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주훈 목사 "31번째 일치주간...가톨릭·개신교회, 함께 반성하며 협력해야"](//cpbc.co.kr/CMS/news/2017/01/rc/669133_1.0_titleImage_1.jpg)
[인터뷰] 최주훈 목사 "31번째 일치주간...가톨릭·개신교회, 함께 반성하며 협력해야"* 최주훈 루터중앙교회 목사,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 발언] - 프란치스코 교황, 루터교 창립 행사 참석...노력의 결실 - 한국 개신교 부패 비판, 논의할 수 있어 불행 중 다행 - 가톨릭·개신교, 현실 문제 뼈아프게 반성해야 - 가톨릭·개신교 문제의 원인은 `성직자의 권위주의` [인터뷰 전문] 2017년,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가톨릭교회와 개혁을 외치며 분리된 개신교회는 500년이 지난 오늘 종교개혁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한편으론 500년 전 분열된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매년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개혁과 일치를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가 무엇인지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님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 최주훈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십니까. ▷ 루터교는 전 세계 98개국에 7200만 명의 신자를 둔 개신교 최대 교단인데 한국에서는 신자들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요, 청취자들께 루터교 소개부터 좀 해주시죠. ▶ 분명히 세계에서 가장 큰 개신교단이지만, 한국엔 1958년 미국에서 선교되어서 지금은 교회는 49개 현직 목사는 총 60여명, 전국 교인수는 4천 여명 밖에 되지 않는 초미니교단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루터교회 목사 보기는 천연기념물 만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요. 이렇게 작지만 선교초기부터 교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자는 선교정책으로 교회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방송선교 문서 선교같은 것에 주력했고, 한국 최초의 성경공부프로그램인 베델성서를 시작해서 교회의 질을 높이는데 공헌해 왔습니다. 제가 알기로 초기엔 가톨릭 수녀나 사제들도 베델 성서 프로그램에 참여한 분들도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단의 크기는 이렇게 초미니이지만 루터교회는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워낙 강하고, 올해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다보니 루터교회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루터는 개혁을 바랐던 것이지 새 교회를 세우고자 했던 것은 아닌데 개신교만 해도 교파가 아주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파들이 있습니까? ▶ 우스개 소리로 하나님(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이라고 칭함)도 교단의 숫자를 모른다고 하는 소리를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개신교는 크게 칼뱅 전통의 장로교, 웨슬리 계통의 감리교와 성결교, 그리고 순복음교회 같은 곳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거기서 파생된 교단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루터는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는 개혁을 바랬고, 분열을 염두엔 둔 것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구조적으로 독단적 교권시스템에 저항해서 개신교회가 시작했기 때문에 다양한 교파의 출현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한계에 대해서 개신교 내부에서도 많은 숙고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지난해 10월 31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웨덴 루터교 대성당에서 열린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도회에 참례하고 공동 성명을 채택했습니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이 루터교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가톨릭교회와 루터교와의 일치를 위한 노력들, 어떻게 보십니까? ▶ 저 역시 지난 10월 30일 스웨덴 룬트에서 있던 예배실황을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단지 교황이 참석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서로를 포용하기 위한 치열한 여정이었기에 그렇습니다. 루터교회와 가톨릭은 제2차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약 50여년 넘게 여러 방향의 대화채널을 가동했었지요. 그 결실 중 하나가 1999년 입니다. 그런데 그 때만해도 루터교회에선 LWF대표가, 가톨릭에선 일치교리성 대표가 사인을 했기 때문에 `격이 다르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톨릭 측에서도 교황이 아닌 하부기관의 기관장이 서명한 것이란 이유로 그 의미를 축소하기까지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스웨덴에선 거기서 상당히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선 격이 같아졌습니다. 