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경청·식별의 ‘시노드 여정’ 충실히 이어간다2023년 한국 천주교회는 한국 교회는 새해에도 시노드의 길을 계속해서 충실히 걸어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해 6월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봉헌된 교구 단계 시노드 감사 미사로, 이 미사에서 시노드 참가자들이 봉헌한 교구 시노드 종합 문서와 4만 건의 시노드 의견, 본당 단위 종합 의견서, 52개 시노드 제안 종합 보고서가 제대 앞 왼쪽에 놓여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2023년 새해 계묘년, 전례력으로는 가해, 한국 교회는 또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새해 또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복음화’를 향해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열정과 방법, 표현에서 새로운 것이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새로운 복음화’의 골자다. 4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19 팬데믹은 최근 들어 다소 잦아들었지만, 세계보건기구(WTO)는 코로나가 주기적으로, 지역적으로 계속해서 발병하는 엔데믹(Endemic)이 될 것 같다는 우울한 경고를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고 쇄신하면서 복음 선포의 근본 사명을 실천하는 복음화의 여정을 멈출 수 없다. “믿는 이들에게 ‘출발’하도록 촉구하시는”(「복음의 기쁨」20항) 하느님을 기억하며 선교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일어나 가야”(요한 14,31) 한다. 이를 위해 전국 교구장 주교들이 발표한 2023년 사목교서를 통해 제시한 새해 한국 교회의 비전과 사목적 과제, 교회 안팎 현안에 대한 교회 차원의 고민과 대응, 나아가 보편 교회의 사목적, 선교적 흐름까지 살핀다. 포스트 코로나, 계속되는 ‘새로운 복음화’ 지난 3년간에 걸친 코로나 팬데믹은 지구촌에 거대한 변화의 파고를 일으켰다. 감염증의 전 세계적 확산과 함께 일상의 제약과 경제적 타격을 감내해야 했고, 신앙생활도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이 같은 상황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팬데믹 이후 변화된 사회에 대처하고 참다운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로 바꿔가기 위해 교회가 먼저 변해야 한다”면서 “이제 우리 신앙생활도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고 주문한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도 “그동안의 충격이 너무나 컸기에 일상생활뿐 아니라 신앙생활도 예전 같은 활기를 찾기에 큰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신앙과 공동체 회복을 주문한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는 코로나19의 여파 속에서도 서서히 ‘복음화를 위한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당부한다. 아울러 오는 2037년 교구 설정 100주년을 내다보며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새로운 복음화’에 나섰고, 이를 위해 ‘하느님의 말씀’(2019년), ‘교회의 가르침’(2020년), ‘성찬례’(2021년), ‘기도생활’(2022년)에 이어 새해의 사목 방향은 ‘사랑 실천’에 뒀다. 시노드 후속 ‘시노드 교회의 모습으로’ 2021년 10월부터 시작된 한국 교회의 교구 차원 시노드는 지난해 8월 교황청에 한국 교회 차원 종합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일단락됐고, 대륙별 시노드를 거쳐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는 2023년 10월에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총회를 2023년 10월과 2024년 10월에 두 차례 세션으로 나눠 열기로 함에 따라 세계주교시노드는 연장됐다. 이에 따라 한국 교회는 새해에도 시노드의 여정을 계속해서 충실히 걸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시노달리타스의 삶에 방해되는 요소를 극복하면서 친교 영성을 드러낼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데 노력하자”고 권면했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도 “올해도 시노드의 길을 모두가 함께 걸어가면서 경청과 대화를 통해 우리 안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시간을 보내시기 바란다”고 당부한다. 문창우 주교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시노드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식별의 단계를 제안하고자 한다”면서 “식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지만, 식별의 의미를 교구의 현실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소공동체’의 모습으로 전달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옥현진 대주교도 “시노달리타스를 일회성 행사가 아닌 우리 교구의 교회론이요 문화로 만들어가도록 노력하자”면서 △본당별 하느님 백성과의 대화 △젊은이에 대한 관심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 등을 주문했다. 말씀과 기도, 성사생활 등 기본에 충실하자 신앙의 기쁨을 되찾기 위한 시도도 계속된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신앙의 기본 신심을 늘 실천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생활을 습관화하며 △시노드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자고 권고한다.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도 은총의 원천인 성사생활의 회복을 첫 번째로 강조하고, 신앙 성숙을 위한 성사생활과 일상의 기도생활이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일상 중심의 신앙 실천 △자기 주도적 신앙 실천 △통합 소통환경 구축 등을 2021∼2023년 사목 실천목표로 정해 매일 성경읽기와 묵상, 기도생활, 가정 성경 필사와 성지순례, 가정기도 등 신앙 프로그램에 함께할 것을 간곡히 권면한다.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는 “지난해 사목지침에서 우리가 선물로 받은 ‘신앙과 성체, 말씀’의 은총을 바탕으로 새해는 ‘친교와 말씀의 해’로 지내겠다”면서 △하느님과의 친교 △이웃과 친교 △세상과의 친교 △청소년의 해 준비 등을 실천사항으로 제시했다.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는 “신앙선조와 순교자들의 삶에서 배우고 믿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자”고 당부했다. 마산교구장 서리 신은근 신부는 “내적 쇄신이 나무라면, 기도생활은 뿌리”라며 매일 기도와 본당공동체 기도, 묵주기도에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통해 기후 변화에 대응생태적 회개를 통한 공동의 집 돌보기와 교회에서의 생태적 삶을 실현하기 위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동참은 한국 교회 전체의 공통 사목 과제다. 특히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우리는 무엇보다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와 사람들의 생태적 회개를 위해 끊임없기 기도해야겠다”면서 “‘생태적 악’에 대항하여 절제와 절약을 현대적 금욕생활의 수칙으로 삼아달라”고 호소했다. 이기헌 주교도 “지금 요청되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사목은 기후 위기와 생태환경 보호에 관한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생태환경 보존과 개선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교구 공동체에 말씀 살기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살기를 재차 권고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12.27
![[창간 35주년 기념사] 35년의 기억, 새로운 희망의 다짐](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5/09/hZc1683622119653.jpg)
[창간 35주년 기념사] 35년의 기억, 새로운 희망의 다짐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시몬 신부 cpbc 사장 조정래 신부 긴 단절의 터널을 지나서인지 유난히 반짝이는 5월입니다. 이 좋은 계절의 상쾌한 공기와 맑은 하늘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살아있음을 한층 더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간 움츠러들었던 많은 활동과 행사, 모임이 재개되고 세상은 다시 활기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맑은 햇살 아래 가득한 화사한 웃음들이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계절의 중간에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이 창립 35주년을 맞았습니다. 항상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이 계절에 탄생의 마음을 되새길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지금, 우리의 신앙은 아직 비대면의 터널에서 다 탈출하지 못한 듯합니다. 