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 성 토마스 사도 (7월 3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6/28/Vnl1687911941548.jpg)
[금주의 성인] 성 토마스 사도 (7월 3일)+72년경, 갈릴래아 출생 추정, 사도, 인도 교회의 사도이자 수호성인 토마스 사도는 갈릴래아 출신으로 추정되며, ‘쌍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토마스’라는 이름이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쌍둥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토마스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명이지만, 언제 어디서 사도로 뽑혔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공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열두 사도의 명단을 언급할 때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토마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 네 번의 사건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중 세 번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베타니아에 사는 마르타 성녀와 마리아 성녀의 오빠인 라자루스 성인이 죽음에서 부활할 때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하느님 아버지에게 가는 길에 대해 말씀하실 때입니다. 토마스는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하고 여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답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가장 잘 알려진 사건,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다고 했을 때 토마스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여드레 뒤 토마스가 제자들과 함께 모여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하며 장엄하게 신앙을 고백했고,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하십니다. 토마스의 신앙 고백은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유일하고도 명백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셨을 때, 토마스도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제자와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이후 토마스의 행적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전승을 통해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첸나이(옛 마드라스)에는 토마스가 순교하고 묻힌 무덤 위에 있었던 성전 위에 19세기 말 포르투갈 교회가 재건한 성 토마스 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성당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과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주교좌성당과 함께 사도들의 무덤 위에 건립된 성당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72년 성 토마스 사도의 순교 1900주년을 맞아 그를 ‘인도 교회의 사도이자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2023.06.23
![[생활 속의 복음] 교황 주일-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6/28/D6I1687915327431.jpg)
[생활 속의 복음] 교황 주일-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과는 다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하늘을 향하는 ‘하늘의 시민’(필리 3,20)입니다. 하늘의 시민은 사도 바오로의 권고대로 세상과는 대조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 2,14-15)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례성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줍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 제2독서) 세례를 통해 이루어지는 옛사람에서 새사람에로의 전환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선물은 동시에 과제도 안겨 줍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사람으로 태어났으니 계속 새사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새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은, 은총의 선물인 ‘새로움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계속 밝게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노력이란 구체적으로 성경을 통해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사를 통해 전해지는 그분의 손길에 의탁하고, 그분을 닮도록 부지런히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아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세례를 주고 복음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십니다.(마태 28,19-20) 제자들은 스승의 명에 따라 만방에 가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복음 선포를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가족도 뒤로하고 십자가를 지고 목숨까지도 포기할 각오를 하라고 하십니다.(마태 10,37-42 | 복음) 인간적으로 보면 매우 힘들고 험한 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필요한 때에 제자들을 돕는 이들을 보내주시는데, 그들에게는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엘리사 예언자를 도와주었던 여인이 큰 축복을 받았듯이(제1독서), 예수님의 제자를 예언자로, 의인으로 받아들여 도움을 주는 이들에게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맡겨진 복음 선포의 사명은 교회를 통해 계속됩니다. 사제와 평신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확신 있게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의 힘으로 인간이 거룩하게 되고 현세 질서가 개선되도록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런 교회의 복음 선포 사명을 선두에서 지휘하는 분이 교황님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시도록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협력하면 좋겠습니다.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 서울대교구 총대리cpbc2023.06.23
부산가톨릭대 부총장에 염철호 신부 임명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총장 홍경완 신부) 부총장에 염철호 신부가 9일 임명됐다. 신임 부총장 염철호 신부는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1년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해 신학사와 신학석사를 취득하고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2008년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2014년에는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인지의미론으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염 신부는 2009년부터 부산가톨릭대 성서학 교수로 재직했고 신학대학 사무처장, 신학교정운영본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대학혁신추진단장, 대외협력처장, 정보전산원장, 인문학연구소장을 겸직하고 있다. 염 신부의 대표 저서로는 「바오로 서간(바오로 딸, 2017)」, 「배워봅시다 성경언어(성서와 함께, 2020)」 등이 있고, 역서로는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바오로 딸, 2012)」, 「신약성경 연구 방법론(바오로, 2015)」, 「자비의 집(바오로 2016)」, 「길 진리 생명 해설 성경(성바오로, 2020)」 등이 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cpbc2022.08.11
