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아름다움성서학자 안소근 수녀, 아가 해설본 「사랑에 취하여라 교부들이 본 아가」 출간 사랑에 취하여라 - 교부들이 본 아가 안소근 수녀 지음가톨릭출판사‘사랑’이란 무엇일까?우리는 흔히 육적인 사랑을 ‘에로스’, 영적인 사랑을 ‘아가페’라 부른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당연히 아가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음 구절은 어떤가? “먹어라, 벗들아. 마셔라, 사랑에 취하여라.”“아, 제발 그이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달콤하답니다.”영화 제목이나 고전 연극의 대사일 법한 이들 구절은 각각 아가 5장 1절, 1장 2절의 말씀이다. 아가는 남자와 여자가 등장하는 사랑 노래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면 아가가 성경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가가 단순히 남녀의 사랑만을 말하고 있다면 과연 성경에 수록될 수 있었을까?“아가는 히브리어로 ‘쉬르 하쉬림’,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노래들의 노래’입니다. (중략) ‘노래들의 노래’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뜻한다고 생각하여 우리 성경에서도 ‘아가 雅歌’라고 옮깁니다.” (34쪽) 초대 교회 교부들의 아가 해석을 되짚어본 「사랑에 취하여라」가 출간됐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수학하고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 교리신학원에 출강 중인 안소근(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가 쓴 책으로, 저자는 아가를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아가가 거쳐 온 다채로운 해석사의 첫 시기인 타르굼, 히폴리투스,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해석을 소개한다. 유다교의 전통적인 해석이 담긴 타르굼은 아가의 남녀가 신랑이신 하느님과 신부인 이스라엘을 나타낸다고 보았고,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유다교의 아가 해석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이 신약에 이르러서는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로 대체된다고 해석했다. 아가 관련 우의적 해석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오리게네스는 아가를 솔로몬이 썼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 책을 일종의 연극으로 본다. 그는 혼인 축가로 이해된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짧게 제시하고 곧이어 그 본문을 교회에, 그리고 개별 영혼에게 적용한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순서대로 솔로몬의 책들을 읽는 사람은 먼저 잠언을 통해서 분별을 얻고 올바른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되며, 그다음에 코헬렛에서 사물의 본성과 원인들을 구별하고 헛된 것과 영원한 것을 알아보게 됩니다. (중략) 이렇게 준비된 독자는 아가를 읽으면서 이 책이 단순히 육적인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90쪽)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아가를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여기는 해석을 배척하고, 아가를 통해서 무한한 하느님을 향한 유한한 영혼의 여정, 즉 ‘에펙타시스’를 강조한다. 책은 약 1세기에서 4세기에 있었던 주요 해석들을 통해 아가가 어떤 사랑을 노래한 것인지 다채롭게 살펴본다. 성경에서 말하는 아가페와 에로스도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은 뒤 함께 실린 최민순 신부가 번역한 「아가」를 보면 하느님의 사랑이 담긴 아가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아가의 저자가 남녀의 인간적 사랑을 노래하려 했다 하더라도, 그가 사랑에 대해 말한 많은 것들은 다른 사랑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가치를 지닙니다.”(140쪽)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문채현2022.07.12

굿판 구경할 수 있지만 적극 참여해선 안돼한국 천주교회와 이웃 종교(10) 봉화산 도당굿은 400여 년 동안 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고 대동의식을 고취시켜 온 서울특별시의 마을굿으로, 시 무형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사진=국가유산청 이웃집이나 마을에서 열리는 굿에 참석해도 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종교 전통의 추종자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면서도, 평화로운 정신으로 그들에게 그들 신앙의 내용에 대하여 도전을 제기해야 한다.”(「대화와 선포」 32항) 굿은 무속의 제례 행위입니다. 무당은 굿판을 통하여 신령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신령과 인간 사이의 화해는 물론 사람들 사이에 맺힌 한(恨)을 풀어 줌으로써 굿판에 함께한 사람들 사이의 흐트러진 관계를 회복시키며, 공동체가 함께 복을 나누도록 인도한다고 합니다. 고조선과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농사와 관련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가무를 즐겼는데, 이러한 제천 의식은 국가 차원의 굿이었습니다. 재앙과 액운으로부터 마을 공동체를 지켜 주고 풍농과 풍어를 비는 마을굿, 집안의 안녕과 길복을 기원하는 재수굿, 죽은 넋을 위로하는 사령(死靈)굿 등 굿은 우리 민족의 다양한 삶의 맥락 안에서 사회와 함께하였습니다. 굿은 민속 문화와 이웃 종교의 의식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민속 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또 이웃과 마을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굿판을 참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톨릭 신자가 무속 의식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며,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직접 굿당을 찾아가 굿을 주문하거나 점을 치는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집이나 사무실에 붙여 놓아도 됩니까? “필요할 때에는, 그리스도교의 어떤 근본 요소들과 다른 종교의 전통의 어떤 측면들이 병립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대화와 선포」 31항) 종이에 글씨·그림·기호 등을 그린 부적(符籍)은 악귀를 쫓거나 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지는 주술 도구입니다. 일반적으로 부적은 광명을 상징하고 악귀들이 싫어한다는 황색 종이에 생명과 정화의 힘을 상징하고 악귀를 내쫓는 붉은색 글씨로 만들어집니다. 수명의 연장, 부의 성취, 자손의 번성, 출세, 가족의 안녕, 액운의 제어, 악귀의 퇴치 등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의 부적이 있습니다. 무속에서는 부적이 현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활동은 인간이 만든 주술적 도구에 종속될 수 없으며,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원하시는 때에 자유로이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부적을 만들어 이를 몸에 지니거나 집이나 사무실에 붙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무속을 따르는 이들에게 부적은 종교적 상징입니다. 부적을 미신 행위로 여겨 가족의 일원이나 동료가 집이나 사무실 벽에 붙여 놓은 부적을 떼어 버리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 어긋나는 행위이므로 삼가야 합니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도 묵주나 십자가, 상본과 기적의 패 등을 액운을 막아 주는 부적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기도의 도구이지, 그 자체로 효과를 발휘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민간 신앙에서 금기로 여기는 것을 신자들도 조심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15) 금기는 민간 신앙에서 특정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며, ‘터부’(taboo)는 위험한 것을 금지하는 강하고 확실한 표시를 뜻하는 폴리네시아어입니다. 무속의 전통은 깨끗함과 더러움이라는 이원론의 시각에서 더러움, 곧 ‘부정’(不淨)을 타지 않는 것이 제의의 성공과 결부된다고 여겼습니다. 출산하는 여성, 사람의 죽음, 낯선 사람 등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 집단적 제의에서 배제하였습니다. ‘기중’(忌中)이라는 표시를 초상집 앞에 써 붙이는 것이나, 죽은 사람의 물건을 태우는 것이나,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이 집안에 들어오기 전 그에게 소금을 뿌리는 행위 등은 이러한 금기와 관련된 풍속입니다. 낯설거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물건·동물을 보면 ‘재수가 없다’는 생각이나 ‘오늘은 며칠이니 어느 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다’는 생각과 같이 때와 방위를 가리는 금기는 일상생활에 확산됐습니다. 한 사람의 부정이 마을굿을 송두리째 못 쓰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탈이 났다’고 하거나 ‘빌미’라고 일컬었습니다. 이와 같이 금기는 공동체 전체에 신중한 몸가짐을 요구하고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민간 신앙의 금기나 터부에 괘념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은 금기시되는 음식 규정과 제의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예물로 사람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살게 해주신(히브 10,14 참조) 뒤로 그러한 규정은 효력을 잃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금기나 터부에 마음을 쓰기보다 하느님과 이웃 사랑의 계명에 따른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더 중요시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cpbc2024.07.10

장로교는 한국에서 가장 큰 개신교단[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53) 장로교는 어떤 교회인가요? 장 칼뱅의 초상화. 출처=위키미디어 커먼스 교회 개혁 주도한 장 칼뱅의 정신이 그 기원 1879년 만주서 선교사 통해 국내로 들어와 일제 강점기·전쟁 거치며 여러 교단으로 나뉘어 종교개혁 시대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교회 개혁을 주도한 장 칼뱅은 교회 지도자인 장로가 목사와 동등한 권위로 치리회(교회 행정)를 구성하여 ‘대의제’로 교회를 운영하게 하였고, 이는 장로교(Presbyterian Church) 또는 개혁 교회(Reformed Church)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칼뱅의 정신을 이어받은 개혁 정신은 스위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대륙의 개혁 교회와 영미권의 장로교회로 양분됩니다. 장로교는 특히 장로교 규범인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과 ‘요리 문답’이 제정되면서 발전하였습니다. 한국에는 1879년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와 접촉한 4명의 한국인이 동료 존 매킨타이어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최초의 개신교 신자가 되었고, 1884년 의료 선교사 알렌으로부터 시작해서 미국 북 장로교, 남 장로교, 캐나다 장로교,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이 들어와 전국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한국 장로교는 조선 땅에 근대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미국의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 복지 시설 등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근대화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는 일제 강점기와 1950년대에 분열의 역사를 거쳐 여러 교단으로 나뉘었습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한 이들을 중심으로 고신파가 생겼고, 서구의 진보적 신학 수용 여부를 두고 보수 성향의 ‘대한 예수교 장로회’(예장)와 진보 성향의 ‘한국 기독교 장로회’(기장)로 분열되었습니다. 이후 대한 예수교 장로회는 교회 일치 운동(에큐메니칼 운동) 참여 여부를 두고 통합 측과 합동 측으로 나누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여러 교단으로 나누어진 한국 장로교는 1997년에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한장연)를 설립하고 연합 일치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별 교단 중심으로 운영되는 장로교의 특성상 연합회나 협의체로 일치할 뿐 교단 운영은 독자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프랑스 북부 누아용에 위치한 장 칼뱅 박물관 전경. 출처=장 칼뱅 박물관 홈페이지 장로교는 성경에 기초한 삶, 신앙, 교회 운영을 강조하고 인간의 의지보다는 하느님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신학적 성향을 가집니다. 복음 중심의 교회 운영과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국가가 교회의 영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지만, 동시에 교회와 정치를 구분하려는 경향도 강합니다. 본래 장로교는 예식서로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매우 강조하는 것이 전통이지만, 한국 장로교는 미국의 부흥 운동과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아 말씀 중심의 설교와 찬양을 중심으로 예배가 이루어집니다. 성만찬을 거행하지만, 천주교의 실체 변화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영적인 현존만을 받아들입니다. 한국에서 장로교는 가장 큰 개신교단입니다. 장로교에서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라고 불리며 말씀과 성례의 사역자라고도 불립니다. 일반 장로는 치리(교회 행정)만 맡지만, 목사는 가르침과 치리를 겸하는 장로입니다. 따라서 장로제에서는 장로와 목사의 서열이 없고, 동등하게 당회와 노회, 총회를 구성하여 교회를 공동 운영하고 결정하는 대의제 원리를 강조합니다. 장로가 교회를 운영하기에 신자 전체의 모임인 공동 의회에서 목사를 선출하여 청빙(請聘)이 이루어지고, 노회의 허락을 얻어 목사직을 수행합니다. 평신도 사역자는 교회 대표인 장로, 행정을 담당하는 남녀 집사가 있고, 여성 장로의 안수가 허락되기 전 제도 직무인 권사가 있습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cpbc2024.04.17

