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파스카의 양이 되신 예수님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20)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얼굴 (작품1)예수님 최후의 만찬: 모자이크 이콘, 6세기 초, 아폴리나레, 누오보, 라벤나. 반만 드러난 얼굴은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른편 맨 끝 사람이 반만 드러나 있어 유다 이스카리옷으로 보인다. 제자들이 유다를 쳐다보는 눈초리가 매섭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모든 이를 위해 당신의 목숨 내놓을 것 선언하시며 당신의 몸과 피를 대신하는 빵과 포도주 예식 계속 거행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구약의 파스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인류의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 아케이로포이에토스(acheiropoiétos)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하느님은 원형이시고 우리는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닮은 이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5)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얼굴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의미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분의 실제 얼굴도 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카타콤바 벽면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그리스도의 얼굴이 있다고 전해 내려오는 이콘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방과 서방 교회에 전승으로 내려오는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그것을 ‘아케이로포이에토스’(사람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얼굴) 또는 ‘만딜리온’(참된 얼굴, 거룩한 얼굴)이라고 부릅니다. 때는 서기 30년, 예루살렘에는 파스카 축제를 앞두고 전국뿐 아니라 근방의 이국 땅에 흩어져 살던 수많은 유다인이 모여들었습니다. 파스카 축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너희 자녀들이 너희에게 “이 예식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여라. “그것은 주님을 위한 파스카 제사다. 그분께서는 이집트인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을 거르고 지나가시어, 우리 집들을 구해주셨다.”(탈출 12,26-27) 파스카 축제 때 양을 잡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기 전날 죽음을 피하고자 문설주에 바른 양의 피를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누룩 없는 빵은 서둘러 이집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선조들의 다급함을 연상케 해 줍니다. 파스카 의식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양의 피는 죄를 깨끗이 없애는 것을, 쓴 나물은 이집트 종살이의 고통스러움을, 누룩 없는 빵은 순결을 상징했습니다. 파스카는 가족 축제로 시작되었지만, 후일 성소와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축제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는 1년에 세 번 큰 축제 때 예루살렘 성전에 나와야 합니다. 그 후 양의 피를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는 대신, 성전에서 사제가 양의 피를 제단에 뿌립니다. 목적은 제단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후기에는 백성의 대표자가 자신과 모든 백성을 위해 속죄 제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 탈출’이라는 주제는 구약 전체의 시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탈출을 기념하는 파스카는 하느님께서 계약으로 맺으신 당신 백성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상기시키는 축제였습니다. 구속에서 구원으로 이어지는 이 축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육체적·정신적·신앙적 억압을 겪을 때마다 변함없는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파스카 의식에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파스카의 양이 되신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겪으신 때가 파스카 축제 기간 중이었으며 예수님 최후의 만찬도 바로 파스카 식사였습니다. 그림에는 없지만, 틀림없이 누룩 없는 빵과 포도주와 쓴 나물과 열두 사도와 함께 드실 구운 양이 있었을 것입니다. (작품 1)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모든 이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놓을 것을 선언하시며, 당신의 몸과 피를 대신하는 빵과 포도주의 예식을 계속 거행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구약의 파스카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인류의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파스카 희생 제물이었음을 깨닫고 상징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때의 파스카 사건의 흐름은 하느님의 지혜였으며, 하느님 사랑에 기인한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순례자 중에 그리스인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과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아마도 에데사(Edessa)에서 온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되는 장면입니다. (작품 2) 아케이로포이에토스: 34 x 25cm, 템페라, 카타리나 수도원, 시나이, 아브가르 왕이 하나니아로부터 아마포에 박힌 예수님의 얼굴을 들고 있다.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를 지나 동방으로 나가는 관문이 바로 에데사입니다. 구약 성경의 하란(Harran)이 북쪽으로 50㎞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에데사는 오늘날 튀르키예의 우르파(Urfa)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북부이며 상류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습니다. 교회사 자료에는 에데사의 국왕이었던 아브가르 우까마(Abgar Ukkama, A.D. 30)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신하로부터 예수님께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치유를 베푼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매우 큰 관심을 갖습니다.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환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4,24) 아브가르 왕 자신도 중병에 걸려 예수님께 치유받고자 했습니다. 아브가르 왕은 특사 하나니아를 통해 보낸 편지에서 예수님께 속히 에데사로 오셔서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려움과 박해가 있을 때는 안전하게 보호해 드리겠다고 전합니다. 축제 때 예수님 뵙기를 요청한 그리스인들은 먼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인 필립보에게 청합니다.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전하고, 이 두 사람이 함께 예수님께 전합니다.(요한 12,20-26 참조) 그러나 요한 복음서는 그리스인들이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지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찾아온 그 목적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해하려는 모종의 모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에데사로 망명할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권유를 거부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인 십자가를 지기로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3-24) 요한 복음서는 ‘밀알의 말씀’이 대단히 중요하기에 예수님께서 그리스인들에게 하신 그 말씀만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브가르 왕에게 전달한 내용은 ''나를 대신하여 제자 한 사람을 보낼 터이니 그로 인하여 병이 나을 것''이었다고 전합니다. (작품 2)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는 에데사로 가셨고, 예수님 얼굴이 찍혀있는 수건으로 아브가르 왕의 병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쳐주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국왕을 비롯해 많은 신하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비록 외경이긴 하지만 토마스 행전이 에데사 선교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제자가 누구인지는 추측에 불과합니다. 시나이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소장되어있는 이콘에는 유다로 그려져 있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타대오라는 설도 있습니다. 유다는 야고보와 형제라고 하며, 이름이 비슷한 유다 이스카리옷이 있어 혼동을 피하려고 타대오라는 이름을 쓴다고도 전합니다. 김형부 마오로cpbc2024.05.22

행복 담아 사제 밥상 차리는 주님의 식복사[기획 특집] 세계 여성의 날에 만난 교회 내 여성 노동자 ②심금수씨 2013년부터 식복사로 일해온 심금수씨. 그는 “신부님 밥 해드린 일이 내 생애 가장 기쁜 일”이라고 했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한다. 살림 경력 30년차 주부에게 한 끼 밥상을 차려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밥을 먹는 사람은 밥을 차려내는 사람의 수고로움을 잘 알기 어렵다. 밥을 차리는 사람은 누군가의 고픈 배가 채워지는 것만으로 이미 배가 부르다. 그것이 밥을 차리는 수고에 대한 보상이라면 보상이다. 세계 여성의 날(3/8)을 맞아 두 번째 교회 내 여성 노동자를 만났다. 아들·딸을 사제와 수녀로 키우는 게 꿈이었다. 딸은 일찌감치 다른 길을 걸었지만, 아들은 고3 때까지 사제의 꿈을 꿨다. “아들이 고3 여름방학 때 성적표를 갖고 와서 신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순간, 화가 너무 많이 났죠.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사제의 길을 꿈꿔왔거든요. 아들에게 말했죠. ‘엄마는 아들을 신부로 키워서 아들 신부 밥 해주는 게 목표였는데…. 엄마는 이제 신부님 밥해주러 다닌다!’라고요.”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30년 경력 주부 심금수(가타리나, 59)씨는 그렇게 처음 세상 밖 일터로 나왔다. “신부님 눈도 못 마주쳤어요. 세상 밖에 나와서 처음 한 일이었거든요. 세상에 나와보니, 자존감도 없고 은행 일도 못 보는 거예요. 그야말로 그냥 주부로만 살았던 거죠.” 그는 수없이 많은 밥상을 차려봤지만, 식복사로 일하며 “잘 먹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어머, 세상에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듣다니…. 한 달이 지나니 월급이 나와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이게 천직이다 싶었어요. 