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사가 나타나 의심을 풀어주었고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았다[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32)성사실(聖史實) 이콘 해설- 주님 성탄 (작품 1)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 22 x 15cm, 템페라, (12세기 채색 삽화, 바바리아 도서관, 뮌헨, 독일) 수사본을 이콘화한 작품. 이콘 마오로, 안성, 한국 <앞글에 이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눈에 익은 자색 옷에 긴 포목 형태의 청색 겉옷을 두르시고 등장합니다. 청색은 하느님의 색깔입니다. 물·청결·고요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육화’, 다른 말로는 청색을 겉에 입으심으로써 ‘밖으로 드러나신 하느님’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콘에서 자주색 옷에 청색 겉옷은 예수님만, 청색 옷에 자주색 겉옷은 성모님만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흔히 동굴 안에 소와 나귀가 그려지는데, 어둠 속에서 동굴 밖 아기 예수님을 향하여 공경하는 이 짐승들은 다른 나라 민족(이방인)을 상징합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놓아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이사 1,3)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방인인 동방 박사의 경배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주 이스라엘 백성보다 이방인들에게서 강한 믿음을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8,10-13; 마르 7,24-30 참조) 요셉 요셉은 아랫부분에 그려져 있는데, 무엇인가 생각하고 고민에 차있는 듯합니다. 그 앞에 구부러진 지팡이를 짚고 털옷을 입은 노인이 무언가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콘에 따라 여러 형태로 등장합니다. 즉 성모님의 동정성을 요셉이 의심하도록 유혹하는 사탄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눈에 보이는 사탄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상징합니다. 또는 천사로부터 듣고 본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는 양치기라든지, 계획된 하느님의 섭리였음을 알리기 위해 이사야 예언자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해당 성경 구절을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그는 마리아와 약혼한 사이로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는 법대로 사는 사람으로서 조용히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천사가 꿈에 그 의심을 풀어줘 그는 천사가 시킨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마태 1,18-25)(작품 1)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을 갈등없이 완전히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이는 요셉만이 아니고, 지금까지도 신앙인이 믿음 안에서 해결해야할 모서리 돌입니다. 여기서 요셉은 우리 인간으로서 의심·고민·갈등하는 삶을 드러내는 각본으로 꾸며집니다. 요셉의 뒤에 있는 작은 나무는 이사이의 나무로서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이사 11, 1-2)라는 구절에서 나온 나무인 다윗 가문의 자손을 상징합니다.(작품 2) 아기를 비추는 세 줄기의 빛은 삼위일체를 나타냅니다. 성자는 살아계신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며, 빛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그분을 통해 그 안에 계신 아버지를 보게 됩니다.(요한 8,19; 10,30 참조) 요한 사도는 복음에서 그분이 아버지임을 알고, 아버지에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작품 2) 이사이의 나무, 성탄 이콘의 한 부분 (작품 3) 동방박사를 깨우는 천사: 프랑스 오툉의 성 라자로 대성당 기둥머리 조각을 이콘화한 작품, 15x 22.5cm, 템페라, 이콘 마오로 미술관, 안성, 한국 (작품 4) 성탄: 15 x 15cm, 템페라, 이콘 마오로 미술관, 안성, 한국 아기를 씻김과 산파 왜 주님 성탄 이콘에서 아기를 씻기는 장면이 나올까요? 우선 아기를 씻기는 의식은 몸을 깨끗이 하는 과정으로, 구원으로 가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즉 구원의 순서로서 깨끗이 하려면 씻어야 한다는 것, 물로 씻는다는 것은 세례를 받는 것, 이를 통해 영혼을 씻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외경에 의하면(야고보 원복음) 여기에 나오는 여인은 살로메라는 산파입니다. 그녀는 아기가 성령에 의해 동정녀에 잉태되었고, 구세주로 오시게 되었다는 요셉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웃었습니다. 그 여인이 손으로 임신부를 만지자마자 손이 불에 덴 듯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녀는 믿지 못한 잘못을 빌며 울면서 애원하였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아기에 손을 대어라’라고 하자 아기 예수님에게 손을 대었고 다시 낫게 되었다는 여인입니다. 못 미더워 웃는 살로메는 그 당시 요셉이 산후조리를 위해 필요로 했던 산파로서, 여기서는 믿지 못했던 하와(Eva)를 상징합니다. 아기를 씻기며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하와로 인한 원죄에서 벗어나게 됨을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하와의 교만에 의한 불복종으로 죽음이 왔지만, 동정 마리아를 통해 구원이 오게 된 것입니다. 씻기는 의식은 순수한 인간적 행동을 통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합니다. 그것으로 세례의 전조를 보여 줍니다. 별, 동방박사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중략)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이사 60,1-3) 공중에 나는 천사는 별을 상징합니다. 이사야는 별에 빛을 주는 원천적인 빛이 오신다며, 우리에게 오실 메시아를 환상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말을 타고 별을 따라 새로 태어난 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라고 놀라운 소식을 헤로데 왕에게 물었습니다. 동방박사는 하느님의 계약에서 제외되었던 사람, 구세주를 찾는 이방인들을 대표합니다.(작품 3)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민수 24,17), 그 별을 따라가야 하지만, 유다인은 그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들도 보았던 그 길로 따라가야 아버지를 뵐 수가 있을 것입니다.(요한 14,6 참조) 그들이 보기를 원하고 기다리던 메시아, 인간의 눈으로도 볼 수 있었던 하느님을(요한 14,9-10 참조) 이스라엘은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립니다. 황금은 만왕의 왕이심을 드러내고, 유향은 하느님께 특별히 올렸던 신성을, 몰약은 인성을 드러냅니다. 구유에 누워계신 구세주의 모습은 다분히 오늘날 기쁨만이 아닌, 깊은 묵상 거리이기도 합니다. 먼저 삭막한 성탄의 모습은 당시 광야를 연상케 해주며, 그때 육신적으로 굶주린 이스라엘을 위해 광야에 내렸던 만나처럼(탈출 16,31 참조) 이제는 우리에게 오신 살아 계신 빵(요한 6,35.48 참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숙소를 찾아 헤매야 했던 급박한 상황에서 산모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도 방을 내주지 않았던 인색함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분의 이웃이 되어주지 못한 것은(루카 10,36-37 참조) 마치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고⋯(이사 29,13)”라는 이사야 예언처럼 훗날 메시아를 버리는 이스라엘을 미리 보는 듯합니다. 요한 복음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해서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0-11)(작품 4) 역사적 사실로 본다면,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은 그분의 백성은 유다 나라였지만, 오늘날 그분의 백성은 누구일까요? 김형부 마오로cpbc2024.08.21
[갤러리 1898]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 정기전 18~26일 박철 작 '엄마 걱정', 2023년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지도 이계철 신부) 제4회 정기 회원전 ‘그리움을 쓰다’가 서울 명동 갤러리 1898 제1, 2전시실에서 18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다. 사제와 수도자를 포함해 60여 명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리워하는 것은 모든 영혼을 평화로 채우는 과정이다’를 주제로 서예, 캘리그라피, 수묵, 전각 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18일, 21일, 22일, 25일에는 캘리그라피 액자 판매와 수제 도장 제작 등의 연계 행사가 마련되며, 당일 수익금 전액과 전체 전시작품 판매금의 일부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모로코 지진 피해 긴급구호 특별 모금 캠페인에 기부할 예정이다. 오태미 작 ‘하느님 이웃 사랑’, 2023년. 제3전시실에서는 오태미(나탈리아) 작가의 개인전 ‘말씀그림 153’이 열린다. 2020년 9월 13일부터 2023년 8월 13일까지 일주일에 한 장씩, 주일 독서와 복음을 필사하고 그림으로 담은 작품들이다. 오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성체를 모실 수 없었던 시기 하느님께 드린 1장의 작은 선물이 3년의 시간을 거치며 153장의 큰 선물이 됐다”며 “성경 말씀을 두껍고 빽빽한 ‘텍스트’가 아니라 점ㆍ선ㆍ면ㆍ색이 어우러진 ‘이미지’로 풍요롭게 만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0.09

