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 유산 집대성한 ‘교의학’ 교과서이자 개론서[신간] 교의학 I/1 서론, 신론 교의학 I/1 서론, 신론 테오도어 슈나이더 신부 등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교의학은 하느님을 그분의 자기전달 안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함으로써, 하느님에 관한 ‘합당한’ 언설이라는 규범을 표명하고 또 구체화한다. 하느님의 자기전달에 관한 해석학은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다양한 방법론 없이는 성립할 수 없으니, 이 다양한 방법론의 도움으로 성경(또는 신앙전승)의 텍스트를 그 시대의 문서로 읽을 수 있다.”(19쪽) “교의학은 하느님의 자기전달 안에서 밝혀진 복된 하느님 진리에 대한 참된 증언들에 더해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그 실현 방법 - 구원의 ‘경륜(Okomomie)’ - 을 이해하려 애쓴다는 점에서, 체계적인 조직신학(신앙의 학문)이다. 실증적 교의학으로서 조직신학은 성경과 신앙 역사 안의 이 하느님 진리에 대한 참된 증언들을 탐구한다. 사변적 교의학으로서 조직신학은 이 증언들이 주장하는 개별적인 신앙의 진리들(신앙 조목들 articuli fidei)의 의미 맥락을 뚜렷이 밝혀내려 애쓴다.”(96쪽)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쇄신을 반영하여 교의학 교과서로 기획된 「교의학 I/1 서론, 신론」이 출간됐다. 테오도어 슈나이더 신부, 위르겐 베르비크, 도로테아 자틀러 등 독일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활동한 세 명의 저자가 교의학 전 분야를 다룬 원서를 우리 실정에 맞게 번역·구성한 책의 첫 부분이다. 원서 1권은 교의학 서론·신론·창조론·그리스도론·성령론을, 2권은 은총론·교회론·마리아론·성사론·종말론·삼위일체론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조직신학 연구 작업에서 제기·숙고·서술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개요를 제공한다. 「서론」에서는 교의학을 하는 이유와 방법론, 신앙적 증언의 형식, 교의학의 전제 및 교의학의 자기이해 등을 풀어내며 교의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서론」을 제외한 모든 각론은 네 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 ‘접근’은 오늘날의 난제와 기회, 물음으로 시작한다. 2단계에서는 ‘성경의 전거’가 상세히 논평되며 하나의 뚜렷한 강조점을 부각한다. 3단계에서는 ‘교의사에서의 발전’이 전개되며, 4단계 ‘체계적 성찰’에서는 성경과 전통을 오늘날의 문제 제기와 연계하고 신앙 교리를 통찰한다. 방대한 교의학 개론서의 마지막은 삼위일체론으로 마무리된다. 그림은 알브레히트 뒤러 작 ‘삼위일체 경배’, 1511년, 오스트리아 미술사박물관. 가톨릭평화신문 DB 「신론」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이후의 모든 각론에서 전제되며 또 구체적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방대한 교의학 개론서의 마지막은 「삼위일체론」으로 마무리된다. 「삼위일체론」은 신앙 전체를 한 다발로 묶는다. 살아 계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참되고 충만한 생명이라는 사상,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 개론서는 교의학의 개별적 주제에 꼭 필요한 정보를 모두 제공하고, 제기된 주요 문제들과 해결 단초들을 명시하여 독자들이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톨릭의 관점에서 교회일치적 감수성을 지닌 다양한 전문가가 집필에 참여하였고 토론을 거쳐 완성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5.22
[신간] 성모 마리아와 사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 성모 마리아와 사제 / 방효익 신부 / 기쁜소식 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대부분 ‘성모상’부터 눈에 띈다. 이는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공경하기 때문이며, 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모범으로 삼아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받들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와 사제」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성모 마리아를 교회와 그 가르침 안에서 깊이 있게 살펴본 책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어머니, 곧 하느님의 어머니로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를 성경과 전승,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교황들의 문헌 등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에 기초하여 설명한다. 또 마리아에 대한 왜곡된 주장과 신자로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들여다보고, 마리아 신심과 신학이 그리스도와 교회가 갖는 신비 안에서 고려되어야 함을 되새긴다.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삶과 서품된 사제의 직무를 비교하면서 마리아와 사제의 영적 일치를 확인한다. 저자 수원교구 방효익(권선동본당 주임) 신부는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라는 말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줄 안다면 성모 마리아께 대한 올바른 이해와 지극한 공경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성모 마리아처럼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루카 1,38)라고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방 신부는 스페인 부르고스 신학대학에서 공부했고, 아빌라 가르멜 영성 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영성사」, 「영혼의 입맞춤」, 「사제로 산다는 것」, 「섬김과 봉사」 등을 집필했다. 윤하정 기자 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0.02

춘삼월, 책 한 권 들고 성지순례 떠나볼까이 봄, 함께할 도서들 ‘경칩’이 지났다. 꽃샘추위가 쉽게 봄의 길을 내어주진 않겠지만, 마음은 이미 ‘꽃피는 춘삼월’이다. 책들도 일제히 ‘밖으로’ 향해본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성경 순례 허영엽 신부 가톨릭출판사 로마·이집트·이스라엘·튀르키예·그리스…. 세계적인 인기 관광지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한 번쯤 성지 순례를 꿈꾸는 곳이다. 모리야·베들레헴·예리코·바빌론·카나·코린토 등도 성경을 통해 익숙한 지명이다. 그렇다면 헤브론·르피딤·트코아·게라사·밀레토스 등은 어떤가. 성경에 나오지만 이름도 낯선 데다 오늘날 어디인지도 잘 모를 것이다. 성경은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책이며, 그 배경은 이스라엘과 근동, 즉 유럽과 가까운 아시아의 서쪽 지역이다. 따라서 성경 속의 역사와 지리·풍습 등은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르다. 성경을 읽으며 종종 어려움에 부딪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경 순례」는 허영엽(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신부가 성경에 등장하는 주요 장소를 말씀과 함께 톺아본 책이다. 아브라함의 △성조 시대부터 △이집트 탈출과 가나안 정복 △왕국 시대 및 유배 시대 △예수님의 발자취 △바오로의 선교 여행까지 5가지 주제로 나눠 그 안에 등장하는 낯선 지명들을 엄선했다. “키레네는 키레나이카로 불리는 중요한 고대 유적지 도시다. 현재 리비아에서 비교적 잘 보존된 고대 그리스 도시로 신전·무덤·아고라·원형 경기장·극장 등의 모습이 남아 있다. (중략) 이 키레네가 성경에 등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 길에서다. 로마 병사들은 골고타를 향해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서 한 사람을 불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했다. 바로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이었다.”(228쪽) 책에는 성경 속 특정 장소에 대한 설명과 특징, 등장인물, 다른 구절과의 관계 등이 유기적으로 소개된다. 또 해당 지역의 시기별 전체적인 지도를 첨부해 이해를 돕는다. 허 신부는 “성경에 나오는 도시와 지역은 모두 저마다 독특한 역사와 특성을 지닌다”며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지고, 성경을 통해 얻는 내용도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전했다. 너를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김용백 꿈꾸는 요셉 「너를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는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지역 가운데 ‘이집트’ 집약본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이집트로 향하게 하셨고, 그의 후손 야곱과 요셉의 후손들은 430년간 이집트에 머물며 종살이를 한다. (중략) 한편,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예수님은 가브리엘 천사의 알림으로 헤로데로부터 위험을 피해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와 함께 이집트로 피신하여 3년이 넘는 40개월을 보내셨다.”(‘머리글’ 중에서) 지난 2001년 이집트에 첫발을 디딘 저자 김용백(스테파노)씨는 탈출기와 성가정의 행적을 찾아 이집트 곳곳을 여행하며 성지 이집트와 콥트, 그리고 여러 수도원을 탐방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학자 오리게네스·클레멘스 등이 활동한 곳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이며, 성 폴·성 안토니우스·성 마카리우스 등 은수자들에 의해 사막에서의 수도생활이 시작되고, 그들의 제자들에 의해 수많은 수도원이 건설된 곳도 이집트다. 아직도 50여 개의 수도원이 산재해 있다. 저자는 오랜 가이드 경험에 신앙의 시선을 더해 구약과 신약의 시작 지점에 있으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확립과 수도원의 발달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집트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부산교구 신학원장 겸 부산가톨릭대학 교수 장재봉 신부가 감수로 힘을 보탰다.