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9월 13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9/05/ePu1693889178164.jpg)
[금주의 성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9월 13일)344/354?-407년, 안티오키아 출생 및 코마나 선종, 총대주교, 동방의 네 명의 위대한 교회학자 중 한 사람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출생 연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버지 세쿤두스와 어머니 안투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20세가 되던 해 사망했습니다. 이에 요한은 젊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요한은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이교도 수사학자인 리바니오로부터 수사학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회의를 느끼고 친구이자 후에 타르수스의 주교가 된 디오도루스와 함께 성경 연구와 수덕생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수도생활을 갈망했던 요한은 안티오키아 인근 광야에 가 나이 든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4년 동안 지냈습니다. 보다 적극적인 수덕의 삶을 꿈꾸며 동굴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그곳에서 2년간의 고행과 성경 독서를 했습니다. 지나친 고행으로 건강이 크게 망가지자, 그의 어머니는 눈물로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간청했습니다. 요한은 381년 멜리티우스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5년 뒤쯤 플라비아누스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 후 12년 동안 설교 사제로 활약하며 수많은 명강론을 남겼습니다. 그의 강론은 너무나 유명해져 요한은 ‘크리소스토모’, 다시 말해 ‘금구(金口)’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넥타리우스가 숨을 거두자 황제는 요한을 후임자로 임명하려 했습니다. 요한은 이를 거절했지만, 황제의 뜻이 워낙 완강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398년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로부터 주교품을 받았습니다. 수도의 총대주교가 된 요한은 궁중 생활과 밀착해 부패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화려한 생활을 질타했습니다. 신자들에게도 윤리적으로 쇄신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구호 사업을 시작하고 교회 개혁을 시도했으며, 에페수소에서 주교회의를 개최해 성직 매매를 한 6명의 주교를 면직시켰습니다. 그러자 이러한 개혁에 반발하는 이들도 생겼습니다. 요한의 가장 극렬한 적대자는 그에게 주교품을 준 테오필루스였습니다. 황실과도 처음엔 관계가 좋았지만, 요한이 황후의 지나친 사치와 탐욕을 지적하자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요한은 403년 적대자들의 근거 없는 모략으로 콘스탄티노플 근교인 퀘르치아에서 열린 주교회의에서 면직되었습니다. 아르카디우스 황제도 요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주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고는 그를 비티니아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만은 요한의 진심을 알아주었습니다. 신자들은 적극적으로 요한을 보호하고자 했고, 이에 놀란 에우독시아 황후는 그의 유배를 취소했습니다. 요한은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돌아왔습니다. 이후 404년 황제는 다시 요한을 오늘날의 알바니아로 유배를 보냈는데, 그를 만나려는 신자들의 순례 행렬이 계속되자 피티우스라는 험한 숲 속으로 유배지를 옮기게 했습니다. 요한은 새로운 유배지로 가던 중 407년 코마나에서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요한의 강론에는 바오로 사도의 서한들이 많이 인용됐습니다. 인노첸시오 1세 교황은 412년 요한의 명예를 회복시켰습니다. 요한의 유해는 1626년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 성가대 경당에 안치됐습니다. 1568년 비오 5세 교황은 요한을 교회학자로 선포하며 ‘동방의 네 명의 위대한 교회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드높였습니다. cpbc2023.09.01

기도하는 성모님, 인도하는 성모님, 자애로운 성모님[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25) 이콘으로 표현된 성모의 유형 (작품 1) 기도하는 성모님: 템페라, 61 x 32cm, 이콘 마오로 미술관, 안성, 한국. 가슴에 아기 예수 품고 두 손 올린 기도하는 성모님 오른손이 아기 예수 향한 인도하는 성모님 아기 예수와 얼굴 맞댄 자애로운 성모님 1. 기도하는 성모님(블라케르니오티사, 즈나메니아, 플라티테라, 오란스)(작품 1)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신앙에 기초한 그림으로는 이미 로마의 카타콤바(2세기)에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약자와 함께 망자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있습니다. 이는 유다교의 기도 형태로, 그리스도교가 시작되기 전부터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12,1-6)에는 ‘여인과 용’의 내용으로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나고⋯. 아이를 배고 있었는데⋯’라며, 그 여인을 확실하게 성모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성모님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따라서 가슴에 아기 예수를 품고 기도하는 성모님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이 성모상은 러시아 이콘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 유형은 성모님과 연관되어 4세기부터 점차 이콘 형태로 바뀌면서 기도하는 성모님으로, 곧 ‘오란스’ 유형입니다. 두 손을 올려 ‘기도하는 성모님’을 주제로 한 성모님은 반신상 또는 전신상으로 가슴 부분에 임마누엘(아기 예수님)을 메달 형태로 함께 그립니다. 이러한 기도 모습은 그리스도교 이전부터 있었고, 죽은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간구하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황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피에타스, pietas :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에서 차츰 성모님의 기도로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실 것을 간구하는 모습으로 연결됩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이사 7,14) 성모님의 가슴에 임마누엘 모습을 품음으로써 ‘계시의 성모님’이라는 뜻의 ‘즈나메니아’, 그분의 몸체는 ‘하늘보다 더 넓다’라는 의미로 ‘플라티테라’(platyter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비잔틴 제국의 수호 이콘인 전신상 이콘은 모신 곳의 수도원 이름과 연결되어 ‘블라케르니오티사’라 부릅니다. 이 유형으로 6세기부터 드물게 아기 예수 없는 성모상도 나타납니다. 이 성모상의 경우 양 옆에 세라핌(치천사)과 케루핌(지천사)을 넣기도 합니다. 그 상위의 천사는 성모님 가슴에 임마누엘이 계실 때만 그릴 수 있습니다. 치천사(熾天使)는 하느님께 불타는 사랑으로 붉은색, 지천사(智天使)는 지혜의 천사로 청색으로 표현합니다. 임마누엘께서는 코라(하느님께서 계신 곳) 안에 등장하시며 주변은 짙은 암청색의 색깔과 빛나는 금선으로 장식합니다. 짙은 암청색은 하느님의 현현(나타나심)을 의미합니다. 이 이콘은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신비와 삼위일체와 연결하고 신성과 인성을 갖추신 그리스도를 통해 성화되어가는 교회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작품 2) 인도자의 성모: 영혼을 구원하시는 성모, 94.5 x 80.3cm, 14세기, 스벤티 클리멘트 수도원, 오흐리드 2. 인도자의 성모(Hodigitria)(작품 2) ‘인도자의 성모님’ 이콘은 품위를 지닌 여왕의 모습으로, 무표정한 얼굴로 상체를 곧게 세워 앞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아들을 내보이시는 형태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표현되기보다는 진지하고 지혜로 빛나는 모습에 마치 어른처럼 옷을 갖추어 입고 있는 형태입니다. 이 이콘은 5세기 때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에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성전에 따르면 루카 복음서 저자가 복음 기록과 함께 이 형태의 그림을 그려 테오필로스에게 보냈다고 전합니다. 후에 그 그림은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황후 유도키아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눈 먼 이의 기적적인 치유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호데곤(Hodegon) 수도원에 보존되었다가 오스만 투르크 침공 때(1453년) 없어졌다고 전해집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이 이콘이 성모님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이콘 속 성모님의 옷은 당시 팔레스티나 여인의 복장이라고 합니다. 이 이콘은 러시아에서는 ‘스몰렌스카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모님의 오른손은 아기 예수님을 향해 있는데, 이는 하느님 빛을 보지 못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과 신앙인들이 갈 길은 임마누엘 그리스도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유형을 ‘길의 성모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또는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라는 성경 구절을 상기시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요한 6,68-69)이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계십니다. 이 형태에서 조금씩 변형된 이콘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폴란드의 검은 성모님으로 알려진 ‘쳉스트호바 성모님’이라든지, 성모님의 얼굴과 축복하는 아기 예수의 오른손만 보이는 러시아의 ‘카잔의 성모님’ 등입니다. 모든 성모님 이콘에는 위편에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ΜΡ, θΥ이 쓰여 있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의 ΙϹ, ΧϹ가 쓰여 있습니다. (작품 3) 자비의 성모: 33 x 26cm, 템페라, 이콘 마오로 미술관, 안성, 한국. 3. 자비의 성모(Eleusa, 자애로운, Umilenie)(작품 3) 마케도니아의 비잔틴 예술은 금욕주의적 엄숙함에서 벗어나 점차 내면적인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엄격한 정면보다는 고개를 살짝 돌린 형태라든지, 불안해 보이는 표정, 완만해진 곡선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모성애적인 감정, 사랑을 좀 더 내면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감성적 표현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자비의 성모 이콘은 다른 성모 이콘보다는 좀더 자애로운 모성을 표현함으로써 인간미가 넘쳐납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이미 소개했던 ‘블라디미르의 성모상’입니다. ‘자비의 성모님’ 유형은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이 서로 얼굴을 맞댄 모성이 더욱 강조된 형태입니다. 이 형태의 성모님은 그리스도에게 무언가 속삭이는 모습인데, 마치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알려 주시는 듯합니다. 이 형태는 6세기에 콥트 지방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하는데, 모성적 표현의 신상에서부터 그 형태가 발전되었다고 여깁니다. 자비의 성모상은 특히 슬라브 지역에서 사랑 받고 있으며, 여기에서 유래하여 변화된 가정 이콘으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정 이콘은 슬라브 지역 집안에 성화상들을 모셔두는 장소에 자리하는 작은 규모의 이콘들인데, 이 장소를 ‘아름다운 구석’이라고 합니다. 자비의 성모 이콘의 변이형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아기 예수님의 응석을 묘사한 키코스 수도원의 키코티사, 달콤한 입맞춤이라는 의미의 글리코필루사, 어머니의 젖을 먹인다는 뜻의 갈락토트로푸사 등이 있습니다. 모두 모성애를 강조한 이콘들입니다. 이 이콘들은 고통스럽고 고달픈 이 세상 삶에 친근하게 자비와 위안을 전합니다. 김형부 마오로cpbc2024.06.26

