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6주년 특집] 본당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5/07/vgB1715067176422.jpg)
[창간 36주년 특집] 본당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초등생 4배 급증 비결 ‘관심·협력’ 부산교구 좌동본당 신자들이 4월 28일 성당에서 열린 ‘세계 어린이의 날 기념 우크라이나 어린이 돕기 주일학교 학생 미술 작품 전시 및 판매’ 행사에서 주일학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살피고 있다. 부산교구 좌동본당 제공 한국 교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신앙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0~2022년 만 3년간 코로나19가 할퀴고 지나간 뒤 교회는 미사 참여율과 성사생활 참여 등 신앙생활이 여전히 침채돼 있다. 이에 많은 본당과 사목자, 교우들이 전례를 중심으로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하고 있다. 모든 세대가 한마음으로 나서서 주일학교 학생들과 함께하고자 지혜를 모으고, 사목자들은 교우들과 더욱 적극 소통하며 1인 3역을 해내고 있다. 본당은 하느님 백성들의 믿음을 북돋는 복음의 전초기지다. 뭐니뭐니해도 본당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지난 4월 성유 축성 미사 강론을 통해 사제들에게 “본당 사목에 힘을 실을 것”이라며 “행사가 없어도 본당 사목 방문을 늘리고, 사목 성공담을 자료집으로도 펴낼 계획”이라면서 본당의 중요성을 거듭 밝혔다. 본지는 창간 36주년을 맞아 눈에 띄는 사목으로 공동체 회복을 넘어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본당들을 만났다. 초등생 4배 급증 비결 ‘관심·협력’ 부산교구 좌동본당 학생 가정에 전화해 미사 참석 호소 후원금 모금 등 다채로운 행사도 한몫 지난 4월 28일 부산교구 좌동본당(주임 조성문 신부) 신자들이 미사 후 한자리에 모였다.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이 펼치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돕는 후원금 모금행사가 열린 것이다. 보편 교회의 ‘제1차 세계 어린이의 날’(5/25~26일)을 앞두고 마련된 이날 행사는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희망과 염원’을 주제로 2주간 그린 그림을 경매에 부쳐 본당 신자들이 구매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행사를 앞둔 아이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선생님 제 그림만 안 팔리면 어떡해요?” “제 그림이 제일 싼 값에 팔리면 창피할 것 같아요.” 이윽고 시작된 ‘경매’. 하지만 발 동동 구르던 아이들의 걱정과 달리 100점에 달하는 그림이 순식간에 팔렸다. 열띤 후원금 마련 경매에 나선 어른들은 그림을 사놓고도 다시 팔라고 내놓기까지 했다. 돈보다는 마음을 나누는 경매가 펼쳐졌다. 이렇게 모인 후원금은 300만 원에 달했다. 본당은 앞서 부산교구 제4차 탄소단식챌린지에서 지구 1등을 하면서 받은 상금 50만 원을 더해 350만 원을 교황청 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 ACN 한국지부에 전달키로 했다. 좌동본당의 단결과 사랑을 교우 전체가 체험한 자리였다. 2년 전까지 좌동본당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일 미사 참여 인원이 이전의 30% 수준으로 줄고,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 역시 절반이 줄어든 40여 명만 남는 등 위기에 처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2년 사이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이 4배가 넘는 183명으로 늘어났다. 반전의 비결은 ‘관심’과 ‘협력’이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 속담처럼 본당 주일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사제와 수도자·평신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선 것. 가장 먼저 어머니들 모임인 자모회원 6명이 교리교사를 자원했다. 청년들은 주일학교 부활 행사와 피정 진행을 도왔다. 본당 어르신들은 ‘할머니·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로 신앙 전수에 힘썼다. 본당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보좌 신부는 ‘후원금 경매 행사’와 ‘이콘 교육’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주일학교를 일으키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자모회원이자 현 주일학교 교무인 김민경(도르테아)씨는 “아이들 신앙의 미래는 학부모들이 먼저 챙겨야 한다고 여겼다”면서 “미사에 나오지 않는 학생 가정에 전화해 공동체로 돌아올 것을 호소했는데, 같은 부모로서 공감했는지 많은 이가 호응해줬고 이만큼 함께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김 신부는 “‘우리 본당’이라는 강한 소속감으로 모든 세대의 많은 교우가 공감하고 노력해줬기에 이런 반전이 가능했다”면서 “젊은이를 위한 사목, 그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려면 공동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함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서울 신내동본당 부주임 김영호 신부가 3월 2일 본당 어린이 미사에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하고 있다. 흔들림 없이 30년 이어온 ‘기도 전통’ 서울대교구 신내동본당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기도 모임 활성화 미사 끝나면 놀이터이자 대화 공간 변신 “여기서 성경에 나온 예수님 모습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지난 3월 2일 서울대교구 신내동본당(주임 최동진 신부) 어린이 미사 시간. 본당 부주임 김영호 신부가 강론 시간에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교리 질문을 던지자 엄숙했던 미사 시간은 아이들의 아우성으로 들썩였다. “저요! 제가 이야기할래요.” “제가 먼저 들었어요.” 얼마나 많은 아이가 손을 들었는지, 손들지 않은 아이를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였다. 신내동성당은 미사 후면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아이 수십 명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이따금 함성도 울려 퍼진다. 저녁이 깊어도 아이들은 성당 마당을 떠날 줄 모른다. 그 시간 부모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웬만한 성당에선 보기 어려운 풍경이 신내동성당에선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다. 신자가 줄어드는 ‘탈 신앙’ 시대에 신내동본당의 ‘신앙 역주행’은 더욱 특별하다. 이 본당이 활력있는 신앙 공동체 모습을 이어온 원동력은 다름 아닌 ‘기도’다. 본당에는 지난해 15명 어린이가 쁘레시디움을 창단한 데 이어, 올해 두 번째로 20여 명의 어린이가 참여하는 소년 쁘레시디움이 만들어졌다. 고사리손을 모아 기도손한 어린이들이 기쁜 표정으로 쁘레시디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기도가 일상처럼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본당 기도 셀(Cell) 대표 정소영(소피아)씨는 “신내동본당은 30년 전 상봉동본당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부터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기도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었다”면서 “코로나19로 성당 문을 닫았을 때에도 신자들이 방역 수칙을 지켜가며 야외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칠 정도로 기도가 생활화돼 있다”고 전했다. 기도 전통이 이어져 온 비결은 가정 신앙의 ‘선순환’이 바탕이 됐다. 지난 3월 두 번째 소년 쁘레시디움이 만들어진 뒤 이들의 어머니 14명도 본당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함께하기로 하는 등 세대를 넘어 서로 흔쾌히 ‘신앙의 등불’이 돼주고 있다. 최동진 주임 신부는 “본당 평일 오전 10시 미사에는 어르신들을 포함한 신자 200명이 참여한다”면서 “어르신들의 열성적인 신앙을 다른 세대도 자연스럽게 배우고 전수받는 분위기가 잘 조성돼 있다”고 했다. 본당 수도자의 숨은 노력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본당 어린이 교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임명자(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수녀는 아이들이 하느님을 알고, 신앙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춘 토론식 교육으로 소통하고 있다. 임 수녀는 소년 쁘레시디움 창단 전 2개월 동안 매주 3회씩 어린이들과 기도 모임을 하며 기도하는 기쁨과 신앙을 알려줬다. 임 수녀는 “교리교육을 하는 동안 어려운 기도문도 스스로 척척 읊고 설명하는 아이들을 보며 교육으로만 그치기 아쉬워 쁘레시디움 활동을 제안했다”며 “이 모든 게 신앙의 가치를 잘 전수해준 학부모와 이어받은 아이들이 흔쾌히 응해준 덕분”이라고 했다. 본당 공동체 활성화의 비결로 사제와 수도자를 비롯한 사목자와 평신도 간 상호 존중을 꼽기도 했다. 임 수녀는 “사목자는 신앙 속에서 평신도를 이끄는 존재인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이라 여기는 상호 존중 속에 가정 신앙과 기도, 세대 간 신앙 소통의 힘으로 교우 전체가 단단히 하나 되어 나아가고 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장현민 기자 학산본당의 유일한 학생이자 복사단 5명이 이선찬 신부와 미사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이선찬 신부 제공 시골본당의 맞춤형 ‘토탈 사목’ 청주교구 학산본당 어르신들 위해 미사 때마다 승합차 운전 농부 신자들 논밭 일일이 다니며 축복 주일 미사 참여자 수 100명 남짓의 작은 본당이 지역 사회에서 복음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축구에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토탈 사커’가 있다면, 신앙엔 ‘토탈 사목’이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 위치한 청주교구 학산본당(주임 이선찬 신부)이다. 교우 90%가 농부고, 60대 후반이 본당 막내인 고령화된 공동체다. 하지만 코로나 끝 무렵인 2021년 8월 이선찬 신부가 부임한 이후 신앙 열기를 되찾고 있다. 어떤 비결이 있는 걸까? 이 신부는 가장 먼저 본당 사제관에서 렌탈해 써오던 제품들을 다 끊었다. 그 돈으로 100인치 중고 TV를 구입해 성전에 설치했다. 눈이 어둡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르신을 위한 배려였다. 이후 대형 화면으로 ‘매일미사’를 같이 보며 밑줄도 치고, 강론을 손으로 써가며 어르신 맞춤 시청각 전례를 진행했다. 그 덕에 신자들은 “강론이 훨씬 듣기 좋고 잘 보여 머리에 쏙쏙 박힌다”며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신부는 ‘본당 운전기사’도 겸하고 있다. 먼 곳에 사는 어르신들은 미사 때마다 택시를 이용해왔다. 학산면 내 개인택시는 단 두 대. 그마저도 최근 기사 한 명이 은퇴했다. 이 신부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신자들의 미사 참여 열망은 크다”며 “교통 약자인 어르신들을 위해 9인승 봉고차를 몬다”고 했다. 본당 신자 90%가 농부다. 사제는 신자들의 농지와 텃밭 곳곳을 일일이 다니며 축복해줬다. “신부님, 뭐하러 논밭까지 다 오십니까?” 처음 신자들은 일상에까지 관심 갖는 사제의 행동을 생소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활짝 열게 됐고, 자연스레 ‘신앙의 생활화’로 이어졌다. 학산본당 중고등부 학생은 5명이 전부다. 모두 복사단이다. 이 신부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돌아가며 복사를 서주는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넘어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든다”고 했다. 이 신부는 복사단 학생들뿐 아니라, 관할 내 초·중등학교에 성소후원금 명목으로 매달 30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성소를 위하고, 시골 학교의 어려운 형편을 위해서다. 학생들은 손편지와 카네이션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재정의 투명성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 사제의 지출 최종 결정을 본당 사목회장에게 맡겼다. 이 신부는 “문고리 하나 바꾸고 싶어도 회장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신부는 열심히 할 수밖에 없고, 신자들도 교회 재산과 성당에 대한 주인 의식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지역 사회와의 연계도 중요시한다. 지역 행사에 대부분 참여하면서 본당 이름으로 발전 기금을 낸다. 타종교 지도자와의 만남도 이어오고 있다. 이 신부는 “지역 사회 안에서 학산본당을 기억하고 있다는 자체로 교회의 존재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본당은 공소도 두 군데 관할하고 있다. 이 신부는 미사가 아예 없던 공소에 매주 토요일 미사를 만들었고, 매달 한 번 미사가 있던 공소는 세 번으로 늘렸다. 그 결과 올해 주님 부활 대축일에 10명이 세례를 받았다. 10년 만에 가장 많은 인원이다. 코로나 이후 신앙 회복의 과제를 안고 있는 교회에 시골의 작은 본당이 신자·지역 사회와 시노드 정신으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최근 견진성사를 받은 한 신자가 기부한 붕어빵을 교중미사 후 함께 즐기는 종로본당 신자들. 주임 한호섭 신부가 교우들을 안내하고 있다. 밥 잘해 주는 ISTJ 신부님 서울대교구 종로본당 모임 찾아가고 휴대전화 번호 공개 크고 작은 이벤트 끊임없이 이어져 서울대교구 종로본당 주임 한호섭 신부는 미사 때 성가를 부른다. 1년 전만 해도 토요일 저녁 주일 미사에는 신자도 많지 않고 성가를 부르는 이도 없어 파이프 오르간 독주만 이어질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한 신부는 제대에 올라 입당성가 끝자락을 부르고, 제대를 떠나기 전 파견 성가 앞자락을 목청껏 부르곤 했다. 요즘도 한 신부는 성가를 부른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 화음을 넣는다. 이는 어우러질 다른 음이 풍성해졌다는 것이고, 멜로디를 부르는 상당수의 신자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종로본당은 달라졌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주일 미사 기준 많아야 300명이던 참여 인원은 올 상반기 평균 40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성탄 음악회에 이어 3월부터 매달 한 차례 진행되는 성(聖)음악 미사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뿐만 아니라 성탄절 뱅쇼·맥주와 함께하는 아가페 시간, 부활 성야 미사 후 달걀 대신 통닭 나눔부터 최근 견진성사 후 한 신자의 소문난 붕어빵 기부행사까지 크고 작은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다. 주임 신부가 기획한 것도 있고, 이에 질세라 교우들이 나선 것도 있다. 한 신부는 코로나19 엔데믹(일상적 유행)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의 특별한 사목이 없었다면 주거지도 아닌 데다 신자들의 연령대가 높은 도심 한복판 종로성당에서 이렇게 활기찬 모습을 되찾긴 힘들었을 것이다. 한 신부가 말하는 ‘기본에 충실한 사목’은 ‘사제가 교우들에게 다가가 함께 신심을 함양하되 신나고 재미있는 신앙생활로 늘 성당에 오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시쳇말로 ‘들이댔다’.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해 교우들과 빠른 소통을 시도하는가 하면, 모임이나 회합이 있을 때는 부르지 않아도 찾아갔다. 그리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새벽 미사에 열 명 정도 오시니까 ‘근처 해장국집에 가실래요?’로 시작했는데, 좀 친해지다 보니 으레 매주 함께하게 됐고, 몇 번은 본당 주방에서 제가 만들었어요.” 한 신부는 그렇게 미사에 참여한 교우들, 사목위원들과 청년들을 위해 황태해장국·내장국·김치찌개 등을 끓였다. 수시로 사제관에 초대했고, 망고 빙수를 만들고 커피를 내려 선물하기도 했다. “제가 돈을 어디다 쓰겠어요, 그럴 때 쓰죠.(웃음) 우리나라 사람들은 같이 밥을 먹으면 좀 친해졌다고 느끼잖아요. 식사하면서 관심사도 알게 되고, 얼굴을 익히니까 성당에서 봐도 눈에 더 들어오고요.” 한 신부의 사비는 파티마 현지에서 제작한 성모상을 구입할 때도, 사순 시기 나눔의 마중물이 되도록 신자 300여 명에게 각각 7000원이 담긴 봉투를 건넬 때도 사용됐다. 토요 오전 미사를 신설하고, 장례 미사와 병자성사·혼인 면담 등은 신자들의 스케줄을 최대한 반영했다. 교우들도 그 남다름을 모를 리 없다. 신해균(안토니오) 사목회장은 “어느 본당에서 신부님과 이렇게 친하게 지내겠느냐”고 했고, 정상선(체첼리아) 천사들의 모후 단장은 “레지오 훈화도 빠지지 않고 해주시니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한기학(마르코) 총구역장은 “힘들지 않은지 여쭤본 적 있는데, ‘교우들을 살피고 본당을 활성화하는 게 사제로서 할 일’이라고 하셨다”면서 “말씀을 실천하시는 모습에 교우들의 신앙심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우 외향적일 것이라 예상했던 한 신부의 MBTI는 ‘ISTJ’, 그러니까 내향적이란다. 타고난 성향을 넘어 사제로서 ‘기본에 충실한 사목’이 많은 가지를 뻗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장현민2024.05.08

