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C 초대석] 이현태 신부 "순교 성지, 범교구적 차원에서 신학·역사적 접근해야"](//cpbc.co.kr/CMS/news/2016/10/rc/658243_1.3_titleImage_1.jpg)
[PBC 초대석] 이현태 신부 "순교 성지, 범교구적 차원에서 신학·역사적 접근해야" * 이현태 청주교구 연풍순교성지 담당 신부,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발언 전문] 가을이 깊어가고 있죠. 기도하기에 좋고 또 성지순례하기에 참 좋은 시기인데요. `성지순례`라고 하면 흔히 이스라엘이나 이탈리라 로마를 떠올리는 분들 계신데요. 국내에도 박해시대 순교자들의 순교혼이 서려 있는 성지가 참 많습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본당이나 단체별로 성지순례를 떠나고 있기도 하고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영향인지 몇 년 전부터 도보 순례자들도 부쩍 늘었습니다. 이처럼 급증하는 성지 순례자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천주교 주교회의가 얼마 전에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PBC 초대석, 오늘은 주교회의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 간사를 맡고 계신 청주교구 연풍순교성지 담임 이현태 베드로 신부님 전화로 연결해서 성지순례에 관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 이현태 베드로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 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 네, 반갑습니다, 신부님. ▶ 반갑습니다. ▷ 우선 신부님께선 계신 곳이 연풍순교성지인데요. 저도 연풍IC쪽으로 해서 성지순례를 한번 갔다왔습니다마는.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성지 다녀가신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어떤 곳입니까, 연풍순교성지? ▶ 저희 연풍성지는 특별히 첫 번째로는 아주 오래된 교우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년 전에 이미 교우촌이 형성됐고요. 그리고 210년 전 신유대박해 때에는 이곳에서 살던 이국송 바오로와 이항덕이라는 분이 공주감형에서 돌아가세요. 그리고 180년 전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오신 서양 신부님이신 나모방 성인 신부님이 말레이시아 페낭의 스승 신부님께 쓰신 편지가 있어요. 1836년 4월 4일자 편지에 의하면 "연풍 공소에는 신자들이 350여 명이 삽니다."라고 이렇게 보고하고 있어요. 그 얘기가 뭐냐면 연풍은 아주 깊고 깊은 심산유곡이었기 때문에 신자들이 숨어 살기 편했고, 또 이곳이 조령산맥이 있는데 이 조령산맥을 거점으로 해서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강원도로, 경기도로 넘어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교우촌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연풍성지 하면 바로 병인박해 때 순교자들이 돌아가신 순교터입니다. 그래서 지금 문헌에 나타난 것은 한 12분이 돌아가셨고요. 그리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순교자는 약 100여 명이 돌아가세요. 그런데 바로 이 연풍성지가 있는 곳이 어느 곳이냐면 연풍현감이 머물던 동헌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 동헌에서 치도곤과 고문을 당했고, 그리고 연풍성지 가운데 보면 잔디광장 가운데 중앙십자가, 중앙제단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서 목이 잘려 죽거나 매맞아 죽거나 아니면 무서운 교수형 돌인 형구돌에 의해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바로 그 중앙십자가가 있는 인근을 사람들은 사형장, 옥터, 혹은 도살장이라고 부르는데 사람을 짐승처럼 잔인하게 죽였다고 해서 도살장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풍성지 하면 103인 성인 가운데 한 분이신 황석두 루카 성인의 고향이자 그분의 무덤을 모시고 있는 곳이 연풍성지입니다. ▷ 그렇군요. 황석두 루카 성인 말씀하셨잖아요. 고향이신데. 황석두 루카 신부는 어떤 삶을 살다가 순교를 하신 겁니까? ▶ 황석두 루카 성인은 그러니까 15세 되던 해에 충주로 오셨던 이학규 선생이라는 분으로부터 천주교를 배우게 되는데요. 그래서 19세에 천주교에 입문을 해서 21세에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21세에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올라가다가... ▷ 그럼 양반이셨네요. ▶ 그렇죠. 양반이었죠. 양반이었는데 한양에 올라갔다가 3일 만에 내려와요. 여기서 한양이 왕복 15리길인데. 그래서 아버지가 "어떻게 그렇게 일찍 돌아왔느냐"라고 말했을 때... ▷ 제가 바로 여쭤보려고 그랬던 게... ▶ 뭐라고 대답하냐면 "`지상과거`를 포기하고 `천상과거`에 합격하기 위해서 되돌아왔다."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황석두 루카 성인의 작두의 영성이에요. 뭐냐면 아버지는 아들이 천주교를 믿겠다는 말에 그때 당시에는 곧 멸문지화였으니까요. ▷ 그랬겠죠. ▶ 그래서 작두를 종들에게 내놓으라 해놓고 이렇게 외칩니다. "지금 당장 천주교를 버리든지, 아니면 목이 잘려 죽든지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는 말에 황석두 루카는 "아무리 아버지의 명이라 할지라도 대군대부이신 천주님을 배반할 수 없사오니 제 목을 자르십시오." 하며 작두에 목을 쓱 내밉니다. 이것이 황석두 루카 성인의 작두의 영성인데,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서 또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신앙의 결단, 행동하는 믿음이 바로 작두의 영성입니다. ▷ 지난 15일이었습니다. 토요일요.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님 주례로 제5대 조선교구장이죠. 다블뤼 주교를 비롯해 오메트르·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등 갈매못에서 순교한 5분의 성인상 축복식이 열리기도 했는데요. 황석두 루카 성인이 돌아가시기는 아마 보령 갈매못에서 돌아가셨나 봐요. ▶ 그렇습니다. 황석두 루카 성인께서 사실은 1849년 12월에 조선 최초의 신학교가 사실은 배티성지, 거기에 신학교가 생겨요. 그때 당시 거기에 교장 신부님이 누구였냐면 다블뤼 주교님이셨어요. 그래서 그 다블뤼 주교님께 그때 신학 공부를 2년 10개월 동안 합니다. 그래서 2년 10개월 동안 하면서 어떻게 되냐면 그때 당시 3대 교구장님이신 페레올 주교님께서 교황청에 황석두 루카를 속성으로 사제품을 주겠다고 천거를 하는데... ▷ 그러셨군요. ▶ 그랬는데 교황청에서 그걸 불허합니다. 왜냐하면 황석두 루카 성인이 15세에 결혼했는데 결혼한 게 문제가 아니라 천주교를 믿으면서 평생 동정복으로 사는데 홀로 남은 그의 아내가 머물 수 있는 여자 수도원이 없다는 이유로 불허합니다. 그리고 그때서부터 어떻게 되냐면 황석두 루카 성인은 15년 동안 다블뤼 주교님의 복사 겸 전교회장이 됩니다. 그래서 바로 다블뤼 주교님께서 1866년 3월 11일날 당진의 거더리공소에서 잡히셨을 때 황석두 루카 성인은 거더리공소에 있지 않고 거기서 10리 떨어진 다른 공소에서 교우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주교님이 잡히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10리를 뛰어와서 자수합니다. 그래서 같이 돌아가시게 되는 거죠. ▷ 그래서 목이 잘린 장소가... ▶ 갈매못인데요. ▷ 충남 보령에 있는 갈매못. 그 바닷가 있었던 그곳에서 순교를 또 하시게 되고요. ▶ 네, 그렇죠. ▷ 주교회의가 지난 13일이었습니다, 신부님. 가을 정기총회에서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더군요. 그동안에 관련 소위원회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배경인지 좀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 우리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 보면 많은 위원회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국내이주사목위원회라고 있는데 옥 주교님께서 거기 위원장으로 계세요. ▷ 광주대교구의 옥현진 주교님요. ▶ 옥현진 시몬 주교님입니다. ▷ 시몬 주교님이시고요. ▶ 그 주교님께서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주교님이신데, 이 이주사목위원회 안에 3개의 분과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국내 이주사목 대표신부수도자회의라고 하는 분과가 있고요. 두 번째로 성지순례소위원회 분과가 있고요. 그리고 세 번째로 해양사목부가 있습니다. ▷ 그런가요? ▶ 네. 그런데 원래 각 위원회 안에 있는 소위원회는 상위 기관인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승인을 받기 전에는 소위원회라는 말을 쓰지 않고 분과라는 말을 쓰는데, 사실은 성지소위원회라고 하는 이름은 있었지만 이것이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였던 겁니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행정적 절차가 완료됐다고 보시면 돼요. ▷ 그런 의미가 있네요. ▶ 네. 그렇게 돼서 이제는 쉽게 얘기하면 소위원회에서 회의되어진 것이나 그런 것들이 공적으로 주교회의에서도 상임이 되고 그리고 거기에서 안건으로 채택되고, 또 경제적으로도 많이 배분이 되겠죠. ▷ 이번 주 저희 평화신문에 "국내 성지 111곳,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키운다." 이런 제목의 기사도 크게 실리기도 했는데요. 이런 게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의 향후 활동 방향을 드러낸다, 이렇게도 봐야 될까요? ▶ 사실은 국내 순례길 111곳을 만들 때 저도 만드는 대표 신부 중 하나였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만들게 됐던 의미는 무엇이었느냐면, 신자들로 하여금 우리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성지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많이 갖기 위해서 이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로 키운다는 기사가 이렇게 올라왔다고 했는데, 사실은 이것은 어떻게 보면 외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면 사실은 이것이 국내 111군데 이 순례길을 키운다는 것은 우리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부와의 관계가 긴밀하게 협조가 되지 않으면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의 시작이 바로 111군데 순례길이라고 하는 그 책자를 만들었던 것이죠. 