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시시각각] 박수정 기자 "美 교회 지도자들, 트럼프 反 이민정책 비난"* 박수정 기자, 보도총국 교계사회부 데스크,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인터뷰 전문] 매주 금요일 한 주간의 가톨릭교계 동향과 소식을 알아보는 [가톨릭 시시각각]. 박수정 기자와 함께 합니다. ▷ 박 기자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이번주 의정부교구와 서울대교구에서 사제, 부제 서품식이 연달아 있었죠? ▶ 네, 1일엔 의정부실내체육관에서 의정부교구 사제,부제서품식이 있었고. 어제는 고척 스카이돔에서 서울대교구 부제서품식이 있었습니다. 오늘 오후 2시엔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식이 열리고요. 대부분 사제 부제서품식을 같이 하는데 서울대교구는 대상자가 많아서 따로 하고 있습니다. ▷ 그렇군요. 사제와 부제. 뭐가 다른가요? ▶ 네, 부제부터 성직자라고 불리는데요. 성직자라고 하면 부제, 사제, 주교를 일컫습니다. 부제와 사제는 역할이 조금 다른 데요. 부제는 강론을 하고 일부 성사를 줄 수 있지만, 미사집전이나 고해성사는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사제만이 할 수 있습니다. 복장도 차이가 납니다. 사제는 제의를 입고, 부제는 제의가 아닌 부제복을 입습니다. 신부님들이 목에 거는 긴 띠를 영대라고 하는데요 사제들은 이를 똑바로 목에 걸치지만 부제는 왼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허리로 모아 사선으로 착용합니다. ▷ 그런 차이가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사제, 부제 모두 남성들인데, 지난해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 부제를 언급한 적이 있지요? ▶ 네 교황은 지난해 여름 여성부제연구위원회 설립을 승인하고 위원장에 교황청 신앙교리성 차관을 임명했습니다. 초기 교회에는 여성 부제가 존재했었는데요. 그 역할에 대한 이해는 여러 의견이 분분합니다. 오늘날 서품 받는 남성 부제와 같은 역할이었는지, 아니면 현재 여성 수도자들과 같은 역할이었는지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그래서 교황은 초기 교회 여성 부제의 역할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여성부제연구위원회를 설립한 겁니다. ▷ 이와 관련해서 당시에 여성 사제서품으로 가는 첫 단계가 열렸다는 등의 기사들이 나왔는데, 섣부른 추측이었군요. 최근 명동성당 지하 1898 광장에 상설 우표 전시관이 개관했다면서요. ▶ 평생 우표를 수집해 우표 신부로 잘 알려진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최익철 신부의 우표를 상설로 전시하는 최익철 베네딕도 신부 우표 전시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현재 전시관에서는 예수의 한평생, 사순절, 부활절, 성모성월 등 전례력에 따른 다양한 우표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최 신부님이 소장한 우표는 약 10만 장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 10만 장 정도면 어마어마한 양인데, 우리나라 우표만 있는 게 아니겠네요. ▶ 최 신부님이 올해 연세가 아흔 다섯인데요. 여덟살 때부터 우표에 관심을 가지며 한국 우표를 수집했고 1970년대부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우표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이런 우표가 있을까 싶은데 신구약 성경 내용, 성인과 교황등 가톨릭 교회 관련 우표들이 많습니다. 세계의 크리스마스 기념 우표도 볼거리인데요. 최 신부님은 이러한 우표 수집으로 책도 여러 권 펴내셨습니다. 우표로 보는 성인전, 우표로 보는 구세사. 우표로 보는 교황전 등 40권이 넘습니다. ▷ 대단하시네요. 책 내신 인세로는 장애 아이들도 돕고 있다고요? ▶ 네. 청각장애 아이들에게 보청기를 선물해 줬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보청기를 선물받은 아이들이 3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쯤되면 최 신부님의 우표 수집은 수집이 아니라 우표 사목이 되겠는데요. 이번에 상설 전시관이 생겨서 최 신부님께서 소장하고 있던 귀중한 우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됐습니다. ▷ 요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반인권 정책으로 시끄러운데, 미국 가톨릭 교회 입장은 어떻습니까. ▶ 미국 교회 지도자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비인권적 이민 정책에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미국 주교회의 이민위원회 위원장 조 오스틴 주교는 성명을 발표하 “우리는 입국자와 난민을 환대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사랑과 희망의 행동이라고 믿는다”며 “반이민 행정명령은 주교단 입장과 명백하게 불일치한다”고 말했습니다. 알링턴교구의 미카엘 버리게 주교는 “주교회의 성명은 이방인과 난민을 환대하는 미국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새 정책에 대한 반대 의사를 전달하라고 교구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 주요 이슬람 국가 국민에 대한 비자발급을 일시 중단하고 이들의 입국을 금지시켰는데, 사실상 반이슬람 정책이 아닙니까? 종교 갈등으로 번질 소지도 있고요. ▶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시리아 난민의 미국 입국을 무기한 금지하면서 또 그리스도인 난민의 경우에는 입국 우선권을 줄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더 키웠는데요, 시카고대교구장 블레이스 수피치 추기경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행정명령은 가톨릭교회는 물론 미국의 가치관에도 어긋난다고 비난했습니다. 또 미국 교회 지도자들은 입국 우선권과 관련해선 일부 국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다른 형태의 박해를 받는 타종교인보다 우선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요즘 교회 안팎에서 ‘답게 살겠습니다’ 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데, 천주교와 불교 등 7대 종단이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확산에 발벗고 나섰다면서요. ▶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세상을 변화시키고 말씀을 실천하자는 실천운동인데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쇄신이 필요하다는 데 뜻이 모아져 한국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시작한 운동입니다. 선생님이면 선생님답게, 엄마면 엄마답게, 이렇게 00답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그에 걸맞는 실천적 변화를 독려하는 겁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시작해 다른 종교도 함께 하기로 했군요. ▶ 네 7대 종단 협의체인 한국중교인평화회의라는 단체가 있는데 이곳 산하에 답게살겠습니다 범국민운동본부가 만들어졌습니다. 답게살겠습니다 범국민운동본부는 올해 계획을 발표하면서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확산을 위해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전문 연구소를 설립하고, 각 종단이 교육과 행사를 공동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또 종단별로 대국민 홍보와 교육도 강화하기로 했는데요, 천주교는 최근 답게송을 제작했고, 유교는 지역별 서원을 중심으로 시민 교육을 추진 중입니다. ▷ 또 다른 활동들도 있습니까? ▶ 네. 올해 6월에는 종단 대표 지도자들이 모여서 답게 살겠습니다 대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고, 11월에는 대규모 선포식과 집회도 열 계획입니다.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권길중 한국평협 회장은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이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특별히 각 종단들이 신자들과 시민들에게 이 운동을 알리는 데 힘써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 한주간의 가톨릭 교계 동향과 소식을 알아보는 [가톨릭 시시각각], 박수정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백슬기2017.02.02
![[토요 초대석] 김건정 "테마여행과 순례여정, 70세 잔치는 이제부터 시작"](//cpbc.co.kr/CMS/news/2016/10/rc/657377_1.3_titleImage_1.jpg)
