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팔 없어도 정성껏 성경 필사 “하루라도 빠지면 찜찜합니다” 성서 주간에 만난 사람 - 7년째 붓글씨로 성경 필사하는 의수 화가 석창우씨 성경을 필사하다가 잠시 고개를 든 석창우 화백은 “어떤 특정한 말씀이 마음에 들어온다기보다는 모든 말씀이 베스트”라며 “죽을 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쓰겠다”고 다짐한다. “손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날마다 성경을 필사할 생각입니다.” 의수(義手) 로 그림 그리는 석창우(베드로, 65) 화백. 그의 본업은 그림이지만, 요즘은 성경에도 푹 빠져 있다. 2015년 1월부터 3년 6개월에 걸쳐 개신교 성경을, 2018년 7월부터 3년 1개월간 가톨릭 성경 필사를 끝냈지만, 요즘도 그는 날마다 3시간씩 성경 필사에 매달린다. 최근에도 39일에 걸쳐 요한복음을 필사했고, 이에 앞서 마르코복음과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도 붓으로 옮겨 썼다. 제37회 성서 주간(21∼27일)을 앞두고 그에게 성경 말씀에 맛 들이며 살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하루라도 성경을 필사하지 않으면, 마음이 찜찜해 잠을 못 이룹니다. 처음엔 하루 10시간씩 죽기 살기로 쓰다가 몸살이 나서, 한 달을 앓았어요. 그래서 이게 아니구나, 싶어 하루 5∼6시간으로 줄였고, 요즘은 하루에 3시간만 씁니다. 여행을 다녀오거나 행사 참석으로 귀가가 늦으면 새벽 두세 시까지 말씀을 써야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의 성경 필사는 손으로, 눈으로 두 번 필사하는 게 특징이다. 붓으로 화선지에 말씀을 옮길 땐 한 획 한 획씩 쓰는 데 집중하고, 그다음엔 필사한 내용을 다시 읽고 묵상하며 마음 밭에 새긴다. 그런 과정을 7년째 반복하니, 말씀이 저절로 마음에 들어와 생동한다. 그 말씀을 그림에 옮겨 형상화한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하면서 행사나 강의가 중단돼 필사에 더 매달리게 됐는데, 열왕기를 쓰다가 십자가를 통한 치유를 체험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말씀과 함께 하느님께로의 회복을 주제로 한 십자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성구를 쓰고 주변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합니다. 필사가 제 그림 작업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된 셈이지요. 저만의 서체 폰트를 개발한 것도 성경 필사 덕입니다. ‘석창우체’인데요. 한글과 영문, 두 폰트로 개발해 오는 12월 말 폰트 클라우드 서비스업체인 산돌구름을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성경에 맛 들이다 못해 말씀에 중독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성경 필사를 하게 된 동기를 물었더니 그는 “감전사고로 제가 두 팔과 두 발가락을 잃은 게 1984년 10월 29일인데, 2015년에 환갑을 맞으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두 손이 있던 30년과 두 손 없이 살아온 30년 중 두 팔 없이 산 30년이 훨씬 행복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그래서 남은 세월 동안 그런 행복을 제게 주신 하느님께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성경을 쓰게 됐다”고 답변한다. 성경 필사는 이제 그에게 일상이고, 생활이다. “두 번 쓰고 나니, 한때는 성경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교만이더라고요. 평생 써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다친 것도 다 하느님의 프로그램에 들어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처음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화실에 갔는데, 안 받아줘서 서실 가서 글씨를 먼저 배우고 나중에 그림을 배우게 된 것도 다 필력을 키우고 그림을 배우라는 하느님의 계획안에 있었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그렇게 서화가 여태명 교수님, 서예가이자 화가 김영자 선생님께 글씨와 그림을 배우고 이제는 필사를 통해 성경에 맞갖는 삶을 살려다 보니 제 내면도 바뀌었지만, 제 그림도 바뀌었습니다. 다 하느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쓰시고, 하느님께서 그리셨지요. 하느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1.11.16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드러나다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조토, ‘동방 박사들의 경배’, 프레스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이탈리아. 8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공현(公顯)은 ‘공적으로 드러남’을 뜻한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신 구세주께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러 온 동방 박사들을 통해 스스로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다.(마태 2,1-12) ‘동방 박사들의 경배’ 이야기는 네 복음서 중 유일하게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온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사 60,1-6), 곧 “너의 빛을 보고 …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그들은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라는 예언이 아기 예수님의 강생으로 실현됐다고 선포한다. 별의 인도로 동방 박사 세 사람 방문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이 사건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동방 박사들은 이민족을 대표한다. 이민족들이 유다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으로 왔다는 것은 단지 유다인뿐 아니라 모든 백성의 왕이 되실 분을 찾아 이스라엘로 왔음을 보여준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께 왔다. 이 별은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별, 곧 다윗의 별이다(민수 24,17 참조). 이 다윗의 별이 가리키는 메시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했다는 것은 “구약에 담겨 있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일 때만 예수님을 찾을 수 있고, 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자 온 세상의 구원자로 경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28항) 한국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에 ‘동방 박사’라고 번역된 헬라어 ‘μαγοι’(마고이)는 본래 ‘점성가’ ‘현자’라는 뜻이다. 또 사도행전 13,6.8에서는 ‘마술사’ ‘협잡꾼’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교회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물을 바친 동방 박사들을 전통적으로 세 명으로 묘사한다. 초대 교회 오리게네스(185?~254?) 교부가 “예물이 셋이니 동방 박사도 3명”이라고 주장한 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3’은 성경의 의미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수로 시작과 마침을 가리키는 완전 수이다.교회 전승에 따라 동방 박사의 신분이 ‘왕’들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테르툴리아노(160~223) 교부에서 비롯됐다. 그는 “만왕이 다 그 앞에 엎드리고 만백성이 그를 섬기게 되리라”(시편 72,11)는 시편 말씀과 연관 지어 동방 박사를 왕들이라고 주장했다. 아기 예수께 바친 황금과 유향과 몰약동방 박사들은 교회 전통에 따라 인생의 세 단계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제일 먼저 유럽을 상징하는 나이 든 가스발이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은 채 아기 예수에게 황금을 바치고 있다. 그 뒤에는 장년인 아시아의 왕 멜키오르와 아프리카의 청년 발타사르가 유향과 몰약을 들고 경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흑인 청년과 황인 장년, 백인 노인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있는 것은 왕 중 왕이신 예수에게 이 세상 모든 대륙의 전 인류가 영원무궁토록 경배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바친 황금과 유향, 몰약은 ‘왕권’과 ‘그리스도의 신성’, ‘인류를 위해 죽으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각각 상징하는 예물이다. 현대 신학의 거장인 칼 라너 신부는 동방 박사의 예물이 구세주 아기 예수의 신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 드리는 합당한 우리의 희생, 인간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을,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을, 몰약은 ‘우리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와 예물 봉헌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구세주 출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다. 주님 공현은 유다인뿐 아니라 이민족에게까지도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 보여준다. 주님 공현 대축일 말씀 전례 독서에서 알 수 있듯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지만, 구세주의 강생으로 유다인들에게 약속된 복음 선포가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인간 가운데 드러난 주님의 신성에 초점초대 교회에서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로마 제국의 태양신 축제일에 지냈다. 그런데 이 축제일이 서방에서는 12월 25일이었고, 동방에서는 1월 6일이었다. 이에 서방 교회에서는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 예수 성탄 대축일과 함께 주님 공현 대축일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혼란을 막기 위해 주님 성탄 대축일을 12월 25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1월 6일로 나눠 지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특별한 전례 예식이 없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 성탄 시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님 성탄 전례는 참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참인간으로 강생하셨음을, 주님 공현은 구세주께서 온 민족에게 당신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셨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주님 성탄 대축일은 하느님께서 취하신 인성(人性)에, 주님 공현 대축일은 인간 가운데 드러난 주님의 신성(神性)에 초점을 맞췄다. 이처럼 두 대축일은 서로 보완하면서 서로에게 빛을 밝혀준다.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 끝나주님 공현 대축일은 원래 1월 6일이다. 선교지인 한국 교회는 사목 편의에 따라 1월 2~8일 사이의 주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낸다. 그리고 성탄 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로 끝난다. 다만 한국 교회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 1월 7일이거나 8일인 때에는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에 주님 세례 축일로 기념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런 경우다. 주님 세례 축일 다음 날부터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3.01.04
![[서종빈 평화칼럼] 형제님! 자매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6/14/j6q1686702274700.jpg)
