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 유근상 "천국의 문, 교황 방한에 맞춰 기적같이 전시"* "천국의 문" 유근상 전시총감독,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발언] "30년 전부터 이탈리아에서 문화재 복원 관련 업무" "교황 방한에 맞춰 3개월 만에 기적같이 전시 열어" "이 우리나라에 온 건 이번이 처음, 교황님의 선물" " 청동 부조에 금박을 입힌 10개의 장면 담고 있어" " 인도까지 배로, 마지막에 항공편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 상반신 조각, 상반신으로는 가장 큰 예수상"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일반 시민, 스님 등 관람객 다양해" [발언전문]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사적인 한국 방문,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인 것 같은데 내일이면 벌써 한 달이 됩니다. 아직도 교황님이 남겨주신 여운에 젖어계신 분들이 많은데요. 그렇다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에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탈리아 피렌체를 대표하는 예술품인 "천국의 문"를 비롯해서, 바티칸 박물관과 두오모 성당이 소장한 역대 교황들의 의복과 성물,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들이 이곳에서 전시가 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에 전해드리는 문화라운지. 오늘은 유근상 전시총감독을 연결해서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 유근상 감독님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유근상입니다. - 원래 이탈리아에 계시죠? 그런데 전시회 때문에 오신 거죠? ▶ 네. 30년 정도 이탈리아에서 문화재복원학을 공부하고 있고, 거기에 종사하면서 대학을 마쳤습니다. - 전시회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한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죠? ▶ 네. 많이 다녀가시고 종교를 떠나서 많은 교수님들이 이번 교황방한에 맞춰서 좋은 위로의 선물이 왔기에 궁금증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오고 있습니다. - 피렌체에 있는 ‘천국의 문’은 아마 이태리에 가보신 분들은 다 가보셨을 것 같은데요. 상당히 유명한 예술품이죠? ▶ 네. 6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이 작품이 오기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었죠. 교황님과 더불어 함께 아주 큰 선물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 이번 전시회를 처음에 기획하시게 된 건지 그 계기가 궁금한데요. 언제부터 전시회 준비를 하셨습니까? ▶ 보통 대형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1~2년 전에 해야 하는데 교황님 방한이 급작스럽게 이뤄졌기 때문에 3-4개월 남겨놓고 준비하느라고 모두가 바쁘게 움직여서 3개월만에 기적같이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 전시회 제목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천국의 문"이 단연 주목을 많이 받고 있더라고요. "천국의 문"이 우리나라에서 전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죠? ▶ 네. 이 작품이 외부로 나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고, 곧 미국에서 있을 성경박물관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전에 이번 교황님의 선물로 한국에 먼저 와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있어서 바티칸측의 어려운 결단 끝에 한국에 오게 된 겁니다. - 어떤 작품인지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 피렌체 두오모 성당 앞부분에 산 조바니의 세례장이 있습니다. 이 동쪽에 기베르티의 작품인데요. 르네상스 초기에 천재 부조작가의 한 명입니다. 1425년부터 1452년에 작품이 완성돼서 28년 정도 걸린 대규모의 작품입니다. ‘천국의 문’ 상태를 보면 그동안 이탈리아의 2차 세계대전을 습격으로 숨겨놓기도 했지만 결국 이탈리아에 500년만에 내린 대 홍수에 6개의 패널이 길가에 떠내려가는 아픔을 겪기도 했는데요. 27년간 복원작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 ‘천국의 문’에 총 10개의 부조들이 새겨져 있는 거죠? ▶ 네. 이 작품을 보면 양 패널로 돼 있는데 청동부조에 금박을 입힌 작품입니다. 멀리서 보면 두 문이 열린 상태인데 지금은 닫혀서 10개의 패널이 보이는데 모자 형태로 된 퍼즐모양의 문들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양쪽 5개, 오른쪽 5개 해서 10개의 문이 돼 있는 부조양식입니다. 첫 번째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나오고요. ‘카인과 아벨’, ‘노아와 그의 가족’. ‘아브라함’, ‘예사우와 야곱’, ‘요셉과 그 형제들’, ‘모세와 율법’,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에 입성’, ‘다윗과 골리앗’, ‘솔로몬과 스바영왕’. 10개의 구약성경 스토리를 갖고 있는 대규모의 문입니다. - 정말 그림만 봐도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요. ▶ 네. 왜냐하면 그 전에 중세미술들을 보면 평면적이고 원근법이 나타나지 않는 작품들이었어요. 그래서 암흑기를 보여줬다면, 르네상스 초기를 열어준 작품으로 원근법이 실행된 작품이죠. 그래서 멀리 있는 인물들이나 풍경은 작아지고, 앞에 있는 인물이나 사물은 크게 보이는 입체적인 작품으로 세계 최초의 르네상스의 원근법이 나타난 작품입니다. - 1966년 대홍수 때문에 부조 6개가 손상됐다가 복원을 했고요. 복제품도 2개나 더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 전시가 되고 있는 건 원본인가요? ▶ 보통 우리가 복제본이라고 하면 가짜라고 하는데, 이 작품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문이 물에 떠내려갔기 때문에 한 작품은 떠내려간 빈 공간의 동쪽문을 만들어서 여행길에 보면 세례장 동쪽문에 보이는 것으로 복원됐고요. 떨어진 문을 다 복원해서 두오모 미술관에 안치돼 있고 지금 와 있는 작품이 그 두 점 중 한 점이 오리지널이라고 불리는데 그 작품이 현재 와 있는 겁니다. - 전시총감독께서는 10개 작품 중 어느 것에 가장 끌리십니까? ▶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작품이 오른쪽 위에서 두 번째인 ‘아브라함’입니다. 천재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브루넬레스코의 작품과 기베르티의 작품이 경쟁을 했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커다란 경쟁률을 뚫고 그야말로 대상을 기베르티가 거머쥐게 돼서 총 28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베르티는 47년이란 세월을 두 문에 자기 일생을 바치는 영광을 받았기 때문에 아브라함 이야기가 담긴 ‘천국의 문’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높이가 무려 7미터, 무게가 6톤이나 되는 대작이라서 우리나라로 옮겨오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여러 가지로 신경이 많이 쓰이셨죠? ▶ 기본 원칙은 배편으로 와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두달에 걸쳐서 와야 하는 작품이었는데, 인도까지는 배편으로 오고 마지막엔 교황님 방한 일정에 맞춰 15일에 오픈하기 위해 항공편으로 했습니다. - 바티칸 박물관이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이지 않습니까? 바티칸 박물관의 진품 회화도 함께 전시되고 있죠? ▶ 네. 이번에 굉장히 중요한 작품 세 점이 바티칸에서 왔는데, 이번 전시회에는 조각이 많이 왔는데 다행히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회화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작품 중에는 우리 성당에서 처음 복음을 아시아에 전파하기 위해 프랑스 귀족 출신의 복음전파를 위해 그 귀족이 아시아에 처음 오게 됩니다. 그래서 필리핀을 거쳐 일본, 마지막에 중국에서 숨을 거뒀는데 그 작품이 몇 백년 만에 왔다가 또 되돌아갔죠. 그 작품이 예수회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는 첫 번째 작품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상반신 조각도 눈에 띄던데요.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인데도 보존 상태가 꽤 좋은 편이네요? ▶ 네. 이 작품은 남쪽문을 보고 있는 작품 중 정문에 있었던 거에요. 14세기 그리스도 상반신이 남아 있는데 원래는 전신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속에 밑 부분은 잘려나가고 상반신이 됐고요. 상반신으로서는 가장 큰 예수상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것이라는 말씀이시죠? ▶ 네. - 역대 교황의 의복과 성물도 전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교황 레오 10세가 썼던 모자를 사진으로 보니까 무척 화려하더라고요. 지금 교황님의 모자와는 많이 다르던데요. ▶ 전시된 상태는 뒷모습이잖아요. 거기에 가장 아름다운 금실을 썼고 거기에 보석이 그대로 원석과 함께 더불어서 많이 빛은 바랬지만 원석이 그대로 박혀 있는 귀중한 작품입니다. -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어떤 전시물에 관심을 많이 보이나요? ▶ 일단 작품 중에 성 귀도 레니의 작품 중에 ‘성 마테오와 천사’가 바티칸에서 온 회화 작품 중 눈길을 가장 끌고 있고요. 왜냐하면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어원을 남긴 것으로, 정신과 의사들이 많이 쓰는 단어인데요,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건 그 작품 앞에서 르네상스작품이나 그 밖의 문제를 일으키는 작품들인데 그 앞에서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쓰러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실제 그 작가의 작품, 귀로 레니의 작품이 이번에 여기에 전시돼 있어서 거기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천국의 문’이 단연코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 천주교 신자가 아닌 관람객도 많이 있죠? ▶ 네. 스님도 많이 오시고요. 종교를 떠나 많은 분들이 르네상스 초기 작품이 한국에 처음 전시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더욱 많은 분들이 찾아주고 계십니다. - 이번 전시회의 수익금 일부가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쓰인다면서요? ▶ 이번에 초록우산이라는 어린이재단에 많은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바보의 나눔재단과 함께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그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 이번 전시는 언제까지 열립니까? ▶ 11월 17일까지 열리는데요. 이탈리아와 한국 수교 130주년에 맞춰서 이 전시회에 양 국 간 좀 더 뜻을 기리기 위해 연장을 해야 하지 않냐는 여론이 많아서 연장전이 곧 돌입할 것 같습니다. -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죠? ▶ 네. 교황님의 미사 뒤에 있는 광화문 안에서 왼쪽 부분에 우리나라 국립고궁박물관인, 전에는 국립박물관이었는데 그게 용산으로 옮겨졌는데 그 전에 쓰였던 건물입니다. - 시복식이 열렸던 광화문 바로 안쪽 경복궁 옆에 있습니다. ▶ 네. 윤재선2014.09.13
