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15주일- 가시덤불을 걷어내면 모두가 좋은 땅이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7/12/BRX1689137028944.jpg)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15주일- 가시덤불을 걷어내면 모두가 좋은 땅이다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다.”(마태 13,8) 저는 한강 변 평화공원 너른 들판을 거의 매일 걷습니다. 길옆에 조성된 잔디밭이 있고 거친 들판이 있습니다. 잔디밭은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기는 하나 생물들에겐 민둥산과 같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거친 들판은 온갖 풀들이 무성히 자랍니다. 많은 생명에게 보금자리요 양식이 됩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팔레스티나 지역은 척박한 땅이 대부분입니다. 가시덤불과 돌들이 많아 농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처럼 땅을 갈고 흙을 고르고 고랑을 내고 씨를 조심스럽게 넣을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농부는 활기찬 걸음걸이로 과감히 씨앗을 투척합니다. 종자를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용기 있는 투척입니다. 가히 하늘나라 비유가 될만합니다. 1. 하느님은 통 크신 농부 하느님은 창조 엿샛날, 모든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통 큰 하느님을 관상하셨을까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다” 하십니다. 하느님은 최초의 농부이십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듯 씨를 뿌리셨을 것 같습니다. 될 성싶은 땅에만 뿌리지 않습니다.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등 모든 곳에 뿌리십니다. 옛 우리 조상들도 넉넉합니다. 파종 때, 하나를 얻기 위해서 씨 세 개를 심습니다. 하나는 새들 먹이, 하나는 벌레 먹이 나머지 하나를 키워, 양식으로 먹습니다. 좋은 땅이면 좋겠지만, 외적 조건이 열악해도 농부이신 하느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은 모두에게 내려집니다. 돌밭이든 길바닥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보도블록, 돌 틈, 시멘트 구멍 사이에 흙이 조금만 묻어있어도 싹은 나옵니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경탄스럽습니다. 열악한 환경일수록 강한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등산길에 만나는 늠름하고 멋진 낙락장송은 하나같이 바위틈을 뚫고 서 있습니다. 2. 어떻게 좋은 땅이 될 것인가? 어떤 땅이 좋은 땅일까요? 어쨌든 결실을 내는 땅이 좋은 땅입니다. 말씀 하나하나를 귀하게 받아들이는 땅입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씨앗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일까요? 어떻게 마음의 밭을 가꾸어야 할까요? 씨앗은 땅의 입장에선 낯선 존재입니다. 그러나 곁을 내주고 자리를 잡게 합니다. 양분과 수분을 제공합니다. 몸을 풀어야 하는 여인인 양 조심스럽게 대합니다. 이 모든 돌봄 과정은 땅속 어둠에서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성급하게 결과를 확인하려는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채근하면 안 됩니다. 자꾸 들추면 이내 타 죽고 맙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요인은 대부분 외적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땅입니다. 다만 스스로 가시덤불을 뒤집어쓰는 게 문제입니다.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으로 숨을 막아 버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한강 공원의 너른 들판엔 평화롭게 온갖 풀이 자라고 꽃들이 피고 열매 맺습니다. 세상 걱정과 재물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길을 교종의 말씀에서 찾아봅니다. “마음을 열어 말씀을 들을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자기 삶에 와닿지 못하게 한다면 … 그 말씀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 예언자, 사기꾼, 협잡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151항) 말씀을 선포하는 강론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만 모든 신앙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품어도 좋고, 말씀 앞에 서도 좋고, 언제나 말씀에 노출이 되는 우리 삶이면 좋겠습니다. 말씀이신 주님! 하나의 씨앗에도 하늘나라의 신비가 들어있음을 믿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제 안에 꿈틀거릴 때 곁을 내어주겠습니다. 몸을 풀도록 허용하겠습니다. 척박한 제 안에도 당신의 생명이 열매를 맺게 해주십시오. cpbc2023.07.05

다양한 관심사의 ‘셀모임’으로 본당 활성화수원 부곡동본당, 비슷한 나이와 취미 기준으로 3명 이상 모이는 작은 공동체... 탁구·엄마 모임 등 7개 진행 부곡동본당 셀모임 ‘잘될거야 아들들’에 참여한 엄마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부곡동본당 누리집 수원교구 부곡동본당(주임 이정철 신부)이 시노드 정신 구현과 교우 간 화합을 도모하고자 본당 내에 다양한 셀모임을 운영 중이다. 셀모임이 시작된 건 올해 초다. 이정철 신부의 강력한 권유로 시작됐다. 비슷한 연령대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본당 안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뤄 친교를 나누는 모임으로, 3명이 모이면 결성할 수 있다. 또 홈페이지에는 셀모임 홍보 코너를 별도로 개설해 셀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글과 사진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조직된 셀모임은 기존에 활동 중이던 예따사(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마리아처럼, 작은 연주회, 부곡동 탁구, 잘될 거야 아들들, 빛과 함께 등 6개다. 최근 중학생들이 만든 셀모임 ‘비지 걸’이 정식 셀모임으로 등록돼 7개로 늘었다.‘예따사’는 성경을 읽고 싶은 사람들이 매주 수요일 저녁 성경을 읽는 모임이다. 성경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 배우며 하느님을 닮고 싶은 사람, 그리고 이웃사랑과 봉사, 나눔 실천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마리아처럼’도 성경 읽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매주 수요일 정오에 모여 성경을 읽으면서 변화된 삶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악기 연주 모임인 ‘작은 연주회’는 하모니카, 피아노, 색소폰, 우쿨렐레, 기타, 바이올린 등 악기에 제한이 없다. 악기연주를 통한 재능기부가 목적으로 연령대로 15세부터 70세까지 손자녀부터 할아버지ㆍ할머니까지 참여할 수 있다. 매월 마지막 주일 교중 미사 후 악기를 연주한다. ‘부곡동 탁구’는 말 그대로 탁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잘될거야 아들들’은 사춘기 아들을 둔 40세~55세 엄마들의 모임이다.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들이 매월 둘째 주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 모여서 고민과 교육을 나누고 있다. ‘빛과 함께’는 성경통독과 성체조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행사를 갖고 있다. 셀모임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본당 생활이 더 풍요로워지고 있다는 반응이다. ‘잘될거야 아들들’ 모임 대표 홍유경(마리아)씨는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 7명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며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사춘기 아들들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서로 기도를 하고 좋은 성경구절을 묵상하며 고민을 덜고 있다”고 말했다. ‘빛과 함께’를 개설한 김종숙(모니카)씨는 “평소 성체조배에 대해 관심이 많던 차에 셀모임 취지를 듣고 너무 좋아서 가슴이 벅찼다”며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분들이 모여 있다 보니 평소보다 성체조배와 성경 통독을 더 하게 됐다”고 자랑했다. 이정철 신부는 “시노드을 준비하다 보니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설문조사 형태로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었고 시노드 취지 자체가 신자들의 자발적인 모임 활성화에 있다고 생각해 방법을 찾다가 셀모임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본당에서 모임은 본당 신부가 주축이 돼서 ‘사람들이 이거를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내서 모임을 만들었지만, 셀모임에서는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누구든지 만들 수 있도록 해 본당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2.07.05

주교의 직무와 품위 드러내는 표징들[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24)주교 지팡이와 반지 주교 지팡이는 목자의 직무와 권위 그리고 품위와 관할권을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교황의 지팡이는 윗부분이 나선형으로 구부러진 주교 지팡이와 달리 머리 부분에 십자가가 달려 있다. 주교와 대수도원장이 전례 예식 때 사용하는 지팡이 곧 ‘목장’(牧杖, baculus pastoralis)은 목자의 직무와 권위 그리고 품위와 관할권을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주교 서품 예식 중 주례 주교는 새 주교에게 목장을 주면서 “사목직의 표지인 주교 지팡이를 받으십시오. 성령께서 그대를 하느님의 교회를 다스리는 주교로 세우셨으니 모든 양 떼를 돌보십시오”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주교와 대수도원장은 자기 지역 안에서만 목장을 사용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 교회에 해당 교구장 주교가 허락하고 동의하면, 성대한 예식을 거행할 때 목장을 지닐 수 있다. 아울러 여러 주교가 같은 전례 예식에 참여할 때에는 주례 주교만 목장을 든다. 목장 모양에도 차이가 있다. 대수도원장과 주교, 대주교의 목장은 윗부분이 나선형으로 구부러진 지팡이를 사용하는 반면, 교황의 목장은 머리에 ‘십자가’가 달려 있다. 십자가가 달린 목장은 교황이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에는 지팡이와 관련한 여러 장면이 나온다. 먼저 하느님의 권위를 드러내는 표징으로 지팡이가 등장한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 지팡이를 손에 잡아라. 너는 그것으로 표징들을 일으킬 것이다”(탈출 4,17)하시자 모세는 그 지팡이를 가지고 이집트 파라오 앞에서 온갖 기적을 행한다. 모세가 나일 강의 수면을 지팡이로 내려치자 물이 피로 변했다.(탈출 7,17-21) 또 모세가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쳐들자 이집트 땅 전역에 우박이 쏟아졌다.(탈출 9,22-25) 아울러 모세가 지팡이를 바위를 내려치자 물이 솟아났다.(민수 20,6-11)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지팡이 하나씩, 곧 집안의 수장에게서 지팡이 하나씩 열두 개를 거둔 다음 수장의 이름을 각기 그의 지팡이에 새기게 하셨다.(민수 17,16 참조)성경은 아울러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는 나그네의 표지’로 드러난다. 나그네가 길을 나서면 온갖 위험에 노출된다. 지팡이는 나그네를 사나운 짐승이나 도둑들로부터 자기 몸을 지켜준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23,4)라고 고백한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셨다.