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라운지] 전경일 “리얼리티 문학의 진수, 소설 ‘조선남자’”* 소설 ‘조선남자’ 전경일 작가, PBC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발언 전문] 16세기 말, 임진왜란 7년 동안의 광풍이 휩쓸고 간 조선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소설 ‘조선남자’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소설 ‘조선남자’는 무관 출신으로 7년 동안의 전란 속에서 아내를 잃고 조선땅이 일본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목격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문화라운지] 오늘은 소설 ‘조선남자’를 쓴 전경일 작가를 연결해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전경일 작가님? ▶네, 안녕하세요? ▷먼저 ‘조선남자’는 언제 출간된 소설인지, 또 어떤 소설인지 소개를 좀 해주세요. ▶조선남자는 2014년이니까 이년 전에 출간됐었네요. 이 작품은 혹시 루벤스의 드로잉 중 조선남자라고 있어요. 한복을 입은 조선남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작품을 보신 분들은 아시지만 저는 그 작품의 등장인물을 보면서 강렬한 이미지를 받았어요. ▷어떤 등장인물이기에 강렬한 이미지가 남았을까요? ▶일단 그 사람이 한국사람이냐 아니냐 이런 논쟁이 있었지만 저는 그것보다도 인물 자체가 대단히 인상깊었고요. 잘 생겼어요. 그리고 루벤스가 도대체 이 그림을 그렸는데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그렸는데 도대체 만나기는 했을까 과연.. 그리고 어떤 배경으로 그렸을까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죠. 그래서 밝혀진 바는 전혀 없습니다. 이 인물이 누구인지 아직까지도.. 그래도 사실은 커다란 캔버스에 퍼즐은 하나밖에 없었고요. 나머지 퍼즐은 상상력으로 맞춰간 것이죠. ▷거기서 그러면 폴 루벤스의 조선남자라고 하는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작품을 구상하게 된 것이네요? ▶그렇죠. 진주 귀걸이 소녀라는 외국 소설인데요. 실제 미술 작품도 있죠. 그것도 사실 미술 작품을 보고 구상을 한 것이잖아요. 저희 소설 조선남자도 마찬가지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조선남자.. 이 소설이 임진왜란 7년동안의 한 남자 이야기 아닙니까? 이게 역사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인가요? ▶역사소설로 볼 수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클래식 소설이다.. 요즘 우리나라에 나오는 소설들이 대부분 픽션들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소설 같은 허구들이죠. 그래서 리얼리티라는 게 없는데 사실은 이 작품은 제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글들이 그렇듯이 리얼리티를 강화시킨 역사물이죠. ▷리얼리티라고 하면 역사 속에 인물이 살아있는 듯한 그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그러한 작품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서 당대 시대상이라든가 인간사들 이런 것들이 당대 일로 국한되는게 아니라 오늘날의 반추해봤을 때 어떤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거나 시사하는 바가 있는지 통사적인 성격을 띄어야되는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역사소설이 가져다주는 교훈이고 또 독자들로서도 그걸 얻고자하는 독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반추해보고 통사해보는... ▶그렇죠. 결국 문학이 다루는 게 이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인간과 역사, 사랑과 구원 이런 본질적인 주제들..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작품 속에서 구현했다고 봐야겠죠. ▷고백컨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요. 청취자분들이 혹시 인터뷰 들으시면서 무슨 소설인데 작품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지 몹시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한 남자 이야기라고 하는데 무관출신이고.. 어떤 내용의 줄거리를 엮으신 겁니까? ▶임진왜란을 온 몸으로 겪은 조선의 한 무관인 주인공인 조선남자가 왜 우리가 이렇게 당했을까.. 거기에 천착을 하게 된 것이죠. 그렇다보니까 결국 서구에 의한 서양 세력에 의한 조총이라든가 이런 무기들, 신식 무기들에 우리가 당했다라는 것이죠. 그에 대한 각성을 하면서 조정 내부에다가 그렇게 무기를 도입해서 새로 개발하고 이런 걸 제안하나 사실은 전쟁이 끝나니까 잊어버린 것이죠. 임금 조차도 자신을 외면하고 그렇다보니까 혼자 단독으로 찾아서 가게되요. 그래서 배경을 따지자면 조선을 거쳐서 지금의 오키나와지만 옛날의 유구국, 거길 거쳐서 네덜란드까지 가는 얘기고요. ▷그러면 무관출신의 그 남자가 유구국.. 오키나와죠? 오키나와를 거쳐서 네덜란드로 가서 사는.. 그런 과정입니까? ▶사는 과정이 아니라 겪는 과정이고요. 그 당시에 네덜란드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냐면 동인도 회사가 막 생겨나던 시절이에요. 그렇다보니까 전세계적으로 제국주의 맹아가 싹틀때잖아요. 그렇다보니까 탐욕과 수탈 약소국가에 대한 침탈, 이런게 특히 동양 국가들이 당했는데 강한 시기였는데 네덜란드는 상당히 특이한 게 뭐냐면 주변 강대국인 스페인과 프랑스로부터 영향을 강하게 받았어요. 