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해냄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공지영(마리아) 작가가 2022년 가을에 떠난 순례의 여정과 그 길에서 만난 깨달음의 기록이다. 작가는 요르단 암만을 시작으로 갈릴래아 호수·요르단 강·쿰란·나자렛·베들레헴·예루살렘 등을 차례로 순례한다. 지금까지 주로 유럽의 수도원과 성지를 순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낯선 중동,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은 물론, 곳곳에 세워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높다란 장벽과 철조망, 또 총을 든 군인들을 마주했다. 실제로 작가가 방문하고 난 1년 뒤인 2023년 가을 두 지역 간 전쟁이 발발한다. 함께 순례했던 일행이 떠나고 예루살렘에 홀로 남은 작가는 마지막으로 샤를 드 푸코 성인의 흔적을 찾아 나자렛과 예루살렘의 클라라 수녀원을 방문한다. 화려한 세속 대신 사막의 고독을 택하고, 가장 가난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오직 예수님을 닮고자 했던 푸코는 오랫동안 작가의 영혼을 사로잡은 대상이었다. 공소 이성호 눈빛 당장 성경에 나온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 힘들다면 우리나라 신앙 선조들의 발걸음을 되짚어보면 어떨까. 「공소」는 제목 그대로 전국에 산재해 있는 공소를 답사하고 카메라로 기록한 사진집이다. 당시 불교 신자였던 작가는 무언가에 이끌려 천주교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을 찾아 나섰고, 10여 년간 당진 솔뫼성지, 팔공산 한티성지, 부산 오륜대성지 등을 찾아다니며 사진 작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공소’가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초가·기와집 등 여염집 모습을 하고 있어 더욱 친근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공소를 공부하게 되었고, 다시 파주 주내공소에서 제주 마라도공소까지 100여 곳의 공소를 순례했다. 전국 14개 교구별 공소 100여 곳을 흑백사진으로 기록한 이 책은 성소의 외관뿐만 아니라 종루·성모 마리아상·각종 성물을 통해 공소가 머금고 있는 신앙심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한국 가톨릭 역사의 기억 공간’이라는 부제처럼 한두 장의 사진과 몇 문장의 글만으로도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숱한 사연이 소환된다. 작가는 공소 작업 중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원주교구 대안리공소 내부 원주교구 대안리공소 전경 윤하정2024.03.06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월간 꿈 CUM]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 (19) 티모테오가 활동했던 테살로니카 교회의 유적 Q. 사목서간이란 어떤 서간을 말합니까? A. 사목서간이라고 이름 붙은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은 티모테오에게 보낸 두 편지와 티토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영혼의 목자들’ 곧 교회의 책임자들이요 교우들의 영성적 통솔을 관장하는 이들에게 보냈다고 해서 사목서간이라고 합니다. 영혼의 목자들이 이 막중한 사명을 다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Q. 티모테오는 누구입니까? A. 티모테오는 리스트라(Lystra)에서 그리스인 아버지와 유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사도 16,1)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는 사도 바오로의 1차 선교여행 중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차 선교여행 중 리스트라에 들른 사도 바오로는 그곳에 있는 교우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그를 선교 활동의 동료로 선택하였습니다.(사도 16,2-3)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로 건너가 교회를 세울 때, 티모테오는 베로이아에 남아 선교하다가(사도 17,14) 아테네로 사도 바오로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사도 바오로와 함께 코린토에서 선교 활동을 함께 하였으며(2코린 1,19; 사도 18,5) 코린토 공동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도 바오로의 지시로 코린토에 갔습니다.(1코린 4,17) 또 그는 사도 바오로가 필레몬서를 쓸 때 필리피에 선교하였으며(필리 2,19) 테살로니카 공동체를 탄탄하게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1테살 3,2) 그는 에페소에서도 선교하였고(사도 19,22) 거기에 투옥되어 있던 사도 바오로와 긴밀하게 접촉하였습니다.(필레 1장; 필리 1,1; 콜로 1,1) 또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에서 로마서를 쓸 때도(로마 16,21), 에페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도 바오로의 마지막 여정에도 참여하였습니다.(사도 20,4) 교회 전승은 티모테오가 네르바 황제 때인 97년에 순교한 것으로 전합니다. 성 요한 다마스체노(676?~749?)는 티모테오가 에페소의 첫 주교였다고 전합니다. Q. 티모테오서의 집필동기는 무엇입니까? A. 그 당시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고 많은 교우들이 생겼으나, 교회의 정통성과 합법성의 최고 권위인 사도들이 죽어 사라짐으로써 여러 형태의 반발과 저항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① 교회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 것은 교회 내의 여러 가지 상반된 견해였습니다.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들이 유포되면서, 참된 믿음의 가르침을 분명히 밝히고 교회의 정체를 확실히 하는 일이 시급해졌습니다.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티모테오서의 저자는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과 삶을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유일한 정통 가르침이자 바람직한 생활방식의 본보기로 제시합니다.(1티모 1,16; 2티모 1,13) 저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가르침을 지키고 따를 것을 호소합니다. ② 티모테오서의 저자는 이단에 대항하여 교회의 사도적 정통성을 보존하기 위해, 교회 지도자들에게 교회를 조직화하고 직제를 유지하도록 강력히 촉구합니다. ③ 티모테오서의 저자는 바람직한 윤리생활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적대 세력이나 패륜집단이 아님을 실제로 보여주어 선교의 역동성을 유지하고자 이 서간을 쓰게 된 것입니다. Q. 티모테오 1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A. ① 1,1-2 : 인사 ② 1,3-20 : 이단과 복음 ③ 2,1-3,16 : 교회규범 ④ 4,1-11 : 이단자 ⑤ 4,12-5,2 : 교직자의 사명과 언행 ⑥ 5,3-6,2 : 교회규범 ⑦ 6,3-21 : 여러 가지 권고 Q. 티모테오 1서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A.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신심에 부합되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1티모 6,3) 잔뜩 교만해지거나 세속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래서 교우들 간에 분쟁이 생기고 자신을 위해주지 않는다고 시기와 다툼과 비방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람인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1티모 6.11)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 cpbc2025.04.02

그림 같은 사진에 담은 ‘그리스도인의 삶’리길재 선임기자 사진전 ‘길, 再’ 리길재 작 ‘살라망카 대성당 피에타’ 그리스도 발자취 좇아 찍은 작품 19세기 검 프린트 기법으로 인화 독특한 색감·질감… 회화 보는 듯 새해 남다른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맞는 이들에게 더욱 와닿을 전시회가 개최된다. 가톨릭평화신문 리길재(베드로) 선임기자의 사진전 ‘길, 再’. 올해 정년퇴직하는 그를 위해 ‘인생 60 이전과 새 삶을 모색할 전환점’의 의미를 담아 신앙 벗들(분도포럼)이 마련해 준 전시다.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리 선임기자는 “그리스도는 ‘빛’이시며, 개인적인 삶과 기자 인생에서 전부였던 단어”라며 “그간 부족한 글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사진으로 말하려 한다”고 전했다. 수비아코 산 베네데토 수도원·세비야 대성당 성모자상·살라망카 대성당 피에타·뷔르츠부르크 대성당 십자가 등 전시에 소개되는 30점은 오랜 시간 신앙인으로, 또 교계 언론인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좇으며 담은 사진들이다. 사진이지만 독특한 색감과 질감은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모두 검 프린트(Gum Print)라는 색다른 기법으로 인화했다. 판화지에 수채화 물감과 감광물질인 중크롬산염, 검 용액을 바른 뒤 색분해 필름 원판을 붙여 노광을 준 다음 컬러 이미지를 얻는 기법이다. 19세기 중엽의 전통 인화 방식으로 그림 같은 효과를 낸다. 종이 질·물 온도·물감 신선도·감광 농도에 따라 이미지 착상이 달라져 똑같은 프린트가 단 한 점도 존재하지 않는 게 매력이다. 리 선임기자는 기사로 미처 담아낼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표현하기 위해 오래 전 가톨릭 작가들에게 사진을 배웠고, 수년 전부터 프린트마스터 유철수 선생에게 검 프린트 기법을 익혀왔다. 리길재 작 '동검도 십자가'. 리길재 작 '세비야 대성당 성모자상'. 리길재 작 ‘산 조반니 로톤도’ 그는 “각 작품의 거듭된 붓칠, 색분해 필름 노광, 수세와 건조 과정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반복해서 한 달 걸려 겨우 완성했다”며 “우리 안에 비치고 스며든 신앙의 빛을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사진으로 선보이려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 명동 갤러리 1898 제2전시실에서 3일부터 12일까지 열린다.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727-2336 대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한 리 선임기자는 1990~1999년 가톨릭신문 취재기자를 거쳐 2000년부터 가톨릭평화신문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해박한 교회 지식과 관련 경험을 바탕으로 ‘성경에 빠지다’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 ‘저는 믿나이다’ 등 코너를 연재해오고 있다. 2011년 충무로 LEICA STORE(라이카 스토어) 그랜드 오픈 기념 초대전 ‘Germania, … et Deus’, ‘The Print-리길재·상희 부녀전’ 등도 개최했다. 윤하정 기자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2.24