(마르 6,7) 복음을 선포하러 떠나는 제자들에게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하라고 주님께서 타이르신 말씀이시다. 성경은 덧붙여 지팡이는 목자에게 소중한 도구임을 일깨워준다. 지팡이는 양을 늑대 등 맹수로부터 지켜준다. 또 무리에서 이탈한 양의 뒷다리를 잡아 걸어 다시 무리에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목자의 지팡이 맨 윗부분은 구부러져 있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느님 특히 성자 그리스도를 ‘착한 목자’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성화에 그려진 착한 목자는 손에 지팡이를 짚고 있다. 주교 지팡이는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의 직무 곧 주교직을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일 뿐 아니라 주교 자신도 착한 목자로서 살겠다고 서약의 표징이라 하겠다. 주교와 대수도원장의 반지는 주교(대수도원장)와(과) 자기 지역 교회와의 영적인 일치와 계약의 신의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아울러 주교 반지는 주교의 품위와 신앙의 모범을 상징한다. 이런 이유로 주교 반지는 주교 서품식 때 받게 된다. 주교 서품식에서 주례 주교는 새 주교의 오른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면서 “신의의 표지인 반지를 받으십시오. 티 없는 신의로 자신을 지켜 하느님의 정배인 거룩한 교회를 깨끗하게 수호하십시오”라고 말한다.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는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라며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었다.(15,21-22 참조) 아버지가 아들의 손에 반지를 끼워준 것은 아들에게 모든 권리를 되돌려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아들은 아버지 대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 가운데 교황은 ‘어부의 반지’라고 불리는 특별한 반지를 낀다. 바로 교황의 권위를 드러내는 반지이다. 어부의 반지는 초대 교황인 베드로 사도와 관련이 깊다. 어부였던 베드로 사도는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르 1,17)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는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섰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이 반지를 낀다. 새 교황이 선출되면 반지는 새로 제작하며, 선임 교황의 반지는 파기한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11.02

문설주 인물 조각, 그리스도 자신이신 문으로 우리를 이끈다[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45.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중>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제단부. 출처=photographfrance.com 회중석 기초는 대부분 로마네스크 양식 8세기 주교 성 풀베르투스(St. Fulbert, 960 ~1028)가 건립한 샤르트르 대성당은 목조 지붕을 얹은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다. 이 대성당은 1100년 무렵에도 있었다. 지금의 대성당은 1194년에서 12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회중석 기초는 대부분 로마네스크 성당의 것이다. 제단부에 있는 세 개의 방사형 경당도 옛 로마네스크 성당을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그 옛 성당이 지금 성당의 평면, 특히 양 측랑과 중랑의 베이를 규정하고 있다. 1130년대에 확장되었을 때, 두 개의 탑을 가진 새로운 정면은 옛 성당의 서쪽 끝에서 거리를 띄우고 착공되었다. 이때 정면의 조각은 이곳에서 90㎞ 떨어진 생드니에서 쉬제르가 재건 사업에 열중했던 1140년 무렵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서쪽 정면의 쌍탑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기부(基部) 위에 올린 것이다. 높이 115m인 북쪽 탑은 1150년에 완성되었고, 이어서 높이 106m인 남쪽 탑(‘옛 탑’)은 1160년에 세워졌다. 남쪽 탑의 8각 대첨탑은 높이 40m에 이르는 초기 고딕 양식이다. 그런데 섬세한 플랑부아양 식(Flamboyant style, 불꽃 식)으로 지어졌던 북쪽 탑의 목조 첨탑부가 낙뢰로 소실되고 말아 1513년 후기 고딕 양식에 재건되었다. 그래서 이 탑을 ‘새 탑’이라 부른다. 샤르트르 대성당은 고전 고딕의 기본 형식이다. 회중석이 3랑이고 제단부는 5랑이며, 주보랑에는 방사형 경당이 5개가 있다. 수랑에는 평행 경당이 없으며, 중랑 벽면은 3층 구성이고 천장은 4분 볼트로 되어 있다. 보통 회중석이 3랑이면 세 개의 문은 각각의 ‘랑(廊)’과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3개의 문이 중랑으로만 열려 있다. 중세 성당의 정면은 이념적인 의미일 뿐 정서향은 아니었다. 그래서 샤르트르 대성당의 정면은 남서향이다. ‘왕의 문’을 지나면, 높이가 37m나 되는 어둑한 공간 안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춰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채색의 빛의 진동이 전해져 온다. 질과 양에서 모두 최고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해와 구름의 움직임과 함께 미묘하게 변화하며 빛나는 공간이 이 성당 안에 나타나 있다. 이때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내부에 울려 퍼지면 그 다채색의 빛도 함께 진동한다.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서쪽 포탈 '왕의 문'. 출처=lonelyplanet.com 찬연히 빛나는 남북의 중후한 장미창 이러한 공간에서 제단의 깊은 곳에 13세기 스테인드글라스의 고창이 빛나고 있다. 그 중앙에는 성모자상이 서 있는데, 이를 향해 똑바로 걷는 중랑의 장축은 곧 하느님 나라에 이르는 길을 나타내고 있다. 제단은 7변형의 부채꼴을 이루며, 그 위로 교차 리브가 만나는 보스(boss) 아래에 성모의 주제단이 놓여 있다. 폭은 16.5m인데 중랑의 길이가 110m로 비교적 짧은 것은 동쪽 끝에 지형상 단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사상 경당의 돌출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회중석과 수랑은 중랑에 좌우 측랑을 하나씩 더한 3랑식이지만, 제단부는 5랑식이다. 바깥의 주보랑에는 깊이가 깊은 세 경당과 깊이가 얕은 네 개의 돌출부가 있다. 돌출부 중 하나는 14세기의 고딕 레요낭(rayonnant) 식의 생피아 경당(St. Piat chapel)에 이르는 통로가 되었다. 이렇게 발달한 제단부는 동쪽을 향한 축선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동쪽 주보랑에서는 제단을 클로튀르(clture) 곧 스크린(1715년)으로 막아 축선을 강조한다. 그러나 중랑을 따라 걷던 움직임은 길이 60m가 넘는 강력한 횡랑과 만나는 교차부에서 멈추고 만다. 찬연하게 빛나는 남북의 중후한 장미창 때문이다. 제단부에 이르는 직사각형의 중랑 베이와 측랑 베이가 1대1로 대응하고 있다. 이른바 단식(單式) 베이 시스템이다. 중랑 벽에는 커다란 원기둥에 4개의 작은 8각 기둥을 덧붙인 복합기둥과, 8각 기둥에 4개의 작은 원기둥을 붙인 복합기둥이 번갈아 나타난다. 로마네스크의 복식(複式) 베이 시스템의 자취다. 그 위를 4분 볼트가 균질하게 덮여 거대한 장당(長堂) 공간이 구성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18세기에 대리석이나 회반죽으로 장식되어 제단의 기둥은 회중석의 리듬은 잃고 말았다. 중랑 벽은 트리뷴이 없이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비로운 빛이 들어오는 고창층도 높이 12m나 되는데 대(大) 아케이드 높이와 대략 비슷하다. 이 두 요소는 4련(連) 아케이드의 트리포리움 띠가 어두운 수평층을 이룬다. 이것은 어두운 것은 트리포리움 바로 뒤에 측랑 지붕 밑을 가로막는 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수평 띠는 동시에 수직성도 강조하고 있다. 샤르트르 성당도 다른 대성당처럼 서쪽 정면, 남쪽 수랑, 북쪽 수랑 등 세 방향에 포탈을 두었다. 1194년에 건조된 북쪽 포탈은 ‘노트르담’ 성당의 이름처럼 ‘성모의 대관(戴冠)’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남쪽의 포탈은 심판자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이 묘사되어 있다.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북쪽 포탈. 출처=Steven Zucker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남쪽 포탈. 출처=Steven Zucker 문설주상의 출현으로 고딕의 조각 탄생 이렇듯 세 포탈에는 조각가들에 의해 거룩한 세계가 돌로 장대하게 번역되어 있다. 정면의 ‘왕의 문’에는 하층부가 1155년경에는 대략 완성했다. 세 개의 문마다 반원의 팀파눔과 그 밑의 수평 부재인 상인방에는 절대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군림하고 계신다. 중앙에는 요한 묵시록의 ‘재림하시는 그리스도’, 오른쪽에는 ‘탄생과 유년의 그리스도’, 왼쪽에는 ‘승천하시는 그리스도’가 새겨져 있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포탈은 로마네스크 시대에 등장한 성당 포탈 조각의 정점을 보여 준 것이었다. 로마네스크 시대에는 지방마다 달리 팀파눔만 강조하거나 그것을 둘러싼 테두리만을 강조했으며, 조각도 여러 곳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샤르트르 대성당의 포탈에서는 조각이 전체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특히 남쪽 ‘최후의 심판’ 포털에서 볼 때 다양한 요소가 이어지는 문설주와 아치볼트가 대각선으로 벌어지면서 조각이 강력하게 통합되어 있다. 로마네스크 조각은 건축과 일체를 이루었고 원기둥의 틀을 따랐다. 그러나 샤르트르 대성당 포탈 ‘왕의 문’ 주위에는 1150년경에 완성된 정교한 인물 조각인 문설주상(jamb figures)이 원기둥에 붙어있는데, 바로 이 문설주상의 출현으로 고딕의 조각은 탄생했다. 문설주상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려는 듯이 똑바로 서 있고, 옷의 주름도 수직선을 따르고 있다. 로마네스크와는 달리 머리 등이 완전히 원기둥에서 돌출해 있어, 원기둥에 종속되면서도 독립하고자 했다. 이렇듯 샤르트르 대성당의 조각은 로마네스크 조각을 집대성하면서도 초기 고딕 조각을 대표하고 있다. 문설주상 원기둥의 주두(柱枓)도 주목해야 한다. 왼쪽 문 좌우와 중앙의 왼쪽 원기둥의 주두는 성모님의 생애를, 중앙의 오른쪽과 오른쪽 문 좌우의 원기둥의 주두에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이 새겨졌다. 그 사이에 세 문의 문설주 6곳과 정면을 향한 두 벽기둥에는 천사와 구약의 인물이 배열되어 있다. 원기둥의 주두를 딛고 있는 문설주상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조상인 유다의 임금들이다. 우리는 구세주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까지 몇백 년을 기다린 구약의 그들을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 자신이신 문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cpbc2023.11.16