![[신앙단상] 부캐 클라라(허송연, 클라라, 아나운서)](//cpbc.co.kr/CMS/newspaper/2022/09/rc/831873_1.1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부캐 클라라(허송연, 클라라, 아나운서) 요즘 엠제트(MZ) 세대 사이에서는 ‘부캐’라는 단어가 인기가 많습니다. 본캐(본래 캐릭터)는 원래 본인이 가지고 있는 본래 자아를 말하고, 부캐(부가 캐릭터)는 본캐와는 다른 새로운 자아를 일컫습니다. 클라라가 성당에서는 저의 세례명이지만 지인들 사이에서는 저의 부캐를 클라라라고 말합니다. 별명처럼 불리는 클라라라는 부캐는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제작한 ‘성경원정대’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생긴 별명입니다.돌아보면 하느님께서는 항상 제 기도를 들어주셨는데, 방송을 시작할 때부터 저는 저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다양한 방송을 하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현재 정말 감사하게도 저만의 색깔을 잘 찾아 다양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톨릭평화방송에서도 방송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곳에서 ‘성경원정대’라는 프로그램을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원정대’는 해당 방송사에서 처음 시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주일학교에 나가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성경원정대원들이 나서서 퀴즈를 풀고 대결을 해서, 이긴 팀의 본당에 간식을 배달해 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성경원정대 녹화를 위해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하루에 2편씩 촬영했고, 가톨릭평화방송 역사상 가장 많은 카메라와 인력을 동원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촬영에서 제작진과 출연진들 모두 손발을 맞추는 일이 수월하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부딪히면서도 신앙 안에서 많은 대화와 같은 지향으로 함께 잘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제가 신앙의 끈을 놓으려 할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신기하게 계속 그 끈을 놓지 못하도록 연결해 주셔서, 교사가 끝나고 나서는 복음화학교로 가게 하셨고, 방송을 하면서는 가톨릭계 방송을 할 수 있게 하셨고, 지금은 이렇게 주보에 글을 쓰도록 불러 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함께 작용하게 하셔서 선으로 이끄신다는 말씀이 정말 맞다는 것을 살면서 느끼고 있습니다.제가 허송연 클라라인 것을 제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성당에서는 당연한 세례명이 밖에서는 부캐 클라라라는 별명으로 성당에서보다 생활 속에서 더 많이 불리게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하느님의 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어서 불편함(?)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저 때문에 하느님을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더 조심하게 되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한 번 더 불러주는 클라라라는 부캐 덕분에 저는 오늘도 생활 속에서 속상할 때는 주님께 하소연하고, 힘든 사람을 보면 내 일처럼 함께 슬퍼하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늘 좋게 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만 전하는 허송연 클라라로 살고 있습니다. cpbc2022.09.20

가톨릭 콘텐츠 전문 온라인 서비스(OTT) ‘cpbc플러스’ 3월 출시 CPBC, 가톨릭 콘텐츠의 모든 것 담아… 새로운 선교의 장 기대 cpbc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사장 조정래 신부, 이하 가톨릭평화방송)이 가톨릭 콘텐츠 전문 온라인 서비스(OTT) ‘cpbc플러스’를 3월 출시한다. 국내에서 가톨릭 콘텐츠 OTT 서비스를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cpbc플러스’ 출시로 국내 600만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교회를 사랑하는 누구나 가톨릭 콘텐츠를 손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용 요금은 무료이며, 회원 가입 및 본인 인증만 하면 모든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가톨릭 OTT ‘cpbc플러스’는 가톨릭평화방송과 뉴미디어 서비스 전문 기업 SBSi가 2022년 여름부터 아마존 웹서비스(AWS) 클라우드 기반으로 개발을 시작해서 오는 3월 출시하게 됐으며 먼저 총 46만 개의 가톨릭 콘텐츠를 서비스한다. ‘cpbc플러스’는 지난 35년간 가톨릭평화방송이 TV, 라디오, 신문을 통해 제작해 축적한 자사 콘텐츠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선보이는 가톨릭 신앙의 보물창고와 같다. 자사가 제작한 콘텐츠 외에도 그간 국내외에서 선보였던 다양한 가톨릭 콘텐츠를 통합해 이용자 취향에 맞게 제공할 계획이다. ‘cpbc플러스’는 VOD(영상 콘텐츠), AOD(음성 콘텐츠), 뉴스, 라이브러리 등 4개 카테고리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도록 구성됐다. 검색 기능을 통해 교회와 신앙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풍성한 콘텐츠를 만나 볼 수 있다. VOD는 가톨릭평화방송 TV 프로그램과 해외 영화, 가톨릭 크리에이터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하며, 약 21만 개에 이른다. AOD를 통해서는 약 2만 개의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방송과 오디오 콘텐츠를 들을 수 있다. 아울러 매일 생생한 교회 소식을 전하는 cpbc TV 뉴스와 라디오 보도, 가톨릭평화신문 기사도 매일 ‘cpbc플러스’ 뉴스 코너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또한, 가톨릭평화신문이 오랜 세월 취재 및 보도하며 축적한 23만 개에 이르는 한국 천주교 역사와 교리, 영성, 가톨릭 문화에 관한 방대한 연재물도 라이브러리 코너를 통해 볼 수 있다. 교회 사목자와 수도자, 신자 누구나 열람할 수 있으며, 특히 이는 신자들의 신앙 교육 자료로도 널리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목에 필요한 각종 콘텐츠부터 교회 안팎의 뉴스, 교육용 자료들을 망라한 새로운 플랫폼이 탄생하는 것이다. 가톨릭평화방송 이로물로 콘텐츠제작본부장은 “‘cpbc플러스’는 이용자 성향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 맞춤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또한 전례 시기별, 이슈별 큐레이션(추천)을 통해 보다 편리하게 신앙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cpbc플러스’의 차별화된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cpbc플러스’ 출시를 기념해 야심차게 준비한 콘텐츠도 주목할 만하다. 이 시대의 존경받는 시인 이해인 수녀의 삶을 조명한 프로그램을 비롯해 유명 유튜버 밀라논나(장명숙 안젤라메리치)의 첫 cpbc 콘텐츠를 통해 젊은 세대와 소통한다. 또한 ‘성 요한 23세’, ‘성 요한 바오로 2세’, ‘성 바오로 6세’, ‘성 필립보네리’, ‘성 돈보스코’, ‘성 마더데레사’, ‘마태오 복음’ 등 해외에서 제작한 수준 높은 가톨릭 영화들도 감동을 전한다. 나아가 지금도 모두에게 존경받는 故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따뜻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인터렉티브 시리즈 기사를 시작으로 한국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었던 교회의 인물들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다. 가톨릭 성경 73권 전권을 녹음한 ‘오디오 성경’도 제공된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오디오 콘텐츠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는 시대에 이용자들이 운전·산책·피트니스·청소 등 일상 중에도 오디오 성경을 듣고 묵상할 수 있도록 제공될 예정이다. 코로나19로 2020년 2월 한국 천주교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 미사가 중단됐던 초유의 사태 이후, 한국 천주교회에는 시대의 변화에 맞는 보완적 대안에 대한 요구가 제기돼 왔다. 이에 부응하고자 가톨릭 종합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cpbc플러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가톨릭평화방송은 1988년 ‘평화신문’ 창간, 1990년 ‘PBC FM’ 개국, 1995년 ‘평화방송 TV’ 개국에 이어 올해 OTT 서비스인 ‘cpbc플러스’를 출시하며 TV, 라디오, 신문, 그리고 가톨릭 OTT 서비스까지 보유한 국내 최초의 방송국이 됐다. 특히, 가톨릭평화방송은 지난해 8월 전 세계 가톨릭 언론인의 축제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 주관 방송사로 도약하며 한국의 가톨릭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바 있다. 세계 가톨릭 교회와 소통하는 가톨릭평화방송이 새롭게 선보일 ‘cpbc플러스’를 계기로 수십만 개에 이르는 한국 가톨릭 콘텐츠와 더불어 다양한 해외 가톨릭 콘텐츠도 수입해 선보일 계획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고품격 가톨릭 콘텐츠를 제공하고, 가톨릭 한류, K-가톨릭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 가톨릭평화방송 사장 조정래 신부는 “가톨릭평화방송은 신문, 라디오, TV에 이어 4번째 매체를 개국하게 됐다”며 “모바일과 PC로 손쉽고 간편하게 만나볼 수 있는 차별화된 서비스인 ‘cpbc플러스’를 통해 일상에서 신앙의 삶을 살고, 이를 통해 교회를 더욱 알리고, 천주교 신자들은 언제든 자신의 일상 안에서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길 바란다. 가톨릭교회가 다시 활성화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혼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3.02.06