![[금주의 성인] 성 요셉 마리아 토마시 (1월 1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2/24/Ajt1735022733682.jpg)
[금주의 성인] 성 요셉 마리아 토마시 (1월 1일)1649~1713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추기경 성 요셉 마리아 토마시 추기경. 사진=굿뉴스 요셉 마리아 토마시 성인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알리카타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팔레르모의 공작이었고, 람페두사 섬의 왕자 칭호를 가졌습니다. 요셉의 네 누이는 부친이 스페인 팔마에 세운 베네딕토 수녀원에서 성장했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는데, 소년 시절 이미 훌륭한 그리스어 학자였습니다. 교회 음악에도 비상한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테아틴 수도회 총장이 그의 재능을 높게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수도생활에 대한 꿈이 싹트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요셉의 어머니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세속에 살면서, 특정 수도회와 관계를 맺고 그 수도회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제3회원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부친도 비슷한 결정을 하면서 그의 소원대로 어렵지 않게 수도회에 입회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1665년에 팔레르모에 있는 테아틴 수도회에 입회해 왕자의 신분을 포기하고, 수련기를 거쳐 이듬해 첫 서원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메시나로 가서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이후 로마에서 페라라와 모데나 대학을 다녔습니다. 1673년 12월 25일에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요셉의 일생은 기도와 학문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는 은수자의 삶에 가까웠습니다. 요셉은 그리스 철학, 성경, 성무일도를 주로 연구했습니다. 재능이 너무나 뛰어나 그의 히브리어 교사이던 랍비는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까지 결심할 정도였습니다. 요셉의 첫 저술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스페쿨룸」이며, 1680년에는 고대 전례를 서술한 「코디체스 사크라멘토룸」을 펴냈습니다. 「시편」은 주세페 카루스(J. M. Carus)라는 필명으로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1697년 요셉은 인노켄티우스 12세 교황에게 순종하는 뜻으로 바티칸으로 들어갔고, 1704년에는 교황청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수도회부) 신학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됐음에도 요셉은 늘 소탈한 생활을 했고, 동료들과 성가를 불렀습니다. 음식도 단출하게 즐겼습니다. 요셉은 한마디로 하느님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요셉을 보면 그에게 특은이 내렸음을 누구나 인정했습니다. 피조물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 또한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1712년 추기경에 서임된 요셉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는데, 공교롭게도 클레멘스 11세 교황이 12월 중병에 들자 요셉은 “교황이 회복되고 내가 곧 눈을 감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요셉은 1713년 1월 1일 로마에서 선종했습니다. 요셉은 1803년 비오 7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고, 1986년 10월 1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cpbc2024.12.24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의 영이 깃든 특별한 존재[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7. ‘영성’의 철학적 의미 철학상담에서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영성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 개념인데 특히 서구 그리스도교의 영향 아래에서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을 의미해왔다. 라틴어 ‘spiritualitas’의 현대어 번역인 영성은 본래 어휘적으로 숨·호흡·영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프네우마(πνεύμα)에 뿌리를 둔 형용사 프네우마티코스(πνευματικός, 신령한)에 어원을 두고 있다. 구약 성경(창조 이야기)과 고대 로마 신화(히기누스의 쿠라 이야기)를 보면 인간은 흙으로부터 나와 신의 숨결(영)을 받고 생명을 얻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의 영이 깃든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영성은 다양한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영성은 초월과 내재를 포괄하는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 심오한 개념으로서, 특히 철학에서 깊은 통찰이 요구되는 인간 본성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다. 영성은 그 어원에서 짐작하듯 기본적으로 인간 고유의 생명 원리를 뜻한다. 인간 본성으로서 영성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정신에 근거한다. 인간의 생명은 단순한 유기체적 활동을 넘어 정신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때 그 핵심적 원리가 이성에 따른 로고스의 원리요, 나아가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진리를 좇는 초월의 원리다. 여기서 인간 정신의 고유한 기능과 원리로서 감성-생명, 이성-로고스, 영성-초월의 특성이 드러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묻는 존재다. 물음은 정신의 본질에 속한다. 인간 정신의 고유한 특성은 인간이 본능에 따르지 않고 자연과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사물을 대상화하고, 이를 통해 자기를 의식할 뿐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다. 우리는 이런 인간의 정신적 행위를 사유요, 인식이라 부른다. 물음은 앎을 추구한다. 물음을 통해 앎의 대상이 되는 것 일체를 ‘존재’라 부르며, 물음은 궁극적으로 존재 물음이다. 매우 바쁘거나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정신이 없다’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 말에는 삶의 궁극적 의미인 존재 물음을 회피할 만큼 영성이 결핍되어 있음이 함축되어 있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 너무 함몰되어 철학적 물음을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위기가 닥쳐올 때는 다시금 진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게 된다. 물음을 촉발하는 것은 외부 자극으로 작동되는 우리의 감성이다. 일상의 익숙함과 편함이 낯섦과 불편함으로 바뀔 때, 구체적으로 고통과 상처, 좌절과 두려움으로 내몰린 한계 상황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 이유와 해결을 찾아 진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감성에서 촉발된 물음은 아직 그 의미가 분명하고 명확하게 주제화되고 있지 않기에 이해를 위해 감성보다 이성의 도움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불안한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피동적인 감성이 아닌 능동적인 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 모든 것이 이성만으로 합리적으로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데 있다. 엄연한 현실인 삶과 존재의 심연·불확실성·부조리 속에서 우리는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성의 합리성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숭고한 절대적 가치와 의미를 향해 부단히 초월하고자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영성의 힘이라 하겠다.cpbc2025.02.12