[인터뷰 전문] 황혜선 "발렌타인데이에 어울리는 콘서트"* 황혜선 세계한류학회 사무국장,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한 주간의 문화 공연 소식을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세계한류학회 황혜선 사무국장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다음주가 설인데요.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공연 소개해주시죠. ▶ 네, 북촌에는 창덕궁이며 한옥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북촌 8경이 있는데요. 영미 문학사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인기 있는 ‘천로역정’이 바로 북촌 아트홀에서 연극으로 올려졌습니다. 우화를 통해 진리를 만날 수 있는 작품으로 머리와 가슴으로 느끼는 연극이 될 이번 공연은 오는 28일까지 계속됩니다. 유럽여행 에피소드로 유럽 감성을 살리고, 3인조 밴드의 라이브 연주로 동반여행 효과까지 누릴 수 있는 연극이 있습니다. 바로 낭만 여행기 음악극 ‘유럽블로그’인데요. 배우들이 직접 유럽을 거닐며 촬영한 영상과 생생한 에피소드로 유럽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대리 만족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달 1일까지 대학로 티오엠1관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연극과 음악극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에는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창작 뮤지컬인 ‘빨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뮤지컬 ‘빨래’는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작사, 극본상과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극본, 작사, 작곡 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뮤지컬 ‘빨래’는 일본의 역사 깊은 극장 ‘미츠코시’에서 최초의 한국작품으로 막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작품은 당시 대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인들에게 큰 희망과 위로를 전해주었습니다. 뮤지컬 ‘빨래’는 서울의 하늘과 맞닿은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데요. 그 동네에 사는 27살의 ‘서나영’과 이웃집 몽골 청년 ‘솔롱고’이 빨래로 인해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불법체류자, 88만 원 세대 등 서울 소시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동양예술극장 1관에서 계속됩니다. - 1960~70년대 전설적인 포크록 듀오였죠.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메인보컬인 아트 가펑클의 첫 단독 내한공연 소식 전해주시죠. ▶ 네, 1957년 결성 이후 환상의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은 , , , 등 경이적인 히트곡들을 남겼는데요. 이들은 199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2007년 롱 아일랜드 음악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03년에 열린 제45회 그래미어워드에서 ‘평생공로상’, 그리고 2004년에는 ‘롤링 스톤’이 뽑은 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한 곡 한 곡에 담긴 사연과 추억을 소개하며 그의 50년 음악 인생을 들려줄 예정입니다. 아트 가펑클은 한때 성대결절로 음악활동 중단 선언도 했었지만, 불굴의 의지와 열정으로 재기에 성공하여 다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오늘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립니다. - 지난해 제3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의 ‘예그린앙코르’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죠. 뮤지컬 어떤 공연인가요? ▶ 네, 창작뮤지컬 은 뮤지컬 , 넌버벌 퍼포먼스 등 대중을 사로잡는 참신한 소재로 국내 정서에 맞는 순수 창작 작품을 기획· 제작해 온 ㈜PMC프로덕션과 지난해 개관 10년을 기념하여 직접 제작한 뮤지컬 으로 언론과 관객의 찬사를 받으며 한국 뮤지컬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충무아트홀이 공동제작에 나선 작품으로 그 만큼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대중들이 잘 알고 있는 동화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 남자버전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만들어 냈는데요.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동화와 현실을 적절히 섞은 내용과 결말을 바꿔 현실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하는데요. 친숙한 동화 속 주인공들의 색다른 변신에 관객들로 하여금 흥미로움과 기대감을 자아내게 합니다. 동화 나라의 평범한 난쟁이인 주인공 ‘찰리’가 왕자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남성에게도 해당 될 수 있음을 경쾌하게 풀어내는 독특한 설정으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신데렐라적인 욕망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톡톡 튀는 대사, 코믹한 노래와 안무가 기발한 조화를 이루는 뮤지컬 은 오는 27일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화려한 막을 올립니다. - 발렌타인데이에 어울리는 공연도 소개해주시죠. ▶ 네, 맛있는 음식과 로맨틱한 현의 선율이 있는 “Eat Play Love” 콘서트가 오늘 저녁 강남구 신사동의 카페 에클레시아에서 열립니다. 단 50명을 위해 준비되는 연주인데요. 이번 연주는 Harmonia Chamber Players가 맡아 6중주, 8중주와 같이 신선한 편성의 챔버 안에서 탄탄한 실력을 갖춘 연주자들이 각자의 특색있는 음악 색깔을 보여주는 동시에, 음악적 분석력과 깊은 통찰력으로 호소력 있는 하나의 소리를 들려줄 것입니다. 클래식과 남미의 매혹적인 멜로디를 경험할 수 있는 ‘칸토 안티고’가 오늘 예술의 전당 콘서틀 홀에서 개최됩니다. ‘칸토 안티고 (Canto Antigo)’ 는 ‘오래된 노래’라는 뜻 그대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랑스럽기 그지 없고 가슴을 울리는 남미의 음악을 환상의 기타 듀오 이성우 & 올리버 파르타쉬 나이니와 함께 연주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디토 스트링스와 함께 신지아의 빼놓을 수 없는 트레이드 마크인 강렬하고 화려한 연주로 피아졸라의 음악을 선보입니다. 로맨틱한 발렌타인 데이를 꿈꾸는 분들에게 어울리는 재즈 콘서트 ‘마이 퍼니 발렌타인 위드 프렐류드 콘서트’가 오늘 올림픽공원 K아트홀에서 펼쳐집니다. 버클리출신의 남성 4인조 밴드 프렐류드는 80년대~90년대의 인기재즈와 영화에 삽입된 유명한 곡들을 재즈버전으로 편곡해서 전 연령층이 흥얼거리며 공감할 수 있도록 이번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또한 관람객들이 전문용어와 어려운 화성의 재즈를 이해하기 쉽도록 연주자의 설명이 함께하는 진행으로 잊지 못할 감동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발라드 콘서트도 있는데요. 휘성의 발렌타인 콘서트 ‘휘쇼’가 오늘과 내일 이틀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립니다. ‘위드 미’ ‘결혼까지 생각했어’ ‘가슴 시린 이야기’ 등 그의 히트곡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힙합 팬들이 좋아할 힙합 뮤지션들의 합동공연 ‘블랙 발렌타인 콘서트’가 오늘 오후 5시 악스코리아에서 열립니다. 천재노창, 오케이션, 레디, 블랙넛, 키스에이프, 크루셜스타 등이 출연합니다. - 이번에는 영화소식 전해주시죠. ▶ 네, 행복한 웃음과 훈훈한 감동을 한 번에 전해주는 영화 ‘노엘의 선물’은 별나라에 있는 아빠를 만나러 가기 위해 산타의 썰매가 꼭 필요한 엉뚱 꼬마 앙투완과 빈집털이를 위해 산타로 위장한 허당 도둑의 특별한 하룻밤을 그렸습니다. 아이와 어른의 아름답고도 특별한 우정 이야기와 환상적인 파리의 야경으로 즐거운 볼거리와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보여지는 세상이 잔잔하게 다가옵니다. 을 탄생시킨 제작진이 함께 한 작품으로 알렉산더 코페르 감독이 메가폰을 들고 꼬마 앙투완 역에는 빅토르 카발이 허당 도둑 산타 역에는 타하르 라힘이 캐스팅 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70년대 포크송 열풍을 일으킨 음악감상실 ‘쎄시봉’의 주요 인물 조영남(김인권 분), 윤형주(강하늘 분), 송창식(조복래 분), 이장희(진구 분)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영화 ‘쎄시봉’입니다. 여기에 오근태(정우 분)와 쎄시봉의 뮤즈 민자영(한효주 분)가 참여하여 오근태의 잊지 못할 첫사랑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1960~1970년대 무교동 길거리를 활보했던 젊은이들의 패션 스타일을 선보일 영화 속 배우로는 김인권, 강하늘, 조복배, 진구, 정우, 한효주 등이 출연합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으로 잘 알려진 김현석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 한 주간의 문화와 공연 소식, 세계한류학회 황혜선 사무국장과 함께 알아봤습니다. 소식 고맙습니다. 김혜영2015.02.14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공항 도착[앵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4박 5일 동안의 공식적인 한국 방문이 시작됐습니다. 자세한 내용, 도재진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도재진 기자! [기자] 네! 1>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해 4박 5일 동안의 공식적인 방한 일정에 들어갔죠? 네. 프란치스코 교황을 태운 이탈리아 국적기 알리탈리아 항공의 셰퍼드 원 전세기는 오늘 오전 10시 15분쯤 서울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교황이 비행기에서 내린 시간은 10시33분쯤입니다. 비행시간은 1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는데요. 긴 비행시간이었지만 교황은 별로 지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항공기에는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교황의 주치의, 바티칸 경호원 등 교황청 수행단과 기자 등 약 100명이 함께 타고 왔습니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지난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이고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는 건 역대 세 번째입니다. 교황이 타고 온 비행기는 일명 세퍼드 원이라고 부르는데요. 성경 구절의 착한 목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알리탈리아항공 여객기에는 일등석이 없어서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석 밖에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석 첫 줄에 혼자 앉는 것이 교황의 유일한 특권이라고 합니다. 2> 서울공항에서의 교황 영접은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네. 