그리고 내용도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냉정하게 평가하여, 칭의, 또는 의화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다른지 교리적 입장을 서로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번 스웨덴에서 세계루터교회연맹 유난 회장과 교황이 함께 서명한 공동성명서엔 상호비방 역사와 화해에 대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했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까지 모색 되어 나왔고, 특별히 성찬에 대한 확실한 언급이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성명서 내용을 좀 언급해본다면, 거기 이런 내용이 적시되어 있습니다. 공동 기도의 목표로 “서로의 눈을 어둡게 만든 상처와 기억을 치유하기 위한다” 문구가 들어 있고, 다른 문단에선 “우리는(루터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자유케 되었고, 하나님께선 우리를 하나 된 공동체(Gemeinschaft)로 부르시어 공동의 사역을 하게 된 것을 감사한다”는 구절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두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사회의 “인권, 사회정의, 평화, 화해”를 위한 연대를 통해 교회의 책임을 함께 질 것을 천명하고 있지요. 특별히 망명자와 난민 문제, 빈민국을 위한 공동의 노력, 어린이 노동력 착취, 환경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손을 잡기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노력에 함께 손을 잡겠다는 뜻입니다. 물론, 여전히 아쉬운 것도 있다. 이번 예배 때 한 자리에서 성만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성만찬 교류에 관한 문제는 아주 예민한 문제인데, 이런 문제 역시 이번엔 피하지 않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최종 목표로 천명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한 대목입니다. 한 가지 더, 이번 스웨덴의 만남을 제가 특별하게 여기는 대목이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런 공동성명은 말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행사로 끝나고 말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그저 상징적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스웨덴의 만남은 룬트 대성당 공동예배 후에 말뫼(Malmo) 스타디움에서 다시 양 교회가 함께 모여 대형 예배와 축제가 열렸는데, 거기서 양교회의 대표적인 대사회협력 기관인 루터교회의 세계봉사협력국(LWB-Weltdienstes)과 가톨릭의 카리타스-인터내셔널(Caritas Internationalis)이 MOU체결을 맺고 세계 인권 사각지대에서 공동 전선을 펼 것을 확인했다는 점은 확실히 파격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런 대화의 노력은 북미지역에서도 좀 다른 방향이지만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되는 올해, 한국 개신교회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현재의 한국 개신교회가 종교개혁시대 천주교회를 닮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5백 년 전 교회 개혁을 위해 개신교회가 나왔지만, 이젠 그 개혁의 대상이 우리가 되었다”는 자성의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립니다. 목회자들의 윤리문제, 교회의 사유화, 폐쇄적 교조주의 같은 것들이 개신교 내부에 팽배해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다만 10여 년 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교회의 부패에 대해 이젠 공적으로 논의가 되고 있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노력해왔지만, 오늘날 개신교회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에 대해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 물론 가톨릭교회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사견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드리면, 한국의 개신교회도 그렇지만 한국의 가톨릭 교회도 세계 교회의 흐름과는 좀 다른 외딴 섬 같은 느낌을 많이 받곤 합니다. 개신교 신학의 주류도 그렇지만 최근 교황청에서 회자되는 논의들은 거의 수평적 소통과 개혁을 주제로 담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권위적인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여러 곳에서 받습니다. 한때 개신교회의 교인들이 상당수 가톨릭 교회로 수평이동했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 냉담자로 머무르거나 아예 교회를 떠나는 사례, 또는 개신교로 유턴해서 새로운 대안교회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현상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되새겨야 합니다. 저는 이런 부정적인 현상의 중심엔 성직자들의 교권주의, 신학적 게으름 같은 문제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성직자들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라는 식으로 성직자의 소명을 너무 간단하게 처리하는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 분열된 교회가 다시 하나가 되는 길이 멀기는 하지만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일치기도 주간을 보내면서 같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1908년 시작된 일치기도 주간을 한국교회에서는 31년째 보내고 있는데, 기도의 결실은 무엇인가요? ▶ ‘기도는 희망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희망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것이죠. 