[토요 초대석] 김건정 "테마여행과 순례여정, 70세 잔치는 이제부터 시작"10/22 김건정 "테마여행과 순례여정, 70세 잔치는 이제부터 시작" * 「유라시아 철도여행 발트3국 버스여행」 저자 김건정 지휘자,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발언 전문] ------------------------------------------------------------------------------ 교회음악을 전공한 지휘자 김건정(세례명: 파트리치오) 씨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체험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또 몇 년 전에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서 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교회음악을 주제로 한 여러 차례의 배낭여행 경험을 가지고 계신데요. 김건정 씨를 오늘 토요 초대석에 모셨습니다. 지금은 또 음악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 김건정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이렇게 스튜디오에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김건정 선생님. 교회 성가대 지휘를 오래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지휘와 연을 맺으셨어요? ▶ 제가 성가대 지휘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79년 서울 성수동 성당에서 청년성가대인 예루살렘성가대를 시작을 합니다. 그 당시에는 청년성가대가 교중미사를 담당했고요. 그후 계속 이어져서 제가 직업군인이었기 때문에 전근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래서 전국 6개 교구 약 12개 본당에서 한 35년간 지휘자 활동을 했습니다. ▷ 그러면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도 그러면 교회음악을 전공을 하신 겁니까? ▶ 아닙니다. 원래는 저희 집안이 불교 집안이었고 제가 처음 해군사관학교 졸업하고 장교가 된 다음에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성가대에 갔어요, 영세 그 전에. 영세 전에 성가대에 들어가서 거기에 매료돼서 음악을 먼저 알고 그다음에 신앙을 알고. 1년 후에 세례 받았습니다. ▷ 그러셨군요. 세례명이 어떻게 되세요? ▶ 파트리치오입니다. 영어로는 패트릭. ▷ 그러시군요. 지금 보니까 인터넷 카페 `다음`에 회원수 만 명이 넘는 `전례음악` 카페를 운영하고 계신다는데, 주로 어떤 분들이 회원으로 이렇게 가입해 계세요? ▶ 다음 카페 전례음악은 전체 회원이 12,000명 넘고요. 회원 구성은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주로 25% 정도가 현직 지휘자, 전직 지휘자. 그다음에 또 30% 정도는 반주자, 오르가니스트. 나머지는 독창자, 성가대원이고요. 많지는 않지만 개신교의 찬양목사나 찬양대지휘자도 있습니다. ▷ 그런가요? ▶ 그렇습니다. ▷ 그러면 그분들이 카페에 모여서 주로 친교 모임도 나누고 정보 공유도 하고 그렇습니까? ▶ 이것이 원래 이제 인터넷 온라인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카페를 통해서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합니다. 어떤 성가대 문제가 있으면 토론도 하고 와서 자기가 답을 찾아가고. 더 중요한 것은 카페에서 전례학, 전례음악. 이런 것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 아무래도 개신교에 계신 분들은 전례에 대한 부분은 좀 천주교에서 많이 배우고 싶어라 하시는 분도 좀 계실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 맞습니다. 지금 저희가 아는 거와 다르게 개신교에서도 음악을 전공하고 아주 깊이 들어가는 분들이 많아요. 이런 분들이 문헌을 찾다 보니까 결국 중세 때의 가톨릭음악을 갈증을 느끼고 더 들어가면 초대교회 때 음악은 어땠는가. 이분들이 궁금해서 책도 보지만 이런 카페에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 그렇군요. 지금부터는 책에 관한 말씀을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최근에 책을 한 권 내신 게 책 제목이 저도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돼 있네요. 어떤 책입니까? ▶ 제가 한 반평생을 우리 가톨릭 전례와 음악에 올인하다시피 했거든요.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니까 현재보다는 초대교회 이후에 전례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했는가. 특히 서방 가톨릭교회와 1054년에 동방교회가 갈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런 옛날 전례와 음악을 알고 싶은 열망이 있던 차에 러시아 정교회를 순례하고 싶다, 이렇게 해서 배낭여행으로 제가 한 40일 체험하고 쓴 책이 이라는 여행 책자입니다. 그리고 다 아시지만 1991년에 구소련연방이 해체돼서 위성국들이 독립했지만 발트3국, 즉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이 나라들도 정교회 영향을 많이 받아서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각기 가톨릭교회, 루터교회를 존속, 유지해 온 점을 저는 높게 평가하고 또 궁금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지역들을 여행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여행안내서 겸 순례안내서를 낸 셈입니다. 정교회도 우리 가톨릭교회와 가까운 형제 아니겠습니까? ▷ 사실 그냥 좀 힐링하는 그런 여행이라기보다는 배우고 싶어서 가셨군요, 그러니까. ▶ 그중에 테마여행이죠. 그냥 배낭여행, 그냥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정교회 들어가서 전례도 보고 특히 정교회가 이콘이 유명하지 않습니까? ▷ 성화, 성상. ▶ 그렇습니다. 그것도 진품을 보고 아주 독특한 양파를 거꾸로 놨다는 그런 돔까지도 아름답고. 상당히 우리보다 문명국이었던 그런 러시아의 정교회를 봄으로써 우리 가톨릭 교회도 옛날에는 저랬었구나 하는 것도 느끼게 되고 아주 큰 도움이 됐습니다. ▷ 그러네요. 정말로 테마여행이네요. 그리고 보니까 유라시아 철도여행.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분명히 이용해서 횡단을 하시게 됐는데 아무래도 영화 닥터지바고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거고. 어떻습니까? 실제로 그렇게 좀 낭만적이고 또 아름다운 여행이었나요? ▶ 네. 저도 청년 시절에 영화 닥터지바고를 보면서 아름다운 시베리아 설경에 아주 매료됐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저걸 한번 타봤으면, 가봤으면. 또 바이칼호 참 이렇게 아름답다는데 가봤으면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이뤘는데. 사실 열차 여행에 대한 지나친 낭만은 금물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몇 시간은 아주 생소하고 좋은데 이게 몇 박 며칠씩 그냥 계속 가면 비슷한 황량하고 자작나무숲이 쭉 보이기 때문에 조금 황무지, 조금 지루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 시간은 현지인들과 이렇게 친교하고 묵상하고 그런 시간을 가지면 참 좋더라고요. ▷ 시베리아횡단철도 타고 가는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말씀하신 바이칼호수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 일각에서는 우리 한민족의 기운과도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이렇게도 말씀하신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그렇게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우리 김건정 선생님 갔다오셨으니까.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어떻습니까? ▶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이칼호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호수라고 하지만 사실은 바다 같은 데입니다. 엄청 큽니다. 남북 길이가 640km니까 우리 휴전선 파주에서부터 제주도까지의 거리 정도 되는 그런 큰 담수호고요. 전세계 담수호의 한 20%를 담고 있다고 하는 바이칼호인데. 수심도 깊은 데는 1,600m 정도고. ▷ 바다보다도 더... ▶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바이칼호는 자연정화 기능이 뛰어나서 아주 청정호수입니다. 아무 데서나 물을 마실 수 있고요. 호수라고 하지만 성경에도 예수님이 호수에서 풍랑을 만난 얘기가 나오거든요. 거기도 풍랑이 있고 거칠 때는 엄청 거칩니다. 그래서 멋있는 호수고요. ▷ 갈릴레아호수도 반경이 거의 50km 가까이... ▶ 그것보다 엄청 크죠? ▷ 더 크네요. 엄청나게 크네요. ▶ 그런데 더 놀랄 만한 것은 우리가 설악산이 언제가 좋으냐. 다 좋잖아요. 겨울에 설경 좋고 여름에도 수목이 좋고 마찬가지로 가을에는 단풍이 좋듯이. ▷ 철마다 다 산의 이름이 다르고요. ▶ 겨울에 꽁꽁 얼어요. 그러니까 그냥 트럭이 막 다닙니다, 도로에요. 봄, 가을에는 해빙기니까 하바크래프트라지 하는 수륙양용정이 막 날아다니고. 여름에는 배가 도선에 다니고. ▷ 김건정 선생님. 바이칼호수 유라시아 횡단철도는 언제 여행... ▶ 저는 4월 초였거든요. ▷ 올해 4월 초. 그러셨군요. ▶ 그러니까 얼음이 아직 언 상태라 배도 못 다니고. 그래서 하버크래프트라고 하는 날아다니는 썰매배를 타고 들어갔고요. 바이칼호가 한민족하고 관계가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로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보면 바이칼호의 알혼섬에 2,000명이 사는데 보면 한국사람 같아요. 몽골 브리야트족이라고 하는데 정말 이분들이 우리 조상하고 같겠구나. 심지어는 아직 검증은 안 됐는데 징기스칸의 비밀 묘가 거기 있다, 그런 전설 비슷한 게 아직 검증된 건 아니지만 상당히 한국사람으로서는 친근감이 드는 그런 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 여행 이야기, 저희가 지금 전례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여행 이야기로 좀 바꿨는데요. 말씀을 좀 여행 이야기를 좀더 해보죠. 보니까 발트3국, 또 벨라루스 거쳐서 폴란드까지 한 40여 일 동안 여행하신 걸로 이 책에 나와 있는데, 그 얘기를 다 듣기에는 좀 시간이 부족할 것 같고. 마지막 여정을 폴란드로 잡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우리가 참 존경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조국이 폴란드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 그분이 교황이었을 때 폴란드라는 나라가 구 소련 공산주의 치하에서 압제를 받고 그렇게 큰 나라도 아닌데 어떻게 폴란드에서 교황님이 탄생했는가,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유라시아 횡단철도를 간 후에 폴란드 한번 가보자. 그리고 이왕이면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인 바도비체도 한번 가보자. 