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과학은 상호 보완… 더 풍요로운 세계로 이끌어인천성모병원 전양환(레오) 교수, 바티칸 천체관측국 학술대회와 후속 연구 담은 「물리학, 철학…」 책임 번역 「물리학, 철학 그리고 신학-이해를 위한 공동 탐구」의 책임 번역자 전양환 교수가 종교와 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과학은 종교를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정화할 수 있고, 종교는 과학을 우상과 거짓의 절대성으로부터 정화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는 보다 넓고 풍요로운 세상으로 서로를 이끌 수 있습니다.” 3월 10일 출판된 「물리학, 철학 그리고 신학-이해를 위한 공동 탐구」의 책임 번역자 전양환(레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을 빌려 이같이 말했다. 이 책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요청으로 1987년 열린 바티칸 천체관측국의 국제학술대회에서 나온 내용을 엮은 결실이다. 각 분야 20여 명의 전문가들은 당시 학술대회에서 진행된 공동 탐구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에 착수했고, 그 결과를 책에 담았다. 30여 년의 간격과 7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전 교수는 “과학과 종교가 각자의 온전함을 유지하면서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는 아직까지도 없다”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1세기를 ‘과학과 영성’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과학은 우리가 느낄 정도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문화적 상황에 맞게 신학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학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움을 줘야 하고, 세상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특히 전 교수는 몇 년간 학교에서 ‘과학과 종교’를 주제로 선택 과정 세미나를 진행했던 경험을 나누며 이번 책 주제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젊은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주장이 있었고, 교회를 비판하거나 무신론을 주장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영성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일종의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걱정을 많이들 하지만, 저는 교회가 젊은이들을 보듬어 줄 방식을 모르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과학과 종교는 신앙을 접하게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주제입니다.” 아울러 “오랫동안 사변철학으로 설명하던 난해한 신학적 과제들을 오늘날에는 현대 과학의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게 됐다”면서 과학의 발전은 신앙 교리를 더 잘 설명할 기회가 된다고도 밝혔다. 전 교수는 과학과 종교에 관한 연구는 지속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국제적으로도 영향을 끼칠 신학자, 철학자, 과학자가 많다”며 “이들이 교회 안에서 함께 연구할 수 있도록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난 유연한 시스템 구축 또한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 그리고 기도하는 체험적 삶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하나의 실재입니다. 과학이 주장하는 세상과 신학이 교리적으로 설명하는 세상은 똑같은 하느님의 창조물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알게 되는 세상은 바로 하느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세상입니다.” 책은 전국 교계 서점에서 구매 가능하다. 문의: 02-740-9718, 가톨릭대학교출판부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3.03.27
![[신앙단상] 봉헌금 얼마 내세요?(김정환 아우구스티노, 심리학·신학)](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3/10/JUG1678442911286.jpg)
[신앙단상] 봉헌금 얼마 내세요?(김정환 아우구스티노, 심리학·신학) 주일 미사 봉헌금 얼마나 내시나요? 예전에는 ‘천 원만 내서 천주교’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사이 물가가 많이 올랐지요. 저도 꼬깃꼬깃 이천 원도, 오천 원도 내었다가 요즘은 대개 만 원을 냅니다. 지난 주일 새벽, 봉헌금을 찾는데 현금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요즘은 대개 카드로 계산하다 보니 따로 얼마를 찾아두었어야 했는데 깜빡했던 거지요. 여기저기 뒤지는데 코트 주머니에서 불쑥 오만 원이 나왔습니다. 마침 엊그제 지인에게 돌려받은 돈이었어요. 그런데 순간 멈칫했습니다. ‘오만 원! 오만 원? 오만 원…’ 일단 신사임당은 옆으로 모셔두고 더 열심히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다행히도(?) 세종대왕님이 나오셨어요. 꽤 많은 돈을 빌려줬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만 원권을 들고 집을 나서는데, 왠지 성당 가는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성경에는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전에서 부자들이 큰돈을 쾌척하는 중에 가난한 과부가 헌금 궤에 다가와 동전 두 닢을 넣었지요. 그 모습을 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저 과부가 누구보다 많은 것을 바쳤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전부를 내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렇게는 못하겠던 것입니다. 오만 원이 튀어나왔을 때, 이대로 낼까 하다가 들었던 생각은 ‘이걸 쪼개면 다음 주에도 낼 수 있는데’ 였어요. 가만 되짚어 보니 그것도 봉헌을 핑계 삼아 본심을 슬쩍 감춘 것 같습니다. 진짜 마음은 더 간단했어요. ‘다 내기 아깝다!’ 왜 아까울까요? 물론 큰돈입니다. 오만 원에서 만 원을 빼고 사만 원이면, 도대체 라면이 몇 개인가요. 하지만 그렇게 구체적인 데까지 생각이 이르지 않아도 더 좀스러운 이유가 있었습니다. 합격이나 승진처럼 뭔가 특별히 청원할 것도 없는데, 평범한 주일 미사에 오만 원이나 내려니 주저되었던 거지요. 그러니 그간 봉헌금을 내왔던 제 속마음이 이참에 다 들통 났습니다. 말은 ‘우리들의 정성’이니 ‘이웃과의 나눔’이니 했지만, 저는 그저 미사 참여를 위한 최소액만 셈해 온 것이었어요. 게다가 ‘특별히 부탁드릴 것도 없는데 오만 원은 아깝다’니요. 그럼 그동안 저는 ‘예수님 마트’에 은총을 사러 다닌 거지요. 그것도 가능하면 세일하는 것으로요. 물론 주님께 무언가를 청하는 마음 자체가 나쁜 건 아닐 겁니다. 다만 그러한 기복에만 머물 때, 성당은 마트 아니면 경매장이 되겠지요. 과부 이야기의 참뜻도 ‘은총을 받으려면 가진 걸 다 내놓으라’는 협박은 아닐 거예요. 아마 봉헌의 진짜 의미는 ‘나’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데에 있지 않을까요. 나를 지탱하던 물질 일부를 헐어내 봄으로써 나는 본래 물질이 아닌 하느님에 의지해 사는 존재라는 자각을, 그리고 내 라면만이 아니라 이웃의 라면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해 보게 되는 것이지요. 만 원 한 장에 저의 바닥을 보았지만, 덕분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으니 결과적으로는 ‘만 원의 행복’인 셈인가요. 그러나저러나 이번 주에는 미리미리 봉헌금을 준비해 두어야겠습니다. 김정환 아우구스티노 (중년의 대학생, 연세대학교 심리학·신학)cpbc2023.03.10
![[금주의 성인]성 안토니오 아빠스 (1월 17일)](//cpbc.co.kr/CMS/newspaper/2023/01/rc/839210_1.0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성 안토니오 아빠스 (1월 17일)251~356년, 이집트 출생 및 선종, 수도원장, 은수자들의 아버지 안토니오 성인은 이집트 중부 코마나의 부유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무 살 되던 해, 부모를 여읜 성인은 성당에 갔다가 우연히 한 복음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참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할 결심을 한 그는 상속받은 재산 중 누이동생을 위해 일부만 남겨두고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성인은 고향 근처 한적한 곳으로 가서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독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312년에는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라”는 부르심을 받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산기슭에 있는 빈 무덤 동굴에 거처를 마련한 뒤 15년 동안 노동과 기도 그리고 성경 읽기에 전념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는 순교할 각오로 알렉산드리아로 가 사형 선고를 받은 신자들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그 후 성인은 나일강 끝에 자리한 피스피르 산에 들어갔다가 텅 비어 있는 성채를 발견하고, 약 20년 동안 다시 독수 생활을 했습니다. 성인의 뛰어난 성덕과 수많은 기적에 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제자가 되기를 원했던 많은 이에 의해 은수자 집단이 여러 곳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독수자로서 더욱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홍해 근처에 있는 콜짐이라는 높은 산으로 들어가 기도와 수덕 생활에 열중했습니다. 만일 전승이 옳다고 한다면 그는 356년 105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선종했습니다. 성인은 ‘사막의 교부’, ‘모든 수도자들의 원조’, ‘은수자들의 아버지’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은수자들을 한데 모아 공동생활을 시작했고, 일정한 규칙을 제공하며 지도했기 때문입니다.교회 미술에서 성인은 보통 지팡이와 책, 종을 갖고 있거나 작은 돼지와 함께 표현됩니다. 돼지가 등장하는 이유는 성인에게 치유를 청하는 환자들을 돼지 지방으로 치료해 도움을 주었다는 전승에서 시작됐습니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어느 날 사막에서 악마가 멧돼지의 몸을 빌려 성인에게 나타났지만, 기도로 악마를 쫓아내고 그 멧돼지를 길들였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했습니다. 종은 돼지를 부를 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평화신문2023.01.12

3년간 머리 맞대고 1400쪽 번역… “혼자라면 못 했을 은혜로운 시간”그릴마이어 추기경의 「교부들의 그리스도론」 공동 번역가들 인터뷰 왼쪽부터 안소근 수녀, 허규 신부, 김형수 신부, 최대환 신부가 공동 번역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릴마이어(Alois Grillmeier, 1910~1998) 추기경의 「교회 신앙 안의 예수 그리스도」(1990) 1권이 한국어로 번역·출간되었다. 「교부들의 그리스도론」이란 제목으로 사도 시대에서 칼케돈 공의회까지의 그리스도론을 다룬 이 책은 초판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 신학계에서 규범적이며 모범적인 연구로 평가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출발해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마주했던 다양한 상황과 방대한 만남, 그 안에서 나오는 다채로운 연구 주제들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복음서가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 바탕을 이루는 유다교 구약 성경의 신앙 전통, 당대 헬레니즘 세계와 그리스도교의 조우, 스토아 철학과 중기 내지 후기 플라톤주의 등 그 시대 철학과 영향은 물론이고, 선포된 신앙을 견지했던 정통 교부들, 여러 이단과 수많은 학파,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에페소,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뤄진 주요 신앙 정식의 선포 등 그리스도론의 거대한 흐름을 조망하고 있다. 덕분에 책은 총 1400쪽에 달한다. 그렇다면 시대와 역사는 물론이고 주요 학문을 총망라한 이 책을 과연 누가 번역했을까? 최대환 신부(이하 최 신부) : 2007년에 술 마시면서 우리끼리 ‘이 책은 누가 번역할까?’ 하다가 시작된 거죠. 김형수 신부(이하 김 신부) : 아니, 식사하면서. 허규 신부(이하 허 신부) : 맨정신에는 못 했지.(웃음) 역시 혼자서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나 보다. 오랜 기간 연구와 저술 활동을 펼쳐온 5명이 무려 3년 동안 번역에 매달렸다. 