이것을 위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해야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교회가 함께 일치기도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소통의 장을 넓히고 서로를 포용하는 첫 번째 실천이라고 여깁니다. 그 기도의 열매가 세계적으로 보면 교회일치 운동이고, 우리나라에 국한해서 보자면, 개신교회와 가톨릭이 함께 소통의 장을 넓히기 위해 3년 전부터 시작한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역시 가톨릭과 개신교 일치운동의 결실이 아닐까 합니다. 3년 전에 출범했는데요, 현재 어떤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 모두가 공감하는 있는 대목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16세기 교회개혁 역사를 두고도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5백년 전 앙금을 지금도 그대로 업데이트 되지 않은 채로 비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개신교 현장에선 5백년전 가톨릭이 지금 가톨릭으로 착각하고 있고, 가톨릭 역시 5백년 전 미운 모습을 그대로 현장에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신앙과 직제에서 시도했던 첫 번째 과업은 ‘서로를 알아가자’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각 교회의 신학자들과 사목자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하고, 교리와 역사를 주제별로 나누어 세미나를 공동으로 여는 방식으로 서로의 이해를 도모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갈 길은 멉니다.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동연대해서 사회에 기독교적 가치를 펼쳐야 합니다. ▷ 공교롭게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한국사회는 대통령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이 개혁을 화두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고 있습니다. 500년 전 부패한 교회에 맞서는 한 신학자의 모습과 한국사회와 국민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 뼈아프게 새겨야 할 점이 있습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지금 현재 우리의 부정적인 내부의 현실은 국가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종교현황을 보면 개신교인이 30 이상, 가톨릭은 약25%에 육박한다는 보도 자료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거의 50%이상이지요. 그런데 기독교의 가치 중 무시 할 수 없는 종교의 공공성 차원이 정치권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개신교 뿐만 아니라 가톨릭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다만 더 어려운 문제는 5백 년 전엔 신학적 거인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 이 세대는 그런 신학적 슈퍼스타가 나타나기 어려운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신학이 교권, 기득권이라는 카테고리에서 공공성 차원으로 방향을 돌리지 않는다면 교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해 ‘생각하는 신앙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 종교개혁의 정신은 교회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일상에서 필요한 메시지인데요, 개혁을 위해 신앙인들과 함께 국민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 루터가 강조한 종교개혁 정신 중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던 거룩을 땅으로 옮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았던 종교적 가치를 ‘일상’으로 옮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루터가 강조한 만인사제직이고, 모든 세속직업의 직업소명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모두 평등하며, 이웃을 위한 섬김을 위해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서로를 섬기며 서로를 그리스도로, 사제로 섬기고 존중하면서 사는 게 개혁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백슬기2017.01.23
