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피 (01) : 유럽 대륙의 첫 그리스도교인, 리디아[월간 꿈 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3) 그리스 필리피 순례객들이 리디아 성녀가 바오로 사도를 만난 냇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아줌마가 좋다. ‘아줌마’라는 말에선 힘과 활력이 넘친다.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이 느껴진다. 가식이나 숨김이 없다. 삶에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소망하고, 스스로의 욕구를 땀을 통해 충족시켜 나간다. 이렇게 아줌마가 좋은 것은, 자주 만나는 신앙 아줌마들의 해맑은 ‘까르르’ 웃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교회의 각종 교육과 세미나, 연수회가 열릴 때마다 자리를 가득 메워 강사들을 뿌듯하게 하는 것은 어김없이 아줌마들이다. 본당 사목회 간부들은 대부분 아저씨지만, 정작 낮은 곳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언제나 아줌마들이다. 그러면서도 십자가 아래서 낮은 자세로 엎드려 “나는 죄인입니다” 한다. 아줌마들은 영성 생활의 달인들이다. 산전수전 겪다 보니 참고 사는 데는 이골이 났다. 그러다 보니 인내, 끈기, 절제, 겸손, 희생 등의 덕(德)에 별다른 영신 수련 없이 쉽게 다다른다. 성체조배실에서 4~5시간씩 기도하지 않아도 죄를 쉽게 성찰하고, 이웃의 죄를 쉽게 잊는다. 그리고 늘 남을 위해 산다. 섬김을 받지 않는다. 남편, 시부모, 아이들, 본당 신부님을 위해 산다. 아줌마에게선 공동체를 돌보는 땀 냄새가 난다. 성경에는 이런 아줌마 이야기로 가득하다. 아시리아의 위협 속에서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것은 유딧 아줌마였다.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도 마리아 막달레나 아줌마였다. 예수 체포 후 제자 아저씨들이 두려움에 떨며 숨었을 때, 겁 없이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간 이들은 예루살렘 아줌마들이었다. 여기 또 한 명의 위대한 아줌마, 유럽 대륙 첫 그리스도교 신자 리디아(Lydia Purpuraria, 축일 8월 3일)가 있다. 유럽 대륙에 건너간 바오로 사도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리디아 아줌마다. 성경은 이 만남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필리피에 도착해)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다.”(사도 16,13-14) 앞에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소개하면서 잠깐 언급했듯이 리디아 아줌마의 고향인 티아티라는 자색 옷감 생산지로 유명했다. 당시 자색 옷감은 고가에 거래되었고, 리디아 아줌마는 고향인 티아티라에서 고급 자색 옷감을 수입해 필리피 일대에 유통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사람이 신심도 깊었다. 성경에 리디아는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라고 소개되는데, 이는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유대 신앙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오로 사도의 열정이 리디아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리디아는 하느님 말씀에 완전히 매료된다. 그런데 여기서 리디아가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사도 16,14) 아줌마의 위대함은 능동적이 아니라 수동적이라는 점이다. 스스로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열도록 내맡기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을 받아들인 마리아처럼, 그렇게 리디아는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고집이 아주 셌다. 자신만 세례받은 것이 아니라 온 집안사람을 세례로 이끌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고집을 피운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사도 16,15) 리디아는 바오로 사도를 자신의 집으로 강제로(?) 끌고가 모셨다. 어쩔 수 없이 바오로 사도는 리디아 집으로 가서 짐을 풀었다. 유럽 대륙의 첫 선교 거점이 마련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리디아 덕분에 바오로 사도는 안정적으로 필리피에서 선교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테살로니카, 코린토, 아테네 등지로 선교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참고로, 성경에는 리디아와 같은 신앙 아줌마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아퀼라’와 ‘프리스카’(1코린 16,19 참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오로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로마 16,4 참조) 콜로새에서는 ‘아피아’가 그런 사람이었다.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1장 2절에서 아피아를 ‘자매’ (αδελφη)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녀가 초기 선교 활동에서 중요한 협력자였음을 의미한다. 소아시아 에페소 인근 라오디케아 교회에서는 ‘님파’가 그런 사람이었다. 님파는 리디아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자신의 집을 회합 장소로 제공했다. 예루살렘에서는 베드로 선교 활동에 조력한 ‘성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다. 베드로는 감옥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직후 곧장 마리아의 집으로 향했다.(사도 12,12 참조) 베드로에게 있어서 가장 믿을 수 있었던 사람은 마리아였다. 코린토 인근에 살았던 ‘포이베’(로마 16,1 참조)도 빼놓을 수 없다. 바오로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6장 1-2절에서 그녀를 ‘후원자’(프로스타티스, προστατις)라 부르면서 그녀의 공식 직함을 ‘디아코논’(διακονον), 즉 ‘일꾼’(협력자, 부제)으로 호칭한다. 바오로 사도가 쓴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로마로 직접 배달한 사람이 포이베다. 필리피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리디아 성녀가 바오로 사도를 만났던 냇가를 찾았다.(사도 16,13-15 참조) 냇가 바로 옆에는 성녀 리디아 기념 경당이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다. 2000년 넘게 흘러온 그 냇가에 발을 담갔다. 적막 속에서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물소리가 다른 소리로 들렸다. 그것은 2000년 전 신앙 아줌마들의 ‘까르르’ 웃음소리였다. 2025.12.22

후기 비잔틴 미술의 정수 ‘코라 구세주 성당’ 성화레오 14세 교황 첫 해외 사목 방문지, 튀르키예에서 만나는 신앙 유산 <하> 1. 코라 구세주 성당의 돔과 벽면을 가득 채운 성화. 레오 14세 교황이 교황 즉위 이후 첫 해외 사목 방문으로 27일 튀르키예를 방문했다. 올해 니케아(현 튀르키예 이즈니크) 공의회 1700주년을 맞아 교회 일치 및 종교 간 대화를 위해 본격적인 사목 일정에 나선 곳은 수도 앙카라가 아니라 이스탄불이다. 지금의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30년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옮겨온 곳이다. 5세기 중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중세 그리스도교와 동방 교회의 중심이었고, 건축과 성화로 대표되는 비잔틴 예술의 보고였다. 지난호에 살펴본 성 소피아 성당이 비잔틴 건축의 걸작이라면 후기 비잔틴 미술의 정수는 코라 구세주 성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사진1)돔 중앙에 성모자상이 자리하고, 그 주변을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다. 3. (사진1) 돔 아래로 최후의 심판을 표현한 그림에 이어 지옥의 문을 부수고 중앙에 선 그리스도의 모습이 펼쳐진다. 아담과 하와를 무덤에서 끌어내고 있고, 그들 뒤로 요한 세례자, 다윗 왕 등 구약의 의인들이 서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성경 속 180여 장면 관광 명소가 몰려 있는 술탄 아흐메트 지역에서 다소 떨어진 코라(Chora)구세주 성당은 현지에서는 카리예 자미(Kariye Camii)로 불린다. 수도원의 부속 성당으로 4세기에 지어졌고,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성곽 밖에 위치해 ‘시골의 성스러운 구세주 교회’라 칭했다. ‘코라’는 ‘도시 밖’ ‘지방’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11세기에 재건된 성당은 13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파괴된 이후 14세기 초반 지금의 돔 형태로 증·개축됐다. 