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적 열정이 부추긴 극단주의, 전쟁을 부르다이스라엘 예수회원·성서학자 데이비드 노이하우스 신부 -이·팔 분쟁을 분석하다 지난 8일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한 어머니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아이의 주검을 옮기고 있다. OSV “독성 강한 정치가 재앙을 부채질합니다. 그 정치의 기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종교적 열정으로 설명되는 극단적 민족주의입니다.” 이스라엘 예수회원이자 성서학자인 데이비드 노이하우스(David Neuhaus, 61) 신부는 이-팔 분쟁의 본질을 이렇게 꿰뚫었다. 그러면서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조롱 섞인 비난을 받는 이-팔 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종교와 정치가 뒤섞인 극우 민족주의를 내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이하우스 신부는 최근 교황청 선교통신 피데스(Fides)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에서 기승을 부리는 민족주의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의 발언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친이스라엘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부모를 따라 15살에 이스라엘로 이주한 독일계 유다인 2세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성서학을 전공했다. 또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사목한 경험도 있다. 성서학자이자 정치학자, 그리고 사목자의 시각으로 이-팔 분쟁을 통찰할 수 있는 인물이다. 다음은 인터뷰 요약. 데이비드 노이하우스 신부. -이스라엘의 군사적 해결책, 하마스 섬멸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보십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모든 전쟁은 패배!’라며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촉구하십니다. 군사 작전에서 논리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이스라엘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하마스 기습은 몇 가지 통념을 무너뜨렸습니다. 무적이라는 자국 군대가 수백 명의 무장 세력에게 허를 찔리고, 유다인들이 (세계를 떠돌다 정착한) 안전한 고향에서 학살당한 것이지요. 슬픔과 불안, 분노가 뒤섞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합니다. 승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마스 섬멸? 하지만 그것은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포함한 가자지구 초토화로 해석됩니다. 상대를 악의 화신으로 간주한 것이지요. 이스라엘 언론인 알론 골드스타인이 이렇게 썼더군요. ‘우리는 비열한 생물, 환생한 나치, 아말렉(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명령에 따라 무찌른 이민족)과 마주하고 있다. 눈을 깜빡이거나 의심해서는 안 된다.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후손만 바라봐야 한다. 온 힘을 다해 공격을 퍼부어 적 아랍의 무릎을 꿇려야 한다…’ 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민 80% 이상이 네타냐후 총리를 비난합니다. 하마스 공격을 초래한 명백한 실정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는 정치 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알기에 전쟁을 끝내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이 전쟁은 또한 서안지구에서 유다인 입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가리는 은폐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두 국가 해법’을 다시 얘기합니다. 이 전망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보십니까. 유엔이 1947년 팔레스타인을 유다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로 분할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정당성은 팔레스타인 건국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국가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주민 200만 명이 이스라엘 내에서 2등 시민으로 살아갑니다. 또 500만 명 정도가 이스라엘이 1967년(제3차 중동전쟁) 점령한 영토에서 살고 있습니다. 민족은 두 개이지만 국가는 하나뿐입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들어가 정착촌을 넓혔습니다. 그곳 주민들의 비참한 상황이 하마스 극단주의를 키운 측면도 있습니다. 양측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두 국가 해법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 국가 해법은 그저 희망 사항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The Haare tz)는 ‘이스라엘 극우파를 불태워라’는 제목의 6일 자 사설에서 현 정부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메시아주의와 카한주(총리 관저 소재지) 극우파가 이 전쟁을 기회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요인이 전쟁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메시아적 망상이 시오니즘을 괴롭혀 왔습니다. 1967년 전쟁 이후 민족주의와 종교 근본주의가 결합한 시오니즘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유다인 정착민들은 국제법과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를 무시하고 점령한 성경의 도시 헤브론과 세겜(현 나블루스)으로 이주했습니다. 하느님이 그곳을 차지해 다스리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 도시를 텔아비브(수도)나 하이파(북부 최대 도시)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지역 교회 활동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교회는 하마스건 시오니스트 정착민이건 모든 인간은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됐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예언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순진(nave)’해도 됩니다. 순진해야 내일은 오늘과 다를 수 있다는 믿음을 장려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피자발라 총대주교님은 최근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랑과 평화의 용기를 내야 한다. 그래야 증오와 복수, 고통이 우리 말과 생각의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교황님의 말씀대로 교회는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습니다. 교회는 1920년대부터 유다 민족주의가 꿈틀대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교회는 이 중요한 역할을 계속 해야 합니다. 하마스의 테러를 규탄하고 이 지역 불안정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는 것도 교회 역할입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김원철2023.11.17