이렇게 해서 성지순례하는 마음으로 더 간 겁니다. ▷ 그러셨군요. 보니까 이번 유라시아 여행은 그냥 단순한 테마여행이 아니고 보니까 러시아 정교회 순례, 또 폴란드 성지순례에 아마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좀 드네요. 교회음악 전공자로서 여행 주제를 신앙과 전례 쪽에 맞추고 많은 여행을 해오셨는데 동방교회 이야기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동방교회 지역의 전례, 음악. 어떤 특징들이 있습니까? ▶ 간단히 말씀드려서 우리 가톨릭교회 중세 때 7세기, 8세기 때 전례 모습을 제가 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트렌토 전례 이전에는 신자들을 보지 않고 지성소에는 사제만 들어가서 예식을 하고... ▷ 아마 우리나라도 1969년 이전까지는 아마 그렇게 엄격하게... ▶ 그것보다 더 엄격하죠. 엄격하고요. 신자들은 미사 때 사제가 하는 동작을 못 봅니다, 커튼을 쳐버리니까. 동쪽을 향해서 이렇게 사제와 거의 분리된 상태에서 하고. 그 다음에 저는 음악을 했기 때문에 음악을 봤는데 아무리 큰 성당, 좋은 성당도 파이프오르간이 없어요. ▷ 그렇습니까? ▶ 네, 없어요. ▷ 왜 그렇죠? ▶ 그래서 보니까 전부 아카펠라예요. 무반주. 그러니까 주님이 인간에게 만들어준 육성 그대로 노래를 하는 것이지, 거기에 인위적인 악기가 가미되면 안 된다, 이래서 물론 그 주례사제는 아주 노래 잘하는 그리고 성가대는 100% 무반주 성가에요.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작은 성당에도 풍금도 없고 아무리 작은 성당을 가도 한두 명의 칸토르라고 하죠. 독창자, 선창자가 있어서 성경도 그냥 다 노래처럼 낭송을 하고. 그래서 저는 솔직히 오르간이 없으면 미사가 안 된다, 못 한다 이랬는데 완전히 깨져버렸어요, 선입관이. ▷ 우리 한국 가톨릭 전례에서는 미사 전례 보면 화답송이나 알렐루야 정도 이렇게. 그런데 거기는 거의 그러니까 전부 다 무반주네요. 음악 자체가. ▶ 네. 무반주고 또 우리 지휘자가 트렌토 전례 이전 그대로 사제와 성가대가 함께 주고받는 그런 구조지, 신자들은 참여를 거의 못 합니다. 보니까 주님의 기도도 하고 신경 정도는 다 외워서 같이 하고 나머지는 다 사제와 성가대만 이렇게 하고 독창자가 하고. 그래서 우리의 옛모습, 그것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차치하고라도 우리의 옛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저는 상당히 반가웠습니다. ▷ 그러셨군요. 그리고 몇 년 전에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또 순례를 하시고요. 라는 책도 내셨다고 하는데. 젊은이들도 힘들다고 하는 길을 걸어서 순례를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순례를 하게 되신 겁니까? ▶ 제가 2011년도에 성가대 지휘자를 마감하고 2012년도에 그리스도교의 3대 성지인 스페인 산티아고에 한번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성지니까 가장 좋은 코스가 800km 정도 되는 프랑스길이라고 하는 코스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당시에 65세 기념해서 한번 가다가 쓰러지면 그게 순교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간 겁니다. 그래서 참 스페인 산티아고가 참 길이 아름답습니다. ▷ 순례길 전체로 하면 거의 한 900km? 800km 정도 되죠? ▶ 공식적으로는 800km라고 그러는데 길을 잘 알고 가까운 길로 가서 그렇고, 전문가들이. 저 같은 사람들은 막 가다가 시행착오도 하고 830km 걸은 것 같아요. 하루에 평균 27~28km을 배낭을 지고. 보통 배낭이 자기가 한 달 동안 쓸 의류라든지 이걸 가져가니까 한 13kg의 무거운 걸 메고 진짜 고행입니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옛날 순교자들은 길도 없고 도둑도 많고 짐승도 많은데 여길 걸어갔구나. 그러니까 정말 옛날에는 목숨을 걸고 진짜 순례를 한 거죠. 우리는 아주 편하게 한 편인데 그래도 한 달 이상 걷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죠. 그래서 기도하며 또 많은 고풍스러운 옛날 성당에 들어가서 제가 좋아하는 성가도 부르고, 혼자서 그래서 저는 상당히 행복했습니다. ▷ 지금 교회음악 전공하신 김건정 음악 칼럼니스트와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혹시 우리 김건정 선생님, 청취자분들이 혹시 연세가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제가 이 책의 에필로그라고 하죠? 마무리글을 보니까 70세에 잔치는 시작되었다, 이렇게 글을 쓰셨는데 왜 이런 글을 마무리글로 쓰셨어요? ▶ 요새 평균수명이 길어졌고 60 전후에 은퇴하거나 이런 것들이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이분들이 자칫하면 소외감도 느끼고 침체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에 91세 된 미국 할머니가 암투병하면서 병원에 입원 안 하고 여행하다가 이렇게 죽으면서 남긴 말이 있지 않았습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그래서 저도 특히 우리 신자들 중에서 50~60대 중장년 이런 분들이 좀 도전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과 병행해서 이런 여행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판에 박은 단체여행보다도 자기가 어떤 테마를 정해서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여행도 상당히 보람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행을 한 겁니다. ▷ 그런데 이번에 산티아고 순례길 말씀하셨잖아요. 거의 800km가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더 길지 않습니까? 체력적으로 좀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 제가 첫 날 프랑스 국경에서 스페인 가는데 피레네 산맥에서 올라가다가 쓰러졌어요. 평생 안 썼던 근육을 쓰다 보니까. 그래서 주저앉고 고통을 이겨낸 적이 있고요. 그 다음에 중간에 메세타라고 하는 사막지대가 있어요. 거기 뙤약볕에 걷다가 아주 어질어질하고 그래서 쓰러질 위기도 있었고요. 그래서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신앙이 없으면 중도포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변에 산티아고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이 10명이라 그러면 제가 보기에 반 이상은 중간에 점프를 하거나 포기한 사람이 많고. 그래서 순례와 기도하는 마음이 아니면 800km 완주는 상당히 쉽지 않습니다. 분명합니다. ▷ 미리 떠나실 분들은 체력적인 관리도 해놓고. ▶ 당연합니다. 흔히 많은 오류가 나는 주말마다 골프를 한다, 등산을 한다 이래가지고 자신감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요. 제 경우에는 지리산 종주도 한번 해보고 충청남도 새만금 방조제가 있어요. 그게 한 30km입니다. 이것도 한번 혼자 걸어보고, 배낭 지고. 그렇게 하면서 자기 체력을 어떻게 안배하는가, 내가 어느 부분에 취약한가 알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봅니다. ▷ 그렇군요. 혹시 청취자분들께서 산티아고 순례길, 세계 3대 순례지다, 이런 말씀을 해 주셨는데 거기가 어떤 분의 성인이 있을까 이렇게 여쭤보신 분들 계실 것 같아요. ▶ 많죠. 성경에 보면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가 스페인으로 디에고입니다. 디에고인데 이게 성이 붙으니까 산 디에고 해서 산티아고가 된 거거든요. ▷ 영어로 말하면 세인트(Saint) 야고보가 산티아고로... ▶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식 이름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그러니까 우리말로 별이 빛나는 들판에 있는 산티아고 묘거든요. 이것이 9세기에 무덤이 발견이 돼서 성지가 됐는데. ▷ 야고보 성인의... ▶ 그렇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의 주보 성인이 산티아고, 야고보고. 유럽에서는 자콥스라고 하고 이름이 다릅니다마는 산티아고라고 하는 도시가 많아요. 칠레에도 있고... ▷ 그러네요. ▶ 원조가, 오리지널이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입니다. 우리가 대부분의 신자들이 성지순례하면서 이스라엘하고 이탈리아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루살렘, 그다음에 로마, 그다음에 산티아고가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큰 성지이고 요새는 신자가 아니라고해도 유명하다고 하니까, 또 걷는 길이 아주 아름답고 하니까 타종교나 무교인 사람도 많이들 갑니다. ▷ 그렇군요. 우리 인생이 곧 긴 여행이다. 순례의 여정이다 이런 표현도 하는데 여행에서 얻는 교훈이야말로 살아있는 지혜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우리 시대의 청년들도 그렇지만 중장년층의 어깨도 요즘에 많이 처져 있는데, 혹시 여행 체험에서 우러난, 들려주고 싶은 마지막 말씀 있으면 좀 해 주시죠. ▶ 제가 산티아고 순례 중에 많은 사람을 만나서 대화 끝에 물어봅니다. "당신은 왜 이 순례길을 걷습니까, 힘든데?" 그러면 대부분이 외국인들은 가정불화, 이혼이 있었다, 또는 실직을 했다, 또 그래서 자기가 마음을 다시 잡기 위해서 걷는다는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 치유, 희망을 찾아서 오신 분들이 많으시네요. ▶ 네. 그런데 젊은 분들은 대학생이나 청장년들은 휴직이나 군입대 전후에 나름대로 힐링을 하면서 새로운 재충전을 위해서 걷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앞만 보고 걸어왔던 우리 한국의 많은 아버지들. 그래서 나를 위한 삶, 신앙적으로 재충전을 하려면 한번 이렇게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권합니다. ▷ 네, 오늘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총 연장 9,200km가 넘는 긴 거리를 20여 일에 걸쳐 여행한 지휘자 김건정 씨로부터 여행 체험, 중장년 세대의 배낭여행을 주제로 말씀 나눠봤습니다. 선생님 오늘 이렇게 스튜디오로 나와주시고,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cpbc2016.10.22
