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인 욥의 십자가가 갖는 의미는[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6) 욥기 욥기가 제시하는 고통에 대한 긍정적 자세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 교의를 잘 설명해 준다. 레오 보나, ‘욥’, 유화, 1880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욥기의 히브리어 유다교 타낙 성경 명칭은 ‘욥’이며, 성문서로 분류돼 있습니다. 히브리어 ‘욥’은 우리말로 ‘미움받다’, ‘증오하다’는 뜻으로 하느님께 저항하는 욥의 모습과 그로 인해 시련을 겪는 욥의 처지를 반영한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욥은 ‘돌아오다’는 뜻의 아람어 ‘아바’에서 유래하기도 해 ‘하느님께 돌아온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또 욥기를 헬라어 구약성경 「칠십인역」은 ‘ΙΩΒ’으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JOB’이라 표기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펴낸 가톨릭 「성경」은 ‘욥기’라고 표기하며 가톨릭 성경 분류표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에 포함해 놓았습니다. 욥기는 하느님께 축복을 받은 의인이라고 여겨지지는 흠 없는 사람인 욥이 아무 이유 없이 사탄의 시험대에 올라 갖은 시련을 겪다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신비를 들은 후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모든 것을 이전 이상으로 회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욥기는 시련을 겪는 욥(1─2장), 욥과 테만 사람 엘리파츠,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초파르와의 대화(3─31장), 부즈 사람 바라크엘의 아들 엘리후의 연설(32─37장), 주님과 욥의 대화(38,1─42,6), 모든 것을 회복하는 욥(42,7-17)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욥기가 고통을 겪는 한 의인에 대한 고대 민중 설화를 토대로 엮어진 책이라고 봅니다. 이 고대 민중 설화는 기원전 2000년대 말기 근동 지방의 현인들 사이에 말로 전승되다 기원전 11~10세기 사무엘-다윗-솔로몬 시대 때 히브리어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유다인들 중 어떤 이가 이 민중 설화를 토대로 당시 잘 알려진 수난받는 의인 욥 이야기(에제 14,14. 20 참조)를 토대로 욥기를 엮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욥기는 산문체와 운문체, 문화 배경과 종교 개념이 다양하게 드러나 단 한 번에 저술되지 않았습니다. 그 예로 욥기에는 하느님을 ‘야훼’ ‘엘’ ‘엘로하’ ‘샷다이’ ‘아도나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욥기가 적어도 세 과정을 거쳐 엮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먼저 욥의 이야기가 말로 전해져 내려왔고, 다음으로 이 민중 설화를 다른 이야기와 합치는 중간 편집 단계를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욥의 시련 이야기에 욥과 세 친구의 대화, 하느님과 욥의 대화, 욥기 28장의 ‘지혜 찬가’가 추가됐으리라 추정합니다. 끝으로 최종 편집자가 엘리후의 연설을 삽입해 욥기를 세상에 내놓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욥기가 엮어진 시기를 기원전 5~1세기 사이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럼 욥기의 최종 편집자는 누구일까요? 성경학자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하던 유다인 중 예레미야의 고백(예레 11,18-20; 12,1-4)을 잘 알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불렸던 시편이나 유다 임금들의 궁전에서 전해지던 잠언들을 외우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욥기의 저자가 예레미야의 제자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욥기는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돼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배자들이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작품입니다. 욥기는 모세오경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유다인들에게 무엇이 지혜인지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욥기의 핵심 주제는 ‘하느님과의 진정한 관계성’입니다. 욥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련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시련을 받았습니다. 욥기가 제시하는 고통에 대한 긍정적 자세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잘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는 고통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니라 어떤 고통 중에도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써 그 고통을 극복하게 하시고, 결국 고통을 넘어서는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종말론적 희망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143쪽) 욥기는 하느님을 창조주이며 역사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또한 욥기는 하느님의 권능이 모든 피조물을 향한 각별한 배려와 사랑으로 드러난다고 가르쳐줍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축복과 피조물들을 향한 선의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욥기는 인간의 지식이 제한적이고 단편적이며 항구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촉구합니다. 더불어 지혜는 오직 하느님께 속해 있고 인간의 지식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성경학자 김정훈 신부는 욥기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욥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솔직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드러내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신뢰는 인간을 더욱 굳건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이끌었으며,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변함없는 신앙은 세상과 역사의 현장에서 인간을 하느님의 동반자가 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시서와 지혜서」 46쪽)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01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4/01/bPZ1743493312684.jpg)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구요비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렘브란트 작 ‘간음한 여인과 예수’ 부분, 1644년. 오늘 예수님께서 만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불충실한 이스라엘 백성을 은유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호세아를 비롯한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契約)을 신랑과 신부 사이의 혼인 계약으로 묘사합니다. 이에 따라,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사랑을 멀리하여 계약에 불충실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신랑이신 주 하느님께 불충실한 간음으로 규정합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 즉 계속 집을 나가 외간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아내를 달래고 집으로 데려오는 삶을 돌이켜보다가, 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그러하다고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호세 2,16.21-22) “하느님의 사랑은 분명히 에로스라 할 수 있지만, 또한 전적으로 아가페이기도 합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9항)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냉혹한 재판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신랑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묵시 19,7-9 참조)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예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러 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예수님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이 무한한 사랑에 우리가 직접적으로 응답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한 4,20)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가 응답하는 길은, 우리가 관계 맺고 사는 이웃에게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푸시는 자비와 용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치 기준의 중심은 인간의 자기 결정권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머니 복중에 있는 태아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이라는 무한한 존엄성이 무시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속한다는 가치관이 팽배합니다. 이런 시대의 사조는 남녀 간 상호 존중과 인격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야 할 결혼 생활과 가정 생활에 다툼과 이혼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 응답하는 길은 인간 삶의 중심을 인격적인 존중과 사랑에 두고 이 사랑의 원리를 살아갈 때 가능할 것입니다. 즉, 그 어떠한 극한적인 실존 상황 안에서도 사랑을 최고의 가치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구요비 욥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cpbc2025.04.02

첫 두드림[월간 꿈 CUM] 중독과의 만남 (1) “여기가 A.A. 맞나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 모임을 줄여 A.A라고 부른다. 이 모임은 단순하게 설명하면,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단주하기 위한 자조 집단이다. 전 세계 11만 8000개의 그룹, 한국에도 186개 그룹의 모임이 매주 있을 만큼 전 세계 최대 자조 집단 모임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모임의 장소이다. 당연히 알코올중독병원에 있어야 할 모임이 지역사회 내 복지관, 주민센터 그리고 성당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필요로 하는 모임이 성당에서 하고 있다니. 그것도 내가 당시 사목하고 있던 이주사목회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성당의 회합실이라니.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한 필수조건 중 하나는 소논문 2편을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에 투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만만치 않다. 이를 위해 어떤 분야를 연구할까 고민하기보다는 어떤 연구를 내가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학생으로서 중독은 가장 구미에 당기는 분야이다. 논문지도 교수님께서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장으로서 중독 연구를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누군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가.’ 문 선생님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상상 속에 그리던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환자였다. 짧은 머리에 산전수전 다 겪으신 두툼한 얼굴, 잠바를 벗으면 문신은 몇 개 그려져 있을 것 같은 단단한 체격, 밖으로 나오시던 도중 잠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시며 마주친 그분의 첫인상은 내 상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혹시 신부님이세요? 그런데 신부님께서 무슨 일로 이곳에.” 순수한 어린양의 표정과 해맑은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애쓰고 또 애썼다. 