남편에게 30년 동안 밥을 해줘도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웃음)” 심씨는 경북 왜관에서도 더 들어가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의 요리 솜씨는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는 산골에서 파와 양파·감자·마늘만으로도 요리를 참 잘하셨어요. 약으로도 못 고치는 속병은 음식으로 고칠 수 있다고 하셨죠.” 그가 메모해 놓은 식단. 그는 식단 고민에 새벽까지 잠 못들 때도 있다. 2013년에 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손님 신부를 포함한 사제 6명의 밥을 책임져왔다. 위가 좋지 않은 신부를 위해서는 6개월 동안 무 요리를 집중적으로 하고, 전립선이 안 좋은 신부를 위해선 토마토를 음식재료로 썼다. “무가 들어간 요리가 얼마나 많아요. 무밥, 오징어무국, 무생채, 명태 뭇국, 황태 뭇국…. 전부 무가 들어가죠. 신부님들 위병이 나면 능이 뭇국을 끓이죠.” 경북 문경에 사는 친언니와 동생이 수시로 제철 나물과 버섯을 보내준다. 언니와 형부·동생과 제부가 보내주는 향 내음 가득한 냉이·두릅·엄나무 순·능이버섯 등으로 밥상을 차린다. 각지에 사는 심씨 가족 모두가 함께 ‘사제의 식탁’을 차리는 셈이다. 그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오전 11시 55분. 그의 손을 거친 음식재료들이 그릇에 담겨 사제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직전이다. 그는 9시 30분에 출근해 7시 30분에 퇴근한다. 사제관 부엌에서 점심ㆍ저녁상을 차리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은 후에 일을 마무리한다. “식복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음식을 하고 나서 잘 안 드시면 어떡하나 하는 압박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제가 정성을 다해 요리했을 때는 잘 드시든 안 드시든 제 소관은 아니더라고요.” 식사를 거르겠다는 신부의 문자를 받으면, 사제관에서 홀로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몇 번을 확인한다. 식사를 거르겠다고 연락을 받고 퇴근할 때 흰죽을 끓여서 갔더니 혼자서 끙끙 앓는 신부가 있었던 탓이다. 심금수씨는 2015년부터 틈틈이 일기를 써왔다. 식복사로서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2015년부터 일기를 썼다. 그날의 식단과 기분을 적는다. 사제관을 방문한 손님들과의 일화도 쓴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터에서 남기는 쉼표 같은 기록이자, 앞으로는 추억이 될 조각이다. 올해는 성경 필사도 시작했다. “이 부엌이라는 공간은 제게 기도 그 자체예요. 나물을 다듬다가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어요.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지 몰라요. 적당한 노동은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이 행복한 일을 하는데 안 행복할 수가 있나요? 저는 신부님들을 존경하고,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할 뿐이에요.” 요리하는 사람의 직업병은 날카롭고 뜨거운 것에 베이고 데이는 일이다. 심씨는 “먼 훗날 예수님을 뵐 때, ‘세상에서 무엇을 제일 잘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당신 아들들 밥해 먹이는 일을 했다’고 할 것”이라며 “그것이 내 생애 가장 기쁘게 최선을 다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12년간 식복사로 일해온 그는 매년 한 달치 월급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기부해왔다. 몸이 아픈 이들을 눈여겨봤다가 기회가 되면 담근 김치와 반찬도 건넨다. “제가 옷을 사 입기를 하나요, 화장을 하나요? 요리하는 탤런트를 받았으니 그걸 나누는 것뿐이에요.” 내년 5월이면 정년을 맞는 심씨는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 “시골에 집을 지을 때 게스트 하우스 같은 공간을 따로 만들고 싶어요. 몸이 아픈 이들이 편안하게 지내다 가실 수 있게요. 식탁에는 샐러드를 준비해놓고 호박잎도 쪄놓고요. 밥 먹으라고 깨우지도 않고요.(웃음)”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이지혜2024.03.13
![[임홍택의 중고로운 평화나라] 어른이 된다는 것](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5/28/XYI1716879768556.jpg)
[임홍택의 중고로운 평화나라] 어른이 된다는 것임홍택 유스토(「90년생이 온다」 저자·명지대 미래융합경영학과 겸임교수) 지난 5월 20일 월요일은 ‘성년의 날’이었다. 나도 이제 성인의 나이가 된 지 어언 20여 년이 지난 지라, 이날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잊고 살다가 지난 주말 한 구청에서 진행하는 성년 축하 행사에 강연을 갔다가, 백만 년 만에 성년의 의미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성년의 날은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신생 성인들을 장려하고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일깨워주고자 지정되었다고 한다. 근데 성인, 즉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른이란 사전적으로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어른이란 단순히 만 19세가 넘거나, 일정 이상의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자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도 성년의 나이가 되었던 20여 년 전 과거에는 신세대 혹은 신인류라고 불렸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신세대라는 타이틀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그렇다고 불혹의 나이가 지난 지금 나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 만화 「주술회전」에 등장하는 나나미 켄토는 주인공인 이타도리 유지에게 사람이 어른으로 넘어서는 과정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당신은 그간, 여러 번 사선을 뛰어넘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어른이 된 건 아니에요. 베개 밑에 빠진 머리카락이 늘어나거나, 좋아하던 야채빵이 편의점에서 자취를 감추는 등, 그런 작은 절망들이 겹겹이 쌓여 사람을 어른으로 만드는 겁니다”라고 말이다. 나는 10여 년 전 다시금 성경을 보다가 얻은 깨달음으로 세례를 받아 ‘유스토’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고, 가톨릭의 인연으로 만난 아내와 가정을 꾸려 2명의 아이와 삶을 함께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자가 되어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것으로 모든 일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단지 앞으로 죽는 날까지 삶에 녹아있는 작은 절망을 넘어가며 성장하고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란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그저 작은 절망들이 넘치는 하루를 담대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단순히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가 꼰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시대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구시대적 혹은 시대착오적 사고를 유지하는 이들만이 개꼰대라는 이름의 시대착오적 인간으로 남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세대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사는 방법은 사실 어렵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유치원 때 배웠던 기본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선배들이 잘못했던 부분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단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21세기에 태어난 우리의 다음 세대는 실수를 두려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에게 책임지지 못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손쉬운 조언을 하지 말자. 실수는 원래 두려운 것임을 솔직히 인정하자. 단지 삶에 있어 어쩔 수 없이 실수가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우리가 조금씩 어른이라는 목표로 가기 위해서는 거기서 교훈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자. 그리고 ‘그놈의 MZ타령’이 반복되지 않도록, 세대로 사람을 분석하기보다 그 세대 안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정확히 보는 노력을 해보자. 그러다 보면 적어도 우리는, 다음 세대를 잘파 세대(Z세대와 알파 세대를 묶는 용어로 우리나라에만 있다)로 퉁치는 일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성년 이야기가 나왔으니, 10년 전부터 하루하루 미루다 어느새 잊어버린 견진성사를 받아야겠다.cpbc2024.05.29

「가톨릭 성가」에도 실린 바흐의 수난곡바흐 ‘요한 수난곡’ ‘마태오 수난곡’ 그리스도 수난과 십자가 죽음 묘사 바로크 음악 총망라한 오라토리오 다음 달 ‘마태오 수난곡’ 국내 공연 대규모 합창단·오케스트라 무대에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롯데콘서트홀 제공 취리히 징-아카데미 합창단. 롯데콘서트홀 제공 사순 시기, 교회는 ‘수난곡(Passion)’을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묘사했다. 이 수난곡 가운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요한 수난곡’과 ‘마태오 수난곡’은 종교를 떠나 바로크 음악의 모든 형식을 총망라한 대작으로 손꼽히는 오라토리오다. 이들 곡은 루터교 신자였던 바흐가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1723년부터 1750년까지 칸토르(성가대 지휘자 겸 음악감독)로 재직하던 초기에 완성했다. ‘요한 수난곡’은 1724년에 작곡해 그해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마태오 수난곡’은 1727년에 완성해 2년 뒤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초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한 수난곡’과 ‘마태오 수난곡’은 각각 요한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에 성가 가사와 자유 가사 등이 더해졌다.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독창·합창·관현악이 모두 등장하지만, 별도의 무대연출이 없고 성악가도 따로 연기하지 않는다. 오페라에 비해 합창의 비중이 더 크고, 합창과 아리아 사이에 줄거리를 해설하는 복음사가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야기는 성경을 노래하는 복음사가의 레치타티보(Recitativo, 낭독하듯 노래하는 방식)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아리아와 합창이 교차로 주요 인물이나 군중의 상태를 묘사한다. 이들 수난곡의 일부 곡은 가톨릭 미사에서도 자주 불려진다. 가톨릭 성가 116번 ‘주 예수 바라보라’는 ‘마태오 수난곡’에서, 75번 ‘주 그리스도 우리 왕’은 ‘요한 수난곡’에서, 169번 ‘사랑의 성사’는 두 수난곡 모두에서 가져왔다. 각각의 성가를 보면 원곡자가 한스 레오 해슬러, 멜히오르 테쉬너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바흐가 차용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이라고, 자신의 곡이 아니더라도 다른 가사를 붙여 사용하기도 했다. 연주에만 3시간이 소요되는 ‘마태오 수난곡’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4월 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5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7일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바흐 서거 이후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았던 ‘마태오 수난곡’은 1829년 스무 살의 청년 멘델스존이 대규모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무대에 올리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마태오 수난곡’은 이중합창 구조로 지휘자 양쪽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각각 자리해 곡의 입체감과 극적 효과를 높인다. 이번 무대에서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원전 악기의 정수를 연주하며, 합창은 스위스 취리히 징-아카데미 합창단과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이 맡는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은 지난해에는 ‘마태오 수난곡’, 3월에는 ‘요한 수난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4.03.20