얼마 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발표한 ‘한국천주교회 통계 2022’에 따르면,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미사 참여율이 가톨릭 신자의 11.8%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 비해 64.7%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혼자의 깨달음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관계와 사랑의 나눔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미사 참여율뿐 아니라 여러 신심 단체, 주일학교, 신앙 모임 등이 활력을 다시 찾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은 1988년 신문 창간으로 그 역사를 시작한 이래 세상에 그리스도의 가치를 전하고 가톨릭 신자들이 삶 속에서 신앙을 놓치지 않도록 독려하며 가톨릭교회 사목의 보완재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미사, 전례, 기도로 우리가 따르기로 했던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 그 초심을 기억하게 하고 성경, 영성, 교리, 역사 등을 통해 그를 깊이 알게 하며 신앙체험, 신앙인의 삶, 성인, 사회교리 등을 다룬 콘텐츠로 그를 따라 살도록 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항상 신자들의 요구에 만족스럽게 부응하진 못했고 부족한 부분도 많았습니다만, 저희 cpbc는 35년간 끊임없이 주님의 소명에 응답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팬데믹 이후 달라질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1년여의 준비 끝에 올해 3월 출시한 ‘cpbc플러스’도 저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의 결과입니다. ‘cpbc플러스’는 가톨릭의 ‘넷플릭스’를 지향하며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 등을 통해 가톨릭 콘텐츠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신문, 라디오, TV에 이은 cpbc의 네 번째 매체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좀 더 편하게 신앙을 더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해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홍보 주일 담화에서 전 세계 언론인과 미디어 종사자들을 향해 ‘사랑의 마음으로 말하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잘 전하는 것은 사랑을 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번에 ‘cpbc플러스’가 개발되면서 저는 지난 35년간 저희 직원들이 만들었던 수많은 콘텐츠를 다시금 만나게 됐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말’ 안에 가득히 담긴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이 많은 분에게 전해져서 삶과 신앙을 가깝게 하고 교회의 사목에 도움을 주어왔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희는 cpbc 구성원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도록 하는 일에 좀 더 역량을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를 통해 영적인 허기에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위기의 교회에 ‘희망’이 되도록 직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의 손을 꼭 잡아주시고 함께 걸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cpbc2023.05.08

하느님 부르심 받은 그때의 열정 마음에 새겨16일 전국 교구 사제 성화의 날 미사 봉헌, 사제 직무 묵상하고 착한 목자의 삶 다짐전국 교구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인 16일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미사와 행사를 개최하며, 사제 사명을 되새겼다. 서울대교구 사제 성화의 날에 교구 사제들이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서울대교구는 16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사제 성화의 날 행사를 열고, 교구 사제들이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제 사명과 직무를 묵상하고,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교구 사목 사제포럼 소개와 성체 조배와 기도, 교구장과의 시간, 사제서품 은경축 축하식 순으로 진행됐다.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사제란 누구인가?’라는 주제 미사 강론에서 “사제는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맡겨주신, 성사를 집행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다시금 일깨웠다. 이어 “사제들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는 사제들을 통해 교회와 신자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신다”며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소중한 소명을 다시 한 번 음미하고, 부르심을 받들어 가슴 벅차오르게 응답했던 그 체험과 열정을 기억하자”고 당부했다. 서울대교구 사제 성화의 날 미사에서 교구장 정순택 주교와 주교단이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미사 후에는 올해 사제수품 25주년을 맞은 사제 17명을 위한 축하식도 열렸다. 대표로 소감을 밝힌 신희준(제18 양천지구장 겸 양천본당 주임) 신부는 “사제생활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을 비롯해 사제, 수도자, 신자들의 기도와 격려 덕분”이라고 말했다. 수원교구도 이날 남양성모성지에서 2023 사제 성화의 날 행사를 마련했다. 교구 사제단은 형제적 친교로 서로 섬기고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성체성사 안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한 성체신비 공경예식을 거행하고 있다. 수원교구 제공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오늘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 것은 사제들의 형제적 마음과 사랑을 나누기 위함”이라면서 “오늘 복되고 의미 있는 하루를 지내면서 예수님 마음을 닮아 사목 현장에서 교우들에게 풍성한 은총과 사랑을 주는 사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용훈 주교를 비롯해 총대리 이성효 주교, 교구장대리 문희종 주교,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와 사제 400여 명이 참여했다. 인천교구 또한 16일 교구장 정신철 주교 주례로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대성당에서 사제 성화의 날 미사를 봉헌했다. 정 주교는 강론에서 “우리가 사제직 본래 모습에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모두가 신앙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됨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진실한 사제직의 모습만이 점차 신앙에 무감각해지는 이 세상에 복음의 귀함을 알려주는 징표”라고 강조했다. 정 주교는 또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묵상하지 않아도 강론하거나 사제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유혹처럼 다가올 때, 사제직의 본질은 무너진다”며 “사목자가 자신의 영혼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가 하는 사목은 사목일 수도 없고 성직 수행도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금경축 행사를 치른 인천교구 (왼쪽부)노동한·조성교·이준희 신부가 교구장 정신철 주교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변훈 인천교구 홍보기자 인천교구는 미사 후 사제수품 50주년을 맞은 이준희·조성교·노동한 신부의 금경축 행사도 열었다. 세 원로 사제는 “남은 삶도 주님을 위해 봉헌해 오롯이 사제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전주교구도 같은 날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사제 성화의 날 행사를 열었다. 교구 사제들은 사제로서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충실히 수행하고 성덕을 쌓고자 다짐했다. 전주교구 사제 성화의 날 행사에서 김선태 주교 주례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전주교구 홍보국 제공 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하느님께서 부족한 나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 우리의 우선적 사명이며, 직무 수행의 우선적 과제”라며 “모든 사제가 하느님의 주도권과 권위를 언제나 인정하고, 하느님의 선택에 늘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미사 후에는 사제수품 25주년을 맞은 사제 3명의 축하식이 열렸다. 김병희(둔율동본당 주임) 신부는 “죄 많은 저희를 끊임없이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또 앞으로 저희에게 다가올 수많은 미래의 일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드리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고 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도재진2023.06.19

