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종교 따르든 ‘정의 실현’은 공동의 과제[한국 천주교회와 이웃 종교](30) 어떤 종교를 따르든지 한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정의 실현의 공동 과제가 있다. OSV 정의 실현을 위해 여러 종교가 연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사목 헌장 69항) 정의는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고 있는 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을 수 있을 때 정의가 보장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나이와 역량과 분배된 부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차이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불평등을 고착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한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지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이와 같이 정의의 실현은 사랑의 실천과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종교를 따르든지 한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정의 실현의 공동 과제가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사랑의 계명이나 자비의 실천 등 자신의 신앙으로부터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이웃 종교인들을 비롯한 모든 사회 구성원과 협력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사형제도 폐지를 위하여 여러 종교가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복음에 비추어 ‘사형은 개인의 불가침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이기에 용납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267항) 공권력은 인권과 사회 규범을 훼손하는 범죄 행위를 억제하고자 범죄자에 대하여 형벌을 부과할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형 제도는 일부 중대 범죄에 대한 적합한 대응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그러나 사형 제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형 제도가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지 의문시되며, 사법 제도의 오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살인자라고 할지라도 그의 존재 전체가 그의 범죄 행위만을 기준으로 판단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사형 이외의 형벌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시민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범죄자의 속죄와 교정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형 제도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종교는 일찍이 사형 제도를 폐지하려고 노력해 왔고, 2000년 이후에는 범종교적 차원에서 기도 모임·연극제·포럼·음악회·미술전·정부와 대화 등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사형 집행을 중지하고 있기에, 2007년 이후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의 대열에 있습니다. 사형 제도에 대한 국민 정서의 변화에 도움이 되도록 가톨릭 신자들과 이웃 종교인들은 적극적 연대와 협력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민자와 난민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중략)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5-40) 세계화 시대를 맞은 오늘날 이주 노동자와 난민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세계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이주 노동자 문제는 이민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안에 포함됩니다. 포악한 군주의 횡포를 피하여 이집트에서 피난 생활을 한 성가정은 이주민과 난민의 전형이며 보호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창세 4,9)라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자신만을 생각하고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며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이처럼 난민과 이주민들을 대하는 ‘무관심의 세계화’를 비판하시며 세계적 차원의 형제애를 호소하십니다.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이주민들의 노동 가치는 국적·종교·인종과 무관하게 동등한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하며 그들의 ‘절박한 처지’가 재정적·사회적 착취의 기회로 악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편 이주민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문화유산을 존중해야 하며 그 나라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이주민과 난민을 하느님 자녀의 품위를 타고난 인간으로 대우하도록 강조합니다. 어떤 종교에 속하든 믿는 이는 누구나 이주민과 난민 발생의 원인이 되는 빈곤과 국제적 갈등, 그리고 곤경에 놓인 이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주민과 난민 문제는 사회 통합이라는 큰 과제를 제시합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 사회에 속하는, 믿는 모든 사람의 연대와 공동의 노력이 요청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cpbc2024.12.18

박해에 격렬히 저항, 자유 쟁취한 유다인[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4) 마타티아스와 마카베오 유다 마카베오는 기원전 164년 12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탈환한 후 25일 예루살렘 성전 정화 의식을 거행하고 새 제단을 봉헌했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기념해 하누카 축제를 지내고 있다. 오리 셔먼, ‘하누카 이야기’, 캘리포니아대학교 소장.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 원정길에 오릅니다. 그는 기원전 334년 소아시아를 점령하고, 기원전 332년 이집트를 정복합니다. 그리고 다음해 메소포타미아로 돌아와 지금의 모술 북동쪽으로 30㎞ 떨어진 가우가멜라에서 다리우스 임금을 꺾고 페르시아를 멸망시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신이 정복한 모든 지역에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했습니다. 헬라어는 정복지의 공용어가 됐고, 그리스풍의 도시가 건설됐습니다. 하지만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적의를 품고 예루살렘으로 갔으나 꿈에서 경고를 받았을 뿐 아니라 야두아 대사제에게 환대받은 후 율법과 성전 제사에 관한 유다인들의 특권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바빌론에서 숨을 거둔 후 그의 제국은 ‘디아도코이’(후계자들)라 불리는 부하 장군들에 의해 쪼개집니다. 안티고노스가 마케도니아를,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를, 셀레우코스가 시리아와 지금의 튀르키예를 차지해 왕조를 수립했습니다. 이 시기 유다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199년부터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습니다. 유다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와 셀레우코스 4세 임금의 치하에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와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바치며 몇몇 종교적 특권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다 안티오코스 4세가 임금이 되면서 혹독한 박해를 받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가 유다인들을 박해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유다인들이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민족에 동화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율법과 성전 제사를 고집해 특권을 요구했습니다. 둘째, 재물의 유혹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로마에 진 빚을 갚고 로마 원정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올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민족의 신전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셋째, 정치ㆍ군사 요인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이집트와 접경지대에 자신에게 충실한 민족을 둬 정치ㆍ사회ㆍ군사적으로 안정을 구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에 충성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안티오코스 4세는 유다인들을 종교적으로 박해했습니다. 그는 유다인의 할례를 금지했습니다. 또 돼지고기와 율법이 정한 부정한 음식들을 먹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율법 준수를 금하고 예루살렘 성전 번제단 위에 제우스의 제단을 세워 올림푸스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게 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이를 따르지 않는 유다인들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는 기원전 167년께 시작했습니다. 많은 유다인이 죽음을 두려워해 배교했습니다. 동시에 적지 않은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 4세에게 반감을 품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순교로 저항했고, 어떤 이들은 무장봉기를 했습니다. 무장 항쟁의 대표 인물이 마타티아스 사제와 그의 아들들입니다. 항쟁은 리따에서 동쪽으로 12㎞ 떨어진 모데인에서 시작됐습니다. 이 지역 사제인 마타티아스는 이교 의식을 거행하려던 유다인들과 관리를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들인 요하난, 시몬, 유다, 엘아자르, 요나탄과 동지들을 데리고 유다 광야로 몸을 숨겼습니다. 율법에 충실했던 그들은 안식일에 셀레우코스 군대가 쳐들어오자 저항하지 않고 학살당했습니다. 마타티아스가 죽자 셋째 아들 유다가 항쟁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그의 별명은 ‘마카베오’였습니다. 우리말로 ‘쇠망치’라는 뜻입니다. 이 마카베오는 마타티아스 가문의 이름이 됩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미시아의 수령 아폴로니우스와의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벳 호론 근처에서 매복해 적을 물리쳤습니다. 유다인의 무장항쟁이 거세지자 안티오코스 4세는 기원전 165년에 유다 마카베오의 반란을 진압할 임무를 리시아스 총독에게 맡깁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엠마오에 진을 쳤습니다. 유다는 이들을 기습해 물리쳤고, 유다인들의 고유한 법과 종교 관습을 인정한다는 휴전 협약을 맺습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기원전 164년 12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탈환합니다. 그는 그해 12월 25일 예루살렘 성전 정화 의식을 거행하고 새 제단을 축성 봉헌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이날을 기념해 성전 봉헌 축제 곧 ‘하누카’를 제정했습니다. 이 하누카 축제는 요한 복음 10장 22절에도 나오며, 유다인들은 지금까지도 이 축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마카베오는 셀레우코스 왕조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얻은 다음 정치 독립을 위해 계속 투쟁을 했습니다. 유다의 형 시몬이 갈릴래아 원정을 떠나 적들을 프톨레마이스까지 쫓아내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또 유다는 동생 요나탄과 함께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출정해 티모테오스 군대를 물리치고, 귀환 도중 에프론 주민들과 전투를 벌여 승리합니다. 이에 대한 구약 성경 사료는 마카베오기 상ㆍ하권(1마카 1,16-28; 2마카 4─5장)과 다니엘서(다니 11,20-28)에 나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5.16

성직자들이 안내하는 성경과 신학김희중 대주교, 이영헌·윤주현 신부 저서