그런 것이고. 오히려 성지소위원회가 앞으로 향후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외형적인 것보다는 교회 내적 쇄신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지금 사실은 성지소위원회가 정식적으로 발족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각 교구마다 성지개발이 교구 중심으로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이제는 좀 범교구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신자들에게 순교영성을 제대로 이 시대에 생활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갖다가 제시하는 내적인 부분들에 더 신경을 써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우리 성지소위원회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좀 성지개발에 대한 신학적, 역사적 접근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왜 그러냐면 각자 개발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두 번째로 교회 안에 많은 교회 자료 및 역사 자료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사실은 공동연구가 안 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공동연구에 대한 그런 뒷배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세 번째로는 124위 복자 현양뿐만 아니라 지금 이벽 세례자 요한과 132위 하느님의 종 시복시성을 위해서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분들에 대한 현양사업들도 우리들이 앞으로 좀 더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말씀 듣다 보니까 우리가 한국교회 전체 차원에서 해야 될 과제들이 참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뜻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도 필요해 보이고요. ▶ 그렇죠. ▷ 외형적인 것보다는 교회 내적인 쇄신이 더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주셨는데 그냥 또 질문을 외형적으로만 제가 하게 되는데요. 요즘 성지순례자분들이 부쩍 증가한 것은 사실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 신부님 연풍순교성지에서 사목을 하시니까요. 그런 증가세를 좀 피부로, 겉으로는 그렇게 많이 느끼십니까? ▶ 많이 느끼죠. 왜냐하면 단적인 예로 저희 연풍성지에서도 지금 순례책자를 팔고 있는데요. 1년에 최소 300~400권 정도가 나가요. 여기에서만 그렇게 나가니까 사실은 다른 성지들 생각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겠죠. 그래서 주교회의 얘기 들어보니까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에 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성지순례하고 있으니 책 달라고 하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대개 제가 봤을 때는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 그래요. 제가 평신도분들. 저를 포함해서 성지 한 번씩만 다녀오셔도 그 효과 많이 오래 갑니다. ▶ 그렇죠. ▷ 자주 가면 더 좋고요. 성지 담당 신부님들 입장에서야 그런 모습들이 기쁜 일이죠, 교회 전체적으로도 그런데. 순례자들의 순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고쳤으면 좋겠다, 이건 아쉽다` 그렇게 느끼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신부님. 어떤 부분이 그렇습니까? ▶ 사실은 우리 성지소위원회 회의 때에도 많이 나왔던 얘기인데요. 사람들이 단체로 와서 그냥 확인도장만 받고 그냥 빠져나가는 경우들이 많아요. ▷ 미사봉헌하시고... ▶ 미사봉헌을 하거나 아니면 기도를 하거나 아니면 순교터 가서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보다는 그냥 사실은 확인도장 받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그것조차도 저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처음 시작은 도장받는 걸로 시작을 했지만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고요. 그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놓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은 허투루 했다가 나중에는 정말 진지하게 바뀌는 것이 성지순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이런 성지순례 문화라고 하는 것이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그런 전철을 밟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다만 교회에서 그 사람들이 잘 성지순례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갖다가 인도하는 것, 그 다음에 제시해 주는 것은 우리의 몫의 아닐까 생각합니다. ▷ 신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고백을 하고 싶은 게 제 미천한 경험으로 볼 때 단체순례 가서 그냥 별 관심 없이 그냥 도장 하나 받아가지고 왔다가도 시일이 지나면 혼자 가고 싶다 하는 이끄심이 있는 것 같아요. ▶ 그렇죠. ▷ 제 미천한 경험에 봐서 그렇습니다. 신부님, 참 좋은 계절이잖아요. 어느 시인 말처럼,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말처럼 기도하기에 좋고 묵상하기에 좋고 성지순례하기에 좋은 계절이어서요. 신부님, 연풍성지 외에 청주교구 내에도 좋은 성지라기보다는 꼭 가봐야 될 만한 성지 몇 군데 있으면 소개를 해 주시죠. ▶ 제가 두 군데 정도 소개해 줄까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잘 알려진 성지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성지를 좀 말씀드리고 싶어요. 많이 개발되고 편안한 성지, 아름다운 성지가 아니라 전혀 개발되지 않고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성지예요. 그중 하나가 바로 문경새재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진안리 성지`가 있습니다. 안동교구 성지인데요. 그런데 안동교구는 신부님들이 적어서 아직 우곡성지 외에는 성지 담당 전담 신부가 없어요. 그래서 진안리성지 같은 경우는 최양업 신부님의 선종지거든요. 그런데 지금 문경성당의 바오로 신부가 대개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정표만 있고. 그래서 지금 사실은 2021년도가 우리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잖아요. 5년 남았는데. 그래서 진안리성지를 우리 신자분들이 아무것도 없지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더더욱 최양업 신부님께서 하느님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신자들에 대한 열정으로 돌아가신 장소거든요. ▷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 묘비가 있는 곳은 지금 제천 배론성지인데. ▶ 배론성지에 있죠. ▷ 또 선종하신 곳이 진안리성지고 연풍순교성지와도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 있고요. ▶ 맞습니다. 왜냐하면 최양업 신부님께서 경상도로 교우촌을 방문할 때 반드시 들렀던 교우촌이 연풍공소였고요. 이 연풍교우촌을 거쳐서 바로 상주 쪽으로 넘어가셨어요. 그러니까 이 길 역시도 최양업 신부님께서 경상도로 넘어갈 때 반드시 들렀던 코스였고요. ▷ 신앙의 길목이고 교차로네요, 그러니까. ▶ 그렇죠. 그리고 바로 강 칼레 신부님께서도 바로 여기 연풍성지가 있는 데서 진안리 그쪽으로 많이 다니셨죠. ▷ 또 한 군데는 어디입니까? 개발이 안 된 곳. ▶ 또 한 군데는 보은 속리산면에 있는 청주교구에서 올해 새로 성지를 전담신부를 낸 곳이 있어요. `멍에목성지`라고요. 보은군 속리산면에 있는 곳인데요. 이 멍에목성지가 왜 중요하냐면 멍에목성지는 이번 124위 복자 나셨잖아요. 그중에 박경화 바오로, 박사의 안드레아, 그리고 김종륜 루카 복자가 사셨던 곳이고요. 생활했던 곳이고요. 그리고 1827년경에 형성된 비밀공동체로서 우리 교우들이 살았던 교우촌이에요. 그리고 이게 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두 번째로는 1851년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에 의하면 사목편지에 유일하게 세례를 주었다고 하는 이름과 지명이 나오는 곳이 있어요. 거기가 바로 어디냐면 멍에목 교우촌에 방문을 하셔서 조 바오로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나오는 그 최양업 신부님 편지에 유일하게 지명과 세례 준 곳이 나오는 곳이 바로 이 멍에목성지입니다. 그리고 멍에목성지와 관련돼서 1867년도에 병인박해 때 돌아가셨던 최용운 암브로시오하고 그의 처남 김봉의, 그리고 전 야고보들이 순교할 때 그 순교록에 보면 이렇게 나와요. "최양업 신부님으로부터 멍에목에서 영세를 받았다."라고 하는 증언이 나오는 곳이 바로 이 멍에목입니다. ▷ 그렇군요.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이 방송 들으시는 분들 중에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시는 청취자분도 계시지 않을까 그런 욕심을 내봅니다. 신부님, 마지막 질문인데요. 우리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순교라는 게 뭘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말씀을 하신 분들도 계시고요. 신부님,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순교의 삶일까요? ▶ 순교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순교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신앙선조들은 하느님을 정말 내 인생의 첫 자리에 모셔서 하느님 외의 모든 것을 중히 여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하느님을 위해서 몸을 바치고 목숨을 바쳤던 것을 우리는 순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하느님을 믿는다고 목숨을 담보로 한 순교를 요구하지는 않아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순교는 무엇일까. 