인생이 꼬여있다고? 꼬여 있으면 풀면 되지![월간 꿈 CUM] 삶의 한 가운데에서 (1) 매듭을 푸시는 성모(이탈리아 로마 성 십자가 성당) 세상을 탓하고 남을 탓하고 변명을 지껄이면서 살아왔다. 살면서 정말 되는 것 하나 없이, 뭐든 손대는 것마다 망치고 엉망진창이 되고…. 어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생기는 걸까? 정말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바닥인 줄 알았는데 그 밑에 지하세계가 있다. 세상 탓, 남 탓, 온갖 변명거리를 늘어놓는 것은 어른이 할 짓은 아니다. 부끄럽게도 나는 아이(유아)와 청소년처럼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느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성경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3-19) 예전부터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저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가 있겠구나 정도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구절이 내 눈과 마음에 새롭게 들어왔다. 베드로라는 이름을 빼고 내 이름을 넣어보았다. 그랬더니 답이 보였다. 강물은 강줄기를 따라 흐른다. 피는 혈관을 따라 흐른다. 흐름이 막히면 썩게 되고 죽게 된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옥죄고, 묶어버리고 무엇이든지 매고 살아왔던 것이다. 내 인생이 심각하게 꼬여있다고, 막막하고 답답하다고만 푸념하고 변명하고 탓하면서 살았다. 결국 내가 풀면 되는 것을! 무엇이든 내가 매면 매일 것이고, 내가 풀면 풀리는 것이다. 이 당연한 이치를 나는 책을 읽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책을 읽고 난 후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세상과 주변 환경에 감탄하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동하고 매 순간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내가 나를 깨울 때 다른 사람 역시 깨울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고 살아간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나로 인해 만들어진 무수히 많은 매듭을 풀면서 살고 있다. 매일매일 감탄과 감동과 감사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 결과이다. 인생이 꼬여있다고 생각된다면 스스로 하나씩 풀어가면 된다. 글 _ 이재훈 (마태오,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사무국장)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신앙 안에서 흥겨운 삶을 살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년 가까이 가톨릭사회복지 활동에 투신해 오고 있으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하루하루 매순간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cpbc2023.12.27

정치적 직분은 금하지만, 공동선 위한 참여는 가능[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12)성직자의 정치 참여 이념과 종교를 초월한 국회의원들이 포콜라레 정신으로 일치를 향한 정치인 모임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성직자가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될 수 있나요? 우리나라 헌법에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국가와 교회가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는 상호 관계성이 명시되어 있습니다(헌법 제20조 2항 참조).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특정 종교를 보호하거나 특권을 부여하거나 지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종교 단체들이 정당을 구성하여 활동하거나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것까지 법으로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국가의 안전 보장과 질서 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종교의 정치 활동을 일부 제한할 수 있으며, 종교 행위가 명백하게 공동선을 해치며 사회악을 일으키거나 국민의 기본 의무를 회피하는 경우에는 종교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개신교의 경우, 어떤 보편적인 규범이 없기 때문에 교단의 규정과 법규에 따라 목회자의 정치 활동을 일부 허용하기도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신자들의 정치 활동을 권장하면서도, 성직자의 경우에는 정치 참여가 가져올 혼란을 염려하여 교회법에서 이를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법 제285조 3항은 성직자가 국가 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공직을 맡는 것을 금지하고, 제287조 2항은 성직자가 정당이나 노동조합의 지도층에서 능동적으로 역할을 맡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사도좌 또는 교구장의 승인 아래 정치권력과 관계없이 복음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한시적 정치 자문 위원이나 정부의 특별한 역할을 맡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천주교 성직자의 정치 활동 금지는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떤 직분을 가지는 것을 금지한 것이지, 복음의 빛에 따라 공동선을 증진시키고자 성직자가 공적 발언을 하거나 공개적 행위를 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세상 속 교회로 살아가면서 교회 구성원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고 있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예언자적 소명을 다하라고 가르칩니다. 신부의 미사 강론과 목사의 예배 설교는 어떻게 다른가요? 신부의 미사 강론이나 목사의 예배 설교는 그리스도교 전례와 예배 행위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미사 때의 “강론은 설교의 여러 형식 중에서 탁월한 것으로 전례의 한 부분이며 사제나 부제에게 유보”(교회법 제767조 1항)된 것입니다. 강론은 주례 사제가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필요한 경우 공동 집전 사제나 부제에게 위임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신도에게는 결코 맡길 수 없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66항 참조). 강론이 탁월한 이유는, 그것이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구성된 미사에서 신자들을 거룩한 성찬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돕는 전례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강론은 말씀의 신비를 신자들에게 알기 쉽게 풀어주고, 그 말씀이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해석해주는 것이기에 성경 해석, 교리 이해, 설교의 성격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말씀 전례에서 3년 주기로 전례시기에 맞추어 미리 정해진 그날의 독서와 복음을 미리 읽고 묵상한 다음 신자들에게 올바르게 해설해 줄 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의 영적 유익에 도움이 되는 설교로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강론은 경우에 따라 생략되어도 신자들의 미사 참례의 본질적인 면을 침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개신교 예배에서 찬양과 함께 목사의 설교는 예배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개신교 목사는 예배에 참석한 이들이 하느님 말씀에 충만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신앙 체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성경 구절을 정하여 교인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며 격려하는 설교의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대부분 주일 예배에서 봉독되는 성경 구절을 공통적으로 정하지 않습니다. 개신교 일부 교단은 천주교처럼 전례력에 따른 독서와 복음이 정해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교단은 목사 자신의 체험과 시대의 흐름 가운데 임의적으로 선택한 설교 주제에 따라 성경 말씀을 선택하여 해석하고 신자들에게 가르치며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3.06.06

100년의 신앙 숨결 이어온 주문진본당18일 현지에서 설립 100주년 미사화재로 성당 전소, 공소로 지내기도한 세기 사제 10명, 수도자 14명 배출 주문진성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옛 본당 신자들(왼쪽)과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현 본당 신자들의 모습을 겹쳐 놓은 사진.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온 주문진성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문진본당 제공 춘천교구 주문진본당(주임 조철희 신부)이 18일 오전 10시 30분 강원 강릉 주문진읍 성당 현지에서 교구장 김주영 주교 주례로 설립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주문진본당은 1923년 11월 23일 설립됐다. 그러나 본당 설립 6년째이던 1929년 1월 화재로 성당이 전소하면서 금광리와 강릉 등지로 두 차례 이전을 겪고, 20여 년간 다시 공소로 지냈다. 1951년 3대 주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원 패트릭 제럴드 신부가 부임하며 교세를 회복하기 시작, 신자 수가 300여 명에 이르렀다. 1955년 1월 성전을 새로 건립하며 새 출발을 알렸고, 1958년에는 행정ㆍ인구공소를, 이듬해에는 삼산공소를 신축하며 본당의 기틀을 더욱 다졌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담당하던 주문진본당 사목은 1967년부터 30년간 작은형제회에 맡겨졌고, 부임한 사제들은 공동체 활성화와 신자 영성 생활을 위해 노력했다. 1997년 춘천교구가 사목권을 위임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 세기 동안 10명의 사제와 14명의 수도자를 배출했다. 군종교구장을 지낸 유수일 주교도 주문진본당 출신이다. 주문진본당은 올해 100주년을 맞아 쉬는 교우 찾기 운동을 비롯해 성경 필사, 야외 십자가의 길 조성, 100주년 기념 음악회 및 성가 발표회, 묵주 기도 10만 단 봉헌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설립 100주년 당일인 23일에는 조철희 주임 신부가 티모테오 2서 4장 7절에서 영감을 받아 작사한 100주년 기념곡 ‘달릴 길을 달려 믿음을 지켰습니다’도 선보인다. 조 신부는 “100년의 역사를 지켜온 본당의 오랜 신앙 이야기를 곡에 담아 그간 수많은 시련 속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모든 신앙인에게 위로와 선물을 전하고 싶었다”며 “하느님의 도우심과 은총 속에 맞이한 100주년이라는 잔치를 여는 기쁨을 모든 교우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밝혔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장현민2023.11.09