분쟁의 땅, 언제쯤 평화가 올까박노해 사진전 ‘올리브나무 아래’ 서울 통의동 ‘라 카페 갤러리’...사진 37점 시인의 글과 함께 전시 1. 올리브나무 숲의 아침 ⓒParkNohae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실수이자 가장 오래 살아남는 나무로 ‘신이 내린 선물’, ‘나무 중의 으뜸’이라 불리며 수많은 신화와 경전에 상징처럼 등장하는 올리브나무. 박노해(가르시아, 66) 시인이 과거 중동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펼치며 카메라에 담은 올리브나무를 한자리에 모았다. ‘올리브나무 아래’, 서울 종로구 통의동 ‘라 카페 갤러리’에서 열리는 그의 스물두 번째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대의 정취가 어린 올리브나무 숲에서부터 대대로 그 땅의 사람들을 묵연히 지켜주는 나무, 거대한 분리장벽 앞에 최후의 전사처럼 홀로 선 나무, 사막과 광야에서도 푸른 열매와 기름을 내어주는 나무, 천 년의 기억을 품고도 아이처럼 새잎을 틔우는 올리브나무까지 시인이 눈물과 기도로 담아온 37점의 사진을 소개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여전히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는 분쟁의 땅, 그곳을 무던히 지키고 있는 올리브나무와 시인의 글을 통해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어떨까. <작품별 설명> 1. 올리브나무 숲의 아침 : 고대의 정취가 어려 있는 요르단 북부 도시 제라시는 성경에서는 게라사로 언급된 곳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성경, 쿠란, 일리아스, 천일야화 등 수많은 고전과 경전에 등장하는 올리브나무가 100만 그루 이상 자라고 있다. 2. 예수가 태어난 자리에 ⓒParkNohae 2. 예수가 태어난 자리에 : 예수님이 태어난 구유 자리에 세워진 베들레헴의 ‘주님 탄생 기념 성당’에는 세계에서 찾아오는 순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여러 종파의 각기 다른 십자가가 차지한 하늘 아래 한 그루의 올리브나무 고목이 묵연히 서 있다. 3. 올리브나무 세 그루 ⓒParkNohae 3. 올리브나무 세 그루 : 한때는 올리브 숲이었으나, 세월이 흘러 거친 바위산에 살아남은 올리브나무 세 그루.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저 나무들은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굳건하다. 4. 이 열매를 받으라 ⓒParkNohae 4. 이 열매를 받으라 : ‘올리브그린’ 빛의 열매는 일용할 양식이 되고 고귀한 기름이 되고 성전의 향유가 된다. 올리브나무는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마치 사명이라는 듯이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 박노해 시인은 “척박한 광야에서도 작은 올리브나무 하나가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으면, 그러면, 나무는 나무를 부르고 숲은 숲을 부르며, 다시 천 년의 사랑이 시작된다”며 “이런 시대에 작은 올리브나무 같은 나 하나로부터 우리 삶을 지키는 푸른 방패가 되고 소리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푸른 기둥이 되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라 카페 갤러리’는 시인이 설립한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문화공간이다. ‘올리브나무 아래’ 전은 내년 8월 25일까지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10시 사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379-1975, 라 카페 갤러리 윤하정 기자 윤하정2023.11.15
 성경](//cpbc.co.kr/CMS/newspaper/2022/05/rc/823901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영상 교리](5) 성경 그리스도교 신앙의 토대, 성경 성경 안에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의 진리가 담겨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키우기 위해서도 성경 읽기는 필수다. 사진은 사해의 쿰란에서 발견된 이사야 두루마리. 신앙생활에 성경은 왜 중요할까요? 성경 안에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의 진리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전하시는 하느님의 말씀도 있고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구약 시대부터 기다려 온 메시아이시고, 신약 시대로 와 무슨 말씀을 하셨고 어떤 행동을 보이셨는지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키우기 위해서 성경 읽기는 필수라고 하는데요. 어떻게, 다들 성경 말씀과 열심히 만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요. 성경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성경의 구성먼저 성경은 우리에게 책으로 다가옵니다. 좀 두꺼운데요,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요? 총 73권으로 구성된 성경은 크게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으로 나뉩니다. 구약 성경은 총 46권으로, 예수님 탄생 이전까지의 기록입니다. 신약 성경은 총 27권으로, 그리스도 탄생 이후의 기록입니다. 여기서 구약은 하느님의 옛 계약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처음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계약인데요, 메시아를 보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겠다는 계약입니다. 다음으로 신약은 예수님을 통해서 인류에게 주신 하느님의 새로운 계약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로 모든 인류와 맺으신 계약으로, 구약의 완성입니다.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구약 성경은 모세 오경과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그리고 예언서로 구성됩니다. 창세기를 필두로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모세 오경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계약에 관한 기록이고, 역사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과의 계약에 얼마나 충실했는지에 관한 기록입니다. 또, 시편과 잠언 등으로 이루어진 시서와 지혜서는 하느님께 충실했던 인물들의 모범과 찬양, 지혜의 가르침에 관한 기록이고, 예언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전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모아놓은 것입니다.한편,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활,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완성된 하느님의 구원 사업과 교회의 시작에 관해 알려주고 있는데요. 그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네 복음서와 예수님의 승천 후 교회의 탄생과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 그리고 사도들과 제자들이 개인과 교회 공동체에 보낸 서간들과 세상 마지막 날에 대한 희망을 담은 요한 묵시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네 복음서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그리고 요한 복음입니다. 모두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향하고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성경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성경 안에서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을 밝혀주고,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을 더 잘 이해하게 해줍니다.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성경의 저자들이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또 성경은 하느님의 인도에 따라 기록됐지만 1000년 이상의 시간을 거쳐 쓰였고, 성경을 쓴 저자들이 살았던 시대와 관습과 언어의 영향을 받아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볼 때는 그 성경이 어떤 시대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기록됐는지를 알면 더욱 좋습니다. 더불어 성경을 읽을 때는 성령의 도움을 청하며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기록하도록 영감을 주신 분이 성령이므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역시 같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오해 없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참으로 하느님과 함께 살게 하는 생명의 양식이고, 영혼의 양식입니다. 또 우리 삶의 바탕이 되는 모든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지금 나에게 말씀을 건네시고, 응답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가톨릭 영상교리 바로가기 문채현2022.05.11