‘성 십자가 경배의 산실’ 하일리겐크로이츠 시토회 수도원[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38. 오스트리아 하일리겐크로이츠 시토회 수도원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1133년 오스트리아의 변경백 레오폴트 3세가 설립한 시토회 수도원으로 성 십자가 성유물이 보관되어 있으며, 전례·그레고리오 성가로 유명하다. 현재 23개 본당을 맡아 사목하고 있다. 수도원 아래 건물은 1802년에 설립된 수도원 대학교로 약 340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으며, 교구 신학교 역할을 맡고 있다. 왼편 언덕으로 순례자들을 위해 조성한 십자가의 길이 보인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서쪽으로 20여㎞ 떨어진 곳에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하일리겐크로이츠 시토회 수도원이 있습니다. 원래 이 지역은 깊은 숲과 골짜기로 이뤄진 인적 드문 곳으로 ‘빈의 숲(Wienerwald)’이라 불리지요. 1133년에 오스트리아 변경백 성 레오폴트 3세에 의해 수도원이 설립된 뒤로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면서 마을도 생겼습니다. 하일리겐크로이츠는 ‘성 십자가’란 뜻으로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성 십자가에 봉헌된 수도원입니다. 제3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5세가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4세에게 성 십자가 성유물을 선물 받아 1185년 수도원에 모셨습니다. 그 후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려는 순례자의 발길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성 십자가 성당. 수도원이 본당 사목을 위해 1982년 수도원 성당 옆에 새로 지어 봉헌한 성당으로 2023년에 주님의 수난을 주제로 한 성화 중심으로 성당을 리모델링했다. 제대에 적갈색의 성 십자가 성유물이 모셔져 있다. 가로 6.2cm/10.7cm 세로 23.5cm 이중 십자가 형태로 다섯 개 나무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원 가대석(1707). 24개 좌석으로 구성된 가대석 상단에는 성경의 인물과 성인들이 묘사되어 있고, 전면에는 말씀과 묵상의 자리에서 영혼의 꽃이 피어나는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지역 사회 형성에 기여한 시토회 수도원 그런데 시토회? 우리나라에는 시토회 수도원이 없어 낯설겠습니다만, 간단히 말해 12세기 초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좀더 엄격히 준수하며 살려고 새롭게 탄생한 개혁 수도회입니다. 1098년 프랑스의 시토에 세워진 수도원 이름에서 따왔고, 1112년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가 입회하면서 수도회가 급성장합니다. 10세기부터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내부로는 기도 중심의 장엄한 전례, 외부로는 세속 권력으로부터 자율성 회복을 주창한 클뤼니 수도원 개혁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교황의 힘을 빌려 세속 영주의 영향력을 막았고, 수도원 내부 규율을 강화하며 교회 개혁을 해갔죠. 그런데 12세기부터 오히려 세속 권력과 더 밀접한 관계를 지니게 됩니다. 한때 서임권 논쟁에서 교황을 지지했던 큰 수도원들을 황제와 그 측근들이 통 큰 기부로 자기편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한 겁니다. 그 결과 수도원은 부유해졌고, 광대한 수도원 땅을 위해 평민들이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됩니다. 본래 이상과 달리 노동을 소홀히 한 채 기도에만 치중하고, 귀족처럼 관리만 하다 보니 수도원 영성의 침체는 불가피했습니다. 이를 바로잡고자 등장한 것이 시토회입니다. 수도 규칙을 엄격히 준수해 기도와 노동의 균형을 맞춰 세속의 도움 없이 자급자족 생활로 되돌아가려 했죠. 레오폴트 변경백이 시토회 수도원을 설립한 배경에는 프랑스 시토회 수도자였던 아들의 청이 컸지만, 산지가 많은 오스트리아에는 시토회 수도원의 테라포밍(terraforming) 능력이 절실했을 겁니다. 시토회는 외딴 황무지를 개간하며 농업과 수리 기술·목축업·포도 재배 등에서 혁신을 주도했고, 수도원 주변에 마을도 생기며 발전해나갔기 때문입니다. 실제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이 설립된 후 알프스 이북에 20여 개 시토회 수도원이 더 설립됐으며, 오스트리아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안뜰의 삼위일체 기둥(14m). 1739년 조반니 줄리아니가 제작한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기둥이 세워져 있다. 하단부에 베네딕토·베르나르도·레오폴트의 성상이 배치되어 있다. 전염병이 창궐했던 시기 하느님의 보호에 감사하며 세웠다고 한다. 뒤로 1185년 성 십자가에 봉헌된 수도원 성당 입구가 보인다. 오스트리아 최대 순례길 ‘비아 사크라’의 영적 쉼터 오늘날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을 찾아가기는 쉽습니다. 빈에서 기차와 버스로 농촌 포도밭과 숲 속 풍경을 즐기다 보면 이내 수도원 마을입니다. 수도원을 둘러싸고 인구 1500여 명이 사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요. 위치에 비해 교통이 편리한 이유는 수도원이 빈에서 마리아첼 성모 순례지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 순례길인 ‘비아 사크라’의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수도원 단지 사이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수도원 정문이 나타납니다. 수도원 안뜰에는 14m 높이의 거대한 삼위일체 기둥과 함께 수도원 성당이 보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단순하고 절제된 장식이 이곳이 내면의 아름다움과 소박함을 지향하는 시토회 수도원임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수도원 성당에 들어서면 천개(天蓋), 석조 구조와 세밀한 첨탑 장식이 돋보이는 네오고딕 양식의 주 제대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때마침 시간 전례(성무일도) 시간입니다. 13세기 고딕 창으로 들어오는 빛 속에 하얀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에게서 은은히 울려 퍼지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보는 이를 중세로 빨아들입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성체 거동 행렬(위)과 성 십자가 축복(아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 있는 주일에 성 십자가 강복이 있다. 이날 고해성사·영성체·교황님의 지향 기도를 봉헌하면 전대사를 얻는다. 성 십자가 공경의 산실 지금 다각형 수도원 단지는 오스만 튀르크의 공격으로 수도원이 파괴된 후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증·개축한 것입니다. 동시에 성 십자가를 경배하려는 순례 붐이 일어납니다. 수도원은 성 십자가 신심 단체인 형제회도 설립하고, 십자가의 길도 새롭게 조성하지요. 성 십자가 신심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인 9월 14일 절정에 달했습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순례는 요제프 2세 황제의 억압 정책으로 잠시 멈추지만, 19세기 후반에 다시 시작됩니다. 1933년 9월 오스트리아 가톨릭의 날 행사 주간에 맞춰 빈의 슈테판 대성당에 성 십자가 유물을 모셨는데, 수많은 이들에게 회개의 기회가 됐지요. 현재 성 십자가 성유물은 수도원 묘지 옆 현대식 성 십자가 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1982년 새롭게 봉헌한 성당으로 중앙 유리 제단에 성 십자가의 성유물이 모셔져 있습니다. 2000년 희년부터는 옛 전통에 따라 사순 시기 주일에 성 십자가를 모시고 신자들과 야외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주님 수난을 묵상하고 있지요. 가끔 성유물이 진짜인가 묻는 분이 계십니다. 하긴 유럽에 있는 조각만 모아도 몇 개는 나올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유럽의 다른 성유물처럼 진위가 핵심은 아닙니다. 집에 걸려 있는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성 십자가 성유물 경배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리스도의 행위를 절실히 느끼고 그 수난에 동참하고 싶었던 천 년의 시간, 그 정신이 핵심이겠죠. 일상의 순례에 대한 초대장도 그런 연장선상입니다. <순례 팁> ※ 빈 중앙역에서 바덴역 또는 뫼들링역 이동(S3, REX, 30분 소요) 후 버스 이용(Postbus 364, 365, 25분 소요) ※ 수도원 투어(45분, 오디오 가이드) 추천. 마리아첼 도보 순례자를 위한 순례자 숙소(순례자 여권 및 스탬프). ※ 수도원 전례 : 주일 및 대축일 미사 08:30· 9:30·11:00·18:45, 평일 미사 06:25·08:00 (금·토), 18:00(월/대학교 카타리나 소성당), 18:45 / 매일 5차례 시간 전례.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 cpbc2025.08.13

다윗의 증조모, 진취적이고 지혜로운 여성의 표본[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5) 룻기 룻기는 다윗 임금의 증조할머니인 모압 출신 여인 룻에 관한 이야기로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윌리암 홀, 룻과 보아즈, Lebrecht Music & Arts, Alamy. 우리말 가톨릭 성경 ‘룻기’의 유다교 정경 타낙 성경 명칭은 ‘룻’입니다. 히브리 성경 헬라어 번역본 「칠십인역」은 ‘Ρουθ’,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Ruth’으로 히브리 명칭을 음역해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룻은 우리말로 ‘친구’라는 뜻입니다. 아울러 이 책의 제목이자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룻기는 유다교 정경에서 ‘멜길롯’ 또는 유다교 축제 때 읽히는 ‘다섯 두루마리’(룻기ㆍ아가ㆍ코헬렛ㆍ애가ㆍ에스테르기)라고 불리는 성문서로 분류돼 있습니다. 룻기는 보리와 밀 추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유다교 축제 중 농경 축제 주간에 낭독됩니다. 아울러 룻기는 타낙 성경에서 잠언 뒤에 배치돼 있습니다. 잠언 31장 10-31절의 ‘훌륭한 아내에 대한 송가’를 현실적으로 들려주는 내용이 바로 룻기이기 때문입니다. 「칠십인역」에는 판관기 바로 다음으로 룻기가 편집돼 있습니다. 가톨릭 성경 정경에서 룻기는 ‘역사서’로 분류되며, 칠십인역본처럼 판관기와 사무엘기 사이에 자리합니다. 룻기는 판관기 19─21장이 묘사하는 무법적인 왕정 이전 시대로부터 다윗과 함께 시작되는 왕정의 새로운 시대로의 과도기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룻기는 모압 출신 룻이 유다인 시어머니 나오미와 곤궁한 현실 속을 이겨내며 서로 자애롭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룻은 다윗 임금의 증조모입니다. 곧 룻기는 다윗 임금의 증조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룻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나오는 몇 안 되는 여성 가운데 한 명입니다. 룻기는 구약 성경에서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책은 룻기 외에도 ‘에스테르기’와 ‘유딧기’가 있습니다. 룻기는 이 두 책과 달리 가부장 중심 제도에서 여성의 사회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가난한 여인들의 삶을 위협하는 가부장 사회에서 나오미와 룻이라는 두 여인의 생존기입니다. 룻과 나오미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진취적이고 지혜로운 여인이며, 유다 여성들의 모범을 제시됩니다. 룻기는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부분(1,1-22)은 나오미 가족이 기근으로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주한 내용을 들려줍니다. 그곳에서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은 후 나오미는 자신을 따라나서는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나선 것은 ‘효성’(룻 3,10) 때문입니다. 