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 최경혜 "교회와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교육, 모니터링 이뤄지길"* 최경혜 한국가톨릭장애인복지협의회,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발언] "발달장애인, 특수학교 졸업하고 자립하는 것 어려워" "가정에서 장애아 돌볼 상황이 되지 않을 경우 더 어려워" "장애인에 대한 공공시설 접근성 아직도 부족" "대중시설 안에서조차 길을 잃어 헤매는 경우 많아" "교회나 사회 모든 단체에서 장애인에 대한 교육, 모니터링 이뤄졌으면" "교황 방한시 집전 미사에 장애인을 위한 자리 1004석 마련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말이 없어지는 세상이 되길" [발언전문] 얼마 전, 한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함께 승차한다는 이유로 버스 운전기사에게 승차를 거부당한 일이 있었죠? 당시 승차를 거부당한 장애인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우리 사회의 장애인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는데요. 평소 낮은 곳에 있는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강조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우리 사회 장애인, 장애우들의 기대와 바람을 들어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한국가톨릭장애인복지협의회 최경혜 회장 연결하겠습니다. - 최경혜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6월, 한국가톨릭장애인복지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한국가톨릭장애인복지협의회, 줄여서 ‘한가장’이라고 하던데 언제, 어떤 계기로 결성됐습니까? ▶ 한가장은 85년도에 결성됐고요. 내년이면 30주년이 됩니다. 시작은 가톨릭교회 내에 시각선교회와 농아선교회가 구성되면서 결성됐습니다. 회원은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는 모든 장애인분들이 같이 갈 수 있다고 보시면 되고요. 전국에 16개 지구가 있고요. 지역별 협회장과 장애인시설, 그리고 복지관을 꾸리시는 수녀님, 교구 대표분들이 함께하는 단체입니다. - 흔히 통칭해서 장애인라고 합니다만, 세부적으로 보면 시각장애, 청각장애 같은 신체장애를 비롯해 정신장애까지 다양하지 않습니까? 한가장에선 이분들과 어떻게 접근하고 있습니까? ▶ 현재 대한민국에 법적으로 등록된 장애분류가 15가지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모든 이들을 수용한다고 보시면 되고요. 교회에서는 맹인선교회, 농아선교회, 발달장애인동호회, 그리고 지체장애인으로 구성된 바오로선교회, 복합장애인 영역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현재 장애인복지관협의회와 장애인시설협의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차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 최경혜 회장님께선 직접 장애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시라고 들었습니다. 장애인이 함께 하는 가정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 점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십니까? ▶ 제 아이가 올해 24살된 발달장애인입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고요. 가족 중에 누군가 도와줘야 하고, 정말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자립할 수 있는 것이 제일 어렵고요. 가족이 대부분 도와주잖아요. 만약 가족 중에 정말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될 경우 그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얼마 전 한 시각장애인이 안내견 때문에 승차를 거부당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우리 사회에서의 장애인 차별문제가 부각되기도 했었는데요.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로 파악하고 계십니까? ▶ 장애인시설이 공공기관이나 어떤 시설에서는 휠체어 경사로나 보도블럭 설치를 의무적으로 하고 있고요. 농아인들의 수화통역관을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에 발달장애인진흥법도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가장 어려운 것은 발달장애 인 혹은 장애인에 대한 공공시설에의 접근성이 구체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권침해나 성폭력, 염전 사건, 이런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공공기관에 보조인이 배치되어 있지도 않고 있고요. 구체적인 방안이 지금은 인지가 안 되는 친구들은 길을 잃어서 헤매는 경우도 많고요. 은행이나 슈퍼에 갈 때도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동경로라든가 이런 것들이 부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개인의 혹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에도 대응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 나눈 것처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는 방법 외에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 저희가 일단 차별에 대해 법으로 처벌에 앞서 장애인의 날 같은 일회성 행사 같은 것보다는 교회나 사회 모든 단체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교육이 중요하고, 환경개선에 대한 모니터링사업이 적극적으로 차별화·제도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죠. - 지난 달, 전국 장애인 사목 담당사제 모임에서 협의회의 성격을 ‘복지 중심’에서 ‘사목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던데요. 