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려면…성소 주일에 읽을 만한 책‘성소 주일’이다. 사제와 수도자는 물론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자 부여받은 성소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을 골라봤다. 내 안의 빛을 찾아 / 안셀름 그륀 신부 / 차윤석 옮김 / 분도출판사 “영성의 길의 목표는 내면의 빛을 보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길은 자기 됨의 길에서 중요한 단계입니다. 자신의 자아상에 투영된 것과 자아상을 흐리는 것, 늘 신경이 곤두선 생활 패턴을 뚫고 우리 안에서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훼손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참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안의 빛을 찾아」는 15~16세기 몬세라트 수도원의 시스네로스 아빠스가 쓴 「수련서」를 바탕으로 현대인이 일상에서 일하며 기도할 수 있는 ‘베네딕도회 피정’을 소개하는 책이다.(82쪽)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피정은 대개 영신수련이다. 영신수련은 예수회 창설자인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이 창안하여 널리 퍼진 것으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선택’하는 것이다. 반면 베네딕도회 수련의 주제는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세 가지 길인 정화의 길, 조명의 길, 일치의 길을 토대로 하느님께 가는 길, 즉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나만의 고유한 형상인 ‘참된 자기’를 찾는 길을 제시한다. 정화의 길이 욕심과 감정을 정화하고 질병을 일으키는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라면, 조명의 길은 사람의 생각을 밝혀 자기 자신과 하느님에 관해 점점 분명하게 알고자 하는 시간이다. 또 일치의 길에서는 하느님은 물론이고 자신, 피조물,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도록 이끈다. 시스네로스 아빠스의 「수련서」는 수도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내 안의 빛을 찾아」의 저자 안셀름 그륀(베네딕도회) 신부는 베네딕도회 피정이 수도자나 특출하게 영적인 사람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화·조명·일치는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인 동시에 하느님을 체험하는 길이기에 모든 구도자에게 인간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함을 강조한다. 주교연기 / 아담 샬 신부 / 최경식 옮김 / 이근덕 신부 감수 / 아시아의 빛 중국의 문화와 선교 역사에 있어 괄목할 만한 발자취를 남긴 아담 샬(예수회, 1592~1666) 신부의 「주교연기」가 번역·출간되었다. 「주교연기(主敎緣起)」에서 ‘주교’는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이고, ‘연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는 법이 있고, 모두 인(因)과 연(緣)을 따라 일어난다’는 의미로, 책은 전체적으로 주님의 가르침이 탄생한 근원과 오늘에 이른 과정, 이 가르침이 우리 인류에게 어떤 보탬을 주는가를 성리학과 불가·도가의 이론적 모순점을 비판하면서 전개한다. 아담 샬 신부는 독일 쾰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617년 사제품을 받은 뒤 1619년 7월 마카오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40여 년간 명·청 두 왕조를 경험하면서 종교와 과학 분야의 역서와 저서 100여 권을 집필했다.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적응주의 노력으로 저술한 1000여 종의 한문 서학서를 흔히 천학(天學)이라고 하는데, 이 천학 서적들 중에서도 미켈레 루지에리 신부의 「천주실록」, 마태오 리치 신부의 「천주실의」, 쥴리오 알레니 신부의 「천주강생언행기략」, 그리고 아담 샬 신부의 「주교연기」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뿌리내리는 과정과 그 내용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아담 샬 신부는 중국에서 만난 소현세자와 교류하며 천학 서적과 성물을 선물하기도 했고, 그의 서적 역시 조선의 학자들에게 전해져 실학과 천주교 신앙이 싹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원장 김동원 신부)에서 발간한 이 책은 중국문화연구팀장 최경식(스테파노) 박사가 번역했고, 성리학을 전공한 이근덕(수원교구) 신부가 윤독하며 감수했다. 성인, 땅에 선물된 하늘의 보배 / 장재봉 신부 / 꿈꾸는 요셉 “성인들은 참으로 위대하고 찬미 받으실 그분을 향해서 온 삶에 집중했습니다. 더 나은 삶을 확신했기에 특별하고 가치 있는 것에만 몰입했습니다. 끈기 있고 줄기차게 옳은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모든 성인에게 엿볼 수 있는 뚜렷하고 보편된 정신은 ‘참회’인데요. 참회야말로 하느님을 향한 무한한 존경심이 그 바탕이 된다는 걸 일깨워줍니다.”(71쪽) 「성인, 땅에 선물된 하늘의 보배」는 부산가톨릭신학원 원장 장재봉(부산교구) 신부가 경향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엮은 책이다. 성경을 묵상하며 느꼈던 설렘과 평화를 담은 글로, 암브로시오·티모테오·예로니모·페르페투아·펠리치타스·요안나 드 샹탈 등 다양한 성인들의 이야기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순교나 위대한 희생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되기를 원하시고, 일상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작은 실천을 통해 주님 보시기에 아리따운 성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그 소소한 방안을 제언한다. 울지마톤즈 학교 / 구수환 / 북루덴스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파견돼 8년여 동안 구호와 의료·봉사활동에 헌신하다 선종한 고 이태석(1962~2010) 신부의 삶과 가르침을 되새기는 책이 출간됐다.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를 제작한 구수환 감독이 엮은 책으로, 저자는 이태석 신부로부터 배울 수 있는 메시지를 4가지로 요약한다. △참을 수 없는 이타심 △죽음을 잊은 용기 △절실하고 헌신적인 실천 △감사하며 섬기는 마음이 그것이다. 신간 「울지마톤즈 학교」는 2011년 펴낸 「울지마톤즈 그 후 선물」의 개정판으로, 저자는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14년이 흘렀지만, 전국의 교육현장에서는 ‘이태석 신부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며 “이태석 신부의 사랑과 섬김의 정신이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4.17

아브라함 (2) 말씀대로 떠난 아브라함[월간 꿈 CUM] 뿌리 _ 구약이 말을 건네다 (6) 이스라엘 광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창세 1,3)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태초의 세계는 하느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세계였다. 오로지 인간의 뜻을 중심으로 세우며, 인간의 바람과 원의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우리에게는 이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태초의 세상은 뜻과 원의보다 오히려 말씀이 앞섰다. 하느님의 말씀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기에, 말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렇게 실현되는 말씀의 이루심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말씀의 신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이는 한처음에 말씀만으로 충분했으며 온세상은 말씀으로 충만해있음을 전한다. 말씀 이외에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세상. 우리 인간이 살았던 태초의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말씀 그 자체로 충분한 이 태초의 세상에서 유혹자와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을 변형시키며 자신의 말들을 추가하기 시작한다. 먼저 유혹자 뱀은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열매를 따먹어도 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꾸면서 의심(불신)을 불어넣는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창세 3,1) 이렇듯 말씀에 대한 의심(불신)은 태초부터 인간 주변을 맴돌았다. 이러한 유혹자의 질문에 하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만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이는 하와 자신이 첨가한 말이며, 그가 지닌 욕망을 상징한다. 말씀으로 충분했던 세상에, 유혹자와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바꾸고 첨가하며 그 말씀에 의심을 품고,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다. 그리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태초의 모습’은 빠른 시간 안에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으며, 삶 안에서 고통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된다. 그들이 낳았던 인류의 첫 형제인 카인과 아벨은 형제 살해의 아픔을 겪었고, 그 이후에 이어진 인류는 끊임없는 타락의 길을 걸어 홍수라는 대재앙을 맞이하게 된다.(창세 6-9장) 이렇게 급격하게 망가진 세상은 과연 새롭게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이 회복의 여정은 아브라함을 통해 처음으로 시작된다.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이 아브라함을 통해 선포된다. 아브람함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함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 다섯 살이었다.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뜻과 원의에 따라 바꾸거나 첨가하는 법 없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이 길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한 포기의 여정이었다. 그는 고향과 친척과 부모를 떠나야 했다. 그에게 있어서 ‘떠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무겁고 부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여정 안에서 그동안 헝클어진 말씀의 질서는 회복되기 시작한다. 아주 먼 훗날 가브리엘 천사 방문의 예수님 잉태의 소식에 성모님은 다음과 같이 응답하실 터이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cpbc2024.01.15