교황은 전세기를 나오기 전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와 최종현 외교부 의전장의 짧은 기내 영접을 받았고 이후 교황은 환한 얼굴로 전세기 밖으로 나와 트랩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트랩 아래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으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박 대통령은 “짧은 방한이지만 편안한 일정이길 바란다”며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새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음속에 그걸 깊이 간직하고 왔다"며 “한국을 찾게 돼 기쁘고 박 대통령 배려에 감사하다”고 화답했습니다. 교황의 방한을 환영하는 예포 21발이 발사되는 가운데 교황은 남녀 화동으로부터 환영 꽃다발을 전달받았습니다. 의장대 사열 속에서 교황은 윤병세 외교장관 등 정부 고위 인사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어 교황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 서울대교구 조규만 총대리 주교 순으로 한국 주교단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또 국민대표와 가톨릭 대표, 소외계층 대표, 세월호 희생자 가족 등 모두 32명으로 구성된 평신도 환영단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눴습니다. 3> 교황이 평신도 환영단을 만날 때 그 자리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도 있지 않았습니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습니까? 네. 교황은 32명의 평신도 대표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악수를 했는데요. 그렇게 천천히 이어지던 교황의 발길이 멈춘 곳은 세월호 유가족들이었습니다. 교황은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오른손으로는 유가족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이야기를 듣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세월호 유가족과 희생자들에 대해 가슴이 아프며, 유족들의 아픔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유족들은 교황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며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0분 가까이 이어진 환영단과의 인사가 끝난 뒤, 교황은 준비된 준중형 차량의 뒷자리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난해 취임 이후 방탄차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고 방한 때도 작은 급의 한국 차를 타고 싶다는 뜻을 전했는데, 이를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교황은 차량에 탄 뒤 창문을 내려 손을 흔들며 다음 행선지인 교황대사관으로 떠났습니다.도재진2014.08.14
[초대석] 손성호 "1년에 한 번씩 독도에서 미사 봉헌할 예정"* 울릉도 도동성당 손성호 주임신부,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 발언] “한국교회 사상 최초로 독도에서 미사 봉헌” “울릉도와 육지에서 온 신자들, 의무경찰이 함께 미사 봉헌해” “독도가 난리의 중심이 아니라 평화의 중심이 돼야” “자신의 것을 돌려줄 때 진정한 평화가 실현” “1년에 한 번씩 독도에서 미사 봉헌할 예정” “생명을 존엄하게 생각하고 거룩하게 생각해야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어” [발언 전문]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성당이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울릉도 도동성당입니다. 지난 17일이죠. 도동성당 신자들이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해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번 독도 미사를 기획한 울릉도 도동성당 주임 손성호 신부님을 오늘 PBC 초대석에서 만나보겠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지난 월요일이죠? 독도에서 미사를 봉헌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독도에서 봉헌한 미사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요? ▶제가 부임하고 우리 도동성당 505년사가 있는데 찾아보니까 그런 기록이 없더라고요. 독도에서 미사를 했다는.. ▷다른 종교에서도 미사에서 예배를 본다든지 법회를 한 적은 없죠? 지금.. ▶제가 알기로는 없는 걸로 아는데 지난 6월에 개신교 연합에서 예배는 아니고 방문 차원에서 독도를 갔다 왔다고 들었습니다. ▷신부님, 독도에서 미사를 집전하시면서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네, 아직도 감동이 남아있습니다. ▷몇 명 정도나 미사에 참례했고, 미사 분위기가 여느 때와는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어땠습니까? ▶야외에서 하는 미사였고 독도 선착장에서.. 그리고 미사 참여한 사람들은 우리 신자들하고 육지에서 온 몇몇 신자들, 또 지키는 경찰 대원들, 의무경찰들 몇 하고 그렇게 참석했습니다. ▷60여분정도 참석하셨나요? ▶네, 그 정도 참석했습니다. ▷미사를 봉헌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미사를 봉헌하는데 특별히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군청에 협조를 얻었고 경찰청에 허가를 받아야하니까 입도가.. 그리고 가장 큰 게 일기가 문제였습니다. 날씨가, 날씨가 배가 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접안 시설이, 방파제가 없으니까 파도가 조금만 일어도 접안을 할 수 없으니까 독도에 내릴 수 없는 겁니다. 배가 한정되어 있으니까 65명이상 탈 수 없으니까 그 숫자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었으나 그 정도만 갈 수 있었습니다. ▷신자 분들이 다 못가셨네요? ▶네,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그 전에도 독도를 다녀오신 적이 있습니까? ▶예, 예. 관광차원에서 다녀온 적은 있습니다. ▷이번 독도 미사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어요? ▶독도 미사, 제가 본당에 부임한지 3년이 되는데 부임 할 때부터 발령받고부터 우리 관할구역인 독도에 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구에 보고를 하고 제가 추진을 했는데 3년 되는 지금에 드디어 이뤄지게 됐습니다. ▷교구장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잘 갔다 오라고, 그날 아침에도 보고를 드렸고 그 이전 추진할 때도 미리 보고를 드린 바 있습니다. ▷언론보도를 보니까 그날 독도 미사 때 강론을 통해 “독도는 독도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도가 됐던데요, 신부님 이게 어떤 뜻인가요? ▶독도는 난리의 중심이 아니라 평화의 중심이 되어야한다, 그런 뜻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늘 독도가 논란의 중심이 되는 게 아니고 정말 독도라는 말처럼 외로이 서있는 섬인데 너무 우리 생각대로 마음대로 흔드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독도를 흔들어봤자 독도는 독도 그대로 있을 겁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독도는 독도라는 말씀이 가슴이 와 닿네요. “진정한 평화는 정의의 실현에서 나온다”는 말씀도 하셨죠? 얼핏 듣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셨잖아요? 그때 하셨던 말씀과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그렇게 보이는데 신부님께서는 어떤 의미로 이런 말씀하셨어요? ▶우리 가톨릭 사회 교리가 평화의 실현은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 나눠주는 정의에 실현에게 기초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의 것을 빼앗거나 착취, 압재하는 것은 부정이기 때문에 평화를 깹니다. 필연적으로 평화가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자기의 것을 돌려줄 때 진정한 평화가 실현된다는 말씀이죠. ▷올해가 광복 70주년이기도 하지만 분단 70년이 되는 해 아니겠습니까? 지금의 남북관계를 보면 대화, 화합보다 대결과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인데요. 이런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이뤄져야한다고 신부님께서 생각하세요? ▶교황님 말씀대로 욕심을 버려야 되는 것이죠. 서로가 자기 것만 주장해서는 곤란하고 정말 다 내려놓고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대화하면 못할 게 없습니다. 우리 남도, 북도 같은 한민족인데.. 제가 그런 얘기, 강론 끝에 그런 얘기를 했는데 독도를 지키는 우리 5천만, 아니 7천만 국민이 함께 지킨다고 했는데... 사실은 우리가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말을 쓰는 나라도 통일을 하는데 같은 말을 쓰면서 같은 역사를 가지고 같은 민족이면서 이렇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교회의에서도 기도운동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신부님께서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저도 우리 본당 신자들에게 기도를 하라고 권유하고 저도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기도는 어떤 때 한번 일회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꾸준하게,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겁니다. 어떤 분위기를 탄다든가 이런 게 아니고 운동을 한다든가 이런 게 아니고 끊임없이 조용하게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기도를 해야 합니다. ▷독일의 예에서도 보면 기도를 통해서 통일이 됐다.. 그렇게 분석하는 분들도 많으시고요. ▶네, 그렇죠. ▷앞으로 독도에서 하는 미사를 정례화 할 계획이시라고요? ▶네, 독도 본래 저희가 처음에 부임했을 때 매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할 수 있도록 기도는 평화를 하는 기도는 끊임없이 하지만 특별히 우리 구역인 거기에 미사를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례화하면 좋겠다.. 그게 1년에 한 번씩 되면 좋겠다는 이런 바람인데 1년에 한번이 아니더라도 꼭 정례화되는 게 됐으면 좋겠다는 이런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보니까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1996년에 독도를 방문해 동백나무를 심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확인해 보셨습니까? ▶저도 가기 전에 보도를 통해서 봤기 때문에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울릉도에는 도동성당 외에 성당이 있습니까? ▶천부성당이라고 있습니다. 울릉도 주민이 만 명 정도 등록되어 있다는데 실제로 만 명이 되지 않고, 관할구역이 천부, 도동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천부에는 도동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신자들이 있고 도동이 그래도 많습니다. ▷도동성당에는 몇 분이나 계세요? ▶도동성당하고 천부성당 합해서., 성당에 실제로 나오시는 분들이 3백여 명 정도 된다고 보입니다. ▷천부보다 도동이 신자들이 조금은 많으신가 보네요. ▶한 2백여 명 정도 되고 거기는 백여 명도 안 되는... ▷두 성당 모두 역사가 꽤 깊다고 들었습니다. ▶예, 예. 