환경 문제와 관련한 교회의 가르침 (2)[월간 꿈 CUM] 꿈CUM 환경 (6) 전 우주가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집입니다. 그 우주의 아주 작은 귀퉁이 점 하나인 지구에도 하느님이 거하십니다. 그 작은 땅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 갑니다.(마태 28,20 참조) 인류가 우주 및 지구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온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과 함께 거닐었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광야에서, 산에서, 사막에서, 숲속에서 끊임없이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을 믿건, 그렇지 않건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인류는 폭풍우와 지진 속에서 하느님의 위대한 힘을 보았습니다. 달의 커짐과 작아짐, 그 기울기와 계절의 순환, 별의 흐름을 통해 하느님의 섭리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인류는 그런 하느님의 존재를 점차 잊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주와 자연에 깃든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 이 땅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환경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사적 우주의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환경을 존중하고 보호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자연을 통해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사랑의 신비를 묵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사도 17,26-27) 우주가 성사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주와 모든 피조물에 깃든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들에 핀 꽃 한 송이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환경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성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그래서 하느님을 느끼고 만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환경을 보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아침 찬란하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29-30) 글 _ 이용훈 주교 (마티아, 천주교 수원교구장) 1979년 3월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1988년 로마 라테라노 대학교 성 알폰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 주교로 서품되었다. 저서로는 「그리스도교와 자본주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있다. cpbc2023.12.27

배반의 심리학 : 베드로 심리분석[월간 꿈 CUM] 예수, 그 이후 (2)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 1245~1302)의 ‘성 베드로 청동상.’(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베드로 축일인 6월 29일에는 이 청동상에 금실로 수놓은 제의를 입힌다고 한다. 예수의 제자선발 면접 용지에는 ‘충성도’항목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마르 14,50) 예수가 체포될 때, 그리고 홀로 십자가에서 외롭게 죽어갈 때, 그곳에 제자들은 없었다. 심지어 한 젊은 제자는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옷을 벗고 알몸으로 달아나기도 했다.(마르 14,52 참조) 어떤 조직을 만들려면, 새로운 정신 운동을 일으키려면, 일반적으로 부자를 섭외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예수는 달랐다. 예수는 고통받는 이에게 다가갔고, 함께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더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고 말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예수가 어울린 사람들은 세리와 창녀(마태 21,31), 이방인(마태 18,17), 죄인(마르 2,16-17) 등 평판 나쁜 사람들 일색이다. 옥좌에 앉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 베드로(왼쪽)와 성 바오로(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 노르만 궁전 팔라티나 소성당 모자이크) 예수에게 있어서 재산의 많고 적음은 제자선발 기준이 아니었다. 예수는 오히려 가난한 어부들을 제자로 선발했다. 1세기 티베리아에서 일어난 생계형 폭동은 당시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37? ~ 100?)의 기록에 따르면 어부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어부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실제로 어부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아와 한집에 살아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마르 1,29 참조) 위경인 「나자렛 사람의 복음」에서도 제베대오(요한과 야고보의 아버지)가 가난한 어부로 묘사된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어야 했을 정도로 극도로 굶주렸다.(마르 2,23-28;마태 12,1-8;루카 6,1-5 참조) 가난했으니 제대로된 교육을 받았을리 없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는 몇몇 제자의 경우,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엿보이기도 한다. 바르톨로메오 디 지오반니 코라디니(필명 Fra Carnevale, 1445~1484)의 ‘성 베드로.’(St. Peter, 1455, 이탈 리아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루카 조르다노(Luca Giordano, 1634~1705)의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Croc ifissione di san Pietro,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실제로 성경을 보면 베드로 또한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예수가 제자 중 베드로를 콕 집어서 “너는 나를 따라라”라고 특별히 말했는데도, 베드로는 뒤따라 걸어오는 ‘예수께서 총애하시는 제자’가 신경 쓰였다. 그래서 예수께 이렇게 묻는다. “주님, 이 사람(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은요?” 그러자 짜증난 예수는 이런 요지로 말한다. “그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말고, 너나잘해라!”(요한 21,19-24 참조) 「열등감, 예수를 만나다」의 저자 한국교육상담연구원 원장 최원호 박사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드로는 자신이 나약하지 않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과격한 행동을 일삼거나 교만함을 보였는데, 그럴수록 더 많은 열등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자신이 얼마나 무능하고 교만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한 후, 마침내 성령을 통해 그 모든 열등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로마 베드로 대성당의 성 베드로 상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는 성 베드로.’(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 노르만 궁전 팔라티나 소성당 모자이크)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면 심리적 긴장이 발생한다. 이때 심리적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허영과 자만심이 그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허영심과 열등감을 감추려고 겸손이란 모습으로 포장한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자기중심적으로 유리하게 해석하고 이용하려 한다. 그 종착지는 ‘타인에 대한 배반’이다. 닭이 세 번 우는 동안 계속해서 이어진 베드로의 배반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성령 강림 후, 완전히 달라진다. 성령 안에서 배반에 대한 통회를 통해, 열등감을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평화 속에서 선포하는 복음은 강렬했다. 예수는 열등감 갑(甲) 베드로를 제자로 삼았고, 구원의 길로 인도했다. 예수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마태 9,12) 성령 강림 후, 마침내 열등감에서 해방된 베드로는 이제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한다. 하지만…. 글 _ 우광호 cpbc2023.10.16
![[서종빈 평화칼럼] 사이비 종교의 부활 신앙](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4/07/aMF1680832299166.jpg)