복지 중심의 협의회와 사목 중심의 협의회,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 장애인이 복지대상이라고 볼 수는 없죠. 교회 본당에서 모든 신자들의 사목활동이 복지가 우선이 아니잖아요. 그런 것처럼 장애인도 교회 모든 활동에 참여하고 장애인의 영역에 따라 수용되어야 하는 것이 맞고요. 장애인은 한 부분이지 교회와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존재를 드러내고, 장애인 같은 가족들의 존재를 일반인들이 의식하도록 하는 부분이 우리교회이고요. 우리는 늘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우리가 교회의 일원임을 알리는 것, 그리고 교회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태도, 이것이 사목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래서 지난 번 회의 때 사목협의회 명칭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 다음 달 예정인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가톨릭교회를 넘어 전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평소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어떤 기대와 바람들 갖고 계십니까? ▶ 교황님 방문이 상당히 기쁩니다. 8월 16일 광화문 미사에 교황님이 집전하시는 맨 앞좌석에 장애인을 위한 1004석이 배정됐습니다. 성경에 보면 장애인들이 춤추고 뛰어놀았다는 있잖아요. 장애를 겪고 있는 모든 분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위축감이 이번 기회를 통해 해소되기를 바라고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말이 없어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윤재선2014.07.10
[인터뷰 전문] 심상태 몬시뇰 "생명존중 노력, 인격존중 노력부터 이뤄져야"*그리스도사상연구소 심상태 몬시뇰,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발언] “생명의 신비상 본상 수상...영광과 자괴감 함께 느껴” “상금 수령 즉시 ‘희망의 집’으로 보내겠다 약속” “조직 신학 내 교의 신학에 관심 갖고 이 분야 연구” “생명존중 운동, 20년 지났지만 큰 변화 조류 형성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 “생명존중 노력, 인격존중 노력부터 이뤄져야” “교회와 사회 구조부터 변화되지 않는 한 공염불” [인터뷰 전문] 낙태와 사형 등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생명존중문화를 만들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친 분이 계십니다.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증진시키고 생명존중 문화의 신학적 이론을 연구하고 있는 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심상태 몬시뇰입니다. 가톨릭교회가 제정한 올해 생명의 신비상 본상 수상자이기도 하십니다. 오늘 에서 만나보겠습니다. - 심 몬시뇰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 생명의 신비상 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 학술부분 인문사회과학분야 본상 수상을 하셨는데요. 소감 먼저 한 말씀 해주시죠. ▶그날 시상식장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전혀 이 영예스러운 신비상을 수상하리라 예상치 않고 살았기 때문에 먼저 당혹감을 느꼈으며 순간적으로는 영광스럽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내내 명칭부터가 범상치 않은 이 상을 수상하였기에 자괴감을 느끼며 지나고 있습니다. - 상금이 2천만 원이라고 들었는데 어디에 사용할 계획이신가요? ▶시상식이 있고 난 이틀 후에 가까운 후원자 한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이 상금이 작지 않다고 하면서 `부자되셨네요` 해서 말 없이 웃고 있었습니다. 그날 당일 저와 함께 80년대부터 무의탁 결핵 환자들을 돌보는 요양원 희망의 집에 참여하고 계시고 현재 희망의 집 지도사제시고 이사장이시기도 한 박정우 가톨릭대 교수님께서도 그날 참석하셨는데 그분께 상금을 수령한 즉시 희망의 집으로 보내겠노라고 이미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 잘하셨습니다. 정말로.. 희망의 집이 아마 요양원인 모양이네요? ▶그렇습니다. - 앞서 제가 언급했습니다만 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을 맡고 계신데 구체적으로 어떤 단첸지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유다인이셨던 예수 나자렛 그리스도로 공경하는 그리스도교에 속하는데 하나의 종교로서 그리스도교는 팔레스타인이나 유다지역을 떠나서 그리스로마 서구 문화권에서 정착되고 교리로부터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서양문화 풍토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가보면 신앙과 생활이 일치되고 있음을 느끼며 지나고 돌아왔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교리는 진리로 받아들이지만 생활 양식에서 일치하지 않는 것을 저는 보고 있고 그것이 문화가 다른 데에도 그대로 이질적인 문화의 소산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머리로서는 이해하고 공감하면서도 그것이 한계를 지닌다고 보고 그래서 아시아 문화, 한국 문화 토양에 맞는 신앙생활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집중하는 연구기관입니다. - 언제 세워졌습니까? ▶이 연구기관은 1991년에 설립되어서 올해로 24년째를 맡고 있는데.. 