우리 본당이 설립된 지 올해가 55년, 65년에 설립이 됐으니까, 그리고 천부성당은 내년에 50년이 되니까, 6년쯤 뒤에 설립이 됐는데 실제로 그 이전부터 1960년, 1950년대부터 신자들이, 혹은 수녀님들이, 혹은 신부들이 와서 미사도 드리고 세례도 주고 하다가 60년에 설립이, 공식적으로 본당 설립을 했습니다. ▷특히 도동성당은 신자 분들이 200여명 정도 된다고 하셨는데 무려 4명의 사제를 배출한 성당이라면서요, 도동성당이 걸어온 발자취가 상당한 것 같아요? ▶많은 수도자를 비롯해서 사제가 4명인데 3명은 대구 대교구 사재이고 베네딕토회 사제인데 지금 현재 박현동 아빠스가 우리 도동출신입니다. ▷그리고 도동성당에 특별한 성모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어떤 성모상인가요? ▶성모상이 성당 뒷동산 성당 지붕보다 훨씬 높은 동산에 독도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봉헌되어 있는데 본당 설정 50주년 일환으로 독도를 지키는 성모상을 2009년에 봉헌했습니다. 그래서 독도를 향해서 바라보는 방향, 유일한.. 우리나라에서 독도를 지키는 유일한 성모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신자 분들이 특별히 더 성모상 앞에서 정구하는 모습이 다른 성당 신자 분들보다 더 깊이 있게 다가올 것 같아요? ▶네, 네. ▷성당의 모습도 궁금해지는데요, 일반적인 성당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던데요? ▶많이 다르다기보다 오래된 성당이니까 리모델링을 할 때 성당 내 외부를 아름답게.. 특히 내부를 배 모양으로 오징어 배 모양으로 꾸몄습니다. ▷울릉도에서 오징어.. ▶교회를 흔히 세상을 향하는 배라고 비유하지 않습니까? 배 모양을 해서 천정에 오징어 전등 모습 그대로 전등을 달아놓고 배 모양 선장자리에 제대가 있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병이어를 상징하는 그림 같은 것도 있고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제대 앞에 오병이어 벽화가 있습니다. ▷독도를 관할 구역으로 둔 본당으로서 특별히 독도를 위해 본당차원에서 하는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다른 것보다 말씀드린대로 기도를 계속하고 특히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독도를 지키는 성모님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전 신자가 함께 하는 기도를 매년 합니다. ▷성모마리아님이 한국 교회에 주보성인이시잖아요? ▶그리고 우리 본당 주보성인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가 우리 본당 주보성인이니까요.. ▷최근 도동성당과 천부성당에서 ‘소울스테이’를 시작했다고 하던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템플스테이를 연상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는데요. 울릉도 올레길 체험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을 치유하는,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프로그램인데 천부성당하고 우리 성당이 포함됐습니다. 소울스테이 프로그램에.. ▷소울스테이로 울릉도에 머물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신청하면 됩니까? ▶독도탐방이나 울릉 야생화 등 육지하고 다른 신선한 자연, 깨끗한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신청은 사무실이나 홈페이지를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도 되어 있군요. 도동성당으로.. ▶도동성당으로.. ▷신부님은 도동성당 부임한지 3년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울릉도 생활이 내륙에서의 생활과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실제 살아보시니까 어떻습니까? ▶저는 참 좋습니다. 어떤 분들은 답답하다, 막혀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배가 다니지 못하는 날, 풍랑이 치는 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갈 수 없으니까.. 육지로.. 겸손함, 자연의 위대함,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고 특히 이번에 독도 미사도 3번이나 원래 연기가 됐거든요. 가려고 하다가 풍랑 때문에 배가 접안이 안 되고 출발이 안 되고 하니까.. 실제로 가는 날도 가서 미사 했는데 그 다음날 당장 배가 접안이 독도에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말, 서양 말이 있는데 `계획은 인간이 하지만 허락은 하느님께서 하신다` 그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신부님 개인적인 얘기 좀 여쭤보겠습니다. 1984년에 지금은 성인이 되셨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직접 서품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대구에서 5월 5일 날, 84년 5월 5일 날 서품식을 했는데 그때 제가 동기신부들하고 같이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31년째.. ▷그러면 지난해가 사제 서품 30주년 되셨군요? ▶30년 됐습니다. 천주교 200주년 기념으로 오셨지 않습니까? 저희들이 200주년 기념품 사제라고.. 농담처럼.. 231년 됐다는 것을 정확하게 압니다. 한국 천주교가.. ▷동기사제분들은 몇 분이나 되세요? ▶그때 서품 같이 받은 분들이 38분정도 되는 걸로.. 서울하고 대구 그때 2개 신학교가 있었는데 2개 신학교 같이 받는 바람에 많아졌습니다. ▷올해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명의 복음` 회칙이 발표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신부님께선 특별히`생명의 복음` 회칙에 대한 강의를 여러 해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또 신앙인들에게 `생명의 복음` 회칙이 어떤 의미,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생명에 대해서 너무 경시하는 풍조가 많습니다. 특히 제가 생명윤리를 전공했기 때문에 보면 낙태, 피임.. 그 다음에 이런 문제라든지 생명공학의 발달, 인공수정 이런 문제를 보면 생명을 그냥 우리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것처럼 아주 교만해져 있는데 실제로 생명에 대해서 결코 다 알지 못합니다. 특히 과학이 빠지기 쉬운 유혹이 환원주의 아닙니까? 어떤 하나 발견하면 그게 모든 걸 다 해결하고 설명하는 것처럼.. 절대로 인간이 어떤 부품이나 원소나 이런 걸로 대체될 수 없는데 그런 걸 모르고 정말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생명에 대해서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아주 교만한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데 실제로는 생명을 거룩하게 생각하고 진짜 존엄하게 생각할 때 우리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 보면 존엄사라고 언론에서 표현합니다만 안락사에 대한 위험도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네, 존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존엄사는 허용이 돼서는 안 됩니다. 말이 존엄사지 사실은 안락사나 갈 위험이 다분히 있습니다. ▷안락사의 위험에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자살도 마찬가지.. 너무 생명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으니까 자살이 높다는 불명예를 계속 안고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앞으로 도동성당 주임으로, 또 사제로서의 다짐과 각오,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저는 신품 받을 때 서품 성구를 정하는데 성경에서.. 저는 빌립보소 3장 12절을 선택한 바 있습니다. 거기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오로 사도가..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할 뿐입니다. 이 말씀대로 저는 하루하루 주님을 향해 달려갈 뿐입니다. ▷PBC 초대석, 오늘은 독도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울릉도 도동성당 주임 손성호 신부님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신부님 바쁘신데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김항섭2015.08.22
![[인터뷰] 이대로 "한강의 기적은 한글 덕분, 영어와 한자에 매달리지 말아야"](//cpbc.co.kr/CMS/news/2015/10/rc/597190_1.2_titleImage_1.jpg)
[인터뷰] 이대로 "한강의 기적은 한글 덕분, 영어와 한자에 매달리지 말아야"*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이대로 회장,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오늘은 569돌 한글날입니다. 한글이 창제돼 세상에 전해진 것을 기념하는 날이자,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과 우수성을 다시 생각해보게되는 날인데요. 한편으론 사회 곳곳에서 외래어나 은어 등이 만연하다 보니 우리말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어서 한글 수난 시대라는 이런 자조섞인 우려도 나옵니다. 그런가하면 지난달까지만해도 교육계에선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쓰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교육부가 결정시한을 내년 말로 미루긴 했는데, 여전히 논란 거리로 남아있죠. 오늘은 한글날을 맞아 우리 한글 사용의 실태를 점검해보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쓰는 한자 병기 논란에 대한 입장도 아울러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말살리기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이대로 회장 연결해 말씀 나눠봅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먼저 569돌 한글날을 맞는 소감이 어떠신지요? ▶정말 한글날이 가까워지면 일주일 전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그런데 한글날이 막상 지나고나면 허전한데요. 그래도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고 다시 공휴일이 된 다음에는 그래도 좀 바쁜 일이 있고 그래서 괜찮습니다. 그런데 한글날만 되면 이런 취재도 있고 많이 관심이 있는데 그 뒤에는 그렇지 않아서 1년 내내 한글을 걱정하고 사랑하고 빛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반성해보게 됩니다.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해보겠습니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글운동에 전념해오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네, 좀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1962년에 충남 예산농고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그때 1963년에 한글로만 쓰던 교과서를 한자혼용 병기하겠다고 발표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정책이 시행되기도 전에 저는 농고니까 농업 시간인데 농업 시간도 한자 시간이 되요. 말하자면 우리 예산이 사과나무가 유명하고 그런 교육을 받을 때 사과밭에 거름을 준다고 하는 것은 시비한다고 쓰고 또 사과나무 가지치기하는 게 있습니다. 그래야 사과가 잘 열리는데 그것을 전지한다고 한자로 써요. 칠판에 한자를 써요. 그러니까 농업시간이 한자시간이 되더라고요. 이것은 아니다. 그리고 제가 농고만 나와서 농사지을려고 했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열람해봤더니 저는 농과였는데 축산, 돼지 기르기 이것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양돈전서라는 것을 열람해보니까 일본책이에요. 다시 말해서 그 당시에는 우리말글로 된 전문서적이 정말 없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읽을 게 없어서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는데 자주 봤어요. 