손희송 주교 사목표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지난 14일 임명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손희송 주교가 주교 문장과 사목표어를 확정했습니다. 손희송 주교는 요한복음 20장 28절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Dominus meus et Deus meus)을 사목표어로 정했습니다. 손 주교는 “온갖 불신과 의심을 떨쳐버린 토마스 사도처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고 고백하며 ‘땅에 떨어져 죽어 풍성한 결실을 맺는 한 알의 밀알’(요한 12,24 참조)이 되겠다는 신앙의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손희송 주교의 문장은 중앙에 둔 방패를 삼등분하여, 위쪽에는 예수님의 희생과 고통을 의미하는 가시관을 담고, 왼쪽에는 성경을, 오른쪽에는 성체를 배치함으로써,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드러내신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방패 아래쪽에는 밀이삭을 넣어, 주님의 말씀과 성체 성사를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여,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방패 위쪽과 좌우로는 모자, 지팡이, 3단의 술로써 주교의 권위를 드러냈으며, 하단에 사목표어를 한글로 표기했습니다. 한편,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손희송 주교의 주교 서품식을 다음달 28일 명동대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봉헌할 예정입니다. 김소일2015.07.21
![[인터뷰] 한한국 "평양에서 세계평화지도 펼쳐봤으면"](//cpbc.co.kr/CMS/news/2016/02/rc/618522_1.5_titleImage_1.jpg)
[인터뷰] 한한국 "평양에서 세계평화지도 펼쳐봤으면" * 한한국 세계평화사랑연맹 이사장, PBC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 발언] “서예회화, 서예, 미술, 지도, 측량이 융합된 장르” “서예회화는 작품에 메시지 들어가야” “한글 세계평화지도 완성에 하루 평균 12시간 걸려” “국회 전시,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 전달 차원” “평화의 소중함 알리기 위해 작품 활동하고 있어” “통일 원하면 서로 소통하고 조건없이 나누어야” [발언 전문] 조선시대 명필하면 한호 한석봉 선생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죠. 바로 그 한석봉 선생의 후손이 세계 최초로 서예회화 장르를 개발해 세계 평화와 통일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서예회화 예술가인 한한국 세계평화사랑연맹 이사장 연결해서 세계평화작가로 주목을 받게 된 사연, 그리고 통일 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한한국 이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호 한석봉 선생이라고 하면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로 정말 너무나 유명하시잖아요. 훌륭한 조상을 두셔서 자랑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설 명절이라 더 생각이 많이 나시겠어요.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이런 훌륭한 분을 조상으로 두어 매우 기쁩니다. 8살 때부터 서당에서 맨 처음 우리 한석봉 조상님의 천자문을 배웠습니다. 한석봉의 후예로 태어나서 붓글씨로 통해 작품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크나큰 영광입니다. 그리고 생각이 안난다면 거짓말이겠죠. 거의 매일 작품을 할 때 한석봉 선생님 생각이 나고 또 한편으로 생각을 해보니 그 시대에 당대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고행과 연습을 하셨을까.. ▷그러니까요. 유명한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떡을 썰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하는 그 한석봉 선생님과 어머니의 유명한 일화. 정말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예, 맞습니다. 많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혹시 한석봉 선생의 묘는 어디에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고향인 개성시와 인접한 황해남도 토산골 석봉리라고 거기에서 발견됐다고 북한 대남방송 때 저도 들었습니다. 하루 빨리.. ▷설 명절에는 가보시질 못하겠네요. ▶남북관계가 빨리 좋아져서 우리 한석봉 조상님 성묘를 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잘 모셔져 있나 모르겠습니다. 북측을 통해서라도 한번도 못 가보셨습니까? ▶제가 북한 4차례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물어봤습니다. 근데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후손이고 그래서 한석봉 묘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인물 문화재 복원, 그것을 통해서 남북 소통을 이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오죽하시겠습니까. 더더군다나 직계 후손이신데.. ▶네. ▷지금 보니까 한한국 이사장님께서 한석봉 선생의 서예솜씨를 물려받으셨는지 서예회화 장르를 처음으로 개발하셨어요. 글쎄요.. 서예회화라는 게 낯선 생소한 장르 같은데 어떻습니까? 작은 서예 글씨로 그림을 그리는겁니까? 어떤건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면요? ▶한한국의 서예회화 장르는 서예, 미술, 지도, 측량이 융합된 장르입니다. 근데 기존에 그림을 보시면 색을 붓으로 칠하면서 그림을 그렸다면 저 같은 경우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을 이해하는지 뚜렷한 메시지가 들어가야합니다. 그리고 가로 세로 1센치 크기에 한글 세필 붓글씨를 가장 작은 붓글씨를 쓰면서 그 각나라 지도 안에 한자 한자 채워넣는 겁니다. 그래서 0.1밀리미터 오자가 없이 오차도 나면 안되고 오자도 없이 색감은 인주의 추인을 직접 찍어서 이렇게 지도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의 팝아트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가로세로 글씨 1센티미터, 0.1밀리미터 잘못된 글자도 없어야 된다고 하니까 이거 그리실 때 상당히 집중력,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은데 작품 하시면서 어떻게 정말 힘들지 않으십니까? ▶가장 어려운 게 한지가 특수한지이기 때문에 여러 차례 되어 있기 때문에 서예를 하다 보면 바둣판을 뒷면에 대고 하는데 바둑판도 없이 써야 되고, 연필로 오와 열을 줄을 치게 되면 나중에 지우게 되면 벗겨져버려요. 