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 2024년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3/29/tg31711675906493.jpg)
[전문]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 2024년 부활 메시지 “기억해 보아라”(루카 24,6).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되살아나셨습니다. 온갖 어둠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부활의 기쁨과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 내리기를 빕니다. 기쁨이 가득한 오늘, 주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체험한 여자들을 묵상해봅시다. 그들이 어떤 계기로 부활을 깨달았는지를 성찰해 봅시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항상 느끼고 있었고, 기쁜 마음으로 그분을 추종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돌변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말았습니다. 이에 그들은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보려는 일념으로 무덤으로 갔습니다. 때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요한 20,1)여서 사람들은 대부분 태연히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그들의 발걸음을 무덤으로 재촉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무덤 입구를 막은 “매우 큰 돌”(마르 16,4)을 굴려내는 일이 문제였습니다. 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어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 문제도 주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을 꺾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의 몸에 향료를 발라 드릴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도착한 그들은 전혀 예기치 않았던 새로운 사건을 접했습니다. 곧 걱정했던 큰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이 주님의 부활을 깨달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몹시 당황했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요한 20,2 참조). 그래서 두려움에 더욱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성경은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으로 숙였다.”(루카 24,5)고 말합니다. 선한 마음으로 힘차게 내디뎠던 그들의 발걸음이 완전히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재로 인해 그들은 완전히 용기를 잃고 마음과 몸이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당황, 두려움, 멈춤 등의 상태에 있는 그들에게 천사는 주님의 부활을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 24,5-6). 이러한 선포에도 그들은 아직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부활을 결정적으로 깨달았을 때는, 천사의 분부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을”(루카 24,8) 때입니다. 천사는 ‘그분께서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라고 분부했고, 그들은 ‘사람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냈던 것입니다(루카 24,6-8 참조). 그 기억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비로소 마음이 열려 주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두려움을 이겨내고,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힘차게 내디디어 사도들과 다른 이들에게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억은 주님의 부활을 깨닫게 하는 힘이고, 아울러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비된 삶을 다시 일깨우는 힘입니다. “기억해 보아라”(루카 24,6). 이는 주님을 만났을 때를 기억하라는 뜻이고, 그분의 말씀과 행동, 그분의 삶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이미 행동하셨고, 지금도 행동하고 계시는 모든 것을 기억하라는 초대입니다. 이러한 기억은 미래의 희망에 마음을 활짝 열게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동하셨던 것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만약 이러한 기억이 없다면, 당황은 길을 잃게 하고, 두려움은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기괴한 환상마저 불러일으킵니다. 당황과 두려움은 하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을 차단하고, 우리의 지평을 어둡게 하고 희망을 꺾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황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고, 그것에 지배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슬픔과 절망에 잠겨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주저앉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참된 자유와 희망과 기쁨을 누리는 부활의 삶에서 아예 멀어집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는 그런 때가 간혹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자마자 추격을 당했을 때,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여 마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이렇게 항의했습니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탈출 14,11)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은 차라리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더 낫다는 궤변까지 늘어놓습니다. 이러한 힘겨운 시련이 반복될 때마다, 주님은 그들이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억’을 거듭 강조하십니다.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신명 4,9).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여라”(신명 6,12).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신명 8,2). “예전에 여러분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히브 10,32).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2티모 2,8).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일으키셨던 사랑의 기적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기억은 온갖 두려움을 몰아내어 우리를 다시 엄연한 현실로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며 사랑받는 자녀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훌륭히 싸우며 달릴 길을 다 달리게’(2티모 4,7 참조) 합니다. 말하자면 부활의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삶에는 참으로 힘겨울 때가 더러 있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발걸음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중단하고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 이유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실이 더욱더 막막하게 보이고 실낱같은 희망마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는 특히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 주님께서 내 삶에 개입하시고 행동하셨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일어나 가야 할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기억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으면, 이웃에게 주님의 부활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과 시련을 겪는 이웃에게 가까이 다가가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증언함으로써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어두운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극심한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함으로써 연대와 형제애를 증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이웃 그리고 우리 사회가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을 기억합시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느님 사랑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켜 주시고, 성모님께서 우리의 기억에 함께해 주시길 빕니다. 2024년 부활절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 도재진2024.03.25

기도의 힘, 기도의 열매 (3)[월간 꿈 CUM] 정치우의 위대한 기적 (17) 최근 교황님께서 ‘가짜 그리스도인’ ‘거짓 그리스도인’에 대한 말을 하시면서 다음의 예를 드셨습니다. 첫 번째는 신앙을 하느님과 자신과의 개인적인 문제로만 생각을 하는 분들입니다.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거짓 그리스도인, 가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분들은 ‘신앙적 이기주의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본질적으로 ‘이타주의’입니다.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추구하는 것과 전혀 반대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않는 분들을 말합니다. 많은 분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기도생활도 어렵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까지 한번도 안 해보던 것을 하려니까 어렵게 느껴지는 겁니다. 적당히 주일이 되면 성당에 왔다 갔다 하고, 적당히 성사 보고, 교무금 내고, 헌금 내면서 이 정도면 열심한 신자라고 생각하다 보니 더 이상의 것을 하기 힘들어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더 이상의 것을 해야 합니다. 그곳에 참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뤄서는 안 됩니다. 이제 살날이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신앙에 열심하다고 남들이 흉을 보건, 손가락질을 하건 그런 소리를 듣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 이후에 가늠하기 힘든 영원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영원한 시간 속에 어떻게 지낼 것인가는 이 세상 안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선택하는 것입니다. 몇 십년, 몇 백년이 아닌 영원한 시간을 어떻게 지낼지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상의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서 살 집을 지어 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증권에 투자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투자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성경 구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16-21)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던 부자는 커다란 창고를 지어 재물을 보관한 후, ‘야~ 이제는 됐다. 안심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느님이 그날 밤에 부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큰 창고를 가득 채운 재산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게 됐습니다. 부자의 걸림돌은 욕심이었습니다. 이 시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는 물질만능주의의 만연으로 모든 관점, 모든 삶의 기준이 참으로 세속적입니다. 많은 이들이 무가치한 것에만 마음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왜 행복할까요? 모든 죄악의 근원인 욕심을 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욕심과 교만함을 버리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욕심과 교만이 없으면 무엇을 가지려고, 차지하려고, 뺏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으니까 자신을 내세울 필요도 없고, 남을 짓밟고 올라가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이런 분들이 많아진다면 정치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넘칠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지금 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우리에게 늘 불안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바꾸어야 할 소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충만히 받은 것을 나누지 않는 것은 재물을 쌓아놓기만 하는 부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은혜 받는 자리, 은혜 받는 기도회가 있으면 열 일을 제쳐 놓고 찾아 다니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에 대해 공부를 하자고 하면 그것은 하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은혜와 은총만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은혜와 은총을 받았다고 자부하는 분들의 모습에서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열매를 맺지 못한 사람들은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참 신앙 안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정답은 한 가지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겸손은 진리를 묵묵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물론 현실 안에서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총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이 섭리를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혼란스러운 사회 안에서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제 힘이 아닙니다. 내 힘이 아니고, 내 능력이 아닙니다. 온전히 하느님 은총 덕분입니다. 은총이 없었다면 오늘날 나라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은총을 받아들이고 유지하고 세상에 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들의 노력입니다. 글 _ 정치우 (안드레아, 복음화발전소 이사장) 복음화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1990년 5월 새로운 복음화 사업을 시작, 복음화학교를 설립하여 재복음화 및 선교를 위한 예수님의 제자훈련 교육 체계를 확립시켜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평화방송 TV를 통해 복음화학교 강의를 했다. 전국의 본당 및 단체의 초대로 수백회의 특강과 견진 교리, 피정 등을 했으며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에 많은 글을 연재하는 등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복음화학교를 은퇴한 이후 ‘복음화발전소’를 설립, 삶을 통한 새로운 복음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이 있어 걸어 갑니다」 「위대한 기적」 「위기의 대안으로서의 평신도영성」 등이 있다. cpbc2024.03.04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봉사하는 이들[가톨릭 영상 교리] (32) 천사 천사는 창조 때부터 구원 계획의 실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잉태될 것을 알리는 사건을 그린 프라 안젤리코의 ‘주님 탄생 예고’. 출처=가톨릭굿뉴스 천사! 여러분은 ‘천사’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우리는 천사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때로는 찾기도 하고 때로는 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천사는 정말 존재할까요? 가톨릭교회는 천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사실 천사는 성경에 등장하는 존재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천사는 죄악이 창궐한 소돔을 멸망시킬 때 의로운 사람 롯을 구하고,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칼을 빼들었을 때 멈추게 하며,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하고 소명들을 알리고 예언자들을 돕는 존재로 나옵니다. 또 신약 성경에서는 요한 세례자의 탄생과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였으며, 예수님께서 탄생하셔서 하늘에 오르실 때까지 경배하고 시중들며 용기를 북돋아 드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린 것도 천사들이었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의 심판을 도와드리게 될 이들도 천사들입니다. 나아가 교회도 천사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풀어주고 제자들의 복음 선포 활동을 도와주며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또 교회는 장례 때 “천사들이여, 이 교우를 천상 낙원으로 데려가시어…” 하면서 천사들의 전구를 청합니다. 그렇다면 천사는 어떤 존재일까요? 천사는 순수한 영적 피조물입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이뤄진 존재입니다. 육신을 지녔기 때문에 육안으로 볼 수 있고 나아가 죽음을 겪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긴 하지만 순수한 영적 존재이며 죽지 않습니다. 나아가 천사는 지성과 의지를 지닌 인격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와 인격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존재입니다. 또 천사는 ‘보이는 모든 피조물보다 훨씬 더 완전’한 존재이며, 하느님의 사신, 전령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결국,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 계획에 봉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천사들은 “창조 때부터 구원 역사의 흐름을 따라, 줄곧 이 구원을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알리고, 이 구원 계획의 실현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332항)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천사의 이름은 성경을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입니다. ‘누가 하느님 같으랴’라는 뜻의 미카엘 천사는 악마와 싸우는 천상 군대의 대장입니다.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이란 뜻의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파견되었듯이 하느님의 말씀과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며,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뜻인 라파엘 천사는 토빗의 눈을 고쳐주고 토비야의 길잡이가 되어준 것처럼 우리의 치유자, 길잡이의 천사입니다. 또 성경에 바탕을 둔 천사에 대한 믿음은 수호천사로 이어집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롯을 구하는 이야기를 비롯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천사에 대한 이야기와 “주님의 천사가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 둘레에 진을 치고 그들을 구출해 준다”(시편 34,8)는 내용이 나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작은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가르치시면서,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라고 말씀하신 것에 근거합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생명의 시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천사들의 보호와 전구로 도움을 받습니다. 모든 신자의 곁에는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보호자이자 목자인 천사가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36항) 우리는 어려운 일을 겪을 때나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 천사들의 도움을 청하여 하느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기도는 천상의 천사들과 이루는 친교 안에서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cpbc2022.12.01