바로 김형수(부산교구) 신부, 신정훈(서울대교구) 신부,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최대환(의정부교구) 신부, 허규(서울대교구) 신부다. 2000년대 초반 우연히 독일 뮌헨에서 같이 공부했던 네 신부가 함께한 자리에서 꺼낸 ‘번역’ 얘기가 김 신부가 서울에 오고, 수많은 번역 작업을 해온 안 수녀가 영입되면서 2019년 본격화된 것이다. 3년 동안 1000쪽이 넘는 책을 번역하자면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나. 현재 독일에 있는 신 신부를 제외한 네 명을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만났다. - 「교부들의 그리스도론」 그렇게 대단한 책인가? 최 신부 : 가톨릭 교의신학에서 교부들의 그리스도론을 연구하는 데 있어 전환점이 된 책이라 할 수 있죠. 철학을 원용해 그리스도에 관한 교의를 형성하는 과정이 타당했느냐는 논쟁이 있었는데, 교부들이 오랜 기간 토론과 격론을 통해 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걸 잘 보여주거든요. 이에 대한 강의록은 1940년대부터 있었고, 독일어로 1980년대까지 증보판으로 나왔어요. 5명이 번역하기도 힘든데, 이 분은 그 시대에 혼자서 타자기로 쳤다는 게 더 놀랍죠. 안 수녀 : 주요 서적의 각주에 계속 나오는 책이에요. 이번에 번역하면서 느낀 점은 저자가 그리스도 철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해줬다는 거예요. 대표적으로 우리는 ‘네스토리우스 같은 경우 이단이고 키릴루스는 정통이니까 키릴루스 말만 맞다’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네스토리우스가 어떤 배경에서 이런 말을 했고, 처음에는 잘못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많이 참작해준 것 같더라고요. 이단으로 결정되는 것은 나중의 문제이고, 그전까지는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최 신부 : 1960~1970년대 독일 신학생들은 모두 봤던 책이에요. 오늘날 학생들에게는 더 요령 있게 정리된 책이 많지만, 그 교재가 나올 수 있었던 교과서라고 할까요. 또 저자가 독일 분이라 교회 일치에 관심이 많았는데, 신 신부가 공을 들인 해제에도 밝혔듯이, 교회 분열이 교의의 분열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정치적 이유가 많거든요. 신학의 원류로 가면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교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론을 충분히 이해하면 서로 포용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겠죠. - 공동 번역, 의견 충돌은 없었을까? 김 신부 : 의견 충돌이라기보다는 ‘용어 선택’에 시간이 걸렸어요. 최 신부 : 교의신학자, 성서학자, 철학자가 민감한 부분이 따로 있거든요. 그런 부분은 배운다는 생각으로, 또 너무 고집하지 않는 자세는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안 수녀 : 누군가와 같이 번역하려면 자기 고집을 어느 정도는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해요. 아니면 그중 한 명이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거나. 우리는 신 신부님이 그 역할을 했는데, 각자 분야가 다르다 보니 전문 분야에서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받아들인 편이에요. 최 신부 : 저희도 꽤 오랫동안 공부했다고 생각하는데, 내용도 어렵고 생전 보지 못한 책과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놀랐어요. 일단 예전에 나온 책이라 PDF 파일로 돼 있지 않아서 제가 가진 원본을 희생시켰어요. 일은 먼저 나눠서 초안을 쓰고, 언어적으로 수녀님이 한 번 다듬으시고, 그걸 최종적으로 신 신부에게 보냈어요. 아무래도 교의신학자니까. 저희끼리 모여서 윤독하면서 다시 보고. 그때 용어나 내용을 두고도 토론을 많이 했죠. 허 신부 : 가장 걱정되는 사람은 편집자였어요. 원고 다 넘기고 나서 우리끼리 ‘편집자는 어떻게 하지?’ 얘기했거든요.(웃음) - 지금의 관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최 신부 : 신 신부님 해석에 따르면 (그리스도론 발전 과정 및 교회 정치 차원에서 서로 다른 중점을 가지고 막대한 영향을 끼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 중 저자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좀더 공감하는 면이 있다고 하셨어요. 지금의 관점에서는 좀 경도된 면이 있죠. 허 신부 : 일단 옛날 책이라 기술 방식이 좀 달라요. 객관적인 내용만 쓰기보다는 저자의 생각이 들어가죠. ‘내가 보기에···’ 이런 식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이쪽을 좀 두둔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것도 이 책의 장점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 신부 : 그 시대 신학자들이 지닌 자신감이 있어요. 통찰이 상당히 많은데, 요즘은 그런 식으로 글을 쓰지 않잖아요. 다들 문헌에 의존하니까. 그리고 무척 복잡하게 얘기하고 나서 ‘진리는 단순한 것이다, 다 소용없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된 면이 있어서 다들 웃기도 했어요. 김 신부 : 토마스 아퀴나스가 나중에 절필한 것처럼.(웃음) 내가 다 해보니 그렇더라···. 대가만이 할 수 있는 얘기겠죠. 사실 작업하면서 윤독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100번을 넘게 읽었으니까. - 다음엔 뭐하지? 허 신부 : 번역을 끝내고 다들 ‘다음엔 뭐하지?’ 얘기했어요.(웃음) 안 수녀 : 과르디니의 「주님」 번역하자고. 또 이어갈 수 있는 게 책은 복잡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같이 얘기하고 작업하는 게 좋았어요. 최 신부 : 번역은 고사하고 혼자라면 다 읽지도 못했을 책인데, 그래서 번역 작업 자체가 은혜로운 시간이었어요. 허 신부 : 은혜로운? 최 신부 : 은총이라고 할까? 풍요로운으로 하죠. 이런 식으로 작업했어요.(웃음) 덕분에 저희도 배우는 시간이었고, 출판사에서 오래 기다려주셔서 할 수 있는 만큼은 완성도 있게 작업했고요. 아마 2~3년만 늦었어도 못 했을 거예요. 우리 모두 눈이 침침해져서.(웃음) 김 신부 : 개인적으로는 2019년부터 서울에서 생활하게 됐는데, 번역하는 시간을 통해서 많은 위로와 가족적인 따뜻함을 느꼈고요. 허 신부 : 한국 사회는 다들 바쁘잖아요. 공부하는 사람들이 협업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런 기회가 있어서 감사했고, 이런 작업을 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좋은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9.04

엄격하게만 느껴지는 수도원에서 펼쳐지는 시트콤 같은 일상30년의 수도원 생활 담은 「신부 생활」 펴낸 안성철 신부 신부 생활안성철 신부 지음 / 시공사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신부의 존재는 잘 안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라도 수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수사 신부는 어떤 사람일까? 또 그들이 사는 수도원은 어떤 곳일까?“사람들이 수사님의 존재를 너무 몰라요. 우리 수도원이 바오로딸과 붙어 있는데, 동네 사람들도 수녀님은 알아보지만 우리는 수도원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알거든요.”(웃음)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해 2001년 사제품을 받은 안성철(마조리노) 신부가 30년의 수도원 생활을 엮은 「신부 생활」을 펴냈다. 수도회 입회 기준이 유머감각 내지는 엉뚱함인지 의심스럽게, 근엄하고 엄숙한 수도원 이야기가 아니라 유쾌하다 못해 포복절도할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농담과 장난은 일상이요, 수도자들도 귀여운 거짓말을 하고, 이른바 땡땡이를 부린다. “저는 수도원에서 지내는 게 행복하고 즐거워요. 고행하려고, 죄인들의 보속을 위해 수도원에 들어온 게 아니거든요.”수도원 사제가 교구 사제와 가장 다른 점이 바로 공동체 생활이다. 안 신부는 공동체가 좋아서 수도회에 입회했다. 그런데 아무리 수도원이라고 해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게 어디 쉬울까. “매우 힘든 사람도 있죠. 그게 수도원에 사는 의미이고 고행이에요. 고행을 억지로 하는 게 아니고 그 많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 수도원에서 잘 살면 아마 결혼해서도 잘 살 요.(웃음) 그리고 저희가 매일 이렇게 웃고만 지내는 건 아니죠. 진지하게 기도하고, 우울한 날도 있고, 일할 때는 의견이 달라서 다투기도 하고요.”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그렇듯 안 신부 역시 지난 30년간 서울에서 제주로, 미국에서 영국으로 자주 사목지를 옮겨야만 했다. 짐은 캐리어 하나에 라면박스 5~6개 정도. 많은 사람이 그토록 갈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청빈, 정결, 순명’의 종신 서원을 지키면서 그토록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결혼하라고 하면 나도 당장 하죠.(웃음) 가끔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도 사제가 될 거냐고 물어봐요. 제가 19살에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한 번 이렇게 살아봤으니 다음 세상에는 19살에 장가가려고요. 그리고 수도원은 필요한 걸 청구하면 다 사줘요. 이동하는 곳마다 기본적인 가구나 이불은 있으니까 짐이 단출할 수밖에 없죠.”성 바오로 수도회는 매스컴의 역할이 커질 것을 내다본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가 100여 년 전에 인쇄기술학교를 세우면서 설립한 수도 공동체다. 매스컴과 미디어가 선한 영향력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출판을 중심으로 여러 매체를 활용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수도회별로 하는 일이 다양해요. 우리는 주로 책을 만들지만,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을 도와주는 곳도 있고, 농사짓고 치즈 만드는 곳도 있고요. 책을 읽고 성소자 모임에 와보고 싶다는 이들도있는데, 무엇보다 ‘내가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해요.”이번 책은 몇 년 전 진행했던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마조리노 신부의 주크박스’가 단초가 됐다. 그때 들려준 수도원 이야기를 우연히 접한 출판사 관계자가 책을 엮자고 제안했다.“제 방송에 하느님이나 성경 구절이 한 번도 안 나오는데, 하느님이 느껴지고 성경 말씀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출간을 제안하시더라고요. 불현듯 ‘이게 현대의 복음화구나!’ 싶었어요.”그렇게 시작된 책 작업은 관계자와 그 아내가 세례를 받는 계기가 됐고,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수도원 생활을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 출판사에서는 투박하고 진솔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맞춤법 외에는 손대지 않았다는데, 문장력이 좋은 것인지 특유의 유머감각 때문인지 첫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평균 연령 40대 중후반의 수도자들이 모인 곳이 마치 대학생들의 기숙사 생활처럼 유쾌하고 호탕하다. “바오로 사도가 언제나 기뻐하라고 했는데, 방송이나 라디오, 책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매체잖아요. 우리가 웃고 행복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느낄 수 있어야죠. 오늘이라는 하루는 하느님이 허락해주신 놀이터입니다. 모든 분이 평범한 일상에서 하루하루 눈을 뜨고 깨어서 재밌게 생활하셨으면 좋겠어요.”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문채현2022.12.07