추석 연휴, 좋은 책 읽으며 신앙도 튼튼하게! 독서의 계절에 긴 추석 연휴까지 더해졌다. 다채롭고 흥미로운 주제의 도서들에 마음을 빼앗겨 보면 어떨까.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희망의 기도 / 프란치스코 교황·에르난 레예스 알카이데 / 이재협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성경은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인류가 사라질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방주에 오르라고 말씀하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날 위험은 그 당시보다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전쟁, 전염병, 경제 위기와 환경 위기는 세상을 뒤흔드는 폭풍우 치는 바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또한 이 위험은 우리를 기다리는 거대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인 형제애의 배에 모두 함께 올라탈 것을 요청합니다. 과장 없이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형제애는 우리의 미래를 이끌 유일한 운송 수단입니다. 만약 우리가 미래를 원한다면 말이죠.”(218쪽)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10주년을 기념하면서 그간 그가 강조했던 10가지 핵심 메시지를 정리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희망의 기도」가 출간됐다.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이자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인 그는 지난 10년 동안 세계 평화와 교회 일치 및 개혁을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연설과 담화를 발표했다. 교황은 이 책을 통해 학대, 환경, 언론, 정치, 건강, 전쟁, 이주민과 난민, 여성 문제 등 교회 안팎의 다양한 문제를 다시 한 번 꼬집는다. 또 인간이 벌인 세상의 모든 심각한 문제를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있으며, 인류가 한배를 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희망의 길로 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여러 통계와 자료, 예술가나 사상가의 말, 교회 교리와 역대 교황의 가르침도 인용해 글은 더욱 흥미롭고 풍성하게 전개된다. “이제 작업을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독일 시인 릴케는 새로운 일에 착수할 때 영감을 주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겼습니다. ‘이제 눈으로 할 일은 끝났다. 이제 마음의 일을 시작하라. 네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 일을.’ 자, 이제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 열 가지 요청을 널리 알리는 일에 여러분도 저와 함께해 주시길 부탁합니다.”(‘들어가는 말’ 중에서) 계절과 음표들 / 최대환 신부 / 책밥상 “덕 윤리학과 문학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모범적인 예는 영국의 작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입니다. 이 고전문학 작품에서 우리는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통해 ‘살아 있는’ 덕 윤리학을 만나고 배울 수 있습니다. ‘덕을 수확하는 가을’에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중략) 독서에 어울리는 근사한 ‘배경음악’으로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오만과 편견’(2005)의 영화음악 앨범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음악을 맡은 다리오 마리아넬리는 낭만주의 클래식 음악과 깊은 친화력을 가진, 깨어질 듯 애잔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영화 음악 작곡가입니다.”(56쪽) 문학, 음악, 그림은 물론 아티스트와 등장인물, 작품과 인물의 배경이 된 지역까지, 읽고 감상할 거리가 풍성한 책이 나왔다. 최대환(의정부교구,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지성교육 담당 및 의정부교구 담당) 신부의 「계절과 음표들」. 뮌헨 예수회 철학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가 문화와 예술을 철학으로 엮고 계절에 담아 책으로 펴냈다. 계절에 대한 사유와 묵상은 물론 고전 문학에서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 클래식에서 팝, 교회 안부터 세상 속, 서양에서 동양까지 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의 방대한 취향이 묻어난다. 내가 떠난 새벽길 / 한수산 / 생활성서사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와 최양업 신부가 걸었던 신앙의 여정을 다룬 한수산(요한 크리소스토모) 작가의 순례기가 출간됐다. 바로 「내가 떠난 새벽길」. 책은 100년의 시간을 훌쩍 넘겨 두 사제가 걸었던 길은 물론, 작가가 직접 찾아간 시완쯔와 마찌아즈 교우촌, 롤롬보이의 오늘날 등을 품는다. 또 신학생 최양업과 함께했던 김대건, 최방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저자가 순례길에 만난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담고 있다. 신앙 선조들은 물론 저자의 여정에서도 희망과 설렘이 예상치 못한 난관과 사고에 부딪히고, 그럼에도 또 이어져 나름의 열매를 맺는 모습에서 신앙의 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생으로 마카오로 향하는 소년들이 건넜을 그 강이 흐르고 있다. 그때의 그 나라도 가고 사람도 갔는데 강물만 남아 있다. 거기에 이념이라는 이름의 갈등이 덧씌워지고, 먹고 살자는 경제만이 번들거린다. 산도 물도 다 옛것이 아니다. 흘러간 세월은 저 강물처럼 깊고 어둡다. 거기 망각과 침묵이 두께를 가늠할 수 없이 가라앉아 있다.”(127쪽) 한수산 작가는 세종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여러 작품 활동을 통해 가톨릭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집중력 설계자들 / 제이미 크라이너 / 박미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집중력 설계자들’. 제목만 보면 자기계발서 같지만, 찬찬히 책장을 넘겨보면 ‘집중의 선배’인 중세 수도자들의 이야기이다. 산만함은 현대인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TV를 없애고 SNS를 끊고 유튜브를 지워도 또다시 너무 쉽게 산만해지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집중’을 구원의 문제로까지 여겼던 수도자들이 한 수 알려준다. “일부 은수자는 동굴이나 텐트, 심지어 허허벌판에서 잤다. 마케도니우스(Macedonius)는 어디를 가든 땅에 구멍을 뚫고 사는 것을 선호해 ‘구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른 은수자들은 마을 변두리, 교회나 수도원의 탑, 빈 수조의 바닥에 거주했다. 심지어 음식물을 제공받을 도르래가 달린 기둥 꼭대기에서도 살았다.”(1장 ‘세상’ 중에서) 미국 조지아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인 저자 제이미 크라이너는 1500년 전의 중세인들도 산만함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수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그들은 대부분 혼자 살거나 일상적 대화마저 억제하는 수도원에서 살았는데도, 끊임없이 주의가 흐트러졌다. 그래서 누구보다 산만함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고, 집중하고자 갖가지 전략을 개발했다. 경전을 읽으며 정신을 깨우는 고전적인 방법부터 ‘채찍질’이나 ‘거세’ 같은 기상천외한 고행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저자는 유럽의 여러 수도원을 비롯해 바티칸도서관 수장고까지 뒤지며 이 같은 기록을 엮었다. 그리고 당대에 이미 집중의 고수들로 칭송받았고, 거리 두기에서 메타인지로 이어지는 꽤 현대적인 6가지 집중법을 소개한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9.13

모든 그리스도인 구원하려 높은 곳에 우뚝 선 위대한 건물[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5. ‘2만 순교자’의 니코메디아성당 ‘2만의 니코메디아 순교자들’, 「바실리오의 메놀로기온 II」(11세기 비잔틴 사본, 바티칸 도서관) 출처=Wikimedia Commons 니코메디아의 옛 정경, Gaiaud 그림 출처=Le Tour du Monde, Paris, 1864 박해 중단 시기 건립된 성당 동로마 제국의 가장 오래된 수도 니코메디아(Nicomedia)에 아주 큰 성당이 있었다. 니코메디아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의 동쪽을 다스리게 되면서 286년 신행정수도로 선택한 도시였다. 베드로 사도가 서간에서 인사하던 비티니아(Bithynia)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이스탄불 근처 도시 이즈미트(Izmit)이다. 그만큼 니코메디아는 그에 걸맞게 크게 개발되었는데, 당시의 도시 복원도를 보아도 수많은 건물이 가득 찬 대단한 큰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니코메디아 도시 개발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가 다름 아닌 한 성당의 위치와 규모였다. 황제의 계획이 어느 정도 실행되고 있었을 때도 이 성당은 높은 곳에 눈에 띄게 서 있는 “가장 높은 성전”(fanum editissimum)이었다고 당시 그리스도교 저술가 락탄티누스는 전한다. 성당은 큰 건물들로 둘러싸인 활기 넘치는 지역에 서 있었고, 그곳에서 새로이 개조된 궁전이 보였을 정도로 황궁과 가까웠다. 이때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아내와 딸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러니 이들은 물론 친위대장 성 세바스티아누스도 이 성당에 자주 방문했을 것이다. 박해가 잠시 중단되었던 시기에 동로마 제국의 수도에, 그것도 황궁과 아주 가까운 곳에, 또 그리스도인들 자신의 재력으로 이렇듯 가장 높게 세워진 성당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몹시 궁금하다. 하지만 이 성당에 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단지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가 남긴 중요한 단서로만 몇몇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잠시 평화를 누리던 약 40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기존의 협소한 예배 장소에 만족하지 못해 더 넓고 큰 새로운 성당들을 도시 전체에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곧 이 성당을 파괴한 303년 이전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모은 돈으로 모든 도시에 큰 성당을 세우려 했다는 말이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도 확연히 높은 곳에 세워진 바로 그 성당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을 토대로 보면 니코메디아의 그 성당은 260년에서 303년 사이에 완공된 것이 되는데,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기 10년 또는 53년 전이었다. 