무엇 때문에 이 모임에 참석을 했으며, 여기 계신 분 중에서 단 한 분도 원치 않으시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등등 생각보다 길었던 설명 뒤에 돌아온 짧은 한마디가 이 모임의 합격점을 받았음을 확신했다. “저기에 앉으세요.” 모임 15분 전 미리 와 계셨던 다른 두 선생님은 문 선생님의 합격점을 번복할 마음보다 오히려 신부에 대해 궁금했던 그동안의 질문들을 털어놓으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셨다. 그 순간, 이 두 분은 가톨릭 신자분이시고 문 선생님은 부처님과 닮으셨으니 불교를 믿겠구나 확신하였지만 왜 이리 자꾸만 빗나가는지, 알고 보니 문 선생님은 열심한 천주교 집안이었고, 다른 두 분은 무신론자였다. ‘그래! 중독으로 소논문을 작성해야지!’ 이러한 결심은 곧바로 사람을 만나는 일로 연결된다. 신학교에서 주로 하는 연구방법인 교회법을 고찰하거나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아닌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찾아내는 것이 사회복지에서 질적 연구로 논문을 쓰는 방법이다. 이로써 벌써 두 가지나 중독으로 논문을 쓰는 데에 충분조건을 채웠다. 하나는, 신부가 성당 회합실에서 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뭐 어려울까. 또 하나는, 신부인데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이 뭐 어려울까.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이 모임을 통해 깨달았다. 자꾸만 로만 칼라를 만지작거리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운다. ‘신부가 성당 회합실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매일 주차하는 공터에 있는 회합실에 들어가는 것이 이리 큰 용기를 필요로 하다니…. 휴.’ A.A모임은 공개와 비공개 모임으로 나뉘는데 이곳은 비공개 모임이다. 공개 모임과 달리 비공개 모임은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면 참석할 수 없다. 곧 모임 참석자 중 한 명이라도 허락하지 않으면 이 모임에 참석할 수 없으며, A.A모임은 어떤 종교적인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전정보가 추운 겨울날 땀으로 긴장하게 만들었다. 괜히 술에 취한 아저씨에게 창피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너처럼 우린 편안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야!’ ‘우리를 연구하고 싶어 인터뷰를 하겠다고! 우리가 무슨 동물원에 원숭이야!’라고 소리치는 분은 안 계시겠지? 설마. 그래도 성당 회합실인데 신부에게 그렇게까지 하실 분은 없을 거야.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본다. 그 순간 처음으로 마주친 문 선생님! (계속) 글 _ 이중교 신부 (야고보, 안양시 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시설장, 사회복지학 박사) 2009년 사제품을 받았다. 2021년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여성 알코올의존자의 재발과 회복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안양시 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시설장이며, 서강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cpbc2025.07.02

희년, 어떻게 맞이할까희년에 함께하면 좋은 책들2025년은 희년(禧年, Jubilee)이다. 희년은 가톨릭교회에서 신자들에게 특별한 영적 은혜를 베푸는 성스러운 해로 성년(聖年)이라고도 한다. 희년이 정확하게 무엇이고, 언제 시작됐으며, 신앙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 속에 답이 있다! 희망의 순례자들 / 김정용 신부 / 바오로딸 “희년은 2024년 12월 24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고, 202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성문을 닫는 것으로 끝난다. 한국 교회는 2024년 12월 29일 교구별로 개막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5년 12월 28일 폐막 미사로 마무리된다. 성문이 열리면, 순례자들은 희년 동안 대사를 받을 수 있다.”(13쪽) 「희망의 순례자들」은 희년의 역사부터 희년의 요소, 희년 대사를 얻기 위한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안내한다. 희년 제도는 근원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노예살이로부터 해방하신 하느님에게서 비롯된다. 즉 이집트 땅에서 해방하신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체험과 기억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건이며, 동시에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방향과 지침을 의미한다. 우리 교회가 희년의 정신을 기억하고 증언하며 현실화하고자 하는 이유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지내는 2025년 희년의 뿌리가 놓여있다고 설명한다. “근본적으로 희망의 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나서는 여정이다. 교회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이다. 인간이 둘러쳐 놓은 모든 장벽, 모든 경계, 곧 모든 형태의 차별과 혐오의 문화, 배타성과 불평등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50쪽) 저자 김정용(광주대교구) 신부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기초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2025 희년 여정 노트 / 가톨릭출판사 “‘희년(Jubilee)’이라는 말은 숫염소의 뿔로 만든 ‘요벨(yobel)’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법에 따라 50년마다 한 번씩 희년의 해가 돌아오면 요벨을 불어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고 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모든 부채를 감면받고, 노예는 자유인이 되도록 했습니다.”(‘2025년 희년을 맞이하며’ 중)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4년 5월 9일 2025년 정기 희년을 공식 선포하는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를 발표했다. 「2025 희년 여정 노트」는 이를 토대로 이번 희년의 주제와 의미를 묵상할 수 있는 소책자다. ‘삶의 기쁨’ ‘미소는 희망의 씨앗’ ‘단순한 눈길’ 등 매일 한 장씩 희망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희망과 관련된 성경 구절, 최민순 신부의 「시편과 아가」 구절도 포함돼 있다. 뒷부분에는 희년 전대사와 희년 행사 일정도 수록했다. 쥬빌레오 로마 / 김세웅 / 스콜라란 “성년은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존재하던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중략) 예루살렘 성지로 순례를 떠나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 절망에 빠진 신자에게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구약 히브리 백성의 전통에서,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는 희년의 개념을 끌어올려 용서와 구원을 약속하는 성년을 선포함으로써 성령께서 새로이 교회를 이끄시도록 길을 열었습니다. 교황은 로마를 방문하는 신자에게 전대사를 주었는데⋯.”(21쪽) 올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희망하는 순례지는 이스라엘과 함께 이탈리아, 이탈리아 안에서도 로마일 것이다. 희년 전대사를 위해 로마의 4대 대성전, 곧 성 베드로 대성전·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성모 대성전·성 바오로 대성전을 순례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쥬빌레오 로마」는 1300년부터 시작된 가톨릭 희년의 역사를 따라 각 희년과 관련된 교황의 업적과 시대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에서 바티칸박물관과 성지순례 안내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세웅(디오니시오) 씨가 집필해 교회사적인 깊이와 현장감이 맞물린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 / 한경아 / 성바오로 지난해 11월 시작된 ‘한국 교회 축성생활의 해’가 2025년에도 이어진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세상 안에서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증언해 온 성직자와 수도자 11명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우리나라에 파견돼 한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안동교구 두봉 주교, 30여 년간 방황하는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고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허보록 신부, 수많은 강의와 피정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웃음을 전하고 있는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이미숙 수녀 등 저마다의 소명도, 하느님 체험기도 다양하다. 미술전문기자로 활동했던 한경아(아녜스) 작가가 엮었다. “여러 방송에 나갔고, 특히 ‘유퀴즈’ 출연 이후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누가 찾아올지 몰라요. (중략) 이러한 일들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주님께서 우리의 만남을 허락하셨고 나아가 원하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믿어요. 그래서 고마워요. 언제 어디서 누가 찾아와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요.”(‘안동교구 두봉 레나도 주교’ 중) “힘들 때도 있습니다. 후원자의 배려로 회사에 입사한 청년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회사에 손해를 끼칠 때도 있어요. 안타깝지만 후원자와의 관계도 끊어지곤 합니다. (중략) 늘 예수님께 아이들의 상처를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파리외방전교회 허보록 필립보 신부’ 중) 별빛 마음 예수님 마음 / 아우로라 마니 / 김희중 대주교 옮김 / 생활성서 「반항 천사와 충실 천사」를 시작으로 「별빛 마음 예수님 마음」·「하느님 나라는 희망이에요」 등 아이들을 위한 생활성서사의 가톨릭 교리 입문서 ‘뭐예요?’ 시리즈가 완간됐다. 책은 각각 ‘죄가 뭐예요?·성탄이 뭐예요?·비유가 뭐예요?’라는 주제로 전개된다. 전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가 엄선해 우리말로 옮긴 이 책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고 성경의 주요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 그 가운데 「별빛 마음 예수님 마음」은 성탄의 참의미를 일깨워주는 교리 입문서로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신데도 가난하게 태어나셨어요.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에요!”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2.24