규모면에서는 성 소피아 성당은 물론이고 여느 비잔틴 성당에 비해 상당히 소박한 편이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 마지막 시기에 제작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다. 이들 성화는 안드로니코스 2세 황제의 명에 따라 테오도로스 메토키테스에 의해 장식됐다. 메토키테스는 정치가이자 성미술 후원가로, 말년을 이곳 수도원에서 보내기도 했다. 성당 벽면에서 그가 예수님께 성당을 봉헌하는 모습을 담은 모자이크를 확인할 수 있다. 코라 구세주 성당에는 전체적으로 주님의 탄생과 공생활, 부활과 승천, 최후의 심판, 성모 마리아의 모습 등 성경 속 180여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돔 중앙에 판토크라토르 초기 교회에서는 성당 안에 어떤 성화나 성상도 두지 않았지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이후 전례나 교리 전달을 목적으로 널리 사용됐다. 그러나 성화상 논쟁으로 대다수가 파괴됐다. 8세기부터 한 세기에 걸친 성상 논쟁이 종식되자 교회 내 이에 대한 방침이 강화됐다. 우선 돔의 중앙에 ‘전능하신 그리스도’라는 뜻의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예수의 상반신을 그린 성화를 두게 했다. 6세기부터 제작된 판토크라토르는 주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배치했다. 대다수 동방 교회의 돔이나 앱스(반원형 공간) 뒷면에서 판토크라토르를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림 속 예수님은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대체로 왼손에는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로 축복을 전한다.(사진4 참조) 십자가 모양의 후광이 감싸고 있는 예수님 모습은 신성과 인성과 삼위일체 하느님을 강조하며,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전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한다. 세속적 권력을 가진 황제들은 국가와 교회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성당의 돔에 판토크라토르를 배치하게 했다. 돔 바로 아래 벽에는 보통 성모 마리아, 열두 사도와 성인의 모습을 그렸는데, 코라 구세주 성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성당의 내부에는 두 개의 큰 돔이 있는데, 그 돔의 중앙에는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과 그리스도가 만물의 통치자임을 표현한 그림이 각각 자리한다.(사진25 참조) 그 아래로 천사들의 모습, 최후의 심판과 부활, 예수님이 행한 기적의 순간들이 펼쳐진다. 다른 한편에는 성모님의 생애도 전개된다. 비잔티움 제국 시절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당 건축 곳곳에 이렇듯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광범위하게 사용됐지만,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수차례 이어진 전쟁과 십자군의 약탈 등으로 대부분 없어지거나 훼손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 소피아 성당과 코라 구세주 성당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코라 구세주 성당. 4.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로 축복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은 전형적인 판토크라토르. 그 위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왼쪽)과 오병이어의 기적(오른쪽)을 표현한 모자이크가 펼쳐진다. 메토키테스가 코라 성당을 예수님께 봉헌하는 모습. 5. 또 다른 돔의 중앙에는 판토크라토르, 전능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그 아래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왼쪽)과 하혈하는 여인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오른쪽)이 그려져 있고, 성모님과 예수님의 모습이 그 아래 벽면을 채운다. 코라 구세주 성당, 모스크로 사용 코라 구세주 성당의 성화들 역시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며 회칠로 덮이고 성당은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됐으나, 1945년 박물관으로 전환되며 복원작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됐다. 성당은 2020년 다시 모스크로 바뀌었고 유료 입장을 통해 성화를 공개하고 있다.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를 바라볼 때처럼 고개를 한껏 꺾어 올려다 봐야 하지만, 신비롭고 성스러운 모습에 넋을 놓고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또 별다른 해설 없이도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성경 내용을 그림에서 바로 유추할 수 있어 결국은 ‘하나인 그리스도교’를 생각하게 한다. 2025년 현재 성 소피아 성당과 코라 구세주 성당은 모스크로 이용돼 이슬람 교리에 따라 남녀 모두 어깨나 다리가 드러나는 옷은 입장이 제한되고, 특히 여성은 스카프 등으로 머리카락을 가려야 한다. 신발도 벗어야 하지만, 두 성당의 경우 무슬림이 기도하는 곳이 아니면 신발을 벗지 않고 입장할 수 있다. 하루 몇 차례 정해진 무슬림 기도 시간에는 들어갈 수 없는데, 대부분 1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방문 전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5.11.25

‘교의’와 ‘삶’의 일치가 역사를 바꿨다세 공의회 통해 본 그리스도교 신학 그리스도인이 되다 / 미켈리나 테나체 / 전인걸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이 책의 저술 의도는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도록 돕는 데 있다. 즉, 신앙의 내용인 ‘교의’와 특정 시대 속에서 믿고 살아가는 행위를 이어 주는 연결 고리를 탐구함으로써, 그 안에서 교의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맺는 살아 있는 관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17쪽) 교의(dogma)는 성경과 성전에 기초를 둔 믿을 교리를 의미하는 용어로, 교회가 그리스도께 받은 권한으로 신자들에게 믿으라고 가르치는 진리를 뜻한다. 즉 교의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진리를 담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여정처럼 보인다. 둘 사이에서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 되다」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본질을 상기하는 책이다. ‘초세기 세 공의회 안에서 교의와 삶’이라는 부제처럼 교의와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신학을 통해 오늘날 교의신학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저자는 니케아 공의회(325),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 에페소 공의회(431)를 거치면서 교회가 그리스도론·삼위일체 교의·신학적 인간학의 기초를 확립했다고 말한다. 이들 가르침은 3세기에 걸친 순교자들의 피 위에서 성숙했고, 공의회에서 교의 정립에 기여한 교부들은 그에 상응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매우 구체적인 언어로 제시했다. ‘언어(교의)’와 ‘체험(삶)’의 일치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고,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새로움의 씨앗을 뿌렸다. 동일한 교의를 ‘살아 내고 공식화’함으로써 그리스도교는 비로소 참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세상은 변하지만, 복음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복음이 시대 안에서 육화되고, 현재화되는 방식은 변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매 시대 안에서 그리스도의 새로움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히브 13,8 참조)” 저자는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 교수로 신학적 인간학, 영성 신학, 동방 그리스도교 관련 과목을 강의했고, 현재 교황청 신앙교리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6.04.14
![[신앙단상] 묵상과 성찰을 통한 나눔의 배움과 즐거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1/18/qhM1763438107719.jpg)
