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선 주일에 듣는 크리스마스 캐럴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29) 성경에서 자선은 신앙의 구체화이자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람을 대리하는 역할을 한다. 자선은 단순한 재원을 넘어 타인에 대한 친절·관대함·사랑의 행위를 포함한다.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토빗 12,8)고 한 성경 말씀처럼 자선은 주님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자 신앙행위다. 요한 세례자는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세리들은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말라고 했다. 군사들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라고 가르쳤다.(루카 3,11-13 참조) 돌려 이야기하면 당시엔 나누는 행위도 부족했고, 세리들은 세금을 이유 없이 더 걷었으며, 군사들은 강탈·갈취가 일상적이었다는 뜻이다. 자선은 사랑의 행위일 뿐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이며 문명화의 열쇠다.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미 야만의 단계를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부자들의 잉여분은 가난한 자의 필요분이다. 잉여분을 소유하는 자는 남의 몫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생물의 본능인 소유욕을 뿌리칠 수 있는 신앙심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자선을 베푸는 이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이다. 자선에 대한 예술작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스크루지 영감이 등장하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일 것이다.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하루 만에 초판이 매진됐으며, 현대에서 받아들여지는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를 정립하였다. 디킨스가 살던 즈음인 빅토리아 시대에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렸다. 부유층과 중산층은 재산을 증식하는 데 열중했고, 서민층은 금전적 문제에 시달리면서 명절을 기념하고 가족끼리 모일 기회가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이 작품으로 디킨스는 행복에 많은 부가 필요하지 않고 나눔을 통한 행위가 축복이라는 것을 일깨워줬고,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여러 행위를 정립해줬다. ‘모두가 즐기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든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것, 문가에 와서 노래를 부르는 캐럴 합창단,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 크리스마스 파티, 크리스마스 트리 모두 이 시대에 정립된 이미지다. 심지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조차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로 인해 유행하게 된 것이니 놀라울 따름이다. 디킨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영국의 아이들이 “이제 크리스마스는 없는 건가요?”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당시 찰스 디킨스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대변한다. 20년 전 TV 방영을 위해 제작된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면서 자선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크리스마스 캐럴(2004) //youtu.be/mgRZERZ_mIk?si=OgZB5PnQT1ZpE2s5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cpbc2024.12.11

구약 성경이 함축된 찬양가이자 탄원가[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7) 시편 시편은 구약 역사 전반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집약돼 있어 ‘구약 성경의 요약집’이라고 정의한다. 한 유다교 랍비가 시편을 읽고 있다. osb 제공 시편은 히브리어 타낙 성경에서 ‘세페르 테힐림’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우리말로 ‘찬양가들의 책’이란 뜻입니다.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은 시편을 성문서의 첫 자리에 배치할 만큼 중시합니다.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억하기 위해 기도와 전례 안에서 읊은 찬가가 바로 시편이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시편을 ‘프살모이’(Ψαλμοι)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현악기(하프)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프살모이를 그대로 옮겨 ‘프살무스’(Psalmu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시편(詩篇)’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시편의 다른 이름으로 ‘성영(聖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시편마다 두 개의 번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시편 번호를 기본으로 헬라어 칠십인역 시편 번호를 괄호 안에 별도 표기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시편 9-10편, 114-115편을 9편과 113편으로 하나로 묶고, 116편을 114-115편으로, 147편을 146-147편으로 나눴습니다. 그래서 시편 번호 표기가 차이 납니다. 시편은 고대 왕정 시기(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마카베오 시대(기원전 2세기)까지 1000년이 넘는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150편으로 수집 편집돼 정착된 찬양가 모음집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시편이 예루살렘 제2성전 시기에 사용되던 전례 성가집의 일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시편은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결정체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이스라엘의 종교 심성 전반이 시적 운율 안에서 결정을 이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시편에는 이스라엘의 율법과 역사, 지혜, 예언 등 구약 성경을 형성하는 주요 구성 요소들을 녹여놓았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시편은 구약 역사 전반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집약돼 있다고 말하며 ‘구약 성경의 요약집’이라고 평가합니다. “시편은 유배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억압의 상황과 부조리의 현장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어주던 민족 정서의 총체였다. 그 안에는 고통과 기쁨, 불신과 신뢰, 탄원과 찬양, 불안과 평화, 거부와 다가감, 불평과 감사 등 인간 내면의 모순된 감정과 세상에서 체험하게 되는 모든 정서가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24쪽) 시편 저자는 유다인의 전통 안에서 다윗 임금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윗 임금을 시편의 저자라고 간주하는 데는 150편의 시편 가운데 73편에 ‘레 다윗’이라고 표현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 다윗’은 ‘다윗의’라는 뜻뿐 아니라 ‘다윗에게’ ‘다윗을 위한’ ‘다윗에 관한’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은 전치사 ‘레’를 번역하지 않고 ‘다윗’으로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74편에는 ‘성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시편 137편은 바빌론 유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시편 전체의 저자를 다윗 임금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따라서 성경학자들은 시편 저자를 다윗 임금뿐 아니라 코라의 자손들, 아삼, 솔로몬, 제라 사람 헤만과 에단, 모세, 여두툰, 작가 미상도 있다고 봅니다. 코라의 자손들은 다윗 시대 용사로 활약했고(1역대 12,7), 성전 문지기로 봉사하기도 했습니다.(1역대 9,19) 레위 지파에 속한 이들은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했기에 시편의 많은 부분을 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삽과 제라 사람 헤만, 에탄은 다윗 시대 성가 책임자들이었습니다. 아삽은 시편 50편과 73─83편의 머리글에 이름이 나옵니다. 헤만은 1역대 2,5과 1열왕 5,11에 등장하는데 솔로몬 때 활동했던 유명한 현자로도 소개됩니다. 여두툰은 역대기와 느헤미야기에 등장합니다.(1역대 9,16; 25,1; 2역대 5,12; 느헤11,17) 그는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이로 시편 39편과 62편, 77편 머리글에 나옵니다. 시편 150편을 집대성해 편집한 이들은 유다 히즈키야 임금의 명을 받은 레위인들로 추정됩니다. “히즈키야 임금과 대신들이 레위인들에게 다윗과 아삽 선견자가 지은 노랫말로 주님을 찬양하라고 이르니, 레위인들은 몹시 기뻐하며 찬양하고 무릎 꿇어 경배하였다.”(2역대 29,30) 총 150편의 시편은 모세 오경처럼 다섯 권의 책에 수록돼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다섯 권의 노래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섯 권의 책은 서로 구별하기 위해 각 권의 마지막에 ‘아멘’을 표기해 두었습니다. 1권(1─41편)ㆍ4권(90─106편)ㆍ5권(107─150편)은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로, 2권(42─72편)ㆍ3권(73편─89편)은 ‘엘로힘’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크게 ‘찬양시’와 ‘탄원시’로 나뉩니다. 찬양시는 첫음절에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권고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노래합니다. 탄원시는 기도자가 하느님을 부른 다음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 앞에 하소연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08