사기꾼의 유혹[월간 꿈 CUM] 꿈CUM 묵상 _ 예수의 일생 (8)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제주 성이시돌 목장 새미은총의 동산 조형물) 사진을 보시죠. 오른쪽에 멋있는 옷차림의 남자가 왕관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왼쪽에는 초라한 행색의 남자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왕관을 든 남자를 올려보고 있습니다. 성경의 어떤 장면을 형상화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마태 4,1-11 참조) 자! 이제 당시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죠. 오른쪽의 잘생긴 남자가 마귀이고, 왼쪽의 초라한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40일간 단식을 하십니다. 이때 마귀가 짠! 하고 나타납니다. 마귀에게는 이름이 많습니다. 한 글자로 표현하면 악(惡), 두 글자로 하면 악마, 사탄 등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 글자로 하면? 나쁜 놈, 유혹자, 사기꾼이 됩니다. 사기꾼의 특성의 무엇일까요. 사기꾼들은 일반적으로 멀쩡하게 잘 생긴 데다 말도 잘합니다. 저처럼 말이죠.^^ 인상이 험악하고,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기를 잘 치지 못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세요. 사기꾼 마귀는 옷도 잘 차려입었고, 잘 생겼습니다. 지금 예수님에게 사기를 치는 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기에 넘어가시나요? 아닙니다. 만약 나였으면 바로 사기에 걸려들었을 텐데, 예수님은 단호하십니다. 한방에 사기꾼을 쫓아내십니다. 이 사기꾼은 어떤 달콤한 말로 예수님에게 사기를 치나요?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하고, 자신에게 절을 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재물, 권력, 명예를 각각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단식을 하시며 삶의 진정한 진리에 대해 깊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인생의 참 진리, 참 행복에 대해, 그 행복을 세상에 어떻게 전해야 할지에 대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나타나 “내가 지금 참 행복을 알려줄께”라며 유혹을 합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넌 행복해질 거야”라고 합니다. 마귀는 가장 먼저 재물을 주겠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인간적인 욕구, 즉 식욕과 성욕, 물욕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충족되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며 자신을 따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사기에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다음으로 마귀가 제안한 것은 권력입니다. “너는 권력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어. 내가 그 권력을 줄게. 권력만 있으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유혹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웃기지 마. 이 사기꾼아” 하며 단호히 물리치십니다. 세 번째 유혹은 명예입니다. 마귀가 말합니다. “재물도 권력도 싫어? 그럼 내가 명예를 줄게. 그럼 행복해질 거야”라고 합니다. 이때도 예수님은 단호하십니다. 사기에 절대로 걸려들지 않으십니다. 만약 나라면 바로 사기에 제대로 걸려들었을 겁니다. 재물과 권력, 명예를 가진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이 참 행복을 선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기꾼 마귀가 제시하는 길에는 행복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끝에는 불행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음이 있습니다. 광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둠이 있습니다. 마귀 사기꾼의 사기에 걸려들어 졸졸졸 따라가다 보면 종내에는 어둠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놈아! 난 너하고 안 갈란다. 왜? 거기에는 생명이 없어. 빛이 없어. 너하고 가는 길은 길이 아니야. 내가 길이요, 내가 진리요, 내가 생명이다.” 예수님은 참 생명의 길, 참 행복의 길을 걸으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따르겠습니까. 겉으로 초라하게 보이는 예수님을 따르겠습니까. 아니면 번지르르하게 차려입은 잘생긴 사기꾼의 말을 따르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라갈 때 참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길에 생명이 있고 참 행복이 있습니다. 이 행복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은 절대로 사기꾼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꿈CUM 지도신부, 성 바오로 수도회) cpbc2023.11.20

천주교와 다른 성공회·정교회 전례[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23) 성공회와 정교회 전례 2018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과 우크라이나 정교회 스뱌토슬라브 셰브추크 대주교가 희망의 비둘기를 날리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성공회의 ‘감사 성찬례’와 정교회의 ‘성찬 예배’는 천주교의 미사와 다른가요? 천주교와는 갈라졌지만 개신교와는 달리 사도전승을 간직하면서도 교도권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정교회나 교황의 수위권에 반대하여 갈라져 나간 성공회의 전례는 천주교의 예식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성공회의 경우 다른 개신교단과는 달리 전례가 천주교의 미사 형태와 거의 같고 과거에는 ‘미사’라고 불렀지만 2004년부터는 ‘감사 성찬례’라고 부릅니다. 예절의 순서는 ‘성공회 기도서’에 따라 입당 예식, 말씀 전례, 성찬 전례, 파송 예식 순서로 구분되며, 말씀 전례 때마다 교회력에 맞추어 배열한 성서정과(전례력)에 따라 제1독서(구약성서), 제2독서(서신서), 시편, 복음서로 나누어서 읽는다는 점에서도 동일합니다. 성서 봉독이나 설교는 사제와 주교의 허락을 얻어 평신도가 맡을 수도 있습니다. 성공회가 거행하는 성찬례의 형태와 방식은 천주교와 유사하지만, 축성 기도 후 제병 안에 그리스도가 참되게 현존한다는 것(실체 변화)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공회는 이러한 성만찬 정신에 따라 신자가 아니더라도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성체를 허락합니다. 또한 천주교는 특별한 경우에만 성체와 성혈을 함께 받는 양형 영성체를 하지만 성공회는 양형 영성체를 기본으로 합니다. 정교회의 경우 동방 전례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기에 화려한 이콘으로 가득 찬 성당에서 초와 향으로 하느님의 거룩함을 전례 안에서 표현합니다. 성찬 예배는 그리스의 전통에 따라 단성 음악 형식의 기도문으로 장엄하게 진행됩니다. 사제는 제사장으로서 화려한 제의를 입고 성찬례를 거행하며, 사제만이 성체를 축성합니다. 성찬례를 거행하는 제단은 신자석과 구분되어있으며, 신자들은 제단을 향하여 무릎을 꿇거나 서서 사제의 성찬에 마음을 모아 기도합니다. 정교회의 성찬 예배는 봉헌 의식(준비 의식)과 말씀 전례(예비 신자 전례)와 성찬 전례(신자 전례)로 나뉩니다. 봉헌 의식은 하느님께 감사의 뜻으로 예물을 봉헌하는 전례이며, 말씀 전례는 사제가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서 봉독과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설교로 구분됩니다. 성찬 예배에서는 누룩이 든 빵을 사용하고, 축성된 빵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의 참된 현존을 고백합니다. 영성체는 정교회 신자에게만 허락하며 축성된 빵을 포도주에 담가 작은 숟가락으로 직접 영해 준다는 점이 다릅니다. 정교회는 제사장으로서 사제의 역할을 강조하기에 천주교와 성공회와는 달리 평신도가 성경 봉독을 맡을 수 없고, 본래 신자석에는 별도의 의자를 놓지 않고 경건함을 표현하기 위하여 서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3.08.31