신앙에 소홀했던 어머니를 변화시킨 소년[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 (7) 성체신심 지난 5월 미국 뉴욕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에서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의 어머니 안토니아씨가 아들의 생전 성체 신심을 전하는 강연에 참석한 신자들이 아쿠티스 액자를 든 채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복자의 성체 신심을 기리며 성체조배에도 임했다. OSV 성체와 십자가 ‘성체성사’(Eucharistia)는 본래 ‘감사’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합니다. 이 감사의 전례가 세워진 것은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때입니다. 또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 이는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하는 성찬 제정과 축성을 통해 인류를 대신하여 당신 자신을 십자가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희생이 재현됩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자신도 온전히 봉헌합니다.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는 성체와 십자가가 ‘같은 말’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십자가 죽음에서처럼 성체 안에서도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순수한 사랑을 보았기에, 그는 주님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카를로에게 성체성사가 없는 날은 마치 태양도, 빵도, 웃음도, 휴식도 없는 날과 같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씀과 성체조배 카를로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말씀을 자주 묵상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어좌에서 내려와 동정녀의 태 안에 드신 때처럼 날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그분께서는 날마다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 그분께서는 실제로 육(肉) 안에서 거룩한 사도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셨듯이 지금도 축성된 빵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 그분의 육신만을 보았지만 영의 눈으로 그분을 보고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육신의 눈으로 빵과 포도주를 볼 때, 그것이 참되고 살아 있는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임을 보고 또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을 믿는 이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분께서 몸소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하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카를로는 아시시와 베르나 성지에서 배운 대로 성체조배를 통해서도 주님을 만났습니다. 침묵 안에서 드리는 성체조배 때 영혼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카를로는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희미한 빛이 어두운 방에 들어오면 공기 중의 먼지를 육안으로도 볼 수 있어요. 달이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빛줄기에 닿은 먼지 알갱이들은 사방에서 빛나죠.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예요. 성체조배를 하면서 성체에서 나오는 빛에 감화되면 우리 영혼의 모든 ‘먼지’, 영혼을 더럽히고 거룩함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그 먼지들을 볼 수 있게 돼요.” 미사 앞뒤로 감실 앞에 머물러 성체를 공경하면서 카를로는 점점 더 ‘순한 어린양’으로 다듬어졌습니다. 또 하느님 뜻에 항상 ‘예’라고 응답하는 침묵의 지혜를 배워갔습니다. 모든 성인과 위대한 이들이 그러했듯, 카를로도 침묵 안에서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찰과 묵상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침묵의 학교’에서 자라났습니다. 부모를 당황하게 한 질문들 카를로는 식사 때마다 아버지와 신문에서 읽은 기사를 두고 생각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경과 교리에 관해서도 부모님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신앙에 관한 호기심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카를로의 어머니는 회상합니다. “저는 말하자면 카를로의 비서였어요! 카를로는 네 살 때부터 이미 신앙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거든요.” 카를로의 질문은 점점 깊이를 더해갔고, 신앙생활에 수동적이던 어머니는 처음엔 그 질문들이 어렵고 당황스럽기만 했답니다. 그러나 친정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여의면서 아들이 묻던 천국과 연옥에 대한 질문들이 진지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렇게 카를로의 믿음은 차츰 부모의 신앙을 일깨워 가족 모두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카를로의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오늘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의 삶과 영성을 전하고 많은 이를 성체성사의 삶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유소영cpbc2025.06.18
![[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5주일 - 그리스도인의 사랑법](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5/13/3lZ1747115199239.jpg)
[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5주일 - 그리스도인의 사랑법이계철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교회에 주신 새 계명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긴 고별사(13-17장) 안에서 예수님 공생활의 결론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십계명을 하나의 근본 계명으로 정리해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3,34-35)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사랑의 새 계명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이라 말씀하셨지만, 언뜻 보면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당시 그리스 현자들도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쳤고, 구약성경에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나옵니다.(레위19,18) 유다인들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새 계명은 어떤 면에서 새로운 것일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박해하는 사람들과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미워하고 해를 입히는 이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사랑이셨습니다.(마태 5,44; 루카 6,35)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을 위해 당신 목숨까지 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에 근거하였습니다. 이 점이 세상이 말해왔던 사랑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다른 점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새 계명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새 계명에 대해, 사랑의 대상과 사랑의 방법과 사랑의 결과로 나누어 말씀해주십니다. 이에 따라서 복음을 묵상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랑의 새 계명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의 대상은 일부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오늘 복음 이전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사랑하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그 안에는 배반자 유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의 새 계명에는 유다는 물론 모든 원수까지 그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 계명의 사랑은 모든 이를 그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은 목숨까지 내어놓는 사랑입니다. 인간을 위해 수난과 고통과 죽음까지 기꺼이 내어놓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 방법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방법으로 새 계명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랑의 결과는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하느님을 알리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사랑하며 살지만 자신을 더 사랑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조건 없이 사랑하고서 자신은 잊히고 오로지 하느님만 드러나시게 하는 사랑입니다. 정리하면 하느님의 사랑은 원수까지 포함한 모든 인류를 향한 드넓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목숨까지 내어주는 깊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끝없는 사랑입니다. 그렇게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을 주십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주님 사랑의 증거자가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 완성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처럼 목숨까지 내어놓을 만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계철 신부cpbc2025.05.14

시련 속에도 희생자 ‘부활’ 위한 유골 찾기는 계속된다[부활특집] 조세이탄광 2024년 9월 25일, 수몰사고 82년 만에 ‘새기는 모임’이 발굴해 개방한 조세이탄광 본갱도 입구. 013년 2월 2일 건립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도비’. 한반도와 지척인 일본 혼슈 최서단 야마구치현, 그 남서쪽 끝 우베시 도코나미 해안.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지난 3월 11~13일 기자는 사흘 내내 매서운 바닷바람과 싸우며 이 적막한 모래사장을 찾았다. 84년 전인 1942년 2월 3일, 강제동원된 조선인을 포함해 광부 183명이 수장된 조세이(長生) 탄광의 ‘흔적’을 찾아서다. 바로 배기·배수시설인 ‘피야(ピヤ, 영어 Pier에서 유래)’다. 바다 한가운데 솟은 원기둥 ‘피야’ 표면은 파도와 소금기에 짓무른 흉터로 야속한 세월을 드러내고 있었다. 석탄 1톤을 캐기 위해 10배가 넘는 바닷물을 빼내야 했던 해저 탄광에서 피야는 ‘심장’이자 숨통이었다. 피야 2기만이 차가운 바닷속에 희생자가 잠들어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본지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고통의 우리 역사를 마주했다. 함께 희생자를 진정한 부활로 승화시킬 수 있겠다고 여겼다. 이시다 카즈마(22)씨 우베의 차가운 바다, ‘피야’가 증언하는 비극 우베시가 2019년 이곳에 세운 안내판에는 “석탄은 ‘검은 다이아몬드’라 불릴 만큼 많은 이익을 가져다줬다”면서 “사고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역사가 있다”고 적혀 있다. 조세이탄광 희생자 4분의 3인 136명이 ‘한반도 출신’이라는 사실은 포함됐지만, 일제의 침략 전쟁에 강제 동원됐다는 진실은 없었다. 1942년 야마구치현 내 탄광의 조선인 채용률은 평균 9.3%. 반면 조세이탄광은 무려 75%를 넘어 ‘조선탄광’으로 불렸다. 잦은 누수로 무척 위험했기에 조선인을 투입한 것이다. 수몰 사고는 태평양 전쟁 당시 법을 어기면서까지 채굴량을 늘리려던 일본 정부와 기업의 과욕이 부른 예견된 인재(人災)였다. 그들은 규정을 무시한 채 얇은 지층까지 파냈고, 갱도 천장을 받치는 석탄 기둥마저 깎아냈다. 결국 갱구 내부 천장이 무너져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안내판엔 빠진 내용이다. 이 무거운 바다를 홀로 응시하던 대학생 이시다 카즈마(22)씨는 “지난 1월 한일정상회담에서 희생자 유골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를 보고 찾아왔다”면서 “사실 제 또래들은 이 문제를 잘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골을 기다리는 유족분들의 연세가 많으실 텐데, 양국이 우호적으로 문제를 빨리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82년 만에 열린 ‘바다 무덤’의 문, “어이, 들리나!” 역사의 아픔을 삼킨 바다 인근 육지 해안가. 피야가 정면으로 보이는 ‘갱구광장’에 조세이탄광 본갱도 입구가 흙탕물에 반쯤 잠긴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폭 2.2m, 높이 고작 1.6m였다. 84년 전 그날, 고향에 가족을 두고 끌려온 조선인 청년들을 비롯한 희생자들은 이 캄캄한 사지(死地)로 걸어 들어갔다. 탄차 선로가 있어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날 좁은 길을 줄지어 움직였다. 하지만 바닷물이 천장을 뚫고 덮치던 순간, 회사는 고가의 기계가 망가질까 봐 갱구 문을 밖에서 잠가버렸다. 이들의 목숨은 기계 부속품보다 못했다. 사고직후 폐쇄돼 땅에 파묻힌 갱구를 찾아낸 주인공은 한국 유족과 연대해온 일본 시민단체였다. 올해 설립 35돌을 맞은 ‘조세이탄광 물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이다. 2018년 유족들의 유골 수습 요구에 일본 정부가 ‘유골 위치를 알 수 없어 어렵다’고 변명하자 직접 발굴에 나섰다. 유골 한 조각이라도 나온다면 정부가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시민 성금으로 중장비를 빌려 2024년 9월 24일 드디어 갱구를 처음 파냈다. 도면상 위치는 잡초로 뒤덮여 있었고, ‘탄광의 신’을 모시던 신사의 콘크리트 기단만이 유일한 흔적이었다. 이튿날 82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갱구는 희생자들의 영혼 같은 엄청난 바닷물을 토해냈다. 그때 ‘새기는 모임’ 운영위원 모리 노리후사(76)씨는 캄캄한 구멍을 향해 산 사람에게 말하듯 외쳤다. “어이, 들리나!” “저는 유골에 영혼이 깃들어 지금도 살아있다고 확신합니다. 추운 날 갱구에 오면 ‘이렇게 추운 날에도 일했겠구나, 정말 추웠겠어’라고 말을 걸고 싶어집니다. 