1054년 가장 먼저 갈라졌지만 사도전승 이어오는 ‘형제 교회’그리스도인 일치 주간 / ‘갈라진 형제’ 한국 정교회 탐방 한국 정교회 대교구 성 니콜라스 대성당 제단. 임종훈 신부는 형제 그리스도인이 방문했다고 특별히 지성소 문을 개방했다.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을 펼쳐온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가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협의회 창립 목적은 ‘분열된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의 재건과 교파 상호 간의 신앙적 친교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복음적 삶의 증거’라고 명시하고 있다. 신앙과 직제의 차이가 있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 갈라진 형제들이다. 그중 가장 먼저 갈라진 형제가 정교회다. 더구나 올해는 한국 정교회 대교구 설립 20주년이다. 그리스도인 일치 주간(18~25일)을 맞아 가깝고도 먼 한국 정교회를 형제의 이름으로 찾았다. 갈라진 형제 큰길에서 조금 벗어나 비탈진 곳에 자리 잡은 서울 마포구 성 니콜라스 대성당. 초행자가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눈에 띄는 곳은 아니지만, 높은 건물 사이로 삐져나온 비잔틴 양식의 둥근 돔은 정교회의 정체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 웅장함에 다소 압도되며 문을 넘었을 때, 한국 정교회 대교구 임종훈(안토니오스) 신부가 마치 오래 기다린 형제를 맞이하듯 부드러운 미소로 환대했다. “잘 오셨습니다.” 정교회 사제와의 대화에서 ‘잘 왔다’는 의미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정교회를 글이나 영상으로 스치듯 보고 많은 분이 오해하곤 합니다. 심지어 이단으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일단 관심이 부족하고, 한국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현장을 방문하는 게 중요하죠.” 임 신부는 “정교회를 모르면 그리스도교의 반 이상을 모르는 거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서방과 동방 교회의 대분열 시기를 1054년으로 보고 있으니, 분열 이전 함께 교리를 형성하고 신앙을 고수했던 1000년의 세월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사도로부터 이어오고 있다는 믿음 아래 형제 교회는 각자 자리에서 신앙을 증거하며 성장했다. 한국 정교회 임종훈 신부가 성 막심 성당(소성당)에서 성찬예배 때 사용되는 제구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일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형제 교회는 많은 부분 닮았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따라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고, 일곱 성사를 거행한다.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성경과 성전(거룩한 전승)에 근거한다. 세례 때 세례명도 정하면서 성인들의 공적을 기린다. 하지만 갈라진 1000년의 세월만큼이나 서로의 방향도 뚜렷해졌다. 니콜라스 대성당에 들어서니 화려한 성화가 벽과 천장을 가득 메웠다. 정교회에서 성화는 눈으로 보는 성경이라 여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가톨릭에서는 성수를 찍고 들어가지만, 정교회 성당은 초를 봉헌하며 들어간다. 사제가 성찬예배(미사)를 하는 지성소(제대)가 회중석과 분리돼 있고, 회중석 오른쪽 앞에 주교좌가 있는 차이점도 있다. 아울러 그리스 전통에 따라 단성 음악 형식의 기도문으로 장엄하게 진행된다. 사제는 예배하는 동안 입당 예식과 평화의 인사, 성찬 전례를 제외하곤 회중석이 아닌 제대를 바라본다. 또 누룩이 든 큰 빵을 사용하고, 신자들은 성체와 성혈을 동시에 모신다. 입당 예식과 복음서 봉독, 설교, 성찬 전례까지 주일 예배 시간은 1시간 40분. 성무일도에 해당하는 성무일과를 성찬예배 전에 함께 바치는데, 그러면 주일 기도와 예배에만 총 3시간 정도 걸린다. 임 신부는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는 게 사실이지만, 모든 예식에 의미가 담겨 있고, 정성스럽게 거행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임 신부도 그 거룩함에 매료돼 정교회 사제가 됐고, 현재 150여 명의 신자가 주일 성찬예배의 거룩한 전례를 함께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정교회 사제는 서품 전 결혼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미혼을 선택할 경우 수도원으로 들어가 사제나 주교가 되고, 기혼을 선택하면 임 신부와 같은 교구 사제로 교회에 봉사한다. 임 신부는 “이처럼 현실적인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바탕은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부들의 전통에 기반을 둔다”며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도 교부들 문헌을 해석하는 일이라고 전했다. “그리스도교는 정말 풍부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의 240년 역사도 자랑스럽고 위대하지만, 2000년 모두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사입니다. 초대 교회부터 이어져 온 영적 양식들을 풍성하게 누렸으면 합니다.” 한국 정교회 대교구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를 비롯한 사제단이 지난 12월 25일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성탄절 축일 예배를 거행하고 있다. 한국 정교회 제공 용서와 화해의 길 두 형제가 갈라진 이유로는 신학적 논쟁(필리오케)과 더불어 서로 다른 언어, 문화, 관습 등의 차이를 꼽는다. 하지만 임 신부는 교황의 수위권을 가장 큰 원인으로 봤다. 그리고 200년 후인 13세기 초 콘스탄티노플(현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점령한 제4차 십자군 전쟁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1054년 상호파문 이후 900년이 훌쩍 넘은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정교회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는 예루살렘 성지에서 극적으로 만났고, 이듬해 상호파문을 취소했다. 전 세계 언론들도 ‘1000년 만의 만남’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정교회를 방문해 십자군 침략을 정식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이후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교황청에서, 성 안드레아 축일인 11월 30일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임 신부는 ‘1000년 만의 만남’ 후 50년이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정교회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의 만남을 화해의 큰 상징으로 봤다. 정교회는 하나이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주교들은 동등한 권위를 가진다. 다만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동등한 자 가운데 첫 번째’라는 위치가 부여돼 공식적인 정교회 수장이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존경을 드러내는 의미로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 손에 입을 맞추려 했다. 정교회에서 손에 입을 맞추는 행위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축복을 청하는 것이다. 총대주교는 성급히 손을 빼고 서로의 볼에 입을 맞췄다. 임 신부는 “과거에는 교황의 수위권이 큰 문제가 됐지만, 그 행동 하나로 교황의 겸손함이 드러났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상대를 극진히 존중하면서 갈등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어 “두 어른의 행동이 바로 형제 교회로서 일치를 향한 모습”이라며 “한국에서도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를 통한 만남 이외에도 활발한 교류가 생기길 간절히 바란다”고 희망했다. 한국 정교회 대교구 성 니콜라스 대성당 전경. 한국 정교회 대교구 124년 전인 1900년 한국에 전파된 정교회는 격변하는 사회ㆍ정치적 상황과 여러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오다 2004년 한국 정교회 대교구로 승격됐다. 소티리오스 대주교를 거쳐 2008년부터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 한국 정교회 대교구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국 정교회 대교구 설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전체 신자 수는 3000여 명, 전국 8곳에 9개 성당을 신부 9명이 사목하고 있다. 수도원도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양구 두 곳에 있다. 임 신부는 “교구장 주교는 사도의 계승자이기 때문에 교구 설정은 교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며 “20주년을 맞아 하나였던 교회를 다시금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느님께서 큰 기적과 자비를 베풀어 언젠가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 이전에 서로의 차이를 비판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분이 정교회를 방문하고 다시 각자 교회로 돌아가셔서 풍부한 영적 보화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4.01.05

