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Talk] 가톨릭교회는 현대과학을 경계하는가?](//cpbc.co.kr/CMS/news/2015/08/rc/587769_3.2_titleImage_1.jpg)
[취재Talk] 가톨릭교회는 현대과학을 경계하는가?[기획] 가톨릭, 과학을 품다 (5편/끝)1편 – ‘또 하나의 지구’에 생명체가 있을까? 2편 – 바티칸 천문대장, 질문에 답하다. 3편 – 외계인에게도 세례를 베풀 수 있을까? 4편 - 바티칸의 밤하늘을 지키는 사람들 가톨릭교회는 한때 성경을 근거로 과학적 지식을 경계한 적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의 교회는 이런 문제에 상당히 열린 자세를 보인다. 교회가 ‘과학 발전 앞에 당황하며 교리 방어에만 급급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읽어보는 게 좋다. “학문의 정당한 자율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어떤 때에는 바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없지 않았지만, 거기에서 논쟁과 갈등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신앙과 과학을 서로 배치되는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던 정신 자세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목헌장 36) 이는 과학의 문제에 충분히 사려 깊게 대응하지 못했음을 성찰하는 뜻으로 읽힌다. 오늘의 교회는 과학 발전의 성과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를 토대로 인간과 우주의 근원에 관한 종교적, 철학적, 인문적 성찰을 펼친다. 이런 성찰은 바로 과학의 최정상에서 맞닥트리는 우주의 신비에 관한 물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서 인용한 문헌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분야의 방법론적 탐구가 참으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도덕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결코 신앙과 참으로 대립할 수 없을 것이다. … 오히려 겸허하고 항구한 마음으로 사물의 비밀을 탐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만물을 보존하시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손에 인도되고 있는 것이다.” (사목헌장 36) 사실 교회가 과학과의 불화를 치유하려 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다. 일찍이 1936년에 교황 비오 11세(재위 1922~1939)는 교황청 과학원(The Pontifical Academy of Sciences)을 재설립했다. 다방면의 뛰어난 과학자들을 회원으로 초빙해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후임 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1958)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다. 그는 보다 과감하고 진지하게 현대과학의 성과를 숙고하고 포용하려 했다. 1950년과 51년 두 차례에 걸쳐 진화론과 빅뱅우주론 등이 가톨릭 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1950년 8월 12일 발표된 회칙 《Humani generis》는 진화론을 충분히 ‘숙고할만한 가치가 있는 하나의 진지한 가설’로 여기면서, 진화론과 그리스도교 신앙은 양립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다만 한 가지 전제조건을 분명히 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영혼에 관한 것이다. 즉 인간의 육체는 그 이전의 생물체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은 하느님이 직접 창조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점을 분명히 한다면 진화와 신앙 교리 사이에 아무런 대립도 없다고 규정했다. 이어 1년 뒤인 1951년 12월 22일, 비오 12세는 교황청 과학원에서 연설한다. 길고 전문적인 이 연설은 현대 우주론과 신앙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 핵심은 ‘우주의 창조와 진화를 설명하는 현대 과학은 종교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설 첫 머리의 한 대목이다. "과거에 경솔하게 선언했던 것과는 달리, 진정한 과학은 진보할수록 그만큼 더 하느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과학이 새로운 문을 열 때마다 하느님이 그 뒤에서 기다리며 지켜보고 계신 듯합니다." 가톨릭교회는 해묵은 숙제를 하나 갖고 있었다. 그것은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유죄판결을 바로잡는 것이다. 1633년 종교재판 이후 3백여 년 동안 미뤄온 이 숙제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풀었다. 그는 1979년 갈릴레오 재심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1992년 10월 31일 교황청 과학원에서 그 결과를 보고받았다. 그리고 갈릴레오 재판이 오류였음을 인정하고 그의 복권을 선언했다. 이것은 과학과 종교, 신앙과 이성 사이에 전개된 비극적인 오해와 불신의 시대를 마감한다는 상징적인 조치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96년 10월 22일, ‘생명의 기원과 진화(The origin of life and evolution)’를 주제로 교황청 과학원 총회가 열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총회에 담화를 보내, 종교와 과학의 관계, 생명에 관한 교회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정리한다. 