쉽게 얘기해서 그게 구교와 신교에요. ▷그렇죠. 네달란드는 신교죠. 개신교.. ▶그렇죠. 그래서 그 당시에 네덜란드는 네덜란드라고 불렸던 것이 아니라 저지국이라고 불렸던 것이죠, 지금의 벨기에까지 합쳐서.. 그래서 30년 전쟁이 일어나게 되잖아요. 30년 전쟁이 일어나다가 중간에 잠깐 휴전이 있고나서 다시 전쟁이 발발하는 그 시기가 조선남자가 가게되는 시기인데 그게 1609년에서 1610년 정도의 배경을 갖고 있거든요. 여기서 결국 전쟁 이후에 네덜란드와 벨기에 저지국은 쪼개지는 것이죠. 그리고 신구교로 완전히 나눠지잖아요. 게다가 국토가 쪼개질 때 기점이 강이었어요. 우리나라로 얘기하면 임진강하고 비슷한.. 이런 모든 것들이 그쪽은 종교에 의해서 분단이 됐지만 우리는 하나의 이념에 의해서 그렇게 됐고.. 분단도 강을 기점으로 해서 된 것이 없지않아 있고.. 이런 것들이 1610년경 네덜란드 상황이 우리 상황과 똑같다.. 그래서 네덜란드 17세기초를 갖다가 소설의 배경으로 끌어온 것이죠. 결국 오늘날 이야기를 하기위해서.. ▷말 그대로 통사적이네요. ▶네, 네. ▷이 작품에서 제가 유추컨대 전경일 작가님의 작가님이 무관출신이 작가님이 아닌가.. 역사속에 들어가셔서 유추해보는 살아보는 느낌을 갖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소설을 쓰시는 선생님들, 작가분들이 그러실텐데요. 자신의 등장인물과 특히 주인공하고 깊은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공감이죠. 그 등장인물이 풀어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지 않아요. 자신이 투영되어야해요. 그러니까 사실 등장인물과 작가의 정서라든가 인식 이런 것들이 거의 비슷하죠. ▷그러면 조선남자의 주인공인 그 남자, 무관 출신 남자, 유구국을 거쳐서 네덜란드로 가는 겪는 과정을 거치는 그 남자 이름이 궁금합니다. ▶이름은 없어요. ▷이름이 없습니까? ▶예, 이름이.. ▷역사소설을 쓰실 때 주인공 이름도 어떻게 정하나.. 그것도 참 궁금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이름이 등장하는데 조선남자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루벤스의 작품 제목이 코리아맨이란 말이에요. ▷코리아맨.. ▶그래서 아예 그냥 보통 명사, 고유명사화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 다음에 네덜란드 현지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이 있어요. 권력을 상징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같은 경우도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직책을 이름화시켰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작품 속 루벤스는 조선남자를 만나 갈등 상황에서 번민하다 결국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찾게 되는 것으로 돼 있는데요. “결국 화가는 빛을 그리는 사람이다”는 이런 말에서 보여지듯 조선남자를 만나 그의 인식이 변화되는데 실제로도 루벤스가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루벤스가요 화가만이 아니라 외교관 활동을 했어요. ▷그렇습니까? ▶상당히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인데요. 특히 그림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에 건너가서 거장들 작품을 엄청나게 많이 접하게 됐죠. ▷이 지점에서 여쭤보고 싶은게 풀 루벤스가 어떤 화가였는지 상세하게 알아봐야될 것 같아요. ▶폴 루벤스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고요. 네덜란드가 낳은 두 손가락에 꼽히는 화가이죠. 왜 두 손가락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 고흐하면 다들 아시잖아요. 다 알죠.. ▷루벤스도 아는 분들은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반 고흐가 태어나기 2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바로크 미술의 거장으로서 성화를 배경으로, 성경을 배경으로 한 성화를 엄청나게 많이 그렸죠. 그러다가 후반기에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어요. 그래서 사실은 구체적인 인물들, 생생하게 숨을 쉬는 사람을 그려보고 싶다.. 그런 욕망을 가졌었고요. 그 다음에 외교관 활동 같은 것을 하면서는 사실은 그 당시 유럽사회가 복잡하게 정치적으로 엮여져 있었고 그랬기 세상에 빛을 주겠다, 정치적으로.. 이런 면모를 보이기도 했는데 그런 게 예술가의 모습하고 동일하게 되는 것이죠. ▷바로크 시대라고 하면 그때가 임진왜란과 비교해보면 어떤 시대죠? ▶서양에서는 바로 그 시기에 해당되는 것이죠. 우리나라로 임진왜란이 1592년에서 1598년에 끝났잖아요. 그러면서 16세기 끝나고 17세기로 넘어가잖아요. 서양에서도 그 시기에 해당됩니다. ▷루벤스.. 그리고 이 작품이 해외에서 번역이 돼서 네덜란드하고 이런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을 것 같은데 클래식하고 리얼리티 문학이니까요.. 작품이 해외에서 번역되거나 그렇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그렇지 않았는데 그럴 만한 단초를 마련한 게 참 이게 노력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주변에 도움도 많이 필요한게 출간한지 2년 됐는데 소설이 알려지기 시작해서 작년에는 한국 출판문화진흥원에서 OSMU가 가능한 작품으로 선정이 됐어요. OSMU가 뭐냐면 원소스멀티유즈라고 해서 책으로 나왔지만 소설로 나왔지만 영화가 되거나 뮤지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선정했는데 거기서 선정이 됐는데 제가 전주국제영화제 가서 영화관계자 앞에서 소개도 해드렸었고요. 