주님 부활 대축일 추천 도서책을 벗삼아 떠나는 50일간의 부활 여정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주님 부활 대축일이다.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간의 부활 시기, 십자가 사랑의 신비를 묵상하고, 구원과 희망을 길을 찾도록 친절한 등불이 되어주는 책들을 골라봤다. 저승에 가시어 / 사비노 키알라 / 명형진 신부 옮김 / 인천가톨릭대학교 출판부 그리스도교는 부활 신앙이다. 예수님의 탄생 못지않게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큰 사건이기에 교회는 파스카 성삼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을 통해 이를 기념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성금요일과 파스카 성야 사이에서 성토요일은 뭔가 슬쩍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우리는 매주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심을 고백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제대로 새기지 못한 경우가 있다. 심지어 ‘저승’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예수님이 사흘간 계셨던 곳인데도 말이다. ‘예수님이 가신 저승’에 대해 다양한 의미를 살펴본 「저승에 가시어」가 출간됐다. 2022년까지 이탈리아 보세 수도 공동체 원장을 역임한 성서학자 사비노 키알라가 쓰고, 인천가톨릭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가르치는 명형진(인천교구) 신부가 우리말로 옮겼다. 책은 성경과 전승 속에서 ‘예수님의 저승에 가심’이 어떻게 기술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이를 통해 교의적인 의미를 밝힌다. “그리스도께서는 저승에 내려가심으로써 인간의 고통과 함께하십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저승에서 벗어나 그곳을 비우심으로써 온갖 악과 죽음의 끈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신 이유입니다.”(100쪽) 역자인 명형진 신부는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 사이에서 저승에 가심으로써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너머의 영원한 삶을 엮어주신다”며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와 ‘죽음 안에서만’ 함께하시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고자’ 하셨기에 우리에게 구원과 희망의 길을 보여주셨다”고 전했다. 성령의 이끄심 그 길을 가다 / 최종훈 신부 / 성서와함께 “우리의 생각과 선택의 이유가 그리스도이며, 그분이 보여 주신 사랑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20)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내가 곧 그리스도가 되어 살아갈 때, 자유와 사랑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174쪽)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그 행적을 통해 초대 교회가 형성되고 성장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광주대교구 최종훈 신부는 「성령의 이끄심 그 길을 가다」를 통해 이 이야기를 우리 삶의 이정표로 삼자고 제안한다. 사도들 역시 삶의 여정에서 우리처럼 후회와 절망에 맞닥뜨리고,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을 살았음을 강조한다. 사도행전이 루카의 두 번째 책인 만큼 저자는 1장에서 루카 복음서와의 연관성을 먼저 설명한다. 이어 본격적으로 사도행전을 살펴본다. 성령을 통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탄생하며 공동체를 이룬 모습과 사도들이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사도 1,8)이라는 말씀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모습을 전한다. 또 성령께서 어떻게 이끌어주셨는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대해 묵상하도록 안내한다. 책 전체에 걸쳐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사도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훈 신부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에서 성서신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독일 보훔 루르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공부했다. 현재 가톨릭목포성지에서 사목하고 있다. 미사, 이렇게 하니 좋네요 / 김혜종 신부 / 바오로딸 “부활은 죽음을 이긴 ‘사랑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을 뒤흔드는 죽음의 어둠 앞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새로운 빛을 봅니다. 그리고 죽음 너머의 새로운 생명을 만납니다. (중략) 죽음이 모든 것을 허무로 만드는 어둠이라면, 그 어둠을 다시 허무로 만드는 것이 사랑의 빛인 부활입니다.”(199쪽) 「미사, 이렇게 하니 좋네요」는 전례와 미사의 영성적 의미를 풀이한 책이다. 입당, 참회 예식, 영성체, 강복과 파견 등 미사의 각 부분에 담긴 영성적인 의미를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우리 삶과 연결하여 살펴보는가 하면 제대.독서대.감실 등 전례 공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또 ‘오늘’과 ‘주일’, 그리고 전례 주년에 따라 대림, 성탄, 사순, 파스카 성삼일, 부활, 연중 시기의 의미도 되짚는다. 저자 김혜종(춘천교구 포천본당 주임) 신부는 “전례 안에서, 특히 미사 안에서의 반복이 그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가 실현되는 거룩한 재현이며, ‘지금 여기서’ 그리고 ‘오늘’이라는 나의 시간 속에 이루어지는 거룩한 구원 사건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 신부는 로마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춘천교구 전례자문위원,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고해성사의 일곱 가지 비밀 / 비니 플린 / 전경훈 옮김 / 성바오로 비슷한 죄를 계속해서 고백하며 마지못해 고해소에 가거나,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게 고해할 수 있는지 고민한 적이 있다면 「고해성사의 일곱 가지 비밀」은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고해성사의 목적을 꼽으라면 대부분 ‘용서’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 비니 플린은 ‘치유’를 언급한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 근거해 ‘모든 성사의 목적은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고 은총의 목적은 우리를 치유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라 설명한다. 음악가이자 작가, 본당 세미나나 피정 등에서 인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죄와 용서를 제대로 인식하고, 고해성사에 대한 제한적이고 편협한 이해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경이로운 인격적 만남을 경험할 수 있도록, 영성체할 때와 똑같은 열망과 설렘으로 고해성사를 기대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우리 영혼과 육체의 의사이시며,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육체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성령의 힘으로 그 치유와 구원 활동을, 당신의 지체까지도 대상으로 하여, 계속해 주기를 바라셨다. 이것이 치유의 두 가지 성사, 곧 고해성사와 병자성사의 목적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21항)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3.27