주님 성탄 대축일에 파괴된 성당 그리스도교 신앙은 니코메디아에 날로 퍼져나갔다. 한때 그 도시에 머물고 있던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것에 격분하여 그들을 모두 학살할 방법을 궁리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후임 갈레리우스 황제는 그 도시에서 아주 눈에 띄는 성당을 없애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이를 기점으로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를 완전히 근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302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당에 모일 것을 알고, 군인들에게 새로 지어진 그 성당을 포위하고 불을 질러 파괴하고 성경을 불태우며 귀금속도 압수하라고 명령했다. 자정이 지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당에 모여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을 때, 군인들은 아무도 떠나지 못하도록 성당을 에워쌌다. 그리고 군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날은 로마의 신 테르미누스의 축젯날이니 즉시 그 신에게 제물을 받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모두 불에 타 죽게 하겠다”는 황제의 명령을 알렸다. 안티무스 주교는 이를 거절하고 성당 안에 있던 모든 예비신자에게 세례를 주고, 신자 모두에게 성체를 영해 줬다. 군인들은 사방에서 성당에 불을 질렀고, 무려 2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불에 탔다. 성당은 닷새 동안 불탔다. 성당이 불타는 동안 향기가 피어나고 찬란한 황금빛이 성당 주위를 에워쌌다. 이 모습을 그린 ‘2만의 니코메디아 순교자들’(11세기 사본) 성화가 정교회 전례서인 「바실리오의 메놀로기온Ⅱ」에 실려 있다. 락탄티누스는 이와는 조금 다른 기록을 전한다. 갈레리우스는 건물 전체에 불을 지를 생각이었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많은 큰 건물에 둘러싸여 있는 성당에 불을 지르면 도시에 큰불이 번질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아직 날이 밝지 않았을 때 강제로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 성경과 성화를 찾아 불태웠다. 도끼와 철제 도구로 무장한 근위병들이 전투 대열을 이루고 들어간 다음 사방에 흩어져 아주 높은 성당을 “단 몇 시간 안에(paucis horis solo)”에 완전히 파괴하여 땅처럼 평평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니코메디아 성당의 파괴는 도시에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그달 말에 화재로 궁전 일부가 파괴되었고 16일 후에 또 다른 화재가 발생했는데, 갈레리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을 이 화재의 주범으로 몰았다. 크알브 로제의 성당, 시리아 출처=thenationalnews.com 그리스도인의 구원 위한 주님의 집 니코메디아 성당에 대해서는 그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데도 이 성당을 둘러싸고 상상해야 할 것이 많다. 첫째, 니코메디아를 그린 오랜 그림을 보면 꽤 높은 지형을 따라 형성되어 있던 도시에서 성당이 ‘높은 곳에 눈에 띄게 서 있다’. 이는 주택의 외관에 가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주택 교회’나 ‘교회의 집’과는 전혀 달리 뚜렷이 독립된 건물이었다는 뜻이다. 둘째, 3세기 후반 그리스도교를 비판했던 포르피리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신전과 같은 ‘거대한 건물’(μεγστου οικου)을 짓는다고 말한 바 있다. 황제는 이 ‘거대한 건물’ 안에 모일 모든 신자를 가두고 일망타진한 생각으로 그런 탄압을 계획했는데, 이는 그럴 정도로 그 성당은 규모가 상당했음을 전해 준다. 정교회는 니코메디아 성당에서 불타 순교한 이들이 2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다. 황제들의 박해로 불안한 시기에 신자 2만 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중세 유럽 도시의 절반이 인구 4000~6000명이었고, 프랑스 대성당 중에서 가장 큰 아미앵 대성당은 당시 시민 약 1만 명이 모두 들어가는 크기였다. 한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면적을 1㎡로 보면 2만 명은 2만㎡, 7000평이 된다. 바닥 면적이 7700㎡(2330평)인 아미앵 대성당의 3배가 된다. 그런데도 “성당이 닷새 동안 불탔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닷새라는 숫자보다는 그 규모가 대단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건축역사가 크라우트하이머는 큰 성당이라 해도 집회실에 불과했다고 말한 점을 고려하든지, 로마 군인들에 의해 “단 몇 시간 안에” 성당 건물 전체가 파괴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2만 명은 그 성당에서 순교한 이들이 아니라 한 달 사이에 그 도시에서 순교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으로 추측한다. 본래의 성당이 ‘2만의 니코메디아 순교자들’ 성화처럼 아케이드의 아치 기둥이 외벽 위에 놓였던 성당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 크라우트하이머는 이 성당이 오래된 도무스 에클레시에 형식이라고 보았다. 더구나 이 그림은 460년대에 지어진 ‘아울라 에크레시아’ 형식의 크알브 로제(Qalb Lozeh)의 성당을 닮았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선 가장 높은 성당이려면 알브 로제의 성당의 한 5배 이상은 커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니코메디아의 성당은 당시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구원하려 우뚝 선 위대한 건물이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cpbc2023.04.07

어머니가 물려준 믿음 “하느님의 작은 도구로 쓰여지길 늘 기도해요”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40) 아나운서 문지애 체칠리아 문지애 아나운서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내공이 이미 우리의 안에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순간의 어려움과 실패들을 잘 견뎌내면, 그것이 우리 안에 더 큰 내공으로 쌓여 삶의 모든 순간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 아나운서 역시 그 순간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문지애(체칠리아)씨는 2006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뉴스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발음이 매우 정확하며 차분하고 선한 인상으로 시청자들에게 편안함과 신뢰감을 주는 MBC의 대표 아나운서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2013년 MBC를 퇴사한 후 현재는 프리랜서 방송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육아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그는 대학원에서 아동·청소년 상담을 공부한 전공을 살려 ‘그림책 학교’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아동과 성인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생활명품애’라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에서 의류와 패션 아이템을 제안하면서 자기 능력을 한껏 펼치는 중이다. 그는 책을 좋아하고 글솜씨도 좋아서 최근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Q. 어떻게 신자가 되었는지요?A. 세례받는 저의 모습은 제가 자라온 기록들이 모여 있는 두꺼운 앨범의 맨 앞장에 있어요.(웃음) 저는 한겨울 엄마의 품 안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성모상 앞에서 기념 사진을 남겼습니다. 신심 깊으신 어머니는 유아세례를 받도록 하면서 “딸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로 살며 어렵고 힘든 순간마다 하느님께 의지하고 버틸 수 있는 존재를 만들고 주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엄마 손을 잡고 어린이 미사, 성경캠프에 열심히 참가했던 기억도 나요. 제 어린 시절 생각나는 어머니의 모습은 늘 기도하는 모습이었고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으셨어요. 어머니의 신앙 덕분에 자연히 하느님 안에서 저 역시 늘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어요. 저의 삶, 신앙은 순전히 어머니에게 소중한 유산처럼 물려받은 것이에요.Q.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A. 학생 때 아주 소극적이고 조심성이 많은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욕심은 많았지만 그만큼 따라가지 못해 속상하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은 자신감을 잃은 채 보낸 시간도 많았어요.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다 중간 언저리였던 스스로의 모습이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 글을 쓰거나 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곱씹어 보며 보냈어요. Q. 나중에 보니 그런 시간도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소극적인 성격인데도 아나운서에 도전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A.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 깊이 꿈꿨던 일이에요. 초등학생 때 발표를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지애는 커서 아나운서를 하면 되겠구나”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아나운서가 뭘 하는 직업이냐고 묻자 아버지는 MBC 뉴스를 틀어 백지연 앵커를 보여주셨어요. 