교동도에 부는 평화의 바람, 언제쯤 북녘땅에 전해질까르포-강화 최북단 교동도 화해평화센터 교동도 북쪽 해안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모습. 길게 늘어선 흰 건물들이 눈에 띈다. 철책에 가로막힌 우리 인간과 달리 자유롭게 남북을 오가는 새들이 부럽다. ‘격강천리(隔江千里)’. 강을 사이에 둔 것 같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왕래가 드물어 천 리나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 인천 강화군 교동도 주민들에겐 매우 익숙한 표현이다. 교동도의 1세대 실향민 고 이범옥(체칠리아) 할머니가 지은 시 제목에도 ‘격강천리’가 등장한다. 고향인 황해도 연백군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시다. 바라보고도 못 가는 고향일세 한강이 임진강과 예성강은 만나 바다로 흘러드는데 인간이 최고라더니 날짐승만도 못하구나 (이범옥 ‘격강천리라더니’ 중에서) 분단 당시 38선 이남이던 연백군은 6·25 전쟁 전까지 교동도와 같은 생활권이었다. 그래서 전쟁 중 폭격이 심해지자 연백군 주민들은 잠시 머물 요량으로 교동도로 피란했다. 그 수가 섬 원주민보다 두 배나 많은 2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정전협정 후 서부 휴전선이 38선보다 북쪽에 설정되면서 피란민들은 졸지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적잖은 사람이 교동도를 새 터전으로 삼았다. 그중 대다수는 한반도에서 비옥하기로 손꼽히는 연백평야에서 소출을 거두던 숙련된 농부였다. 실향민들은 이후 남한 땅 교동도에서 피땀 흘려 억척스럽게 황무지를 개간해 옥토로 바꿔나갔다. 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채로 말이다. 교동도 ‘화해평화센터’에서 소임을 하고 있는 순교자의 모후 전교 수녀회 수도자들이 망향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보고 있다. 평화의 사도들, 평화의 섬에 가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실향민들의 애환이 곳곳에 깃든 교동도를 찾았다. 이 땅에 북방선교 사명을 지닌 순교자의 모후 전교 수녀회가 ‘화해평화센터’를 세운 것은 주님의 뜻이리라. 교동도를 평화 교두보로 만드는 게 목표인 화해평화센터는 2019년 10평짜리 상가에서 시작했다. 이후 인천교구로부터 부지를 지원받아 올해 6월 건물을 새로 지어 옮겼다. 센터는 교동도를 찾는 이들에게 섬 역사를 해설해주고, 때마다 화해 평화 교육을 해주고 있다. 민족 일치와 화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길 위에 평화’ 도보 순례도 진행한다. 또 ‘평화 선교사’로서 지역민을 위해 성경 통독 교실을 여는 등 신앙 길잡이 역할도 맡는다. 모두 평화를 기원하며 행하는 교회의 노력이다. 이번에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센터장 강민아(마리요한) 수녀와 고성순(마리미쉘) 수녀가 성탄 카드를 쓴 것도 북녘에 사는 이들을 향해 썼지만, 수신자 없는 기도 내용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어쩌면 하느님이 먼저 보실지 모른다. 통일이 되어 왕래할 수 있기 전까진 북녘의 주민들이 직접 받을 순 없기 때문이다. 교동도 평화운동가인 ‘사단법인 우리누리평화운동’ 김영애(데레사, 67) 대표는 “수녀님들이 교동도에 평화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계시다”고 말했다. 실향민 2세대인 그는 같은 신앙과 꿈을 공유하는 화해평화센터 수도자들이 섬에 적응하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고 했다. “우리 ‘평화의 섬’에 ‘평화의 사도’들이 오셔서 기쁘고 감사하죠. 두 수녀님이 평화와 화해 운동을 통해 교동을 앞으로 더 축복 가득한 섬으로 만들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은 화해평화센터 내부 모습.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최전방 트리’ 가 설치돼 있다. 황해도 연백군 출신 실향민들이 터 잡은 섬 김 대표의 배웅을 뒤로하고 두 수녀와 함께 실향민들의 삶이 깃든 교동도 순례에 나섰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교동도의 중심지인 대룡시장. 연백군 출신 실향민들이 고향에 있던 시장을 본떠 만든 장소다. 1960~19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타임머신’ 같은 곳이라,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황해도식 국밥과 냉면을 파는 식당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화해평화센터 수녀들은 대룡시장에서 그야말로 ‘인기 스타’였다. 지나가는 가게마다 상인들이 “수녀님, 오랜만이시네요. 이것 좀 드셔보세요!”라며 옷깃을 붙잡기 일쑤였다. 곳곳에 친절함 가득한 상인들을 보며 남북이 하나 된 시장에서 만나면 이런 따뜻한 대화가 오갈 수 있겠다는 상상마저 들었다. 격한 환영 속에 부지런히 걷던 수녀들은 낡은 상점 앞에 멈췄다. 1952년부터 영업 중인 대룡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만물가게다. 피란민들에게 생필품 등을 팔던 요긴한 곳으로, 지금은 갯지렁이·털모자·치약 등을 팔고 있었다. 주인인 안순모(마리아, 92) 할머니는 1세대 실향민. 스무 살 때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피란와 70년간 가게를 운영하며 아들을 의사로 길러냈다. 아궁이가 달린 2평짜리 좁은 가게와 교동도는 이제 할머니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보금자리다. ‘서울로 와서 편히 사시라’는 아들의 권유도 한사코 거절한다고 했다. 조심스레 “고향에 가보고 싶지 않으시냐”고 묻자 할머니가 잠시 고민하더니 짤막이 대답했다. “가면 좋지.” 찰나의 순간 할머니의 눈빛에서 묵은 그리움이 읽혔다. 교동도 중심지 대룡시장에서 70년째 장사를 해온 만물가게 주인 실향민 1세대 안순모 할머니. 시장 명물 ‘70년된 만물가게와 버스킹 공연’ 대룡시장의 또 다른 명물은 지역민들이 선보이는 버스킹 공연이다. 밴드명은 KD, ‘교동’의 약자다. 수녀들이 “밴드 리더를 만나봐야 한다”며 이끈 곳은 다름 아닌 교동재가복지센터였다. 대대로 교동도 토박이인 센터장 권순복(요셉, 60)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불쑥 찾은 손님을 반갑게 맞으며 센터 내에 조성한 연습실을 보여줬다. 이곳에서 어르신들 대상으로 음악 교실도 열린다. 지난 2일 화해평화센터에서 열린 송년 음악회에서 권씨는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대화가 길어지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권씨가 바로 교동공소 부회장이었던 것.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제일 젊어 부회장을 맡은 것”이라고 했다. 교동공소의 모태는 황해도 실향민들이 공소예절을 하며 세운 신앙공동체다. 1958년 인천교구 강화본당 소속으로 설정됐다. 현재는 하점본당 소속이다. 공소 건물을 처음 지을 때 권씨의 부모도 많은 정성을 보탰다고 한다. 남북의 상황은 아픔도 낳았지만, 이처럼 신앙의 열매도 맺었다. “그래서 공소에 정이 많아요. 코로나19 이전에 신자가 많을 때는 성가대를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음악을 알려드렸어요. 저희 공소에 계신 방인이(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님 사제수품 60주년에 축하곡을 불러드리기도 했죠. 근데 많은 교우분이 돌아가셔서 이젠 노래 부를 사람이 마땅치 않아요. 얼마 전에 어르신들 모시고 제가 병원에 다녀왔는데 마음이 아팠죠. 지금은 공소가 썰렁한 느낌이에요. 부디 교우분들이 다들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성탄 소원이에요.” 고성순 수녀(왼쪽)와 화해평화센터장 강민아 수녀가 망향대에 걸린 한반도기 앞에서 손을 맞잡은 채 민족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고 있다. 북녘땅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밤머리산 정상 두 수녀가 안내한 순례의 마지막 행선지인 교동도 북서쪽 해안 밤머리산 정상. 이곳에는 실향민들이 고향 땅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려 세운 망향대가 있다. 날이 흐렸는데도 연백평야가 손에 닿을 듯 보였다. 망원경에 눈을 갖다 대니 북한 주민들이 다니는 모습과 새로 지은 듯한 주택, 학교로 보이는 건물들이 보였다. 신기함도 잠시, 곧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운데. 철책에 가로막혀 작은 렌즈 너머로만 바라볼 뿐이라니. 망원경으로 유심히 북녘땅을 보는 수녀들의 뒷모습에서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형제이고 피붙인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증오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비극입니다. 다시 형제자매로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강민아 마리요한 수녀) “우리 민족이 더는 서로 적대하지 말고, 아픔을 보듬어주며 주님의 평화 안에서 화해와 일치를 이루길 바랍니다.”(고성순 마리미쉘 수녀)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이학주2023.12.18

책꽂이 님ㆍ밤최민순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고 최민순 신부의 시집 「님」(1955년 출간)과 「밤」(1963년 출간)이 합본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총 98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에는 아름다운 우리말의 향연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최 신부는 최초로 완역한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론」을 비롯해 단테의 「신곡」, 십자가의 요한 성인과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여러 저서, 그리고 구약 성경의 「시편」과 「아가」를 우리말로 옮기며 명성을 떨쳤다. 또 그가 작사한 ‘복자 찬가’(지금의 ‘순교자 찬가’)를 비롯해 수많은 성가 노랫말은 지금껏 많은 신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최 신부의 많은 작품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감성의 바탕에 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번역가’가 아니라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에서 표기는 현대 맞춤법을 따르되, 원문의 느낌과 운율을 살리고자 당시 표기를 가능한 한 그대로 실었다.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는 각주로 설명을 달아 이해를 돕도록 구성했다.쉼표 - 영원으로 열리는 순간김두현 신부 글·사진성서와함께사진만 보면 딱히 사제가 찍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만큼 일상의 소소한 모습, 또는 색다른 시선이 담겨 있다. 그러나 성경 말씀과 더해진 묵상 글은 ‘사진으로 하는 의식 성찰’이라는 부제와 어우러진다. 「쉼표-영원으로 열리는 순간」은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예수회 한국관구 김두현 신부의 많은 작품 중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싱가포르, 스페인, 캄보디아에서 찍은 소소한 일상의 사진들을 담았다. 1부 ‘의식 성찰’에서는 잠시 멈추어 머물면서 삶을 하느님과 함께 돌아보고 기도하는 시간을 제공하고, 2부 ‘걷기’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과 해변,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추었던 코로나19 초기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 3부 ‘쉼표, 둘’에서는 의식 성찰의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길을 걸으며 말씀을 묵상하고 사진으로 담아내는 피정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한다. 김 신부는 “사진으로 빛을 담아내는 작업은 하느님의 빛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의 일상을 담아내는 작업과 닮았다”며, “소소한 일상이 담긴 사진을 통해 우리 삶의 한복판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그분의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고 전했다. 하루 또 하루장재봉 신부 지음꿈꾸는 요셉부산교구 신학원장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장재봉 신부가 「하루 또 하루」를 펴냈다. 책은 분기별로 ‘진리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믿음에는 다음이 없습니다’, ‘희망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로 큰 단락을 나눈 뒤 제목처럼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 하루 덤까지 매일의 묵상 글과 소박한 그림을 더했다. 장 신부는 “나를 깨워주던 충고와 다짐의 글을 스며들기 좋도록 짧은 문장으로 다듬었다”며 “바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퇴색시키지 않는 은총”을 청했다. 윤하정 기자 문채현2022.12.07