[서종빈 평화칼럼] 사이비 종교의 부활 신앙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보도국장) 사이비 종교 집단의 범죄 행각으로 사회가 혼탁해 지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았다. 사이비와 이단은 다르다. 이단이 기성 종교의 정통 교의에서 많이 벗어났다면 사이비 종교 집단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를 악용하는 사기꾼이며 범죄단체일 뿐이다.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게 사탕발림으로 다가가 이들의 영육과 일상을 모두 파괴하는 사탄일 뿐이다. 위장된 관심과 거짓된 사랑으로 회유하고 성경과 교리를 왜곡해 교주에 대한 맹신을 유도하며 이들을 세뇌한다. 탈퇴하면 저주를 퍼붓고 폭행과 테러를 일삼으며 두려움에 떨게 한다. 사이비 교주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이 신이라며 ‘메시아’를 자처하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 신앙을 왜곡하고 현혹해 성폭력과 강간, 금품 갈취를 통해 사적인 욕망을 채운다. 2000년 전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부활해 재림 예수의 사명을 자신에게 위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내놓는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실제로 어떻게 부활하셨고 재림을 어떻게 예고하셨을까? 성경을 들여다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사건은 성경의 네 복음서에 모두 기술돼 있다. 복음서마다 더해짐과 덜 해짐은 있지만, 부활의 시기와 과정, 말씀 등은 모두 같은 맥락으로 일치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숨을 거두셨으며 무덤에 묻히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오후 세 시쯤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며 숨을 거두셨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마르 15,34),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게 된 과정은 이렇다. 명망 있는 의회 의원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 예수님 시신의 인도를 청하였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감싸고 바위를 깎아 만든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신 뒤 무덤 입구를 큰 돌로 막았다. 이때 무덤 맞은쪽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 동틀 무렵에 이루어졌다. 숨을 거둔지 사흘째였다. 새벽녘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온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이를 확인했다. 예수님은 무덤에 혼자 남아있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이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났다. 또 그날 저녁에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하겠다”며 새로운 선교 사명을 부여했다.(마태 28,19-20)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이들을 강복한 뒤 하늘로 오르시고 구름이 감싸면서 예수님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동안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에게 한 말을 전하고 있다.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재림 예수를 자처하는 사이비 교주들은 비유와 상징으로 성경에 표현된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왜곡하고 각색해 신비주의를 조장한 뒤 자신을 신격화한다. 성경 말씀을 글자로만 이해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사이비 교주처럼 망상과 환각에 빠질 수 있다. 성경을 올바르게 읽고 듣고 해석해야 사이비에 빠지지 않는다. 십자가는 의로운 저항과 희생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늘 우리 안에 부활하신다. 범죄 집단인 사이비 종교를 척결하고 피해자 구제에 나서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부활 신앙을 우리의 삶 속에서 체현하는 것이다.서종빈2023.04.07

스위스 영성가 슈파이어, 기도의 세계를 열다 알브레히트 뒤러 작 ‘기도하는 손’. 기도의 세계 /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기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영적이고 신비스러운 삶이자, 그분의 현존하심에, 그분의 신적이고 삼위일체적인 사랑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2쪽) 「기도의 세계」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스위스 출신 영성가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1902~1967)가 쓴 수많은 글 가운데 기도를 주제로 한 내용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기도가 이루어지는지, 창조 세계는 어떤 기도를 바치는지, 그리스도나 마리아는 어떤 기도를 바치는지 기도의 원천을 살펴본다. 또 상황에 따라, 직분에 따라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흠숭·감사·청원 등 기도의 종류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책은 기도에 관해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지만 깊이도 있다. 삼위일체론, 창조론, 그리스도론, 마리아론 등 그리스도교 신앙의 여러 측면을 통해 기도를 바라보고 있다. 스위스의 첫 여성 의사이기도 한 슈파이어는 성인이 되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녀에게 세례를 준 신학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신부, 여러 평신도와 함께 1945년 재속 수도회를 설립해 이냐시오 영성을 따르면서 적극적인 공동체 활동을 펼쳤다. 그녀가 남긴 60여 권의 책은 대부분 성경 묵상을 기초로 하며, 그 신학적 통찰과 영성은 이냐시오 성인의 ‘받으소서(Suscipe)’ 기도를 기반으로 한다. “인간이 죄를 지은 뒤에 하느님께서 그에게 물으신다. ‘너 어디 있으냐?’(창세 3,9) 이때부터 비로소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가 시작되고, 이로써 오늘날 우리가 기도라고 부르는 것이 시작된다. (중략)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앞에 항상 서 있음,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면서 방해받지 않음, 우리 안의 온갖 장애물을 걷어 내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따르려는 우리의 굳은 의지(결의)일 것이다.”(27쪽) 슈파이어는 살면서 여러 신비 체험을 했는데, 지옥에 대한 환시, 천사들과 성인들에게 둘러싸인 성모 마리아에 대한 환시, 여러 성인·성녀들과 대화를 나눈 신비 등이 있다. 그녀가 의학을 공부했는데도 이른바 신비가가 된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영적인 동반자였던 발타사르 신부는 “지금까지 슈파이어가 집필한 대부분의 작품은 성경을 깊이 묵상한 내용과 하느님의 말씀을 늘 새로운 관점에서 듣고 풀어내려 한 내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슈파이어는 자신의 신비 체험을 발타사르 신부에게만 알렸고, 그는 그녀의 신비 체험과 묵상을 기록했다. 지병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지냈고, 말년에는 거의 실명한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던 만큼 대부분의 저서 역시 발타사르 신부와 공동으로 작업했으며, 그녀의 책은 지금까지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하느님과 나누는 모든 대화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싸여 있다. 이는 사랑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말씀하신다면, 그분의 말씀은 사랑의 말씀이다. 기도하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응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중략) 그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이 전부이므로, 그는 이 사랑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541쪽)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8.16
![[금주의 성인] 성 티모테오(1월 26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1/16/QSo1705391211269.jpg)
[금주의 성인] 성 티모테오(1월 26일)?~97년 리스트라 출생, 에페소 선종. 순교자, 바오로의 제자 티모테오 성인. 사진=굿뉴스 사도행전 16장 1-4절에 따르면 티모테오 성인은 소아시아 지방 리카오니아의 리스트라에서 그리스인 아버지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인 어머니 에우니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스어로 ‘공경하다’, ‘영광스럽게 하다’라는 뜻의 ‘티마오’와 하느님을 뜻하는 ‘테오스’가 합쳐진 티모테오의 의미는 ‘하느님을 공경한다’ 또는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한다’입니다. 이름에 걸맞게 티모테오는 진실한 믿음을 지닌 젊은이로 성장했습니다. 성 바오로 사도는 그러한 믿음이 티모테오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이어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2티모 1,5) 티모테오는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고, 아마도 바오로 사도의 제1차 선교 여행 중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제2차 선교 여행을 하다 리스트라에 당도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와 동행하기를 바랐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풀고 함께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 여러 곳에서 ‘우리의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하느님의 협력자’(1테살 3,2), ‘나의 협력자 티모테오’(로마 16,21),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성실한 아들’(1코린 4,17)이라 불릴 만큼 바오로 사도의 제자를 넘어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협력자 그리고 아들 같은 존재였습니다.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로 건너가 베로이아에서 선교할 때 함께 했고, 유다인들의 반대로 바오로 사도가 먼저 아테네로 갔을 때 실라스 성인과 함께 아테네로 찾아갔습니다.(사도 17,10-15) 바오로 사도와 함께 코린토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사도 18,5; 2코린 1,19), 그 지역 공동체에 문제가 생기자 바오로 사도의 지시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야 할 가르침을 상기시켜 주기도 했습니다.(1코린 4,17) 그는 또한 에파프로디토스 성인과 함께 필리피 공동체를 방문했고(필리 2,19-22), 테살로니카 공동체에 힘을 북돋아 주고자 파견되었으며(1테살 3,2), 에페소에서 복음을 전하고(사도 19,22) 감옥에 갇힌 바오로 사도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필레 1장; 콜로 1,1)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에도 동행했습니다.(사도 20,4) 신약 성경에서 티모테오의 이후 행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교회 전승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요한 성인은 설교집에서 티모테오가 에페소의 초대 주교였으며 성모 마리아의 영면을 목격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교회 역사가인 에우세비오는 「교회사」에서 티모테오가 마르쿠스 네르바 황제 치하인 97년에 순교했고, 35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의 유해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겨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티모테오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공경하는 에페소의 이교 축제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이 우상에 불과함을 지적하다 광분한 군중에게 끌려가 잔인하게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목 서간으로 분류되는 두 통의 편지를 티모테오에게 보냈는데, 그 안에서 거짓 교사들과 싸우고 복음을 위해 투쟁할 것을 권유하며 그리스도교 사목자의 직무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습니다. cpbc2024.01.10