바보의나눔, 바보나눔터 500호점 탄생서울 강남구 자동차 디테일링샵 ‘게러지드블랑’에 현판 전달 서울 강남구 게러지드블랑에서 6월 29일 열린 바보나눔터 500호점 현판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바보의나눔 제공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이사장 손희송 주교)이 진행하는 중소상공인 기부 캠페인 ‘바보나눔터’ 500호점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자동차 디테일링샵인 ‘게러지드블랑’(대표 고훈민)이다. 게러지드블랑은 안전하고 좋은 제품을 사용해 각 차량에 맞게 세차, 코팅, 수리 등 토털 케어를 제공하는 자동차 디테일링샵이다. 고훈민(요셉, 서울 역삼동본당) 대표는 바보의나눔 기부 안내를 보고 바보나눔터로 정기기부를 신청했다. 바보나눔터 500호점 현판전달식은 6월 29일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게러지드블랑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바보의나눔 사무총장 우창원 신부, 고훈민 대표 등 관계자들은 현판 및 500호점 기념패 전달과 축복식에 참여하며 바보나눔터 500호점 탄생을 축하했다. 고훈민 대표는 “아이와 함께 새벽 미사를 한 달 동안 꾸준히 참여하면서 성경도 더 자주 읽게 되고 많은 것을 느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받은 만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며 바보나눔터 신청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희 나눔이 어려운 분들과 꿈은 있지만 꿈을 향해 가지 못하는 분들,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분들께 전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창원 신부는 “처음에는 주변 지인들에게 부탁하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주변 업체에 붙은 바보나눔터 현판을 보고 기부 연락을 주는 업체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어려운 시기에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바보나눔터에 함께해 주신 중소상공인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바보나눔터는 2017년 2월부터 시작된 중소상공업체를 위한 기부 프로그램이다. 가게, 식당, 카페, 병원, 학원 등 중소상공업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매달 3만 원 이상의 정기기부 또는 100만 원 이상의 일시기부로 동참할 수 있다. 바보나눔터가 되면 김수환 추기경의 얼굴과 자화상이 그려진 현판과 도어 스티커를 증정하며, 재단 홈페이지와 SNS에 업체 소개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바보나눔터는 6년여 만에 500호점을 달성했으며, 해마다 평균 80여 개의 업체가 동참하고 있다. 바보나눔터를 통해 모금된 기부금은 바보의나눔 공모배분사업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되며, 자세한 내용은 바보의나눔 홈페이지(www.babo.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 02-727-2507, (재)바보의나눔 모금홍보팀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재진2023.07.03
![[이소영 평화칼럼] 가장 아름다운 노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16/RoS1692145570527.jpg)
[이소영 평화칼럼] 가장 아름다운 노래이소영 베로니카(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때때로 붙잡고 있던 옷깃을 놓친 것 같은, 세상이 나를 밀쳐낸 듯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그해 겨울이 내겐 그러했다. 당시 누군가 「시편」을 읽어보라 권했다. 그걸로도 마음이 어떻게 안 되거든 「욥기」를 찾아 읽으라고, 거기서 필요로 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시편」을 펼쳤다. 그런데 읽다가 ‘저를 미워하는 자들’이 등장하는 구절들에 다다르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입장과 서사가 있을진대 자신은 가련한 피해자로, 상대방은 덤불 속 사자 같은 가해자로 묘사하며 주님이 그들을 짓부수어 주십사 청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기도일까. 성경을 제대로 공부해보지 못한 자의 불경한 의문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 죽이려 몰려드는 와중에조차 한 시종의 잘린 귀에 손대어 고쳐주셨던 주님이 “저를 적대하는 자들은 수치로 옷 입고 창피를 덧옷처럼 덮게 하소서”(시편 109,29)의 저주 섞인 탄원을 듣고 어떤 심정일지 싶었다. 이어서 「욥기」를 읽었다. 신앙이 얕고 신학에 무지한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신도, 신의 아들도 아닌 인간 욥이 올곧음을 시험당하며 받은 무시무시한 고통이 돌덩이처럼 내면을 짓누르는 듯했다. 절대자는 그간 내게 감미로운 음악과 따사로운 볕처럼 오셨고, 별들과 나무들 안에 계셨다. 그렇다면 “진창에다 내던지시니 나는 먼지와 재처럼 되고 말았네”(욥기 30,19)의 저 차갑게 돌아선 단단한 등은 누구의 것일까. 그렇게 가위눌린 마음으로 읽다 페이지를 잘못 넘겨 「아가」의 구절에 닿았다. “나의 연인이 문틈으로 손을 내밀자 내 가슴이 그이 때문에 두근거렸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일어났는데 내 손에서는 몰약이 뚝뚝 듣고 손가락에서 녹아 흐르는 몰약이 문빗장 손잡이 위로 번졌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주었네. 그러나 나의 연인은 몸을 돌려 가 버렸다네. 그이가 떠나 버려 나는 넋이 나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고 그이를 불렀건만 대답이 없었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자 나를 때리고 상처 내었으며 성벽의 파수꾼들은 내 겉옷을 빼앗았네.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그대들에게 애원하니 나의 연인을 만나거든 내가 사랑 때문에 앓고 있다고 제발 그이에게 말해 주어요.”(아가 5,4-8) 붙잡아주던 손이 사라진 듯한, 이유 모른 채 버려진 것 같은 순간이 이따금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종교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아가」는 이렇듯 캄캄한 순간을 절대자가 노여워 나를 벌하거나 진창에 내던지는 장면으로 묘사하지 않은 듯했다. 좋아하던 이가 문 앞에서 몸을 휙 돌려 가버려 어쩔 줄 모르는, 사랑 때문에 애달파 앓는 마음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잃은 게 아니라 잠시 앓는 것. ‘밀당’을 알지 못하는, 상대가 장난스레 밀어내고 숨어버리면 그대로 엎어져 울음 터뜨리는, 아직 서툴고 미숙한 사랑의 마음. 혹시 무얼 잘못해서 나를 떠난 걸까 싶어 마음이 풀처럼 시든 이에게 짓궂은 연인마냥 불쑥 다시 나타나려고 잠시 저 모퉁이에 숨어 기다리고 계신가보다. 그렇게 상상해 보았다. 그 상상은 욥이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양 만사천 마리와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쌍과 암나귀 천 마리를 선사 받던 장면보다 몇 배나 위로가 되었다. 신성을 지나치게 주관화한 것 아니냐 할지 모르겠다. 성냥팔이 소녀가 켠 성냥불의 환상처럼 그건 네가 그려낸 너만의 하느님이라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믿으려 한다.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가」에서 그러셨듯 그분은 ‘노루처럼, 젊은 사슴처럼 되어’ 서둘러 다시 오실 것임을 말이다. 내게, 그리고 이 순간 두려움과 고통 중에 있을 그대들에게. cpbc2023.09.18

책꽂이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1권 기초 도덕신학칼 H. 페쉬케 지음 / 이동호·방종우 신부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그리스도교 윤리학, 또는 도덕신학은 통상 그리스도교 신앙과 이성에 비추어 한 남자, 혹은 한 여자가 자신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따라야 할 지침들을 연구하는 신학의 한 분야라고 정의된다. 이 지침들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목적을 향하는 데 따라야 할 도덕규범들을 즉각 생각하게 한다. 이는 곧 도덕신학의 정의가 ‘행동의 윤리학’이라 불릴 수 있는 근거를 말해 준다.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1권이 ‘기초 도덕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전면 개정되었다. ‘도덕신학이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권고에 따라 전체적으로 성경 말씀을 보강하고 정교한 해석을 더했다. 동시에 윤리학에 있어서 새롭게 발전된 분야도 반영한다. 즉 도덕규범들에 대한 의무론적·목적론적 상황, 시민법이나 교회법이 대면하는 양심, 그리스도교 정체성의 뿌리인 공동체, 자유의 필요 요건, 윤리적 절충 등과 같이 현실적 관심사 중에서 새로운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성서 지혜문학 입문박영식 신부 지음 / 성서와함께‘지혜’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지혜는 성경에서도 이야기하는 주제이다. 욥기, 잠언, 코헬렛, 지혜서, 시라(집회서)로 이어지는 지혜문학이 있고, 성경의 지혜 책들 역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교훈들을 전함으로써 인간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이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현세적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추구한다. 「성서 지혜문학 입문」은 성경의 지혜 책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참된 지혜의 길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안내서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가톨릭대학교 교수와 총장,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박영식(서울대교구 반포4동본당 주임) 신부가 1999년 발간한 「생명의 샘과 인생길: 성서 지혜문학을 읽기 위한 탐구」를 수정하고 보완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지혜를 습득하였다 하더라도 자기의 인생이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최상의 인간 지혜까지도 결국 아무것도 아님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64쪽)완덕의 길 해설 방효익 신부 지음 / 기쁜소식「완덕의 길」은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1562년 개혁과 더불어 시작된 성 요셉 공동체, 맨발의가르멜수녀원의 수녀들에게 주는 기도에 대한 권고와 조언들이다. 엄격한 봉쇄와 관상생활을 원하는 수녀들에게 자신이 강생의 가르멜수녀원에 들어가(1535~1562년) 겪었던 아픔들을 반면교사 삼아 안내한다. 방효익(수원교구 권선동본당 주임) 신부는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을 ‘새 부대’에 담아 수도자들과 사제들에게 건네고자 「완덕의 길」을 풀어썼다. 방 신부는 “「완덕의 길」은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 초보자들은 물론이요 기도에 있어서 많은 체험을 했다는 이들까지도 도와줄 수 있는 탁월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특히 ‘주님의 기도’를 해설한 부분은 충분히 명작이라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평화신문2022.10.25