세상은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우리를 유혹해요. 그리고 재물을 많이 가지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때 우리들이 세상의 그런 유혹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나 아니면 세상이나 즐거움이 중심이 되는 곳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저는 하느님을 신앙을 제 인생의 첫 자리에 놓겠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 고통이 다가올 때, 위기가 다가올 때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재물에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하느님. 이 인생의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 당신이 누구신지 깨닫게 해 주십시오." 하고 우리가 하느님께 매달린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있어서 영적인 순교, 신앙 고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선조들이 변치 않는 믿음을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힘들지만 하느님 붙들고 신앙 붙들고 사는 것. 그것이 곧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순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신부님 말씀 잘 들었고요. `PBC 초대석` 오늘은 연풍순교성지 담임 이현태 베드로 신부님의 말씀 들어봤습니다. 신부님, 오늘 말씀 잘 들었고 고맙습니다. ▶ 네, 저도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고맙습니다. ▶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이주엽2016.10.28
![[인터뷰] 이영선 "예수님처럼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야 할 사명 있어"](//cpbc.co.kr/CMS/news/2015/12/rc/611959_1.0_titleImage_1.jpg)
[인터뷰] 이영선 "예수님처럼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야 할 사명 있어"* 가톨릭농민회 이영선 지도신부, PBC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 발언] "박근혜 정부 폭력 고발하는 시국미사, 전국에서 일제히 봉헌" "사제와 수도자, 신자 등 5백여 명 참여" "예수님처럼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야 할 사명 있어" "박근혜 정부는 `신종 쿠테타, 신유신독재`" "시국미사에 왜 반대하는지 이해 안돼" "사리사욕이나 이념에 사로 잡혀 있지 않기를 바랄 뿐" [발언 전문]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는 지난 월요일이었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일제히 시국미사가 봉헌됐습니다. 미사를 주관한 가톨릭농민회의 담당사제인 이영선 신부 연결해서 자세한 이야기 좀 나눠보죠.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지난 월요일에 전국적으로 시국미사가 거행됐는데 언론에는 잘 보도가 된 것 같지 않고요. 어떤 주제로 열린 겁니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쓰러지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그게 예수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1월 14일 잘 아시겠지만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노동자로 살고 싶다고, 가난하지만 내 손으로 내 삶을 일구며 살고 싶다고 우리 국민들이 울부짖는 자리였습니다. 그런 국민들을 향해 정부가 물대포로 대답했지 않습니까? 그 결과 우리 농민 백남기 임마누엘님이 쓰러졌습니다. 아마 그 분은 이 땅의 농민, 농업, 농촌 그리고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쓰러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예수님처럼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야 할 사명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쓰러진 모든 분들과 이 땅의 민주주의가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시국미사에는 사제와 수도자, 신자 모두 몇 명 정도 참여했습니까? ▶광화문 광장 뿐만 아니라 전국에 거의 동시에 미사를 하였기 때문에 한 전국에서 500여분의 사제와 수도자들, 그리고 5천 명 정도의 교우가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둘이나 셋이 모여서 기도하시면 들어주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런 예수님이 그립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폭력을 고발한다`는 주제로 시국미사를 했고 미사 중에 현 정부를 `신종 쿠테타, 신유신독재`로 표현했는데 이렇게 표현한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네. 이름이 바뀐 것 같은데 더불어민주당 강동우 의원이 지난 국회에서 2012년 18대 대선에서 개표 부정까지 저질렀다는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다 아는 것처럼 국정원을 포함해서 군대까지 동원해서 다시 말하면 국가 기관을 총동원하다시피 해서 지난 대선을 치렀지 않았습니까? 만일 이 일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대통령직을 도둑맞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아마 민주주의에 대한 사형선고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세월호 사건으로 304명의 국민들을 사형 집행했다고 봅니다. 메르스 대처 부실로 국가 기관을 사형선고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밥쌀 수입은 우리와 우리의 어머님인 농민들을 사형 선고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또 해고를 쉽게 하려는 법 개정으로 우리와 우리의 노동자, 이들은 우리의 아버지 아닙니까? 노동자를 사형선고 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사건은 우리 조상님들, 그리고 우리, 나아가서 우리 자식들의 꿈을 사형선고 한 것과 다름없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불의를, 부조리를 고발하고 나아가서 우리들의 무관심을 회기하고 신앙인으로서 제대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신종 쿠데타나 신유신독재라는 것은 이런 우리들의 인식과 강동우 의원의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해야한다고 봅니다. 이것에서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는다면 신종 쿠데타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부님, 개표 부정 논란 관련해서는 중앙선관위에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습니까? ▶입장 표명이 우리들에게 와 닿지 않는 것이죠. 정확하게.. 강동우 의원이 이야기한 시간들까지를 그렇게 말하는.. 국가기관을 그렇게 부실하게 운영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 의혹 제기가 나지 않도록.. ▶관리해야죠. ▷관리해야 된다는 말씀이시고요. 시국미사에 대해 일부에선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요. 일부 보수 단체나 인사들은 극도의 반감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그런 생각이라기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오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를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하거든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인데 만일에 시국미사나 정치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서 또 이야기 하시는 분들은 어쩌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잘 모르거나 아마도 잘못 알고 있는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만일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라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제로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에게도 잘못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제가 염려한다면 그렇게 하시는 분들에게 사리사욕이나 이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신부님은 일부 보수단체나 인사들은 신부님들이 왜 그렇게 이념에 사로잡혀 있나.. 이런 말씀도 들으시잖아요? ▶사제들이 이념에 사로잡혀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죠. 왜냐하면 사제들이 주장해야 될 이념은 이 세계가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 유일한 이념입니다. 사제들이 무슨 권력을 잡고자 하는 욕심이 없지 않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리고 이달 초 백남기씨 가족들이 프란치스코 교황께 편지를 전달할 때 함께 동행했는데, 어떤 말씀들 나누셨어요?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백남기 임마누엘씨가 아버지시잖아요. 아버지가 어떻게 사신 분이었는지 그날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현재 병원의 상태는 어떠한지 현재 농산물 가격이나 한국의 농업이나 그런 것은 어떤 상황인지 이런 이야기를 자세하게 저희들이 전달한 편지를 함께 꼼꼼하게 읽으면서 제가 보기에 질문 해주시고 대답하고 차도 한잔 주시고 과자도 나눠주시고 그랬죠. 또 아이들에게 지난번에 교황님이 오시면서 묵주도 선물로 주시고 십자가도 선물로 주시고 즉석에서 성탄 카드도 한 장 써서 주셨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소망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세월호 사태도 그렇고 이번 국가 폭력 사태도 그렇고 이런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꿈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하는 이유가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신나게 일하고 재미나게 놀고 사이좋게 지내다가 죽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보는 것. 그런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이 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가톨릭농민회의 담당사제 이영선 신부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신부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윤재선2015.12.31