주님 죽음 묵상하며, 기도와 참회로 그리스도 부활 기다리자사순 시기 묵상에 도움 될 만한 도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가 시작됐다.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40일간 기도와 참회에 도움이 될 만한 도서를 살펴봤다. 사랑의 계시 / 노리치의 율리아나 지음 / 강대인 옮김 / 가톨릭출판사「사랑의 계시」는 노리치의 율리아나가 1373년 깊은 병고 중에 하느님께 받은 계시와 이에 대해 묵상한 기록이다. 그녀는 중세 잉글랜드의 뛰어난 신비가이자 은수자로, 당시 노리치에 있는 성 율리아노 성당 인근의 작은 은수처에서 살았다. 율리아나는 16차례 환시를 경험했고, 그때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삼위일체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를 통해 삼위일체 신비에 대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해하며 구원에 다가간다. 또 죄의 결과가 고통이지만, 고통을 통해 정화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되므로 죄의 기능도 구원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그리스도가 수난당하신 것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기에 인간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주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실 때에 자유롭게 주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슬픔 안에 있도록 고통을 주십니다. 그 둘 다 하나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위로 안에서 우리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지복은 영원히 지속되며, 고통은 지나가고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해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에 대해 슬퍼하고 탄식하며 그 감정을 따르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고통을 속히 초월하여, 영원한 기쁨 안에 머무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제15장 ‘고통의 감정을 따르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님’ 중에서)율리아나의 삶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사랑의 계시(Revelations of Divine Love)」는 여성이 영어로 남긴 첫 작품으로 영문학에서도 매우 중요시한다. 이번 책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10년에 남긴 관련 강론도 수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어라 / 박재찬 신부 글 · 하삼두 그림 / 분도출판사 “깊은 명상 가운데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분과의 신비로운 사랑의 일치를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관상(觀想, contemplation)’이다. 이러한 하느님 사랑과의 일치는 우리가 우리 자신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은총으로서의 관상 체험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일상’의 중요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관상을 통해 깨어난 이는 거창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것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작은 들꽃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이들이다.”(36쪽)토마스 머튼(1915~1968)은 북미에서 널리 알려진 현대 영성가다. 오늘날 많은 이가 머튼의 영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삶과 영적 여정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외롭고 힘들게 살았으며, 지적 반항아로 방탕하게 살았다. 수도자가 된 뒤에도 방황과 혼란은 지속됐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하느님을 찾고자 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토마스 머튼을 연구한 박재찬(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신부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자신이 소화하고 묵상한 머튼의 영성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2019년 5월부터 1년간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한 글과 여러 곳에 기고한 관련 글을 모은 것이다. 고독과 침묵, 기도와 관상을 통해 자신 안에 이미 살아계신 사랑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과 하나 되어 그 사랑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머튼의 생애와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기억하라 - 메멘토 모리(사순 묵상) / 테레사 알리시아 노블 수녀 지음 / 민영문 옮김 / 바오로딸“모든 언행에서 너의 마지막 때를 생각하여라. 그러면 결코 죄를 짓지 않으리라.”(집회 7,36)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네가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마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 이는 개선장군에게 겸손을 일깨우는 경고 장치였다. 이 문구는 삶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죽음을 의식하고 현재 삶의 참된 가치를 찾도록 교훈을 준다.「기억하라 - 메멘토 모리(사순 묵상)」는 죽음을 묵상하는 오래된 영적 훈련 전통인 ‘메멘토 모리’를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 날마다 실천할 수 있는 묵상서다. 매일의 묵상은 여섯 단계로 구성된다. 당일 전례 말씀의 성경 장절을 소개한 뒤 묵상을 이끌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 이를 중심으로 메멘토 모리 묵상 글이 주어지고, 죽음의 순간을 생각하며 하루를 되돌아보는 성찰과 여러 상황에 놓인 세상의 많은 이를 위한 중재기도로 이어진다. 이후 교부들과 성인들 말씀이 주어지고, 마지막으로 묵상과 기도를 글이나 그림으로 기록하도록 이끈다. 인간적인 죽음을 위하여 / 유성이 지음 / 멘토프레스‘죽음’에 대한 책이다. 아니,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책이다. 저자 유성이(마리아) 씨는 2007년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본격적으로 ‘죽음학’을 연구하며 박물관, 호스피스병원, 학교 등에서 죽음과 삶을 성찰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보다 12년을 더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쓸쓸한 죽음을 지켜보며 노년의 삶과 인간적 임종을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책으로만 하는 연구가 아니라, 2020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호스피스(hospice, 임종이 다가온 환자를 전인적으로 돌봄) 병원에 뛰어들었다. 「인간적인 죽음을 위하여」는 유성이 작가가 ‘간병사’로서 직접 체험한 기록이다. 2021년 1월 22일 호스피스병원에서 만난 88세 어르신(도미니코)이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생명을 지닌 한 인간으로 존재했던 22일간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담았다. 그 과정에서 저자 개인의 팍팍한 삶도, 부모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수많은 우여곡절도, 또 죽음을 맞이하게 될 노인들의 삶과 생각도 마치 내 얘기처럼 맞물린다. 현재 가톨릭대학교에서 생명윤리학 박사과정에 있는 저자는 인간적인 죽음을 맞기 위해 개인 스스로가 자기 돌봄을 하며 현실적인 준비도 해야겠지만, 타인의 도움이 절대 필요함을 강조한다.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는 추천사에서 “생의 말기를 지내는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 담긴 이 책은 ‘돌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전했다.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cpbc2023.02.22

서울 화곡본동본당, 공동체 첫 신앙수기 펴내지난해 정월기 신부 부임 이후신자들 신앙수기 공모 시작60편 실린 「주님 사랑」 발간 사목적 해설 더해 묵상 이끌어 서울대교구 화곡본동본당 공동체 식구들이 주님과 함께한 사랑 이야기 「주님 사랑」. “죽어가는 사람들은 너무너무 살고 싶어하는데, 세상의 어떤 것도 그들의 삶을 연장할 수 없다. 죽어가는 사람들 대신에 내가 사는 것 같아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기에 내게 주어진 1초도 허투루 낭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내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살게 된다.…” 80세 고령에도 간호사로 일하는 신은열(방그라시아)씨는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라는 제목의 수기를 통해 평생 살아온 이야기를 본당 공동체에 전했다. 요즘도 야간근무를 자청하며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베풀고 복음을 전하고 대세를 준 이야기, 남편과 결혼과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며 겪은 고단한 삶의 이야기, 남편이 2011년 뇌출혈로 쓰러져 하늘나라로 떠난 얘기 등등이 올올이 풀려나온다.서울대교구 화곡본동본당(주임 정월기 신부)은 최근 본당 식구들이 주님과 함께한 사랑 이야기 「주님 사랑」을 펴냈다. 한 편 한 편이 뼈아픈 고통과 시련 가운데서 하느님을 체험한 이들의 보석처럼 빛나는 신앙 이야기이고, 하느님 없이는 도무지 살 수가 없어 하느님께만 매달리며 하느님만 붙안고 살아온 이들의 생생한 사도행전, 곧 ‘화곡 행전’이다. 화곡본동본당에서 신앙 수기를 펴내게 된 건 2021년 2월 본당 주임으로 정월기 신부가 부임한 것이 계기가 됐다. 부임하자마자 정 신부는 주보에 신앙수기를 공모하고, 신자들이 글쓰기를 힘겨워하면, 그 이야기를 신자들이 구술하도록 하고 그 내용을 정리할 기자단도 함께 모집했다. 하지만 수기 공모도, 기자단 모집도 지지부진했다. 이에 정 신부는 국어교사 출신인 박은경(가타리나)씨를 기자단장으로 뽑고 권점자(가타리나)씨 등과 함께 신앙수기 공모와 정리 작업을 하도록 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신앙수기를 쓴 이들도 나타났다. 그렇게 해서 정 신부를 비롯해 본당 보좌 심현보 신부, 화곡본동본당에서 실습 중인 서울국제선교회 김태훈 부제, 한현식(헨리코) 본당 사목협의회 총회장 등의 원고 60편이 게재된 신앙수기집이 나왔다. 수기 원고마다 정 신부의 사목적 해설이 한 마디씩 덧보태졌고, 원고 곳곳에는 성경 말씀을 인용해 공동체가 말씀을 묵상하는 기회로 삼도록 했다. 정월기 신부는 “화곡본동본당에 부임해보니, 욥처럼 삶의 온갖 어려움을 다 겪으면서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찬미했던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밭에 묻힌 보물 같은 신앙의 이야기가 성경에만 나오는 줄 알았더니 현실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광장동본당에서 4권, 화곡본동본당에서 첫 번째 권을 내고 보니, 이런 신앙수기를 본당마다 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09.20

동티모르의 따뜻한 환대와 믿음의 힘동티모르에서 이동철 신부 (4·끝)‘선교지에서 온 편지’에 저의 편지를 보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너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든다. 신문에 기고되는 내용이지만, 편지니까 편안하게 선교지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나누면 되겠다!’ 편지를 띄울 수 있고, 제 편지를 받는 분들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비가 많이 와 비포장도로 급경사에서 차가 못 올라가고 미끌어져 있을 때 마을 신자들이 올라와 차를 끌어주고 있는 모습. 흙탕길 헤치며 드리는 미사 우기 때, 주일 미사가 있는 날이면 꼭 오전에 일찍 출발해 가야 하는 공소가 있습니다. 공소가 산 아래에 있는데, 그 길은 경사가 있는 비포장길이며, 우기 때마다 심각한 진흙길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전보다는 오후에 비가 많이 오기에 우기 때면 우선순위에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두고 미사를 하러 가는 곳입니다. 우기이던 어느 날, 주일 오전 미사 중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렇게 많이 오진 않았기에 걱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사 후 다음 공소로 가려고 차로 비포장 경사길을 오르는데, 차가 갑자기 미끄러지기를 한두 번 하더니, 결국 길이 깊게 파여 빠져버렸습니다. 차는 오르지 못했고, 심지어 길 밖으로 미끄러지는 것이 아닙니까! 안절부절, 근심걱정, 갈팡질팡. 이런 제 모습을 보고 근처에 있던 신자분이 와서 제게 딱 한마디 하셨습니다. “아무(Amu)~!” ‘Amu’는 동티모르어인 떼뚬어로 ‘신부’입니다. 그는 저를 부르긴 하셨지만, 그 상황을 보고 같이 ‘얼음’이 된 듯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사라지더니 얼마 후 마을 신자들을 우르르 데리고 오셨습니다. 밧줄을 갖고 온 신자 분들, 삽을 들고 온 신자, 심지어 돌을 들고 온 이까지. 그러면서 다들 한마디 하셨습니다. “아무(Amu)~!” 그리고 그들은 이내 웃는 얼굴로 저를 위로해주고, 안심시켜주셨습니다. 함께 올라온 아이들은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재미있다는 얼굴입니다. 저도 얼굴은 웃긴 했지만, 속으로는 ‘아, 민폐를 끼쳤구나! 이런 민폐쟁이 이동철! 아이쿠~’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드디어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됐습니다. 앞에서 차를 당기는 신자들은 함께 미끄러지며 넘어져 진흙 범벅이 되고, 뒤에서 차를 미는 신자들은 진흙이 튀어 역시 같은 진흙 범벅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죄송했던지요. 