한여름엔 ‘이렇게 더울 때 매일 석탄을 캤구나’ 하고요.” 파낸 흙더미는 ‘피야가 보이는 언덕’이 됐고, 광장에는 발굴된 파편들이 전시됐다. 배 파편을 이용한 한글 안내판도 모리씨 작품이다. 수시로 현장을 찾는다는 그의 눈빛엔 깊은 연민이 서려 있었다. 의로운 대만 잠수사의 죽음 “끝까지 완수해 주세요” 갱구는 열렸지만, 안쪽 200m 지점이 붕괴돼 막혀 있었다. 유골을 찾으려면 피야를 통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 갱도에 진입해야 했다. 수중 조사 역시 시민 모금으로 성사됐다. 마침내 지난해 8월 한국인 잠수사 김경수·김수은씨가 두개골 등 첫 유골을 수습했다. 석탄처럼 검게 변했으나 형태는 온전했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이들은 추가로 4구의 시신도 확인했다. 이어 올해 2월 6일 의로운 일에 동참한 다국적 잠수팀이 두 번째 유골 수습에 성공했다. 그러나 기적 이튿날, 대만 출신 잠수사 쉬웨이(57)씨가 수중 조사 중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하며 조사는 무기한 중단됐다. 비통함에 빠진 ‘새기는 모임’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지난 3월 6일 대만 장례식에서 쉬씨의 부인이 새기는 모임의 이노우에 요코(76) 대표에게 건넨 당부였다. “남편이 자원봉사에 참여한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어서였습니다. 이 의미있는 프로젝트가 멈춰서는 결코 안 됩니다. 부디 남편의 뜻을 이어 끝까지 이 일을 완수해 주십시오.” 꺾이지 않는 욥과 나무, 이제는 일본 정부가 답할 때 쉬씨 장례식에 다녀온 모리씨는 굳은 결의를 보였다. “수중 조사를 두고 여론이 갈리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위험하니 그만두라’는 여론이 많아져도 우리 바람을 관철해야 한다는 각오입니다. 중요한 건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정한 ‘마음의 화해’입니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 양국의 미래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성경을 자주 읽는다며 ‘욥기’를 언급했다. “하느님이 계신다면 ‘새기는 모임’과 유족들이 욥과 같은 시련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욥기에 ‘나무는 잘리고 뿌리가 늙어도 물기를 느끼면 싹이 트고 묘목처럼 가지를 뻗는다’는 구절이 있죠. 그 말씀을 새기고 나아갈 겁니다.” 모리씨는 “안전하게 유골을 꺼낼 확실한 공법이 있다. 갱도 안의 물을 다 빼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비용적으로 민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국가의 몫이기에 생명의 존엄을 최우선으로 일본 정부가 책임지고 한국 정부와 공동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두 개의 비석 - ‘감사’와 ‘사죄’, ‘순난자’와 ‘희생자’ 갱구광장 인근 옛 탄광 귀빈용 식당 자리에 비석이 하나 있었다. 사고 40주기인 1982년 세워진 ‘조세이탄광 순난자(殉難者)의 비’다. 사고 직후 은폐됐던 비극을 1976년 처음 세상에 알린 야마구치 다케노부(1931~2015, ‘새기는 모임’ 초대 대표) 선생의 논문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 비석에는 치명적인 침묵이 존재한다. 사망자 74%가 조선인인데도 ‘조선인’이나 ‘강제동원’이란 단어가 쏙 빠졌다. 지역 경제 발전에 대한 ‘감사’를 담아 ‘국가를 위해 몸 바친 행위(순난)’로 포장했다. 비석은 이렇게 끝난다. “영원히 잠들라, 편안하게 잠들라, 탄광의 사나이들이여.” 반쪽짜리 위령비를 등지고 도보로 약 10분, ‘새기는 모임’이 일본인의 사죄를 담아 2013년 조성한 ‘추도광장’에 닿았다. 한일 모든 희생자의 이름을 담은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추도비’가 자리한 곳이다. 피야를 본뜬 추도비 양쪽 기둥에는 ‘강제동원 한국·조선인 희생자’와 ‘일본인 희생자’라고 새겨졌다. 이 광장은 조선인에 대한 폭력의 진상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조세이탄광 현장견학에서 ‘새기는 모임’ 운영위원 모리 노리후사씨가 참가자들에게 사고 당시 정황을 설명을 하고 있다. 본명을 찾아주며 시작된 연대, 남북한과 일본이 함께 이어가야 일본 측 기록상 ‘창씨개명’이 아닌 조선인 전원의 ‘본래 이름’을 찾아 추도비에 새기는 것. 이는 1991년 ‘새기는 모임’ 발족 때부터의 목표였고, 마침내 결실을 이뤘다. 유족을 수소문해 남북한에 보낸 118통의 편지는 “덕분에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처음 알았다”는 답장 17통으로 돌아왔다. 한국에도 유족회가 결성돼 35년간 우정을 잇고 있다. 추도광장에서 만난 ‘새기는 모임’의 유일한 재일동포 운영위원 김정원씨의 눈빛은 남달랐다. 1980년대 도쿄 등에서 기자로 일하며 강제동원 역사를 좇던 그는 1990년 재일동포들의 증언집을 펴냈다. 야마구치현으로 이사 온 뒤에도 강제동원 역사를 공부하다 1995년 ‘새기는 모임’에 합류했다. 그는 추도광장 조성 일화를 들려줬다. “부지를 찾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마침내 적합한 곳을 찾았을 때, 일본인 회원 5명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댔죠. 모자란 돈은 제 친구 어머니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이 ‘일본인들도 헌신하는데 가만있을 수 없다’며 십시일반 보탰죠.” ‘새기는 모임’은 추도비 건립 이듬해인 2014년 ‘희생자 유골을 찾아 유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새 목표로 세웠다. 김 위원은 “희생자 중 오늘날 북한 출신도 5명 있고, 최근 강원도 창도군에 사는 유족도 찾았다”며 “일본과 북한이 미수교 상태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유골을 찾아 돌려보내는 것은 인간 존엄 회복과 한반도 전체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 야마구치는 보수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활동에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김 위원은 “꾸준히 진정성 있게 지역 사회와 관계를 맺어온 덕분”이라며 “조선인을 동정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했다. 20대 청년의 용기 있는 목소리, 희망을 잇는 세대 2030 젊은 일본인 회원들이 전국적으로 늘어나는 점은 ‘새기는 모임’의 가장 큰 희망이다. 3월 13일 조세이탄광 현장견학에도 여러 청년이 참여했다. 구마노 고에이(26)씨는 도쿄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그의 역사적 각성은 뜻밖에도 ‘K팝’에서 시작됐다. 고교 시절 한국 문화에 빠져 대학생 때 일본군 위안부 활동가와 재일동포를 만나며 역사의 무게를 깨달은 그는 한국 서강대에서 유학하기도 했다. “추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갱구를 보니 정말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바다 아래서 조선인 광부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조차 안 됩니다. 일본인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일본 정부에 유골 수습과 반환을 계속 촉구할 것입니다. 한국 분들도 일본 정부가 제대로 나서도록 더 강하게 요구해주셨으면 합니다.”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 일본을 변화시킬 유일한 길” 이노우에 요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대표 인터뷰 | 이노우에 요코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대표 35년째 조세이탄광의 비극을 알리는 데 투신해온 이노우에 요코(76) ‘새기는 모임’ 대표. 창립회원인 그는 2014년 제2대 대표가 돼 사고 82년 만에 갱구를 열고, 첫 유골 수습을 진두지휘했다. 왜 일본인으로서 이토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졌는지 물었다. “제 아버지는 중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국가의 든든한 보상 덕에 저는 대학까지 무사히 마쳤습니다. 하지만 일제에 강제로 끌려와 차가운 바다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은 구출은커녕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 불공평함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평생 저를 움직였습니다.” 그가 강제 동원의 뼈아픈 역사를 안 것은 10대 시절 한 권의 책을 통해서였다. “제 고향 나가노현 역시 조선인 유골이 야산에 버려진 강제 노동현장이란 걸 알았습니다. 주변에 일본 이름을 쓰던 재일조선인 친구들이 얼마나 속으로 마음 아파했는지 모른 채 지내왔던 겁니다. 일본 교육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남편 직장 때문에 이사 온 야마구치현에도 조선인 강제동원의 비극이 서려 있었다. 재일조선인 인권운동을 하다가 ‘새기는 모임’ 창립회원이 됐다. 그가 이 긴 싸움에 인생을 바친 이유는 명확했다. 견고한 ‘망각의 벽’을 깨기 위해서다. “일본 사회는 정부와 국민 모두 과거의 가해 사실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긴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조세이탄광의 비극을 통해 충격적인 진실을 널리 알리고, 일본이 저지른 죄를 밝혀나가는 작업이 꼭 필요했습니다.” 조세이탄광을 ‘생명’의 과제로 바라보는 이노우에 대표는 한국과 일본 가톨릭교회가 보여준 연대에 깊은 감사를 전했다. “가톨릭교회에서 현장을 찾아 기도해주시고 큰 기부를 해줘 정말 기뻤습니다. 특히 한국 주교회의가 보내준 1000만 엔은 한 번에 이렇게 큰돈을 받는 게 처음이라 놀랐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이 숭고한 일에 더 많은 종교계가 함께 나서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새기는 모임의 모든 활동은 개인후원으로 이뤄진다. 이노우에 대표는 “6000명 넘는 일본·한국 시민들이 6000만 엔에 가까운 큰돈을 모아줬다. 국경을 넘은 연대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바다를 오간 30여 년의 세월은 켜켜이 쌓인 ‘미움’을 ‘화해’로 바꾸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창기부터 매년 한국 유족들을 일본으로 초대해 숙식을 함께하며 슬픔을 나눴던 이노우에 대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일화를 꺼냈다. “‘평생 일본을 원망해 일본 제품은 사지도 않았다’던 유족분이 훗날 한국에 찾아간 제게 따뜻한 커피를 타주시며 ‘이노우에씨와 교류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하시더군요. 어떤 유족분은 ‘아버지를 죽게 한 일본은 원수의 나라였지만, 아무 상관없는 일본인들이 유골을 찾아주려 애쓰는 모습에 그 원망이 사라졌다’고 하셨죠. 그 말씀이 지금까지 저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이노우에 대표는 6차례나 수중 조사를 한 끝에 마침내 2025년 8월 첫 유골이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정말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사죄의 마음과 그 모습 그대로 기다려주셨다는 감사함에 가슴이 무척 먹먹했다”고 회고했다. 이노우에 대표는 유골이 가진 강력한 ‘진실의 힘’을 믿는다. 당장에라도 일본 정부가 유골 DNA 감정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그의 목소리다. “이 목소리 없는 유골 자체가 일본 식민 지배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억울한 유골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며 가해 역사를 똑바로 마주하는 과정은 일본 사회를 변화시킬 유일한 길입니다. 바다 아래 남은 유골 한 구 한 구가 세상에 나올 때마다 일본 정부는 더는 진실에서 도망칠 수 없는 외통수로 몰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조세이탄광의 진실을 배우며 자란 아이들은 결코 혐오나 차별을 일삼는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 것이라 믿기에 우리는 절대 여기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이학주2026.04.01