성경·신학·사회교리 깊이 있게 다뤄 오랜 기간 가톨릭교회의 영성과 학문의 맥을 다져온 성직자들의 저서가 잇따라 출간됐다. 탄탄한 연구와 체계적인 구성으로 성경과 신학, 사회교리를 깊이 있게 안내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사회교리김희중 대주교 지음 / 분도출판사제9대 광주대교구장을 역임한 김희중 대주교의 저서로, 고대 교회의 위대한 교부이자 개혁가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전 생애를 통해 설파한 사회교리를 다루고 있다. 감동적인 설교 덕분에 ‘황금의 입’을 뜻하는 ‘크리소스토무스’로 불리게 된 성인은 4세기 안티오키아와 콘스탄티노플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던 가난하고 병든 이들, 노예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을 외치며 스스로 총대주교로서의 특권과 재물을 포기한 채 모든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았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삶을 반영한 그의 가르침은 경제적인 부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오로지 더 많이, 더 빨리 갖기에 급급한 우리 시대에 경종을 울린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부(富)’는 그 자체로 선이나 악이 아니며 그 쓰임새에 따라 선도 악도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태초에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었다는 이 성인의 가르침은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가진 바를 모두 내어놓고 필요한 대로 서로 나누어 쓴 결과 부족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평등한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10쪽)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살았던 안티오키아와 콘스탄티노플의 일반적인 경제, 사회, 종교적인 상황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영향을 받았던 그리스 세계의 정의 개념과 비교하며 성인의 사회정의 개념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복음서 강론, 특히 마태오 복음과 다른 여러 담화 등에 드러난 성인의 가르침에서 세속 재물의 가치와 활용, 그 사회적 기능에 대해 서술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풍요로운 재산이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에 빠져서 교만해서도 안 되며 또한 궁핍함을 하느님의 징벌로 생각하여 원망해서도 안 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하느님의 보상과 재물의 상관관계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니 이를 일반적인 원칙으로 삼지 말라고 가르치며 기복신앙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우리를 깨우쳐 준다. 정녕 우리가 주님께 청해야 할 기도는 물질적 풍요로움에만 집착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에 흡족한 자가 되는 길을 깨달아야 알 수 있는 그 은혜를 청해야 할 것이다.”(153쪽)김희중 대주교는 “12년간의 교구장직을 내려놓으며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마련한 이 책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일조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다”며 “그동안 사랑과 기도로 동행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윤주현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윤주현(가르멜 수도회) 신부가 집필한 「신학사」 시리즈가 합본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그동안 신학은 그리스도론, 교회론, 삼위일체론 등 주제를 나뉘어 탐구되곤 했다. 하지만 신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신학사도 중요하다. 이번에 출간된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는 교부 시대부터 현대까지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와 흐름을 한 시대도 놓치지 않고 정리했다. 2000년의 역사지만 핵심만 추려 한 권으로 간략하게 볼 수 있다.책은 크게 교부 시대의 신학, 스콜라학 시대의 신학, 근대 신학, 현대 신학 등 4부로 나뉜다. 그러나 세부 목차만 17쪽에 달할 정도로 각 시대에 따라 학파별, 인물별로 신학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시대를 풍미했던 신학자들의 일생과 사상, 업적까지 다뤘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교 사상 전체를 시대별, 학파별, 인물별, 교도권의 결정에 따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3세기로 들어와 마침내 신학은 ‘학문’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신학에 한정해서 본다면, 이러한 현상은 분명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대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기술적이고 개념적인 노작 기술에 불과한 3학의 소박한 학예인 변증법으로부터 이성적 정식들을 넘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인식을 담지하는 영의 철학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고전 세계의 부흥은 13세기의 인본주의와 자연주의를 포함한다. ‘지성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대변되는 안셀무스적인 신학이 이렇게 확장된 것은 토마스의 업적이다. 12세기에 아벨라르두스는 ‘거룩한 가르침’에 ‘신학’(theologia)이라는 이름을 주었으며, 알랭 드 릴은 신학적 학문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명확하게 고정하려 시도했다.”(302쪽)신학을 공부하는 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신학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학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전해주신 진리를 탐구하며, 인간의 역사 안에서 함께하신 그분의 숨결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윤주현 신부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로마 그레고리아눔에서 영성 신학을,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을 전공하고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부터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교의 신학 교수로, 수원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에서 영성 신학 교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로 2021년 가톨릭 학술상 본상을 수상했다. 마르코복음서 강해이영헌 신부 지음 / 바오로딸마르코 복음서는 그리스도교의 정경 복음서들 가운데 ‘최초 복음서’이며,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 저자들이 자신의 복음서를 엮어 편집할 때 원전으로 사용한 ‘가장 오래된 복음서’다. 따라서 실제에 가장 가까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복음서라고 말할 수 있다.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관점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활동을 보여준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나자렛 출신 예수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응답하면서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듯 생동감 있게 복음서를 엮었다. 「마르코복음서 강해」는 이영헌 신부의 성서연학총서 시리즈 아홉 번째 책이다. 1부에서는 복음서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 2부에서 6부까지는 성경 본문의 성격에 따라 프롤로그, 갈릴레아 활동, 예루살렘 여정과 십자가 따름,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활동, 그리고 부활 발현과 승천에 관한 에필로그 등으로 구성했다. 각 성경 구절과 단어를 주해하고 배경 설명을 더해 마르코복음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고 있다. 가능한 성경 원문에 충실했으며, 저자의 편견이나 선입견, 자의적인 해설을 피하기 위해 성서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도 참조하며 주석하였다.저자 이영헌 신부는 1984년 인스브루크대학교에서 성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 신학대학과 예루살렘 성서대학에서 연수했다. 20년 가까이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와 총장을 역임하고, 여러 해 동안 본당에서 사목한 후, 지금은 원로 사목자로 다양한 집필과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평화신문2023.02.01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19)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견해는 단호하다. 마르코가 전한 복음에 의하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고,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현대의 관점에선 난감한 교리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의 헨리 8세는 이혼을 위해 종교개혁의 씨앗을 뿌렸고, 성공회가 탄생하였다. 상류층에서 몰래 행해오던 이혼이 점차 인권과 행복 추구권에 대한 시각이 향상되면서 모든 계층으로 퍼졌고, 불륜 이외의 이유로도 이혼이 가능하게 되면서 귀책사유를 따지다 보니 이혼 자체가 큰 사업이 되기도 하였다. 분명 교리를 따라 이혼을 망설이는 이도 많겠지만,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맡기는 이도 부지기수다. 클래식 음악을 살펴보면 결혼에 대한 음악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혼에 대한 음악은 거의 없다. 부부가 어려움을 겪고 험난한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다 잘 먹고 잘 산다는 해피엔딩뿐이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그 유명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차용한 ‘피가로의 이혼’을 만든 작곡가가 있다. 한국 작곡가 신동일이 작년에 발표한 이 오페라는 결혼한 지 20년이 되어 콩깍지가 벗겨질 대로 벗겨진 중년 부부에게 닥친 이혼 위기를 코믹하지만 심각하게 다뤘다. 제목만 보면 모차르트의 음악을 많이 차용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도 반전 포인트다. 신동일 - 피가로의 이혼 //youtu.be/W1lhyV-uo04?si=ByrUkXU3Ib0HRA8L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 이혼에 대해 물어본 이들이 바리사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고 물었고, 예수님이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라고 하시자 “모세는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답하였다.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바리사이(Pharisees)는 바리새인, 바리새파 등으로도 불렸는데, 현대에서는 이들을 ‘원리주의자'' 또는 ‘경건주의자''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바리사이에 대해 경직된 원칙주의자라고 보는 경향이 짙어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런 이들이 예수님께 이혼에 대해 모세가 전한 율법을 언급한 것은, 원칙에 대한 엄격함으로 예수님을 반박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만일 현대에 ‘예수께서 이혼을 금지하셨다’고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이들의 행동은 바리사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리사이파는 이후 그리스도교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들의 주된 행동 양식이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고 하느님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부분이 간명하고 명백한 부분과 엮어져 있다. 가장 필요 없을 것 같은 것이 신앙의 모체가 되기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때도 있다. 신앙인은 이 흔들림을 인내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그리고 바리새인 중 하나(And one of the Pharisees) //youtu.be/CeJvyyNHFVM?si=HldIOzE3CduXx9n7 류재준 그레고리오, 작곡가 /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cpbc2024.10.02

이야기따라 요한묵시록과 함께 걷는 순례동명의 책 번역한 바 있는 염철호 신부가 풀어 쓴 요한묵시록과 순례 안내서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2-요한묵시록 염철호 신부 지음 바오로딸 ‘요한묵시록’이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종말, 죽음, 사탄 등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봉인된 두루마리를 여는 어린양(5,1-14),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13,1-18) 등 요한묵시록에 담긴 해독하기 어려운 이미지와 상징, 아무 연결점을 찾기 어려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독특한 전개 방식은 묵시록이 세상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는 하느님의 계획을 비밀스럽게 담고 있는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묵시록 저자마저 “지각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숫자로 풀이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그 숫자는 육백육십육입니다.”(13,18)라고 말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많은 상징과 신비로운 표현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권 요한묵시록. 국내에서는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우는 여러 유사종교로 인해 요한묵시록이 도드라진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우리의 미래를 예견하며 묵시록을 적었을 리는 없다. 요한묵시록은 오늘날 튀르키예 중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지금은 유적으로만 남아 있는 에페소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저술된 책이다. 2000년 전 그곳에 살던 요한이 자신의 공동체가 읽을 수 있도록 적은 것이다. 자연스레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언어 습관, 묵시록이라는 문학 장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묵시록에 담긴 모든 상징을 풀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 2」는 성지순례 안내서이자 요한묵시록 안내서다. 존 킬갈렌(예수회) 신부가 2012년 쓴 같은 제목(「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의 책을 번역했고, 여러 차례 성지를 방문했던 염철호(부산교구) 신부가 성경 본문을 바탕으로 묵시록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시대적 상황, 전승과 상징 등을 흥미롭게 풀어썼다. 성경의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 외경과 구전 자료들도 함께 다룬다. 튀르키에 에페소 요한 사도 무덤 터. 가톨릭평화신문 DB 튀르키예 에페소 요한사도성당 터 전경 책에선 특히 파트모스섬과 묵시록의 일곱 교회(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 그리고 당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적 요소들을 자세히 다룬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관련 지도, 성화 등이 더해져 이해를 돕는다. 성지순례를 직접 가지 못하는 이들도 저자의 설명과 이야기를 따라가며 묵시록과 함께 걷는 순례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수의 이름을 합산하면 888이 나오므로 666이 예수와 반대되는 구체적인 한 인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중략) 수를 상징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많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숫자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의 측면에서 6과 관련된 수, 곧 666, 600, 66, 60, 6들이 부정적인 수로 사용되는 곳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316쪽) 이 책의‘부록’에는상징의 문법과 묵시록의 구조, 666숫자와14만 4000명의 상징에 대한 해설도 실려 있다. 저자는 “최고의 성지순례 안내서는 바로 ‘성경’”이라며 “성지순례는 성경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느끼기 위한 여행”이라고 전했다. 또 “요한묵시록이 세상 종말에 대한 비밀스러운 신비를 담고 있는 두려운 책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희망과 위로, 경고와 권고를 주는 책”이라고 말한다. 염철호 신부는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대학교 부총장이기도 하다. 저서로 「신약성경의 이해 - 바오로 서간」, 「배워봅시다 성경 언어」 등이 있고,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을 번역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1.01