[서종빈 평화칼럼] 형제님! 자매님!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보도국장) 지난달 홍보 주일을 맞아 강릉 초당성당에 선교홍보활동을 다녀왔다. 미사 전에 성당의 훼손이 우려될 정도로 많은 아이가 공놀이하며 왁자지껄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데 중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한 학생이 어른에게 다가가 “형제님! 공 좀 주세요”라고 말한다. 아무리 봐도 그분을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건 좀 어색해 보였다. 그런데 신자들은 누구든 서로를 부를 때 ‘형제님! 자매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구역장님, 회장님, 반장님, 언니, 형님 등의 호칭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호칭을 전직이든 현직이든 직책과 직업 등으로 하면 세대 간 경계가 생기고 벽이 세워집니다. 소통의 장벽이 되는 거죠. 모두 형제님, 자매님으로 불러야 합니다.” 호칭 통일을 제안한 주임 신부의 설명이다. 과연 호칭 하나 바꾼다고 공동체가 바뀌고 신앙이 쇄신될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신자들의 미사와 선교 활동을 보면서 이게 바로 시노달리타스를 구현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이 성당에 잘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래가 없어서일까? 호칭 문제가 걸림돌이 돼서일까? 지난해 본당에 부임한 보좌 신부에게 질문했다. “성당에 오는 청소년들은 어른들처럼 직함으로 호칭하며 서로를 부르는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어서 호칭에 익숙하지도 않고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2년째 경청과 식별의 시노달리타스 과정을 보내고 있다. 하느님 백성 모두가 주인공으로 참여해 상호 경청과 친교를 통해 주님의 길을 함께 가자는 것이다. 각자가 아닌 ‘우리’가 돼 ‘하나’가 되자는 의미이다. 그런데 지금 교회 구성원은 서로를 배려하며 진심 어린 소통을 하고 있을까? 직책과 직함이 없는 형제자매의 이야기는 경청에서 배제되고, 회장과 구역장의 한 말씀만 반영되는 것은 아닐까? 계급적인 호칭을 사용하면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유교적, 봉건적 전통이 강해 서구의 보편 교회와는 달리 ‘호칭’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반경을 좁히는 측면이 있다. 하나의 신앙 안에서 ‘호칭’에 계급적 요소를 없애는 것은 초기 한국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의미도 있다. 조선 말,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순교하면서도 천주교를 지킨 것은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가르침 때문이었다. 천주교의 평등관과 내세관은 당시, 양반과 평민, 천민으로 나뉜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멸시를 받던 하층민에겐 천지개벽할 유일한 희망이었다. 성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다룬 영화 ‘탄생’에서 마부인 성 조신철 가롤로는 이렇게 말한다. “저기 정하상 형제가 어떤 사람이냐? 조선 최고의 유학자 가문 출신, 양반 중의 양반 아니냐? 난 천민 출신 마부. 내가 감히 얼굴도 쳐다볼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말도 트고 밥도 같이 먹고…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지다. 천주님이 우리 인간을 똑같이 귀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또 천민(백정)으로 복자품에 오른 황일광 시몬은 평소 교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성경에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갈라 3,28).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열린 형제애’를 통한 ‘듣는 교회’를 강조한다. 듣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평등할 때 들을 수 있다. 계층이 생기면 잘 듣지도 진솔한 이야기도 나누기 어렵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나눔과 비움, 섬김을 통해 흔들리는 영혼을 바로 세우는 게 신앙 공동체라면 이를 제약하는 본당 내 권위적이고 계층적인 호칭 사용을 자제하는 것은 어떨까. 서종빈2023.06.14

아들 잃은 어미 박완서, 주님을 원망했지만 주님께 위로받아[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23)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상) 박완서는 벽촌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다. 6.25 전쟁 후 가장 역할을 도맡아 하며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겼다. 하지만 화가 박수근을 만나며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박완서 가족의 식사 모습. 사진 오른쪽이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 원태씨다. 아들 잃은 어미의 통곡 소설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 朴婉緖, 1931-2011)는 남편을 병으로 잃고 몇 개월 후에 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다. 박완서는 울부짖으며 통곡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참혹한 슬픔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이다. 참척을 당한 박완서는 하느님을 원망했다.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이렇게 아들을 목놓아 부르며 하느님도 너무하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아이를 데려간 것은 ‘하느님의 실수’라고 했다. 그렇게 실수한다면 하느님도 아니라고 하느님을 마구 원망했다. 그 죽은 아들은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되었고, 튼튼한 몸과 잘생긴 얼굴을 가진 앞날이 무척이나 촉망되는 젊은 의사였다. 이토록 소중한 아들을 잃은 박완서는 ‘하느님의 장난’을 피눈물을 흘리며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대들었다. ‘당신의 장난이 인간에겐 얼마나 무서운 운명의 손길이 된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라고 따지며 ‘당신의 거룩한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렇게 막 가지고 장난을 쳐도 되는 겁니까?’라며 마구 대들었다. 그 아들은 최고 명문대 의과대학에서 인턴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를 선택할 때 남들이 가기를 주저하는 마취과를 선택했다. 박완서는 이를 못마땅해 왜 하필 마취과냐고 물었다. 아들은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실에서 의식이 없는 환자들과 마주하는데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할 일이 없어지는 의사이며, 환자도 환자 가족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의사이므로 그 쓸쓸함에 마음이 끌려 마취과를 선택했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어질고 똑똑한 아들을 잃은 박완서는 예수님이 매달려 있는 십자고상(十字苦像)을 원망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예수님은 실컷 욕하고 원망하라는 표정 같았다. 그런데 예수님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척 슬퍼 보이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 후 박완서는 이해인 수녀가 있는 부산의 수녀원으로 내려갔다.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서 생활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곳에서 참척의 깊은 슬픔을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이젠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박완서는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완서가 자식을 잃고 쓴 글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자식을 잃은 어미의 통곡을 기록한 것이다. 박완서의 말대로 ‘통곡을 고스란히 참기가 너무 힘들어 통곡 대신 미친 듯이 끄적거린 게’ 이 글이다. 어머니의 교육열 박완서가 태어난 곳은 개성에서 조금 떨어진 개풍군 벽촌이었다. 채 스무 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조상들이 200년에 걸쳐 대대로 살아온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의 자식 교육은 보수적이었다. 아들은 서당에 보내 한문을 배우게 하고 딸은 집에서 한글을 가르쳤다. 박완서는 그런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소학교(현재의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이것은 어머니의 끈질긴 고집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병으로 잃었다. 도시의 신식 병원에만 갔어도 고칠 수 있는 병이었는데 시골의 무지로 남편이 죽었다. 그래서 그 무지한 시골이 싫어 무작정 서울로 떠났다. 친척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울 변두리에서 어려운 생활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바느질로 자식들을 키웠다. 그 후, 어머니의 뜻대로 박완서는 좋은 학교에 진학했고, 오빠는 좋은 곳에 취직됐다. 집도 버젓한 곳으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못된 며느리 대신에 ‘잘난 며느리’로 불렸다. 박완서는 숙명여고를 나와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해 6·25 전쟁이 나고 집안이 몰락해 어린 조카들과 노모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학교를 중퇴하고 돈 벌 자리를 찾아야 했다. 서울대 학생이었기에 남들보다 쉽게 미군 부대에 취업할 수 있었다. 미8군 PX(전문매점) 초상화부에서 일했다. PX는 지금의 서울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었다. 그곳에는 가난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쟁 전에 극장 간판을 그리던 사람들이었다. 화가 박수근과 인연 그곳에서 박수근이 일하고 있었다. 박완서는 그들을 얕잡아 보고 함부로 대했다. 박완서가 하는 일은 초상화 주문을 맡아오는 일이었다.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찾아오는 미군은 없었다. 그 일이 너무 힘들어 매일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박수근이 화집을 끼고 출근했다. 박완서는 속으로 비웃었다. 박수근은 화집을 펴들고 박완서에게 왔다. 그러고는 어떤 그림을 가리키면서 자신이 그린 것이라고 했다. 촌부(村婦)가 절구질하는 모습인데 ‘조선미술전람회(鮮展)’에서 입선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박완서는 놀랐고, 부끄러웠고, 기뻤다. 놀란 것은 초상화 그리는 사람 중에 진짜 화가가 있다는 것이고, 부끄러운 것은 그것도 모르고 함부로 대한 것이며, 기쁜 것은 착하고 맑은 화가 한 사람을 알게 된 것이었다. 박완서는 이 일을 계기로 불행한 생각만 하며 살아오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후, 박완서는 결혼해 PX 생활을 청산했다. 그러나 박수근은 PX에서 계속 초상화를 그렸다. 박수근은 점차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백내장으로 고생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박수근의 유작전(遺作展) 소식을 신문에서 보았다. 박완서는 마음을 먹고 그 전시회에 갔다. 많은 작품 중에 유독 ‘나무와 여인’이라는 작품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때의 감동을 소설로 쓴 것이 바로 「나목(裸木)」이다. 박완서는 「나목」으로 마흔, 불혹의 나이에 한국 문학계에 축복과 같이 등단했다. 그러곤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박완서의 대표 작품으로는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 말씀만 하소서」를 들 수 있다. 성라자로 마을에서 박완서와 이해인 수녀. 가톨릭 장례에 감동 받다 박완서가 종교를 갖겠다고 생각한 것은 시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였다. 시어머니를 26년 넘게 모시고 살았다. 박완서가 낳은 자식은 딸 넷과 아들 하나였다. 시어머니는 그 아이들을 모두 업어 길렀다. 시어머니는 새로운 생명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고 손주들을 기르는 데도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런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종교가 없던 시어머니였기에 장례는 장의사에게 맡겼다. 박완서는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장의사의 장례 예절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가슴이 무척이나 아팠다. 자신은 죽어서 그런 장례 의식을 치르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박완서가 본 장례 예식 중에 가장 감동적인 예식은 가톨릭 장례였다. 자신도 죽으면 저렇게 대접받고 싶었다. 가톨릭 장례 미사는 죽은 사람이 귀하건 천하건, 부자건 가난하건 구별하지 않고 극진하게 대접했다. 또한 고인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절망감보다는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감을 안겨주었다. 박완서는 가톨릭 장례 미사를 보면서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슬픔이 있는 기쁨’을 선물해 주는 예식이라 생각했다. 이렇듯 박완서가 가톨릭 신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가톨릭 장례 미사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성경 말씀도 너무 좋았다. 성경 말씀은 박완서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준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푸근하게 와 닿았다. 예수님이 비유하여 말씀하시는 것도 할아버지 말씀과 비슷했다. 할아버지는 무조건 혼내고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를 통해 잘못한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특히 루카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착각할 정도였다. <계속> cpbc2023.06.02