![[신앙단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 땅에는 언제 오세요?(조양제, 베드로, 대필작가)](//cpbc.co.kr/CMS/newspaper/2022/12/rc/838184_1.4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 땅에는 언제 오세요?(조양제, 베드로, 대필작가) 어느 날 주님의 기도를 하다가 이런 투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땅에 사는 우리 인간들은 이렇게 살기 힘든데 왜 우리 주님은 하늘에서 안 내려오는 걸까? 참 철부지 같은 생각이지만 어떤 때는 삶이 너무 팍팍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투정이 저절로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공부를 하면서 저의 투정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보고 싶다는 인간의 갈망이 하늘에 전달된 것일까요? 아니면 ‘저 녀석들이 내가 만든 놈들 맞아?’ 하는 어이없음 때문일까요? 하느님은 아드님을 어리석은 인간의 품으로 내려보냅니다. 그렇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땅에 오신 겁니다. 저는 그 명명백백한 사실을 알면서도 엉뚱한 투정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느님과 소통하는 방법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 독수리 등을 우상으로 모시다가 하느님께 큰 벌을 받습니다. 이런 멍청한 짓을 보다 못한 하느님이 아드님을 통해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되는 기도의 방법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몸소 친절히 가르쳐주신 겁니다. 굳이 그렇게 고난을 받지 않으셔도 되었는데 인간이 겪을 극심한 고통을 다 감내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우리 주님, 그 고통을 통해 어리석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우리 주님,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인간의 죄를 씻어줄 속죄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인간과 조금 더 가까워져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겁니다, 성경의 진주라고 하는 로마서 5장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구절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이 자랑이라고? 무엇 때문에 자랑이라고 할까? 환난은 어떤 환난을 이야기할까? 아, 예수님의 그 희생을 말하는구나. 그렇죠. 어리석은 인간은 가장 쉬운 진리의 말도 이렇게 늦게 깨닫습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땅에 내려와 몸소 환난을 겪었으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자랑이겠느냐?” 이런 꾸지람이 제 머리에서 가슴까지 초고속으로 내려옵니다. 혼내시지만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그래서 머리를 긁적이며, 가슴을 세 번 치며 그 말씀을 제 영혼의 에너지로 흡수합니다.인간의 삶은 눈뜨는 그 순간부터 죄의 유혹 앞에 그대로 노출되고, 하루에 수십 번 죄를 짓고 삽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 씻어주신 그 엄청난 일을 하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적립식 통장에 복리로 쌓고 있습니다. 물론 주일에 성당에 가서 잠시 고해를 통해 그 죄를 탕감받지만, 그 순간일 뿐, 늘 죄를 반복해서 짓는 자신을 보면 양심이 찔려 가슴이 아파옵니다. 나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남 뒷담화는 얼마나 많이 하는지. 이런 나약한 인간의 모습 때문에 하루에도 몇십 번씩 하느님을 찾게 되나 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말씀을 통해 만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미 땅에 내려와 있습니다.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보고 언제 내려오세요 투정부릴 게 아니라 성경 말씀 속에서 하느님을 자주 만나뵈었으면 좋겠습니다. cpbc2022.12.28
![[광주대교구 사목교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cpbc.co.kr/CMS/newspaper/2022/12/rc/837284_1.1_titleImage_1.jpg)
[광주대교구 사목교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I. 소통하는 교회 1. 본당별 ‘하느님 백성의 대화’ 각 본당에 맞는 방식으로 전 신자들이 본당 사목과 운영에 함께 참여하는 기회를 만들어가고, 신자들의 의견이 효과적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나갑시다. 2. 본당 사목협의회의 정체성 강화 본당 사목회의 역할과 사목 협조자로서의 자세를 고취하고 분과별 책임감을 더욱 강화해 나가도록 노력합시다. 3. 본당 사목의 연속성 유지 본당 형편에 맞게 사제와 사목협의회가 사목 계획을 함께 세우고 본당 운영을 위해 고민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갖도록 노력합시다. II. 젊은이에 대한 관심 1. 대화와 체험을 통한 신앙의 전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그들이 바라는 신앙교육과 체험들을 제공해주도록 노력합시다. 2. 청소년들의 공간과 꿈을 만들어 주기 청소년들이 원하며 현실적으로 필요한 내용과 방식으로 교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꿈과 희망을 되살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3. 청소년 사목을 위한 제도적 개선 청소년 사목에 대한 교구와 지구, 그리고 본당의 원활한 지원과 협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III.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 1. ‘기후 정의’에 관한 지속적 캠페인 기후 정의와 탄소 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생명 평화 미사, 생명 평화 순례, 탈원전 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속해서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2. 생태환경 교육 자료의 보급과 실천 교구 차원으로 생태환경위원회, 생태환경농업연구소, 바오로 가게 등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본당 차원에서도 생태환경에 관련된 교육 자료를 보급하여 모든 신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합시다. 3. 생태환경학교 개설을 통한 활동가 양성 교구에서는 생태환경위원회를 통해 생태환경의 문제를 지속해서 전달할 수 있는 실천 활동가를 양성하도록 생태환경학교를 개설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생태환경위원회를 활성화합시다. IV. 복음화를 위한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교회 1. 하느님 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기 각 공동체에서 사목자들이 직접, 혹은 교구의 성경 봉사자들을 통해서 성경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도록 도와주며, 성경 말씀이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2. 미사와 성사생활에 자주 참여하기 미사와 고해성사에 자주 참여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고 우리의 삶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갑시다. 3. 세상을 향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 사회적 약자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먹거리와 생필품을 나누는 실천이 필요할 것입니다. 본당 예산의 일정 비율을 사회복지 기금으로 확보하여,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큰 안목에서는 선교지 교회 및 가난한 나라와 연대하는 실질적인 나눔을 통해 온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cpbc2022.12.14