솔로몬의 ‘두 얼굴’… 뛰어난 정치가, 불충실한 우상숭배자[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7) 솔로몬 출처=구글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열왕기 상권 1─2장은 솔로몬이 왕위 계승 서열 1번인 아도니야 대신에 왕좌를 차지하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요압 장군과 에비야타르 사제의 지지를 얻어 다윗의 왕좌를 계승하려 했습니다. 나탄 예언자와 차독 사제, 다윗의 경비대장 브나야 등이 이에 반기를 들어 다윗과 밧 세바의 아들 솔로몬을 임금으로 세웁니다. 솔로몬은 임금이 되자 여느 권력자처럼 형제들과 반대자들을 모두 숙청합니다. “이리하여 솔로몬의 손안에서 왕권이 튼튼해졌다”(1열왕 2,46)고 성경은 밝힙니다. 솔로몬이 임금이 된 것은 사울이나 다윗처럼 카리스마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신분과 동조자들의 정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목동 출신인 다윗은 군인으로 온갖 풍파를 거친 뒤 어렵게 임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왕자로 태어나 궁전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임금이 되어 죽는 날까지 절대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는 부족 중심의 이스라엘의 전통 제도를 허물고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처럼 뛰어난 군인은 아니었지만 빼어난 정치력과 능란한 외교술로 이스라엘을 부흥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최고 번성기 솔로몬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 번성기였습니다. 영토도 가장 넓었습니다. “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필리스티아 땅까지, 그리고 이집트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를 다스렸다. 그들은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조공을 바치며 그를 섬겼다.”(1열왕 5,1-2) 열왕기 상권 3─11장은 솔로몬 시대를 소개합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솔로몬의 실록’(1열왕 11,41)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다스린 40년을 ‘평화의 시대’라고 정의합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 통치 기간을 “유다와 이스라엘은 그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많았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행복하게 지냈다”(1열왕 4,20-21)고 평가합니다. 또 “솔로몬 임금은 부와 지혜에서 세상의 어느 임금보다 뛰어났다.”(1열왕 10,23)라고 칭송했습니다. 솔로몬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외교술’이었습니다. 그는 최우선으로 실리 외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정략혼인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안정시켰습니다. 그는 이집트 21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프스센네스 2세의 딸과 혼인해 가나안인의 땅인 게제르를 지참금으로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압ㆍ암몬ㆍ에돔ㆍ시돈ㆍ히타이트 등 여러 나라의 왕족들과 혼인해 아내 700명과 후궁 300명을 뒀습니다. 솔로몬은 또 활발한 무역 활동으로 엄청난 부를 쌓습니다. 그는 해양에서 내륙으로 이어진 아라비아 대상들의 주요 무역로로 곳곳에 세관을 설치해 세금을 취했습니다. 아울러 솔로몬은 해양민족인 티로의 임금 히람과 동맹을 맺고 홍해 아카바만 에츠욘 게베르에 상선대를 두고 지중해 페니키아인들과 무역을 했습니다. 이 상선대는 팔레스티나에서 구할 수 없는 각종 귀금속과 향료, 무기 등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은 대외적으로 실리 외교를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병거대 주력의 군대를 재편성해 국방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 밖과 하초르, 므기또, 게제르에 성읍을 세우고 병거대와 기병대를 주둔시켜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아울러 개화 정책을 펴 이스라엘의 문화를 상당히 발전시킵니다. 솔로몬은 왕실에 전문 역사 기록관을 두어 여러 전승을 정리했습니다. 모세 오경 야휘스트 사료가 편집된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성경과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은 시편이나 음악에도 뛰어난 소질이 있었고 무엇보다 지혜가 깊었다고 합니다. “그는 잠언을 삼천 개나 지었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나 되었다. 솔로몬은 레바논에 있는 향백나무부터 담벼락에서 자라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초목들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관하여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모든 민족들에게서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다.”(1열왕 5,12-14) 성전과 궁전을 짓다 솔로몬은 국력을 바탕으로 20년에 걸쳐 성전과 궁전을 짓는 토목공사를 추진합니다. 열왕기를 저술한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의 토목공사 중 성전 건축을 가장 중대한 사업으로 여겨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1열왕 5─7장 참조) 솔로몬은 시온 북쪽에 있는 산마루에 주님의 집 곧 성전(聖殿)을 짓습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이 제단을 차리기 위해 샀던 땅이었습니다.(2사무 24,18-25 참조) 성전 크기는 길이 약 27m(60암바), 너비 약 9m(20암바), 높이 약 13.5m(30암바)입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길이 69m, 너비 28m, 지붕 높이 23m, 종탑 높이 45m이니 솔로몬이 지은 주님의 집은 대략 명동대성당의 대략 3분의 1 크기였습니다. 하느님 계약 궤를 모실 성전 안 지성소는 길이, 너비, 높이 모두 약 9m(20암바)의 정방형으로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레바논의 향백나무로 지은 지성소를 순금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480년, 자신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4년째 되던 해 지우 달, 곧 둘째 달에 주님의 집을 짓기 시작해 7년 만에 성전을 완공하였습니다. 그는 다윗 성에서 하느님 계약 궤를 성전으로 옮겨와 사제들과 온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성 들인 의식으로 지성소에 안치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솔로몬은 하느님께 장엄 기도와 친교 제물을 바치고 주님의 집을 봉헌하였습니다.(1열왕 8장 참조) 주님의 집을 지어 봉헌한 솔로몬은 자신과 아내를 위한 궁전도 여러 채 지었습니다. ‘레바논 수풀 궁’이라고 이름 지은 궁전은 길이 약 45m(100암바), 너비 약 22.5m(50암바), 높이 약 13.5m(30암마)로 성전보다 2배나 길고 넓었습니다. 공사 기간도 주님의 집을 짓는 기간보다 거의 곱절인 13년이 걸렸습니다. 주님께서 진노하셨다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그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이다.”(1열왕 11,9) 솔로몬에 대한 열왕기 저자의 평가입니다. 신명기계 역사가의 눈에 솔로몬은 훌륭한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지 않은 임금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두 가지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첫째, 솔로몬은 우상과 이교 풍습을 이스라엘 땅에 들여왔습니다. 솔로몬은 정략혼인으로 외국의 이교도 왕족 딸들을 아내와 후궁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솔로몬은 1000명이나 되는 자신의 여인들에게 그녀들이 섬기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종교의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산당(山堂)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행동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율법은 이교인과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들 곧 우상을 섬기게 될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율법 중 임금이 지켜야 할 규정(신명 17,14-20)도 솔로몬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이유는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이 율법을 어기고 우상 숭배를 허용해 이스라엘 신앙을 쇠퇴시키고 타락시켰다고 비난합니다. 둘째, 솔로몬은 이집트의 파라오들처럼 과도한 세금과 과중한 노역을 부과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솔로몬은 막대한 토목공사비를 세금으로 충당하기 위해 왕국을 열두 행정구역으로 나누었습니다.(1열왕 4,7-19) 세금 거두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었죠. 그리고 레바논에서 예루살렘까지 건축자재를 나르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 3만 명을 징발했습니다. 또 돌까는 작업에 8만 명, 짐 나르는 노역에 7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금의 권력에 의해 자유가 무자비하게 박탈당하고, 세속화되고, 계약 공동체의 바탕이 흔들릴 것이라는 이스라엘 첫 예언자 사무엘의 경고가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은 커졌습니다. 특히 남쪽 유다 지파의 다윗 왕가에 대한 북쪽 10개 지파의 반감이 폭발 직전까지 팽배하였습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솔로몬은 재위 내내 종교 혼합주의를 추구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전통과 외래 종교 문화를 융합 발전시키려 한 것이죠. 그 대표 사례가 성전과 궁전 건축입니다. 솔로몬은 바알 신을 섬기는 티로 히람 왕실의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감독한 성전에 하느님 계약 궤를 모셨습니다. 가나안 이교 문화가 이스라엘인의 신앙과 생활에 스며든 명백한 증거입니다. 조상들의 신앙을 소중히 여긴 이스라엘인들은 솔로몬의 외국 문화 수입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은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의 통치가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솔로몬은 기원전 약 972년께부터 40년간 통일된 이스라엘 임금으로 통치하다가 기원전 933년께 선종합니다. 솔로몬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지혜와 부귀영화의 대명사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신명기계 역사가는 하느님께 불충실한 우상 숭배자로 평가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3.28

“그냥 조금 다를 뿐인데… 장애인 바라보는 시선이 마음 닫게 해”연극 ‘젤리피쉬’로 화제 모은 다운증후군 배우 백지윤·어머니 이명희씨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엄마(이명희)와 딸(백지윤). 매일 기도·묵상하는 딸 지윤씨 “발음이 안 돼 슬퍼서 많이 울어 잘 안 될 때는 기도했어요 나는 약하지만 기도는 강하고 부족한 건 예수님이 채워주시니까” 믿음으로 살아가는 어머니 명희씨 “연극 하면서 딸 관계성 좋아져 일상서 겪는 가장 큰 불편은 ‘시선’ 발달장애인 위한 미사나 또래 만날 수 있는 활동 더 있었으면” “많이 울었어요, 슬퍼서.”(지윤) “내용이 슬퍼서요?”(기자) “발음이 안 돼서.”(지윤)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구강 구조 때문에 발음이 잘 안 되거든요.”(지윤씨 어머니) 다운증후군이 있는 주인공 켈리의 사랑과 출산을 소재로 펼쳐지는 연극 ‘젤리피쉬’가 지난 13일 막을 내렸다.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도 입체적이지만, 켈리 역을 실제 다운증후군 배우가 맡아 편집 없이 라이브로 진행되는 무대를 능숙하게 소화해 화제였다. 그래서 공연 막바지 백지윤(마리아, 33) 배우와 작품 밖 그녀의 실제 어머니 이명희(레아)씨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직접 만났다. 지윤씨가 무대나 연기에 도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문화예술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2018 평창패럴림픽 개막공연에 참여했고, 드라마 ‘고고송’(2019) 등에도 출연했다. 그런데 발음이 안 돼서 힘들었다니 의외다. 발음은 물론이고 연기 자체에 별다른 막힘이 없어서 그녀의 기능 장애가 상당히 약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암기는 힘들지 않았는데, 대사가 많고, 빠르게 얘기해야 되고, 바로 치고 나와야 하는 동선이 많아서 되게 어려웠어요. 그런데 기적으로 성장했어요.”(지윤) “지윤이가 기능이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인지적인 면에서 낮은 편에 속했어요. 그런데 이 연극을 하면서 좋아졌어요. 작년에 쇼케이스할 때는 입 안에서 말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는데, 발성 연습도 하고 무한 반복을 하면서 50~60% 정도 향상됐어요.”(어머니) 두 사람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무대 위 지윤씨, 곧 켈리는 엄청난 연습과 훈련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켈리가 비장애인 남성과 연애하는, 딱 그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작품의 내용에 대해 모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연애는 해보고 싶은데, 결혼이나 아기는 연극이고 실제로는 아니에요. 힘들잖아요.”(지윤) “극중 엄마인 아그네스와 비슷한 생각이에요. 항상 ‘지윤이가 좋은 사람하고 예쁘게 만나면 좋겠다’고 말해왔는데, 상대를 비장애인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반대할 것 같아요. 상처받을 테니까. 