근데 그런 부분이 기존의 미술하고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서예로 그림을 그린다는 게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사장님께서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셨어요? ▶저는 8살 때 서에를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한한국 본명인데 어머니께서 한국을 알리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그러면 대한민국할 때 우리가 쓰던 그런 한자네요. ▶네, 나라 한, 나라 국 입니다. 나라가 세 개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름값을 해야하느냐..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93년도에 세계화 바람이 불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니까 어느 날 꿈에 조상님들이 나타나서 한글로 세계평화지도라는 지도를 그려라. 그래서 그때부터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조상님이 한석봉 선생님이신지는 모르시겠고.. ▶네, 맞습니다. ▷그런데 한글로 그렇게 세계평화지도를 그려라.. 그래서 아마 한글로 된 세계평화지도를 그려서 지금 뉴욕 유엔 본부 등 각 나라에 걸려있다고 하는데, 어디어디에 소장을 하고 있습니까? 이사장님 작품을. ▶대표적인 것은 국내에는 우리나라 경기도를 비롯해서 5개 도청에 소장이 되어 있고 북한에는 남북평화 통일을 위해서.. ▷북한에도 가있습니까? ▶북한에도 가있고 제일 중요한 게 세계평화를 위해서 2008년도에 유엔본부 72개국 대표국의 세계평화지도라는 명칭으로 영구소장이 되어 있는데 정말 개인적으로 어떻게 보면 영광입니다. 그 작품이 소장이 돼서 널리 알려지게 됐고 올해는 지금 현재 세계 평화지도를 그린 지 23년이 되는 해이고 그리고 예전보다 작품을 많이 하질 못합니다. 바빠서... 그렇지만 매일 작품에 전념하고 있고 현재 35개 국가 평화지도를 완성을 했고 36번째 헝가리 평화지도를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평화지도를 헝가리에 나라 지도를 서예 작품으로 그리시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헝가리의 문화와 역사를 한글로 번역을 해서 1년 거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 완성하는 데 대략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작업을 하세요? ▶요즘은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서 많이는 못합니다만 예전에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균 12시간씩.. 제일 어려운 게 작품이 대형 작품이기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합니다. 무릎 꿇고 작업하기 때문에 무릎이 제일 아프고.. ▷관절부분에 상당히 무리가 가고 그러면 건강도 해치고 하는데.. 꾸준한 작업 하시려면 글쎄.. 안할 수 없지만 좀 잠을 주무시지 않고 그러면 건강에 해로운데요. ▶늘 주변에서 왜 잠을 자지 않느냐라고 얘기를 하는데 해는 넘어가고 쓸 나라는 많고 평화지도를 그려서 전세계에 전달을 해야겠고.. 잠을 잠깐 붙였다가 그 생각을 하면 잠이 안와요. 그렇게 잠을 안자고 자고 했습니다. ▷한반도 평화지도 경기도청 등 다른 도청 다섯개 지역에도 걸려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한반도 평화지도에 들어가있는 글씨를 전부 다 합쳐보면 모두 몇 글자나 되는지 세어보셨습니까?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지만 대충 추정을 하고 한 나라와 지도를 그릴 때는 대략 측량상 몇 글자가 들어가야한다고 예상을 해야되기 때문에 지금 현재는 한 200만자가 넘게 썼어요. 특히 한글로 쓴 세계평화지도와 한글로 그린 십자가 서예작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은 종교가 없을 때 한국을 알리고자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작품을 완성을 했는데 공동번역을 담았습니다. 성경에.. ▷십자가 서예지도에 들어가는 글씨를 공동번역 성경을.. ▶가톨릭에 그래서 43332자. ▷43322자.. 정확히 성경이 그렇습니까? 창세기부터? ▶아닙니다. 잠언과 전도서를 담았는데 잠언과 전도서 중에 43332자를 담았습니다. ▷잠언에 상당히 교훈적인 이야기, 훈육하는 이야기들 많이 나오는데요. ▶예, 예. 맞습니다. ▷작업을 하시다가 혹시 틀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경우는 없었는지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정말 지금은 제가 웃고 얘기를 하지만 정말 속상하고 많이 버렸습니다. 간단한 예로 한짓값으로 요즘 아파트 분양가 50평짜리 한 채를 버렸습니다. 날려버렸는데.. ▷수억을 버리셨다는 말씀이시네요? ▶왜그렇냐면 희망 대한민국이라는 7미터 크기의 대작품이 있는데 이런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한 4~5년 동안 거쳐서 작업을 해야하고 그런데다 하다보면 한짓값이 수천만원 들어가고.. 한 번의 오자가 생기거나 이러면 돈과 시간을 다 버리기 때문에 쓰다가 제작을 한두번 실수를 해서 버렸는데.. ▷마음이 엄청 아프셨겠어요? ▶진짜 마음 아픈 정도가 아니라 자살을 하려고.. 차에 뛰어드려고 했는데 안죽어지더라고요. 이것도 평화지도를 계속 그려라.. 희망 대한민국을 완성하라는 사명으로 알고.. ▷그러셨군요. 잘 극복해내셨네요. 그래도 앞서 북한에도 이사장님의 작품이 소장돼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궁금해서 여쭤보는데 작품의 크기가 이런 아주 작품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로 크기가 큰 작품일텐데 이걸 어떻게 가져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북측에.. 운반은 어떻게 하셨어요? ▶맞습니다. 