[신앙단상] 묵상과 성찰을 통한 나눔의 배움과 즐거움김기형 요셉 (공학박사, 인천환경공단 청라사업소장) ‘나눔’에 대해 대부분 사람은 ‘어떤 물건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천주교의 나눔은 물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성찰해 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더 의미한다. 이러한 나눔은 주로 성당의 어떤 단체활동 전후, 또는 특정 모임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눔은 일상생활에서 언제든 누구와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소속된 해설단은 한 달에 한번 회합을 하며 독서와 복음에 대해 묵상하고 단원들과 나눔하는 시간이 있다. 같은 독서, 같은 복음이지만 묵상 내용은 단원마다 다르며, 서로 다른 묵상 나눔을 통해 또 다른 배움을 느끼게 되고, 그 배움은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단체활동을 하지 않는 교우들은 누구와 언제 어떻게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캠핑을 무척 좋아해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캠핑을 간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은 각자 일정 때문에 아내와 둘이 ‘부부 캠핑’을 하게 된 지 벌써 오래됐다. 아내와 둘이 캠핑 가는 것을 아는 주변 지인들이 물어본다. “아내랑 둘이 무슨 재미로 캠핑을 가?” 나의 대답은 늘 이렇다. “캠핑을 가는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가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 캠핑을 가면 아내와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지고, 주제도 다양하다. 나와 아내의 생각을 꺼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님의 뜻이겠지. 계획이 있으시겠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생각은 다르지만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에게서 배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가끔 지인 부부들과 함께 캠핑하는 경우도 있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술 한잔 하다 보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자녀 이야기, 주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고, 각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지인이 비신자라도 나와 아내는 그런 생각들을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배움을 맛보게 된다. 비단 캠핑이 아니라 퇴근 후 동료·선후배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소소한 토론을 하게 된다. 이때 나누는 이야기들 역시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고, 나눔을 통한 배움을 경험한다. 나눔은 성당이나 어떤 단체 모임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눔을 위해서는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듣는 것, 내 생각을 잘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하느님 말씀을 떠올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 묵상과 성찰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장 좋은 묵상과 성찰은 미사 참여를 통해 독서와 복음을 새기는 것이며, 성경을 읽고 하느님 말씀에 대한 직접적·간접적 경험을 쌓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통해 크고 작은 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느님 말씀의 묵상과 성찰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큰 행복이며 나를 성장시키는 배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마음속으로 지혜의 길을 찾고 그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공동번역 「성서」 집회 14,21)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애가 3,40) 김기형(요셉)cpbc2025.11.18

‘혈연보다 강한 신앙’ 친부모 빈자리 채운 ‘대부’ 아버지성 요셉 대축일 맞아 만난 박상수씨 박상수씨가 안드레아와 대부대자 관계를 넘어 부자지간으로 지낸 17년의 시간을 회상하고 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 19) 마리아의 남편, 예수의 양부, 목수 등 성 요셉을 설명하는 말들은 다양하다. 그중 성경에서 요셉을 직접 표현하고 있는 수식어는 ‘의로운 사람’이다. 마리아가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하며 순종의 길을 걸었다면, 요셉은 그 고백을 침묵 속에 행동으로 보여준 의로운 사람이다. 성 요셉 대축일(19일)을 맞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신앙 안에서 정성껏 키운 ‘의인’ 박상수(라우렌시오, 68)씨를 만났다. 그는 제13회 신앙체험수기 대상작 ‘엄마라는 이름으로’를 쓴 이경숙(로사리아)씨의 남편이다. 박씨는 17년 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던 4살 난 아이였다. 아이의 부모는 이혼했다. 어머니는 재혼했고, 아버지는 아이가 18개월 때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났다. 아이에게 유아세례라도 받게 하고 싶었던 할머니는 본당 신부를 찾아갔다. 그때 신부는 불현듯 박씨의 아내에게 “10년 동안 아이를 책임져 줄 수 있다면 세례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마침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신앙 깊은 아내는 곧장 하느님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박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아내가 하자면 무엇이든 하죠. 아이가 신앙 안에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대부’로서 돕겠다는 마음이 컸다. 아이는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받았고, 주말마다 성당에서 얼굴을 맞댔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안드레아가 갑자기 달려와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부모와 헤어진 뒤 일주일 동안 앓아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박씨는 “저를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 진짜 아버지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며 다시금 눈물로 그날을 떠올렸다. 박상수씨가 안드레아를 아들로 받아들이던 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딸만 둘이던 박씨는 아들이 생겼다는 든든함도 느꼈다. 하지만 안드레아에게는 친아버지가 있었다. 비록 1년에 두 번 정도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 관계마저 단절될까 조심스러웠다. 박씨는 이후 수시로 안드레아를 만나면서도 상처받지 않도록 한 걸음 떨어져 지켜봤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함께 떠난 제부도 여행에서 환하게 웃는 안드레아를 보며 가족의 온기를 느끼고 있다는 걸 깊이 알게 됐다. 무엇보다 신앙 안에서 자라길 바랐던 그는 안드레아가 복사를 서는 날이면 빠짐없이 미사에 참여했다. “혹시 제대에서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도 컸습니다. 감시자처럼 지켜봤는데, 그래도 참 대견했습니다. 아버지 마음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친부모의 빈자리는 드러났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의욕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게임에 빠져 지냈다. 아내가 온 정성으로 돌봤지만 공부에는 좀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요셉 성인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마음이요.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던 안드레아를 설득하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막상 입학한 뒤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1학년을 마친 안드레아는 오는 4월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이제는 아버지와 술잔도 나눌 만큼 성장했다. 