![[인터뷰] 심재철 "바티칸서 한국 천주교 박해 역사 보고 뭉클"](//cpbc.co.kr/CMS/news/2017/10/rc/697484_2.0_titleImage_1.jpg)
[인터뷰] 심재철 "바티칸서 한국 천주교 박해 역사 보고 뭉클" * 심재철 국회 부의장,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인터뷰 전문]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나라입니다. 이후 긴 박해를 이겨내고 굴곡진 한국 현대사와 함께 하면서 독창적인 역사를 이어왔죠. 한국 천주교회의 이런 230년 역사를 보여주는 특별전시회가 지난 달 바티칸 박물관에서 개막했습니다. 개막식에 특별히 초청된 정치인이 있는데요. 바로 심재철 국회 부의장입니다. 심 부의장은 방송기자 출신의 5선 의원으로 19대 국회에서 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심재철 부의장을 직접 스튜디오에 모시고, 바티칸 특별전 관람 소감과 신자 국회의원으로서의 소명의식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 부의장님 안녕하십니까? ▶ 네, 안녕하십니까. ▷ 직접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영광입니다. ▷ 최장 열흘 간의 추석 연휴가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서요. 가톨릭평화방송 청취자들에게 추석 인사 한 말씀 해주실까요? ▶ 청취자 여러분들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십니까? 긴 추석 연휴에서 휴식도 취하시고 그동안 평소 보지 못했던 친지 분들도 보는 등 뜻깊은 시간 보내고 계실 것입니다. ‘더도 덜고 말고 추석만 같아라’라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추석이 풍성하다는 얘기인데 남은 연휴 아주 알차게 잘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 부의장님은 추석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궁금한데요. 정치인들은 보통 추석에 지역구 챙기느라 다들 바쁘시지 않나요? ▶ 그렇습니다. 평소에 늘 지역구 챙기듯이 연휴 때도 마찬가지로 지역구 챙기고, 저도 이번에 지금 지역에 안부인사, 오랜만에 고향 찾으신 귀성객들과 귀성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명절 같은 경우에는 추석 연휴 다음에 국정감사가 곧바로 실시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마냥 쉴 수만은 없고 지금 국정감사도 같이 준비하면서 연휴를 지내고 있습니다. ▷ 정치인들에게는 더 바쁘신 추석 연휴가 될 것 같습니다. ▶ 하하. 그러고 있습니다. ▷ 지난 달에 바티칸 다녀오셨잖아요. 바티칸에 처음 가보신 건가요? ▶ 한 십여 년 전에 한 번 관광차 둘러봤던 적이 있습니다. ▷ 그럼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셨군요. ▶ 네. ▷ 천주교 신자들한테 바티칸 방문은 특별한 의미가 있잖아요. ▶ 물론이죠. 교황 성하께서 계신 곳이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정신사적으로도 건축사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깊은 곳이죠. 인류 문화유산이 집대성 된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런 한국 천주교회와 관련된 특별한 만남을 가졌는데 바티칸이라는 곳은 갈수록, 가볼수록 느낌이 새로워지는 매우 중요한 좋은 곳입니다. ▷ 바티칸에서 지금 한국 천주교 관련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한국 전시가 열린 게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특별한 전시인데 개막식에서 테이프 커팅까지 하셨더라고요. 소감이 어떠셨나요? ▶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대한민국 발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한국 근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국 천주교회가 초기에 80여 년 박해의 역사를 딛고 일어선 과정인데 그 당시에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번 전시회 제목에도 그대로 나타나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한국 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 이렇게 되는데 주님의 뜻이 한국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초기에 박해 역사를 보면서 가슴이 참 뭉클했습니다. ▷ 지금 우리 신앙선조들의 유물 180여 점이 바티칸 박물관에서 선보이고 있는데, 직접 다 둘러보시고 나니까 어떤 전시물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 무엇보다도 치명자들의 무덤에서 나온 사발들, 하얀 사발에 이름과 치명당한 날짜를 적어가지고 무덤에 그냥 그대로 묻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사발은 치명자 인적사항이 적혀있는 것도 있고, 어떤 사발은 아무 것도 인적사항 없이 하얀 사발만 있고, 그 사발을 보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갔을 때 저런 모습이었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셨을까 하는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요. 또 하나 볼 수 있었던 게 안중근 의사 세례명이 토마스이시잖아요. 안중근 의사께서 쓰셨던 ‘경천‘, 하늘을 공경한다는 뜻의 경천 붓글씨 유물을 거기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두 가지가 저는 그래도 제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 이번 개막식을 보니까 교황청 관계자들도 많이 참석을 하셨더라고요. 교황청 행정원장 주세페 베르텔로 추기경, 인류복음화성 차관인 사비오 혼 타이파이 대주교 등 교황청 주요 인사들은 어떤 전시물을 관심 있게 보셨을까 궁금한데 보시니까 어떻던가요? ▶ 그것은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태리어 통역을 하시는 분이 아예 그쪽 전담을 해주셨고, 한국어로 안내를 하시는 분이 저희들 이쪽으로 했었고, 그래서 아예 구분이 됐었습니다. ▷ 아, 따로 관람을 하셨군요? ▶ 네. 왜냐하면 한국어하고 그것을 이태리어로 통역을 하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나눠 가지고 이태리 교황청 관계자님들께는 별도로 안내를 하시고 한국인들은 한국인들 안내 별도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 고위관계자들께서 어떤 점에 관심을 가졌는지 그것까지는 살피지 못했습니다. ▷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개막미사에도 참여를 하셨잖아요. 미사 중에 어떤 기도를 하셨나요. ▶ 바티칸 유물들 살펴보고 그리고 바티칸에서 직접 미사를 하면서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 교회 자체가 선조들의 위대한 피와 땀과 눈물 위에 세워진 것이고, 그래서 그런 점들에서 굉장히 숙연한 자리였고, 우리 한국 천주교회가 앞으로 계속해서 잘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컸습니다. ▷ 정말 의미가 깊은 전시회인 것 같습니다. ▶ 네, 그랬습니다. ▷ 부의장님께서 베드로라는 세례명 갖고 계시죠. ▶ 네. ▷ 언제 어떤 계기로 신앙을 갖게 되셨나요? ▶ 1980년 5.18 나던 그런 시절에 비상계엄이 나고 체포되어서 군경합동수사본부에 잡혀갔는데, 거기서 서강대 박홍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취조 받고 있는 중에 화장실을 갔는데 느닷 없이 박홍 신부님께서 화장실로 오셔가지고 "너 세례 받을래?" 말씀하시는데 갑자기 입에서 제가 "예"라고 튀어나왔어요. 그래서 거기서 화장실에 화장 세면대 물 틀어놓고 거기서 뚝딱 비상세례를 받았습니다. ▷ 제일 힘드셨던 그 순간에 생각하실 겨를도 없이? ▶ 네,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때 같이 잡혀오셨던 분들 중에 당시 서강대 총장이셨던 서인석 신부님도 계셨고, 서인석 신부님께서 증인을 해주시고, 그렇게 해서 80년 그 시절에 뜻하지 않게 그렇게 천주교를 만나게 됐습니다. ▷ 정말 운명처럼 신자가 되셨네요. ▶ 그렇습니다. ▷ 가장 즐겨서 마음에 새기고 좋아하시는 성경 구절이나 말씀이 있으신가요. ▶ "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마태오 복음인가에 나와 있을 텐데요. 그게 과연 본질에 대해서 묻는 질문이죠.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결국 내가 상대방을 뭐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는 거잖아요. 결국은 상대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 본질에 대해서 이른바 identity 정체성에 관한 질문인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랬을 때 베드로 제자께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올바르게 대답하셨는데, 어쨌든 대답 이전에 질문을 대할 때 이 질문이 과연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나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이런 화두를 늘 던집니다. 그래서 나는 과연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나한테는 가톨릭 신앙이라는게 뭔가. 예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은 매번 나에게 "심재철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실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참 그런 점들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솔직히 저 스스로도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분명하고 확신에 차서 답할 수 있느냐, 나는. 