그리스도교 윤리·보편성 설파한 호교 교부 유스티노[저는 믿나이다] (41) 성 유스티노 철학자이자 순교자이며 호교 교부인 성 유스티노는 ‘로고스’ 그리스도를 통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그리스도교의 윤리성 및 보편성을 드러냈다. 크레타의 테오파네스, ‘성 유스티노’, 이콘. 사도 교부 시대가 끝나고 2세기 중반부터 ‘호교 교부들’(Patres Apologetae)이 등장합니다. 당시 복음 선포와 선교를 통해 로마 제국 여러 지역으로 확산한 그리스도교는 다양한 계층의 견제 대상이 되고, 박해도 심화됐습니다. 그 시절 로마 제국 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근친상간하고,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소문이 파다했지요. 호교 교부들은 박해자들 특히 로마 제국 안에 퍼진 그리스도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그리스도인들의 결백을 제시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윤리 도덕적 삶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호교 교부들의 첫째 임무는 교회를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다신교 사회인 로마 제국 안에서 유일하신 하느님을 증거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호교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근거로 다신교의 우상 숭배를 철저히 거부했습니다. 호교 교부들의 둘째 임무는 그리스도교 교의를 체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당시 헬레니즘 철학자를 비롯한 지성인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저술을 통해 논리적이고, 이론적으로 증명해야 했습니다. 호교 교부들 대부분은 철학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교부들보다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투박하지만, 이론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설명하면서 신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알리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제일 잘 아는 철학 지식을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의 헬레니즘화가 아닌 ‘철학의 그리스도교화’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호교 교부의 대표 인물이 성 유스티노(100?~165년)입니다. 130년께 에페소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로고스’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철학적으로 풀이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힘인 로고스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안에 세상을 위한 새로운 법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드러나고 육화되신 로고스는 모든 실재와 그 이전의 모든 역사를 이해하게 해주는 원리라고 그는 강조합니다. 곧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는 창조·구원·종말에 이르기까지 전 구세사에 함께 하신다고 가르칩니다. 로고스를 우주론적 원리이며 그리스도로 바라보는 그는 후대 로고스 그리스도론의 기초를 놓았습니다.(「교부들의 그리스도론」 29쪽 참조) 더불어 그는 자신의 그리스도론을 증명하기 위해 창세기와 예언서 등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수난과 부활을 미리 알렸다며 그 예형들을 찾아 풀이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따르는 신약이야말로 구약의 완성이며, 구약보다 우월하다고 합니다. 유스티노는 또한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가르침과 예식의 우월성을 강조해, 교회를 박해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며 하느님의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보편성을 제시해 그리스도교를 선대 역사의 계승자이며 앞으로 오게 될 역사를 비추는 종교로 제시합니다.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유다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배웠으며, 그분을 제2위에, 예언하시는 성령을 제3위로 모시면서 합당하게 공경한다는 것을 우리는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불변하시고 영원하신 세상의 창조주 하느님 다음 제2위에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인간을 놓는다고 거듭 말하면서 우리가 어리석다고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신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며, 성년에 이르러, 모든 질병과 질환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이며, 그분이 미움을 받고 오해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시며,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갈 것이고,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려지며, 이 메시지를 전하는 몇몇 사람들이 그로부터 모든 민족에게 파견될 것이고, 이방 민족의 사람들이 그를 더 믿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이 예언자들의 책에 미리 예언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육화하시어 우리 구원을 위하여 살과 피를 취하셨기에, 우리는 그분 자신의 말씀이 담긴 기도로 축성되고 또한 우리의 피와 살에 자양분이 되어 주는 그 음식은 육화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배웠습니다.”(유스티노, 「첫째 호교론」 중에서, 안소근 역) 두 편의 「호교론」과 「트리폰과의 대화」를 저술한 유스티노는 165년 다른 6명의 동료와 함께 로마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8.27

하느님 경외함을 바탕으로 한 지혜와 처세술 담겨[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8) 잠언 잠언은 ‘하느님을 경외함’을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원이라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전인적 사람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성년식을 치르는 한 유다인 소년이 토라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잠언(箴言)은 ‘가르쳐서 훈계하는 말’ 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교훈이 되고 경계가 되는 짧은 말’을 뜻합니다. 구약 성경의 제1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은 잠언을 ‘미쉴레 쉘로모’라고 하며 ‘성문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구약성경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성경 제목을 그대로 옮겨 ‘파로이미아이 살로몬토스’(Παροιμιαι Σαλωμωντοs)라고 합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도 마찬가지로 ‘파라볼레 살로모니스’(Parabolae Salomoni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우리말 성경은 ‘잠언’이라고 표기하고, 교회 전통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이스라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1,1)으로 시작합니다. 지혜로운 솔로몬 임금을 잠언의 저자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솔로몬 임금을 잠언과 코헬렛, 지혜서, 아가의 저자로 등장시킵니다. 성경은 잠언의 저자 솔로몬을 ‘이스라엘 임금’과 ‘다윗의 아들’로 소개합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 이스라엘 임금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임금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개자로서 ‘하느님 신탁의 전달자’입니다.(잠언 16,10-15) 또 잠언의 저자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세속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있는 내용을 담은 잠언에 일종의 신성을 부여합니다. 다윗은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 백성에게 내리신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다윗의 아들’의 권위 아래 선포되는 잠언의 지혜는 매우 종교적인 신학을 통해 특히 이스라엘의 고유한 유일신 사상이 근본 바탕을 이룸으로써, 구약 성경의 잠언은 다른 잠언들과 구별된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주석 성경」 1708-1709쪽 참조) 잠언의 저자로 솔로몬을 내세우는 이유는 그가 통치자의 자질과 문학의 재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금언을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1열왕 3,3-14. 16-28; 집회 47,14-17) 또한 잠언 내용 가운데 3개의 묶음에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표제가 제시돼 있어서입니다.(잠언 1,1; 10,1; 25,1)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 임금을 잠언 전체는 물론이고 이 모음들의 실질적인 저자 또는 편집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아울러 솔로몬 임금이 잠언의 핵심 부분을 직접 지었거나 일부를 수집했을 개연성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이 솔로몬 임금을 중심으로 본격 시작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에 시편을 다윗에게 귀속시키듯이 솔로몬 역시 지혜 문학의 대부로서 잠언의 일부 또는 전체의 저자로 불릴 수 있는 정당성을 지닙니다. 잠언은 총 31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머리글(1,1-7)과 나쁜 친구들과 낯선 여자를 삼가라는 훈계(1,8─9,18), 376개에 이르는 도덕적 삶에 관한 솔로몬의 잠언집(10,1─22,16), 현인들의 첫 번째 잠언집(22,17─24,22), 현인들의 두 번째 잠언집(24,23-34), 히즈키야 임금의 신하들이 수집한 솔로몬의 두 번째 잠언집(25─29장), 마싸 사람 아구르의 잠언들(30,1-14 ), 수(數) 잠언(30,15-33), 마싸 임금 르무엘의 잠언(31,1-9), 훌륭한 아내에 대한 찬양(31,10-31) 9개의 잠언 묶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잠언의 내용은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원칙을 기반으로 세상을 성공적으로 사는 처세와 삶의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지혜로운 ‘전인적 사람’이 되라고 잠언은 권고합니다. 