박상수·이경숙씨 부부가 평일 미사에 참여해 기도하고 있다. 박씨 부부는 평일에도 저녁 미사가 있는 날이면 손 꼭 잡고 걸어가 함께 기도한다. “어느 날 안드레아가 그러더군요. ‘엄마 아빠가 아니었으면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요. 그 말을 듣는데 그동안 기다린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이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모든 게 하느님 계획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약속했던 10년은 훌쩍 지나 17년이 됐다. 그러나 박씨 부부에게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죽는 순간까지 신앙 안에서 안드레아와 함께 걸어가야죠. 성인이 됐으니 자신의 인생을 펼치겠지만, 그저 평범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아들 안드레아와 함께 성지순례 한번 가보고 싶어요.” 박씨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의인들의 길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른다”(시편 1, 6)이다. 성령으로 잉태한 아기 예수를 받아들이고 묵묵히 성장 과정을 지켜봤던 의로운 사람 요셉처럼 박씨 역시 기도 속에서 의인의 길을 걸으며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3.10

말씀을 일상에서 사는 복음화·소공동체 의미 되새겨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 제24차 소공동체 전국모임 제24차 전국 소공동체 모임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말씀과 함께…’ 주제로 열려 소공동체 현실적 어려움 나눠 고령화·사제 무관심 등 지적 신자들이 주님 만나게 도와야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위원장 장신호 주교)가 전주교구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6월 29일~7월 1일까지 2박 3일간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주제로 제24차 소공동체 전국모임을 개최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평신도 봉사자와 사제·수도자들은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상호 경청하며, 일선 소공동체가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나누고, 어려움 속에도 하느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실천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초청 강연을 맡은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한민택 신부는 ‘말씀을 품고 공동체로 살아가기’를 주제로 “성경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는 초대장”이라며 말씀에 대한 신앙적 관점을 강조했다. 한 신부는 온유함과 겸손함, 경청, 환대의 마음으로 예수님 모습을 닮아갈 것을 당부했다. 참가자들은 조별 논의에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에서 소개된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체험했다. 모래시계를 놓고 발언 시간을 공평하게 배분하고 성령과 서로에게 경청하며, 침묵과 묵상을 병행했다. 이들은 소공동체가 복음 말씀을 품고 살아가며 주님 뜻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길에 관해 논의했다. 한 참가자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말 안에 머물면서 성령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고 전했다. 조별 나눔 시간에는 소공동체 모임 신자들의 고령화와 나눔 중 발생하는 언쟁, 사목자의 관심 부족 등 한계가 지적됐다. 한 참가자는 “본당의 고령화가 많이 진행돼 7단계 복음 나누기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곤 한다”고 했다. 다른 참가자는 “본당 신부님이 관심이 없어 아예 모임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제의 관심이 소공동체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짚었다. 제24차 전국 소공동체 모임에서 참가자들이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이러한 고충 속에도 말씀을 일상 안에 잘 새기며 살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한 참가자는 “소공동체 모임 숫자에 매이지 말고 꾸준히 습관화하자”고 말했고, 다른 참가자는 “생명 말씀을 포스트잇에 적어 오고 가며 되새기자”고 제안했다. 제주교구 김기량본당 주임 황태종 신부는 ‘소공동체와 하느님 말씀’을 주제로 한 종합 강의에서 “복음 나누기, 성령 안에서의 대화, 성체성사 등 우리가 체험한 모든 과정은 결국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느님의 현존 체험’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연결돼 있다”며 “이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영원한 새 복음화를 위해 구슬을 꿰는 작업과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모든 방법은 결국 영원한 새 복음화를 주제로 하나로 꿰어진다”고 역설했다.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장 장신호(대구대교구) 주교는 파견미사 강론에서 “하느님 없이 대화하면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성토대회가 되고 말지만, 기도하고 준비하여 성령 안에서 대화를 나누면 내 옆 사람의 목소리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면서 “복음 나누기 7단계나 성령 안에서의 대화라는 방법론에만 머물지 말고, 신자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촉진자가 돼달라”고 격려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이준태 2026.07.07

“깔깔수녀님이 저를 인도하시네요”캐릭터 ‘깔깔수녀님’ 만든 정민영 작가 정민영 작가가 10여 년간 동행한 깔깔수녀님과 함께 미소짓고 있다. 공소 재건한 부친 영향으로 순례·작업 “가톨릭 콘텐츠 창작 원동력은 ‘성지의 위로’… 예수님 늘 동행” 2027 서울 WYD 맞춰 무명 순교자 애니메이션 공개 계획 깔깔수녀님. 수도자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의성어지만, ‘깔깔’ 웃고 있는 수녀님은 어딘가에 있을 법한, 그래서 쉽게 연상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한번 보면 귀엽고 유쾌한 이미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캐릭터 ‘깔깔수녀님’이 오랜만에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을 방문했다. 전시는 5일 끝나지만, 이 캐릭터를 만든 작가가 궁금해서 갤러리를 찾았다. “오래전 cpbc 가톨릭평화방송과 성경 테마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고 새롭게 만든 캐릭터예요. 어려운 이야기를 재밌고 유쾌하게 들려줄 수 있는 친근한 수녀님 이미지로 다듬었죠. 우여곡절 끝에 애니메이션은 방영되지 않고 깔깔수녀님만 살아남았어요.(웃음)”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대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을 전공한 정민영(요한) 작가는 캐릭터 및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깔깔수녀님은 2016년 초대전으로 처음 선을 보였고, 이후 다수의 전시와 아트페어, 뮤지컬 ‘시스터 액트’와의 콜라보 등으로 신자 여부를 떠나 꾸준히 대중과 호흡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사그라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장수한 셈이다. 2023~2025년 인천교구 주보에 실린 깔깔수녀님은 2년 전부터 성지 순례기를 올린 정 작가의 SNS에도 등장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희년을 맞아 작년에는 로마 4대 대성전도 방문했다. 애니메이션이든 캐릭터든 어찌 보면 상업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그가 수익과는 거의 연결되지 않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모태 신앙이고, 부모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6·25전쟁 때 다치셨는데, 병원에서 수녀님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대요. 그래도 신앙을 받아들일 마음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 수녀님과 같이 기도하고 계시더래요. 