굉장히 애착이 가는 작품 중 하나고 이 작품은 뉴욕에서 2008년도에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발표했던 작품인데 그 때 당시에 김정일 위원장이 이 사실을 알고 너무 귀한 작품을 뉴욕에 발표를 했다.. 그리고 남북의 대표적인 통일 작품이다.. 그래서 그것을 원래는 판문점을 통해서 전달하기로 남북한 합의를 했는데 그 안타깝게도 우리 박왕자님이 금강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렇죠. 5년 전입니까? 6년이 됐네요. ▶6년이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중국을 통해서 갔는데 작품이 워낙 크다 보니까 북한에서 특별히 고려항공기를 특별기를 보내와서 중국에서 북한으로 이송을 하게 됐습니다. ▷그랬군요. 그런 우여곡절이 있었군요. ▶네. ▷그리고 얼마 전입니까? 1월말에 국회에서 전시회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여섯 번째 전시회였다면서요? ▶맞습니다. 저는 유독 외부에 전시를 하지만 국회에서 전시를 많이 하는 이유는 어떨때는 보면 국회가 민의를 대변하는 곳이고 법을 만드는 곳인데 저는 희망 대한민국이라는 작품 안에 최초의 제헌헌법을 다 옮겨놨습니다. 그렇다보니까 법을 쓰면서 알게 됐는데 여러가지로 아쉬움들이 참 많아서 전시를 할 때 물론 장소 공간도 다른 곳이 비좁아서 국회에서 전시를 한것도 있지만 메시지를 화합과 국회 평화를 위해서 메시지를 전달 차원에서 국회에서 6번째 전시를 하게 됐는데 유엔세계평화지도 원작을 비롯해서 60여점을 이번에 전시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세계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주제로 삼으시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뭐냐면 누군가는 지구상 어딘가에서, 어떤 사람은 평화를 나타내는 일을 해야될 것 같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 국가이기 때문에 평화의 소중함을 전세계 알리는데는 반드시 누군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세계 평화와 평화의 시, 분단국가의 평화의 소중함을 전세계에 알리기위해서 평화, 통일, 희망 이런 주제의 내용으로 작품을 하고 있는데 어떤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왜 그 지도에다 작업하느냐고.. 이런 얘기를 하시는데 내 나라가 소중하면 이웃 나라와 그 해당 국가도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각 국가의 서로를 인정하고 그 나라의 평화를 인정하겠다.. 평화를 위해서 함께 염원한다는 의미에서 지도에다 평화지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깊은 뜻이 있고요. 한반도평화지도를 그리시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도 역임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한반도 평화통일에 이바지하신 공로로 지난해 통일부 장관 표창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여쭤봐야될 것 같아요. 이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통일이란 의미.. 통일은 뭘까요? 이사장님에게.. ▶통일이란 소통이고 나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서로를 절대 비방하지 말아야하고 정말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면 우선 서로 소통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건이 없어야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조건 없이 나누다보면 서로 신뢰가 쌓이고 자연적으로 처음으로 회복이 되고 복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싸우기 이전에, 싸우기 이전으로 충분히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남북한도 꼭 이렇게 나눔과 소통을 통해서 통일을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작품을 꼭 한번 해봐야겠다, 구상하고 계신 작품이 있으신지요? ▶있습니다. 지금 여러 나라에서, 국가에서 해당 국가 나라 지도를 그려달라고 요청이 많이 와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기회가 된다면 제가 평양에 작품도 가있지만 평양에서 세계평화지도를 펼칠 것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양 세계특별전에 함께 공개 전시할 초대형 작품을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혹시 말이죠. 행여나 이렇게 세계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 그린 지도가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될까..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저는 간절한 염원은 반드시 이뤄진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평화지도를 펼 때마다 매번 느끼고 있지만 그렇게 한 자 한 자는 그 나라의 국민들이고, 작은 글자 한 자 한 자가 모여서 한 나라의 국가 평화지도를 형성하고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화합이거든요. 그래서 23년 동안 염원을 통해 여러 경험을 통해서 이뤄진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일생 제일 간절한 염원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가장 아름다운 평화 스토리가 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간절한 염원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예회화 장르를 개발해서 세계평화작가로 주목받고 계신 한한국 세계평화사랑연맹 이사장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이사장님, 오늘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특별히 설 명절날 만나뵙게 돼서 정말 기쁘고 반갑습니다.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주엽2016.02.09

