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라운지] 박경귀 "그리스 문명의 도전정신, 청년들에게 영감 주길"](//cpbc.co.kr/CMS/news/2016/07/rc/646825_1.2_titleImage_1.jpg)
[문화 라운지] 박경귀 "그리스 문명의 도전정신, 청년들에게 영감 주길"*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PBC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 인터뷰 [앵커] 서양 문명의 뿌리라고 하면 단연 그리스 문명을 꼽게 되죠. 그리스 문명이 서양의 문학과 철학, 미술, 건축 등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한데요. 하지만 막상 그리스 문명이 어떻게 시작돼서 지금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분은 많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매주 토요일에 전해드리는 <문화 라운지>, 오늘은 그리스 문명을 집대성한 책을 내신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박경귀 국민통합기획단장을 만나봅니다. 박경귀 단장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도 맡고 계십니다. ▷ 박경귀 단장님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십니까. ▷ 단장님이라기보다는 제가 오늘은 이사장님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맞습니다. ▷ 우선 신간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 책 이름이 "그리스, 인문의 향연" 인데요. 이미 그동안 `그리스 답사기`도 연재하시고 고전평론도 몇 년째 해오셨는데요. 이번에 그리스 문명 인문서를 낸 이유가 참으로 궁금해지네요. ▶ 우리 현대 문명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은 그리스 문명에 닿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시행하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라든지 문학, 예술, 건축. 이런 것들이 가장 탁월한 형태로 보여졌던 시기가 바로 그리스 문명 시기입니다. 결국은 문명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리스 문명을 다각적으로 조명하기 위해서 고전을 읽고 평론을 써서 대중에게 알리고 제가 직접 고전의 현장을 찾는 답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선 급한 게 대중들한테 그리스 문명이 굉장히 다채로운데 이걸 어떻게 하면 쉽게 한 권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고전만 직접 전하는 것보다 그리스 문명을 다각적으로 해석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인문서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 문명을 스스로 공부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를 했는데요. 이제부터 대중들은 이런 종합적인 인문서를 통해서 보다 쉽게 그리스 문명의 그런 성취들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청취자 분들께는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안타깝기는 한데요. 제가 지금 들고 있는 그리스인문의 향연. 책이 지금 `어제의 문명으로 살아 있는 미래를 만나다`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고요. 책이 상당히 두껍습니다. 480쪽이 넘거든요. 책을 쓰는 데는 얼마나 걸리셨어요? ▶ 지금 글을 쓰는 데는 한 6년 동안 틈틈이 써왔고요. 지난 1년간 집중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분량이 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더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는데요. 그리스 문명을 총체적으로 다루려면 깊이 들어가면 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중적인 선에서 마무리하자고 해서 일단 마무리했고요. 제가 이렇게 인문서를 내게 된 아주 직접적인 계기는 결국은 제가 고전읽기 운동을 하면서 그리스 문명에 대한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에 이걸 저 혼자 빠지는 것보다는 제가 느끼는 이런 행복감을 많은 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그런데 이사장님. 이 그리스문명에 대해서 그만큼 하실 말씀이 많았던 것은 그리스에 푹 빠진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겁니까? ▶ 제가 1970년대 초에 중학생 시절이었죠. 그때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고전을 읽고 논설을 하는 자유교양대회라는 게 있었습니다. 굉장히 좋은 제도였는데요. 전국의 학교들이 대항전 식으로 했는데, 제가 그때 고전을 읽으면서 충남 대표로 뽑혀서 서울에 와서 다른 시, 도 학생들하고 경연을 한 적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때 청소년기에 고전을 읽다보니까 고전의 매력에 푹 빠졌고요. 그때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게 그리스 로마 신화, 플루타크 영웅전 이런 것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 그러셨군요. ▶ 그때 그리스 고전의 매력에 좀 빠졌죠.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하면 이런 그리스 고전의 현장에 언제 가볼 수 있을까. 또 어려운 고전도 언제 더 읽을 수 있을까. 이렇게 제가 열망하는 게 어린 시절부터 키워져왔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열망을 키워오다가 2010년도에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우리가 이런 매력적인 고전들을 다시 읽고 청소년들에게 고전의 가치를 전파하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도 만들어서 매월 고전아카데미를 개최해서 고전의 진수들을 국민들이 느낄 수 있도록 이런 기회를 만들게 됐던 거죠. ▷ 그리스에도 여러 번 다녀오셨다고 앞서 말씀하셨는데요. 요즘 말로 하면 "그리스 덕후", "그리스 홀릭" 이신 것 같습니다만, 그리스에는 최근에 이 책을 펴내기 위해서 몇 차례나 어떻게 다녀오신 거예요? ▶ 네, 맞습니다. 언젠가 제 딸이 그러더라고요. 아빠보다 더한 그리스 덕후는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리스 덕후가 뭐냐" 그랬더니... 제가 신조어에 약한 기성세대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그리스 홀릭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웃음) 사실 맞는 용어로 치면 `필헬레닉(philhellenic)`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쨌든 제가 1년에 몇 번씩 툭하면 그리스문명 답사 배낭여행을 떠나고는 했으니까 그렇게 부를 만합니다. 