예수 성심 성월, 하느님 말씀으로 초대합니다 6월 ‘예수 성심 성월’을 보내고 있다. 바쁘고 힘든 일상에 신앙생활마저 흔들린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따를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책들을 읽어 보자. 말씀에 초대합니다 / 라이너 마리아 쉬슬러 신부 / 신정훈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소금, 빛, 누룩과 같아지는 것은 특별한 일입니다. 이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고, 다르게 행동하라는 도전입니다. 그것은 큰 소리로 떠드는 가운데가 아니라, 약간의 소금처럼 끼어들거나 한 옴큼의 누룩처럼 모든 것을 가득 채울 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국에 들어가지 않은 소금, 밀가루 반죽 밖의 누룩, 꽉 막힌 상자 속의 빛은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쉽게 잊히지요.”(‘세상의 소금’ 중에서) 그리스도인은 흔히 세 가지 방식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달받는다고 한다. 자연이라는 창조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 영의 내적인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방법 중 가장 명확하고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이지만, 이조차도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대체 어떻게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말씀에 초대합니다」는 매주 예수님의 삶과 복음을 접하면서도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신앙과 사목에 관련된 다수의 책을 쓴 라이너 마리아 쉬슬러 신부가 교회력이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을 시작으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 1년간 주일 복음 말씀을 중심으로 풀어낸 묵상 글이다. 교회 전례에서 중요한 복음의 핵심을 뽑았고, 그날그날의 성경 말씀을 짧게 수록해 교회력의 흐름에 따라 말씀을 묵상하고 세상 속에서, 각자의 삶 안에서 이를 가까이 녹여낼 수 있도록 안내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엄격함과 벌로 훈육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선한 모습으로 끌어당기시고자 합니다. 선을 행하는 이는 스스로 선해집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팔을 벌려 인간에게 다가가십니다. 사람이 선을 행하고, 용서하고, 용서를 빌고, 일으켜 세우고, 동행하면 할수록 이러한 행위는 쉬워집니다. 선행과 자비로움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되찾은 아들’ 중에서) 사제로 서품된 지 40년에 육박하는 쉬슬러 신부는 매주 복음을 소재로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SNS에 글을 올리며, 다양한 강연과 칼럼 등을 통해 세상에 교회를 알리고 있다. 이번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책은 저자와 함께 독일 상트 막시밀리안 성당에서 사목 중인 서울대교구 신정훈 신부가 번역했다. 쉬슬러 신부는 “나자렛 예수님께서 기쁜 소식은 세상 끝까지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성경 본문에 대한 저의 생각이 세상의 다른 끝,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달한다”며 “한국의 독자들이 미사 중에 들을 수 있는 복음서 본문에 대해 새롭고 깊은 통찰을 얻길 바란다”고 전했다. 슬기로운 신앙생활 / 권오상 신부 / 함께꿈 “교회의 입장은 극단의 엄격주의와 극단의 방임주의 모두를 배척한다. 즉 적응을 구실로 하는 기회주의적 타협이나 야합(방임주의)도, 그리고 순수성을 수호한다는 빌미로 내세우는 극단적 원리주의(엄격주의)도 거부한다. 교회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엄격하게 적용했던 윤리·도덕이나 계율을 모든 사람에게 확대해 일반화하는 주장을 배척해왔다. 이러한 교회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엄격주의는 경건주의(종교적 신념을 강요하는 권위적이며 독단적인 사상)와 결탁해 여전히 우리 신앙생활 주변을 맴돈다.”(26쪽) 2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가톨릭교회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세상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러한 창조적 긴장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신자들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다기보다 닫혀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그로 인해 신앙의 위기를 맞기도 한다. 「슬기로운 신앙생활」은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신앙인들을 위한 지침서다. 이 책은 알폰소 리구오리 성인과 윤리신학자 베른하르트 헤링 신부의 삶과 사상을 통해 신앙인에게 개방적이고 균형 잡힌 신앙 감각과 영성에 다가가는 데 깊은 영감을 제시한다. “헤링 신부는 ‘고해사제는 재판관이 아니라 돌아온 탕자를 기쁨으로 맞이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해사제의 역할은 죄인을 단죄하고 벌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화해를 촉진하고, 위로와 용기를 주며,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이다. 고해사제는 죄의 경중을 따지면서 어떻게 살라고 지시하거나 어설픈 질문으로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죄의 고백을 통해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지원한다.”(39쪽) 대학에서 인간학, 대학원에서 임상윤리와 생명윤리를 연구한 권오상(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신부는 인간의 고유한 윤리적 태도가 개인과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적 요소라고 지적한다. 강석진 신부의 인생 수업 (관계 편) / 강석진 신부 / 생활성서 “세상살이든 교회살이든 간에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면서, 늘 수 싸움 하면서 그렇게 내 이익과 승리를 위해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마음으로 살기보다는 이 삶 좀 즐기면서 살아도 될 듯합니다. 비록 단순 무식하게 직구 하나만 제대로 던질 줄 아는 삶이라 결국 승률도 낮고, 승수도 턱없이 모자라는 좀 어리석은 삶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문득 우리 주님께서는 그 ‘꼴찌 같은 등수’를 당신 마음에 드실 정도로 올려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125쪽) 교회 안팎의 서로 다른 논리에 혼란을 겪는 이들이 있다. 일상에서 성경에 적힌 말씀대로 살자니 손해 보는 것 같고, 가족부터 이웃, 동료 등 사회 안의 수많은 관계는 시시때때로 ‘나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듯하다. 수도자이자 상담 전문가인 강석진(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의 「인생 수업」 시리즈 두 번째 ‘관계 편’이 출간됐다. 지난 25년간 사목하며 ‘세상살이 신앙살이’하는 사람들과 동반한 다채로운 경험이 담겨 있다. 우리는 다양한 만남을 통해 기쁨과 위안을 얻지만, 모든 ‘관계’에는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갈등은 성격이나 가치관의 차이, 경제력, 역할 분담, 소통의 부재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계의 어려움부터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가져야 할 자세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성찰을 통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아, 그때 그랬던 것이, 다 하느님의 뜻이었구나! 아, 그 모든 것이 나를 성장시키시려는 하느님의 배려였구나!’하는 단순하지만 의미 깊은 영적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127쪽)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6.08

길잡이 책 옆에 끼고 성경 읽기 맛들이다보면 어느새 성경 박사성서 주간 - 성경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해 신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올해는 11월 21일부터 27일까지다. 교회가 성서 주간을 별도로 지정해 성경을 가까이하기를 권하는 것은 성경이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성경이 우리 신앙을 지탱하고, 교회를 유지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성경을 전문 지식이 필요한 어려운 책으로 여기고 있어 안타깝다. 이에 성서 주간을 맞아 신자들이 보다 성경에 친숙할 수 있도록 쉽게 안내해주는 길라잡이들을 모아보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그리스도교 경전이다. 따라서 성경 내용을 모른다면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구원 섭리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 성령께서 이끄는 교회의 사명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인 삶의 토대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해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둘 수 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마태 16,16)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생명과 은총, 진리 등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으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게 성경의 핵심 내용이다.(요한 1장 참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우신 새로운 계약(신약)과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구약)의 내용을 구분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신앙의 밑거름인 구약을 친히 완성하셨다. 그리스도 교회는 유다교의 거룩한 구약의 책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을 찾았기에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신ㆍ구약 성경을 읽어야 한다.성경을 올바로 읽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경우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계시하시고자 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은 성령을 통해 쓰였으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성경 말씀을 왜곡하지 않으려면 본문 내용을 충실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쓰인 시대와 공간이 지금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 없이 성경을 마음대로 읽고 해석하면 자칫 교회 공동체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초세기부터 오늘날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례 안에서 어떻게 선포할 것인지 그 방법과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익히는 법을 일깨우고 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무엇보다 기도가 따라야 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모든 신자에게 그리스도교 생활을 완성하고 완덕에 이를 수 있도록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성경을 모르면 결코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고, 그레고리오 1세 대교황은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배우라”고 강조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매일 성경을 손에 잡고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수도 생활 교령」 6항) 하며 “자신을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께 기꺼이 응할 수 있어야 한다”(「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33항)고 권고하고 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을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라고 한다.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인격화, 내면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것을 도와주는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가 교회 전통에서 알려준 렉시오 디비나이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들에게 성경을 읽을 때 학문적인 독서 방법보다 마음으로 읽고 맛 들이는 렉시오 디비나 방법을 권장한다. 성경 길라잡이 △주석 성경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프란치스코 교황은 성경을 읽을 때 “시대 언어로 쓰인 주석서나 해설서 등을 참고하며 읽어나감으로써 자신의 삶에 내면화하고 실천하는데 힘써 달라”고 권고했다. 교회는 성경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교회의 성전(聖傳)과 신앙의 유추(類推)를 염두에 두고 성경 전체의 내용과 통일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계시헌장」 12항) 신자들을 위해 이러한 신학적 작업을 집대성한 성경 해설서가 바로 「주석 성경」이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간행한 「주석 성경」은 신ㆍ구약 성경 각 권에 대한 입문과 함께 본문에 대한 각주(脚註) 및 참고 구절을 수록해 성경을 쉽고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주석 성경」은 46배판(188×257㎟) 3868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프랑스어 「공동 번역 성경」(La Traduction Oecumenique de la Bible =TOB)의 주석을 기초로 기존 「성경」에 입문과 각주를 붙인 것이다. 가톨릭은 물론 정교회와 개신교 등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주석 내용이 객관적이고 균형 감각을 갖추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성경 역사 지도 (엔리코 갈비아티ㆍ필리포 세라피니 지음/이성근 옮김/분도출판사)「성경 역사 지도」는 성경에 나온 지역에 관한 상세한 해설을 곁들인 지도책으로 성경 옆에 둬야 할 첫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면 컬러로 성경 지도는 물론 성경 등장인물 이동 경로, 풍부한 자료 사진 등이 수록돼 성경의 역사와 문명, 생활상을 한눈에 꿰뚫어볼 수 있는 문화서이다. 문명 기원인 메소포타미아 약사를 시작으로 고대 이집트, 아브라함의 첫 번째 이주, 열두 지파에 분배된 약속의 땅, 페르시아 제국, 헤로데 대왕의 통치, 예수 일대기, 유다 전쟁 등을 거쳐 헬레니즘ㆍ로마 시대까지 다루고 있다. 성경 역사와 그 배경을 아우르며 지도와 사진, 그림, 도표로 성경을 입체적으로 재현했다.△교부들의 성경 주해 (한국교부학연구회 옮김/분도출판사) 「교부들의 성경 주해」는 신ㆍ구약 성경 전권에 대한 교부들의 사상과 신앙을 그 정수만 뽑아 우리말로 옮겨 엮은 29권의 총서다. 성경 속에 흐르는 고대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핵심 사상을 접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 D.C. 드루대학교가 주관해 펴낸 「교부들의 성경 주해」 총서를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은 교부들이 성경 본문에 대해 직접 주해한 내용뿐 아니라 시ㆍ수필ㆍ편지ㆍ설교ㆍ논문 등을 통해서 해설하고 묵상한 내용도 뽑아서 장, 절별로 정리했다. △신ㆍ구약 종주(안소근 수녀 지음 / 성서와함께)성서학 박사 안소근(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가 쓴 성경 안내서. 「구약 종주」는 구약 시대의 역사적 배경부터 오경과 역사서, 예언서 등 구약 전반에 걸친 배경을 알기 쉽게 엮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은 식물을 먼저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셨다고 나오지만, 2장은 반대다. 또 역사적으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후손의 수는 60만 명이 아니었고, 예리코를 함락시킨 것은 여호수아 시대의 일이 아니었지만, 성경은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정확하지 않은 성경 내용은 그러면 거짓일까? 이러한 의문에 안 수녀는 구약성경을 관통하는 세계관인 ‘창조의 신성’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성경은 내용에 등장하는 정확한 숫자와 규모 아래에 깔린 원의(原意)를 이해해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구약 종주」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지도 삼아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여정이라면, 「신약 종주」는 그 하느님의 얼굴인 예수님과 함께 걷는 여정이다. 신약 성경의 형성 과정과 역사 배경을 소개하고, 복음서 저자와 사도들, 첫 교회 공동체들의 증언을 담았다.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허규 신부/ 성서와함께)요한 묵시록은 많은 이들에게 ‘읽기 난해한 성경’으로 오해받고 있다. ‘묵시문학’에 속하는 요한 묵시록은 환시를 이용해 초월적 세상과 현실을 구분하고, 종말과 심판이나 전쟁의 이미지를 많이 쓴다.허규(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부의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는 요한 묵시록의 배경과 본문 해석, 풀이를 망라한 길잡이다. 요한 묵시록이 예언서냐 아니냐를 두고 가질 수 있는 의문, 종말과 심판이란 강력한 주제를 잘못 받아들여 왜곡해 해석하는 경우, 저술 시기 등과 관련해 꼼꼼히 풀이해 답해준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신앙을 지킨다면 하느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뤄지리라는 위로와 희망의 가르침이 요한 묵시록의 내용이라고 강조한다. cpbc2021.11.16