토마스 아퀴나스의 실체변화[월간 꿈 CUM] 교리 _ 성체성사, 그 신비 속으로 (5) 아뇰로 가디(Agnolo Gaddi, 1350~1396)가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제단화로 그린 마에스타. 현재 이탈리아 파르마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가 성 토마스 아퀴나스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성체성사에서 사제의 축성으로 빵의 실체 전부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변화하고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하는 것을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은 ‘실체’(substantia)이다. 실체를 알아야 실체변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체는 각 사람에 따라 또 각 철학에 따라 상이하게 정의되어왔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실체변화의 개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과 그의 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 가톨릭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한 인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받아들여 스콜라 철학의 존재론과 형이상학을 정립하였고 이러한 철학적 정립을 바탕으로 그의 저서 신학대전에서 ‘실체변화’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실체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는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신자들에게 음식으로서 참으로 제공된다고 역설하면서 이 음식 제공이 육신적으로가 아니라 영신적 양식으로 제공된다고 진술한다. 또 인간에게 구원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선물로 주어지기 때문에 성체 역시 선물로 주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성체성사가 희생 제사 예물로 적절하게 서술되고 있다.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사로서 희생제사라고 그는 보고 있다. 성사의 실현, 즉 성 변화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이중형태로서의 재현은 당신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봉헌한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성부의 도구로서 현존시키는 제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토마스는 역사적으로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성사적으로 재현한다는 성사적 사고(思考)를 견지(堅持)한다. 성체성사 안에서 진실하게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것은 표징(表徵)의 양식으로만이 아니며, 감각으로 포착될 수 있지 않고, 신적 권위에 의지하는 신앙을 통해서 파악해야 된다는 점을 토마스 아퀴나스는 분명히 강조하였다. 프라 바르톨라메오(Fra’ Bartolomeo, 1473~1517)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 이탈리아 피렌체 성 마르코 미술관 소장.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은 오류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위배되는 입장이라고 분명히 배격하였다. 그는 빵의 실체가 축성 이후 더 이상 빵으로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의 실체로 변화된다는 것을 분명히 진술한다. 그런데 빵의 실체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신적 능력을 통해서 빵의 전 실체가 그리스도의 살의 전 실체로, 그리고 포도주의 전 실체는 그리스도의 피의 전 실체로 변화된다고 했다. 성체성사 안에서의 변화를 모양의 변화가 아니라 실체의 변화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토마스 아퀴나스는 빵과 포도주의 모든 속성은 축성 이후에도 그대로 남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빵과 포도주의 형체 하에 각각 몸과 피가 현존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실체는 빵과 포도주 형체의 각 부분 속에서 전체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그 실체는 장소적 현존을 넘어서는 실체의 고유한 양식으로 담겨져 있다. 그리스도는 장소적으로 천국에 존재하는 데 반하여, 성사 안에서 실체 양식으로 이 땅에, 우리 안에 현존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 지성은 결코 성체 현존의 사실을 완전히 증명해 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계시에 근거하여 그의 타당성을 밝혀낼 수 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성체 현존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이 성사는 구약 계약의 완성으로서 새로운 계약의 제사이기 때문에 참다운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포함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다”(히브 10,1)는 성경 말씀처럼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새 계약의 제사는 구 계약의 제사와 달라야 하고, 어떤 새로운 것이 첨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 자체가 의미상으로나 형식상으로 뿐만 아니라 진실로 이 성사 안에서 포함되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 성사는 실제적으로 그분 자신을 포함하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몸이 이 성사 안에 현존함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일치한다. 왜냐하면 성찬례에서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참된 몸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함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살 것이요, 나도 또한 그 안에 살 것이다.”(요한 6,57) 그러므로 이 성사는 그리스도의 가장 큰 사랑의 표지이며 그리스도와 우리를 결합시키는 희망의 보증이 된다. 셋째, 이는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키는데 더욱 합당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인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는 말씀과 같이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성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드러내 보이셨듯이, 또한 당신의 육체도 이 성사 안에서 보이지 않게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글 _ 전합수 신부 (가브리엘, 수원교구 북여주본당 주임) 1992년 사제수품.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한국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수원교구 청소년국 청년성서부 초대 전담신부, 수원교구 하남, 본오동, 오전동, 송서, 매교동본당 주임을 지냈다. cpbc2024.05.27

순탄치 않은 그의 삶, 주님 만나 바뀌었다사제와 하나센터 직원 도움으로 세례받은 탈북민 강태철씨 “이제 어려움이 닥치면 하느님과 성경 안에서 길을 찾겠습니다. 행복하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향민 강태철(마태오, 59)씨는 지난 2일 주님의 자녀가 됐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힘겹게 탈북한 끝에 이 땅에서 주님을 만났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차별’과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장벽에 부딪혔고, 스스로를 죽음의 문턱까지 내모는 등 어려움이 컸다. 낯설고 힘든 남한에서 쓰러진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착한 사마리아인’을 자처한 주변 신앙인들의 도움이 컸다. 다시 빛으로 나온 그는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난 만큼 신앙 안에서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신앙으로 새 희망을 얻은 그를 만났다. 강씨는 함경북도 회령시의 교육자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7남매 모두 교수와 판사, 150명 규모 공장 사장 등으로 잘살았다. 하지만 2009년 탈북해 중국에서 살다 2018년 먼저 한국으로 넘어온 딸로 인해 당국의 감시와 억압을 받기 시작했다. 도저히 살 길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강씨는 아내와 남은 자녀를 3년 안에 데려오겠다고 다짐하고, 2019년 5월 5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홀로 두만강을 건넜다. 잡힐 상황을 대비해 혼자 나선 것이다. 일주일 동안 산속에서 나물만으로 허기를 달랬다. 베트남에선 공안에 붙잡혀 온 길을 되돌아갈 뻔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중국·베트남·라오스·태국을 거쳐 3개월 만에 한국에 당도했다. “아, 이제야 살았구나!” 국정원 조사와 하나원 교육이 이어졌다. 그런데 불현듯 그의 말대로 “너무 많은 나이에 홀로 건너왔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집도 배정받았고, 6개월 동안은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대우를 해줬다. 적응 기간 없이 강씨는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북향민 2명을 포함해 6명이 일하는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처음엔 감사한 마음으로 다녔지만 차별이 느껴졌다. 회식도 따로 했다. 다른 북향민 직원들과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공장에 취직해 20~30대 외국인 노동자들 틈에서 막노동했다. 새벽 4시경 출근해 종일 몸을 쓰고 밤늦게 돌아왔다. 몸이 망가지면서도 어떻게든 버티려 했지만, 나이와 북한 출신이라는 점이 또 발목을 잡았다. 공장에서도 나왔다. 그때 북에 남은 가족들이 자신의 탈북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홀로 텅 빈 집에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술을 입에 댄 적도 없었는데, 술에 의존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생각보다 어둠은 크고 짙었다. 가족과 이별한 것도 컸지만, 자신 탓에 가족이 고통받았고, 남한에서도 그는 ‘이방인’이었다. 그렇게 허우적대다 생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그를 관리·담당했던 하나센터 이금안(마리아 아욱실리아)씨에게 한 연락을 끝으로 휴대폰 전원을 껐다. 