가톨릭평화방송 TV, 시청자들을 더욱 일찍 찾아갑니다 1. 신규 프로그램 ‘책! 책! 책!’은 신앙과 일상을 모두 챙기고 싶은 바쁜 가톨릭신자들을 위해 마련됐다. 2. 6월 25일 ‘가톨릭 신자를 위한 평화와 화해 교육 강좌’가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3.가톨릭 둘레특강. cpbc 가톨릭평화방송 TV가 6월부터 시청자들을 더욱 일찍 찾아간다. 기존보다 1시간 앞당겨진 오전 4시부터 cpbc TV를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이른 새벽 시간, 가톨릭평화방송을 보며 교회 전례에 맞는 기도와 성체 조배, 미사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새롭게 편성했다. 이 시간대 주요 시청층의 수요가 많은 것을 고려했다. 이에 시청자들은 전례와 기도 프로그램을 연속해서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오전 4시 ‘새벽을 여는 기도’에 이어, 4시 20분부터 ‘성체 조배’가 방영된다. 오전 5시 ‘묵주기도’ 이후 오전 6시에는 삼종기도 뒤에 ‘TV 매일미사’가 방송된다. 기도와 미사가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TV 매일미사’ 후 오전 7시부터는 명품 강좌가 마련됐다. 월~목요일 ‘가톨릭 둘레특강’부터 ‘바이블 무브’, ‘루카가 그려주는 예수님 이야기’, ‘요한이 만난 사람들’이 있다. 오후 3시에는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기도’가 매일 안방을 찾아간다.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도 있다. ‘책! 책! 책!’은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감상하기 어려운 현대인들을 위해 마련됐다. 특히 신앙 관련 서적과 음악을 함께 읽고 들을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일과 신앙을 모두 챙기고 싶은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바쁜 일상은 잠시 접어두고 책과 음악과 함께할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을 선사한다. ‘책! 책! 책!’은 매주 화요일 오전 5시 30분과 오후 4시, 수요일 오후 11시, 토요일 오후 8시, 월요일 오후 8시 30분에 만나볼 수 있다. ‘가톨릭 신자를 위한 평화와 화해 교육 강좌’에서는 ‘평화와 화해’의 의미를 배운다. 성경이 전하는 ‘평화’란 무엇일까? 또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와 화해를 어떻게 이뤄야 할까? 이를 알기 쉽게 전하고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6월 25일 오후 7시 30분 첫 강의를 시작으로, 26일 월요일 오후 4시, 27일 오후 11시, 7월 1일 오전 6시 50분에 방송된다. 한편, 7월에도 새 프로그램 ‘곽승룡 신부의 영혼 돌봄’, ‘최강 신부의 내 영혼을 채워주는 생각들’, ‘김덕재 신부의 같지만 다른 4복음서(가제)’와 같은 알찬 강좌 가 시청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박예슬2023.06.01

복음화를 통한 자비와 용서, 일치의 삶 권고[한국교회, 시노드는 지금] 신약성경에서 배우는 시노달리타스 신약 성경의 서간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로 ‘사랑의 실천’을 가르친다. 사진은 서울대교구 입학 예정 신학생과 일반 봉사자들이 명동밥집에서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종말에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천상 영광 안에서 완성된다. 그날까지 교회는 세상의 유혹을 견디고 하느님의 위로를 받으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순례자이다. 이 세상에서 교회는 자신이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귀양살이 중이라는 것을 알고, 하늘 나라의 완전한 도래와 자기 임금님과 영광스럽게 결합되기를 바라고 갈망한다. 영광스러운 교회의 완성과 그 완성을 통한 세상의 완성은 큰 시련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69항 참조)교회는 이런 이유로 늘 쇄신해야 한다. 완성을 향한 지상의 순례 길을 걷고 있는 교회는 교회의 삶의 방식과 운영 방식인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를 통해 복음 선포의 사명과 삶을 쇄신해 왔다. 교회의 삶의 방식이며 운영 방식인 시노달리타스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게 바로 ‘신약 성경’이다. 따라서 신약 성경은 보편 교회가 지금 모색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나아갈 방향을 안내하는 길잡이일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끌어낼 교회 쇄신의 양상을 포괄하며 함축하고 있다. 한 마디로 신약 성경을 알면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종착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준비 기간을 거쳐 한국 교회 안에서 지역 교회별로 본격 궤도에 오를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앞두고 ‘신약 성경에서 배우는 시노달리타스를 간략히 정리했다. 신약 성경신약 성경은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14개 바오로 서간, 7개 가톨릭 서간, 요한 묵시록 등 총 27권으로 구성돼 있다. 신약 성경이 쓰인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따라서 신약 성경 전체 내용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를 좀더 세분해 보면 복음서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행전은 교회의 선교 활동을 이끄시는 성령을, 서간은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요한 묵시록은 종말에 드러날 계시를 알려주고 있다. 곧 신약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부제는 복음과 선교, 그리고 교회의 삶으로 정리할 수 있다. 주님은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자라신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펼쳐놓고 당신 신원과 사명에 관해 선포하신 첫 번째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이심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예수님께서는 참행복 선언(마태 5, 3-10; 루카 6,20-23)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을 대한 복음을 선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시면서 물질적 가난뿐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가난, 곧 영적 가난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을 첫 자리에 두시고, 하느님 나라가 우선으로 이들을 향해 있음을 드러내 보여 주신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원수들까지도 사랑하며, 가장 먼 사람들을 이웃으로 삼고, 어린이들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당부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고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는 구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곧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난하게 사셨다. 배고픔과 목마름과 궁핍을 겪으셨으며, 더 나아가 여러 가난한 사람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고, 그들에 대한 실천적 사랑을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삼으셨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의 첫 자리에 가난한 이들을 두셨기 때문에 교회는 늘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선택해 왔다. 교회 창립 초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선택하신 예수님을 따라 성찬을 위한 빵과 포도주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선물도 준비해서 모였다. 지금까지 이 아름다운 전통이 계속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헌금’이다.복음서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가난’에 주목할 것을 제시한다. 