안동교구 주보 표지 성화전 '말씀이 그림이 되어'…서울 명동 갤러리1898서 열려4월 5일부터 13일까지 진행…'가톨릭 미술상' 본상 수상 김만용 작가 작품 50여 점 전시 김만용 작가와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사목국장 김종길 신부,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겸 갤러리1898관장 최광희 신부 등이 전시회 커팅식을 하고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안동교구 주보 「가톨릭 안동」 표지를 장식했던 성화들의 전시회가 5~13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열린다. ‘말씀이 그림이 되어’를 주제로 한 성화전은 김만용(프란치스코,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작가가 안동 명물 풍산 한지에 특유의 화사한 화풍으로 주일 복음 내용을 표현한 동양화 작품 50여 점을 선보인다. 안동교구 사목국이 서울에서 성화전을 연 이유는 모든 가톨릭 신자와 함께 무형인 성경 말씀을 유형으로 구현한 성화를 보며 묵상하고, 그 의미를 음미하기 위해서다. 특히 올해는 2020년과 같이 전례력으로 ‘가해’라 성화에 담긴 주일 복음이 일치한다. 이번 전시에선 김 작가의 성화ㆍ작가 노트와 함께 매주 주보에 실린 안동교구 사제단 강론을 엮은 성화 묵상집 「말씀이 그림이 되어」도 판매한다. 김만용 작, '삼위일체 구원자!'(2020.6.7) 5일 개막식에서 “귀중한 탈렌트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밝힌 김만용 작가는 “성화는 감상보다는 묵상을 위한 그림”이라며 “어르신들도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성화는 대체로 어둡고 무거운데, 저는 코로나19로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응원과 희망을 전하고 싶어 밝고 따스하게 그렸다”며 “전시를 찾는 모든 분이 희망찬 부활을 맞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만용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성화를 보고 묵상하면 할수록 자신이 빛날 뿐 아니라 하느님께 더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며 김 작가와 전시공간을 내어준 서울대교구에 고마움을 전했다. 서울 문화홍보국장이자 갤러리1898 관장인 최광희 신부는 “성화가 신자들 마음속에 울림이 되고,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돼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김 작가의 가족과 함께 안동교구 사목국장 김종길 신부ㆍ서울가톨릭미술가회 박혜원(소피아) 회장 등이 참여했다. 김만용 작가와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사목국장 김종길 신부,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겸 갤러리1898관장 최광희 신부 등이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안동가톨릭미술가회 회원인 김만용 작가는 작품 ‘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로 제21회 가톨릭 미술상 본상(회화 부문)을 받았다. 그는 현재 안동교구 소식지 「틔움」에 ‘신앙 만화 여행’을 연재하고 있다. 서울 명동 1898 갤러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3.04.09

전주교구 ‘신앙 왜곡하는 엄옥순 파문’ 교구장 명의로 교령과 지침 발표, 교리 부정하고 신자들 어지럽히는 이단 행위에 철퇴 전주교구청 전경. 전주교구 제공 전주교구가 엄옥순(라파엘라)을 가톨릭교회에서 파문한다는 교구장 김선태 주교 명의의 ‘자동 처벌 파문 제재에 대한 교령’과 ‘신앙일탈 행위를 막기 위한 사목적 지침’을 발표했다. 김선태 주교는 지난달 12일 공문을 통해 “교회법 제1364조 1항에 의거해 이단자 엄옥순(라파엘라)에게 자동 처벌의 파문을 선고하고, 교회법 제1331조 1항에 따라 모든 성사의 배령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교구장 주교가 직접 교령과 지침을 낼 정도로 교구 내 관할 지역에서 이 문제가 심각했고, 신자들에게 알릴 필요가 컸던 것이다. 김 주교는 지난해 7월 김용(소피아) 외 13명으로부터 엄옥순에 대한 조사를 해달라는 요청받았다. 8월에 곧장 교구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한 결과, 엄옥순은 ‘가계치유’를 주장하며 속죄예물을 요구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대한 신앙을 왜곡하고, 성사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로 신격화해 본인을 통해야만 부활과 치유가 이뤄진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와 연옥에 대한 가톨릭교회 교리를 부정하는 등 심각한 이단 행위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교구특별조사위원회는 올해 1월 13일 엄옥순의 언행이 ‘천상적 가톨릭 신앙(교회법 제750조)’에 분명히 반한다고 결정하고, 전주교구 법원의 합의제 재판부는 3월 23일 교회법 제751조에 해당하는 이단 행위라고 판결했다. 김 주교는 이에 따라 “본당 주임 신부가 허락하지 않은 사적인 ‘기도 모임’이나 ‘성경공부 모임’을 갖지 않아야 한다”며 “가계치유와 속죄기도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어긋나는 잘못된 신심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회 안팎에서 이뤄지는 신자들만의 사적인 모임이나 기도를 빌미로 어떤 명목으로든지 예물(금전)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며 “교회 안에서 신앙과 전례, 교리를 왜곡하거나 개인적인 영적 체험이나 특별한 기도, 은사 체험을 통해 자신의 기도에 놀라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며 금전을 요구하는 행위는 사이비적인 행태이며, 이단적인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교회 안에서 위와 같은 신앙 행위가 있거나 요구하는 자가 있을 때는 본당 주임 신부나 교구(사목국)에 알려야 한다”며 “그동안 교회 안에서 신앙일탈 행위를 한 엄옥순과 관련된 모든 신자는 그 기도 모임과 신앙 행위들을 즉각 중지하고 각자의 본당과 가정에서 올바른 가톨릭 신앙과 믿음 안에서 새롭게 생활하도록 명한다”고 말했다. 김 주교는 그러면서 “엄옥순이 진심으로 회개해 자신의 범죄로 발생한 피해를 보상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함으로써 자모이신 가톨릭교회와의 친교를 하루빨리 회복할 수 있길 사랑과 은총의 하느님께 기도드린다”고 덧붙였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재진2023.04.27

공동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신앙[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8) 성장하는 신앙 신앙은 인생이라는 밭에서 자라나는 나무와도 같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 여정을 가진 것처럼, 신앙도 다양한 인생에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고 자라나 성장하며 어느새 열매를 맺고 누군가를 위한 그늘이 되어준다. 신앙은 생명체와 같아서 관심을 두고 돌볼 때 많은 성장을 이루지만, 돌보지 않고 외면할 때 성장하지 못하고, 있던 신앙마저 약해진다.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서 사람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신앙은 전수되고 성장한다. 특히 교회에서 하는 봉사는 신앙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된다. 필자도 일반대학교 재학 시절 중고등부 교사를 하며, 신앙에 대해 더 찾고 묻고 하다가 보니 이렇게 사제로 살게 되었다. 나의 신앙은 얼마나 성숙했을까? 신앙이 성장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러 신앙 이야기를 듣다 보면, 크게 두 단계의 신앙이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첫 단계는 ‘유아기적’ 신앙이다. 부모나 지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상태에 있는, 그러나 아직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 신앙으로, 대체로 의무를 준수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에 머문다. 그런데 이처럼 수동적이고 피동적이며, 의무감에서 비롯된 신앙은 오래 가지 못하고 쉽게 활력을 잃기 마련이다. 신앙은 살아있는 것이며, 관계 안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신앙에서 ‘관계를 맺는 신앙’으로,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과의 관계 안에서 성장하는 신앙으로 전환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신앙은 자신의 것이 된다. 이 단계의 신앙은 능동적, 의식적이며 관계를 맺는 신앙이다. 이 단계에서는 신앙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가 된다. 신앙이 성숙했다는 것은 그 신앙이 자기 자신의 것이 되었음을, 삶을 살아가고 계획하는 데에 신앙이 기준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앞의 두 단계는 무를 자르듯 가를 수는 없다.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람에 따라 두 단계를 서로 오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 공동체 안에 머물 때 성장한다는 것이며, 거기서 겪는 어려움은 신앙과 인생의 성장에 자양분이 된다. 신학생 양성에 종사하면서, 글을 읽는 것보다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때가 있다. 학부 2학년 신학 입문 강의 때 학생들에게 종종 ‘나에게 신앙이란?’이라는 과제를 내준다. 모태신앙을 갖고 학생 시절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다 신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그들도 신앙에 대해 많은 고민과 어려움을 갖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때 필자는 그들을 격려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신앙에 대해 고민하거나 어려움을 가진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에 대해, 성소에 대해 갈등을 가져보지 않고 사제가 되는 것이 더 위험할 것입니다. 모든 신학자와 사목자가 그 길을 거쳤습니다. 여러분도 용기를 내어 신앙에 대해 계속 묻고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신앙에서 겪는 어려움은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자신의 신앙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어려움이 신앙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먼저 그 길을 걸어간 분들의 이야기가 많은 도움을 준다. 성경도 신앙의 완벽한 영웅들이 아닌, 그러한 길을 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신앙의 어려움을 딛고 성장한 ‘옆집의 성인’이 매우 많다. 우리도 그러한 옆집의 성인이 될 수 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며 우리가 받은 신앙을 잘 돌볼 수 있다면 말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 cpbc2023.06.30