제가 그리스 답사 여행은 지금의 그리스뿐만 아니라 옛날 소아시아 지역이었던 에게 연안 터키 지방, 그리고 그리스 식민 도시들이 즐비했던 나폴리 이남의 남부 이탈리아하고 시칠리아섬을 다 답사해야 됩니다. ▷ 그리스도 보면 성경에서는 또 고린토 지역도 포함되고요. ▶ 맞습니다. 그게 바로 코린토스. 고린도 전서라는 게 코린토스에서 나온 거거든요. 이렇게 여러 곳을 다 함께 봐야 되죠. 그래서 제가 그런 곳을 8번 다녀왔고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또 부족한 게 그리스의 문화유물들이 대부분 유럽의 선진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해서 많은 선진국으로 반출이 됐습니다. 그래서 루브르박물관이라든지 대영박물관, 베를린의 페르가몬박물관, 뮌헨의 그리스고고학박물관 등에 굉장히 많은 유물이 가 있습니다. 그런 유럽의 아주 유명 박물관들을 또 일일이 다 찾아다니면서 제가 그리스 문화유산들을 다 찾아내고 그랬습니다. ▷ 앞서 책 앞부분에서도 나와 있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리스 문명의 씨앗이 동방에 닿아 있다, 이 말도 나오던데요. 이건 청취자분들도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하실 것 같고요. 실제로 역사적인 증거 같은 게 좀 나와 있습니까? ▶ 네, 그렇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대목인데요. 저도 그리스 공부하면서 과연 그리스 문명은 어디에서 태생이 됐을까를 살펴봤는데요. 사실 어떤 문명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문명은 없습니다. ▷ 그렇겠죠. ▶ 그리스 문명이 한 3000년 전부터 융성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뿌리를 찾다보니까 결국은 동방 문명의 영향을 받았는데요.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동방은 지금의 중국이나 동아시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요. 이란 고원에서 일어났던 엘람 문명, 또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서 발원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이집트 문명이 있습니다. 이곳의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특히 지중해를 통해서 이러한 선진 문명을 받아들일 좋은 요건이었던 거죠. 지중해 한가운데 보면 크레타섬이 있지 않습니까? 크레타섬이 제일 먼저 이러한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왔고, 미노스문명을 굉장히 전개시키고 미노스 문명의 영향을 받아서 그리스 본토에서는 미케네 문명이 발원됩니다. 그리스 문명은 동방에서 건축, 조각, 공예술 등을 배우게 되는데요. 중요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어디서 배웠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문화적 수용성이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고 그것보다 훨씬 더 탁월한 문명을 재창조해내는 능력을 보인 거죠. 그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 지금에 와서도 그런 문화적 수용성, 다양성을 포용성 있게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가 우리들에게도 좀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우리 이사장님 말씀 듣다보니까... ▶ 아주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그렇습니다. ▷ 사실 그리스문명 하면 그리스신화로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리스신화만 또 놓고 보면 과학적, 이성적 관점에서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많거든요. 그래서 고대그리스인들에게 그리스신화라는 게 과연 어떤 기능을 했을까, 이 부분도 좀 궁금합니다. ▶ 사실 신화는 인간들이 일상에서 이룰 수 없는 꿈, 욕망, 이런 것들이 투영된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또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일부는 또 비현실적인 서사들이 많은 거죠. 그래서 신화라는 것은 허구와 실제가 혼재된 서사라고 보시면 되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신과 영웅들이 다양한 희로애락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희로애락 속에서 인간들은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을 북돋워주는 거죠. 그래서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신화 속에서는 신들이 능숙하게 해내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인간이 고된 운명과 고난에 처했을 때 도전을 통해서 극복하게 하는 그런 자극이 될 수도 있고요. 또 어떤 신화 속에서는 아주 무절제한 영웅들에 대한 징벌을 내리는 것도 많이 나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인간들이 겸허해지고 오만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그런 교훈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신화가 있던 시대는 풍요로운 시대라고 봅니다. 인간들이 할 수 없는 그 부분을 메워주는 측면이 있고요. 인간들에게 새로운 창조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화가 부재한 시대, 특히 요즘 시대가 그렇지 않습니까? 신화가 부재하기 때문에 인간사회가 각박해지지 않나. 그래서 이성과 합리의 시대에도 저는 신화가 여전히 우리한테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흔히 말하는 휴머니즘을 창시한 것도 바로 그리스인들이라고 하던데요. 당시의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휴머니즘을 추구하게 됐는지, 어떻게 봐야 됩니까? ▶ 그리스인들은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남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통치자 중심의 사고를 했다면 그리스인들은 개개인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과연 어떤 속성과 본질을 가졌는가, 이런 것들을 연구하기 위해서 자연을 연구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봤기 때문에 자연철학도 결국은 인간을 연구하는 차원에서 연구하게 됐고 또 철학도 거기서 나온 겁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철학이 나온 거죠.