어디 숨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 공소로 다시 돌아왔고, 예정에 없던 1박을 그곳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계획에 없던 1박에도 따듯하게 맞아줘 멍하니 있는데, 신자들은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제게도 예정에 없었지만, 공소 신자들에게도 계획에 없던 사제의 1박이 생긴 상황이었기에 식사와 잠자리 준비로 분주하게 된 것입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복사단과 자매님들, 그리고 잠자리까지 마련해주시는 공소 회장님과 교육분과장님까지. 예정에 없었음에도 사제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공소 신자들을 보며, 감사함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화전민들인 그들은 나무를 해서 음식을 준비했고, 사제가 먹는 식사라고 해서 달걀후라이라는 특식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집에서 가장 깨끗한 침구류 세트도 내주셨습니다. 역시나 아이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공소에 몰려와 신이 난 얼굴로 함께 있어 줬습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이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습니다. 바닥이 온돌도 아니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라 새벽에 춥기도 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신자들은 제가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음식을 해주셨고, 새벽 6시에 공소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잊지 못할 환대였고, 귀한 만찬이었습니다. 신자들이 차려준 성대한 저녁식사. 신자들에게 느끼는 감사함과 미안함 일정을 미리 잡고 공소를 방문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 온 마을 사람들이 공소 성당으로 와서 맞이해줍니다. 이때에도 그들은 음식을 준비합니다. 계획된 일정이라 음식도 많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사제가 먹고 남은 음식은 복사단이 주방에서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맛있는 반찬은 복사단 아이들에게도 맛있는 것이기에 조금만 먹었습니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땐 맛있는 음식이라면 생각 없이 먹고 싶은 대로 먹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복사단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신자들이 예기치 않게 저희 수도원으로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 아파서 약을 달라고 하거나 다쳐서 치료해달라고 오는 경우입니다. 잠깐 이야기 나누며 약을 드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찾아오는 시간이 제가 강론을 쓰는 시간에 큰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지금도 떼뚬어가 많이 부족하지만, 초반엔 얼마나 부족했을까요? 아마 강론을 준비하며 애쓰는 저보다 그 강론을 듣는 신자들이 더 애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강론을 쓰고 있는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창문 너머로 눈을 돌리니 아이들이 수도원 성당 앞 꽃밭에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나가서 물었습니다. “애들아~ 무슨 일이야?” 아이들은 “아무(Amu)~ 잡초 뽑으러 왔어요”라고 답합니다. 저의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잡초가 무성해져 지저분해진 것을 아이들이 알아채고는 깨끗하게 해주려고 온 것이었습니다. 그들 중엔 4살 아이도 있었습니다. 고마움도 있었지만, 또 얼마나 미안하던지요. 제가 해야 할 일을 아이들이 대신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남에 따라 제 머릿속은 ‘강론 써야 하는데…’하는 것에만 머물러 아이들을 빨리 돌려보낼 생각만 했습니다. 많은 신자의 환대를 받으며 감사했던 제가 저를 도와주겠다고 기꺼이 온 아이들을 환대가 아닌 오히려 빨리 돌려보낼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강론을 쓰며 성경 속에서 만난 예수님을 강론으로 풀어낼 생각만 했지, 뜻밖에 찾아온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수도원 풀을 뽑고 있는 모습. 사람 냄새 나는 동티모르 신자들 동티모르의 신자들을 보면서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사람들과 함께 살았고, 그 느낌을 자주 느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느꼈던 그것과는 다른 ‘사람 느낌’입니다. 그날을 돌아보면 그들의 신앙 속에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지닌 믿음을 봅니다. 신앙을 자신들의 삶에 중심에 두고, 그 신앙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선교 사도직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들이 저를 대상으로 선교 사도직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저는 정말 그들을 통해 신앙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에 휴가를 가게 되면, 어떤 신자분들은 제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한국에서 보면 힘들 수 있습니다. 세계 최빈국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들 속에서 살다 보면 저희 수사들보다 더 불편하고, 힘들고, 어렵게 살고 계시는 분들이 많기에 오히려 저는 ‘동티모르에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진 않은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는 화전민들이 아닙니다. 전기가 들어올 땐 인덕션을 사용하고, 정전되면 가스 불을 사용합니다. 정전이 3일 정도 이어지면 냉동실 고기에서 핏물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기를 보관해서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과학 문명을 누리고 살고 있는 저희들입니다. 힘들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의 문화에 더 젖어들지 못해 미안할 뿐입니다. 미사전 복사단들과 함께 찰칵(이동철베드로 수사) 후원 계좌 : 하나은행 220-890023-89804 예금주 : (재)천주교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이동철(베드로) 신부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동티모르 순교복자수도원 성소 담당 cpbc2023.09.13
![[신앙단상] 신부님에 대한 미움, 빗자루가 되다(김정환 아우구스티노, 중년의 대학생)](https://img.cpbc.co.kr/ctsnews/2023/03/01050102201.20230319.000146303.02.jpg)
[신앙단상] 신부님에 대한 미움, 빗자루가 되다(김정환 아우구스티노, 중년의 대학생) 혹시 어떤 신부님을 미워한 적 있으신가요? 부끄럽지만 저는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신 본당 신부님이었는데, 강론이 너무 길고 난해했어요. 새벽에 미사를 나가면 내심 좀 빨리 끝났으면 싶지요. 그런데 그 신부님은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추상적인 얘기를, 십 분도 십오 분도 이어가셨습니다. 영성체를 하고서 이제야 가나 싶은데 또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하고요. 나중에는 자꾸 미운 마음이 올라와서, 그 마음을 다잡느라 혼자 속으로 씨름을 했습니다. 지난겨울, 눈이 펑펑 내리던 새벽이었어요. 뒤뚱거리면서 어렵사리 성당에 갔는데, 그날도 공허한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회개와 기도, 천국에서 받을 상…. 물론 좋은 말씀이지요. 그런데 하나도 와닿질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모호한 성경 내용을 좀 쉽고 구체적으로 풀어주셨으면 좋겠건만, 강론이 한술 더 뜨는 거예요. 아마 오가는 길이 힘들어 불만이 더 컸겠지요. 성당을 나설 때도 폭설은 여전했고, 툴툴거리면서 돌아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내 삶은 어떻지? 강론이 추상적이라고 불평하는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세상에 얼마나 구체적인 기여를 하고 있지? 손에 잡히지 않는 강론이 불만이라면 저라도 손에 잡히는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강론이나 제 삶이나 내실 없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무엇을 해야 할지가 떠올랐습니다. 집에 돌아와 젖지 않는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근처 철물점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가게 문이 열려있어 기다란 빗자루를 하나 샀지요. 그러고는 집 근처부터 눈을 쓸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왠지 부끄러웠어요. 괜히 착한 사람인 척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기도 하고, 돈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면 억울할 것도 같았지요.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이번에는 ‘누가 내게 고맙다고 안 해주나’, 싶은 생각도 올라왔습니다. 사람 생각이 참 얄팍하지요. 그렇게 잡념이 들 때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에만 집중하는 사이, 싸악싸악 길이 나고 몸에도 마음에도 훈김이 났습니다. 물론 결과론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이것도 신부님 덕분입니다. 답답한 강론이 아니었던들, 저는 그날도 제 발밑만 조심조심 살피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겠지요. 어쩌면 예수님은 그 난해한 강론을 통하여 제게 메시지를 전하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답답하냐? 어떤 강론이든 핵심은 사랑과 실천이다. 너는 나를 따르겠다고 늘 말하지 않느냐? 그러면 너부터 구체적으로 행하거라. 나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언제나 그러했더니라.’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는 신부님에게 별로 미운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강론이 복잡한들 본뜻은 짐작할 만했고, 신앙인으로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신부님의 깊은 생각을 제가 따라가지 못했구나 싶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신부님 덕에 신앙의 폭을 조금 넓혀 볼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지요. 그날 산 빗자루는 대문 옆에 잘 세워 두었습니다. 내년 겨울에 눈이 오면 또 나설 생각입니다. 김정환 아우구스티노(중년의 대학생, 연세대학교 심리학·신학) cpbc2023.03.14

분도출판사 60주년 및 「교부들의…」 완간 ‘기쁨 두 배’ 기념식과 총서 완간 축하식 함께 열어
한국교부학연구회와 함께 올해부터