“2년 안에 신·구약 모두 읽고 묵상합시다”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경 통독 지도」 제작… 사순 첫날부터 영상 강의도 제공 성경 통독 지도를 발간한 서울대교구 사목국 조성풍 신부(앞줄 왼쪽), 노현기 신부(앞줄 오른쪽), 이정민 신부, 박민혜(비씨아)씨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대교구 사목국이 12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짜여진 「성경 통독 지도」를 공개했다. 「성경 통독 지도」에 따라 매일 성경을 읽으면 2년 안에 신ㆍ구약 성경을 완독할 수 있다. 「성경 통독 지도」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안내서다. 성경 통독 방법과 성경과 관련된 27편의 통독 지도(地圖), 성경을 읽고 기록을 하도록 한 성경 통독표로 등으로 구성됐다. 「성경 통독 지도」에는 성경을 읽는 4가지 방법으로 △성경 목차에 따른 통독 △신약에서 구약 순서에 따른 통독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순서에 따른 통독 △요한 1서를 시작으로 하는 통독을 제시한다. ‘성경 목차에 따른 통독’은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73권의 성경을 목차에 따라 읽는 것이다. ‘신약에서 구약 순서에 따른 통독’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신약을 먼저 읽고 나중에 구약을 읽는 방법이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복음서를 먼저 읽고 예수님을 통해 이뤄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한 후 구약을 읽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순서에 따른 통독’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고려해 성경을 읽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역사적 상황 속에 있었고 각각의 상황에서 들려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요한 1서를 시작으로 하는 통독’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전하는 요한 1서를 시작으로 신약에서 구약 연대기 순서로 성경을 읽으면 된다. 「성경 통독 지도」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글을 풀어내고 그림과 사진, 지도 등을 넣어 전달력을 높였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기준으로 구체적인 삶의 자리가 어디이며, 어떤 상황 속에서 살아갔는지, 이때 하느님이 들려준 말씀이 무엇인지 지도에 관련 성경 내용을 표시하고 간략하게 정리해 누구나 쉽게 보고 이해할 수 있게 꾸몄다. 또한, 2년간 매일 읽은 성경을 기록하는 성경 통독표를 넣어 읽는 이에게 동기 부여를 했다. 성경 각 권을 시작하는 첫날 영상 강의 QR 코드나 사목국 유튜브 채널, 사목국 홈페이지에서 영상 강의를 시청하고 다음날부터 해당 성경 말씀을 읽은 후 날짜를 적으면 된다. 영상은 사순 시기 재의 수요일이 시작되는 3월 2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교육지원팀 이정민 신부는 “예수님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말씀 안에서 성경 통독을 하자는 의미에서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3월 2일 영상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목국이 「성경 통독 지도」를 만드는 데는 1년이 걸렸지만, 구상 단계까지 합치면 약 2년이 소요됐다. 교구는 「성경 통독 지도」를 1월 초 교구 사제와 본당 소임 수녀, 총회장, 여성구역장 등에게 배부했다. 대형 서점과 교회 서점, 온라인을 통해 구입할 수 있으며, 본당이나 타 교구에서 대량으로 구입할 경우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교구는 「성경 통독 지도」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약화된 신앙의 기초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획연구팀 노현기 신부는 “신자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너무 큰 일이라고 생각해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며 “성경 통독 지도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맛들이게 하는 게 첫 번째 목표”라고 밝혔다. 사목국장 조성풍 신부는 “성경 통독 지도에는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교구민 전부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는 기회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지향도 담겨 있다”며 “누구든지 한 번 성경을 읽고 성경을 더 가까이하고 하느님을 더 깊이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순택 대주교는 2022년 사목교서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체험해야 하고, 이 기쁨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기도, 교회의 가르침과 미사, 사랑 실천을 통해 주님을 자주 만나야 한다”라고 교구민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평화신문2022.01.19

하느님 사랑과 성령의 열매, 부활의 진짜 의미 전하는 책주님 부활 대축일 추천 서적 십자가 사랑의 신비를 증명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일상에서 그 무한한 은총을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을 소개한다.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 /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 지음 / 김형수 신부 옮김 / 성서와 함께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은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의 진리는 사랑이며, 이 점을 가장 잘 꿰뚫고 있는 요한의 복음서와 첫째 서간을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1885~1968)의 깊은 사색과 묵상을 통해 풀어낸 책이다. 책은 소크라테스, 석가와 같은 위대한 성인의 모습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곧 과르디니는 성경의 진리와 철학의 진리, 그리고 세상의 진리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세 영역의 진리는 완전히 같을까? 저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느님의 진리는 ‘사랑’이라고 답한다. 많은 이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사건을 이웃 사랑의 본보기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더 나아가 이 사건이 ‘하느님 안에서의 겸손’을 보여준다고 한다. 니체는 겸손이 자기 자신이 빈약하여 덕을 행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이들, 불리한 자들, 노예들의 태도인 반면 진정한 인간 존재는 의기양양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강한 사람만이 참으로 겸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강요받지 않고 자유롭게 섬기며 자기보다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이 앞에서 고개를 숙임으로써 자유로워집니다. 맨 처음 겸손을 보이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중략) 세상이 유한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당신보다 더 작은 것을 창조하시는 일이 과연 그분에게 가치 있는지 물을 수 있겠습니다.”(37쪽) 책은 또한 고별 담화와 요한의 첫째 서간에 나오는 중요한 구절들을 면밀히 살펴본다. 특히 그리스도교적 실존철학의 입장에서 실존과 신앙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던 과르디니 신부는 이성적 사유를 통해 성경을 들여다보고 묵상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인간 안에서 당신의 능력을 발휘하심으로써, 이 인간은 온전하게 고유한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도성이 ‘하느님에게서 내려옴’으로써, 도성은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정당한 본래의 중심을 획득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하느님께서 본래 뜻하셨던 바가 완성됩니다. 그 뜻은 ‘세상은 하느님으로부터’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259쪽)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대학에서 수학한 김형수(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부는 “독일의 한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보물을 찾은 듯 기뻤다”며 “과르디니는 하느님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을 사랑과 진리라는 주제어에 담아 심오한 사유로 표현한다”고 전했다. 열매와 은사 / 토마스 키팅 신부 지음 / 차덕희 수녀 옮김 / 가톨릭출판사 가톨릭 신자는 세례성사를 통해 신앙의 씨앗을 받고, 견진성사 때 이 씨앗이 자라나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 하지만 성령의 열매와 은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 것인지, 또 이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삶 안에서 이러한 은총이 구체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관상 기도의 대가인 토마스 키팅(1923~2018, 미국 엄률 시토회/트라피스트) 신부는 「열매와 은사」에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와 일곱 가지 성령의 은사에 담긴 의미를 살펴본다. 또 하느님과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는지,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받을 수 있는 은총이 무엇인지 소개한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의 영적인 에너지를 아홉 가지의 특성으로 드러내 보이시는데, 우리는 이를 성령의 열매라고 부른다. 바오로 사도는 이 아홉 가지의 열매를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언급하는데, 바로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행, 성실, 온유, 절제’다.(갈라 5,22-23) 이 열매들은 세례와 견진성사의 은총으로 활성화되고 성장한다.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들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스스로를 완전히 변화하도록 하여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현존의 증인이 되도록 한다. 이러한 예수님의 성향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이 그분께서 부활하셨다는 살아 있는 증거다.”(45쪽)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삶은 성령의 선물로 지탱된다. 이 선물은 성령의 이끄심에 기꺼이 따르는 항구한 마음가짐으로,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정화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사용하는 도구를 ‘성령칠은’이라고 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따르면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는 ‘지혜, 통찰(깨달음), 의견, 용기(굳셈), 지식, 공경(효경)과 하느님에 대한 경외다. 성령의 선물은 그것을 받는 사람들의 덕을 보충하고 완전하게 한다. 저자는 특히 이러한 은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향심 기도에서 찾는다. 향심 기도를 통해 침묵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 안에서 편히 쉬면서 은총을 우리 삶에 가져올 수 있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는 믿음, 희망, 사랑(하느님 사랑)을 끊임없이 수련하는 일이다. 이는 하느님 말씀을 단지 귀와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들을 때, 그렇게 침묵하는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하느님께서는 침묵을 통해 가장 잘 말씀하신다. 이는 기도하는 동안 원하지 않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거듭해서 그분을 온전히 따르고 믿음에 동의하는 근본적인 자세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26쪽) 토마스 키팅 신부는 1975년 향심 기도 운동을 시작했고, 1984년 국제 관상 지원단을 창설했다. 저서로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침묵의 대화」, 「하느님과의 친밀」, 「신앙의 위기, 사랑의 위기」 등이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3.28
![[금주의 성인] 성 마리아 막달레나(7월 22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7/12/KNP1689130661761.jpg)