올해는 이게 같은 기관에서 초록샘플번역 지원사업에 선정이 됐어요. 이번에.. ▷축하드립니다. ▶영어하고 중문으로 각각 50쪽씩해서 선정이 돼서 문화한국출판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세계 해외 도서전시회가 있잔아요. 거기 영문 중문판으로 소개돼서 나가니까 그렇게 되다보니까 해외 에이전시를 통해서 저작권 수출도 가능하고 또 한편으로는 해외에 우리 문학이 알려질 수 있는 그런 전기가 된 것이죠. ▷청취자분들이 혹시나 말을 꺼내서 더 궁금해하실까봐 여쭤보는 것인데요. 조선남자가 네덜란드에 도착해서 겪는 과정이라고 하셨잖아요. 다시 돌아오기는 돌아오는 겁니까? ▶돌아오지 못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하죠. 자신이 찾고자했던 무기의 본질이 세상을 구하는 것인데 사실은 다나라는 여주인공을 만나서 사랑을 배우게 되거든요. 사랑을 느끼고.. 영적인 구원으로 이 사람의 지향점이 승화돼요. 그걸로 인간의 치욕이라든지 아픔을 씻어내고 인간 외적인 사랑으로 귀결되는 게 이 주인공의 성장과정이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안타깝게.. ▷더더욱 궁금해하는 분들은 조선남자 소설을 구입해서 읽어보시는게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정경일 작가님께서는 ‘조선남자’ 말고도 서른 여권이나 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쓰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책들을 쓰셨습니까? ▶여태까지 31권이고요. 제가 20여년 넘게 글을 쓰면서 경제 경영 사회 문화 인문 역사까지 다 진행이 돼서 왔는데 이후에는 소설을 가장 역점을 둬서 쓸 생각입니다. ▷혹시 말이죠, 지금 그동안 쓴 소설이 31권이나.. 소설이 아니고 여러가지 경제 경영 문학 소설 다 포함해서요. 조선남자 외에 추천하실만한 책이 있다면 본인의 책 어떤게 있습니까? ▶이제까지 나온 것 중에요? ▷네, 네. ▶이끌림의 인문학이라는 근간을 읽어봐주세요. ▷이끌림의 인문학.. ▶세상에 대한 통찰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지금 구상하고 있거나 집필 중인 작품이 있습니까? ▶탈고를 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요. 지금 사실은 퇴고를 거듭하고 있는 작품이에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500쪽짜리 3권짜리 장편 소설인데요. 주인공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미국 라이프라는 매거진이 있어요. 잡지.. 거기에 두 종군기자가 한국전쟁에 참전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카메라의 시각으로 그려내려고 했습니다. ▷네. 지금까지 소설 ‘조선남자’를 쓴 전경일 작가와 이야기 나눠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영규2016.04.09
로마가톨릭에서 성공회까지… 뿌리 하나인 `그리스도교`[앵커] "그리스도교" 천주교를 비롯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파를 통칭하는 단어인데요. 여러 교파로 갈라진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이 어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역사 안에서 갈라진 형제들은 얼마나 되고,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김성덕 기자가 설명해 드립니다. [기자] 현재 그리스도교는 크게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개신교, 그리고 성공회로 나뉘어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였던 그리스도교는 로마 서쪽의 서방 교회와 동쪽의 동방 교회로 나뉘어져 서로 교세를 확장해 나갑니다. 하지만 동방 교회들이 교황의 절대적 우위를 강조한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결국 1054년 서로를 파문하며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교회로 갈라졌습니다. 동방 교회는 자신들만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올바른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으로 스스로를 정교회(正敎會)라고 부릅니다. 정교회는 지역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러시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16세기를 기점으로 또 다시 위기에 직면합니다. 유럽 가톨릭교회가 세속 권력과 결탁하면서 부패가 만연하자 독일의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킵니다. 루터는 1517년 대사(大赦) 문제를 지적하며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내용의 95개 논제를 발표하고 가톨릭교회를 정면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가톨릭에 대항한다는 뜻에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즉 개신교가 탄생합니다. 개신교회는 오직 성경만 인정할 뿐 사도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의 거룩한 전통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황수위권과 무류성, 성모 마리아 교리, 성사 등이 없습니다. 