그때의 감정이 여전히 기억납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가 제 인생의 길을 선택하게 해주었던 것이죠. 지금 신앙의 눈으로 보면 부르심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던 꿈을 향해 무모한 도전을 하기로 했어요. 무작정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스터디를 꾸리며 5년의 시간을 아나운서 준비에 매진했어요. 아나운서가 되는 것은 제겐 정말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이었고 드디어 그 꿈을 이뤄서 무척이나 행복했어요. 당연히 그 시절 기도도 많이 했어요. 하느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생각해요. Q. 하느님이 주신 탈렌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하느님께서 왜 그런 탈렌트를 주셨을까요?A. 하느님께서 저에게 목소리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소리는 꾸준한 연습을 통해 달라질 수 있지만, 소리 자체가 가진 색깔은 변할 수 없잖아요. 타고난 것들은 부모님이 주신 것이고 하느님께서 허락해주신 것이잖아요. 주변 분들이 제가 힘이 있는 소리를 내지만 따뜻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 덕분에 가슴 따뜻하고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데 적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하느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사회 약자들을 향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 제 탈렌트를 사용하라는 뜻이 있지 않으실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그림책의 숨겨진 의미와 낭독도 어쩌면 그 길을 향한 다리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Q. 살아오면서 혹시 큰 시련을 겪을 때가 있었나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울컥해요. 아버지가 아프실 때였는데 지금까지 제 삶에 가장 큰 시련이고 아픔이었어요. 아버지의 사랑만 받던 딸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무척 두렵고 슬펐습니다. 저는 신앙이 많이 부족했지만 그때는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가족들이 모여앉아 하느님께 매달렸던 기도가 있었어요. ‘하느님, 우리 아버지를 10년만 더 가족의 곁에 있게 해주세요’였어요. 정말 그 기도대로 아버지는 10년을 안간힘을 다해 버텨 주셨고 가족들은 최선을 다했어요. 불가능하게 생각했던 아버지가 가족 곁에서 10년을 더 함께해주신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느낄 수 없습니다. Q. 제가 아는 어느 신부님께서 방송국에서 성경 공부를 하셨는데 명단에서 문지애 아나운서도 본 적이 있어요. 방송인들이 했던 성경 공부는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A. 늘 부족한 신자인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하느님을 잊고 살아가곤 해요. 그러다 어렵고 힘든 순간이 찾아와 기대어 쉴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할 때 다시 하느님을 찾는데 부족하고 이기적인 저를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늘 받아주시고 기다려주시는 것 같아요.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방송인 신자들의 모임에 반강제적(?)으로 나가게 되었던 적이 있어요.(웃음) 성경 공부는 하느님께 다가가는 기회가 되었고, 제가 가톨릭 신자임을 잊지 않게 하는 기회가 되었어요. 좋아하는 성경 말씀은 시편 16장 7절 “저를 타일러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니 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일깨웁니다”예요. 이기적인 종교 생활과 ‘나’ 위주의 기도를 하는 저를 반성하게 하고, 욕심에 가려진 양심을 살아나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Q. 일을 하면서 기도를 열심히 했던 적이 있나요? A. 저는 어린 나이에 입사했어요. 당시 회사는 저의 그릇에 비해 거대했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높게만 보였어요. 사람을 만나고 방송을 하는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죠. 뉴스를 진행할 때는 더 그랬어요. 오프닝을 알리는 시그널이 울리면 저는 가슴에 작은 십자가를 그으며 “하느님, 오늘도 지켜봐 주세요”라고 기도드리며 하느님께 의지했어요. 은총 덕분에 17년 차 방송인으로 큰 사고 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아나운서가 되기 전 몇 해 동안 성가정입양원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그 시절엔 아이들이 그저 안쓰러웠고 함께 하는 동안 예뻐해 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고 다시 아이들과 함께할 봉사의 시간이 있다면 태어났음에 대한 축복과 존재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 만났던 그 아이들은 이제 스무 살이 넘어 어엿한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며 환히 웃는 그가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주변에 빛을 더 넓게 비추기를 기대해본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cpbc2022.10.18
![[영화의 향기 with CaFF] (158) 그리스도 디 오리진](//cpbc.co.kr/CMS/newspaper/2022/04/rc/822028_1.1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158) 그리스도 디 오리진 위대한 인류 구원 역사의 시작 성경은 이미 많은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십계’가 주었던 긴장과 장엄함,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나자렛 예수’의 깊은 눈길과 속삭이듯 건네는 이야기들, 간간이 터져 나오던 강렬한 분노, ‘가든 오브 에덴’의 악마와 청년 예수의 한판승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영화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는 순간부터 예수 승천 때까지의 내용이 담겨있다. 언어는 히브리 당시 언어였던 아람어이고, 배경은 나자렛, 요르단,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성경 속 무대이다. 지식으로 알던 아람어를 들으며 느껴지던 약간의 당황스러움…. 영화의 내용은 성경을 보는 듯하다. 하나 다른 부분은 예수님이 청중에게 말씀하시던 중에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를 환하게 웃으며 덥석 안는 대목이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성경 본문을 아는 탓에 순간 염려스러웠다. 이미 잘 아는 성경으로 청중에게 다가가려면 사건에 옷을 입히는 과정에서 감독의 영적인 해석과 여백이 있고, 몸으로 표현하는 배우 안에 주인공 내음이 담겨야 한다.성경은 그대로 보여주면 지루하고, 조금 달라지면 오류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어 성경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허용범위 안에서이지 싶다. 그 영역 안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영화에 생명을 입히는 것이 일반 작품과는 다른 어려움이요, 제작의 묘미일 것이다.이 영화 속 예수는 건장하고 따스한 이미지이고, 성모님과 제자들은 가볍고 유쾌하다. 특별히 인상에 남는 대목은 아기 예수의 천진한 모습과 과부의 죽은 아이를 살려주는 대목, 예수님의 수난 장면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처참하지는 않지만, 꽤 깊은 아픔이 전해온다. 나의 아쉬움이라면 147분 안에 예수 생애 전체를 다루느라, 이야기 속으로 깊이 침잠할 새 없이 턱턱 넘어가는 느낌이었다.영상은 오감으로 느끼고 체험하게 하는 힘이 있다. 마리아와 천사의 만남, 예수와 제자들의 만남, 발에 향유를 붓던 여인과의 만남, 십자가 사건 등 성경의 일화는 그 사건 하나하나 감동적이다. 청중은 배우를 통해 이 감동을 더욱 생생히 느끼고 싶다. 작은 디테일이 완성도를 결정한다. 여백과 배경, 태도 등은 메시지 이상의 힘이 있다.이 영화는 성경 속 예수를 따스한 인간으로 만나게 한다. 내가 아는 성경 속 지식을 놓고, 여리 한 예수 이미지마저 놓고, 짙은 수염 자국의 예수를 바라본다면 예수에 대한 관념과 틀을 또 한 번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사랑하기 때문에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신비를 깊이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성령께서 영화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인간의 깊은 갈망을 보시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끼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4월 14일 극장 개봉손옥경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cpbc2022.04.13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팀파눔 지닌 로마네스크 예술의 ‘보고(寶庫)’[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38. 베즐레의 생트 마리 마들렌 대성전 베즐레의 생트마리마들렌 대성전 제단 부분. 출처=Martin M. Miles 지하 경당에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 유해 안치 프랑스 베즐레 마을의 언덕 위에 ‘베즐레의 생 마리 마들렌 수도원(Abbaye Sainte-Marie-Madeleine de Vzelay)’이 있다. 이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861년에 지어져 ‘구세주와 성모,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에게 바쳐졌다. 