만취한 채 잠을 청했다. 이씨는 경찰들을 대동해 굳게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강씨는 살아있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이씨는 인연이 있던 박성재(살레시오회) 신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정을 듣고 곧장 강씨 집을 찾은 박 신부는 그의 곁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 “새벽에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가는데 신부님이 누워 계신 거예요. 그렇게 온 밤 제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씨는 강씨의 밀린 공과금을 모두 사비로 내줬다. 병원에도 입원시켜 치료도 도왔다. 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도 빠짐없이 전달했다. 주말 농장도 사비로 신청해 밭을 가꾸는 취미도 만들어줬다. 강씨는 이씨와 박 신부가 자신 곁을 지켜주고 있음을 크게 깨달았다. ‘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이 분들은 어째서 이렇게 나를 도와주는 거지?’ 강씨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센터에 보냈다. 센터는 이씨의 노력을 인정해 정년 후 1년 더 일하도록 배려해줬다. 청소년 사목을 하고 있던 박 신부는 행사가 있거나 여행 갈 때마다 강씨를 불러 청년들과 함께하게 했다. 극장에도 곧잘 데려갔다. 최신 영화가 번쩍번쩍 상영되는 스크린을 바라보는 강씨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신부님과 이 선생님이 따르는 주님은 누구이실까?’ 자신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는 사제와 신자를 따라 강씨는 세례를 결심했다. 박 신부의 특별 과외(?)도 뒤따랐다.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그는 “세례 전날, 신앙인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설렘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 상황이 평화의 길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라 말했다. “저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생을 포기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변할 수 있었던 건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도와준 두 은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앞으로 이 은혜를 모두에게 평생 갚아 나갈 것입니다. 점점 멀어져가는 한반도 평화 해법의 실마리를 제 모습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밑에서부터 진심 어린 교류를 이어나간다면 분명 함께 웃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4.06.19
![[의정부교구장 임명] 충실한 일꾼, 성실한 관리인의 모습으로 보답하겠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3/19/05v1710834877080.jpg)
[의정부교구장 임명] 충실한 일꾼, 성실한 관리인의 모습으로 보답하겠다손희송 주교 인터뷰 “하느님께서 새로운 직무를 맡겨주심에 대한 ‘감사’가 모든 상황과 감정의 기본 바탕입니다.” 제3대 의정부교구장에 임명된 손희송 주교는 15일 교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냈다. 평소 어느 자리에서든 ‘기본’을 중요시하는 손 주교는 이날도 ‘성실’과 ‘겸손’의 마음을 첫 자리에 뒀다. 미천한 일꾼으로 더 충실히 손 주교는 “‘저는 주님 포도밭의 미천한 일꾼입니다. 하느님께선 부족한 도구로서도 당신의 일을 하실 줄 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말씀을 늘 새기고 살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의정부교구라는 주님 포도밭의 미천한 일꾼으로서, 부족한 도구지만 당신을 위해 기쁘게 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껏 그랬듯, 필요한 천사들을 보내 주시리라는 믿음도 굳게 가지고 있다”고 했다. 손 주교는 소신학교 때부터 사제생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반추했다. 주교가 된 이후엔 교구 총대리를 비롯해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장, cpbc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이사장, (재)바보의나눔 이사장 등 굵직한 보직을 맡아 교구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손 주교는 “서울에 남은 주교님들이 이 많은 일을 짊어져야 하는 사실에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 계획 안에서 잘 수행하시리라 믿는다”고 했다. 아울러 “색색의 유리조각 같은 서울에서의 경험이 교구장으로서 어떻게 쓰일 것인가는 훗날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음 깊은 곳에 고향이 속한 의정부교구에서 마지막 봉사를 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며 “하느님께서 들어주셨으니 ‘충실한 일꾼, 성실한 관리인’(1코린 4,2 참조)의 모습으로 보답하겠다”고 전했다. 손 주교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마음은 변함없다”고 했다. 그 기본은 ‘성경 말씀’, ‘기도’, ‘교회 가르침’, ‘미사’, ‘사랑 실천’이다. 손 주교는 “신앙의 기초인 이 다섯 가지 기본을 다져야만 교회의 미래도, 개혁도, 쇄신도 있을 수 있다”며 “그 시작은 나 자신부터”라고 강조했다. 평화 갈구하는 의정부교구 특히 분단의 비극과 아픔을 최전선에서 목격하는 의정부교구는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데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좋은 곳이라고 했다. 손 주교는 “남북 관계 이상으로 진영 논리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새겨진 것 같다”며 “근본적으로 내 안에 자리한 분열의 씨앗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교회는 그 분열의 뿌리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넘어서는 길을 가르쳐야 한다”며 “교회만이 제시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은 ‘회개’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밝혔다. 의정부교구는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16개 교구 중 막내 교구다. 손 주교는 “젊다는 건 새롭게 할 수 있다는 면이 많아 굉장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종교는 익숙함의 반복이기에 전통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장점을 잘 살려 두 측면을 아우를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고 했다. 또 의정부교구는 성장하는 젊은 교구이면서 동시에 지역 인구 특성상 노인 사목에도 중점을 두고 있는 교구다. 이에 손 주교는 “많은 말보다 교회가 그들 옆에 머물면서 언제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교회는 천국의 분위기를 내는 공동체가 돼야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완성될 천국을 미리 맛보고, 기쁨이 넘치는 교구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4.03.20
![[금주의 성인] 성 마태오 사도 (9월 21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9/12/E1m1694497446096.jpg)
[금주의 성인] 성 마태오 사도 (9월 21일)+1세기경, 갈릴래아 출생 추정 및 에티오피아 또는 페르시아 선종, 사도,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로 여겨지는 인물 성 마태오 사도는 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에서 세금을 걷는 세리였다가 “나를 따라라” 하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마태 9,9 참조) 당시 세리는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을 대신해 동족에게 세금을 걷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태오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어느 날 세관에 앉아 있다가 주님의 부르심 속에 자비를 체험하고 열두 사도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마태오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갈릴래아 태생으로 추정되며,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알패오의 아들로, 원래 이름은 레위였습니다.(2,14)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처럼, 레위 역시 마태오라는 새 이름을 받은 것입니다. 루카 복음에서도 레위라는 세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5,27) 복음서마다 마태오와 레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교회 전통은 둘을 동일 인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마태오는 일찍이 초대 교회 때부터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는 특별히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을 위해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합니다.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따르면, 마태오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신 뒤 12년 동안 동족인 히브리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후에 다른 민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히에라폴리스의 주교였던 파피아스의 주장을 재인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마태오가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라는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마태오가 은수자로서 채식만 하면서 생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도 전승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로마 순교록」을 보면 마태오는 유다 지방을 순회하다가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해 그곳에 묻혔고, 10세기경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 도시인 살레르노로 옮겨져 공경을 받았습니다. 「예로니모 순교록」에서는 페르시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순교 방법 또한 칼에 찔리거나 화형 혹은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각각 다릅니다. 교회 미술에서 마태오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의해 날개 달린 사람, 다시 말해 천사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리옹의 주교이자 교부인 이레네우스 성인이 마태오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구세주의 인간성을 강조한 것에 착안해 선택한 것입니다. 마태오는 세리였던 경력으로 인해 은행원과 경리, 회계사와 세무 직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도 장부를 펼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됩니다. 가톨릭교회는 마태오의 축일을 9월 21일에, 동방 교회에서는 11월 16일에 기념하고 있습니다. cpbc2023.09.06