책꽂이 축복받은 성경 읽기-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 가톨릭성서모임 엮음 성서와함께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봤을 성경 읽기. 하지만 시작할 때의 굳은 다짐과 달리 중도 포기하기 일쑤다. 공부할 때 문제집을 통해 중간 점검을 하고 방향을 잡아가는 것처럼 성경 읽기도 문제집을 통해 흥미를 이어가 보면 어떨까. 「축복받은 성경 읽기」는 성경 읽기를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문제집 시리즈다. 별다른 주석서나 해설서 없이도 성경만 보면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들로 구성되었다. 또 말씀의 봉사자나 지도자가 없어도 누구나 진행할 수 있도록 단순하게 정리되어 성경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개인이나 단체에서 성경 읽기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축복받은 성경 읽기」는 창세기를 시작으로 요한묵시록까지 총 73권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현재 구약 성경은 창세기부터 마카베오기까지, 신약 성경은 마태오 복음서부터 코린토서까지 출간되었다. 나를 따라 오너라이형진 엮음에파타성가대용 가톨릭 창작성가집 「나를 따라 오너라」가 출간됐다. 작곡가 이형진(보나벤뚜라) 씨는 “가톨릭 창작성가 합창곡집을 출판하는 ‘SONG4GOD PROJECT’의 일환으로 첫 번째 성가집 「살게하소서」에 이어 「나를 따라 오너라」를 펴냈다”며 “강가을(대건안드레아)ㆍ김상균(라우렌시오)ㆍ박하얀(에우세비아)ㆍ성기영(아가빠) 등 신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작곡가들에게 의뢰해 새로운 창작성가집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수록곡은 모두 10곡이다. 성가대를 위한 성가집인 만큼 연주할 때 악보를 앞뒤로 번거롭게 봐야 하는 도돌이표 등을 없애고 한 방향으로 넘길 수 있게 편집했고, 곡 제목 좌측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파트별 연습이 가능하도록 꾸몄다. 서울가톨릭싱어즈가 연주한 가이드 음원도 유튜브와 음원 포털을 통해 제공된다. 자세한 내용은 www.song4god.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체사진 모음박미연 사진 유페이퍼박미연(헬레나) 작가의 성체 사진 모음집이 세 권의 전자책으로 출간되었다. 선교 잡지를 만들면서 교회 관련 사진을 찍게 된 작가는 지난 2011년 수원 성빈센트병원 빈센트 갤러리에서 환우들을 위해 처음으로 성체 사진을 전시했다. 제대 위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모든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촬영한 성체 중심의 사진들은 이후 네 번의 개인전과 네 번의 초대전에 소개됐고, 부활 판공성사표에 삽입돼 서울대교구 각 본당에 배포되기도 했다. 작가는 그동안 찍은 성체 사진 가운데 60점을 선별해 세 권의 「성체사진 모음」에 담았다.인간 : 종교와 세계문화 서동신 신부 지음기쁜소식종교는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해왔고, 그로 인해 형성된 문화 역시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 종교와 세계문화」는 종교문화에 대한 해석의 틀을 제시한 지침서다. 인간, 문화, 종교, 종교문화에 대해 각각 설명한 뒤 ‘인간학-종교학’ 맥락에서 종교문화를 이해하고, 종교문화 간 대화와 협력 방안을 제시한다.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로 ‘인간: 종교와 세계문화’, ‘철학치유’ 등을 가르치고 있는 서동신 신부는 “현대는 다종교 다문화 다가치 속에서 여러 복잡한 문제에 부딪히고 있고, 그만큼 올바른 종교문화 이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인류 종교문화사의 흐름과 형성 과정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이를 심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cpbc2023.01.12
![[신앙단상] 나의 첫 여름 성경학교(홍진호, 제노, 첼리스트)](//cpbc.co.kr/CMS/newspaper/2022/04/rc/822919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나의 첫 여름 성경학교(홍진호, 제노, 첼리스트) 어린 시절, 친척 형들과 노는 게 마냥 좋았던 저는 할머니가 열심히 다니셨던 교회와 친척 형들이 다니던 성당을 동시에 왕래하며 줏대 없는(?)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철없고 순수했던 어린아이의 감성에는 두 종교의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이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져서 미사와 예배를 하나의 놀이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예뻐해 주셨던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목사님, 장로님, 호칭부터 체계 등이 많이 다른 두 곳에서 저는 무엇을 배우고 경험하였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떠한 의지와 힘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서툰 글솜씨지만 용기를 내어 글을 기고하게 됐습니다. 온 천지가 푸릇푸릇한 식물로 가득했던 작은 분교였습니다. 성당 주최의 여름 성경학교에 처음으로 참가했던 날, 전날 밤부터 기대에 부풀어 잠을 설쳤지만, 피곤한 기색도 없이 야무지게 짐을 챙겨 도착한 곳에는 수녀님과 지도 선생님들께서 흐뭇한 미소로 친구들을 맞아 주고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친척 형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녔는데, 조별 미션을 수행하면서 조원들과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거의 마지막 미션에 다다른 저희 조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지쳐있었지만, 꼭 1등을 차지해야 한다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왼쪽 귀에서 뭔가 이상을 느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귓속에서 물이 파도를 치는 느낌이 나면서 나중에는 어지럼증까지 느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알았던 사실이지만 중이염이었습니다. 아마도 쉬는 시간에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 그만 귀에 물이 들어갔던 것 같았습니다. 고통이 심해져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응급 처방을 위해 양호실로 옮겨졌고, 결국 저희 조는 저 때문에 미션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 길로 병원으로 가 적당한 치료를 받고 나서야 같은 조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을 찾아가 미안했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결심하고 몇 주 뒤에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저를 환호로 맞아주며 커다란 도화지에 빨리 나아서 같이 놀자는 글과 함께 수료식 사진을 선물로 주는 바람에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어쩜 그렇게 맑고 순수했을까요. 무슨 큰일이라도 치른 것 마냥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는데, 친구들이 만들어준 그때의 그 장면은 저에게 꽤 중요한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체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로 인해 손해가 생긴다면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도 상대방의 안위보다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훨씬 더 클 것 같습니다. 신앙 안에서 자연스럽게 익어 가는 따듯한 마음씨,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토록 반짝이고 예쁜 기억이 저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음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하느님의 은혜인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뭉클합니다. 평화신문2022.04.27