천사가 말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27)성사실(聖史實) 이콘 해설: 이콘으로 보는 천사의 알림(성모영보) (작품1) 천사의 알림: 94.5 x 80.3cm, 템페라, 14세기, 스코플테 박물관, 성 클레멘스, 오흐리드 이콘에서 마리아는 손을 들고 머뭇거리는 듯 약간 두려워하는 자세 얼굴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표정 하느님께서 성모를 택하신 것은 그분만의 고요함과 주님께서 머무실만한 귀한 작은 빈터였기 때문 1. 이콘 : 영원을 향한 창문 사람은 모든 피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면서 사람을 창조하심으로써 우리는 그분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에덴에서 내쳐진 후 우리는 차츰 하느님의 빛을 잃어버리고, 육신은 썩을 수밖에 없는 원죄라는 씨앗을 스스로 지님으로써 “이제는 먼지로 돌아가야 합니다”(창세 3,19 참조). 그러나 우리는 지상에서 우리의 영(靈)에 성스러움을 부어 넣어, 그분의 성스러움과 고요함에 도달한다면 그분과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육신도 이 세상에서 다시금 하느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에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콘은 ‘그림’, ‘닮다’, ‘원형을 본떠 만든 모상’이라는 본래의 뜻처럼 원형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조심스러운 시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사람의 모습으로 한없이 낮추어 오신 하느님, ‘단 하나의 얼굴’이 있기에 그분을 통해 영원한 하느님과 만나려 합니다. 이때 이콘은 하나의 창(窓) 역할을 합니다. 그분과의 만남의 본질은 이콘이라는 눈으로 보는 물질 자체가 아니라, 물질 안에 숨어 있는 그분의 느낌이자 숨결이며 대화입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많은 것을 보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선 그림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성화에 그려진 그분과 눈을 마주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오랫동안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눈이 건강하다면, 우리의 몸 전체는 밝아질 것이며(마태 6,22-23 참조) 언젠가는 그분의 숨결이 느껴지고 마음으로 소통하는 대화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2. 기원(起源)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의 상황은 극적이었습니다. 모든 권한은 로마가 가지고 흔들던 시대였고, 왕권은 유다인이 아닌 모압인 헤로데가 쥐고 있어 자존심이라고는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구세주를 절실하게 기다리던 시기였는데, 어느 한 곳에서는 조용히 하느님의 섭리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콘 속 급히 다가오는 가브리엘 천사 모습에서 우리는 천사가 가져오는 소식이 얼마나 중요하고 기쁜 것인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은 예언대로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가 드디어 오신다는 소식과 그분은 하느님이시며 사람으로 낮추어 오신다는 두 가지 면(이사 7,14 참조)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마리아는 동정이시며, 구세주로 오실 분을 잉태하셨다는 것을 믿을 교리로 선포합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라는 구절을 신앙고백에 추가하며 천사의 인사를 반복하여 기도함으로써 그 기쁨을 노래합니다. 3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첫 달의 의미가 있기에 밤과 낮이 같은 날로부터 시작해 사람을 창조하신 엿새의 날짜를 계산해서 3월 25일을 ‘천사의 알림’ 축일로 정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성탄 축제 때 함께 지내다가 ‘천사의 알림’ 또는 ‘성모님께 영광스러운 기쁜 소식(성모영보)’으로 교황 세르기우스 1세(687~701) 때 공식적으로 축일로 반포하게 되었습니다. 성모 설지전(St. Maria Maggiore) 성당에서는 그 이전부터 시가(市街)를 행진함으로써 이 축제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3. 구성과 상황 하느님의 작은 빈터 초등학교 4학년 때 반짝이는 보석 몇 개가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 귀한 것을 작은 철제 약 상자에 넣은 뒤 어디에다 묻을까, 여기저기 찾아보았습니다. 이곳저곳 살핀 끝에 그 보물상자를 뒤뜰 땅속에 감췄습니다. 물론 그 보석은 브로치에서 떨어져 나온 유리 제품이었지만 나에게는 귀중한 보물이었습니다. 나는 그 보물 외에 나의 눈에 귀해 보이는 예쁜 것들과 구슬치기하던 알록달록한 유리구슬들도 함께 묻었습니다. 그리고 보물지도를 그려놓고, 잠자기 전 이리저리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나만이 알 고 있는 보물이 묻힌 작은 땅, 내게 그곳은 작지만 귀하디귀한 빈터였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가장 귀하고 최고로 아름다운 보석을 감추어 둘 작지만 귀한 빈터를 마련해놓지 않으셨을까요? 천사의 알림을 간략하게 줄이면 이러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중략)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중략)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루카 1,26-38). 천사와 성모의 대화가 성경 내용처럼 1~2분 정도였을까요? 아마도 생각하는 시간, 천사의 대답하는 시간 등 좀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를 택하신 것은 그분만의 고요함과 주님께서 머무르실 만한 귀한 작은 빈터였기 때문입니다. 이콘에서는 그 상황을 좀 더 상세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이콘에서 마리아는 손을 들고 약간은 뒤로 기울어진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약간은 머뭇거리는 듯한, 어느 정도 두려워하는 자세이고 얼굴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표정입니다.(루카 1,29 참조)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왜 이 소식이 이미 약혼한 신부에게 전해졌을까? 그리고 동정녀는 어째서 그 인사에 불안해하였을까? 마태오(1,18-25 참조) 복음대로라면 마리아는 부정한 여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려 했으나 결국은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요셉의 꿈속에서 천사의 계시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마침 약혼 상태이며, 결혼했기에 아무 일 없이 동정녀로 해산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는 탄생과 동시에 이집트로 피신시킨 것과 더불어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하느님 섭리와 박자가 잘 들어맞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계속> 김형부 마오로cpbc2024.07.10

신앙의 공동 유산 인정하는 태도가 일치 운동 대원칙[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41) 일치 운동을 하면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나요계시 진리의 해석에 차이 있음을 명심하고 대화할 땐 가톨릭 교리 명확하게 제시해야 2020년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회가 1월 21일 광주대교구 쌍암동성당에서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 성직자와 신자 2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한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하나인 교회가 필수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치를 위한 노력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다음의 몇 가지 일치 운동의 가톨릭적 원칙은 지켜져야 합니다. 첫째, 「교회 헌장」은 가톨릭교회와 유대 관계가 끊긴 갈라진 형제들 안에서도 신앙의 공동 유산이 발견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태도가 일치 운동의 대원칙이라고 강조합니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녔지만 완전한 신앙을 고백하지 않거나 베드로의 후계자 아래에서 친교의 일치를 보존하지 못하는 저 사람들과도 교회는 자신이 여러 가지 이유로 결합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영예롭게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 삼고, 진실한 종교적 열정을 보여주며,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그리스도를 사랑으로 믿고, 세례의 인호를 받아 그리스도와 결합되고, 다른 성사들까지도 자기 교회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인정하고 받는다. 그들 가운데에 많은 이는 주교직도 향유하고 성찬례를 거행하며 천주의 동정 성모님에 대한 신심도 존중한다. 기도와 다른 영적 은혜의 친교가 이루어지고, 성령 안의 어떤 결합까지도 진실하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은혜와 은총으로 그들 안에서도 거룩하게 하시는 당신의 능력을 발휘하시며, 그들 가운데에서 어떤 이들은 피를 흘리기까지 그 힘을 북돋워 주셨기 때문이다.”(15항) 둘째, 갈라진 형제들과의 대화에서 가톨릭 신앙의 표현 양식과 방법이 형제들과 나누는 대화를 결코 방해하여서는 안 되지만 가톨릭의 모든 교리를 명확하게 온전히 제시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리의 순수성을 손상시키며 그 본래의 확실한 뜻을 흐려 버리는 저 거짓 평화주의처럼 일치 운동과 다른 것도 결코 없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가톨릭 신앙은 갈라진 형제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과 방법으로 더 깊이 더욱 바르게 설명되어야 한다.”(일치 교령 11항) 셋째, 가톨릭교회와 화해하려는 열망 가운데 일치의 정신과 상호 존중을 기대하면서도 오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특성의 차이뿐만 아니라, 계시 진리의 해석에 중대한 차이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신학자들 간의 대화에서 진리에 대한 사랑과 애덕, 겸손을 지니면서도, 서로의 교리를 비교할 때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와 관련된 가톨릭 교리의 서열 또는 위계가 있음을 명심하고(veritas hierarchia), 올바른 교리의 이해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진리가 더욱 풍요롭게 제시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갈라진 형제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적절한 표현과 방법을 찾는 노력도 일치 운동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4.01.09