동방 박사가 황금을 바쳤다면 우리는 무엇을 드려야 할까주님 공현 대축일에 읽을 만한 책 1월 7일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던 일, 이를 통해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공적으로 드러냄을 기념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 몰약을 선물로 바쳤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선물을 드릴 수 있을까? 책으로 만나보자.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 마테오 리치ㆍ마르티노 마르티니 정민 옮김 김영사 서학과 유학이 다르지 않음을 증명해 동아시아와의 접촉면을 확장하고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는 데 토대를 마련한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1599년)과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구우편」(1661년). 이들 책은 16~17세기 동서양 문물 교류의 선구였던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와 마르티노 마르티니가 옛 성현들이 예찬한 우정에 대해 정리한 책이다. ‘벗과 사귄다(交友)’는 의미의 「교우론」이 서양 문화에 대한 중국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종교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우정이라는 주제에만 집중했다면, ‘진정한 벗(逑友)’이라는 뜻의 「구우편」은 우정의 주제를 선교의 방편으로 활용해 신앙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 책을 새롭게 번역한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가 최근 출간됐다. 한양대 국문학과 정민(베르나르도) 교수가 우리말로 옮기며 설명을 더했다. 키케로, 세네카, 아우구스티누스 등 그리스·로마 시대의 격언과 일화부터 「성경」과 「이솝우화」까지 우정에 대한 서양 고전을 총망라해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 청장관 이덕무 등 조선 후기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신분과 당파, 국경을 초월한 ‘우정론’을 들여다본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여 벗이 적다. (중략) 다른 사람의 큰 선함은 반드시 세세하게 따져 업신여기고, 자기가 한 것은 별것 아닌데도 또한 크게 과장하곤 한다. 다른 사람이 공이 있을 경우 반드시 그 결점을 말하고, 자기는 비록 결점이 있더라도 또한 완전하게 아름다운 양 말한다.”(178쪽) 남겨진 단 하나, 사랑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김혁태 신부 옮김 가톨릭출판사 “이것이 그리스도교적 정언 명령이다. 이 명령의 힘으로 절대적 사랑이 ‘의무’로서 모든 개인적 ‘경향’을 넘어서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냉혹함과 함께, 그리스도 자신의 엄중함과 함께, 그분의 불꽃과 함께, 자신에게로 드높이 솟는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세상 역사를 관통하며 온통 당신 사랑으로 불을 놓으신다.”(202쪽) 현대 가톨릭 신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1905~ 1988)의 「남겨진 단 하나, 사랑」이 출간됐다. ‘신학적 미학’을 통해 만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제시한 이 책은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에 있어 사랑의 중요성과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고, 사랑에 응답하는 삶으로 안내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만,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믿고 희망한다. 흔들리는 가운데도 믿음과 희망, 이 둘이 우리를 붙잡아 주니, 흔들림으로써 그리스도인은 날개가 자란다. 흔들리는 체험을 통해 아래의 심연 역시 함께 감지된다. 물론 그것은 매번 나 자신의 날아오름 안에서 감지될 뿐이다.”(158쪽) 스위스 출신의 발타사르는 1928년 취리히 대학교에서 독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29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하느님과 인간, 교회와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하며 독보적인 신학 세계를 구축했고, 「영광」, 「하느님의 드라마」 등 단행본 119권, 논문 532편 등을 남겼다.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됐으나 수여식 이틀 전에 선종했다. 고감사를 아시나요 정상업 신부 하움 책 제목에서 묻는 것처럼 도대체 ‘고감사’가 무엇일까? 바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의 준말이다. ‘가톨릭 신부의 삶은 이러해야 한다’는 저자 정상업(안동교구) 신부의 모토이기도 하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 같은 말이 늘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 은퇴를 앞둔 정 신부는 신자들이 성경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하느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를 통해 언제나 “하느님, 주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40년간 강론을 하며 쌓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3년의 전례 주기에 맞춰 ‘고맙습니다’(가해), ‘감사합니다’(나해), ‘사랑합니다’(다해)를 따라 읽는 것도 좋겠다.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께 드렸던 선물은 값지고 보배로운 것이었습니다. (중략)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는 우리가 예수님께 드려야 할 가장 값지고 보배로운 예물, 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예물은 곧 사랑의 예물, 사랑을 선물하는 것입니다.”(48쪽 ‘주님 공현 대축일’ 중에서) 데이비드 호킨스의 지혜 데이비드 호킨스 박찬준 옮김 판미동 “우리가 내리는 모든 영적 결정은 눈금을 긍정 쪽으로 기울입니다. 그러면 그 덕분에 우리 삶의 운명이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바다에 나와 있을 때 나침반 바늘의 1도 변화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1도 때문에 며칠 동안 항해한 뒤에는 다른 대륙에 도착하게 되지요. 즉 1도가 상당한 차이를 만듭니다.”(32쪽) 마더 데레사가 상찬한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주요 가르침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영적으로 진화한 상태와 의식 연구 및 참나로서 신의 현존에 대한 각성이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연구한 호킨스 박사가 하버드 대학과 옥스퍼드 포럼,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지에서 했던 수백 시간의 강의 가운데 엄선한 10가지 주제(봉사, 행복, 영적 성장, 깨우침 등)를 발췌한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깨달음의 길로 출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중반부에서는 영적 성장 중에 맞닥뜨리게 될 걸림돌의 식별과 극복 등 구도자들을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 후반부에서는 영적 진실, 원칙, 수행과 같은 심화 개념을 거쳐 깨달음의 범위를 세계로 확장하고, 마지막 강연 ‘영적 구도자의 가장 귀중한 자질’로 끝맺으며 ‘삶의 지혜’를 전수한다. 윤하정2023.12.28