성공회는 영국 헨리 8세 국왕의 이혼 문제에서 탄생했다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헨리 8세는 아내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 앤 볼린과 결혼을 강행하지만 ‘교회법상 이혼을 금지’ 한 교황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에 반발한 헨리 8세는 1534년 교황이 아닌 자신을 교회 수장으로 선포했고, 이것이 성공회의 시작입니다. 성공회(聖公會)라는 이름은 사도신경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라는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사제도 결혼을 할 수 있고, 여성 사제도 인정합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첫 여성 주교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PBC뉴스 김성덕입니다. 김성덕2015.01.19

프란치스코 교황, 대전서 韓신자들과 첫 미사… 5만명 운집[앵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둘째 날인 오늘 오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 신자들과 함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취재기자와 함께 자세한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김성덕 기자! 1. 오늘 미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후 한국 신자들과 드린 첫 번째 미사죠? -그렇습니다. 오늘 미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후 한국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첫 미사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국경일인 광복절이자 가톨릭에서는 ‘성모승천대축일’인데요. 예수의 어머니이자 신앙의 모범인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은혜를 입어, 일생을 마친 뒤 하늘로 들어 올림 받으신 것을 경축하는 축제일로, 주일이 아니어도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의무 대축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전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운 5만여명의 신자들과 함께 오전 10시 50분쯤부터 1시간 30분 동안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드렸습니다. 2. 미사는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네. 미사가 시작되자 프란치스코 교황과 사제단은 중앙 통로를 통해 입장했습니다. 오늘 미사는 ‘성대한 미사’이므로, 교황은 제단에 다다른 후 제대 둘레를 돌며 분향을 했습니다. 분향은 경배의 행위인데요.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과 기도가 향이 타오르듯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의미를 드러냅니다. 분향 행렬을 마친 후 교황과 공동 집전자들은 제대 앞에 서서 성호경을 긋고, 죄를 반성하는 고백기도(참회예식)와 자비송, 대영광송을 바쳤습니다. 이어 교황은 미사의 주제를 드러내는 본기도를 바쳤습니다. 성경을 읽고 풀이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말씀 전례’에서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때 읽도록 지정된 신약성경의 두 부분과 복음서를 읽었는데요. 신약성경은 요한묵시록과 바오로 사도 서간을 읽었습니다. 복음 낭독이 끝나고 교황의 메시지인 강론이 있었고요. 강론을 마친 후 가톨릭의 전통적 기도인 사도신경을 바치며 신앙고백을 했고, 보편지향기도(신자들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기도 주제는 ▲가톨릭교회 ▲세계 평화 ▲정치인들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민족의 화해와 일치 등 5가지이고, 시각장애인, 필리핀 이주노동자, 어린이, 남녀 신자 각 1명이 기도했습니다. 보편지향기도 가운데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기도, 필리핀 이주 노동자가 했는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녹취] “주님 저희 사회에는 아직도 부정직하고 무책임한 행실로 빚어지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고, 경제적인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면서도 저희의 무관심으로 굶주리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는 주님의 물음을 오늘 저희가 가슴 깊이 새기고 각자 맡은 소임에 책임을 다하여 서로 깊이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고 고통중에 있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를 다 하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3. 성찬 전례는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네.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고 예수님의 몸을 나누는 ‘성찬 전례’는 성체성사에 사용할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예물 봉헌으로 시작됐습니다. 봉헌 예식이 끝난 후 감사기도를 바쳤습니다. 