고대 그리스도교 문헌 총서 발간 계획 분도출판사 창립 60주년 기념식 후, 박현동 아빠스를 비롯한 한국교부학연구회 회원들이 17년 만에 완간한 「교부들의 성경 주해」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종교 서적 및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통해 복음적 가치를 전해온 분도출판사(사장 정학근 신부)가 창립 60주년과 「교부들의 성경 주해」 총서 29권을 완간해 겹경사를 맞았다.분도출판사는 6일 서울 중구 장충단로 베네딕도 피정의 집 성당에서 창립 60주년 기념식과 총서 완간 축하식을 함께 열었다. 출판사는 창립 20주년을 맞은 한국교부학연구회(회장 장인산 신부)와 「교부들의 성경 주해」(구약 15권ㆍ신약 14권) 완간을 축하하고, 이성효(수원교구 총대리) 주교를 비롯해 한국교부학연구회원 장인산ㆍ노성기 신부, 하성수(시몬) 박사, 최원오(빈첸시오) 교수 등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분도출판사 사장 정학근 신부는 환영사에서 “창사 이래 시대의 징표를 출판물에 담아내고자 애써 온 분도출판사는 그간 의미 있는 책들을 펴냈다”며 “출판사가 하는 일은 출판사의 노력만으로 이어가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정 신부는 “훌륭한 기획과 더불어 우리말을 사랑하는 편집자와 역저자도 꼭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며 관심을 요청했다. 한국교부학연구회 회장 장인산(청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축사에서 “최초의 계획보다 세 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많은 분의 노고와 헌신 덕분에 17년 만에 이 총서를 완성하게 되었다”며 “뜻깊은 해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를 통해 대중판 교부 문헌 총서 출간의 새로운 30년 여정을 함께 시작하게 되어 기쁘고 든든하다”고 전했다.교회 사학자이자 세계교부학회의 거장으로 알려진 독일의 에른스트 다스만 신부는 서면으로 보낸 축사에서 “분도출판사의 경축 행사와 한국교부학연구회 설립 20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일은 아름다운 만남”이라며, “지난 수년간 한국교부학연구회와 분도출판사의 놀라운 합동 작업이 뛰어난 출판 열매를 거두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다스만 신부는 “한국의 신학적 학문 발전이 가르침에서나 연구 작업에서나 독립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장인산 신부와 에른스트 다스만 신부는 이날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해, 노성기(한국교부학연구회 총무) 신부가 대독했다. 분도출판사의 ‘분도’는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창설자인 베네딕도 성인의 한자식 표기다. 분도출판사는 1909년 독일에서 한국에 진출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선교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다. 초창기부터 수도원 내부에 인쇄소를 설치해 종교 서적을 출간해오다 1962년 출판사 등록 후, ‘시대의 징표를 함께 읽어간다’는 정신에 따라 책을 통해 한국 교회의 신학적 토대를 쌓아왔다. 대표 도서로는 「해방신학」,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이해인 수녀), 「밥- 김지하 이야기 모음집」, 「인간 Ⅳ」(최민식 사진집) 등이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 분도우화 시리즈도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73종이 출간된 「분도소책」, 34종이 발간된 「신학총서」와 「아시아신학 총서」 굵직한 학술 총서도 발간했다. 한국교부학연구회는 교부학의 중요성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한국 교회에 알리기 위해 2002년 1월에 설립됐다. 2008년부터 분도출판사와 손잡고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교부들이 성경의 각 구절을 해석한 내용을 모은 세기적 대작 「교부들의 성경 주해」를 출간해왔다. 2005년부터 17년 동안 「교부들의 성경 주해」를 완간하기까지 번역에 참여한 이들만 22명이다.한편, 분도출판사와 한국교부학연구회는 올해부터 정부 지원을 받아 ‘고대 그리스도교 문헌 총서’를 발간하기로 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평화신문2022.05.10
갤러리 1898 정영란(글라라), 2022. 내가 주님, 너의 하느님이다. 너를 이집트 땅에서 끌어올린 이다. 네 입을 한껏 벌려라, 내가 채워주리라. (시편 81,11) 인천가톨릭대학교 그리스도교미술연구소의 그룹 전시 ‘황금채색세밀화-眞(말씀:진리가 되다)’전이 서울 명동 갤러리1898 제3전시실에서 26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 윤인복(소화 데레사) 소장을 비롯해 7명이 참여하는 이번 그룹전은 채색 필사본의 일환으로, 성경 말씀과 이미지가 있는 작품, 황금 배경에 템페라 기법을 활용한 작품 등 20여 점이 소개된다. 연구소 측은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모든 책은 필경사가 직접 손으로 써서 만들었고, 거기에 삽화가들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며 “‘손으로 써서 만든 책’인 필사본 안에서 말씀과 예술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의 ‘진리’를 바라보며 대화하고, 잠시 머물며 ‘하느님의 빛’을 우리 안에 비출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제1전시실에서는 김혜선(실비아) 작가의 개인전이 개최된다. ‘in and out’을 주제로,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채 갖지 못한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방황의 시기에 드렸던 작가의 기도를 18점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포토아이리스의 사진전은 제3전시실에서 열린다. 선우중호(시몬), 한영희(안드레아), 정기섭(미카엘), 김정자(안나) 작가가 중형 필름과 흑백 사진 등에 담은 특별한 세상을 감상할 수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cpbc2022.10.19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과 자유현대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 분석
신학·윤리학·교회사 관점으로 해석
자유 의미, 그리스 철학 등으로 풀어
우리 시대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과 자유의 의미를 다각도로 성찰한 책이 각각 출간됐다. 전자는 현대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을 신학과 윤리학, 교회사의 관점에서 분석했고, 후자는 자유를 그리스 철학, 그리스도교, 근대 철학 사상에서 풀이했다.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 찰스 E. 커런 신부 지음 / 이동화 신부 옮김 / 분도출판사현대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을 신학과 윤리학, 교회사의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한 해설서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이라는 용어는 사회적 사안에 관련된,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교황 및 교도권 문헌 열두 편으로 구성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은 이러한 문헌들에서 다루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사십주년」의 첫머리에서, 비오 11세 교황은 레오 13세와 많은 가톨릭 신자가 노동 계급의 비인간적 고통을 극복하는 데 헌신했고, 그것은 그들이 ‘현세 재화의 분배에 있어서 너무나 널리 만연되어 있는 부당한 차별이 도저히 전지하신 창조주의 뜻에 합치한다고 믿을 수 없었기 때문’(「사십주년」 2항)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사안에 가톨릭이 관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있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며, 그 존엄성의 수호와 촉진을 창조주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셨다’(「사회적 관심」 47항)라고 가르친다.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의 존재 자체와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참여는 하느님께서 창조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과 인간은 이 목적에 맞갖게 활동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적 가르침과 교회 사명의 근거에는 창조와 창조의 선함 이상의 것이 포함되었다.”(38~39쪽)가톨릭 사회윤리의 기본적인 원천은 성경의 사회적 가르침이다. 히브리 성경은 십계명을 포함하여 많은 사회적 가르침을 담고 있다. 신약성경 역시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으며, 특별히 재산과 관련된 위험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리스도교의 첫 천 년기에 교회와 그 지도자들은 국가와 교회 사이의 관계, 정치, 상업, 가족 등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주제를 다루어야 했다. 두 번째 천 년기의 초창기에는 대학이 생겨나 특히 신학과 법률에 대한 지식을 추구했고, 종교개혁과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가톨릭 윤리신학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내적 삶에 더욱 집중했다. 18세기에는 개인과 인간 자유에 중점을 둔 계몽주의가 발전했고(결국 가톨릭은 계몽주의와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된다), 19세기 후반에는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자들의 곤경이 중요한 사목적 관심이 되면서 중세를 인간 실존의 황금기로 보려는 가톨릭의 경향은 20세기까지 계속된다.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은 사회주의의 무신론, 유물론 등을 전적으로 거부하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주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과 철학에 집중한다. 저자인 찰스 E. 커런(뉴욕 로체스터교구) 신부는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과 관련된 문헌들을 크게 방법론과 내용으로 나누어 연구하면서, 특히 이 같은 역사적 발전과 변화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엘리자베스 스컬록 대학교 인간 가치 교수로 재직 중이며, 가톨릭 윤리신학, 사회윤리에 관한 책을 다수 집필했다. 책을 번역한 이동화 신부는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부산 당감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자유의 의미에 대하여에머리히 코레트 신부 지음 / 김진태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자유란 무엇일까? 우리는 자유라는 말을 할 때 무엇이라고 이해할까? 「자유의 의미에 대하여」는 사상사 안에서 사람들이 자유를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해석하는지, 동시에 그것을 넘어 실제적인 자유 실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저자는 먼저 ‘사상사 안에서 자유’를 통해 그리스 철학, 그리스도교, 근대 철학의 자유관을 추적한다. “인간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얻게 된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의 자유, 영원한 구원이냐 비구원이냐에 대한 자유가 된다. (중략)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갈라 5,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갈라 5,13)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에 대한 선포는 새로운 자유의 복음으로 등장한다. 이 자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55쪽) 두 번째 글 ‘자유와 대립되는 필연’에서는 인간과 신들을 지배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무조건적인 필연과 그리스도교적 자유 사이의 긴장관계를 다룬다. 역사를 살펴볼 때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필연에 대한 그리스적 사고가 거듭 그리스도교 공간 안에 침투해 들어와 참된 자유를 위협한다. “여기서 문제는 우선적으로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필연적 유출의 모든 형태와 대조를 이루는’ 하느님의 자유이다. 하느님의 창조적 자유만이 인간에게 자유의 공간을 보장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 자유의 가능성의 조건이다.” (122쪽)마지막으로 ‘신에 대한 통로로서 의미 물음?’에서는 의미, 의미 수락, 의미 실현이 무엇을 뜻하는지 묻고, 의미의 근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모든 경험 내용들, 모든 사건과 만남들, 모든 운명과 우연적인 일들, 무의미해 보이는 고통이나, 심지어 죽음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삶의 유의미성과의 단절까지, 이 모든 것은 만일 신과 관련지어지고 신에서 출발하여 새롭게 이해된다면, 비록 우리가 각 개별적인 경우에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의미를 구성하는 새로운 배후관계를 얻게 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된다.” (203쪽) 인간을 이해하려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자유가 결코 자의가 아님을 서양철학사와 그리스도교 사상사를 통해 새롭게 분석한다. 저자인 에머리히 코레트 신부는 인스브루크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하며 200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많은 철학 저술을 남겼다. 책을 번역한 김진태(가톨릭교리신학원 원장)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철학 교수를 역임했다.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평화신문2022.10.05
![[제10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3/02/LXh1677730729377.jpg)