![[문화 라운지] 박경귀 "그리스 문명의 도전정신, 청년들에게 영감 주길"](//cpbc.co.kr/CMS/news/2016/07/rc/646825_1.2_titleImage_1.jpg)
[문화 라운지] 박경귀 "그리스 문명의 도전정신, 청년들에게 영감 주길"*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PBC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 인터뷰 [앵커] 서양 문명의 뿌리라고 하면 단연 그리스 문명을 꼽게 되죠. 그리스 문명이 서양의 문학과 철학, 미술, 건축 등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한데요. 하지만 막상 그리스 문명이 어떻게 시작돼서 지금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분은 많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매주 토요일에 전해드리는 <문화 라운지>, 오늘은 그리스 문명을 집대성한 책을 내신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박경귀 국민통합기획단장을 만나봅니다. 박경귀 단장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도 맡고 계십니다. ▷ 박경귀 단장님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십니까. ▷ 단장님이라기보다는 제가 오늘은 이사장님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맞습니다. ▷ 우선 신간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 책 이름이 "그리스, 인문의 향연" 인데요. 이미 그동안 `그리스 답사기`도 연재하시고 고전평론도 몇 년째 해오셨는데요. 이번에 그리스 문명 인문서를 낸 이유가 참으로 궁금해지네요. ▶ 우리 현대 문명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은 그리스 문명에 닿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시행하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라든지 문학, 예술, 건축. 이런 것들이 가장 탁월한 형태로 보여졌던 시기가 바로 그리스 문명 시기입니다. 결국은 문명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리스 문명을 다각적으로 조명하기 위해서 고전을 읽고 평론을 써서 대중에게 알리고 제가 직접 고전의 현장을 찾는 답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선 급한 게 대중들한테 그리스 문명이 굉장히 다채로운데 이걸 어떻게 하면 쉽게 한 권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고전만 직접 전하는 것보다 그리스 문명을 다각적으로 해석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인문서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 문명을 스스로 공부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를 했는데요. 이제부터 대중들은 이런 종합적인 인문서를 통해서 보다 쉽게 그리스 문명의 그런 성취들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청취자 분들께는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안타깝기는 한데요. 제가 지금 들고 있는 그리스인문의 향연. 책이 지금 `어제의 문명으로 살아 있는 미래를 만나다`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고요. 책이 상당히 두껍습니다. 480쪽이 넘거든요. 책을 쓰는 데는 얼마나 걸리셨어요? ▶ 지금 글을 쓰는 데는 한 6년 동안 틈틈이 써왔고요. 지난 1년간 집중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분량이 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더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는데요. 그리스 문명을 총체적으로 다루려면 깊이 들어가면 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중적인 선에서 마무리하자고 해서 일단 마무리했고요. 제가 이렇게 인문서를 내게 된 아주 직접적인 계기는 결국은 제가 고전읽기 운동을 하면서 그리스 문명에 대한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에 이걸 저 혼자 빠지는 것보다는 제가 느끼는 이런 행복감을 많은 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그런데 이사장님. 이 그리스문명에 대해서 그만큼 하실 말씀이 많았던 것은 그리스에 푹 빠진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겁니까? ▶ 제가 1970년대 초에 중학생 시절이었죠. 그때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고전을 읽고 논설을 하는 자유교양대회라는 게 있었습니다. 굉장히 좋은 제도였는데요. 전국의 학교들이 대항전 식으로 했는데, 제가 그때 고전을 읽으면서 충남 대표로 뽑혀서 서울에 와서 다른 시, 도 학생들하고 경연을 한 적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때 청소년기에 고전을 읽다보니까 고전의 매력에 푹 빠졌고요. 그때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게 그리스 로마 신화, 플루타크 영웅전 이런 것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 그러셨군요. ▶ 그때 그리스 고전의 매력에 좀 빠졌죠.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하면 이런 그리스 고전의 현장에 언제 가볼 수 있을까. 또 어려운 고전도 언제 더 읽을 수 있을까. 이렇게 제가 열망하는 게 어린 시절부터 키워져왔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열망을 키워오다가 2010년도에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우리가 이런 매력적인 고전들을 다시 읽고 청소년들에게 고전의 가치를 전파하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도 만들어서 매월 고전아카데미를 개최해서 고전의 진수들을 국민들이 느낄 수 있도록 이런 기회를 만들게 됐던 거죠. ▷ 그리스에도 여러 번 다녀오셨다고 앞서 말씀하셨는데요. 요즘 말로 하면 "그리스 덕후", "그리스 홀릭" 이신 것 같습니다만, 그리스에는 최근에 이 책을 펴내기 위해서 몇 차례나 어떻게 다녀오신 거예요? ▶ 네, 맞습니다. 언젠가 제 딸이 그러더라고요. 아빠보다 더한 그리스 덕후는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리스 덕후가 뭐냐" 그랬더니... 제가 신조어에 약한 기성세대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그리스 홀릭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웃음) 사실 맞는 용어로 치면 `필헬레닉(philhellenic)`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쨌든 제가 1년에 몇 번씩 툭하면 그리스문명 답사 배낭여행을 떠나고는 했으니까 그렇게 부를 만합니다. 제가 그리스 답사 여행은 지금의 그리스뿐만 아니라 옛날 소아시아 지역이었던 에게 연안 터키 지방, 그리고 그리스 식민 도시들이 즐비했던 나폴리 이남의 남부 이탈리아하고 시칠리아섬을 다 답사해야 됩니다. ▷ 그리스도 보면 성경에서는 또 고린토 지역도 포함되고요. ▶ 맞습니다. 그게 바로 코린토스. 고린도 전서라는 게 코린토스에서 나온 거거든요. 이렇게 여러 곳을 다 함께 봐야 되죠. 그래서 제가 그런 곳을 8번 다녀왔고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또 부족한 게 그리스의 문화유물들이 대부분 유럽의 선진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해서 많은 선진국으로 반출이 됐습니다. 그래서 루브르박물관이라든지 대영박물관, 베를린의 페르가몬박물관, 뮌헨의 그리스고고학박물관 등에 굉장히 많은 유물이 가 있습니다. 그런 유럽의 아주 유명 박물관들을 또 일일이 다 찾아다니면서 제가 그리스 문화유산들을 다 찾아내고 그랬습니다. ▷ 앞서 책 앞부분에서도 나와 있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리스 문명의 씨앗이 동방에 닿아 있다, 이 말도 나오던데요. 이건 청취자분들도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하실 것 같고요. 실제로 역사적인 증거 같은 게 좀 나와 있습니까? ▶ 네, 그렇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대목인데요. 저도 그리스 공부하면서 과연 그리스 문명은 어디에서 태생이 됐을까를 살펴봤는데요. 사실 어떤 문명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문명은 없습니다. ▷ 그렇겠죠. ▶ 그리스 문명이 한 3000년 전부터 융성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뿌리를 찾다보니까 결국은 동방 문명의 영향을 받았는데요.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동방은 지금의 중국이나 동아시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요. 이란 고원에서 일어났던 엘람 문명, 또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서 발원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이집트 문명이 있습니다. 이곳의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특히 지중해를 통해서 이러한 선진 문명을 받아들일 좋은 요건이었던 거죠. 