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감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했지만 무엇보다도 이성의 중요성을 굉장히 믿은 분들이거든요.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자유로운 인간의 소중함을 인정했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람들의 투표 행위를 창안해냈던 겁니다. 민주주의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 거죠. 또 그리스인들은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철저하게 가졌기 때문에 신들마저도 인간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했지 않습니까? 저도 이것도 그리스인들의 인간 중심 사고의 결과라고 보고요. 그 다음에 이런 휴머니즘을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서 투영하게 됩니다. 그래서 문학, 건축, 조각, 예술, 철학 등 다양한 영역으로 휴머니즘을 투영해서 그리스시대는 그야말로 휴머니즘이 만개한 시대, 인간중심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사장님 말씀 들어보니까 인간중심적인 사고, 철학, 사람이 먼저다, 이런 광고문구가 생각이 나네요. 책 속에서 청취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 있으시다면 어려운 부탁이지만 낭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네, 제가 몇 대목 한번 낭독해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안한 사회체계는 3000년 가까이 숙성되면서 서양문명의 근간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가치관념과 사고방식을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아직도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때로는 억압으로, 때로는 방종으로 내닫는 일이 잦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본문 109페이지 중에서) ▷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말로 들려주는 문장, 글귀가 아닌가... ▶ 네. 하나 더 할까요? ▷ 하나 더 해 주시면 너무 좋겠습니다. ▶ 그리스인이 창조한 문학, 조각, 건축, 과학 등의 기본 토양은 인간을 위한 휴머니즘이었다. 이렇게 인간을 위한 예술이 만개했던 유일한 시대가 바로 고대 그리스 세계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창조적 활동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끊임없이 고무하고 인간의 아름다움과 무모하리만큼 과감했던 인간들의 도전과 모험을 찬미했다. 그리스 예술작품들은 그리스인이 남긴 휴머니즘의 위대한 증거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내는 조형미술의 유산은 인류 최고의 수준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본문 148페이지 중에서) ▷ 아... 좋습니다. 갑자기 저도 한 6년 전에 가봤던 그리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이 책을 읽고서, 그리스 인문의 향연을 읽고서 다시 한 번 그리스에 가면 어떤 새로운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그럴 겁니다. ▷ 낭독을 해 주셨는데요.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하는 독자분들이 있다면 어떤 분들일까요? ▶ 저는 그리스의 다양한 영역에서 영감을 받아야 될 게 청년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인들은 무한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거든요. 그리스 문명의 핵심이 아레테 문명입니다. 탁월성을 추구하는 문명이죠. 끊임없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했던 겁니다. 이런 탁월성을 추구했던 문화가 각 영역에서의 최고의 예술작품, 문학작품, 철학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이 됐거든요. 그래서 우리 지금 시대가 굉장히 어려운 시대이지만 그리스 황금기에 그리스 청년들이 도전했던 것처럼 우리 청년들이 그렇게 무한도전에 나서야 된다고 봅니다. 또 40~50대 장년층들이 저는 그리스 문명에 주목해보셨으면 합니다. 그리스 문명은 우리가 나아가야 될 미래가 담겨 있거든요. 민주주의의 올바른 방법이라든지 우리 문명이 나아가야 될 방향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저는 그리스 문명을 탐색하면서 통찰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이 신간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3권의 책을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리스 로마 고전, 그리스 문화유산 답사기도 곧 출간하실 예정인 것 같습니다마는. 혹시 여섯 번째 책도 구상하고 계신 게 있습니까? ▶ 지금 그리스 로마 고전과 문화유산 답사기가 굉장히 긴 작품이 될 것 같고요. 우선 거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나머지 작품들은 그리스 고전은 개별 고전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런 개별 고전들에 담고 있는 가치들을 발굴해서 조명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최초의 역사서인 헤르도투스의 역사라든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이런 곳에 보면 무수히 많은 협상과 연설, 그다음에 인간들간의 투쟁과 갈등의 해결, 이런 사례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 것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지혜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추출해서 우리 시대에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책도 구상을 해보고 있습니다. ▷ 갈등관계, 이해관계의 조정, 화합, 통합, 국민대통합위원회에 계시는... ▶ 제가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국민통합을 이룰까... 문화적 접근을 통해서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부분을 굉장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 그러시군요. 문화 라운지, 오늘은 신간 <그리스, 인문의 향연>을 펴낸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박경귀 국민통합기획단장과 말씀 나눠봤는데요.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 읽기 박경귀 이사장이셨습니다. 박 이사장님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네, 고맙습니다. 김혜영2016.07.29