[제10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우수상 박현경( 베로니카, 전주교구 우림본당 ) 10여 년 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앞서 걸어가는 한 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는 느릿느릿 가방문이 반쯤 열린 채로 멍하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얘 가방문 열렸어’라고 말하려는데 순간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었습니다. 또 한 번은 집 근처 천변을 걷고 있는데 여자아이가 딴짓을 하며 걷고 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저 멀리 앞서가는 엄마를 못 쫓아가 겁이 났는지 울먹이며 “엄마!”하며 소리칩니다. 왈칵 눈물이 납니다. 그 두 아이를 보면서 저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내성적이고 숫기 없고, 항상 불안해하며 겁에 질려 멍하게 다녔습니다. 엄마는커녕 어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소리쳐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는 길고 길었던 그 어둡던 터널을 이제 막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전북 전주에 살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뜻의 초콜릿색 벽돌로 지어진 아담하고 예쁜 성당, 우림성당에 다닙니다. 본당에서 10분쯤 차를 타고 가면 ‘숲정이’라는 성지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한켠에 표지석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옛날에는 이곳이 소나무가 많은 숲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또 가까운 한옥마을에는 기와지붕들 사이로 100여 년 전쯤 프랑스에서 건너온 보두네 신부님이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전동성당이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우리나라 최초 순교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순교 터이기도 합니다. 한옥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리 높지 않은 치명자산(致命者山)이 있습니다. 산 정상에 동정부부 복자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과 그들의 가족을 합장한 순교자 묘와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축복의 땅에서 하느님의 은총 속에 저는 지금 평온하게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14,27)를 체험하면서 말입니다. 1973년 춘향이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남원의 한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저는 1남 7녀 중 여섯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제 밑으로 어머니는 여동생 하나와 우리 집에 유일한 아들, 막내를 낳았습니다. 1년에 열 번 이상 친척들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가부장적인 유교 집안에서 제사와 선산을 물려 줄 아들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아버지는 무능했고, 성실하지도 못했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술을 드셨고 폭언과 욕설을 퍼붓고 폭력까지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차갑고 자존심 강한 어머니와 계속 싸웠습니다. 그런 어머니는 혼자서 거의 집안일과 제사, 농사일, 자식 키우는 일을 도맡아 하셨습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아이들은 커갔습니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니들이 서울 작은 회사에 경리 사원으로 취직하면서 집안에 조금씩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역부족이었는지 두 동생은 부모님 곁에 남겨두고, 언니들이 여덟 살난 저와 열두 살 먹은 제 위의 언니를 키우겠다고 서울로 데리고 갔습니다. 연탄을 때는 3평도 안 되는 단칸방에서 다섯 명이 살았습니다. 전교생 다 합쳐 400명이 안 되는 시골학교에 다니다가 한 반에 무려 70명씩 15반까지 있는 대도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아무도 없는 자물쇠 잠긴 방문을 열다가 소변이 급해 그 자리에서 싼 적도 있었고, 연탄을 갈아야 하는데 연탄끼리 붙어서 떨어지질 않아 아직 채 크지도 않은 손으로 부엌칼을 들고 연탄을 쳐서 떼어 내기도 했습니다. 저보다 네 살 많은, 똑같이 철부지인 언니는 저만 혼자 남겨두고 친구들과 놀러 나가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자주 몸이 아팠던 기억도 있는데, 열이 나거나 식중독에 걸려 몸에 두드러기가 나면 언니들이 올 때까지 혼자 울면서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더 힘들었던 건 언니들의 매질과 눈총이었습니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삶에 지친 언니들에게 부모의 마음까지 바란다는 건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절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자신감 없고 자존감 낮은 소극적인 아이로 커갔습니다. 학교 성적은 그런대로 상위권을 유지하였지만 고2 때부터 공부도 어려워지고, 사춘기에 우울증까지 겹쳐 집중력도 떨어지고 계속 시들시들 잠만 잤습니다. 그러나 남원에서 고등학교 때 춘향이로 선발되기도 했던 착하고 예쁜 셋째 언니 덕택으로 가까스로 2년제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졸업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교정보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자기 형부가 다니는 큰 회사 홍보실에 취업시켜준다고 해서 그만두고 가보니, 다단계 피라미드 회사였습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저는 친구랑 같이 있고 싶기도 했고, 거기 있는 사람들의 그럴싸한 허황된 논리에 빠져 얼마 되지도 않은 돈도, 친구도 다 잃고 세월만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우울증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그때는 우울증이란 개념도 모호했고 병도 아니었으며, 병원에 가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고등학교 때부터 쭉 해왔고, 더 무서운 건 칫솔을 들 힘조차 없어지는 무기력증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의욕도 없고 그렇게 지내다 좀 힘이 생기면 1, 2년 직장 다니다가 또 몇 년 쉬고, 그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50세가 된 지금 사회생활한 햇수가 10년이 채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상태가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집에서 계속 노니까 엄마 대신 언니들 산후조리도 하고 아기도 봐주고 하면서 도무지 희망 없는 삶을 이어갔습니다. 당연히 가족에게 신뢰와 인정도 받지 못했습니다. 성경 속 욥이 자신을 저주하며 말합니다.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욥기3장) 마음속 깊이 부모님과 형제들을 원망했고 제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을 따라 몇 번 교회에 가기도 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근처의 교회에 조용히 기도하다 오긴 했지만, 신을 냉소적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2007년쯤엔가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있었는데 어쩌다 거기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게는 신기하기만 했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의 실제 모습을 가까이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전까지 가톨릭은 제게는 예술 작품으로서만 접해진 상태였습니다.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그레고리오 성가, 바흐의 교회 음악들, 미술학원에서 서양화 수업 때 배우고 모사해 본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화가들이 그린 성화들에서 말입니다. 신부님들이 미사를 집전하고 수녀님들과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아서 미사 경문을 외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떤 경건함과 안정감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어릴 적 학교 가는 길에 선망의 눈으로 봤었던 장미덩굴이 있는 파란 대문의 빨간 벽돌집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 안에 들어가면 나는 보호받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같이 생활했던 언니들과 대학을 마친 동생들이 모두 독립하거나 결혼을 하면서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직장도 없고 그림만 그리고 있었던 저는 언니들 집을 전전하다 결국 부모님이 계시는 전주로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동생 둘을 공부시키기 위해 전주로 삶의 터전을 옮기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식당 주방일, 함바식당, 야채 노점상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폭군이었고 뜻대로 안 되면 칼과 망치를 휘두르며 위협까지 했습니다. 온갖 고생으로 더 냉랭해지신 어머니는 거기에다 남동생만 끔찍하게 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 떨어져 살고 절 키우지도 않아서 그런지,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부모 자식 간 서로 정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당하는 어머니 편을 들어 주며 대들다가 맞기도 했고, 온갖 눈총과 폭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언젠가는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교회 신자였던 어떤 언니가 준 성경책의 한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후에 찾아보니 신명기 20장의 내용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 중 새집을 짓고 봉헌하지 못한 사람, 포도밭을 가꾸어 놓고 그 열매를 맞보지 못한 사람, 여자와 약혼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 이 구절을 읽고는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제게는 집도, 가꿀 포도밭도, 배우자도 없었습니다. 더 가슴 아팠던 건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항상 떠도는, 아집과 삐뚤어진 신념으로만 꽉 찬 실상은 텅 빈 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가까이서 오래 생활해 보니 문득 어머니가 원망스럽지만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예처럼 일하고 아버지께 천대받으며 사신 어머니는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셨습니다. 다른 할머니들처럼 어디 교회라도 좀 다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성당이 어머니에게 좀 맞겠다 싶었습니다. ‘나도 여기 계속 살 건 아니지만 세례라도 받아놔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성당에 등록하고 교리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가 서른일곱 살이었습니다. 막상 성당에 다녀보니 어머니를 성당에 다니게 한다는 건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리교육 해주신 보좌 신부님을 난생처음으로 그만 짝사랑하고 말았습니다. 문자로 고백했더니 두 번 다시 전화도 받지 않고 피하셨습니다. 아무에게도 말도 못하고 죽을 것 같은 힘든 시기를 겪으며, 하느님을 저주하며 냉담자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다 길에서 마주친 본당 자매님이 제게 성당 안 다니면 더 힘들다고 그러셔서, 정말 더 힘들어서 그냥 별수 없이 성당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엉겁결에 견진성사도 받고, 성서 40주간까지 하면서 성경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으로 집중도 잘되지 않는 제가 웬일인지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모세 5경을 읽을 때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규정과 법규가 사랑 가득 담긴 엄마의 잔소리 같았습니다.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고쳐주신 벳자타 연못의 병자, 하혈하는 여인, 등 굽은 여인, 눈먼 사람, 중풍 병자, 나병 환자가 마치 저 같다고 생각되었고 예수님의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약속과 미사 때마다 읊조리는 간절한 한마디,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아 나는 이제 살아봐야겠구나. 