전국 교구, 21일 풍성한 성소 주일 행사 열어 서울대교구 성소국ㆍ의정부교구 성소국이 2023년 마련한 제60차 성소 주일 행사에 참여한 신자들이 가톨릭대 신학대학교 내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서울대교구 성소국은 21일 오전 11시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교구 총대리 구요비 주교 주례로 성소 주일 미사를 봉헌한다. 또 중등부 예비신학생 담당 부제와 학사들이 활동 프로그램을 마련, 대성당에서 ‘수단 한 번 입어보자’ 체험도 열린다. 가톨릭대 신학대학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하며, 행사에는 예비신학생뿐 아니라 전 신자가 참여할 수 있다. 의정부교구도 함께한다. 대구대교구 성소국도 같은 날 남산동 대신학교에서 성소 주일 행사 ‘동행(同行)’을 개최한다. 미사는 오후 3시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봉헌되며, 예비 신학교에 등록된 학생과 부모만 참석할 수 있다. 광주대교구는 21일 오전 9시 30분부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성소 주일 행사를 연다. 예비신학생, 초등부 복사단, 중·고등학생, 청년들이 참여하는 행사에서는 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주례로 미사를 봉헌하고, 신학생과 수도회가 함께하는 어울림 한마당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수원교구는 13~20일 ‘성소를 위한 9일 기도’를 봉헌했다. 21일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는 ‘저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대로 지내십시오’를 주제로 오전 10시부터 예비 신학생과 예비수도자를 대상으로 성소 주일 행사가 열린다. 인천교구는 21일 오전 10시부터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강화캠퍼스)에서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를 주제로 행사를 개최한다. 안동교구도 이날 교구청에서 초·중·고·대학생과 청년 대상으로 ‘여기에서 나와 함께’(신명 5,31)를 주제로 성소 주일 행사를 연다. 제60차 성소 주일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가톨릭대 신학대학교에서 수도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대전교구는 이날 오후 2시 대전교구청에서 ‘나도 곧 신부님’, ‘신부님을 이겨라’, ‘성경 가로 세로 퍼즐’, ‘7성사 옆에 있는 성령에 언급된 구절 찾아오기’ 등 미션 퀴즈를 진행하며 성소 주일 행사를 진행하고, 오후 4시 성소 주일 미사를 봉헌한다. 청주교구는 이날 오후 1시 30분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 15)라는 성구 아래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를 주제로 사천동성당에서 성소 주일 행사를 개최한다. 부산교구도 21일 오전 9시 30분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교정에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10)를 주제로 성소 주일 행사를 거행한다. 앞서 교구는 12~20일 성소를 위한 9일 기도를 봉헌, ‘복음화를 위하여’란 지향부터 교황·주교·사제·수도자·평신도 사도직·민족의 화해와 일치·가정·비신자·예비신학생과 신학생을 위해 기도했다. 춘천·원주교구는 21일 오전 10시 원주교구 배론성지에서 합동으로 ‘부르심, 그리고 응답 :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이사 43,4)’를 주제로 성소 주일 행사를 개최한다. 전주교구도 오전 9시 30분부터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 주제 성소 주일 행사를 개최한다. 교구장 김선태 주교 주례 성소 주일 미사가 봉헌되며,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떼제 기도를 바치며 성소를 체험할 예정이다. 마산교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마산교구청에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1사무 3,5)를 주제로 각 본당에서 참가하는 청소년들과 성소 주일을 보낸다. 신문취재팀2024.04.17

어머니와 아들[월간 꿈 CUM] 꿈CUM 묵상 _ 예수의 일생 (10)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제주 성이시돌 목장 새미은총의 동산 조형물) 요한 2,1-12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는 모습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묵상할 내용이 참 많습니다. 가톨릭 신앙인인 우리는 성모신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신교 신앙인들은 성모신심이 없습니다. 제가 최근 30년간 개신교에 다니다 개종한 분에게 세례를 준 일이 있는데,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저는 오랜 기간 개신교에 다니면서, 천주교는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고 알고 있었어요.” 가톨릭 교회는 과연 마리아를 믿는 종교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한 분만을 믿고, 그 삼위일체 하느님께 구원을 바랍니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 교리에서는 흠숭지례(欽崇之禮), 상경지례(上敬之禮), 공경지례(恭敬之禮)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흠숭하면서 모시는 분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성모님은? 상경지례로 모십니다. 공경지례는 성인을 모시는 예입니다. 물론 가톨릭 신앙도 절대적 중재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가톨릭 신앙인들은 그 절대적 중재자의 중재를 청하는 성모님과 성인들의 통공을 믿을 교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때 개신교 신자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재를 마리아에게 부탁드릴 수 있다는 내용이 성경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이 질문에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혹시 성경을 가지고 있나요?” “네.” “그럼, 요한복음 2장 1-12절을 읽어보세요.” 지금부터 살펴보려는 ‘카나의 혼인잔치’는 우리가 성모 마리아께 예수님의 중재를 청하는 근거가 됩니다. 카나에서 혼인잔치가 열렸는데, 예상 인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는 잔치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음식이었습니다. 이에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포도주를 만들어 잔치를 계속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입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기적을 행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그래도 성모님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사람 한 명 한 명의 곤란함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술이 없다면 혼인 잔치는 위기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일꾼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해 달라고 조르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이 말에 예수님이 움직입니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요한 2,7) 성모님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또 기적을 행하리라는 것을 희망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첫 기적이 마리아의 중재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리아가 일꾼들에게 “내가 명한다. 너희는 물을 물동이에 담아라”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마리아는 주도권이 자신이 아닌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한 것입니다. 즉, 마리아는 일꾼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했고, 일꾼들은 예수님의 음성이 시키는 대로 했으며,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혼인잔치에 참가한 사람 중에 청한 사람은 오직 성모님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모님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여인의 몸을 빌려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구원의 중재자, 은총의 중재자이십니다. 우리는 주위를 잘 돌아보지 않습니다. 나 하나 살아가기 바쁩니다. 옆집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이웃의 아픔을 압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이웃의 구원을 중재합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영적인 예민함을 본받아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의 상황을 늘 하느님께 알리고 구원을 중재해야 합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꿈CUM 지도신부, 성 바오로 수도회) cpbc2023.12.11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가톨릭 신앙의 수호자[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14) 가톨릭교회의 교황직 베드로의 후계자이자, 지구촌 평화의 사도요, 가톨릭 교리와 신앙의 수호자로 사도좌 직무를 수행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일 삼종기도 후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OSV 가톨릭교회는 교황직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지켜 왔나요? 로마의 주교이자 전 세계 가톨릭 주교단의 단장이며 보편 교회의 최고 사목자로서의 교황 직무는 가톨릭교회의 단일성과 일치의 표징이며 가톨릭 교리와 신앙의 수호자 역할을 포함합니다. 복음서는 베드로가 사도단의 으뜸이자 중심 역할을 하였음을 증언합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다섯 개의 총대주교좌(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로마) 가운데 로마의 주교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에 대한 인격적 수위를 인정하였습니다. 1054년에 정교회와의 분열은 권력 서열에 대한 논쟁이었지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 직무에 대한 논쟁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정교회는 로마 교황의 명예적 수위권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베드로가 로마에 간 기록이나 순교한 내용이 성경에 없고,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수위권도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교황 제도가 12세기 가톨릭교회가 교황의 권위를 세속적 권력처럼 내세우기 위하여 만들어 낸 제도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개신교 보수 교단은 천주교가 교황을 숭배한다고까지 비난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더욱이 역사 속에서 교황의 부도덕한 행적을 강조하며 교황의 수위권과 19세기 이후 정립된 무류권도 성경에 근거가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러한 개신교의 주장은 주로 16세기 종교 개혁 당시 교회 쇄신을 가로막던 중세의 교황 제도에 대한 종교 개혁가들의 강한 비판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을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의 특성상 이러한 비판이 일치 운동에 장애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이 없다고 하여 사도들의 행적과 초기 교회 교부들의 증언들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이후에 가장 오래된 문헌인 「클레멘스의 편지」와 다양한 교부들의 문헌에는 베드로가 로마의 첫 주교이며, 로마의 주교가 베드로의 직분을 계승하며 온 교회에 대한 으뜸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에 전승으로 알려진 「베드로 행전」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베드로가 박해를 피해서 가다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고,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 제단 아래에 있는 지하 묘지에 베드로의 유해가 묻혀 있다는 증거와 전승들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다양한 교부 문헌들의 증언과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따라 베드로가 로마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고, 로마에서 순교하여 묻혔다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황이 지닌 직무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대한 통치적이고 행정적 단장의 의미만은 아닙니다. 전 세계의 복음화와 신앙의 일치를 위하여 교황이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가톨릭교회가 미사 때마다 교황을 위하여 기도하는 의미를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3.06.21