잠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경외함’은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원입니다. 지혜는 사람이 지녀야 할 자질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는 인간을 악과 죽음에서 보호하고, 하느님을 경외함과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좋은 것으로 인도합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도덕적 바탕이 요구됩니다. 곧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을 믿고 주님의 지혜를 얻어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죽음에 이르는 내리막길을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속임수와 편법으로 성공하려 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올바르게 행동해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당부합니다. 다시 말해 잠언은 지혜는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께서 당신 지혜로써 이 세상을 만드셨으니, 그 지혜의 길을 따라야 생명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잠언은 시편처럼 구약 성경 거의 모든 역사를 통해 형성되고 다듬어지고 전승됐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잠언의 뿌리를 이스라엘 공동체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두로 전승돼 오던 조상들의 지혜를 수집해 기록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잠언이라고 합니다. 이 수집 작업은 솔로몬을 중심으로 왕정시대 때부터 시작됐지만, 바빌론 유배 이후 31장의 잠언으로 편집됐다는 것이 일반 견해입니다. 잠언의 내용은 가톨릭 신앙에도 반영됩니다. 교회 이렇게 선포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제력과, 진리와 선을 향해 자신을 다스릴 능력을 주시는 창조주의 지혜와 선에 참여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954항)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15

가난과 기도의 삶 마치고 아버지 품에 안겨제3대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 선종 5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주례로 거행된 유수일 주교의 장례미사 중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 김상욱 신부가 고별식을 진행하고 있다. 가난과 겸손의 삶으로 교회에 헌신 군종교구와 작은형제회 발전 이끌어 주교단·작은형제회 사제·수도자 등 45년간 양떼와 함께했던 목자 배웅 제3대 군종교구장으로 군 복음화에 힘쓰고 사부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가난과 겸손의 삶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한 작은형제회 수도자였던 유수일 주교가 5월 28일 오후 1시 16분 선종했다. 향년 80세. 군종교구와 작은형제회 발전을 이끌었던 유 주교의 장례미사는 5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한국 주교단과 작은형제회 사제·수도자, 신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거행됐다.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은 45년간 하느님 따르는 목자로 양 떼들과 함께했던 유 주교를 추모하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유 주교님은 수도자로서 가난을 몸소 사셨고 늘 기도하는 모범을 보여주셨다”며 “한국 교회 군종교구 설립 이후 앞선 두 교구장 주교님이 기틀을 닦아놓으셨다면 유 주교님께서는 영적인 심화를 이루셨다”고 기렸다. 그러면서 “지상 삶을 복되게 마치고 천상에 드는 것은 현세에서 신앙의 삶을 충실히 산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천상에서 부활의 삶을 누리시리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194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주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후 1973년 작은형제회에 입회했다. 1976년 첫 서원, 1979년 종신 서원을 하고 1980년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시편 42,2)를 수품 성구로 사제품을 받은 후 수원교구 세류동본당 보좌·마산교구 칠암동본당 주임을 지냈다. 이어 정동수도원장, 명도원장, 수도자신학원 원장,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과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작은형제회 동아시아협의회 회장, 작은형제회 로마 총평의원 등을 역임하며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었다. 유 주교는 2010년 9월 15일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대성당에서 제3대 군종교구장에 착좌한 후 10년 6개월여간 군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유 주교는 방패 밑에 뒤집어 놓은 방탄모를 주교 문장에 넣었다. 이는 지상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홍수에 대비하고 있는 강한 ‘군종 방주’를 의미했다. 유 주교는 이러한 신념으로 국내외 군 사목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 평화를 위해 애쓰는 이들을 격려하고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특히 ‘끊임없이 기도하며’(1테살 5,17)라는 사목 표어 아래 군종교구장으로 봉직하는 동안 일관되게 성경 말씀을 중심에 둔 신앙,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삼위일체 신앙을 강조해왔다. 2014년 콜럼버스기사단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고, 이후 한국 콜럼버스기사단 영성 담당 사제로도 사목했다. 2021년 4월 9일 제4대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에게 자리를 넘기고 물러났다. 유 주교는 장례미사에서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 김상욱 신부 주례 고별식 후 천안 성거산 작은형제회 관구 묘지에 안장됐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박민규 기자 mk@cpbc.co.kr이상도 선임2025.06.04

매주 재소자 얘기 들어주고 함께 기도해 온 26년 의정부교도소 명예의 전당에 오른 봉사자 장영숙(데레사)씨 의정부교도소 봉사 26년차인 장영숙씨가 교도소에 설치된 명예의 전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시간 잠시 내어주는 게 전부 우선순위 교화가 아닙니다 하느님 자녀로서 동반하는 일” “하느님 보시기엔 다 죄인이지 않을까요. 같은 하느님 자녀로 동반하는 거죠.” 지난 5월 초 의정부교도소에 10년 이상 봉사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예의 전당’이 세워졌다. 그 가운데 종교 단체로는 천주교 교정사목위원회가, 개인으로는 장영숙(데레사)씨가 20년 이상 봉사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로 교도소와 인연을 맺은 지 26년 차인 장씨는 “특별할 것도, 내세울 것도 전혀 없다”며 “그저 시간을 잠시 내어준 것뿐”이라고 했다. 일면식도 없는 수감자를 위해 26년간 매주 빠짐없이 교도소를 방문한 그의 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도소를 향한 것도 “어떠한 보상이나 명예를 얻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했다. 장씨는 “금전적 여유가 있어 실질적으로 도와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기에 시간을 쪼개 함께하는 것”이라며 “하느님 자녀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먼저 봉사하던 자매를 따라 우연히 교도소에 발을 들인 장씨는 “첫 만남부터 위화감은 전혀 들지 않았고, 훈련소에 교육받으러 온 사람들처럼 느껴졌다”며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해주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교도소 여자 접견실 앞에 놓인 성모상 관리도 장씨가 한다. 성모상 머리에 화관을 씌우고, 주변에 핀 장미를 전지하는 등 교도소 안팎에서 신앙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봉사는 교리반과 레지오 마리애반, 성경 공부반으로 나뉘어 있다. 장씨는 레지오반에서 묵주기도를 함께 바치며 수감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범하고 왔을지라도, 장씨는 죄를 뉘우치는 그들 사이에서 하느님을 알게 하는 데 충실히 임했다. “‘어떻게 오게 됐느냐’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느냐’ 등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들어주고, 함께 기도하는 게 전부입니다. 편지도 주고받는데, 대부분 지난날의 반성과 가족 걱정입니다. 그렇게 함께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의 얼굴이 밝아지고 행동도 활발해지더라고요. 출소해서 고맙다고 밥 사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의정부교도소 봉사 26년차인 장영숙씨가 여자 접견실 입구에 설치된 성모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장씨는 수감자와 동반 외에 성모상도 직접 관리하고 있다. 장씨는 “봉사라 하면 위로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통해 인생공부를 하고 있다”며 “교도소 봉사를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긴 시간만큼 힘에 부치는 상황도 생겼다. 잘 살라고 작별 인사까지 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이곳에서 다시 볼 때 가장 힘이 빠집니다. 그렇다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잖아요. 숨 한 번 크게 들이쉬면서 삭히는 거죠.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해 오갈 곳 없는 상황을 보면 이해도 가지만 속상하죠.” 그럼에도 장씨의 우선순위는 그들을 교화시키는 게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같은 하느님 자녀로 그저 동반하는 일이다. “여긴 흉악범은 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는 거겠죠. 우리는 다를까요?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고 법에 저촉되지 않았을 뿐이지 저마다 죄를 짓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엔 똑같은 죄인일 겁니다. 누군가의 죄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그저 힘닿는 데까지 신앙 안에서 함께할 생각입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5.06.18