교회 미술의 전통, ‘이콘’의 모든 것 다룬 번역서 출간「이콘 그리고 동방의 얼굴들 미와 빛의 신학」 장긍선 신부·이콘연구소 회원들이 번역 ‘이콘 종합 백과사전’과도 같은 격의 신간인 「이콘 그리고 동방의 얼굴들 미와 빛의 신학」을 이콘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번역한 장긍선 신부가 이 책에 실린 이콘을 소개해 주고 있다. 이콘(ICON, εκον, Икона). ‘형상’ 혹은 ‘모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이콘은 성미술의 정수로 꼽힌다. 성경에 대한 관상 신학에 예술가의 자질이 결합돼 2000년의 교회 미술 전통으로 내려왔다. 동방 정교회 성미술이라고만 치부해 버리기엔, 이콘은 카타콤베(Le Catacombe) 성화나 성 다미아노 십자가에서 볼 수 있듯이 초기 교회부터 비롯됐을 뿐 아니라 참된 가톨릭 신앙과도 일치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신비에 대한 깊은 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한국 천주교회에서도 이콘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고, 궁금해하거나 관심을 갖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처럼 이콘은 이미 우리 신앙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이콘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부분부분의 디테일이 갖는 의미나 상징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저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이콘의 의미와 상징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이콘 종합 백과사전’과도 같은 신간이 나왔다. 「이콘 그리고 동방의 얼굴들 미와 빛의 신학」(기쁜소식)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미술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알프레도 트레디고가 쓴 같은 제목의 이탈리아어판 저술이 원전이다. 이를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담당 장긍선 신부와 이콘연구소 회원들, 전문 번역가인 김정윤(클라라)씨, 포콜라레 종합예술단체인 ‘젠 베르데’ 단원 출신 민순신(마리아 레지나)씨 등이 3년에 걸친 번역 작업 끝에 최근 선보였다. 여기에 정교회 관련 용어 해설과 사진 도판이 부록으로 덧보태졌다. 비록 저서가 아니라 번역서지만, 아직은 척박한 한국 교회의 이콘 제작과 연구에 의미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446쪽 분량의 컬러 도판으로 채워진 이 책은 주제별로 400여 점의 이콘을 소개하고 있다. 정교회 성당 안에서 지성소와 신자석 사이에 이콘들로 채워진 성화벽(Iconostasis)과 정교회 교회력에 따른 이콘들을 비롯해 구약성경, 복음 이야기와 축일,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구세주 그리스도, 사도와 순교자들, 초기 주교들, 동방의 수도(修道) 성인들, 러시아 성인들 관련 이콘이 주제별로 등장한다. 이콘의 역사는 가능한 한 간략하게 소개하고, 개별 이콘의 역사나 관련된 기적, 이콘의 근거가 되는 성경이나 전례서 구절, 축일 날짜에 따른 이콘 등을 위주로 해설한다. 이 책은 특히 이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콘하면, 아직도 ‘베낀다’는 말이 나오는데, 전 세계에 똑같은 이콘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콘도 교회가 정한 틀 안에서 제작하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제작하는 이의 기도, 영성, 미적 재능이 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같은 이콘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콘 제작은 성경필사에 비유되곤 합니다. 성경을 읽고 쓰듯이, 이콘도 보는 게 아니라 ‘읽는다’고 하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쓴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콘을 쓰는 작가의 영성과 기도가 가장 중요한 물감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이 책을 내는 데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특히, 정교회의 용어를 뉘앙스까지 살려가며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최대한 정교회의 도움을 받아 우리말로 옮겼지만, 고유의 슬라브어 단어를 그대로 쓴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 책의 대표 번역자이자 감수자인 장긍선 신부는 이렇게 말한 뒤 이콘을 불화에 비유하고, “불화를 알려면, 불교 경전을 알아야 하듯이, 성화나 이콘을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성경을 알아야 하고, 교리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신부는 이어 “이콘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생소하지만, 그래도 교회가 분열되기 이전의 하나였던 교회의 전통이었고 우리가 요즘 잘 접할 수 없는 초기 교회의 신앙과 영성을 우리에게 잘 소개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이콘에 담긴 초기 교회 신자들의 정신과 영성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고, 또 예수님이 원하셨던 하나였던 교회, 하나인 교회, 초대 교회로 되돌아가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10.04

의정부교구 청소년국, 국제 청년 미사 봉헌한국, 베트남, 필리핀, 동티모르 청년 등 함께해 의정부교구 청소년국이 마련한 국제 청년 미사에 참가한 청년들이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신앙 안에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8개국 청년 300여 명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친교를 나누고 하나의 신앙을 확인했다. 의정부교구 청소년국(국장 홍석정 신부)이 2일 녹양동성당에서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들었다’(사도 2, 8 참조)를 주제로 개최한 ‘국제 청년 미사’에서다. 이날 미사에는 한국 청년을 비롯해 베트남, 필리핀, 동티모르, 인도, 아이티, 우간다, 나이지리아 청년들이 함께하며 젊은이 신앙 축제를 방불케 했다.<사진> 코로나19로 신앙과 급격하게 멀어진 교회 내 청년들의 상황을 개선하고자 마련한 자리로, 청소년국은 무엇보다 청년의 입장에서 하느님을 뜨겁게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특히 한국에 있는 세계 여러 나라 공동체들이 각자는 소수이지만, 함께 모였을 때 더 크게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신앙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도록 미사와 행사를 마련했다. 베트남 가톨릭공동체 키유 디엔(마리아 막달레나) 회장은 “오늘을 위해 베트남 커피와 코코넛 밀크티 등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며 “코로나19 이후 정말 오랜만에 서로의 문화를 나누면서 행복한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이날 함께한 동티모르 출신 올리비오 신부(살레시오회)는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뜨겁게 느꼈다”며 “신앙인의 특별함과 아름다움은 이렇듯 함께 모일 때 더 크게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정부교구 청소년국이 마련한 국제 청년 미사에 참가한 청년들이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미사 주례로 청년들과 함께한 이기헌 주교 역시 강론에서 “신앙인은 국적, 언어, 생김새, 남자와 여자, 가난한 이와 부자를 구분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이고, 성체 안에서 하나의 신앙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계 젊은이들은 신앙 안에서 하나 된 형제자매들이고, 신앙 안에 사는 사람은 역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타인을 돌보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며 “여러분이 그 마음을 닮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이날 미사는 영어로 진행됐다. 성가는 각국 언어로 불려 풍요로움을 더했다. 미사 반주자 이찬솔(젬마, 구리본당)씨는 “여러 나라 성가를 접하고 함께하면서 언어를 뛰어넘는 하나 됨을 느꼈고, 각국 언어로 봉헌하는 기도에서도 모두가 신앙 안에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미사 후에는 디너쇼 형식으로 마련된 아가페 시간이 이어져, 저마다 자기 나라의 노래와 춤으로 끼를 펼쳤다. 청년들은 다른 나라 젊은이들이 무대에 설 때 더 큰 환호로 응원하며 열띤 시간을 보냈다. 홍석정 신부는 “국제 청년 미사란 이름으로 개최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성경 구절대로 각국 청년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하느님을 체험하며 성령의 뜨거움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는 유럽 청년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 중”이라며 “국제 청년 미사가 청년 사목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3.07.03