![[신앙단상] 나의 구원이자 가장 큰 원망이었던 예수님(박은선 베네딕타, 크리에이터)](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5/22/AK91684738201227.jpg)
[신앙단상] 나의 구원이자 가장 큰 원망이었던 예수님(박은선 베네딕타, 크리에이터) 다시금 하느님을 따르리라 결심한 후에도 마음은 수백, 수천 번 구세주를 갈망하고 또 원망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특히나 일평생 주님을 섬기는 일을 열심히 하였던 아버지가 불치병으로 알려진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판정을 받던 날은 마음에 피가 맺힌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생생하게 알게 된 날이었습니다. “이것도 다 주님의 뜻이겠지.”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저에게는 그저 그 모든 말이 잔인한 사형선고로 들렸습니다. 왜 하필 이런 비극이 우리에게 찾아온 것일까? 그저 남들처럼, 남들만큼,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 가족들에게 왜 하필 신은 이토록 감내하기 버거운 짐을 지워주신 걸까? 도무지 나약한 인간의 뜻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불행 앞에서 믿음은 또 한 번 냉소적으로 변모했고, 기어코 그 끝에 간절한 기도마저 내려놓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습니다. 아무리 성모님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치고, 목숨의 절반이라도 내놓겠다는 심정으로 성체 앞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울부짖어도 현실은 도통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한 순간 신실함은 벼랑 끝으로 곤두박질치고 그 자리에 미움이 피어올랐습니다. 그 날카로운 마음을 능숙하게 숨기기에는 당시 20대였던 저는 너무나도 젊고 미숙했기에, 신을 향한 이 날것의 원망을 존경하는 신부님에게 그대로 고백했습니다. 얄팍한 믿음에 대한 꾸지람이 날아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신부님은 생각지도 못한 묵직한 한마디를 던지셨습니다. “가장 신이 저주스러운 순간이 우리가 가장 예수님의 십자가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랍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 예수님께서는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이는 성경 속 마르코 복음서에도 나와 있듯이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고 번역됩니다. 어렴풋이 본다면 인간의 육신으로 가장 고통받는 시점에서 우리의 구세주조차 신을 원망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극한의 괴로움 속에서도 끝까지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애쓰셨다는 이야기로도 풀이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생의 끝자락 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하느님을 놓지 않으셨고 그렇기에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겠죠. 돌이켜보면 신부님의 그 한마디는, 환난 가운데에서도 오롯이 버텨낼 수 있도록 하느님이 쥐여주신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저만의 십자가가 아니었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위로로도 달래지지 않던 마음이, 믿음을 나누는 이의 언어로 이토록 격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분명 기적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현실은 계속되는 투병과 고난, 매일의 피로함으로 꽉 차 있습니다. 원망 역시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이 벼랑 끝에 설 때 스스로 되뇝니다. ‘이 고난 안에서 내가 절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뭘까? 반대로, 감사하고 기도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뭘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고통에 감히 비할 수는 없겠으나 생의 고통에는 분명히 하느님이 준비해두신 깨달음과 더 큰 지혜가 있으리라고, 이제는 믿으니까요. 박은선 베네딕타 / 크리에이터 cpbc2023.05.10

전쟁도 막지 못한 주님 부활의 기쁨ACN 우크라이나 책임자가 전하는 현지 부활 시기 모습 전쟁 중에도 부활절은 찾아왔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전쟁 중 맞이한 두 번째 부활 시기다. 그러나 전황은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4월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 전선에서 치열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하루에만 수백만 발의 폭탄이 빗발치고, 그 속에서 매일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미처 떠나지 못한 민간인들 역시 하루하루 지옥 같은 곳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도 부활의 기쁨을 막을 순 없다. 우크라이나 교회 공동체는 혼란 속에서도 평소처럼 부활 시기를 보내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교황청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동유럽 담당 겸 우크라이나 사목 원조 책임자인 마그다 카츠마렉 실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인터뷰와 내용 번역은 ACN 한국지부의 도움을 받았다. 큰 십자가의 길 속 우크라이나의 사순 마그다 카츠마렉 실장은 “근현대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두 번째로 큰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20세기 들어 동서로 분할됐다가 소련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기근을 겪었던 첫 번째 고통에 이어 약 한 세기 만에 다시 불어닥친 우크라이나의 사순을 일컫는 것이다. 그가 본 전쟁은 더욱 끔찍해지는 상황이다. ‘21세기 스탈린그라드’로 불리는 돈바스 지역 바흐무트에서는 지금도 수만 명의 군인이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사순 시기와 성주간 때에도 사상자는 속출했다. 생명은 없고, 파괴와 죽음뿐인 상황이다. 카츠마렉 실장을 비롯한 ACN 담당자들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차량으로만 이동하며 지원이 필요한 곳 등을 시찰했다. 지난해 4월과 11월, 그리고 올해 3월까지 세 차례 국경을 넘나들며 활발한 원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폴란드인인 카츠마렉 실장은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18~60세 모든 우크라이나 남성 가운데 자녀가 3명 이상 있거나 중증 질환을 앓지 않은 경우라면 출국이 금지된 상황”이라며 “외국인 사제들은 동원령에서 제외되지만, 이들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에 계속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인 사제뿐만 아니라, 외국인 사제들 상당수가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전쟁터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인구의 30% 이상이 난민 전락 “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가족과 아이들의 삶을 이리도 처참하게 파괴하는 걸까요?” 카츠마렉 실장은 “우크라이나 서부에 수천 명의 난민이 있었고, 그들 중 80%가 여성과 아이, 노약자와 병자들이었다”며 “이들은 전쟁이 끝나길 바라면서 신학교와 수도원 성당에 머물며 생존을 위해 애쓰는 극한의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1500만 명이 동부 지역을 떠났고, 그중 7만 명은 폴란드 혹은 서유럽에, 그리고 700만 명은 서부와 중부에 머물고 있다”며 “이다음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전체 인구의 30%가 넘는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타지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카츠마렉 실장은 “전쟁과 함께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사람들은 그저 평화만을 바랄 뿐”이라고 우려했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우크라이나 교회 공동체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성탄과 부활의 기쁨을 나눴다. 군인들에게 위문품을 전하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카푸친회 수도자들은 우크라이나 국토를 순례하며 다시 찾아올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이에 ACN은 사목자들이 무사히 사목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고 있다. ACN이 동부 지역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현지에 남아 있는 다수의 주교들과 사제, 수도자들이 다리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카츠마렉 실장은 “그분들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현지의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전해주고 있다”며 “사제들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완전하길 기도한다. 우리 생명이 오직 하느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부활의 희망을 꿈꾸며 카츠마렉 실장은 “우크라이나 교회 구성원들과 신자들은 가족들, 더 나아가 공동체 전체가 더는 갈라지지 않고 함께 살기만을 바라며 매일 평화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부활의 희망을 절대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다시금 진정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결국 부활을 통한 승리를 거둘 것이란 희망을 느끼고 있으며, 그 어떤 것도 부활의 큰 기쁨을 방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누가 가톨릭 신자인지 정교회 신자인지, 혹은 특정 종교의 신자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면서 “승리를 위해, 나아가 파괴된 도시와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자녀에게 자유로운 나라의 미래를 물려 주기 위해 하나가 된 우크라이나 사회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선 ACN 교황청 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는 전쟁 초기부터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 왔다. ACN은 지난 1년 동안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290여 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교회 공동체와 1만 5000여 명에 달하는 이들을 도왔다. ACN을 통해 기부된 액수는 950만 유로(한화 약 136억 6290만 원)에 달한다. ACN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우크라이나 교회 공동체 원조다. 지난 1년간 7400여 명의 사제, 수도자 등에게 구호 자금을 전달해 전쟁 속에서도 공동체가 주님 안에 살도록 도왔다. 또 분쟁 지역에서도 미사가 봉헌될 수 있도록 사제들에게 미사 예물과 전례 용품을 전하고 있다. 교회 기관들은 피난민과 어린이, 청소년들을 돌보는 든든한 방주 역할을 한다. ACN은 각 교회 기관을 통해 지금까지 피난민 2200여 명을 직접 지원하고, 1700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사목적 돌봄을 제공하도록 도왔다. 또 신학생 700여 명과 2640명의 본당 평신도, 640명의 수도자와 사제, 교리교사 등도 ACN의 지원을 받아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ACN 한국지부 역시 지난해 ‘ACN 어린이 성경’ 4만 부와 ‘마르코 복음’ 3만 부를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영적ㆍ정신적 치유를 돕기 위해서다. 성경과 복음서 출판 비용은 cpbc ‘TV 매일미사’ ARS 성금과 가톨릭평화신문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등을 통해 마련했다. 마그다 카츠마렉 실장은 ACN 한국지부와 후원자의 정성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선한 마음에 의지하는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거듭 기도와 관심을 요청했다. 후원문의 : 02-796-6440, ACN 한국지부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장현민2023.04.14