그런데 켈리가 아그네스에게 묻잖아요. ‘나는 장애인 남자만 만나야 하느냐’고. 지윤이의 이성 관계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어떤 기준이 있었던 거죠.”(어머니) 이제 생각이 달라졌을까. “계속 숙제인 것 같아요. 그런데 켈리의 남자친구를 연기하는 (김)바다씨가 정말 순박한 청년이거든요. 바다씨를 보면서 ‘정말 비장애인 중에 저렇게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청년이 있다면, 우리 애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극 안과 밖 두 어머니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작품에 표현된 사회의 편견, 인물들이 겪는 갈등은 매우 함축적이다. 실제 삶에서는 얼마나 다양하고 빈번한 어려움이 있을까. 지윤씨에게 일상에서 겪는 가장 큰 불편함을 물었더니 바로 ‘시선’이라고 답했다. “특히 지하철 타면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조금 거리를 둔다거나 피하거든요. 그러니까 지윤이도 지하철 타는 걸 꺼리고. 저는 가슴에 담아두거나 깊이 보지 않아요. 느끼면 저도 힘들어지니까. 30년이면 굳은살 박여요.”(웃음) 하지만 그 굳은살이 생기기 전까지는 피도 나고 쓰라리고 곪기도 했다. 캐나다 이민을 시도하기도 했고, 실제로 3년 정도는 필리핀에서 생활했다. “남다른 시선에서 아이가 좀 자유롭기를 바랐어요. 특히 사춘기 때요. 나가 보니 특별한 곳이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복지는 나을 수 있지만 또 다른 편견이 있기도 하고요. 심리적으로 편안한 곳, 덜 위축되는 곳을 찾았던 것 같아요.” 신기한 것은 이민을 생각하면서 갖게 된 신앙이 우리나라에 돌아온 뒤에도 더욱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지윤씨에게 말이다. 연극 ‘젤리피쉬’로 무대 연기 선보인 백지윤 배우. “기도의 힘이라고 아세요? 나는 약하지만 기도는 강하고, 예수님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런 기회는 예수님·성모님이 주시는 선물이니까 잘 안 될 때는 기도했어요. 묵주기도도 하고 성경 쓰기도 하고. 내가 부족한 것을 예수님이 채워주시니까.”(지윤) “자기가 할 수 있도록 계속 힘을 주신대요. 지윤이는 우리(가족)보다 더 상처받겠죠. 그런데 얘의 신심은 어느 수도자 못지않을 거예요. 주일 미사, 시간 될 때는 평일 미사도 가고, 하루 두세 시간은 묵상과 기도를 해요. 수도자가 되겠다고 해서 성소모임도 갔고요. 장애가 있어서 안 된다는 곳도 있더라고요.”(어머니) 어머니의 신심은 어떨까 궁금했다. 해맑은 지윤씨와 달리 ‘왜’라는 원망과 ‘어떻게’라는 물음을 과거에도 앞으로도 되뇌며 살아가지 않을까. “믿음은요. 음, 호흡하듯이 그냥 일상인 것 같아요. 미사에 잘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신앙에 대한 흔들림은 없어요. 믿음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성당에서도 힘든 점은 있어요. 20년 넘게 성당에 가면서 얘를 사람들한테서 떨어뜨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지윤이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너무 반갑고 신자들이 좋아서 다가가지만, 상대방은 그런 걸 이해 못 하면 불편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같은 부모들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에 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가톨릭교회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미사나 활동이 좀더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마리아에게도 미사의 그 어려운 말이 하나도 안 들어오거든요. 마지막까지 청년부 레지오 마리애도 지켰는데, 청년부가 없어지니까 얘는 또래를 만날 수 있는 미사가 없는 거예요.” 20일은 주님 부활 대축일이면서 장애인의 날이다. 그 의미를 되새기고,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일상에서도 자리 잡길 바라는 취지에서 특별히 기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두 날이 더 뜻깊게 다가올 두 사람에게 바람이나 계획을 물어봤다. “장애 때문에 불편한 게 아니에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마음을 닫게 하거든요. 그냥 조금 다를 뿐이니까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면 장애를 가진 사람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위축감을 덜 갖고 살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연극이 참 감사해요. 지윤이도 발음만 좋아진 게 아니라 켈리를 통해서 자신을 관찰하고, 배우나 제작진과 함께하면서 타인과의 관계, 남의 감정을 이해하고 맞추려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더라고요.”(어머니) “계획을 왜 세워, 그냥 그때그때 잘 살아요. 예수님이 다 해주실 거예요!”(지윤) 기자의 우매한 질문에 현명한 답을 던지고 공연 준비를 위해 지윤씨가 먼저 자리를 뜨자 조심스레 어머니에게 물어봤다. 켈리처럼 지윤씨가 아기를 낳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지윤이가 태어났을 때 나한테 올 아이니까 왔다고 생각했어요. 지윤이가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아그네스처럼 도와야죠. 다운 아이는 내가 키워봤으니까. 그런데 극의 대사처럼 제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장애라면 또다시 겪어낼 자신은 없어요.”(웃음)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4.16
![[전문] 수원교구 이용훈 주교 2024년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3/29/fxL1711675846370.jpg)
[전문] 수원교구 이용훈 주교 2024년 부활 메시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 경청과 식별로 동행하는 수원교구!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 친애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부활하시어 함께 걸으시는 주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은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 부활절을 맞는 우리 모습을 보여 줍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주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기대와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힘없이 엠마오를 향해 뚜벅뚜벅 걷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시며 말씀을 건네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들 마음속 기다림과 희망, 좌절과 절망을 경청하고 함께 나누시며, 그들의 소중한 길벗이 되어 주셨습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당신에 관한 일을 설명해 주시자 그들 마음은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집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빵을 나눌 때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바로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길을 걷는 아름다운 여정과 뜨거운 체험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십니다. 경청과 식별로 동행하는 수원교구 우리 교구는 2024~2026년 3년간 걸어갈 사목교서로 ‘경청과 식별로 동행하는 수원교구’라는 표어 아래 교구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였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천 년 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환난과 시련이 아무리 크고 무겁다고 할지라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짓누를 수는 없습니다. 그 희망의 토대 위에 우리 교구의 복음화 여정을 걸어갑시다.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우리 가운데 활동하신다는 강한 확신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가도록 합니다. 때로는 그분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절망과 좌절 속에 헤맬 때도 있지만, 그분은 결코 우리를 버리거나 외면하시지 않고 늘 우리 길 가운데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고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더불어 살고 있는 이웃 형제자매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모든 이에게 희망이 되는 주님의 복음을 기쁘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희망의 순례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5년을 희년으로 선포하시고 ‘희망의 순례자들’을 표어로 선정하셨습니다. 또한 2024년을 희망의 순례자들이 희년을 영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 희년의 표어인 ‘희망의 순례자’는 교회가 코로나 감염병과 지구촌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 등으로 인해 절망에 빠진 인류에게 희망의 표징이 되어 주기를 당부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지향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겪으며 영광에 들어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루카 24,26 참조)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끈질기게 인내로 버텨 내며, 희망을 자아내도록 하는(로마 5,4 참조) 희망의 증인입니다. 이 시대는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에 찬 증언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도 이러한 지향을 바탕으로 내년에 있을 희년을 영적으로 준비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 세계 교회와 일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탈종교 시대와 부활의 증인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사회에는 점차 탈종교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경제·문화적으로 개개인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삶의 방식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로봇과 인공지능이 진화하고, 각종 스포츠, 오락과 놀이(엔터테인먼트)가 전 세계에 ‘문화혁명’이라 불릴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사회의 급속한 변화는 사람들을 종교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직접적 원인이 됩니다. 무엇보다 탈종교화를 부추기는 가장 주된 원인은 과학적으로 입증이 가능한 현상만 신뢰할 수 있고, 육체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만 믿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우리 부활 신앙에 큰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한 다음에야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부활 신앙이 이 시대에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삶이 진정 인간다운 삶인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부활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희망을 둡니다(로마 8,24-25 참조). 그렇기에 예수님 부활의 첫 선포자인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사도 2,14-36 참조)에서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사도 2,32)이라고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부활에 관한 성경의 증언만이 아닌,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뵙고 회개한 제자들, 좌절과 절망, 두려움과 죽음을 딛고 불멸의 희망으로 다시 일어나 세상 속으로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한 제자들의 삶이야말로 부활의 또 다른 증거가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가운데 고통받고 있는 이들, 특히 두려움과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불을 지펴 주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위로 삼아 큰 힘을 얻고 희망의 증인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수원교구의 주보이신 평화의 모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2024년 3월 31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 수원교구장 이 용 훈 마티아 주교 cpbc2024.03.29