그런데 11세기 중엽 갑자기 이 수도원이 마리아 막달레나의 성해를 모시면서 유명한 곳에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878년에 유백색 대리석의 일종인 앨러배스터(alabaster)로 만든 관에 있던 성녀의 유해가 엑상프로방스에서 베즐레로 ‘이장(移葬)’되어 지금의 지하 경당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성녀의 유해가 공개되고 많은 기적을 일으키자 수많은 순례자가 이 성당에 모여들었다. 번성하기 시작한 수도회는 1096년 확장공사를 시작했다. 이 언덕 위에 세워진 생트 마리 마들렌 대성전(Basilica of Sainte-Marie-Madeleine)은 이렇게 시작하여 12세기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을 향한 4개 출발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로써 언덕 아래에 있던 아름다운 베즐레 마을이 12세기 당시 인구가 8000~1만 명인 도시로 발전했다. 그러나 1120년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전날 큰불이 나서 1127명이나 되는 목숨을 잃었다. 이 대화재로 공사 중인 성당이 모두 타버렸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통설로는 이 대화재 직후 재건 공사가 착수되었다고 한다. 회중석은 1135년경에 완성되었고, 이어서 서쪽 나르텍스가 건조되었다. 성당 정면의 포털 위에 아름다운 조각은 이때 새겨졌다. 1146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가 군중 앞에서 제2차 십자군을 호소한 곳이 바로 이곳 베즐레였다. 따라서 공사는 이보다 조금 앞서 완성되었을 것이다. 또한 1190년에는 이 성당의 바로 옆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왕이 참석한 가운데 제3차 십자군이 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베즐레에 있어야 할 성녀의 유해가 1279년에 생 막씨망-라-생트 봄므(Saint-Maximin-la-Sainte-Baume)에서 발견되고 1281년에 공식 인정되자, 생트 마리마 들렌 성당의 인기는 쇠퇴하게 되었다. 생트 마리 마들렌 대성전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결합해 있고, 제단 위의 장엄한 빛과 풍부한 조각을 담고 있는 로마네스크 예술의 걸작이다. 성당 전체는 3베이로 된 나르텍스, 그다음에는 베이가 10개인 회중석,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주보랑이 있는 횡랑과 성가대석으로 이루어진다. 남쪽에는 유일하게 보존된 수도원 건물이 있다. 베즐레의 생트마리마들렌 대성전 문랑 팀파눔의 그리스도. 출처=Wikimedia Commons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앙 포털 팀파눔 성당의 정면은 12세기 중반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19세기까지 여러 가지가 합성되고 훼손되고 복원되었다. 아래에 있는 3개의 포털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지만, 포털 위의 팀파눔(tympanum)은 긴 역사를 지나며 일부 단편을 제외하고는 훼손되거나 없어졌다. 정면 좌우에는 두 탑의 기부(基部)가 있으며 그것에는 12세기의 아케이드가 있다. 다만 남쪽 탑만 완성되었다. 두 탑의 기부 사이에 있는 중앙부는 13세기 중반의 것으로,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천사, 성인이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중앙 포털의 ‘최후의 심판’ 팀파눔은 1856년에 수복 공사 때 제작되었다. 정면의 포털을 지나면 ‘갈릴래아’라고 부르는 장대한 문랑(門廊, 나르텍스)이 나타난다. 순례자들을 위한 준비의 장소로서 1140~1150년경에 추가되었다. 베이가 세 개이고 높은 교차 볼트 천장으로 덮여 있다. 그 교차 볼트의 능선은 십자형 피어(pier) 위로 이어진다. 회중석 쪽 중랑의 한 베이와 측랑은 위에서 ㄷ자로 이어져 있다. 베즐레의 생트 마리 마들렌 대성전 문랑 포탈. 출처=Wikimedia Commons 서쪽 정면의 포털처럼 문랑에서는 중랑과 측랑으로 통하는 세 개의 포털이 다시 나타난다. 각 포털에는 3부 구성의 팀파눔이 훌륭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중앙 포털은 베즐레 성전의 하이라이트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팀파눔이다. 1125~1130년경에 조각되었다. 팀파눔에는 그리스도께서 두 손을 뻗어 복음 전파를 위해 파견하시는 열두 사도의 머리로 빛을 보내고 계시다. ‘성령 강림’의 순간이다. 사도들의 옷 무늬는 몸을 암시하지만, 세밀한 선으로 묘사된 그리스도의 옷 무늬는 갑자기 하늘에서 부는 거센 바람(사도 2,2)을 표현하듯이 무릎과 허리에서 강한 소용돌이가 새겨져 있다. 성 베네딕도회의 수도원장이자 신학자였던 도이츠의 루페르트(Rupert of Deutz)는 1111년에 이 문랑을 이렇게 말했다. “사제들이 행렬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항상 마치 갈릴래아로 가시는 주님인 것 같이 그들을 따릅니다. 그러니 가장 높은 곳에서 행렬을 멈추는 이 장소를 갈릴래아라고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이처럼 베즐레의 문랑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신 현실의 땅이며, 성령 강림과 사도의 사명을 일깨우는 곳이고 천상의 예루살렘인 교회의 몸에 들어가는 장소라는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문랑은 받아들이고 거르고 넘어가며 전례가 행해지는 곳이다. 베즐레의 생트마리마들렌 대성전 내부. 출처=Martin M. Miles 대화재 이후 1180년경 고딕 양식으로 개축 이 포털을 지나면 나르텍스보다 먼저 1120년에서 1140년 사이에 세워진 커다란 회중석이 나타난다. 그때가 아침이라면 문랑은 아직 어둑하지만, 한 걸음만 들어가면 중랑은 갑자기 밝게 보인다. 특히 동쪽의 제단은 주보랑을 둘러싼 창과 고창에서 아침 햇빛이 가득 쏟아져 내려온다. 풍부하고 신비로운 빛이 스며드는 경이로운 로마네스크 성당이다. 1165년 화재가 일어난 다음, 로마네스크 양식의 반원 제단이 1180년경에 당시 파리 주변 일드프랑스 지방에서 유행하던 최신의 고딕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고딕 건축의 시작인 생드니 성당(Basilique de Saint-Denis)이 1144년에 개축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일찍 고딕 양식으로 개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단 위는 6분할 리브 볼트로 덮였으며 벽면은 수직으로 높게 확장되었다. 제단은 높은 원기둥과 뾰족한 아치의 아케이드와 밝은 창으로 이루어진 주보랑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 위로의 얇고 가볍게 보이는 트리뷴 위에 높고 넓은 고창이 제단에 빛을 비추고 있다. 중랑과 측랑은 베이 10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교차 볼트로 덮여 있다. 특히 문랑의 중앙 포털에서 보면 중랑이 원통 볼트로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베이마다 얕은 4분할 교차 볼트로 되어 있다. 이 볼트는 밝고 어두운 두 가지 색의 아치 홍예석을 번갈아 가며 사용한 횡단 아치로 보강했으므로 원통 볼트는 더 분명히 분절되었다. 그 덕분이 고창은 더 커졌고, 같은 시대의 클리뉘 양식의 회중석과 비교하면 훨씬 밝아 아치 안둘레 띠, 아케이드 바로 위의 수평 띠인 코니스, 아케이드의 복합 피어의 세 면에 붙은 주두, 그리고 주초의 장식까지도 잘 보인다. 중랑과 측랑에는 고창 근방의 작은 주두를 제외하고 99개의 주두가 있는데, 그중 69개가 성경, 성인전, 악마, 괴물을 그린 ‘이야기’ 주두이며, 나머지 30개가 잎 장식 주두다. 이만큼 ‘이야기’ 주두가 있는 것 자체가 예외적인데, 이 주두 장식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할 정도인 로마네스크 예술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cpbc2023.09.22

한국 영화의 찬란한 별, 영화같은 삶을 살다[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41) 최은희 데레사 (상) 한국영화 전성기의 얼굴이었던 최은희. 출처=「한국영화100년100경」 국산영화상(대종상 전신) 여우주연상(‘다정도 병이런가’), 국산영화상 여우주연상(‘어느 여대생의 고백’), 국산영화상 여우주연상(‘성춘향’), 대종상 여우주연상(‘상록수’), 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대종상 여우주연상(‘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대종상 여우주연상(‘민며느리’), 청룡영화제 인기스타상, 체코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 특별감독상(‘돌아오지 않는 밀사’),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소금’), 대한민국영화대상 공로상 이렇게 수많은 영화상을 받은 사람은 최은희(데레사, 崔銀姬, 1926-2018)이다. 최은희의 삶은 자신의 말대로 ‘영화와 같은 반세기의 삶’이었고, ‘영광과 시련과 모험으로 가득 찬 삶’이었다. 최은희는 경기도 광주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서울로 이사 왔다. 부친은 구한말 군인이었다. 일본군이 독립투사를 고문하는 것을 보고 군대를 떠났다. 그러고는 광주로 내려와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용산전화국에 취직했다. 평생 전화국 공무원으로 살았다. 어느 날,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서 전화국이 주최한 공연이 있었다. ‘심청전’이었는데 부친이 심봉사로 출연했다. 최은희는 깜짝 놀랐다. 부친이 무대에 설 줄은 전혀 몰랐다. 분장한 부친의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부끄러웠다. 최은희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기예학교에 다녔다. 빨리 사회로 나가고 싶어 공부를 그만두었다. 동네에서 방공 연습(전투기 폭격을 피해 방공호로 대피하는 훈련)을 하다가 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와 함께 서울 종로에 있는 극단 사무실을 찾아갔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 극단에 들어갈 수 있었고, 배우 시험도 보아 연극협회 회원증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최은희는 무대에 서게 되었다. 데뷔작 연극 ‘청춘극장’ 성공적 데뷔작은 ‘청춘극장’이었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부친의 역정이 대단했다. 당시 사람들은 연극인을 천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최은희는 부친을 설득했다. 