오직 예수님의 어머니로만 사신 성모님[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8)성모님의 평생 동정성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피에타 조각상. 천주교에서는 성모님께서 오직 예수님의 어머니로만 평생 사셨으며 모든 이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이시기에 예수님 외에 다른 이에게 혈연의 어머니이실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개신교가 반대하는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천주교는 왜 강조하나요? 천주교는 성모님께서 동정으로 예수님을 낳으셨을 뿐만 아니라(루카 1,34 참조) 출산 이후에도 평생 동정을 지키셨다고 가르칩니다. 개신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모님의 동정 출산은 믿지만 평생 동정을 지킨 것은 아니고 예수님의 형제들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개신교는 복음서에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마태 1,25)라는 표현과 ‘예수님의 형제들’(마르 6,3; 마태 13,55 참조)과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첫아들”(루카 2,7)이었다는 표현을 그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 구절들은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첫째, “아들을 낳을 때까지”라는 표현이 그 뒤에 다른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는 주장은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하신 말씀이 세상이 끝나면 너희와 더 이상 함께 있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낳을 때까지’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동정녀로부터 나시어 깨끗하고 순결하시다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일 뿐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형제들을 언급하는 구절은 성서학적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개신교에서는 복음서에서 언급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마태 13,55) 네 형제가 마리아의 또 다른 자식이라고 주장하지만, 가톨릭교회는 교부들과 성서학자들의 가르침을 토대로 이들이 복음서에 “다른 마리아”(마태 28,1)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이거나, 형제라는 말을 예수님의 가까운 친척을 일컫는 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00항 참조), 신약 성경에는 마리아가 예수님 외의 다른 아이들을 출산하였다는 기록이 전혀 없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맡기신 점 등은 당시 유다 사회의 관습상 예수님께서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셋째, “첫아들”(마태 1,25)이란 표현을 근거로 마치 이후에 둘째, 셋째 아들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맏아들’이란 표현을 태를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이란 의미에서 외아들과 혼용하고 있고(탈출 13,2; 루카 2,23 참조), 신약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하느님 아버지의 “맏아들”(히브 1,6)이며,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요한 1,18)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성경에서 “첫아들”이라는 표현은 선택된 단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에 일부 개신교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정교회에서는 외경인 (원)야고보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요셉의 전 부인에서 얻은 자식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이지만, 가톨릭교회는 동정녀를 보호한 의로운 요셉을 공경하는 전통만을 간직해왔습니다. 천주교에서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모님께서 온 생애를 오롯이 하느님께만 바치셨고 오직 예수님의 어머니로만 평생 사셨으며 모든 이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이시기에 예수님 외에 다른 이에게 혈연의 어머니이실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3.05.14

수단과 수도복 입고 쑥쑥 자라는 성소의 꿈21일 전국 교구 성소 주일 행사처음 수단을 입고 주교님과 기념 촬영을 해보고, 수도복도 입어보며 성소에 대한 작은 꿈을 키우는 시간. 21일 성소 주일을 맞아 전국 교구 청소년들은 교구와 신학교가 각기 마련한 행사에 참여하며 거룩한 부르심인 성소의 의미를 되새겼다. 광주대교구 성소국은 21일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마르 10,52)를 주제로 성소 주일 행사를 개최하고, 아이들에게 성소의 의미를 전했다. 교구 사제와 수도자, 예비 신학생, 초등부 복사단, 중·고등학생, 청년들은 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주례 성소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수도회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성소를 통한 하느님 뜻을 배우고,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신학생과 수도회가 함께 준비한 춤과 노래 등 다양한 공연도 열렸다. 수원교구 성소 주일 행사. 수원교구는 21일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저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대로 지내십시오’를 주제로 예비 신학생과 예비 수도자들과 성소 주일을 만끽했다. 이날 신학생들과 성바오로딸수도회 등 수도회는 교리 퀴즈부터 축하 공연, 아픈 지구를 위한 기도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했다. 또 총대리 이성효 주교는 수원가톨릭대에서 미사를 주례하며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청주교구 성소 주일 행사에 참여한 청년, 청소년들이 교구장 김종강 주교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청주교구 홍보국 제공 청주교구도 21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 15)란 성구 아래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를 주제로 사천동성당에서 성소 주일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교구 청소년 122명이 참여해 놀이와 퀴즈, 수도복 입어보기 등 프로그램 안에서 교구장 김종강 주교를 비롯한 교구 사제·수도자·신학생들과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대전교구 성소 주일 행사에 참여한 예비신학생들이 교구장 김종수 주교, 총대리 한정현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대전교구 홍보국 제공 대전교구 성소 주일 행사는 이날 교구 총대리 한정현 주교의 개회 선언으로 시작, 60개 본당에서 예비 신학생 210명이 참여했다. 성소를 꿈꾸며 참여한 청소년들은 ‘나도 곧 신부님’, ‘신부님을 이겨라’, ‘성경 가로 세로 퍼즐’ 등 교구청 사제와 수도자·직원들이 준비한 포스트별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오후엔 교구장 김종수 주교 주례로 성소 주일 미사를 봉헌했다. 춘천·원주교구는 21일 원주교구 배론성지에서 교구 합동으로 ‘부르심, 그리고 응답 :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이사 43,4)’를 주제로 성소 주일 행사를 개최했다. 원주·춘천교구 사제단·수도자·신학생을 비롯해 청년과 청소년·어린이 등 성소에 관심이 있는 평신도들이 참여해 교구와 수도회가 준비한 성소 프로그램을 즐겼다. 참석자들은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와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를 비롯한 두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성소 주일 미사를 봉헌했다. 전주교구 성소 주일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줄넘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주교구 홍보국 제공. 전주교구 성소국이 21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를 주제로 성소 주일 행사를 열었다. 교구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청년들은 교구장 김선태 주교 주례로 성소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수도회가 마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참가 학생들은 “누가 높이 뛰나“를 외치며 수도자들과 줄넘기도 함께하면서 사제·신학생·수도자들과 하나 되는 동안 성소의 의미를 되새겼다. 특별히 떼제 기도를 함께 바치는 동안 각자 하느님께 부여받은 사명과 특별한 부르심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가 21일 부산교구 성소 주일 행사에서 행사에 참여한 신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부산교구 제공 부산교구가 21일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교정에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10) 주제로 마련한 성소 주일 행사에서 초·중·고등학생들은 주교·사제·수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부르심의 의미를 새기고, 사진 촬영을 함께하며 성직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각 수도회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앞서 교구장 손삼석 주교 주례한 성소 주일 미사에도 참여했다. 제주교구는 21일 제주 이시돌 삼위일체성당 일대에서 성소 주일 행사를 열었다. 제주교구 성소위원회 제주교구도 21일 제주 이시돌 삼위일체성당 일대에서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로마 1,6)를 주제로 성소 주일 행사를 열었다. 교구 주일학교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교구장 문창우 주교 주례 미사에 참여하고 신학생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신문취재팀cpbc2024.04.24
[사설] 교회, AI 시대에 좌표 찾는 데 노력해야최근 세계적인 열풍을 가져온 오픈 AI의 ‘챗GPT’ 출시 이후 열풍이 불면서 이른바 ‘생성형 AI’가 우리 일상과 업무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생성형 AI란 글과 소리, 이미지 등 기존 콘텐츠를 활용해 유사한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기술을 뜻한다. ‘챗GPT’ 출시 이후 구글, 메타 등 글로벌 회사 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또 중국, 유럽연합, 한국 등도 이런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국 관련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가 자체 초대규모 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7월 말쯤 공개할 예정이고, 삼성과 LG, SK 등도 경쟁에 가세했다. 당분간 이런 흐름을 피하기는 어렵지만,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열린 한 세미나에서 “생성형 AI 챗GPT는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며 “학습 데이터가 무엇이냐에 따라 가짜 성경이나 성경에 대한 가짜 해석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인공지능 기술이 자칫 말씀과 불변의 진리, 교회 가르침을 사실인 양 무분별하게 해석해 내놓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지적이다. 이번 세미나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텍스트, 이미지, 영상 콘텐츠 등을 게시하거나 공유할 때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스타일과 일치하고, 교회 공동체는 전략이 아닌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예수님 스타일’이란 단어는 충분히 고민할 내용이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좌표를 설정하는 건 쉽지 않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교회가 AI 시대에 좌표를 찾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기대한다. cpbc2023.06.26