[신간 안내] 32개 성당이야기 담은 `하루쯤 성당여행`[앵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바르셀로나의 파밀리아 성당이나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성당이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하루쯤 성당여행을 떠나보자고 소개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다가오는 사순절에 읽기 좋은 묵상집과 함께 유은재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성당 전경. (자막 :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中)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의 더할 나위 없는 사랑스러운 배경이 됩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수식을 가진 곳, 70여편의 드라마와 영화, CF의 배경이 된 곳, 아산 공세리 성당입니다. 200년 한국 가톨릭의 역사 속에서 이처럼 건축학적 아름다움과 매력적인 이야기를 품은 수 많은 성당들이 전국에 지어졌습니다. 그 중 32개 성당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책이 나왔습니다. 입니다. (자막 : 저자 김용순 외 7명, 디스커버리미디어 펴냄 / 순교성지 10곳, 성당 주변 여행지 100곳, 맛집 110곳, 카페 35곳 상세 정보 소개) 성당과 함께 둘러보기 좋은 주변 여행지와 맛집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아한 아치창을 자랑하는 인천 답동성당으로 여행을 떠났다면 차이나타운과 개항장거리, 월미도를 함께 둘러보고 신포시장에서 지역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받은 대구 계산동성당과 김대건 신부의 숨결이 느껴지는 한옥 사제관이 눈에 띄는 익산 나바위성당 등도 인근 관광지와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는 주말 가까운 곳으로 관광과 미식 여행을 곁드린 성당 순례를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요? 설 연휴 첫날인 다음 달 18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시기를 함께 할 묵상집도 나왔습니다. 입니다. (자막 : 저자- 안드레아 슈바츠, 바오로딸 펴냄) 구약성경의 예언자 엘리야가 이교도 왕비에 쫓겨 목숨이 위태로워졌을 때 하느님을 만나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독자들이 사순시기 40일간 일상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PBC 뉴스 유은재입니다. 유은재2015.01.21
[인터뷰 전문] 최원규 "몽골 의료봉사, 부르심에 쓰임 받은 것" * 최원규 몽골 연세친선병원장,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발언] "몽골에서의 코이카 국제협력의사 활동, 부르심에 쓰임 받은 것"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모스크바보다 고지 높아 더 추워" "몽골에서 신앙을 갖고 성경공부한 것을 계기로 신학 공부" "같은 의사인 아내도 같은 심정으로 몽골행 반대하지 않아" "의료봉사활동, 계산하지 않고 주는 것은 일이 아냐" "몽골 사람들, 뇌심혈관게 질환과 간염 많은 편" "손님을 잘 접대하는 것이 몽골 사람들의 매력" "의사, 간호사, 기사 등 의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요" [발언전문] 안정된 의사로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몽골에서 10년 넘게 의료봉사활동을 해온 분이 있습니다. 바로 제4회 이태석상을 받은 최원규 몽골 국립의과대학 교수이자 몽골 연세친선병원장의 이야기인데요. 매주 토요일에 전해드리는 문화라운지. 오늘은 이태석상 수상자인 최원규 교수를 연결해서 몽골 의료봉사활동에 얽힌 따뜻한 나눔의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 최 교수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최원규입니다. - 닷새 전에 시상식이 있었죠. 늦었지만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부터 한말씀 들어볼까요? ▶저희 시상하기 합당하지 않은데 좋은 상을 받아서 감사드리고요. 무엇보다도 저희 부모님이나 처가 부모님 저희들 멀리 떠나보내고 걱정하셨는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셨다고 생각해서 감사드리고 여러분들이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고 이태석 신부님, 또 이태석상에 대해서 알고 계셨나요? ▶네, 전에 비디오를 통해서 이태석 신부님의 활동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섬기시는 모습이 감동이 되었고요. 상에 대해서 자세히는 몰랐지만 저희 동료가 처음에 받기도 하고 그래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 시상식 당일 수상소감에서 "상을 받기에 당치 않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렇게 아주 겸손한 말씀을 하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의 삶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있는데, 왜 당치 않다고 말씀하셨나요? ▶실제로 제가 몽골에 가서 생활한 것이 뭐 특별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하느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부르신 곳에 그냥 쓰임 받는 것에 감사할 뿐이고요. 상을 받는 것이 내용 없는 껍데기만 만드는 것 마음이 좀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 교수님 약력을 보니까요. 1997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신 뒤에 코이카 국제협력의사로 몽골에 가셨더라고요. 보통 전문의 자격을 따면 개원을 하거나 병원에 들어가기 마련인데, 어떻게 해외의료봉사를 가실 생각을 하셨어요? ▶제가 코이카 국제협력 의사로 가게 되었는데요. 코이카 국제협력의사는 그 당시에 소아과 전문의가 된 이후 공중보건의나 군의관으로 근무를 해야됩니다. 근데 그 당시에 코이카 협력의사로 제3세계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요. 좀더 저를 필요로 생각하는 곳이 어디일까..하고 생각하고 가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때는 사실 제가 신앙이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된다는 것이 그냥 자기 만족을 주지 않습니까? 그정도 수준에 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 몽골 날씨가 정말로 무척 춥다고 들었습니다. 