아무래도 신자들에게는 이러한 연구기관이 좀 소원하게 느껴지고 그 대신에 제가 맡았던 학교에 강의에서 만났던 서울과 수원 가톨릭대 수학했던 신부님들께서 후원해졌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 24년째 이렇게 쭉 이끌고 계신데, 그리스도사상연구소에서 쭉 진행해온 연구, 진행하고 연구 소개를 한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동안에 우리가 서구 전례의 종교를 대변하는 신앙 공동체이면서 이 땅에 있는 수천년전부터 형성된 고유한 문화적인 종교적인 자산이 있습니다. 이 자산들이 현재를 사는 한국인들의 의식에도 심층적으로 작용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요소들인 불교라든지 유교라든지 도교라든지 어떻게 우리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지난 긍정적인, 부정적인 요소도 규명하는 일종의 대화의 성격을 띈 연구를 하고 있고 그리고 현실 속에서 띄게 되는 중요한 사회 현안에 대한 그리스도교적인 입장을 정립하기 위한 그런 주제에 대해서도 연구해오고 있습니다. -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셨는데 그 당시 어떤 분야의 연구를 하셨나요? ▶혹시 아시는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을 연구하는 신학이 몇 개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성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 신학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저는 학생시절부터 그리스도 진리가 보편적이라면 이성을 통해서 도달하는 보편적인 진리와 통할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 그리스도 신앙의 정당성을 제시하는 신학적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고 해서 조직신앙 내에 교의신학에 특히 관심을 갖고 오늘까지 내내 이 분야에 종사해오고 있습니다. - 조직신학 내에 교의신학에 주로 연구를 하셨군요? ▶네, 그렇습니다. - 생명 존중과 관련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1990년대부터 우리 한국사회에서 인명경시 풍조가 놀랍게도 확산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가톨릭계 교육기관인 서강대학교에서 잠시 도움을 주셨던 정의채 몬시뉼께서 당시 박홍 총장이 성원을 받으시면서 부설 연구기관으로 생명문화연구소를 설립하셨습니다. 정의채 몬시뇰님과는 사제 지간이고 그 분께서 소생을 가까이 하고 계시고 대소사에 관한 문제 논의들을 함께 해주시면서 이 연구기관에도 처음부터 참여하게 되어 기획작업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주어진 생명에 대한 우리 교회의 입장을 소개하는 작업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 생명과 관련한 대표적인 저서로 ‘인간, 신학적 인간학 입문’을 들 수 있는데요. 어떤 책입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는 그리스도교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 그리고 다른 사회 정치적인 이념들이 공존하는 다원사회아닙니까?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진리가 다원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호소력 있는 진리라고 수긍될 수 있는 내용으로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그들의 통찰과도 부합하는 양식으로 서술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제기하는 질문이.. 거기서 만나게 되는 하느님께서 인간이 원천이자 목표라는 출발점으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육신, 정신성, 인격성, 사회성, 역사성, 체험들 2분법적인 구성요쇼에 대해서 논하고 생활에서 중요한 자유라든지 사랑, 고통, 죽음, 희망 등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입장을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 현재 우리사회에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해 있는데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1990년대부터 우리 교회당국이 아주 적극적으로 생명존중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 노력하셨는데 20년이 경과하였지만 실제적 큰 변화의 조류가 형성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생명존중의 운동이 좀더 깊은 차원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하고 그것이 공감대를 형성할 때에 비로소 효과를 우리들이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7~8년간 유럽, 특히 독일에서 수학을 하고 돌아왔는데 그곳과 우리와의 차이는 인격 존중의 풍토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보고 있습니다. 