수도생활의 기원 : 독신, 그 위대한 여정[월간 꿈 CUM] 예수, 그 이후 (7)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의 판잘리크 계곡에 있는 ‘판잘리크 수도원 석굴 성당.’(pancarlik kilise church) 이 수도원 성당은 성 테오도로에게 봉헌됐다. 네 개의 복음서가 세상에 모습을 모두 드러낼 즈음(2세기), 그리스도교는 박해의 시련 속에서도 서서히 몸집을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 일반 신자들과 달리 독특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독특한 삶에 대한 내용이 서기 100년 후반기에 작성된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Epistle to Diognetus : 익명의 저자가 귀족 가문 출신 디오그네투스에게 쓴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육체를 위해서만 살지 않는다. 그들은 이 땅 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들은 법률에 순종하면서도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는 그 법률을 넘어서려고 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박해 받는다. 그들은 가난하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모든 것이 풍족하다.” 육체를 위해서 살지 않는 삶, 모든 사람을 사랑하나, 모든 사람으로부터 박해받는 삶,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모든 것이 풍족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 우리가 오늘날 ‘수도자’라 부르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교회에 왜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생겨났을까.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가정도 꾸리지 않고 독신의 삶을 살아가게 했을까. 여기서 먼저, 용어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라틴어에 ‘비타 콘세크라타’(Vita Consecrata)라는 말이 있다. 이는 오늘날 번역에서 ‘봉헌 생활’과 ‘축성 생활’로 혼용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글에서 그냥 ‘수도 생활’이라고 적고자 한다. 축성 생활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의 삶이라는 ‘수동적 의미’가 강하고, 봉헌 생활은 수도자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능동적 의미’가 짙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는 ‘수도자’라는 표현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그들의 생활을 ‘수도자들의 생활’이라고 단순화시키는 것도 크게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그리스도교 수도 생활의 기본 요소인 독신 생활의 기원은 참 오래됐다. 이와 관련해 신뢰할 만한 내용이 엘리자베스 애보트(Abbott Elizabeth)의 「독신의 탄생」(이희재 옮김, 해냄, 2006)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본다. “고대 그리스의 여제관은 대개 처녀였다. 혼인한 적이 있는 여자도 경우에 따라서는 여제관이 될 수 있었지만, 그들도 예외없이 여제관이 된 후에는 금욕과 독신을 지켜야 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금욕이라는 이상적 가치가 존중을 받았으며, 피타고라스와 플라톤 같은 철학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신(神)을 대리하는 직책을 맡은 이들은 독신을 지켜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류의 머릿속 한 귀퉁이에는 독신이 고결하고 숭고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선택받은 자’ ‘고결한 자’는 욕망을 거슬러 더 높은 차원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인도에서도 독신과 금욕을 기반으로 하는 수도승 생활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불교의 수도승 생활이 여기서 파생되어 나왔다. 헬레니즘(B.C. 323~146년 사이의 고대 세계에서 그리스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한 시대)적 사고에서도 ‘아스케시스’(ασκησιϛ, 작은 욕망을 가지는 연습 및 훈련), ‘아나코레인’(αναχωρειν, 금욕, 인간적 욕구를 끊는 것), ‘에레미아’(ερημια, 은둔) 등은 특별히 가치 있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금욕과 독신에 높은 가치를 두는 이러한 생각은 로마 시대로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로마 제국의 동쪽 끝 이스라엘의 유대교에서도 독신과 금욕을 최전선에 세운 종파가 급부상했다. 우리는 그 종교적 공동체를 ‘에세네파’라고 부른다.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n, B.C. 20?~A.D. 45?)가 남긴 「현자」라는 책에 그들의 삶이 자세히 나타나 있다. 스스로를 모세의 형 아론의 후손이라고 지칭했던 이들은 ‘난 너희와 달라!’라는 자긍심이 대단했다. 자! 여기서 ‘난 너희와 달라’라는 말이 나왔다. 다르기 위해선 스스로 뭔가 특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수준 낮은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겠는가. 에세네파는 하느님을 더 충실히 따르기 위해 사람들의 거주처를 떠나 사막으로 갔다. 스스로를 세속과 분리시킨 것이다. 그들은 사막에서 동굴을 파고 살면서 금욕을 지켰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선택받았다고 자부한 그들은 노예도 부리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노동해야 했고, 그 노동의 결과는 공평히 나눠 가졌다. 식량이 부족했던 탓에, 식사는 하루에 두 번 소박하게 했다. 이들은 단 한 벌의 옷만 입었다. 이들 에세네파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낯익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튀르키예 중부 카파도키아 파샤바(Pasabag)의 성 시몬 수도원 성당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수도 생활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속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점, 목욕할 때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조차 불편하게 여겼을 정도로 금욕을 강조했다는 점, 음식을 소박하게 먹었다는 점, 공동 노동을 바탕으로 공동 경제 생활을 했다는 점 등은 모두 가톨릭 수도원 공동체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톨릭 수도 생활이 에세네파에서 직선적으로 바통을 이어받은 하강 뿌리 역사 구조의 산물인 것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수많은 뿌리가 수렴되어 하나 의 줄기로 올라가는 상승 열매 구조다. 즉 가톨릭 수도 생활은 에세네파 등 다양한 구약 전통에, 세례자 요한의 광야 생활(마태 3,1; 11,7-10), 예수 그리스도의 40일간의 광야 생활(마태 4,1-11) 등에서 복합적으로 영양분을 흡수하고 자라난 나무다. 이러한 다양한 전통을 바탕으로 초기 교회에 이미 자연 발생적으로 금욕자(Ascetae)와 동정녀들(Virgines)이 출현했으며, 박해가 한창이었던 3세기 말에 벌써 그 금욕자와 동정녀들을 위한 조직적 형태의 수도 생활이 나타났다.(신약성경과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에 나타난 독신 및 금욕 생활에 대해서는 마태 19,12 ; 1코린 7,25-34 ; 사도 21,9 ; 1티모 5,9-16 참조) 이러한 수도 생활에 대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는 디다케(Didache), 로마의 클레멘스가 코린토 공동체에 쓴 편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등이 있다. 이제 우리는 알았다. 수도 생활이 당시 사회 문화와 다양한 역사적 전통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수도 생활 태동의 모든 것이 곧바로 설명되지 않는다. 왜 탄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가능하지만,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물이 있다고 해서 생명체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물은 생명체에 있어서 필수 조건이지만, 충분 요건은 아니다. 수도 생활을 태동하게 한 동력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 맨 앞줄에 성 안토니오가 있다.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 cpbc2024.07.08

남북 평화의 열쇠, ‘샬롬의 영성’에서 찾자평화학 세계적 석학 주드 페르난도 교수, 국내 전문가·청년들과 한반도 평화 모색 평화학 분야에 널리 알려진 주드 페르난도 교수가 16일 경기도 파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관련 전문가, 청년과 함께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한반도에도 희망이 “스리랑카에선 희망을 잃었지만, 아일랜드에서 평화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희망은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평화학 분야 세계적 석학인 주드 페르난도(Jude Lal Fernando) 교수가 16일 경기도 파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국내 전문가와 청년들을 만나 한반도 평화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교회의 역할을 모색했다. 주드 페르난도 교수는 스리랑카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다수족 싱할라 출신이다. 내전 당시 소수족인 타밀과의 화해 운동 및 반전 평화 활동에 참여해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현재 망명자 신분으로 아일랜드 트리니티 대학에서 평화학을 가르치고 있다. 스리랑카 내전은 1983~2009년 스리랑카 싱할라족와 타밀족 반군인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 사이 벌어진 내전으로, 스리랑카 정부군이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의 지배 지역을 제압하면서 26년 내전이 종결됐다. 내전이 격화된 2007~2009년 7만여 명이 사망했고, 타밀족은 300만 명이 격리·수용돼 폭력, 살인, 강간 등을 겪었다고 알려졌다. 페르난도 교수는 “현재 스리랑카는 완전히 군사화됐고, 평화 활동도 무너진 상태”라며 군사화에 의한 안보를 비난했다. 그는 이를 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금송아지에 비유했다. “모세가 자리를 비웠을 때,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했습니다. 군사화와 안보는 오늘날의 금송아지입니다. 금송아지를 통해 숭배하려는 신은 세계화된 폭력의 독점 체제입니다. 이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절대 권력이고, 이를 유지하는 방법이 바로 전쟁이죠. 군사화, 안보화가 추구하는 이념의 핵심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북한 사람들이 만든 모자이크를 보고 참 좋았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라도 이처럼 내부의 역동성이 있는 것입니다.” 