제게 언젠가부터 가톨릭 콘텐츠 관련 일이 이어지는데, 과제나 숙명 같다고 할까요. 가진 재능으로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극구 신앙을 외면하던 그의 아버지는 추후 대전교구 죽림리공소(충남 홍성)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보이지 않는 이끌림에 아내와 함께 성지를 순례 중인 그는 자신의 탈렌트를 결집해 순교자들을 알리는 애니메이션 작업에 들어갔다. “성지에 가면 그냥 좋아요, 숙연해지고요. 고향 집이 내포, 홍성 쪽인데, 어릴 때는 그 지역에 그렇게 많은 순교자가 계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순교자분들을 알리고 기억하게끔 애니메이션 작업을 조금씩 진행하고 있어요. 누구나 쉽게, 편하게 볼 수 있게요.” 러닝 타임은 대략 10분,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열리는 내년 무명 순교자부터 시리즈로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처음 깔깔수녀님을 실물로 제작할 때, 의도하지 않았는데 업계 분들이 독실한 신자라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기적이다’라는 생각을 했고, 언젠가부터는 깔깔수녀님이 저를 인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예수님도 동행하고 계시고요. 신앙심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바쁠 때면 주일 미사도 빠지지만, 아버지의 어떤 울림이 있어요. ‘내가 했으니까 너도 해 봐!’”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6.30

엄마랑 성경 공부한 어린이, 성경 골든벨 1등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 38개 본당 1100여 어린이 참석복음 전하는 어린이 될 것 다짐 제3회 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에서 문희종(가운데) 주교와 성경 골든벨 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이윤호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수원교구 제공 1000여 명의 어린이가 주님 말씀 안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원교구는 19일 경기도 평택시 효명중학교에서 ‘제3회 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어린이들에게 신앙의 가치와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일깨웠다. 38개 본당 1100여 명의 어린이를 비롯해 주일학교 교사 300여 명, 봉사자 200여 명 등 1600여 명이 함께했다. 교구 청소년국은 어린이들이 다양한 신앙과 사랑을 체험하도록 곳곳에 노인 체험·말씀 체험·장애공감·미니 골든벨·네트로 감성놀이·기도체험·김대건 카드·흡연 예방 카드·생태환경 체험 등 체험 학습장을 마련했다. 다양한 놀이시설과 먹거리 차량도 설치해 즐거움을 더했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행사는 성경 골든벨 경시대회. 모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사전 경시대회를 열어 444명을 추렸고, 이날 각 본당 어린이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 말씀으로 경합을 벌이는 성경골든벨 본선이 열렸다. 대회 결과 이윤호(유스티노, 초4, 영통영덕본당)군이 영예의 1등을 차지했다. 이어 윤채령(에스텔, 초6, 동탄반송동본당)양이 2등, 이준성(요한 사도, 초6, 매탄동본당)군이 3등을 차지했다. 어린이들은 교구 청소년국이 미리 배부한 예상 문제와 범위를 공부하며 준비했다. 1등을 차지한 이윤호군은 “엄마와 둘이서 열심히 대회를 준비했다”며 “골든벨 문제는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오엑스(OX) 문제가 어려워 쉽진 않았지만 뜻깊었다”고 말했다. 문희종 주교는 파견 미사에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용기있게 전했듯이 어린이들도 예수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들이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방법은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친절한 사람, 배려 깊은 사람,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행사를 주관한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조성경 신부는 “축제를 통해 어린이들이 성경 말씀을 듣고 읽는 것을 즐기는 하느님 자녀가 되었으면 한다”며 “앞으로 이 축제가 수원교구 어린이들의 신앙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어린이 성경 페스티벌은 어린이들이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며 성경에 맛들이고, 주님 말씀대로 살도록 독려하기 위한 행사다. 2019년 6월 첫 행사 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 지난해 재개돼 올해 3회째를 맞았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 선임2024.05.22

“당신이 나에게 그리스도”… 그리스도인 일치 꿈꾸는 수도자들[일치주간 특집 이탈리아 보세 수도원] 보세 수도원의 특징은 서로 다른 교파의 남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수도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남자 수도자들이 시간 전례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남녀 수도자 모여 ‘교회 일치’ 지향하는 공동체1965년 설립, 60년째 이어져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 비엘라 지방 마냐노에 자리한 ‘보세 수도원(Bose Monastic Community)’은 교회 일치의 오랜 전통을 살아가는 매우 특별한 공동체다.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8~25일)을 맞아 “모두가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주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을 존중하며 하나 된 삶을 살아가는 일치의 모범 보세 수도원 공동체를 소개한다. 토리노에서 북동쪽으로 약 60㎞ 떨어진 마냐노는 중세 마을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알프스의 만년설, 부르치나 자연 보호 구역과 비베로네 호수의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외곽 11세기 초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지은 산 세콘도 성당 근처에 바로 보세 수도원이 있다. 보세 수도원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 수도회와 완전히 다르다. 남녀 수도자들이 함께 살고 있을 뿐 아니라 각자 믿음에 따라 가톨릭·정교회·개신교·콥트 교회에 속해 있다. 한마디로 교회 일치를 지향하며 초기 수도생활의 모습으로 살려는 ‘초교파 수도 공동체’다. 보세 수도원은 서방 교회 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과 동방 교회 대 바실리오 주교의 수도 규칙의 전통을 공유하며 오늘날 수도생활에 맡겨진 소명을 찾아가고 있다. 이곳 수도자의 삶을 지탱하는 네 기둥은 기도와 노동,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그리고 환대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삶의 방식 중심에는 ‘성경’, 구체적으로 ‘복음 말씀’이 자리한다. 수도생활의 일상이 성경 말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하는 실천의 삶이 되도록 묵상에 힘쓴다. 철저히 복음 정신대로 살기 위해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자들이 그러했듯이 모든 것을 버리고 공동체 안에서 순명과 청빈, 정결의 삶을 사는 건 기본이다. 보세 수도원의 독창성은 ‘교회 일치의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례’에 기초한 생활방식 속에서 수도자들은 교회 일치를 열망한다. 그래서 보세 수도원에선 매일 성찬례가 거행되지 않는다. 성체를 모셔둔 감실도 없기에 성체조배 역시 보세에서는 행해지지 않는다. 또 가톨릭교회의 ‘원죄’ 교리를 가르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으로 설립된 보세 수도원에서 여자 수도자들이 찬미가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세 공동체는 교회 일치를 위한 길을 여는데 헌신하며,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하신 예수님의 기도처럼 그리스도교 신앙과 사랑의 친교를 위해 기도와 만남, 대화의 장소가 돼왔다”고 평가했다. 보세 수도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한 1965년 12월 8일 시작, 꼭 60년 됐다. 토리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가톨릭 평신도 엔조 비앙키가 보세 마을 외곽 농가를 빌려 은수생활을 시작했다. 