영하 40도, 50도까지도 막 떨어지고요. 의료 기반시설이나 인프라도 열악해서 의료봉사활동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실제로 처음 몽골에 가셨을 때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울란바타르.. 몽골의 수도는 세계의 수도 중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 1도라고 하는데요. 모스크바 보다도 고지에 있기 때문에 더 추운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실내에서 진료하거나 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요. 문제는 낙후된 의료 수준입니다. 70년 동안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몽골이 하게 되었고 러시아 영향을 받았던 가운데 90년대 초에는 아주 경제적으로 공황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어려운 시대를 겪었습니다. 의료라는 것은 경제적인 뒷받침과 사회적인 간접적인 자본이 잘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어려움 때문에 실제적으로 몽골에 90년대 갔었을때에는 건물은 있었습니다만 내용 면에 있어서는 진단과 진료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아주 열악한 수준이었습니다. 몽골 국민들 조차도 몽골 병원이나 몽골 의사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또 거기 가계신 여러 교포들.. 선교사님들, 자녀분들 아주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 지금 몽골국립의과대학에 최원규 교수님 외에 또다른 외국인 의사분들이 계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사실 몽골에 선교를 하면 한국 선교사와 외국 선교사를 얘기할 정도로 한국분들이 90년대 이후에 여러 분이 가시게 되었고요. 저희 병원과 학교에도 한국 선교사분이 4~5명 같이 계십니다. 몽골의 대학을 비롯해서 병원 사역이나 이런 부분에 한국분들이 많은 영향을 끼치고 계시죠. - 그런데 몽골에서 3년 동안 코이카 활동을 마치신 뒤에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가셨어요. 전공인 의학이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셨던데, 큰 결심을 하신 거죠? 그 전에 어떤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사실 제가 몽골에 가서 복을 많이 받았는데요.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몽골 갈 때까지는 제가 신앙이 없었습니다. 근데 몽골에 가서 여러 와계신 선교사님들, 여러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이 왜 몽골에 오셨을까..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소아과 의사로 아이들이 있고 하니까 관계를 맺고 자주 뵙게 됐었고.. 그런 분들이 몽골에 재물이 더 생기기 때문에 오신 것도 아니고 명예가 그렇게 하나밖에 없는 삶인데 그렇게 살 수 있을까라고 의문도 들었는데요.. 그분들과 뵈니까 그분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았고 예수님을 믿어서 그 믿음 때문에 몽골에 오셨다고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분들이 아시는 예수님,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경을 몽골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경 공부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지식적으로 먼저 알게 되었도 하느님은 누구시고 예수님은 누구시고 그런 것들이 구체적으로 믿음으로 연결되게 되었고요. 몽골에서 신앙을 갖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고.. 늦게 예수님을 믿게 되고 신앙을 갖게 되니까 좀더 성경을 잘 알고 말씀대로 살아보고 싶은 그런 마음들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몽골이라든지 어려운 곳에 데려다 놓으시고 신앙도 갖게 하신 뜻이 무엇일까.. 이렇게 헤아리면서 좀더 공부하고 준비해야되겠다라는 생각을 주셔서 미국에 갈 수 있게 됐던 것 같습니다. - 아내분도 같은 의사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몽골에 정착할 때 반대하지는 않으셨나요? ▶아닙니다. 저희 아내는 같이 의과대학 졸업하고 재활의학과를 했는데요. 저희 부부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같습니다. 그것은 몽골에 있을 때에 두 사람한테 똑같은 생각을 늘 주셨던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함께 믿음에 확신도 갖고 하시고 똑같이 하나님의 심정이랄까요? 선교지에 있는 여러분들을 향한 그런 심정들을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같이 가고 또 그 당시에 딸이 둘이었고 지금은 셋인데 미국으로 가고 몽골로 오고 이런 데에 사실 큰 서로 결정을.. 대립이 되거나 그런 적은 없었고.. 같은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 돌이켜보면 감사한 일 같습니다. - 평일에는 몽골 국립의과대 교수로, 주말에는 고아원과 양로원, 교도소, 빈민촌 등을 돌며 무료진료를 해오고 계신데요. 사실상 거의 매일 일을 하시는 건데 힘들지는 않으세요? ▶아닙니다. 들으신 것과 같이 주말마다 늘 진료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일을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들겠지만 뭐라고 할까요? 맡기신 사명에 따라서 사는 것은 좀 가볍고 신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살아가는 사람에게 계산하지 않고 주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매주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 몽골 사람들은 어떤 병이 가장 많은가요? 아직도 의료 기반이 약한 편이죠? ▶몽골 분들은 내륙 지방이고 워낙 육식을 주로 하셨고 그래서 뇌, 심혈관계 질환이 많습니다.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고혈압 환자가 많으시고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경색 환자들이 많습니다. 최대 사망 원인이기도 하고요.. 식생활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특이한 것이라면 간염이나 간암이 다른 나라보다 많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었던 걸로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열대 지역같이 풍토병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60년~70년대 많았던 기생충이나 그런 것도 있지만 그렇게 풍토병이나 전염병이 있는 나라는 아닙니다. - 교수님께서 치료해주는 몽골 환자분들.. 