망했다고 생각한 인생, 기적을 울리며 살다 기적이 찾아왔다[타인의 삶] (18) 홍인기 비오 철도기관사 홍인기 철도기관사가 자신이 타고 온 화물열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릴 적 변치 않던 사제의 꿈 수능 망치고 인생 끝났다 좌절 망가지고 탈선했다 다시 주님 곁으로 “결혼하고 세 아이 낳아… 신기할 뿐 그 분 계획 안에 제가 있다고 생각” 20년째 하느님과 함께 선로 위 달린다 말씀 없는 아버지와 2년간 같이 근무 기차 주제로 대화 많이 하게 돼 정차역 통과하는 악몽 부자가 같이 꿔 “하느님 아버지 꿈 따라 사는 아들될 것” 어릴 때 그는 주님만 따르려 했다. 사제가 돼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와 술잔에 주(酒)님을 따르고 있다. 복음은 아니지만 전하는 것도 있다. 바로 세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다. 그리고 그의 주 활동 무대는 성당이 아닌 기차 기관실이 됐다. 기차를 운전하며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전하고 있는 홍인기(비오, 대전교구 세종성프란치스코본당) 철도기관사의 이야기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홍인기 철도기관사를 만났다. 조용하지만 소란스러운 만남 목소리가 선한 사람이 있다. 선한 목소리를 들으면, 선한 얼굴이 그려진다. 홍 기관사가 그랬다. 그를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 대전역으로 갔다. 도착 시간에 즈음해 승강장을 서성였다. 그때 멀리서 우렁찬 기적 소리와 함께 열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소리처럼 선한 눈매에 입가에 미소를 띠고 그가 기차에서 내렸다. 기자에게 인사하는 그에게 “빨리 사진부터 찍자”고 했다. 1분 남짓한 기관사 교대 시간에 맞춰, 그가 타고 온 열차를 배경으로 신속히(?) 촬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내린 기차의 출발 신호가 떨어졌는데도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고맙게도 교대 기관사는 출발 신호에도 기자를 기꺼이 기다려줬고, 덕분에 홍 기관사와 기차를 사진에 담았다. 기차를 떠나보내고 이제 정말 그를 만났다. 주님의 다시 부르심 홍 기관사의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단 한순간도 사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모태 신앙을 이어받은 그는 고교 3학년 때까지 미사 한 번 빠진 적 없고, 본당의 여러 일을 도맡아 봉사했다. 주변 사람들도 그를 ‘학사님’, ‘예비 신부님’이라 불렀다. 당연히 사제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국영수를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봐요. 그해 수능시험을 너무 망쳤어요. 그래서 주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죠. 저를 버리셨다고요.” 그는 울면서 사제관을 뛰쳐나와 도망치듯 성당을 떠났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했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 같았고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때부터 탈선했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가서 살기도 했고, 어두운(?) 곳에서 험한 일을 하며 살기도 했다.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에 그는 망가졌다. 그만큼 충격이 컸던 탓이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결국 그를 지치고 힘들게 했고 기댈 곳은 신앙뿐이었다. “힘드니까 기도하게 되고 성당을 찾게 되더라고요. 결국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성당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생활성서사에 글도 쓰고, 지금은 가톨릭평화신문 인터뷰도 하고 있잖아요? 망했다고 생각한 인생이 이렇게까지 돼가는 과정이 신기할 뿐입니다. 제가 사는 게 아니라 그분 계획 안에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성경 대신 운전대를 잡다 “먹고 살려고요.(웃음)” 그의 답변은 장애물 없는 선로 위를 질주하는 기차인 양 거침없고 솔직했다. ‘왜 철도기관사가 됐느냐’는 물음에 적어도 ‘철도기관사가 꿈이었다’, ‘철도기관사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등의 답변은 아니었다. 대학교 3학년 때 대전에 지하철이 생긴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학원들이 생겨났다. 학원에 다니면서 시험을 준비하던 중 아버지로부터 철도기관사 시험에 대해 들었다. 과목도 크게 다르지 않아 그는 인생 선로를 변경했다. “철도기관사인 아버지가 힘써줬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철도기관사가 할 수 있는 건 운전 말고는 없어요. 철도기관사는 표를 쉽게 구하는 줄 알고 주변에서 종종 부탁하시는데, 그때마다 저도 직접 표를 사서 드립니다.(웃음)” 그의 말대로 생계를 위해 철도기관사가 됐고, 현재 육중한 화물열차와 무궁화호·새마을호를 운전한다. 기차 이야기를 할 때 반짝이는 눈과 커지는 목소리에서 남다른 자부심이 느껴졌다. 철도기관사로 그가 지나온 20년 춥지도 않은 기관실에서 벌벌 떨었다. 손에서는 계속 땀이 났다. 연신 십자성호만 그었다. 부기관사로 9년간 근무하다 10년 만에 기관사가 된 그가 처음 혼자 운전하던 날이었다. “새벽인 데다 눈은 오고 전기 관련 오류도 자주 생기고 최악의 조건이었어요.” 기차를 운전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차역을 지나쳐 기차를 쫓아와 탄 승객에게 사과한 일, 특히 기차 뒤쪽 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은 이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은 일이 그랬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는 자신이 운전하던 기차에 누군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한동안 아픈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하면서 기쁨은 더 컸다. 아이들이 기차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던 일, 정차했을 때 창문을 열어 아이들과 사진을 찍으며 함께 웃었던 일이 그랬다. “가장 좋았던 건 아버지랑 2년간 같이 근무한 거예요. 정말 말씀이 없으신데 일하면서 대화라는 걸 처음 해봤죠. 그 후로 지금까지 아버지와 많이 대화해요. ‘기차’를 주제로요.” 처음 벌벌 떨면서 십자성호를 그으며 운전대를 잡았던 초보 기관사는 어느덧 20년 차 베테랑 기관사가 됐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때면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만끽하고 마주 오는 열차에 손을 흔들며 기관사로서 기쁘게 살고 있다. 지금도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기도다. ‘주님, 오늘도 제가 운전하는 기차가 무사히 당도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십시오.’ 홍인기 철도기관사 기차, 삶의 일부가 되다 “어느 날 대전역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렸는데 고교 3학년 시절 본당 주임 신부님을 우연히 만났어요. 울면서 도망치고 나서 신부님을 처음 만난 거였는데, 마침 정복까지 입고 한껏 꾸민 날이었거든요. 그날 신부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인기, 너 성공했구나!’ 그 말씀에 많은 게 담겨 있는 것 같아 뭉클했죠.” 철도기관사로 살아온 20년, 기차는 그의 삶이 됐다. 그는 “참 다행”이라고 했다. 기차가 주는 매력의 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게 다가온단다.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싣고 달리는 일이라 더 그렇다. 창문 밖 시시때때로 변하는 풍경을 보는 때가 많은데, “특히 벚꽃이 만개하거나 함박눈 내리는 날엔 마치 매달 바뀌는 달력의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했다. “선로에 수북이 쌓인 눈 위를 처음 지나갈 때는 마치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이었죠. 기차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입니다. 이젠 제가 매력적일 일만 남았어요.(웃음)” 그는 20년째 하느님과 함께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기적을 울리며 살다 보니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기차를 운전하며 살았지만 기차가 오히려 저를 달리게 해준 것 같아요. 아버지가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은 속도를 올리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빨리 가려고 속도를 높이면 제동을 해야 하고, 그러면 멈추게 되기에 더 늦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속도 조절을 하는 게 오히려 더 빠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천히 가되 제대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앞으로도 그렇게 가보려고요. 은퇴하신 지 15년 넘은 아버지가 아직도 정차역을 통과하는 꿈을 꾸신대요. 악몽은 은퇴가 없나 봐요. 하하. 그런데 저도 가끔 그런 악몽을 꾸거든요. 제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봐요. 이젠 아버지와 꿈마저 똑같이 꾸고 살아요. 신앙도 하느님 아버지께서 꾸시는 꿈을 따라 사는 아들이 되려고요.”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도재진2024.04.17

바로크 원전 악기와 성악의 조화, 이탈리아를 들려주다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소속 ‘콘체르토 안티코’, 9월 1일 성남아트센터서 정기연주회 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소속 콘체르토 안티코 단원들이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다. 콘체르토 안티코의 제3회 정기연주회 ‘바로크, 이탈리아를 말하다’가 9월 1일 오후 7시 30분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소속 콘체르토 안티코는 2019년 창단 이래 성음악(Musica Sacra)에 중점을 두고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폭넓게 연구하는 단체다. 사람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로 여겨지던 중세 시대를 지나 콘체르토(협주곡) 형식이 처음 발달하기 시작한 16세기에는 지금과 달리 성악과 기악이 함께 연주되었다. 콘체르토 안티코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에 따라 성악과 기악의 음악적 조화를 추구하며, 당대의 음악을 가장 가깝게 표현하기 위해 거트현과 바로크 시대의 활을 사용하는 등 이른바 원전악기를 연주한다. 9월 1일 정기연주회 포스터. “원전악기는 활의 모양이 지금의 악기처럼 구부러진 형태가 아니라 일자예요. 또 소나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현을 사용해서 더욱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죠. 이번 공연에서는 바로크 바이올린·비올라·첼로, 비올로네, 하프시코드 등 바로크 시대의 다양한 악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체르토 안티코 오선주(루치아) 대표는 바로크 음악의 뿌리도 여느 음악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라고 말한다. “바로크의 과장성, 무한한 형식의 풍요로움, 상상력과 기발함이 이탈리아인의 기질과 딱 들어맞아요. 협주곡과 오페라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은 넘칠 듯한 감각적인 즐거움과 상상력으로 장대하고 화려하죠. 현악기의 울림도 압도적이고요.” ‘바로크, 이탈리아를 말하다’를 주제로 마련되는 이번 공연에서는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화려한 기교를 엿볼 수 있는 곡들이 연주된다. 카자티(Maurizio Cazzati)의 ‘두 대의 바이올린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파사칼리아’, 팔코니에리(Andrea falconieri)의 ‘두 대의 바이올린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샤코나’, 비발디(Antonio Vivaldi)의 ‘소프라노와 현을 위한 모테트 작품 626, 진노, 당연한 노여움 속에’ 등이다. “바로크 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교회 음악인데, 비발디 음악의 대다수도 성경 말씀에서 시작됐어요. 이번 무대에서는 시편을 바탕으로 작곡된 비발디의 ‘모테트’ 중 소프라노 독창곡도 연주합니다.” 공연에는 바로크 바이올린에 한아영, 박지연, 바로크 첼로에 배기정(체칠리아), 비올로네 이윤숙(율리아나), 하프시코드 김재연(가타리나), 리코더 허영진(바틸다), 소프라노 양민경 등 12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오른다. 수원교구 복음화국이 주최하고 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콘체르토 안티코, 영음예술기획이 주관하는 이번 공연은 전석 무료다. 티켓은 구글폼(https://forms.gle/4gHWQnFX86iBrrEx5)을 통해 예매할 수 있고, 현장 발권도 가능하다. 문의 02-581-5404, 영음예술기획 한편 콘체르토 안티코는 10월 20~21일 성음악 축제인 ‘무지카 사크라 페스티벌’도 서울 원효로 예수성심성당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8.10