유다 민족의 살 길 보여준 용감한 유딧[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2)유딧기 유딧기는 유다 민족이 살길은 하느님께 충실하고 하느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크리스토파노 알로니,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딧’, 1580년께, 유화, 팔라초 피티. 유딧기 역시 히브리어 타낙 성경에 수록돼 있지 않습니다. 유다교 정경에 없는 ‘제2경전’입니다. 유딧기는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에 ‘Ιουδιθ’(유딧)으로 표기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유딧은 ‘유다인 여자’라는 뜻이며, 이 책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합니다. 「칠십인역」은 유딧기를 역사서로 분류해 에스테르기 다음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인 「불가타」는 ‘Judith’로 표기하고 에스테르기 앞에 배치했습니다. 오늘날 가톨릭과 정교회 성경도 이를 따르고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간행한 우리말 「성경」은 ‘유딧기’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유딧기의 원저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본디 히브리말로 저술했을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유딧기가 쓰인 시기가 기원전 166년에서 기원전 142년에 일어난 마카베오 전쟁 기간이나 그 이후, 늦어도 1세기 중반 이전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후 「칠십인역」 성경 번역자들이 유딧기를 헬라어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불가타」 성경을 펴낸 예로니모 성인은 아람어로 된 유딧기 본문을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유딧기는 하느님께서 유딧이라는 여인을 통해 유다인의 존립을 위협하는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당신 백성에게 베푸신 구원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유딧기는 “이 세상의 모든 여인 가운데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은 이”(유딧 13,18)인 유딧을 찬양합니다. 유딧기는 팔레스티나의 조그마한 성읍인 배툴리아가 포위되는 사건을 다룹니다. 사마리아 지방의 도탄과 이즈르엘 평야 곁 가파른 산비탈 위에 자리한 배툴리아는 예루살렘을 비롯해 팔레스티나의 다른 지방으로 가는 길목들을 내려다보는 전략 요충지였습니다. 신심 깊은 과부 유딧은 배툴리아 성읍에서 나가 적군 진지로 갑니다. 유딧은 적장 홀로페르네스가 만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그의 목을 베어버립니다. 이로써 침략군이 패주하고 맙니다. 유딧기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불일치합니다. 유딧기 1장에 나오는 니네베에서 아시리아인들을 다스리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기원전 605년에서 기원전 562년까지 신바빌로니아를 다스린 왕입니다. 그는 아시리아인이 아니고 바빌로니아 사람입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 후 유다인들을 바빌론 포로로 끌고 간 자입니다. 그리고 적장 홀로페르네스와 그의 내시 바고아스는 네부카드네자르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난 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기원전 358년~기원전 337년)가 다스릴 때 살았던 페르시아인들입니다. 유딧기 내용대로라면 임진왜란 때 김구 선생과 김좌진 장군이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운 셈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유딧기를 ‘교훈 설화’라고 부릅니다. 유딧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전반부(1─7장)는 아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배툴리아가 위기를 맞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을 침략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세상의 신들을 모두 없애버리라는 임무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민족이 네부카드네자르만 섬기고, 말이 다른 종족들과 부족들이 모두 그를 신으로 받들어 부르게 하려는 것이었다.”(유딧 3,8) 유다인들은 항전을 준비하면서 참회하며 기도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암몬인 아키오르에게 유다인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아키오르는 홀로페르네스에게 유다인들이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았다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정복할 수 없다고 일러줍니다. 하지만 홀로페르네스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배툴리아를 포위합니다. 후반부(8─16장)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과부 유딧이 등장합니다. 유딧은 배툴리아 주민들에게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동포에게 모범을 보이자고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시련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유딧은 머리에 재를 뿌리고 자루 옷을 입고 하느님께 이스라엘을 지켜주시기를 간청한 후 홀로페르네스에게 갑니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가 연회에서 만취해 잠들자 그의 목을 베어 시녀에게 들게 하고 배툴리아로 돌아갑니다. 유딧은 아시리아 군대가 홀로페르네스의 주검을 보고 달아나자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유딧은 유다인들에게 존경받았고, 그녀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아무도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했습니다. 유딧기는 유다 민족이 살길을 제시합니다. 첫째, 군사력이 아니라 백성이 하느님께 충실하게 살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유딧 5장 참조)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는 한, 징벌을 당하지도 않고 칼에 압도되지도 않는다.”(유딧 11,10) 둘째,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겨레의 보호자이며 구원자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유딧 9장, 11장) 이는 유딧의 기도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당신의 능력은 수에 달려 있지 않고 당신의 위력은 힘센 자들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오히려 미천한 이들의 하느님, 비천한 이들의 구조자, 약한 이들의 보호자, 버림받은 이들의 옹호자, 희망 없는 이들의 구원자이십니다.”(유딧 9,11) “당신께서 모든 권세와 능력을 지니신 하느님으로서, 당신 말고는 이스라엘 겨레를 보호하실 분이 없음을, 당신의 온 백성과 모든 지파가 깨달아 알게 하십시오.”(유딧 9,14)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0.04

신앙 안에서 기쁘십니까[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98) 기뻐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신앙에서 기쁨이 없다면 어떨까? 얼마 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처음 내신 문헌 「복음의 기쁨」에서 말씀하신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줍니다.”(1항)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기쁨이다. 기쁨 없이 복음을 선포할 수 없다. 기쁨 없이는 신앙을 살 이유도 의미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에서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는가? 성경은 구원을 발견한 이들의 기쁨으로 가득하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다시 발견했을 때 더없이 기뻐하였다.(마태 2,10 참조) 예수님의 탄생에 큰 기쁨을 맛본 이들은 길 위의 목자들이었고, 나이가 많았던 시메온과 한나였다.(루카 2,15-20; 25-39 참조)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 선언을 통해 하느님 자녀로 사는 기쁨으로 모든 이를 초대하셨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2) 예수님의 비유 속에도 기뻐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 기쁨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하느님 나라를 발견했을 때 찾아오는 기쁨이며(마태 13,44 참조), 회개하는 죄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하느님의 기쁨이기도 하다.(루카 15,1-10 참조)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기뻐하며 큰 잔치를 베풀어주었다.(루카 15,11-32 참조) 그 기쁨은 작은아들이 저지른 배은망덕이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큰 것이었다. 물론 그 기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큰아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그런데 가장 큰 기쁨은 돌아가셨던 주님께서 되살아나셨을 때 제자들이 느꼈던 기쁨이 아니었을까.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요한 20,20)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 그분 앞에서는 이제 죽음도 힘을 잃고 말며,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희망이 되어주신다는 것이야말로 제자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으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세상 만방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수난과 죽음이 배어있는 기쁨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20)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을 다시 보며 기뻐할 것이고, 그때에는 그 기쁨을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 기쁨은 수난과 죽음을 관통한 다음에, 곧 수난을 통해 자신을 죽인 다음에 주어지는 기쁨이다. 신자들과 부활 체험을 나눌 때마다 확인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낮아지고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삶에서 닥치는 고통과 시련은 근심과 괴로움으로 다가오지만, 신앙 안에서 견디어낼 때 우리는 더 높이 솟아오르는 희망을 발견하며, 고통과 시련이 나를 죽이기 위해 필요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진정한 기쁨은 나의 의지나 뜻에 따라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주님의 뜻에 나의 삶을 맡겨드릴 때 주어진다는 것을 배운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에서 오는 기쁨도 있다. 주님의 일에도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이 따른다. 그렇지만 주님께 의탁하며 끝까지 감내할 때, 내 손으로 일하지만 선물처럼 주어지는 열매가 맺히는 경험이 있다. 모든 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인정하게 되고 나를 지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오늘 어떤 기쁨을 좇아 살고 있는가? 한민택 신부cpbc2025.05.07

평신도, 세상에 사는 교회 사람이며 교회에 사는 세상 사람[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51. 이 땅의 평신도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전교회장과 남학생’, 유리건판, 1911년 하우현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2> ‘원산대목구 전교회장 회의’, 랜턴 슬라이드, 1931년 초 원산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르심 받은 평신도 ‘평신도’는 세상에 사는 교회 사람이며 교회에 사는 세상 사람이다. ‘평신도 사도직’은 세상에 사는 교회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신앙인답게 살아가며 삶의 자리를 복음화함으로써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이처럼 평신도는 세상에 복음의 빛을 밝히고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래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했다. 아울러 평신도는 성직자·수도자와 함께 교회에 대해 공동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평신도는 단지 포도원 일꾼이 아니다. 교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과 함께 참 포도나무인 그리스도께 붙어있는 가지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교회 생활의 일선에 서 있다. 평신도에게 있어 교회는 인간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리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특별히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더욱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근원과 출발점은 바로 ‘세례성사’다. 