복음서는 인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당신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신 주님의 너그러우심을 본받아 연대의식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복음과 선교사도행전은 주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복음을 맨 먼저 예루살렘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선포한 다음 유다 지방,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전하였음을 보여준다. 곧 그리스도교가 맨 처음 유다인만의 교회였으나 성령 강림과 인도로 유다인과 이방인이 통합된 교회로 전환된 다음 이방인 세계로 향한 본격적인 선교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방인의 사도’로 불리는 바오로 사도 역시 전교 여행 내내 도시에 들어갈 때마다 언제나 먼저 유다인 회당을 찾아가서 유다인에게 복음을 선포한 후 이방인들을 선교했다. 사도행전은 이 복음 선교 여정에서 교회의 첫 번째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 과정을 상세히 증언한다.(사도 15장, 갈라 15장 참조)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주요 내용은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다교 할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굳이 유다교의 관습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우상과 관련된 것을 멀리하도록 신자들에게 권고했다. 이는 교회가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모여 성령의 목소리를 식별하는 것을 통해 교회의 삶의 양식과 운영방식을 밝힌 첫 사례이다. 사도행전은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복음화의 여정을 주목할 것을 제시한다. 교회 창립 시기 복음이 가장 먼저 예루살렘의 유다인에게 전해졌듯이 그리스도인들이 회개를 통해 새롭게 복음화될 것을 요청한다. 새로운 복음화는 첫째, 신앙인들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더욱더 온전하게 응답하도록 돕는 것이다. 둘째, 세례를 받았지만, 세례의 요구대로 살지 않는 이들에게 신앙의 기쁨을 되찾는 회개, 복음대로 살려는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또는 여전히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복음의 기쁨」 14항 참조)사도행전은 시노달리타스 여정에 있는 교회에 먼저 구성원부터 복음화할 것을 권고한다. 아울러 교회의 할례로 상징되는 교조주의적 태도나 지나친 호교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모든 이에게 교회의 문을 활짝 열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신약 성경의 서간들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로 ‘사랑의 실천’을 가르친다. 사랑은 주님께서 주신 가장 큰 계명이다. 서간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사랑’ 곧 윤리 덕목으로서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서간들 특히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교회 안에서의 삶, 신앙인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새로운 삶이고,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에페 4,23-24; 콜로 3,10 참조))라는 것이다. 잃었던 ‘하느님의 모습’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서간들은 새로운 창조 안에서의 삶, 곧 신앙인의 삶으로 ‘자비와 용서 그리고 일치’를 제시한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내적으로 일치하고(1코린 12장 참조), 외적으로는 예수님을 통해 체험한 자비와 용서를 살아가는 것이다. 신약 성경의 서간들은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사랑’으로 표현되는 ‘자비와 용서의 삶’ 그리고 ‘일치의 삶’을 요청한다. 자비와 용서 그리고 일치의 삶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세례를 통해 받은 하느님의 은사이다. 신약 성경의 서간들은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는”(2티모 1,6) 것을 통해 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해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2.16

두려움을 없애는 묘약[월간 꿈 CUM] 동행 _ 예수의 일생 (3)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느님께서 가끔 우리에게 손을 내미실 때가 있습니다. 구원 계획을 당신과 함께 이뤄 나가자고 손을 내미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많은 경우,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뜻은 우리 인생 계획에 없던 것입니다. 내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 경험하지 않았던 일,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하느님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느님 저는 그런 걸 생각해 본 일이 없어요.” “내 인생 플랜에는 그런 것이 없다니까요!” 물론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네”라고 대답하거나,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그 순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어그러집니다. 성모님은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처녀가 잉태할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 앞에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응답 하나 때문에 인류가 구원의 열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 순간 하느님은 우리에게 구원 계획에 함께하자고 초대하십니다. 지금 당신은 “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계십니까? “과연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두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나를 감싸주실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진다면 어떤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가족의 저녁식사 밥상을 직접 차리지 않습니다. 자동차 운전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손을 통해 밥상을 차리시고, 자동차 운전을 하십니다. 우리의 손을 통해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십니다. 우리들의 협력을 요청하십니다. 구원 역사는 그렇게 이뤄집니다. 본당에서 봉사 요청을 받아보신 경험들이 있으실 것 입니다. 그럴 때 “제가 능력이 없어서…” “제가 요즘 바빠서…”라고 대답하지 마시고, 일단 한번 하느님께 맡겨 보십시오. 받아들여 보십시오. 그러면 나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구원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여러분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예비신학생 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 모임이 예비신학생 모임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지도 신부님이 갈 때마다 짜장면을 사주시길래 그걸 얻어먹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그런데 고3이 되자 신부님이 갑자기 신학교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 보시더라구요. 당황한 저는 처음에는 신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인생 계획에는 사제가 되는 것은 없었거든요. 저는 당시 나름대로 인생 계획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몸이 허약해서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겼는데, 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이후 부모님이 소아과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나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나를 성직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평생 혼자 살아야 하고, 재산도 가지지 못하고, 말주변이 없는 내가 강론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모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때 신부님은 제게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묵주기도를 하고, 성경도 읽었습니다. 그때 어떤 성령의 힘이 저와 함께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신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이것은 인간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성령의 은총으로 얻은 열매였습니다. 두려움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후 하느님은 나를 통해 수많은 열매를 맺어 주셨습니다. 구원의 열매는 믿음이라는 거름을 먹고 자랍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생깁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참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 행복은 참으로 큽니다. 형언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성모님을 통해 이루신 큰 섭리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탄생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cpbc2023.10.04