가실성당 창고 속 빛바랜 성물, 꺼내보니 빛나는 보물이었네 100년 역사 대구대교구 가실성당이 간직해온 신앙 유산“고물이 보물이 된다.” 영화 ‘밀수’에 나오는 대사다. 처음부터 값지고 귀한 건 있지만, 보물인 건 없다. 보물은 긴 시간의 흐름 안에서 쓰임새대로 사람들의 손길과 그에 쏟는 정성으로 다듬어진다. 오늘 소개하는 대구대교구 가실본당이 소장해온 보물들도 그렇다. 낡고 쓸모없어 버려져도 아쉽지 않을 만큼 하찮아 보이지만 사제들과 이름 모를 교우들의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는 귀한 보물이다. 가실본당이 올해 성전 봉헌 100주년을 맞아 고물 창고를 열어 보물 전시장을 꾸민다. 바로 ‘가실성당 역사 전시실’이다. 가실성당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교회 건축물이다. 이에 근대 건축사와 교회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례를 거행하는 성당과 구 사제관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교회사적으로도 중요한 전례 도구와 제의, 성 미술품 등을 소장하고 있지만 그간 제대로 된 전시 공간의 부재로 소장품들이 방치되고 빛을 발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곧 세상에 드러낼 가실성당의 보물들을 지상에서 먼저 소개한다. 가실성당은 낙동강 옛 나루터 야트막한 동산 위에 서 있다. 동산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약속하신 ‘행복’의 상징(창세 2,4─3,24 참조)이다. 또 동산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 전 마지막으로 기도하셨던 곳(마르 14,32-42)이며 부활하신 장소(마르 16,1-8)이다. ‘아름다운 집’이라는 이름처럼 가실(佳室)성당은 회복과 치유의 장소, 구원의 완성으로 이어주는 터 위에 지어진 하느님과 그분을 따르는 이들의 거룩한 집이다. 가실본당은 1895년 설립됐다. 1912년부터 31년간 본당 주임으로 사목한 파리외방전교회 빅토르 투르뇌(Victor Tourneux, 한국명 여동선) 신부가 명동대성당 내부 공사를 마무리한 빅토르 루이스 프와넬(Victor Louis Poisnel, 한국명 박도행) 신부에게 설계를 맡겨 1924년 9월 신고딕-로마네스크풍의 성당을 봉헌했다. 주일 교황대사 마리오 지아르디니(Mario Giardini) 대주교가 봉헌식을 주례해 한국 교회에서 교황대사가 축성한 첫 성당이 됐다. 초대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는 가실성당을 “피정 성당”이라고 불렀다. 이후 1999년 주임으로 부임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바르톨로메오 헨네켄(Henneken, 한국명 현익현) 신부는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가실성당을 새롭게 꾸몄다. 그는 먼저 일제 강점기 때 빼앗긴 ‘가실’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바로잡았다. 일제는 가실성당이 있는 칠곡 노곡면 지역을 낙동강과 금무산의 이름을 따서 ‘낙산’(洛山)으로 바꿔버렸다. 2005년까지 일제의 잔재인 이 이름(낙산성당)으로 불리다가 현 신부가 이를 청산했다. 현 신부는 성당 이름뿐 아니라 100년 된 하느님의 동산을 깔끔하게 손질했다. 간결한 제대와 깨끗한 회벽으로 성당 내부를 어머니 품같이 포근하게 꾸몄다. 그리고 현 주임인 박진형 신부가 올해 9월 성당 봉헌 100주년을 맞아 그 세월 동안 거룩한 공간을 채웠던 신앙의 유산들을 위한 제대로 된 전시실을 꾸미고 있다. 거룩한 공간 거룩한 공간인 성당의 중심은 ‘제대’다. 제대는 인간을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제대 뒤편에 설치된 가실의 칠보 감실은 에기노 바이에르트(Egino Weinert)의 작품이다. 칠보 감실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루카 24,13-35)을 형상화했다. 감실을 감싸고 있는 성화는 하느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간 먹이신 ‘만나’(탈출 16,1-36)를 표현한 것으로 구원의 신비가 성체성사를 통해 정점을 이루고 있음을 고백한다. 회중석 좌우 벽면에는 성상과 십자가의 길 14처가 설치돼 있다. 가실에는 성당 봉헌식 때 프랑스에서 가져와 설치한 ‘성 안나상’이 남아있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에서 가실성당을 야전병원으로 사용했던 인민군들이 안나상의 심장 부위에 총을 쏴 구멍을 냈다. 전쟁 후 총탄의 흔적을 메워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어린 성모님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는 안나 성상은 성당에 들어선 모든 이에게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성을 느끼게 한다. ‘십자가의 길 14처’도 성당 봉헌 당시 중국에서 가져왔다. 나무틀 속 성화는 도유화가 손숙희(라우렌시아)씨의 작품으로 교체됐다. 옛 감실 칠보 감실 성 안나상 전례서와 오르간 가실성당은 오늘날처럼 사제와 회중이 마주하고 응답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전례 방식을 남한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곳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전에는 사제가 회중을 등지고 제대에서 혼자 라틴말 경문을 읽고 교우들은 그동안 큰 소리로 묵주 기도를 바치는 것이 미사의 풍경이었다. 1952년 북한의 덕원 수도원과 만주 연길 수도원에서 피난 온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가실에 정착해 6년간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했다. 이른바 ‘대화 미사’를 시도하고 있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전통 미사 관행을 깨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10년 전부터 교우들과 함께 회중 전체가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는 장을 펼친 곳이 바로 가실성당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사용했던 라틴어 기도문과 제대 촛대 그리고 오르간. 촛대 라틴어 기도문 오르간 전례복 사제의 전례복 중 ‘제의’는 ‘예수님의 멍에’를 상징한다. 이 멍에는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래서 사제는 제의를 입기 전에 항상 “주님, 주님께서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하셨으니 제가 주님의 은총을 입어 이 짐을 잘 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제의 앞뒤 양면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데, 이 십자가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성덕,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을 표현한다. 그래서 제의를 ‘사랑과 온유, 순결의 옷’이라고도 부른다. 제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서광호 신부가 가실본당이 간직했던 옛 전례복을 갖추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모습을 재현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제의는 앞면보다 뒷면이 훨씬 화려하다. 회중들이 사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사를 봉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볼 수 없는 손영대(手帶)가 눈에 띈다. 성반과 성작 성반과 성작은 하느님을 담는 그릇이다. 아울러 고요와 빛에 잠긴 세상 만물을 모두 담아 하느님께 바치는 거룩한 그릇이다. 이 그릇들에 담긴 거룩한 제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오! 조촐하고 거룩한 신비여, 금빛 못에 신성한 방울방울을 받아 순전한 불이며 순전한 사랑이 저 풍요하고 감미로운 피의 헤아릴 수 없는 신비를 고이 담은 그릇이여.”(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성작 예찬) 가실성당의 성반과 성작은 장식 없이 단순하고 소박해 더 아름답고 화려하다. 성작 성반 성체포와 성작 덮개 성체포는 성작과 성반 밑에 깔려 ‘주님의 수의’ 구실을 한다. 그래서 고운 아마로 제작된다. 흰색 아마는 순결과 고귀함을 상징한다. 순결은 하느님의 은혜다. 참 순결은 처음에 있지 않고 마지막에 있다. 꾸준하고 끈질긴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위아래에서 덮고 있는 성체포와 성작 덮개는 하느님께 대한 굳센 우리의 믿음을 드러낸다. 성작 덮개 성광과 성체 행렬 닫집 ‘강복’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다.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만이 당신 권능으로 복을 내리신다.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모셔 들고 하는 강복은 절정이다. 성체의 신비 앞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에 경건함을 표하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서광호 신부와 교우들이 가실성당 성체 행렬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성체 행렬 재현 신심 서적과 교리교재 고된 일이나 먼 길 끝에 고마운 마음으로 앉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신심 서적은 고된 일상에서 한숨 돌리게 하는 ‘쉼’이다. 이 쉼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귀향의 체험이다. 가실성당에는 100년 세월 동안 손때 묻고 믿음을 굳건하게 하도록 정성스레 펼쳐졌던 많은 신심 서적과 교리교재가 있다. 특히 독일에서 가져온 성경 주제 그림과 슬라이드 교재는 복음을 선포하는 데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증거한다. 슬라이드 교재 신심서적 일상의 흔적 함께 먹는 것은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지는 일치의 실행이다. 특히 미사 성찬은 모든 이를 하느님과 합일시킨다. 따라서 함께 먹고 나누는 것만으로도 미사일뿐 아니라 일상의 식사도 축제다. 가실성당의 보물 중 눈에 띄는 것은 미사주를 만드는 데 사용했던 포도 압착기와 간이 오븐, 그리고 커피 그라인더다. 소박한 일상의 도구들이 그 주인의 품위를 드러낸다. 간이 오븐 포도 압축기 주임 박진형(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신부의 청원 “가실본당은 1895년 설립된 ‘아름다운 집’(佳室)이라는 마을 이름은 딴 본당 사목구입니다. 올해 9월 성당 봉헌 100주년이 됩니다. 이렇게 역사가 깊다 보니 성당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이 유물들은 본당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구 사제관 한쪽에 방치돼 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혹시 유물들이 손상되지 않을까 오랜 고민 끝에 성당 봉헌 100주년을 맞아 현재 사제관 옆 강당에 전시실을 마련해 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분이 유물을 관람하시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당은 규모가 작고 신자 수가 적다 보니 많은 이의 도움이 필요로 합니다. ‘가실성당 역사 전시실’ 마련에 도움을 주신 은인들을 위해 한 해 동안 매월 첫째 주 금요일에 미사를 봉헌하고 정성을 기억하겠습니다.” 후원 : 농협 351-1324-9862-03 예금주 :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글·사진=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5.28