지중해 한가운데 보면 크레타섬이 있지 않습니까? 크레타섬이 제일 먼저 이러한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왔고, 미노스문명을 굉장히 전개시키고 미노스 문명의 영향을 받아서 그리스 본토에서는 미케네 문명이 발원됩니다. 그리스 문명은 동방에서 건축, 조각, 공예술 등을 배우게 되는데요. 중요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어디서 배웠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문화적 수용성이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고 그것보다 훨씬 더 탁월한 문명을 재창조해내는 능력을 보인 거죠. 그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 지금에 와서도 그런 문화적 수용성, 다양성을 포용성 있게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가 우리들에게도 좀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우리 이사장님 말씀 듣다보니까... ▶ 아주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그렇습니다. ▷ 사실 그리스문명 하면 그리스신화로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리스신화만 또 놓고 보면 과학적, 이성적 관점에서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많거든요. 그래서 고대그리스인들에게 그리스신화라는 게 과연 어떤 기능을 했을까, 이 부분도 좀 궁금합니다. ▶ 사실 신화는 인간들이 일상에서 이룰 수 없는 꿈, 욕망, 이런 것들이 투영된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또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일부는 또 비현실적인 서사들이 많은 거죠. 그래서 신화라는 것은 허구와 실제가 혼재된 서사라고 보시면 되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신과 영웅들이 다양한 희로애락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희로애락 속에서 인간들은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을 북돋워주는 거죠. 그래서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신화 속에서는 신들이 능숙하게 해내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인간이 고된 운명과 고난에 처했을 때 도전을 통해서 극복하게 하는 그런 자극이 될 수도 있고요. 또 어떤 신화 속에서는 아주 무절제한 영웅들에 대한 징벌을 내리는 것도 많이 나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인간들이 겸허해지고 오만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그런 교훈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신화가 있던 시대는 풍요로운 시대라고 봅니다. 인간들이 할 수 없는 그 부분을 메워주는 측면이 있고요. 인간들에게 새로운 창조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화가 부재한 시대, 특히 요즘 시대가 그렇지 않습니까? 신화가 부재하기 때문에 인간사회가 각박해지지 않나. 그래서 이성과 합리의 시대에도 저는 신화가 여전히 우리한테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흔히 말하는 휴머니즘을 창시한 것도 바로 그리스인들이라고 하던데요. 당시의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휴머니즘을 추구하게 됐는지, 어떻게 봐야 됩니까? ▶ 그리스인들은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남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통치자 중심의 사고를 했다면 그리스인들은 개개인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과연 어떤 속성과 본질을 가졌는가, 이런 것들을 연구하기 위해서 자연을 연구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봤기 때문에 자연철학도 결국은 인간을 연구하는 차원에서 연구하게 됐고 또 철학도 거기서 나온 겁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철학이 나온 거죠.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감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했지만 무엇보다도 이성의 중요성을 굉장히 믿은 분들이거든요.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자유로운 인간의 소중함을 인정했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람들의 투표 행위를 창안해냈던 겁니다. 민주주의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 거죠. 또 그리스인들은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철저하게 가졌기 때문에 신들마저도 인간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했지 않습니까? 저도 이것도 그리스인들의 인간 중심 사고의 결과라고 보고요. 그 다음에 이런 휴머니즘을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서 투영하게 됩니다. 그래서 문학, 건축, 조각, 예술, 철학 등 다양한 영역으로 휴머니즘을 투영해서 그리스시대는 그야말로 휴머니즘이 만개한 시대, 인간중심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사장님 말씀 들어보니까 인간중심적인 사고, 철학, 사람이 먼저다, 이런 광고문구가 생각이 나네요. 책 속에서 청취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 있으시다면 어려운 부탁이지만 낭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네, 제가 몇 대목 한번 낭독해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안한 사회체계는 3000년 가까이 숙성되면서 서양문명의 근간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가치관념과 사고방식을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아직도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때로는 억압으로, 때로는 방종으로 내닫는 일이 잦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본문 109페이지 중에서) ▷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말로 들려주는 문장, 글귀가 아닌가... ▶ 네. 하나 더 할까요? ▷ 하나 더 해 주시면 너무 좋겠습니다. ▶ 그리스인이 창조한 문학, 조각, 건축, 과학 등의 기본 토양은 인간을 위한 휴머니즘이었다. 이렇게 인간을 위한 예술이 만개했던 유일한 시대가 바로 고대 그리스 세계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창조적 활동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끊임없이 고무하고 인간의 아름다움과 무모하리만큼 과감했던 인간들의 도전과 모험을 찬미했다. 그리스 예술작품들은 그리스인이 남긴 휴머니즘의 위대한 증거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내는 조형미술의 유산은 인류 최고의 수준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본문 148페이지 중에서) ▷ 아... 좋습니다. 갑자기 저도 한 6년 전에 가봤던 그리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이 책을 읽고서, 그리스 인문의 향연을 읽고서 다시 한 번 그리스에 가면 어떤 새로운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그럴 겁니다. ▷ 낭독을 해 주셨는데요.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하는 독자분들이 있다면 어떤 분들일까요? ▶ 저는 그리스의 다양한 영역에서 영감을 받아야 될 게 청년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인들은 무한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거든요. 그리스 문명의 핵심이 아레테 문명입니다. 탁월성을 추구하는 문명이죠. 끊임없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했던 겁니다. 이런 탁월성을 추구했던 문화가 각 영역에서의 최고의 예술작품, 문학작품, 철학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이 됐거든요. 그래서 우리 지금 시대가 굉장히 어려운 시대이지만 그리스 황금기에 그리스 청년들이 도전했던 것처럼 우리 청년들이 그렇게 무한도전에 나서야 된다고 봅니다. 또 40~50대 장년층들이 저는 그리스 문명에 주목해보셨으면 합니다. 그리스 문명은 우리가 나아가야 될 미래가 담겨 있거든요. 민주주의의 올바른 방법이라든지 우리 문명이 나아가야 될 방향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저는 그리스 문명을 탐색하면서 통찰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이 신간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3권의 책을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리스 로마 고전, 그리스 문화유산 답사기도 곧 출간하실 예정인 것 같습니다마는. 혹시 여섯 번째 책도 구상하고 계신 게 있습니까? ▶ 지금 그리스 로마 고전과 문화유산 답사기가 굉장히 긴 작품이 될 것 같고요. 우선 거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나머지 작품들은 그리스 고전은 개별 고전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런 개별 고전들에 담고 있는 가치들을 발굴해서 조명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최초의 역사서인 헤르도투스의 역사라든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이런 곳에 보면 무수히 많은 협상과 연설, 그다음에 인간들간의 투쟁과 갈등의 해결, 이런 사례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 것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지혜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추출해서 우리 시대에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책도 구상을 해보고 있습니다. ▷ 갈등관계, 이해관계의 조정, 화합, 통합, 국민대통합위원회에 계시는... ▶ 제가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국민통합을 이룰까... 문화적 접근을 통해서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부분을 굉장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 그러시군요. 문화 라운지, 오늘은 신간 <그리스, 인문의 향연>을 펴낸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박경귀 국민통합기획단장과 말씀 나눠봤는데요.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 읽기 박경귀 이사장이셨습니다. 박 이사장님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네, 고맙습니다. 김혜영2016.07.29