둘째 부분(2,1-23)은 룻이 친족 보아즈의 밀밭에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돌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셋째 부분(3,1-18)은 나오미가 룻과 보아즈를 결혼시키기 위해 두 사람만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주선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넷째 부분(4,1-22)은 보아즈가 룻을 아내로 맞고 오벳을 낳아 엘리멜렉 가문의 대를 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룻기의 저술 시기를 기원전 5세기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로 추정합니다. 그 이유는 저자가 판관 시대를 아주 먼 옛날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룻 1,1; 4,7) 또 룻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보편 사랑과 고통의 의미 등은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 시대에 등장하는 신학 사상입니다. 아울러 이방인과의 결혼을 자연스럽게 묘사한 것도 유배 이후 시대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본디 이스라엘 율법은 모압인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합니다. “암몬족과 모압족은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고, 그들의 자손들은 십 대손까지도 결코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다.”(신명 23,4) 룻은 구세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룻은 아브라함의 삶과 연결돼 있습니다. 새 남편이 될 보아즈는 룻에게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라고 합니다.(룻 2,11) 이 표현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고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또한, 룻은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이스라엘에 시집온 이방 여인 레베카(창세, 24,58-67)와 라헬(창세 29,28-30)과도 비교됩니다. 더욱이 룻이 이스라엘 여인이 아니라 모압 출신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하느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을 섬기는 자는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룻기의 핵심 내용은 1장 16절의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라는 고백으로 집약됩니다. 룻기는 하느님께서는 충실하시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룻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시며,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신실하시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룻기는 하느님께서는 늘 힘없는 이들과 연대하신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가난한 이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은 배척하신다.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42)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해 준 것으로써 선택된 사람들을 알아보실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마태 11,5) 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표징이 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43항)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8.09

주님 부활 기념하며 일요일을 주일로 지내 [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14) 안식일과 주일 거룩한 주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모든 가톨릭 신자는 주일 미사 참여의 의무를 지닌다. 작품은 팔레스타인 내 성당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린 성화. OSV 엄마와 함께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자랑하던 학생이 묻습니다. “성경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탈출 20,8)라고 나오는데, 안식일이 주일인가요?” 가톨릭교회에서 ‘안식일’이란 용어는 낯설 수 있습니다. 안식일(토요일) 대신 일요일이 주일이 된 이유를 신자들도 많이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안식일과 주일, 그리고 주일을 거룩히 지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안식일 ‘쉬는 날’이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쉬셨던 마지막 날. 즉 일곱째 날(토요일)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냈습니다.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탈출 20,11) 신약시대에 와서 일요일(주일)을 안식일 대신 지키게 되었습니다. 주일 ‘주님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주일을 일요일이라고 하는 것은 ‘빛을 주신 해(日)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범죄로 어둠 속을헤매는 인간에게 빛을 주신 날입니다. 이 빛은 곧 그리스도의 승리인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일은 한 주간의 첫째 날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신 첫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그리스도는 빛을 창조하신 빛의 날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일요일을 주일로 정해 거룩히 지냈습니다. 일요일은 부활, 곧 그리스도께서 구원사업의 승리를 거두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날 신약시대에 와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정점이 됐습니다. 아울러 교회가 출범한 ‘성령 강림 대축일’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들은 이날을 ‘주님의 날’로 정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주일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미사를 집전하는 날입니다. “안식일 다음 날 우리는 주의 만찬을 나누려고 한자리에 모였다.”(사도 20,7) 그러므로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주일은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미사 의식을 거행하는 날이었습니다. 주일이 ‘쉬는 날’이 된 이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자 ‘주일을 거룩히 지내기’ 위해 쉬는 날로 정한 것입니다. 주일 미사 참여 의무 신자들이 주일이 되면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는 6세기부터 시작됐습니다. 교회법상으로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쉬어야 하는 규정은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의 칙서에 의해 결정됐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교회법에서 정한 법규) 교회법은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미사에 참여하고, 육체노동을 삼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방법 ① 미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②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노동을 하면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교회법 제1246~1248조 참조) 박모란 교리교사cpbc2024.08.14

독일 ‘바이에른 킴호’의 숨은 보석 프라우엔뵈르트 수녀원[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33. 독일 프라우엔뵈르트 베네딕도회 수녀원 프라우엔섬과 프라우엔뵈르트 수녀원. 허브 정원과 성물방을 운영하며 순례자들에게 신앙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프리엔·헤렌섬과 프라우엔섬을 잇는 유람선은 수녀원 뒤편 선착장에 정박한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은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해진 뒤 가톨릭 신앙을 꾸준히 고수한 지역으로, 하늘과 땅이 맞닿는 영적인 장소가 많습니다. 그 남쪽 한가운데에 빙하가 녹아내려 탄생한 킴호(Chiemsee)가 있는데요. 크기가 80㎢로 ‘바이에른의 바다’라 불릴 만큼 광활합니다. 뮌헨과 잘츠부르크를 잇는 아우토반과 가까워 여름이면 수많은 관광객이 들르는 휴양지이지요. 무엇보다 해발 1669m의 캄펜반트와 산봉우리들이 호수를 둘러싸며 장엄한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어, 일상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신앙이 하나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뮌헨 중앙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바이에른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 속을 달려 호숫가 마을인 프리엔 역에 도착합니다. 역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를 순례지까지 데려다 줄 유람선이 정박해 있지요. 킴호에는 세 개의 섬이 있습니다. 대부분 가장 큰 섬인 헤렌섬(Herreninsel)을 갑니다.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지은 ‘동화의 왕’ 루트비히 2세의 웅장한 헤렌킴제성을 보러 가는 겁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처럼 절대 왕정을 동경했던 루트비히 2세는 1878년 섬에 베르사유궁을 본떠 큰 궁을 짓기 시작합니다. 비록 완공하지 못했지만, 거울의 방 등 내부의 화려함과 넓은 정원은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갈 곳은 그 옆의 조그만 섬인 프라우엔섬(Fraueninsel)입니다. 프라우엔뵈르트 수녀원 성당과 종탑. 782년 성모 마리아의 자헌을 기리며 당시 잘츠부르크의 성 비르질리오 주교에 의해 봉헌됐다. 