그런 질문에는 솔직히 100% 확신에 차게 말을 못하겠습니다 아직은. ▷ 계속 기도를 하시고 본질을 찾아가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 평소에 기도를 좀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어떠세요. ▶ 기도 중에 흔히 미사드릴 때 보편지향기도에서 ‘공직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대목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공직자가 얼마나 중요하길래 얼마나 중요하고 그러니까 신자 분들이 기도를 하는구나’ 그러면서 공직을 맡은 신분으로서 ‘공직수행을 훨씬 더 잘해야겠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시는데’ 하는 그런 무거움들을 매번 자주 느낍니다. ▷ 공직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마음이 쓰이시는군요. ▶ 당연히 그렇죠. 다른 신자 분들이 공직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공직자로서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지’ 이렇게 생각하는데 국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 기도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뭘 바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치를 하면서 ‘신앙이 참 도움이 되고 있구나’ 이런 걸 느끼실 때가 있나요? ▶ 당연하죠. 제 본당에서는 당연히 저를 알고 있고 그렇습니다만 제 본당은 물론 제 지역구 안에 있는 다른 본당에 갔을 때도 사람들이 ‘어, 저 사람 신자네?’ 라고 이렇게 바라보는 눈빛을 내가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볼 때 ‘아, 같은 신앙인으로서 저렇게 동질의식을 느끼고 있구나. 동료감을 느끼시는구나’ 라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이냐’ 라는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아무런 매개 없이 그냥 바라봤을 때 ‘저 사람, 저 사람이구나’ 맹숭맹숭하게 바라봤을 텐데 그러지 않고 다른 본당에 가서 저를 바라볼 때 "신자시네요" 라는 표현을 직접 하실 때도 있고, 아니면 이렇게 눈빛만 쳐다보면 알죠. ‘아, 저분이 나를 아는구나’ 라는 것들을. 그래서 그런 눈빛을 보면서도 같은 신앙인으로서 가톨릭 교인으로서 저렇게 나를 바라봐주시고 따뜻하게 바라봐주시구나 하는 것들을 매번 느낍니다. ▷ 책임감, 행동을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드시겠네요. ▶ 그렇습니다. ▷ 19대 국회에서 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장 역임하셨잖아요. ▶ 네. ▷ 지금도 신도의원활동 계속하고 계시고, 신자의원들끼리 자주 교류도 하고 그러시나요. ▶ 네. 자주 교류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무래도 정치다 보니까 정당을 넘어서 교류하기는 좀 쉽지 않고요. 같은 정당 안에서도 같은 가톨릭 신앙인이라는 것을 느끼면 훨씬 더 가까워지게 마련인 것이죠. 심정적으로 그런 점도 있어서 지금 하고 있고요. 물론 여야를 넘어서는 분명히 작년 같은 경우는 염수정 추기경님 모시고 개원미사도 드렸었고요. 그래서 해마다 개원미사를 하면서 하는데, 그래도 같은 가톨릭 교인들끼리는 덜 싸웁니다. ▷ 아무래도 그런 게 있습니까? ▶ 네. 저 사람도 가톨릭이고 나도 가톨릭인데 그리고 사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만나면서 교류하는데 대놓고 얼굴 붉히기는 쉽지가 않죠. 그런 점에서는 아무래도 얼 싸우게 마련이고요. 모질게 대하더라도 덜 모질게 대할 수밖에 없죠. 상대방이 가톨릭이라는 것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 아까 말씀하신 대로 매년 국회에서 가톨릭신도의원회 주관으로 미사가 봉헌되고 있는데,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실 때랑 국회에서 미사를 드리실 때랑 느낌이 다르지 않으실까 생각됩니다. 어떠세요? ▶ 아무래도 다르죠. 국회에서 미사를 드릴 때는 생각하는 주제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전부 다 정치에 관해서만 생각들이 떠오르니까요. 그때 그때마다 그런 갈등들, 과연 이런 것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그런 생각들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고요. 그러면서도 미사 주재하시는 신부님께서는 그런 갈등들을 평화롭게 풀어내도록 늘 당부를 하시고, 그럴 때마다 울컥 치솟았던 느낌들도 조금은 가라앉게 마련이고요. 그런 점에서는 국회에서 미사가 봉헌될 때 저희들이 조금 더 잘해야 되겠구나 하는 다짐들을 매번 더욱 더 새기게 됩니다. ▷ 그런데 국회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선이 그렇게 곱지만은 않는 게 사실입니다. ▶ 그렇습니다. ▷ 아직도 고성과 막말이 난무하고, 대화 대신 대립이 이어지고, 이런 것을 보면 국민의 마음은 참 답답하거든요. 신자 국회의원으로서, 또 국회 부의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계시니까 더 책임감이 막중하실 것 같습니다. 어떠세요? ▶ 네, 국회가 국민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지 못하는 데 대해서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 송구스럽습니다. 더군다나 국회 부의장이라는 직분을 맡고 있으니까 더욱 더 송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나 싸우는 가운데서도 대한민국 국회는 70년 동안 꾸준하게 발전을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우기도 하지만 싸우는 과정에서 하나씩 하나씩 민주주의 제도 정착을 위해서 조금 노력해 왔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밖에 없네요. 그리고 더구나 이번 20대 국회는 다당제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당제 상태보다는 대립의 양상이 조금 덜 합니다. 왜냐하면 이쪽 편이 말을 안 들으면 저쪽 편하고 손잡으면 되니까요. 그런 다당제 상태이니까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아마 이런 점이 조금 더 국회가 덜 싸우고 협상하고 타협하는 이런 문화를 조금 더 만들어가지 않을까라는 그런 기대를 해보고 있습니다. ▷ 근데 말씀하신 대로 덜 싸우기는 하는 것 같은데 협치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좀 특별히 이렇게 나갔으면 좋겠다, 협치에 대한 생각이 있으신가요? ▶ 말씀하신 대로 협치가 썩 그렇게 잘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협치가 원칙을 벗어나기 때문에 협치가 잘 안 되는게 아니냐. 그러니까 다들 예전에 여당도 하고 야당도 하고 모든 당이 그랬습니다. 개구리적 시절 생각 못 한다고 예전에 했던 말하고 100% 뒤집어 가지고 얘기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참 답답하거든요. 그래서 예전에 말씀했던 그 말을 그대로 새겨서 좀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 야당일 때는 신나게 욕을 하고 무조건 비판만 하고, 여당일 때는 전혀 반대로 오직 방어만 하고 아집에만 사로잡히고 이 모두가 전부 다 여당일 때 했던 말, 야당일 때 했던 말 똑같거든요.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다시 한 번 새기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게 조금 더 협치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지 않느냐. 지금 그 부분이 잘 안 되어서 협치가 아직은 잘 부드럽게 굴러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 역지사지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 그렇습니다. ▷ 북한의 잇따른 도발, 또 미국과 북한의 말폭탄으로 한반도 상황이 아슬아슬합니다. 요즘 이렇게 한반도 상황이 불안한데 한국 천주교회 차원에서, 또 국회 차원에서 남북화해와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 쉽게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상황이 김정은의 무모한 도발로 인해서 계속 이렇게 진행이 되고 있는데, 이런 긴장 상황을 천주교회가 어떤 식으로 녹여낼 수 있겠느냐라는 점에 대해서 아직은 잘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풀어가기는 가야 하는 상황이고요. 풀어가는 상황 중에서 가장 그래도 손쉬운 게 비정치적인 종교분야가 그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북한이 종교의 자유마저도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어느 누구와 만나서 이런 종교부분을 과연 얘기를 하고 작은 바늘구멍을 낼 수 있을지 아직은 정말 그렇게 쉽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 많은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지만 지금 남북 종교간 교류도 끊어져 있는 상황이고 답답한 상황인데, 국회 차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 국회 차원에서는 겉으로는 남북 평화 교류를 한다. 평화적으로 왕래를 한다고 하지만 국회라는 것이 정치의 가장 첨예한 곳인데 그렇다면 남북 양쪽의 우회가 만나는 것도 역시 첨예한 정치적인 겉으로는 그런 것들을 표현을 안 할지는 모르지만 다들 속으로는 첨예하게 지금 웅크리고 있게 마련이거든요. 국회가 남북 교류를 통해서 현재의 상황을 풀어간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지금 여러 가지로 통로가 답답한 상황이네요. 