긴 호흡과 큰 그림으로 페르난도 교수는 싱할라와 타밀은 남한과 북한처럼 굉장히 깊은 분열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경색 국면으로 돌아선 남북 관계에 대해선 긴 호흡을 갖고 평화의 여정을 걸어갈 것을 제안했다. 그는 “평화는 하나의 합의 또는 행동으로 결정되는 것 같지 않다”며 “더 큰 그림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큰 그림은 내면에서 나오는 확신, 신앙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확실성이다. 페르난도 교수는 희망을 만들기 위해 다른 공동체와 연결성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부가 스리랑카 내전에서 승리했을 때 희망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제가 활동했던 모든 마을이 폭격당했죠.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아일랜드로 망명해 국제 법정을 조직했습니다. 학살 현장의 증인을 모아서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조직한 것입니다. 이는 정치적 행위인 동시에 영적인 활동이었고 화해의 활동이기도 했습니다.” 평화학 분야에 널리 알려진 주드 페르난도 교수가 16일 경기도 파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국내 전문가, 청년과 함께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고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평화 이어 그는 “제국주의적 평화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쯤은 괜찮은 것으로 여긴다”며 “제국주의적 평화의 관점을 지향한다는 것은 곧 북한과 타밀, 팔레스타인과 예멘이 소멸해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성경의 평화는 완전히 다르다”며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을 잠시 두고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에 가장 가까운 성경의 언어는 ‘샬롬’이라 생각합니다. 전쟁을 준비하고 도발하는 정세 속에서 샬롬에 기초한 평화신학은 큰 시사점을 줄 것입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3.05.22
![[금주의 성인] 성 비오 10세 교황 (8월 21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16/5Zu1692152570800.jpg)
[금주의 성인] 성 비오 10세 교황 (8월 21일)교황, 교회법 개정, 성체 신심, 1835~1914 제257대 성 비오 10세 교황은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본당 사목 경험이 가장 풍부한 교황이었습니다. 1835년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 지방에서 태어난 성인은 1850년 파도바의 신학교에 입학, 1858년 사제품을 받고 17년 동안 본당 사제로 활동했습니다. 본래 이름은 주세페 사르토. 파도바교구의 작은 도시 톰볼로본당에서 사목을 시작한 그는 본당 교우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야학을 열어 글을 가르칠 정도로 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함께했습니다. 어린이들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그의 주머니엔 항상 사탕이 가득했고, 거리의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훗날 교황이 된 뒤에도 항상 그의 곁엔 어린이들이 있었고, 교황 선출 두 달 만에 바티칸 정원에서 로마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인의 집안은 어릴 때부터 가난했지만, 그의 부모는 늘 교육을 우선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매일 6㎞가 넘는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고, 이후 장학금을 받으며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특히 고전학과 철학, 신학 분야를 월등히 잘했다고 합니다. 1884년 주교품을 받고 만토바의 교구장 주교가 됐으며, 1893년 추기경에 서임됐습니다. 이후 베네치아 총대주교로 10년 동안 헌신적으로 사목했습니다. 그리고 1903년 8월 제257대 교황으로 사도좌에 착좌했습니다. 비오 10세 교황은 보수적인 신학과 전례, 교회법상의 개혁을 단행한 교황으로 유명합니다. 성인은 교회법 개정에 착수하고, 불가타 성경개역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시편과 성무일도서 개정을 단행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체계적인 교회법전 편찬 작업도 비오 10세 교황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매일 영성체를 할 것을 강조하면서 첫 영성체 연령을 낮췄으며, 병자 영성체를 완화해주는 교령을 발표하는 등 성체 신심의 중요성을 보여줬습니다. 성인은 근대주의 단죄에도 나섰습니다. 당시 근대주의와 상대주의는 가톨릭교회에 큰 위협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교회 교리 전통의 변화를 주장했던 근대주의와 상대주의 사상은 교회 가르침에 깊이 침투했고, 그는 1907년 교회 본질과 계시, 성경 주해, 성사 등과 관련한 근대주의 사상을 공식적으로 규탄했습니다. 비오 10세 교황은 1911년 조선대목구를 서울과 대구대목구로 분리시킨 교황입니다. 조선의 신자 수가 급격히 늘자 대목구 분리를 건의한 뮈텔 주교의 청에 따라 이를 들어준 것입니다. 그는 청빈한 교황이었습니다. 전임 교황이 사용하던 낡은 옷을 수선해 입었고, 보석이 박힌 십자가 목걸이도 나중에 알고 보니 모조 보석이었습니다. 교황이 가짜 보석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선종하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늘 “저는 가난하게 태어났으며, 가난하게 살았고, 가난하게 죽고 싶습니다”라고 했던 성인은 평생 가난한 이들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1914년 8월 20일 선종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수많은 이들이 전쟁 속에서 생명을 잃는 모습을 몹시 개탄하던 터였습니다. 생전 이미 ‘성인 교황’으로 불렸던 그는 1951년 복자품에 올랐으며, 1954년 5월 29일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cpbc2023.08.10

무한한 주님 사랑의 표징 ‘예수 성심’을 알고 싶다면 6월 예수 성심 성월에 읽을 만한 책 예수성심상. 교부들은 예수의 마음에서 세상을 살리는 구원 생수가 흘러나오기에 성령과 예수 성심을 모든 은총의 근원이라 여겼다.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이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인간적·신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예수 성심을 묵상하고, 자신의 마음을 예수 성심께 일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을 골라봤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예수성심성월 양자형 신부 유은희 수녀 옮김 순교의맥 “교회는 예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기 위하여 예수 성심 대축일이 있는 6월을 예수 성심 성월로 정하여, 축일을 성대히 기념하고 성시간(聖時間)과 기도회 등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 행사를 통하여 성심의 신비를 묵상한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조) 예수 성심 성월 신심 묵상서 「예수성심성월」이 출간됐다. 원서는 홍콩대목구 소속 양자형(1837~1920) 신부가 1875년 홍콩에서 펴냈다. 예수 성심 성월 기도문과 매일의 묵상 자료, 비오 7세 및 비오 9세 교황이 반포한 교서 등이 수록되어 있다. 뒷부분의 ‘경례경문’에는 예수 성심 축일에 관계된 예수 성심 기도문, 예수 성심 성월에 신자로서 지켜야 할 9가지 의무 등이 적혀 있다. 책에 따르면 예수 성심 축일을 처음으로 지낸 것은 1672년 10월 20일로, 프랑스에서 많은 주교의 인준을 받아 시작됐다. 예수 성심 공경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세계적으로 보급된 계기는 ‘성모 방문 수녀회’ 소속 알라코크 수녀에게 내린 예수 성심의 메시지들이었다. 이 책이 언제 우리나라에 전해졌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1888년 조선 제7대 대목구장인 블랑 주교의 감준 아래 한글로 번역된 것으로 보아, 그 전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책은 한국교회사연구소 월간지 「교회와 역사」에 2011~2013년까지 연재한 내용을 보완해 엮은 것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 위원인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유은희 수녀가 번역했다. 역자가 내용에 따라 단락을 나누고, 원문과 우리글을 함께 실어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교부들은 예수의 마음에서 세상을 살리는 구원의 생수가 흘러내리므로, 성령과 함께 예수 성심을 초자연적 은총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성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에서, 물은 죄로 죽은 인간을 깨끗이 씻고 새 생명을 주는 세례의 물로, 피는 새로 태어난 백성을 먹여 기르는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성사의 풍요로움으로 보았다. 또한 아담의 옆구리에서 이브가 탄생하였듯이,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새 이브인 교회가 탄생했다는 사상이 생겼다.”(24쪽) 자유와 충실 베르하르트 헤링 신부 지음 소병욱 신부 옮김 바오로딸“하느님의 선물인 자유가 단순히 사람에게 속해 있는 어떤 것이 아닌 것처럼, 진리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임과 동시에 우리가 달성해야 할 어렵고도 지속적인 과업이다. 전체 그리스도교 윤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행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향해 충만하게 성장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24쪽) 「자유와 충실」은 구속주회 소속 베른하르트 헤링(1912~1998) 신부가 전3권으로 펴낸 사제와 신자들을 위한 윤리신학서다. 제3권이 1996년에 먼저 번역·출간되었고, 2021년 제1권에 이어 이번에 제2권이 나왔다. 저자는 책마다 대주제를 담고 있는 성경 말씀을 부제로 삼았는데, 제2권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이다. 전체 800여 쪽을 관통하는 제2권의 주제는 ‘진리’다. 그리스도는 진리를 통해 인간을 자유롭게 하셨고, 그 진리와 자유가 지닌 연관성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것이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 저자는 우선 해방의 진리 자체를 분석한 후 진리와 우리 관계의 정점인 믿음, 믿음의 내적 힘인 희망, 해방의 진리와 함께하는 사랑 등을 고찰한다. 이와 함께 진리의 통교와 선포, 전형적인 반진리인 무신론 등을 살펴본다. 이러한 주제들을 신학의 범주를 넘어 오늘의 사회학, 행동과학, 철학, 심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리한다. 총 3권의 원서 번역을 마친 소병욱(대구대교구 성사전담) 신부는 “주제마다 가정 먼저 펼쳐지는 헤링의 그리스도론은 학문의 차원을 넘어 그리스도 찬미가의 대 서사시로 느껴질 만큼 깊이 있고 풍부하며 감동적”이라며 “머지않아 하늘나라에서 뵙게 될 헤링 신부님께 ‘늦었지만 숙제를 다 하고 왔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이라고 전했다. 