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재의 예식 현장을 가다 [앵커] 오늘부터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가 시작됐습니다. 사순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잠시 후 이곳 서울대교구 고덕동성당에서도 재의 수요일 새벽미사가 봉헌되는데요. 재의 예식 현장, 지금부터 함께 하시죠. [기자] 보라색 영대를 걸친 사제의 입장과 함께 재의 수요일 미사가 시작됐습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 많은 신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미사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재는 속죄의 표지로, 전년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서 만듭니다. 제대 위의 보라색 초 뒤로 재의 예식에 사용될 재와 성수가 보입니다. 사제의 강론이 끝난 후, 드디어 재의 예식이 시작됐습니다. 사제는 말없이 재에 성수를 뿌리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의 머리 위에 재를 얹어주며 말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머리에 재를 얹기 위한 행렬은 한참 동안 이어졌습니다. 재의 예식은 성경 시대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죄를 지었을 때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자루 옷을 찢으며 행한 참회예식에서 유래했습니다.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재의 수요일을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사순 시기 첫날로 제정하고, 복자 우르바노 2세 교황은 모든 신자가 재의 예식에 참여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재를 얹는 예식은 인간이 현세의 삶에서 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지만, 회개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하느님 나라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재의 예식은 준성사인 만큼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받을 수 있으며, 미사 없이 독립적으로 거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CPBC 김혜영입니다. 김혜영2024.02.14
![공감 칼럼 I 극단이 지배하는 시대, 교황은 '평화'를 말했다 [김준일의 뉴스공감-조승현 신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4/23/1kp1745418835231.png)
공감 칼럼 I 극단이 지배하는 시대, 교황은 '평화'를 말했다 [김준일의 뉴스공감-조승현 신부] ○ 방송 : CPBC 라디오 <김준일의 뉴스공감> ○ 진행 : 김준일 앵커 ○ 출연 : 조승현 베드로 신부·cpbc 주간 ▷우리에게 앞서 길을 내어주던 한 성인의 걸음이 멈춘 지금 또 다른 걸음을 걷기 위해 지나온 성인의 길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CPBC 통합주간 조승현 베드로 신부 나오셨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의 그동안 발자취, 인생 그런 것들을 또 돌아보면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 되는지 이런 것들도 좀 살펴보도록 할 텐데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제 남미 출신이잖아요. ▶맞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주민 가족으로 태어나셨죠? 먼저 우리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라고 알고 있는데 정식 이름은 이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이십니다. 이제 스페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쪽 남미 특유의 이름을 갖고 계신데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5명의 형제, 자매 중 프란시스코 교황님이 장남이십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막내 여동생인 마리아 엘레나 베리고글리오가 지금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계십니다. 근데 지금 몸이 좋지 않아 가지고 지금 수녀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요양원에 지금 계시다고 하고요. 교황님의 아버님은 지금 비교적 일찍 돌아가신 걸로 지금 교황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교황님의 자서전 희망을 이렇게 보면 아버지께서 축구 경기 관람 중 골에 환호하시다가 심장마비로 이렇게 돌아가신 것으로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가족이 전부 다 이제 축구 경기를 좀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제 축구 클럽의 대주교 교구장일 때도 이제 정기적으로 이제 회원권을 끊었다고 할 정도로 축구 경기에 진심이셨는데 어쨌든 이제 아버님께서 심장마비로 일찍 돌아가시고 그래서 교황님에게 좀 영향을 크게 주신 분들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한테 크게 영향을 좀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교황님이 태어나기 전에 교황님의 할아버지, 할머니 조부모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신 분들이었는데. ▷이민자시군요. ▶맞습니다. 