그때 한글 한자 논쟁하는 논단 글이 있어서 읽어봤더니 한자를 병기하고 혼용하자는 사람들의 말은 맞지가 않아요. 한글을 쓰는 사람들 말이 맞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고등학교 다닐 때 한글로 교과서로 공부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되니까 일반과목 시간이 한자시간이 되고 그렇다고 한자 공부도 제대로 안되요. 그리고 이렇게 책도 없고.. 그래서 정부는 학생들에게 한글을 사랑하자, 한글은 훌륭하다고 하면서 안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해서 제가 깨달았어요. 아, 이것 아니다. 대학에 가서 잘못된 정책을 바꾸는 국어 독립 운동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갖게 돼서 지금까지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그게 바로 1963년에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국어 독립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신거군요? ▶그때 뜻을 세우고 꿈을 가졌죠. 이번 박근혜 대통령 정부가 교과서 개편하고 똑같은 것을 반복을 한 것이에요.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는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때가 가장 어렵고 힘드셨나요? ▶제가 초기 60년대 그때는 거의 다 한자세상이었죠. 일반 생활도 선생님들도 그럴 때 한글 쓰자는 운동을 한다고 하니까 정신 나간 사람으로 봤고요. 부모님이나 가족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글 반대하는 한자 세력하고 싸우는 앞장 중심에 대학 때부터 섰는데 그들과 다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렇게 그 일에 매달리다 보니까 처자식이나 가정에 미안한 것, 그게 더 힘들고.. 제가 너무 수 십년 오랫동안 그 일을 남보다 세차게 해서 그런지 국어학자나 또는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까지도 저를 무시해서 마음 고생이 많았습니다. ▷국어학자 되시는 분들한테도 밉보이셨다고 할까? ▶자신들이 안 하는 일을 제가 하고 그것을 한 두해도 아니고 계속 하고.. 자기들도 저는 민족운동, 애국운동 차원에서 하니까 절실하게 느끼는 게 있어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냥 넘어가도 그 사람들은 한자혼용하고 해도 좋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 있었는지 그랬고.. 제가 한글 운동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저를 국수주의자, 배타적 민족주의자, 빨갱이니 종북세력이라고 하는데 마음 고생이 많았습니다. ▷실례지만 이대로 회장님 올해 연세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올해 나이로 예순 아홉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한 평생을.. ▶일생을 다 바쳤어요. ▷그리고 어렵고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컸을 것 같습니다만? ▶보람이 굉장히 크고 많았습니다. 완전히 한자로 교과서, 대학교과서, 신문 이런 생활을 하던 게 이제 대학 논문도 한글로 가고 한글 신문도 한글 전용하잖아요? 그런 일에 제가 중심에 앞장선 일입니다. 또 이제 국회 깃발이나 뱃지에 쓰는 한자, 한글로 바꾸는 일로 하고 국회의원 이름표도 한글로 바꾸는 일을 했는데 다 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죠. 한글날 공휴일에 빠진 것도 되찾았죠. 한글 박물관도 세우게 했죠. 서울시에 우리 한글 자랑하기 위한 관광지도 조성하자고 해서 사업도 하게 했죠. 너무 제 자랑 같아서.. 근데 하여튼 이제는 가슴 뿌듯하고요. 40년 전 초기에는 엄청나게 멸시당하고 제 이름도 이게 한글로 바꾼 이름입니다. 한글이름 표기 운동을 한 것이고.. 많이 비웃더니 요즘은 이름 좋다고 이렇게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얘기할 기회를 주고.. ▷요즘에 보니까 이름을 지을 때 보니까 우리글로, 한글로 짓는 분들이 꽤나 많아졌더군요? ▶네, 그게 우리 대학생들이 한글이름 표기 운동으로 뿌리를 내린, 시작된 일입니다. ▷민족운동 차원에서 한글을 지켜냈던 분들도 참 많으시죠, 한글날을 맞아 우리가 잊지않고 기억해야 할 분들, 어떤 분들이 계실까요? ▶일단 제가 모시는 분들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님도 제가 제 차로 모시고 국회도 다니고 했고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진짜 훌륭한 분을 제가 모시고 가르침을 받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님.. 타자기를 만드셨고 우리 요즘 컴퓨터로 다 글을 쓰잖아요? 한글 편집기를 개발, 한글과 컴퓨터 이찬진이라는 젊은 사람을 데려다가 연구시키고 가르쳐서 한글정부화, 한글기계화를 개척한 분인데 정말로 불쌍한 사람, 우리 국민을 위해서 몸 바치다가 돌아가셨어요. 50년 활동하셨고 국어학자가 아니에요. 민족운동 차원에서 한 분이에요. ▷공병우.. ▶우리나라 최초의 안과병원 개업을 하셨고 광복지에 서울에서 세금을 네 번째로 많이 내는 부자였어요. 그런데 그 돈을 전부 이런 한글기계화운동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것 이런 데 쓰신 유명한 분이에요. ▷제가 미처 몰랐다는 게 부끄럽고요.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YMCA 명예 총무로 지내신 전택부 선생님이라고.. 그 분도 제가 수 십년을 모셨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모시고 만들었는데 이 분도 참 한글학자도 아니면서 아주 훌륭한 인격자고 195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이 한글 파동을 일으킨 일이 있는데 뭐냐면 우리 한글은 마음대로 멋대로 쓰는 게 아니라 한글 맞춤법이 있고 규정이 있거든요. 그래야 하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제국때 성경에 소리나는대로 썼던 게 익숙해서 아 이것 한글파동이 난 게 있는데 전택부 선생님이 그때 사상계 주관으로 있었는데 잘못을 지적해서 바로잡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50년대부터 돌아가실 때 2008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국경일을 같이 제가 모시고 했는데.. ▷말씀하시니까 그때.. 그 분 얼굴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아주 인자하시고 이런 분들은 정말 우리 국민들이 본받아야하고 제가 그 분들을 모시고 가르침 받고 활동했다는 것이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제가 지금 하는 분이 그 분들이 못다한 일, 그런 뜻을 지금 실천하고 있는 겁니다. ▷국내에서는 정작 한글 수난 시대라는 얘기도 들리지만 한류 영향 때문인지 해외에서 한글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한글의 우수성, 어떤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까? 해외에서 한국어 열기와 위상은 어느정도인가요? ▶제가 1905년에 전택부 선생님 모시고 한글날 국경일로 만든 다음에 2006년 한글날 국경일 행사를 마치고.. ▷2005년 아닙니까? ▶2005년 국경일이 됐고 2006년에 첫 한글날 행사를 했어요. 제가 일본, 중국, 몽골에 한국어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그 일본도 가보고 중국 가보니까 대단해요. 중국이 더 대단해서 제가 그때 환갑이 지나던 해인데 나라 안에서 이만큼 했으니까 이제 한국어를 알리는 일에 나서겠다고 중국 절강월수에 2007년에 가서 교육을 했어요. 한국말을.. 처음에 조사할 때 보니까 열기가 있어서 갔는데 제가 갈 때 한국어학과 학생이 5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동안 있는데 1000명으로 늘어났어요. 그렇게 중국사람들이 인기가 있는 겁니다. 제가 그 학교에 태권도관도 만들고 한국문화 바람도 일으키기도 하고.. 한국 태권도를 체육과목으로 만들고 왔는데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중국문화, 중국 한문에 얼마나 목맸습니까? 근데 중국 학생들은 한국말로 배우고 한국을 한번 와보고 싶은게 소원이다라고 할 정도에요. 나라안에서는 영어 섬기기.. 그래서 제가 다시 되돌아와서 안되겠다, 그리고 공휴일을 당연히 해줄줄 알았는데 안해서 한글 방문의 날하고 한글날 공휴일 운동을 해서 다 해냈죠. 정말 답답해요. 우리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외국사람들이 그렇게 우리말을 좋아하고 가르치게 하고 하면 우리가 좋은 일이 거기에서 엄청나게 파생되는데 참 저는 답답할 뿐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스마트 폰의 확산으로 국적 불명의 언어와 문자, 은어와 비속어의 남용으로 한글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한글 사용 실태, 무엇이 문제하고 보십니까? ▶지금 그런 것이 젊은 사람들이 문제인데 그게 우리 정부나 학교 교육에서 우리 말이 얼마나 중요하고 한글이 훌륭한 것에 대해서 잘 가르치고 그런 환경을 만들지 않는 탓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 잘못이 아니라 제가 볼 때는 정부나 학자 이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잘못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봅니다. 제가 말로 한글을 사랑하자, 한글날이다.. 이런 것은 소용없다고 보고 바르게 쓰고 한글을 어떻게 잘 활용해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하느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공공언어부터 실태조사를 하고 개선책을 마련하자고 해서 지난 해 조사를 했더니 엉망이에요. 한자 일본 한자말 일본 어투도 있긴 있지만 거기다가 영어가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어요. ▷저도 방송을 진행하면서 되도록 외래어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어서요. 반성도 해보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한글날을 맞아서 올해도 ‘우리말글 지킴이’와 해코지하며 못살게 굴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뜻하는 `우리말글 헤살꾼’을 선정해 발표하셨다는데, 선정 내용과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먼저 우리의 운동을 설명하면 1997년에 그 전에 영어조기교육 바람, 한자 조기교육 바람이 불면서 우리말이 흔들리고 우리 말은 나라의 겨레 정신인데 우리 IMF에 경제 식민지가 됐잖아요? 영어 바람이 자꾸 늘어나서 안되겠다고 해서 돌아가선 이우독 선생님이 같이 우리말을 살리지 않으면 우리 나라가 안되겠다고 해서 모임을, 우리말 살리는 모임을 만들고 그 다음해부터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을 뽑았습니다. 근데 그때 훼방꾼은 한자말이라고 해서 헤살꾼으로 바꾼 것이고.. ▷헤살꾼이 우리 말이군요. ▶토박이말이더라고요. 그래서 벌써 99년도부터 했으니까 지금 거의 20년 가까이 해가죠. 그래서 올해 그 우리 토박이말을 살리고 애쓰는 분들 중심으로 한자말은 계속 쓰면 안된다고 해서 지킴이를 뽑고 영어문제, 한자도 있지만 영어를 너무 무분별하게 쓰는 사람이나 기업 단체를 헤살꾼으로 뽑았죠. 우리 으뜸 지킴이로 지금 잡지 같은 것을 보면 이름부터 전부 영문이에요. 그런데 어린이 잡지인데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이름도 우리말이고 그 내용을 보면 지금 한자 쓰자는 분들이 한자말이 70%라고 하잖아요. 그 책에는 5~10%도 안됩니다. 그래서 그 분들 일단 으뜸 지킴이, 그리고 으뜸 헤살꾼으로는 KT, SK 회사 이름도 영어로 바꿨지만 보도자료를 조사했더니 영어 영문 뒤범벅이에요. 그래서 이번 발표.. 그것을 우리 제가 같이 하는 한글사용성평가위원회 제가 회장인데 거기에서 했어요. 그렇게 나와서 거기를 으뜸 헤살꾼으로 뽑았죠. ▷다른 사안이긴 합니다만, 교육부가 오는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찬반 논란이 거세다보니 결정 시한을 내년 말로 미루긴 했는데, 논란의 불씨는 여전합니다.