연극을 하면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며,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러한 말은 소용이 없었다. 부친은 딸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단속했다. 최은희는 혼자서 연극 공부를 했다. 연극계 한 선배가 책 한 권을 보내왔다. 러시아 연극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 수업」이었다. 그 책을 공부하면서 매우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감동적인 연기는 맡은 배역과 하나가 되어야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최은희의 평생 연기철학이 되었다. 미국 영화배우 매릴린 먼로가 한국에 입국했을 때 환영 나간 최은희 모습. 출처=「한국영화100년100경」 촬영 기사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고통 해방이 되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이름을 바꿨다. 어렸을 때 이름인 최경순을 ‘최은희’로 개명했다. 그 이름은 당시 인기 소설의 여주인공이 ‘은희’였기에 좋아서 택한 것이었다. 최은희는 극단 토월회 연극을 시작으로 여러 공연에 출연했다. 그러다가 영화에 출연했다. ‘새로운 맹세’라는 영화였다. 영화 촬영하면서 엔지(NG, no good)가 많이 났다. 영화는 연극과 달리 필름으로 실시간 촬영했다. 영화는 연기자의 표정 연기가 중요했다. 제대로 된 표정이 안 나오면 다시 찍어야 했다. 필름 값은 비쌌다. 그래서 촬영 중간에 엔지를 많이 낼 수밖에 없었다. 촬영이 끝나면 대사를 녹음했다. 입 모양을 맞추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영화를 촬영하다가 한 촬영 기사를 알게 되었다. 나이가 최은희보다 한참 많았다. 그는 결혼도 했었고 아이도 있었다. 최은희에게 끈질기게 구애했다. 최은희는 그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모친은 울면서 말렸다. 끝내 결혼식에 부친은 오지 않았다. 서울 남산동에 방 하나를 얻었다. 평범한 주부처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극단에 다시 들어갔고, 라디오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이때부터 그 남자의 손찌검이 시작됐다. 폭력은 점점 심해졌다. 그가 주먹을 휘두르면 두 팔로 얼굴을 감쌌다. 가족 돌보려 6·25 전쟁 때 피난 안 가 6·25 전쟁이 일어났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다. 최은희는 가족을 돌보려고 피난을 가지 않았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북한 내무성 소속 경비대 협주단에 들어갔다. 식량을 배급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협주단에는 많은 예술인이 있었다. 명동대성당에 협주단이 있었는데 낮에는 연극 연습을 하고 밤에는 사상 교육을 받았다. 북한군은 종교는 아편이라며 모든 성경을 불태워버렸다. 어느 밝은 달밤에 성당에서 영화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길에 반짝이는 그 무엇이 있었다. 주워보니 십자가였다. 최은희는 신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바닥에서 짓밟히고 있는 십자가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품에 넣었다. 그 십자가를 오랫동안 지니고 다녔다. 국군이 북진하기 시작했다. 북한군 행군 대열에서 협주단은 이탈했다. 그러다가 국군과 마주쳤다. 국군에게 협주단에 들어가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국군 정훈공작대에 편성되었다. 공작대는 위문 공연하는 부대였다. 얼마 전까지 북한군 옷을 입고 공연을 하더니 이제부터는 국군 옷을 입고 공연해야 했다. 촬영현장에서 최은희 신상옥 부부. 출처=「한국영화100년100경」 신 감독과 둘만의 쓸쓸한 결혼식 전쟁이 끝났다. 부산에서 ‘춘향전’을 공연하고 있을 때였다. 한 지인의 소개로 신상옥(시몬) 감독을 만났다. 그는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다. 신상옥은 최은희가 연극을 하면 꼭 보러왔다. 어느 날, 최은희는 역사극을 하다가 무대에서 쓰러졌다. 심신이 쇠약한 상태였는데 무리하게 연기하다가 쓰러진 것이었다. 신상옥은 최은희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때부터 최은희는 신상옥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가슴 속에 지니게 되었다. 신상옥은 최은희의 아픈 과거까지 모두 감싸며 사랑했다. 둘만의 쓸쓸한 결혼식을 올렸다. 신상옥과 처음으로 만든 영화가 이광수 원작의 ‘꿈’이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조신이라는 승려가 태수의 딸 달례를 보고 연모하다가 결혼했다. 함께 멀리 도망가서 아이를 낳고 살았다. 그런데 달례와 결혼 약속을 했던 화랑 모례가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결국 그들을 찾아냈다. 모례가 조신을 죽이려고 칼을 내려쳤다. 그 순간 조신은 꿈에서 깨어났다. 그곳은 법당 안이었다. 최은희는 주인공 달례 역을 맡았다. 신상옥은 최은희를 연기자로 존중하며 진정으로 사랑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영화를 찍었다. 특히 ‘어느 여대생의 고백’은 대박이었다. 최은희는 이 작품을 가장 아꼈다. 최은희의 역할은 변호사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박사까지 찾아가 자문을 받았다. 그 영화로 최은희는 제1회 국산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 부부는 신필름을 설립했다. 한국 영화의 큰 획을 긋는 작품들이 그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로맨스 빠빠, 성춘향, 상록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 빨간 마후라, 벙어리 삼룡이, 다정불심, 내시,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이조 여인 잔혹사’ 등등. 나는 어렸을 때 인천 영화관에서 신영균 주연의 ‘연산군’과 ‘빨간 마후라’, 김진규 주연의 ‘다정불심’, 신성일 주연의 ‘내시’를 보았다. 오디션 통해 스타 신성일 발탁 신상옥은 문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영화로 많이 만들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심훈 원작의 ‘상록수’였다. 신영균과 최은희가 주연을 맡았다. 두 사람은 이 영화로 대종상 주연상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 영화를 보고 새마을 운동을 구상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렇게 한창 잘나가는 신필름에서 배우 모집 공고를 냈다. 1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오디션을 보았다. 광화문 일대가 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기마 경찰이 출동해 현장을 정리할 정도였다. 강신영과 앙드레 김이 최종적으로 합격했다. 신상옥은 강신영에게 ‘신성일’이란 예명을 지어주었다. 신성일(申星一)은 ‘뉴 스타 넘버원’이란 뜻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최고의 청춘스타 신성일이 탄생했다. <계속> cpbc2023.10.25

교회를 등진 이들, 구원으로 인도할 방법 모색해야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신학위각국 신학 전문위원 한자리에다양한 신학·사목적 주제 언급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신학위원회가 5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아시아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주제로 한국의 가톨릭 신학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아시아 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신학위원회(OTC)는 5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아시아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주제로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전문 신학위원들과 신학적 전망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만남은 서울대교구장 정순택(신학위원회 주교위원) 대주교와 인도네시아의 아드리아누스 수나르코(신학위원회 위원장) 주교의 기조 강연에 이어 신학위원들의 질의응답과 자유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정순택 대주교는 교회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사목적, 신학적 주제를 언급했다. 정 대주교는 아시아에서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계속 증가하는 데 따른 사목적 배려와 사회 통합을 향한 노력을 언급하면서 “아시아 백성들의 이주와 통합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목적, 신학적 성찰의 대상이 되었으며, 교회는 이주민에 대한 사목적, 영성적 배려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생태 위기 속에서 아시아 교회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고도 말했다. 무엇보다 현대사회의 부정적 풍조에 대한 아시아 교회의 대응에 관해선 더욱 힘줘 말했다. 정 대주교는 “근본주의적 성향의 신흥(유사) 그리스도교 단체들이 가톨릭교회에 파고들고, 무신론적 성향의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상대주의 가치관과 세속주의, 물신주의적인 사회 풍조로 많은 이가 방황과 혼란에 빠져 신앙을 잃고 교회를 등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지 더욱 모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정 대주교는 “아시아 신학의 첫걸음은 대화와 선포에 있다”며 “다양한 문화, 종교, 그리고 가난으로 고통받는 아시아 백성들과의 삼중 대화에 임하고, 이를 통해 체험한 바를 신학적, 사목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거듭 제안했다. 아울러 “아시아 대륙의 복합적 현실에 대한 인식과 체험, 그 안에서 교회의 실재와 사명에 대한 성령론적 차원의 식별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작업을 예수님 사건과 그 신비와 연결해 해석하는 그리스도론적 차원의 성찰과 선포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아드리아누스 수나르코 주교는 독일의 시노드 방식에 대한 논평들을 비롯해 지난해 태국 방콕에서 열린 FABC 50주년 기념총회에서 소개된 아시아 상황에 따른 선교 신학 등을 소개하며 기조 강연을 이어갔다. 