글을 시작하며: 바오로의 등장[월간 꿈 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 사도 성 바오로 중국 금(金)나라의 동해원(董解元)이 지은 「서상」(西廂)에 이런 구절이 있다.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眞所謂佳期難得, 好事多磨) 그렇다. 성난 파도가 훌륭한 뱃사람을 만든다. 잔잔한 바다만 경험해서는 절대로 1급 항해사가 될 수 없다. 쇠망치와 불의 단련을 받고 나서야 명검(名劍)이 탄생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그렇게 굳은 땅에 물이 괸다. 마찬가지로, ‘고난’(수난)이 승화될 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적 도약’(부활) 또한 가능하다. 이것이 ‘고통의 신비’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교회에 그 고통의 신비가 찾아온다. 출발은 환희의 신비였다. 예수 그 이후, 초기 교회는 급속히 성장한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7) 하지만 좋은 일은 많이 일어나도 문제다. 교회는 급격히 늘어난 신자 때문에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직접 관리를 맡았지만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협조자(부제) 7명을 뽑았다. 그들의 이름은 스테파노,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니콜라오스다.(사도6,5 참조) 여기서 우리는 스테파노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바로 최초의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스테파노를 주보 성인으로 모신 오스트리아 빈 슈테판 대성당 스테파노는 열정적으로 교회 일에 임했다. 그런 그를 유대 사회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고통의 신비’가 시작된다. 스테파노가 최고 의회에 끌려왔다. 고발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대 사회를 붕괴시키려 한 죄.’ 하지만 스테파노는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천사처럼 보이는 얼굴(사도 6,15)로 대사제 및 유대교 원로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사도 7,51) “여러분은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사도 7,53) 이 말은 유대인들에게 일종의 모욕으로 들렸다. 변호사에게 ‘당신은 법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수학 교사에게 수학을 모른다고 하고, 육군 장성에게 소총 사용법을 모른다고 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분노한 유대인들은 달려들어 스테파노를 포박했다. 그리고 성 밖으로 끌고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피가 튀었다. 이때 스테파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기도였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평판이 좋고 지혜와 믿음, 성령이 충만했던 스테파노(사도 6,3-5 참조)는 그렇게 잠들었다. 사도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요한의 형제였던 대 야고보 사도의 머리가 잘렸다.(42년) 끝까지 예루살렘에 남아 교회를 이끌던, 초대 기둥 중 하나(갈라 2,9)였던 알패오의 아들(마태 10,3) 소 야고보 사도도 모세의 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돌에 맞아 죽었다.(62년) 베드로 사도가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것(사도12,6-19 참조)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밖에도 예수 그 이후, 교회가 유대인들로부터 박해와 차별, 고립을 겪었던 정황은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사도 17,5;24,5 참조)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겪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1베드 4,14-16)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 신앙인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기반이었던 예루살렘 공동체는 와해 된다. 그럼에도 성령에 충만했던 사도들과 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은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1)라는 약속을 믿고 끊임없이 복음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을 코웃음 치며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여기서 그가 성경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사울(훗날의 바오로 사도)이었다. 바리사이파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그는 스테파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글 _ 편집부cpbc2025.02.06

하느님의 사랑 아래 현재에 충실하며 행복하게[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9) 코헬렛 코헬렛은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의 삶에 성실하고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지난 8월 리스본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함께 십자가를 지고 행렬하고 있다. OSV 구약 성경 제1 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은 ‘코헬렛’을 성문서로 분류해 ‘아가’ 다음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코헬렛이 무슨 뜻인지 명확지 않습니다. 다만 회중을 모으거나 집회를 이룬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는 직책이나 직무를 맡은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코헬렛을 ‘Εκκλησιαστηs’(에클레시아스테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말로 ‘회중을 가르치는 설교자’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칠십인역 명칭을 그대로 계승해 코헬렛을 ‘Ecclesiaste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구약 성경 제1 경전의 전통을 이어받아 ‘코헬렛’으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 성경 분류법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에 분류해 놓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공동번역 성서」에서 코헬렛을 ‘전도서’라고 번역해 표기한 바 있습니다. 책 이름이 코헬렛으로 불린 이유는 표제에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코헬 1,1)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교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 임금이 노년에 코헬렛을 지었다고 합니다.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은 ‘솔로몬’뿐이기 때문입니다.(코헬 1,1. 12 참조) 하지만 코헬렛의 실제 저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때인 기원전 3세기께 예루살렘에서 지혜를 가르치던 현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코헬렛에 아람어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히브리어가 나오고 있을 뿐 아니라 기원전 2세기에 일어났던 마카베오 항쟁에 관해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또 기원전 2세기에 편집된 집회서의 저자가 코헬렛을 이미 알고 있었고(집회 14장 참조),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제작된 쿰란 필사본에 코헬렛의 몇 구절이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코헬렛이 실제 저자에 의해 최종 완성된 것이 아니라 후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봅니다. 코헬렛은 표제(1,1)와 머리말(1,2-11), 코헬렛의 자기 반성과 인생에 대한 반성(1,12─2,26), 인간 현실의 부정적 면과 한계(3,1─6,12), 인간 실존 문제들(7,1─12,8), 맺음말(12,9-14)로 구분됩니다. 코헬렛은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라는 말로 시작해 같은 말로 끝맺습니다.(12,8) 이처럼 코헬렛은 모든 것이 허무라고 합니다. ‘허무’로 표현되는 히브리말 ‘헤벨’은 본래 ‘숨’, ‘입김’, ‘실바람’을 뜻합니다. 추상적으로는 ‘허무’, ‘허망’, ‘무상’, ‘덧없음’, ‘공허’, ‘헛됨’을 의미합니다. 간과해선 안 될 것은 헤벨의 숨은 뜻입니다. 헤벨은 곧 사라질 것 같은 무상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숨’은 모든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곧 히브리어 헤벨은 생의 갖가지 요인(부귀, 명예, 쾌락 등)이 숨처럼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조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숨과 마찬가지로 찰나적이어서 찰나적인 것을 삶의 본질인 양 좇고 영원히 소유하려는 노력만큼 무상하고 무의미한 것도 없음을 가리킵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180쪽) 코헬렛은 그러면서 태양 아래에서 인간의 삶이 왜 헛되고 허무한지를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과 인간 역사를 들어 설명합니다. 코헬렛은 인생이 허무한 이유는 인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해도 결코 그것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헬렛은 삶 자체를 싫어합니다.(2,17) 살아 있는 사람보다 오래전에 죽은 이들이 더 행복하고, 이보다 더 행복하기로는 아예 태어나지 않아 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불의와 허무한 일들을 보지 않는 인간이라고 합니다.(4,2-3) 코헬렛은 또 인간사의 모든 것은 정해진 때가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섭리이며 선물이라고 가르칩니다. 코헬렛은 지혜, 정의, 여자, 권력, 운명, 사회 관계와 같은 인간 실존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현실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현재를 가장 좋은 때로 인식하고 살아갈 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코헬렛은 ‘즐김’은 삶의 본질과 진수를 누리며 현재에 전적으로 충실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코헬렛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12,13ㄴ)며 모든 가르침을 마무리합니다. 정리하면, 코헬렛은 단순히 현실을 즐기는 쾌락주의를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성실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성실해야 하는 근거는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경외에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므로 주님께 대한 믿음을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 12,14)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22