인간과 신이 만나는 공간, 불광동·양덕동성당과 경동교회를 짓다[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34)김수근 바오로(하) 김수근이 설계한 3대 종교 건축물로 서울 불광동성당과 마산 양덕동성당, 경동교회가 있다. 출처=김수근문화재단 홈페이지 활발한 건축 활동 김수근(바오로, 金壽根, 1931-1986)이 아끼던 것 중에 하나가 공간 사옥 담장에 있는 덩굴이었다. 어느 날 김수근은 담쟁이덩굴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김수근은 관리자를 불러 크게 야단쳤다. 마침 그곳에서 근무하던 젊은 건축가가 그 모습을 보았다. 담쟁이 하나 때문에 사람이 저렇게 야단맞고 무시당하는 것을 보고 분노가 끓어올랐다. 며칠 후, 그 건축가는 술에 취해 사옥 입구에 있는 담쟁이덩굴을 꽤 많이 뜯어냈다. 다음 날 ‘공간’ 사람들은 흉한 모습을 한 사옥 입구 풍경을 보고 김수근이 그 건축가에게 혹독한 조치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 건축가도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질 각오를 하고 있었다. 김수근은 이 일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건축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한 이런 일도 있었다. ‘공간’에서 직원 전체 회의가 열렸다. 사무실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월급도 밀렸고, 직책은 자꾸 늘어만 간다. 회의 분위기는 경직되었다. 김수근은 회의 마무리에 “‘공간’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줄 서 있으니 나갈 사람은 언제든지 나가라”고 했다. 이에 대해 그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 한 젊은 건축가가 입을 열었다. “밤새워 일하는 우리에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기를 알고 하시는 말입니까?” 이에 대해 김수근은 “여기가 군대냐? 사기는 무슨 사기냐?” 그 건축가가 그 말을 맞받았다. “군대보다 더하지요.” 우리나라가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정되었다. 김수근은 올림픽 경기장 설계를 맡았다. 가장 흥미로운 경기장은 체조 경기장이었다. 하늘에 커다란 천막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독특한 구조였다. 더구나 빛을 투과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 낮이나 밤이나 경기장은 환하게 빛났다. 김수근은 올림픽 경기장 건축으로 대한민국에도 건축가가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렸다. 김수근은 건축방식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건축재료를 콘크리트에서 벽돌로 바꾼 것이다. 벽돌은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과 함께 강인함을 주었다. 김수근은 그런 특성을 지닌 벽돌을 좋아했다.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詩)’라고 할 정도로 벽돌을 예찬했다. 그래서 탄생한 건축물이 불광동성당, 양덕동성당, 경동교회, 아르코 미술관, 아르코 예술극장, 샘터 사옥이었다. 서울대교구 불광동성당 서울대교구 불광동성당 김수근이 설계한 3대 종교 건축물은 불광동성당, 양덕동성당, 경동교회이다. 종교 건축물은 ‘인간과 신이 만나는 공간’이며 ‘인간 공동체의 공간’이다. 김수근은 교회를 경건한 공간, 조용한 공간, 따듯한 공간이 되도록 했고, 예수님의 사랑과 고통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붉은 벽돌로 공간을 온통 감쌌다. 불광동성당은 5년 만에 완공됐다. 성전은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했다. 경사지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성전 주변을 돌며 기도와 묵상의 공간이 되도록 했다. 또한 성모 동산을 오르며 십자가의 길과 함께 대성전으로 이어지는 안마당은 친교와 나눔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불광동성당은 작은 성미술 전시장이다. 조각가 김세중이 ‘제단의 십자가’, ‘예수성심상’, ‘김대건 신부상’, ‘성모동산 성모상’, ‘대성전 14처’를 조각했고, 서울대 미대 민철홍 교수가 대성전 제단과 감실을 조각했고, 최봉자 수녀가 성체조배실 감실과 담장 십자가의 길을 조각했다. 어느 날, 마산에서 플라츠(한국명 박기홍) 신부가 김수근을 찾아왔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양덕성당을 지어달라고 했다. 김수근은 “나는 크리스찬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김수근은 실존적인 측면에서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신부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가 지향하는 점이 같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김수근은 성당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신부가 요청한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고, 단단하면서도 따뜻하며, 신비로우면서도 인간미가 풍기는 성당’을 짓기로 했다. 김수근은 나름대로 성당 건축의 이념을 생각했다. 첫째, 교회는 훌륭한 ‘화해의 장’이 되어야 한다. 둘째, 신자들이 하느님과 만나 영적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 셋째, 미사의 기능과 친교의 기능 그리고 선교의 기능과 사회 공익적 기능을 포함하는 ‘다원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 넷째, 권위주의를 지양하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환경의 장’이 되어야 한다. 마산교구 양덕동성당 마산교구 양덕동성당 양덕동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좁고 긴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신자들은 이 길을 걸으면서 마음을 경건하게 가다듬으며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한다. 양덕동성당은 불규칙한 다각형 공간이다. 그래서 도면으로 그려내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그런데 다행히 설계 책임을 진 젊은 건축가가 수학과 기하학의 지식을 갖고 있어 도면을 그릴 수 있었다. 김수근은 양덕동성당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세계 건축을 다루는 일본 잡지(「SD」) 표지에 성당 사진이 실렸고 김수근의 건축 작품들이 특집으로 다뤄졌다. 어떤 시인은 양덕성당을 이렇게 말했다. “양덕동성당은 건축가 자신의 마음의 감옥 같았다. 내용이 없는 죄의 아름다움처럼 쌓아 올린 벽돌담들은 이 세상의 지친 말들을 말없이 받아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모성의 벽이다.” 서울 경동교회 경동교회는 서울 도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강원룡 목사는 김수근에게 교회 건축을 부탁했다. 강 목사는 “우리나라 개신교는 청교도의 후예인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되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예술성이 거의 배제되었다. 집회소가 된 예배당은 상징과 이미지로 된 성경을 도덕 교과서로 도그마하여 ‘오늘 여기서’ 살아 숨 쉬는 진리를 화석으로 묻어 버렸다”라고 했다. 강 목사는 이런 자신의 생각에 맞는 건축가로 김수근을 택한 것이었다. 김수근은 경동교회를 불광동성당처럼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으로 설계했다. 그리고 교회 입구에서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길을 길게 돌렸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간 골고타 언덕을 표현한 것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성경 ‘요나서’에 나오는 큰 물고기 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병석에서 세례 받아 김수근은 하느님에게서 네 가지 재주를 부여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 재주는 ‘정치적인 수, 경제적인 능력, 건축적인 재질(才質), 문화적인 식견’이라고 했다. 김수근은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에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당시 병석에 있었는데 자신이 설계한 불광동성당 주임인 정의채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깨닫고 하느님을 받아들인 것이다. 김수근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에게 천주교로 개종하도록 간청했다. 어머니도 아들의 뜻을 받아들여 천주교로 개종했다. 아들을 사랑한 어머니는 아들의 종교까지도 사랑했다. 김수근의 꿈은 교육을 통해 젊은 건축가를 육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간아카데미’를 운영하려 했고, 국민대 조형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공간(空間)’을 경기도 파주 공릉에 지었다. 이렇게 그의 꿈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병이 찾아왔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을 했기에 간에 이상이 왔다. 