“너는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쳐 본 적이 있느냐?”[월간 꿈 CUM] 삶의 길 (4) 하루는 마귀들이 함께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마귀들이 예수님을 찾아간 이유는 예수님께 항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간 마귀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다음과 같이 따졌습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은 다 용서해 주시면서 왜 우리들의 잘못은 단 한 번도 용서해 주시지 않는 겁니까?” 사실 마귀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항의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많은 죄인의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용서를 통해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 손가락질 받았던 세리 마태오, 간음하다가 들킨 여인과 창녀들, 그리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배신했던 사도 베드로, 심지어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했던 사도 바오로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는 많은 죄인을 용서해 주셨고, 그래서 그 죄인들은 참된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마귀들은 예수님께 늘 찬밥 대우만 받았습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듣지 못했고, 그래서 용서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꾸지람을 듣고 쫓겨나기가 일쑤였습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의 용서와 그 용서를 통해서 얻게 되는 마음의 참된 평화를 조금도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귀들은 화가 나고 서러운 마음에 다 함께 모여서 예수님을 찾아가 항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의 항의를 들으시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언제 너희들이 단 한 번이라도 너희의 잘못을 뉘우치고 진정으로 나에게 용서를 청해 본 적이 있었느냐?” 이 물음 앞에 마귀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떠나갔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매 순간 마귀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아무리 인간 능력을 넘어서는 초인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인간을 억지로 죄에 떨어트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죄악으로 유혹할 수는 있어도 그러한 유혹을 거부하는 사람을 강제로 범죄하도록 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에는 무엇보다도 의지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러한 행위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현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새가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새가 우리 머리 위에 집을 짓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유혹이 닥쳐오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유혹에 빠지느냐 빠지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더군다나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는 데 있습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기만 똑똑하다고 생각하기에 세상은 온갖 불신과 독선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만 잘났기에 세상은 분열과 싸움과 죄악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언제 너는 단 한 번이라도 너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쳐 본 적이 있느냐?” “언제 너는 단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나에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를 청해 본 적이 있느냐?” 우리는 어떠한 마귀의 유혹이 닥쳐오더라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러한 유혹을 단호히 끊어버려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글 _ 이창영 신부 (대구대교구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 월간 꿈CUM 고문)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을 지냈다. cpbc2023.10.16

비슷해요, 작은 일에도 잘 웃고 잘 울고…수녀가 본 뮤지컬 ‘시스터 액트’ 뮤지컬 ‘시스터 액트’ 포스터.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달라요, 베일 밖 머리카락 나오면 안 돼요 뮤지컬 ‘시스터 액트’가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개막했다. 1992년 큰 인기를 얻었던 동명의 영화를 무대화한 ‘시스터 액트’는 범죄 현장을 목격한 뒤 쫓기는 신세가 된 삼류 가수 들로리스가 수녀원에 숨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엄격한 수도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던 들로리스는 성가대 지휘봉이 맡겨지자 저마다의 재능을 극대화한 파격적인 무대로 바꿔 놓는다. 성가대 공연은 교황까지 방문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지만, 동시에 들로리스의 위장도 들통 난다.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지만, 뮤지컬은 드물다. 게다가 실제 수녀원의 생활이 궁금할 수도 있는 만큼 입회하지 않았다면 ‘공연 덕후’가 됐을 한 수도자와 함께 관람해 보았다. 수녀 : 음악이 정말 좋네요. 무대 위 수녀님들의 공연에 저도 나가서 춤출 뻔했어요. 기자 : 아니나 다를까, 애니메이션 ‘인어 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에서 음악을 맡은 알란 멘켄이 작곡했더라고요. 그런데 수녀님들도 그렇게 노래하고 춤추기도 하나요? 공연에서는 재즈, R&B 풍으로도 성가를 부르잖아요. 수녀 : 형식은 크게 제약받지 않아요. 어린이,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춤을 일부러 배우기도 하고요. 물론 모든 건 선교나 찬양, 감사가 그 목적이죠. 기자 : 수녀원 방문했을 때 보니까 수녀님들 리액션이 정말 좋더라고요. 신기하게 공연 속 수녀들도 별로 안 웃긴데 까르르 웃고, 작은 감동에도 훌쩍이던데요? 수녀 : 맞아요, 저희끼리 박장대소했던 걸 밖에서 얘기하면 아무도 안 웃어요.(웃음) 뮤지컬에서 다음 날 공연 때문에 잠 못 이루며 침실에 모여 설레잖아요. 그런 모습은 참 비슷해요. 기자 : 그럼 다른 점은 어떤 거예요? 수녀 : 일단 고행을 위해 편태, 스스로를 때린다는 표현이 가사에 언급됐는데, 십자가상 예수님과 고통을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했지만, 중세 때만 있었어요. 예비 수녀인 메리가 베일 밖으로 앞머리를 내렸는데, 안 됩니다. 가끔 수녀원에 피정 온 자매들도 물어봐요. 식사 도중에 잘못해서 보속의 의미로 음식을 빼앗기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경우도 없고요.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서 들로리스의 지휘로 흥겹게 찬양하는 성가대.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기자 : 아무래도 공연이니까 재미나 설정 차원이겠죠. 그런데 잘 때도 베일을 쓰나요? 수녀 : 아니요, 수녀들 머리카락도 잘 땐 숨을 쉬어야죠.(웃음) 기자 : 가톨릭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바울, 프란시스 등 개신교 표현이 많아서 완성도 면에서 부족한 점도 보이더라고요. 수녀 : 네, 가톨릭 자문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옥에 티였어요. 교황 바오로 6세라고 하고, 화면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사진이 나오더라고요. 기자 : 작품의 배경인 1970년대 후반보다 교회 밖은 훨씬 즐길 거리가 많아졌잖아요. 들로리스처럼 수도원 안에서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수녀 : 답답함은 화려한 바깥에 있느냐, 수녀원 담장 안에 있느냐의 문제가 아닌 듯해요. 수녀원 안에서 단순한 게임에도 깔깔깔 웃는 수도자들이 있고, 거리에서 원하는 대로 즐겨도 답답하고 힘든 사람이 있는 거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왜 여전히 지켜야 하는지’ 식별하기보다 ‘그냥 지금까지 해 왔으니까’라고 강요할 때 답답하긴 해요. 운동을 좋아하는데, 검도나 수영을 못하는 것도 아쉽고요. 기자 : 그보다 훨씬 큰 기쁨이 있기 때문에 수도생활을 하시는 거겠죠? 이 작품의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할 것 같습니다. 수녀 :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뮤지컬을 보고 생각났던 성경 구절이에요. 뮤지컬처럼 사람은 관계를 통해 사랑받고 깨지기도 하면서 참다운 자신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들로리스 때문에 정돈된 수도 생활에 균열이 생겼다며 괴로워하는 원장 수녀님에게도 그 혼돈 사이로 빛이 비쳐오겠구나 싶었고요. 하느님은 때로 불편함 안에서 일을 하시니까요. 그리고 수녀님들의 공연을 보고 성당 건물을 사려던 사람이 그 돈을 기부하는 장면에서 결국 가장 좋은 선교는 ‘기쁘게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각각의 인물이 되어 내 안의 다양한 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까요! EMK뮤지컬컴퍼니가 국내외 창작진, 배우들과 함께하는 ‘시스터 액트’는 내년 2월 11일까지 서울에서 공연한 뒤 국내 15개 도시를 투어할 예정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1.27

세례 성사, 천주교와 개신교 일치의 표지[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13)세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한 아이가 유아세례를 받고 있다. 사진=OSV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는 같은 믿음을 가졌나요? 우리나라에는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가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는 성경에서 알려준 대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내어 주시며 동시에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풍요한 빛을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응답”(「가톨릭 교회 교리서」, 26항)을 하는 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둘 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섭리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고 이천 년 전 역사 속의 한 인물이었던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인류의 구원자로 고백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 2항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이 계시로써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시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신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격적인 분으로서 구약의 선조들, 곧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 성조들로부터 시작하여. 모세를 통하여 약속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어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고, 그들의 우상 숭배와 죄악에 대한 심판과 용서를 통하여 인류의 창조 역사를 완성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구약의 선조들이 볼 수 없었던 하느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요한 14,9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시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를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구약의 유다인들에게 약속된 하느님의 구원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인류의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원조의 죄로 닫힌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기에 그분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는 같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교회를 통하여 선포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품고 부활과 영생의 희망 속에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세례는 같은 세례인가요? 세례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하는 신앙의 표지입니다. 천주교든 개신교든 세례성사는 집전자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 지원자를 물로 씻는 동일한 예절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세례야말로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가 같은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고 있음을 밝혀 주는 중요한 일치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공로로 죄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은을 세례의 표지로 얻습니다. 또한 세례는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 자신도 우리 죄인과 연대하시기 위하여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기에(마태 3,13-17 참조), 세례는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가 인정하는 성사입니다. 천주교는 누구든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를 찾아오면 예비 신자로 받아들이고 신앙생활로 안내합니다. 예비 신자가 일정 기간 교리 교육 기간을 거쳐 세례를 받고 세례명을 얻으면 정식으로 가톨릭 교회에 입교하게 되고, 교회 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섬김의 직무에 동참하는 ‘왕직’(봉사직)과 복음을 선포하고 진리를 따라 사는 ‘예언자직’, 그리고 십자가 희생 제사에 자신을 봉헌하는 거룩한 삶과 성사 생활을 통하여 ‘사제직’을 실천하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합니다. 대부분의 개신교는 누구든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를 찾아오면 예배와 교회 생활로 안내하고 공동체와 친교를 나누며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세례를 받은 다음 세례를 준 교단의 신자로 등록됩니다. 이때 성공회와 정교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에서는 세례명을 쓰지 않습니다. 일부 개신교 교단은 믿음만을 강조하면서 세례를 표징에 불과한 것으로 규정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구세군의 경우에는 물로 씻는 세례 대신에 병사 서약식을 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3.06.15