기도와 예수 (2)[월간 꿈 CUM] 복음의 길 _ 제주 이시돌 피정 (6) 예수가 광야에서 유혹을 받을 때, 성경구절을 인용해 악마를 꾸짖었습니다. 그렇게 예수에게는 기도의 중요한 부분이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는 어떤 결정이나 위기를 앞두고, 예를 들어 유혹받을 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때, 제자들을 선발할 때, 세례자 요한의 참수 소식을 들었을 때, 혹은 체포와 죽임이 임박해 있을 때, 그럴 때마다 기도하신 것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래의 기도는 예수가 한 기도 중에서 그 이유가 상세히 쓰여 있는 유일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확실히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마르 14,33-34)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루카 22,44) 예수의 기도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예수의 기도 방법은 먼저 그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느낀 다음, 그것을 드러내어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 요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는 기도를 할 때 매우 솔직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곧 발생하게 될 공포와 두려움의 그 일을 피하게 해달라고 탄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일이 무엇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이 최선이라고 신뢰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진정으로 원했습니다. 예수가 느꼈던 비탄과 두려움은 단지 앞으로 감내해야만 할 엄청난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인간 예수로서의 사랑이 악과 증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기에, 그가 견뎌야 할 잔혹한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사랑을 실천 못 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는 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제자들에게 예고한 바 있지만, 실제로 닥치게 되었을 때 겪게 될 고통의 실체를 그제야 비로소 체감하였을 것입니다. 저 또한, 한국에 처음 봉사하려고 마음먹고,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도 앞으로 제가 떠안게 될 현실에 대해 전혀 느끼질 못했으니까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어느 날 밤 문득 잠에서 깨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부모님과 정말 진지한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부모님이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을 엄청 후회하게 될 것 같다고 걱정(염려)했습니다. 물론 자라면서 그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왔고,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날씨, 친구들, 스포츠, 뉴스, 학교, 일 같은 것들이요. 그렇지만 부모님과 ‘마음과 마음’으로 깊은 대화를 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잠시 아일랜드로 귀국했을 때야 비로소 그분들과 깊은 대화를 해야 할 필요를 깨닫게 되었고, 그렇게 깊은 대화가 시작되기까지 수년이 걸렸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좋지 않았던 기억이나 감정들, 또 감사했던 일들을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있다는 말도 나누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와 부모님과의 관계가 달라졌고,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 기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하느님께 다가갈 때 많은 이들이 자기 삶의 겉만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예수는 겟세마니에서 기도할 때, 자신의 존재 가장 깊은 곳을 드러내 말한 것입니다.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서 끔찍하게 죽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라고 저는 믿지 않습니다. 어떤 고통이나 죽음이 있더라도, 인간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또한 예수는 자신의 죽음에 관여한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요청함으로써 필요한 은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상 끝날 때까지 사랑할 것이고,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갈 것입니다. 글 _ 이어돈 신부 (Michael Riordan,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제주교구 금악본당 주임, 성 이시돌 피정의 집 담당) cpbc2024.11.25

이스라엘을 통일한 다윗, 황금기를 이루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6) 다윗 구약 성경은 다윗이 가장 훌륭하고 이상적인 임금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율법을 지킨 임금이기 때문입니다. 카라바조 작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빈 미술사박물관. 하느님께서 사울을 내치셨습니다. 사울이 길보아 산 전투에서 패하고 자결하자 유다 지파 베들레헴 출신 이사이의 작은아들 다윗이 헤브론에서 기름 부음을 받고 유다 집안의 임금으로 세워졌습니다.(2사무 2,1-6 참조) 그의 나이 서른이었습니다. 유다 왕국의 태조가 된 다윗은 사울 집안인 벤야민 지파의 이스라엘과 통일 전쟁을 벌입니다. 다윗은 7년 6개월간의 오랜 싸움 끝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통일합니다. 그의 나이 서른일곱이었습니다. 사울의 왕위를 계승한 이스 보셋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캅과 바아나에게 살해되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 계약을 맺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추대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통일한 첫째 임금으로 40년간 통치합니다.(2사무 5,1-5 참조) 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다윗은 최우선으로 열두 지파를 통합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다윗은 유다 땅 헤브론도 아닌, 벤야민 땅 기브아와 요르단 강 건너 마하나임이 아닌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중립 지대에 수도를 정하고 왕궁을 짓기로 합니다. 그곳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쪽 부족과 북쪽 부족들의 경계선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당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도 속해 있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그곳은 가나안 여부스족이 사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우물과 지하 수로를 통해 몰래 숨어들어 가 예루살렘을 점령합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의 개인 영지가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다윗의 도성’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은 티로의 향백나무와 돌로 궁을 세웁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신하를 두고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갖춥니다.(2사무 14,4-17; 15,1-6. 2사무 8,15-18 참조) 예루살렘을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한 다윗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국가를 안정시키는 일에 주력합니다. 다윗은 먼저, 하느님의 계약 궤를 키르얏 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옵니다. 그리고 계약 궤를 천막 안에 모십니다. 이로써 다윗은 모세 시대로부터 내려온 두 가지 주요한 성물인 계약 궤와 천막을 합치시킵니다. 또한, 놉에서 사제들이 숙청될 때 살아남은 엘리가의 에비아들을 비롯한 사제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왕실 소속 사제로 둡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현존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비로소 다윗의 도성은 ‘하느님의 도성, 시온’이 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으로부터 종교적으로 모세의 전통을 이어받은 지도자로 인정받습니다. 다윗의 야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계약 궤를 모신 낡은 천막을 이웃 나라의 신전을 모방해 화려한 왕궁의 성전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그러나 부족 동맹 시대의 보수적 정신을 대변하는 나탄 예언자가 이를 반대합니다. 나탄은 다윗에게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2사무 7,6)라고 환시에서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다윗은 성전을 짓는 것을 포기합니다. 다윗은 종교적 기반이 다져지자 정복 전쟁을 펼칩니다. 그는 필리스티아인들을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내고 모압을 굴복시킵니다. 또 암몬과 아람, 에돔을 물리치고, 티로의 페니키아인들과는 연합을 맺습니다. 그는 이집트 홍해 아카바 만에서 레바논 산맥 헤르몬 산악지대와 다마스쿠스, 지중해 해안에서 아라비아 사막까지 지배하는 소제국의 통치자가 됩니다. 그가 정복한 땅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성조들에게 약속하신 땅의 이상적 경계를 보여줍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한 임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에게 나탄 예언자를 통해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의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축복하십니다.(2사무 7,12-14)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고 약속하십니다.(2사무 7,16) 이를 ‘다윗의 계약’이라 합니다. 다윗의 계약은 별다른 조건 없이 그대로 왕위가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는 무조건의 약속입니다. 시나이 산 계약에서는 십계명을 충실히 지켜야 복을 받는다는 엄한 조건이 따르지만, 다윗의 계약에는 그러한 조건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다윗의 후손 ‘메시아’와 시온-예루살렘은 다음 시대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것으로 보는 약속의 성취에 이르기까지(루카 1,32-33) 점점 더 확고하게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백성을 위한 하느님 구원의 표지로 확장됩니다. 구약 성경은 다윗이 가장 훌륭하고 이상적인 임금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율법을 지킨 임금이기 때문이라고 신명기계 역사서는 평합니다. 다윗은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다 기원전 970년께 일흔 살이 조금 넘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3.22

우리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는 희망의 순례자들[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00. 희망 세상의 모든 씨앗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한 희망으로 온갖 ‘때’를 거친다. 새해, 진정한 희망을 찾고, 그것을 향할 때다. OSV 지나온 밤이 너무 외롭고 걸어온 길이 너무 멀다고 느껴질 때, 행운은 단지 운 좋은 자들의 몫이고 사랑은 강한 자들만의 것이라는 헛헛한 덧없음이 밀려올 때, 바로 그 때,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라고 한다. 땅 속 깊이에서 죽은 듯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느껴보란다. 한겨울 지독하게 깊은 땅 속, 시리고 차가운 눈 아래에 잠들어 있는 작은 ‘씨앗’이 있단다. ‘때’가 되면 찬란한 태양의 사랑으로 기지개를 펴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장미꽃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라고 벳 미들러(Bette Midler)의 곡 ‘장미(The Rose)’는 노래한다. 때로는 ‘사랑이 연약한 갈대의 숨을 조이는 강과 같고, 피를 흘리고 상처를 주는 면도날과도 같아 아무리 사랑해도 허기질 수밖에 없는 결핍’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아플 ‘때’ 그렇게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가 바로 한겨울 깊은 곳, 시리고 차가운 곳에서 숨죽이며 버티며 기다리는 아주 작고 작은 ‘씨앗’에게서 희망을 찾는 ‘때’란 것이다. 희망이란 단지 긍정적인 결과만을 기대하는 행위나 불확실함 속에서의 막연한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고달픈 현실을 부정하면서 그저 ‘잘 되리라’ 희망하는 심리적 고문도 아닐 것이다. 현재에서 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그저 맹목적 방어막으로 희망한다면 이 또한 희망이 아니다. 누군가는 희망이 ‘공상’이고 살기 위한 ‘도피’라고도 하지만, 이는 ‘희망’이 아닌 ‘열망’일 것이다. 노력하면 반드시 무언가 얻으리라는 확신 역시 희망이 아니다. 만약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과 좌절, 분노의 기운이 올라온다면 희망이 아니라 욕망했기 때문이다. 진짜 희망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로마 4,18)한다. 희망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흔히 옛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성경 예언자들은 괴나리 봇짐 하나만 달랑 메고 용감하게 수천·수만 리를 걷고 또 걸어 목적지로 향한다. 대단한 인물도 아니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닌데 숱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 멈추지 않고 헤쳐나간다. 이들은 희망하며 순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무엇보다 하느님과 시선을 맞추며 충실하게 특별한 ‘때’를 거치고 또 다른 ‘때’를 맞이한다. 희망은 내가 주인이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포기하거나 무릎을 꿇을 수 없다. 희망하며 순례하는 사람에게는 만남도 이별인지라 멈춰야 할 종점도 없다. 하늘 아래 있는 그 모든 존재에게는 다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씨앗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한 희망으로 온갖 ‘때’를 거친다.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흩어지는 이별의 때가 있고, 강한 바람을 타고 높이 날거나 비바람에 짓눌려 헤맬 때도 있다. 눈 속에 묻혀 긴 침묵을 지켜야 할 때가 있고, 먹이를 찾는 새들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숨죽여 숨어야 할 때도 있다. 그 어느 ‘때’에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따스한 태양의 빛을 황홀하게 누릴 때, 시원한 비를 마시며 성숙해갈 때, 그러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그 ‘때’를 또 희망한다. 그러다가 딱딱한 흙의 장막을 온몸으로 버겁게 뚫고 올라와 찬란한 세상을 꿈꾸지만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자국에 놀라 몸을 사리며 숙여야 할 때도 분명 있다. 희망은 이 모든 ‘때’를 감내한다. ‘때’는 특정한 순간, 특별한 경험을 하는 희망의 시간이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또 뽑을 때도 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도 있고, 함께할 때가 있으면 또 헤어져야 할 때도 있다. 말할 때가 있으면 침묵을 지킬 때도 있고. 싸울 때가 있으면 평화를 누릴 때도 있다. 서로 사랑할 때가 있으면 또한 미워할 때도 있다.(코헬 3,1-8 참조) 이 모든 ‘때’가 바로 희망하는 순례자가 거쳐야 할 길이다. 무엇보다 순례자는 그 어떤 환난의 ‘때’가 와도 자랑으로 여긴다. 희망은 결코 순례자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로마 5,3-5 참조) <영성이 묻는 안부> 새해입니다. 새로운 시간 속에 채워질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하게 되는데요. 새해가 되면 우린 어떤 계획을 세우죠. 마치 ‘씨앗’을 뿌리는 농부처럼요. 사랑의 씨앗, 취업의 씨앗, 다이어트의 씨앗, 스펙의 씨앗, 건강의 씨앗, 노후 준비의 씨앗 등을 뿌리겠지요. 그렇다고 모든 씨앗이 좋은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저기 바람을 타고 흩날리면서 수많은 사건과 상황 안에서 그 씨앗을 지키려고 노력하겠지요. 어떤 씨앗은 바람이 두려워 칸막이를 치고 어두운 구석에 숨어있겠지만, 그러면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겠지요. 어떤 씨앗은 차갑고 어두운 땅 속을 피해간다면 바다에 휩쓸리거나 콘크리트 바닥에 그냥 남아있게 될 수도 있고요. 어떤 씨앗은 여기저기 방황하다 새나 동물에게 먹힐 수도 있고요. 하지만요. 새해의 우리 계획이 제대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좌절하는 수많은 그 ‘때’가 오더라도 우리는 희망합니다. 우리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는 희망의 순례자들이니까요. cpbc2024.12.31