전 지구인에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실효적 행동 나설 것을 시급히 촉구 [특별기고]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우선 지난 10월 4일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 위기’에 관한 사도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이하 권고)를 ‘모든 선의의 사람’에게 내놓았는데, 이 문헌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권고는 교황이 2015년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 전야에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삶’에 관한 사회 회칙 「찬미받으소서」(이하 회칙)를 발표한 지 8년 만에 나온 문헌이다. 회칙이 ‘생태 위기의 엄중함’이라는 포괄적 접근의 배경에서 생태적 전환의 삶을 호소했다면, 권고는 특별히 ‘기후 위기’라는 현안이 지닌 그 ‘시급성’의 배경에서 근본적이며 실효적인 해법 마련의 ‘절박함’을 호소한다. 그 점에서 권고는 회칙의 제1장 제1절 ‘오염과 기후 변화, 공동 재화로서의 기후’ 부분에 관한 일종의 ‘행동 지침’이라 할 만하다. 둘째, 문헌의 형식은 ‘사도 권고’이지만, 그 내용과 구조는 ‘사회교리’ 회칙이라 봐도 무방하다. 일반적으로 사회교리는 사회 현안, 곧 시대의 징표(권고, 제1장 기후 위기)에 대해 보편 교회가 성경과 교회의 전승(신앙, 제6장 영적 동기들)을 토대로 하여, 철학·문화적 성찰과 비평(제2장 기술관료주의 패러다임의 확장), 과학적 발견(사회과학, 제3장 국제 정치의 약점), 인류의 경험(제4장,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 그 진척과 불이행)과 만나 대화함으로써 인류가 나아갈 길을 제안하기 때문이다(제5장, 두바이 COP28에 거는 기대). 물론 각각의 장(章)에도 시대의 징표 탐구, 신앙과 이성의 빛에 따른 식별(성찰), 나아갈 길 제안이라는 사회교리 구성 요소들을 담고 있다. 셋째,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권고한 그 형식은 근대 이후 교도권의 문헌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회칙이나 권고는 ‘교회의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했지만, 특히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선의의 모든 사람’까지 그 대상으로 확대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올해 11월 30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최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라는 특정 프로그램을 겨냥하여 그 실효적인 결실을 낳을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는 기후 위기라는 현안의 시급성·그 세계 차원 그리고 회복 불가능할 수 있는 그 재앙의 영속적 특성 때문에 반드시 모든 분야의 모든 선의의 사람이 결합하여 ‘실효적으로’ 행동해야 함을 호소한다. 절대 다수의 기후학자들은 분명히 ‘인간의 활동’이 오늘날 기후 변화와 그 위기의 가장 큰 요인이라 밝힌다. 그 인간의 활동 능력을 무한히 확대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신념을 강화하는 토대를 권고는 과학 기술과 경제적 이익이 결합한 ‘기술관료주의(전문가 중심의 배타적 지배구조) 패러다임’과 ‘능력주의 사회’ 또는 ‘엘리트 중심 사회’의 확장에서 찾는다. 회칙에서는 이를 ‘과도한 인간중심주의’ 또는 ‘일탈한 인간중심주의’로 진단한다(제3장, 생태 위기의 인간적 뿌리들). 근본적으로는 근대의 인간관과 세계관에서 그 뿌리를 찾는데, 오로지 독립된 ‘주체’로서의 인간이 타인과 사회와 창조 세계를 철저하게 자신의 욕구 및 힘의 행사 ‘대상’으로만 삼음으로써(객체화), 마침내 ‘참 보기 좋았던’ 그것들 사이의 온전한 관계망(질서의 고요함-평화)을 파괴할 정도의 지경, 곧 공동의 집(생태)을 허물어뜨릴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권고는 기후 위기를 초래한 이 파괴적 패러다임을 극복할 길을, 곧 인간의 힘을 윤리적으로 절제시킬 그 구체적 길을, 국제 정치와 외교문화 분야에서, 특히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를 통해서 모색·제안한다.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 cpbc2023.11.20

행복하게 사는 법[월간 꿈 CUM] 꿈CUM 묵상 _ 예수의 일생 (9)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제주 성이시돌 목장 새미은총의 동산 조형물) 앞에서 말한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됐다. 2.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된 우리는 효도를 해야 한다. 3. 가장 큰 효도는 무엇일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4. 그렇다면 하느님 아버지는 언제 가장 기쁘실까. 5. 자녀인 내가 행복하게 살 때. 자! 이제 우리에게는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가 행복하게 살아갈 때 가장 기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요.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 살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복팔단(眞福八端)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5장 3-12절에 그 내용이 자세히 나옵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로 언급하신 내용은 ‘가난’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이 성경 구절의 의미를 구현해 내는 사람이 바로 저와 같은 수도자들입니다. 수도자는 단순히 혼자 살아서 수도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맞는지 틀리는지 세상에 증명해 보이는 사람들이 수도자입니다. “내가 예수님 말씀이 맞는지 틀리는지 증명해 보이겠어!”라며 사는 사람이 수도자입니다. 구체적으로, 수도자는 청빈·정결·순명, 복음삼덕(福音三德)을 서원합니다. 먼저 청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수도자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자는 돈을 얼마쯤 가지고 있어야 진정한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억? 50억? 100억? 진정한 부자는 아쉬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돈이 100억이 있어도 아쉬움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부자가 아닐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아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자입니다. 그다음, 정결입니다. 정결은 인간적 사랑, 육체적 사랑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세속의 친구들이 가끔 내게 “너는 여자로부터 사랑도 못 받아 보고 참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 사랑 엄청 많이 받고 있어.” 정결은 최대의 사랑입니다. 어떤 자매님과 전화를 할 때면 “자매님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만약 제게 아내가 있다면 얼굴이 할퀼 일입니다. 나는 마음껏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많은 교우분들이 나를 사랑해 주고 걱정해 줍니다. 나는 사랑의 복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다음, 순명입니다. 순명은 개인적인 고집을 꺾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매일 내게 나타나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니까 수도원 원장의 말을 듣고 잘 따라야 합니다. 가끔 교구 소속의 동창 신부님이 내게 해외성지순례를 가자고 할 때가 있는데, 수도자는 항상 원장의 허락을 얻어야 해외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때 동창 신부님은 “너는 나이 50살을 넘겨서도 참 불쌍하게 산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오히려 더 자유롭습니다. 내 맘대로 하지 못하지만 자유롭습니다. 왜 그럴까요?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뜻에 내어 맡기는 삶을 살면 하느님이 책임지십니다. 내뜻에서 벗어남으로써 더 자유로워집니다. 순명은 이처럼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줍니다. 재물을 포기하고 청빈을 선택하면 참부자가 될 수 있고, 사랑을 포기하고 정결을 선택하면 참사랑을 누릴 수 있고, 고집을 포기하고 순명을 선택하면 참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꿈CUM 지도신부, 성 바오로 수도회) cpbc2023.12.04

책꽂이 성경 본문 줌아웃박병규 신부 지음 / 생활성서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매주 혹은 매일 미사에서도 성경의 말씀을 읽을 수 있지만, 그 말씀이 신앙인에게는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될까? 「성경 본문 줌아웃」은 ‘성경을 읽는다는 것’을 함께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말씀을 단순히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구조를 살펴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성경 이야기의 흐름, 변화, 짜임새 등을 성경 원어와 함께 살펴본다. 공관 복음서와 사도행전 주요 이야기의 그리스어 원문을 저자의 번역으로 옮겨 성경 구절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고, 그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고 했던 가르침을 상세히 풀어내, 각자의 삶에 가닿게 이끌어 준다. “믿음은 간절함을 기반으로 하되, 그 간절함은 철저한 해방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믿음은 간절함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것을 원하지만, 저것을 내려놓는 데 주저한다. 간절함이 약할수록 해방은 더디다. 이런저런 것에 얽매여 주저하는 삶의 반복에 지쳐 생겨난 작디작은 욕망의 공허한 여백을 믿음이라 고백하기도 한다. 내려놓고 비워 낸 자리가 아니라, 무엇이건 유일한 간절함의 자리가 믿음의 자리가 된다. ”(79쪽, ‘눈먼 이 이야기’ 중에서)프랑스 리옹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 박병규 신부는 ‘읽는다는 것’은 ‘글에 대해 독자의 고유한 관점을 제시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읽는 행위는 단순히 글자들의 집합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묻고, 물은 바를 고민하고, 고민한 바를 다시 묻는 끊임없는 작업’이라며, 저자의 사유를 통해 독자들 또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도록 안내한다. 살아 있는 기도안토니 블룸 총대주교김경희 옮김 가톨릭출판사기도는 무엇일까? 왜 하는 것일까? 매일 기도를 하면서도 왜 나는 응답을 받지 못할까?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안토니 블룸의 「살아 있는 기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준다. “실제 그리스도께서 앞에 계신다면 우리는 다르게 행동할 것입니다. 주님의 현존이 보일 때 행동하는 듯 주님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13쪽, ‘기도의 본질’ 중에서)“때로 우리는 기도할 자격이 없고 그럴 권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유혹입니다. 웅덩이에 있든 바다에 있든, 어디에 있든지 물 한 방울은 증발하면서 정화됩니다. 하느님께 올라가는 모든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184쪽, ‘침묵의 기도’ 중에서)안토니 블룸은 동방 교회의 총대주교로 2003년 선종했다. 기도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인물이며, 그리스도교 교회 일치 운동에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파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할 때만 해도 무신론자였던 그는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해 삶의 자세가 바뀌었고, 1948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러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그가 쓴 기도에 관한 책들은 수많은 사람을 일깨워 왔다.「살아 있는 기도」는 주님의 기도, 묵상 기도, 침묵 기도 등 다양한 기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신자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방법도 소개한다. 또 기도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 기도하면서 접하는 다양한 문제점까지 살펴본다. 하루 10분 주님과 가까이성바오로딸수도회 엮음 바오로딸“기도의 비결은 단순함에 있습니다. 단순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예수님께 모두 말씀드리십시오. 믿음이 깊을수록 단순해집니다.”(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바쁜 업무와 흥미로운 아이템으로 24시간이 모자란 하루. 신앙인으로서 소박한 기도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면 하루 10분만 시간을 내보자. 「하루 10분 주님과 가까이」는 분주한 일상에서 하루 10분을 마련해 주님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의 영적 권고 중에 10개의 주제 ‘희망, 겸손, 인내, 단순함, 용기, 신뢰, 침묵, 섭리, 좋은 지향, 은총’에 맞춰 마음 준비부터 성호경, 호흡 기도, 성령 초대, 말씀에 머무르기, 주님과 대화하기, 주님께 맡겨드리기 순서로 이끌어 기도를 몸에 익히고 기도 안에 잠길 수 있게 한다.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엮은 「하루 10분 주님과 가까이」는 「하루 10분 주님과 단둘이」, 「하루 10분 성모님 손잡고」에 이은 책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만나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도록 이끈다. 윤하정 기자 평화신문2022.12.27