[신간 안내] 32개 성당이야기 담은 `하루쯤 성당여행`[앵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바르셀로나의 파밀리아 성당이나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성당이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하루쯤 성당여행을 떠나보자고 소개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다가오는 사순절에 읽기 좋은 묵상집과 함께 유은재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성당 전경. (자막 :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中)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의 더할 나위 없는 사랑스러운 배경이 됩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수식을 가진 곳, 70여편의 드라마와 영화, CF의 배경이 된 곳, 아산 공세리 성당입니다. 200년 한국 가톨릭의 역사 속에서 이처럼 건축학적 아름다움과 매력적인 이야기를 품은 수 많은 성당들이 전국에 지어졌습니다. 그 중 32개 성당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책이 나왔습니다. 입니다. (자막 : 저자 김용순 외 7명, 디스커버리미디어 펴냄 / 순교성지 10곳, 성당 주변 여행지 100곳, 맛집 110곳, 카페 35곳 상세 정보 소개) 성당과 함께 둘러보기 좋은 주변 여행지와 맛집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아한 아치창을 자랑하는 인천 답동성당으로 여행을 떠났다면 차이나타운과 개항장거리, 월미도를 함께 둘러보고 신포시장에서 지역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받은 대구 계산동성당과 김대건 신부의 숨결이 느껴지는 한옥 사제관이 눈에 띄는 익산 나바위성당 등도 인근 관광지와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는 주말 가까운 곳으로 관광과 미식 여행을 곁드린 성당 순례를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요? 설 연휴 첫날인 다음 달 18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시기를 함께 할 묵상집도 나왔습니다. 입니다. (자막 : 저자- 안드레아 슈바츠, 바오로딸 펴냄) 구약성경의 예언자 엘리야가 이교도 왕비에 쫓겨 목숨이 위태로워졌을 때 하느님을 만나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독자들이 사순시기 40일간 일상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PBC 뉴스 유은재입니다. 유은재2015.01.21
[인터뷰 전문] 최원규 "몽골 의료봉사, 부르심에 쓰임 받은 것" * 최원규 몽골 연세친선병원장,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발언] "몽골에서의 코이카 국제협력의사 활동, 부르심에 쓰임 받은 것"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모스크바보다 고지 높아 더 추워" "몽골에서 신앙을 갖고 성경공부한 것을 계기로 신학 공부" "같은 의사인 아내도 같은 심정으로 몽골행 반대하지 않아" "의료봉사활동, 계산하지 않고 주는 것은 일이 아냐" "몽골 사람들, 뇌심혈관게 질환과 간염 많은 편" "손님을 잘 접대하는 것이 몽골 사람들의 매력" "의사, 간호사, 기사 등 의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요" [발언전문] 안정된 의사로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몽골에서 10년 넘게 의료봉사활동을 해온 분이 있습니다. 바로 제4회 이태석상을 받은 최원규 몽골 국립의과대학 교수이자 몽골 연세친선병원장의 이야기인데요. 매주 토요일에 전해드리는 문화라운지. 오늘은 이태석상 수상자인 최원규 교수를 연결해서 몽골 의료봉사활동에 얽힌 따뜻한 나눔의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 최 교수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최원규입니다. - 닷새 전에 시상식이 있었죠. 늦었지만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부터 한말씀 들어볼까요? ▶저희 시상하기 합당하지 않은데 좋은 상을 받아서 감사드리고요. 무엇보다도 저희 부모님이나 처가 부모님 저희들 멀리 떠나보내고 걱정하셨는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셨다고 생각해서 감사드리고 여러분들이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고 이태석 신부님, 또 이태석상에 대해서 알고 계셨나요? ▶네, 전에 비디오를 통해서 이태석 신부님의 활동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섬기시는 모습이 감동이 되었고요. 상에 대해서 자세히는 몰랐지만 저희 동료가 처음에 받기도 하고 그래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 시상식 당일 수상소감에서 "상을 받기에 당치 않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렇게 아주 겸손한 말씀을 하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의 삶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있는데, 왜 당치 않다고 말씀하셨나요? ▶실제로 제가 몽골에 가서 생활한 것이 뭐 특별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하느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부르신 곳에 그냥 쓰임 받는 것에 감사할 뿐이고요. 상을 받는 것이 내용 없는 껍데기만 만드는 것 마음이 좀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 교수님 약력을 보니까요. 1997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신 뒤에 코이카 국제협력의사로 몽골에 가셨더라고요. 보통 전문의 자격을 따면 개원을 하거나 병원에 들어가기 마련인데, 어떻게 해외의료봉사를 가실 생각을 하셨어요? ▶제가 코이카 국제협력 의사로 가게 되었는데요. 코이카 국제협력의사는 그 당시에 소아과 전문의가 된 이후 공중보건의나 군의관으로 근무를 해야됩니다. 근데 그 당시에 코이카 협력의사로 제3세계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요. 좀더 저를 필요로 생각하는 곳이 어디일까..하고 생각하고 가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때는 사실 제가 신앙이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된다는 것이 그냥 자기 만족을 주지 않습니까? 그정도 수준에 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 몽골 날씨가 정말로 무척 춥다고 들었습니다. 영하 40도, 50도까지도 막 떨어지고요. 의료 기반시설이나 인프라도 열악해서 의료봉사활동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실제로 처음 몽골에 가셨을 때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울란바타르.. 몽골의 수도는 세계의 수도 중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 1도라고 하는데요. 모스크바 보다도 고지에 있기 때문에 더 추운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실내에서 진료하거나 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요. 문제는 낙후된 의료 수준입니다. 70년 동안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몽골이 하게 되었고 러시아 영향을 받았던 가운데 90년대 초에는 아주 경제적으로 공황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어려운 시대를 겪었습니다. 의료라는 것은 경제적인 뒷받침과 사회적인 간접적인 자본이 잘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어려움 때문에 실제적으로 몽골에 90년대 갔었을때에는 건물은 있었습니다만 내용 면에 있어서는 진단과 진료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아주 열악한 수준이었습니다. 몽골 국민들 조차도 몽골 병원이나 몽골 의사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또 거기 가계신 여러 교포들.. 선교사님들, 자녀분들 아주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 지금 몽골국립의과대학에 최원규 교수님 외에 또다른 외국인 의사분들이 계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사실 몽골에 선교를 하면 한국 선교사와 외국 선교사를 얘기할 정도로 한국분들이 90년대 이후에 여러 분이 가시게 되었고요. 저희 병원과 학교에도 한국 선교사분이 4~5명 같이 계십니다. 몽골의 대학을 비롯해서 병원 사역이나 이런 부분에 한국분들이 많은 영향을 끼치고 계시죠. - 그런데 몽골에서 3년 동안 코이카 활동을 마치신 뒤에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가셨어요. 전공인 의학이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셨던데, 큰 결심을 하신 거죠? 그 전에 어떤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사실 제가 몽골에 가서 복을 많이 받았는데요.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몽골 갈 때까지는 제가 신앙이 없었습니다. 근데 몽골에 가서 여러 와계신 선교사님들, 여러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이 왜 몽골에 오셨을까..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소아과 의사로 아이들이 있고 하니까 관계를 맺고 자주 뵙게 됐었고.. 