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쓰는 방안, 반대하시는 것인데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는데 제가 1960년대에 이 길에 들어선 게 그때 그렇기 때문이에요. 일본식 한자 병기 이것은 아니다라고 해서 운동을 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것을듣고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었잖아요. 그리고 한자, 한문은 중고등학교 한문 과목을 해야 제대로 교육이 된다.. 그렇게 했고요. 그렇게 잘해온 것을 이번에 그렇게 바꾸려고 했는데 사실은 광복 뒤부터 일본식민지 교육, 일본 한자 혼용 책으로 공부한 분들이 미 군정부터 이것을 반대했어요. 교과서 한자 전용과 공문서 한글로 쓰는 것을.. 일반 국민은 모르는데 제가 50년 할 때도 전쟁과 같았어요. 엄청나게 하던 것이 이번에 얼마 전에 98년도에는 김종필 전 총리가 중심이 돼서 공문서를 한자 병기하려고 했잖아요. 그때도 영정에다가 상에다 엄청나게 해서 막았고 이분들 제가 교육단체 한글단체 50여개 단체에 투쟁 본부를 만들어서 상임대표를 맡아서 잘못을 알려줬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국보다 일본이 뒤에 있습니다. 이것은 한글 한자 문자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민족의 생존, 국가까지 흥망 문제라고 보는 거에요. 막아야하고 교육부 분들이 인식을 했고.. ▷중고등학교에서 한문 과목을 배우는 것은 교과로 배울 수 있지만 초등학교 3학년부터 병기하는 것은 함께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인식하고 계신데 보면 우리말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로 되어 있으니까 우리말을 정확히 말하고 쓸 수 있는 것 아니냐,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측에서 이렇게 주장하는데요? ▶그렇게 계속 주장했어요. 그런데 한자말 70% 라는 게 전부 일본 식민지 때 길들이고 교육받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옛날 대한민국 말기에도 학교라는 말도 없었어요. 그래서 고종이 처음 만든 신식 교육기관 이름이 육영공원입니다. 그때 미국인 영어교사로 온 헐버트라는 분이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고 최초로 사회 세계지리 책을 한글로 사민필지라고 교과서를 만들었어요. ▷사민필지.. ▶백성과 선비이 꼭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하는 것인데 한글로.. 이 분은 주시경 선생 등과 함께 독립신문도 한글로 만들었고요. 독립운동을 한 분이 그때 그 분이 와서 보니까 영어 로마자와 같은 소리글자인 한글이 있는데 영문 로마자보다 좋다는 걸 알고 3년 만에 자기가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그게 사민필지요? ▶사민필지.. 이 분이 이런 글자를 만든 민족이라면 제 말글로 교육하면 중국 일본을 절대로 그들에게 눌리지 않겠다. 와보니까 공자 왈 맹자 왈만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열강의 침략하려고 하는데 미국이 군대가 얼마고 어떤 땅이 있고 힘이 있는지 세계 사회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그런 공부는 하지 않아서 영어 가르치러 온 분이 한글로 사회 지리 책을 썼어요. 그리고 독립운동을 같이 했어요. 그래가지고 주시경이라는 훌륭한 제자가 나왔고 제자를 키워서 대한제국 말기에 국어연구학회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지금 한글학회에요. 그 정신이 지금 오늘날 우리가 한글로 교과서 만들고 교육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고요. 광복 뒤 50년 만에 한글로 글자 생활하면서 문맹이 없는 나라가 되고 국민 지식 수준이 높아져서 경제와 민주주의가 중국 일본보다 더 빨리 발전한 거에요. 그래서 세계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다. 근데 한강의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니고 한글의 덕이죠. 우리 자주문화가 꽃펴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뻗어나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자꾸 영어 한자에 매달리는 것이고 바보짓이고 헐버트 선생이 하늘에서 한숨 쉴 거에요. ▷국어문화운동 실천협의회 이대로 회장의 말씀 들어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김혜영2015.10.09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123위` 복자 탄생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주례, 복자 칭호 부여 [앵커]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에 대한 시복 미사가 오늘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됐습니다. 시복 미사, 어떻게 거행됐는지 취재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윤재선 기자! (네) 1> 오늘 시복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124위를 복자로 선포하는 시복예식이라고 할 텐데요, 어떻게 진행됐나요? 네, 시복 예식은 참회 예식과 자비송을 바친 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안명옥 주교가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시복을 청원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이어 로마 한인 신학원장 김종수 신부가 124위 시복을 위한 로마 주재 청원인 자격으로 순교자들의 약전을 낭독했습니다. [녹취]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는 한국 교회 시작부터 우리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에 살아있는 초석입니다. 이 분들의 순교로 한국 초기교회는 더욱 많은 순교자를 낳게되었고, 복음 정신은 더욱 단단히 뿌리내렸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복 청원을 받아들여 시복을 선언했습니다. [녹취] “본인의 사도 권위로 가경자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로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에 그분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라고 교황은 선언했습니다. 교황의 시복 선언이 끝나자마자 제대 위에는 124위 복자화가 펼쳐졌습니다.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로 명명된 복자화는 가톨릭 미술 작가인 김형주 화백의 작품으로 가로 3m, 세로 2m의 유화로 그려졌습니다. 그림은 신약성경의 요한 묵시록에 기록된 하늘나라의 영광을 모티브 삼아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간 순교자들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안명옥 주교는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교황에게 시복 선언에 대해 감사 인사를 라틴어로 드렸고, 이어 안 주교와 김종수 신부가 교황에게 다가가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복식은 마무리 됐습니다. 교황이 순교자 124위를 ‘복자’로 공식 선포함으로써 한국 교회는 이들을 공적으로 공경할 수 있게 됐습니다. 2> 시복식외 미사 전례는 어떤 절차에 따라 진행됐나요? 네, 시복미사는 시복식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미사 전례 형태로 거행됐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미사에는 각 국에서 온 주교 60여명 등 주교 100여 명과 사제와 수도자 2천여 명, 신자 17만 여명이 참례한 가운데 질서정연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됐습니다. 미사는 입당 행렬로 시작됐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 한국주교단 대표단이 줄지어 제대를 향해 행렬을 하는 동안 순교자 찬가가 울려퍼졌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고,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과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공동 집전한 오늘 미사에서 교황은 강론을 제외한 나머지 전례는 모두 라틴어를 사용했고, 신자들은 우리 말로 기도를 바쳤습니다. 신앙고백에 이은 보편지향기도에서는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 등 3가지는 우리 말로, 그리고 대신학교 3학년 이훈 군이 교황과 주교,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한 기도를 영어로 바쳤고, 마리아 수도회 소속으로 중국인인 이홍근 신부가 박해받는 교회를 위해 중국어로 기도를 바쳤습니다. 말씀 전례에 이은 성찬 전례 시작때 서울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강지형, 김향신씨 부부 가족이 예물을 봉헌했는데, 이들은 20년 동안 첫 매상을 지구촌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부해 온 분들입니다. 이어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모시는 영성체 예식을 통해 하나됨을 기도했습니다. 영성체 예식 후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은 시복미사를 집전한 교황께 감사를 드리면서 한국 교회가 더욱 노력할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녹취] “이번 시복식을 통해 한국교회가 아시아와 세계복음화를 위한 빛과 소금이 되도록 노략하겠습니다. 순교자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더욱 복음화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더욱 봉사하며 그들과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오늘 미사는 하느님께서 신자들에게 축복을 내려주기를 기원하는 교황의 강복과 파견 성가를 부르는 것으로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윤재선2014.08.16