예수님께서 이름 지은 베드로, 교회의 반석 상징[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29) 개신교가 교황을 베드로의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교황 직무는 세속적인 권력자로서가 아니라 ‘하느님 종들의 종’이라는 섬김의 직무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마태 28,19-20 참조)하는 사명을 받은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직무는 교회 역사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OSV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로마의 주교이고 전 세계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보편 교회의 최고 사목자입니다. 천주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케파, 곧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시고 맺고 푸는 권한을 주셨다는 성경 말씀(마태 16,18-19 참조)에 근거하여 교황직을 베드로의 후계자 직분으로 인정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6,17)라고 하시며, 교회를 이끌고 보호할 것을 당부하셨기에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직무를 교황이 이어받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천주교가 가르치는 교황 직무의 근거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합니다. 먼저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교회 설립의 근거를 두고 예수님이 베드로라는 한 인격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루터와 칼뱅은 이 성경 구절을 “나를 고백하는 사람은 모두 내 교회가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또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마태 16,16)라고 고백하였지만, 곧이어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이를 말리자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하고 말씀하셨기에 베드로가 온전한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개신교의 이러한 입장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 바르요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케파, 곧 반석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는 사실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되는 고유한 소명을 지녔음을 상징합니다. 이레네오 성인은 170년경 그의 저서 「이단 논박」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를 선택하셨고, 사도는 주교를, 주교는 후계자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주교들이 선택되었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사도들의 으뜸 제자로서 지닌 교회의 수위권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베드로에게 직접 하신 말씀에 근거합니다. 교황 직무는 세속적인 권력자로서가 아니라 ‘하느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라는 섬김의 직무입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마태 28,19-20 참조)하는 사명을 받은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직무는 교회 역사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발간된 「천주교 용어집」(개정 증보판, 2017년)에서는 ‘교황’ 호칭과 함께 교회의 가장 으뜸이라는 의미로 ‘교종’(敎宗)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안내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3.10.18

청원과 응답[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11) “제가 곤궁 속에서 주님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저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요나 2,3) 성경은 전부라고 하여도 무리가 없을 만큼 하느님께 부르짖는 인간의 애절한 탄원과 가엾은 인간을 자비로 돌보시어 응답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그러하였고, 야곱의 애절한 기도가 그러하였으며, 이집트로 팔려가 어두운 감옥으로 끌려가며 절절히 기도하였던 요셉의 울부짖음이 그러하였습니다.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짖던 모세의 기도가 그랬고, 엘리야 예언자를 비롯한 이사야, 예레미야 예언자들의 탄식의 기도가 그러하였으며, 용서해 달라던 다윗 임금의 참회의 기도가 그러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절망과 고통 속에서 욥이 그렇게 기도하였고, 곤궁에 빠진 수산나와 왕비 에스테르의 애절한 부르짖음이 그러하였습니다. 토빗기의 토빗과 사라의 기도가 그렇듯 간절하였고, 마리아의 기도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났던 시메온, 한나 예언자의 애원이 그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수많은 병자들은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예수님을 목 놓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은 끝내 자신들 울부짖음의 기도 끝에 하느님의 응답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아름다운 음성을 들은 이들은 그 응답을 기억하고 또 추억하여 주님 사랑의 만남을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늘 주님의 응답을 그리워하며 추억하고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 약속의 땅으로 갔으나 외아들마저도 죽여 당신께 바치라는 잔혹한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추호도 주님을 의심하지 않았던 아브라함은 밤마다 수없이 바라보았던 하늘의 별들을 보고 또 보며 그분의 약속을 분명히 기억하였을 것 입니다. 모세도 불평불만이 많았고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 천신만고 끝에 약속의 땅에 당도하였으나 끝내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홀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 옛날 미디안 광야의 타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들었던 하느님의 음성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이 자랑할 세속의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기며 달릴 길을 다 달려 마침내 죽음의 문턱까지 왔을 때, 로마의 트레폰타네에서 목이 떨어지는 순교의 순간, 다마스쿠스로 달려가던 길에서 만난 예수님의 음성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최후의 만찬 중 사랑의 예수님을 회상하며 그분께서 간절히 당신을 기억해 달라던 음성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복음은 성모님의 생애를 끊임없이 ‘기억하신 분’으로 증언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신앙인은 근본적으로 ‘기억하는 사람’ 입니다”(「복음의 기쁨」 13항)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곤궁에 빠진 인간의 애절한 기도와 자비의 하느님 응답, 그리고 하느님 사랑의 응답을 기쁨과 환희로 기억하는 아름다운 증언의 기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절망 중에 하늘을 우러러 주님께 부르짖을 수 있어야 하며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불치병으로 죽음 직전까지 마지막 삶을 체험하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주님을 부르고 또 불렀다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나 창피함을 떨쳐버리고 복음의 병자들처럼 애절함을 가득 안고 절절히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9,27)라고 목 놓아 외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드디어 주님의 응답을 들었습니다. 과연 신앙은 절망 가운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며 부를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참 신앙인은 그렇게 처절하게 사셨던 바오로 사도의 신앙 고백을 함께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그래서 같은 체험을 했던 요나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큰 물고기 속에서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던 청은 오직 하나,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주님만이 나를 아시고 나를 곤경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임을 잊지 말고 주님을 간절히 부르십시오. 분명 그분 사랑과 자비의 응답을 들으실 것입니다.” 배광하 신부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 cpbc2023.12.27

‘바티칸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 높아진 한국 교회 위상 반영문화출판 결산 성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이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서 거행되고 있다. 이날 한국 주교단과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600여 명이 한국의 성인 사제 성상이 축복되는 역사적 현장에 함께 했다.리길재 기자 2023년 가톨릭 문화출판계는 바티칸에 들어선 김대건, 다채롭게 변주된 안중근, 교계 전설적인 서적 출간, 원로 작가들의 왕성한 활동, 청년 작가들이 담아낸 세상 등의 키워드로 얘기할 수 있겠다. 김대건 신부 성상 성 베드로 대성전에 올해 한국 가톨릭교회의 가장 큰 선물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성상일 것이다. 한국의 첫 사제로 1846년 서울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한 성 김대건 신부 조각상이 9월 16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돼 축복식이 거행됐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 한국의 성인상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도미니코 성인 등 남녀 수도회 설립자들이 주로 자리한 곳에 갓과 도포, 영대를 착용한 성 김대건 신부가 들어선 것이다. 김대건 신부 성상은 대성전 우측, 시스티나 경당을 마주 보는 외벽 4m 높이 위에 3.7m 규모로 세워졌다. 순례자들이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보고 나와 큐폴라(지붕)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위치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가장 눈에 띄는 외형으로 자리하게 된 셈이다. 성상을 제작한 한진섭(요셉) 조각가는 제작에서 설치, 축복식까지 모든 과정을 소개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 전을 내년 1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한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중 ‘단지동맹’ 장면.마포아트센터 제공 무대에서 다양하게 변주된 안중근 2023년 가장 다채로운 모습으로 국내 무대에 오른 인물은 안중근(토마스, 1879~1910) 의사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거세지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저지하고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구축하고자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독립특파대장’이란 신분으로 1909년 하얼빈에서 의거를 단행한 안중근.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담은 ‘영웅’이 뮤지컬(연출 윤금정)과 영화(감독 윤제균)로 동시 공개돼 연초 관객들을 만났고, 광복절 즈음에는 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문병남 안무, 양영은 대본·연출)이 공연됐다. 