‘이콘 공경’ 7차 공의회서 공식화했으나 오역으로 오해 받아[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19) 오해와 편견과 포용 (작품 1) 성 베드로가 샤를 마뉴에 황제의 기를 수여하고, 교황 레오 3세에 영대를 수여함으로서 세상의 힘과 영적인 힘을 부여하는 상징을 보여준다. 라테르노 대성당의 모자이크. 교황청과 비잔틴 제국은 문화적·언어적·지리적 소통 부족했고 성상 파괴 관련 교리 논쟁으로 갈등 이콘 공경 공식화한 7차 공의회 결의문 샤를마뉴 황제에게 전해지는 과정서 ‘공경(proskynesis)’을 ‘흠숭(adoratio)’으로 잘못 번역 공의회 결정 거부… 샤를마뉴의 서 발표 1. 카롤링거 르네상스와 정치적 배경 샤를마뉴(742~814, 재위 768~814)를 카를로스 또는 칼 대제라 부릅니다.(국가에 따라 다르게 부름) 프랑크 왕국의 왕이었던 그는 유럽 정복 전쟁과 후일 신성로마제국을 이룩하였습니다. 그가 위대한 황제로 인정받는 까닭은 특출한 정치적 능력과 더불어 자기 계발(啓發)을 통해 전사에서 시대의 지성인으로 탈바꿈했다는 데 있습니다. 당시 프랑크 전사들은 지성(知性)이 전쟁을 치르는 전사에게 필수적인 용기를 저해한다고 믿었습니다. 세계를 정복한 전투적인 황제 중에 글을 모르는 자들이 많았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하기도 합니다. 샤를마뉴는 지방마다 다른 라틴어 방언을 표준어로 정리했으며, 미술·음악·건축 분야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샤를마뉴와 그의 아들 루이의 치세로 이뤄진 문화적 흐름을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부릅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유럽 사회의 모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향을 많이 받은 분야는 문학일 것입니다. 샤를마뉴의 영웅담이 중세 기사문학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대서사시 ‘롤랑의 노래’는 샤를마뉴와 그를 수행하는 열두 명의 기사 이야기입니다. 이 서사시는 롤랑을 비롯한 상당수 기사가 목숨을 잃은 론세스바예스 전투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음유시인들이 전파한 샤를마뉴의 영웅담은 유럽의 중세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쳐 그와 유사한 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독일에서는 ‘니벨룽겐의 노래’가 만들어졌지요. 이러한 작품들은 현명하고 경건한 왕과 충성스럽고 용감한 기사들이 펼치는 모험과 사랑과 전쟁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복잡하게 얽힌 세상사를 연관 지어 볼 때, 특히 정치면에서는 진정 순수한 신앙에만 기댈 수 없으며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그리스도교를 공인할 때, 그는 동·서 로마의 황제였으니 교회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제국을 통치하기에는 지역적으로 방대했기에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말년에 두 아들에게 동·서 로마로 분리해 통치를 시켰습니다. 서로마 황제와 교황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제휴함으로써 무난한 관계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존재하는 한, 그도 교황에 대한 명령권자였습니다. 더욱이 교황청과 비잔틴 제국은 문화적·언어적·지리적 소통이 부족했고, 성상 파괴에 대한 교리 논쟁으로 심각한 갈등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비잔틴 제국에 정치적 상황 변화가 있었습니다. 당시 비잔틴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6세였습니다. 그는 780년 불과 4살의 어린 나이로 황제에 올랐고, 따라서 어머니인 이레네 황후가 실질적으로 제국을 통치했습니다. 교황 레오 3세(재위 795~816)는 이레네 황후가 제국을 통치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황제의 자리는 공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회로 비잔틴 제국의 황제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추진했습니다. 800년 크리스마스 날, 레오 3세 교황에 의해 샤를마뉴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샤를마뉴는 본인도 모르게 갑자기 황제 즉위식이 행해졌다고 하지만, 교황은 민중의 열망에 따라 공식적으로 거행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레오3세의 종교적 이해와 샤를마뉴의 정치적 관점이 맞아떨어지면서 서기 800년에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했습니다. (작품 1) 2. 샤를마뉴의 서(書) 콘스탄티누스 6세가 어린 나이에 비잔틴 제국의 황제에 오르자 그의 어머니 이레네 황후의 섭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 출신으로 이콘 공경을 적극 지지하던 그녀는 787년 니케아에서 제7차 보편(세계) 공의회를 소집하였습니다. 니케아는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최초로 공의회가 열렸던 곳입니다. 황후는 이번 공의회 장소가 최초의 공의회가 열렸던 곳이기에 어렵지 않게 이콘의 정통적인 동의를 원했습니다. 공의회에는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재위 772~795)의 특사 두 사람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이 교황을 대신하여 공의회 결의문에 서명했습니다. 이콘 공경을 공식화하는 결의문은 그리스도교 전체의 동의를 얻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교황은 그리스어로 작성된 공의회 결의문을 라틴어로 번역해 샤를마뉴에게 보냈습니다. 당시 샤를마뉴는 황제는 아니어도 전 유럽을 정복하다시피 한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문제는 번역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번역문은 오역(誤譯)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그중에도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공의회에서 결정된 이콘의 ‘공경(proskynesis)’이라는 그리스 용어를 ‘흠숭(adoratio)’이라는 라틴어로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공경의 대상으로 규정된 이콘을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흠숭의 대상으로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샤를마뉴의 오해는 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서방 교회에서 이콘을 내부 장식이나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긴 것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샤를마뉴는 787년 공의회에서 결정된 내용을 거부했습니다. 신학자와 인문학자들을 소집해 이콘에 관한 논리를 정리한 뒤 792년 ‘샤를마뉴의 서(書)’를 발표하고 편찬하도록 했습니다. 샤를마뉴는 중립적 입장으로 이콘 옹호론이나 파괴론 어느 쪽에도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교회가 이콘 공경을 위한 제7차 니케아 공의회를 인정하면서도 샤를마뉴의 서를 거부하지 못한 것은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비잔틴 제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고, 유럽을 장악하고 있는 프랑크 왕국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서구 라틴 세계에서는 이콘의 추상적 이미지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적 이미지나 비유적 이미지를 선호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방 교회의 벽화와 수사본(활자에 의해 인쇄되지 않고 글과 그림을 손으로 쓰고 그려서 제작한 책)의 경우에는 이미지들을 이콘에서 빌려와 종교미술에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서방 교회가 이콘을 선택하지 않은 데엔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로마 교황청과 콘스탄티노플은 거리상 왕래가 뜸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신학적 갈등이 점차 고조되면서 1054년 동·서방 교회가 갈라졌습니다. 그 후 그리스도교의 본고장인 예루살렘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위협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유럽에서는 예루살렘에 들어와 있는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려 십자군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제4차 십자군 원정(1204년)은 원래 목적과 달리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중도에 방향을 바꿔 동로마 제국을 침략했습니다. 십자군에 의해 약탈·살인·유린이 행해졌으며, 수많은 보물을 탈취하는 사건을 통해 동·서방 교회의 관계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샤를마뉴의 서’를 발표하기 전후 이콘 공경에 관하여 교황과 공의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설명과 신학적 논의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는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또한 제4차 십자군 원정이 본래 목적을 저버리고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형제간 전쟁을 벌인 것은 부끄러운 교회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 김형부 마오로cpbc2024.05.16

“일상서 만난 하느님, 느낌 대로 그립니다”복음화전 연 안재선 신부 안재선 신부가 작업실에서 자신이 그린 ‘치유받은 바디매오’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매주 그림강론 10점 보완해 전시 선보여 고국 필리핀과 한국 문화 영향 배경, 풍요롭고 다채로운 색깔 인물, 한국 수묵화처럼 흑백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안재선 신부의 복음화전 ‘엑세제시스<Exegesis>’가 15일까지 경기 의정부시 시민로 갤러리 평화에서 열린다. 말 그대로 복음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한 ‘비주얼 주해(Exegesis)’다. 선교회 웹사이트와 SNS 등을 통해서도 미술사목을 진행하고 있는 그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위치한 선교센터에서 만났다. “어릴 때 TV에서 한국 영화를 봤지만, 한국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신학교에서 여러 성지를 알게 됐는데, 한국에는 필리핀 신부가 거의 없다고 해서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교류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국을 선택했어요. 같은 아시아지만, 두 나라의 문화는 많이 다르거든요. 이미 아는 지식과 모습이 아니라 다른 문화를 통해서 신비로운 하느님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재선’이라는 이름만 보면 한국인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는 2012년 필리핀에서 왔다. 선교회에서 본명 ‘안티케라 제이슨’을 한국식으로 표현하면서 선함이 지속되라는 뜻을 더해 ‘안재선’이라 부르게 됐다. 하지만 한국어를 한마디도 모른 채 우리나라에 온 안 신부에게는 여전히 언어의 장벽이 높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던 그에게 필리핀과 한국의 다른 문화 역시 시각적으로 먼저 다가왔다. “필리핀의 성당 안에 있는 작품들은 강렬하고 밝은 색깔이 들어가요. 아마도 과거 300년간 스페인의 영향을 받았 기 때문일 거예요. 반면 한국의 성화는 온화한 색이 많아요. 흰색, 크림색 등 파스텔 톤이 많아서 평화로움이 느껴져요.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 성당에 들어가면 가만히 앉아서 쉴 수 있죠. 저한테는 한글도 그림 같아요. 서예를 봐도 그렇고, 예쁘고 멋져서 즐겁게 한글을 쓰고 있습니다.(웃음)” 엠마오로 가는 길, 2023년. 안 신부는 사목할 때도 자신의 탈렌트를 접목했다. “제주교구에서 본당 사목할 때 함께 미술활동을 하면 신자들의 얼굴에 기쁨이 이는 게 보였어요. 그림이 신자들에게 특별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지난해부터 매주 그림강론을 하고 있어요. 글로 된 묵상도 좋지만, 긴 텍스트보다 한 장의 이미지는 어떨까!” 홍익대 평생교육원에서 2년간 그림을 배웠지만, 그는 일상에서 만나는 하느님과 신앙을 느낌 대로 그린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강론 가운데 10점을 선보인다. SNS 등에 빠르고 단순하게 표현했던 이미지를 꾸준히 보완한 것이다. 대부분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인물화는 복음 말씀이라 그런지 낯설지 않은 데다 반 고흐나 뭉크의 작품을 보는 듯도 하다. 좋은 목자, 2023년. “맞아요, 성경의 이야기를 제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에 접목한 거예요. 그리고 이 그림들은 제 생각과 경험의 요약이에요. 배경은 풍요로우면서도 강렬한 색깔인 반면 인물은 흑백 같은 느낌이죠. 배경은 어릴 때 고향에서 본 서양 미술에서 나왔고, 인물은 수묵화처럼 한국에서 받은 영향인 것 같아요.” 선교회 꼭대기 층에 자리한 자그마한 작업실은 어지럽게 놓인 캔버스와 물감, 붓들로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삶처럼 밝고 화려하고 때로는 어두운, 다채로운 색과 선으로 가득한 그림들은 보는 내내 알 수 없는 기쁨을 선사했다. 전시는 15일까지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 30분에서 오후 5시 30분 사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31-949-9153, 갤러리 평화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1.30