교황은 진화론을 ‘하나의 진지한 가설’로 인정했던 비오 12세의 회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즉 거의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진화론은 ‘하나의 가설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비오 12세와 똑같이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되는 영혼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인간 정신을 생물체의 힘에서 떠오르는 것으로 또는 생물체의 단순한 부수 현상으로 여기는 진화론들은 인간에 대한 진리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이론들은 또한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교황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활용되는 방법을 숙고하면 (종교와 과학이)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관점을 합치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보수적 이미지가 강한 분이다. 신학과 지성이 뛰어났던 교황은 과학의 문제에 어떤 견해를 보였을까? 그는 2011년 1월 6일 주님공현대축일 미사에서 현대 우주론을 언급한다. 이 강론은 과학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는데도 언론들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했다. "빅뱅도 신의 창조, 우주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 아니다" 그러나 교황은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지 않았다. “우주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우주를 바라볼 때, 우리는 좀 더 근원적인 것들, 창조주의 지혜와 무한한 창의력, 인간을 향한 절대적 사랑을 읽어야 합니다.” 교황은 ‘빅뱅 이론’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빅뱅으로 대표되는 현대 우주론이 우주를 우연의 결과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빅뱅이 우주의 시작이라면 그 또한 창조주의 작품이라는 점을 에둘러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이다. 예수회는 교회 안에서도 가장 지적인 활동을 장려하고, 과학을 비롯한 학문 발전에 기여해 온 수도회다. 2014년 10월 24~28일 교황청 과학원 총회가 열렸다. 회의 주제는 ‘자연의 진화 개념(Evolving Concepts of Nature)’이었다. 교황은 10월 27일 이 회의에서 연설하면서, 전임 교황들이 언급해 온 진화론과 빅뱅우주론을 가장 명료한 표현으로 정리했다. 두 이론이 창조론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창조주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하느님을 마술 지팡이를 휘두르는 마법사로 상상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들 각각에 부여한 내적 법칙에 따라 발전하도록 놓아두셨습니다. 그로 인해 만물은 발달하고 충만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조는 오늘의 모습이 되기까지 여러 세기, 여러 천년에 걸쳐 진행되어 왔습니다. 하느님은 조물신이나 마법사가 아니라 만물에 생명을 주는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혼돈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창조된 최고 원리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기원으로 제시되는 빅뱅은 창조주의 개입과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창조주에 의존합니다. 진화도 진화할 존재의 창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창조의 개념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역대 교황의 회칙과 연설에 나타난 교회의 입장은 분명하고 일관된 흐름이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는 태초가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 태초를 137억 년 전으로 계산했다. 빅뱅 우주론은 이 태초 이후 우주의 진화 과정을 설명한다. 교회는 그 신비에 잠긴 태초를 겸허히 창조주에게 돌린다. 진화 역시 마찬가지다. 진화는 45억년 지구 위에 펼쳐진 생명의 향연을 설명한다. 교회는 그 생명의 탄생이 바로 창조주의 작품이며, 하느님이 불어넣은 숨결임을 강조한다. 진화는 창조 이후의 과정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빅뱅 우주론이나 진화론을 포용한다. 두 이론의 진위에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두 이론이 모두 창조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가톨릭 신앙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끝) 김소일2015.08.17
[인터뷰 전문] 맹경순 "시복미사 독서 때 교황님 묵상 모습 보기 좋았다"* 맹경순 전 평화방송 아나운서,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발언] "시복식 며칠 전부터 주위 분들의 응원 받고 떨리기 시작" "독서 읽을 때 교황님이 묵상에 잠기신 모습 보기 좋았다" "독서 경쟁이 심해서 기대 안 했는데 기회 얻게 돼" "교황님의 말씀과 행보에는 인, 의, 예, 지 모두 들어있어" "교황님, 불과 바람 가운데서도 부드러운 소리 같아" [발언전문] 지난주 토요일 광화문 광장, 벌써 일주일이 돼 가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124위 순교자 시복미사 그 감동의 여운이 남아있습니다. 시복식 현장의 감동을 오늘 다시한번 느껴보겠습니다. 시복미사 전례에 독서자로 참여한 맹경순 전 평화방송 아나운서 연결합니다. - 안녕하십니까? 교황님께서 바티칸으로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교황님의 말씀과 메시지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는데요. 맹경순 아나운서께서는 어떠신가요? ▶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여러 가지로 얽혀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분이 함께 계셨을 때 따뜻했던 평화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어떤 분이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리셨어요. “교황님 다시 와주세요. 그러면 다시는 출국 못하시게 출국금지해버릴 거에요.” 이렇게 사람들이 평화를 열망하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 일주일 전 광화문 광장의 감동, 그리고 그 따뜻한 위로를 느꼈는데요. 