이 작품은 안 의사가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지난날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여느 무대와 달리 아내 김아려(아녜스) 여사도 주목했다. 가을에는 서울가톨릭연극협회의 음악극 ‘안중근의 고백(go back)’(연출 민복기)이 초연됐다. 안중근의 일대기와 시대상을 그에게 세례성사 및 마지막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준 빌렘 신부의 눈으로 좇는다. 가톨릭교회 전설적 서적 잇따라 번역·출간 교계 출판사에서는 이른바 ‘전설’로 불리는, 1000쪽이 넘는 분량의 책들이 잇달아 우리말로 소개되었다. 먼저 그릴마이어 추기경의 「교회 신앙 안의 예수 그리스도」(1990) 1권이 한국어로 출간됐다. 「교부들의 그리스도론」이란 제목으로 사도 시대에서 칼케돈 공의회까지의 그리스도론을 다룬 책은 김형수(부산교구) 신부, 신정훈(서울대교구) 신부, 안소근(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최대환(의정부교구) 신부, 허규(서울대교구) 신부가 3년 동안 번역에 매달린 결과물이다. 2022년 ‘가톨릭성서모임’ 창립 50주년 및 2023년 도서출판 ‘성서와함께’ 창사 50주년 기념 프로젝트인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도 대장정에 돌입했다. 1968년 전 세계 가톨릭 학자들이 모여 성경 해석 기준을 제시한 책으로 평가받는 「제롬 성경 주해」의 전면 개정판(2022)을 2027년까지 총 33권으로 번역·출간하는 프로젝트다. 한님성서연구소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 수석연구원을 필두로 평신도, 수도자, 사제 등 26명의 번역자가 참여한다. 올레가리오 곤잘레스 신부가 2001년 첫선을 보인 이후 세계 각지의 신학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그리스도론」도 출간됐다. 교부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위대한 순간과 이를 기록한 최고의 저자들을 소개한 책은 윤주현(가르멜 수도회) 신부가 번역했다. 1260년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대주교가 집필한 「황금 전설」은 서울대교구 변우찬(우면동본당 주임) 신부가 우리말로 옮겼다. 신약 이후 천 년,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와 중세의 사회상이 담겨 있다. 원로 작가들의 왕성한 활동 문화출판계에서는 원로 작가들의 활약이 눈부셨던 한 해다. 50여 년간 국내외 성당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남기며 ‘빛의 화가’로 불리는 김인중(프랑스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는 제26회 가톨릭미술상 특별상을 수상했고, 원경(심곡암 주지) 스님과 함께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이라는 시화집도 펴냈다. 1세대 여성 조각가로 주로 남미에서 활동하다 올봄 오랜만에 고국에서 전시를 개최한 김윤신(쟌느) 작가도 제37회 김세중조각상을 받았다. 여름에는 최종태(요셉) 작가의 대표 작품을 엄선한 ‘50년 만의 초대’ 전이 절두산순교성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열렸고, 지난 10월 선종한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 시인은 남편인 조각가 김세중(프란치스코)을 위해 지은 김세중미술관에서 앞서 ‘사랑하리, 사랑하라’ 시화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제26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을 받은 이해인(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는 에세이와 시집을 잇달아 출간했고, 신달자(엘리사벳) 시인과 김홍신(리노) 작가도 오랜만에 신간을 발표했다. 청년 작가들이 담아낸 세상 생명과 환경,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재로 작업한 청년들의 창작 활동도 눈에 띄는 한 해였다. 최엘라(미카엘라) 작가는 떨어진 나뭇잎, 과일이나 채소 껍질로 예쁘고 싱그러운 작품을 만들어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 복도에 전시했고, 청년이라면 끊임없이 고민하는 ‘꿈과 현실’을 주제로 영화 ‘별을헤다’를 만든 김종진(요셉)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에 작품을 선보였다. ‘자유·정의·인권’을 주제로 열린 제3회 락스퍼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영화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은 북한이탈주민인 조문호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올해 분단된 남북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했다. 제10회 가톨릭영화제 단편경쟁부문 대상작인 이종훈 감독의 애니메이션 ‘건축가 A’는 삶의 희로애락이 집의 뼈대가 된다는 이야기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바람을 담았다. 명동 갤러리 1898에서는 지난여름 ‘성미술 청년작가 공모전’ 당선 작가 11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읽고 공동의 집인 ‘지구’의 조화와 회복에 대한 묵상을 작품으로 선보였고, 올해 마지막 전시인 제8회 가톨릭 청년 미술가회 정기전에서는 23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와 함께 ‘생명’에 대해 묵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2.15

성찬례를 제정하시다[월간 꿈 CUM] 꿈CUM 묵상_예수의 일생 (18)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십니다. 이 장면을 묘사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 1452~1519)의 그림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묘사한 성경 제목은 ‘최후의 만찬’이 아닙니다. ‘성찬례를 제정하시다’ 입니다. 최후의 만찬,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찬례 제정한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그 저녁 식사 속으로 들어가 보죠.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한번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예수님 마음이 어떠실까요. 당장 몇 시간 후면 십자가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런데 천방지축 제자들은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이 내일도 계속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식사가 내일 저녁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당신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골고타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고 싶으신 말이 아주 많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짧은 시간에 마지막 유언을 남기십니다. 만약 여러분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남기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평소에는 불효했던 자녀라도 아마도 그 유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아버지, 어머니의 유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유언하십니다.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 우리는 먹어야 합니다. 왜? 예수님의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마태 26,27) 우리는 마셔야 합니다. 왜? 예수님의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과거에 여러 신부님과 함께 40일 피정을 할 때 실제로 경험한 일입니다. 당시 이례적으로 서울 강남의 한 대형교회 목사님도 그 피정에 함께하셨습니다. 70세가 다 되신, 연세 지긋한 분이셨습니다. 평생 기도만 하고 살아오신 참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할아버지 목사님과 40일 동안 함께 피정을 하면서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오늘은 중요한 것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당시 피정 지도를 해 주시던 예수회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와 함께 피정하신 목사님이 성체를 영하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황하실 것 같아서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 목사님이 피정 초반부터 성체를 한 번이라도 영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신교는 성체의 실체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2000년 전에 있었던 일을 단지 기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성체를 드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계속 저에게 정말로 하느님 앞에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고백하신다며 예수님의 몸과 피를 모시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제발 성체와 성혈 안에 계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으니, 그 예수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눈물로 간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목사님도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피정을 하는 신부님은 9명 혹은 10명 정도였습니다. 목사님은 제 옆에서 미사에 참여하셨습니다. 그런데 성체를 모실 때가 다가오자 할아버지 목사님이 벌벌 떠시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얼마다 떠시는지 제가 불안할 정도였습니다. 목사님은 그렇게 엄청난 긴장을 하고 계셨습니다. 마침내 목사님은 성체를 모셨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땅에 털썩 주저앉아 ‘주님, 주님’ 하면서 대성통곡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바로 앞에서 성체를 모신 나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목사님은 그날 예수님을 만나셨습니다. 목사님은 그날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모습에 저는 크게 반성했습니다. 미사 때마다 넙죽넙죽 예수님을 받아 모셨던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이후로는 늘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성체와 성혈을 모시고 있습니다. 성체를 아무런 생각 없이, 무성의하게 모시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유언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성체 성혈을 받아 모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헛되이 하지 않는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유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 우리는 먹어야 합니다. 왜? 예수님의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마태 26,27) 우리는 마셔야 합니다. 왜? 예수님의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삽화 _ 김 사무엘 cpbc2024.06.03

둘로 갈라진 큰 바위 사이로 생명의 물이 흐른다[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33)성사실(聖史實) 이콘 해설- 예수님의 세례 (작품 1) 예수님의 세례: 템페라 (14세기, 오흐리드, 클레멘스 교회의 이콘 미술관 작품의 모작), 63 x 50cm, 이콘 마오로 미술관, 안성, 한국 가운데 옷 벗은 예수님 요르단강 안에 서 계시고 요한 세례자의 손 예수님 머리에 얹혀 있고 눈은 성령 바라보고 있어 1. 기원(起源)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을 초대 교회에서는 두 가지 의미로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는 빛이 드러나심(Epiphaneia)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이 드러나심(Theophaneia)입니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349-407)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탄생 때보다는 세례를 통해서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9-11) 이콘에서 제일 위쪽에 어두운 반원형의 성부와 빛나는 검은 원형의 성령과 중심에 세례를 받고 계신 성자로서 아버지, 아들, 성령 삼위를 드러냈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통해 많은 사람 앞에서 공적의 인정을 받으시며 그분의 인성과 신성이 드러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것을 공생활의 출발점으로 삼아 빛의 축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작품 1) 2. 민족들의 빛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되면서 하느님께서는 이미 선택하신 분을 빛으로 세워 말씀하십니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5-16; 이사 8,23─9,1)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이사 42,6)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나는 눈먼 이들을 그들이 모르는 길에서 이끌고 그들이 모르는 행로에서 걷게 하며 그들 앞의 어둠을 빛으로, 험한 곳을 평지로 만들리라. 