하느님 세상 보여주는 성경 속 숫자들[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7)성경 속 수의 의미 ① 성경에서 숫자 1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수이다. 2는 ‘분열’을 의미한다. 3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권능과 활동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성경에 드러나는 ‘수’(數)의 의미와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3차례에 걸쳐 알아보자. 먼저, ‘하나’ 곧 ‘1’이다. 1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드러낸다. 성경은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한 율법 학자에게 이렇게 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29-30)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그 ‘주님’이심을 밝히셨다.(마르 12,35-37 참조)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모든 민족을 유일하신 분, 하느님 당신께 돌아오도록 부르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만이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한다. 이는 유일하신 분,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다. 또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에 대한 신앙도 유일하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삼위일체이신 분’이심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한 분이신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신앙을 끊임없이 고백한다. “영원하시며, 무한하고, 불변하시며, 불가해하고 전능하시며, 말로 표현할 수 없으신 참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한 분이시며, 삼위이시나 순전히 하나의 본질, 하나의 실체, 하나의 본성을 지니신 분이심을 우리는 확고하게 믿으며 명백하게 고백한다.”(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가톨릭 신앙에 대하여’) 이렇게 1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수이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일치’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모든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나왔다.‘둘’ 곧 ‘2’이다. 성경에서 2는 ‘분열’을 의미한다. 인간이 죄를 지은 결과 ‘하나’가 무너졌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참되신 분이시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써 ‘분열’이 생기게 됐다. 선과 악, 삶과 죽음, 진리와 거짓 등 모든 것이 둘로 갈라졌다. 모든 사람은 첫 인간 아담의 원죄에 연관된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든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로마 5,12)라고 안타까워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 이 문장은 ‘구원은 하느님에게서만 온다’라고 달리 표현할 수 있다. 구원은 인간이 하느님과의 ‘거룩하고 의로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하셨다.(로마 5,19 참조) 이를 신학 용어로 ‘구원의 보편성’이라고 하는데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선택한 ‘새로운 아담’이 바로 하느님 자신이셨다. 참인간으로 강생하신 참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여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셨다.이처럼 구원의 목적은 둘로 분열된 것을 원래의 하나로 되살리는 것이다. ‘셋’ 곧 ‘3’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수이며 ‘시작과 가운데와 마침’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3은 ‘하느님의 세계’를 표징한다. 하느님을 찬미할 때 우리는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세 번을 외친다. 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와 “하느님의 어린양”도 세 번씩 부른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성조는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세 명이고,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세 차례 마귀로부터 유혹을 받으셨다. 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서는 부활하기 전까지 사흘 동안 무덤에 묻혀 계셨다.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루신 거룩한 업적이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당신 권능으로 예수님을 되살리셨다. 또 성자께서는 당신의 신적 능력으로 스스로 부활하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당신 활동을 통해 예수님의 죽은 인성을 되살리시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상태로 부르신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신다. 이렇게 부활 안에서 삼위 하느님께서는 동시에 함께 일하시며 또 각 위의 독자성을 드러내신다. 이렇게 3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권능과 활동을 드러내는 표징이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6.22

코로나 팬데믹이 교회에 남긴 교훈「한국 천주교회 코로나19 팬데믹 사목 백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목 전망’ (3)▧의료적 시각에서 본 한국 천주교회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평가와 과제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의료적ㆍ감염학적 시각에서 본당을 중심으로 교회의 방역활동을 평가하고, 대규모 감염 질환 유행이 발생할 경우에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중앙방역대책본부, 각 지방자치단체와 교구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집단 감염 예방을 위해 본당에서 지켜야 할 수칙’을 작성했다. 수칙 내용을 살펴보면, 확진 여부와 관계없이 발열, 기침, 인후통, 숨 가쁨, 감기, 기관지염, 폐렴 같은 호흡기 증상과 설사, 근육통, 피로감 등 코로나19 감염 증상이 있는 신자, 최근 2주 이내에 해외 여행력이 있는 신자, 고령자· 임산부·만성 질환자처럼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건강에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신자,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 등은 미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주일 미사 참여 의무에서 제외하였다. ‘미사를 거행하기 전에 주례 사제와 성체 분배 봉사자는 30초 이상 손을 깨끗이 씻는다, 미사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고 성체를 모시는 순간에만 마스크를 벗는다, 회중이 함께하는 성가나 기도문 합송을 되도록 피한다, 미사 중에 악수 등 신체 접촉을 피한다, 신자들은 양형 영성체를 하지 않는다, 성경과 성가책은 개인별로 사용하도록 한다’와 같은 구체적인 유의 사항도 제시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또 다가올 가능성은 100%라 할 수 있다. 2023년 동남아시아에서는 뎅기열이 크게 유행했고, 조류 독감은 언제라도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할 몇 가지 방법을 제언하고자 한다. 1)대규모 감염병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기구와 관리자의 준비 병원이 아닌 교회나 성당에서 거창하게 ‘감염 관리실’ 등의 부서를 만들 필요는 없다. 일정한 시스템과 인력을 준비해 주기적으로 질병관리청을 비롯한 보건 당국의 뉴스레터, 해외 뉴스 등을 모니터링하고, 중요한 알람이 있으면 신자들에게 알리고,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 osv 2)올바른 방역과 신앙생활 병행 방법 찾기 올바른 방역은 감염병에 따라 달라진다. 감염병의 원인과 매개체, 전파 방식과 잠복기, 증상 등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도움된다. 초기 대응은 일단 ‘방역과 격리’가 첫째다. 다만 ‘방역과 격리’를 언제부터, 어느 정도로 시작할지, 언제부터 다시 신자들이 성당으로 돌아오게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감염관리 대책 수립, 백신, 치료제 개발이 빨라졌으므로 출입 통제와 격리에서 시기적절하고 안전하게 일상생활로 돌아가 신앙생활을 유지하도록 도와야겠다. 3)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교회와 병원의 봉사 대유행을 거치며 교회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봉사가 충분했는지는 과제로 숙고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우울한 느낌을 호소했다. 교회는 소외된 사람들과 가족들을 찾아내 이들이 다시 건강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도움을 주는 다양한 소통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제들이 신자를 만나지 못하고, 원목자들이 아픈 환자를 돌보지 못하는 것은 큰 스트레스다. 감염병 위기 시 원목자들이 감염 관리 절차를 준수하면서 병원 사목 본연의 일을 지속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동건 교수(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감염내과) 이지혜2024.02.21