교황,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123위 `복자` 선포[앵커]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선조 124분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한 시복미사에서 성인의 이전 단계인 `복자`로 선포됐습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크나큰 영광이자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첫 소식,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된 시복미사 소식부터 알아봅니다. 윤재선 기자 나와 있습니다. 윤 기자! 1> 시복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역시 124위를 복자로 선포하는 시복예식이었죠,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네, 시복 예식은 참회 예식과 자비송을 바친 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안명옥 주교가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시복을 청원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안명옥 주교는 지극히 복되신 성하께 가경자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반열에 올려주시기를 겸손되이 청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로마 한인 신학원장 김종수 신부가 124위 시복을 위한 로마 주재 청원인 자격으로 순교자들의 약전을 낭독했습니다. [녹취]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는 한국 교회 시작부터 우리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에 살아있는 초석입니다. 이 분들의 순교로 한국 초기교회는 더욱 많은 순교자를 낳게되었고, 복음 정신은 더욱 단단히 뿌리내렸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복 청원을 받아들여 시복을 선언했습니다. [녹취-더빙] “본인의 사도 권위로 가경자 하느님의 종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로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에 그분의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교황의 시복 선언이 끝나자마자 복자 124분의 모습을 묘사한 대형 걸개그림이 펼쳐졌고 신자들의 환호가 울려퍼졌습니다.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로 명명된 복자화는 가톨릭 미술 작가인 김형주 화백의 작품으로 가로 3m, 세로 2m의 유화로 그려졌습니다. 그림은 신약성경의 요한 묵시록에 기록된 하늘나라의 영광을 모티브 삼아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간 순교자들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안명옥 주교는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교황의 시복 선언에 대해 감사 인사를 라틴어로 드렸고 이어 안 주교와 김종수 신부가 교황에게 다가가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복식은 마무리 됐습니다. 교황이 순교자 124위를 ‘복자’로 공식 선포함으로써 한국 교회는 이들을 공적으로 공경할 수 있게 됐습니다. 2> 시복식외 미사 전례는 어떤 형태로 진행됐습니까? 네, 오늘 미사는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 간소하고 소박하게 진행됐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미사에는 각 국에서 온 주교 60여명 등 주교 100여 명과 사제와 수도자 2천여 명, 신자 17만 여명이 참례했고, 광화문 광장 일대 주변엔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미사는 입당 행렬로 시작됐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 한국주교단 대표단이 줄지어 제대를 향해 행렬을 하는 동안 순교자 찬가가 울려퍼졌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고,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과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공동 집전한 오늘 미사에서 교황은 강론을 제외한 나머지 전례는 모두 라틴어를 사용했고, 신자들은 우리 말로 기도를 바쳤습니다. 신앙고백에 이은 보편지향기도에서는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 등 3가지는 우리 말로, 그리고 대신학교 3학년 이훈 군이 교황과 주교,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한 기도를 영어로 바쳤고, 마리아 수도회 소속으로 중국인인 이홍근 신부가 박해받는 교회를 위해 중국어로 기도를 바쳤습니다. 말씀 전례에 이은 성찬 전례 시작때는 서울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강지형, 김향신씨 부부 가족이 예물을 봉헌했는데, 이들은 20년 동안 첫 매상을 지구촌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부해 온 분들입니다. 이어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모시는 영성체 예식을 통해 하나됨을 기도했습니다. 영성체 예식 후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은 시복미사를 집전한 교황께 감사를 드리면서 한국 교회가 더욱 노력할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녹취] “이번 시복식을 통해 한국교회가 아시아와 세계복음화를 위한 빛과 소금이 되도록 노략하겠습니다. 순교자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더욱 복음화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더욱 봉사하며 그들과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오늘 미사는 하느님께서 신자들에게 축복을 내려주기를 기원하는 교황의 강복과 파견 성가를 부르는 것으로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네, 윤재선 기자였습니다. 윤재선2014.08.16
[초대석] 임성규 “채무자 대리인제도, 전체 금융기관으로 확대해야”* 서울시복지재단 임성규 대표이사,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 발언]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서울 시내 10곳” “25개 자치구에 상담센터 설치 목표로 서울시와 정책협의 할 것” “지난 2년 동안 모두 2만4천 건의 금융상담 수행” “개인파산 상담 만3천여 건, 전체의 55% 차지” “지난 2년 동안 채무조정 신청 천260건, 이 가운데 파산면책·개인회생 결정 673건” “서울중앙지법 내 전담재판부 설치, 파산면책 결정 기간 절반 이내로 단축” “채무자 대리인제도, 전체 금융기관으로 확대해야” “복지예산 과다하지 않아, 더 투자해야” [인터뷰 전문]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서울시복지재단이 운영하는 곳인데요. 지난 15일로 출범 2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오늘 에서는 서울시복지재단의 임성규 대표이사를 연결해,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의 역할과 그간의 성과, 또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임성규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십니까?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가 출범 2주년을 맞았는데, 짧은 기간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 같습니다. 당초 이 기구 설립의 취지와 그동안 해 온 활동을 좀 소개해 주신다면요? ▶가계부채가 통계로 보면 1100조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렇게 심각한 사회문제로 가계부채가 떠오른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하지만 빚을 지고 있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고 도울만한 공공기관이 없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울시가 이런 점에 착안해서 2013년 7월에 서울시복지재단 안에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를 설치했습니다. 저희 센터는 지난 2년 동안 금융 상담과 채무조정 지원을 비롯해서 채무자분들이 바로 서기 위해서 복지서비스까지 연계하는 종합적이고 다양한 금융복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 왔습니다. ▷그럼 현재 서울 시내에 이런 상담센터가 몇 군데나 개설돼 있고, 상담 인력은 어느 정도 배치돼 있습니까? ▶지난 2년 동안 우리 재단 안에 위치한 중앙센터가 있고요. 서울시청, 성동구청, 마포구청, 도봉구청, 금천구청, 영등포시장 등에서 지역센터 7곳을 운영해왔습니다. 이번에 송파, 중랑, 양천 등 3곳을 추가해서 모두 10개 상담센터를 갖추게 됐습니다. 각 센터별로 2명씩의 금융복지상담 전문가가 배치되어 있어서 찾아오시거나 전화로 문의하시는 분들께 전문적인 금융 상담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보면 경기가 계속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빚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은데 지금 가계빚때문에 고통 받는 저소득 시민들이 많기 때문에 상담센터 수나 상담인력이 좀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앞으로 추가 설치 계획은 세우고 계십니까? ▶그렇죠. 경제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라는 것이고요. 금리인상 등의 정책 변화가 생길 외부 환경 변화가 있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가계부채로 고통 받는 분들이 더 늘어날 개연성,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10개의 센터를 늘렸지만 앞으로는 25개 자치구에 모두 상담센터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서울시의 정책협의를 계속해나갈 계획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상담 건수도 상당히 많았을 것 같고요. 주로 어떤 상담이 많았습니까? ▶6월말 현재 통계를 보니 지난 2년 동안 모두 2만 4000건 정도의 금융 상담을 수행했습니다. 이중 개인파산 상담이 1만3000여 건으로 전체 상담의 약 55% 정도를 차지했습니다. 이런 숫자를 들으시면서 짐작하시겠지만, 정말 가계부채로 고통받는 분들이 우리 사회에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실 겁니다. ▷개인파산 상담이 55%.. 전체 절반 상담의 절반 이상이네요.. 설립 이후 첫 해, 둘째 해, 셋째 해를 비교하면 상담 추세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설립 첫 해인 2013년은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센터를 가동해서 4600건의 상담을 수행했습니다. 2014년에는 1만 건 정도, 올해는 상반기 동안에만 8400여건 정도의 상담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현재 추세를 고려하면, 올해는 전년대비 약 50% 정도 증가된 약 1만 5000건 정도의 상담이 이루어질 것으로 저희는 예상합니다. ▷물론 상담은 해주지만 상담을 한다고 모든 분들에게 다 해결책을 찾아줄 수는 없을 것이고요. 실제로 해결책을 찾은 사례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개인회생이나 파산면책 같은 채무조정을 원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죠. 그렇지만 저희가 모든 분들의 요구를 다 들어드릴 수는 없다고 봅니다. 센터의 전문상담사들이 상담한 뒤에 채무조정 신청이 적절하다라고 판단되는 분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조정신청을 지원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모두 1260건 정도의 채무조정 신청을 지원해드렸고요. 이중에 673건의 파산면책이나 개인회생 결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탕감된 가계부채가 무려 약 1300억원 정도가 됩니다. ▷전체적으로 크지 않은 돈일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 보면 도움이 많이 된거죠? ▶예, 예. ▷실제로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 면책을 통해 가계부채 탕감으로 연결된 사례를 한두 가지 소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개인파산 결정을 받은 사례를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강서구에 사시는 69세의 여성분인데요, 이분은 친구와 함께 찜질방을 동업하다가 친구가 돈을 챙겨서 도망을 가버리는 바람에 약 8500만원 정도의 부채를 떠안았습니다. 이 분은 간병인, 파출부 등을 하면서 열심히 빚을 갚았습니다. 그러다가 간경화, 위궤양, 골다공증 등의 지병을 얻었고, 저희 상담센터를 방문하셨을 때는 치료조차 못 받는 아주 딱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도와드려서 파산면책 결정을 받으셨습니다. 두 번째는 30대 초반 젊은 여성이 개인회생 결정을 받은 사례입니다. 