반항과 갈등의 시간 거쳐 다져지는 신앙[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23)자유의 교육학 (3)한계 지어진 자유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는 한계 지어진 자유이기도 하다. 나 말고 다른 자유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유는 크게 제약받는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인간은 살면서 자기의 자유를 제약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만난다. 인간의 타고난 조건이 원래부터 그렇기에, 한 인간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는 자유의 한계를 얼마나 수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때, 아이가 인격적으로 올바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혹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어우러져 살면서, 아이는 모든 것을 자기 멋대로 해서는 안 되고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배우며 성장하게 된다. 성경은 이 진리를 원조들의 타락 이야기를 통해 전해준다.(창세 2,4-3,24 참조)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셨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도 그어 주셨다. 곧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것이 인간의 타고난 조건이며, 인간 자유의 타고난 한계성이다. 그것을 잊는 순간 파멸에 이를 것이며, 그것을 잊지 않고 지킬 때 진정한 인간다운 자유를 누릴 것이다. 이는 인간의 자유가 양육과 돌봄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삶이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부모로부터, 그리고 다양한 환경에서 대인관계를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이다.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 세례성사를 통해 죄와 악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존재로 새로 태어나지만, 그 자유란 아직 여려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꺼지기 쉽다. 자기 삶을 스스로 영위하기 위해 긴 양육과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듯, 부모의(교회의) 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스스로 신앙을 살기까지 보호와 돌봄이 필요하며, 긴 단련의 시간이 요구된다. 이는 자녀의 신앙교육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어느 날 자녀가 신앙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할 때, 그것을 자유의 문제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자녀가 자신이 받은 유아세례에 불만을 터뜨리며 왜 자신을 천주교 신자로 만들어서 종교의 자유를 빼앗았느냐고 따질 때, 이제 성당에 나가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을 때, 먼저 이러한 태도가 자연스러운 것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기의 사춘기가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꼭 필요하듯, 아이가 신앙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반항과 갈등의 시간을 당연히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자유가 한계 지어져 있음을 서로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기 삶을 살기 위해 20년을(혹은 그 이상을!) 준비하는 것처럼, 신앙의 이치와 그 안에 담긴 뜻을 깨닫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억지로 할 수는 없으며, 자녀가 스스로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은 자녀가 수긍하지 않더라도, 하느님과 교회에 신뢰를 두고 인내심을 갖고 서로 대화하고 신뢰하며 계속해서 길을 걷다 보면, 어느덧 신앙의 사춘기를 딛고 조금씩 성장하며 자기 스스로 신앙을 선택하는 자녀를 발견할 때가 올 것이다. 그렇다고 거름을 주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자녀의 신앙과 자유가 성장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거름은 바로 신뢰를 쌓는 일이다.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부모님과 자기 자신을 향한 신뢰를 쌓도록 이끌어 주는 것은, 성령께서 자녀의 신앙 여정 안에 활동하시는 데 가장 중요한 협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 cpbc2023.10.27

최고의 순교 – 스테파노[월간 꿈 CUM] 예수, 그 이후 (3) 오스트리아 빈(Wien)의 랜드마크인 슈테판 대성당.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최초 순교자 성 스테파노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중국 금(金)나라의 동해원(董解元)이 지은 「서상」(西廂)에 이런 구절이 있다.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眞所謂佳期難得, 好事多磨) 그렇다. 성난 파도가 훌륭한 뱃사람을 만든다. 잔잔한 바다만 경험해서는 절대로 1급 항해사가 될 수 없다. 쇠망치와 불의 단련을 받고 나서야 명검(名劍)이 탄생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그렇게 굳은 땅에 물이 괸다. 마찬가지로, ‘고난’(수난)이 승화될 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적 도약’(부활) 또한 가능하다. 이것이 ‘고통의 신비’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교회에 그 고통의 신비가 찾아온다. 출발은 환희의 신비였다. 예수 그 이후, 초기 교회는 급속히 성장한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7) 하지만 좋은 일은 많이 일어나도 문제다. 교회는 급격히 늘어난 신자 때문에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직접 관리를 맡았지만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협조자(부제) 7명을 뽑았다. 그들의 이름은 스테파노,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니콜라오스다.(사도 6,5 참조) 여기서 우리는 스테파노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바로 최초의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스테파노는 열정적으로 교회 일에 임했다. 그런 그를 유대 사회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고통의 신비’가 시작된다. 스테파노가 최고 의회에 끌려 왔다. 고발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대 사회를 붕괴시키려 한 죄.’ 하지만 스테파노는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천사처럼 보이는 얼굴(사도 6,15)로 대사제 및 유대교 원로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사도 7,51) “여러분은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사도 7,53) 슈테판 대성당 내부 스테파노의 말은 유대인들에게 일종의 모욕으로 들렸다. 변호사에게 ‘당신은 법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수학 교사에게 수학을 모른다고 하고, 육군 장성에게 소총 사용법을 모른다고 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분노한 유대인들이 달려들어 스테파노를 포박했다. 그리고 성 밖으로 끌고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피가 튀었다. 이때 스테파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기도였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평판이 좋고 지혜와 믿음, 성령이 충만했던 스테파노(사도 6,3-5 참조)는 그렇게 잠들었다. 사도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요한의 형제였던 대 야고보 사도의 머리가 잘렸다.(42년) 끝까지 예루살렘에 남아 교회를 이끌던, 초대 기둥 중 하나(갈라 2,9)였던 알패오의 아들(마태 10,3) 소 야고보 사도도 모세의 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돌에 맞아 죽었다.(62년) 베드로 사도가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것(사도 12,6-19 참조)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밖에도 예수 그 이후, 교회가 유대인들로부터 박해와 차별, 고립을 겪었던 정황은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사도 17,5; 24,5 참조)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겪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1베드 4,14-16)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 신앙인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기반이었던 예루살렘 공동체는 와해 된다. 그럼에도 성령에 충만했던 사도들과 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은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1)라는 약속을 믿고 끊임없이 복음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을 코웃음 치며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사울(훗날의 바오로 사도)이었다. 바리사이파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그는 스테파노와 사도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글 _ 우광호 cpbc2023.11.06

본당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복음화서울 청파동본당 청년 워크숍, 청년 단체 활동 고민 나누고 활성화 논의 서울 청파동본당 청년들이 9월 17일 청년워크숍에서 2024년 본당 청년회 활동 계획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청년 단체 간 소통도, 단체 내부 소통도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청년 수도 적지만, 서로 친하지도 않아요. 청년끼리의 교류부터 활성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9월 17일 서울대교구 청파동본당(주임 박범석 신부). 본당 청년연합회 주최로 본당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워크숍을 개최했다. 지금까지의 본당 청년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짧으면 1년, 멀게는 5년 간의 청년 단체 활동 목표를 정하는 자리였다. 모든 공동체가 겪고 있지만, 청파동본당 청년 단체들 역시 코로나19 이후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차였다. 청년 미사 참석 인원은 수십 명에 그쳤고, 본당 단체에서 활동하는 청년 수는 그 절반가량에 불과한 상황. 그간 본당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청년연합회조차 구성하기 어려웠다. 지난 6월에야 새 청년연합회 임원진이 선출되면서 청년 활동에 새 출발을 알렸다. 그 첫 활동이 바로 이날 워크숍이었다. 본당 청년연합회는 첫 워크숍을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경청하는 장으로 꾸몄다. 청년들이 새로 만들어가는 본당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청년들이 전하는 작은 목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청년 개개인의 목소리에서 출발하는 ‘미니 시노드 모임’ 형식으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상헌(사무엘) 본당 청년연합회장은 “코로나19 이후 청년 개개인은 물론, 단체들 사이에서도 소통의 기회가 거의 없었다”면서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부족했던 점, 서로 간에 필요했던 점을 나누고, 이를 앞으로 활동 목표에 반영하고자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워크숍에 참여한 청년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청년들은 본당 내 청년이 부족해진 근본 원인을 성당 위치 등 접근성 문제, 인근 학교 및 주변 본당과의 교류 부족, 단체 내ㆍ외부 소통 문제 등에서 찾기도 했다. 청년 활동에 참여하는 청년들 스스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한 것 같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청년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SNS를 통한 활동 홍보, 단체 간 교류 모임을 요청하는 의견은 물론, 비대면에 익숙한 또래들을 위해 다수 앞에서 발표하는 형식의 자기소개를 자제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또 청년연합회 활동을 사진·기록 등을 통해 문서로 만들어 훗날 활동할 청년들이 참고 자료로 삼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청년연합회는 이날 제시된 의견들을 종합해 단기ㆍ중기ㆍ장기 계획표를 만들어 공개하기로 했다. 청년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에 만족감을 표했다. 추진욱(시몬)씨는 “본당 청년 활동이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적절한 시점에서 열린 것 같다”면서 “이런 노력에 힘입어 더 많은 사람이 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보현(요안나)씨는 “청년 단체들끼리도 만날 자리가 없었는데, 다른 단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유익했다”고 했다. 본당 주임 박범석 신부는 토론 전 강연에서 ‘스스로의 복음화’를 강조했다. 박 신부는 “성경의 복음 말씀은 결국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그 복음은 나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면서 “본당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자신의 복음화라는 것을 잊지 않고 활동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장현민2023.09.18