북 청년 서울 WYD 초청, 北 의사 먼저 물어야야방한 유흥식 추기경 기자간담회북 청년 초청, 요란한 추진 금물25개 언론사 기자 51명 참석대통령 교황청 방문 이뤄지길 한국을 방문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북한 청년들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 처지를 이해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지, 상대방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데 불쑥 이야기하는 것은 올바른 협상 태도가 아닙니다.” 3일 서울 광진구 주교회의 강당에서 휴가차 방한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들과 만났다. 유 추기경은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북한 청년들의 참석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2014년 북한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며 “요란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북측 의사를 묻기 전부터 언론이 먼저 북한 청년들의 참가를 바란다고 보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는 “북한 청년들의 참가를 희망하고 기도한다”고 밝혔다. 유 추기경은 기자간담회를 시작하며 “한국에 오면 기자들과 직접 만나 편안하게 대화하고 싶었다”며 바티칸에서 여러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대답을 못 한 것에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간담회에 앞서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아침 미사 때 기자들과 한국 언론의 발전을 위해 기도했다고 전했다. 질문은 콘클라베 현장 분위기, 레오 14세 교황과 한국과의 인연,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의 역할과 업무, 12·3 계엄 관련 메시지 발표 배경 등에 집중됐다. 아울러 레오 14세 교황의 방북 가능성과 한국인 새 추기경 임명 가능성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2021년 6월 성직자부 장관에 임명된 유 추기경은 “전 세계 모든 신부님이 자기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양성하고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며 임명 당시 동료 브라질 주교에게서 받은 문자를 회고했다. 문자에는 “세상의 모든 신부님이 기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성직자부 장관의 임무이며, 한 명의 신부라도 얼굴이 기쁘지 않으면 그건 장관 책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 추기경은 “신부님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것이 제 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티칸에서 ‘웃는 추기경’으로 통한다. “한국 교회는 열린 교회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보기엔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이 많다”며 “마음이 열려 있을 때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들어올 수 있고, 마음을 열었을 때 신뢰하는 관계가 된다”고 강조했다. 유 추기경은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교황이 됐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분이 우리나라 남북을 위해 큰 일을 하실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며 “교황님이 미국 분이기에 북미 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미국인이라는 점에 대해선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들은 그분이 미국인이란 것은 생각 않고, 20여 년간 페루의 가난한 지역의 선교사였던 것을 높게 샀다”고 설명했다. 교황이 주교부 장관으로 일했기에 업무상으로도 자주 소통했다며, “굉장히 가깝게 지낸다”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라면, 레오 14세 교황은 조용하고 특별히 잘 들어주는 분”이라고도 전했다. 유 추기경은 “지난 6개월 사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시고 새 교황님이 선출되면서 교황청이 복잡했다”며 “한국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인터넷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고해성사를 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유 추기경은 “대통령님께 가능하면 올해 중 교황청을 방문하셔서 교황님을 뵀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드렸다”고도 밝혔다. 정치인들에게는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사회에 봉사하는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국민 통합을 이루려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자라나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성경 말씀으로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를 꼽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25개 언론사의 기자 51명이 참석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07.10

빵과 포도주에 현존하는 예수님과 하나되는 성체성사 [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34) 성체성사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되게 하는 가장 큰 은총의 성사이다. OSV 성체는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이시다. 밀가루 제병이 곧 예수님의 몸이요, 포도주가 곧 예수님의 피라는 이 교리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이 교리는 예수님 말씀이 아니라면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빵과 포도주 속에 예수님이 실체로 그리고 실제로 계시다는 교리는 성경에 근원을 두고 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 51)고 하셨으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 5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이러한 예고를 완성하시고 실현하셨습니다. ① 성체성사에 관한 성경 말씀의 예고 성체성사는 이미 구약 시대부터 예고되어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40년이란 긴 세월을 광야에서 지내면서 굶주렸습니다. 굶주리는 그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날마다 먹을 양식으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현세적 생명을 유지하며 하느님 백성으로 살도록 내려주신 양식이었습니다. 이 ‘만나’로써 하느님께서는 장차 당신의 새로운 백성이 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실 성체성사를 예고하신 것입니다. ②성체성사의 제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파스카 음식을 준비하시고,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마태 26,26-30; 마르 14,22-26; 루카 22,14-20; 1코린 11,23-25 참조) ③ 성체성사의 효과 세례성사로 받게 된 ‘성령 안의 생명’을 유지해 줍니다. 주님을 모시는 영성체로 주님께 대한 일치가 증대되며, 소죄를 용서받고, 대죄에서 보호받습니다. 또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치도 확고하게 해 줍니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공적 예배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되게 하는 가장 큰 은총의 성사이기 때문에 모든 성사의 중심이자 정점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은 다음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성체를 받아모심으로써 구원의 은총을 새롭게 하며, 신앙생활의 활력을 얻게 됩니다. ④영성체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을 영성체라고 합니다. 보통은 하루 한 번만 영성체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두 번까지 영성체할 수 있습니다. 서방 교회에 속한 가톨릭 신자들은 보통 빵의 형태로만(단형) 영성체를 하지만, 빵과 포도주 두 형태로 ‘양형 영성체’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형으로 영성체를 해도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전체를 받습니다. 살아 계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빵의 외형 속과 포도주의 외형 속에 전체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⑤ 거양성체 미사 중 가장 거룩한 순간입니다. 빵과 포도주를 축성한 뒤, 이를 드러내기 위해 축성된 성체와 성혈을 사제가 높이 들어 올려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박모란 교리교사cpbc2025.01.07