딱 하나! 지팡이만[월간 꿈 CUM] 꿈CUM 묵상_예수의 일생 (13)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제주 성이시돌 목장 새미은총의 동산 조형물) 사진을 보시죠. 성경의 어떤 장면을 표현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는 장면입니다. 제자들은 파견에 앞서 예수님으로부터 안수를 받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니까, 사진 속 예수님의 손에 마음으로 안수를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안수를 받으셨나요? 그러면 이제 파견받은 우리들의 사명에 대해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7-9)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돈과 식량, 여벌 옷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딱 하나! 지팡이만 허락하셨습니다. 물론 마태오복음 10장 8-10절과 루카복음 9장 3절에서는 지팡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으시지만, 마르코복음에서는 지팡이를 허락하십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세 복음서에서 각각 말하는 지팡이에는 각각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팡이’ 하면 성경과 관련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그렇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40년 동안 파라오 궁전에 살았던 모세는 살인을 저지른 후 광야로 도망쳐 다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 막바지에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집트 궁정과 광야의 상황을 모두 알게 한 후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키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겁을 먹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이라는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하느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탈출 4,10) 그러자 하느님은 당신이 함께하실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지팡이를 내어주십니다. “이 지팡이를 손에 잡아라. 너는 그것으로 표징들을 일으킬 것이다.”(탈출 4,17) 모세는 이 지팡이를 들고 이집트로 가서 파라오를 굴복시킵니다. 그리고 이 지팡이로 바다를 갈랐고, 바위를 쳐서 샘물을 열었습니다. 지팡이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모세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팡이 하나만을 가지고 가라는 말씀은 “오직 하느님의 능력 하나만 가지고 가라”는 의미입니다.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서에서 ‘지팡이조차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할 때의 그 지팡이는 모든 세속적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고, 마르코 복음에서 ‘지팡이만 가지고 가라’고 할 때의 그 지팡이는 오직 하느님의 능력 하나만 품고 가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도 가끔은 이런 신비를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강연할 때 어떤 때는 준비 없이 가서 평소 하던 대로 입만 나불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청중들의 반응이 어김없이 미지근합니다. 하지만 성령에 휩싸여 뜨거움 속에서 하느님을 증거하면 이내 청중들의 반응도 뜨거워집니다. 교만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하는 것과 내 힘으로 하는 것의 차이는 이렇게 큽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우리를 파견하시면서 인간적인 모든 판단과 욕심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안수하시는 것은 당신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라는 의미입니다. 얼마 전 한 자매님이 “신부님! 저는 모든 노력을 다해 성당에서 봉사하는데 신자들이 내 말을 따라오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노력으로 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이 그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 주십니다. 전대에 돈과 식량, 여벌 옷 등 내 것들로 가득 채우지 않아도 됩니다. 지팡이 하나만 들고 가면 됩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할 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과나무를 키우는 사람들입니다. 사과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하면 고작 1개 정도의 사과만 수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힘으로 하면 자루가 터질 만큼 100만 개의 사과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꿈CUM 지도신부, 성 바오로 수도회) cpbc2024.01.23

추석 연휴, 알다가도 모를 내 마음 들여다볼까요주일이 포함된 닷새간의 추석 연휴다. 타인은 반가움 반, 번거로움 반이라고 했던가. 집이든 성당이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즐거운 한편 버거운 감정이 공존하곤 한다. 마음을 다치기도 하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며 치유하기도 하는 신앙인들의 글을 통해 명절 연휴를 슬기롭게 지내보자. 홍성남 신부와 함께하는 마음일기 / 홍성남 신부 / 가톨릭출판사 ‘짜증 난다·두렵다·답답하다·밉다·초조하다·분하다·싫다·죄스럽다⋯’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 단어는 무려 4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슬픔’에 해당하는 단어만 살펴봐도 ‘서글픔·허탈함·착잡함·섭섭함·씁쓸함·서운함·속상함’ 등 다양하고,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홍성남 신부와 함께하는 마음일기」는 저자와 함께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책이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인 저자는 ‘내 안의 불편한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은 60일 동안 묵상 글을 읽고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기록하며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마음을 씻지 않으면 처음에는 가렵고 불편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적응이 되면 씻지 않아도 편안한 상태가 오고 나중에는 씻는 것이 아주 귀찮아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더럽다고 해도 개의치 않게 됩니다. 이처럼 오염된 말에 젖어 살면 자신의 영혼이 점점 더 망가져 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에는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93쪽) 다니엘 신부의 사목 단상 / 권철호 신부 / 기쁜소식 “마음으로 다하지 않은 희생은 희생일 수 없습니다. ‘희생당한’ 것이지 희생한 것은 아닙니다. (중략) 명절이 지나고 나면 명절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많은 시간 오가고 여러 가족들을 만났으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을 겁니다. 마음을 다한 희생이었다면 그나마 미소를 간직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희생은 스트레스가 쌓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명절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희생당했느냐’ 아니면 ‘희생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97쪽) 올해로 사제수품 30주년을 맞은 권철호(서울대교구 방배동본당 주임) 신부가 20여 년간 ‘사목 단상’이란 주제로 주보에 써온 글을 추려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오랜 세월 주님 말씀을 토대로 성당 안팎에서 만난 사람과 사물, 자연을 통해 뭉쳐진 생각들은 짧지만 결코 얕지 않은 깊이를 담고 있다. 단상에 어울리는 소박한 사진들도 책장에 시선이 머물도록 돕는다. 권 신부는 “시간이 모든 것을 퇴색시켜도 은총의 기억만큼은 더욱 선명해지는 것처럼, 이 단상들이 주님 은총을 다시금 일깨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살기 / 생활성서사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영성을 지금의 우리가 살아낼 수 있도록 인도하는 묵상 기도서가 출간됐다. 지난 6월 출간된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알기」가 주교의 일대기를 사진과 표, 남긴 글을 통해 톺아봤다면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살기」는 주교의 삶과 주요 영성을 묵상과 기도로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26주간 매주 브뤼기에르 주교의 글을 읽고, 그 내용을 성경 말씀으로 이해하고, 묵상을 통해 독자의 것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소 주교님은 천주(天主)를 참된 세상의 주인으로 알아보고, 이 세상의 ‘임자’로 알아보았던 조선 교우들에게 참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바로 실현되지 않더라도 한 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면 얼마 후에,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후대에는 이 땅이 반드시 복음화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나아가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바로 알고 바로 살아, 그분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으셨던 복음을 삶에서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151쪽) 냉담 중입니다 / 누구나 / 바오로딸 신앙인에게는 멀고도 가까운 단어 ‘냉담’. 「냉담 중입니다」는 체사리아라는 세례명의 청년 작가가 자신의 실제 신앙 여정을 바탕으로 그리고 쓴 만화 일기다. 어린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 성당에 갔던 순간부터 냉담 중인 지금까지를 돌아보며 하느님께서 주신 기쁨과 열정, 사람들 사이에서 겪었던 행복과 어려움, 외로움을 찬찬히 살펴본다. 밝은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둡고 힘든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비록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그 모든 순간에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저자는 물론 독자도 자연스레 깨닫게 한다. “어떨 때는 내가 나눈 것 이상을 넘치도록 받았기에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공허하다. 어디엔가 구멍이 나서 줄줄 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데도 마음이 허해서 힘이 나지 않는다.”(243쪽) 열심히 봉사하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다 완전히 탈진해서 모든 것을 멈추고 싶다면 부담 없이 책장을 넘겨도 좋겠다. 그래서 저자는 답을 찾았는지, 냉담을 멈췄는지도 확인해 보자. 아내는 “예” 남편은 “왜” / 배금자·손세공 / 벽난로 ‘한 가정이라도 더 행복한 가정이 많아지도록 일하자’를 소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금자(가타리나)와 손세공(엘디) 부부의 신간이다. 책 제목인 「아내는 “예” 남편은 “왜”」는 아내는 성모님을 닮아 모든 어려움 앞에서 “예”라며 받아들이고, 남편은 “왜”하며 해결책을 예수님 안에서 찾고자 노력해온 삶을 드러낸다. 이번 책은 부부 저자가 ‘행복한 가정 만들기’를 주제로 20여 년간 진행한 700여회의 강연과 500여 건의 상담에서 마주한 질의응답을 엮은 것이다. 신앙생활·부부 사이·성생활·자녀·시가·처가 등 가정을 이루며 만나는 다양한 문제를 다뤘다. “맞벌이와 외벌이일 경우 경제적 역할을 덜 맡은 사람이 가사 분담을 더 많이 하는 것이 당연한 걸까요? (중략) 인간은 자유의지로 살아갈 때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이유가 가족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맡겨진 의무이기 때문에 행한다면 기쁨을 갖기 어렵습니다. 오늘 질문의 답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 집안일을 하고, 둘 다 하기 싫으면 조금 불편하게 지내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59쪽) 부부 저자는 199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로레토 새가정학교’에서 세 자녀와 함께 1년 동안 유학했고, 1999년부터 12년 동안 포콜라레 새가정운동 한국 책임 부부로 일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9.10