평신도, 세상 속에서 ‘복음의 기쁨’ 살고 증언하는 예수님의 제자[함께 걷는 시노드 여정] 8. 평신도와 시노달리타스 / 현재우(에드몬드) 소장 자신의 신원에 대해 자각하고 양성된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사명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복음의 기쁨’ 선포하고 증거하는 교회 지향 시노달리타스는 여전히 많은 신자에게 낯선 단어입니다. 물론 지난 2년 동안 많이 들어서 이제 그만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느끼는 신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여 교회 안에서 시노드를 하는지, 이런 교회의 움직임이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대부분 신앙을 갖게 되는 동기는 개인적 이유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신앙생활이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나 혼자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왜 우리는 교회에 속해 있나요?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공동체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했고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교회가 존재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이를 사랑의 삶으로 실현하신 구원 여정에 함께 하도록 초대받은 공동체입니다. 내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은 나 역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초대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여러모로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 이들의 공동체이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런 제자들에게 당신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교회는 교계제도를 만들고 전례도 확립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나약한 이들로 이뤄진 교회는 많은 잘못을 범하기도 했고, 하느님의 뜻과 멀어지는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이런 여정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교회를 쇄신하고자 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입니다. 세상을 등진 교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회, 교계제도가 너무 강화되어 공동체성이 약화된 교회 현실을 고백하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열린 공의회입니다. 공의회가 끝난 지 60년이 되었어도 교회의 변화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의회 정신을 이어받아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교회가 되자고 전 세계 모든 교회 구성원들을 초대한 것이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입니다. 이전 주교시노드는 주교들이 참여하는 회의였으나, 이번 시노드는 모든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 즉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하였기에 처음으로 남녀 평신도와 사제·수도자들도 참여했습니다. 경청 모임에서 많은 평신도 긍정적인 체험 한국 천주교회도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교구별로 하느님 백성 모두가 참여하는 자리를 마련해 서로의 소리를 경청하고 교회 현실에 대해 함께 논의한 종합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이것을 모아 한국 교회 의견서가 만들어졌고, 다시 대륙에서 모여 전체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노드 총회 제1회기가 작년 10월에 열렸습니다. 저는 각 교구의 종합의견서를 다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매우 많은 평신도가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종합의견서에는 평신도들의 시노달리타스 체험이 녹아있고 인상적인 내용도 꽤 있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하게 다가온 것을 함께 나누어 봅니다. 먼저 주목할 점은 많은 평신도가 경청 모임에 대해 긍정적인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경청은 단지 잘 듣는 것이 아니라, 듣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환대하는 것입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가 인격적 만남을 체험하면서 성령 안에서 대화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경청 모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교회의 약점도 함께 보게 되었다는 고백도 인상 깊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정직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회심하도록 이끄십니다. 교회의 부족함에 대한 고백은 단지 교회가 잘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는지로 이끕니다. 또한 시노드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 과정이 교회 쇄신에 필수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 모상이고 성령께서 진정한 교회의 주인임을 체험했다는 나눔도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변부 신자·비그리스도인·시민 사회의 목소리를 통해 교회가 세상과 함께 걸어가는 존재임을 확인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시노달리타스가 무엇인지 다 알지 못한 상태에서 참여했음에도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희망과 책임감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평신도, 교회 일원으로서 사명 의식 부족 그러나 이런 체험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바뀌어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저는 이 중 몇 가지에 집중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평신도들이 교회의 일원으로서 사명 의식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한국 교회 시노드 과정에서 제기되었습니다. 부르심에는 사명이 함께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복음 사명을 의식하지 못하고 내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그분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신도가 교회 사명을 함께 책임지는 일원이라는 분명한 의식이 있을 때, 우리는 보다 능동적으로 하느님 뜻을 살피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며, 그 과정에서 신앙이 가져다주는 참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둘째, 이런 자각을 갖고 살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게 양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번 시노드 여정에 또 한가지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 평신도 양성입니다. 이는 단지 교리교육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경 묵상과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배워가고, 배운 지혜를 서로 나눌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제1회기 종합보고서 14항에서는 평신도가 단지 양성의 대상이 아니라 양성의 공동 책임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이 크게 부족한 한국 교회는 평신도 양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양성은 하느님과 관계,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공동체 안에서 신앙과 삶을 나누는 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도 아니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사교 모임도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인생을 함께 살고자 하는 신앙인들이 그 여정에서 배운 신앙과 삶의 관계에 대해 서로 나누고 격려하고 배우는 공동체입니다. 이 과정이 ‘친교’입니다. 친교를 체험해야 세상에서 복음적 삶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과 삶을 나누는 분위기가 자리 잡도록 모두가 노력해야겠습니다. 그 가능성을 시노드의 경청 모임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넷째, 자신의 신원에 대해 자각하고 양성된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사명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구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고유한 카리스마를 살아가는 평신도 공동체들이 격려받고 활성화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하고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애쓰는 많은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것도 평신도들이 사명에 참여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요인일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정말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희망을 갖는 것은 하느님이 이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는 교회를 원하시고 평신도들은 세상 속에서 ‘복음의 기쁨’을 살고 증언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래서 함께 걸어가는 여정(시노달리타스)은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우리는 ‘지금 여기’에 함께 하자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우(에드몬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소장, 종교학 박사 cpbc2024.05.14

물과 포도주의 의미[월간 꿈 CUM] 꿈CUM 묵상_예수의 일생 (11)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제주 성이시돌 목장 새미은총의 동산 조형물)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에 대해 좀 더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감동적인 장면은 네 복음서 중에서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마르코, 마태오, 루카 복음에는 이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을까요? 신앙인들은 오래전부터 각 복음서 및 복음사가에 상징을 부여해 왔습니다. 마태오는 ‘사람’, 마르코는 ‘사자’, 루카는 ‘소’입니다. 그렇다면 요한 복음사가는? 네 그렇습니다. ‘독수리’입니다. 유럽의 대성당에 갔을 때 소, 사자, 독수리 등의 상징이 있으면 각 복음사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요한은 독수리라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어떤 동물입니까. 굉장히 높은 곳에서 땅에 있는 작은 동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상당히 좋습니다. 요한복음은 아주 뛰어난 신학적 통찰력을 가지고 예수의 삶 전체를 높은 차원에서 조망하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독수리로 비유됩니다. 이 점에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카나의 혼인잔치 기적 이야기는 굉장히 깊은 신학적인 통찰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카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를 통해 구원사와 관련한 깊은 의미를 묵상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머릿속에 이미 다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영화 ‘기생충’에 이런 말이 나오죠.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예수님은 이미 계획이 다 있으셨습니다. 술이 떨어졌다는 성모님의 요청에 예수님은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때’는 골고타 언덕에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그 ‘때’를 말합니다. 그 순간까지가야 당신의 때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영적으로 예민하신 성모님의 청을 뿌리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요한 2,7)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킵니다. 여기서 물과 포도주는 신학적인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하느님의 신성을, 물은 인간의 인성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미사 중에 신부님들이 포도주와 물을 섞은 후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피와 물의 상징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한 군사가 예수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이뤄진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전하는 내용입니다. 독수리처럼 신학적인 조망을 할 수 있었던 요한 복음사가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이런 구원사적 의미를 파악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 위해서, 당신 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쏟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시기가 완성되는 시점이 바로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때입니다.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완성되는 그 순간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첫 번째 기적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던 예수님은 마지막 기적인 부활을 완성하시기에 앞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쏟아내셨습니다. 당신의 피와 물을 쏟아내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바로 ‘물과 피를 쏟아내는 마지막을 향한 첫 번째 걸음’, ‘이제 다 이루어졌다고 말하게 될 그 마지막을 향한 첫 번째 걸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이뤄질 때 성모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기적을 향해 걸으시는 십자가의 길에도 성모님이 계셨습니다.(요한 19,25 참조) 위대한 구원의 첫 걸음에도 성모님이 계셨고,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모님은 예수님의 구원사적 활동 전체에 걸쳐서 함께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나약하기에 예수님의 위대한 고난과 희생, 구원의 여정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길에 가장 완전하게 동행하신 분이 성모님입니다. 우리가 그런 성모님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함께 매달려 갈 수만 있다면, 그 길은 동시에 예수님의 구원 역사에 함께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꿈CUM 지도신부, 성 바오로 수도회) cpbc2024.01.08

일상 속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법바쁜 일상 속 휴식처 돼줄 신앙서적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소개한다. 성모 마리아의 삶부터 아이들과의 대화, 심지어 우울감 속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길을 엿볼 수 있다. 나자렛 마리아의 생애코스모 프란체스코 루피 대주교 지음 / 김성길 신부 옮김 / 기쁜소식“마리아를 안다는 것은 사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며, 교회와 역사, 그리고 오늘의 세계를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단지 구세사의 줄거리만이 아니라 교회와 세상의 역사의 줄거리이기 때문입니다.”(‘서언’ 중에서)「나자렛 마리아의 생애」는 이탈리아의 코스모 프란체스코 루피 대주교가 쓴 「Maria di Nazaret Una biografia」를 김성길(의정부교구) 신부가 피렌체교구에서 사목할 때 읽고 번역한 책이다. 지난 2003년 「갈릴래아의 꽃-나자렛의 마리아」라는 제목으로 출간했고, 초판 번역에서의 어색하고 거친 부분을 보완하고 읽기 편하게 편집해 이번에 개정판을 선보였다.책은 성경과 성모님에 관한 교회의 거룩한 전승 자료들에 근거해 구세주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삶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나자렛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사신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가 되시고, 우리 가운데 한 분이신 마리아가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신 신비, 마리아와 예수님은 물론 성모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마리아는 믿음의 첫 사람이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고백하듯 마리아의 위대하심은 믿음 안에 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먼저 믿으셨고, 그리고 구세주를 낳으셨다. 마리아는 믿으셨기에 구세주를 낳으실 수 있었다.>”(‘하느님을 믿은 복된 여인’ 중에서) 책은 마지막으로 마리아께 바치는 많은 기도 중 삼종기도와 살베 레지나를 깊이 새긴다.“마리아께 기도하고 마리아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시며 구원이신 예수님께 기도드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항상 여왕이시며 자비의 어머니이십니다.”(‘기도 안에서 마리아와 함께’ 중에서) 성경, 내게 말을 걸다배성연 지음 / 생활성서「성경, 내게 말을 걸다」는 성경 묵상 글쓰기를 통한 심리 치유서다. 아동의 지능과 창의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배성연(루치아)씨는 학업과 결혼 생활, 강의 등 무리한 일정으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느님을 다시 찾게 되었다. 특히 4년여 동안 성경 공부를 통해 말씀을 묵상하고 글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심리적 자아 통합을 경험한다. 저자는 심리학의 프레임으로 성경을 담는다. 성경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심리적인 주제를 제시하고 쉽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약은 집사의 비유’(루카 16,1-8)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약은 집사는 누가 보아도 비양심적인 인간인데, 비유에서는 칭찬을 받는다. 왜일까? 저자는 심리학적인 통찰을 통해 자신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이 자아존중이 이웃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의탁으로 커져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잘 돌보라고.“우리는 주님 앞에서 모두 소중한 존재이다. 어느 누구도 나를 비난하거나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으며, 약은 집사처럼 자아존중감(self-esteem)을 지켜 내기 위해서 머리를 쓰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자신이 힘에 부치는 일을 억지로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창피한 일을 당하게 해서도 안 된다. 자기를 지켜내는 힘은 자신 안에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서 드러내는 약지만 당당한 모습을 보시고 집사의 주인처럼 칭찬해 주실 것이다.”(52쪽) 저자는 특히 5장에서 대표적인 발달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의 이론을 영성과 연결해 독자들이 인생의 각 단계에서 심리적인 발달 과업을 잘 이루어왔는지, 이에 대해 성경은 어떤 말씀을 해주는지 살펴본다. 하느님을 찾는 아이들프란체스코 리에라 지음실비아 오리아나 콜롬보 그림류젬마 옮김 / 바오로딸「하느님을 찾는 아이들」은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대화할 수 있도록 구성한 그림동화다. 초등학교 종교 교사인 저자 프란체스코 리에라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 궁금해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사랑, 행복, 죽음, 상처, 기도, 경청, 용서 등 한편으로 무척 철학적인 일곱 가지 질문을 예화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풀어썼다. 예를 들어 아이가 금붕어를 갖고 싶다고 말할 때 할머니가 금붕어를 원하느냐고 되물으면서 ‘갖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와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배우도록 이끈다. 아이들이 자주 쓰는 ‘행복하다’는 말에도 여러 결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으면 대화를 통해 친밀감을 키울 수 있고, 교리 교육 시간에 활용한다면 생각을 나누며 하느님 이야기, 교회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신심 생활 입문 묵상 노트 가톨릭출판사편집부「신심 생활 입문」은 평신도를 위해 쓰인 최초의 영성 서적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현대인들도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이번에 출간된 「신심 생활 입문 묵상 노트」는 고전에 담긴 가르침을 100일 동안 묵상하고 필사하며 마음에 더 깊게 담을 수 있도록 제작했다. 「신심 생활 입문」의 핵심 내용을 발췌해 고전 전체를 읽기 부담스러운 신자들이 부담 없이 매일 한 페이지씩 읽고, 마음에 남는 문장을 필사하고, 묵상한 내용을 기록하며,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다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The Blue HoleHYUN HO 그림 / 성바오로「The Blue Hole」은 글자가 전혀 없는 그림책이다. 제목처럼 채도가 다른 다양한 블루색과 흰색, 검은색만으로 작가가 우울함에 빠졌을 때 느꼈던 감정의 흐름과 어떠한 존재로부터 위로를 받고 이겨냈던 시간을 담아냈다. 독자가 오로지 그림에서 오는 느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글 없이 그림으로만 표현했다.이야기는 총 세 단계로 나뉜다. 파란 구멍에 빠지는 과정, 심해에 갇히는 과정, 누군가의 도움으로 심해를 벗어나는 장면. 작가는 “우울은 슬픈 동시에 아름다운 이면이 있는 감정인 것 같다”며 “그 우울감이 바다의 아름다움과 심해의 두려움과 유사하다고 생각해 그것들을 파란색 잉크로 표현했다”고 전했다.캐나다 에밀리 카 미술대학을 졸업한 HYUN HO 작가는 방송, 출판, 개인 SNS 등에 다양한 삽화를 그리고 있다.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평화신문2023.02.08