전기도 상·하수 시설도 없는 단칸집에서 3년 동안 홀로 성경을 읽고,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가끔 찾아오는 방문자들을 환대했다. 이 시기 비앙키는 서방 교회 시토회와 트라피스트회 수도원, 동방 교회 그리스 아토스 수도원, 그리고 교회 일치 수도 공동체 떼제를 체험하면서 수도생활에 대한 소명을 키워갔다. 보세 공동체가 처음부터 환영받는 공동체는 아니었다. 지역 교회 주교는 공개적인 전례를 금지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이 전례에 참례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1968년 6월 29일 토리노대교구 미켈레 펠레그리노 추기경이 방문해 전례 금지를 해제하고 공동체를 축복함으로써 교회 일치 수도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 보세 수도원 성당. 시토회와 트라피스트회의 영향을 받아 특별한 장식이 없이 단순하다. 이와 함께 1968년 8월 스위스 개혁 교회 목사 1명과 스위스 그랑샹 교회 일치 수도 공동체 개신교 수녀 1명, 가톨릭 신자 1명 등 3명이 보세에 합류했다. 이로써 교회 일치를 지향하는 남녀 수도 공동체의 조건을 갖추게 됐다. 보세 수도원은 2023년 7월 비엘라교구장 인가로 교구 소속 자치 수도원이 됐다. 교회 일치를 지향하며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을 따르겠다는 소박한 시작은 60년이 지난 오늘,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 남녀 수도자 80여 명이 함께 사는 큰 수도회로 성장했다. 또 현대 사회의 도전에 직면해 ‘복음적 사랑의 증인’이 된 보세 수도원은 이탈리아 아시시, 오스투니아, 시비텔라 산 파올로에도 수도원을 세워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교회의 소중한 보석으로 빛나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박재찬 신부 지도 아래 ‘토마스 머튼 영성 배우기’ 피정자로 2025년 7월 보세 수도원을 방문했다. 보세 수도자들의 삶은 수도생활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단순함 자체였다. 새벽 5시 30분에 깨어 오전 6시, 낮 12시 30분, 저녁 6시 30분 매일 3번 30분간 ‘시간 전례’를 한다. 남녀 수도자들은 모두 ‘관상 수도자’를 상징하는 흰색 수도복을 입고 전례에 참여한다. 성당 안 제대를 중심으로 남자 수도자들은 왼편, 여자 수도자들은 오른편에 자리한다. 찬미가와 시편 노래로 이어지는 성무일도로 시간 전례를 한다. 미사는 목요일과 주일 매주 두 번 거행된다. 커피와 빵 몇 조각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수도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수도원 작업장에서 노동한다. 올리브 농장과 포도원, 과수원에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공방에서 십자가와 각종 성상, 초, 도자기, 이콘 그림을 제작한다. 또 출판사와 손님방에서 일하고, 어떤 이는 성경과 교부학, 히브리어와 아람어 등을 연구하고, 수련자들을 교육한다. 보세 수도원은 여느 수도원처럼 자급자족한다. 일터에서 생산한 모든 것을 무인 판매소에서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이와 함께 여러 수입원으로 얻은 재화는 수도원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 손님, 곧 방문자 ‘환대’는 이곳 수도생활의 주요한 실천 활동이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고 말씀하신 예수님 최후의 심판 장면을 상기하면서 방문자를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모신다. 특히 교회와 세상의 문제로 기도 안에 머물 자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특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환대는 매일 낮 1시와 저녁 7시에 12명이 들어가는 작은 방에서 함께하는 식사에서 잘 드러난다. 음식은 영양가 높은 친환경 재료로 신선하고 푸짐하다. 방마다 2명의 수도자가 손님을 안내해 함께 식사한다. 한 명은 식사 준비를 돕고, 다른 한 명은 손님들이 서로를 더 잘 알아가도록 대화를 이끈다. 오후 5시부터 한 시간 동안은 ‘거룩한 독서’를 한다. 영적 사막 한가운데에서 복음의 샘물로 영원한 생명을 지탱하기 위함이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마태오 수사는 “규칙적인 수도생활은 우리가 소명에 충실하도록 해준다”며 “수도생활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보세 수도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설립돼 시대 흐름에 맞춰 동·서방 수도 전통에서 영감을 얻어 발전해왔다. 보세 수도원은 서로 다른 신앙과 전통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노동, 환대와 섬김을 통해 조화롭게 화합하는 모범을 보여준다. 리길재 전문 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1.14

성경 입문 (3) 성경(聖經)과 성전(聖傳)[월간 꿈 CUM]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 (03) Q. 왜 성경을 반복하여 읽어야 합니까? A.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당신 자녀들을 언제나 친절히 만나 주시고 그들과 말씀을 나누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 있어서는 지탱과 힘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마음의 양식, 영성생활의 깨끗하고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힘과 능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계시헌장 21항 참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자주 반복하여 읽어야 합니다. Q. 성경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알게 되는 유익한 점은 무엇입니까? A. ① 성경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해줍니다. :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② 모든 피조물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관대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우주 창조의 신비를 알려 줍니다.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시편 19,2) ③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보여 줍니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④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⑤ 모든 사람의 복지를 위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1요한 3,17) ⑥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말고 이타적(利他的)인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24) ⑦ 우리는 외로운 존재가 아님을 알려 줍니다.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Q. 성전(聖傳)은 무엇입니까? A.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감도를 받은 사도들의 말씀 중에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교회에 맡겨져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계시헌장 9항)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2테살 2,1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요한 21,25) Q. 성전은 저술로 보존되어 왔습니까? A. 성전은 교부(敎父)들이라 불리는 거룩한 저술가들에 의해 특별히 보존되어왔습니다. 성전도 성경처럼 성령의 감도를 받았습니다 Q.. 성전은 성경처럼 같은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까? 그리고 성전은 어떻게 전해져 왔습니까? A. 예, 성전 또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를 담고 있기에 성경처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과 성경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거룩한 단일 위탁물이다.”(계시헌장 10항) 또 성전은 구전(口傳) 형식의 계시로서 성전은 교회의 교의, 삶, 그리고 전례에 의해 전해져 왔습니다. Q. 성전은 성경과 대립 됩니까? A. 아닙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도를 받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며, 성전도 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위탁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같은 성령께서 두 계시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성전과 성경은 서로 대립되지 않고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상호공통되는 바가 있습니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등의 주임을 지냈다. cpbc2024.02.19