신앙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합일은 교회 신비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원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9) 평신도에게 부여된 교회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선 자신의 신앙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미사에 참여하고 성사를 받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신자들을 재교육하고 예비 신자들에게 교리교육을 하는 전교회장들의 활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사진 1> “이런 열심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종교 운동이다. (⋯) 여러 사람이 보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리서를 베껴 써서 다른 이들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 데 힘을 보탰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95~396쪽)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한국 교회는 100년 가까이 이어진 조선 왕조 치하의 박해로 파괴된 교회를 재건했다. 이 일을 맡아 중추적 역할을 한 이들이 바로 전교회장들이다. 그들은 본당 신부를 대리해 공소를 찾아다니며 신자들에게 교리교육을 하고, 지역 선교에도 앞장섰다. 1931년 초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함경도 원산대목구 전교회장 회의가 원산성당에서 열렸다.<사진 2> 이 회의를 진행한 원산본당 주임 파비아노 담 신부는 이렇게 회고했다. “원산의 신자 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 주일에 신자들을 어떻게 다 수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걱정이다. 원산의 임시 성당은 600명도 채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성당인데 미사마다 1000명 이상 몰려온다. 교중 미사 때는 제대 주위에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앉아 있어서 사제는 제대 앞에서 꼼짝도 못 할 지경이다.”(「분도통사」 563쪽) 성 베네딕도회 남녀 선교사들이 학교와 진료소 등을 운영하며 선교에 큰 성과를 이뤘지만, 전교회장들의 헌신적 공헌 역시 한몫을 했다. 평신도 모두가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 ‘가정 성화·복음화’이다.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배우고, 복음 선포와 인간 존엄성·공동선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영적 성숙과 성화를 익혀가야 한다. 그 첫 걸음이 ‘가정 기도’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선교사에게 큰절하는 어린이’, 유리건판, 1911년 4월 갓등이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그리스도의 사제직·예언자직·왕직에 참여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4월 1일 경기도 왕림 갓등이성당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성당 마당에서 선교사에게 큰 절로 예를 표하는 한 소년을 촬영했다.<사진 3> “갓등이 마을의 선교 활동은 활기찼다. 방마다 친근감과 호기심으로 넘쳤다. 소녀들에게도 인사할 기회를 주려고, 개구쟁이 사내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관습이 지엄하여 방 안에 사내아이가 하나라도 있으면 소녀들은 함부로 범접하지 못했다. 이제는 소녀들이 문과 창문으로 밀고 들어와 툇마루 아래까지 차지하고 앉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절을 했다. 하지만 곧 개구쟁이 녀석들이 몰려와 제자리를 내놓으라고 우기는 통에 소녀들은 다시 물러났다. (⋯) 집집마다 신자들의 기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새벽 5시, 자명종이 울릴 때도 열심한 신자들의 기도 소리는 끊일 줄 몰랐다. 사제는 셋인데 제대가 하나뿐이라 이른 시간에 미사를 드려야 했지만, 좁은 경당은 벌써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미사 내내 싱그러운 목소리로 소리 내어 기도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39~241쪽) 평신도는 사제 양성 못지않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성될 수 있도록 교회로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평신도들이 신앙을 바탕으로 윤리 기준을 식별할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배워야 한다. 평신도는 그 수와 역할을 볼 때 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회 구성원이다. 평신도 직분은 말할 나위 없이 숭고하다. 평신도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왕직에 참여하고 있다. 더불어 교회는 평신도에게서 세상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평신도를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평신도들이 교회의 지도 아래 성경과 교리·교회 가르침을 교육받고 양성될 때 더욱 성숙하고 활기있게 자신을 성화하면서 세상을 그리스도화하고 복음화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다. 아울러 평신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이끈 교회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이 감사의 표현은 교회 가르침을 생활 속에 실현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성화된다. <사진 4> ‘신자 집을 방문한 사우어 아빠스’, 랜턴 슬라이드, 1921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5> ‘다양한 차림의 아이들’, 랜턴 슬라이드, 1920년대 용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선포해야 초대 원산대목구장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는 신자 가정을 방문하는 걸 즐겼다.<사진 4> “예비 신자들이 입을 모아 독특한 가락으로 교리문답을 낭독했다. 꼭 노래처럼 들렸다. 안드레아 신부가 유창한 한국어로 그 내용을 설명하고, 복음 말씀을 들려주었다. 모두 조용히 경청하는 가운데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인간 영혼의 본질과 운명, 구원, 거룩한 가톨릭교회에 대해 강의했다. 이따금 하는 질문에도 안드레아 신부가 답변했다.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교리 수업이 끝났다. 집까지 한 시간도 더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고도 이튿날 아침 미사에 참례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남자 몇이 돌아가지 않고 조용히 교리문답서를 넘기고 있었다. 개신교 신자였다. 이것이 단순한 호기심인지 아닌지는 지나 보면 알게 될 것이다.”(「분도통사」 283쪽) 교회는 청소년·청년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화의 주역으로 교회를 위해 능동적으로 활동하도록 권고한다. “청소년들이야말로 청소년을 직접 만나는 첫째 사도가 되어야 하며 자기들이 살고 있는 사회 환경을 고려하여 자기 자신들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들을 통하여 사도직을 수행하여야 할 것입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12) <사진 5>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늘 다른 사람들과 신앙의 은총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교회의 삶이다.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무엇보다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 선포의 가장 효과적 형태는 다름 아니라 매일매일의 복음적 삶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복음에 일치하는 일관성 있는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11.05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은 ‘지구 위한 교회 재건’”가톨릭 에코포럼, 「찬미받으소서」 10주년 잠피니 신부 초청 강연 전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 아우구스토 잠피니-데이비스 신부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회칙 「찬미받으소서」10주년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회칙 핵심·시대적 의미 조명… 교황의 생태·연대 정신 성찰 통합 생태론과 연민·친절·대화의 문화 등 신앙인 역할 강조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비롯한 문헌을 통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유산은 무엇일까. 같은 아르헨티나인으로 교황청에서 5년간 근무하며 프란치스코 교황과 친분을 맺은 사제와 함께 이를 성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3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전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차관 아우구스토 잠피니-데이비스(아르헨티나 산이시드로교구) 신부 특별강연이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이재돈 신부)는 「찬미받으소서」 반포 10주년을 맞아 잠피니 신부를 초청, 제55회 가톨릭 에코포럼을 진행했다. 잠피니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은 우리 공동의 집(지구)을 위한 교회의 재건”이라며 “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받은 주님의 부르심, 곧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고쳐 세워라’ 위에 새겨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동체 생활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했던 성인의 부르심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도직을 정의하는 3개 문헌에서 강하게 울려 퍼진다”며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피조물을 통한 하느님 찬미’, 회칙 「모든 형제들」은 ‘보편적 형제애의 꿈’, 권고 「복음의 기쁨」은 ‘시노달리타스·친교·사명·돌봄을 통한 지속적인 교회 쇄신’의 시작점”이라고 설명했다. 잠피니 신부는 또 프란치스코 교황이 △착취하고 버리는 문화 △존엄성보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제 시스템 △연약한 이들과 노인과 태아 그리고 지구를 외면하는 세계화된 무관심을 현실의 구조적 문제로 짚었다고 요약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오염되고 어두운 상처투성이 세상에 복음이 어떤 빛을 제시하는지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사회교리 방법론을 따르며 성경과 전통에서 깊이 있는 통찰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공동선과 보조성·연대성 그리고 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상기시킨다”며 “단지 가톨릭뿐 아니라 전 세계 쇄신을 위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편 교회와 세계에 유독 당부한 두 가지는 △모든 피조물과의 교감 속에서 인간을 중심에 두는 통합 생태론 △연민·친절·대화를 통해 평화를 이루는 만남의 문화였다. 잠피니 신부는 “이는 우리 신앙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핵심”이라며 “신앙인으로서 이런 원칙을 통해 대전환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한국 교회는 독특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평신도 순교와 선교적 증언에 기반을 둔 깊은 전통, 사회정의와 민주화에 적극 참여한 전통, 젊은이와 수도공동체 사이에서 확산하는 생태적 의식”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 정신의 동반자로서 함께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자”고 당부했다. 잠피니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기 전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그가 “과학자도 우리 편이고, 관련 법도 만들고 이렇게 많은 이가 노력하는데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탄식하자 교황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기회가 된다. 위기일수록 가톨릭교회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윤리(에토스)다. 그 본질은 영성이며, 제도화된 종교와 다른 이 영성은 비신자나 다른 종교인과도 나눌 수 있다. 영성이야말로 생태와 사회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힘이다.” 잠피니 신부는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 후 첫 강복에서 ‘악은 결코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을 듣고 기뻤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주 말한 ‘불의가 무적은 아닌 것이다’(「찬미받으소서」 74항)를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5.05.21