대중적 작품 통해 ‘그리스도교 문화’ 안목 넓히자최준규·구본만·서한석·박승찬 교수 집필 그리스도교 문화로의 초대 / 가톨릭대학교학부대학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과 ‘착한 사마리아인’,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와 티치아노의 ‘아담과 하와’. 그리고 고전 영화 ‘십계’와 2014년에 개봉한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 2004년 작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까지. 모두 명작이면서 가톨릭교회와 깊은 연관성이 있는 작품이다. 그리스도교를 배경으로 한 이들 작품에 대해 두루 소개하는 「그리스도교 문화로의 초대」가 출간됐다. 가톨릭대학교의 필수 교양과목인 ‘그리스도교 사상과 문화’의 교재로, 중세 철학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시각 예술, 근현대의 문학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으로도 익숙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사상과 진리를 전한다. 이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인 최준규, 구본만, 서한석 신부와 박승찬(엘리야) 교수가 함께 집필했다. “바티칸 교황청은 셀 수 없이 풍요로운 예술 작품들을 품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벽화일 것입니다. (중략)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가 천장에 그려져 있다는 사실로 더 유명합니다. 이 천장화 중에서 특히 중앙에 위치한 아홉 편의 연작에는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기술된 창조론과 인간의 첫 번째 죄를 다루는 원죄론의 내용, 그리고 인류 역사 시초에 이루어진 중요한 사건이 담겨 있습니다.”(15쪽)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직전 12시간을 집중적으로 다룬 2004년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중략) 개봉될 시점에 많은 사람들의 논란과 이슈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논란의 배경에 가장 큰 원인은 예수님께서 겪으신 잔인한 고통의 여정이었는데, 악당들에 의해서 자행된 예수님의 고난의 길이 너무나도 날카롭고 극단적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성과 열정 그리고 자신감은 수많은 논란과 혹평 때로는 악평을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극찬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만은 사실입니다.”(96쪽) 각 장에는 다채로운 명화의 이미지와 함께 생각할 거리도 적혀 있어 읽는 재미와 깊이를 더한다. 가톨릭대학교 총장 원종철 신부는 ‘초대의 글’에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학생들만이 아니라 신앙이 없는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 문화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라며 “대학 교재로서만이 아니라 일반 교양 도서나 여행의 안내서로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9.19

입체파 그림처럼… 한 작품에 담긴 여러 의미와 시선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16) 방주의 틀 - 영원을 향한 창문(3) (작품 1) 모든 성인 : 템페라, 74 x 49 cm, 17세기 말, 개인 소장, 파리, 프랑스. 화면에 병치·대치·여러 개의 공간 등이 망라된 이콘의 사례다. 하느님의 초월성 표현 위해 구성 방식에 중첩·병렬·대치를 활용하거나 의도적으로 미학적 형식 왜곡 하느님 세계에는 하느님의 빛만이 존재하기에 그림자가 없고 인물 눈동자에 흰점 찍지 않아 3. 이콘의 구성 동양사상에서 등장하는 무(無)의 개념과 서방에서 등장하는 초월성을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전부이면서 아무것도 아니고 어느 곳에도 없으면서 동시에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구약에서 바람은 하느님의 영이며 생명을 주시는 숨이고,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로 해석합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붑니다. 보이지 않는 공기의 움직임을 바람이라고 하며, 하느님의 초월성을 느낄 수 있는 대리 역할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초월성을 표현하기 위해 이콘은 부정주의·정적주의·신화사상을 종합하여 독특한 미학을 형성하였습니다. 등장 인물의 경직성, 그림의 고요함, 피부의 갈색, 빛의 표현, 일정하게 굽이치는 머리카락, 직선과 평행선처럼 움직이는 옷 주름들, 바라보는 눈의 위치, 원근법의 반대 현상, 색깔의 의미, 금의 사용과 의미, 몸에서 발산하는 빛 등은 앞서 언급한 신학 사상의 회화적 표현입니다. 이콘의 구성과 처리 방법에서도 그것이 드러납니다. 각각의 사건과 인물의 위치와 의미에 따라 개별 공간을 두어 구성하고, 화면 전체를 여러 겹으로 겹치거나(중첩) 또는 나란히 늘어놓거나(병렬), 혹은바라보는 방향을 여러 개로 응용하여 배열합니다. 이러한 방법은 현실 세계와 맞지 않는 모순(矛盾)이발생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좁은 화면에서 많은 내용을 보여주면서도 질서를 유지하게 합니다. 이는 이콘 이미지의 구성 방식에 시각적 응용과 미학적 형식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킴으로써 초월적 대상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장엄함은 크게, 숭고함은 높게, 종말론적 의식은 미완성으로, 초월적인 상태는 여백으로, 아름답고 충만한 소리는 침묵으로 표현합니다. 그 외에도 과장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여러 개의 시선을 표시하는 다중점·왜곡 등을 써서 나타냅니다. 이콘 ‘모든 성인’(작품 1)은 병치·병렬·대치·여러 개의 공간 등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이콘의 맨 윗부분에는 붉은 글씨로 ‘모든 성인’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이콘은 최후의 심판과 연결됩니다. 이콘의 가운데에 붉고 푸른 둥근 공간이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황금빛 광채와 더불어 하느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계십니다. 황금색 원 왼편에는 불쌍한 영혼을 위해 청원하는 성모 마리아(성자 하느님 옥좌의 오른편)가 있고 오른편에 요한 세례자가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구세주 탄생 이후의 영혼들을 위해, 요한 세례자는 구세주 탄생 이전 구약의 영혼들을 위해 하느님께 청원하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팔각 후광이 있는 천사 모습으로 ‘지혜’께서 서 계십니다. 지혜 주위에 천사들의 군단이 있습니다. 창궁의 위아래에는 해와 달·별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는 최후의 심판 때 오실 주님을 위해 준비된 옥좌가 있습니다. 그 옥좌 위에는 청색의 천이 놓여있습니다. 옥좌 뒤에는 그리스도에 의해 윗부분이 가려진 갈색 십자가가 걸쳐 있습니다. 옥좌 앞에는 아담과 하와가 무릎을 꿇고 하느님을 경배합니다. 성자 하느님 좌우에는 군중이 다섯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사 군단 아랫부분에는 왕·예언자·구약의 성조들이 있고, 그 밑에는 예수님의 사도들이 있습니다. 그 아래 계층은 교부·주교·사제들입니다. 그 밑의 왼쪽은 순교자들, 오른쪽은 은수자들과 수도자들입니다. 가장 아랫부분 왼편에는 성덕이 가득한 귀부인들이 있고 맞은 편에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반 나신의 늙은 여인이 있는데 이 여인은 이집트의 마리아이며 속죄와 참회 여인으로 성녀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성자 하느님의 옥좌 주위에 복음 사가들의 상징인 사람(마태오)·사자(마르코)·소(루카)·독수리(요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콘의 맨 윗부분 왼쪽 가장자리에 다윗왕이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시편 33,1)라고 적힌 두루마리를, 오른쪽에는 솔로몬왕이 “저희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어지시고 진실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만물을 자비로 통솔하십니다”(지혜 15,1)라고 적힌 두루마리를 펴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단부에는 나무와 꽃들이 만발한 천국에 노인 두 명이 있습니다. 왼쪽(하느님 시각의 오른쪽)은 아브라함, 오른쪽은 야곱입니다. 그들은 금색이 어우러진 옥좌에 앉아서 회백색의 천을 들어 올려 수많은 영혼을 품 안에 거두고 있습니다. 그 영혼들은 밖을 바라보고 있으며 의로운 영혼들입니다. 아랫부분 가운데에는 하체만을 가린 채 긴 붉은 십자가를 어깨에 걸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천국을 허락받은 착한 도둑입니다. 이 이콘은 마치 입체파 그림처럼 여러 개의 의미와 시선을 한 작품 안에 담아 총체적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 2) 성모님의 얼굴(일부) : 템페라, 94.5 x 80.3cm, 14세기, 성 클레멘스 성당, 오흐리드, 마케도니아. 4. 눈동자에 반사하는 흰 점은 찍지 않는다 이콘은 눈동자에 반사하는 흰점을 찍지 않습니다. 반사하는 반사광을 사용한다면 사실적이고 좀더 생생한 느낌을 줄 수 있는데도 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탈물질화를 다룬 장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실제 모습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하느님 세계에서는 하느님의 빛만이 존재한다는 성경 내용이 이콘 세계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빛은 물리적인 빛, 즉 태양 빛이나 전기나 불빛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공간과 관계없이 두루 퍼져 있습니다. 또 빛은 그의 창조물 모든 곳을 비추기 때문에 화면 내부에는 그림자가 생길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의 도성에서는 하느님 빛만이 존재하기에(묵시 21,23 참조) 그림자가 없으며, 인물 눈동자에도 흰점을 찍지 않습니다. 이렇듯 이콘은 모든 시간이 모여있다는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치 그리스도의 재림 때와 같이 전 인류가 동시간(同時間)에 하느님과 함께합니다. (작품 2) (작품 3) 천장화 : 모자이크, 5세기, 성 요한 세례당, 피렌체, 이탈리아. 내용은 최후의 심판이며 온 우주의 창조자는 예수님으로 표현되어 있다. 5. 이콘의 배치 교회 역사 안에서 성화에 대한 논란 후 이콘이 용인되면서 서방교회에서는 주로 가르침이나 교육적인 목적으로 이콘이 쓰였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인 성녀를 함께 현존시킴으로써 공동체의 증인으로, 또 공동체 삶에 동참하고 장려하려는 의도로 그려졌습니다. 또 교회 벽을 장식함으로써 전례에 나타나는 사실들, 즉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제대 위는 하늘을, 제대 밑은 땅을 나타냅니다.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인 전례 안에서 특히 미사 중에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을 현존시킴으로써 인간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보호 안에 들어가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물의 창조자(Pantokrator)로 천장화에 나타냈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지배하시는 권위자로 군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받아들이시는 구세주로서 축복하는 모습입니다. (작품 3) 김형부 마오로cpbc2024.04.24