회개하고 자선 베풀며 주님 부활 준비하는 은총의 시간사순 시기 의미와 전례사순 시기이다. 지난해 세계 교회는 코로나19로 사순 시기 동안 ‘성찬례 단식’을 해야만 했다. 코로나19 상황이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올해는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중단해야 하는 극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겠으나 여전히 간소화된 예식으로 전례가 거행될 전망이다. 지난해 교회 스스로 보속의 행위로 결정한 성찬례 단식은 신자들에게는 성사 생활의 중요성과 치유자이신 하느님께로 향한 인류의 회심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올해 사순 시기는 세상의 ‘모든 형제들’과 연대해 이 깨달음을 실현하는 때가 되길 희망한다. 사순 시기를 맞아 사순 시기 의미와 전례를 정리했다. 사순 시기 사순 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희생을 기념하는 시기이다. 또 파스카 신비(주님 부활)를 준비하는 때이다. 주님의 수난은 단순히 주님께서 당하신 고통 자체로서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사순(四旬)은 ‘40일’을 뜻하는 라틴말 ‘Quadragesima’(콰드라제시마)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성경에서 ‘40’은 하느님을 만나기 전 거치는 정화와 준비의 기간이다. 교회도 이 성경의 전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40일간 기도와 절제, 희생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성토요일’까지를 사순 시기로 지내고 있다. 이 기간에서 6번의 주일을 지내는데 주일을 뺀 날 수가 정확히 40일이다. 주일을 사순 시기에 포함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는 ‘파스카 성삼일’이 사순 시기와 구분된다는 점이다. 파스카 성삼일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부터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토요일, 파스카 성야와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말한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5년 전례 개혁을 통해 파스카 성삼일의 본뜻을 되살려 사순 시기를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전까지’로 정했다. 이에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과 1969년 전례력 개정을 통해 사순 시기와 파스카 성삼일을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사순 시기가 파스카 성삼일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사순 시기는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을 위한 준비 기간이자 연결점이며, 파스카 성삼일은 사순 시기의 마지막 절정과 주님 부활 대축일이 연결된 지점이기 때문이다. 사순 시기 주요 전례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주님의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다. 그래서 교회는 사순 시기 동안 대축일을 제외한 모든 미사 중에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환호인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하지 않는다. 제의 색도 통회와 보속을 상징하는 ‘자색’(보라)으로 바뀐다. 제단 꽃장식도 하지 않는다. △재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로 이날 미사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해 이마에 바르거나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행하는 데서 이름이 생겨났다. 성경에서 ‘재와 먼지’는 속죄와 참회의 표지이다. 또 죽음과 재앙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회와 슬픔을 드러낼 때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자루 옷을 찢었다. 이 참회 예식(2사무 13,19; 에스 4,1)을 교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재의 수요일에 사용하는 재는 일반적으로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나눠 받았던 성지(聖枝)를 거두어 태워 남은 재이다. 사제는 이 재를 축복한 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창세 3,19)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마르 1,15)라고 말하고 회중의 머리에 재를 얹거나 이마에 재를 바른다. 재를 얹거나 바르는 예식은 인간은 결코 죽을 수밖에 없는 허무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현세의 삶에서 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지만,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준비를 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게 재의 예식의 본뜻이다. 따라서 재의 예식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회개하고 하느님께 향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라고 권고하고 있다. 올해 재의 수요일에 거행되는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은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 탓에 간소화된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당일 주례 사제가 신자들의 머리나 이마에 재를 얹을 때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고 하는 권고를 회중을 대상으로 한 번만 하고, 접촉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머리에 재를 얹을 것을 권장했다. △사순 시기 주일 전례 사순 시기 주일은 축일과 대축일에 우선 한다. 사순 주일과 겹치는 대축일은 토요일에 미리 거행된다. 특히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파스카 성야 미사까지의 성주간은 전례주년의 1순위라 할 만큼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사순 시기 주일 전례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하느님 자녀로 태어난 ‘세례에 대한 회상과 준비’ 그리고 ‘참회와 보속’이다. 사순 제1·2·6주일 미사 독서 주제는 해마다 모두 같다. 사순 시기 각 해의 고유한 주제를 보려면 사순 제3·4·5주일의 독서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된다. 사순 시기 제1·2주일에는 주님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와 주님의 거룩한 변모에 대한 복음이 봉독된다. 사순 제3·4·5주일은 가해의 복음으로 사마리아 여인,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 라자로의 부활 사건을, 나해에는 요한복음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장차 영광스럽게 되시리라는 말씀을, 다해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루카 복음을 봉독한다. 사순 시기 생활 교회는 전통적으로 주님 부활 대축일을 잘 준비하기 위해 사순 시기 동안 회개와 보속, 기도의 삶을 살도록 권고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단식과 금육, 기도와 희생을 실천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가르친다. 진정한 회개와 보속의 삶은 개인적이고 내적인 절제와 희생뿐 아니라 외적인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절제와 절약을 통해 모은 결실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자선이 뒤따라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순 시기 동안 “서로 용서하고 기도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쉴 곳을 찾아 주는 등 자비를 실천하자”고 강조하면서 “회개하기 매우 좋은 이 사순 시기를 헛되이 보내지 말자”고 당부한 바 있다. 사순 시기에는 판공 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 단식과 기도, 자선 단식, 곧 금식과 금육재는 단순히 먹고 마실 것을 절제하라는 고행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의 곤경에 관심을 두도록 촉구한다. 따라서 금식과 금육은 세속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그리스도께 나아감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꺼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가톨릭 신자는 의무적으로 재의 수요일과 주님께서 수난 하시고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 금육재와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모든 신자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며, 성인이 된 모든 신자는 60세까지 한 끼를 단식하는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교회법 제1252조) 한국 교회에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까지 금식재를, 만 14세부터 금육재를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다.(「사목지침서」 136조) 이외에도 사목자와 부모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킬 의무가 없는 미성년자들도 참회 고행의 의미를 깨닫도록 보살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교회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 삶의 첫 자리에 ‘기도와 자선’을 두었다. 따라서 기도와 자선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단식이 영성 생활을 위해 악습을 없애는 약이라면 기도는 회개의 표시이고, 자선은 하느님 은총의 증거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기자 2023.02.12