치료가 끝나고 교수님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까? ▶예, 예. 그 분들 필요하신 것들 저희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하면 마음을 나누는 분들 많이 있으시고요. 몽골분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꼽으라면.. - 매력 같은 게 있습니까? ▶그 분들이 갖고 있는 특징은 손님을 잘 접대하는 겁니다. 유목민이셨지 않습니까? 유목민이 느끼는 나그네 심정을 아는 것 같습니다. 위험에 처할 지 모르는 나그네에게 잘 대접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전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이 방송을 듣고 최 교수님의 활동에 도움을 보태고 싶어하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도움을 드릴 만한 부분은 없을까요? ▶저희를 몽골에 부르신 소명이랄까요? 소명은 몽골 의료인들을 잘 세워드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몽골 의료계라면 의사, 간호사, 병원의 기사, 행정하시 는 분 여러 분들이 있겠지만 그런 분들이 전문적으로, 영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세워지는 데에 그런 역사에 하느님이 저희를 부르셨습니다. 그런 부분에 같이 협력하고 전문적인 부분이라는 건 저조차도 소아과에 국한된 전문성을 갖고 있는데 의료계에 가지고 있는 전문성은 여러분야가 있지 않습니까? 의사선생님도 그렇고 간호사, 기사, 행정하시는 분들까지 몽골에 오시면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하고요. 그뿐만 아니라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 같이 고민하실 분들도 그런 사역에 같이 기도로 후원하시고 함께 재정으로 후원하실 분들은 또 후원해주시면 감사하겠고요. 몽골을 위해서는 제가 연세의료원 의료선교센터에 파송으로 몽골에 와있고 선교단체는 인터서브라는 선교회를 통해서 몽골에 와있는데요. 그렇게 통해서 후원해주시면 몽골 국립의과대학을 중심으로 몽골 의료인을 세우는 데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앞으로도 몽골에서 계속 활동을 하시는 건가요? ▶네 그럼요. - 혹시 다른 계획이 있으시면요? ▶특별한 계획은 없고요. 몽골에 하나님 두시는 날까지 잘 쓰임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정결한 그릇으로 잘 정비되어서 하느님 필요하신 곳에 쓰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 마음 안에 사랑이 있기에 아낌없이 주고픈 마음 어려움을 나누고자하는 마음도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문화라운지, 오늘은 이태석상 수상자인 최원규 교수를 연결해서 따뜻한 나눔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최 교수님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주엽2014.12.13
[문화 라운지] 전경일 “리얼리티 문학의 진수, 소설 ‘조선남자’”* 소설 ‘조선남자’ 전경일 작가, PBC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발언 전문] 16세기 말, 임진왜란 7년 동안의 광풍이 휩쓸고 간 조선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소설 ‘조선남자’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소설 ‘조선남자’는 무관 출신으로 7년 동안의 전란 속에서 아내를 잃고 조선땅이 일본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목격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문화라운지] 오늘은 소설 ‘조선남자’를 쓴 전경일 작가를 연결해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전경일 작가님? ▶네, 안녕하세요? ▷먼저 ‘조선남자’는 언제 출간된 소설인지, 또 어떤 소설인지 소개를 좀 해주세요. ▶조선남자는 2014년이니까 이년 전에 출간됐었네요. 이 작품은 혹시 루벤스의 드로잉 중 조선남자라고 있어요. 한복을 입은 조선남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작품을 보신 분들은 아시지만 저는 그 작품의 등장인물을 보면서 강렬한 이미지를 받았어요. ▷어떤 등장인물이기에 강렬한 이미지가 남았을까요? ▶일단 그 사람이 한국사람이냐 아니냐 이런 논쟁이 있었지만 저는 그것보다도 인물 자체가 대단히 인상깊었고요. 잘 생겼어요. 그리고 루벤스가 도대체 이 그림을 그렸는데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그렸는데 도대체 만나기는 했을까 과연.. 그리고 어떤 배경으로 그렸을까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죠. 그래서 밝혀진 바는 전혀 없습니다. 이 인물이 누구인지 아직까지도.. 그래도 사실은 커다란 캔버스에 퍼즐은 하나밖에 없었고요. 나머지 퍼즐은 상상력으로 맞춰간 것이죠. ▷거기서 그러면 폴 루벤스의 조선남자라고 하는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작품을 구상하게 된 것이네요? ▶그렇죠. 진주 귀걸이 소녀라는 외국 소설인데요. 실제 미술 작품도 있죠. 그것도 사실 미술 작품을 보고 구상을 한 것이잖아요. 저희 소설 조선남자도 마찬가지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조선남자.. 이 소설이 임진왜란 7년동안의 한 남자 이야기 아닙니까? 이게 역사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인가요? ▶역사소설로 볼 수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클래식 소설이다.. 요즘 우리나라에 나오는 소설들이 대부분 픽션들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소설 같은 허구들이죠. 그래서 리얼리티라는 게 없는데 사실은 이 작품은 제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글들이 그렇듯이 리얼리티를 강화시킨 역사물이죠. ▷리얼리티라고 하면 역사 속에 인물이 살아있는 듯한 그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그러한 작품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서 당대 시대상이라든가 인간사들 이런 것들이 당대 일로 국한되는게 아니라 오늘날의 반추해봤을 때 어떤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거나 시사하는 바가 있는지 통사적인 성격을 띄어야되는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역사소설이 가져다주는 교훈이고 또 독자들로서도 그걸 얻고자하는 독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반추해보고 통사해보는... ▶그렇죠. 