조금 전 속보를 들은 것처럼 김영오 씨가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병원으로 이송되기 바로 직전이신데 버티고 계시다고 합니다. 교황님께 직접 위로도 받으신 분인데 안타깝습니다. ▶ 네. 무엇보다 생명이 중요한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간절히 갖게 됩니다. - 시복식 전례에 참여하셔서 독서를 하셨는데요. 방송하실 때와는 느낌이 다르셨죠? ▶ 사실은 제가 며칠 전까지는 안 떨렸어요. 말하는 게 직업이었는데, 그런데 나중에 서서히 아시게 된 주변분들이 하도 기뻐하시고 영광이라고 부러워하시니까 그때부터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잘 읽기보다는 실수하지 않게 해주시라고 기도드렸죠. 성경이라는 것이 담백하게 읽어야하지만 광화문 장소도 광활하고 내용도 순교하신 분들을 의미하니까 목소리에 그 표현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 중계방송을 들으니까 전혀 떨리신 기색 없이 담담하시던데요. ▶ 다행입니다.(웃음) - 교황님을 제대위에서 뵀죠? ▶ 그럼요. 입장하실 때와 나가실 때, 다섯 걸음 정도 앞에서 뵀었죠. - 교황님의 어떤 모습이 가장 인상에 남으세요? ▶ 사실은 미사 전 과정을 못 봤어요. 동영상으로 제가 독서한 부분을 누가 보내줘서 봤는데 그날 제가 지혜서 3장 1절에서 9절까지 읽은 부분에서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는 부분이, 정말 찬란한 고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에 카메라가 교황님을 비출 때 교황님도 -하시는 것처럼 화면에 비쳤어요. 성서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교황님의 깊은 생각에 잠기신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 저희들은 성경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런 느낌들이 늦게 와요. 오지 않을 때도 많고요. 아직 부족한 게 많은 거죠? ▶ 어떻게 제가 감히 그렇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웃음) - 시복식 전례 참여와 관련해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 처음에 본당에서 경쟁이 하도 심해서 저는 아예 포기했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89년도에 성체대회 때 여의도에 있었기 때문에 그 기억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방진위에서 연락이 왔어요. 해주겠냐고 해서 제가 무척 기뻐서, 경쟁에 참가하지도 않았는데, 하겠다고 했죠. 그 얘기를 무심코 저희 아이들한테 했더니 며느리가 봉투를 하나 내밀더라고요. 그래서 뭐냐, 했더니 “영광적인 자리에 가시는데 예쁜 한복 지어 입으세요.”, 그러더라고요. 아주 기쁘게 받았습니다. - 5일 동안 교황님의 방한 행보 지켜보시면서 국민들은 말씀은 물론이고 그 표정 하나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요. 인간적인 면에서 어떤 끌림이 있다고 보십니까? ▶ 제가 최근에 김영옥 선생 책을 봤어요. 거기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동양적인 사람들에게 조금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데 그것을 우리 감성구조로 바꾼다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남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생각하는 측은지심, 사회적인 불의에 수치를 느끼는 수오지심, 타인에게 내 이득을 양보하는 사양지심, 투철하게 시비를 가릴 수 있는 판단력을 시비지심”이라고 하더라고요. 뭉뚱그리면 인의예지가 되는데 교황님의 말씀과 행보에는 우리가 그냥 사랑이라는, 그야말로 김영옥 선생님 말대로 이야기하는 서양적인 개념이 동양적인 개념으로 바뀌어도 그 안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도 예로부터 우리 안에 스며들어있는 그런 평화와 정서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 교황님께서 동양의 인의예지가 다 들어있었다? ▶ 정말 참 좋았습니다. 우리의 전례도 예가 들어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회적인 분별과 판단과 행동을 요구하는 수오지심도 들어있고, 장애자나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하신 것은 측은지심을 지적하신 것 같고요. 다 들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 끝으로 방송인으로서 교황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분이라고 보세요? ▶ 너무나 많은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제 의견을 말할 주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구약성서 안에 열왕기 상권 19장 11절과 12절 말씀이 바로 그 분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도 지진 가운데에도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예언자 엘리야가 극심한 일을 겪은 다음에 주님을 만나 뵙는 표현이거든요. 교황님께서는 정말 누구를 큰 소리로 꾸짖지도 처단하지도 않으셨지만 평화 가운데 들어있는 것에 우리 모두 감동하고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까. 그 부드러운 소리, 불 가운데에도 바람 가운데에도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지만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안에 계신 그분이 바로 교황님이셨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 교황님은 ‘열왕기 상권 19장’이다, 교황님은 ‘그분’이다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 교황님은 바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분이시다, 라고 하고 싶습니다. 네, 지난 16일 광화문 시복미사 전례에 독서자로 참여한 맹경순 전 평화방송 아나운서를 만나봤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김혜영2014.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