육중한 탑은 중세 초 방어탑으로 쓰다가 훗날 종탑으로 개축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녀원 섬에 가까이 다가가면 선착장 너머 흰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진 수녀원이 보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선착장 주변 레스토랑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수녀원 뒤편으로 마을이 있는데, 마을 주민을 위해 유람선이 옛날과 달리 마을 반대편 선착장에 정박하기에 수녀원 뒤편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셈입니다. 이곳 프라우엔뵈르트 베네딕도회 수녀원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아빠티스좌 수녀원으로 꼽힙니다. 이 지역은 7세기 잘츠부르크에 선교지를 설립한 아일랜드계 스코틀랜드 수도자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곳이지요. 782년에 바이에른 아길로핑 가문의 타실로 3세 공작은 프라우엔섬에 수녀원을 설립합니다. 당시 헤렌섬에는 이미 남자 수도원이 있었지만, 북이탈리아의 랑고바르드 왕국 부마였던 공작은 이탈리아로 가는 루트에 아내와 함께 머무를 좀더 편안한 거처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는 것은 수도자로서 의무였으니, 설립자나 후원자의 숙식을 배려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9세기 들면서 수녀원은 쇠락의 길에 접어듭니다. 수녀원을 후원하던 공작 가문이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타실로 3세는 카롤루스의 사촌으로 봉신(封臣)이었지만, 랑고바르드 왕국과 혼인 동맹을 맺어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통치를 두고 교황청과 갈등을 빚던 랑고바르드 왕국이 결국 프랑크 왕국에 합병되면서 타실로 3세도 수도원에 유폐되고 말지요. 그런 수녀원을 다시 일으킨 이가 이르멘가르트입니다. 킴가우 지역의 수호 성인인 복자 이르멘가르트의 석관(아래)과 석관 위 성화. 성해를 발굴한 후 1641년 지금 석관에 옮겨 모셨다. 이르멘가르트는 1928년 12월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자녀가 없던 많은 부부가 이곳에서 기도하며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수녀원 부흥 이끈 복자 이르멘가르트 카롤루스 대제의 증손녀인 이르멘가르트는 독일 남서부 부카우 베네딕도회 수녀원에서 교육받고 수도자로 살다가 857년경 이곳 수녀원장으로 임명됩니다. 이후 수녀원은 카롤루스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제국수녀원’으로서 발전합니다. 또 귀족 가문의 딸들을 교육하는 학교로서 중세 여성 교육의 중심지 역할도 했지요. 이곳에서 여성들은 문해력·성경 지식·음악·자수 등 다양한 학문과 예술을 익히며 신앙과 지성을 동시에 키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큰 화재로 수녀원을 증·개축했지만, 수녀원 정문 건물과 성당은 초창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수녀원 정원을 지나면 타실로 3세 시기에 지은 현관 건물이 보입니다. 이 건물에 공작 일행이 묵었을 겁니다. 몸을 돌리면 동네 묘지와 함께 수녀원 성당이 보입니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팔각형 종탑이 성당과 떨어져 있습니다. 그 묵중함과 좁은 창은 이 탑이 중세에 적의 침입 때 피신하는 방어탑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섬이란 위치는 수녀원이 지금까지 존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종교개혁과 30년 전쟁의 혼란 속에서 수녀원은 외부 다른 수녀원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지요. 프라우엔뵈르트 수녀원 성당 주 제대. 초창기 성당이 907년 헝가리의 공격으로 파괴된 후 11세기 말 삼랑 형식으로 재건했다. 고딕 양식의 리브 볼트는 15세기에, 바로크 양식의 제대는 17세기에 건축됐다. 오른편 십자가상 아래 칼에 심장이 찔린 성모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성모님의 자헌을 기념하는 성당 수녀원 성당의 외형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단순합니다. 하지만 지붕 아래 고딕 양식으로 채색된 프리즈가 이곳이 수녀들의 기도 공간임을 드러냅니다. 성당 내부도 아름답고 세심하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다채롭게 채색된 그림과 별 모양의 천장을 처음 봤을 때 역시 수녀원 성당은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지요. 원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평평한 목조 천장이었는데, 15세기 말 고딕 양식의 천장으로 바뀌었고, 천장화는 1606년에 그렸습니다. 이르멘가르트 소성당 한가운데에는 제2의 설립자로 공경받는 복자 이르멘가르트의 무덤이 있습니다. 복자의 전구로 아이를 갖게 되어 감사하는 부부의 봉헌판들이 주변에 보입니다. 프라우엔뵈르트 수녀원 성당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自獻), 그러니까 성모 마리아께서 동정을 지키시고 평생 하느님 뜻을 기꺼이 이루시어 살아있는 제물이 되셨음을 기리는 곳입니다. 성당에는 성모님 삶을 그린 성화가 많은데, 특히 십자가 아래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칼에 찔리는 모습으로 묘사한 성모상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모습에서 우리 삶의 아픔조차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힘과 용기·위로를 주시길 청해봅니다. <순례 팁> ※ 뮌헨에서 프리엔까지 자동차로 1시간 30분, 기차(잘츠부르크행 EC, RB)로 1시간 소요. 유람선 선착장까지 도보로 이동(chiemsee-schifffahrt.de) ※ ‘스콜라스티카’ 손님 숙소가 있고, 성물방에서 수녀원에서 직접 생산한 식품 등을 살 수 있다. 수녀원 미사: 주일과 대축일 9:30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 cpbc2025.07.02

여호수아 이후 무질서와 혼돈의 시대[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4) 판관기 판관들은 여호수아 이후 이스라엘에 왕정이 도입되기 전까지 유다인들을 이끈 지도자들이었다. 루벤스, ‘삼손과 데릴라’, 유화, 1609~1610, 런던 내셔널갤러리, 영국. 판관기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쇼페팀’입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번역본인 「칠십인역」은 ‘크리타이’(Κριται)로, 라틴어 대중 성경인 「불가타」는 ‘유디쿰’(Iudicum)이라고 표기했습니다. 모두 우리말로는 ‘재판관들’이란 뜻입니다. 판관기는 여호수아 이후 이스라엘에 왕정이 도입되기 전 ‘판관들’의 시대가 어땠는지를 알려줍니다. 판관 시대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처음 차지한 때부터 왕정을 받아들일 때까지의 과도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다스릴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인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다소 무질서하고 때로는 무법천지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판관 2,11-19 참조) 판관들은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뒤 등장합니다. 하지만 판관 시대가 언제 끝난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인 사무엘 역시 판관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으로 보아 사울이 즉위한 시기 직전까지를 판관 시대라 할 수 있겠습니다.(1사무 7,2-17 참조) 다시 말해 대략 기원전 13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가 판관 시대였다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 시기는 후기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때였습니다. 이는 적들이 철병거를 갖고 있어서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진술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판관 1,19; 4,3.13 참조) 판관기는 오트니엘, 에훗, 삼가르, 드보라, 기드온, 톨라, 야이르, 입타, 입찬, 엘론, 압돈, 삼손 등 판관 12명의 활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판관기에 등장하는 이들 판관은 재판관이기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들 판관 가운데 재판관의 역할에 가장 충실했던 이는 ‘드보라’입니다. 그녀는 백성이 찾아오면 ‘드보라 야자나무’(판관 4,5) 밑에서 재판을 했습니다. 나머지 판관들은 주로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참전했고, 정치 지도자, 예언자의 역할(판관 2,17; 4,4)을 수행했습니다. 판관 시대 이스라엘의 주적은 아말렉, 암몬, 아람, 가나안, 미디안, 모압, 필리스티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민족은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특히 아말렉과 암몬, 미디안, 모압은 힘을 합쳐 이스라엘 남쪽과 동쪽을 위협했습니다. 일곱 민족 가운데 가장 골칫거리는 필리스티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원전 12-11세기 에게해 주변에서 팔레스티나 남서쪽 연안으로 이주한 해양 민족입니다. 이들을 가자, 아스클론, 아스돗, 갓, 에크론 등 다섯 개 성읍에 정착해 하느님의 계약 궤를 빼앗기도 하고,(1사무 4,1-11) 사무엘과도 싸우는 등 다윗에게 완패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판관기는 크게 서론(1,1─3,6), 본론(3,7─16,31), 부록(17,1─21,25)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론은 판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 배경 설명입니다. 본론은 각 판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부록은 판관 시대에 있었던 주요 사건 몇 가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판관기는 여호수아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판관기는 이스라엘이 이민족들에게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은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 때문이라고 합니다. 