이어 교황은 신자들이 성체성사를 통해 한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하고, 신자들이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인들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주님의 기도, 평화의 인사, 영성체를 마친 후 교황은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하늘나라의 영광을 누리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어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가 교황 방한에 감사하는 인사를 드렸고요. 교황은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복을 빌어주고 세상으로 파견하며 미사를 마쳤습니다. 4. 그리고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한 제단도 특별 제작됐다고요? -네. 색동 화가 이규환 씨가 디자인 한 것으로 폭12미터, 넓이 24미터 크기로 성모 승천의 종교적인 의미와 순교자 정신, 평화, 한국의 문화를 담았습니다. 제단 전체적으로 표현한 하얀색은 ‘일어나 비추어라’를 상징하는 빛의 의미이고요. 제단의 지붕과 전면의 날아갈 듯 멈춘 선은 한옥 기와선과 저고리의 깃선, 버선의 선 등 한국적인 미를 표현했습니다. 선 한쪽 끝에는 아이 돌이나 결혼식 등 기쁜 날 입던 색동을 넣어 교황님을 맞이하는 기쁨의 의미와 남북의 분단에서 화해를 상징하는 의미를 나타냈습니다. 푸른색 쪽빛과 옥빛 휘장으로 마감한 제단 뒷면은 성모님의 의미와 한국적 정서를 담아 교황께 전달하기 위해 디자인됐습니다. 평화방송 김성덕 기자 김성덕2014.08.15
2014년,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앵커] 갈라진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일치 주간을 맞아 보내드리고 있는 [기획보도]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을 김항섭 기자가 정리해 봤습니다. [기자] 지난해 5월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을 전담할 기구인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가 창립합니다. 천주교와 정교회,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회원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등 11개 교단이 참여했습니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장을 맡아 형제 종교, 이웃 종교들과 꾸준히 대화를 이끌어온 김희중 대주교가 한국 구세군 박종덕 사령관과 함께 초대 공동의장에 선출됐습니다. "한국에서의 그리스도교 역사가 양교가 뭐가 차이가 나는가, 다른가 하는 것을 캐는 역사였다면 앞으로 우리의 행보는 무엇이 신앙의 유산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더 공감하면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겸손하게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의 일치 운동이 서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한국신앙직제는 신학적 대화를 포함한 본격적인 일치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단계는 오는 22일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아카데미`, 일치 아카데미는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 사이의 형제자매적 친교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교회 일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쟁점이 되고 있는 각종 제도와 전례, 성사, 신심 등을 올바로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줄 전망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이 모여 교황의 첫 권고문헌 `복음의 기쁨`을 공부하는 자리가 열렸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복음의 기쁨의 중심 내용을 탐구하고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 박종천 목사입니다. "복음의 기쁨은 현존하는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회의 경계를 넘어서 성경적 기독교와 고대 기독교의 복음적인 신앙을 현대 세계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참 목자`의 말씀..." 가톨릭 부제들이 이웃 종교를 직접 체험하는 행사도 8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국 15개 교구와 수도회 소속 부제 130여 명은 그리스도교인 개신교와 한국정교회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와 불교를 찾아 각 종단의 역사와 교리를 들으며 이웃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습니다. 당시 이웃종교 체험행사에 참여했던 수원교구 송성규 신부입니다. “특히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서로 잘 모르는 종교들을 서로 잘 알게 되고 저희가 어떤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거리를 두었던 그런 것들이 이제 전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그 종교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이로운 점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종교간, 문화간 충돌이 테러로 이어지고 있는 일부 서방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에서 많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데는 이런 가톨릭 교회의 노력이 한 몫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BC뉴스 김항섭입니다. 김항섭2015.01.20