하루 빨리 해결이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끝으로 바티칸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 특별전. 아직 관람을 하지 못하신 분들도 많을 것 같고, 관람을 희망하는 분들을 위해서 소개의 말씀을 해주신다고 그럴까요. 추전의 말씀을 해주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네, 한국 천주교회 발달 중에서 특히 박해기에 있었던 참상이 담긴 유물 187점이 지금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떤 책들은 이제 한자로 되어 있는 책들이어가지고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살펴보면 느낌이 옵니다. ‘아, 이것이 우리 박해 시기의 유물들이었구나. 그리고 이런 유물들이 결국은 우리 선조들 성조들의 피 흘림 그런 땀의 기록이었구나’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느낌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고 보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번에 한국 바티칸 특별전시전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요. 바티칸에 가시면 바깥에 건물 멋있는 것도 살펴보지만 안에 들어가셔서 유물도 꼭 한 번 살펴보시는 게 이것은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또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살펴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에는 한 구석에 이런 부분이 있었구나’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직접 보고 오신 분께서 이런 얘기를 해주셨기 때문에 청취자들한테 호소력 있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심재철 국회 부의장님과 바티칸 특별전 관람 소감과 신자 국회의원으로서의 소명의식에 대해서 말씀 나눠봤습니다. 오늘 직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네, 고맙습니다. 김혜영2017.10.04
[문화라운지] 한민택 신부 "신앙은 `의무` 아닌 `기쁨`..「하느님과의 숨바꼭질」과 영적 기쁨 얻길" * 수원가톨릭대 교수 한민택 신부,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인터뷰 전문] 신앙인이라면 종교적 의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죠. 그런데 `신앙은 의무가 아니고 행복이자 기쁨이다` 이런 말씀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자유로울 의무, 의무는 의무인데 자유롭다. 역설적인 얘기인데요. 오늘 문화라운지 신부님 한 분 모셨습니다. 수원 가톨릭대학교 교수님이시고요. 프랑스에 유학갔다 오셨고요. 한민택 신부님 연결합니다. ▷ 한민택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민택 신부입니다. ▷ 지금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교수로 계시죠. ▶ 네. 그렇습니다. ▷ 이번에 책 내신게 「하느님과의 숨바꼭질」인데 이게 재미있어요. 어떤 뜻으로 책 제목을 정하셨는지요. ▶ 사실 이 책을 제목은 제가 정한 것은 맞지만요. 생각 자체는 저의 것은 아니고 제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강론집 우리나라 말로도 번역이 되었는데요. 「성탄」이라고요. 그 책 안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성탄이 어떤 의미에서는 하느님의 숨바꼭질이라는 그런 말씀이셨는데요. 다시 하느님께서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인간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계신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찾아나서지 않으면 그분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였고요. 그런 의미는 사실 하느님은 우리가 찾아나서야 만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던 것 같아요. ▷ 우리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도 있고요. 어디를 숨바꼭질 할 때 찾아나가지만 못 찾을 것 같은데 하느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 사실 성경에도 아기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숨어계셨는데 학자들이나 지식이 많은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먼 이방인 이북의 땅에서 별을 찾아서 떠났던 사람들, 동방의 박사들이죠. 그리고 길 위에서 삶을 보냈던 목자들 이런 사람들이 아마도 길 위에서 찾고 깨어있고 하는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아기 예수님을 더 먼저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하느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있으시고 그것을 우리가 평소에는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측면도 담겨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 엠마오 마을로 가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봐도요. 그분이 늘 함께 길을 걸어가셨지만 나중에야 그분이 함께 계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분과 함께 걷는 여정, 함께 겪고 느끼고 보고 체험하고 이런 여정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들 영적인 눈이 띄여지고 마음이 달아오르면서 그분의 현존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죠. ▷ 출판사에서는 `새로 봄 시리즈`라고 시리즈 중에 첫 번째 책인 것 같더군요. 새로봄 시리즈. 새로 본다. 이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 사실 제가 교구청에서 근무를 할 때요. 주위의 몇 몇 신도 분들이 신앙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선앙적으로 많은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분들과 함께 모임을 시작했어요. 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정해야 됐는데 여러 가지 궁리를 하다가 제가 제안을 했죠. 모임, 이 신앙모임을 통해서 그분들의 신앙을 통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또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 인생,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실패한 인생일 수도 있고 무미건조한 인생일 수도 있는데 우리 인생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자, 이런 뜻으로 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것에. ▷ 하나의 모멘텀, 계기 그런 것들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그런 것이군요. ▶ 네. 그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다시 봄` 보다는 오히려 `새로 봄`도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이번에 시리즈를 그렇게 이름을 정했습니다. ▷ 살다보면 좀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요. 신앙도요. 사람들도 갱년기도 있지만 신앙에도 갱년기가 있지 않습니까? ▶ 그렇죠. ▷ 신부님은 그런 경험이 없으실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보통 많은 사람들이 신부님이나 수도자들은 신앙적으로 봤을 때 평탄길을 걷는 것이라고 생각을 많이, 사실 착각을 많이 하시는데. ▷ 착각입니까? ▶ 그렇습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분이 저를 찾아와서 그런 신앙의 어려움을 말씀하셨는데 사실 저는 그때마다 드리는 말씀이 어려움은 당연한 것이다. 또 당연히 찾아와야만 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까 그런 고민보다는 이런 일들이 나의 긴 여정 안에서 어떤 의미인가 이런 것들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고요. 저 같은 경우도 여러 가지 시련이 있었지만 특히 유학생활 제가 굉장히 오래 했는데요. 유학생활하는 동안 그런 시련을 겪은 적이 사실 있었죠. ▷ 프랑스에서 유학생활 오래 하셨는데 어땠습니까? 프랑스에 계실 때 외롭고 고독도 많이 느끼셨을 것 같고 그렇지만 프랑스라는 나라가 샹송도 있고요. 저희들이 가 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한데 현지에서 느끼시기는 어떻습니까? ▶ 가 보고 싶은 나라, 낭만이 있고, 예술과 그런 나라 많이 생각을 하는데 막상 가서 공부를 하는 입장이 되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모든 것이 우울한 그런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마치는 순간 내가 살고 있었던 그 곳이 문화와 예술이 찬란하고 살기좋은 나라라는 것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 여담이기는 하지만 최근에 30대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프랑스의 유럽 쪽에서의 프랑스가 갖고 있는 문화의 힘, 이런 것들이 정치적으로 프랑스가 극우적으로 가지 않느냐, 그런 생각도 우려도 있었는데요. 신부님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정치적인 부분은 제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요.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에도 르펜 그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라고요. 