성령의 리듬 따라 춤추기 – 식별의 기술 데이비드 론스데일 신부 정일 신부 옮김 위즈앤비즈“나와 타인의 역사, 경험, 은총, 갈망, 감정, 이해, 생각이나 영감 등은 성령이 현존하는 장소요,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고’(에페 4,12 참조)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기 위한 일터라는 것이다. 성직자든 수도자든 평신도든 관계없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깊이 숙고하고 그 반성을 근거로 행동한다면, 성령께서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닮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식별의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22쪽) 「성령의 리듬 따라 춤추기」는 ‘식별의 기술’에 관한 책이다. ‘식별’의 사전적 의미는 ‘분별하여 알아봄’이다. 일상에서나 특별히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올바른 선택을 위한 단초가 될 것이다. 따라서 식별이야말로 교회 안에 꼭 필요한 재능이라 할 수 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제도적인 한 단체에 한 멤버로서 입교한다는 것보다 더 깊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왔기 때문이다. 저자 데이비드 론스데일(영국 예수회) 신부는 “일상생활에서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게 될 때, 제자로서 살려고 노력할 때마다 어차피 선택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며 “식별의 가치는 우리가 어떤 것을 결정해야 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신자다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제공하면서 드러난다”고 전한다. 결국 식별의 영성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올바른 식별을 위해 예수회 창설자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선배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삶의 기술을 전수한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5.28
[생활 속의 복음]사순 제2주일-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수난과 부활 예고하신 예수님오늘 우리는 마르코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 관한 말씀을 듣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앞뒤의 내용과 연관해서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마르코 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 질문에 대해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29절)라는 베드로 사도의 대답을 듣자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 예고하시고,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34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말씀을 하신 이후,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사도들을 따로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9장 30절부터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이야기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사건을 직면하기 전에, 예수님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로서 약속된 메시아이시고, 신적인 영광으로 충만하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고난과 치욕의 상징인 십자가 죽음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 길의 마지막이 예수님 자신과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허무와 패배가 아니라 부활을 통한 참된 영광임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제자들이 고난과 역경의 순간에도 스승이신 예수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그분이 가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신앙적 용기를 고취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높은 산에서 하느님과의 만남그러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이루어진 장소는 ‘높은 산’이었습니다. 성경의 전통에서 높은 산은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 계시와 기도의 장소입니다.(탈출 24,2; 2베드 1,18 참조)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는 루카 복음에서는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9,28)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산으로 오르신 목적을 직접 밝히고 있습니다. 기도하시는 동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하였습니다.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통해서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차원으로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예수님처럼 기도하면 우리도 변할까예수님처럼 기도하면 우리 모습도 변화될까요? 어떻습니까?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통해서 내면에 감추어진 자신의 문제와 상처를 인식하고 하느님 은총으로 그것들이 치유될 때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체험을 여러분도 이미 하셨을 것입니다. 오랜 기간의 피정과 기도생활에서 개인적으로 체험했던 내용뿐만 아니라 피정지도를 통한 저의 실천적인 경험을 보아도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의 외적인 모습도 보다 편안하게 바뀌게 되는 것 같습니다.우리 마음이 하느님으로 가득찬다면처음에는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눈에 띄고 주목받을지 몰라도 그에 걸맞은 인격과 태도가 뒤따르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한 긍정적 인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반대로 평범한 외모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매력을 느끼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매력의 원천은 그들의 품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적인 아름다움에 있을 것입니다. 타고난 외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남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매력 있는 사람, 편안하고 따뜻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계속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이 하느님으로 가득 차고, 우리 모습이 점점 더 거룩해지면, 많은 사람이 우리를 통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유승록 신부 2024.02.21
![[이소영 평화칼럼] 그 순간 깃들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16/RoS1692145570527.jpg)
[이소영 평화칼럼] 그 순간 깃들던이소영 베로니카(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처음 성당이란 데에 가본 건 열두 살 때다. 아버지의 직장 업무로 인해 해외에 몇 해 거주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 지역 재외국민 상당수는 한인교회나 성당 중에 한 군데를 다녔다. 여기엔 종교적 이유만이 아닌 사교 목적과 일상생활의 필요도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아직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라 한국 잡지나 소설, 드라마 녹화 테이프 등 주요 유통망이 교민 종교공동체였기 때문이다. 기억하기로 그 한인성당은 규모가 작았고 가난했다. 처음엔 지하실 한 칸을, 나중엔 유치원 부속성당을 빌려 썼다. 제대 앞쪽이 협소하여 영성체 때 신부님이 의자 사이로 다니며 성체를 나눠주시곤 했다. 그곳의 습기 냄새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이 왠지 아늑하게 느껴졌다. 신부님은 루뱅이란 소도시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주일이면 기차 타고 브뤼셀로 와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야윈 얼굴에 안경 너머로 소년처럼 눈이 반짝반짝했다. 나는 신부님이 좋았다. 여러 사람 사이에 섞여 있어도 신부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단박에 구분할 수 있었다. 복도 저편에 까만 수단 자락이 펄럭이면 작은 심장이 옷섶 안에서 콩콩 뛰었다. 비록 ‘루카’와 ‘누가’를 별개 인물로 알던 무지한 꼬마였지만, 신부님의 강론이 ‘오늘의 명상’ 시간에 듣던 설교들과는 결이 다름을, 성경의 행간을 섬세하게 읽어내어 해석한 것임을 느꼈다. 내가 다른 누가 아닌 나여서, 알아들을 수 있는 나여서 기뻤다. 중학교 올라가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 들어가 냉담하고, 대학원 다니며 다시금 성당에 가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십수 년 전 한겨울 아침이었지 싶다. 우연한 계기로 듣게 되었다. 신부님이 많이 아프시다고. “아직 젊은 분인데. 어쩌면 며칠을 넘기기 힘들지 모른대.” 학교 가서 종일 신부님 생각을 했다. 저녁 세미나 마치자마자 뛰어 나와 묵주 챙겨서 택시 타고 명동대성당으로 향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하나였고, 그 하나만큼은 하고 싶었다. 그리고 늦은 밤, 귀가하여 부음을 들었다. 열세 살 무렵 어느 주일엔가 성당에 가니 웬 초면의 외국인 신부님이 미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어른들이 소곤거리기로, 우리 신부님은 수술받으러 한국에 가셨다는 거다. 심각한 병세는 아니라 했지만 내 마음은 쨍그랑 깨졌다. 게다가 중고등부 언니들이 어디서 들었는지 “유학 나온 신부님은 원래 한번 귀국하면 다시 못 나오게 되어 있어. 교구에서 안 보내준대”라는 게 아닌가? 난 성모상 뒤에 숨어 엉엉 울며 “마리아님, 우리 신부님을 낫게 해주지 않으면 저 하느님 안 믿을래요”라며 협박조의 생떼를 부렸다. 그리고 신부님은 달포 지나 참말로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신부님의 선종 시각은 내가 명동대성당에 들어서던 그 시각이었다. 세상 ‘안’의 자비를 간절히 청하던 무렵 이미 신부님은 세상 너머에 계셨던 거다. 그런데도 왜 기도하는 내내 슬픈 직감 대신 안도감을 느꼈을까. 캄캄한 겨울밤, 성당 안에 감돌던 불가해한 온기는 무엇이었을까. 바보처럼 난 ‘신부님 깨어나셨나 보다’ 좋아했더랬다. 어릴 적 그랬듯 이번에도 기도대로 해주셨구나 하고. 나는 영성이 둔하고 얕아서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믿고 싶었다. 그 순간 깃들던 설명 못 할 평온함은 신부님이 천상에서 그분 품에 곧바로 폭 안겼다는 징표라고. 이영춘 세례자 요한 신부님. 고단했을 유학 시절 중 만난 말수 적고 무엇 하나 특별한 것 없던 열세 살 여자아이를 기억하실 리 없겠지만, 천상 일은 사람 생각과 다르다고들 하니 소망해본다. 신부님을 위해 성모님께 협박 섞인 청을 드렸던 그 꼬마가 세상에 좋은 쓰임을 가진 어른으로 살아가도록 이번엔 신부님 쪽에서 날 위해 기도해 주시길 말이다. cpbc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