화가 나십니까?[월간 꿈 CUM] 삶과 영성 (2) 마태오 형제님은 자신의 성격적 단점을 고치려고 부단히 노력해 오신 분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 봐도 성격이 변하지 않자 처음엔 자신을 원망하고 큰 실망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고 난 후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답답한 마음과 함께 자신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사실 마태오 형제님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성격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에게 변화만 요구했을 뿐,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마태오 형제님은 상담 안에서 내면의 깊은 외로움과 상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점차로 자신의 관계적 문제에 대한 원인을 타고난 성격(기질)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성격적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신념)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세상이 갑자기 밝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생각, 즉 가치관이나 신념체계가 그리 쉽게 변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본성을 바꾸려 했던 지난 시절의 노력보다는 훨씬 더 쉬운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점점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다음은 마태오 형제님이 사람들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던 가치 및 신념 체계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된 질문이다. 이 형제님처럼 대인관계가 불편할 뿐 아니라 분노와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스스로 이 질문들에 답변을 해 볼 필요가 있다. 1. 타인이 옳지 않은 일을 했을 때 화나 분노를 참기가 어렵습니까? 2. 매사에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야 마음이 편합니까? 3.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고,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매사에 엄격한 편입니까? 4.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등 주변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편입니까? 5. 타인의 장점보다 결점이 눈에 잘 들어와 매사에 비판적입니까? 6. 자신의 생각을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편입니까? 7.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까? 8. 시간관념이나 돈 계산이 느슨한 사람을 싫어합니까? 9.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면 못 쓴다’ 식의 말투를 잘 씁니까? 10. 부모로서(부모가 되면) 아이들을 엄하고 책임감 있게 키운다고(키우겠다고) 생각합니까? 마태오 형제님은 이 모든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엄격한 삶의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에게 비쳐진 세상은 선(善)하기보다는 악(惡)하며,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타인보다는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기적 존재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세상과 사람들에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타인을 가르치거나 충고하는 습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자 사람들은 매사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라며 오히려 자신을 비난한다. 자신은 옳은 말을 할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꼰대라고 비꼬거나 혹은 융통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런 반응을 듣고 나면 솔직히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 관계 안에서 이런 패턴이 계속되자 어느덧 가족들도 하나 둘 떠나가고 주변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태오 형제님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관점이 어린 시절 주입된 가치관임을 깨닫고 성경말씀을 토대로 한 인지치료를 받게 되었다. 자신의 여러 생각들 안에 존재하는 “~하면 안 된다”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신념체계가 “그럴 수도 있다”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로 변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비판보다는 수용, 비난보다는 관용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미워했던 주변사람들이 이해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제야 마태오 형제님은 자신에게 회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cpbc2024.03.18
![[조민아 평화칼럼] 늦게 도착한 초대장](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22/BZc1692679192525.jpg)
[조민아 평화칼럼] 늦게 도착한 초대장조민아 마리아(미국 조지타운대 신학 및 종교학과 교수) 구세주의 탄생을 한 주간 앞둔 12월 18일, 교황청 신앙교리부는 교리선언문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을 발표해 사제가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다고 공식 승인했다. 성소수자들과 앨라이(ally: 지지자)들에게는 기나긴 기다림의 길목에 도착한 선물이다. 물론 동성 커플 축복이 성사가 아니며, 동성혼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달려있다.(11항) 그럼에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가 교리나 규율에 묶인 채로 사목적 실천을 해서는 아니됨을 강조한다. 누구도 도덕적 완전성을 기준으로 누구에게 축복을 줄 것인지 평가하거나 배제하는 재판관이 될 수 없다.(12, 13, 32항)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초대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44항) 우려의 목소리와 혼란이 있는 줄로 안다. 불과 2년 전 교황청 신앙교리부에서 “교회는 죄를 축복할 수 없기에” 동성 커플의 축복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교회의 입장을 번복한 획기적 변화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새 문서의 어떤 내용도 혼인이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합이라 가르치는 교리와 신학적 견해를 바꾸지 않는다. 변화가 있다면 성소수자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이지만, 이는 교회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교종은 오히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확인하고 있다. “교회가 항상 모든 이를 환영하고 사랑하며, 용서를 체험하는 자비와 희망의 장소가 되게 하자”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일관된다. 이에 기반하여 하느님은 모두를 차별 없이 사랑하며 모두와 함께하신다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순수한 원칙을 수호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지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포용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여 그 뜻에 따르고자 하는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 정신을 실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시대의 요청 속에서 사랑의 자리를 분명히 밝히며 함께 걸어가야 할 여정의 이정표를 찾는다는 점에서 교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공동체성을 확장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당신의 만찬상으로 초대하신다. 모든 죄인들을 먹이기 위해 스스로 생명의 양식이 되어 마련하신 식탁이다. 한참 늦게 초대장을 전달받은 이들이 이제 조심스레 잔칫집 문을 두드린다. 혹여 이들이 예수님의 식탁에 앉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과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인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4,18) 이 추운 겨울, 이웃들을 여전히 잔칫집 문밖에 세워 둔 채 ‘너희는 우리와 다르다’는 말로 그들의 초대장을 따져보며 자격을 묻지 않도록 하자. 죄인이란 이름표를 붙여 식탁 끝자리로 몰아버리지도 말자. 오랫동안 문전박대를 당해왔던 자매형제들을 맞기 위해 버선발로 뛰어가 따뜻이 방 안으로 맞아들이는 제자의 모습은 어떨까? 늦게 도착한 만큼 예수님 옆자리를 내어주어 그분 가까이에서 함께 빵을 떼고 잔을 기울이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면 좋지 않을까? 말하기조차 힘들었을 오랜 기다림의 세월, 날 선 눈길과 무심한 말 때문에 상처받고 곪았을 이웃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사과하고, 그 아픈 시간의 이야기를 청하여 듣고,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먼저 초대장을 받아 안은 이들에게 기대한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cpbc2024.01.10