극우전선이죠. 국민전선. 그 당이 계속 주가를 올리고 있었죠. 왜냐하면 그때도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우리 노동자라든지 여러 가지 갈등, 이념의 문제 그런 것으로 인해서 프랑스 국가 안에서 외국인에 대한 그런 어려움을 겪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고요. 폭력사태도 있었고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프랑스 사람들이 문을 닫고 외국인들에 대해서 거부감이나 그런 것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장마리 르펜 그 당을 지지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사실 굉장히 소수였던 것인데 어느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장마리 르펜을 지지하면서 오히려 프랑스 사람들이 굉장히 놀란적이 있었어요. 지금 상황을 봐도 계속 딸이 르펜 딸이 계속해서 당을 이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람들이 르펜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직도 그 사람들이 그러한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간 아니면 공동체에 함께 산다는 것 그런 것들을 많이 가치를 지키려고 하는 그런 프랑스 사람들의 정신을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신부님께서 좋은 평가를 해 주셨고요. 책 얘기로 돌아와서 책에서 `자유로울 의무`라는 말씀을 하셨고 이것이 유학시절에 은사님으로부터 들었다.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사실 형형모순적인 얘기인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떻습니까? 자유로울 의무, 이게 무슨 말인지 말씀해 주시죠. ▶ 자유와 의무는 굉장히 서로 함께 하기 어려운 상극처럼 보이는 두 단어인데요. 사실 제가 살았던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학교 안에 가르멜신학교 안에서 처음 영성지도 신부님과 만나서 얘기를 할 때 그 신부님께서 한국에서 온 외국인 신학생한테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을 해 주신 첫 번째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어요. "바오로야, 너는 이 신학교에서 자유롭단다. 그런데 단 하나의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네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죠. 그런데 사실은 처음에는 어려웠죠. ▷ 저도 지금 어려운데요. 자유롭지만 지켜야 할 의무, 그 의무 역시 자유롭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 네. 자유로울 의무, 사실 우리가 다 자유롭잖아요. 자유롭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특히 저 같은 경우 프랑스 신학교에서에서 한국에서 보다는 자유로운 신학교생활을 했는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다 보니까 그 자유를 저 스스로 산다고 하는 것, 쓴다고 활용한다고 할까요. 그런 것에 대한 어떤 양성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다보니까 오히려 그 자유가 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저를 어렵게 하고 바닥이 떨어지게 하는 그런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저를 언젠가 "이 길을 함께 걸어가겠느냐"라고 부르심 앞에서 제가 그 부름심을 저만을 위한 부르심으로 믿고 그리고 그 부르심이 저만의 응답을 하기 위해서는 제가 정말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내적인 영적인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책 속의 구절 중에 제가 또 읽은 구절 중에 한 구절이 `중요한 진리 하나가 있다면 지금 우리가 꿈꾸는 그런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사람만 변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저는 이 구절이 상당히 마음에 들던데요. 이게 남의 변화시킨다. 이런 것들이 어려운 얘기다. 저는 그렇게 받아들여 지던데요. 제가 맞게 해석한 것입니까? ▶ 네. 사실 대외관계 문제에서 봤을 때요. 제일 먼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제일 먼저 드는 제가 스스로 만든 해결책은 그런 사람이 없어지거나 그 사람이 제 구미나 바람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이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누군가 한 명이 그렇게 마술처럼 변화한다는 것은 사실 우리들의 꿈이죠. 그리고 사실 우리들의 바람을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에게 강요한다고 할까요. 그런 것이죠. 만약에 그렇게 이루어진다면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인간사의 삶이 아니라 정말 저의 사람이 만든 저만의 어떤 환상적인 세상이 되겠죠. ▷ 또 하나 궁금한 것이 `그릇된 하느님상` 이것에 대한 내용이 있던데요. 그릇된 하느님상이라는게 어떤 모습이고 우리가 찾아야 된다는 그런 하느님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지 말씀 좀 해 주시죠. ▶ 책 안에서도 분명히 그릇된 하느님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사실 저는 하느님상이 그릇됐다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바로 우리들의 하느님상이 막연하다는 생각이 그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막연하니까 그냥 막연한 하느님 갖고 아마도 자기 스스로 자기가 바라고 자기가 원하는 그런에서 측면에서 자기 만의 하느님의 만들고 그러다보니까 정말 살아계시고 자유로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정말 놀라운 펼쳐지는 미래를 향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죠. 자기가 만든 하느님상, 자기가 만든 어떤 신앙 안에서 머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막연한 하느님상이 오히려 문제라는 얘기를 지적해 주셨는데요. 한민택 신부님이 쓰신 이 「하느님과의 숨바꼭질」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생각이고요. 마지막으로 청취자 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있으시면 한 말씀해 주시죠. ▶ 제가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들어온지 벌써 6년이 되어가는데요. 들어와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요즘 신자 분들이 많이 신앙에서 영적인 활력을 잃고 또 자신감과 의미를 잃고 힘겹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되지 않지만 살아오면서 교회 안에서 경험하고 발견한 신앙은 오히려 의무나 우울한 삶이 아니라 정말 기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삶 안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놀라워하는 그런 마음의 자세가 우리들에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제 책과 함께 그러한 영적인 영역을 떠났을 때 그 길 위에서 발견된 놀라운 일을 경험하면서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면서 그 안에서 정말 새로운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요. 하나만 덧붙이자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나 어떤 실패한 인생에 대해서 많이 우울해 하고 낙심하게 되는 것 같은데 우리 그리스도 가톨릭 신앙의 가장 큰 힘은 부활신앙이고요. 그 부활신앙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신앙이 가장 없을 것이라고 시작하는 바로 그 곳에서부터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나와 함께 시작하신다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결코 버려진 존재나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내가 정말 하느님께 사랑받은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바로 그 실패한 신앙이 없는 그 삶의 한가운데서부터 하느님께서 다시 나와 함께 시작하자고 손을 내밀어 주시니까 그분의 손길에 의해서 용기를 내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 [문화라운지], 「하느님과의 숨바꼭질」 저자 한민택 신부님과 함께 했는데 청취자 여러분도 신앙에 대한 용기, 자신감 얻으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한민택 신부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백슬기2017.06.09
![[인터뷰] 김평만 신부 "인문사회의학과 10년, 환자들의 온전한 이웃되기위해 힘쓸 것"](//cpbc.co.kr/CMS/news/2016/11/rc/660818_1.0_titleImage_1.jpg)