[영상뉴스] 2014년,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 [앵커] 이어서 갈라진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일치 주간을 맞아 보내드리고 있는 [기획보도]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해 애써온 한국교회의 노력을 김항섭 기자가 정리해 봤습니다. [기자] 지난해 5월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을 전담할 기구인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가 창립했습니다. 천주교와 정교회,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회원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등 11개 교단이 참여했습니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장을 맡아 형제 종교, 이웃 종교들과 꾸준히 대화를 이끌어온 김희중 대주교가 한국 구세군 박종덕 사령관과 함께 초대 공동의장에 선출됐습니다. "한국에서의 그리스도교 역사가 양교가 뭐가 차이가 나는가, 다른가 하는 것을 캐는 역사였다면 앞으로 우리의 행보는 무엇이 신앙의 유산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더 공감하면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겸손하게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의 일치 운동이 서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한국신앙직제는 신학적 대화를 포함한 본격적인 일치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단계는 오는 22일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아카데미`, 일치 아카데미는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 사이의 형제자매적 친교와 유대감을 만들고, 교회 일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쟁점이 되고 있는 각종 제도와 전례, 성사, 신심 등을 올바로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줄 전망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이 모여 교황의 첫 권고문헌 `복음의 기쁨`을 공부하는 자리가 열렸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복음의 기쁨의 중심 내용을 탐구하고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현존하는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회의 경계를 넘어서 성경적 기독교와 고대 기독교의 복음적인 신앙을 현대 세계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참 목자`의 말씀..." 가톨릭 부제들이 이웃 종교를 직접 체험하는 행사도 8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국 15개 교구와 수도회 소속 부제 130여 명은 그리스도교인 개신교와 한국정교회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와 불교를 찾아 각 종단의 역사와 교리를 들으며 이웃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습니다. "특히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서로 잘 모르는 종교들을 서로 잘 알게 되고 저희가 어떤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거리를 두었던 그런 것들이 이제 전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그 종교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이로운 점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종교간, 문화간 충돌이 테러로 이어지고 있는 일부 서방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에서 많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데는 이런 가톨릭 교회의 노력이 한 몫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BC뉴스 김항섭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모든 그리스도교 교파의 뿌리이자 `큰 집`입니다. 흩어진 형제들을 하나로 다시 모으는 소명을 수행함에 있어 우리 가톨릭교회의 책임이 가장 무거움을 잊어선 안되겠습니다.김항섭2015.01.20
![[인터뷰] 유종일 "`주빌리은행` 호응 폭발적, 법과 제도,관행 모두 바뀌어야"](//cpbc.co.kr/CMS/news/2015/10/rc/599090_1.0_titleImage_1.jpg)