‘정준영 단톡방’ 최초 보도한 기자, 신앙으로 협박 이겨내스포츠서울 박효실(힐데가르트) 기자, 신상 털리는 위험에도 꿋꿋이 버텨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스포츠서울 문화연예부 박효실 기자. “기사 쓰는 일이 정말 두려워서 두 번 다시 기사를 쓰고 싶지 않았어요. 당시 저와 남편 신상이 다 털렸고, 남편은 제게 휴직을 권했죠. 기사를 쓸 때마다 악성 댓글이 달리고, 회사 SNS 공식 계정에 ‘왜 저 기자를 자르지 않느냐’는 항의 글도 올라왔어요. 그때 임신 초기였는데 새벽에 음란한 사진과 글을 받았고요. 저는 부당한 일을 한 그들에게 의미 있는 결과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힘들어도 버티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5년 전 K팝 스타들의 성추문 사건 ‘버닝썬’ 사태를 재조명한 다큐멘터리가 지난 5월 19일 공개됐다. 영국 BBC 탐사보도팀 ‘BBC Eye’가 제작한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하다’는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에 올라온 메시지와 동영상을 적나라하게 공개해 다시 충격을 안겼다.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불법촬영 사건으로 시작하는 이 다큐는 조회 수 900만을 넘겼다.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을 2016년 9월 23일 최초로 보도한 이가 스포츠서울 문화연예부 박효실(힐데가르트) 기자다. 그녀는 다큐에 출연해 취재 과정을 밝혔다. 당시 임신 중 두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은 그는 다큐에서 “제 뒤에 많은 여기자가 또 같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지옥같던 시기를 견뎌냈다”고 회고했다. 위험해도 ‘의미있는 보도’라면 13일 서울 명동대성당 인근에서 만난 박효실 기자는 “방송 후 동료와 후배 기자들한테 연락을 많이 받았다”면서 신앙에 의지해 버텨온 시간을 털어놨다. “다큐 촬영 때 하마스 내전 같은 위험한 일을 취재하는 BBC 탐사보도 전문기자가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나도 사이버 테러를 당했고 위험한 일을 많이 겪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인 거 같다’고요. ‘위험한 보도를 하면 남편과 딸이 걱정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보도는 의미가 있다’고요.” 박 기자는 “다큐를 보며 제가 생각하는 추악함의 범위를 벗어나는 사건이 공공연하게 반복되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면서 “내가 무서운 사건에 연루돼 지옥의 문고리를 잡았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정준영 팬들에게 전화와 이메일로 협박과 비난을 받았다. “그때 성서백주간 봉사를 할 때였는데, 성경 구절이 다 저한테 주시는 말씀 같은 거예요. ‘복수와 보복은 내가 할 일’(신명 32,35)이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죠. 하느님이 해결해주신다는데,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기쁘게 살자, 하느님은 모든 걸 아시니까 괜찮다’라고 생각했어요.” 사건 후 그의 기사에는 ‘참 기자이십니다’, ‘무사하시길 기원합니다’라는 댓글들이 종종 달린다. 2000년 입사한 박 기자는 “예전에는 용감함이 지나쳐 과감했고, ‘맞는 말이면 날카로울 수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신앙을 갖고 나서 정의는 어느 편에 있느냐에 따라 바뀐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바티칸 김대건 성상 제막식 취재 그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이자 성서백주간 봉사자·본당 매리지 앤 카운터(ME) 대표로도 봉사하고 있다. 전례 독서단과 부부 복사활동도 한다. 지난해 바티칸에서 열린 김대건 성상 제막식 취재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 인터뷰도 했다. 그는 “신자로서 인생 최고의 영광이었다”며 “바티칸에 자신의 신앙을 지킨 앳된 김대건 성인의 하얀 성상이 드러난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2016년 그 사건으로 억울한 일, 불의한 일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됐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었나 많이 돌아보고 반성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느님이 철없던 저를 겸손해지라고 납작하게 두드려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글을 쓰라고 제 손목을 꽉 붙들어주신 거라고요.”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4.06.19
[새성전 봉헌] 수원교구 은행동본당, 15일 수원교구 은행동본당(주임 박찬홍 신부)이 15일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새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다. 경기 성남시 중원구 산성대로 582번길 8에 위치한 성전은 대지 1069.4㎡, 연면적 2955.13㎡ 규모다. 지하 1ㆍ2층은 주차장과 교리실로 사용되고, 1층에는 사무실, 면담실, 식당, 2ㆍ3층에는 성전과 성가대석, 수녀원, 4층에는 사제관과 성모동산이 자리했다. 이로써 은행동본당은 입당 4년, 본당 설립 25주년에 새 성전을 봉헌하게 됐다. 은행동본당은 1998년 1월 30일 설립됐다. 주택 밀집 지역에 위치한 상가 건물에서 지내면서 전례 봉헌과 공동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2017년 12월 9일 성전 건축에 착수해 2019년 8월 17일 입당 미사를 봉헌하고 입주했다. 그간 신자들은 교구 내 27개 본당에서 모금 활동을 펼치고, 대규모 바자 3회 개최, 먹거리 판매 등으로 건축 기금을 마련했다. 또 묵주기도 봉헌 1000만 단, 연인원 8400명의 성경 통독 참여, 전 신자 성경 필사 등 영적 노력도 함께 기울였다. 은행동본당은 은행2동, 양지동 전체와 단대동 일부를 관할하며, 신자 수는 1550명이다. 본당 수호성인은 ‘성 요셉’이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2023.08.09

위대한 마리아[월간 꿈 CUM] 꿈CUM 신앙칼럼 (15)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 작, 성 마리아 막달레나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Crucifixion with Mary Magdalen) 예수의 남자 제자선발 면접 용지에는 ‘충성도 평가’ 항목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마르 14,50) 예수가 체포될 때, 그리고 십자가에서 홀로 외롭게 죽어갈 때, 그곳에 남자 제자들은 없었다. 심지어 한 제자는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옷을 벗고 알몸으로 달아나기도 했다.(마르 14,52 참조) 나 원 참…. 그런데, 여자들은 달랐다. 그 맨 앞줄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있다. 당시 ‘마리아’는 흔한 이름이었다. 이 아이도 마리아, 저 아이도 마리아였다. 그래서 복음서는 그녀를 다른 마리아와 구별하기 위해 ‘막달레나’라는 칭호를 별도로 붙였다. 상당수 성서학자는 ‘막달레나’가 갈릴래아 호숫가의 작은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막달라 마을 출신의 마리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음의 해석이 더 끌린다. 당시 히브리어 ‘미그달’(migdal), 아람어 ‘마그달라’(magdalah)는 ‘위대한’ ‘훌륭한’의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레이트(great) 마리아’ 즉 ‘위대한 마리아’라는 것이다. 왜 성경은 그녀에게 ‘위대한’이라는 칭호를 부여했을까. 무엇이 그녀를 위대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요즘 서너 마리 마귀도 떼어내지 못해 가슴을 친다. 하지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를 만나면서 무려 일곱 마귀에서 벗어났고, 이후 확 달라진다. 그녀는 십자가의 길을 예수와 함께 걸었고(마태 27,56 참조) 예수의 유해가 안장되는 순간을 눈물 흘리며 지켜보았다.(마르 15,47 참조) 그리고 부활한 예수를 인류 최초로 목격했다.(마르 16,9; 요한 20,14-18 참조) 이처럼 위대한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 신비의 정중앙을 관통하고 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일곱 마귀로 고통받던 가장 낮은 곳의 죄인이 거꾸로 위대한 인물이 됐다. 가장 죄가 많은 곳에 가장 큰 은총이 내렸다. 그렇다. 내가 겪는 지금 고통은 위대한 만남을 위한 치유 사다리가 될 것이다. 날카로운 백신 주삿바늘이 피부층을 뚫고 들어오는 그 아픔이, 나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나는 믿는다. 내가 하루하루 고통을 극복하며 열심히 잘 살아서 창조주의 위대한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찾아오는 위대한 영광 때문에 내가 그나마 간신히 하루하루 작은 고통들을 보듬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위대한 영광의 작은 부스러기 조각이나마 내게 떨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마리아 막달레나, 위대한 마리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기도하는 이유다.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cpbc2024.03.27

그때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월간 꿈 CUM] 뿌리 _ 구약이 말을 건네다 (2) 이집트 시나이산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갈대바다를 건너 광야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기적이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기적을 이끄신 하느님의 업적을 기리며 주님께 노래를 불러드립니다.(모세의 노래, 탈출 15,1-18) 이 노래는 파스카 성야 전례 때 장엄하게 퍼지며 우리 마음 속에 구원의 찬가로 기억될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 노래하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탈출 15,1-2) 그러나 이 주님께 대한 찬가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을 때, 광야에 들어선 백성은 불평하기 시작합니다.(탈출 15,24) 불평의 이유는 광야 생활의 목마름 때문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집트의 삶을 그리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불평합니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탈출 16,3) 성경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그들의 고통과 신음을 하느님께서 들으셨다고 증언합니다.(탈출 2,23-25) 그러나 광야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의 삶을 추억합니다. 강제노역의 고통에 시달렸던 이집트의 삶이었는데, 어째서 그들은 그곳의 삶을 그리워할까요? 그것은 이집트 제국이 주었던 물질적인 풍요로움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억압 속에서 노역의 삶을 살았지만, 이집트 제국이 주는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즉, 부유함은 있었지만, 자유는 없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은 부유함을 뒤로한 채 걸었던 자유를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들은 불평 속에서 이집트 삶의 부유함을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모세의 중재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자유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그들은 마라와 르피딤을 지나 시나이산에 도착했고, 시나이산에서 모세의 중재 아래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시나이 산 위로, 그 산 봉우리로 내려오셨다. 그때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탈출 19, 20; 20,1) 그리고 그 말씀이 적힌 계약의 책을 두 손에 받아 안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 말씀을 읽고 들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탈출 24,3-8) 어쩌면 그들은 그때까지 자신들이 자유를 향해 걷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나이 산에 머물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의 삶임을 깨닫고, 자신들이 걸었던 길이 자유를 향한 여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먼 훗날,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말씀 안에 진정한 자유가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7)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자유(해방)의 여정이었던 이집트 탈출의 첫출발은 부유함을 내려놓는 일이었고, 그 여정의 마지막은 말씀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안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cpbc2023.11.17