여기 다니면 나도 나을 수도 있고, 언젠가는 나도 갈 곳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상태로 부모님 집에 계속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로든 피해야겠는데 갈 데가 없었습니다. ‘서울로 다시 가자.’ 만기가 된 연금보험을 해약해서 서울역 뒤에 성당 가까운 곳, 허름한 고시원으로 숨다시피 들어갔습니다. 높은 언덕배기 아래 ‘리빙텔’이라는 고시원이었는데 창문이 있었지만 앞 건물에 가로막혀서 낮에도 어두컴컴했습니다. 처음엔 너무 무섭고, 춥고, 좁아서 이상했고, 거기 들어갈 때면 마치 봉분(무덤)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과는 벌써 오래전에 연락을 끊었고, 휴대폰도 아예 없애고 가족과도 연락을 끊었습니다. 며칠을 잤고 계속 울었던 것 같습니다. 지친 엘리야 예언자가 주님께 말합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1열왕19,4)’ 하루는 밥도 먹지 않고 비몽사몽 저도 모르게 뭐라 욕을 하면서 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어깨가 뭐에 끌리듯 들썩들썩하더니 큰 소리로 “얼른 일어나 용서 빌고 밥 안 먹을래!”라고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잘못했다고 하고 얼른 밥을 챙겨 먹었습니다. 성당은 꼬박꼬박 다녔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요한15,5-6) 이 말씀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서 1년 동안을 지냈는데 그때까지 살면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연히 보험 해약한 돈이 바닥났습니다. 일을 한다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전주 부모님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여전히 대낮부터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는 아버지. 방에서 울면서 묵주기도를 했고, 어디선가 좋다는 말을 들어서 103위 한국성인 호칭기도를 멍한 머리로 가까스로 외워서 며칠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핍박은 더 심해졌고 겁도 없이 맞서다가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언니들은 무관심했고 할 수 없이 대모님께 도움을 청하자, 가정폭력상담센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 겨울 새벽, 엄마에게만 말하고 또다시 짐을 싸서 센터로 갔습니다. 한 방에 4, 5명씩 생활했는데 거기서 한 달을 있다가 못 있겠어서 다시 집으로 왔습니다. 아버지가 잘 때 들어와서 어떻게 할까 무서워 방문까지 잠그고 자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결국 수십 년간 곪고 곪았던 상처가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몇 날 며칠 한숨도 못 자다 한밤중에 숨이 안 쉬어져 근처 사는 여동생을 불러 응급실로 갔습니다. 병원에서 며칠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황장애, 불안장애, 수면장애, 불면증, 열병, 두근거림 온갖 증상이 다 나타났습니다. 그때부터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보험은 적용됐지만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치료비를 감당했습니다. 그전까지 다른 성당으로 미사를 다녔었는데 버스 타기도 힘들고, 마트가 기도 힘이 들어 집 근처 성당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고통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할 수 있는 내에서 더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리코의 눈먼 이가 부르짖습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18,38-39) 제 자신이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약 기운 때문에 하루에 절반 이상을 잠으로 보냈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미사도 계속 나가고 구역 모임에도 가고 레지오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사정을 안 교우들이 저를 따뜻하게 지켜봐 주고, 기도해 주고,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베로니카, 요안나, 스텔라, 엘리사벳, 마리아, 안나, 수산나, 체칠리아, 안젤라, 클라라 자매님…. 불안증으로 너무 고통스러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싫은 기색도 없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대화하고 안심시켜주는 말을 해주고, 하느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성령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역장님은 제게 친구가 다닌다는 재속 가르멜회에 입회해 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세례받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떤 교우분이 한번 제게 권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앞뒤 재지도 않고, 하느님의 뜻인가 보다 하고 망설이지도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차츰차츰 술을 줄이더니 술을 완전히 끊고 딴사람이 되었습니다. 성질이 온순해졌고, 어머니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제게 눈치를 주거나 말을 함부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조금 더 다정해지고, 부드러워졌으며, 밝아지셨습니다. 매일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할 만큼 정성스럽게 제게 밥을 해 주십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로 장식된 케이크를 가운데 놓고 촛불을 켜고 제가 캐럴을 불러 드렸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기도를 했더니 놀랍게도 두 분이 손을 모으고 눈까지 감으며 같이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제가 달라져서 그런지 형제들도 저를 호의적으로 대했습니다. 제가 부모님 곁에 있어서 안심된다고 고맙다고들 합니다. 병원치료도 계속 받으면서 저를 고통스럽게 했던 증상들이 많이 치유되었고 몇 년간 먹었던 약들도 많이 줄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신부님과도 정기적으로 상담도 하고 안수기도도 받았는데,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 져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거의 매일 미사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묵상기도, 묵주기도를 하고 성무일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재속 가르멜회에서 배운 성인, 성녀들의 삶도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삶과 하느님에 대한 열정,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훌륭한 작품으로 써낸 십자가의 성요한이 그렇습니다. 지난가을에는 마산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오가는 길에 형형색색 물들기 시작한 풍경이 마치 안개가 걷힌 듯 새롭고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마음에 편안함을 느낀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항상 내부의 적, 외부의 적과 싸우느라 전쟁터 같았던 제 영혼의 안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집에 온 것 같았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7,38) 푸른 식물을 제 손으로 키우고, 활동량을 늘려가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저를 더 많이 표현하고 하느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삶의 의욕이 샘솟고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딸 만큼 힘이 생겼습니다. 매일매일이 제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J.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학교와 가정에서 이해받지 못한 주인공 홀든은 순진무구한 어린 여동생 피비에게 말합니다.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 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온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터널은 또 올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받는 하느님의 딸, ‘참된 얼굴’이란 뜻의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듯이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우울증에 운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서 거의 매일 천변을 걷습니다. 한 아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숨넘어갈 듯 까르르 웃어댑니다. 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박현경(베로니카, 전주교구 우림본당) 평화신문2023.02.28
![[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9.오르막길 둘레길 내리막길](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6/08/JtG1686187070155.jpg)
[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9.오르막길 둘레길 내리막길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2020년 9월 말 고향으로 돌아와서 몇 개월 보내고 난 후 첫 새해를 맞이했다. 전·진·상(全眞常) 영성수련 7박 8일을 기획해서 집에서 개인 피정을 시작했다. 8일간의 식단을 미리 짜놓고, 규칙적인 몸 기도, 산책, 청소, 시간전례(성무일도, Divine Office), 미사와 다섯 번의 기도 시간을 포함한 일정표에 따라 수련을 시작했다. 첫째 날 △몸과 마음의 긴장 풀기를 시작으로 △오감으로 창조세계 관상 △타격아(打擊我, 포기) △타도아(打倒我, 겸손) △타사아(打死我, 순명) △온전한 비움(全牲) △진실한 사랑(眞愛人) △항구한 기쁨(常喜樂) △삶의 자리에서 참 행복(眞福八段)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에 관한 성경 구절들을 묵상했다. 넷째 날, 버림과 따름에 대해 묵상을 하다가 뒷동산 산책길 이름이 떠올랐다. 뒷산은 세 가지 형태의 길이다. 오르막길이 15분, 평평한 둘레길이 10분, 그 후 내리막이 10분 정도이다. 오르막은 숨을 헐떡이며 정상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 일어나고, 둘레길은 안정되고 평탄한 쉼의 여정, 내리막은 비우고 내려놓아 또 다른 형태의 삶을 누리는 순간이다. 마치 우리의 인생길과도 같고, 영적 여정과도 어울린다. 그리스도인들이 회심하여 세속적인 가치를 벗어나 하느님께 의탁하는 교회의 전통적인 영적 성숙의 여정, 성덕, 진보의 3단계가 떠올랐다. 정화의 길, 조명의 길, 일치의 길이다. 이 여정은 모든 그리스도 신앙인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성령에 자각된 자아는 이 길을 걷고자 한다. 보나벤투라(1217~1274)는 정화되고 싶다면 양심의 가책에 의지하여 자신을 단련시키라고 한다. 조명되고 싶다면 지성의 빛에 의지하여 죄를 용서받았음을 드러내라고 한다. 완전한 일치를 얻고 싶다면 지혜의 작은 불꽃에 의지하여 피조물에 대한 모든 사랑을 우리 마음에서 남김없이 뽑아버리라고 한다. 꼬미 마을 뒷동산 오르막길 안내 팻말. 세 가지 길로 나아가는 방법은 묵상(독서), 기도, 관상이라고 말하고, 내적 여정의 목적은 평화의 안식(좌품천사), 진리의 빛(케루빔), 사랑의 감미로움(세라핌)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꼬미마을 뒷동산 오르막길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의 정화를 꿈꾼다. 지은 죄 때문에 수치스러워하며, 유혹에 맞서 싸우고, 적극적으로 십자가 따름을 열망한다. 둘레길, 조명의 길에서 고통을 받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 생각하고 믿음으로 자신을 내맡기며, 깊은 통찰력을 갖고, 용서받은 잘못에 대한 은혜의 빛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내리막길을 걸어가면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희망하며, 영혼의 친교 안에서 늘 주님을 열망하며, 기뻐하고 매달리고 있음을 고백한다. 피정을 마치고 왕복 길을 안내하는 팻말을 세웠다. △오르막 : 정화의 길, 포기의 길, 십자가의 길 △둘레길 : 조명의 길, 겸손의 길, 부활의 길 △내리막 : 일치의 길, 순종의 길, 육화의 길이다. 