이것들이 내가 할 일. 나는 그 일들을 포기하지 않으리라”(이사 42,16)라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오신 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고 요한복음은 그분이 빛이심을 처음부터 전합니다.(요한 1,5; 1,9) 이스라엘 백성이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탈출 13,21 참조) 인도받아 바다를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새로 태어난, 새 삶의 과정으로 세례를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빛 안으로 들어가는 새 삶이라고 말합니다. 세례받는 사람들은 새 삶에 대한 기쁨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에 빛납니다. 이는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라는 구절과도 연관됩니다. 세례 이콘이 강조하는 것은, 그분은 말씀이지만 인간으로 낮추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회개와 함께 죄 사함의 과정이지만, 그분은 본인 스스로 죄와는 무관하실지라도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를 씻으려는 의지와 행동으로 우리의 모범이 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이루시겠다는 의지가 들어있습니다. 다만 빛의 축일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정신과 영성을 이끄는 신학적 의미가 더 크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 2) 예수님의 세례: 템페라 24 x 19,5cm, 1500년경, 노브고로드 박물관, 노브고로드, 러시아 3. 구성(構成)과 상황 세례 이콘은 수백 년 지나는 동안 성경을 바탕으로 전례에 따라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더 강조하거나 추가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가장 전형적 형태는 커다란 바위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그 골짜기 사이로 많은 양의 물이 흘러내려 오는 것입니다. 그 외에 여러 인물·강·나무 등이 등장합니다. 가운데에 옷을 벗은 예수님이 요르단강 안에 서 계시고 요한 세례자의 손이 머리에 얹혀 있는 형태의 이콘은 여러 의미를 복합적으로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요한 세례자가 성령을 바라보고 있는 구성입니다.(요한 1,34 참조) 당시에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받으러 오는 많은 사람 앞에 성령께서 오심은 예수님의 모든 행적이 성령으로 충만하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연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이사 35,1-2) 그곳에 큰길이 생겨 ‘거룩한 길’이라 불리리니 부정한 자는 그곳을 지나지 못하리라."(이사 35,1-2.8) 자연은 거칠고 바위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부분으로 크게 갈라져 있습니다. 이 갈라진 형태는 인간의 깊은 죄의 결과로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상징합니다. 이 구렁텅이는 너무나 커서 간격을 좁힐 수 없었고 영원히 합쳐질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무너진 빈자리를 메워 다시 연결할 수 있는 누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느님’만이 해결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무너진 골을 메우시고, 사람과 하느님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십니다. 이것은 그가 사람이었으며, 그리고 하느님이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바위산은 네 개의 산봉우리를 이루며 조화롭게 윗부분의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 시각적 구성은 많은 상징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에 대한 신비를 증언한 네 복음이 이콘에서는 네 개의 봉우리로 상징화되어 있습니다. 특이하게 안으로 구부러진 정상은 네 번째 복음서를 상징합니다.(요한 복음서) 그것은 다른 복음들이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면들을 우선하여 설명한 데 비해 어떤 일·사실·사건 등을 통해 숨겨져 있는 영성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기록함으로써,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에게서 오신 그리스도를 드러나 보이려 합니다.(작품 2)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골짜기에는 생명을 주는 원천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삭막한 사막과 같은 그곳에 생명의 물이 흘러 꽃을 피우고 나무가 자라서 맛있는 과일들이 열리고, 아름다운 새와 곤충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에덴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즉 이는 네 복음을 통해 무한한 생명을 주는 생명수가 흘러나옴을 상징합니다.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며 말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중략)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하며 본인은 길을 닦는 사람의 역할과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알리려 했습니다.(요한 1,29-34)<계속> 김형부 마오로cpbc2024.08.28

“수도생활 70년… 은총이었네”독일 출신 진 토마스 신부 올해 서원 70주년을 맞은 진 토마스 신부. 2008년부터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화순분원에서 수도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오토바이 타고 비포장도로달려 사목... 평신도 신학 교육, 수도생활 중 가장 보람" 올해 서원 70주년을 맞은 진문도(토마스 모어, Joseph Wilhelm Timpte, 91,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화순분원) 신부. 한국에서만 60년 넘게 살았다. 약간의 경상도 사투리도 섞어가며 한국말을 맛깔지게 하는 독일 출신의 노(老) 수사 신부다. 역동의 시간 속에서도 70년간 한 번도 성소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진 신부. 사제로 수도자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 시대 어른이 전해주는 이야기다. 최근 전라남도 화순분원에서 그를 만나 하느님 안에 살아온 세월을 전해들었다. 성소, 완전한 봉헌 1933년 독일 오버하우젠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진 토마스 신부는 깊은 신앙심을 간직한 교사 출신 부모에게서 올곧은 성품을 물려받아 자연스레 선교사의 삶을 꿈꿨다. 고등학교 때 당시 이름난 베네딕도회 출신 선교학 교수와 깊은 대화를 하고 진로를 결정했다. 베네딕도회에 입회한 이유도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혼자보다 공동체가 더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1953년 베네딕도회에 입회하고 이듬해 5월 첫서원을 한 진 신부는 “완전한 봉헌의 기점을 종신서원으로 보지만, 저는 첫서원 때 이미 일생을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 후 성소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느님 은총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겠네요.” 그렇게 진 신부는 첫서원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순종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서원 후 첫 소임은 공부였다. 로마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1957년에 종신서원, 1960년에 사제품을 받고는 한국 선교 발령이 났다. 아프리카에서 철학을 가르칠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들은 예상치 못한 행보였다. 전쟁과 가난, 언어의 어려움이 예상돼 걱정이 앞섰지만 그는 순종했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알려졌는데, 저는 우표 모으는 취미가 있어 이미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주 낯설지만은 않았습니다.” 진 신부는 40여 일간 배를 타고 1962년 3월 10일 한국 땅을 밟았다. 순명의 삶 처음 본 한국 모습은 생각보다 더 가난했다.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에서 창밖을 보는데, 초가밖에 없었습니다. 포장 도로도 없었지요. 그래도 재밌었습니다. 오토바이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사목했어요. 깊은 산속에 있던 공소에는 걸어 올라가기도 했고요. 지금은 상상조차 못 할 가난한 삶이었지만,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좋았던 시절도 잠시, 그는 33세에 수련장이 됐다. 진 신부가 수도생활 통틀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는 시기다. 10살도 차이 나지 않는 수련자를 외국인 신부가 지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는 서로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금 두 명 남았는데, 그래도 같이 늙어가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왜관수도원에서 가장 큰 어른들이고요.” 시간이 지나 1995년에 다시 한 번 수련장을 맡게 됐다. 그때는 영국에서 심리학과 영성신학 등을 배운 뒤라 훨씬 수월했다. 그렇게 진 신부를 거쳐 간 수련자는 15년간 100여 명에 이른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하면서도 순명이라는 이름으로 그 긴 시간을 감내했다. 진 토마스 신부가 보좌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사목하고 있는 모습. 진 토마스 신부 제공 1963년 왜관 본당 보좌로 사목하고 있는 진 신부. 진 토마스 신부 제공 첫서원 후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진 토마스 신부.(가운데) 진 토마스 신부 제공 평신도를 위한 신학 교육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진 신부는 왜관 가톨릭신학원(현 대구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학원) 시절을 회상했다. 본래 수녀들의 신학 공부를 위해 시작했는데, 가끔 평신도들이 왔다. 그들의 열정을 본 진 신부는 1985년 직장인들을 위해 야간반을 만들었다. 당시 남자만 받으라는 주교의 권고가 있었지만 남녀 모두에게 열어뒀다. “교리교사를 위한 교육은 있었는데, 평신도들을 위한 신학 교육은 한국에서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평생 순종만 하다가 제 의지대로 처음 해본 일이었습니다. 서로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몰라요. 포항에서 일 끝나고 왔다가 수업 후 다시 돌아가는 분도 계셨고요. 고된 일을 하고 공부하려니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수업 중에 꾸벅꾸벅 졸면서도 끝까지 들으려 하더라고요. 그렇게 7년을 가르쳤습니다. 제 수도생활 중 가장 보람된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진 신부는 소소하게 그간의 기억을 꺼냈지만, 교회 내 굵직한 일도 많이 맡았다. 「200주년 기념 신약 성서」 번역에 참여했고, 수도승 생활·영성 전문잡지 「코이노니아」도 시작했다. 30년 이상 번역해 실었던 「요한 카시아누스의 담화집」이 최근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특히 진 신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부터 교회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 산증인이다. 그는 “공의회 개최 소식을 듣고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새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새로워질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다만, 60년 전 흘렀던 눈물이 아직도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시노달리타스를 하고 있는데, 그때와 방향은 비슷합니다. 변화는 계속해서 필요하고 모두가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과정에 말입니다.” 진 신부는 또 “수도생활도 위기라고 하는데, 위기는 새로운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의 현대사도 함께한 그다. 진 신부는 “이렇게 단시간에 발전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면서도 출산율 저하·높은 자살률 등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해 우려했다. “행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인간은 욕망을 채울 때 행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고, 그걸 깨닫게 해주는 게 교회의 일이죠.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면 더 나은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라치아 2008년부터 전라남도 화순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진 신부는 지금도 성경과 함께 「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을 가장 가까이에 두고 있다. 진 신부는 곁에 둔 규칙서를 펴고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읊어줬다. “구원의 길을 도피하지 마라. 그러면 수도생활과 신앙을 나아감에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 계명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구원의 교훈을 지킴으로써 그리스도 수난의 인내로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 손때가 잔뜩 묻은 규칙서는 첫서원 후 70년의 세월을 말해줬다. 진 신부는 규칙서를 닫으며 다시 한 번 은총의 시간을 되뇌었다. “라틴어로 은총을 뜻하는 ‘그라치아(Gratia)’는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말입니다. 은총이라는 말에 다 표현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선물을 쏟아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전에는 성총(聖寵)이라고 불렀지요. 아직도 기도할 때 분심도 들고 어려워요. 그럼에도 수도생활은 그라치아입니다. 언제 불러주실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 계속 하느님 찬양하는 삶 살아야지요. 그라치아!” 박민규 기자 mk@cpbc.co.kr신문취재팀 박민규2024.10.02