[인터뷰] 김평만 신부 "인문사회의학과 10년, 환자들의 온전한 이웃되기위해 힘쓸 것"* 김평만 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신부, 가톨릭대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책임교수,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발언 전문]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설립한 가톨릭대 의과대학에는 인문사회의학과가 있습니다. 다른 의과대학에는 없는 학과인데요. 인문사회의학과가 생긴지 오늘로 10년이 됐다고 하네요. 가톨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책임 교수 겸 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김평만 신부와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 김평만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세요? 김평만 신부입니다. ▷ 가톨릭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설립 10주년을 맞았다고 하던데요. 인문사회의학과라고 하니까 의과대학에 있다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요. 설립배경이 궁금해지네요. ▶ 저희 가톨릭의과대학에서 인문사회의학과를 설립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가톨릭교회가 추구하는 참된 의료인 양성이라는 측면과 두 번째는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는 측면입니다. 먼저 첫 번째 측면에서 볼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의료인들을 위해 의료인 헌장이라는 회칙을 반포하셨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의료인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유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을 사랑을 보여주도록 부름 받은 생명의 봉사자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가톨릭이 추구하는 생명의 봉사자로서의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가진 의료인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서 인문사회의학과가 설립되었습니다. 더불어서 오늘날 시대적인 조류에 따라 설립되게 되었는데요. 오늘날 의학이 생화학에 기반을 둔 육체적인 질병 치료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병을 지닌 인간을 치유하는 측면, 예컨대 전인적 치유의 측면을 등한시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의학교육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올바른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생화학적인 지식과 술기를 익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좀 더 의료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환자의 입장에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성을 겸비한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의료를 더 폭넓게 이해하고 병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인문사회의학과가 설립되었습니다. ▷ 그러면 인문사회의학과의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습니까? ▶ 인문사회의학과의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는 교육콘텐츠를 개발하고 그것을 시행하는 데 있습니다. 인문사회의학의 교육콘텐츠 개발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문사회 의학은 인문학 혹은 사회과학과 의료와의 만남을 추구하는 분야입니다. 이런 배경하에 가장 중요한 콘텐츠 개발은 인간의 건강, 질병의 문제를 생화학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심리적, 사회문화적 더 나아가 영적인 측면까지 확대하여 바라볼 수 있도록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전인적인 시선을 키우는 강좌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더불어서 의료인으로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필수적인 능력을 키우는 강좌들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인간과 사회를 거시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 환자 및 보호자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윤리적인 판단력, 의료현장에서 필요한 리더십을 키워주는 이런 강좌들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 옴니버스 교육과정도 개발해서 아마 교육콘텐츠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만 옴니버스 교육과정을 개발해서 시행하고 있다는데 옴니버스 교육과장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뭔지 모르겠어요. ▶ 옴니버스라는 것은 라틴어에서 온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옴니버스는 저희 학교 인문사회의학 교육과정을 별칭입니다. 신약성경의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9장 22절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서 몇 사람이라도 구하고자 한다” 이런 말씀을 했는데 여기에서 바로 저희가 옴니버스라고 하면 ‘모든 이에게’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 옴니버스 교육 과정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 저희 옴니버스 교육과정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다른 학교에도 인문사회의학 교육과정을 가르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학교에는 타 의과대학에 비해서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내에 약 40여 명의 옴니버스 교육개발위원회 참여 교수님들이 계시는데요. 이분들과 함께 교육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좀 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이런 교육과정을 저희가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교수님들이 만들고 교육방법론에서도 창의적인 소통교육, 창의적인 교육과정을 지향했다는데 저희 교육과정에 좀 더 특징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 지금 옴니버스 교육을 시작한 지 7년 정도가 지났다고 하던데요. 옴니버스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 얼마 전에 제가 한 학생을 만났는데 자신이 가톨릭 의과대학을 선택하고 가톨릭 의과대학이 자신을 선택한 데 대해서 감사를 드리면서 더불어서 교육과정을 듣게 된 것이 저에게 좀 외교적인 언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의 행운 중에 하나였다고 말했습니다. ▷ 설마요. 외교적인 언사는 아니었겠죠. ▶ 어떤 학생들은 빡빡하게 짜여진 의학교육 과정에서 옴니버스 교육과정은 오아시스와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옴니버스 교육과정은 그 자체로 쉴 수 있는 시간은 아닌데도 좀 더 의학을 인문학 내지는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서, 연구하면서 또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의사가 되었는지 의료인으로 어떤 점을 지향해야 하는지, 의료가 지향할 궁극적인 방향은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옴니버스 교육과정과도 연관된 것이겠죠? 가톨릭병원이 지녀야 할 가톨릭병원만의 정체성, 김평만 신부님께서는 뭐라고 보십니까? ▶ 저는 가톨릭병원만의 정체성은 복음서에서 찾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를 치유해 주셨고 특별히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특별한 사명을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했던 것처럼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말뜻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동정과 연민의 마음으로 질병이나 사고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가톨릭병원만의 꼭 지녀야 할 정체성은 어떻게 환자들에게 완전한 이웃이 되어줄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가톨릭병원은 환자들에게 온전한 이웃이 되어 주는 방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동정과 연민의 마음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함께 해주고 공리주의적인 방식으로 생명을 바라보지 않고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존재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존중하고,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치료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그런 것들을 고민하는 그런 병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온전히 환자들에게 이웃이 되어줄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 그 말씀이 참 와 닿네요. 가톨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책임 교수 겸 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김평만 신부였습니다. 신부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백슬기2016.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