![[금주의 성인] 성 암브로시오(12월 7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11/28/7cR1701153855370.jpg)
[금주의 성인] 성 암브로시오(12월 7일)339~397년 독일 출생 이탈리아 선종. 교회학자, 초기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 암브로시오 성인. 사진=굿뉴스 암브로시오 성인은 갈리아 지방 장관의 아들로, 독일 남서부 트리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인문 교육을 받아 수사학과 법학 외에도 그리스어에 능통했습니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암브로시오는 국가 관리의 길을 택해 일찌감치 출세에 올랐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유고슬라비아 미트로비카의 지방 법원에서 근무하다가 지방 장관 프로부스의 고문이 되었고, 그의 추천으로 370년 밀라노의 집정관이 되었습니다. 암브로시오가 그 지방을 다스리던 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인 아리우스주의의 대표자 아욱센티오가 주교로 있었습니다. 아욱센티오는 교회에서 파문당했음에도 발렌티니아노 1세 황제의 도움으로 죽을 때까지 밀라노의 주교직을 맡았습니다. 그가 죽자 후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교리를 따르는 신자들이 격렬히 대립했습니다. 집정관이던 암브로시오는 밀라노의 질서 회복을 위해 이 문제에 개입했고, 중재하면서 성당에 모여 있던 이들에게 평화적 방법과 대화를 통해 화해를 추구하자고 연설했습니다.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로 암브로시오가 주교로 선출되었고, 그는 수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까지 암브로시오는 세례도 받지 않은 예비신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따르는 주교로부터 세례성사를 받고, 8일 후 주교품을 받았습니다. 주교직엔 막중한 책임이 따릅니다. 밀라노는 로마 제국 서부의 행정 중심지였기에 주교 역시 정치에 개입했습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개종자들, 수많은 이교도와 아리우스 이단에 동조하는 그리스도인 등 모든 문제를 새 주교 암브로시오가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희사하고, 수도자처럼 청빈과 가난을 살면서 신학과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암브로시오는 오래지 않아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고, 아리우스를 반대하는 서방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암브로시오가 주교품을 받은 지 약 1년 만에 발렌티니아노 1세 황제가 사망하고, 아들 그라티아노가 황제에 올랐습니다. 새 황제의 고문관이 된 암브로시오는 황제를 설득해 니케아 신앙 고백을 따르도록 하고, 서방에서 아리우스파를 축출하는 법안을 만들게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황제가 전투에서 막시무스에게 살해되자, 암브로시오는 다시 막시무스를 설득했습니다. 로마의 원로원 회의실에 승리의 여신상과 제단을 재건하려는 로마 집정관 심마쿠스 일파의 시도를 막는 데 성공했습니다. 390년에는 테살로니카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며 로마 총독을 살해했습니다. 이에 대한 벌로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군인들에게 진압을 명령했고, 약 7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암브로시오는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참회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보속을 해야 용서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황제는 순순히 응해 주님 성탄 때 황제복 대신 참회복으로 갈아입고 통회했습니다. 암브로시오는 397년 4월 4일 밀라노에서 선종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돼 공경받고 있습니다. 암브로시오는 초기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불립니다. 로마 제국이 쇠퇴해 가던 서방에서 그리스도교의 부흥을 새롭게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세속의 권위에 대항해 교회의 독립과 자주성을 옹호했던 탁월한 행정가이면서 성경 · 교의신학 · 신비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설파한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설교를 통해 이단 사상에 빠져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이끌어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도록 했으며, 387년 세례를 베풀었습니다.cpbc2023.11.29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월간 꿈 CUM] 인생의 길 (4)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 시는, 1940년대 일제 말기 때 독립 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선생님이 쓰신 ‘광야’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늘 생각나는 성경의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마치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짖던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가 지금도 가까이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구세주를 기다리며 광야에서 외쳤던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 회개하며 구세주를 맞이하라는 세례자 요한의 울부짖는 소리가 지금도 가까이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무슨 소리를 외쳤습니까? 바로 이 소리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이육사 시인처럼,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오로지 회개하는 것만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임을 목놓아 외쳤습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란 한마디로,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우리의 몸과 영혼을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와 이기적인 욕심과 탐욕에 빼앗겼던 내 몸과 영혼을 하느님께 다시 되돌려 드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시기와 질투, 미움과 증오에 빼앗겼던 내 몸과 영혼을 다시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성인들의 삶은 우리들의 삶과 특별히 다를 게 없습니다.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성 프란치스코도 젊어서는 세속적인 것으로 젊음을 불사르려 하였고, 즐거움과 쾌락의 오아시스를 꿈꾸고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모습은 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그렇게도 목말라 하면서 찾아다녔던 그 모든 세속적인 것들이 결국 자신의 영혼을 갉아 먹고, 영혼을 사막처럼 메마르게 하는 빈껍데기임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오로지 하느님만이 참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분임을 고백하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되돌아갔습니다. 이처럼 회개란, 우리의 본래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본래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성자에게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많은 죄를 지었다고 괴로워하는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죄는 결코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죄 없음을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성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분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 두 분은 밖으로 나가서 자기가 지은 죄만큼 크기의 돌을 각자 들고 오십시오.” 잠시 후,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많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끙끙거리면서 엄청나게 무겁고 큰 돌을 들고 왔습니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자신의 죄 없음을 자랑했던 사람은 밤 한 톨 만한 자그마한 돌멩이를 몇 개 주워왔습니다. 성자는 그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각자 들고 온 돌을 다시 제자리에 놓고 오십시오 .”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무겁고 큰 돌을 들고 온 사람은 손쉽게 그 돌을 제자리에 놓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자신의 죄 없음을 자랑했던 사람은 밤톨만한 자그마한 돌멩이를 어디에서 주워왔는지 알 수 없어서 그냥 들고 돌아왔습니다. 성자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죄를 지었지만 괴로워하며 뉘우치는 사람은 쉽게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하찮게 생각하고 작은 죄는 죄가 아니라고 가벼이 여기는 사람은 뉘우침이 없기에 인간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작은 죄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뉘우치는 사람은 그 죄를 벗어버리고 맑은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며 자유를 누리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하찮게 여기고 작은 죄를 가벼이 여겨 뉘우침이 없는 사람은 결국 그 죄의 작은 돌멩이들로 인해서 영혼의 맑은 샘물이 막히고 말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부르짖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봅시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대외협력본부장)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을 지냈다. cpbc2024.06.24