하느님의 숨결인 우리의 숨을 잘 유지하려면 ‘쉼’ 필요[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55. 멈춤과 쉼 현대인에겐 안정과 회복을 위한 ‘쉼’이 필요하다. OSV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입에 ‘바쁘다’라는 말이 붙다 보니 ‘바쁘시지요?’가 일상 인사말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바쁨’이 하나의 미덕이 된 것 같다. 바빠야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 같고, 바빠야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스마트폰 알림을 즉시 확인하거나 모바일 메신저로 이런저런 사회적 관계를 맺기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바쁜지 묻게 된다. 혹시 스스로를 속이면서 하는 일 없이 바쁘다는 느낌으로 사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바쁘다는 느낌 때문에 누군가에게 시간을 주고 마음을 주는 것이 어렵다. 바쁘다는 생각 때문에 피로감이 증가하고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걱정은 많아지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바쁘다는 그 느낌,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탓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 멈춤과 쉼이 필요한 것이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야!” 쉬어도 피곤하다고 한다. 쉼은 피로에서 벗어나 마음과 몸을 재충전하는 일이다. 그런데 쉬고 나서 오히려 에너지가 소진되어 더 피곤하다. 요즘 우리네 세상은 갈 곳도 많고 먹거리도 넘치고 놀 거리도 다양해서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여행을 떠난다. 또는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오감을 자극해서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몸과 마음도 회복되면 참 좋겠지만 어디 그런가? 아침에 일어나면 몸은 무겁고 마음은 공허하고 정신은 산만하다. 눈과 귀에 자극을 준 스크린 놀이는 잠시 복잡한 일을 잊게 해주기에 쉰다는 착각이 든다. 여행을 가면 기분전환도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지만 피로감에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힘들다. 그렇게 피로가 누적되면서 스트레스는 더 높아질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주의력은 분산되고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실수가 늘어난다. 바로 이때 찾아오는 유혹이 있다. 도파민이 고프다. 도파민 결핍을 느끼면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놀이를 찾는다. 스마트폰이나 드라마, 쇼핑이나 술, 담배로 잠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전히 무기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또 도파민이 고파지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악순환이다. 그러면서 아무리 쉬어도 피곤한 현대인의 고질병인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물론 스트레스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기에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관리해야 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만프레드 슈피처는 “불쾌하고 부정적인 경험 자체가 스트레스를 주기보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무너질 때 자기불신에서 오는 무기력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외부 상황 자체에서 스트레스가 온다기보다 내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는 무기력감에서 온다는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는 내면의 에너지를 마구 훔쳐가고 고갈, 방전, 번 아웃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이때 절대적으로 ‘쉼’이 필요하다. 쉼은 에너지를 모으는 일이다. 이러한 쉼은 재미있고 자극적인 놀이가 아닌 밋밋하고 심심하고 지루한 일일 것이다. 사실상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손만 뻗치면 자극적이고 놀라운 놀이로 욕망회로를 자극해 도파민을 유발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렇게 되면 고요한 쉼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몰입하여 집중된 안정된 상태다. 묵상이나 기도 혹은 사색도 마음의 회복력을 높여주는 쉼이다. 전자기기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일상을 멈추고 고요하게 자신에게 몰입하는 것만으로도 중독과 우울의 뇌를 안정시켜준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시고 쉼의 시간을 보내셨다. 하느님의 숨결인 우리의 숨을 건강하게 잘 유지하려면 ‘쉼’이 필요하다. 정말로 잘 살고 싶다면 잘 쉬어야 한다. 숨은 생명이고 쉼은 숨을 유지시켜 주는 에너지다. 하느님의 숨결인 생명을 잘 돌보기 위해 잘 쉬어야 하는 이유다. 영성이 묻는 안부 잠시 눈을 감고 아주 잠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러 보면 어떨까요? 몸은 쉰 것이 확실한데 뇌도 쉬었을까요? 혹시 머릿속 이야기가 들리나요? 불안한 감정의 조각들. 걱정, 후회, 미움, 서운함, 욕심. 에고의 소리도 들리던가요? 몸이 멈추면 머릿속의 소리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쁠 때 들리지 않던 소리가 몸과 마음이 멈추면 더 크게 들리지요.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세요. 그렇게 점점 고요해지는 마음에 가만히 성경 말씀이나 평소 좋아하는 문구 한마디 떠올려 보는 것도 좋습니다. 조금은 심심하고 지루할 수도 있어요. 이 밋밋한 감정 속에 잘 스며들면 마음이 고요해져요. 하느님의 숨결인 나의 숨이 온전히 느껴져요. 그리고 가슴이 열리고 에너지가 올라옵니다. cpbc2024.01.31

‘풋’ 하는 웃음 유머 속에서 찾아낸 ‘거룩한 하느님’[신간] 유머 타고 오신 하느님 유머 타고 오신 하느님 임관빈(이레네오) 기쁜소식 국방부 정책실장 지낸 임관빈씨 신자로서 되새겨 보면 좋을 교리와 마음가짐 담은 책 출간 재미있는 이야기로 관심 끌고 신학적·인문학적 이야기와 저자의 경험담 함께 풀어 개인적 시련과 기도 통한 체험 4년 간 100여 권 읽으며 공부 하느님 사랑 알리는 데 기여하길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그 자리를 떠나갔는데, 한 중년 부인이 다소 머뭇거리며 정말 돌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부인을 보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돌을 들고 나오시면 어떡해요?”(136쪽) 자칫 복음을 희화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 뒤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과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 자료가 짜임새 있게 펼쳐진다. 최근 출간된 「유머 타고 오신 하느님」은 가톨릭 신자로서 되새겨보면 좋을 교리와 마음가짐에 대해 이렇게 ‘풋’ 소리 내어 웃게 되는 유머로 관심을 끌어낸 뒤, 관련 성경 말씀과 신학적ㆍ인문학적 이야기, 저자의 경험담 등을 더해 재미와 감동, 메시지를 탄탄하게 전달한다. 그런데 저자의 이력이 눈에 띈다. 성직자나 수도자, 신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그맨도 아니다. 육군참모차장, 국방대 총장, 국방부 정책실장 등을 역임하며 42년간 나라를 지킨 임관빈(이레네오) 예비역 육군 중장이 이 모든 걸 엮었다. 네 살 때부터 어머니 등에 업혀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그에게 신앙생활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늘 확고했고, 그 말씀에 따른 삶은 교회 밖 사회생활도 탄탄대로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다가왔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했던 9일 기도를 통해 저자는 새로운 신앙생활의 기쁨을 찾게 됐다. “뜻하지 않게 재판을 받게 됐고, 매듭을 잘 풀어주시라고 2018년 4월에 9일 기도를 시작했어요. 9일 기도가 그렇게 기쁘고 은혜롭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이런 시련을 그냥 주실 리가 없다, 틀림없이 하느님의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되돌아보니 제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어요. 예전에는 하느님이 모든 것에 우선했는데, 장군 되고 제 책이 유명해지면서 옅어졌더라고요. 허울 좋은 일은 하는데, 내면의 신앙생활은 약해졌던 거죠. 그걸 깨닫고 펑펑 울었어요.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청한 9일 기도였는데, 하느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지금까지도 2000일 넘게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메고 왔던 큼지막한 배낭에서 손때 묻은 여러 권의 책을 꺼냈다. 형광펜으로 그은 밑줄부터 빼곡하게 붙은 포스트잇까지, 얼핏 보면 수험생 참고서가 따로 없었다. 20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임관빈 작가의 9일 기도 노트. “묵주 기도는 예수님의 생애를 함께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결국 복음서를 다시 읽어봐야 해요. 또 기도를 하다 막히거나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관련 책을 찾아서 읽어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는 묵주 기도 할 때 한 시간이 걸려요. 그게 기쁘고 좋아요.(웃음)” 그렇게 9일 기도를 바치며 가톨릭과 관련된 100여 권의 책을 읽고 4년을 공부하던 어느 날, 하느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너한테 글을 쓰는 탈렌트와 유머 감각을 주지 않았느냐. 그 능력으로 나를 세상에 알려라. 많은 사람이 나를 어렵고 따분하게 얘기하니, 재밌고 쉽게 만나게 해라’라는 메시지가 와닿았어요. 거룩한 하느님 얘기에 유머를 넣는 것이 우려되기도 했는데, 유머를 강조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보고 확신을 얻게 됐어요.” 책을 읽다 보면 신앙 관련은 물론이고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소양과 만나게 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전작 「성공하고 싶다면 오피던트가 되라」는 2만 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인 데다 최근 일본어로도 번역 출간됐다. “독서를 좋아해요. 군대 서적도 많이 읽었고, 군인답지 않게 인문학적인 책도 많이 읽었어요. 생도 때부터 독서 노트를 만들어서 좋은 내용은 적어뒀고요. 그래서 인용할 문구가 많은 거죠. ‘오피던트(Offident)’는 ‘공부하는 장교’라는 뜻이에요.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려면 공부해야 하거든요. 신앙도 공부해야 되더라고요. 이제 제 나이 70이니까 인생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더니 이른바 사회적인 성공도 했어요. 그냥 출세가 아니라 사람들과 어우러지고 존경받는 삶이요. 제가 얼마나 하느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리고 싶고, 이 책이 하느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1.29