비교하지 않으시는 하느님[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03) 미움이라는 걸림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만큼 미움은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감정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운 마음이 생기고 그 감정이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 삶이기에, 미움이라는 감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람에게는 왜 미운 감정이 생기는 걸까? 우리는 왜 의지와 무관하게 생기는 미운 감정으로 인해 괴로워해야 하고, 타인과 불편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 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미워하는 감정,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성경을 펼치고 잠시만 살펴보아도 미움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타난다. 카인은 친동생 아벨을 미워한 나머지 죽이기까지 하였다.(창세 4,8 참조)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막내 요셉을 편애한다고 생각하였고, 미움 때문에 막내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 없었다.(창세 37,4 참조) 예수님께서도 미움 같은 감정과 그로 인한 괴로움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눈에 너무 크고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원수 사랑의 계명을 주셨다.(마태 5,43 참조) 미움이라는 피할 수 없는 감정과 예수님의 원수 사랑 계명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미움이 보편적인 감정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제나 수도자도 인간이기에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말로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곧 미움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움을 미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정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그러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겨남을 객관적으로 바로보고 인정할 필요는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는,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상대의 어떤 말이나 행동도 상처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마음 넓은 존재가 아니다. 이를 인정할 때 조금은 자유롭게 자신의 미운 감정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미움에 담긴 심리를 읽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여러 심리가 작동하지만, 미움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보다 ‘비교’ 때문일 것이다. 카인은 주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굽어보셨다고 생각했기에 화가 나고 미운 감정이 들었다. 야곱의 아들들도 요셉과 비교가 되었기에 질투를 느꼈고, 막내를 사막의 상인들에게 팔아버렸다. 미워하는 마음은 누군가 나보다 더 많이 갖고 있거나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느낄 때, 혹은 나에게 서운하게 대해줄 때 종종 생긴다. 그렇다면 미운 감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닐지.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 있다면 달라질 것이다. 내가 그토록 하느님의 사랑받는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인식과 확신이 없기에 비교하고 질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결코 비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하게 창조하신 세상 만물과 인간을 보시고 좋아하신다. 비교는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마음에서 생긴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이 다름은 비교할 것이 아닌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세상을 모자이크처럼 수놓기 위한 것이다. 이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모두라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사랑받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빛을 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웃과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민택 신부cpbc2025.06.10
![[송년특집] 바티칸 정원에 한복 입은 성모 모자이크 성화 걸렸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2/17/LJT1734417776550.jpg)
[송년특집] 바티칸 정원에 한복 입은 성모 모자이크 성화 걸렸다문화출판 결산 바티칸 정원에서 거행된 ‘평화의 모후 모자이크 성화’ 축복식을 찾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이 작품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진=이지혜 기자 2024년 가톨릭 문화출판계는 바티칸을 수놓은 한국 성모 성화, 신앙 선조들의 삶과 영성, 유명 성미술 전시, 순례 책 봇물, 반전 기원과 기후변화 경고 등의 키워드가 눈에 띄었다. 바티칸에 걸린 한복 입은 성모 성화 지난해 9월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에 이어 올해 9월에는 역대 교황들의 산책로인 바티칸 정원에 한국의 성모를 담아낸 모자이크 성화가 걸렸다. 가로 100㎝·세로 150㎝ 크기의 ‘평화의 모후 모자이크 성화’는 바티칸 정원에 설치된 12번째 성모 성화로, 한복을 입은 성모님이 지구를 든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희망을 담았다. 한국 성화를 그려온 심순화(가타리나) 작가가 그리고 모자이크 작업은 윤해영 작가가 맡았다. 복음화에 앞장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영성 교회 안에서는 복음화에 앞장선 신앙 선조들의 이야기가 연이어 출간됐다. 16~18세기 서양에서 동양으로 전달된 가톨릭과 그 신앙이 20세기 초중반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먼저 중국의 문화와 선교 역사에 괄목할 만한 발자취를 남긴 아담 샬(예수회, 1592~1666) 신부의 「주교연기」가 번역·출간됐다. 주님의 가르침이 탄생한 근원과 오늘에 이른 과정, 우리 인류에게 어떤 보탬을 주는가를 성리학과 불가·도가의 이론적 모순점을 비판하면서 전개했다. 초기 140여 년간 예수회의 중국 선교를 집중 탐구한 「동아시아로의 항해」, 이를 통해 이뤄진 동서양 간 문명교류를 분석한 「명청시기 예수회 선교사 한학의_史(역사)」도 방대한 자료를 자랑한다. 초대 조선대목구장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파리외방전교회, 1792~1835) 주교의 삶과 신앙 여정을 다룬 책도 출간됐다. 관련 심포지엄 자료집을 토대로 조한건(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신부가 엮은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알기」<사진>는 프랑스 출신 사제가 동아시아 대륙의 끝 조선으로 향하다 순교한 짧은 생애를 톺았다. 주교의 삶과 주요 영성을 묵상과 기도로 연결하는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살기」도 연이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안동교회사연구소(소장 신대원 신부)는 조선 선교로 시작해 시토회 수도자로 마친 깔래 신부(1833~1884)의 생애를 담은 「마리 깔래 신부의 생애」를 펴냈고, 인천교회사연구소(소장 장동훈 신부)는 ‘서해안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최분도(B. Zweber, 1932~2001) 신부, 강화도 주민들의 자립을 도운 전미카엘(M. Bransfield, 1929~1989) 신부 등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활동을 자료집으로 엮는 작업을 이어갔다. 제주의 양돈산업을 일구며 제주도민의 삶에 변화를 선물한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1928~2018) 신부의 삶은 창작오페라 ‘제주의 기적, 맥그린치’(작곡 이상철 신부)로 공연됐다. 카라바조 작 ‘그리스도의 체포’. 출처=우피치미술관 국내외 유명 성미술 전시 잇달아 2024년은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다채로운 성미술을 접할 기회가 잇따랐다. 연초에는 16세기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50여 점을 만날 수 있었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열어간 카라바조와 동시대 작가들의 회화 50여 점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계속 전시 중이다. 뒤러의 3대 목판화로 꼽히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대수난’·‘요한 묵시록’, 카라바조의 대표작 ‘그리스도의 체포’·‘성 토마스의 의심’ 등 작품 대부분이 성경의 주요 내용을 표현해 신앙인들에게 더욱 주목받는 전시였다. 우리나라 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굵직한 전시도 잇달았다. 조각계 원로 최종태(요셉, 92세) 작가 기증전은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렸고, 서양화가 고 조영동(루도비코, 1933~2022) 작가 기증전은 절두산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개최됐다. 작품 활동에서도 예술과 신앙의 조화를 이룬 두 작가는 150점 이상의 작품을 각각 서울대교구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기증했다. 또 천경자(데레사, 1924~2015) 화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장발(루도비코)·이순석(바오로)·장우성(요셉)·김기창(베드로)·문학진(토마스 아퀴나스) 등 국내 화단에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70명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렸다. 순례 도서 봇물 출판계에서는 유난히 순례 도서가 많이 출간돼 코로나19 엔데믹을 실감한 한 해였다. 이집트·이스라엘 등 구약과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지역부터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와 흔적이 가득한 유럽 전역까지 책으로 알찬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었다. 허영엽(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신부는 아브라함의 성조 시대부터 바오로의 선교 여행까지 성경 속 특정 장소에 대한 설명·등장인물·다른 구절과의 관계 등을 소개한 「성경 순례」<사진>를 펴냈다. 