깊어가는 가을, 새로워진 cpbc 라디오와 함께!cpbc 라디오 가을 프로그램 개편, 30일부터 새 프로그램 등 편성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가 가을을 맞아 30일부터 새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기존 프로그램도 청취자들과 더욱 호흡하는 분위기로 개편한다. 신설 프로그램들은 청취자들에게 새로움과 풍성함을 전하고, 기존 프로그램들은 가톨릭교회의 가치와 삶의 지향이 맞닿은 이들과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를 좋아하는 모든 청취자들에게 라디오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선사할 예정이다. 새 얼굴이 함께합니다 오석준 신부의 생명은 사랑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나눈 모든 것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세상 모든 생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생명운동 방법을 생각해보는 시간. 청취자들과 처음 만나게 될 새 진행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오석준 신부와 생명의 가치를 드높이자. 방송시간 : 일 14:00~15:00 오수진의 행복을 여는 아침 맑은 날씨만큼이나 출근길 마음까지 맑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씨 요정 오수진(아가다) 기상캐스터가 당신의 아침 기분을 책임지기 위해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다. 14년 동안 맑고 깨끗한 이미지로 날씨를 전하며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오수진 기상캐스터와 따뜻한 공감, 신나는 음악으로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채워보자. 방송시간 : 월~토 07:00~09:00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중세 라이브’ 시리즈로 통통 튀는 유쾌한 매력을 선보였던 이영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가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신신우신’의 새로운 DJ로 청취자들을 만난다. 일상에 활력을 더하는 진행과 선곡,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소통을 통해 지치기 쉬운 나른한 점심시간에 에너지를 나눠준다. 방송시간 : 월~금 12:15~14:00 새롭게 시작합니다 당신을 위한 BGM 매일 저녁 9시 일과를 마치고 쉼이 필요한 시간, 다양한 장르의 귀에 익은 음악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편안한 시간을 마련한다. ‘당신을 위한 BGM’과 함께하는 음악을 통해 당신만을 위한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방송시간 : 월~일 21:02~22:00 이주의 책 주말을 마무리하면서 한 주를 시작하는 주일에 만나는 ‘이주의 책’. 영성 서적, 일반 서적 출판사ㆍ작가와 함께 책을 소개하고, 책 속에서 삶의 지침을 찾아 나간다. 주일 아침 8시를 ‘이주의 책’과 함께 마음의 양식과 신앙을 채우는 시간으로 꾸며보자. 방송시간 : 일 08:00~09:00 이한석 신부의 성경약방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신앙의 치유제 성경! 가톨릭대 종교학과를 담당하고 있는 이한석 신부가 구약을 쉽게 해설하고, 하느님 뜻 안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눈높이 성경 처방에 나선다. 방송시간 : 일 13:00~14:00 시간대를 옮겼습니다 그대에게 평화를 지승신입니다 일상에 지쳐 사랑과 위로받고 싶은 이들, 주님 품에 의지하고 싶은 이들을 생활성가와 이야기가 있는 자리로 초대한다. 매일 아침 6시로 시간대를 옮긴 ‘그대에게 평화를 지승신입니다’와 함께 씩씩한 아침을 열어보자. 방송시간 : 월~일 06:03~06:50 황우창의 음악정원 가을을 맞아 ‘황우창의 음악정원’이 조금 더 일찍, 저녁 7시에 찾아간다. 친숙하고 편안한 팝 음악이 청취자들의 퇴근길을 휴식시간을 탈바꿈시키고, 대중문화 관련 교양과 정보들도 알아보는 유익한 시간으로 꾸며준다. 방송시간 : 월~금 19:00~21:00 변함없이 함께합니다 참 좋은 오늘, 은빛수녀입니다 바쁜 출근길을 마무리하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9시. ‘은빛수녀’ 김용은(살레시오 수녀회) 수녀의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통해 매일 따뜻한 아침을 맞이해보자. 세대를 초월해 편안히 즐길 가요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 그리고 ‘은빛수녀’의 포근한 목소리로 힐링을 선사한다. 방송시간 : 월~일 09:00~10:00 2시N 뮤직 김형중입니다 지치고 힘든 일상 속에서 편안한 시간을 선물한다. 한낮에 어울리는 밝고 따뜻한 분위기, 그리고 DJ 김형중의 ‘꿀보이스’를 토요일에도 만날 수 있게 됐다. DJ김형중과 함께 편안한 이야기와 음악으로 마음을 부드럽게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방송시간 : 월~토 14:00~16:00 음악이 있는 저녁풍경 김빛나입니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오후 5시를 책임지는 ‘음저풍’이 토요일에도 찾아온다. ‘음저풍’이 전하는 편안한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활기 있는 저녁 풍경을 꾸밀 시간이다. 방송시간 : 월~토 17:00~18:00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정신없던 출근 시간을 지나 다시금 유쾌함을 되찾고 싶은 시간 아침 10시! 기나긴 하루를 마치고 나만을 위한 평온함을 찾고 싶은 시간 밤 10시!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이 하루 두 번 클래식의 아름다움 선율과 편안한 해설, 즐거운 소통으로 유쾌한 시간을 선사한다. 아침에도 밤에도 10시엔 ‘유클’! 방송시간 : 월~토 10:00~12:00 (재) 22:00~24:00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장현민2023.10.26

육신 취하시고 인간과 더불어 계신 보이는 하느님 그린다[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17) 이콘성화의 타당성 논란 (작품1) 테오도로스 스투디테스, (759-826) 성인, 수도원장, 신학자, 콘스탄티노플 출생. 성상 공경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수도원을 개혁했다. 이콘은 존재하는 것의 형상이지만 우상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의 형상 인간 구원 위해 피와 살을 취하신 볼 수 있는 하느님을 그리는 게 이콘 1. 이콘성화와 우상은 어떻게 다른가? 8, 9세기에 걸쳐 비잔티움 세계에서 일어난 이콘 파괴 논쟁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표현으로 하느님의 신성을 표현할 수 있느냐는 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이었습니다. 또 동로마 황제는 그 외에 대외적인 모든 갈등의 원인이 이콘 숭배가 모세의 율법을 어기고 물질로 만든 우상에 기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콘은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이슬람교의 화합에 큰 장애물이라 여겼습니다. 이콘 탄압과 형벌은 729년 동로마 황제 레온 3세에 의해 시작됐고, 이콘을 제작하는 수도원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이교도적인 우상 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 숭배 논리는 그리스도론에 관계된 정체성(正體性)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테오도로스 스투디테스(759~826)는 이콘은 존재하는 것의 형상이지만, 우상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의 형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작품 1) 우상은 어느 물체들, 예를 들면 해·달·별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각각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고 신으로 섬깁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느님을 형상화하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느님을 황금소의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모습은 이교도들의 신 바알 형상과 같았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을 어떠한 형상으로 대체해 놓고 그 앞에서 주술이나 예배를 드린다는 것으로, 인간이 하느님을 조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요하네스는 물질과 영, 즉 세상과 하느님 사이가 이콘을 통해 상징적으로 매개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콘의 이미지와 원형 사이에는 엄연한 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콘은 원형이 아니고 원형의 반영(反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개념에 실재(實在)하더라도 시각화할 수 없는 것은 이콘화(化)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이콘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이콘에서 표현하는 것은 실재적이고 역사에 존재했던 분을 기본으로 합니다. 성화상 반대론자의 입장 : 성화상이 하느님을 상기하거나 연상의 수단이 된다는 것은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콘이 근본적으로 하느님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신빙성이 낮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그들은 신성은 표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성상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이단으로 규정된 아리우스나 네스토리우스의 사상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았습니다. 옹호론자의 입장 :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오시어, 이제는 하느님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성화상의 공경은 물질 숭배가 아니며, 이것을 통해 물질의 창조자이신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이콘은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육신에 바탕을 두지만,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 중 하나만을 그린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분은 분리할 수 없는 인성과 신성을 그분 안에 모두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451년 칼케돈 공의회 결의) 이콘 반대론자들은 ‘사람을 하느님처럼 변화시킨다(神化)’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 그들은 형상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형상은 그 원형과 성질과 본질도 같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성체성사는 물질이 함께하는 성사이니만큼 이콘도 그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체성사를 ‘형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체성사의 빵과 포도주는 형상이 아니라 원형으로, 거룩한 몸과 피로 변화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콘은 원형과 같다고 볼 수 없으며, 또한 같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실재 인물과 이콘에 그려진 인물은 별개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실제 모습과 무엇이 닮았는지 찾을 필요가 생깁니다. 다음의 예를 들어봅니다. (작품 2) 다마스쿠스의 성 요하네스(675-749), 프레스코. 그의 저서는 이콘을 수호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반대파에 의해 오른손을 절단당했는데, 성모님께 기도하고 손이 다시 붙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세 손의 성모 이콘이 등장한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무엇을 그리는가? 