“사순 시기, 죽음 각오하고 십자가를 끌어안아 보세요”[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57. 죽음 나를 지키려고 십자가를 밀쳐내고 저항할 때 죽음은 시작되지만, 몸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수용할 때 오히려 생명을 얻는다. OSV “죽으면 썩을 몸뚱이 아껴서 뭣해!” 생전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다. 가난한 시절, 우리의 부모는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력투구하며 몸을 불살랐다. 죽으면 썩을 몸, 아낄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가난 자체가 이미 죽음이었기에 죽음을 껴안고 살았을 것이다. 친구처럼 동료처럼 죽음과 줄타기를 하면서 더불어 살았을 것이다. 웬만한 고난도 품고 가야 할 운명이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때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생명은 지키는 것이 아닌 연장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몸이 너무도 소중해졌다. 몸을 지키려 안간힘을 쏟다 보니 ‘건강염려증’이란 병까지 생겼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명을 연장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 같은 태세다. 생명 연장을 위해 의료검진에 돈을 펑펑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난은 ‘죽음’을 품어야 할 친구로 만들었고, 부는 죽음을 회피해야 할 이방인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수시로 내 몸을 들여다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막연한 두려움을 주는 것이 건강검진이다. 주의 요망이 갈수록 늘어가고 검진결과가 긴장되고 불안할 때가 있다. 재검받으라는 연락이 오면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며칠 전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병원 원장에게 불려갔다. 간 초음파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잠깐 누워 기다리는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 ‘간 기능에 이상이 생긴 걸까?’, ‘심각한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미 나의 마음은 지옥이었다. ‘죽음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나는 이미 죽음을 맞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두려움은 죽음에서 기인하는 불안감이 아닐까 싶다.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나 낯선 곳 낯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리고 섬뜩한 장면을 볼 때 두렵다. 내가 애착하는 물건이나 사람을 잃을 때 두렵다. 상실이고 죽음이다. 생명에 대한 애착은 죽음을 밀쳐낸다. 매일 매 순간 나의 것을 지키려 애를 쓰면서, 피하고 방어하고, 숨고 외면하면서,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결국 그 순간 나는 죽어가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난 십자가가 없는 거 같아요.” 한 수녀의 말이다. 그러면서 말하길 “어떤 소임이 주어져도 그냥 ‘끌어안아서’ 그런 것 같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끌어안다.’ 능동적으로 자진해서 사람이나 물건을 두 팔로 당겨서 품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포옹하기, 껴안기 혹은 품는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적극적으로 무엇이든 자진해서 가슴으로 품다 보니 어떤 일도 십자가가 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수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소임이 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낯선 곳에 가서 생소한 소임을 ‘순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수도자가 져야 할 십자가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나이 들수록 ‘낯섦’은 두려움으로 작용한다. 두려움은 애착에서 오는 상실감이고 또 하나의 죽음이다. 살아온 날보다 죽음이 더 가까이 왔음을 의식할 때 찾아오는 불안감이기도 하다. 사실 죽을 것 같은 십자가를 막상 끌어안다 보면 십자가가 아닌 선물이 될 때가 있다. 나를 지키려고 십자가를 밀쳐내고 저항할 때 죽음은 시작되지만, 몸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수용할 때 오히려 생명을 얻는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마태 10,39)이라는 진리를 너무 자주 잊고 살아온 것 같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1코린 15,36) 관념적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성경 말씀, 마음속 깊이 어딘가에 떨어져 죽어있다 꿈틀대고 살아 움직일 때가 있다. 십자가를 끌어안는 바로 그 순간일 것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샤를 보들레르의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위로도, 살게 하는 것도, 죽음.” 그러니까 살게 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거지요. 죽음은 “미지의 천국으로 열린 문”이라는 대목도 눈에 들어옵니다. 죽음은 ‘자신으로 존재하기에 탁월한 가능성’이라고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최초 하느님이 창조한 고유한 ‘나’로서 존재하게 해주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우리 모두에게 죽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지요. 마지막 시간에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은 작아지는 ‘몸뚱이’일 것이고요. 그렇기에 많은 것을 소유할수록 덧없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가난은 죽음을 친구처럼 마주하게 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사순 시기 나의 십자가를 밀쳐내기보다 끌어당겨 가까이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러다가 죽음을 각오하고 끌어안아 보세요. 죽음이 또 나를 살게 해줄 것입니다. cpbc2024.02.21
![[전문]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2023년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4/05/7CN1680677519097.jpg)
[전문]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2023년 부활 메시지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이 기쁨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인 평화가 여러분 가정과 이 나라에 그리고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알려주시고,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를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인간의 삶을 억누르는 죽음을 이겼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삶과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다는 것. 이것처럼 큰 기쁨과 희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또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죽음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보십시오.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죽음은 죽었습니다. 오 생명이여, 오 죽음의 죽음이여.”(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강론집) 인간 삶을 한계 지었던 죽음이 죽었다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사라졌다는 것에서 우리는 큰 희망과 용기를 품게 됩니다. 그러기에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세상을 사는 데 절망이 있을 수 없고,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을 넘어선 삶을 알고 있고 믿고 있기에, 또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신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신 부활을 모든 이들이 믿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빈 무덤을 찾아왔던 이들은 예수님 부활에 확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고,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 하였다고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마르 16,8 참조)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루카 24,16)라고 전합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에서 당신에게 하신 말씀들을 설명해 주시면서 그들의 눈을 열어주셨고, 성찬례를 통해 그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시며, 부활의 은총을 나누어 주시며 사명을 주시고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루카 24,36-48; 요한 20,19-23 참조)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의 은총을 주시며 우리 모두가 세상에 나아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은총이고, 인간의 마음을 바꾸어 놓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형제자매로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에페 2,14 참조)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전쟁 자체가 주는 인간의 비극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이 전쟁을 이용하여 자국의 이득 챙기기와 편 가르기에 급급합니다. 21세기에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장은 탈냉전에서 냉전의 시대로의 회귀를 보여주고 있으며, 세계 각지의 많은 나라들이 전쟁을 통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유혹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도 여기서 예외가 아닙니다. 심지어 중동지역에서는 지진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내전을 10년 이상 지속하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 정치의 논리가 만들어낸 비극은 서로가 서로에게 벽을 쌓게 하고 적대감과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참담함을 낳고 있습니다. 분명 모든 이들은 전쟁이 최고의 방법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어느덧 힘의 논리에 맛들인 사람들은 힘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꼭 전쟁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힘의 논리로, 경제적 우위로, 다수의 논리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 있습니다. 힘의 논리는 남들 위에 서려고 하는 교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에 대한 결과는 하느님께서 바벨탑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셨듯 분열과 죽음입니다.(창세 11,1-9 참조) “평화가 너희와 함께.”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의 욕망과 죽음으로 향하는 마음을 부수시며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으로 평화의 사도가 되라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분열과 죽음이 아닌 조화와 존중과 생명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며, 그 은총을 널리 전하라고 하십니다. 부활의 기쁨에 넘쳐 지내는 것은 죽음의 문화, 힘의 논리를 버리고, 화합과 존경과 일치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 안에서부터 우리 모두 평화를 살아가는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이를 통해 세상에, 한반도에 부활한 주님이 주시는 평화의 은총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이학주2023.04.05

서울대교구 ‘영 시니어 성경 퀴즈대회’ 연다사목국 노인사목팀 주관, 장학퀴즈 형식으로 65세 이상 2인 1팀 출전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이 만 65세 이상의 시니어들이 2인이 한 팀으로 참여하는 장학퀴즈 형식의 ‘영 시니어 성경 퀴즈대회’를 개최한다. 문제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복음 안에 나오는 지명, 인물, 메시지 등에서 출제되고, 대회는 버저를 눌러서 답을 맞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선전은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본선전은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 만 65세 이상의 신자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고, 본당별로 최대 3팀까지 가능하다. 예선전은 4월부터 6월까지 진행되고, 결승전은 9월 24일 열릴 예정이다. 1등에게는 총 300만 원(팀 200만 원, 본당 100만 원)의 상금이 전달되는 등 총 5개 팀을 시상한다. 「영 시니어 성경 퀴즈대회」에 참가하려는 사람은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후 이메일 또는 팩스로 접수하면 된다. 신청 기간은 2월 28일까지다. 노인사목팀은 “시니어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좀 더 가까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사를 기획했다”며 “보다 자세한 사항은 3~4월 중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에서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노인사목팀은 시니어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본당 대항 「시니어 성경 경시대회」를 10월 1일 개최한다. 경시대회 예선전은 본당에서 자체적으로 치르고, 본당 대표들이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 모여 본선을 치르게 된다. 경시대회 문제는 노인사목팀에서 출제한 4복음서 예상문제집(200문제)에서 60문제가 출제된다. 예상 문제집은 2월 20일까지 사목국 노인사목팀으로 신청하면 된다. 1등에 총 200만 원(대표 100만 원, 본당 100만 원)의 상금과 프란치스코 교황 축복장을 수여하는 등 총 3명을 시상할 계획이다. 문의/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 02)727-2385, 2386, 이메일 : isenior@hanmail.net, 팩스 : 02-727-2117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cpbc2022.02.16

‘이브’ 상으로 보여주는 고통과 생명의 몸부림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기획전‘생명의 기념비’, 12월 3일까지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가 최만린의 ‘이브’ 시리즈가 한자리에 모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 장기화에 더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까지 확산되고 있는 요즘, 전쟁의 비극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바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생명의 기념비’ 전. 성북구립미술관이 기획한 이번 전시의 핵심은 조각가 최만린(알베르토, 1935~2020)의 예술 활동을 알리는 작품이자 대표작인 ‘이브’ 시리즈다. 총 여덟 점의 ‘이브’ 가운데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네 점이 그의 회고전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복원을 마치고 돌아온 ‘이브 58-1’은 3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장유정 학예연구사는 “‘이브’는 성경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여성을 넘어 사람의 대명사”라며 “‘이브’라는 표제가 붙은 작품들은 6ㆍ25 전쟁이라는 극한의 경험을 겪어낸 한 예술가의 생명을 향한 몸부림이자, 어쩌면 지금도 전쟁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1958년과 1961년 초기작이 여성의 인체를 표현했다면 이후 작품들은 성별의 구분이 사라진 형태다. 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던 최 작가는 살아야겠다는 동물적인 감각과 폐허 속에서도 생명을 찾아야겠다는 의지로 ‘이브’ 시리즈를 작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생전에 그는 “‘이브’는 나의 생명에 대한 기념비라고 생각한다”며 “부서진 생명, 죽음에 임박했던 생명을 다시 한 번 쌓아올리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만린 작가가 30년간 머문 자택을 미술관으로 조성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최만린 작가의 작업 도구. 이브 58-1, 석고, 1958년 전시장에는 동시대에 전쟁을 겪은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되고 있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동료를 애도하며 한 땀 한 땀 그려낸 김창렬의 ‘물방울’, 앙상한 나목 앞에 선 소년을 포착하여 전쟁의 참담함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임응식(요셉)의 사진 ‘나목’ 등이다. 최만린 작가가 ‘이브’를 만든 자신의 심정을 잘 표현했다며 공감했던 안장현의 시 ‘전쟁’과 한국전쟁을 그린 폴란드 시인 타데우쉬 루제비츠의 ‘한국의 봄, 파종기에’도 전시 중이다. 또 전쟁의 참상을 인공지능을 활용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표현한 한승훈의 영상 작품 ‘선명한 꿈’과 ‘이브’와 관련된 드로잉, 아카이브 자료가 함께 공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12월 3일까지 휴관일인 주일과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사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한편 최만린미술관은 성북구립미술관 분관으로, 최만린 작가가 30년간 거주했던 서울 정릉 자택을 성북구에서 매입해 지난 2019년 미술관으로 조성한 곳이다. 작가가 작업실로도 활용했던 장소로, 켜켜이 쌓여 있는 삶의 흔적은 물론 나무 계단 및 천장, 높은 층고, 아치형의 문, 작은 정원 등 여느 주택과는 다른 이색적인 공간이 뿜어내는 멋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문의 : 02-6952-5012,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