마크 샤갈, 거장의 그림에 녹아든 ‘성경’ 이야기샤갈 특별전, 샤갈 앤 더 바이블... 성경 단독 주제로 열린 첫 전시, 4월 10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 샤갈의 ‘예루살렘 통곡의 벽’(1931) “예술과 삶에서 이룰 수 있는 완벽함은 성경에서 나옵니다.” (마크 샤갈)독창적인 소재와 화풍으로 미술사에 발자취를 남긴 화가 마크 샤갈. 샤갈의 회고전이자 샤갈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던 ‘성경’을 주제로 한 ‘샤갈 특별전, 샤갈 앤 더 바이블(Chagall and the Bible)’이 4월 10일까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다. 러시아 유대인 출신인 샤갈은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다채로운 색감과 몽환적인 화풍을 바탕으로 삶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했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이번 전시 주제는 기존 국내에서 여러 차례 진행된 샤갈 전과 달리 그간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성경’이다. 샤갈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강기슭에서의 부활’, ‘푸른 다윗 왕’ 등 유화와 과슈를 포함한 명작 19점과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4m에 육박하는 대형 태피스트리 2점 등 220여 점의 오리지널 작품이 공개된다.전시는 △샤갈의 모티프 △성경의 백다섯 가지 장면 △성경적 메시지 △또 다른 빛의 향하여 등 4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샤갈의 모티프’에서는 1957년경 제작된 샤갈의 석판화 안에서 그가 주로 다뤄온 모티프인 자화상, 고향, 마을, 축제, 동물, 악기, 연인, 성모자, 파리 등의 키워드로 나누어 그들이 상징하는 바를 탐구한다. 여러 모티프 중에서도 샤갈이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모아 선보인다. ‘성경의 백다섯 가지 장면’에서는 샤갈이 처음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남긴 예루살렘의 풍경과 그가 구약성경에서 선별한 105점의 장면들을 에칭으로 만든 ‘성경(The Bible)’ 연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나본다.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하는 모습부터, 예지몽을 꾸고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가족들을 모두 이집트로 데려오는 요셉, 이집트의 핍박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한 모세의 이야기 등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펼쳐진다.‘성경적 메시지’에서는 인간 창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십계명을 받아든 모세, 체구의 열세를 딛고 거인 골리앗을 전략으로 이긴 다윗, 지혜로움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 등 샤갈이 성경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 주로 그려낸 성경적 모티프들을 주제별로 엮었다. 유화, 과슈화, 석판화, 대형 태피스트리까지 작품 매체의 경계를 넘어 한 자리에서 만나본다. 샤갈이 동시대에 겪은 삶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성경을 주제로 그림 속에 담은 부분과 성경 안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 한 부분을 주목할 만하다.마지막 ‘또 다른 빛의 향하여’에서는 샤갈의 문학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샤갈의 삽화와 시를 같이 공개한다. 그 밖에도 샤갈의 메츠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기념하며 ‘모세가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비롯해 샤갈이 제작한 감각적인 포스터들을 선보인다. 아흔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창작욕을 엿볼 수 있는 말년의 작품들도 만나본다. 특히 샤갈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으로 알려진 ‘또 다른 빛을 향하여(1985)’는 생의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샤갈의 열정을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월~금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오후 4시, 오후 6시, 토~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오후 4시에 전시 해설을 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작품을 친숙하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오디오 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오디오 클립 콘텐츠, ‘나만의 샤갈 아틀리에’를 통해 샤갈의 모티프로 구성된 스탬프를 찍으며 각자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문의 : 02-567-8878, 마이아트뮤지엄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cpbc2021.12.29

김대건 신부가 부제품 받은 ...중국 장춘 소팔가자성당에...대형 성 김대건 신부상 세워 이종남 신부가 중국 지린성 창춘 소팔가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 새로 세워진 대형 성 김대건 신부상을 축복하고 있다. 중국나자렛선교회 제공 김대건, 최양업 신학생이 부제품을 받았던 유서 깊은 교우촌 성당인 중국 길림성 장춘 소팔가자(小八家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 대형 성 김대건 신부상이 새로 세워졌다.<사진> 중국 길림교구(교구장 서리 주장우 신부)와 소팔가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본당(주임 바이홍 신부)과 한국 나자렛선교회(회장 정진명)는 9일 성당 경내에서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이자 나자렛선교회 지도 사제인 이종남 신부 주례로 새 성상 축복식을 거행하고, 한중 양국 교회의 우정과 교류가 계속되길 기도했다. 이날 축복식에는 한국 교회에서 이종남 신부와 나궁렬(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 서명석(수원교구 원로사목자) 신부, 이광희(서울대교구) 신부 등 4명과 주장우 신부 등 길림교구 성직자 3명이 함께했다. 새 성상은 가로 1.5m, 세로 1.2m, 높이 4.4m에 이르며, 북경 인근 석산에서 캔 한백옥(漢白玉) 원석을 통으로 깎아 제작했다. 성상은 한복에 갓을 쓴 김대건 신부가 왼손에 성경을 안고, 오른손으로 교우들에게 축복하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조선의 복음화를 꿈꿨던 청년 사제의 강렬한 눈빛과 선교 열정, 의연한 모습을 띤다. 소팔가자성당은 1844년 12월 15일 최양업, 김대건 신학생이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에게서 부제품을 받은 교회 사적지다. 새 성상 건립은 1998년에 건립했던 성 김대건 신부 동상이 세워진 지 25년이 흐르면서 성상이 기울어지고, 성상 일부와 기단이 깨어지고 표석 또한 훼손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2019년 5월 중국인 조각가에 의뢰해 새 성상 제작에 들어가 1년 만에 1억여 원을 들여 제작을 마무리했다. 본래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인 2021년 축복식을 거행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실현하지 못하다가 지난 7월 22일에야 성상 운반작업에 들어갔고, 최근 길림성 당서기와 종교국의 허가를 받아 축복식을 거행하게 됐다. 길림교구장 서리 주장우 신부는 축복식에서 “길림성의 3대 교우촌인 소팔가자, 소가(蘇家), 제가(齊家) 중에서도 신앙의 못자리인 소팔가자에 새롭게 성상이 세워진 것을 계기로 중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하나 되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단 20여 명과 함께한 이종남 신부는 “이곳은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께서 부제품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김대건 부제가 2년 2개월, 최양업 부제가 4년 2개월을 머무르며 조선 입국로 개척을 모색하고 사목했던 유서 깊은 교우촌”이라며 “김대건 성인을 진정으로 만나는 은총을 누리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중국나자렛선교회 제공 cpbc2023.08.14

바오로 사도의 등장 - 역사를 바꾼 290km의 여정[월간 꿈 CUM] 예수, 그 이후 (4) 다마스쿠스에서 탈출하는 바오로 및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나는 바오로.(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 노르만 궁전 팔라티나 소성당 모자이크) 사울은 아직도 스테파노가 죽어가면서 보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스테파노는 죽음 앞에서도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저렇게 사람이 독할 수 있나…. 이런 사람들을 놔뒀다가는 유대교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었다. ‘율법을 수호해야 해!’ 뼛속까지 바리사이파인 사울은 직접 예수를 믿는 이들에 대한 박해에 나서기로 했다. 사울이 보인 것은 살기였다.(사도 9,1 참조) 사울은 대사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신앙인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습니다.”(사도 9,2 참조) 그리고 즉시 행동에 나섰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 8,3)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사울이 그리스도교인 체포를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다마스쿠스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까지 거리는 오늘날 포장 도로 기준 360km, 지름길로 걸어서 갈 경우 약 290km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현지 도로 사정을 감안할 때 5시간 정도 걸리는데, 구글 지도에서 도보 소요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약 60시간(3일) 걸린다고 안내한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후 ‘3일째 되는 날’, 다마스쿠스에 거의 다 왔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였다. 순간 사울이 쓰러졌고, 동시에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사도 9,5-6) 사울은 일어섰을 때,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축해서 인근 마을로 데리고 갔다. 사울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엄청났다. 그는 물을 마시지도,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그때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사울을 찾아와 안수를 하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사울의 시력이 돌아왔다. 이후 사울은 완전히 달라진다. 고려의 승려 지눌(知訥, 1158〜1210)은 “뱀은 물을 마시고 독을 만들고, 소는 같은 물을 마시고 우유를 만든다”(蛇飮水成毒 牛飮水成乳, 사음수성독 우음수성유)고 했다. 아르메니아 속담에도 “뱀이 독을 빨아내는 같은 꽃에서 벌은 꿀을 얻는다”(The bee gets honey from the same flower where the snake sucks her poison)는 말이 있다.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길에서 있었던 ‘성 바오로의 회심’ 사도 성 바오로. 그리스 필리피 리디아 기념성당(카라바조, 1600~1601,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물을 마시고 독을 만들어 내던 바오로가 이제 우유를 만드는 소, 꿀을 얻는 벌이 된다. 살기에 가득차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그가 이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사도 9,20)이라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눈이 보이지 않다가 보게 됐고, 쓰러졌다가 일어섰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정반대의 길을 새로 간다. 그래야할 이유는 없었다. 바리사이파라는 보장된 지위가 있었다.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람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재원이었다.(사도 21,37;22,2 참조) 명예와 부, 안락한 삶도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울은 그 모든 것을 버린다. 사울은 이제 바오로 ‘사도’가 된다. 유대인들은 당황했다.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자들을 짓밟은 자가 아닌가? 또 바로 그런 자들을 결박하여 수석 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사도 9,21) 당혹스러운 감정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유대인들은 배신자 바오로를 없애 버리기로 공모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바오로는 밤에 몰래 성벽에 난 구멍으로 탈출해야 했다.(사도 9,25 참조) 탈출에 성공한 바오로는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을 찾았다. 그러나 사도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한다.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바오로를 변호하고 나선 사람이 바르나바다. 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사도 11,24 참조) 그는 직접 사도들에게 바오로를 소개하고 그동안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그제야 사도들은 바오로를 받아들였다. 바오로의 열정은 선배 사도들 못지않았다. 바르나바는 이후 바오로를 안티오키아로 보내 선교 활동에 나서도록 한다. 그런데 이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문제가 터졌다. 글 _ 우광호 cpbc202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