[금주의 성인] 성 마리아 막달레나(7월 22일)+1세기경, 막달라 출생, 예수의 제자, 예수의 부활을 체험한 증인 예수님의 치유 은총으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 출처=굿뉴스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는 복음서에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로 묘사됩니다. 이는 갈릴래아 호수 서쪽에 있는 어촌 마을인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라는 뜻으로, 지명을 이용해 이름을 수식한 것으로 보아 가까운 친척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모두 12번 나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치유 은총으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뒤에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의 일행을 따라다니며 자기 재산으로 시중을 들었습니다.(루카 8,2-3)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십자가 곁을 지켰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인 요셉이 빌라도의 허락을 받고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받아 새 무덤에 모실 때도 그 맞은편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마태 27,61; 마르 15,47)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아침, 마리아 막달레나는 몇몇 여인과 함께 향료를 들고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서둘러 치러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지 못해 뒤늦게나마 그 예를 보완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막고 있던 돌이 치워진 채 텅 비어 있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어느 못된 사람이 예수님의 시신을 훼손한 줄 알고 무덤 밖 동산에서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시고 “마리아야!”하고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서 그분을 알아보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난 마리아 막달레나는 기쁜 소식을 갈릴래아로 달아난 사도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받고 알렸습니다.(요한 20,11-18) 사도들이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님이 하느님의 권능으로 부활하셨다고 당당히 선포하게 만든 장본인인 겁니다. 빈 무덤 사화에서는 무덤 속에서 천사가 갈릴래아 여인들에게 예수 부활을 알렸다고도 하고 있지만,(마르 16,6) 역사적으로 평가했을 때 오순절에 상경한 사도들이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예수 부활을 선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6년 6월 3일 예수 성심 대축일에 교황청 경신성사부는 예수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의무 기념일을 축일로 승격하는 교령을 발표했습니다. 경신성사부 차관 아서 로시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단히 사랑했고, 아울러 그분에게 사랑받은 이 여성의 중요성이 자비의 희년에 새롭게 조명되길 바란다”며 “이 결정은 여성의 존엄성과 새로운 복음화,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위대함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특히 두려움에 떨던 사도들에게 주님 부활 소식을 알림으로써 그들이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도록 예수님께 받은 영예로운 사도 직무를 수행했기에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을 걷는 교회는 성녀의 이런 특별한 역할에 주목하고 전례를 통해 공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취지에 따라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을 위해 마련된 새 감사송은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는 제목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과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진 마리아 막달레나의 행적과 역할을 정리해 작성되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주님을 뵈었으며 무덤에 묻히신 주님을 찾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경배하였나이다. 주님께서는 동산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사도들 앞에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시고 새로운 삶의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하게 하셨나이다….” 감사송 본문은 특별히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 부활의 첫 증인이라는 사실과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하는 첫 번째 사람으로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님에게 직접 받았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cpbc2023.07.12
![[신앙단상] 정원지기 하느님 (홍태희 스테파노, 서강대 신학대학원 대우교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5/30/62l1685431382920.jpg)
[신앙단상] 정원지기 하느님 (홍태희 스테파노, 서강대 신학대학원 대우교수)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텃밭을 가꿔온 지도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감자, 옥수수, 고추 등을 심어 놓고 잡초와 씨름하다가 장마철이 올 때쯤 자포자기 상태로 버려두던 어설픈 주말 경작도 몇 해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야생마를 길들인 듯 제법 밭과 어울려 살게 되었습니다. 텃밭의 작물을 자라게 하고 화단의 나무에 꽃을 피우는 것이 창조하시고 살리시는 하느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몸으로 흙을 만지던 수고에 응답해주신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도시와 공장의 삶에 묻혀 살던 사람에게 마당과 텃밭이 있는 삶이 로망이 되기도 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 안에 있는 하느님의 그 마음으로 인해 흙과 자연의 생명력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과의 대면이 부담스럽던 시기에 숲과 물이 좋은 곳을 찾다 보니 주변에 잘 가꾼 정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 깊은 곳에서 숲과 물과 함께 있는 불교 사찰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연이었고, 순천만 정원처럼 국가가 관리하는 장대한 수목원도 여러 곳에 있으며, 뜻을 갖고 숲과 정원을 가꾸신 분들이 그것을 일반에 공개한 곳도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정원을 가꾼 많은 분이 음식점이나 찻집으로 개방하고 있었습니다. 잘 가꾼 정원을 볼 때마다 그것을 보살피는 사람들의 수고가 생각나는 것은 하느님의 마음과 그 마음을 따르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이룬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절두산, 갈매못, 연풍 등 성인들이 박해 속에서 목숨까지 바치셨던 성지도 잔인하고 긴박했던 장소가 말끔한 정원이 되어 순례객을 맞습니다. 성인들의 살과 피, 그리고 정신이 서려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순교의 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척박하고 처절했던 고난의 장소가 수목이 우거지고 잘 가꾼 정원이 되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후손을 맞고 있는 것 자체가 진리를 선택했던 순교자들의 승리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창세기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정원을 꾸미십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창세 2,8) 성경은 이어서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2,9)라고 전합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정원지기 하느님이 묵상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주님은 피조물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가꾸고 돌보십니다. 고대 시절 세상을 통치하든 왕들도 정원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나 봅니다. 바빌로니아의 왕은 온통 황량한 벌판뿐인 곳에 수직으로 켜켜이 놓인 공중정원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마당에 성모상과 함께 잘 가꾼 정원이 있는 성당은 항상 오고 싶은 곳이 됩니다. 나무와 꽃이 자랄 땅이 없으면 공중정원이라도 연구해 봄 직합니다. 사무실 창틀에 있는 호야에 물을 주며 가끔 혼잣말을 던집니다. 사실 혼자가 아니죠. 인간의 언어는 아니지만, 호야가 나를 느끼고 응답도 합니다. 문득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한 요한복음이 생각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정원지기’(요한 20,15)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역시 에덴동산을 꾸미신 주님은 부활 후에도 동산을 꾸미시는 정원지기이십니다. 홍태희 (스테파노)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대우교수 2023.06.06

베드로 대성당 (2)[월간 꿈 CUM] 로마의 휴일 _ 로마의 성당들 (3) 베드로 대성당 왼쪽에 설치된 베드로 사도 석상 촌각을 다투는 상황. 베드로는 빨리 로마를 벗어나야 했다. 수개월 전에만 해도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 바오로가 솥을 구해 쌀을 씻어 맛있게 밥을 지었고, 이어 베드로가 맛있는 반찬을 곁들여 화려한 밥상을 차렸다. 로마의 많은 이들이 밥상 앞으로 모여들었고, 그렇게 그리스도교는 날로 세를 늘려나갔다. 하지만 호사(好事)는 거기까지였다. 다마(多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전파를 못마땅하게 여긴 로마 집정관이 베드로를 벼르고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베드로는 로마를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베드로가 서둘러 로마 성문 밖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베드로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꿈인가? 생시인가? 스승 예수는 분명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베드로의 눈앞에 예수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놀란 베드로가 예수에게 질문했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 ne,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성 베드로 대성당의 콘페치오.(Confessio sancti Petri) 베드로 사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콘페치오는 순교자의 유해나 성유물을 안치하기 위해 제단 아래 지하에 설치한 묘실을 말한다. 그러자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다”라고 대답했다. 베드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로마를 탈출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주님은 베드로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자신은 지금 그 십자가를 피해 도망치고 있지 않은가. 베드로는 즉각 오던 길을 되짚어 다시 로마로 돌아갔다. 그 길은 순교의 길이었다. 로마로 돌아간 베드로는 곧 집정관에게 잡혀 십자가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소천했다. 이 이야기는 180~190년경에 소아시아 또는 로마에서 편찬된 「베드로 행전」에 나와 있다. 