결국 문학이 다루는 게 이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인간과 역사, 사랑과 구원 이런 본질적인 주제들..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작품 속에서 구현했다고 봐야겠죠. ▷고백컨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요. 청취자분들이 혹시 인터뷰 들으시면서 무슨 소설인데 작품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지 몹시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한 남자 이야기라고 하는데 무관출신이고.. 어떤 내용의 줄거리를 엮으신 겁니까? ▶임진왜란을 온 몸으로 겪은 조선의 한 무관인 주인공인 조선남자가 왜 우리가 이렇게 당했을까.. 거기에 천착을 하게 된 것이죠. 그렇다보니까 결국 서구에 의한 서양 세력에 의한 조총이라든가 이런 무기들, 신식 무기들에 우리가 당했다라는 것이죠. 그에 대한 각성을 하면서 조정 내부에다가 그렇게 무기를 도입해서 새로 개발하고 이런 걸 제안하나 사실은 전쟁이 끝나니까 잊어버린 것이죠. 임금 조차도 자신을 외면하고 그렇다보니까 혼자 단독으로 찾아서 가게되요. 그래서 배경을 따지자면 조선을 거쳐서 지금의 오키나와지만 옛날의 유구국, 거길 거쳐서 네덜란드까지 가는 얘기고요. ▷그러면 무관출신의 그 남자가 유구국.. 오키나와죠? 오키나와를 거쳐서 네덜란드로 가서 사는.. 그런 과정입니까? ▶사는 과정이 아니라 겪는 과정이고요. 그 당시에 네덜란드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냐면 동인도 회사가 막 생겨나던 시절이에요. 그렇다보니까 전세계적으로 제국주의 맹아가 싹틀때잖아요. 그렇다보니까 탐욕과 수탈 약소국가에 대한 침탈, 이런게 특히 동양 국가들이 당했는데 강한 시기였는데 네덜란드는 상당히 특이한 게 뭐냐면 주변 강대국인 스페인과 프랑스로부터 영향을 강하게 받았어요. 쉽게 얘기해서 그게 구교와 신교에요. ▷그렇죠. 네달란드는 신교죠. 개신교.. ▶그렇죠. 그래서 그 당시에 네덜란드는 네덜란드라고 불렸던 것이 아니라 저지국이라고 불렸던 것이죠, 지금의 벨기에까지 합쳐서.. 그래서 30년 전쟁이 일어나게 되잖아요. 30년 전쟁이 일어나다가 중간에 잠깐 휴전이 있고나서 다시 전쟁이 발발하는 그 시기가 조선남자가 가게되는 시기인데 그게 1609년에서 1610년 정도의 배경을 갖고 있거든요. 여기서 결국 전쟁 이후에 네덜란드와 벨기에 저지국은 쪼개지는 것이죠. 그리고 신구교로 완전히 나눠지잖아요. 게다가 국토가 쪼개질 때 기점이 강이었어요. 우리나라로 얘기하면 임진강하고 비슷한.. 이런 모든 것들이 그쪽은 종교에 의해서 분단이 됐지만 우리는 하나의 이념에 의해서 그렇게 됐고.. 분단도 강을 기점으로 해서 된 것이 없지않아 있고.. 이런 것들이 1610년경 네덜란드 상황이 우리 상황과 똑같다.. 그래서 네덜란드 17세기초를 갖다가 소설의 배경으로 끌어온 것이죠. 결국 오늘날 이야기를 하기위해서.. ▷말 그대로 통사적이네요. ▶네, 네. ▷이 작품에서 제가 유추컨대 전경일 작가님의 작가님이 무관출신이 작가님이 아닌가.. 역사속에 들어가셔서 유추해보는 살아보는 느낌을 갖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소설을 쓰시는 선생님들, 작가분들이 그러실텐데요. 자신의 등장인물과 특히 주인공하고 깊은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공감이죠. 그 등장인물이 풀어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지 않아요. 자신이 투영되어야해요. 그러니까 사실 등장인물과 작가의 정서라든가 인식 이런 것들이 거의 비슷하죠. ▷그러면 조선남자의 주인공인 그 남자, 무관 출신 남자, 유구국을 거쳐서 네덜란드로 가는 겪는 과정을 거치는 그 남자 이름이 궁금합니다. ▶이름은 없어요. ▷이름이 없습니까? ▶예, 이름이.. ▷역사소설을 쓰실 때 주인공 이름도 어떻게 정하나.. 그것도 참 궁금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이름이 등장하는데 조선남자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루벤스의 작품 제목이 코리아맨이란 말이에요. ▷코리아맨.. ▶그래서 아예 그냥 보통 명사, 고유명사화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 다음에 네덜란드 현지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이 있어요. 권력을 상징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같은 경우도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직책을 이름화시켰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작품 속 루벤스는 조선남자를 만나 갈등 상황에서 번민하다 결국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찾게 되는 것으로 돼 있는데요. “결국 화가는 빛을 그리는 사람이다”는 이런 말에서 보여지듯 조선남자를 만나 그의 인식이 변화되는데 실제로도 루벤스가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루벤스가요 화가만이 아니라 외교관 활동을 했어요. ▷그렇습니까? ▶상당히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인데요. 특히 그림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에 건너가서 거장들 작품을 엄청나게 많이 접하게 됐죠. ▷이 지점에서 여쭤보고 싶은게 풀 루벤스가 어떤 화가였는지 상세하게 알아봐야될 것 같아요. ▶폴 루벤스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고요. 네덜란드가 낳은 두 손가락에 꼽히는 화가이죠. 왜 두 손가락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 고흐하면 다들 아시잖아요. 다 알죠.. ▷루벤스도 아는 분들은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반 고흐가 태어나기 2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바로크 미술의 거장으로서 성화를 배경으로, 성경을 배경으로 한 성화를 엄청나게 많이 그렸죠. 그러다가 후반기에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어요. 그래서 사실은 구체적인 인물들, 생생하게 숨을 쉬는 사람을 그려보고 싶다.. 그런 욕망을 가졌었고요. 그 다음에 외교관 활동 같은 것을 하면서는 사실은 그 당시 유럽사회가 복잡하게 정치적으로 엮여져 있었고 그랬기 세상에 빛을 주겠다, 정치적으로.. 이런 면모를 보이기도 했는데 그런 게 예술가의 모습하고 동일하게 되는 것이죠. ▷바로크 시대라고 하면 그때가 임진왜란과 비교해보면 어떤 시대죠? ▶서양에서는 바로 그 시기에 해당되는 것이죠. 우리나라로 임진왜란이 1592년에서 1598년에 끝났잖아요. 그러면서 16세기 끝나고 17세기로 넘어가잖아요. 서양에서도 그 시기에 해당됩니다. ▷루벤스.. 그리고 이 작품이 해외에서 번역이 돼서 네덜란드하고 이런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을 것 같은데 클래식하고 리얼리티 문학이니까요.. 