냉담교우 회두 비결이요, 관심과 진심서울대교구 도림동본당 10% 회두 목표 초과 달성…레지오 단원 주축 활동, 본당 공동체도 활기 얻어 서울대교구 도림동본당 김영화 선교분과장이 성당 대성전 앞에 붙은 ‘냉담교우 회두 운동’ 성과 그래프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도림동본당(주임 최희수 신부)이 지난 사순 시기부터 시작한 ‘냉담교우 회두 운동’ 목표(회두율 10%)를 초과 달성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 시점에서 본당의 이 같은 노력이 미사 참여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하나 된 공동체 분위기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성령 강림 대축일(28일)까지 본당 냉담교우 약 1000명 가운데 100명을 다시 초대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8일 기준 150명을 돌파했다. 본당은 최종적으로 냉담교우 가운데 200명 정도가 돌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성령 강림 대축일에 다시 돌아온 신자들을 환영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잔치도 열어 온 공동체가 기쁜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회두 운동을 위해 본당 선교분과에 소속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2인 1조로 팀을 꾸려 매주 19개 구역에 있는 냉담교우 가정을 방문하고 있다. 냉담교우 중에 주소나 전화번호가 잘못된 경우도 많은데, 여성총구역 도움을 받아 실태를 파악한 덕에 허탕 치는 경우는 적었다. 각 가정을 방문한 레지오 단원들은 주보·성경 말씀과 함께 최희수 주임 신부가 쓴 편지를 전달하며 “교회로 돌아오라”고 설득하고 있다. 가정 방문이 불발될 경우에는 휴대전화로 전화하거나 문자를 남겼다. 또 집에서의 만남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냉담교우와는 성당이나 다른 곳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공동체가 하나로 뭉쳐 ‘진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회두 운동의 비결이 되고 있다. 모든 냉담교우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 김영화(소피아) 선교분과장은 “집 문을 열어주는 냉담교우 가정은 20세대 중 1세대 정도”라며 “어떤 이유든 신앙생활 중 상처를 받았던 교우들은 냉대는 물론, ‘한 번 만 더 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길 권유하며 문을 두드리고 있다. 김 분과장은 “저희도 회두 운동에 임하면서 힘들 때도 있지만, 매주 돌아온 냉담교우들이 ‘먼저 연락해준 덕에 용기를 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때마다 힘이 생긴다”고 했다. 또 “이번 계기로 오랫동안 성당에 나오지 않은 지인과 딸 부부까지 꾸준히 미사에 나오게 돼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본당은 이번 회두의 노력 덕에 적게는 3년, 길게는 20년 이상 냉담한 신자들이 돌아오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이에 대해 최희수 주임 신부는 교우들에게 “냉담교우를 돌아오게 하는 것이 곧 오늘날 순교이자, 신앙적으로도 가장 축복받는 시간이 된다”고 독려하고 있다. 그러면서 “회두한 신자들이 다시 냉담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며 “레지오 마리애 단원을 비롯한 신자들이 관심을 두고 꾸준히 돌보면서 본당 단체에 가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최 신부는 올해 본당 사목 목표를 ‘소공동체의 친교와 냉담자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공동체’로 삼고, 미사 강론과 레지오 훈화 때마다 냉담교우 회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미사 끝에 냉담자를 위한 기도를 바칠 계획이다. 아울러 격주로 성당 대성전 앞에 회두 운동 성과를 그린 그래프를 선보이며 신자들의 참여를 더욱 당부하고 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이학주2023.05.09

cpbc ‘세계 평화를 위한 고리기도 운동’ 참여 신심단체 / (1)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 지난 10월 전교가르멜수도회에서 피정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는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 그룹장과 회원들.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 제공 ‘세계 평화를 위한 고리기도 운동’의 첫 번째 고리는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Mothers Prayers Korea)가 맡았다. 27일 밤 9시 ‘어머니들의 기도’로 막을 올려 일주일간 날마다 밤 9시면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가르쳐주신 참 평화를 세상에서 이루기 위한 평화 고리 기도를 이어간다. 평화 고리 기도에 함께할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는 현재 서울대교구와 인천ㆍ수원교구 등에 25개 그룹 120여 명에 이른다. 또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에서 가지가 뻗어 나간 일본 츠야마(津山)성당 그룹과 미국 애틀랜타ㆍLA 얼바인(Irvine)의 두 재미교포 그룹, 피지의 교포 그룹 회원들, 아울러 매일 기도로 어머니들의 기도를 지원하는 30여 명의 수도자와 어머니들로 이뤄진 ‘기도협력회’도 평화 고리기도운동에 동참한다. 이를 위해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 는 기존에 바쳐온 어머니들의 기도와 주모경에 새로 만든 기도문으로 기도를 바치기로 했다. 2013년 1월 국내에 어머니들의 기도를 들여온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 최자현(마리아) 전 회장이 쓴 기도문 초고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을 현 회장인 김미희(마리스텔라)씨 등이 함께 다듬고, 어머니들의 기도 담당 사제인 유승록 신부에게 기도문을 보내 인준 받았다. 어머니들의 기도 모임 영성을 반영해 기도문 초안을 쓴 최씨는 “저희 기도 모임의 영성인 ‘주님께 내맡김’의 영성 속에서 주님의 평화와 사랑을 나누는 역할을 맡겨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면서 “실은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처럼 아름답고 완벽한 기도는 없기에 그냥 이 기도를 바쳤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는데, 단체 성격이나 영성을 반영하는 기도를 바쳤으면 좋겠다는 회원들의 의견을 따라 기도문을 쓰게 됐고, 이 기도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도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95년 영국에서 베로니카 윌리엄즈와 그의 올케 산드라에 의해 시작된 어머니들의 기도는 탁자 위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십자가와 세상의 빛 예수님을 상징하는 촛불, 살아계신 예수님 말씀인 성경, 자녀 이름을 넣는 작은 바구니를 올려놓고 △모임을 인도해주실 성령님을 초대하는 기도 △주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 △용서의 기도 △그룹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한 기도 △찬미의 노래 △세계 어머니들이 기도 모임과 하나 되는 기도 △성경 읽기 △모성에 대한 감사 기도 △작은 바구니 안에 이름을 내려놓을 때의 기도 등 9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다른 나라에선 가정에서 기도 모임이 이뤄지지만, 우리나라에선 사적 기도 모임에 대한 우려 때문에 2015년 서울대교구에서 단체 인준절차도 거쳤고 모임도 성당에서 이뤄지고 있다. 김미희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 회장은 “기도는 주님 손에 맡기는 거니까, 기도의 응답이 늦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고 주님께 맡기며 기도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은총”이라며 “평화 고리 기도운동에 함께하게 돼 기쁘고, 자녀들은 물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11.23

챗지피티, 신앙에 대한 질문도 제대로 답할까ChatGPT·신학자 답변 비교본질을 꿰뚫은 자는 누구? 제공=프리픽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감탄에는 불안감이 섞여 있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조차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가 척척 내놓는 답변에 혀를 내두른다. 생성형 AI 기술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창작과 사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AI 기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달할지, 또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만큼 대체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당분간 신학자들의 실력은 따라잡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가톨릭 뉴스ㆍ분석 전문 미디어인 ‘THE PILLAR’가 AI와 신학자(교회법학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받아낸 답변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그렇다. 이 흥미로운 실험에 응한 AI는 매튜 샌더스 오브 롱비어드사가 개발한 ‘교도권 AI(Magisterium AI)’이다. 개발자들은 AI에 성경ㆍ가톨릭교회 교리서ㆍ로마 미사 경본 지침서ㆍ교회법전ㆍ교황 헌장과 회칙 등 456개 교회 문서 데이터베이스를 학습시켰다. 그리고 “미사 강론도 준비할 수 있는 AI”라는 출사표를 던졌다. 인간 대표로는 신학박사 안젤라 프랭크(보스턴 세인트존스 신학교) 교수와 티모시 올슨(파고교구 교회법원) 재판관이 나섰다. THE PILLAR는 ‘세례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술에 취하는 것은 대죄인가?’ 등 10개 질문을 똑같이 했다. AI 답변은 전반적으로 정확했다. 하지만 질문의 함정을 피해가지 못하고 본질을 놓친 답변이 몇 군데서 발견됐다. 아래는 질문과 답변 축약. 신학적으로 세례란? AI: 죄의 용서와 영혼의 정화를 의미한다. 인간은 세례를 통해 교회 일원이 되고, 약속된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 또 세례성사는 신앙과 세례가 밀접하게 연결된 탁월한 성사다. 프랭크: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다른 성사들로 들어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13항 참조) THE PILLAR 판정: AI 답변은 훌륭하다. 하지만 세례성사는 ‘신앙과 세례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프랭크 박사는 지나치게 교리서에 의존했다. 술에 취하는 것은 항상 대죄인가? AI: 술에 취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로 간주되지만 항상 자동으로 치명적 죄로 분류되지 않는다. 대죄 여부는 중대한 사안의 존재, 완전한 지식, 고의적 동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며, 이는 사례별로 평가해야 한다. 프랭크: 술에 취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다만 고의적으로 술에 취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 이성적 능력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무책임하거나 죄악이 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가 항상 대죄가 될 만큼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다. 판정: 답변은 엇비슷하다. AI는 프랭크 박사보다 술에 취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음주에 관해서는 AI가 인간보다 보수적이다. 개도 천국에 갈 수 있나? AI: 교회는 이에 대해 명확한 가르침을 갖고 있지 않다. 교회는 인간 영혼의 구원과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 물론,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천국에는 무엇이든 있을 수 있다. 심지어 하늘나라 잔칫상에는 기름진 음식과 잘 익은 술도 올라와 있다.(이사 25,6 참조) 그러나 개는 이성적 영혼이 없기에 반드시 천국에 갈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두셨을까? 몹시 흥분된다. 판정: AI 답변에 ‘글쎄’, ‘아마도’라는 단어가 몇 개 들어간 것으로 미뤄 기계에는 난이도 최상의 문제인 것 같다. AI 답변도 훌륭한 편이다. 40세 미혼 여성도 부제가 될 수 있나? AI: 교회법상 수품 후보자는 공개적으로 독신 의무를 서약하지 않는 한 부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종신 부제(permanent diaconate) 후보자에 대한 성별 제한은 명시돼 있지 않다. 따라서 40세 미혼 여성은 독신 의무를 포함해 교회가 정한 요구 사항을 충족하면 부제가 될 수 있다. 올슨: 아니오. 판정: AI의 완패. AI는 나이 조건에 얽매인 나머지 교회법 제1024조 “세례받은 남자만이 (거룩한) 서품을 유효하게 받는다”는 조항을 놓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여성 부제직 연구를 위한 위원회를 설립하기는 했지만, 현재까지 종신 부제직도 남성에게만 유보돼 있다. AI와 인간은 삼위일체 위격, 일반 권한과 대리 권한, 혼인의 유효성, 시노달리타스 등 난이도 높은 질문에도 막힘 없이 대답했다. THE PILLAR는 나름의 기준으로 답변을 평가해 신학 영역은 AI 1.5점, 인간 6.0 점수를 줬다. 교회법은 AI 0점, 인간 4점을 부여했다. 교회법은 인간의 압승이다. THE PILLAR는 “우리의 평가에 편견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AI가 허풍을 떨지는 않았지만, 관련 개념을 혼동하고 엉뚱한 답을 하는 등 몇 가지 초보적 실수를 했다”며 “현재로선 중요한 질문, 특히 신앙과 관련된 질문은 인간 전문가에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밝혔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김원철2023.07.27