한 소설가가 공릉의 병상을 찾아갔다.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다. 그때 김수근은 불쑥 “나 같은 죄 많은 사람도 하느님이 용서하실까?”하고 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마치 아기 같았다고 했다.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하루하루가 이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어”라고 고백했다. 김수근은 간암 말기였다. 담양 소쇄원으로 내려가 마지막 남은 삶을 정리했다. 그곳 대자연 앞에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결국 김수근은 쉰다섯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미안하다’였다. “겨레의 아름다운 삶의 공간 만들기에/ 한평생 몸과 마음 오롯이 바치시니/ 이 나라 현대건축에 큰 발자취 남기셨네/ 활달한 그 기상과 푸짐한 인정으로/ 폭넓게 사시면서 이웃예술 돌보시니/ 가시매 크옵신 인품 새록새록 그리워라.”(시인 구상) 참고자료 : ▲김수근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金壽根空間人生論). 공간사. 1989 ▲(재)김수근문화재단 엮음 「당신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 공간사. 2006 ▲황두진 「건축가 김수근」 나무숲. 2007 ▲승효상 「묵상」 돌베개. 2019 ▲불광동성당 홈페이지 cpbc2023.08.24

교황 “영적 세속성이 교회 안에 스며드는 것은 재앙”[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42. 영적 세속화 영적 세속성은 자기만족을 찾는 자아도취적 영성으로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하지 않고, 십자가를 바라보지만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는다. OSV “오, 가톨릭 신자군요.” 누군가의 손가락이나 손목에 묵주가 끼어 있는 것을 보면 반가워서 말을 걸게 된다. 그러면 돌아오는 말이 있다. “아, 기도는 잘 못해요.” 어쩌다 택시를 타면 운전석 위에 찰랑거리는 묵주나 십자가가 보인다. “신자이시군요” 하면 “아, 그냥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해요”라며 성물을 지니고만 있어도 행운이 올 것 같고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거리를 걷다가 혹은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가끔 묵주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스마트폰 기기를 쥐고 사는 이 시대에 묵주 알 돌리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로또 맞은 것처럼 반가운 일이다. 묵주로 기도를 하든, 그저 소지하고 다니든 공통점은 성물에서 안정감과 평화로운 느낌을 얻는다는 것이다. 악을 물리치고 복이 찾아올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느낌적인 느낌’이란 말이 어법에는 맞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참 많이 사용하고 있다. 기분이나 느낌이 중요한 시대에 이 말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어떤 느낌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지만, 그냥 너도나도 이해되는 그런 느낌이다. 굳이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알 것 같은 기분과 느낌, 복잡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좋은 느낌과 기분으로 살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 기기를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면서 기계에 예속되어 안정감을 찾듯이 우리 역시 묵주라는 성물에 예속되어 그 예속에 의한 ‘기분’의 덫에 갇혀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은 현대인의 지각 방식의 변화 중 하나가 예술작품이나 종교도 ‘관조’가 아닌, ‘기분 전환하는 오락’으로 수용되고 있다고 했다. 또 현대인이 즐겨보는 영화는 ‘충격 체험의 훈련장’이라고 했다. 엄청난 편집의 과정을 거친 빠른 속도의 영화는 잔인하건 자극적이건 폭력적이건 달콤하건 간에 팝콘을 먹으면서 즐긴다. 쉴새 없이 기관총으로 쏘아대며 피 터지게 구타하는 장면을 보고 나온 관객의 표정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온 사람들처럼 흥분한 모양새다. “와, 정말 재미있다!” 모든 총평은 생각을 막는 마법 같은 한 단어, ‘재미’다. 무엇이 재미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그 기분을 이해할 뿐이다. 우리는 점점 리얼리티보다 리얼리티쇼에 더 재미를 느끼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실제 상황에 참여하지 않아도 리얼리티쇼를 보면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하느님을 만난 체험과 하느님을 만나는 느낌은 분명 다르다. 기도를 하는 것과 기도를 한다고 느끼는 것과도 차이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의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에 빠져 마치 내가 그러한 사랑을 한다고 느끼는 감정과 내가 실제로 그렇게 사랑하는 것과도 매우 다르듯이 말이다. 영화 속 성인이나 영웅을 엿보는 일은 참으로 멋지고 기분 좋은 일이지만, 진짜 내가 선교사가 되고 기부 천사가 되는 일은 정말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기도하는 기분이나 느낌에 빠져 진짜 기도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여 묵주 알을 돌리고 기도하고 봉사활동도 하지만 나의 인내와 사랑 그리고 겸손과 평화라는 덕을 쌓는 노력과는 별개일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며 기도하는 입에서 한순간 이웃을 비난하기도 한다. 사실 디지털기기에 빠지는 것은 스마트폰이 꼭 유익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다만 디지털체험에서 주는 흥분과 재미라는 기분과 느낌에서 헤어나지 못할 뿐이다. 기도했다는 기분, 고해성사에서 용서받았다는 느낌, 신심 활동과 봉사활동으로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익숙한 감정을 얻어내는 그 기분과 느낌이 좋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본다. 말씀을 묵상하고 성사보고 묵주 기도하고, 그리고 좋은 강사 찾아다니면서 영성강좌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 벅찬 기쁨도 누리지만 딱 거기까지라면, 우리는 영성을 쇼핑하는 사람이고 기도하는 기분과 느낌만 소비할 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물리적인 세속화보다 교회 내 ‘영적 세속화’가 더 나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영적 세속성이 교회 안에 스며드는 것은 재앙”이라고 경고한다. 영적 세속성은 자기만족을 찾는 자아도취적 영성으로 사랑과 행복을 상품 소비하듯 즐기는 모습이다.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하지 않고 십자가를 바라보지만,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는다.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 사랑하는 기분과 느낌만 소비한다면 이 또한 영적 세속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성이 묻는 안부 누구나 신심 깊은 좋은 신앙인이 되고 싶겠지요. 수도자인 저 역시 영성이 깊은 좋은 수도자가 되고 싶고요. 그러면서 저 자신에게 묻게 돼요. 그렇게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지를요. 원하는 것과 사는 것의 간극이 큽니다. 어떻게 사람이 쉽게 변하느냐고요? 물론 쉽지 않죠. 아니 매우 어렵죠. 불가능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불가능을 체험해 본 적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죽을 만큼 노력해보았는데 안 돼!’라고 가슴 절절히 외쳐본 적이 있는지요. 위령 성월을 맞아 성경 한 줄에서 가슴이 움직인다면 바로 그 한 줄을 마음에 심어,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cpbc2023.10.27