이집트로의 피신 (마태 2,13-14)[월간 꿈 CUM] 복음의 길 _ 제주 이시돌 피정 (1) 시모네 칸타리니(simone cantarini, 1612~1648)의 ‘이집트 피신 중 휴식’(Le Repos pendant la fuite en egypt), 1635년작.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소장.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마태 2,13-14) 이 일이 일어났을 때 예수는 두 살이 채 안되었을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고향을 버리고 도망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예수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부모는 아마도 그 당시의 위험에 대해 예수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는 그 경험을 그저 큰 모험으로 즐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듯이, 그 사건으로 수많은 죄없은 아이들이 살해되었고, 이는 헤로데가 예수를 죽이려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고 예수가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온 후, 그 학살의 진상에 대해 들었을 때, 어떻게 느끼셨을지 생각해봅니다. 예수는 그 대학살의 공포와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이 때문에, 많이 괴로워하셨을 것입니다. 예수가 바로 이 때에 큰 죄책감을 갖게 되지는 않았을까요? 헤로데의 표적이었던 자신 때문에 그 지역의 수많은 아이들이 살해되었고, 홀로 살아남았던 그 끔찍한 기억에서 엄청난 가책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릴 때의 이 고통스러운 경험이 예수를 다른 이들을 위한 삶으로 이끈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1840년대, 아일랜드에서는 기근과 굶주림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음을 당했고, 그 안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죄책감에 시달렸고, 스스로를 가책했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아일랜드춤은 스코틀랜드춤처럼 두 손과 팔을 역동적으로 흔들기 보다는 밑으로 내려 옆구리에 붙이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 의미는 그 당시 기근으로 죽은 이들을 향한 애도의 뜻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생존자들이 고통스러워했던 일종의 죄책감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체험은 아일랜드인들에게 현재까지도 기아나 굶주림의 현장에 가장 많은 후원을 해주는 민족으로 자라나게 했습니다. 또 다른 예는,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당시, 배에 함께 타고 있던 104명의 군인 중 46명이 죽었습니다. 한 생존 장병은 지금까지도 마음속으로 심한 가책을 느끼며, 차라리 그의 전우들과 같이 죽었으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보다 덜 괴롭지 않았을까 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전쟁이나 폭력 또는 가난 등으로 그들의 고향땅을 버리고 피난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와 마리아, 요셉이 2000년 전에 죽음의 위협을 피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2000년 전 곤경에 빠진 예수와 그 부모에 대해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요? 아니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예수는 우리 주위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바로 그를 위해 해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면, 그 감정을 구체적으로 난민들을 돕는 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예수와 그 부모, 다른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위협은 매우 실제적이기에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은 그저 위협들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걱정만으로 불필요하게 달아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제대한 많은 군인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전쟁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습니다. 즉, 그들이 군생활 동안 겪었던 정신적 충격과 상처는 전투에 대한 위험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그들 주위를 맴돕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중독성을 지닌 약이나 술, 혹은 과잉행동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피하려고 합니다. 글 _ 이어돈 신부 (Michael Riordan,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제주교구 금악본당 주임, 성 이시돌 피정의 집 담당) cpbc2024.02.05
![[2024년 신년사] 기억과 희망 그리고 선포](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12/27/i1O1703665698318.jpg)
[2024년 신년사] 기억과 희망 그리고 선포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시몬 신부 사랑하는 cpbc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독자와 시청취자 여러분,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기원하며 새해 인사드립니다. ‘같은 매일(오늘)’이지만 ‘새로운 매일(오늘)’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제는 2023년 12월 31일이었고, 오늘은 2024년 1월 1일입니다. 날을 세는 숫자 말고, 그 안에서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를까요? 그렇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 흐름 속에 다른 것이 있다면, 나의 생각이겠죠. 매일 매 순간 나의 생각과 기준을 변화시키고 바꿔나간다면, 같지만 다르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저와 cpbc의 임직원 150여 명은 지난해에 이어 2024년에도 ‘기억과 희망’에 집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복음 선포’의 행보를 이어가면서 매일 ‘같지만’, ‘다르게’ 살아보도록 노력하렵니다. 신문, TV, Radio, 그리고 새로운 플랫폼인 cpbc플러스를 통해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셨던 복음을 매일 기억하고 희망하며 선포할 때, 우리는 ‘영원과 맞닿아 있는 오늘’을 잘 살아가는 것이며 매일을 다르게 살게 될 것입니다. 기억함은 살아있음입니다. 그가 누구든 기억하는 한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삶의 고비마다 함께해주신 하느님 사랑을 기억하는 한 나는 그분 안에 살아있는 자입니다. 흔들릴 순 있어도 꺾이진 않습니다. 혼란스러울 수는 있어도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기억은 생각(mind)을 다시(re) 하는 것이고, 변색되고 퇴색된 것을 다시(re) 신선하게(fresh) 하는 것입니다. 신앙 행위도 공동체가 하느님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며,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루카 22,19)입니다. 희망은 신앙인들에게 힘과 인내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성경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고난과 역경, 절망적 상황들로 점철되는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도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에 대한 강한 기대와 희망은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용기를 줬고, 뿌리가 되었습니다. 희망을 선사하는 많은 말씀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새롭게 살게 하는 근거를 줍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편지만큼 울림을 주는 말씀은 없을듯 합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그리스도교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4)란 말씀은 어떤 위로보다 크고 절대적인 힘을 줍니다. 우리는 이를 ‘선포’해야 합니다. ‘지붕 위에서 선포하고’(마태 10,27) 소리 질러야 합니다. cpbc는 지붕보다 높은 전파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신문, TV, Radio, cpbc 플러스라는 도구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요즘 모든 미디어가 ‘재미’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과 판단을 흐리는 현대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하는 사명을 이어가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시청취자, 그리고 독자 여러분! 저희의 미디어 사목에 함께하는 ‘미디어 사도’가 되어주시길 청하면서 2024년 한 해에도 주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샬롬! cpbc2023.12.21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6) 교무금과 십일조](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5/04/XiZ1683176453886.jpg)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6) 교무금과 십일조 한국 천주교는 신자에게 십일조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진 않지만, 신자라면 누구나 교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형편에 따라 교무금을 정성껏 봉헌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사진은 교무금 통장과 교무금. 가톨릭평화신문 DB 천주교의 교무금과 개신교의 십일조는 같은 건가요? 십일조(十一條)란 본래 구약 성경의 율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신이 벌어들인 재화의 십분의 일을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고 규정한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는 신자에게 십일조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지만, 신자라면 누구나 교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하여 형편에 따라 교무금을 정성껏 봉헌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미사 때 바치는 헌금은 주님 제단에 자신의 소출의 일부를 바치는 봉헌 예식을 대신하지만, 교무금은 교회를 유지하는 데 일조해야 할 신자의 본분에 속합니다. 