“언젠가 성경 작품 무대에 올려 주님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36) 공연 제작자 이슬(젬마) 공연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슬씨 이슬(젬마)씨는 예술고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성악을 전공했고, 영국 유학 후 예술 경영과 기획을 더 배우기 위해 현재 예술학 협동과정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공연제작사 ‘하람컴퍼니’와 예술교육 단체인 ‘듀클’을 운영하는 젊고 당찬 CEO이다. 그녀는 뮤지컬 및 공연 축제를 직접 제작, 기획하고 있으며, 다양한 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는 건강이 크게 위험스러운 순간에도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며 자신이 원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이다. Q.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A.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가장 좋아하던 것도 성당에서 노래하던 거였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는 성가대 활동을 정말 열심히 했는데, 학교 마치면 바로 가는 곳도 성가대 연습이었어요. 20대 때도 연희동본당 한푸름 청년 성가대에 나가기도 했었고요. 그리고 부모님이 예술 쪽으로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주셔서 글쓰기와 미술, 악기 등을 익혔습니다. 그때 그냥 재밌게 배웠던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고, 여러 콘텐츠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될 줄 몰랐죠. Q.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았네요. 지금 하는 일을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A. 어렸을 때부터 성악을 공부해서 오페라를 할 거로 생각했어요. 노래하는 것도 연기하는 것도 너무 재밌었거든요. 그런데 오페라는 음악적인 표현에 집중하다 보니 극 내용보다는 음악만 귀에 남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뮤지컬을 관람하러 가게 됐는데, 전율이 흐르는 느낌이었어요. 노래, 춤, 연기가 조합된 종합예술이 제게는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었어요. 다음날 뮤지컬 배우인 남경읍 선생님의 학원을 찾아서 그날 밤 무작정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선생님께서도 과거 뮤지컬 배우가 되겠노라 시골에서 상경했던 경험이 있어서 늦은 시간까지 절 기다려주셨어요. 그렇게 그곳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원하던 뮤지컬학과에 진학하여 뮤지컬 배우가 되었어요. 그러다가 잠시 공부하러 떠났던 런던에서 많은 공연을 접하면서 “나도 저런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꿈을 꾸고 귀국 후 공연 제작과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Q. 실행력이 갑이네요.(웃음) 하느님이 주신 재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A. 부지런함인 것 같아요. 하느님께서 남들보다 한발 느리던 저에게 부지런함을 주심으로 따라갈 수 있었어요. 부지런하게 하다 보면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덜 후회하더라고요. 시간을 쪼개 여행도 많이 다녀요. 일도 휴식도 부지런하게 하는 타입이에요. 여러 곳을 다니며 일해야 하는 제 직업상 너무 감사한 탈렌트죠.Q. 삶에서 가장 큰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A. 코로나 시기에 심리적으로 힘들었는데 하필 그 시기에 패혈증에 걸렸어요. 서울 시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모두 거절당하다가 지방 병원에 겨우 입원할 수 있었어요. 그때 중환자실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겪었어요. 지금도 병원을 보면 불안감이 불쑥불쑥 올라오고, 길에서 구급차만 봐도 무서워져서 잘 걷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주님께 매달려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지금은 그 기도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했어요.Q. 삶의 길잡이나 지표가 되어준 성경 말씀이 있다면? A.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창세 26,24)란 말씀은 항상 제게 큰 힘이 되어줘요. 오랜 시간 자취를 하면서도, 홀로 외국에 공부하러 떠났을 때도, 제작일을 해보겠다고 무작정 뛰어들 때도 모두 다 저 말씀 덕분에 힘을 내어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야. 함께 해주시니까 괜찮을 거야.” 그렇게 마음먹으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Q. 청년 성서 연수는 어떤 의미가 됐나요? A. 탈출기 연수가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일에 파묻혀 지내며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도 잘 안 나가게 되고 그냥 기계처럼 일만 하던 때였어요. 기도조차 잊고 지내는 저를 발견하고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정동에서 운영하는 성서모임을 신청했어요. 탈출기 연수도 함께 신청해서 다녀오고 거기서 허영엽 신부님을 만날 수 있었고 강의들은 제 마음을 다시 흔들어 놨죠. 그 뒤로 종종 성서모임 분들과 나눔을 가졌었어요. 냉담에서 탈출할 수 있게 만들어준 귀한 시간이었어요. Q. 살면서 ‘이것이 바로 하느님 기적이다’라고 느꼈던 체험이 있다면?A. 저는 제가 일을 하는 것이 기적 같아요. 제가 뮤지컬 배우로만 살다가 갑자기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막연하게 나만의 예술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기획이나 예술경영을 전공하지 않아서 과연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어요. 제가 뮤지컬과 축제를 제작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모두 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올 10월에 두 편의 뮤지컬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것도 기적처럼 잘 마쳤으면 하고 기도하고 있어요.Q.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적은 언제인가요?A. 지방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단체 공연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공연이 끝난 뒤 어르신들이 “덕분에 이런 문화생활도 해봤다. 감사하다”라고 해주시더라고요. 마을회관에서 하는 초청 행사들만 접해보셨나 봐요. 고생했다면서 한 할머니가 허리 가방에 넣어두셨던 호박 젤리를 주시더라고요. 그 젤리가 참 값지고 달았습니다.Q. 일하면서 언제 기도를 가장 열심히 했나요?A. 공연을 제작하다 보니 아역배우들과 함께할 때가 있는데, 대개 체계적으로 교육된 아역배우가 오게 되거든요. 한번은 재능은 있지만 예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친구들을 직접 가르쳐서 무대에 올려보고 싶었어요. 다문화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 공연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어린 학생이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직접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연습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죠. ‘이러다 공연 때 큰일 나는 게 아닌가. 지금이라도 전문 아역배우를 불러와야 하나?’ 고민되었지만, 그 학생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서 그대로 진행했어요.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믿고 학생과 기도도 하고요. 그런데 이 친구가 막상 무대에 오르니까 하나도 떨지 않고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공연하더라고요. 정말 즐겁게요. 이 학생의 간절한 기도가 닿았구나, 이 친구의 꿈을 이뤄주시는구나 싶어서 기뻤어요.Q. 같은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A. 예술계통은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 직업군이잖아요. 요행을 바랄 수도 없고요. 그래서 내가 고생하는 기간에 비해서 결과물이 좋지 않거나 그 과정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금방 지쳐서 그만두는 후배들이 많아요.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 과정이 그저 즐거울 수만은 없을 거 같아요. 힘들겠지만 그 시간을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지치면 잠깐 쉬었다가 충전해서 다시 잘 일어나다 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저 역시 더디지만 천천히 길을 향해 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그런 얘기들을 해주고 싶습니다.요즘도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있는 이슬씨는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학생들 모습이 너무 예쁘고 맑고 순수한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최근에는 김천교도소에서 노래 봉사를 했는데 주님이 주신 탈렌트가 얼마나 감사한지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자신의 목소리로 주님의 말씀을 노래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기꺼이 가고 싶다는 그는 언젠가는 성경 말씀을 담은 공연이나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공연 봉사를 꿈꾸고 있다.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cpbc2022.09.20