코로나로 얼어붙은 청년 사목에 활력을서울 11지구 청년 가톨릭 골든벨정부 방역 지침 해제 후 첫 모임 “그리스어로 ‘함께’를 뜻하는 전치사와 ‘길, 여정’을 뜻하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지칭하는 이 단어는 무엇일까요?” 청년들이 신앙 퀴즈대회로 모처럼 하나가 됐다. 서울대교구 제11지구 청년연합회(담당 옥승만 신부)가 6월 24일 역삼동성당에서 마련한 ‘11지구 청년 가톨릭 골든벨’에서다. 정부의 방역 지침 해제 선언 이후 처음 열린 제11지구 청년연합회 모임이 퀴즈 대회로 꾸며졌다. 서울대교구 제11지구 청년연합회가 진행한 가톨릭 골든벨 참가자들이 퀴즈 답을 적어 들어 올리고 있다. 이날 마지막 문제에서 최후의 2인이 정답판에 적은 것은 ‘시노달리타스’와 ‘시노드’. 간발(?)의 차로 고은비(루치아, 33, 서울 역삼동본당)씨가 정답 ‘시노드’를 맞혀 골든벨의 주인공이 됐다. ‘가톨릭 골든벨’은 코로나19로 그간 얼어붙은 청년 사목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 마련됐다. 신앙 퀴즈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구 내 각 본당에서 청년과 신학생까지 35명이 참여했다. ‘서울대교구 내 성지를 모두 고르시오’, ‘칠성사를 모두 적으시오’ 등 다양한 문제에 청년들은 열심히 답안 작성에 임했다. 청년들은 성경, 교리, 전례 를 주제로 출제된 문제들 앞에서 답을 맞히고 환호하기도 하고, 탈락의 쓴맛을 맛보며 함께 웃었다. 특히 넌센스 문제로 나온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신약은?’의 답이 ‘에페소서’라고 밝혀지자, 장난스러운 항의도 이어졌다. 골든벨을 울린 고은비씨는 “문제가 예상보다는 좀 어려웠지만, 1등을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아쉽게 2등에 그친 조승래(요한 세례자, 36, 역삼동본당) 신학생은 “여름방학이라 본당에 사목 실습을 나와 있는 중에 청년들과 퀴즈에도 함께하게 돼 됐다”며 “저조차 어렵게 느껴진 문제들에 청년들의 관심이 뜨거워 놀랐고, 같은 청년으로서 젊은이들의 열기가 부활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골든벨 주인공에게 수여된 10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비롯해 이날 참가 청년들에게는 추첨을 통해 인형과 텀블러, 성모상, 가톨릭청년교리서 「유캣」 등이 안겨졌다. 커피 쿠폰 상은 지구 본당 신부들이 청년들을 위해 후원했다. 6월 24일 서울대교구 역삼동성당에서 제11지구 청년연합회 모임이 열렸다. 이날 모임에서는 가톨릭 골든벨 행사와 미사가 진행됐다. 제11지구 청년회장 최윤혜(가타리나, 33, 역삼동본당)씨는 “친교의 장에서 이왕이면 청년들이 교리를 되새기면서 즐겁게 참여할 활동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가톨릭 골든벨을 준비하게 됐다”며 “코로나19로 신앙이 많이 위축된 터라, 청년들이 많이 참여해줄지 걱정됐지만, 오늘 함께 즐거움을 나눠 뿌듯하다”고 밝혔다. 옥승만 신부는 이어진 미사 강론에서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늘 무언가를 이뤄야만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들 때가 많다”며 “타인과 비교하면서 사회가 말하는 사랑의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판단 기준에서 사랑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하느님 자녀라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박예슬2023.06.26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 그 너머 구원을 바라보며사순 시기 - 고통의 의미는 수많은 종교와 사상가들은 고통을 인간이 평생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로 여기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고민해왔다. 그중 의학과 과학은 고통을 줄이거나 없애고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했고, 많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인간의 삶 속에서 완전히 떼어 내지는 못했다.마주할 수밖에 없는 고통고통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있으며, 정신적 고통에는 감정적인 고통과 영적인 고통도 있다.최근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수많은 사람이 대지진으로 목숨을 잃었고, 남겨진 가족들은 큰 고통에 잠겼다.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희생당한 사람의 고통이 존재하고, 가해자도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미디어로 촘촘히 연결된 현대 사회는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고통의 비중도 크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러한 다양한 고통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하지만, 결국 또 다른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교회 역시 인간은 육체를 가진 유한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고통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더 깊은 차원으로 인도한다.고통의 신앙적 의미구약성경은 고통을 죄의 결과로 보며 그 궁극적인 원인을 원죄에 있다고 한다.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하느님의 벌인 것이다. 또한, 인류의 연대성으로 인간은 자신의 죄뿐 아니라 타인의 죄로 인해서도 고통을 당한다. 하지만 하느님이 고통을 허락하는 이유는 회개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치유의 목적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신약성경에서 고통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해진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발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였고, 고통이 인류의 구원과 당신의 영광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십자가의 고통은 아버지 뜻을 그대로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의 행위로 시작해 부활로써 십자가 사랑의 신비를 증명한다. 바오로 사도는 서간에서 십자가 상 죽음은 인간의 죄를 대속한 죽음이고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킨 제사임을 알려준다.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이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죽음을 넘어 부활의 희망으로교부들부터 현대 성인들까지,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르는 차원에서 자발적인 고통을 감수하고 나아가 고통받는 이들 곁에서 함께해 왔다.가르멜 영성연구소장 윤주현 신부(신학적 인간학 박사)는 “고통은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인간에게 큰 어려움을 준다”고 말했다. 실존적 한계를 가진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수많은 고통 앞에서 울부짖는 나약한 존재들이며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고통의 최종 목적지인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본모습을 그대로 직시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했다. 오히려 더욱더 주님을 향해 우리 마음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신부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신앙인들은 고통 앞에서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희망을 키워가야 한다”고 당부했다.또 오늘날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나 불의의 사고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 신앙인의 의무라고 밝혔다.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먼저 보여주셨기 때문이다.윤 신부는 “사순 시기를 맞아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러면서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에서 오는 고통을 줄여 성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럴 때 인류 구원을 향한 십자가를 짊어지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이학주2023.02.21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 재조명독일 출신 가톨릭 교회사학자 롤프 데콧이 종교개혁사 정리 안톤 폰 베르너 作 보름스 의회의 루터, 1877 출처=위키백과 간추린 독일 종교개혁사 / 롤프 데콧 신부 지음 / 김영식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종교개혁은 교회사는 물론이고 유럽사,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해 이미 수많은 저서가 나와 있다. 신학과 교회사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을 좁은 의미로 연구하는 저자들은 루터, 츠빙글리, 칼뱅 등과 같은 인물과 그들의 저서에 주목하며 당시 가톨릭교회의 상황 등을 다뤘고, ‘근대 초기’에 집중한 학자들은 종교개혁이 종교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전반에 변화를 일으켰음을 밝혀냈다. 독일 출신의 가톨릭 교회사학자인 롤프 데콧(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신부가 쓴 「간추린 독일 종교개혁사」는 개신교 종교개혁이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폭넓은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집필됐다. 그 출발점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며, 여기에는 신학적 측면도 고려되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개혁’과 ‘쇄신’이라는 두 중심축을 기준으로 종교개혁의 전제, 정치적 상황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종교개혁은 독일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유럽 전역은 물론 서구의 모든 그리스도교 세계가 연관된 사건이었다. 가톨릭교회를 둘러싼 제방이 터지자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수많은 사람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고,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쇄신을 추구했다. 