그런 분들이 몽골에 재물이 더 생기기 때문에 오신 것도 아니고 명예가 그렇게 하나밖에 없는 삶인데 그렇게 살 수 있을까라고 의문도 들었는데요.. 그분들과 뵈니까 그분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았고 예수님을 믿어서 그 믿음 때문에 몽골에 오셨다고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분들이 아시는 예수님,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경을 몽골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경 공부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지식적으로 먼저 알게 되었도 하느님은 누구시고 예수님은 누구시고 그런 것들이 구체적으로 믿음으로 연결되게 되었고요. 몽골에서 신앙을 갖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고.. 늦게 예수님을 믿게 되고 신앙을 갖게 되니까 좀더 성경을 잘 알고 말씀대로 살아보고 싶은 그런 마음들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몽골이라든지 어려운 곳에 데려다 놓으시고 신앙도 갖게 하신 뜻이 무엇일까.. 이렇게 헤아리면서 좀더 공부하고 준비해야되겠다라는 생각을 주셔서 미국에 갈 수 있게 됐던 것 같습니다. - 아내분도 같은 의사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몽골에 정착할 때 반대하지는 않으셨나요? ▶아닙니다. 저희 아내는 같이 의과대학 졸업하고 재활의학과를 했는데요. 저희 부부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같습니다. 그것은 몽골에 있을 때에 두 사람한테 똑같은 생각을 늘 주셨던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함께 믿음에 확신도 갖고 하시고 똑같이 하나님의 심정이랄까요? 선교지에 있는 여러분들을 향한 그런 심정들을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같이 가고 또 그 당시에 딸이 둘이었고 지금은 셋인데 미국으로 가고 몽골로 오고 이런 데에 사실 큰 서로 결정을.. 대립이 되거나 그런 적은 없었고.. 같은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 돌이켜보면 감사한 일 같습니다. - 평일에는 몽골 국립의과대 교수로, 주말에는 고아원과 양로원, 교도소, 빈민촌 등을 돌며 무료진료를 해오고 계신데요. 사실상 거의 매일 일을 하시는 건데 힘들지는 않으세요? ▶아닙니다. 들으신 것과 같이 주말마다 늘 진료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일을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들겠지만 뭐라고 할까요? 맡기신 사명에 따라서 사는 것은 좀 가볍고 신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살아가는 사람에게 계산하지 않고 주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매주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 몽골 사람들은 어떤 병이 가장 많은가요? 아직도 의료 기반이 약한 편이죠? ▶몽골 분들은 내륙 지방이고 워낙 육식을 주로 하셨고 그래서 뇌, 심혈관계 질환이 많습니다.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고혈압 환자가 많으시고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경색 환자들이 많습니다. 최대 사망 원인이기도 하고요.. 식생활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특이한 것이라면 간염이나 간암이 다른 나라보다 많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었던 걸로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열대 지역같이 풍토병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60년~70년대 많았던 기생충이나 그런 것도 있지만 그렇게 풍토병이나 전염병이 있는 나라는 아닙니다. - 교수님께서 치료해주는 몽골 환자분들.. 치료가 끝나고 교수님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까? ▶예, 예. 그 분들 필요하신 것들 저희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하면 마음을 나누는 분들 많이 있으시고요. 몽골분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꼽으라면.. - 매력 같은 게 있습니까? ▶그 분들이 갖고 있는 특징은 손님을 잘 접대하는 겁니다. 유목민이셨지 않습니까? 유목민이 느끼는 나그네 심정을 아는 것 같습니다. 위험에 처할 지 모르는 나그네에게 잘 대접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전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이 방송을 듣고 최 교수님의 활동에 도움을 보태고 싶어하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도움을 드릴 만한 부분은 없을까요? ▶저희를 몽골에 부르신 소명이랄까요? 소명은 몽골 의료인들을 잘 세워드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몽골 의료계라면 의사, 간호사, 병원의 기사, 행정하시 는 분 여러 분들이 있겠지만 그런 분들이 전문적으로, 영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세워지는 데에 그런 역사에 하느님이 저희를 부르셨습니다. 그런 부분에 같이 협력하고 전문적인 부분이라는 건 저조차도 소아과에 국한된 전문성을 갖고 있는데 의료계에 가지고 있는 전문성은 여러분야가 있지 않습니까? 의사선생님도 그렇고 간호사, 기사, 행정하시는 분들까지 몽골에 오시면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하고요. 그뿐만 아니라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 같이 고민하실 분들도 그런 사역에 같이 기도로 후원하시고 함께 재정으로 후원하실 분들은 또 후원해주시면 감사하겠고요. 몽골을 위해서는 제가 연세의료원 의료선교센터에 파송으로 몽골에 와있고 선교단체는 인터서브라는 선교회를 통해서 몽골에 와있는데요. 그렇게 통해서 후원해주시면 몽골 국립의과대학을 중심으로 몽골 의료인을 세우는 데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앞으로도 몽골에서 계속 활동을 하시는 건가요? ▶네 그럼요. - 혹시 다른 계획이 있으시면요? ▶특별한 계획은 없고요. 몽골에 하나님 두시는 날까지 잘 쓰임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정결한 그릇으로 잘 정비되어서 하느님 필요하신 곳에 쓰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 마음 안에 사랑이 있기에 아낌없이 주고픈 마음 어려움을 나누고자하는 마음도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문화라운지, 오늘은 이태석상 수상자인 최원규 교수를 연결해서 따뜻한 나눔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최 교수님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주엽2014.12.13
[문화 라운지] 전경일 “리얼리티 문학의 진수, 소설 ‘조선남자’”* 소설 ‘조선남자’ 전경일 작가, PBC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발언 전문] 16세기 말, 임진왜란 7년 동안의 광풍이 휩쓸고 간 조선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소설 ‘조선남자’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소설 ‘조선남자’는 무관 출신으로 7년 동안의 전란 속에서 아내를 잃고 조선땅이 일본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목격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문화라운지] 오늘은 소설 ‘조선남자’를 쓴 전경일 작가를 연결해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전경일 작가님? ▶네, 안녕하세요? ▷먼저 ‘조선남자’는 언제 출간된 소설인지, 또 어떤 소설인지 소개를 좀 해주세요. ▶조선남자는 2014년이니까 이년 전에 출간됐었네요. 이 작품은 혹시 루벤스의 드로잉 중 조선남자라고 있어요. 한복을 입은 조선남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작품을 보신 분들은 아시지만 저는 그 작품의 등장인물을 보면서 강렬한 이미지를 받았어요. ▷어떤 등장인물이기에 강렬한 이미지가 남았을까요? ▶일단 그 사람이 한국사람이냐 아니냐 이런 논쟁이 있었지만 저는 그것보다도 인물 자체가 대단히 인상깊었고요. 잘 생겼어요. 그리고 루벤스가 도대체 이 그림을 그렸는데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그렸는데 도대체 만나기는 했을까 과연.. 그리고 어떤 배경으로 그렸을까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죠. 그래서 밝혀진 바는 전혀 없습니다. 이 인물이 누구인지 아직까지도.. 그래도 사실은 커다란 캔버스에 퍼즐은 하나밖에 없었고요. 나머지 퍼즐은 상상력으로 맞춰간 것이죠. ▷거기서 그러면 폴 루벤스의 조선남자라고 하는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작품을 구상하게 된 것이네요? ▶그렇죠. 진주 귀걸이 소녀라는 외국 소설인데요. 실제 미술 작품도 있죠. 그것도 사실 미술 작품을 보고 구상을 한 것이잖아요. 저희 소설 조선남자도 마찬가지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조선남자.. 이 소설이 임진왜란 7년동안의 한 남자 이야기 아닙니까? 이게 역사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인가요? ▶역사소설로 볼 수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클래식 소설이다.. 요즘 우리나라에 나오는 소설들이 대부분 픽션들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소설 같은 허구들이죠. 그래서 리얼리티라는 게 없는데 사실은 이 작품은 제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글들이 그렇듯이 리얼리티를 강화시킨 역사물이죠. ▷리얼리티라고 하면 역사 속에 인물이 살아있는 듯한 그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그러한 작품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서 당대 시대상이라든가 인간사들 이런 것들이 당대 일로 국한되는게 아니라 오늘날의 반추해봤을 때 어떤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거나 시사하는 바가 있는지 통사적인 성격을 띄어야되는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역사소설이 가져다주는 교훈이고 또 독자들로서도 그걸 얻고자하는 독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반추해보고 통사해보는... ▶그렇죠. 