「베드로 행전」은 성경 정경 목록에 들어가지 않는 ‘위경’(Apocrypha)인데, 위경이라는 이유로 그 내용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힘들다. 초대교회부터 널리 퍼져 있었던 믿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쿼바디스 도미네’ 이야기는 교황 레오 1세 (Papa Leone I, 440~461년 재위)의 기록과, 13세기의 「황금전설」(Legenda aurea)이라는 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 베드로가 순교했다. 그렇다면, 그 유해는 어디에 모셔졌을까. 처음에는 로마의 한 지하 공동묘지에 모셔졌다. 이후 신자들이 매일 베드로의 무덤을 찾아 기도하였는데, 서기 90년경에 무덤 위에 작은 경당 하나가 세워졌다. 말이 경당이지 서너 명이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박해가 본격화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베드로의 무덤이 파헤쳐지거나 훼손될 수 있었다. 이에 몇몇 신자들이 비밀리에 성인의 유해를 다른 공동묘지로 이장했다. 이 유해가 현재의 바티칸으로 옮겨진 것은 종교 자유의 시대를 맞으면서였다. 종교 자유를 허락한 콘스탄티누스 황제(Constantinus I, 274~337)는 바티칸으로 옮긴 베드로 무덤 위에 제법 큰 성당을 세웠다. 이 공사는 318~322년 사이에 이뤄졌는데, 완공까지 40여년이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총 길이가 110m 정도였다고 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이 길이 69m, 폭 28m, 지붕 높이 23m, 종탑 높이 45m이니까, 당시 베드로 성당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500년 후 카롤루스 대제(Carolus, 742~814) 때 다시 성전을 건립했고, 다시 1000년 후인 1626년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바티칸이었을까. 베드로 사도의 유해를 애초의 로마 공동묘지에서 바티칸(원래 명칭은 ‘바티카누스’)으로 옮긴 이유가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현재 베드로 대성당이 위치한 장소는 원래 로마의 전차경기장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를 콜로세움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로버트 테일러, 데보라 카 주연의 1955년 영화 「쿼바디스」 탓이 크다. 영화에서는 콜로세움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순교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로마의 죄인 처형식은 대부분 전차 경기장에서 이뤄졌다. 바티칸, 바티카누스는 당시 사람들이 숭상하던 ‘출산의 신’ 이름이다. 즉, 바티칸이라는 이름은 ‘바티카누스 신(출산의 신)을 모신 신전이 있었던 장소’에서 유래한다. 2000년 전 로마 변두리였던 이곳에는 원래 본토 토박이들(에트루리아인)이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로마 3대 황제 칼리귤라가 이곳을 재개발 지구로 지정,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출산의 신’(바티카누스) 신전을 허물고 황제 개인 전차 경기장을 건립했다. 그런데 로마 5대 황제 네로는 이곳을 죄인 처형 장소로 활용한다. 베드로도 바로 이곳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다. 베드로의 유해가 바티칸에 세워진 베드로 대성당에 모셔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00년 전 베드로의 순교 장면을 생생히 지켜본 ‘목격자’가 있었다. 지금도 바티칸 시국의 베드로 광장에 가면 그 목격자를 만날 수 있다. 광장 중앙에 솟아있는 높이 40m의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그것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서기 40년 칼리귤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와 전차 경기장 중앙에 세운 것인데,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베드로는 숨을 거두기 직전 이 오벨리스크를 보았을 것이다. 베드로 사도와 눈을 맞췄던 오베리스크를 나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쭈뼛거리며 다가가 만졌다. 주님께 질문을 드렸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다.” “… ….” 나는 즉각 응답하지 못했다. “저도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가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겠습니다. 당신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저도 걷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베드로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 이 오벨리스크를 보았을 것이다. 글 _ 편집부cpbc2023.09.25

교회·군인 정신 맞닿은 ‘늘 깨어 준비하라’ 새겨라공군사관학교 성무대본당공사 71기 졸업 미사 봉헌 성무대본당 성전 봉헌식과 공사 71기 졸업 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공군사관학교 성무대본당(주임 박진호 신부)의 새 성전 봉헌식과 공사 71기 졸업 미사가 2일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주례로 성무대성당에서 거행됐다. 새 성전은 2021년 9월 27일 착공해 1년 6개월여 만에 준공됐다. 건물 면적 1298㎡(392평), 총공사비는 46억 7750만 원이 소요됐다. 1층에는 사무실과 회의실 등이 2층에는 대성전이 자리 잡았다. 구 성전에 있던 스테인글라스는 어느 하나 훼손 없이 안전하게 새 성전으로 옮겨 설치했다. 1957년 설립된 성무대본당은 1984년 공군사관학교가 서울 대방동에서 충북 청주로 이전할 때 종교센터에 건물을 지었으나, 천주교 성당과 개신교 예배당이 절반씩 나눠 사용해야 했다. 그러다 이번에 성당과 예배당을 별도로 신축했다. 서 주교는 성전 봉헌 예식 후 미사에서 “이곳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지고, 모든 삶이 주님 뜻 안에서 복된 삶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교회 정신과 군인 정신이 맞닿은 ‘늘 깨어 준비하라’는 성경 말씀을 새기며, 늘 기도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서 주교는 또 이번에 졸업한 공사 71기 임관생들에게 “공군은 하늘, 그리고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 힘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또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벗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도 격려했다. 공군사관학교 성무대본당 새 성전 서 주교는 이어 열린 축하식에서 이상학 공군사관학교장에게 성가정 축복장을, 정민건설 장계원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71기 졸업생 30명(신자 20명, 비신자 10명)에게는 반지와 선물이 수여됐다. 소위로 임관하는 졸업생 장준서 생도는 답사에서 “임관 후에도 하느님의 보우(보살피고 도와줌) 안에서 마음속 이상을 잃지 않는 충실한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이날 성전 봉헌식과 졸업 미사에는 서상범 주교와 군종 사제단,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신부와 청주교구 총대리 성완해 신부 등 공군 예비역 군종 사제, 예비역 신자 군 장성 모임인 이냐시오회 임관빈 회장, 박인호 전 공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했다. 공사 재학생도 70여 명 참석해 71기 선배들의 졸업 및 임관을 축하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2023.03.10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옷[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9)사제복 사제복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옷으로 세속인의 복장과 구별된다. 사진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얼마 전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 사제’의 복장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옷은 몸을 가리고 체온을 유지하는 일반 기능 외에도 그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와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신원과 품위를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성경은 옷을 원죄 이전과 이후의 인간을 구분하는 표지로 사용한다.(창세 2─3장 참조)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기 이전 낙원에서 살 때 어떠한 옷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죄를 범한 후 인간은 자신의 알몸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두렁이를 만들어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손수 가죽옷을 만들어 인간에게 입혀 주셨다.(창세 3,21 참조) 이 가죽옷은 죄에 물든 인간이지만 만물 가운데 품위를 유지하게 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낼 뿐 아니라 잃어버린 하느님의 영광을 다시 입게 해 주실 것이라는 구원의 약속을 드러내는 이중의 표징이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선물한 가죽옷은 성자 하느님의 강생과 수난, 부활로 ‘빛나는 흰옷’으로 탈바꿈한다.(묵시 3,5 참조) 주님의 부활로 구원받게 돼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 하느님의 영광에 다시 속하게 된 인간은 죄에서의 해방을 상징해 세례받을 때 흰옷을 입는다. 성경은 옷이 놀라운 힘을 지녔다고 한다. 구약 성경은 예언자의 카리스마가 겉옷에서 나온다고 한다.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2열왕 2,8) 또 엘리사는 엘리야 예언자의 겉옷을 입음으로써 그가 지녔던 옷의 힘을 그대로 물려받고 예언자의 사명과 역할을 깨닫는다.(2열왕 2,13-14 참조) 엘리야에서 요한 세례자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은 일반적으로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다. 복음서도 예수님의 옷이 신비로운 힘을 드러낸다고 한다. 주님의 놀라운 힘이 옷을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마르 5,27-30 참조) 또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마태 17,1-9 참조) 빛나는 흰옷은 하느님의 영광뿐 아니라 지상에서 현존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반영한다. 종말에 오실 그리스도께서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고 계신다.(묵시 1,13)성경은 또 옷을 내어주는 행위가 사랑의 표현이라고 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표징으로 자신의 옷과 무기를 다윗에게 주었다.(1사무 18,3-4 참조) 성경은 아울러 옷이 참회와 슬픔의 표지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과 죄를 회개하기 위해 자루옷을 입고 흙을 뒤집어쓴 채 단식하였다.(느헤 9,1; 요나 3,6 참조)옷에 대한 화두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 사제의 복장에서 시작한 만큼 사제복에 관해 좀더 깊이 들어가 보자. 사제복은 우선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옷이다. 사제는 거룩한 옷을 입음으로써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을 구별해 하느님께 예를 거행한다.(레위 13─15장 참조) 구약 시대 이스라엘 사제복은 가슴받이, 에폿, 겉옷, 수놓은 저고리, 쓰개, 허리띠로 구성돼 있었다.(탈출 28,2-5 참조) 이 사제복은 금, 자주ㆍ자홍ㆍ다홍실, 아마실로 만들어졌다. 