책은 핵심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16세기 종교개혁이 신앙뿐 아니라 당시 정치와 사회 전반에 일으킨 변화를 살펴본다. “교회 쇄신을 촉진하려는 루터의 신학과 의지는 전적으로 성경의 출전에 기초했다. ‘원천으로의 회귀’를 표어로 삼은 인문주의 시대에 루터는 전거를 검토해야 하고 이 권위에 따라 기존의 모든 교회와 세속의 규정과 그 요구 사항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혁에 대한 이런 종류의 열망은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있었다. (중략) 그러나 루터가 예상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았던 다양한 요구가 이와 결합되었다.”(135쪽) “종교개혁의 초기 지지자였던 하층 귀족, 농민, 그리고 ‘평민’은 무대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도시 역시 공동 정책을 수립하지 못함으로써 추진력을 잃게 되었다. 1530년 이래로 도시는 종교개혁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제국의 역사에서도 어떤 독립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종교개혁의 승자는 지역 군주들이었다.”(105쪽) 종교개혁이 바랐던 전체 교회의 쇄신은 16세기에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으킨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의 해체는 각 영토에서 새 국가들이 탄생하는 결과와 함께 교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폐회된 뒤 가톨릭교회도 더는 1500년 무렵과 같지 않았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교회도 교의와 생활을 성찰했기 때문이다. 책은 500년 전 종교개혁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짚어본다. 글을 번역한 김영식(서울대교구 행운동본당 주임)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개신교와 가톨릭교회는 서로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며 “종교개혁의 역사를 정확히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방을 논박하는 무기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교회 일치를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6.19

말씀이 세상에 오셨고 그 분은 ‘빛’[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2) 빛에서 드러난 고유한 얼굴‘말씀’이 빛으로 오신다는 것 어둠에서 ‘새로운’ 것이 보이게 된다는 것… 삶에 희망을 주고 생명을 살리는 그 빛은 하느님의 사랑 그분에게서 나오는 빛과 아름다움, 그분을 바라보는 관조, 이것과 관계되는 시각에 관한 것이 이콘 형성이론의 바탕 그리스도, 프레스코, 4세기말, 베드로/마르첼리누스 카다콤바, 로마, 이탈리아. 긴 머리와 짧은 수염 그리고 머리에는 후광을 둘렀다. 그리스 문자로 A, W(Ω)를 썼다. 1. 인간의 조건 ‘주님, 당신의 얼굴을 보이소서.’ 유다인이 절실하게 하느님의 자비를 구원하는 외침입니다. 구약에서 유다인들이 그리도 원했던 하느님의 형상은 눈에 보이는 형체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로서 우리는 흔히 ‘천사는 날개 달린 존재’로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면 하늘에서 날아와야 하고, 그러려면 날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우리에게 넣어주신 하느님의 영(靈)만이 아니고, 인간이 볼 수 있는 얼굴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하느님께서 인간의 조건에 맞추어 ‘인간으로’ 나타나신다면 최상이 아닐까? 나라마다 섬기는 신들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보니, 특정 지역에 국한된 종교는 차츰 그 신빙성이 상실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종교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특성이 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첫째, 누구든지 출신과 관계없이 받아들일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 겨울나무처럼 죽었다가 봄이 되면 다시 싹이 트는 ‘부활’하는 개념이 있어야 하고, 셋째 ‘신과 합일’을 이룰 수 있는 종교여야 한다고 합니다. 당시의 그리스-로마 문화와 유다인의 문화를 깨고 ‘인간의 조건’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분이 부활했으며, ‘구세주’라고 하는 새로운 신앙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분은 유다인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도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설파하였는데(사도 10,34-43), ‘그분을 위해 모든 예언자가 증언하고 있으며,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외침은 사람들이 원하던 믿음의 특성에 부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둘 순교하고 그리스도교의 전파와 그분을 받아들일 체계적인 교리를 세울 필요가 점차 대두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호교(護敎) 철학자들이 참여했으며, 그들을 ‘아폴로파’¹)라 하였습니다.(1코린 1,12 참조) 당시 그리스도교 신앙은 국가가 인정하지 않았으나, 철학은 국가에서 묵인하는 편이었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육화한 ‘로고스’라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와 아들: (프레스코, 퀘메테리움 마이우스, 로마, 2세기 초.) 이 초기 이콘은 발전하여 ‘표징의 성모(Orans)’와 ‘하늘보다 더 넓으신 성모’(Platytera)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양측에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이 표현되어 있다. 2. 선하신 스승님 같은 이목구비여도 선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 있습니다. 어떤 권력가가 예수님께 “선하신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루카 18,19; 마르 10,17-18) 이렇듯 예수님은 ‘선한 분’이라고 칭송받으셨을 때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라고 겸손해 하셨습니다. ‘선(善)하다’라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타당성이 있을 법한 논리로 하느님에 대해 철학적 개념을 드러낸 학자가 있었습니다. 신플라톤 철학자 플로티누스(205?-270)는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빌려 새로운 방법적 ‘존재(存在)’의 논리를 전개하였습니다. 존재는 모든 사물, 또는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철학에서는 존재라 합니다. 그는 수많은 존재 중에 최상위의 존재를 초월자(超越者)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초월자에 의해 모든 존재가 창조되었고, 따라서 그분을 존재라 할 수 없기에 ‘일자’(一者)²)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의 사상에 의하면 일자(一者)는 모든 완전성의 원천이자 귀환의 종착점이고, ‘선’이라고 불릴 수 있고, 또한 그 선은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창조의 과정을 철학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즉, ‘일자(一者)는 빛이 넘쳐나서 그 빛이 흘러나와(유출) 누스(nous)라는 이성(理性)을 이루고 그로부터 영혼(psyche)이 흘러나오며, 그 영혼으로부터 질료(質料, matter)가 생겨난다. 그렇지만 그는 유출된 존재들은 관조(contemplation)를 통해 자신들을 일자에게로 귀환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하느님에게서 나온 모든 것은 교육, 명상과 기도 등의 노력을 통해 하느님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그의 사상이 논리적으로 모두 맞다고 할 수는 없어도 2~6세기에 라틴-비잔틴 세계의 여러 분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로써 그분에게서 나오는 빛과 아름다움(美), 그분을 바라보는 의미로써 관조(觀照), 그리고 이것과 관계되는 시각(視覺)에 관한 것이 이콘 형성이론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필리스티아 다곤 신을 치심: (프레스코, 3세기, 국립 박물관, 다마스쿠스.) 이 초기 이콘은 1사무 5, 1-4에 나오는 내용으로 필리스티아 인들이 하느님의 궤를 빼앗아 다곤 신전에 두었다가 다곤 신의 몸통이 모두 잘리는 처벌 내용을 표현하였다. 비잔틴 미술은 당시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비례, 균형에서 나오는 수(數)의 개념을 통한 황금 비율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황금 비율에서 나타난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보다, 내면적인 아름다움에 더 관심을 두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외형적인 미의 척도인 ‘수’의 개념보다는 내면적인 미를 통해 드러나는 ‘영혼’의 아름다움에 더 가치를 둔 까닭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가 선(善)에 대해 언급하자면 일자(一者)와 매우 일치되는 개념을 예수님께서 이미 언급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선을 언급한다면 하느님만이 선입니다. 