“가장 좋아하는 교황 직함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프란치스코 교황 자서전 「희망」전 세계 100여 개 국서 동시 출간 출간된 자서전을 보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 이재협 신부 외 3인 옮김 / 가톨릭출판사 교황명 프란치스코로 선택한 이유 산타 마르타 집에 살게 된 배경 죽음·장례에 대한 생각 등 담겨 한글 번역본엔 방대한 주석 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이 허상이 아니며 우리를 실망시키지도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이는 영원한 봄날에 꽃을 피우려고 태어납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당신께서 함께하지 않으신 순간은 제 기억 속에 없나이다.’”(9쪽) 프란치스코 교황이 6년간 직접 집필한 「희망」(원제 ‘Spera’)이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동시 출간된다. 「희망」은 최초의 교황 자서전으로, 교황은 삶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가치인 ‘희망’을 다채로운 에피소드와 함께 노래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 2013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다. 늘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가난한 이들의 교황’으로 불리며,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데 힘써 여전히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로 꼽힌다. 책은 교황의 생애 주기를 따라 1장부터 25장까지 전개된다. 전반부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조상들의 이야기, 부모 세대가 겪은 전쟁의 아픔을 비롯해 신앙의 뿌리가 뻗어 나간 유년기의 다양한 경험을 소개한다. 후반부에서는 젊은 시절의 고민과 사제성소를 식별하고 예수회 공동체에서 열정적으로 사목했던 일들, 사도좌에 앉게 된 콘클라베(교황 선출) 과정 등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한 이유, 사도궁 내 교황 관저가 아닌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살게 된 배경도 담겨 있다. “제 이름이 77번째로 호명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중략) 브라질 타쿠아리 프란치스코회 신학교 출신의 우메스 추기경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를 따뜻하게 포옹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 말씀이 저를 깊이 찔렀습니다. 온몸으로 와닿았습니다. 바로 그때,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제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331쪽) 1970년대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18살 때 첫 신분증. 프란치스코 교황 신생아 때 모습. 고령에도 이라크·일본·몽골 등을 찾아 나선 행로, 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 노력한 다양한 이야기도 펼쳐진다. 최근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모든 분쟁 지역의 희생자들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던 교황은 이주와 전쟁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한다. 대규모 이주민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바로 전쟁이며, 무기를 든 전쟁이 아니더라도 기후 변화와 빈곤 같은 소리 없는 전쟁이 수많은 희생자와 가장 작고 가난한 이들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맡기신 절박한 소명을 우리가 피할 길은 없습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조차 없는 이, 억압받는 이, 바닥으로 내몰린 이, 고아와 과부, 이방인과 이주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중략) 오늘날 전쟁은 세계의 특정 지역에서 벌어지지만, 그 전쟁에 쓰이는 무기들은 다른 나라에서 만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기를 만든 나라들이, 바로 그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들의 입국을 거부합니다.”(35쪽) 한 세기에 가까운 이야기가 담긴 만큼 세대별·상황별로 특별히 와닿는 메시지도 있을 것이다. 교황은 젊은 시절 실수를 솔직히 털어놓는가 하면 정치적·사회적으로 급변하는 현대사를 한 인간이자 사제로 겪어온 이야기 등을 진솔하게 기록했다. 다양한 예술작품과 여러 예화를 통해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생각을 전한다. 무엇보다 쉽고 포근한 문체가 세대와 국경을 아우른다. 가족과 신생아 때의 모습 등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들도 친근함을 더한다. 교황은 “진실은 주님께서 우리 삶의 시간을 주관하신다는 것”이라며 “수술을 받을 때에도 교황직 사임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적었다. 다만 “선출 직후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교황청 국무원장에게 사임서를 맡겨 두었고, 죽음에 대해 아주 현실적인 태도가 있다”고 언급했다. “때가 되면 저는 성 베드로 대성전이 아닌 성모 대성전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바티칸은 제가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집일 뿐, 영원한 안식처는 아니니까요. 지금은 촛대 보관용으로 쓰이는 방에서, 제가 늘 의지하고 교황 재임 중에 백 번도 넘게 은총의 품에 안겼던 평화의 모후 곁에 잠들 것입니다. 그렇게 저를 위한 모든 장례 준비는 끝났다고 합니다. 교황 장례 예식이 너무 성대해서 담당자와 상의하여 간소화했습니다. 화려한 장례 제대도, 관을 닫는 특별한 의식도 없애기로 했습니다. 품위는 지키되, 다른 그리스도인들처럼 소박하게 치르고 싶습니다.”(343쪽) 프란치스코 교황은 책에서 ‘가난한 이들의 교황’이라는 수식어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복음은 모든 이를 향해 열려있으며, 개인이나 계급·처지·집단을 차별하지 않기에 교황 역시 모든 이의 교황이라는 것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교황 직함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다. 모든 이를 섬기고 모든 이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교황이 걸어온, 또 걸어갈 발자취에 담긴 ‘희망’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당초 교황 사후에 공개될 예정이던 책은 2025년 가톨릭교회 정기 희년을 맞아 출간이 결정됐다. 이번 희년의 주제가 ‘희망의 순례자들’로, 전쟁과 분쟁,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갈등, 개인적 아픔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 사랑과 용기를 전하기 위함이다. 「희망」 번역은 서울대교구 이재협 신부를 비롯해 바티칸뉴스 한국어 번역팀이 맡았다. 원서에는 포함되지 않은 방대한 주석이 추가됐다. 가톨릭은 물론이고, 유럽 및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인물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번역진은 “이 책은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넘어서는 영적 유언이자 우리 시대에 거는 교황의 대화”라고 전했다. 책은 예약 판매가 시작돼 10일부터 접할 수 있을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해 1969년 사제품을 받았다.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을 지냈고,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됐다.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됐고, 2014년 8월 우리나라를 방문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을 집전하기도 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이미지 출처=가톨릭출판사윤하정2025.03.05

카나의 혼인 잔치[월간 꿈 CUM] 복음의 길 _ 제주 이시돌 피정 (7)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제주 성이시돌 목장 새미은총의 동산 조형물)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요한 2,1-5)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하셨다.”(요한 2,7-8) 주방장이 이것을 맛보았을 때에 물이 포도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좋은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네 개의 복음서를 간략히 살펴보더라도, 예수가 먹고 마셨다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당시에 누군가와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들을 인정하고 또 그들과 함께 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식탁 친교’라고 불리는 것으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잘 나가고 교만한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과 기꺼이 먹고 마시는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는 어느 누구라도 차별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 당시 사람들이 죄인으로 여기거나 소외시킨 이들과 자주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비전과 일치하는 행동이었고, 더 나아가 그 식사 자체가 하느님 나라 구현의 징표였습니다. 예수가 나눈 두 가지 중요한 음식은 그의 첫 번째 기적인 카나 혼인 잔치의 음식, 그리고 죽기 전 제자들과 함께 하며 종처럼 그들 발을 닦아주던 파스카 음식이었습니다. 카나에서 우리가 예수와 함께 결혼 잔치에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저는 적어도 여섯 개의 다른 나라 결혼식에 참석해보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결혼식 도중에 술이 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카나 결혼잔치 이야기를 묵상해보면서 저는 어떻게 술이 떨어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상상해보았습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이 일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말입니다.(예수에게는 이미 먹보요 술꾼이라는 명성이 있었지요) 이 점이 왜 어머니 마리아가 그에게 술 떨어진 사실을 알렸는지를 설명할 수도 있으니까요. 처음에 예수는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배경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것 같구요. 그는 결코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는 결혼잔치를 위해 포도주를 제공했습니다. 이전에 광야에서의 유혹을 떠올려봤을 때, 돌을 빵으로 바꾸는 것과 여기 카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의 차이점 무엇입니까? 왜 하나는 안 하고 다른 하나는 합니까? 광야에서의 유혹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었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은 신혼부부를 곤란하지 않기 위해서 한 것이고, 또한 공동선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가 세상 여러 곳에 발현하여 메시지나 가르침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가끔씩 듣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의 유일한 가르침은 이 카나 혼인 잔치에서 하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입니다. 만일 이 가르침과 다르다면, 그 어떤 메시지도 성모 마리아로부터 나왔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일부 그리스도교에서는 술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술의 남용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합당하고 적당하게 사용된다면 술은 여러 이로움도 줄 수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는 당신의 행동으로 술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동정으로 사는 것을 결혼생활보다 더 성스럽고 나은 삶이라고 장려하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성은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 또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있어 유혹의 근원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때까지도 출산한 여자가 교회 전례에 다시 참석하기 위해서는 교회로부터 축복 받아 깨끗해져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스러움에 대한 왜곡된 이해로부터 온 것입니다. 즐길 만한 것들은 모두 성스럽지 않음이나 죄악을 나타낸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는 초기 교회 시대에 유행했던 세속적 철학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교회가 예수 본래의 길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신랑 신부 이 두 사람이 교회 안에서 고백한 혼인동의는 혼배성사의 핵심이며, 부부간의 결합을 통해서 혼배성사의 완성을 이룹니다. 실제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랑의 행위인 성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부간의 성생활은 하느님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아주 거룩한 행위입니다. 글 _ 이어돈 신부 (Michael Riordan,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제주교구 금악본당 주임, 성 이시돌 피정의 집 담당) cpbc2024.12.31

