직접, 그리고 천사들을 통해서 성경의 말씀을 설명해 주시면서 그들이 부활을 믿고 깨닫게 해주십니다. 주님 부활의 소식을 알리는 천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 24,5)며,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떠올려보라고 촉구합니다. 곧,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루카 24,7)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실현이자 구약의 약속의 실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652항 참조) 그러자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어 부활을 깨닫고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 안에서 기억해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활을 직접 확인한 이들도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부활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숙시켜 줍니다. 또한 신앙생활에서 잊지 않고 실천해야 하는, 자신의 삶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자 나의 삶을 돌아보는 양심 성찰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 봄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찾아 새롭고도 다른 하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시노드의 과정도 바로 우리 삶 안에서 함께 해주시는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각자의 삶 안에서 자신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 체험을 기억하고 서로 나눔으로써, 그 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신앙 안에서의 친교를 체험하게 됩니다. 나아가 ‘기억’의 의미는 신앙생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서도 ‘기억’의 의미를 되새길 때 우리는 변화된 현재로 미래를 희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이 시기에 10년 전 발생했던 가슴 아픈 사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0년 전 4월 16일, 우리 모두의 희생양처럼 세상을 떠난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기억의 결핍에서 우리는 2022년 10월 29일, 또 다른 희생자들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가 공동의 집인 지구를 무분별하게 대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상 기후를 발생시키는 병든 공동의 집 지구를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기에 과오를 반복하며 공멸의 길로 향해 가고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공동선을 실행해야 하는 정치공동체를 위해 각자가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이 시기에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사목헌장』 75항 참조) 주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써 주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이루어진 부활을 깨달은 이들처럼, 우리도 늘 기억하는 삶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영원으로부터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말씀과 성사로 기르시는 주님을 기억함으로 주님 부활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 이학주2024.03.25

‘서양 미술 800년전’서 만나는 종교회화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 소장품 선봬...‘띠를 손에 쥔 성모 마리아…’ 등 눈길 알바로 피레즈 데보라 ‘요한 세례자·대(大) 야고보와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1415년경. 14세기 종교회화부터 21세기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서양 미술 800년전’이 개막했다. 옛 거장들과 20세기 이탈리아 미술 작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로빌란트 보에나 갤러리 소장품으로 에드가 드가·마르크 샤갈·호안 미로·데미안 허스트 등 내로라할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서양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양한 종교회화도 감상할 수 있다. 종교 중심의 사회였던 14세기 회화에서는 주로 템페라와 금을 사용했다. ‘템페라’는 안료를 섞을 때 용매로 달걀을 이용해 매우 빨리 마르고 내구성이 강하다. 다시 말해 화가가 신속하게 작업해야 하고 표현할 수 있는 색에도 한계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산 야코포 아 무치아나 대가의 ‘채색된 십자가’, 파밀리아레 델 보카티의 ‘천사들과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알바로 피레즈 데보라의 ‘요한 세례자·대(大) 야고보와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등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알바로 피레즈 데보라의 작품은 이탈리아 피사의 작은 마을 포사반다의 산타 크로체 교회에 있는 제단화다. 양 옆에 성인을 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은 이 시기에 흔히 사용되던 구도로, 아기 예수가 성모 마리아의 손을 잡고 있는 모티브는 피렌체 화파의 특징이다. 프란체스코 그라나치 ‘띠를 손에 쥔 성모 마리아와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성 토마스·성 프란치스코·성 율리아노’, 1506-1516년경. 네덜란드 지역 화가들이 발명한 유화물감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양한 색상의 물감을 섞거나 덧칠하면서 세밀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전시장에서는 프란체스코 그라나치의 ‘띠를 손에 쥔 성모 마리아와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성 토마스·성 프란치스코·성 율리아노’를 눈여겨볼 만하다. 가로·세로 2m 안팎의 이 제단화는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면서 그녀의 띠(girdle)를 늦게 도착해서 자신의 죽음과 승천을 목격하지 못한 토마스 성인에게 떨구어 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13세기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대주교가 집필한 「황금 전설」에 실린 띠의 전설과 성모 승천을 하나의 이미지에 담은 것이다. 이 주제는 특히 토스카나 지역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성모의 띠 유물이 프라토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야코포 다 폰테의 ‘참회하는 성 예로니모’·마르티노 피아자 다 로디의 ‘목동들의 경배’·페르난도 야녜즈 드 라 알메디나의 ‘성가족’ 등도 전시되어 있다. 빛과 그림자가 극적인 대비를 이룬 카라바조 화풍이 많은 영향을 미쳤던 17세기 미술에서는 디르크 야스페르스 반 바뷔렌의 ‘성전에서 대금업자들을 몰아내는 예수’가 눈에 띈다. 눈부신 조명과 자연스럽고 역동적인 인물들의 묘사가 사실감을 더한다. 또 당시 가장 유명한 여성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에서 죄 많은 과거를 묵상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절제된 방식으로 담아냈다. 디르크 야스페르스 반 바뷔렌 ‘성전에서 대금업자들을 몰아내는 예수’, 1618년. 전시를 기획한 현대백화점 송한나(엘리사벳) 책임 큐레이터는 “예술이라는 정의가 있기 전부터 그림을 통해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전달했기 때문에 종교회화가 서양미술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며 “초기에는 온화한 아기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이 많았다면 유화물감이 확산된 이후에는 성경 속 인물, 주요 성인들의 삶을 표현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은 연대순으로 조성돼 있고, 전체 60여 점 가운데 종교미술은 초반에 자리하고 있다. 서양미술 800년을 얘기하기에는 작품 수가 적지만,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미술품이라 희소성에서 볼만하다. 전시는 여의도 더현대 서울 6층 복합문화공간 알트원(ALT.1)에서 백화점 휴관일을 제외하고 9월 18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문의: 02-325-1078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