그런데 오직 하느님만 선한 분이고, 예수님은 선한 분이 아닌가요? 요한 복음은 ‘말씀’이 세상에 오셨다고 언급하면서 그분은 ‘빛’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한 1,1; 4,9 참조) 성경을 읽다 보면 두 가지 면이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사실성, 두 번째는 상징성입니다. 복음 사가는 예수님의 수많은 행적 중에서 어떠한 행적을 골라 기술할 때에는 항상 그 뒤에 숨어있는 상징적인 내용을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예로서 소경이 눈을 뜬다는 것은 병을 낫게 하신 그분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다’라는 것은 치유된 눈에 의해 물체가 보이며, 그 물체를 본다는 것은 ‘빛’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즉, 복음사가는 ‘그분이야말로 빛’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말씀’이 빛으로 오신다는 것은 어둠에서 ‘새로운’ 것이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삶에 희망을 주고, 생명을 살리는 그 빛은 하느님의 사랑이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분께서는 선하신 아버지의 모습(요한 14,9-11)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으로 그분도 ‘선하신 분’, ‘임마누엘’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하신 분은 우리에게 오시어 하느님의 얼굴을 보여주시는 ‘단 하나뿐인 얼굴’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얼굴에서 보았던 선함은 그분 안에 ‘선하신 분이 내재해 계심으로써 얼굴에 나타나는 고유한 빛’이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2코린 4,6) 단 하나의 얼굴로 오신 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 각주 1)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은 성 유스티노(100?-165), 그리스 출신으로 135년 입교하여 165년 순교했다. 2)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나오고 들어가는 단 하나의 절대자. 3) 이사야 7장 14절에 나오는 내용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Immanu) 하느님(El)’. 김형부 마오로/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cpbc2024.01.02

축성된 빵과 포도주...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11) 실체 변화 개신교는 천주교의 성체 교리인 ‘실체 변화’를 믿지 않나요?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 제사를 기억하는 성찬례 또는 성만찬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성사(聖事)로서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종교 개혁 당시부터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명시적으로 하신 말씀(요한 6,22-71 참조)을 받아들이지 않고, 성찬례가 빵 나눔이라는 하나의 예식에 불과하며 그 안에 그리스도가 실제로 현존하지 않고 다만 상징적이거나 영적으로만 존재한다고 가르칩니다. 루터의 경우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형상에 빵과 포도주와 함께 예수님의 몸과 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공재설’(共在說)을 주장하였습니다. 츠빙글리는 성찬례가 ‘상징’이자 ‘기념’일 뿐이며,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뱅은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받아먹고 마시는 신자들의 믿음에 성령께서 영적으로 임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개신교계에서 거행하고 있는 성만찬은 천주교에서 거행하는 성찬례와는 다릅니다. 천주교는 “성체성사 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신성과 더불어 그분의 몸과 피가, 곧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제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계신다.”(트리엔트 공의회,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 법규 제1조: 덴칭거 1651항)는 것과 사제의 축성으로 “빵과 포도주의 온 실체가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위 법규 제2조)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를 천주교에서는 ‘실체 변화’라고 하고, 개신교에서는 ‘화체설’이라고 부릅니다. 천주교가 가르치는 실체 변화는 오직 신앙으로만 얻을 수 있는 성사적 신비입니다. 사제를 통하여 축성된 빵과 포도주가 그 물리적 형태는 그대로 남지만, 그 빵과 포도주를 구성하는 본질이 먹고 마시는 음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로 변화된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말씀, 곧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48),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라는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천주교가 가르치는 실체 변화는 신앙의 감각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의 신비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성체의 신비를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으로써 믿음 든든해지오니”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현존 체험은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뛰어넘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천주교 신자는 성체를 모실 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갈라 2,20 참조)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가 되어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며 바칠 수 있습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3.05.30

서울 하계동본당, 설립 30주년 감사 미사 봉헌 염수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 하계동본당 설립 30주년 기념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하계동본당 제공 서울대교구 하계동본당(주임 김웅태 요셉 신부)은 9월 25일 본당 대성전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본당 설립 30주년 기념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 염수정 추기경, 전원(제5 노원지구장) 신부를 비롯하여 본당 역대 사제, 본당 출신 사제, 손님 사제를 포함한 8명의 사제와 본당 역대 수도자 4명이 함께 참석하여 더욱 뜻있는 축하의 장이 되었다. 이날 미사에서는 전 신자가 함께 봉헌한 묵주기도(봉헌 단수 1,620,205단)와 본당 사제, 수도자, 전 신자가 함께 필사한 신ㆍ구약 성경이 봉헌됐다. 김웅태 주임 신부는 본당 설립일인 1992년 9월 24일부터 현재까지 30년 동안 하계동본당의 교우로 역사를 함께해 온 77명의 신자와 지난 30년간 본당 발전에 기여한 역대 사목회장들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본당 공동체는 야외활동이나 단체활동에 제약이 많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본당 설립 30주년을 뜻깊게 보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전 신자 묵주기도 봉헌, 전 신자 성경 필사, 성경 경시대회, 본당 출신 사제 특강을 진행해왔고, 현재는 하계동본당의 30년의 발자취를 모아 30주년 기념사진 전시회를 진행 중이다. 본당은 또한 30주년 기념 주님 성탄 대축일 감사 음악회를 준비 중이며, 30년 본당 역사를 담은 본당 30년사를 편찬할 예정이다. 김웅태 주임 신부는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맞은 30주년이지만, 우리 하계동본당 공동체가 지역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그동안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고 자유롭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사명을 느낍니다”고 말했다. 하계동본당은 공릉동본당을 모 본당으로 1992년 9월 24일 분리 설립되었다. 서울시 노원구 공릉로58나길 10에 위치한 하계동본당은 설립 당시 천막 성당으로 시작해 본당 공동체의 기도와 노력으로 오늘의 대성전과 교육관을 건립했으며 올해 본당 설립 30년에 이르고 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cpbc2022.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