![[과학과 신앙] (6)기후 변화와 바벨탑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0/15/PWW1728980105959.jpg)
[과학과 신앙] (6)기후 변화와 바벨탑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 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플랑드르 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은 ‘농가의 결혼식’ ‘눈 속의 사냥꾼’ 같은 농촌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와 성경을 모티브로 한 ‘바벨탑’으로 유명하다. 구약성경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은 교만해진 인간들이 하늘에 닿으려 쌓은 탑으로, 창조주의 진노로 인해 언어가 달라져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졌고 탑의 건설은 미완성으로 끝난다. 브뤼헐의 ‘바벨탑’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한계가 잘 표현된 명작이다. ‘바벨탑’을 보며 생각해본다. 과학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는 지금, 인류는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과거의 교훈을 잊고 또 다른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23년 11월 WMO(세계기상기구)는 그 해 발생한 엘니뇨 현상이 다음 해 4월까지 지속되리라 전망했는데, 실제로 2024년은 세계 여러 곳이 엘니뇨로 인한 기록적인 폭염으로 허덕였다. 중국 신장의 경우 지표면 온도가 70도를 넘은 곳도 있었다. 2024년 우리나라 여름철 열대야 일수는 서울의 경우 39일이었으며, 6월∼8월의 평균기온은 25.6도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여름이었다. 엘니뇨(El Niño)는 스페인어로 어린 남자아이를 뜻한다. 엘니뇨는 적도∼위도 30도에서 부는 무역풍의 약화로 발생하는데, 태평양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며 1~2년에 걸쳐 해수의 이상 저온현상인 라니냐로 전환된다. 엘니뇨는 태평양 동쪽에 어획량 감소, 강수량의 증가 및 홍수를 야기하고, 서쪽에는 고기압 형성으로 가뭄과 산불 발생 빈도를 증가시킨다. 특히 올해 인도네시아와 호주 북부 쪽에 산불 피해가 컸다. 라니냐(La Niña)는 여자아이란 뜻으로 엘니뇨와 반대로 무역풍이 강해져서 발생하며 태평양 서쪽에는 강수량 증가, 동쪽에는 가뭄과 산불을 일으킨다. WMO는 2024년 하반기부터 라니냐가 시작되어 겨울철 한파가 지구 곳곳을 강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기상이변을 일으키며 지구 생태계, 농업 생산성 및 세계 경제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 기상이변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지구 공전궤도의 변화, 태양 에너지의 변화, 화산폭발 같은 자연적 원인이고 둘째는 석탄·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 도시화와 산림 파괴 같은 인위적 원인이다. 특히 현대 산업 사회에서 무절제한 자원 소비, 환경파괴 같은 인위적 원인은 기상이변을 가속시키는 주범이다. 인류의 지적 능력이 진보하고 기술이 정교해짐에 따라 공학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발달했으며 첨단 유전자 지식으로 무장한 인간은 생명현상의 신비를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가공하여 산업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과물들에 자아도취돼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면 인류는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는 또 다른 바벨탑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철학 없는 과학의 진보는 모래 위에 쌓는 성과 같고 인간성과 인류애가 결여된 기술발달은 빛 좋은 독배(毒杯)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른 산업화가 브레이크 없이 막다른 길을 향해 달리는 폭주 기관차가 되지 않도록, 인간의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성찰 그리고 합리적 이성이 빨간색 신호등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전성호 베르나르도cpbc2024.11.20

성모 발현 평화의 언덕에 봉헌한 로카르노 ‘마돈나 델 삿소’[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45. 스위스 로카르노 마돈나 델 삿소 성지 1480년 성모 발현 전승 위에 세워진 마돈나 델 삿소 성지. 스위스 티치노 지역을 대표하는 성모 신심의 중심지로, 해발 370m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마조레 호수와 알프스가 한눈에 들어와 순례자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장소이다. 현재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가 순례 사목을 펼치고 있다. 제네바·바덴바덴·에비앙⋯. 유럽의 휴양 도시는 종종 전쟁과 평화의 분수령이 되는 외교 무대였습니다. 온천이나 호수 주변 평화로운 풍광, 평소 잘 갖추어진 숙박시설과 회의장 인프라는 여러 나라 대표가 모이기에 이상적이었죠.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1925년 유럽 열강이 모여 ‘로카르노 협정’을 맺었던 로카르노도 그런 장소입니다. 스위스 땅이지만, 언어와 문화는 이탈리아권에 속하는 로카르노는 알프스의 햇살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마조레 호수와 야자수가 자라는 온화한 기후로 이미 19세기부터 유럽인들에게 ‘알프스 속의 휴양지’로 알려졌지요. 하지만 로카르노는 단순히 휴양지만은 아니었습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가 맞닿은 지역이어서 로마 제국 시절부터 알프스와 지중해를 잇는 교역의 도시였지요. 중세에는 밀라노 공국과 신흥 스위스 연방 사이 국경 요충지로 발전합니다. 중세에는 밀라노 공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스위스 땅이지만 언어와 문화는 북부 이탈리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세 밀라노를 지배하던 비스콘티 가문은 공국의 세력을 팽창하며 1386년 권력의 상징으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대성당’인 거대한 밀라노 두오모를 건립합니다. 유럽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가장 큰 대성당이 세워지면서 성모 신심이 밀라노 공국의 정체성과 정치적 상징 속에 자리 잡지요. 이러한 흐름은 15세기 후반 로카르노에서 일어난 기적과 맞물리면서 북이탈리아 전체에 성모 신심이 고양됩니다. 로카르노 언덕 오르셀리나에 자리한 성모 승천 성당. 1891 ~1912년 성지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수도원을 확장하고, 성당 정면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했다. 1919년 베네딕토 15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성모 승천 순례 성당. 17~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하면서 프레스코 벽화와 제단화로 성당을 장식했다. 주 제대의 성모자상은 발현 전승과 연결된 기적의 상으로, 1880년 레오 13세 교황이 천상 모후관을 봉헌했다. 주 제대 주변의 금빛 장식과 바로크 양식의 기둥, 천사의 조각은 이곳이 성모 신심의 중심지를 드러낸다. 호숫가 언덕 바위에서 발현한 성모 1480년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였습니다. 로카르노의 프란치스코회 바르톨로메오 피아티 다 이브레아 수사가 언덕 위 바위의 환한 빛 속에서 성모님을 목격합니다. 그는 이 체험을 공동체에 알리고는 바위에 조그만 암자를 짓고 은수생활을 시작했죠. 당시 로카르노는 국경 도시로 불안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밀라노 공국과 스위스 연방의 갈등, 전쟁과 세금 부담, 농민과 시민의 불안정한 삶이 이어졌습니다. 바로 이런 시기 ‘바위의 성모님’, 이탈리아어로 ‘마돈나 델 삿소(Madonna del Sasso)’ 발현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1487년 언덕 정상에 중재자이신 성모 소성당과 통고의 성모 소성당이 세워졌고, 1502년에는 산기슭에 주님 탄생 예고 소성당이 봉헌됩니다. 1516년부터 로카르노는 스위스 영토가 됐지만, 종교개혁의 물결 속에서도 가톨릭 정체성이 더욱 강화됐습니다. 특히 북이탈리아의 독특한 순례 성지인 거룩한 산, 즉 ‘사크로 몬테(Sacro Monte)’ 전통과 맞물리면서 성지는 본격적으로 확장됩니다. 산이나 언덕에 일련의 소성당들을 지어 성경 속 사건이나 성인의 삶을 재현하는 성지를 조성하는 전통입니다. 아무튼 17~18세기에 걸쳐 로카르노 도심에서 마돈나 델 삿소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고, 언덕길 곳곳에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작은 경당을 순차적으로 만들면서 성지가 도심 아래까지 확장됩니다. 특히 정상의 중재자 성모 소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성모 승천 성당으로 화려하게 개축됐고, 19세기에는 스위스 남부 전체를 대표하는 성모 성지로 자리 잡습니다. 마돈나 델 삿소 십자가의 길과 푸니쿨라. 17세기부터 언덕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조성하면서 수난의 장면을 묵상할 수 있는 총 12채의 경당이 순차적으로 세워졌다. 전통적인 14처와는 차이가 있지만, 마지막 장면은 성당 상부 예배 공간과 연결돼 전체 묵상 여정을 완성하도록 구성되었다. 협궤 케이블 열차인 푸니쿨라가 성지까지 연결되어 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 거룩한 산으로 로카르노 중앙역에서 시내 방향으로 몇 걸음 옮기다 보면, 언덕 위 하얗게 빛나는 성지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오늘 순례의 목적지인 마돈나 델 삿소입니다. 노선버스나 케이블 열차로 올라갈 수 있지만,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어서 오르기를 권합니다. 계단과 완만한 경사로가 섞여 있고 중간중간 예수님 수난을 묵상할 수 있는 열두 경당이 있어 길을 오르며 마음을 정화하는 순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덕 위에 오르면 푸른 숲과 어우러진 마조레 호수와 로카르노 시내, 마지아강 삼각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안내문의 ‘숨 막히는 전망’이라는 표현 그대로입니다. 붉은 지붕 위로 높은 종탑과 옅은 붉은색 벽체, 성지의 핵심인 성모 승천 성당의 외관은 단순하면서도 웅장합니다. 측면 제대 제단화와 도나티 형제가 제작한 목조 조각상군 ‘비탄’. 브람반티노의 ‘이집트로의 탈출’, 안토니오 치세리의 ‘그리스도의 매장’, 베르나르디노 디 콘티의 ‘주님 탄생 예고’ ‘성모 승천’ 제대화 등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모 통고를 주제로 한 그림과 조각이 성당 곳곳에 있다. 성모 통고와 그리스도 수난의 체험 공간 성모 승천 성당 내부는 주 제대를 중심으로 한 장방형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측면 제대, 스투코 장식과 프레스코가 한데 어우러진 전형적인 바로크 성당입니다. 주 제대에 모셔진 성모자상은 15세기 후반 제작된 목조 조각상입니다. 발현 장면을 그대로 재현했는지는 모르지만, ‘기적의 상’으로 공경받아 왔습니다. 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는 19세기 이후 새로 설치된 겁니다. 아치형 제대 뒤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모 탄생과 승천을 주제로 하고 있어 주 제대 기둥과 천사 조각상이 이곳이 성모 성지임을 드러냅니다. 측면 제대와 가대석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묵주 신비와 관련된 도상들을 볼 수 있지요. 또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성모님 삶 등 복음의 주요 장면이 성당 공간 전체에 펼쳐져 있습니다. 로카르노 출신 도나티 형제가 제작한 목조 조각상군 ‘비탄’도 인상적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의 시신을 둘러싼 성모님과 제자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깊은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1925년 로카르노에서 꽃 핀, 전쟁이 아니라 대화라는 희망을 보여준 ‘로카르노 정신’은 짧은 봄날과도 같았습니다. 10년도 되지 않아 전체주의의 마수에 휩쓸리고 말았죠. 극우가 대두하고 자국 이기주의가 팽배한 지금 그 정신이 다시 꽃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대에 따라 흔들리는 외적 평화가 아닌, 세대를 넘어 이어질 참된 평화를 주시길 청합니다. <순례팁> ※ 밀라노에서 로카르노까지 기차로 2시간(벨린초나 경유), 자동차로 1시간 45분. 역에서 십자가의 길을 거쳐 성지까지 도보로 30분. 성지까지 버스(No.3)로 15분. 내려오는 길에 푸니쿨라를 이용하면 좋다. ※ 순례 성당 미사 : 주일과 대축일 7:15·10:00·11:00·17:00, 평일 7:00(토)·17:00.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 cpbc2025.09.30