한국의 ‘영적 가족’ 되어주려 찾아온 선교사들 대전 대덕구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선교센터에서 만난 선교사들이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왼쪽부터)에스텔·마리아·로랑스·신은주 선교사.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선호하는 대학가 주변인 대전 대덕구 중리동의 한 다세대주택. 초인종을 누르자 푸른 눈의 여성 두 명이 나와 가을 하늘처럼 맑은 미소로 반겼다. 로랑스 바써르(54)씨와 마리아 마토스(44)씨다. 이들은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한국공동체 선교사로, 주님께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친 봉헌 생활자들이다. 전교 주일(22일)을 맞아 10년 넘게 한국살이 중인 두 사람을 공동체 선교센터에서 만났다. 물질적 풍요 속 행복 부재한 한국 현실 지적 “한국 신자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죠. 그런데 신앙 덕에 삶이 ‘행복하다’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하느님 사랑이 정말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더 많이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이게 저희가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선교회 한국공동체 설립 주역인 로랑스 선교사가 환한 얼굴로 선교 활동의 의미를 재차 밝혔다. 그는 2006년 다른 선교사 두 명과 함께 대전교구에서 맨손으로 공동체를 시작했다. 마리아 선교사는 2011년 합류했다. 꼭 어려운 지역에서 선교 활동하는 이들이 선교사라 여기지 마시라. 이들은 한국 생활과 문화 안에서, 하느님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들이다.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사들은 맨 먼저 교회 미래인 청년 선교에 큰 관심을 뒀다. 대전교구 가톨릭대학생협의회에서 기도 모임을 열고, 교리 교육을 하며 영적 동반자를 자처했다. 곧이어 국제교류 친교 봉사활동과 선교 모임도 시작했다. 하느님 자비 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한국·일본 청년 교류도 마련했다. 2015년 자비의 희년 개막을 계기로 선교회 카리스마를 살려 ‘자비의 선교사 학교’도 열었다. 여기에 평신도는 물론, 젊은 사제와 수도자 모두 입학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진실로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사입니다.”(「복음의 기쁨」, 120항) 모두 한국을 자발적으로 찾아 활동 중인 이들 선교사가 이룬 선교적 업적이다. 이러한 노력을 본 교구가 다세대주택을 무상으로 빌려줬다. 지금의 선교센터다. 단칸방에서 출발한 공동체에는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선교사들은 곧장 센터 2층을 개성이 한껏 드러나는 특별한 공간으로 꾸몄다. 한옥 모양의 감실과 황토로 빚은 성모자상이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성체조배실이다. 흰색 한지를 곱게 바른 창문에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다. 지도 왼편 끝자락에 위치한 유럽 대륙, 그중에서도 서쪽이 바로 선교사들의 고향이다. 영적 고아들이 하느님 사랑 느끼길 로랑스 선교사는 벨기에의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남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던 그는 15살에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고, 삶의 의욕과 방향도 잃었다. 그러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중남미 유학생들과 함께 살며 학업을 도와주면서 큰 보람과 활력을 느꼈다. 그런 그를 눈여겨본 한 선교사의 초대를 받아 스페인으로 피정을 가게 됐다. 곧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 긴 기도가 이어졌다. “아버지를 너무나도 빨리 데려가신 하느님이 줄곧 원망스러웠어요. 오랜만에 기도하며 그분과 정말 많이 싸웠죠. 그리고 성경을 펼쳤는데 신기하게도 한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였습니다. 주님이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죠. 비로소 저는 주님과 화해할 수 있었어요.” 동시에 로랑스 선교사는 그동안 자신이 ‘영적 고아’로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이유로 스스로 만든 족쇄에 묶여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잊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 말고도 얼마나 많은 영적 고아들이 외롭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을까. 그들을 돕고 싶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영적 고아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동행하는 선교사였다. 자살률 높은 한국 돕기 위해 선교 지원 스페인 출신 마리아 선교사는 자살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되고자 한국행을 자원했다. 그는 태생이 가난하고 약한 사람 돕기를 좋아했다. 간호사가 돼 훗날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국경없는의사회와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간호학과 마지막 학년에 겪은 신기한 체험이 그를 결국 선교사의 길로 이끌었다. 피정에서 미사를 드리던 때였다.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할 이는 없다’는 성가 가사를 부르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마리아야, 난 너를 사랑한단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그 뒤로 자신을 괴롭혔던 부정적인 감정이나 마음의 상처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리아 선교사는 주님 사랑으로 영적 치유를 받은 것이라고 확신했다. 간호사 자격증을 딴 그는 수도 마드리드의 큰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한 사명은 따로 있을 것이란 생각이 강해졌다. “육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 사랑을 체험한 입장으로서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일이 급선무로 느껴졌어요. 게다가 아버지나 동료 간호사들 같은 주변 사람도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죠. 만약 저들도 주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마음의 상처도 나을뿐더러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너무 안타까웠죠. 그래서 선교사가 되기로 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게끔 돕고 싶어서요.” 평범한 일상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선교사들이 이 땅에서 선교하는 이유다. 선교사들은 “신앙과 일상이 일치를 이루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신자들은 ‘영적인 가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속 이야기를 편히 터놓고, 같은 길을 함께 걷는 공동체가 그것이다. 이들은 줄곧 하느님으로부터 찾는 행복을 강조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마음을 열고 싶은데 두렵다’,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는 안전한 집단이 필요하다’. 청년 모임에서도 이처럼 안타까운 말이 많이 나왔어요. 청년들이 일상과 사회생활에서 가톨릭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의지할 공동체를 절실히 찾는 것 같아요.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가 늘 따스하고 든든한 영적 가족이 돼주고 싶습니다. 그게 바로 일상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리가 꼭 해야 일이 아닐까요?”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이학주2023.10.16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평화’는 무엇일까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가톨릭 신자를 위한 ‘평화와 화해’ 교재」 제1권 발행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김주영 주교)는 최근 「가톨릭 신자를 위한 ‘평화와 화해’ 교재」 제1권을 발행하고, 전국 교구와 신학교에 배포했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평화와 화해 교재가 공식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 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 안에서부터 평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첫 결실을 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교재는 성경과 가톨릭 사회교리, 역대 교황들의 평화에 대한 가르침, 가톨릭 신자들의 평화와 화해 실천 경험을 기초로 집필됐다. 교재는 평화 신학과 평화 영성, 평화 실천 등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평화 신학’(1∼3과)이 가톨릭교회가 추구하고 가르치는 평화에 대한 성경과 가톨릭 교리 내용을 다뤘다면, 2부 ‘평화 영성’(4∼5과)은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 가르침에 충실하게 평화를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영적 기초를 다뤘다. 나아가 3부 평화 실천(6∼8과)은 가톨릭 교리와 영성에 기초하는 평화 실천의 방법을 담았다. 각 과의 내용은 주제를 표현하는 성경 구절과 단원 소개, 본문, 주제와 연관된 사례, 나눔 주제, 실천 방향, 참고자료 목록 차례로 구성됐다. 교재는 특히 가톨릭 신자들의 평화와 민족 화해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고 △교회 내 평화ㆍ민족화해 교육 프로그램에 활용하며 △앞으로 중급, 심화 교재 제작을 위한 표준을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기획됐다. 따라서 이 교재는 성직자들의 강론 참고 자료, 수도자ㆍ평신도 봉사자들의 강의 자료, 민족 화해와 일치에 관심이 많은 교우의 소모임 공부 교재로 활용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집필이 이뤄졌다. 2019년부터 연구와 집필에 들어가 성경ㆍ교의신학ㆍ사회교리 전문가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와 선교사목주교특별위원회의 감수를 거쳤으며, 2021년 12월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3년간의 노력 끝에 발행됐다. 연구와 집필에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이자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인 강주석 신부, 팍스크리스티코리아(PCK) 연구이사 박문수(프란치스코) 박사 등 8명이 참여했다. 46판 변형, 156면, 비매품. 김주영 주교는 간행사를 통해 “우리가 사는 곳에서부터 진정한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과제인 한반도 평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며 “이 교재가 남북 간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과도 평화와 화해를 이루며 살아갈 방법을 배우는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cpbc2022.07.08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4주일- 성 요셉, 이미 하늘나라를 사신 분](//cpbc.co.kr/CMS/newspaper/2022/12/rc/837280_1.2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4주일- 성 요셉, 이미 하늘나라를 사신 분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김수환 추기경은 추천 영화로 몽골 영화 ‘칭기즈칸’을 꼽았습니다. 칭기즈칸의 어느 면이 좋았을까요? 마지막 장면에 답이 있어 보입니다. 칭기즈칸은 이웃 부족에게 빼앗긴 아내를 구해냈는데 아내는 이미 적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갓난아기를 하늘에 들어 올려 자기 아이로 받아들입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닐지 몰라도 다음의 자막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때부터 피에 물든 대초원에 평화가 찾아왔다.” 1. 자기 욕망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느님의 뜻에 가깝다. 요셉은 사랑하는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잠자리를 같이하기 전의 일입니다. 청천벽력입니다. 요셉은 어떤 조처를 할 것인가? 