[인터뷰] 유종일 "`주빌리은행` 호응 폭발적, 법과 제도,관행 모두 바뀌어야"* 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 발언] "주빌리 은행, 세계적으로도 드물어" "빚 갚고 싶지만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이 대상" "현재까지 3천6백여 명 혜택 받아" "포털사이트에서 `주빌리 은행` 검색하면 이용할 수 있어" "부실채권 문제 해결 위해 정책 마련돼야" "서민경제 살리지 않고서는 한국경제 살릴 수 없어" [발언 전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서민들을 위해 그 빚을 탕감해 주는 은행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주빌리 은행’인데요. 벌써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다고 합니다. 주빌리 은행 공동은행장 KDI 한국개발원 국제정책대학원의 유종일 교수 모셔서 자세한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유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주빌리 은행, 사실 저도 잘 몰랐습니다만 주빌리 은행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시죠. ▶주빌리라는 것은 다 아시겠지만 구약성경에 나오는대로 50년마다 노예들, 빚진 자들을 해방시켜주는 그런 역사적 전통인데요. 우리 지금 서민 경제가 가계 부채때문에 짖눌려 있거든요. 너무나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빚을 갚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희는 통상적으로 가서 예금하고 그런 은행은 아니죠. 장기 연체자 채권을 확보해서 빚 문제를 정리해서 새삶을 찾게 해주는, 사람을 살리는 은행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취지의 은행이 설립된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이번이 처음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직접적인 원조를 찾아보자면 지난 번에 글로벌 금융위기 월가에서 나고난 다음에 시기가 있지 않았습니까? ▷지난 2008년도죠? ▶그렇습니다. 그 뒤에 2010년 시위가 나면서 미국 금융이 너무 문제가 많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시민운동이 벌어졌는데 그때 롤링 주빌리라는 운동이 등장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롤링 주빌리 운동을 작년부터 시작했고요. 두 달 전에 그것을 좀더 체계화하고 전개하자고 해서 주빌리 은행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초대 은행장을 맡으셨는데요. 혹시 유 교수님께서 맡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네,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제가 원래 소신이기도 합니다만 제가 지식협동조합 좋은 나라라고 관여하고 있는데 거기서 매월 정책포럼을 하거든요. 지난 봄에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서 정책 포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학자들이 이론적으로만 논의하고 그럴 것이 아니고 그걸 좀더 액션을 취해서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 또 토론자로 참여하셨던 분이 제가 조금 전에 언급했던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를 진행을 하던 제은경씨가 참석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때 같이 이런 은행 프로젝트 얘기를 하게 됐고 저는 은행장보다 제가 그냥 도울 수 있는 일이 있겠으면 돕겠다고 했는데 맡아달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주빌리 은행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자격 요건이 어떻게 됩니까? ▶저희가 무슨 객관적 자격 요건을 갖춰놓고 있는 것은 아니고요. 이제 원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선량하지만 불운해서 빚을 갚고 싶지만 갚지 못하는 분들, 그것도 지금 한달 전부터 어려워졌다.. 이런 사람보다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빚에 시달려왔던 사람들, 이런 분들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겁니다. ▷혹시 출범한 지 두달이 됐다고 하니까요 몇 분이나 이용을 했는지 탕감한 빚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요? ▶이용했다는 말이 조금 어폐는 있습니다만 설명드리도록 하고요. 지금 대략 3600명정도 혜택을 받으셨고요. 원금 기준으로 해서 액수가 180억이 넘는데 이게 원래 악성 채무가 이자에 이자가 붙기 때문에 이자까지 다 한다면 500억 이상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혜택이 많이 돌아갔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저희가 출범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도 너무나 반응이 뜨거웠어요. 저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이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이건 앞으로 지금 이것은 가계부채 문제 전체를 생각한다면 아직은 한강투석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굉장히 반응이 좋고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부실 채권을 사기 위한 기금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기금은 어떤 식으로 마련하고 있나요? ▶저희가 지금까지 상당액의 채권을 정리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채권을 기부를 받았고요. 