수나르코 주교는 “우리는 거룩한 성전과 성경에 의지해야만 한다”며 “이것이 일차적으로 하느님 말씀의 거룩한 유산을 구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회의 거룩한 교도권은 하느님 말씀의 유산을 성령 안에서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며, 하느님의 현존과 성령을 발견하고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나르코 주교는 이와 함께 “아무리 고귀한 사명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들을 교회 구성원으로 만들겠다는 자기중심적인 선교 방식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며 “무조건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사랑인 아가페적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인도할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선교의 패러다임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신학위원회는 1~6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영성센터에서 2023 정례회의를 개최했다. 서울에서 개최된 이번 정례회의에는 주교위원과 전문신학위원 등 20여 명이 참여하며 각국 주교회의를 대표한 신학자들이 다양한 신학적 전망과 과제를 논의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재진2023.05.07

‘주님의 기도’ 안에 담긴 진수 깨닫고 주님 사랑 깊이 음미하길20세기 대표 신학자 과르디니 신부‘주님의 기도’ 뜻과 지혜 한 구절씩 해설 로마노 과르디니의 주님의 기도 /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 지음, 안소근 수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성경에 실린 모든 청원을 살펴보십시오. 나는 여러분이 그 안에서 주님의 기도에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거기서 기인하지 않은 어떤 것을 발견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올바르게 바랄 모든 것을 청할 뿐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청해야 할 순서대로 청하기도 합니다.”(성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스도인에게 첫째가는 기도이자 가장 중요한 기도는 ‘주님의 기도’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알려주신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친숙한 기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를 제대로 이해하며 바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섣불리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간단한 기도지만 거기에 담긴 심오한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로마노 과르디니의 주님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에 관한 해설서다. 20세기 대표적인 가톨릭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과르디니(1885~1968) 신부가 집필했다. “‘하늘에 계신’이라는 단어는 ‘하느님, 저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원합니다.’라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을 할 때 그리스도인은, 말하자면 그 하느님을 자신의 삶 안으로 들어오시게 하는 모험을 한다. 그는 하느님, 타자, 헤어질 수 없는 분이 들어오심으로써 자신의 삶을 방해하시도록 매일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Ⅰ’ 중에서) 책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을 시작으로 일곱 가지의 청원을 거쳐 마지막 ‘아멘’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기도’에 담긴 뜻과 지혜를 한 구절씩 해석한다. 전반부의 청원들은 우리에게 하느님 이름의 신비, 하느님 나라의 신비, 그분의 뜻과 그 뜻이 갖는 의미의 신비를 알려준다. 후반부는 단순하고 분명하게 매일의 삶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기도의 전반부에 비추어 해석된다. 책을 읽을수록 ‘주님의 기도’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나의 지향’과는 다를 수 있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니 말이다. 글을 번역한 안소근(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 역시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우리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며 “하느님이 진실로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기에 그분의 뜻이 어떤 것일지라도 사랑에서 오는 것임을 믿고,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신다”고 전했다. 저자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이자 종교철학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가톨릭 청년운동(퀴크보른, Quickborn) 및 전례 운동을 지도했고, 그리스도교적 실존철학의 입장에서 실존과 신앙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주요 저서로는 「삶과 나이」, 「전례의 정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있어서의 종교적 형상」 등이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평화신문2023.02.28
![[금주의 성인]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2월 14일)](//cpbc.co.kr/CMS/newspaper/2023/02/rc/840485_1.0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2월 14일)826/827~869년과 820/825?~885년, 그리스 출생, 슬라브 민족의 사도, 유럽의 수호성인 치릴로 성인과 그의 형인 메토디오 성인은 그리스의 테살로니키에서 고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테살로니키에는 슬라브인이 많이 살고 있었고, 훌륭한 학교 또한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인 형제는 어려서부터 슬라브 민족의 언어와 풍속을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치릴로 성인은 14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콘스탄티노플로 가 황립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는 형처럼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지방의 총독직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고는 사제품을 받고 황립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메토디오 성인은 옵시키온 지방의 슬라브 식민지 가운데 한 지역을 맡은 총독이 되었다가 물러난 뒤에는 은수자가 됐습니다.형제는 보스포루스의 수도원에서 살고 있었는데, 미카엘 3세 황제가 러시아의 드니프로강과 볼가 강변에서 사는 하자르족을 회개시키도록 파견하자 하자르 언어를 배워 수많은 이를 개종시켰습니다. 선교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치릴로 성인은 이후 몇 달 동안 교황청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메토디오 성인은 소아시아 헬레스폰트에 있는 폴리크로니온 수도원의 원장이 됐습니다.863년에는 모라비아 국왕의 요청에 따라 성 포티우스 주교는 성인 형제를 모라비아인 개종을 위해 파견했습니다. 비록 모라비아인들을 개종시키는 데는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슬라브어 실력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습니다. 치릴로 성인은 선교를 위해 성경을 고대 슬라브어로 번역했고, 그리스 문자를 기초로 슬라브 알파벳을 만들었습니다. 완성된 키릴 문자는 여전히 러시아어와 다른 슬라브 언어의 알파벳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치릴로 성인은 형의 도움으로 복음서와 시편, 바오로 서간을 슬라브어로 번역했고, 전례서 또한 슬라브어로 번역해 전례를 거행했습니다.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라틴어만 사용하던 교회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하고, 또 성인 형제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왔다는 이유로 서방 교회의 이단 일파라는 의심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독일 파사우의 주교가 사제 후보자 선발을 거부한 것은 성인 형제의 선교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행히 하드리아누스 2세 교황은 이들에게 매우 호의적이었고, 성인 형제가 크름(크림)반도에서 선종한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의 시신을 인도하자 이들의 정통성을 확신해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하도록 인가했습니다.‘슬라브 민족의 사도’라고 불리는 형제는 동유럽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한 전례는 오늘날에도 러시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그대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1985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슬라브인의 사도들」을 통해 베네딕토 성인과 함께 이들을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평화신문2023.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