판관기의 시대상은 판관 2장 11-15절에 잘 드러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주류는 “주님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업적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판관 2,10)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몰랐기에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타롯을 섬겼습니다. 이같은 행동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깨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판관기의 핵심 가르침은 판관 2장 16─3장 6절에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판관들을 세우시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탈자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도록 하셨다”(판관 2,16)는 내용입니다. 판관기는 모세 오경과 여호수아기가 그랬듯이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는 가르침을 이스라엘에 선포합니다. 판관기는 이스라엘이 외침(外侵)을 받는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기라는 가장 큰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우상 숭배를 끊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은 이상 계속 다른 민족들에게 시달림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판관들이 전쟁에서 승리해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께 충실할 때였습니다. “판관들은 그들 자신의 힘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위험에서 구했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인간적 능력에 달려 있지 않고 하느님께 순종하는 데에 달려 있다는 것,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 이 모두가 신명기의 가르침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이 외적의 손에서 벗어나고 나면 어느새 다시 하느님을 잊어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판관기는 그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안정된 결말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안소근, 「구약 종주-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여정」 106-107쪽, 성서와 함께)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8.02

이스라엘의 임금은 주님, 인간은 대리자일뿐[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6) 사무엘기 사무엘기는 하느님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주님이시고 임금이시며 인간은 하느님의 대리자일뿐 결코 백성의 주인일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빅토르 비에누리 작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으로 선택하는 사무엘’, 유화, 1843, 파리 국립미술학교. 사무엘기 상ㆍ하권의 히브리어 성경 명칭은 ‘쉐무엘’입니다. 사무엘기는 본디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헬라어 번역본 「칠십인역」은 상ㆍ하권 둘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상권을 ‘바실레이온 알파’(Βασιλειων Α, 제1왕국기), 하권을 ‘바실레이온 베타’(Βασιλειων Β, 제2왕국기)라 이름 붙였습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인 「불가타」는 칠십인역을 따라 사무엘기를 상ㆍ하권으로 나누지만 ‘왕국’이라는 이름 대신 ‘Ⅰ Samuel’과 ‘Ⅱ Samuel’로 표기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간행한 우리말 「성경」은 ‘사무엘기 상권’, ‘사무엘기 하권’으로 표기했습니다. 사무엘기는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 제목은 마지막 판관이자 사제이며 예언자로 이스라엘을 왕정으로 이끈 사무엘의 이름을 따릅니다. 사무엘은 판관 시대와 왕정 시대를 연결해 사울과 다윗을 기름 부어 임금으로 세운 인물입니다. 사무엘기는 대략 기원전 1070~970년 사이 100년에 걸쳐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 이집트, 아시리아, 페니키아, 히타이트 등 이스라엘 주변 강대국들은 별다른 분쟁 없이 평화롭게 보냅니다. 반면, 에게 해에서 건너온 필리스티아인들은 가나안 해안 지역을 거점으로 활발히 영토를 넓혀 갔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늘 이스라엘에 커다란 위협이었습니다.(1사무 4,1─7,17 참조) 사무엘기는 △필리스타아인들의 억압(1사무 1─7장) △사무엘과 사울(1사무 8─15장) △사울과 다윗(1사무 16─31장)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유다 임금이 됨(2사무 1─4장)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임금이 됨(2사무 5─12장) △다윗을 거스르는 반역(2사무 13─20장) △부록(2사무 21─2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사무엘기의 줄거리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인 엘리와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필리스티아의 지배에서 해방시키려 했으나 실패하고 맙니다. 오히려 ‘실로’ 성소에 모셔둔 ‘계약 궤’를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기고 맙니다.(1사무 4장) 계약 궤는 일곱 달 뒤에 되돌아왔지만, 성소 파괴로 오지 마을 창고 안에 보관됩니다.(1사무 6,1─7,1) 필리스티아인들의 억압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과 에돔인들처럼 임금을 달라고 사무엘에게 아우성을 칩니다.(1사무 8장) 사무엘은 유다인들에게 “이스라엘의 운명은 유일한 임금이신 하느님께 충실하고 순종하는 데 달려 있다”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간 임금은 백성으로 하여금 ‘말과 마차’를 신뢰하도록 해 하느님과 멀어지게 할 뿐”이라고 질책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갈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어 벤야민 지파 출신 사울을 임금으로 선택합니다.(1사무 9─10장) 사울은 하느님의 요구에 복종하지 않아 하느님께 버림받습니다.(1사무 15장) 이와 대조적으로 사울의 계승자 다윗은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통해 다윗 왕조가 영원히 지속할 것이며, 다윗 가문 임금들을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다윗 가문과 맺으신 계약입니다.(2사무 7장) 이 계약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하느님의 대리자, 진정한 임금이 됩니다. 또 다윗을 계승한 임금들이 하느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지만, 그계약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리라는 확신을 표현합니다. 사무엘기에서 다윗은 하느님의 벌을 받은 죄인이자 아들들을 잃고 고통을 겪는 비극적인 인물로 묘사되면서도 구원자 이미지와 결합됩니다. 사무엘기는 기원전 9세기 통일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갈라진 직후 흩어져 있던 여러 자료를 모아 처음으로 편집 작업을 한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이 시기 특별히 다윗 왕조와 그 왕권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주장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기는 다윗이 어떻게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의 임금이 됐는지, 왜 그의 왕조와 왕권만이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1사무 16,1─2사무 8,18 참조) 이후 히즈키야가 다스리는 동안 (기원전 715-687년) 재편집돼 마지막으로 기원전 6세기에 신명기계 역사가들이 개정했으리라 추정합니다. 이런 이유로 사무엘기는 이스라엘 왕정 제도와 초기 왕정을 예언자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역사 문학 작품’이라고 학자들은 평가합니다. 사무엘기가 말하는 왕정 제도의 핵심 사상은 ‘하느님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주님이시며 임금이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기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의 대리자일 뿐 결코 백성의 주인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임금의 첫째 임무는 백성이 하느님과의 계약과 율법에 충실하도록 다스리는 것이라고 소개합니다.(1사무 12,2) 아울러 하느님께서 당신이 선택하신 인물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1사무 7,6) 사무엘기는 또한 다윗과 그 후손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을 알려줍니다. 하느님과 다윗 가문의 특별한 관계는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메시아’, 곧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다윗의 후손으로 올 새 임금에 대한 약속과 희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이사 7,1─11,16; 예레 23,5-6; 시편 89,2-53 참조)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8.16