대부 업체도 있고 금융 회사도 있습니다만 이 채권 가지고 있어봤자 워낙 이 분들이 소득이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받을 확률은 별로 없고 명분있고 좋은 일에 쓰자고 해서 기부한 것도 있고요. 후원금 모금을 그동안 해왔습니다. 지금도 저희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후원자로서 해주실 수 있고 다양한 모금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주빌리은행을 포털사이트에.. ▶주빌리은행 그냥 치시면.. ▷바로 들어갈 수 있고요.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빌리은행을 운영하면서 두달 간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뭡니까? ▶말씀드린대로 저희 예상보다 일이 너무 많아져서 저희가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고요. 저희가 인력도 보충해야되고 채권도 더 사들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까 그 부분이 지금 아쉽고요. 그러나 아까 말씀드린대로 많은 우리 사회에 계시는 선량한 시민들이 격려하고 도와주고 있고 정치권에도 관심이 많고요. 정부나 금융회사들도 처음에는 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만 갈수록 호응하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주빌리 은행이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보십니까? ▶그것은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희가 우리나라 지금 공식적으로 조사된 바에 의해서 보면 금융취약자가 350만명이 자기 소득으로 빚을 갚기 어려운 사람들이 350만명이 된다는 것이고.. 이것도 2년 전 조사니까 더 늘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악성 부채, 장기 연체, 빚독촉에 시달리는 분들이 115만명 그렇다는 것이거든요. 저희가 3600명이 도와드렸는데 이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걸로 해결되겠습니까? 결국 법이 바뀌도 제도가 바뀌고 정부의 정책이 바뀌고 금융회사의 관행이 바뀌고 이렇게 다 바뀌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마 입법과제, 토론회가 최근 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근본적인 대책, 입법 과제를 통해서 해결해야된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입법 과제가 많이 있고요. 부실채권이 시장에서 마구 노예문서처럼 팔려 다니고 있는 문제, 추심이 너무 비인간적으로 이뤄지는 문제, 파산면책의 문턱이 너무 높은 문제 등 해결해야될 게 많고요. 이것은 입법부에서 법을 제정해야 될 필요도 있지만 정부가 또 행정을 어떻게 하느냐, 법원에서 얼마나 파산 면책을 신속하게 문턱을 낮춰서 잘 하느냐.. 지자체의 역할, 금융권의 역할 모두가 변해야한다고 봅니다. ▷언제부턴가 경제 활성화를 얘기하면서 빚 권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가계부채 문제, 지금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것이다, 핵 폭탄이 될 것이다 이런 지적들 나오지 않습니까? 교수님 보시기에 이 문제 어떻게 대처해야 된다고 보세요? ▶저금리 환경이 아직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잠복해있지만 진행자님 지적하신대로 세계 경제 환경이나 그런 것에 따라서 금리가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겁니다. 지금도 이미 말씀드린 그런 신용취약자들, 굉장히 고생들 하고 이 분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하기 때문에 그게 우리 소비수요도 더 제한하고 경제 활동도 더 위축시키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거든요. 그러나 이것이 정말 위기로 폭발하게 되면 큰 문제가 되고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각도의 정책적 접근이 필요합니다만 가장 우선적인 것은 정말로 이렇게 정상적인 경제활동 자체를 못하고 빚에 시달리면서 인생을 포기하는 일가족 얼마 전에도 세 가족이 자살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런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는 분들이 너무 많다.. 이 분들을 살리고 서민 경제를 살리지 않고서는 미래도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신대로 자꾸 빚 권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되고요. 건전한 금융이라는 것은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빌려주고 갚을 능력이 없고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는 복지혜택이 필요하고 일자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네, 지금까지 주빌리 은행 공동은행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유 교수님 말씀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윤재선201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