윤리, 그리스도교 신앙과 이성으로 답하다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2권 특수 도덕신학 / 칼 H. 페쉬케 신부 / 이동호·김성수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그리스도교 윤리학 또는 도덕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이성에 비추어 그리스도인이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따라야 할 지침들을 연구하는 신학의 한 분야로 정의된다.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2권 특수 도덕신학」은 지난 2022년에 출간된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1권 기초 도덕신학」에 이은 개정판이다. 특수 도덕신학은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과 상황에서의 인간 행동을 다룬다. 기초 도덕신학의 원리를 전제하고 그 기초 위에 수립되며, 인간 행동을 특정 분야에 적용한다. 전체적으로 타인 존중과 과학적 진보를 이룩한 인간의 성과들을 존중하되, 그에 대한 남용은 비판하고 있다. 개정판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세밀하게 반영하고 성경 말씀을 보강하였다. 1000쪽이 넘는 책은 크게 ‘종교 권역에서 인간의 책임성’과 ‘창조된 세상을 향한 인간의 책임성’을 다룬다. 종교 영역을 설명한 제1부에서는 대신덕(對神德, theological virtues)으로서 신·망·애, 즉 믿음·소망·사랑을 고찰하며, 신적 예배의 본성 및 신적 예배의 특수한 형태와 의무를 논한다. 창조 세계에 관한 제2부에서는 이웃 사랑과 정의의 덕목을 고찰하되, 세부적으로 ‘개인적 윤리’로 정의되는 육체적 생명과 건강, 명예·성실·진실, 성(性)을 살펴본다. 이 성은 다른 큰 영역인 ‘사회 윤리’로 가는 전환점이다. 결국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해 결혼·가족·국가·교회 등과 같은 큰 공동체로 나아가며, 노동·소유·경제·세계 등으로 확대해 피조물에 대한 책임 있는 돌봄으로 이어진다. 책은 단순히 계명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할 금지 사항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하느님 사랑과 그 은총으로부터 주어진 대신 덕이 어떻게 인간적인 덕을 완성하는지, 모든 계명과 율법의 완성인 덕스러운 삶을 그리스도인의 일상 안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특히 현대사회의 정신적·심리적 이해, 공동선과 인권·생태환경에 대한 이해가 강화되었고, 생명공학·생식의학·약물남용·핵전쟁 등의 문제점도 다룬다. 또 여성 존중·비혼·부모 역할 및 부부애 관련 주제가 보강되었다. 노동과 자본의 협력적 관계와 기업가의 명예, 국제 연대의 중요성 등에 대한 논의도 심화되었다. 로마 라테란대학교 알퐁시아눔에서 교황청립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칼 H. 페쉬케(말씀의 선교 수도회) 신부는 도덕신학 교수로 브라질·독일·필리핀·이탈리아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6.04.07

변상호 가롤로의 감사 생활[월간 꿈CUM] 경청 프랑스 루르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 군종신부로 살던 1981년의 일이었다. 어느 주일 미사 시작 조금 후, 성당 문이 열리면서 휠체어 한 대가 들어와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온 사람 같았기에, 미사를 마치고 그에게 다가가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치료하고 약을 썼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결국 뇌성마비로 판정받아 혼자서는 이동할 수 없는 장애자로 살게 되었다. 그러는 중 15세가 된 어느 날, 옆집 친구의 도움을 받아 가출해 여러 곳을 떠돌아 지내다가 부산의 한 재활원에서 살게 되었다. 그에게는 라디오가 유일한 친구요 스승이었으며, 그의 모든 상식과 지식은 오로지 방송을 통해서 터득된 것이었다. 특히 기독교 방송은 그에게 성경과 하느님을 알게 해주었고,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부산 구포 본당의 레지오 단원 김양숙 클로틸다가 그곳을 방문하여 활동하다가 결심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러한 변상호와 평생을 같이 살기로 한 일이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지인(知人)의 소개를 받아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의 ‘순복음 금식 기도원’으로 가서 살았다. 그래서 그날은 인근에 있던 육군 제1사단의 전진성당(前進聖堂)으로 나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특별히 네 가지 일에 감사한다고 했다. 첫째는 하느님을 알고 신앙을 갖게 된 것이고, 둘째는 이렇게 인생의 동반자인 아가씨를 만나게 된 것이며, 셋째는 장애로 살아가나 시각장애인이 안 된 것이고, 넷째는 언젠가 다른 장애인들을 돌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하나는 자기가 세례를 받게 해주고, 다른 하나는 두 사람에게 혼인성사를 집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감동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전해 듣기는 했으나, 당사자를 직접 만나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세례를 받고 결혼하여 30년 동안 왕래하면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그런데 주인공 변상호 가롤로 형제는 안타깝게도 간경화로 고생하다가 2010년 11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임종 직전까지도 경기도 평택에서, ‘요한의 집’을 운영해 자신과 비슷한 장애인 20여 명을 돌보며 같이 살았었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사람들에게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라고 말했다. 변상호 가롤로는 그렇게 살았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언제나 미소 지으며, 주님 안에서 기뻐했다.(이사 61,10 참조) 또 틈만 나면 녹음된 성가와 성경을 들으며 묵상하고 기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고 감사드렸다. 전신 장애인이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보다 행복하다며 모든 수입의 십일조(十一條)를 봉헌했다. 교도소에 초대를 받아 가서는 수감자들에게 감명을 주는 훌륭한 강사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장애인 부부보다 낫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많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드려야 하지 않는가? 또 하느님의 사랑과 부모의은혜에, 배우자의 헌신과 이웃의 도움에 진정으로 더 많이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글 _ 최봉원 신부 (야고보, 마산교구 원로사목) 1977년 사제품을 받았다. 1980년 군종장교로 임관, 군종단 홍보국장, 군종교구 사무처장 겸 사목국장, 관리국장, 군종참모 등을 지냈으며 2001년 군종감으로 취임, 2003년 퇴임했다. 이후 미국 LA 성삼본당, 함안본당, 신안동본당, 수산본당, 덕산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을 역임했다.cpbc2026.02.10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8) 「예기」, 「단궁하(下)편」에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갈 때의 일이었습니다. 한 처자가 무덤에서 서글피 곡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를 시켜 그 사연을 알아보라고 합니다. 그 처자가 자로에게 하는 말이 “옛적에 시아버지께서 호랑이에게 죽었고, 남편 역시 호랑이에게 죽었으며, 이제 아들 또한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그런 무서운 일이 반복해 일어났음에도 이 마을을 떠나지 않는 것이 의아해 물으니 여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혹한 정치가 없어서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 공자가 살던 시대는 주나라의 사회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춘추시대였습니다. 