성전건립 유감(有感)」(7)-뚝심과 효심으로 이룬 성전-궁즉통이라 했던가, 궁하면 통하고 닥치면 하기 마련이라고... 그저 충실히, 열심히 하다 보니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고 천사들을 보내시어 은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후원자들을 보내주셔서 보잘 것 없는 이 사제의 갈망을 기묘하게 갚아주신 것이라 확신한다. 기금 마련 초기에 기금이 늘어나는 것에 재미가 들려 열심히 재미있게 하는 중에 디스크 협착이 발생해서 한 2년간 죽는 줄 알았다. 전철을 갈아타러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발걸음 걸음마다, 뼈가 울리고 심지어 숨 쉬는 순간마다 통증이 올라와 정말 고통스러웠다. 더욱이 기금 마련 미사 중에 웃고 싶어도 통증이 심해서 도저히 웃음이 나오질 않아, 공지사항 시간에 ‘제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맘에 안들거나 미워서가 아니라, 허리가 너무 아파 숨만 쉬어도 죽을 지경이라 그러니 양해해 주시라’고 한적도 있었다. 통증을 줄여보려고 나아보려고 별짓을 다했다. 약 복용부터 사혈, 교정치료, 침 맞기... 별별 짓을 다 해봐도 효과가 없어 포기하려다가 교구의 몇몇 신부들이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았다는 증언을 듣고 손해 보는 셈 치고 가봤다. 세상에~ 그렇게 아픈 침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도 맞고 나면 한 이틀은 실컷 두들겨 맞은 듯 더 아팠다. 그러다가 다섯 번째까지 맞아도 별 효험이 없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맞아보고 그래도 효과 없으면 그만두려다가 여섯 번째 맞고 한 이틀 있더니 감쪽같이 나았다. 한의사의 실력인지, 천사의 손길인지... 정말 오랜 어둠에서 빛으로 해방되는 듯 했다. 우리 교우들에게도 공표하고, 나와 비슷한 경우라면 꼭 가보라고 연락처까지 알려줬다. 그 과정에서 서울의 어느 자매님이 치료를 받도록 경제적 도움을 주시기도 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새삼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알렐루야~! 기금 마련을 하러 가는 본당에는 빈손으로 가기가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에 주임 신부님과 수녀원, 사무실, 관리원까지 인견 이불과 반바지를 감사의 선물로 드렸다. 이불과 반바지를 구입한 교우들은 매우 만족하며 재차 구입하는 분들도 많았다. 어떤 분은 미국에 가져가고 싶다고 구매를 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아예 공장을 차려서 회사를 운영해볼 걸 그랬나...싶은 생각도 든다... 그랬다면, 꽤 많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란 착각 아닌 착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이사장을 맡아서 가난한 우리 교우들 매장 하나씩 차려주고 일자리를 마련해주면 먹고 사는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ㅜㅜ 돈맛을 보더니 별 생각을 다해봤다. 기금 마련을 허락해준 본당 신부님께는 가시는 임지를 알아내서 성탄과 부활 축하 인사와 메시지를 꼬박꼬박 보내드리고 감사를 표시했다. 큰 금액을 봉헌하신 분께는 대한민국 최고의 밤 ‘공주밤’을 좋은 것으로 골라 감사의 선물로 보내드렸다. 만족도가 높았다. 유구 성당에 재임하는 동안에는 계속 보내드렸다. 고마운 마음에 뭐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드릴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도 성전을 더욱 정성껏 건립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분들이 와서 성당을 보셨을 때 ‘아, 참 예쁘다... 아름답다, 거룩하다... 내가 봉헌한 후원금이 이렇게 은혜롭게 쓰였다니...’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기뻐할 수 있게... 돌아보니, 처음 보는 신부를 따뜻이 맞으며 ‘고생 많다’고 격려하며 즉시 허락해주는 신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신부는‘가방을 매고 땀을 찔찔 흘리며 안된다는 데 여러 번 찾아가니...’ “혹시 미친 거 아니냐~(또라이냐?)”라고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내가 진짜 신부인지 못 믿겠으니, 교구 주교님께 확인서와 신부 증명서를 보내고, 당신 동창 신부님들의 증언서도 제출하라고 한적도 있었다... 워낙 많은 곳에서 많은 신부들이 도움을 청하러 손을 빌리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으면서도 살짝 야속하고 서럽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본당에 부채도 적지 않게 남아 있으면서도 기꺼이 오라고 환영하는 신부도 있었고, 두 번이나 기회를 준 신부도 있었고, 결과가 약하지 않냐며 별도로 추가 지원비를 주는 신부도 있었다. 심지어 공지사항 시간에, 자기 본당에도 큰 사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교우들을 앉혀놓고,“얼마나 어려우면 여기까지 와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움을 청하겠느냐?... 서울 신자들이 다 어디서 왔느냐, 다 시골에서 낳아 키워서 보내지 않았느냐, 우리 고향 성당에 벽돌 한 장 얹는 마음으로 우리가 성심껏 도와야 한다~”면서 감동의 일장 연설을 하여 우리를 울리고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뜨린 신부님도 있었다... 참으로 나만의 힘이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한다. 그런가 하면 강론 시간을 주지 않고 공지사항 시간에 3분만 홍보하라고 하는 신부님도 있고... 그런 경우는 그냥 갈까 싶다가도 어떻게 왔는데... 한 푼이라도 더 마련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버티기도 했다.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극성스럽게 다녔다. 이렇게 늘 기금 마련을 다니다 보니, 비어있는 본당은 어찌할 것인가~ 누군가 와서 내 대신 주일미사(특전~주일)를 봉헌해 줄 신부님이 있어야 했다. 이게 또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우리 성당은 수리치골(성모성심수녀회)이 가까이 있어서 거의 매년 안식년 하는 신부가 와서 있었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워낙 오랜 기간을 하다 보니... 한두 번도 아니고 그도 어려워서 아예 시간 여유가 되는 신부를 찾았다. 그러다가 은퇴신부님(원로사제→지금은 성사전담사제로 바뀜)을 찾다가 내가 가끔씩 찾아뵙곤 하는 원로 신부님께 찾아가서 부탁을 드렸다. “걱정 하지 마, 뒷방 늙은이라 할 일도 없는데 할 일 생겨서 좋고, 후배 신부가 어려운 형편에서 성당을 짓겠다고 그 고생을 하는데 늙은 신부가 가서 공기 좋은 산골에서 순박한 교우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냐”며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그분이 우리 본당에 미사를 봉헌해주신 기간이 몇 년인지 모를 만큼 오랫동안 미사를 봉헌해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어김없이 30분 전에 오셔서 고해 성사를 주시고 미사를 봉헌하시고는 일체 식사 대접이나 미사 예물도 안 받으시고 바로 가셨다. 회장단에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신부님이 그냥 가시는데 어쩌냐’고 하니~ 답답하고 죄송하고 민망했다. 한 번은 ‘제 마음도 좀 받아주시고 우리 신자들 마음도 좀 생각해 주셔야 되지 않느냐’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씀 하셨다. “절대 그런 소리 하덜 말어~ 할 일없는 신부가 공기 좋은 산골에서 순박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는 일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야~ 그 자체가 나에게는 선물이고 보람이라구~”그분은 단 한 번도 식사 대접을 안 받으셨고, 미사 예물 한 푼도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만일에 미사 예물을 준다거나 그러면 안 갈 거야~”라고 무서운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 나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심장이 쿵 하고 코끝이 찡~하며~ “신부 몸땡이는 말이여~ 교회가 쓰라고 있는 것이여~”... 하~ 아마도 이 말씀은 성경 말씀과 더불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물론 내 심장에는 결코 지울 수 없도록 깊이 아로새겨졌다. “신부가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은총이고 즐거움인데 어찌 한 푼인들 미사예물을 받는다냐~.” 참으로 그분다운 말씀이셨다. 여러 번 만나 뵙고 찾아뵈면서 성격은 참으로 독특하고 괴팍하신 편이지만 그분의 생각이나 성덕, 학덕 그리고 사시는 모습은, 또 순교자에 대한 공경의 마음은 후배들이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 철저하신 분이시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까나~ <계속> -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 cpbc2024.10.17

하느님 따른 성현들의 삶, 병든 신앙의 치유책이자 길잡이 요한 케르벡의 '주님 승천' 출처=가톨릭 굿뉴스 갤러리 신앙은 결국 하느님과 개인의 관계이다. 주님 승천 대축일이자 홍보 주일을 맞아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으로 믿음의 본보기가 된 주요 인물을 지금의 여러 관점에서 고찰한 책을 소개한다.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 / 이나미 지음 / 생활성서 “어쩌면 소화 데레사를 닮고 싶어 하는 이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슬픔에 머물지 않고 신앙심을 깊게 해서 사랑을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신 의학에서는 이를 회복력(resilience), 즉 고통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정신력의 차이로 설명하는데, 영성의 힘으로 고통을 의미 있는 행복으로 바꾼 데레사 성인이 정신적 치유의 궁극적인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소화 데레사 성인’ 중에서) 일반인도 심리학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누군가의 순간적인 언행부터 오랜 삶의 궤적까지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치는 기저가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성인들은 어떨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종교심리학 석사이기도 한 이나미(리드비나) 작가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을 통해 교회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일생과 그 사상을 ‘종교심(宗敎心)’에 기인해 분석한다. 저자는 어머니의 모범 모니카 성인, 광대한 학문적 성취를 이룬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 고통받는 아이들을 품어 안은 돈보스코 성인, 선으로 악을 이긴 아우슈비츠의 성자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성인 등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을 따른 성현들의 삶을 톺아본다. 그들이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선택과 그 선택이 가능했던 종교심, 그러한 종교적 심성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완성하는지, 공동체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저자는 “높은 차원의 세계를 보여 주었던 교회사 속 인물들의 삶을 배우고 묵상하는 것이 그나마 영적인 능력이 부족하고 마음이 병든 우리에게는 최선의 치유책이자 길잡이가 아닐까 싶다"며 "우리와는 참 많이 달랐던 고결한 이들이 걸었던 삶의 궤적과 사상의 형성 과정을 찾아 감히 흉내라도 내 보려 한다면, 그저 막연해 보였던 ‘참자기 찾기’라는 고귀하면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여정의 시작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한다. 책은 종교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예수회 심백섭 신부가 감수했다. 구약의 사람들 / 주원준 지음 / EBS BOOKS “성경은 저 멀리 떨어진 곳의 먼 과거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지금 여기서 내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다. 노아의 이야기는 용서하는 신이 의인을 살려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86쪽) “모세의 방식은 참여적이고 실천적이었다. 그는 인식이나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았다. 