마리아와 아기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19절)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셉의 의로움은 일단 검찰이나 권력자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법과 원칙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의(義)는 ‘정의(justice)’와 ‘공의(righteousness)’ 두 가지로 봅니다. ‘정의’는 날카로움보다는 약자를 보호하는 태도나 행위 등과 관련이 있고, ‘공의’는 올바른 관계 안에서 합당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요셉의 의로움을 ‘정의’로 본다면 마리아를 고아나 과부처럼 약자로 보아 연민을 가졌을 것이고, ‘공의’로 본다 해도 자신의 인간적인 억울함이나 배신감을 넘어서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거취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하여튼 어느 쪽으로 보든지 조용히 파혼하려 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하느님이 개입하십니다. 그의 꿈에 천사를 보내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라니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어쨌든 내 핏줄이 아니라고 우길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마리아와 함께 요셉도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기 혈육을 고집하지 않았고 그런 면에서 자기 욕망을 넘어섭니다. 요셉이야말로 모든 이를 자녀로 삼으시는 하느님의 그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2. 요셉 성인은 지상에서 하늘을 사신 분 지금은 대림 마지막 시기, 구세사의 무대가 열리는 여명의 순간입니다. 성모님이 구세사에서 주연 배우라면, 요셉 성인은 조연 배우입니다. 구세사의 무대에서 단 한마디 대사도 없습니다. 자기 의지로 뭔가를 하는 능동적인 역할이 없습니다. 명품 조연들이 많아야 드라마가 산다고 합니다. 주연은 한 사람이나 소수지만, 조연은 많습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모두가 주인공 역할에 안달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조연 역할을 기쁘게 하는 이가 많아야 세상이 평화로울 것 같습니다. 대림 시기에 혁혁한 주연급 조연이 둘 있습니다. 요한 세례자와 요셉 성인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로 요한 세례자를 꼽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크다고(마태 11,11) 말씀하십니다. 요한 세례자를 깎아내리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이미 여기서 하늘나라를 사신 분을 염두에 두신 말씀으로 들립니다. 바로 요셉 성인입니다. 지상에서는 바보처럼 사신 것처럼 보이나, 실은 하늘의 삶을 사신 것입니다. 가정의 수호자, 요셉 성인이여! 이 땅의 수많은 아빠에게 당신처럼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가정을 지켜내는 은총을 빌어주소서. 또한, 하늘의 영광을 이미 여기서 사는 비법을 알려주소서. 아멘.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병원사목위원회) cpbc2022.12.14
![[전문]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 2023년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4/05/FYu1680677705706.jpg)
[전문]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 2023년 부활 메시지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마태 28,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리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기쁨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큰 자부심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해 하느님의 정의와 그분의 평화와 형제애를 말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예수님의 부활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죽음에 대한 승리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고, 인간적인 논리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하나의 선언, 곧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마태 28,6; 사도 2,32 참조)는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세상에서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마주하여 놀라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그분의 부활을 전합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이제껏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그들 곁에 살아 계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전하려 했던 것입니다(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2, 307쪽 참조).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두려워하고 외면했던 제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었고 그들을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바로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을 믿는 우리의 인생도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며 새로운 삶, 영원한 생명의 삶을 희망하며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로마 6,4-11 참조).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우리도 그분의 제자들처럼 이 세상에서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될 것을 새롭게 다짐합시다. 2. 우리는 사랑의 증인입니다 부활을 목격하고 전해들은 제자들은 모두 서둘러 길을 갑니다. 왜 그들은 뛰어갔을까요? 무엇이 그들을 가슴 벅차도록 뛰게 했을까요? 무엇이 마리아 막달레나를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게 했을까요?(마태 28,8; 루카 24,9; 요한 20,2 참조). 무엇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를 한 걸음에 무덤으로 달려가게 했을까요?(요한 20,4 참조). 무엇이 베드로를 물속으로 뛰어들게 하여 해변에 계신 예수님을 향해 헤엄쳐 가게 했을까요?(요한 21,7 참조). 이들에게는 한 가지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사랑이 그들 마음의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은 지상에서 그분께 충실한 사랑을 지녔던 이들의 몫이었습니다. 이처럼 부활은 예수님께 대한 깊은 사랑 체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부활을 체험하는 자리는 언제나 사랑으로 시작되고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부활을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부활의 희망을 간직하고 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 자신도 부활의 영광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며 부활의 공동체인 우리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인생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내어주신 그 사랑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바치신 그 위대한 사랑에 감사하며 세상에서 이 놀랍고도 아름다운 주님 사랑의 증인이 되어 살아갈 것을 다짐합시다. 부활을 믿는 우리를 통해 우리와 가까운 곳에, 그리고 또 먼 곳까지도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이 미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시다. 3. 우리는 희망의 증인입니다 오늘 부활 미사의 복음에는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지진이 일어나고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무덤을 막았던 돌을 치우는 광경을 보자 그들이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마태 28,3)고 했습니다. 예전처럼 지금도 세상에는 악의 세력이 위세를 떨칩니다. 부가 특정한 소수에게 집중되고, 비참한 가난이 증대되는 경제적 불의가 난무합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먹지 못해 굶주림에 시달리며 죽어가는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산더미처럼 먹다 남은 음식이 버려집니다. 어느 순간 종교처럼 되어버린, 신격화된 시장의 논리, 자본의 논리 앞에서 사람과 사람의 터전인 대자연이 올바로 보호받지 못하고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불의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오늘 부활의 복음 말씀에 다시 귀 기울여 봅시다. 파스카 날 이른 아침에(마태 28,1 참조)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당신의 아들 예수님이 부패하도록, 끝내 실패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무덤을 굳게 닫아놓았던 돌을 굴려 떨어져 나가게 하시고, 사람들의 죄악으로 유발된 모든 불의와 절망의 상황을 예수님의 부활로 완전히 뒤바꾸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간 모든 이가 결코 죽음의 권세 아래에 내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보증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의 불의한 현실을 뛰어넘는 희망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덤에서조차 생명이 움터 나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부활의 빛으로 언제나 희망을 얻는 우리는 세상의 불의에 굴하지 않고 복음의 의로움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불의를, 모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희망으로 복음의 기쁨을 간직하며 부활의 삶을 살도록 우리 모두 용기를 냅시다. 대자연의 모든 것이 다시 깨어나는 부활의 계절입니다. 돋아나는 온갖 나무의 잎새와 생생하게 피어나는 들꽃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에게 부활의 기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처럼 우리의 믿음도 봄날의 햇살처럼 촉촉한 봄비같이 다시 깨어나 새롭게 부활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건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한생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언제나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사신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생각하며 부활을 새로이 살고자 다짐하는 모든 신자 여러분에게 복되신 성모님의 전구를 청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부활의 기쁨 안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고 새롭게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2023년 4월 9일 주님 부활 대축일 청주교구장 김 종 강 시몬 주교박민규2023.04.05
![[박예진의 토닥토닥] (44)트라우마 사건은 없습니다(중)](//cpbc.co.kr/CMS/newspaper/2022/11/rc/835511_1.0_titleImage_1.jpg)