무릎 꿇음은 몸과 영혼이 결합된 내적 기도의 외적 표현[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47. 기도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묵주를 든 두 소녀’, 유리건판, 1910년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십자성호 그으며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새 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오늘 하루 주신 모든 은총과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가톨릭과 정교회 신자들은 이마에서 가슴으로, 이 어깨에서 저 어깨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자신의 전 존재가 십자가와 하나됨을 고백하고, 타인에게 삼위일체 하느님을 증거한다. 가장 짧고도 명료한 십자성호 기도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나를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심을 절로 드러낼 뿐 아니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로 모든 이를 구원하셨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개인의 도량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이다. 주님께서 기도의 완전한 본보기이시기 때문이다. 네 복음서는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자주 고독 속에서 은밀히 기도하셨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 뜻을 따르는 절대적 확신과 사랑, 순명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끗한 마음과 생생하고 꾸준한 믿음, 자녀다운 대담성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촉구하시며 당신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청하라고 권고하신다. “신약에서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무한히 선하신 성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성령과 맺는 생생한 관계이다. 하늘 나라의 은총이란, 거룩하고 고귀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간의 마음이 온전히 결합되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기도 생활이란 평소에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면전에서 지내는 것이며,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생활은 언제나 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례 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 그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확장되어 가는 그만큼, 그리스도다운 기도가 되는 것이다. 기도의 차원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차원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65) 이 주님의 권고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강림 날부터 ‘한자리에 모여’(사도 2,1)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며’(사도 1,14) 신앙생활을 성장시켜오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무엇보다 ‘성경 말씀을 듣고 읽으며’ ‘성찬례에 참여’하고 ‘성사 생활과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진 2> ‘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녀’, 유리건판, 1920년대, 삼원봉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3> ‘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년’, 유리건판, 1920년대, 삼원봉 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간도 삼원봉성당에서 기도하는 어린이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한국을 방문해 ‘묵주를 든 두 소녀’를 사진에 담았다.<사진 1> 사진 파일에는 ‘1910년대’라고 적혀있지만, 두 소녀의 사진 속 배경인 한옥 성당과 벽돌담이 내평성당과 흡사해 아마도 베버 총아빠스가 1925년 내평성당을 방문해 우리나라의 많은 풍속 사진을 담을 때 촬영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십자가 목걸이를 한 두 소녀는 다소곳이 묵주를 쥐고 있다. 기도하는 손은 언제 봐도 거룩하고 아름답다. 20세기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손이 얼굴 다음으로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부분이라고 했다. 손이 개인의 내·외면의 처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란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손을 주신 이유는 그 안에 영혼을 들고 다니기 위함’이라는 교회 속담도 있다. 묵주를 다소곳이 쥐고 있는 두 소녀의 손은 ‘겸손’을 드러낸다. 겸손은 기도의 바탕이다. 교회는 겸손을 ‘기도의 선물을 무상으로 받기 위한 마음가짐’이라고 가르친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 요소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신자들은 곤경과 위험이 닥칠 때 성모님의 보호 아래로 달려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에는 1920년대 만주땅 간도 삼원봉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녀와 소년을 촬영한 필름 원판이 있다.<사진 2·3> 삼원봉성당은 1909년 5월 1일 훗날 초대 대전교구장 주교로 임명되는 라리보 신부가 첫 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사목활동을 펼친 유서 깊은 신앙 공동체다. 1923년부터 성 베네딕도회가 사목을 맡았고, 덕원의 순교자 하느님의 종 김종수 베르나르도 신부가 이곳 삼원봉 출신이다. <사진 4> ‘기도하는 덕원 신학교 교수 신부와 신학생’, 랜턴 슬라이드, 1927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무릎 꿇음은 극명하게 겸손 드러내는 자세 “삼원봉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발전하는 모습을 살펴보자면, 매일 저녁 성당에 모여 공동 저녁기도를 바치는 것을 들 수 있다. 남녀 학생들이 하루씩 번갈아 가며 선창을 한다. 어린아이들도 짧지 않은 저녁기도를 쉽게 따라 익힌다. (⋯) 신자들이 집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은 매우 보기 좋았다. 한국 교회 초창기를 떠올려도 쉽게 이해가 된다. 본당 공동체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다.”(하르트만노 에벌 신부, 1926년 「삼원봉 본당 연대기」 중에서) 삼원봉은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30℃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곳이다. 포도주와 성혈이 얼어 촛불로 성작을 데워가며 미사를 지내야 했다. 사진 속 소년소녀들의 모습에 그 추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릎을 꿇는 것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것보다 더 극명하게 겸손을 드러낸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이 행동은 하느님을 경외함을 표현한다. 무릎을 꿇는 것은 몸과 영혼이 결합된 내적 기도의 외적 표현이다. “하느님께서는 내적 기도에 몸까지 결합시키는 외적 표현도 원하신다. 왜냐하면, 외적 표현은 하느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완전한 찬미를 이루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703) ‘기도하는 덕원 신학교 교수 신부와 신학생’<사진 4> 은 1927년에 촬영됐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알찬 시간이다.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 역시 우리 안에 머무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육신과 영혼의 눈길을 하느님께 고정시키고 그분께 마음을 기울여 하느님 말씀을 경청한다. 이 경청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기도 중에 ‘예’(Amen)라고 응답하고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Fiat)라는 순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일상과 분리될 수 없다. 기도의 최종 목표는 하느님 사랑에 일치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6-17) 기도는 사랑의 실천이 동반됨을 잊지 말자.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9.30

인간은 짝을 찾아나서는 ‘관계 속의 고독한 존재’[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16. 고독 구약 성경의 창조 설화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임을 암시하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다. 창세기 2장의 인간 창조 이야기를 보면 주 하느님께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하시면서 사람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빼내어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다. 그러자 사람은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라고 기쁨에 넘쳐 외친다. 이 이야기에는 인간의 자기 이해와 관련해 실존론적으로 매우 깊은 철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나중에 둘로 갈라졌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에게서 나온 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관계 속의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근원에 있어 자기 일부가 떨어져 나간 불완전한 존재로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자 자기 밖에서 자기를 찾아 나서는 고독한 존재다. 인간의 고독은 사회관계망 혹은 인격적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고립이나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처해 있는 근원적인 실존적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이 고독하여 찾아 나서는 타자는 근원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간 존재이기에 분명 ‘자기’여야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더는 자기로 있을 수 없는 존재, 즉 나와 대립하는 낯선 자기 소외(疏外)의 존재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처럼 자기로부터 소외된 그 타자는 더는 자기로 있을 수 없다. 나와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고독의 대상으로서의 타자는 바로 ‘자기인 타자’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 타자는 결코 나와 하나가 될 수 없는 ‘타자인 자기’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 안에 본질적으로 놓여있는 이런 관계적 타자성을 근원어로서의 짝말(Wortpaare) ‘나-너’(Ich-Du)로 표현한다. 부버에 따르면 인간은 나와 너의 관계 없이는 결코 자기를 이해할 수도, 본래의 자기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본성적으로 타자에게로 기울어져 있음은 자기 소외로서의 고독에 근거하며, 이 근원적 소외로서의 실존적 고독은 인간이 본래 고립되고 외로운 ‘나 홀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 속에 있는 ‘공존재’(Mitsein)임을 의미한다. 야스퍼스(Karl Jaspers) 또한 고독은 타자와의 소통 속에서만 실현되는 나의 ‘가능 실존’을 준비하는 ‘의식’이라고 했다. 고독은 소통 안에 존재하기에 소통 없이, 그리고 고독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이 될 수 없다. 나의 고유한 근원으로부터 자기 자신이고자 한다면 결코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타자와 하나가 될 수 없음에도 자기 밖의 타자로부터 동일한 자기를 발견하고, 그와 일치하고자 하는 실존적 고독에 처해 있다. 타자는 나에게 고독과 그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소외되고 낯선 대상이다. 우리는 이 간격을 메꾸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상처받곤 하다. 실존적 고독은 타자와 일치하려는 열망을 낳지만, 그 일치하려는 행위가 자기중심적일 때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타자를 강제로 자기와 일치시키려는 행위는 소유·집착·가스라이팅·증오·폭력 등으로 나타나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실존적 고독이 타자 중심적인 헌신·희생·봉헌의 열망으로 승화될 때 바로 사랑의 계기가 된다. cpbc202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