김평만(가톨릭대학교 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신부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아빌라의 성 데레사·십자가의 성 요한 등 스페인을 중심으로 세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유스티노 신부의 치유의 순례기 2」를 출간했다. 고 이창훈(알폰소, 1959~2023) 가톨릭평화신문 기자는 예수님의 생애를 좇아 이스라엘 성지들을 입체적으로 풀어쓴 「나자렛에서 예루살렘까지」를 유작으로 남겼다. 오랫동안 가이드로 활동한 김용백(스테파노)씨는 탈출기와 성가정의 행적, 여러 수도원을 탐방한 「너를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를 엮었고, 공지영(마리아) 작가는 요르단 암만을 시작으로 갈릴래아 호수·요르단강·나자렛·예루살렘 등을 순례하며 기록한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를 발표했다.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 김혜경(세레나) 연구교수가 쓴 「모든 길은 로마로」는 일곱 언덕으로 이루어진 작은 도시 로마의 유적지를 다각도로 살피며 자연스레 가톨릭과의 연결점도 제시했다. 반전·평화 기원 및 기후변화 경고 문화출판계에서는 평화를 기원하고 기후변화의 위기를 경고하는 다양한 활동이 펼쳐졌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3월 AP통신 취재팀이 초기 20일간 수집한 다큐멘터리 ‘마리우풀에서의 20일’이 전 세계에 공개되며 상기됐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평화롭던 도시가 한순간에 초토화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분단과 정전을 상징하는 비무장지대를 주제로 생태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음악을 통해 확산하고자 기획된 ’DMZ 오픈 국제음악제''는 두 번째 무대를 마련했고, 서울시합창단은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하이든의 ‘전쟁 미사’를 공연하기도 했다. ‘CCPP 기후환경 사진 프로젝트’가 기획한 전시에서는 해수면 상승·사막화 등 기후변화로 인한 인간과 동물의 아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지구의 모습을 생생하면서도 은유적인 표현의 사진으로 경고했다. 원주교구 사제이자 환경운동가인 박홍표 신부는 삶과 환경에 관한 생각을 95편의 시로 엮은 「파도는 침묵하지 않는다」를 펴냈고, 해양환경단체에서 활동 중인 이소연씨는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통해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착취적 현실을 고발하고 새 옷을 사지 않는 의생활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천주교·불교·개신교·원불교 성직자가 함께 펴낸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는 수많은 다름 속에서 평화를 노래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2.18

“단무지 사이소~”… 지식인 허물 벗고 하느님께 취직하다[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도시 빈민의 대부, 제정구 바오로 - (3) 판자촌의 구도자 양평동 판자촌 복음자리의 김수환 추기경과 정일우(오른쪽) 신부와 제정구(왼쪽) 1973년 서울대 복적… 청계천으로 이사 낮엔 단무지 행상·밤엔 야학 교장 소임 청계천 주민들과 양평동 집단 이주 영혼의 단짝 정일우 신부와 함께 살며 ‘더불어 살아가는’ 빈민운동 원칙 확립 옥바라지한 연인과 40일 기도 후 결혼 “판자촌서 나오면 취직시켜 주겠다” 중앙정보부로부터 솔깃한 제안 받고 판자촌에서의 삶 하느님 뜻으로 확신 충격적인 청계천 판자촌의 실상 ‘하느님 백성의 생존을 위해 저를 오롯이 바치나이다.’ 서울 청계천 송정동 판자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72년이었다.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활빈교회 야학교사가 되면서였다. 청계천 뚝방에 올라서서 내려다본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둑과 개천 사이의 공터에 다닥다닥 붙여 지은 판잣집, 가마니와 비닐로 덮고 두른 움막, 나무막대에 천을 걸쳐놓은 삼각 텐트, 콜타르 먹인 종이에 모래를 뿌려놓은 지붕, 처마에 매달린 빨랫줄과 옷가지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공중화장실, 회색빛 흙바닥과 얕은 시궁창⋯. 2400여 세대가 사는 청계천 판자촌은 산 자가 갈 수 있는 가장 막다른 골목, 즉 지상의 막장이었다. 그동안 그려왔던 민중의 실체와 서민의 삶이 그럴싸하게 포장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곳을 외면한 진리와 정의와 자유는 공허한 외침이었다. 이들이 제 모습을 찾고 제 목소리를 낼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오리라 여겼다. 흙바람이 부는 뚝방에 서서 그들과 함께하겠노라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1973년에 복적되면서 아예 청계천으로 이사했다. 활빈교회의 야학인 배달학당의 교장 소임을 맡았다. 처음에는 기도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엿장수를 돕거나 넝마주이를 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내 나름의 번듯한(?) 직업이 있어야만 했다. 단무지 행상에 나섰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청량리 단무지 공장에서 20여 관을 사서 수레에 싣고 다니며 팔았다. 창피하기도 하고 아는 사람을 만날 것 같기도 해서 ‘단무지 사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늦게까지 길거리를 헤매다 녹초가 돼서 돌아왔지만, 자존심이 상해 잠도 오지 않았다. 옷가슴에 학교 배지를 달고 옆구리에 책을 낀 서울대생과 밀짚모자에 까만 고무신을 신은 판자촌 총각의 모습이 교차했다. 사흘째 되던 날 밤, 비로소 내가 얼마나 교만과 허위에 젖어있는지를 통렬하게 깨달았다. 뚝방에서의 결심은 지식인의 그럴싸한 이념이자 이상이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손수레를 힘차게 끌며 칼칼한 경상도 억양으로 외쳤다. “단무지 사이소! 달콤하고 짭짤한 단무지가 왔심더.” 그날부터 청량리와 종로 일대를 누빈 수레는 일찌감치 속을 비워내고 청계천으로 돌아왔다. 당시 나는 판자촌 주민들과 공동체로 살기 위해 연세대 부설 도시문제연구소가 운영하는 ‘공동체 조직 전문가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수하자 활동비로 매달 2만 원씩 지급됐다. 11개월간 투옥됐을 때도 활동비가 지급돼 석방 후에는 그 적립금으로 구두닦이 터를 매입할 수 있었다. 소년 구두닦이 선배 둘이 나를 가르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독하다’는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노동이 곧 판자촌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자 기반이었던 것이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삶은 그해 말 정일우 신부와 한 달간 함께 지내며 더욱 활기를 띠었다. 청계천 판자촌 송정동 지역사회학교 배달학당 시튼 성인 전기 읽고 가톨릭 영성에 이끌림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자마자 청계천 판자촌에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당시 서울 명동대성당의 보좌로 있던 정일우 신부는 판자촌이 철거되더라도 주민들과 다른 곳으로 이주해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나 역시 원하던 바였다. 반면 정부 지원을 받은 활빈교회 측은 소금땅이라 당장 농사짓기 어려운 남양만 간척지로 이주할 것을 고집했다. 그들에게는 청계천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문제보다 지역 선교 프로젝트 지원금을 받아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실망스러웠다. 그때 우연히 손에 든 책이 「엘리사벳 앤 시튼 전기」였다. 1774년 미국 뉴욕의 성공회 집안에서 태어난 시튼은 남편 사후에 가톨릭으로 개종해 미국 최초의 가톨릭 교구 학교와 사랑의 시튼 수녀회를 창설했다. 지극한 사랑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던 그녀는 최초의 미국 출신 성녀로 시성됐다. ‘내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할 때 가난 속에서도 풍요로울 수 있으며, 깊은 고뇌 속에서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녀의 전기를 읽으며 내 가슴속 갈증의 실체를 깨달았다. 바로 사랑이었다. 개신교에서 중시하는 외적 능력보다 침묵, 명상, 기도, 내적 충만감에서 오는 사랑이 중요했다. 이후 나와 정 신부는 철거민들의 생존 근거를 마련하는 집단 이주에 힘을 쏟았다. 마침내 그해 11월 양평동 뚝방 판자촌으로 이주하기로 했다. 정 신부는 7평, 나는 4평짜리 집을 구입했다. 정 신부 집의 5평은 사람들이 와서 놀거나 공부하거나 미사 드리는 사랑방으로 만들었다. 1976년 2월 11일 김수환 추기경이 사랑방 축복 미사를 드린 후 명명했다. “포근하고 아늑한 보금자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는 복음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때 나는 영혼의 단짝이자 스승인 정 신부와 약조했다. 정부나 후원단체에서 지원받는 프로젝트를 하지 않고, 그냥 주민들과 이웃으로 살면서 그들이 하는 일을 함께하며 거들자는 빈민운동의 원칙을 세웠다. 주민들을 계몽하거나 계도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나를 버리고 비우는 빈손의 자유라고나 할까. ‘가짐 없는 큰 자유’라는 지인이 써준 서예 글씨가 잘 어울렸다. 양평동 판자촌 복음자리 현판식 함석헌 선생 주례 열린 제정구의 결혼식. 김수환 추기경과 제정구(가운데 오른쪽) 첫 딸 아름을 낳은 후에 부인 신명자(가운데 왼쪽)씨, 정일우(왼쪽 맨 끝) 신부. 시흥 복음자리마을에서 세 딸과 제정구 가짐 없는 큰 자유 심훈 소설 「상록수」 주인공 닮은 부부 1976년 4월, 서른세 살 노총각이던 나는 아홉 살 연하의 한신대 신학생인 신명자와 결혼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1973년 여름이었다. 당시 대학 새내기였던 그녀는 활빈교회에 종종 봉사하러 왔다. 배달학당의 교장이었던 나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내가 투옥되자 옥바라지해줄 만큼 매사에 적극적이고 마음씨 고운 그녀와 속마음을 나누게 됐다.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어 동지이자 연인이 됐다는 심훈의 「상록수」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과 흡사했다. 제정구는 학업을 중단한 박동혁이었고, 신명자는 여자신학교를 다니던 채영신이었다. 그러나 결혼은 순탄치 않았다. 신랑감이 판자촌에 사는 대학 제적생이자 전과자였으니 그녀의 부모가 반대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아내는 집에 감금됐고, 나는 정 신부 지도로 속리산 상환암에서 나흘간 피정했다. 그때 신부가 될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성직이나 혼인이나 모두 구도자의 길임을 깨달았다. 결혼이 내게 맞는 수행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40일간 기도하자고 했다. 공생활에 앞서 광야에서 40일간 지내며 기도했던 예수님의 길을 체험하고자 했다. 