이 여성은 어머니 채무를 7000만원을 떠안고 있었는데요, 이 때문에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가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저희 센터를 찾아왔습니다. 이분은 저희 센터 상담사의 조언에 따라서 마트에 취업한 뒤에 자신의 월급 100만원 중에서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의 150%인 90만 5150원을 제외한 9만 4895원을 총 60개월 동안 갚겠다라고 변제계획을 수립한 뒤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결국 법원에서 매달 13만원씩 60개월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개인회생 결정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위기에 몰린 저소득층이 채무조정을 신청하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지 않습니가? 막연하게 어려울 것으로 짐작하고 자포자기에 빠지는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 같습니다. 채무조정의 종류라든지, 신청 방법을 좀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채무조정은 개인파산면책, 개인회생, 워크아웃 등으로 나뉘는데요. 파산면책과 개인회생은 법원에 신청할 수 있고 이자뿐만 아이라 원금까지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또 워크아웃은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청하는데요, 이자를 감면받고 장기간 분할 납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제가 지금 간단하게 설명을 드렸지만 실제 당사자가 되면 엄청 복잡하게 느껴지고 당황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채무조정이 필요하신 분은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저희 금융복지상담센터에 연락하시는 게 낫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센터를 찾으시면 언제든지 무료상담을 받을 수 있고, 가능한 조정절차를 지원받으실 수 있습니다. ▷찾아라 그럼 열릴 것이다.. 성경 구절도 있는데요. 채무조정 같은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비용이 들어갈 텐데요, 이마저도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많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부분도 지원이 되나요? ▶예. 채무자가 법원에 파산면책을 신청하면 판사가 관재인을 선임합니다. 채무자의 재산 상태를 조사하고, 파산절차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관재인이라고 합니다. 이 분들에게 30만원쯤 되는 선임비를 납부해야 됩니다. ▷이걸 채무자가 납부해야되는군요? ▶사실 이 돈조차 마련하기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이 있죠. 그래서 최저생계비 170% 이하인 분들에 한해서 이 선임비를 저희 센터에서 채무자에게 지원했었습니다. 직접 지원했었지만 최근에는 지원방식을 아예 바꿔서 센터가 법원에 직접 대납할 수 있도록 서울중앙지방법원과 합의를 했습니다. 시민의 불편이나 불안을 최대한 해소해드리자는 차원에서 그렇게 법원과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이건 행정 자체가 서비스 아니겠습니까? ▶예, 예. 그렇습니다. ▷번거로운 절차를 없애고 고객들한테 이렇게 해주는 게 잘하시는 일 같고요. 일반적으로 보면 개인파산, 개인회생 신청을 해도 결정을 받아내기가 상당히 어렵고,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하고요.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를 통하면 좀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을까요? ▶이 또한 서울중앙지방법원하고 저희가 작년 초에 합의한 것인데요. 서울중앙지법 내에 우리 센터가 의뢰한 채무조정 신청을 전담하는 전담재판부를 두게 했습니다. 그래서 파산면책 신청을 접수하면 면책결정까지 빠르면 3개월 이내, 늦으면 5~6개월 안에 완료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보통 파산면책 결정을 받는데 1년 정도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내로 단축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종의 신속처리 절차라고 봐야겠네요? 영어로는 패스트 트랙이라고도 하던데.. 이게 신속처리 절차가 이렇게 된 이후에, 운영 이후의 성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시간이 단축되면서 그만큼 채무자들의 고통과 스트레스가 많이 경감되죠. 그래서 서비스만족도도 상당히 높아졌다는 걸 센터에서 피부로 느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 약 1300억원의 가계부채 탕감 효과도 이런 패스트트랙이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 지자체 처음으로 무료 채무자 대리인 서비스를 시행해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어떤 서비스이고 그간의 성과는 어떤지요?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채권 추심자가 직접 채무자에게 찾아가서 돈을 추심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았죠. ▷사실 채무 독촉 당해본 분들은 세상 살기 싫다고도 말씀하시잖아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 채무자 대리인제도가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 정해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리인을 선임을 하고 그리고 채권추심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한 경우에는 채무와 관련해서 채무자를 방문하거나 채무자에게 말이나 글이나 음향 또는 영상 이런 물건을 도달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게 됐습니다. 이 법이 시행된지 작년 7월 15일에 시행이 됐으니까 1년하고도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시행하고나서 138건의 채무자 대리인 서비스를 지원했습니다. 채무자 대리인을 신청한 분들을 분석해보니 대부업체 3~4곳 정도 생계자금을 대출했다가 갚지 못해서 추심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채무자 대리인 서비스를 통해서 파산 신청을 55%, 개인회생 19%, 개인 워크아웃 18%, 변재 6% 등의 채무 조정을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대부업체 추심원들이 제도를 몰라서 당황하거나 반발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현재는 제도를 잘 인지하고 따르고 있죠. 그래서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부 우려와는 달리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거의 없다.. 근데 저희들이 봤을 때 이것이 지금까지 대부 업체로 한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사실 이게 채무자들에게는 은행도 있고 보험사도 있고 증권사도 있지 않습니까? ▷돈 빌리는 데가 대부업체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대부업체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전체 금융기관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지자체도 서울시의 예를.. 뭐라고 할까요?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은데 확산 효과가 있습니까? 다른 지자체에도.. ▶저희가 먼저 시행하고 나서 성남시라든지 여타의 시에서 저희들 사례를 볼려고 하고 있고 있습니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출범 2주년을 맞아, 앞으로 금융상담학교 운영 계획을 밝히셨는데,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저희들이 봤을 때 가계부채가 어느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전체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가고 있고 그래서 건강한 가정 경제를 꾸리고, 가계부채로 위기상황에 빠지는 경우를 사전에 최대한 막기 위해서 저희들이 금융 상담학교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는 공무원과 사회복지 종사자를 상대로 금융교육과 상담을 위한 커리큘럼을 운영해서, 시민과 직접 만나는 이들이 1차적인 금융상담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가계부채 문제를 사전에 어느 정도 예방하는 효과가 생기지 않겠느냐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하고 있는 다른 일도 좀 알아볼까요? 금융복지상담 외에 또 어떤 분야가 있습니까? ▶서울시복지재단은 서울시가 2003년도에 출현해서 만든 복지전문기관입니다. 서울시 복지정책을 개발하고, 정책을 연구하는 등의 Think Tank의 역할이 있고요. 사회복지 현장을 지원하고 우리 서울에서의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시범사업을 주관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재단은 서울시의 복지행정을 정책과 실천 양면에서 다각도로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를 좀 여쭙고 싶은데요. 지금 복지 지출 구조 조정을 통해서 복지 전달 체계를 효율화하는 쪽으로 정부는 그렇게 정책의 방점을 찍고 있구요. 야당에서는 증세없는 복지로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해선 법인세 인상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임 대표께선 어떤 생각을 좀 해보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할 때는 사실 많은 예산 중에서 복지로 지출되는 부분이 많지 않습니까? 여러가지 복지 예산이 늘어나고 있지만 사실 온 국민들에게 직접 체감되는, 피부적으로 느끼는 복지는 아직은 되지 않았다라고 판단합니다. 그것은 뭐냐면 복지가 예산이 적절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체감할 수 있는 예산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제가 봤을 때는 복지 예산이 아직까지는 과다하다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저는 아직까지는 좀 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지 부분을 투자로 인식해서 복지 예산이 배분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와 국민들간의 신뢰라고 하는 것이 회복될 필요가 있고 그 차원에서 목적세로서 사회복지세가 도입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제가 제일 먼저 내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2012년에 취임하셔서 3년 임기를 마치고, 연임하셨는데, 앞으로 서울시복지재단의 운영 방향과 발전계획을 어떻게 잡고 계십니까? ▶먼저는 복지사각지대를 줄이고 모든 시민이 또한 복지의 주체로 설수 있도록, 권리로서의 복지를 맘껏 누리고 그래서 서울시민들의 복지 체감도가 올라가는 그러한 서울시를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 오늘은 빚에 몰린 저소득층의 금융도우미 역할을 해온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출범 2주년을 맞아, 이 센터를 운영하는 서울시복지재단의 임성규 대표를 모시고, 말씀 나눴습니다. 앞으로도 고통받는 서민들의 도우미 역할을 충실히 해 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예. ▷임성규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김성덕201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