백성들을 모아 파라오에 대항했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도 과감한 결정을 요구했다. 개선하고 조금씩 고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차원의 질서, 신적인 해결책을 상상하고 수용하기를 원했다.”(154쪽) “다윗의 위대함은 그가 쌓은 훌륭한 업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쓰러졌다가 일어서고, 마음을 다잡았다가 또 잘못을 저지르고, 실패하고는 다시 세상과 싸우기를 반복했다. 그는 상처를 겁내지 않고 도전하는 일에 삶을 바쳤다.”(205쪽)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유딧···. 종교와 시대를 넘어 꾸준히 언급되는 인물이지만, 이들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대근동 세계의 맥락에서 이러한 구약성경 속 인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성찰과 해석을 시도한 책이 출간됐다. 바로 고대근동학자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 작가가 집필한 「구약의 사람들」. 저자는 우선 ‘구약성경’을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신부가 고안했던 용어인 ‘첫째 성경’이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구약(옛 약속)은 신의 ‘첫 약속’, ‘첫 사랑’을 담은 책이며 “쓸모없고 빛바랜 약속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초심’을 담은 경전”이기 때문이다. 그 첫째 성경 속 사람들은 고대 근동인이며, 그들의 이야기에는 빈구석이 많다. 저자는 “성경의 공백과 생략, 비약을 읽어내는 것은 읽는 이의 능동적 참여”라며 “이런 ‘빈구석’이야말로 첫째 성경이 지닌 가장 위대한 점”이고 “신이 당신을 초대하는 자리”라고 강조한다.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인 저자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구약학(성서언어학)과 고대근동언어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서강대학교에서 구약성경, 고대근동의 종교, 히브리어, 유다교 등을 강의하고 있다. 2012년 「구약성경과 신들」로 제16회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고, 「구약성경과 작은 신들」, 「인류 최초의 문명과 이스라엘」 등을 펴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5.11
![[제11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믿는 만큼 더 가까이](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2/13/PQQ1707803655978.jpg)
[제11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믿는 만큼 더 가까이김유영(미카엘, 청주교구 청천본당) 찬미 예수님 주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사랑을 증거하도록 이끌어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죽음의 골짜기 오래전 병마가 나에게 침입하기 전의 신앙생활은 솜사탕같이 달콤하고 바위같이 굳건하였다. 온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여하러 갈 때는 천국을 사는 듯한 행복감에 젖기도 했다. 그러나 마귀가 시샘이라도 하듯 설마 했던 걱정거리가 진한 아픔을 안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현실로 닥치고 말았다. 의사로부터 “간경변이 많이 진행되었습니다”란 진단 결과를 듣는 순간,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눈앞이 캄캄해졌고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여보! 여보!”하는 아내 젬마의 울음 섞인 소리를 들으며, “이제 나는 다 끝났구나, 다 끝났어!” 탄식만 나도 모르게 간간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젬마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멍하니 시선을 허공에 꽂은 채 있자, 사랑하는 젬마, 귀여운 두 딸 그리고 장남인 나를 자랑삼아 고향에서 노후를 즐겁게 보내고 계시는 부모님의 얼굴이 차례로 그려졌다. ‘이제 모두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독백을 하면서 생각을 끊어버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건강 걱정, 생계비 걱정 그리고 불길한 생각으로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 방 저 방 다니며 가족들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죄스러운 마음에 보상이라도 하듯 이불을 덮어주곤 했다. 욕실에 갈 때마다, 검어져 가는 얼굴 빛깔을 인정할 수가 없어 몇 번이고 세수를 해보아도 틀림없는 나의 얼굴이라, 두려움에 휩싸여 사지가 후들후들 떨릴 때가 많았다. 성체 앞에 엎드려 “주님! 제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합니까? 저의 사랑스러운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저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원망 반 애원 반의 기도를 드리며 안정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침묵만 지키시는 주님을 체험하며, 지진에 빌딩 무너지듯 믿음도 무너지는 것 같았고, 나에 대한 가족들의 지극한 간호도 다 부질없이 보였으며 다정한 이웃의 격려도 그저 인사치레로만 받아들여졌다. 모두가 떠나버린 듯한 적막 속에서 한 쓸모없는 인간이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흐느끼고 있는 처량한 모습만 보였다. 이 와중에 ‘병마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라는 문제를 놓고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 젬마와 큰 차이를 드러내면서는 외딴 섬에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더욱 외롭고 두려우며 암담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특효약이 없을까? 효험 있는 치료방법이 없을까?’미사 참여도 거부한 채 이곳저곳 서점을 뒤지기도 하고, 또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치료방법을 찾는 것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젬마는 사흘이 멀다고 밤샘기도회를 다니며 남편의 치유를 간구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 어쩐지 나와는 다른 타인으로 여겨졌다. 젬마는 기도회나 피정을 다녀와서 신앙적인 말씀들을 나에게 전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한 나에겐, 먼 나라의 신화 같은 얘기로만 들렸고 설 익은 감을 먹었을 때처럼 떨떠름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자만심에 꽉 차 있었던 나도,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 두렵고 무기력하고 초조한 느낌 속에 휩싸여 있었다. ‘마음은 괴롭고 고독하고, 육신의 질병은 심해져만 가고, 되는 일은 없고…. 아! 내가 왜 이런가?’ 죽음의 골짜기에서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으며 혼자 끙끙 앓았다. 희망의 밧줄 그러던 어느 날, 젬마가 “함께 밤샘기도회에 갑시다”라고 권유했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잘못되어 죽고 나면 젬마가 그토록 애원하는 기도회에 한 번 가주지 못한 나를 얼마나 원망할까’하는 생각과 죽은 사람 원도 들어주는데 젬마에게 후회가 없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선심 쓰듯 따라나섰다. 기도회에서 젬마가, “주님! 제가 미카엘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겠으니 미카엘을 살려 주십시오! 그리고 미카엘에게 주님 계심을 알게 해주십시오!” 라며 울부짖으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젬마가 저렇게도 나를 위해 희생을 다하는데, 나는 젬마를 위해 무얼 했나? 마음에 상처만 주고 고생만 시키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나를 흐느끼게 하였다. 주님 밖에서 오만으로 살아온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게 한 회개였으며, 필요에 따라 입었다 벗었다 하는 양복저고리 같은 신앙에 대한 통회의 눈물이었다. 그때부터, 나와 젬마는 유일한 희망의 밧줄로 주님을 굳게 붙잡았다. 함께 열심히 기도회에 다녔고, 매일 미사에 참여했고 늘 기도하는 생활을 추구해 나갔다. 또한, 매일 성경 묵상을 통하여 말씀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길어 올리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성경 말씀 속에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을 발견했을 때는 기쁨에 겨워 온 집안을 춤추듯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어느새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주님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되니, 육신의 고통도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믿음으로 이겨나갈 수 있었다. 성경 말씀의 한마디 한마디는 곧 생명의 길이었다. 시편 23장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중략)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 말씀을 암송하여 읊으니, 가는 목소리가 굵은 목소리로 바뀌며 온몸에 생기가 돌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갔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마태 18,20) 말씀에 따라 우리 부부는 오직 기도로 함께 주님께 매달렸다. “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마르 11,25) 말씀에 따라 기도할 때, 나는 건강할 때의 나의 사진을 벽에 걸어두고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리곤 했다. 미끄러져 간 밧줄 하지만 간경변이 심해져 혈류가 간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역으로 흘러 식도의 정맥류로 빠져나옴에 따라 실핏줄이 고무풍선같이 불어나는 식도정맥류가 발생했다. 자칫하면 실핏줄이 터져 한 시간 내 봉합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의사도 더는 뚜렷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인 나머지, 겨우 잡은 주님께의 희망의 밧줄에서 손이 맥없이 스르르 미끄러지고 있었다. 한밤중에 가족들이 잠든 틈을 타, 유언서를 작성하려고 노트 두 권을 꺼내 각 권에 제목을 썼다. ‘사랑하는 아내, 젬마에게’, ‘사랑하는 나의 두 딸에게’. 그러나 제목 외엔 한 글자도 더는 쓸 수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이 세상을 결코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펜을 놓게 하였다. ‘그렇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믿고 더욱 매달리자!’고 나는 다시금 철석같이 다짐했다. 주님 만남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세상 끝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말씀은 주님께로의 희망의 밧줄을 다시 굳게 붙잡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다시금 주님에 대한 믿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이웃 교우들의 사랑은 백만 원군 같은 힘이 되어 주었다. 함께 투병을 한 이웃의 아녜스 자매는 자신도 불면증에 걸려 애를 먹고 있었지만 내가 고통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고, 주님께 “미카엘에게 자신의 잠을 나누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해주었다. 특히 본당 ME 가족들은 1년 동안 매주 금요일 밤 우리 집에 와서 함께 기도해 주었다. 그 모든 기도와 사랑은 유일한 희망의 밧줄인 주님을 더욱 굳세게 잡게 해주었다. 신약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환자를 치유하신 사례 26가지를 뽑아, 환자와 예수님의 대화록을 만들어 보았다. 분석한 결과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또 하나는 측은한 마음에서 예수님은 치유시켜 주셨다. 그래서 나는 믿음으로 주님께 바짝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매일 바치는 묵주기도의 어느 감사기도 시작 날 밤엔, 환시 속에 성체를 보름달같이 환하게 보여주셨다. 이는 나의 고통에 함께하고 계심을 확실하게 믿게 해주셨고, 매일 미사에 참여하라는 계시로 받아들여져 그 후 빠짐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이웃의 사랑, 성경 말씀, 기도 그리고 환시 속에서 나는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께서 늘 나와 함께 계심을 굳게 믿게 되었다. 그러자 삶의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죽음을 이긴 사랑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서울에 올라와 3년여 동안 다녔던 Y병원 주치의는, “간경변 시한부 6개월 정도의 말기입니다. 이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간이식인데 이 병원에서는 안 됩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 결과를 말해 주었다. 순간 많이 놀랐지만,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이미 체험한 나로서는 주님께서 반드시 살려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젬마와 함께 곧바로 성당에 달려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님, 두렵습니다. 간이식밖에는 방법이 없는가요? 