정교회·개신교 함께 속해 있는 국제 기구[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42) 세계 교회 협의회(WCC)는 어떤 기구인가요1948년 창립…스위스 제네바에 본부 전 세계 그리스도인 일치 위해 노력 대화·기도·협력할 수 있는 기회 제공 1961년 WCC 총회에 가톨릭 정식 옵서버 참석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8년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WCC 에큐메니칼 연구소에서 WCC 전 총무 올라프 픽세 트베이트 목사 등 그리스도교계 지도자들과 성물을 교환하고 있다. 사진=OSV 정교회와 개신교가 함께 속해 있는 세계 교회 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는 1948년에 창립되어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하여 노력하는 그리스도교 국제 협의 기구입니다. WCC는 정관에서 다음과 같은 기본 정신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계 교회 협의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만을 위해, 성경에서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이며 구세주로 고백하고, 그들의 공동 성소에 함께 응답하도록 노력하는 교회의 형제적 협의회이다.” WCC에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1) 그리스도인 일치를 목적으로 타 교회와 관계를 가지며, 2) 최소한 2만 5000명의 신자를 가지는 교회이며, 숫자가 미달되면 대표의 참석은 가능하지만 투표권은 없다. 그러나 회원 가입을 위하여 교회의 경제력은 가입 조건이 아니다”라고 명시되었습니다. 참석하는 대표의 조건은 지역 교회 의 대표들과 국가 대표들이 해당됩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WCC는 1) 선교사들의 연대를 이끄는 국제 선교사 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2) 실천적 그리스도교 운동인 ‘삶과 봉사’(Life and Work), 3) 신앙 교리와 일치를 위한 신학적 대화를 주도하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라는 세 줄기를 가집니다. 가톨릭교회는 WCC의 정식 회원이 아니지만 1961년 뉴델리에서 개최된 WCC 총회에 정식 옵서버(참관인)로 참석하였고 개신교와의 신학 대화를 지속하고자 ‘신앙과 직제 위원회’의 정식 회원으로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뒤 개최된 WCC 총회에는 바티칸에서 임명한 공식 대표들이 옵서버로 참석하여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과의 일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WCC의 정식 회원으로 가입하지는 않았습니다. 가톨릭교회의 특성상 WCC의 의사 결정에서 행사하는 투표권의 형평성의 문제와 교의적 결정을 내릴 때 사도좌의 승인이 필요하기에 WCC 총회의 합의나 결정 사항을 그대로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WCC는 회원 교단에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는 조직은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하여 봉사하고,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만나 대화하며 기도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국 개신교 연합 기구인 한국 기독교회 협의회는 WCC의 활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WCC의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 기구인 ‘총회’는 대략 7년마다 여러 지역에서 개최됩니다. WCC 제10차 총회는 “생명의 하느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인도하소서”라는 주제로 2013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부산에서 열렸고, 123개국 361개 교회가 참가하였는데 가톨릭교회의 대표단은 옵서버로 참석하였습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4.01.17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72. 왜 타인과 갈등이 생길까 우리는 다름으로 인해 갈등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디지털 세상이나 현실에서나 마찬가지다. 사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군인들이 적군을 향해 포를 쏘는 모습. OSV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 첫 구절이다. ‘내가 너를 안다’는 말보다 더 오만한 말이 있을까 싶다. 사실 ‘너’라는 타인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다. 우린 그저 나의 관점으로 타인을 이해할 뿐이다. 평생을 함께 살고 사랑한 배우자라도, 외모가 똑같은 쌍둥이로 태어났어도 모두 각자의 가치와 신념으로 남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사랑해서 가까이 다가가지만, 또 미워하면서 언제 이별할지 모를 일이다.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삶의 끝에 죽음이 있듯이 사랑 끝에 이별도 있다. 그 끝이 잠깐의 헤어짐이든 영원한 죽음이든 누구나 사랑하면 상처를 남기고 떠나야 한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Alfred D’Sousza)의 이 시구가 많은 이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린 상처받을 줄 알고, 이별할 줄 알면서도 기어이 사랑하고야 만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절대적인 영혼의 음식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성경은 물론 문학이나 대중가요도 온통 ‘사랑’의 고난을 이야기할까? 사랑은 ‘남’과 한다. 남은 나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알 수 없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또 노랫말처럼 ‘다 안다면 재미가 없다’. 달라서 갈등하고 고통을 겪지만, 그 ‘다름’으로 사랑은 더 단단해지고 커간다. 다름이 익숙함으로 건너가기까지 미운 정 고운 정이 섞이고 버무려지고 숙성하는 고난의 길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다름’은 낯설고 불편하다. 그래서 익숙한 ‘같음’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이 종종 생긴다. 오늘날 우리는 삶을 완전히 바꾼 디지털 혁명의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얼핏 자유롭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세상같이 보인다. 그래서 다름을 많이 수용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과잉정보 세상이 다른 수많은 세상의 창을 더 열어주는 것 같아서 다름을 이해한다고 착각하게 한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은 더 철저하게 다름을 배척한다. 낯설고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은 아예 배제하고 내가 만든 내 취향의 세상을 만들어 거기서 거주한다. 디지털 세상은 온통 ‘닮은꼴 축제’의 공간이다. ‘좋아요’, ‘구독’을 누르고 팔로잉하면서 내 취향의 피드로 ‘같음’에 먹이를 주고 동일한 세상을 만들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응원하고, 나의 이념에 맞는 뉴스로 세상을 보고, 내 취향의 연예인이나 이슈를 따라간다. 똑같은 목소리로 같이 흥분하고 분노하고 또 사랑한다. 그리고 나와 다른 낯설고 불편한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동료들을 반대편으로 몰아세운다. 그들은 완벽한 ‘타인’이고 ‘적’이 된다. 우린 모두 세상의 이방인이다. 나에게 너는 남이고, 너에게 나도 남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간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은 없다. 단지 ‘내 입장에서’ 이해하고 ‘나 같으면’ 이렇게 저렇게 하리라는 예측을 할 뿐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익숙한 나와 닮은 생각과 취향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우리 뇌는 특별하고 탁월하고 선한 것을 좇지 않고 ‘익숙함’을 선호한다. 가능하다면 내가 좋아하고 나와 생각이 같은 익숙한 것들 속에서 어울리고 싶다. 낯섦을 쫓아내고 익숙함을 좇는 본성을 강화시키는 디지털 세상에서 친구는 폭발적으로 늘고 그만큼 적도 많아진다. 왜 타인과 갈등이 생길까? 나와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에? 정확하게는 나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념과 가치를 포기할 수 없을 때 갈등은 증폭된다. 전쟁은 왜 일어날까? 대한민국 남과 북의 갈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이는 모두 국가 간 이익 싸움이며, 정의와 도덕을 삼켜버리는 이기적인 집단의 광기다. 너의 다름을 나와 같은 것으로 만들려는 폭력이다. ‘타타타''. ‘있는 그대로의 것’이라는 의미다. 나의 이익을 좇는 관점 하나, 살포시 내려놓기만 해도 있는 그대로의 ‘남’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산다는 건 참 좋은 거’라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는 첫걸음이 시작되리라. 영성이 묻는 안부 누군들 사랑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독히도 내 중심적이라서 ‘사랑’도 이기적으로 한답니다. 병으로 죽어가는 부모나 고통받는 배우자 혹은 가족 앞에서 무력하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겁니다. 내가 대신 아파 줄 수 없으니까요. 얼마나 아픈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나의 방식대로 해줄 수 있는 것을 다할 따름입니다. 자신의 아픔은 각자 감당해야 하듯 그렇게 우린 철저히 ‘남’일 수밖에 없나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사랑도 자기방식대로 하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일까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사랑의 매뉴얼을 주셨습니다. 게다가 지독하게 이기적인 나는 남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만, 그 바람대로 남에게 해주는 것을 종종 잊고 삽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카 6,31) cpbc202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