가톨릭 하상 앱 출시 2주년… 서울대교구 전산정보실장 최장민 신부 ‘현금 없는 사회’에서 신자 사목 중심 플랫폼이 될 수 있게 앱을 확장할 것” 가톨릭하상 애플리케이션을 설명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전산정보실장 최장민 신부. 주일 헌금과 교무금을 납부할 수 있는 '가톨릭 페이' 기능이 탑재된 가톨릭 하상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된 지 2년 앞으로 다가왔다. ‘현금 없는 세상’에 교회는 봉헌금과 교무금 납부, 미사예물신청을 스마트폰 앱을 통해 할 수 있도록 2023년 부활절을 맞아 본격 출범했다. 현재 가톨릭 하상 앱 가입자는 6만 2000명, 가톨릭 페이 가입자는 2만 2000명이다. 서울대교구에 이어 수원교구, 의정부교구 등 지역 교구에서 시범 운행 중이며, 올해 중으로 인천교구는 12개 지구별 1개 본당별로 시범 운영되고, 부산교구는 전면 운영될 예정이다. 가톨릭 하상 앱을 사용해본 신자들은 앱을 통해 교무금과 헌금을 봉헌할 수 있어 편리하다는 목소리를 내놓는다. 하지만 아직 보급이 원활치 않아 내 본당에서도 사용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는 아쉬움도 신자들에게서 흘러나온다. 이처럼 각기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가톨릭 하상 앱의 현 주소와 앞으로의 방향을 양업 시스템의 관리 책임자인 서울대교구 전산정보실장 최장민 신부에게 물어봤다. 최 신부는 “그동안 미비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시스템 고도화 프로젝트를 끝마쳐 타 교구로의 확장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현금 없는 사회’에서 신자들의 사목 중심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앱을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가톨릭 하상 앱이란 무엇인가요? “가톨릭 하상 앱은 전체적으로 신자들이 편리하게 모바일로 이용할 수 있는 가톨릭 플랫폼입니다. 이 안에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담아놓으려고 한 플랫폼입니다.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는 성 정하상 바오로의 이름을 본땄습니다. 이 안에는 매일미사나 성무일도, 성경, 성가 등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전까지의 포털과 다른 점은 명확하게 자기 교적과 연결할 수 있는 앱입니다. 지금까지의 굿뉴스 등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열심한 신자를 체크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가톨릭 하상을 통해 교적과 연결함으로써 자신의 신앙 생활을 축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 굿뉴스와 다른 플랫폼들을 가톨릭 하상으로 일원화해 하나의 플랫폼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페이는 가톨릭 하상 앱의 일환 중 하나입니다. 다만 가톨릭 페이가 두각이 되다보니, 본당에서도 신자들이 헌금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하는 반감도 있긴 합니다. 다만 이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편리하게 하고자 만든 것인데, 그렇게 이야기가 되니 아쉽기는 합니다.” - 가톨릭 하상과 가톨릭 페이의 성과는 어떠한가요? “서울대교구 위주로 사용되고 있어 아직 미미하긴 합니다. 전국 가톨릭 하상 가입자는 6만 2000명, 가톨릭 페이 가입자는 2만 20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서울대교구 내에서는 홍보가 많이 돼 상당수 신자 분들이 알고 계십니다. 수원교구나 의정부교구 등 수도권에서도 많이 사용합니다. 3월 초부터는 부산교구에서 전면적으로 사용될 예정이고요. 다만, 이제 지방 교구에서 사용하는 것이 의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대교구 내에서도 정체기가 왔는데, 지방 교구에서 활발하게 사용하시다 보면 서울대교구에도 자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타 교구에서 사용하는 폭이 넓어지게 된다면 서울대교구에도 자극이 되고 많은 분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가톨릭 페이의 도입으로 교무금과 봉헌금이 늘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표본이 적어 정확하게 언급하긴 어렵지만, 주일 헌금과 교무금 집계가 오르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 다만 2년 동안 보급이 늦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신자들 사이에서 제기됩니다. “사용자가 아주 매끄럽게 편리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초창기 생체인식 로그인이 되지 않았고, 자동 로그인 등 불편사항이 있었습니다. 성급히 출시한 점에 대해선 인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를 수정하는 데 바빴고 전면 개편을 해야 했습니다. 또,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실물로 헌금을 정성스레 바쳐야 한다는 그동안의 인식도 널리 보급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생각합니다. 이렇다 보니 신자 분들이 예물준비 시간에 버벅거리고 다시 QR코드를 찍으러 들어갔다 나오시다 보니 가톨릭 하상의 인식 개선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지요. 점차 이를 개선하고자 고도화 작업을 진행했고, 지난해 연말 작업을 완료해 속도 개선과 생체 인증 로그인을 도입했습니다. 이미 양업 시스템도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축했다 보니 수치만 입력하면 전산상에 자동으로 입력돼 각 본당에서도 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지난해 12월부터 이벤트를 통해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제 점차 규모가 큰 교구에서 활성화가 된다면 작은 교구로 옮겨 갈 테고 정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편리성은 높이되, 예물 준비 시간이라는 전례 예식을 맞추고자 봉헌 바구니에 놓인 QR코드의 인식률을 높였습니다. 부산교구에서는 미사 중에 QR코드가 탑재된 플라스틱 카드를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신자들은 미사 전 문에서 카드를 가져가 QR코드를 찍고 봉헌 시간에 카드를 봉헌 바구니에 넣는 식으로 미사가 진행된다면 편의와 전례 모두를 챙기는 것이지요.” - 신자들, 특히 어르신들 중에는 헌금을 낼 때 새 돈을 봉헌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 강한 것 같습니다. 보급 확대까지 장애물은 없을까요? “그런 걱정들을 많이 하십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르신들을 만나 보니 되게 앱을 잘 활용합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쓸 수 있습니다. 어르신 분들도 한 번, 두 번 사용하시면서 활용을 잘하십니다. 그분들에게 이용하는 이유를 들어보니 기부금 영수증 처리와 연말정산이 연동되기 때문에 잘 이용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 분들이 편리하다고 입을 모으십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현금을 잘 사용하지 않는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봉헌이라는 개념과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 문화가 부딪히기 때문에 일어난 상황이라고 보입니다. 언제나 전환기에 이런 것들이 부딪혀 오는 것입니다. 현금으로 봉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지만, 이제 ‘현금 없는 세상’이 됐을 때 봉헌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앱을 통해) 헌금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좋은 기회입니다.” - 앞으로 가톨릭 하상 앱은 어떻게 확장될까요? “앱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도입될 겁니다. 이미 챗봇을 집어넣었지만 ‘AI 할루시네이션(환시 현상)’으로 기술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고자 가톨릭 대사전을 데이터베이스화했습니다. 교구에서 빠르면 올해쯤 AI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AI 뿐 아니라 본당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데 가톨릭 하상이 잘 구축되면 사회의 어떤 것들을 하는 데로 확장해나갈 겁니다. 성물을 사거나 가톨릭 상점들을 이용할 때에도 가톨릭 페이로 결제할 수 있도록 말이죠. 또 논의했던 것이 교적 연동이 되는 앱이니 교적·세례증명서를 가톨릭 하상 앱에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 이준태 2025.03.21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평신도 주일에 읽을 만한 책개개인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닌 사명과 역할을 되새기는 평신도 주일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복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봤다. 욥기의 자구적 주해 / 성 토마스 아퀴나스 / 안소근 수녀 옮김 /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라는 진술에서 욥은 사람들이 겪는 현세적 역경들 역시 하느님 섭리의 결정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고백한다. 여기서, 현세적 선들을 잃더라도 하느님께 불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나타난다. 무상으로 그것들을 주셨던 분은 그것을 일시적으로 주셨을 수도 있고 끝까지 주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144쪽) 「욥기의 자구적 주해」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주해한 구약 성경의 ‘욥기’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하느님께 축복받은 의인이라 여겨졌던 욥이 사탄의 시험으로 고통받았으나, 결국 하느님 은총과 축복을 통해 그분께로 나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인은 욥기를 영적이거나 신비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상세한 설명을 통해 욥기에 담긴 신학적인 의도를 소개한다. 침묵 그리고 은총의 빛 / 에디트 슈타인 성인 / 뱅상 오캉트 엮음 / 이연행 옮김 / 가톨릭출판사 「침묵 그리고 은총의 빛」은 에디트 슈타인 성인(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의 여러 작품에서 핵심 내용을 발췌하여 엮은 「내적 침묵으로 향하는 길」의 개정판이다. 성인은 바쁜 일상에서도 잠시 침묵하며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삶의 방향을 찾고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음을 일깨운다. “책과 잡지와 신문에서 갖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몇 시간씩 카페에 앉아 있고, 길거리에서 수다를 떱니다. 아침에 흐트러지는 대신에 한 시간 만이라도 정신을 집중하는 일이 정말 불가능할까요? 이 한 시간 동안 온갖 어려움에 온종일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27쪽) 1891년 독일의 유다인 가정에서 태어난 성인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쾰른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했고, 나치의 유다인 박해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1942년 선종했다. 유다교를 떠났으나 유다인으로서 죽임을 당함으로써 동족과 다시 결합한 성인을 가톨릭교회는 ‘아우슈비츠의 순교자’로 공경하게 되었다. 기도를 그리다 / 배영길 신부 / 성서와함께 「기도를 그리다」는 예수회 배영길 신부의 기도 묵상집이다.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을 바탕으로 한 관상과 묵상, 이 과정에서 얻은 성찰을 그림으로, 그리고 짤막한 시를 붙여 하느님 현존 체험을 기록했다. 책은 예수님의 강생에서 공생활, 파스카에 이르는 구원의 역사를 주제로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특히 우리 모두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로 부름 받은 존재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위로하는 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삼위의 눈길이 나를, 주님의 눈길이 나를, 사도들의 눈길이 나를 향합니다. 그렇게 사랑받는 나는 결코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제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나의 사람들을 봐야 할 때입니다.”(37쪽) 성체조배란 / 미셸 존스 슈뢰더 / 서영필 신부 옮김 / 바오로딸 “저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던 때에 성체조배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막상 가보니 다시 오고 싶다는 갈망이 들었습니다. 그 갈망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직접 마주한 듯한 느낌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니까요.”(8쪽) 피부색과 문화는 달라도 사람 사는 모습, 신앙생활의 기쁨과 어려움은 모두 비슷한가 보다. 「성체조배란」은 수녀도 신학자도 아니고, 워킹맘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자주 실수한다는 미국의 한 평신도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감실 앞으로 초대하는 책이다. 저자는 예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제안을 소박하지만 현실감 있게 전달한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1.05