프란치스코 교황, 로마 유다교 회당 방문해 '특별한 형제적 관계' 강조<앵커> 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로마에 있는 유다인 회당 시나고그를 방문해 가톨릭과 유다교는 신앙 안에서 한 형제임을 확인하고,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자고 호소했습니다. 교황의 이번 방문은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이어 3번째입니다. 교황이 유다교 형제들에게 전한 메시지와 방문 의미를 김원철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1943년 나치에 의해 강제 이주된 로마 유다인들과 1982년 무슬림 테러에 희생된 한 소년을 기리는 조형물 앞에 헌화한 후 유다인 회당에 들어섭니다. 로마 유다인 공동체의 루스 듀렉엘로 의장을 비롯해 많은 유다인들이 박수를 보내며 교황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먼저 유다교와 가톨릭의 ‘특별한 형제적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저의 선임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여기에 왔습니다. 1986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그리고 6년 전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여러분을 ‘큰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진정 하느님 안에서 큰 형님이요, 누이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안에서 한가족입니다.” 교황은 이어 1943년 로마에 거주하던 유다인들이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강제 이송된 ‘비극’을 언급하고,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자고 호소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희생자들을 특별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수난과 근심, 눈물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교훈이 돼야 합니다.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교황은 또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반유다주의를 거부하면서 차별과 박해를 비판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두 종교가 힘을 모아 세상을 위해 봉사하자고 말했습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우리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큰 도전들을 똑바로 바라봐야 합니다. 통합적 생태계 보호가 시급합니다.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피조물 보호에 관한 성경의 메시지를 인류에게 전해야만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갈등과 전쟁, 폭력과 불의는 인류에게 깊은 상처를 줍니다. 우리는 평화와 정의를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교황은 이날 30분 가까이 회당을 돌며 유다교 신자들과 악수와 포옹을 하며 친밀감을 표시했습니다. 유다인들은 교황의 연설에 여러 차례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로마 유다인 공동체의 루스 듀렉엘로 의장은 감동 어린 표정으로 “오늘 우리는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평화는 테러로 이룩할 수 없다”며 평화 정착을 위해 손을 잡자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교와 유다교는 이날 교황이 밝힌 대로 뿌리가 같은 ‘특별한 형제’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 구약을 공유하기에 영적으로도 풍부한 친밀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역사 안에서 두 종교는 서로 반목하고 배척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받은 죄인들”이라고 박해했고, 유다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다인들이 오랜 세월 겪어야 했던 고난의 원인을 파헤쳐보면 그리스도교인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두 종교가 대화와 화해를 모색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내놓은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우리 시대」(Nostra Aetate)가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또 가톨릭교회는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유다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적대 행위와 불신이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임을 인정하고, 화해를 위한 대화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제 두 종교는 50여년 간 신학적 대화를 해온 결과물을 「철회될 수 없는 하느님 은사와 소명」이라는 공동 논문으로 묶어 지난해 말 발표했을 만큼 가까워졌습니다. 교황의 이번 방문은 두 종교의 대화와 화해 여정이 이제 일치와 협력 관계로 들어섰음을 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PBC뉴스 김원철입니다. 김원철201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