마침내 운명적인 결혼식 날, 주례를 맡은 함석헌 선생은 1시간 반에 걸친 주례사를 통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하늘을 향해 곧추서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구도자가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가르침이었다. 양평동 판자촌에서 신혼살림 우리 부부는 양평동 판자촌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신혼부부는 큰 방, 정 신부는 작은 방에서 함께 지냈다. 그곳에서 첫딸 아름이를, 후일 이주한 시흥에서 둘째 딸 아미와 셋째 딸 빈나를 낳아 키웠다.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취직하고자 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때 중앙정보부에서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판자촌에서 살지 않고, 정일우 신부와 함께 지내지 않는다면 당장 취직시켜준다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절묘했다. 나는 그 제안을 듣자마자 그 반대로 판자촌에서 정 신부와 함께 사는 것이 진정 하느님 뜻이라 여겼다. 그날 호주머니에 있던 전 재산 3000원을 털어 성경을 샀다. 그 첫 장에 큼직하게 기념 사인을 했다. ‘축 취직 기념(하느님께) 1976년 9월 1일’ 판자촌 공동체는 비록 손에 쥔 것은 없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인간적인 집단이었다. 누군가에게 붙들리거나 어딘가에 갇힐 염려가 없었고, 어떠한 간섭이나 속박 없이 제 할 일 하며 사는 자유로운 곳이었다. 구도자의 길이 따로 있나 싶었다. 수도원이나 사막이 아닌 판자촌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는 삶이 평화로웠다. 전지하신 하느님을 향한 다윗의 고백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시편 139,7) <계속> 김문태 힐라리오(한국평단협 수석부회장, 문학박사)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5.12.24

성모 신심으로 조국의 자유와 신앙 지켜낸 벨기에 할레[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49. 벨기에 할레의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 브라반트 고딕 양식의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 1341년부터 1467년 사이에 건축되었다. 수직선을 강조한 탑과 섬세한 창호, 부드럽게 흐르는 석조 리듬이 특징이다. 외벽의 곡선 부벽과 창틀의 비례는 장식보다 균형미를 중시한 브라반트 장인의 미적 감각을 드러낸다. 1946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준 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각 나라의 국기와 수도를 잘 외웁니다. 삼색기가 워낙 많아 헷갈릴 법도 한데, 묘하게도 색과 모양만으로 구별해 냅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어른들과 달리 색과 형태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유럽의 삼색기는 모두 같은 듯 보이지만, 각기 다른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의 세로형 파랑·하양·빨강은 혁명의 이상을, 독일의 검정·빨강·노랑은 민족의 자유와 통일의 염원을 상징합니다. 오늘 소개할 나라인 벨기에의 검정·노랑·빨강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던 때, 독립군이 들었던 깃발의 색에서 유래했습니다. 1830년 여름, 브뤼셀에서 민중들은 지금의 벨기에 국가인 ‘브라반트인의 노래’를 부르며 브라반트 공국의 황금 사자 문장(紋章)에서 따온 색으로 된 삼색기를 흔들며 독립을 부르짖었습니다. 브라반트는 오늘날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남부에 걸친 지역입니다. 브뤼셀을 중심으로 루벤과 메헬런 같은 상업 도시들이 중세 길드와 대학, 교회와 수도원으로 형성된 자치의 전통 위에서 북해의 중요한 허브로 발전했지요. 그 과정에서 가톨릭 신앙은 도시 공동체의 정체성이자 버팀목이 되었고, 그 신앙이 켜켜이 쌓인 대표적 도시가 할레입니다.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의 종탑. 회백색 사암으로 만든 정사각 형태의 71m 높이 5층 탑이다. 꼭대기 층에는 54개의 종으로 구성된 카리용이 있다. 탑 안쪽 정문 위에 있는 성모상은 원래 성당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브라반트의 성모 성지 할레 브뤼셀 인근의 할레는 센강 상류의 마을로 강을 쉽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대부터 여러 도로가 이곳을 지나쳤습니다. 7세기 몽스 수도원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면서 일찍이 성모 신심이 싹텄습니다만, 본격적인 성모 공경은 13세기 후반에 시작됩니다. 튀링겐의 성 엘리자베트가 브라반트 공작 딸에게 선물한 성모자상을 성당에 모시게 된 것을 계기로 할레는 성모 성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지요. 1335년 아비뇽에 모인 18명의 주교가 할레 순례자들에게 40일간의 대사를 부여하기로 합의할 만큼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1344년에는 순례자 사목을 돕기 위해 ‘성모 마리아 형제단’이 설립됩니다. 형제단의 기록부에는 이곳에서 성모님의 은총으로 일어난 59개 기적이 담겨 있습니다. 중세 초 형제단은 길드 중심으로 형성되어 성당이나 수도원 일을 돕거나 후원했는데요, 오늘날 본당에 있는 평신도 신심 단체의 원형에 가깝습니다. 성모 마리아 형제단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형제단 중 하나로 지금까지 대축일에 성모자상을 운반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세례당의 공 모양 탑과 세례대. 구체는 1440년경 제작된 것으로 뒤편 장식벽 뒤 남쪽 통로 다락방을 지나 성당 밖으로 나간 뒤 들어갈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이를 몰라 사람들이 이곳에 몸을 숨기기도 했다. 브라반트 고딕의 정형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 브뤼셀을 벗어나면 이내 기차 창밖으로 좁은 하천이 흐르는 낮은 구릉이 펼쳐집니다. 붉은 기와지붕의 농가, 밭두렁을 따라 길게 늘어선 미루나무는 브라반트의 전형적인 풍경이지요.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곧 할레역입니다. 역에서 나와 센강을 건너 도심 쪽으로 걸어가면 큰 광장인 ‘그로트마르크트(Grote Markt)’가 나옵니다. 시청 맞은 편에 회백색 사암의 묵중한 종탑이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납니다. 14·15세기 지어진 고딕 양식의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입니다. 종탑 옆에 공 모양의 슬레이트로 덮인 구조물은 세례 당의 탑 역할을 합니다. 브라반트 고딕 언어로 세례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의미를 표현하려 한 것 같습니다. 탑 내부로 들어가는 길이 외부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로여서 실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게 쫓기던 사람들을 구원하는 은신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남쪽 포털로 들어가겠습니다. 천상 모후의 관을 쓰는 성모님을 묘사한 팀파늄이 있는 문입니다. 성당 안의 공간은 높고 길게 뻗어 있지만, 양쪽은 어둡고 중앙 통로만이 밝게 빛나서 시선이 자연스럽게 제대 중앙으로 향하게 됩니다. 높이 솟은 기둥들이 팔각형 기둥머리를 지나 교차 아치 천장으로 이어지고, 교차점마다 장미와 잎 무늬, 성인상의 작은 부조가 있습니다. 브라반트의 석공들이 다듬은 돌을 통해 소박하지만 단단한 신앙의 미감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바실리카 주 제대와 할레의 검은 성모자상. 내진 기둥에 열두 사도 조각상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성모 마리아의 신비와 성경 속 장면들, 성 마르티노의 생애가 묘사되어 있다. 목각 성모자상은 높이 95cm, 폭 25cm의 크기로 원래 은도금 조각상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튀링겐의 성 엘리자베트가 브라반트 공작에게 선물했고, 훗날 공작 딸인 마틸다가 1267년 당시 성모 소성당에 봉헌하면서 순례가 시작됐다. 트라제그니 소성당의 성 마르티노 제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제단은 1533년 카를 5세 황제가 얀 모네에게 주문 제작한 것으로 일곱 성사가 메달 형식의 제대화로 묘사되어 있고, 그 위로 성 마르티노와 교부들, 복음사가들이 조각되어 있다. 신앙의 지킴이 ‘검은 성모자상’ 성당 곳곳에 성모님의 상징인 ‘신비스러운 장미’가 보이지만, 주역은 주 제대의 ‘할레의 검은 마돈나’입니다.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님 모습인데요. 둘 다 왕관을 쓰고 있지만 모자간 친밀한 유대감이 물씬 드러납니다. 성모자상은 부분적으로 은으로 덮인 흔적이 보입니다. 그런데 왜 검게 됐을까? 할레는 1489년·1580년 두 번의 포위 공격을 받았는데, 전승에 따르면 기적적으로 성모님이 나타나 포탄을 옷으로 받아내면서 도시를 보호했다고 합니다. 그때 시커먼 포연에 휩싸였기에 검게 됐다는 거지요. 당시 멀쩡한 포탄 30발이 현재 성당 종탑 아래 보관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오랜 세월 향 연기와 산화로 표면이 그을어 검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신자들은 그 변화를 하느님의 표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죠. 이런 신심 덕분에 15세기 중엽에는 교황청에서 대사를 부여할 만큼 순례 열기가 높았습니다. 16세기 네덜란드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 맞부딪힌 최전선이었습니다. 네덜란드 북부는 신교 지역이 되었고, 1566년의 성상 파괴로 플랑드르의 많은 도시에서 성상·제대·유리가 훼손되었습니다. 전에 소개한 스헤르펜회벨 성지는 그 재건의 상징이었죠. 이와 달리 남부 브라반트 지역은 가톨릭 신앙을 처음부터 지켜냈고, 할레의 성모자상도 공동체의 보호로 무사했습니다. 역사 서술은 몇 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의미의 층위는 깊습니다. ‘지켜냈다’라는 기억은 이후 공동체의 정체성이자 힘이 되었고, 대축일마다 할레의 광장은 전례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격변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무엇을 지켜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순례 팁> ※ 브뤼셀에서 할레까지 약 20㎞로 기차로 20분, 역에서 바실리카까지 도보로 10분. 브라반트 풍경을 즐기려면 버스 이용.(No. 170~ 172, HALLE Basiliekstraat 하차) ※ 성 마르티노 바실리카 미사 : 주일 및 대축일 10:00·18:00, 평일 08:00. 성당 옆 순례자 센터, 바실리카 지하 소성당에 박물관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 cpbc202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