이 방법은 또 성공할 수 있는가요? 제 모든 것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오니 주님 뜻대로 하소서.” 한참 동안 기도를 하고 나니 마음의 평화를 가까스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겹겹의 장벽으로 앞을 막고 있었다. 마지막 방법인 간이식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으면서도 수술에 대해 몇 가지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우선 수술의 성공 여부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또한 거액의 수술비는 어떻게 마련하며, 간 기증자를 구할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 마침 어느 TV 방송에서 간이식 명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수술의 성공 여부에 대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돈 문제도 집을 담보로 융자를 받는 등 이런저런 방법을 찾으면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간 기증 문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해결의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수술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또다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눈치챈 젬마가, “무엇이 걱정입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당신을 살리겠습니다. 또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시다”라고 말해 주었을 때, 수호천사가 말해 주는 듯 새로운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기로 재결심하고 기도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그즈음 어느 날 대학교 1년생인 큰딸 클라우디아가 내가 간이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클라우디아는 인터넷에서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간경변 환자의 간 사진을 확인하고는, ‘아빠가 이런 지경이시라니, 아빠와 내가 혈액형이 같으니 내 간을 드리면 되겠구나’라고 결심했다. 다음날 클라우디아는 학교에 가기 전,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빠, 간이식 수술하세요. 제 간을 드릴게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을 발견했을 때처럼 내 눈이 번쩍 띄었다. 부모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자신의 간 일부를 아빠에게 주겠다고 나선 큰딸의 마음은 기특하고 고마웠지만 순간 시집도 안 간 딸의 배를 가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래, 고맙다. 그렇지만 어찌 어린 네 배를 가르겠느냐? 두고 보자”하며 큰딸을 달랬다. 간이식을 해야 한다는 소식은 나의 네 명의 동생들에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큰딸이 간 기증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은 동생들은 자신들이 간 기증을 하겠다고 했다. 동생 진영은 회사 휴직계를 내고 단숨에 병원으로 달려왔다. 나는 동생들이 큰딸은 처녀이기에 배를 가르면 안 된다며 서로 간을 내놓겠다고 하는 모습에서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었고, 그러므로 나는 분명 살 수 있겠다고 확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생 진영의 간 정밀검사 결과 좌우엽 간의 비율이 맞지 않아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다른 동생들도 나서고 큰딸도 강한 의사를 표현했다. 그래서 나는 “정밀 검사하여 가장 좋은 간으로 하자”고 했는데, 그 검사 결과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죽음의 골짜기에 드리운 한 가닥 희망의 밧줄을 잡고 겨우 올라왔는데, 다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 듯한 절망감으로 한동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성체조배로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현존 체험 주신 주님은 반드시 길을 주실 것이다’란 믿음으로 다시 기도에 매달렸다. “주님, 의료진에게 지혜를 주시어 저를 살려주세요.” 며칠 후 의료진으로부터 제안이 왔다. “두 사람 간을 가지고 해봅시다. 이 방법은 아직 성공하지 못한 세계 최초의 방법입니다.” 눈이 번쩍 뜨인 반가운 제안이었지만 그 이야기는 수술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의료진에게 “나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주님께 먼저 기도하고 답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온종일 기도를 바쳤다. “주님, 방법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오니 수술에 함께하시어 건강을 도로 주소서! 혹 주님의 뜻이 저를 데려갈 양이면 주님 뜻대로 하소서. 그리고 우리 가족들을 돌보아 주소서!” 기도하고 나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당시 나는 육신의 생명을 넘어 구원의 은총을 주님께서 이미 주셨음을 믿었기에 더는 육신의 생명에 연연하지 않았다. 의료진에게 답변하였다. “두 사람 간으로 해봅시다.” 이렇게 하여, 의사에게 매일 자신의 간으로 해달라고 매달린 큰딸과 다시 휴직계를 내고 단숨에 달려온 동생 진영이 수술을 받게 됐다. 한 사람마다 간이식 수술이 20여 시간 동안 있었고, 수술 이틀째 아침 9시에 나는 눈을 떠 빛을 보았다. “아, 내가 살았구나! 주님, 감사합니다!” 탄성과 기도가 절로 터져 나왔다. 십여 년간의 투병 중 시한부 마지막 절박한 시점에서 맛본 통쾌한 사랑의 승리였다. 주님을 굳게굳게 믿고 간절한 바람으로 끊임없이 기도로 매달린 끝에,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베풀어주신 크나큰 은총이었다. 중환자실서 사흘을 지낸 뒤 무균실에서 재회한 젬마와 나는 어깨동무하여 병원 복도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성가 447번 ‘찬미 예수님’을 노래했다. 그리고 시편 40장의 다윗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에게 몸을 굽히시고 (중략) 우리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담아 주셨네.” 언론에선 세계 최초의 2:1 듀얼 생체 부분 간이식 수술이 성공하였다고 난리였지만, 나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감격에 겨워 울먹이며, 때로는 춤추듯 드렸다. 소생(蘇生)의 삶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하고 있던 어느 날, 나의 고통의 시기에 많은 기도와 격려를 주신 당시 청주교구장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님께 전화로 감사 인사를 드렸다. 주교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카엘 형제 축하해요. 성경에 죽은 라자로를 주님이 살려 주셨는데, 그 후 라자로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록이 없어요. 미카엘 형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래요?”라고 질문하셨다. 나는 순간 나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주님께서 살려주신 것에 들떠 마냥 기쁘기만 했는데 이제부터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것인지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나는 그 답을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에 주교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렸다. “사랑하기와 감사하기입니다.” 살아난 이후 실제 그렇게 노력해 온 삶이었기에 자신 있게 말씀드렸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은총을 체험했기에 인터넷 카페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를 개설하여 기도를 부탁하는 분들과 기도를 봉헌하는 분들이 함께 사랑을 나누는 마당을 만들었고 현재 회원 4천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ME(매리지 엔카운터)의 발표팀으로 봉사하며 부부 일치를 위해 헌신하였다. 중간에 젬마의 가게 일로 ME 봉사를 중단해야 하는 때에 우리는 아주 잘 되던 가게를 과감히 정리하고 봉사를 계속해 나갔다. 그동안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신앙체험을 나누는 기회가 있는 때엔, 나는 만사를 제치고 어디든 기꺼이 나섰다. 하느님의 함께하심을 증거하는 일은 내가 다시 사는 소중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어려움으로 일부 신자가 성당에 나오지 않는 때인 요즘에도 우리 부부는 더욱더 매일 미사 참여와 성경 말씀 묵상과 기도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본당 ME 대표, 레지오 활동, 아내 젬마의 제대회 회장, 나의 성인 복사 등 성당에서 필요한 봉사에도 순명하며 기꺼이 임하고 있다. 최근 괴산 지방에 수해가 났을 때, 나는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크게 손실을 본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복구 작업에 힘썼다. 암 투병을 하며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 자매에게 우리 부부는 하느님의 함께하심 체험담을 들려주며 선종할 때까지 주님 안에 머물도록 돌봐 주었고 그 후 홀로 남은 형제의 뒷바라지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건강치 못한 내가 봉사에 열심인 모습을 본 많은 교우가 만류하여도, 나는 그동안 받은 주님의 은총을 만분의 일이라도 갚는 마음으로 나선다. 나의 굳건한 믿음과 사랑의 실천을 보며 이웃 교우가 더욱 신앙생활에 충실한 모습을 보일 때엔 뿌듯함을 느낀다. 페이스북 등 SNS 활동을 통하여도 신앙생활의 기쁨을 나누고 믿음을 증거하는 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건강 문제로 병원을 가끔 들락거리며 때로는 입원할 때도 있다. 하지만 병원 그 자체 또한 선교와 기도의 터가 된다. 내가 있는 곳 그 어디든, 나의 상황이 어떠하든, 나는 주님께서 늘 함께하심을 굳게 믿기에 두려움을 떨치고 희망의 웃음이 얼굴에 피어오른다. 고통이 없는 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이기는 힘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린다. 증언하라 긴 투병 생활은 분명 고통의 시기였지만, 하느님께 믿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하느님의 현존하심과 늘 함께하시는 사랑을 깊게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했다. 믿는 만큼 더 가까이에서 주님의 숨결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인생 최고의 축복 시간이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야고 4,8) 말씀이 나에게서 뚜렷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 주신 값진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하느님 현존하심과 늘 우리 각자와 함께하심을 증언하는 일’을 더 살아야 하는 소중한 새 사명으로 삼았다. 그래서 건강상 퇴직했던 과거 직장에서 사업을 제의해 왔지만 거절했다. 돈을 더 벌려고 동생과 딸의 간을 받아 가며 생명을 연장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또한 나의 새 사명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았다. 나의 핵심역량인 경영혁신 컨설팅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하느님이 하신 놀라운 일을 업무 외적으로 간간이 들려줄 수 있었다. 새 사명을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수행하기 위해선 나의 영적 성장이 절실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살았던 경기도 분당을 떠나 충북 괴산군 청천면으로 이사했다. 더욱 자연 가까이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며 영적 성장을 꾀해 나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영적 일기를 지속적으로 써오면서 나의 생활을 늘 성찰하며 주님 안에 머무르는 노력에 정성을 다해 왔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져 가는 교우를 만날 때, 또 아직 하느님을 모르고 세속적 욕망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날 때, 나의 신앙체험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신하며 열정적으로 증언한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늘 주님 안에 머무르십시오. 굳게 믿으면 필요한 은총을 하느님 뜻 따라 반드시 베풀어주십니다.” 증언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삶 자체다. 내가 신자답게 살지 못하면서 하느님을 말씀하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주님 안에 머물면서 ‘사랑하기와 감사하기’를 실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 안에서 희망을 품고 기쁘게 사는 모습 그 자체가 최상의 선교요, 증언이라 여기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나를 위해 기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과 사랑을 증거하는 이 ‘기록’을 하느님께 오롯이 봉헌하며 기도드린다. “하느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이제와 영원히! 아멘.” cpbc2024.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