이점은 사회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사회도, 교회도 인간이면 누구나 연령과 성과 직업과 힘과 상관없이 존중받는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생활할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소위 사회적인 신분, 또는 부, 권세의 유무에 따라서 대우가 달라지는 풍토인 것입니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아무리 유리한, 또는 위에 있는 사람들이 생명이 존중되어야한다고 하더라도 밑에 사람들이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생명존중의 노력은 인격존중의 노력부터 이뤄져야하고 이것은 자세에서부터 그리고 어떠한 면에서는 교회와 사회 구조부터 변화되지 않는 한 저는 공염불로 그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 불평등 사회, 또 차별 받지 않는 사회 그 속에서 인격 존중의 노력이 우리 천주교 신자들부터 가져야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개인적으로 말씀드리면서 생각이 드네요. ▶그렇습니다. - 생명 관련 연구를 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제가 생명 수호의 필요성, 중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제 신분이 이 영역에만 넘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교를 이 전례적인, 재례적인 문화풍토와 급격히 형성된 현대 문화에 적절히 적응하고 이해.. 형성되고 생존가능한 신앙의 형태를 모색해가는데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제 노력이 갈려지기 때문에 깊이 연구하지 못한 한계를 아쉽게 여기면서 달리 어떻게 처신할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 미국인명협회에서 몬시뇰 님의 이름을 딴 심상태상 재단을 설립했다고 들었습니다. 재단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시죠. ▶아시듯이 국내에서 연합통신사가 매년 한국인명사전이라는 것을 간행합니다. 그것처럼 미국와 영국 등지에도 세계적인 인물들을 파악해서 정기 내지 비정기적으로 사전료를 단행하는 일들을 이렇게 전개해오고 있는데 1990년대 말부터 마르퀴즈 후즈 후, 아메리칸 바이오그래피컬 인스티튜트 그리고 연구계 바이오그래피컬 인터내셔널 센터 등을 위시한 수개의 인명연구기관으로부터 전화 인터뷰 요청, 서명, 서면요청 등을 받고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에 응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관들이 간행하는 이러저러한 서적에 등재되기도 했는데 2003년에 들어와서 3대 인명연구기관의 하나로 꼽히는 미국인명협회에서 제 명의의 상을 딴 재단을 설립하겠다는 통보가 오고 얼마 후에 공식 설립을 입증하는 판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제가 생명의 신비상 받은 것이 전혀 예상 밖이었듯이 이것 또한 예상도 할 수 없었던,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서 어리둥절한 편입니다. - 노숙자와 결핵 환자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설립해 함께 해 온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11월에는 적십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그 때 소감 좀 말씀해 주시죠. ▶예상에 없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상이여서 놀라웠는데 우선 사실 확인부터 해야되겠습니다. 이 요양시설을 설립한 당사자는 제가 아닙니다. 시작한 분들은 그 무렵에 1970년대 말에 용산시장에서 막노동하는 분들이 부담 없이 점심식사를 할 수 있도록 가톨릭신자들이 주축이 되어서 베들레헴 식당이라는 것을 운영하였습니다. - 베들레헴 식당이요? ▶네. 그래서 근로자들이 200원 정도 지급하면 점심식사를 들었는데 이때에 종사하시던 12분 가량의 신자 가정주부님들이 식사를 하셨던 근로자들 중에 꽤 심하게 결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게 되어서 그 10분 중에 한 분이 소유하셨던 양평군 단월면이라고 홍성가는 국도변에 오른쪽에 있는 계곡입니다. 거기에 그들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기지지만 주부님들 10분 가량이 이런 요양시설을 운영하고 경영하는 것은 무리이지 않습니까? 이 분 중에 한분이 제가 아꼈던 그리고 1976년에 사제서품을 바로 눈앞에 두고 유학지였던 인스부르크 산악지역에서 산행하다가 실족 사망한 김정훈 부재의 자당께서 이분들 중에서 속하셨습니다. 아드님이 참으로 요절하고 난 뒤에 자당께서는 저와의 관계가 좀 유별나다고 생각하셨는지 그 당시 혜화동에 있던 가톨릭대 교수관으로 찾아오시면서 당신이 하시는 일을 저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이분은 사도복관으로 알려진 고 김흥수 판사님의 미망인이시기도 한데 남편의 유지를 이어받아 사형수들을 돌보는 일에 참여도 하시고 방금 말씀드렸던 근로자들 중에 결핵환자들이 있어서 자기네들이 열몇명 이 환자들을 단월면에 들여다놨다는 이야기를 하시기에 이것은 주부들께만 맡기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서 그때부터 신학생들, 그리고 동료 신부님들의 참여를 요청하면서 후원회도 구성하고 회지도 신학생들을 간행하면서 시작을 한 것입니다. 1979년 가을입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데 우리는 단지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께서 병든 자들을 위해서 오셨듯이 병든 이들과 병들지 않은 건강한 신자들이 하나의 가족,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그 집을 희망의 집이라고 명명하고 우리 모두는 성직자, 수도자, 일반 신도들이 한 가족이 되어서 참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일을 평신도들이 시작하셨기때문에 공식 대표는 평신도들이십니다. 오늘까지도.. 저는 지도신부로서만 이렇게 참여를 했고 제가 14년의 박정우 신부님께 넘겨드렸을 때에도 박정수 신부님도 지도사제로 계시고 대표는 평신도이십니다. 단지 박정우 신부님이 이사장이신것은 우리가 79년에 결핵요양원, 89년에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는데 공부방의 경우는 법인체가 되어야지만 인정도 받고 지원도 받는다고 해서 14년에 사단법인체로 등록을 하면서 거기에 이사장님으로 이렇게 수고를 하시게 되셨지만 우리는 내내 후방에서 지원하는 그런 구조로 이어왔습니다. - 말씀 들어보니까 생명 관련 연구나 학문에 열정을 갖고 그렇게 해오신 것 뿐만 아니고 이런 봉사와 나눔, 사회복지활동에도 여러 후원활동을 하신 것으로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심상태 몬시뇰님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네. 수고 많이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김성덕2015.02.21