참사람이며 참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신 어머니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믿나 1월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세계 평화의 날이다. 구원의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주신 거룩한 어머니께 드리는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이다. 심순화 작, ‘성모자’. 1월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세계 평화의 날이다. 생명이신 하느님을 우리에게 오게 하신 마리아를 공경하고, 성모님을 통해 이 땅에 평화가 실현되길 전구하는 축일이다. 신약 성경은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잉태한 분, 곧 마리아의 참아드님이 되신 분은 다름 아닌 성부의 영원한 아드님이시며,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의 하느님 중 제2위격이시다라고 선포한다. 이에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때부터 “예수님의 어머니”(마르 3,31; 루카 2,48; 요한 2,1)로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했다. 가톨릭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분이 주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께서 누구보다도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셨고(루카 1,38 참조),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셨기 때문이다.성경은 성모 마리아를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로 증언하고 있다. 구약 성경은 하와의 후손이며 다윗의 자손으로 하느님께 성실한 소박하고 순진한 동정녀가 ‘임마누엘’이라 불리게 될 메시아를 낳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시온의 딸로 메시아의 어머니로 초대된 분이 바로 성모 마리아이시다. 신약 성경은 성모 마리아를 믿음으로 복되신 분이며, 주님과 함께 계시는 주님의 어머니시며, 세세 대대로 찬양받으실 분으로 증언하고 있다.성모님은 동정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인해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불림을 받고서 순종으로 응답했으며, 평생 하느님의 뜻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인류와 교회의 표상이 됐다. 또 성모님은 곤란한 처지에 놓인 이웃을 위해 아들에게 도움을 청해 주님의 첫 신원을 드러내는 기적을 행하게 하신 분이시다. 아울러 성모님은 사람들을 당신 외아들에게로 인도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의 죽음을 지키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당신을 중심으로 주님의 제자들을 모아 함께 기도하시면서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를 선포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엘리사벳의 입을 빌려 성모님께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십니다”(루카 1,42)라고 고백하고 있다.이에 교회는 431년 제3차 세계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οκοs-테오토코스)이시다”라고 선포했다.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잃지 않으시고 인성을 취하셨다. 또 ‘말씀’이신 성자 하느님의 유일한 위격 안에 두 본성이 온전히 결합돼 일치하고 있다. 공의회는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당신의 신성을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 영혼을 부여받은 거룩한 육체를 마리아에게서 얻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 위격에서 육체와 결합하였기에 사람의 몸으로 나셨다고 일컬어진다”고 선언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66항) 그러면서 공의회는 “그리스도는 단일한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선포했다. 이에 교회는 마리아께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영원한 아들, 바로 하느님이신 그 아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라고 고백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495ㆍ509항 참조) 따라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는 주님께 대한 교회의 신앙 고백을 완전하게 드러내는 거룩한 칭호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부여된 최초의 교의적 칭호인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성모, 천주의 모친)는 성모 신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또 마리아께 대한 신학과 고유한 전례 축일들이 생겨나는 촉매가 됐다. 451년 칼체돈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일치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과 함께 참사람이요, 참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천주의 모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고 선포해 ‘천주의 성모’ 칭호에 대한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교회가 새해 첫날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동방 교회 관습을 따라 전례력 안에 정착했다. 마리아 공경은 하느님의 강생 신비에 뿌리를 두고 있다. 6세기부터 이 축일은 주님 성탄과 연계해 12월 26일을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로 지냈다. 로마 교회에서도 이 축일 도입해 성탄 8일 축제가 끝나는 날인 1월 1일에 ‘성모 마리아 성탄’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다. 이후 이 축일은 2월 2일, 3월 25일 등으로 옮겨 지내다 1931년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을 맞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10월 11일로 지냈다. 그러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으로 다시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복원됐다.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구원의 문을 여는 성모님께 새해 첫날을 봉헌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날은 주님 성탄의 팔일 축제로서 구원의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주신 거룩한 어머니께 드리는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이다. 또한, 새해 축복과 평화 기원, 주님의 할례 등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지내오던 축일 내용을 그 이면에 포함하고 있다.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7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제정했다. 이날은 갓 태어나신 평화의 왕을 경배하고,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루카 2,14 참조)을 다시 한 번 들으며, 평화의 모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고귀한 선물을 청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제정 의미를 밝혔다.