귀향한 유다인들, 성전 짓고 믿음을 새롭게[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3)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 에즈라는 예루살렘 재건 시기 유다교를 율법 중심으로 개혁한 사제이다. 신바빌로니아는 키루스 임금이 이끄는 페르시아인들의 침입으로 기원전 539년 멸망합니다. 키루스 임금은 티그리스 강가 오피스(오늘날 바그다드)에서 단 한 번의 승리로 신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고 대 제국을 건설합니다.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바빌론으로 입성한 그는 복속된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우호 정책을 폅니다. 키루스 임금은 기원전 538년 칙령을 반포하고 유다인들을 해방시킵니다. 그러나 해방령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다인은 그대로 바빌론에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집도 있고 생계를 꾸릴 일자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런 간섭없이 자유롭게 신앙생활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 달리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충실했던 사람들과 고향을 그리워한 이들은 고국으로 귀환합니다. 유다 제후 세스바차르는 키루스의 명을 받고 유다인 4만 2360명, 그들의 남녀 종 7337명, 음악가 200명 등 총 4만 9897명을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그는 키루스 임금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 기물도 되돌려받았습니다.(에즈 5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배자 중에는 즈루빠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라야, 르엘라야, 모르도카이, 빌산, 미스파르, 비그와이, 르훔, 바아나가 있었습니다.(에즈 1─2장) 귀환자의 지도자 역할을 한 이는 바로 즈루빠벨이었습니다. 그는 고국에 돌아온 이들과 곧바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착수합니다. 이 성전은 기원전 515년에 겨우 준공해 봉헌합니다. 그것도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가 질타하며 독려했기에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성전 건립 공사가 더뎠던 까닭은 사마리아 귀족들의 반대로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 1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를 중지시켰기 때문입니다.(에즈 4,6-7; 23-24) 그러다 페르시아 다리우스 임금이 바빌론 문서고에서 키루스의 칙령을 발견한 후 성전 재건 공사를 다시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과 유배를 가지 않고 그대로 고국에 남아 있던 이들 간의 땅 소유 문제로 충돌이 잦았습니다. 남 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는 사제와 귀족, 지식인, 기능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 후 그들의 땅을 유배 가지 않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습니다. 50년이 지난 후 고향으로 되돌아온 이들이 땅 소유를 주장하니 분쟁이 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국에 남아있던 유다인들은 다른 종족들과 혼인해 이교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유배지에 끌려가 냉대를 받으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지켜온 귀환자들에게 이들은 이방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봉헌한 성전은 솔로몬 성전만큼 화려하진 못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이 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 성전을 ‘제2 성전’이라 부릅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이스라엘 민족의 첫 번째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2 성전 시대’라고 표기할 경우는 제2 성전을 봉헌한 기원전 515년부터 로마군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서기 70년까지를 지칭합니다. 페르시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임금의 술 시중 담당이었던 느헤미야가 기원전 445년 유다의 제후 곧 지방관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야훼께서 위로하시다’는 뜻인 그의 이름처럼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로가 되어줄 예루살렘 재건에 힘씁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다시 쌓고 요새화했습니다. 그는 또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유다인들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 규칙을 제정해 사회 개혁을 단행하고, 백성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 주기 위해 인구 조사도 시행했습니다.(느헤 7장, 11장 참조) 느헤미야는 약 10년 동안 예루살렘을 통치합니다. 그후 페르시아로 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 재건 시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즈라입니다. 사제이며 율법학자인 그는 율법 중심으로 유다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재조직했다면 에즈라는 유다교 쇄신을 주도했습니다. 에즈라는 느헤미야의 후원으로 공적인 신앙 집회를 열고 많은 유다인들을 모아놓고 율법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말을 잊어버린 이들을 위해 협력자들이 아랍어로 통역해 주었습니다. 에즈라는 온종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을 근거로 하느님의 백성다운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울면서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이민족과의 혼인을 금하도록 설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즈라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민족 아내를 내보고 안식일과 십일조를 열심히 지키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때부터 유다인들은 국가도 아니고 제의 공동체도 아닌 오직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에즈라를 ‘제2의 모세’라고 칭송합니다. 신앙적으로 완전히 죽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율법을 통해 다시 일어서게 했다고 했기에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5.01

사랑 (5)[월간 꿈 CUM] 행복의 길 (6)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유대인에게 율법(律法)을 주셨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영광은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이라 생각하며, 율법을 가장 중요한 유산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의 백성이 되었다. 이러한 율법은 ‘~을 하라’는 긍정적인 것이 248개, ‘~을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것이 365개로 모두 613개였다. 248개의 율법은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의 수이며, 365개 율법은 1년의 수이다. 이러한 내용은 구약성경의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와 있다. 이것을 분류한 사람은 중세시대에 유대주의 대표자이며 랍비이자 사상가였던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1135~1204)였다. 율법은 사도 바오로가 말한 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로마 7,12 참조)이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을 폐지하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마태5,17 참조). 이렇게 율법의 완성은 주님이 하시는데,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613개의 율법을 이루려고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율법을 항상 지키도록 했으니,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겠는가? 그야말로 율법은 그들에게 짐이 되고 멍에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한 율법 학자의 질문에,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둘째이며,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하셨다.(마르 11,28-31 참조) 이것은 구약의 613개 율법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극진히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애주애인(愛主愛人)이 그리스도교의 중심 사상이라는 것이다. 대신학교 신약학 강의 때, 담당 교수가 학생들에게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물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가는 알고 있었으나, 간단히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잠시 후 교수가 “예수는 철저히, 그리고 깡그리 남을 위하여 살다간 사나이다”라고 칠판에 적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제가 되면 예수님처럼 남을 위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래서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라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은 하나이나 248개의 지체로 이루어져 있다. 몸과 지체의 관계를 보면 한 가지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모든 지체가 자기만을 위하지 않고, 몸을 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기상(起床)할 때 최초의 동작은 눈 뜨는 일이다. 눈은 몸을 위해 제일 먼저 움직이며 수고하는 보초 역할을 한다. 또 몸을 위해 가장 많이 움직이며 활동하는 지체는 손이다. 왼손의 장갑은 오른손이 끼워주고, 오른손의 매니큐어(manicure)는 왼손이 발라주어야 한다. 그리고 발은 몸과 다른 지체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이렇게 살펴보면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는 다 그러하다. 지체들도 이렇게 자기만을 위하지 않고 몸을 위해 움직이고 활동하는데, 만물의 영장(靈長)인 인간은 이기주의자로 살아서는 안 되고 더더욱 ‘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축배나 건배를 제의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위하여!’라는 구호를 많이 사용한다. 그때 외치는 ‘위하여!’의 대상은 제안자(提案者)가 아니다. 공동체의 발전이나, 또 생일을 맞이하거나 진급을 하고 상을 받은 사람이다. 아무도 자신을 ‘위하여!’라며 잔을 들지 않는다. 너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빌어주고 도와주자는 결의와 다짐의 표시로, ‘위하여!’라고 외치면서 잔을 든다. 그러므로 사랑은 한마디로 ‘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글 _ 최봉원 신부 (야고보, 마산교구 원로사목) 1977년 사제품을 받았다. 1980년 군종장교로 임관, 군종단 홍보국장, 군종교구 사무처장 겸 사목국장, 관리국장, 군종참모 등을 지냈으며 2001년 군종감으로 취임, 2003년 퇴임했다. 이후 미국 LA 성삼본당, 함안본당, 신안동본당, 수산본당, 덕산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cpbc2024.11.19
「한국 천주교회 코로나19 팬데믹 사목 백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목 전망’ (8·끝)▨코로나19 이후 교회에 관한 신학적 성찰코로나 사태는 교회와 신앙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교회는 코로나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모습으로 쇄신될 수 있을까. 변화와 쇄신을 향한 공적 담론 형성·종교의 역할과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필요 성경과 교리가 교회 담론의 기초이지만, 당대의 교회 담론들은 교구장의 문헌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교구장 사목 교서, 성탄·부활 담화문, 주교회의 차원의 담화문들이 교회 담론의 핵심이다. 당대의 신학자들은 세상의 현실을 읽고 성경과 교리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의 담론을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주교회의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성찰과 전망이 필요하다. 오늘날은 이른바 세속적 이데올로기들이 다 사라진 시대다.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고 세속의 공동체적 기반이 약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정체성과 인정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고 소속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필요로 한다. 젊은 세대의 종교적 감수성과 신앙을 향한 노력 요청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에 의해 종교 문화의 세례를 받았지만, 대부분 제도적 종교의 영역을 떠나있다. 젊은 세대가 더 나이가 들면 다시 종교와 신앙의 영역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 기대가 있다. 신앙은 전수되는 것이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종교적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신앙과 영성을 부모나 종교 행위자들에 의해 전수받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도 종교적인 것들과 영성적인 것들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발생할 확률이 낮다. 신앙 교육과 문화의 쇄신 필요·사제 양성 교육과 문화의 쇄신 요청 쇄신은 제도와 구조의 개혁과 사람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의 변화는 교육과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교회의 변화와 쇄신 역시 제도와 구조의 변혁을 통해 촉진할 수 있지만, 교회 구성원들의 변화가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이 제도와 구조를 만들지만, 제도와 구조가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교회의 변화와 쇄신은 무엇보다 성직자의 변화와 쇄신을 요청한다. 교육은 전인적·자율적·상호 관계적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머리와 마음과 몸 모두를 훈련해야 한다. 교육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신앙의 방식으로 교육되고 전수되어야 하는 신앙 신앙은 머리와 마음과 몸, 모든 영역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오늘의 가톨릭 신앙 교육은 자칫 교리적 지식과 규범만을 가르치고 몸의 형식적 참여만을 강조하는 데 그치는 경향이 있다. 참다운 신앙적 신념이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몸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신앙 교육은 신앙적 비전과 신념, 마음과 영혼의 열정, 몸의 의지적 실천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앙은 하느님을 알고, 느끼고, 닮고, 따르는 일이다. 신앙 교육은 하느님을 알게 하고, 느끼게 하고, 닮게 하고, 따르게 하는 일이다. 교회의 신앙 교육이 이론적 지식과 종교적 규범을 전달하는 교육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사람의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 신앙은 신앙을 수행하는 삶을 통해 교육되고 전수된다. 정희완 신부(안동교구, 가톨릭 문화와 신학연구소장)이지혜2024.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