![[테마 기획] ‘나는 행복한 사형수’](//cpbc.co.kr/CMS/news/2014/04/rc/503899_1.0_titleImage_1.jpg)
[테마 기획] ‘나는 행복한 사형수’[앵커] 그리스도 수난에 동참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도 어느덧 종반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살인범으로 한 때 사형수의 삶을 살다 참회와 속죄를 통해 출소 후 은총의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윤재선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성당 가득 복음 성가가 하모니카 선율에 실려 울려 퍼집니다. 특강을 시작할때면 사형수였던 그때와 다름없이 늘 하느님께 찬미와 찬송부터 드린다는 배정수 요아킴씨. 사형수의 삶이 시작된 건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1년 12월. 예기치 않은 말다툼 끝에 친척뻘되는 교장 노부부를 살해한 죄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아내와 어린 딸 둘을 둔 서른 살의 가장인 그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겁니다. 24시간 수갑을 찬 채로 사형수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에게 교도소 안의 세상은 죄책감과 두려움, 불안감으로 가득찬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동료 제소자가 십자성호를 긋고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불현듯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배정수 요아킴씨. “주요 기도문부터 시작해서 묵주의 환희의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등을 알려주더라구요. 그걸 살고 싶은 마음에 궁하면 통하듯이 하룻밤에 다 외웠습니다. 그때부터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사형수의 새벽은 그때부터 주님께 드리는 찬미와 찬송, 기도와 묵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런 그에게 동료 제소자들이 붙여준 별명은 ‘수사 배정수’ 였습니다. “ 어떤 동료들이 보면서 천주교에 열심하고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는 삶을 사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름하고 안 어울리니까 부르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은근히 좋았습니다. 천주교 신자이기도 하고 하느님과 그만큼 가까이 있다고 인정해주는 것 아닙니까? 생명을 거두어가는 그 순간까지 죄인인 자신과 함께 해 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하고 애원했다는 배정수 요아킴씨. “다시한번 재생의 삶을 주신다면 주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랑의 삶을 살겠노라고, 계명도 지키겠노라고, 교도소안에서 평생 살아도 좋으니까 사형만은 면해달라고 하느님께 울부짖었습니다. ” 하느님께 드린 서원 덕분이었을까? 사형수에서 무기징역수로, 2003년 8월 15일엔 징역 20년형으로 감형되기에 이릅니다. 그에게 희망을 심어준 또다른 사람. 항소심에서 무료 변론을 마다하지 않았던 배기원 알폰소 변호사입니다. 대법관을 지낸 그를 영적 아버지이자 양아버지로 삼으면서 그렇게 대법관과 사형수의 만남은 ‘은총’의 끈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분은 날개만 안 달렸다뿐이지 천사분입니다. 제가 사형수때 무료 변론하시면서 접견장에 가면 항상 하느님 말씀안에서 힘과 용기를 가지고 기도하자, 분명히 살 수 있다고 항상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주시고” 20년 간의 교도소 생활. 성경을 세 차례나 필사하면서 말씀의 은총속에 살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그는 기도의 무게는 빈손이어야 함을 그때 깨달았다고 합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제일 밑바닥으로 떨어져보니까 평범함 속에 소중함이 있었고 행복함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기도드리고 모든 것을 비우고 하느님께 찬미와 찬송, 영광을 드리면 자연스럽게 부수적인 것들이 따라서 오는데” 2010년 3.1절 특사로 2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됐지만 그에게 닥친 또다른 위기. 두 딸을 키우며 남편의 옥바라지를 기도의 힘으로 버텨 낸 아내가 그가 출소한 지 6개월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겁니다. 아내는 2년 6개월간의 투병 끝에 지난 201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때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아내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기를 늘 기도한다는 배정수 요아킴씨. 이제는 자신을 행복한 죄인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습니까? 