결국 문학이 다루는 게 이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인간과 역사, 사랑과 구원 이런 본질적인 주제들..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작품 속에서 구현했다고 봐야겠죠. ▷고백컨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요. 청취자분들이 혹시 인터뷰 들으시면서 무슨 소설인데 작품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지 몹시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한 남자 이야기라고 하는데 무관출신이고.. 어떤 내용의 줄거리를 엮으신 겁니까? ▶임진왜란을 온 몸으로 겪은 조선의 한 무관인 주인공인 조선남자가 왜 우리가 이렇게 당했을까.. 거기에 천착을 하게 된 것이죠. 그렇다보니까 결국 서구에 의한 서양 세력에 의한 조총이라든가 이런 무기들, 신식 무기들에 우리가 당했다라는 것이죠. 그에 대한 각성을 하면서 조정 내부에다가 그렇게 무기를 도입해서 새로 개발하고 이런 걸 제안하나 사실은 전쟁이 끝나니까 잊어버린 것이죠. 임금 조차도 자신을 외면하고 그렇다보니까 혼자 단독으로 찾아서 가게되요. 그래서 배경을 따지자면 조선을 거쳐서 지금의 오키나와지만 옛날의 유구국, 거길 거쳐서 네덜란드까지 가는 얘기고요. ▷그러면 무관출신의 그 남자가 유구국.. 오키나와죠? 오키나와를 거쳐서 네덜란드로 가서 사는.. 그런 과정입니까? ▶사는 과정이 아니라 겪는 과정이고요. 그 당시에 네덜란드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냐면 동인도 회사가 막 생겨나던 시절이에요. 그렇다보니까 전세계적으로 제국주의 맹아가 싹틀때잖아요. 그렇다보니까 탐욕과 수탈 약소국가에 대한 침탈, 이런게 특히 동양 국가들이 당했는데 강한 시기였는데 네덜란드는 상당히 특이한 게 뭐냐면 주변 강대국인 스페인과 프랑스로부터 영향을 강하게 받았어요. 쉽게 얘기해서 그게 구교와 신교에요. ▷그렇죠. 네달란드는 신교죠. 개신교.. ▶그렇죠. 그래서 그 당시에 네덜란드는 네덜란드라고 불렸던 것이 아니라 저지국이라고 불렸던 것이죠, 지금의 벨기에까지 합쳐서.. 그래서 30년 전쟁이 일어나게 되잖아요. 30년 전쟁이 일어나다가 중간에 잠깐 휴전이 있고나서 다시 전쟁이 발발하는 그 시기가 조선남자가 가게되는 시기인데 그게 1609년에서 1610년 정도의 배경을 갖고 있거든요. 여기서 결국 전쟁 이후에 네덜란드와 벨기에 저지국은 쪼개지는 것이죠. 그리고 신구교로 완전히 나눠지잖아요. 게다가 국토가 쪼개질 때 기점이 강이었어요. 우리나라로 얘기하면 임진강하고 비슷한.. 이런 모든 것들이 그쪽은 종교에 의해서 분단이 됐지만 우리는 하나의 이념에 의해서 그렇게 됐고.. 분단도 강을 기점으로 해서 된 것이 없지않아 있고.. 이런 것들이 1610년경 네덜란드 상황이 우리 상황과 똑같다.. 그래서 네덜란드 17세기초를 갖다가 소설의 배경으로 끌어온 것이죠. 결국 오늘날 이야기를 하기위해서.. ▷말 그대로 통사적이네요. ▶네, 네. ▷이 작품에서 제가 유추컨대 전경일 작가님의 작가님이 무관출신이 작가님이 아닌가.. 역사속에 들어가셔서 유추해보는 살아보는 느낌을 갖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소설을 쓰시는 선생님들, 작가분들이 그러실텐데요. 자신의 등장인물과 특히 주인공하고 깊은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공감이죠. 그 등장인물이 풀어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지 않아요. 자신이 투영되어야해요. 그러니까 사실 등장인물과 작가의 정서라든가 인식 이런 것들이 거의 비슷하죠. ▷그러면 조선남자의 주인공인 그 남자, 무관 출신 남자, 유구국을 거쳐서 네덜란드로 가는 겪는 과정을 거치는 그 남자 이름이 궁금합니다. ▶이름은 없어요. ▷이름이 없습니까? ▶예, 이름이.. ▷역사소설을 쓰실 때 주인공 이름도 어떻게 정하나.. 그것도 참 궁금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이름이 등장하는데 조선남자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루벤스의 작품 제목이 코리아맨이란 말이에요. ▷코리아맨.. ▶그래서 아예 그냥 보통 명사, 고유명사화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 다음에 네덜란드 현지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이 있어요. 권력을 상징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같은 경우도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직책을 이름화시켰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작품 속 루벤스는 조선남자를 만나 갈등 상황에서 번민하다 결국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찾게 되는 것으로 돼 있는데요. “결국 화가는 빛을 그리는 사람이다”는 이런 말에서 보여지듯 조선남자를 만나 그의 인식이 변화되는데 실제로도 루벤스가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루벤스가요 화가만이 아니라 외교관 활동을 했어요. ▷그렇습니까? ▶상당히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인데요. 특히 그림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에 건너가서 거장들 작품을 엄청나게 많이 접하게 됐죠. ▷이 지점에서 여쭤보고 싶은게 풀 루벤스가 어떤 화가였는지 상세하게 알아봐야될 것 같아요. ▶폴 루벤스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고요. 네덜란드가 낳은 두 손가락에 꼽히는 화가이죠. 왜 두 손가락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 고흐하면 다들 아시잖아요. 다 알죠.. ▷루벤스도 아는 분들은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반 고흐가 태어나기 2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바로크 미술의 거장으로서 성화를 배경으로, 성경을 배경으로 한 성화를 엄청나게 많이 그렸죠. 그러다가 후반기에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어요. 그래서 사실은 구체적인 인물들, 생생하게 숨을 쉬는 사람을 그려보고 싶다.. 그런 욕망을 가졌었고요. 그 다음에 외교관 활동 같은 것을 하면서는 사실은 그 당시 유럽사회가 복잡하게 정치적으로 엮여져 있었고 그랬기 세상에 빛을 주겠다, 정치적으로.. 이런 면모를 보이기도 했는데 그런 게 예술가의 모습하고 동일하게 되는 것이죠. ▷바로크 시대라고 하면 그때가 임진왜란과 비교해보면 어떤 시대죠? ▶서양에서는 바로 그 시기에 해당되는 것이죠. 우리나라로 임진왜란이 1592년에서 1598년에 끝났잖아요. 그러면서 16세기 끝나고 17세기로 넘어가잖아요. 서양에서도 그 시기에 해당됩니다. ▷루벤스.. 그리고 이 작품이 해외에서 번역이 돼서 네덜란드하고 이런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을 것 같은데 클래식하고 리얼리티 문학이니까요.. 작품이 해외에서 번역되거나 그렇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그렇지 않았는데 그럴 만한 단초를 마련한 게 참 이게 노력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주변에 도움도 많이 필요한게 출간한지 2년 됐는데 소설이 알려지기 시작해서 작년에는 한국 출판문화진흥원에서 OSMU가 가능한 작품으로 선정이 됐어요. OSMU가 뭐냐면 원소스멀티유즈라고 해서 책으로 나왔지만 소설로 나왔지만 영화가 되거나 뮤지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선정했는데 거기서 선정이 됐는데 제가 전주국제영화제 가서 영화관계자 앞에서 소개도 해드렸었고요. 올해는 이게 같은 기관에서 초록샘플번역 지원사업에 선정이 됐어요. 이번에.. ▷축하드립니다. ▶영어하고 중문으로 각각 50쪽씩해서 선정이 돼서 문화한국출판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세계 해외 도서전시회가 있잔아요. 거기 영문 중문판으로 소개돼서 나가니까 그렇게 되다보니까 해외 에이전시를 통해서 저작권 수출도 가능하고 또 한편으로는 해외에 우리 문학이 알려질 수 있는 그런 전기가 된 것이죠. ▷청취자분들이 혹시나 말을 꺼내서 더 궁금해하실까봐 여쭤보는 것인데요. 조선남자가 네덜란드에 도착해서 겪는 과정이라고 하셨잖아요. 다시 돌아오기는 돌아오는 겁니까? ▶돌아오지 못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하죠. 자신이 찾고자했던 무기의 본질이 세상을 구하는 것인데 사실은 다나라는 여주인공을 만나서 사랑을 배우게 되거든요. 사랑을 느끼고.. 영적인 구원으로 이 사람의 지향점이 승화돼요. 그걸로 인간의 치욕이라든지 아픔을 씻어내고 인간 외적인 사랑으로 귀결되는 게 이 주인공의 성장과정이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안타깝게.. ▷더더욱 궁금해하는 분들은 조선남자 소설을 구입해서 읽어보시는게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정경일 작가님께서는 ‘조선남자’ 말고도 서른 여권이나 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쓰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책들을 쓰셨습니까? ▶여태까지 31권이고요. 제가 20여년 넘게 글을 쓰면서 경제 경영 사회 문화 인문 역사까지 다 진행이 돼서 왔는데 이후에는 소설을 가장 역점을 둬서 쓸 생각입니다. ▷혹시 말이죠, 지금 그동안 쓴 소설이 31권이나.. 소설이 아니고 여러가지 경제 경영 문학 소설 다 포함해서요. 조선남자 외에 추천하실만한 책이 있다면 본인의 책 어떤게 있습니까? ▶이제까지 나온 것 중에요? ▷네, 네. ▶이끌림의 인문학이라는 근간을 읽어봐주세요. ▷이끌림의 인문학.. ▶세상에 대한 통찰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지금 구상하고 있거나 집필 중인 작품이 있습니까? ▶탈고를 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요. 지금 사실은 퇴고를 거듭하고 있는 작품이에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500쪽짜리 3권짜리 장편 소설인데요. 주인공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미국 라이프라는 매거진이 있어요. 잡지.. 거기에 두 종군기자가 한국전쟁에 참전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카메라의 시각으로 그려내려고 했습니다. ▷네. 지금까지 소설 ‘조선남자’를 쓴 전경일 작가와 이야기 나눠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영규201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