유치원에서는 아동들에게 그림 그리는 시간을 많이 주어 새로운 시각과 개념을 알려주고, 서로의 유대관계를 형성시키는 교육을 합니다. 어느 날 하늘이는 유치원 선생님이 “오늘은 모두 자기 아빠를 그리세요!” 하자 신이 나서 열심히 아빠를 그렸습니다. 늦둥이 하늘이의 아빠는 정수리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있는 대머리에 갈색 테의 안경을 쓴 회사원이었습니다. 갈색 양복을 입고 노란 넥타이를 매고 까만 구두를 신었습니다. 하늘이는 대머리에 안경을 쓴 아빠를 어떻게 그릴까요? 하늘이는 도화지에 넓적한 얼굴을 그리고 그 위에 두 눈과 귀, 코와 웃는 입을 그렸습니다. 그 다음 머리카락 세 개와 갈색 안경을 그리고, 허수아비같이 양팔을 활짝 벌린 뒤 갈색 양복에 노란 넥타이와 긴 바지에 검정 구두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위쪽 종이 여백에 ‘하늘이 아빠’라 썼습니다. 다른 유치원생들의 아빠와 구별되는 각자만의 고유성 때문에 이 그림은 분명히 하늘이 아빠를 그린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늘이 아빠는 “나와 똑같네! 우리 아들, 참 잘 그렸네!”하고 칭찬할 것입니다. 하늘이는 정말 잘 그렸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처럼 생각하고, 어린이처럼 행동합니다. 여기서 ‘원형과 공유한 관계성(유사함)’이란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그리는 이콘은 하느님의 눈에는 유치원생이 그린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테오도로스 스투디테스가 말하기를 자연적인 면만 판단한다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이콘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닮은 모습만을 중요시한다면 애초부터 원형과 다르기에 서로 닮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표현에서 ‘공유된 관계성’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콘은 그분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원형과 어떠한 관계(유사함)가 있느냐를 중요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하네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작품 2) ‘과거에는 육신이 없던 하느님을 결코 그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육신을 취하시고 인간과 더불어 계신 보이는 하느님을 그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기를 갖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아닌, 우리 구원을 위해 피와 살을 취하신 볼 수 있는 하느님을 그리는 것입니다.’ 또 이콘에 쓰이는 해당 실존 인물의 이름을 통해 그림을 보는 신앙인들에게 더욱 구체성이 제공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성 표현의 한계성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관계성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기서 관계성으로는 ‘그리스도의 명칭과 그리스도와 관련된 상징을 연결해 만든 그리스도의 상’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관련된 상징인 후광에 ‘있는 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약자, 후광에 어울리는 수(數)의 비례에 따른 둥근 형태의 두상, 일정한 간격으로 가지런히 물결치는 머릿결, 평행으로 휘어지는 적당한 간격의 옷 주름 등으로 그리스도를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거룩한 분을 의미하는 색깔의 옷, 말씀을 의미하는 성경, 상징적인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얼굴(즉 큰 눈, 좁은 코, 작은 입)도 같은 이유입니다. 가구·발판·성경이 역원근법(逆遠近法)으로 구성되어 실제 형태와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 외에 그림자를 생략하는 기법을 사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상단에 붉은색으로 씀으로써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만든 그리스도의 상(像)입니다. --------------------------------------------------------------------------------------- * 큰 눈 : 하느님의 눈을 대신함. * 좁은 코 : 하느님의 영이 들어온 곳. 따라서 하느님의 향기만을 취함. * 작은 입 : 물욕이 없다는 뜻. 김형부 마오로cpbc2024.05.02

"선우경식 원장에게 가난한 환자는 하느님 선물이었다"선우 원장 16주기 추모, 쪽방촌 빈자들의 의사로 살아온 선우 원장의 삶과 신앙 되뇌여 요셉나눔재단법인 사무총장 홍근표 신부가 「의사 선우경식」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진료비를 한 푼도 낼 수 없는 이들이 다른 어떤 환자들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임을 발견한 것도 이 진료실이며, 그런 이유 때문에 지난 세월 진료실을 떠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환자들은 내게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원장 선우경식’ 자수가 놓인 흰 의사 가운 위로 고 선우경식(요셉, 1945~2008) 원장이 남긴 글이 자막으로 올라갔다. 16일 서울 명동대성당 파밀리아 채플. 요셉나눔재단법인(이사장 유경촌 주교)이 마련한 ‘선우경식 원장 16주기 추모 미사와 출판기념회’에 앞서 선우 원장의 추모 영상이 올라가자 곳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영등포역 인근에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 ‘요셉의원’을 열고, 평생 ‘가난한 이들의 의사’로 살아온 선우 원장. 영상에는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머리카락이 빠진 채 환자를 진료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운구 행렬을 바라보면서 가슴 치며 우는 쪽방촌 주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 주교와 사제단이 선우경식 원장 16주기 추모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16주기 추모 미사를 주례한 구요비(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는 “선우 원장님은 1987년부터 2008년까지 21년간 요셉의원에서 가난한 환자를 돌보는 일에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쳤다”며 “요셉의원을 찾아온 환자뿐 아니라 다리 밑이나 쪽방촌 등을 찾아다니며 찬 바닥에 무릎 꿇고 환자를 살핀 분”이라고 회고했다. 구 주교는 “선우 원장님은 이웃 안에 숨어 계신 성인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한참을 울먹였다. 미사 후에는 이충렬(실베스테르) 전기 작가가 쓴 「의사 선우경식」(위즈덤하우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요셉나눔재단법인 사무총장 홍근표 신부는 “2년 전 요셉의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한 일이 선우 원장님의 기념 사업이었다”며 “선생님이 떠나신 후 선우 원장님을 모르는 의료 봉사자들이 많아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해 전기를 출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충렬 작가는 감사패를 받았다. 요셉의원 고영초(가시미로) 병원장은 인사말에서 “선우 원장님의 주치의로 돌아가시기 전 2년간 돌봐드렸는데, 38년간의 교수직을 마치고 지난해 후임 병원장으로 온 것이 하늘에서 원장님이 이끌어주신 듯하다”고 밝혔다. 요셉의원 2대 병원장인 이문주(성사전담사제) 신부는 “선우 선생님은 항상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포켓) 성경을 갖고 다니셨고, 어려운 사람을 찾아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않고 항상 토마토 한 봉지라도 사서 선물하시는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선우경식 원장 16주기 추모 미사에 함께 한 사제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구요비 주교를 비롯해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윤병길(국장)·하성용(부국장) 신부, 필리핀 요셉의원 원장을 지낸 장경근(서울대교구) 신부와 선우 원장의 여동생 선우헬레나씨, 신완식(루카) 의무원장 등 요셉의원에서 봉사해온 의료진과 수도자 및 평신도들이 함께했다. 「의사 선우경식」은 가난한 환자들과 평생을 함께해온 선우 원장의 삶과 영성, 내면세계를 담아낸 책이다. 그가 남긴 수첩과 일기장, 수도회 소식지, 증언 녹취록, 신문 인터뷰 기사 등을 바탕으로 어떻게 의사가 됐고, 요셉의원을 어떻게 운영했는지 등을 대화체로 기록, 소설 형식으로 녹여냈다. 인세는 요셉나눔재단법인에 전액 기부한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2024.04.24

메멘토 모리, 메멘토 데움[월간 꿈 CUM] 전대섭의 공감 (9) OSV 전 부산교구장 정명조 주교의 유고집 「그대로 이루어지소서」에 정 주교가 평소 가깝게 알고 지내던 노부부의 일화가 나온다. 매일같이 불우 시설과 이웃을 찾아다니며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았던 아내는 어느 해 봄, 주님의 만찬미사에 참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광안대교 위로 뜬 둥근달을 보라는 남편의 말에 “어제가 보름날, 내 생일이었으니까”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늘 하던 대로 뒷좌석에 기대어 쉬는 듯 그렇게 하느님 품으로 떠났다. 한 일간지 귀퉁이에 소개된 영국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사연도 가슴을 울린다. 할머니의 죽음 후 그녀의 유산 가운데 일부는 생전에 그녀에게 친절을 베푼 버스 운전기사들에게 전달됐다. 그들은 앞을 못보는 그녀를 위해 기다려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작은 친절과 배려가 큰 갚음으로 돌아왔다. 가톨릭에선 죽음을 ‘선종’(善終)이라 부른다. ‘선생복종정로’(善生福終正路)의 준말인 선종(mors bona, mors sancta)은 “일상에서 교리의 가르침에 따라 착하게 살다가 복되고 거룩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올바른 길로 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가톨릭 대사전은 풀이했다. 어쩌면 선생복종(善生福終)은 모든 살아있는 이들의 소망이자 염원이 아닐까. 죽음 앞에서 ‘무욕’(無慾)의 가치는 더 빛을 발한다. 죽음 묵상은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 참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고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을 열어준다. 또 무엇을 믿고, 바랄 것인가에 답을 준다. 우리는 성경과 교회의 거룩한 전통(聖傳) 안에서 구원자이신 예수, 하느님, 영원한 생명을 만난다. 신앙의 원천은 우리에게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주문한다. 들은 대로, 배운 대로, 깨달은 대로 살 것을 요구한다. 그러한 삶을 따를 용기와 지혜를 우리는 그곳에서 얻는다. 신앙은 구호나 장식이 아니다. 내가 필요할 때 부르는 긴급호출도 아니다. 신앙은 삶이요, 실천이다. 신앙은 곧 사랑이다. 마더 데레사, 헨리 나웬, 막시밀리안 꼴베, 에디트슈타인…. 교회가 공경하는 현대의 성자(聖者)들은 모두 그러한 삶을 발견하고 그 삶에 투신한 이들이다. 그래서 복된 삶과 죽음(善生福終)을 맞은 이들이다. 죽음을 기억하며(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하느님을 묵상하다(Memento Deum, 메멘토 데움). 사순절을 맞으며 문득, 그렇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취재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 cpbc202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