죽음에 대해 두려움도 없고 막상 이제 하느님을 모르고 죽었으면 얼마나 두려움이 있고, 후회되는 부분이 많았겠습니까? ” 9전 10기 끝에 버스 회사에 취직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배정수 요아킴씨는 자신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72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용서받고 싶고 그것 때문에 마음이 갑갑한게 많습니다. 두 분이 나 때문에 유명을 달리하셨기 때문에 두 분의 삶까지 나의 하루는 72시간이다 생각하면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형수 배정수 요아킴. 사순 시기를 사는 참 신앙인의 모습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다 죄인이어서 하느님앞에서 당당하게 나설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느님 앞에 양심에 비춰볼 때 부끄러움이 없고 후회됨이 없을 정도로 노력하는 우리 자신이 되기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나” PBC 뉴스 윤재선입니다. 윤재선2014.04.04
[인터뷰 전문] 허영엽 "교황 방한 준비, 시험 보는 것 같은 심정"*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 대변인 허영엽 신부,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 [주요발언] "시험 보는 심정, 준비를 잘해도 마지막까지 부족하게 느껴져"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중인 세월호 유가족 내보낼 수 없어" "한국 주교단이 모두 상의해서 정한 일정" "교황 방한 목적은 3가지.. 아시아 청년대회. 시복식, 평화와 화해의 미사"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의 주교좌 성당인 명동성당에서 미사 봉헌" "쉽고 비유가 많은 화법, 교황 알현하려는 신자 크게 늘어나" [발언전문]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사적인 한국 방문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984년과 89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교황으로서는 3번째이자 25년 만입니다. 내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 동안 입니다. 5일간의 영광이 전국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님 연결하겠습니다. -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시죠? 교회 차원의 준비는 모두 마치셨나요? ▶ 준비를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시험 보는 것 같은 심정이고요.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마지막까지 부족하게 느끼는 것은 모두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 교황님께서 우리 시각으로 오늘 오후에 로마를 출발하시죠? ▶ 그렇습니다. 내일 오전 중에 도착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 교황님의 검소하고 소박한 취향에 맞게 이번 방한 행사를 준비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교황님의 취향이 이번 방한 행사에 어떻게 반영됐는지요? ▶ 로마에서 초반 실무회의를 할 때부터 강조했던 것 중 하나가 이 행사를 소박하게, 간단하게 그리고 검소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고요. 전부터 이러한 교황님의 기본적인 생각이나 뜻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그런 주제를 가지고 고민하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 ‘세월호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내쫓을 수 없다’, 그래서 농성자들을 일단 퇴거시키지 않기로 한 거죠? ▶ 네. 어제 저희 준비위원장이신 강우일 위원님께서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반포해주셨고요. 집행위원장인 조규만 주교님께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자들이 세월호 가족들이 농성중인데 교회 입장은 어떠냐고 물으셨는데, 우리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 고통스러운 사람들, 특히 세월호 가족들이 그곳에서 농성을 하는데 우리가 그들을 억지로 내보내서 시복식 미사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원론적인 말씀을 하시면서 기본적으로는 그분들을 앞으로 내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 얘기했고요. 집행위원장이신 조규만 주교님께서는 거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시면서, 그러나 저희들이 행사를 하기 위해서 15일 밤이 되면 일대 모든 곳, 17만 명이 들어가야 하는 장소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진공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저희들 신원을 확인하고 입장을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부와 저희들이 약속한 것인데, 만약 세월호 가족들도 미사에 참여하시게 된다면 그런 과정 중에는 우선 비켰다가 하는 최소한의 방법들은 취해주실 것을 저희들이 간곡히 요청을 드렸습니다. - 교황님의 뜻에 따라 당초 준비했던 일정들이 수정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 준비되는 과정에서부터 주교님들이 개인적으로 보면 다 우리 교구로 모셔서 신자들과 미사를 한다든지 만남을 갖게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요. 