성전 건립 유감(有感) 2- 뚝심과 효심으로 이룬 성전 - <유구성당 부임> 벌써 10년 전 일이 되었다. 유구본당으로 발령이 나자 홈페이지(유구본당 카페)에 들어가 봤다. 본당 설립 연도부터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사목하는 기간 중에 50주년을 맞게 된다. 그것이 궁금했던 이유는 5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의미려니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유구성당의 모습을 대략 알고 있었고, 노후화된 성당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마침내 부임일이 밝았고, 데리러 온 교우들과 함께 성당 정문을 들어섰다. 너무나 익숙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모습, 시골의 큰 공소 같은 성당과, 사무실 앞에 드럼통을 잘라 만든 구이통에 무언가를 구워 먹으며 불을 쬐는 교우들 모습이 순박하고 소박하다 못해 조금은 안쓰럽고 애처롭게 보였다. 순간 중국 산둥성의 깊은 산골이 떠올랐다. 그 눈망울에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듯한 묘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지금도 그 눈빛이 선하다. 마음 한켠에는 마치 내 고향에 온 포근함도 느껴졌다. 그런 산골의 소박함과 시골스러움에 마음이 편안했다. 어둡고 좁은 사제관에 짐을 풀고 이 사람들과 5년을 함께한다는 사실을 좋게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신자들 면면이 가난하고 노쇠한 내 부모 같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어서 한편으론 맥이 빠지면서도 나도 순박하게 조용히 살아보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한 주일을 지내고 한 달을 지냈다. 짐작은 했지만, 사무실 직원도 제대로 없고 사목회도 짜임새가 없고 모든 것이 미진하고 부족했다. 주일 미사가 끝나도 누구 하나 식사하자고 하는 사람도 없어서 의아했다. 그럭저럭 사목회도 꼴을 갖추고 때로는 짓궂게, 때로는 거칠게 또 게걸스런 표현으로 신자들과 소통하며 친밀해지려 애썼다. 우선 신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아보고 싶어서 대대적으로 가정방문을 실시했다. 집집마다 비어있거나, 혹은 연로한 어르신 한 분이 집을 지키며 맞아주었다. 시내 구역을 벗어나자 무슨 동네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깊은 산골, 더 이상은 없겠지 싶으면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골짜기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며 계속 되었다. “뭐 이런 골짜기가 다 있느냐”며 투덜거리자, 구역장이 대꾸한다. “그래서 이 동네는 6·25전쟁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대유~.” 그렇게 한 달 이상을 돌아보니 신자들의 면면을 대략 알만했다. 어쩌면 법 없이도 살만한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이었고, 우리 현대사의 험난한 시절을 간난신고로 살아내온 억척스러운 사람들, 우리 역사의 은인들이자 공로자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늙어 말년에도 궁핍하고 외롭게 사는 것이 참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성당 건물은 대부분의 공소보다 조금 더 규모가 큰 강당 같았고, 사무실은 그럭저럭 흉내를 냈고, 회의실이랍시고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완전히 헛간 같았고, 나머지 하나도 거의 창고 수준이었다. 그래도 거기서 레지오 마리애 회합도 하고, 사목회도 진행했다. 사무실과 회의실 사이에 주방이란 것이 있는데 세상에 그걸 주방이라고 할 수 있는지 거기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결국 나중에 성당을 건축하면서 주방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고 좋은 시설을 갖추었다. 그런데 성당과 사제관 건물은 무허가인 데다가 50년 세월에 낡고 갈라져 새고, 실내 바닥이 마룻바닥이라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해서 성당 입구에는 신발장이 들어차 있고, 성당으로 들어서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쿵쿵 소리가 나며 시골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신자들 면면이 면면이다 보니, 신자 재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효과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신앙의 근본인 성경을 한 번은 전 신자가 읽어야(통독) 한다는 사명감에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하기로 결정하고, 전문가를 초빙해 특강을 듣고, 구역회에서도 강조 교육을 한 후에 조를 짜서 한 주에 한 번씩 모여 레지오 전후에 실시했다.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120여 명이 시작했고, 3년에 걸친 여정 끝에 최종적으로 수료증을 받은 사람이 60여 명이나 되었다. 무엇보다 흐뭇했던 것은, 어르신들이 눈도 침침한데 ‘매일 미사’ 책 대신(본당에서는 판매도, 구입도 못하게 했다) 두꺼운 구·신약 합본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전례 축일표를 보고 찾아서 볼 줄 알게 된 점이다. 그 모습이 그렇게도 흐뭇하고 보기 좋았다. 이해를 하는지 못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미사 전례 중에도 절대로 ‘매일 미사’를 올려놓지 못하게 하고 가장 큰 성경을 올려놓고 독서·복음 대목을 표시해 두었다. 교우들은 처음에는 불편해 하고 어색해 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 -계속- cpbc2024.08.22

주일학교 교리교사 양성 지침, 어떤 내용 담겼나 한국 주교단이 3월 24~26일 주교회의 2025년 춘계 정기총회에 참석, 한국 교회의 다양한 안건을 다뤘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한국 주교단. 3월 24~26일 열린 주교회의 2025년 춘계 정기총회에서는 ‘한국 천주교회 주일학교 교리교사 양성 지침’과 ‘방송 미사에 관한 지침’을 승인했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의 본격적 이행을 위해 교구별 시노드 팀과 주교회의 시노드 팀을 가동하기로 했다. 이밖에 제2회 아시아 선교 대회와 제54차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할 한국 대표단도 구성했다. ‘한국 천주교회 주일학교 교리교사 양성 지침’ 승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에 반포한 자의 교서 「오래된 직무」(Antiquum Ministerium)를 통해 평신도 교리교사를 교회의 직무로 제정했다. 교황은 「오래된 직무」에서 교리교사가 신앙의 진리를 전달하는 자격을 갖추는 데 있어 성경·신학·사목·교육학에 관한 지식을 갖추도록 양성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각 지역 교회는 교리교사가 직무를 수행하도록 ‘주교회의가 이 직무의 허용을 위한 양성 과정과 기준’(9항)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한국 교회는 「오래된 직무」가 강조하는 평신도 교리교사 직무를 한국 교회에 적용하기 위해 논의하고, 교구가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평신도 교리교사 양성 기준을 마련했다. 이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는 돈보스코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에 의뢰했고, 전국 주일학교 교리교사 양성 현황 파악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교리교사 현실 △교리교사 양성자의 역할 △교리교사 양성 방향이라는 세 가지 핵심 주제를 도출해낸 이 연구 결과는 지침을 마련하는 데 기초자료가 됐다. 교리교육위원회는 11월에 열리는 심포지엄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한국 천주교회 주일학교 교리교사 양성 지침’은 2부 5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교리교사 양성의 이론적 배경, 제2부는 교리교사 양성의 실천적 기준을 다뤘다. 이 지침은 한국 교회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복음화 여정에 동반하는 양성자들의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방송 미사에 관한 지침’ 승인 2020년 2월 27일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전국 본당의 공동체 미사가 중단됐고, cpbc 가톨릭평화방송을 비롯한 교구와 수도회 등은 온라인을 통해 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TV 매일미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영적 목마름을 해소해줬다. 다만 방송 미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 헌장」 11항)인 성체성사를 거행할 수 없어 한계와 제약이 따른다. 코로나 이후 ‘방송 미사’를 녹화·생중계하는 교구와 교회 기관이 늘어난 만큼, 미디어 종사자들과 전례 담당자들이 방송 미사를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기자간담회에서 “전례 시기를 뛰어 넘어 (방송 미사를) 녹화하는 것은 피해야 하며, 생중계로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면서 “(방송 미사를 통한) 미사 예물은 소속 기관의 교구 미사 예물 지침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교구별 시노드 팀과 주교회의 시노드 팀 구성 한국 주교단은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진행되는 시노드 이행 단계 동반과 평가 과정에 대해 논의하고, 한국 교회 내에 ‘교구별 시노드 팀’과 ‘주교회의 시노드 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교황청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사무총장 마리오 그레크 추기경은 15일 발표한 서한에서 각 지역 교회에 다양한 교회 구성원이 함께하는 ‘시노드 팀’을 구성해달라고 요청했다. ‘시노드 정신을 실천하는 선교하는 교회’로의 실천 과정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특별 회의는 2028년 10월 바티칸에서 열린다. 이와 함께 한국 교회는 지난 2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의 수용과 이행을 위한 전국 모임’을, 3월 28일에는 한국 교회가 시노드 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연구 세미나’를 개최했다. 제34회 한국 가톨릭 매스컴대상 대상에 선정된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한국 가톨릭 매스컴대상, ‘가톨릭 미디어 콘텐츠 대상’ 명칭 변경 한국 가톨릭 매스컴대상은 ‘가톨릭 미디어 콘텐츠 대상’으로 명칭을 변경하기로 했다. 다소 ‘언론’에 치우친 용어인 매스컴을 ‘미디어 콘텐츠’로 바꿈으로써 한국 사회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상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인터넷 및 모바일 콘텐츠를 다루는 ‘뉴미디어’와 연극과 뮤지컬, 공연을 아우르는 ‘공연예술’ 부문을 신설해 장르를 넓히고 문턱을 낮췄다. 이밖에 한국 주교단은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교구대회 조직위원회 명칭을 ‘2027 WYD OO 교구대회 조직위원회’로 통일하기로 확정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