사제복은 아무의 손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슬기의 영’으로 충만한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인 초대 교회 사제들은 5세기까지 신자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복장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사제복을 원하지 않으셨고, 당신 제자들이 입을 옷에 관해 정확한 규정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주님께서 강조하신 ‘단순함’과 ‘겸손함’(마르 6,8-9; 마태 10,9; 루카 9,3 참조)을 새겨 당시 일반인들의 평상복을 그대로 입었다.가톨릭교회 안에서 사제복과 세속 옷을 구별하기 시작한 것은 6세기부터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이민족들의 짧은 옷들이 유행했다. 이에 교회는 사제들에게 베네딕도회 수도승의 검은색 수도복처럼 전통 로마식 복장, 곧 온몸을 덮는 긴 투니카를 띠로 묶고 겉옷인 토가를 고수하게 함으로써 평신도들의 옷과 구별했다. 교회는 또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은 성직자 신분과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금하고 검소하게 입을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개최 이전까지 가톨릭교회 사제복은 수도자들과 구분해 트임이 없고 발목까지 내려가는 흰색 긴 옷 곧 ‘장백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 밀라노대교구에서 전통적인 사제복의 색을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로만 칼라를 착용하게 했다.17세기 중반부터 ‘수단’이라고 부르는 사제의 평상복이 등장했다. 우르바노 8세 교황(재위 1623~1644)은 사제의 평상복으로 흰색 레이스로 된 로만 칼라가 달린 검은색 수단에 필레우스라고 하는 둥근 형태의 모자를 쓰고 소매 없는 토가를 입고 허리띠를 하게 했다.한국 교회는 사제가 모든 사목 활동을 할 때와 공식 행사, 공적 회합을 할 때 성직자 복장(수단 또는 로만 칼라)을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9.28

불안한 한반도 상황… 평화 이끌어내는 교회의 저력에 주목하다[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군비경쟁을 넘어 인류 상생의 길을 찾다’ 10월 26일 열린 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첫 번째 컨퍼런스 ‘군비경쟁을 넘어 인류 상생의 길을 찾아’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교회’를 주제로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되고 있다. 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은 10월 26일 의정부교구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군비경쟁을 넘어 인류 상생의 길을 찾다’를 주제로 첫 번째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평화의 당위성에 관해 논의하고 머리를 맞댔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종교·정치·시민사회·학계 전문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동북아 평화를 심도 있게 모색하는 자리였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인류의 존폐를 가르는 핵무기의 심각성을 다루면서 핵군축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교회의 역할을 모색했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한미일 3개국과 주한교황청 대사대리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 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장 데이비드 말로이 주교, 일본 삿포로교구장 카츠야 타이치 주교,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축사를 통해 한반도와 전 세계에 필수불가결한 평화의 가치를 거듭 전했다. 이어 제1세션 ‘핵무기의 위협과 군비경쟁’, 제2세션 ‘기후 위기와 한반도의 인권(평화)’, 라운드테이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교회’가 진행됐다.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 평화를 위한 한미일 전문가들의 토론 현장을 살펴본다. 핵무기의 위협, 안보 딜레마 지난 7월 북한은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은 확장억제 강화의 신호로 부산 기지에 핵잠수함을 배치했다. 북한은 다시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를 두고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행동, 대응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악순환이자 ‘안보딜레마’”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국제정치 현실주의에서는 핵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을 ‘공포의 균형’으로 보고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안전한 핵은 없다. 우발적 충돌로 언제든 전략핵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인데, 힘의 논리만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전쟁의 위험 한가운데에 있는 한반도가 ‘안보딜레마’에 빠져있다는 데 참가자들 모두 동의했다. 특히 핵 자체의 위험성을 견지하면서 북한에만 문제를 돌릴 것이 아니라, 핵 군축을 위한 한미일 3국의 연대 강화에 중점을 두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상생의 길 2015년 이후 북한의 핵 능력은 모든 면에서 증가했다. 외교적 고립과 경제제재에도 어느 때보다 평화 협상에 저항하는 강경 일변도다.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 크록국제평화연구소 조지 로페즈 명예 교수는 “중단기적으로 볼 때 북한이 이러한 입장을 전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하지만 제재 자체만으로는 압력을 가할 수 없고, 그런 일은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의 평화 및 안보와 관련된 모든 사안에 주변국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더욱 적극 외교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전 선언 캠페인과 비핵지대화 설치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특히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통한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핵무기금지조약은 2017년 UN에서 채택돼 2021년 발효됐다. 97개국이 이 조약에 서명했거나 가맹국인데, 동북아시아 지역의 가입국은 몽골이 유일하다. 가와사키 아키라 피스보트 공동대표는 “동북아 국가들이 핵무기금지조약에 관여를 해나가고,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안보의 길을 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미국과 일본의 양국 주교들은 지난 8월 일본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 78주년을 맞아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산타페대교구장 존 웨스터 대주교는 “핵군축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한미일 3국의 연대 강화를 요구했다. 산타페대교구 내에는 미국 핵무기 연구시설 전체 3곳 중 2곳이 있다. 웨스터 대주교는 “산타페대교구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특별한 책임이 있다”며 “핵무기금지조약을 지지하는 동시에 보편적이고 검증할 수 있는 핵 군축 방안을 모색하는 임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는 11월 말 뉴욕 UN 본부에서 열리는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 회의에 참관해 UN 교황대사와 함께 바티칸시국이 최초로 서명하고 비준한 핵무기금지조약을 지지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핵무기 보유국이 궁극적으로 금지조약을 준수하도록 더 강력히 촉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카츠야 타이치 주교도 “전쟁의 현장에서 ‘올바른 전쟁’ 따위는 없다”며 “일본은 물론, 핵보유국이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하고 비준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남북의 기후 위기 대응 협력도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을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 제시됐다. 추장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30여 년간 북한에서는 자연재해로 2390명 사망, 5000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고, 매년 2억 6250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청된다”며 북한의 심각한 기후 위기 상황과 열악한 환경을 전했다. 추 위원은 “북한 기후 위기를 대북정책의 전환적 접근으로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독립변수이자 핵심요소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분야를 협상 테이블로 올리면 북한도 충분히 호응할 수 있고, 남북관계 정상화와 평화실현의 전략적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평화의 길 핵이라는 실존적 위협 앞에서 안보와 경제제재 딜레마에 갇힌 한반도. 참가자들은 △생명과 생태 △인권과 정의 △평화와 안보의 세 꼭짓점을 잇는 방안을 고민하면서 교회의 역할에 주목했다. 피스 카탈리스트 인터내셔널 디렉터 제니퍼 조이 텔퍼씨는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며 북한을 악의 축으로 여겼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성경을 접하면서 미국의 오만함으로 생긴 문제를 함께 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교회에는 고백과 참회, 화해라는 전통이 있다”며 “분단으로 고통받고 희생된 이들을 위한 교회 역할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히로시마교구장 시라하마 미츠루 주교는 “세상의 논리로 핵 억지론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는 무력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인간의 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리스도는 진정한 평화의 길로서 무력의 연쇄를 끊기 위한 비폭력의 길을 가르쳐줬다”며 “그분이 함께 있다는 신뢰를 가지고 사랑과 인내로 평화 문화를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제라드 파워즈 가톨릭 피스빌딩 네트워크 코디네이터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극적인 타협을 통해 핵위기가 사라진 경우를 예로 들며, “최악의 시기에도 기회는 있다”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반도와 같은 불안한 상황에서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전 세계 평화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교회의 존재 목적이 고백과 참회를 통한 신뢰와 화해, 평화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입을 모았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김주영 주교는 “교회가 현재 걷고 있는 시노드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경청”이라며 “이는 잘 듣는 차원을 넘어 공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진정으로 공감할 때, 엮인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라며 “포럼에서 나눈 것처럼 예수님 가르침에 따라 각자의 자리에서 회개하고 희망한다면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는 평화가 실현되리라 굳게 믿는다”고 전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3.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