아마 모든 교구가 다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준비사항들을 토론하고 예정된 보고들을 나누면서 오랫동안 논의를 하셨느데, 어저께 강 주교님 말씀대로 이번 일정은 주교님들이 충분히 상의해서 일정을 잡았고, 그런데 일정이 너무 빡빡하고 교황님 연세에 비해 여유가 없는 일정이다 보니까 걱정이 많은 상태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앞서 소탈한 행보를 몇 가지 지시하신 것이 뉴스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데요. 바티칸에서 환송예식을 생략해달라고 부탁하셨고요. 전세기에 특별공간을 만들지 마라, 한국의 화동을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하셨다고 해요. 신부님께서도 알고 계시죠? ▶ 네. 이번에 오시는 교황님이 한국에서만의 특별한 것은 아니고요. 일상적으로 외국에 가실 때 부탁을 하는 말씀인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소박하게, 전례 같은 부분도 저희들이 로마에서 금방 느끼게 되는 것은 원래의 전례에 충실한, 아주 간단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 이번 교황님의 방한은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 이번에 교황님께서 대략 세 가지 큰 행사를 하시기 위해 오시는 건데요. 첫 번째는 아시아 청년대회입니다. 청년들을 만나러 오시는 것이죠. 한국에서 대회가 있지만 아시아 전체의 청년들을 만나는 데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요. 아시아는 세계적으로도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발전해야 하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많기 때문에 아시아에 대한 교황님의 관심이 전부터 높았던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는 교황님께서 이번에 시복식을 주례하십니다. 그래서 그것은 이례적인 일인데요. 교황님이 그 지역의 시복식을 한다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신앙을 증거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다시 한 번 인정해주고, 그것은 한국 교리에 대한 인정과 함께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이겠죠. 마지막으로 평화와 화해 미사가 중요한데요. 평화와 화해 미사를 명동에서 지내는 이유 중 하나는 명동성당이 -이고요. 서울대교구 교구장은 평양교구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그래서 평양교구장의 주교자라고 할 수 있는 명동에서 미사를 지내게 되는 것이죠. 특별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해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교황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말씀과 메시지를 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요. 교황님의 화법이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지 않습니까? 짧고 간결하면서 명확한데요.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그동안 교황님들의 말씀은, 물론 번역을 해서 우리들에게 전달되지만, 많은 분들이 어렵다고 느꼈었는데요. 이번 교황님의 강론의 특징은 쉽다는 것이죠.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말씀인데, 그 말씀들이 아주 성경이나 복음에 기초적인 기반을 갖고 있고, 특별히 우리 생활 속에서 비유해 인용하시고요. 생활과 밀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랄까요, 그런 것이 굉장히 좋은 것이죠. 요즘 로마에 가시는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그전에 비해서 삼종기도 때 베드로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서 교황님 말씀을 듣는데 노숙자가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고 합니다. 교황님께서 다른 행사를 하지 않아도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한테 큰 의미를 주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인데도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잘 전달해주기 때문에 교황님의 강론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구체적이고 명확하기 때문에 교황님의 메시지에 대해 정치적인 해석이라든가 자신위주로 해석해서 과대포장하지 않고, 타인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네. 지난번에도 교황청측에서 메시지에 집중해달라는 이야기가 전달됐는데요. 행사나 많은 부분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미사를 봉헌한다고 하면 특별히 메시지에 집중해달라, 왜냐하면 교황님의 메시지는 생활과 관련이 있고요.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굉장히 날카롭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자칫 자신의 이익이라든지 혹은 더 나아가 정치적인 해석을 한다든지, 이념적으로 해석한다든지 하는 것은 위험하고, 그것은 절대로 교황님의 말씀 자체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죠. 그런 것에 대해 경계하신 말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교황님의 방한과 관련해 준비사항과 궁금한 점 알아봤습니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 대변인인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엽 신부이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서종빈2014.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