대개 성탄 전에 가정마다 교무금을 새로 책정하는데, 원칙적으로 본인이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에 맞게 이루어집니다. 개신교의 십일조 형태는 아니더라도 한국 천주교는 하느님께 일정 기금을 봉헌하는 것을 신자의 기본 의무로 강조합니다. 개신교는 개별 교회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헌금과 십일조는 교회 운영과 유지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천주교처럼 교구와 세계 교회가 연결되어 하나의 교회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개신교는 개별 교회 자체적으로 예산을 수립하고 집행하며 교회를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또한 연합회나 협의체로 결합되어 이를 운영하는 데 일부 재정을 분담하고 있지만, 대개 개별 교회 운영에 많은 부분을 할애합니다. 따라서 개신교 교단 가운데에는 십일조를 신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자, 신자 됨을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로 여기는 곳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은 설교에서 십일조를 하느님의 축복에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천주교의 교무금과 개신교의 십일조는 제도 교회를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정 원천입니다. 교회가 돈으로만 운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돈을 죄악시하거나 무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돈을 교회운영 중심에 두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지만, 교회의 구성원인 신자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교회 유지의 의무를 자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개신교 신자가 술·담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 사이에 음주와 흡연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흔히 천주교는 술과 담배에 관대하고 개신교는 엄격하게 금지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술에 취하여 방탕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잠언 31,4 참조). 바오로 서간도 술에 취하지 말라는 말씀(에페 5,18)과 함께 교회의 봉사자는 술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1티모 3,8 참조). 그러나 성경에는 술과 담배와 같은 기호 식품을 무조건 금지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구약의 선조들은 잔치에서 술을 즐겼고, 예수님께서도 식탁에서 포도주를 나누는 전통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문제는 술에 취하여 방탕해지거나 중독에 빠질 정도로 자기 몸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성전인 몸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나친 음주와 흡연이 자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서구 교회와는 달리 한국 개신교가 술과 담배를 엄격하게 금지하던 전통은 경건주의 사상을 가진 개신교 선교사들이 정한 지침에서 유래합니다. 농경 사회로서 음주와 흡연이 일상화되어 있던 한국 선교 초기에, 술에 취하여 절제력을 잃고, 담배에 중독되는 것이 경건한 신앙생활에 방해된다고 판단한 선교사들이 신자들에게 금주와 금연을 명하였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한국 개신교의 전통이 된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구세군과 침례교는 술과 담배를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은 금주와 금연을 법으로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신앙인의 표양으로 금주를 실천하고 담배와 같이 몸을 해롭게 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하느님의 성전인 몸을 잘 지키고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천주교가 술과 담배에 관대하다고 해서 술에 취하여 방탕하거나 담배와 같은 기호 식품에 중독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서 천주교나 개신교 신자 모두 음주와 흡연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절제가 필요하며, 지나친 음주와 흡연은 경건한 신앙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cpbc2023.05.04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4주일-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1/23/rhA1705998606036.jpg)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4주일-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 예수님 공생활의 주요 무대는 갈릴래아 지방이었고, 그 중심 도시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위치한 카파르나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 회당에 들어가셔서 어느 안식일에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 오늘 복음의 내용입니다. 말씀 한마디에 도망친 악령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22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이 주신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백성들이 그들의 율법에 대한 해설과 가르침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와 같은 율법 학자들의 권위는 점점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의 율법학자들에 대해 경고하신 내용에 비추어보면, 그들은 하느님의 법을 통해 삶과 신앙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잘못된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들은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많은 율법 규정을 의무로 부과하여 참된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였습니다. 그런 율법학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서 사람들은 놀라운 권위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때, 그분의 말씀 한마디에 악령이 무서워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사람들은 더욱 놀랐고,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27절)하며 감탄하였습니다. 권위는 그분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 예수님의 가르침과 구마 행적에 대한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에서 권위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성경 희랍어 ‘권위(엑수시아)’의 어원적 의미는 ‘존재로부터’라고 합니다. 권위는 존재로부터, 즉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서 느껴지는 권위는 그분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말씀 그대로를 이루고, 말씀대로 살아가신 분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그 나라의 현실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행적을 통해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병자 치유와 악령을 쫓아내는 구마, 죄인들에 대한 용서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돌봄 등의 행동으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를 이루고 살아가신 분 물론 한마디 말로 병을 고치거나 더러운 영을 제어하는 것은 분명히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도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달리 가르치신 대로 사셨고 또한 사셨던 것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말씀하셨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과 행적에는 참으로 놀랍고 힘찬 권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스승이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는 우리들 역시 언행이 일치하는 존재로 거듭 변화되고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자주 예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예수님과 깊이 있는 만남을 통해 우리가 먼저 복음화되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물론 그 길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그 여정에 동행하시며 필요한 도움의 은총을 선물하시니 힘을 내도록 합시다.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모습을 사람들은 보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될 때 공허한 말들만 무성한 오늘의 세상은 다시 한 번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라며 반색할 것입니다. 유승록 신부 cpbc2024.01.18