[박예진의 토닥토닥] (44)트라우마 사건은 없습니다(중) 박예진 회장 이번 주도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입니다. 개인마다 트라우마 증상, 상태, 기간 등이 달라서 일반화해서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안전’입니다. ‘안전한 대상과 장소’로 신뢰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즐거웠던 경험을 상상해 보세요. 이미지를 그려보셔도 좋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도 기억해보세요. 항상 두렵고 위협적인 상황이 오면, 바로 대응하지 말고 그 기억과 감정을 꺼내어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내 안에 깊이 넣어 둔다면 어디에다 두시겠습니까? 저라면 ‘가슴 깊이’ 두겠습니다. ‘심장’일 수도 있습니다. 평상시에도 숨을 들이켜고 천천히 내쉬면서 즐거운 경험의 기억과 감정이 온몸으로 퍼질 수 있도록 합니다. 이때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은 음악을 틀어놓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함께하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그려보세요.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기쁨과 평화의 순간을 사진 찍은 이미지처럼 내 안의 깊은 곳에 저장해두세요. 그곳은 ‘늘 안전한 곳(방)’입니다. 그러니 위협적이고 두려운 상황이 몰려오면, 바로 반응하지 말고 잠시 멈추어보세요. 호흡을 깊게 하면서, 익숙해진 ‘안전한 장소와 편안한 감정’에 머물러서 몸을 이완한 후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나에게 늘 지지해주고, 격려를 해주는 분을 생각해보세요. 그분과의 관계에서 내가 편안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나에 대한 인정, 수용, 격려, 지지, 문제 해결에 대한 도움, 의지 등 다양한 것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분이 자주 하는 말, “그럴 수 있어, 네 탓이 아니야, 넌 괜찮은 사람이야” 등을 녹음해두고 들어 보세요. 성경 말씀 중에서 내게 위로와 위안이 되는 문구가 있다면 크게 읽고 녹음해서 자주 듣는 것도 방법입니다. 우리는 청각에 예민합니다. 고함치는 소리, 비난하는 소리 등으로 청각이 발달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좋은 소리로 자신의 힐링을 위해 사용해보세요. 전 ‘물소리’가 정화되는 의미가 있어서 자주 듣습니다. 이렇게 내 안에 “안전한 장소, 안전한 대상 그리고 나의 삶 속에서 강화된 긍정적 자원들을 활용”하여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부정적 자기 평가도 심하죠?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 온 나의 노하우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들어서 시작했지만, 매일 아침 성찰을 한 지 20년가량 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말씀이 주는 의미를 실생활에서도 성찰해왔습니다. 그 습관이 저의 ‘성장’과 ‘상담’이란 업에 이렇게 도움이 될지는 몰랐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며,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를 키워주셨습니다’. 저 혼자서 하지 않았습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까지 이어집니다. ※자신, 관계, 자녀 양육, 영성 등으로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있으신 분은 메일(pa_julia@naver.com)로 사례를 보내주세요. ‘박예진의 토닥토닥’을 통해 조언해드리겠습니다.박예진(율리아) 한국아들러협회장 평화신문2022.11.15
![[이소영 평화칼럼] 가장 작은 봉헌](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5/31/TKM1685494179358.jpg)
[이소영 평화칼럼] 가장 작은 봉헌이소영 베로니카(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내 세례명은 베로니카다. 가톨릭 전승에 따르면 베로니카는 십자가를 진 채 골고타 언덕을 오르던 주님의 얼굴을 닦아준 여인이다. 피와 땀이 닦인 수건엔 그분의 얼굴이 그대로 아로새겨졌다고 한다. 지금 와서 고백하면 이 전승을 알게 된 건 한참 지나서였고, 세례성사 준비하던 중학생 시절엔 단지 이름이 예뻐서 골랐을 뿐이었다. 아녜스가 더 마음에 들었지만, 함께 세례받을 친구가 그 이름을 먼저 고르는 바람에 차선으로 택한 게 베로니카였다. 몇 해 전 사순 시기의 저녁이었다. ‘십자가의 길’ 기도 예식에서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얼굴 닦아드리는 장면을 묵상하던 중이었다. 어디선가 과일 냄새가 나는 듯했다. 복숭아와 살구의 달큼하고 싱그러운 내음. 누가 과일 봉투를 들고 성당에 들어온 것일까. 아직 여름 과일이 나올 철은 아닌데. 두리번거리다 재차 마음을 가다듬고 아까의 장면을 떠올리려 하니 이번엔 상상 속의 그분이 피땀 흘리는 대신 “목마르다” 하시는 게 아닌가? 성경에 따르면 그 장면은 한참 뒤, 십자가에 못 박힌 다음에 등장해야 했다. 그전에 우선 얼굴을 닦고 두 번 더 넘어지시게 되어 있는데, 왜 주님은 벌써 목이 마르시다는 말인가! 난 당황했다. 목마름은 잠깐 참으시고 우선 피땀부터 닦으시라며 상상 속의 그분께 수건을 들이밀려던 순간 부드러운 숨결이 귓가에 뜨겁게 닿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던 온유한 목소리. “그때 네가 준 납작복숭아와 살구를 먹어서 이제 나 목마르지 않다.” 성당 다녀오던 길에 노천 장터 가판에 멈추어 과일을 한 소쿠리 산 적 있었다. 십여 년 전, 박사후연구원으로 프랑스에 일 년간 거주하던 무렵이었다. 당시 유학 중이던 친구가 요즘 살구가 제철이라 하길래 평소 즐겨 사 먹던 납작복숭아와 함께 그날은 살구도 좀 골라 담았다. 맘씨 좋은 아랍 상인이 덤으로 자두도 여러 알 종이봉투에 담아주셨다. 햇볕이 쨍쨍한 한낮이었고, 난 목이 말랐다. 어서 돌아가 살구 깨물어 먹어야지 하며 길모퉁이를 도는데, 거리에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분이 그야말로 대자로 드러누워 있었다. 옆으론 빈 포도주병과 비닐봉지가 뒹굴었고, 장바구니 든 할머니들이 ‘쯧쯧’하는 표정으로 곁을 지나쳤다. 비켜선 채 계속 걷다 문득 그날 미사 중에 들은 “목마르다”가 떠올랐다. 불어에 서툴렀으나 그 부분만큼은 또렷이 알아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따 깨어나면 저분도 목마를 텐데. 곁엔 빈 술병과 상한 음식 담긴 봉지밖에 없을 텐데. 그 무렵 나 역시 장학금이 거의 바닥나 파리지앵이 아닌 ‘파리거지앵’의 처지였으나, 길을 되짚어 걸었다. 덤으로 받은 자두 몇 알만 내 몫으로 원피스 호주머니에 넣고, 과일 든 봉투는 남자분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돌아 뛰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기도하며 “기억해 주실 거죠?” 생색을 내었다. “그럼!” 응답하듯 열어젖힌 창문 밖의 별들이 반짝 윙크했다. “그 복숭아와 살구 바로 내가 먹었다.” 귀에 닿은 뜨거운 숨결이 심장까지 닿는 느낌이었다. 내 쪽에선 까맣게 잊고 있던 십수 년 전 저 장면을 주님은 여태까지 기억하셨구나 싶었다. 군중을 헤치고 나와 이마의 피땀 닦아준 용감하고 어진 이의 삶 안에 당신 얼굴을 새겨넣어 세기에서 세기에 이르도록 전승되게 해준 분은, 고작 과일 한 봉투 내어놓은 작은 이의 삶 안에도 달큼하고 싱그러운 장면을 여기저기 숨겨놓으셨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은 모르게 하라 했는데 복숭아와 살구 이야기를 이렇듯 드러내어 적었으니 난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을 이미 받은 셈이다. 그렇지만 걱정 안 한다. 하늘나라 가기 전까지 숨은 일도 보시는 주님과의 비밀을 계속 만들면 되니까. 그분은 미소한 봉헌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 주실 것이다. cpbc2023.05.29

가톨릭 신자들의 삶의 기준이 되는 책[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25)가톨릭교회 교리서 보편 교회 표준 교리서인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시며 그리스도인 삶의 모범이시며 우리 기도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거룩한 표징이다. ‘신앙의 유산’을 지키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요 의무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유산을 가장 잘 보존하고, 선명하게 설명하며,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가톨릭교회 교리서」이다. 교리서는 성경과 교회의 거룩한 전통과 가르침을 담고 있다. 특히 모든 가톨릭 주교들과 주교회의, 주교대의원회의, 신학과 교리교수법 연구기관들의 폭넓은 자문을 받아 사도좌의 권위로 교황이 승인한 보편 교회 교리서인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오늘을 사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의 삶의 기준이 되는 책이다. 따라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시며, 그리스도인 삶의 모범이시며, 우리 기도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거룩한 표징이다. 사도 시대 초기 교회의 교리는 비교적 단순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 그리고 불륜을 멀리하면 되었다.(사도 15,28-29 참조). 나아가 사도들의 교리서인 「디다케」는 덕행을 따르면 생명의 길을 걷는 것이고, 악행을 고집하면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라며 그리스도인의 윤리 생활을 강조했다. 313년 로마 제국의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를 얻은 교회는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철저한 예비 신자 교육이 시행됐다. 이를 위해 예루살렘의 치릴로나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교리서를 저술했다. 6세기 이후 전 유럽이 그리스도교화 되면서 성인 입교자는 급격히 줄고 유아 영세자가 급증했다. 중세로 접어들면서 교리교육은 유아 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의 첫영성체 교육에 집중되었다.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을 외우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천해야 할 윤리 생활에 대한 가르침이 교리교육의 주된 내용이었다. 16세기 갈라져 나간 개신교에 자극을 받은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고,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문답식으로 풀이한 보편 교회 표준 교리서인 「로마 교리서」를 출간했다. 이 교리서에는 믿을 교리와 성사 생활, 지킬 계명, 애덕 생활에 관한 1041항의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양업 신부와 다블뤼 주교가 1864년 154개 문항으로 우리말로 펴낸 교리서 「성교요리문답」은 「로마 교리서」 축약본을 옮긴 것이다. 1992년 10월 11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로마 교리서」가 나온 지 400여 년 만에 새 보편 교회 교리서인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반포했다. 이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85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신앙 교육을 위한 규범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교들의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1986년부터 신앙교리성 장관 요셉 라칭거(베네딕토 16세 교황) 추기경의 책임 아래 6년에 걸친 표준 교리서 편찬 작업이 진행됐다. 총 2865항으로 이루어진 이 교리서는 먼저 프랑스어로 출판됐고 5년 후 라틴어 표준어판이 발행됐다. 2003년에는 우리말로 출간됐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가톨릭 교리를 온전하고 완전하게 설명하고, 교회가 고백하고 거행하며 생활하고 기도하는 것을 신앙의 유산으로 보존하고자 간행됐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편은 믿을 교리를 해설한다. 그리고 제2편에서는 그리스도 신비를 기념하는 전례와 교회의 일곱 성사를 설명한다. 제3편은 행복과 덕, 사회정의 등 윤리원칙과 십계명 실천 등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4편은 주님의 기도를 중심으로 신자들의 영성생활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풀이한다. 교리교육은 단순히 교리 시간에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교리교육은 교리서가 가지고 있는 구조대로 교리와 성사, 일상에서의 실천과 기도를 통해 종합적으로 이루어진다. 성경 공부와 기도, 전례 참여, 성사 생활, 윤리적 삶이 넓은 의미에서 교리교육이다. 다만 그것이 올바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기준과 지침을 제공하는 책이 「가톨릭교회 교리서」이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황령 「신앙의 유산」을 통해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와 구원 계획의 놀라운 단일성을 깨달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 성령을 통하여 거룩한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인간이 되신 분, 인류의 구원자,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적 위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고 교리서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그리스도인이 믿고, 바라고, 꼭 해야 할 것을 제시하지만, 무엇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이와 가르치는 이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인 완덕의 근원이 ‘사랑’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고, 그 목적도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야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항 참조)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