꼬미마을은 이제 우리만의 공간을 넘어서서 지친 영혼의 쉼터, 안식처가 되고자 한다. 지금은 관솔과 함께하는 쉼 & 회복 여정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산길을 오를 때마다 성모님처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뛴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10) 김광숙(노엘라) cpbc2023.02.28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하루 36알의 약 삼키며 홀로 버티는 노모](//cpbc.co.kr/CMS/newspaper/2023/02/rc/841587_1.1_titleImage_1.jpg)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하루 36알의 약 삼키며 홀로 버티는 노모폐렴 합병증으로 쓰러진 70대 박씨, 지하방 먼지에 기침과 천식 심해져 서울 녹번동본당 조춘옥(빅토리아, 오른쪽) 사회사목분과장이 눈물을 흘리는 박재희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하느님 믿는 사람이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약이 있으면 먹고 죽고 싶어요.” 박재희(유스티나, 77, 서울 녹번동본당)씨는 “몸이 너무 아파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이런 말을 해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박씨는 매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한 다세대 주택 지하. 노란불이 켜진 채 돌아가는 공기청정기가 이곳의 공기 상태가 어떤지 말해줬다. 몇 달 전 넘어져 제대로 걷기 힘들다는 박씨는 침대에 앉아 연신 기침을 했다. 최근에는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 또 한 번 넘어졌다. “2007년 폐렴 합병증으로 쓰러졌어요. 그 뒤로 기관지 천식을 앓고 있습니다.” 지하방의 특성상 방 안으로 먼지가 많이 들어온다. 특히 밖에서 차가 지나가며 발생하는 먼지나 누군가 피운 담배 연기가 방안으로 들어올 때면 곧바로 기침이 시작된다. 기침이 한번 시작되면 보통 3시간은 기본이고, 한 달간 멈추지 않을 때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만성 위궤양, 퇴행성관절염, 목과 허리 디스크, 골다공증, 고혈압 등 박씨가 앓는 병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면역력 저하로 수술 치료는 포기한 지 오래다. 병마는 밤에 박씨를 더 괴롭힌다. 낮보다 기침이 더 심해지고 낮에는 없던 온갖 통증이 찾아온다. 극심한 통증으로 밤새워 뒤척이기 일쑤다. 그러다 해가 뜰 무렵 겨우 눈을 붙인다. 이렇다 보니 박씨는 성당에 나가기는커녕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가족도 없는 그는 하루 36알의 약을 삼키며 버티고 있다. 박씨는 젊은 시절 꽃이 좋아 꽃집을 했었다. 꽃과 함께 살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꽃꽂이도 가르쳤다. 그때 만난 수녀님들의 모습이 좋아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IMF를 겪으면서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 빚을 내 꽃집을 계속 운영했지만 그마저도 힘에 부쳐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삶의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박씨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다. 매달 62만 원을 받지만, 대부분은 약값으로 나간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오래 살아서 나랏돈만 축낼 것이 아니라 빨리 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런 그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계단이 없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에서 사는 것이다. 박씨의 유일한 낙은 가톨릭평화방송을 통해 미사를 보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일이다. “하느님, 저 좀 살려주세요. 성모님 저 좀 도와주세요. 그렇게 기도해요.”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후견인 : 강용덕 비아토르 / 서울대교구 녹번동본당 사목회장 질병과 주거환경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도 신앙에 의지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박재희 자매님께 주님 사랑이 전달되도록 많은 기도 부탁합니다. 성금계좌(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박재희씨 가정에 도움 주실 독자는 3월 5일부터 3월 11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21)에게 문의 바랍니다. 도재진2023.02.28
![[책꽂이]](//cpbc.co.kr/CMS/newspaper/2022/06/rc/825556_1.1_titleImage_1.jpg)
[책꽂이] 텔레마코스 루이지 마리아 에피코코 지음 / 김성봉 옮김바오로딸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성경 인물(이사악, 요셉, 사무엘, 다윗, 부자 청년, 되찾은 아들, 그리고 예수님)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조망한 책이다. 이탈리아 라퀼라교구 신부이며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 가는 텔레마코스를 통해 독자들도 인간을 향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관계 안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자유로워지도록 인도한다. 시편 90-150편전봉순 수녀 지음 / 바오로딸‘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3’ 「시편 1―41편」, 「시편 42―89편」을 잇는 시편 주해서의 마지막 권이다. 저자 전봉순 수녀는 예수성심전교수녀회 한국 관구장으로, 「시편 90-150편」은 야훼 시편이 대부분이며 할렐루야 시편이 포함된 시편집 4권과 5권에 대한 시편 주해서다. 상세한 각주를 붙여 신자들이 거룩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하며, 인접 시편과의 관계와 다른 성경 구절과의 관련성도 고찰했다. 또한, 현대 학자들과 교부들의 해석을 활용하여 시편에 맛 들이며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끈다. 호교론테르툴리아누스 지음 / 한창용 옮김분도출판사 최초의 라틴 교부이며 호교론자였던 테르툴리아누스가 로마인들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불합리한 고발에 반론을 제기하며 그리스도인들의 본성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책은 고대 그리스도교의 헌신적 교사들의 작품을 간결하고 명확한 우리말로 전달한다. 그리스도교 사상의 원류를 탐색하는 이들이나 종교에 관심이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흔치 않은 통찰, 곧 ‘오래고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녹명鹿鳴을 꿈꾸며허종열 지음 / 책만드는집“시인의 맑은 눈으로 바라본 지극히 밝은 세상, 그 속에서 피워낸 그의 시편들은 바로 향기를 머금은 꽃이다.”(박시교 시인) 가톨릭평화신문 편집국장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홍보팀장을 역임한 허종열(이냐시오) 시인의 새 시집. 다산 정약용의 시작 정신에 따라 시를 써온 시인은 이번 책에 사기를 북돋우고 격려하는 사설시조도 몇 편 실었다.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꼬집는가 하면 종교적 성찰의 연장선상에서 올바른 삶의 자세에 대해 노래한다. 윤하정 기자 문채현2022.06.07

젊은이들의 뜨거운 질문과 ‘교황의 대답’디즈니가 제작·출시한 다큐‘아멘: 교황에게묻다’ Hulu 공개 디즈니가 제작, 출시한 다큐멘터리 ‘아멘: 교황에게 묻다(The Pope: Answers)’. 프란치스코 교황이 촬영장에 도착해 젊은이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이들과의 대화에서 “진정한 교회는 변방에 있다”고 말했다. 한 젊은이가 가톨릭계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교사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울먹이며 털어놓자 교황은 “교회 내 사람이 아동을 짓밟았다면, 그는 끔찍한 위선자이며 이중 생활자”라고 비판했다. 일부 젊은이는 교황이 낙태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히죽거리기도 했다. 교황과 젊은이들이 교회를 둘러싼 6가지 뜨거운 쟁점(hot-button)을 놓고 격의 없이 대화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멘: 교황에게 묻다(The Pope: Answers)’가 5일 공개됐다. 디즈니가 제작한 이 다큐는 미국의 OTT 서비스 업체 Hulu에 독점 공급됐다. 다큐 촬영은 로마 시내에 있는 한 허름한 작업실에서 진행됐다. 촬영 장소에 미리 도착해 교황을 기다리던 젊은이들은 “그 양반은 카포(Capo, 마피아 두목)야”라며 키득 키득거렸다. 작업실에 들어선 교황은 젊은이들을 보자마자 “악동들이구먼!”하고 반가워했다. 대화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대화에 참여한 젊은이 10명은 국적이 모두 다르다. 종교도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등 각양각색이다. 교황은 이들의 도전적인 질문을 진지하게 듣고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답변을 이어나갔다. 다음은 대화 내용 발췌. - 교황님은 왜 그토록 ‘변방’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나요? “진정한 교회는 변방(변두리)에 있어요. 현실을 보고 싶으면 중심에서 벗어나 변두리로 가세요. 사회적 불의가 무엇인지 알려면 변두리로 가야 합니다. 종교적 의무는 이행하지만, 변방으로 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공동체는 그저 ‘좋은 사람들이 모인 사교클럽’에 지나지 않아요. 가장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교회의 임무에요.” - 교회는 무슨 근거로 여성 사제와 여성 교황에 반대합니까? “신학적인 문제입니다만, 교회라는 단어는 ‘남성형(il)’이 아니라 ‘여성형(la)’입니다. 교회 자체가 그리스도의 아내, 여성이죠. 교회에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흐름, 또는 원칙이 있어요. 사목은 남성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어머니 역할은 여성의 소명과 일치합니다.” - 교황님은 낙태 행위를 ‘살인 청부업자 고용’이라고까지 비난하셨는데, 낙태는 여성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낙태한 여성을 단죄하지 않으시고 함께 걸으실 거라고 믿어요. 교회가 낙태한 여성을 단죄하면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낙태는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에요. 발생학 전문서적을 봐도 태아는 수정 후 한 달이 지나면 DNA가 정렬되고, 모든 장기가 형성됩니다. 뱃속 태아는 세포들의 집합체가 아녜요. 체계화된 인간입니다. (임신과 출산에 따른) 문제를 없애기 위해 인간 생명을 제거하는 것이 타당한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이때 한 여성이 ‘낙태는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자유롭다’고 적힌 패션용 머리띠를 교황에게 정중하게 전달했다. 교황은 미소 띤 얼굴로 선물을 건넨 여성의 뺨에 입맞춤했다.) - 저는 소셜 미디어에 포르노물을 올려 번 돈으로 어린 딸을 키우고 있어요. 포르노에 대한 교회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소셜 미디어의 장점(편리한 기능)과 당신이 하는 일의 도덕성 사이에 구별이 필요합니다. 소셜 미디어의 도덕성은 당신이 그것을 무엇에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소셜 미디어에 음란물이 줄어들면 당신에게는 손해겠지요. 하지만 그 음란물을 보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쪼그라듭니다. 성은 하느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에요. 성적 표현도 인간을 풍요롭게 해주죠. 하지만 성적 표현이 진정한 사랑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을 쪼그라트릴 겁니다.” - 저는 트랜스젠더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에 성소수자(LGBT)를 위한 공간이 있나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저의 의무는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겁니다. 제게는 누구를 교회 밖으로 쫓아낼 권한이 없어요. (일부 신앙인이 성경을 근거로 성소수자를 단죄하는 데 대해) 증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앙을 이용하는 사람은 ‘침입자(간첩)’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함으로써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김원철2023.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