신자들에게 딱 맞는 신앙 콘텐츠 알아서 추천 정순택 대주교, cpbc플러스 적극 활용 당부 ‘늘 함께하는 똑똑한 신앙생활 길잡이’. 국내 최초 가톨릭 콘텐츠 전문 OTT ‘cpbc플러스’를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46만 개나 되는 ‘cpbc표’ 가톨릭 콘텐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사장 조정래 신부)은 3일 서울 중구 삼일대로 본사에서 이사장 손희송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열고, 가톨릭 콘텐츠 전문 OTT ‘cpbc플러스’를 공식 출시했다. 이날 손 주교는 ‘cpbc플러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구동해 보인 뒤, ‘cpbc플러스’ 앱 화면이 띄워진 대형 모니터를 향해 성수를 뿌리며 ‘cpbc플러스’ 출시를 알렸다. 본사가 제작한 역대 모든 콘텐츠를 담은 ‘cpbc플러스’는 ‘똑똑한’ 인공지능(AI)을 통한 전례력과 이용자 취향 등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준다. 이용자의 나이와 성별ㆍ평소 관심 있게 본 콘텐츠 등 다양한 정보를 분석한 맞춤형 시스템이다. 사순 시기와 성 요셉 성월을 맞은 3월 6일 현재는 사순 특강과 음악 피정ㆍ성경 인물 탐구 영상 등이 추천 목록으로 올라온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주소(http://www.cpbc.co.kr)를 매번 입력할 필요없이 간편히 ‘cpbc플러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안드로이드폰)나 애플 앱스토어(아이폰)에서 ‘cpbc플러스’를 내려받으면 된다. 기존 cpbc 통합 앱이 설치돼 있는 경우엔 자동 업데이트를 통해 ‘cpbc플러스’로 전환된다. ‘cpbc플러스’ 앱을 켜면 홈 화면 상단에 가톨릭평화방송이 야심 차게 선보이고 있는 대표 콘텐츠가 등장한다. 유명 크리에이터 밀라논나(장명숙 안젤라메리치)의 삶과 신앙을 다룬 ‘#해시태그 안젤라’, 가톨릭평화방송 아나운서들이 성경 73권 전권을 녹음한 ‘오디오 성경’, 고 김수환 추기경의 따뜻한 일생을 담은 인터랙티브 시리즈 ‘-김수환 추기경- 바보를 소환하다’, 성경 강좌 ‘바이블 무브’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 신부의 ‘홍성남 신부의 사주풀이’ 등이다. ‘cpbc플러스’와 함께라면 오디오 성경을 들으며 출퇴근하거나 침대맡에서 ‘성경 인강’도 들을 수 있다. 가볍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망라돼 있다.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인생은 어바웃’, 가톨릭 공동체를 하나로 모은 예능 ‘사제풋살대회 공사다夢(몽)’ 등이 대표적이다.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부드러운 위로를 전하는 ‘빠다킹 조명현 신부의 맘고생크림케이크’와 같은 명강의도 있다. ‘cpbc플러스’가 독점 제공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성 돈보스코’, ‘성 마더 데레사’ 등 해외 가톨릭 명작 영화도 깊은 감동을 전한다. 신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TV 매일미사’도 시청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콘텐츠엔 ‘좋아요’를 표시해 보던 프로그램을 다시 찾는 수고도 덜 수 있다. ‘이용 중인 콘텐츠’는 보다 말았던 콘텐츠를 일목요연하게 나열해준다. 언제든 멈춘 부분에서 재생할 수 있다. ‘추천 콘텐츠’는 AI가 입맛에 맞게 권하는 프로그램이다. 실시간으로 다른 이용자들이 주목하는 콘텐츠도 ‘Now(현재) 인기 콘텐츠’로 알 수 있다. 검색 기능도 유용하다. ‘묵주기도’로 검색하면, 영상 프로그램인 ‘묵주기도’ㆍ‘묵주기도의 신비’ㆍ‘박상운 신부의 묵주기도 학교’ 시리즈 등이 뜬다. 영상이 낱개로 뜨는 유튜브보다 편의성 측면에서 낫다. 홈 화면에 원하는 콘텐츠가 없다면, 화면 하단 왼쪽 ‘더보기’를 누르면 된다. 전례력에 따른 콘텐츠와 VOD(영상)ㆍAOD(음성), 뉴스ㆍ라이브러리(신문 연재물) 메뉴가 나온다. 아울러 후원 메뉴를 누르면 가톨릭평화방송 후원자가 될 수 있다. 사랑 나눔 프로젝트인 ‘사랑의 다리’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기사도 나온다. 실시간으로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편성표도 볼 수 있다. 손희송 주교는 3일 ‘cpbc플러스’ 출시 행사에서 “좋은 음식을 좋은 그릇에 담으면 더 맛있어 보이듯이 복음이라는 좋은 음식을 담는 좋은 그릇도 필요하다”며 “‘cpbc플러스’는 우리가 가진 좋은 콘텐츠를 잘 담을 수 있는 좋은 그릇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손 주교는 이날 ‘cpbc플러스’ 개발 비용 전액을 후원한 (주)씨젠 회장 천경준(마티아)ㆍ안정숙(가타리나)씨 부부와 ‘cpbc플러스’ 플랫폼을 개발한 뉴미디어 서비스 전문기업 SBSi 조재룡 대표이사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cpbc 이로물로(로물로) 미디어본부장은 출범 행사에 앞서 서울대교구청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와 교구청 처국장 사제단 회의 후 ‘cpbc플러스’ 설명회를 갖고 “‘cpbc플러스’는 30·40·50대를 위한 플랫폼도 된다”며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도 특화된 콘텐츠들을 제작해 그들이 신앙 안에 머물며 나아가 더욱 깊은 신앙생활 이어가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전국 교구는 사목적으로 필요한 자료들을 ‘cpbc플러스’를 통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요즘 OTT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측면에서 ‘cpbc플러스’는 좋은 시도로 신자들과 소통할 것”이라며 “‘cpbc플러스’가 각 가정과 신자들 사이에서 적극 이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재진·이학주·박예슬 기자이학주2023.03.10
![[전문]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2024년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3/29/sm01711675807072.jpg)
[전문]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2024년 부활 메시지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에페 2,10) + 찬미 예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알렐루야! 우리 모두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태초에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권위를 받아 이 모든 것을 다스릴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하느님의 숨을 받아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영광스러운 이 모습에는 큰 위험과 도전이 숨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하느님 뜻 곧 진리를 따라 살려고 하면서도, 늘 스스로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에 대해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5)라고 한 말 안에 인간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가장 큰 유혹이 담겨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제 하느님의 뜻을 찾는 대신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느님을 닮게 창조된 우리가 하느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배반한 유다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하여라.”(요한 13,27)라고 하셨고, 사도들은 그를 두고 “제 갈 곳으로” 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사도 1,25). 생명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떠나 제 갈 길을 가는 곳이 곧 죽음의 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시작된 죄를 말끔히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데에 앞장서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참 생명을 깨닫게 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외칩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에페 2,4-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신 뒤,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하신 것은 구원의 역사에서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태초에 하느님의 숨을 받아서 창조된 인간이 죄로 인해 죽음의 세력에 들자, 하느님의 외아들이 이 세상에 오시어 죽고 부활하여 그 부활의 생명이 담긴 숨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이렇게 부활은 재창조입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에페 2,10). 하느님을 닮게 창조되었고, 다시 부활의 생명으로 재창조된 우리는 이제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하느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롭게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살라고 하신 말씀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하느님께서 믿어주신다는 말씀이고, 그렇게 살도록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신뢰해 주시는 주님을 믿고 사는 우리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신비로운 존재인지 모릅니다. 부활의 신앙을 지닌 우리는 주님처럼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뜻을 설명하자면 수만 권의 책으로도 부족하지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 안에 주님의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 시작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하는 형제자매요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물어봅시다. 