(「마리아 공경」 5항 참조)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12.28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느끼며 기쁘게[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6) 하느님 자녀로 사는 삶의 기쁨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삶은 흥겨운 잔치로 변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아름답게 표현한 문구다. 요한 복음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요한 2,1-12 참조)로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을 알린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기에(요한 1,14 참조), 그분과 함께하는 우리 삶은 포도주와 같이 마음을 흥겹게 하는 잔치가 된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잔칫집에 술이 빠질 수 없듯, 그리스도인의 삶에 예수님이 빠진다면 ‘앙꼬 없는 찐빵’처럼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할 것이다. 신앙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이요 흥겨운 잔치다. 이것이 신약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실제로 예수님은 삶을 잔치처럼 사셨으며, 그 기쁨의 삶으로 모든 사람을 초대하셨다.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을 담고 있는 ‘산상 설교’(마태 5-7장)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초대장이다. 예수님은 고리타분한 가르침이나 고역과 같이 의무로 부과된 계명이 아닌, 흥겹게 사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 삶이란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이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하느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살피시며, 당신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후하게 넘치도록 베풀어주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시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11) 그런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의 삶은 기쁨이며 환희일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따뜻한 품 안에서 느끼는 위로요 위안이며 든든함이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물론 인간사에는 고난과 시련, 근심과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각자가 처한 삶의 상황도 모두 다르다. 가난할 때도, 슬플 때도,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를 때도 박해를 받을 때도 있다. 온유하고 자비롭고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꿈꾸기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때도 있다.(마태 5,3-12 참조) 그렇지만 하느님의 자녀는 세상 사람이 보는 것 너머로, 하느님 아버지의 크신 뜻과 계획을, 그리고 자녀에게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믿고 희망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약속이 당신 자녀들 안에서 영원히 이루어질 것이며, 그분 정의와 자비가 결국 승리할 것임을 확신한다. 하느님 자녀로 사는 기쁨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매일 주어지는 그 날의 고생 앞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절망과 의기소침과 싸우는 영적 싸움의 연속이다.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현존을 믿고, 우리를 끝까지 돌보고 지켜 주시리라는 그분의 약속에 희망을 둘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새롭게 각자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아드님을 통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눈을 뜰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쁨의 싸움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 하느님께서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실 것임을 확신할 때, 인간의 힘으로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여러 상황도 극복될 것이며, 아버지의 자녀로서 누리는 참 행복을 지금 여기서 맛볼 것이기 때문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 cpbc2023.09.01

그리스도의 위대한 순간들과 이를 기록한 저자들스페인 교회 대표하는 곤잘레스 신부, 그리스도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신학적 성찰 정리 그리스도론 / 올레가리오 곤잘레스 신부 지음 / 윤주현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개인적인 생애와 관련된 사실들을 전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분이 선포하는 보편적 진리에 대한 해명을 통해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신앙 고백에 대해 설명하고 그 고백의 근거를 밝히는 신학의 한 분야다.”(‘도입: 그리스도론’ 중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주요 주제를 집약적으로 소개한 「그리스도론」이 출간됐다. 책은 교부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위대한 순간들과 이를 기록한 최고의 저자들을 소개한다. 저자인 올레가리오 곤잘레스 신부(1934~)는 스페인 교회를 대표하는 교의 신학자이다. 살라망카대학교 교의 신학 교수, 국제 신학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출간한 저서만 약 100권에 달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제정한 ‘라칭거상’(2011년)을 비롯해 ‘에스파사상’(1984), ‘아빌라 문학상’(2002) 등 교회와 스페인 정부의 권위 있는 여러 학술상을 수상했다. 책은 스페인 신학계를 대표하는 「BAC 시리즈」를 통해 2001년에 첫선을 보였고, 2012년 개정판을 통해 그리스도론 분야의 최신 연구들도 담았다. 세계 각지의 신학대학에서 교재로 사용 중이며, 그에 맞게 신학적 공동체에서 승인된 인식들을 문헌을 통해 입증하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은 예수님의 역사와 인격, 사명을 담기 위해 제1부에서는 성경의 그리스도론을 제시하고, 제2부에서는 교도권과 각 시대의 신학에서 성찰된 역사적 그리스도, 제3부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명에 대한 체계적인 신학적 성찰을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이레네우스,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 안셀무스, 토마스, 십자가의 요한, 예수의 데레사, 로욜라의 이냐시오 등 각기 다른 문화와 지리, 역사적 체험을 지닌 사람들의 삶과 사상, 그리고 행위를 살펴본다. 책을 번역한 윤주현(가르멜 수도회) 신부는 “본서는 인류 구원의 요체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숙고된 광범위한 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며 “분량 면에서도 독자들은 충분히 각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와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들을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5.11