작품이 해외에서 번역되거나 그렇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그렇지 않았는데 그럴 만한 단초를 마련한 게 참 이게 노력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주변에 도움도 많이 필요한게 출간한지 2년 됐는데 소설이 알려지기 시작해서 작년에는 한국 출판문화진흥원에서 OSMU가 가능한 작품으로 선정이 됐어요. OSMU가 뭐냐면 원소스멀티유즈라고 해서 책으로 나왔지만 소설로 나왔지만 영화가 되거나 뮤지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선정했는데 거기서 선정이 됐는데 제가 전주국제영화제 가서 영화관계자 앞에서 소개도 해드렸었고요. 올해는 이게 같은 기관에서 초록샘플번역 지원사업에 선정이 됐어요. 이번에.. ▷축하드립니다. ▶영어하고 중문으로 각각 50쪽씩해서 선정이 돼서 문화한국출판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세계 해외 도서전시회가 있잔아요. 거기 영문 중문판으로 소개돼서 나가니까 그렇게 되다보니까 해외 에이전시를 통해서 저작권 수출도 가능하고 또 한편으로는 해외에 우리 문학이 알려질 수 있는 그런 전기가 된 것이죠. ▷청취자분들이 혹시나 말을 꺼내서 더 궁금해하실까봐 여쭤보는 것인데요. 조선남자가 네덜란드에 도착해서 겪는 과정이라고 하셨잖아요. 다시 돌아오기는 돌아오는 겁니까? ▶돌아오지 못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하죠. 자신이 찾고자했던 무기의 본질이 세상을 구하는 것인데 사실은 다나라는 여주인공을 만나서 사랑을 배우게 되거든요. 사랑을 느끼고.. 영적인 구원으로 이 사람의 지향점이 승화돼요. 그걸로 인간의 치욕이라든지 아픔을 씻어내고 인간 외적인 사랑으로 귀결되는 게 이 주인공의 성장과정이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안타깝게.. ▷더더욱 궁금해하는 분들은 조선남자 소설을 구입해서 읽어보시는게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정경일 작가님께서는 ‘조선남자’ 말고도 서른 여권이나 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쓰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책들을 쓰셨습니까? ▶여태까지 31권이고요. 제가 20여년 넘게 글을 쓰면서 경제 경영 사회 문화 인문 역사까지 다 진행이 돼서 왔는데 이후에는 소설을 가장 역점을 둬서 쓸 생각입니다. ▷혹시 말이죠, 지금 그동안 쓴 소설이 31권이나.. 소설이 아니고 여러가지 경제 경영 문학 소설 다 포함해서요. 조선남자 외에 추천하실만한 책이 있다면 본인의 책 어떤게 있습니까? ▶이제까지 나온 것 중에요? ▷네, 네. ▶이끌림의 인문학이라는 근간을 읽어봐주세요. ▷이끌림의 인문학.. ▶세상에 대한 통찰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지금 구상하고 있거나 집필 중인 작품이 있습니까? ▶탈고를 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요. 지금 사실은 퇴고를 거듭하고 있는 작품이에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500쪽짜리 3권짜리 장편 소설인데요. 주인공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미국 라이프라는 매거진이 있어요. 잡지.. 거기에 두 종군기자가 한국전쟁에 참전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카메라의 시각으로 그려내려고 했습니다. ▷네. 지금까지 소설 ‘조선남자’를 쓴 전경일 작가와 이야기 나눠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영규2016.04.09
로마가톨릭에서 성공회까지… 뿌리 하나인 `그리스도교`[앵커] "그리스도교" 천주교를 비롯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파를 통칭하는 단어인데요. 여러 교파로 갈라진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이 어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역사 안에서 갈라진 형제들은 얼마나 되고,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김성덕 기자가 설명해 드립니다. [기자] 현재 그리스도교는 크게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개신교, 그리고 성공회로 나뉘어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였던 그리스도교는 로마 서쪽의 서방 교회와 동쪽의 동방 교회로 나뉘어져 서로 교세를 확장해 나갑니다. 하지만 동방 교회들이 교황의 절대적 우위를 강조한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결국 1054년 서로를 파문하며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교회로 갈라졌습니다. 동방 교회는 자신들만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올바른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으로 스스로를 정교회(正敎會)라고 부릅니다. 정교회는 지역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러시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16세기를 기점으로 또 다시 위기에 직면합니다. 유럽 가톨릭교회가 세속 권력과 결탁하면서 부패가 만연하자 독일의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킵니다. 루터는 1517년 대사(大赦) 문제를 지적하며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내용의 95개 논제를 발표하고 가톨릭교회를 정면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가톨릭에 대항한다는 뜻에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즉 개신교가 탄생합니다. 개신교회는 오직 성경만 인정할 뿐 사도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의 거룩한 전통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황수위권과 무류성, 성모 마리아 교리, 성사 등이 없습니다. 성공회는 영국 헨리 8세 국왕의 이혼 문제에서 탄생했다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헨리 8세는 아내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 앤 볼린과 결혼을 강행하지만 ‘교회법상 이혼을 금지’ 한 교황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에 반발한 헨리 8세는 1534년 교황이 아닌 자신을 교회 수장으로 선포했고, 이것이 성공회의 시작입니다. 성공회(聖公會)라는 이름은 사도신경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라는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사제도 결혼을 할 수 있고, 여성 사제도 인정합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첫 여성 주교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PBC뉴스 김성덕입니다. 김성덕201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