나에게 이웃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 사회에서 생명은 어떻게 존중받고 있고, 특별히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어떤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까? 이 세계는 어떠합니까? 많은 이들이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오래 지속되는 전쟁들로 죄 없는 이들,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런 세계적인 상황에 대하여 “여러 나라에서 자행되었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박해, 노예 매매, 민족 살상, 그리고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만드는 그 밖의 많은 역사적 사건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언제나, 늘 새롭게, 끊임없이 무뎌지지 않고 기억되어야 합니다.”(교황회칙 「모든 형제들」 248항)라고 강조하십니다. 그 외에도 생태 위기를 극복하자는 말은 무성하지만, 정작 그 실천은 아직 미미합니다. 급속히 발전하는 인공지능은 긍정적인 기대보다 더 큰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배워 선하게 살라고 예수님 안에서 다시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어떠한 일이든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합시다. 당장 우리의 관심과 도움 그리고 기도가 필요한 이웃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 아버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귀한 자녀들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선한 행동을 보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합시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 부활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 안에서 항상 행복하시기를 기도하며 주님의 강복을 전합니다.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박민규2024.03.29

책꽂이하느님의 사랑학, 신학 장재봉 신부 / 부산가톨릭신학원 “성경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이 안티오키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밝히는데, 주목할 점은 안티오키아 교회가 평신도들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중략) 아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평신도들의 ‘예수님 자랑’이 바로 안티오키아 교회의 초석이 된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예수님 이야기가 마음에 담긴 것이다.” 부산교구 신학원장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를 겸하고 있는 장재봉 신부가 쓴 초보 신학인을 위한 안내서다. 믿음이 무엇인지, 왜 믿는지부터 성령과 말씀, 십자가와 죽음의 의미에 이르기까지 신학의 다채로운 주제에 대한 깊이 있으면서도 쉬운 설명은 관성적인 신앙생활도 각성하게 만든다. 시편과 아가 쓰기 노트 가톨릭출판사 정약용은 “진정한 필사는 종이 위에 베껴 쓴 넋이 아니라 영혼 속에 새겨 넣는 것이다 ”라고 했다. 성경을 필사하는 것은 신앙인의 오랜 전통이다. 그 성경 가운데 필사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책은 ‘시편’과 ‘아가’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인 성경 가운데 ‘시편’과 ‘아가’는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이자 찬미, 노래이기 때문이다. 시의 형태로 되어 있어 문장을 음미하며 필사하기에도 적합하다. 「시편과 아가 쓰기 노트」는 순서대로, 또는 자신의 상황에 맞춰 주제를 골라서 필사할 수 있다. 짧은 묵상 글도 함께 실렸다.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종교 시인 최민순 신부가 옮긴 ‘시편’과 ‘아가’는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원뜻에 가깝고, 우리말이 지닌 아름다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숨은 행복 찾기 이충무 교수 / 바오로딸 “‘행복’을 의미하는 ‘베아티투도(beatitudo)’. 이 단어는 ‘복되게 하다’라는 뜻의 ‘베오’와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아티투도’가 합쳐진 말이라고 합니다. 베아티투도가 의미하는 행복을 풀어 설명해 보면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우리의 행복이 달려있다’는 뜻일 겁니다.”(95쪽) 극작가, 연출가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건양대 이충무(바오로) 교수의 두 번째 수필집이다. ‘대전주보’에 연재하고 있는 글들을 엮은 책으로, 따뜻한 위로, 기분 좋은 설렘, 짧지만 긴 여운이 담긴 에세이들의 끝에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마주할 수 있다. 글과 함께 더해진 삽화는 작은 재미를 더한다. 정말 하느님이 계시는구나! 이유희 / 비지아이 서울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이유희(바오로)씨의 이야기다. 6·25전쟁 중에 태어나 배고프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현실에 비관해 신앙마저 내려놓는다. 오랜 냉담 중에 철야 기도회에 참석한 그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서, 소소한 일상에서 주님을 체험한 사연들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하느님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굳이 필요 없는 글이지만 모든 것을 갖고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 모든 것이 부족해서 불행한 사람, 실망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람, 특히 냉담 중인 교우들에게 하느님을 만난 하얀 기쁨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윤하정2023.03.16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5주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cpbc.co.kr/CMS/newspaper/2023/02/rc/840048_1.3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5주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복음의 앞 문맥을 살펴보면, 산상수훈 담화문을 시작하는 ‘참행복(진복팔단)’에 바로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이 오늘의 복음 구절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행복선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 하신 다음에 바로 오늘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는 말씀이 이어지기에, 여기에서 ‘너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참행복의 정신으로 살고자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금과 빛은 일상생활에서 보거나 성경의 전통에서 볼 때, 굉장히 중요한 은유입니다. 예로부터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낼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첨가물일 뿐만 아니라, 염장(鹽藏)을 통해 식료품을 오래 저장하는 데에 필수적인 물품이었습니다. ‘빛’은 신약성경, 구약성경을 막론하고 익숙하고 중요한 은유인데, 신약성경이 아직 쓰여지기 전인 예수님 당대에는 유일한 성경이었던 구약성경에서는 ‘빛’이 주로 ‘하느님, 메시아, 하느님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 토라(율법), 성전, 예루살렘’ 등을 가리키는 은유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청중인 당대의 유다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으로 들렸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너희는’이라는 희랍어 원문 표현에서 강조법을 써서 “(예수님 당신을 따르는) 바로 너희 자신이 빛과 소금”이라는 뜻으로 ‘너희’를 강조하여 표현하십니다. 뒤이어지는 산상수훈 담화문(마태 5,17―7,12)의 가르침들이 말하자면, 어떻게 살아야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의 모습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 담화문 대신에, ‘빛’을 모티브로 오늘 제1독서를 복음과 연결지어 읽어 보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곧,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살 수 있는 길은, ‘굶주린 이에게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주는 데’에 있다고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바오로 사도가 ‘뛰어난 말이나 (인간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뛰어난 언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복음 선포하셨듯이(제2독서),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등을 통해 화려함을 자랑하기 바쁜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적으로) 뛰어난 능력이나 인간적인 드러남’으로써 ‘빛’이 되는 게 아니라, 이웃들에게 애덕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거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 자신이 이웃에게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촉구하십니다.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서울대교구장) cpbc202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