왕실은 점차 힘을 잃고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는 전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각 제후국들은 부국강병을 위해 더 많은 세금과 병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피해 보는 것은 일반 민중들이었습니다. 그런 가혹함을 피해 사람들은 외진 곳으로 숨어들어 갔습니다. 세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사는 ‘나는 자연인이다’ 속 인물들이 비일비재했던 것입니다. 주나라는 대체로 읍제 국가였습니다. 그 읍은 다시 ‘국’(國), ‘도’(都), ‘비’(鄙)로 구분되었습니다. 국(國)은 제후가 다스리는 곳이며, 도(都)는 제후가 파견한 대부가 다스리는 곳이었고, 비(鄙)는 국이나 도로부터 직접 통치받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성곽 밖 가장 천한 사람들로 취급되어 ‘야인’(野人)이라 불렸습니다. 물론 이곳도 더 혼란한 전국시대로 들어서면서 징병을 목적으로 직접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공자는 정치를 피해, 들로 산으로 흩어져 숨어 살던 사람의 처지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 비참한 현실을 말한 것이 바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즉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였습니다. 공자는 정치에 대해 말하길 “정치는 바르게(正) 하는 것이다(政者正也)”(「논어」 안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르게 하는 것(正)’이란 무엇일까요? 공자에게 바르게 하는 것이란 ‘정명’(正名), 즉 이름 혹은 명칭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함의는 이름(名)과 그 안에 담고 있는 실제 내용(實)을 일치시켜 자기 이름에 맞게 행실하라는 것입니다. ‘~답게 살라’는 것이죠. 소위 ‘이름값 하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답게, 검찰은 검찰답게, 경찰은 경찰답게, 언론은 언론답게, 종교인은 종교인답게. 자기 본분에 맞게 행실하라는 사회고발입니다. 공자가 볼 때 정치가 무너진 것은 자신의 신분과 위치, 지위에 맞는 처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정명’ 사상을 바탕으로 공자는 제자 자공에게 정치에 관해 말합니다. 자공이 정치에 관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길 “먹는 것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력을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이 믿게 하는 것이다.” (「논어」 안연) 공자가 말하고 있는 정치란 풍족한 식량, 풍족한 군대, 그리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이라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경제, 국방을 튼튼하게 하여 백성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 토대가 바로 ‘정명’, 자기 본분에 맞게 ‘~답게’ 처신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백성이 서 있을 수 없다고 공자는 말합니다(民無信不立). 지도자가 가혹한 수탈로 굶어 죽게 하고, 명분 없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게 하니 불안한 백성은 결국 흩어져 야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무능한데 가혹하기까지 하면 호랑이보다 무섭습니다. 공자의 시대가 그랬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당시 지도자들의 위선적 태도가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무거운 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지도자들에게 말합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마태 23,24) 여기서 ‘작은 벌레’와 ‘낙타’는 부정한 동물을 말합니다. 유다인들은 포도주를 담글 때 부정한 초파리를 걸러 내는 과정을 가졌습니다. 그런 작은 부정을 막기 위해 열심이면서 ‘낙타’라는 큰 부정은 삼키고 있다는 사회비평의 말씀입니다. 겉(名)은 그럴듯하나 속(實)은 탐욕과 부정으로 가득한 위선적 태도의 지도자를 비판한 예수님의 사회고발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백성이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백성이 이 땅에 제대로 설 수 있나요? ‘잔혹한 통치를 두느니 차라리 통치가 없는 편이 낫다’라는 서양의 말이 있습니다. 공자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백성이 야인이 되지 않도록 믿음을 주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백성을 볼 날이 올 것 같습니다. ‘正’은 글자의 뜻으로 보면 성(囗)을 바로 잡기 위해 성을 향해 발(止)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政’(정치)은 ‘正’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예루살렘 도성에 목숨 걸고 입성하셨습니다. 바로잡아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분노한 백성이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도성으로 향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믿음을 주십시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cpbc2024.12.09

성모님 품에서 묵주기도가 된 장미[‘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1. 장미 장미. 성서와함께 제공 성모 성월, 가장 고운 꽃 모아 성전을 꾸밀 수 있는 제일 좋은 시절이다. 그 고운 꽃들 중 ‘기도의 정원’ 연재의 문을 여는 꽃으로 장미를 소개한다. 5월에 찬란하게 만발하는 ‘꽃의 여왕’.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님께 장미만큼 잘 어울리는 꽃이 또 있을까. 장미는 구약 성경에서 처음 언급된 이래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리스도교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꽃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특히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 되었다.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장미 줄기에 가시가 없었으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줄기에서 가시가 돋았다고 한다. 동정녀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은 존재이므로 ‘가시 없는 장미’라고 불렸고, 이에 화가들 사이에서는 ‘장미와 성모 마리아’나 ‘장미 덩굴 아래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는 것이 한때 크게 유행했다. 장미는 원죄 없는 잉태, 성모 승천, 천상 모후의 관을 받는 마리아를 그린 성화에도 많이 등장했으며, 특히 성모 승천을 묘사한 작품에서는 마리아의 빈 무덤 앞에 백합과 함께 그려지곤 했다. 인류는 약 2500~3000년 전부터 장미를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미는 야생 덩굴장미의 일종인 개장미(Rosa canina)다. 이 장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풍성한 화형의 현대 품종 장미와 달리 꽃잎이 다섯 장뿐인 수수한 외모의 홑꽃으로, 지금도 독일 힐데스하임 대성당 뒷벽에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성당이 연합군으로부터 폭격을 당했을 때도 이 장미 뿌리는 잔해 속에서 살아남아 꽃을 피웠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종·교배종·품종이 탄생한 만큼 장미는 색감이나 화형, 크기가 다양해 절화로서의 활용도가 높다. 가장 보편적이고 무난한 꽃 중 하나이기에, 장미 없이는 제대를 비롯한 성전 장식이나 꽃 봉헌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물리적인 봉헌은 물론 영적인 봉헌도 마찬가지다. 수줍게 오므린 꽃봉오리처럼 동글동글한 묵주 알을 손으로 굴리며 성모님께 장미를 한 송이씩 바치는 것이 로사리오(rosario) 기도, 즉 묵주기도로, 로사리오는 ‘장미 정원’‘장미 화환’을 뜻하는 라틴어 로사리움(rosarium)에서 유래한 단어다. 장미는 꽃 색깔마다 상징하는 바가 다르다. 붉은색은 열정과 사랑, 흰색은 순수함 또는 죽음, 복숭아색은 겸손과 순결, 분홍색은 은총과 행복, 인공적인 염색으로 만들어낸 파란색 장미는 기적을 상징한다. 물론 성전 장식에 활용하는 경우에는 전례색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결국 모든 꽃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그 꽃을 하느님께 드리는 나의 진심과 그 순간의 맥락 속에서 의미가 완성된다. cpbc2026.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