프란치스코 교황, 시노드 중 "교회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 거듭 강조"우리는 단편적인 세계 대전 살고 있어." 인류 위기에 두려움 느끼지 말고, 갈등 관리가 곧 지혜 조언 프란치스코 교황. OSV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는 모든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며 바티칸에서 열리고 있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가 시대의 도전 속 변화를 위한 노력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통신사 텔람(Telam)이 보편 교회의 시노드 열기가 한창인 17일 공개한 인터뷰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시작될 때부터 요한 23세 교황님은 ‘교회가 변해야 한다’는 매우 분명한 인식을 갖고 계셨으며, 바오로 6세 교황님은 물론, 이분들을 계승한 모든 교황님들도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교황은 “교회의 변화는 단순히 유행을 따라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며 “개개인의 존엄성을 증진하고, 신학은 물론, 심지어 신앙과 과학, 성경의 해석과 관련한 진일보를 이루는 것이며, 교회는 이러한 흐름에 따라 조화를 이루고 발전해 왔다”고 거듭 설명했다. 교황은 “공의회부터 지금까지 교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불변하는 진리를 제시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지 늘 생각한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교회 교리는 변하지 않으며, 나무의 수액처럼 자라고 발전하며 승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편 교회가 모든 하느님 백성이 참여해 대화하고 경청하며 성령의 식별을 따르는 일련의 시노드 과정이 교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통과 진보 사이의 보완을 제안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교황은 “교회는 인간의 관점에서 매우 진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면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지, 철학적 이론이 되신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의 모든 것은 그분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며, 진보는 인간성과 조화를 이룬 인도주의적이며 자애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노드 정기총회에 참석한 이들과 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OSV 교황은 현 인류에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진정한 가치를 증진해야 한다”면서 “현재 우리 세상에는 인간의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이끄는 주도적인 사람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기에서 혼자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은 출구를 빙빙 돌아 나가도록 항상 미로를 만들어 놓기 일쑤이기에 위기는 미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위기에 두려움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며 “위기는 우리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할 지 알려주는 목소리와 같다”고 조언했다. 교황은 특히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 중 하나는 위기에 대처하는 법”이라며 “이는 성숙함을 더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모든 국가가 겪는 정치적 위기만 봐도 여러 상황들을 봅니다. 그때마다 무엇을 합니까? 우리를 구원해 줄 분을 찾고 있습니까?”라며 “어디서 갈등이 있는지 찾아내고, 잡아서 해결해보자.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지혜이며, 또한 갈등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한 질문에 대해선 “현재 우리는 단편적인 세계 대전을 살고 있다”면서 “각국이 평화를 바라며 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특히 오늘날에는 발달된 모든 통신 기술을 이용할 수 있기에 보편적 대화, 보편적 만남을 더욱 이룰 수 있게 됐다”며 “보편적 만남과 대화의 적은 전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독재 정권으로부터 조성된 착취와 영토 지배가 전쟁의 근원”이라며 “의식을 지닌 대화의 주체끼리 만난다면 합의와 발전, 함께 걷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종교적, 정치적 차이를 넘어 우리의 양심을 하나로 묶는 것이 평화와 공동선 건설의 시작이라고 여기는가’하는 질문에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아는 것이 선행돼야 다른 이와 대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교황은 “자신의 정체성을 모른다면 자신이 본대로만 가정하게 되고, 결국엔 자기 민족, 자기 나라와 가족마저 배반하게 된다”며 “가톨릭 신자가 타종교인과 대화를 해야 한다면, 상대방 또한 그의 신앙에 대한 모든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모두가 평화를 위한 역할을 해주길 거듭 당부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묻는 물음에는 “(위를 올려다보며) 그분께 물어보세요”라면서 “하느님께 저를 표현하는 방식은 언제나 단순하며, 가끔 위를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없으니 이 문제를 해결하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항상 위에서 오는 빛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강력한 세 가지 특성은 친밀함, 자비, 부드러움”이라며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하시며 놀라운 인내를 지니고 계시며, 하느님은 부드럽고 섬세하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이정훈2023.10.19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말말 악마가 사용하는 세 가지 독“악마는 우리를 하느님과 갈라놓고, 교회 공동체를 공격하기 위해 3가지 독을 사용합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 불신, 권력욕이라는 위험한 독입니다. 악마는 그 독으로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그 독으로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마태 4,1-11)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악마와 토론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느님 말씀으로 응수했습니다. 물질로부터의 자유, 신뢰, 하느님에 대한 봉사를 성경에서 인용해 악마를 물리쳤습니다. 만일 내게 악덕이 있거나 자꾸 유혹을 느낀다면 하느님 말씀 중에 그러한 악에 응답하신 구절을 찾아 도움을 받으십시오.” - 2월 26일 주일 삼종기도 훈화복음은 이념이 아닙니다.“교회에서 이념적 분열처럼 보이는 결정 사항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보수적이어서…’, ‘나는 진보적이어서…’ 라는 식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어디에 계시나요? 복음은 사상이나 이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우파든 좌파든 중도든, 어떤 사상이나 이념에 빠진다면 그건 복음을 정당, 이념, 사교모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에 생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 기도하지 않고, 성령께 청하지 않는다면, 무익하고 소모적인 논쟁과 양극화 속에 갇혀 선교 사명의 불꽃이 꺼지게 될 것입니다.” - 2월 22일 신앙인의 사도적 열정에 대한 교리교육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cpbc2023.02.28
[지향 INTENTIO] 성 요셉, 성교회의 수호자‘성 요셉과 어린 예수’가 있는 상본, 1950, 박희경(수산나) 기증 성 요셉, 성교회의 수호자이 상본에 인쇄된 사진은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마리 버나드 신부(F. Marie-Bernard, 본명 Louis Richomme, 1883~1975)의 작품 중 하나인 ‘성 요셉과 어린 예수’(프랑스 라게 성모성지)이다. 아버지의 무릎에 선 채 기도를 올리는 어린 예수를, 의자에 앉은 요셉 성인이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며 인자하고 경건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의 양부인 요셉 성인은 그 생애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깊은 신심과 의로움, 성실하고 자비로운 심성의 소유자로 비치고 있다. 성화에서는 보통 이러한 면이 반영되어 성가정의 가장으로서 마리아와 예수와 함께 묘사되거나 아기 예수를 안은 모습, 또는 ‘목수’로서 일하는 모습 등으로 표현된다.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요셉 성인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여 성가정을 지키고 보호하신 모범과 같이 교회의 보호와 발전을 위해 함께 하시는 수호자이심을 알렸다. 오늘날 교회는 성 요셉 대축일(3월 19일)이 있는 3월을 요셉 성월로 기념해 지내며, 신앙인의 모범이며 세계 교회의 수호자인 성 요셉의 덕을 기리고 본받는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박찬정(안나) 학예연구사※ ‘상본’을 소재로 한 특별기획전 ‘지향 INTENTIO’은 서울 합정동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cpbc2023.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