할아버지 형제들이 이제 아르헨티나에서 이제 먼저 이주해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초청을 해가지고 이제 아르헨티나로 이적했다고 합니다. 교황님이 이제 이주민을 아끼셨던 그리고 관심 가졌던 이유 중에 하나가 이제 당신께서 이주민의 가족이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싶고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제 바티칸을 벗어난 첫 번째 여정으로 이제 람페두사라는 섬으로 이제 가십니다. 거기가 이제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이민자들이 이제 가장 단기간에 올 수 있는 코스라고 합니다. 튀니지에서 직선거리로 120km 정도 되는데 거기가 사실상 이제 난민들이 이제 이주민들이 넘으면서 많은 분들이 이제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수만 명이 돌아가시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거기를 이제 거대한 묘지라고 이제 표현할 정도로 부를 정도로 이주민들이 이제 아픔이 있는 곳이. ▷아프리카에서 유럽 쪽으로 이제 전쟁을 피하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넘어오시는 분도 있는데 거기에서 이제 조난을 당하시는 거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교황님께서 첫 번째로 바티칸을 벗어나서 미사를 드린 곳이 이제 바로 이제 람페두사라는 섬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 가셔가지고 강론하셨는데 이제 무관심의 세계화를 지적하시면서 ‘이들의 죽음에 누가 울고 있느냐’ 뭐 이런 강론도 하셨습니다. 아까 전에 이제 할아버지부터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 할아버지께서 저기 세계 제1차 대전에 참전을 하셨나 봐요. 그래 가지고 거기서 겪었던 많은 일들을 이제 교황님한테 전수해 줬다고 합니다. 이야기해줬다고 합니다. 갔더니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대부분이 그 사람들이 전쟁에 괴물이 되어 가지고 서로 서로 죽이고 있더라. 이 끔찍한 상황이 어떻게 일어났느냐. 뭐 이런 것을 많이 또 교황님께서 할아버지한테 들으셨고요. 그리고 또 할머니께서도 가톨릭액션이라는 곳에서 활동을 하셨는데 이게 어떤 곳이냐 하면 옛날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야학처럼 이제 전쟁의 고통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서 신앙적으로 강연을 통해 이제 열심히 활동하던 그런 곳이었나 봅니다. 근데 거기 할머니가 이제 강연자로 열심히 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할머니께서 활동하실 때 당시 이탈리아 정권이 이제 무솔리니 정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좀 그 가톨릭액션이 많이 핍박을 좀 받았나 봅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그 어린 프란치스코 교황님한테 얘기해 주신 것 중의 하나가 이제 전체주의, 극단주의가 어떤 사람들인지 이런 것들을 좀 많이 얘기해 주셨다고 하고요. 그리고 할아버지로부터 또 받은 것이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제 공화국이라는 것을 처음 이제 그 당시 이제 정치적 격변기가 유럽에 많이 있었는데 공화국의 의미를 좀 많이 좀 할아버지한테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가지고 이탈리아에서 여성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얻은 것이 1946년이라고 합니다. 그때 이제 처음으로 여성들이 투표를 하면서 그때 공화국 이탈리아가 처음으로 됐는데 그때 할아버지께서 굉장히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자기 당신이 세계 제1차 대전에 참전한 것이 일명 이 높은 분들, 정치인들, 왕 때문에 그랬는데 그 왕이 이제 물러나는 걸 보면서 굉장히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이제 어머니로부터 특히 어머니로부터 신앙심 많이 물려받았는데 그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환님께서 많이 이제 성장을 하신 걸로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모로 봤을 때 다양한 직접 경험하지는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그 가족들의 어떤 구성이나 경험을 본인들이 좀 많이 이 체득을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들으면서 어떤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약자에 대한 어떤 연민 이런 것들을 조금 많이 어렸을 때부터 경험을 하신 것 같네요. 그럼 어떻게 이제 사실은 그렇게 체험해서 이제 뭐 정치 지도자가 될 수도 있는 거고 뭐 여러 인생의 갈레길이 있는데 어떻게 이제 종교에 좀 더 귀의해서 교황까지 오르게 됐는지 처음 그 첫 발이 좀 궁금합니다. ▶교황님께서 처음으로 이제 그 신앙생활을 당연히 이제 이탈리아 사람이고 아르헨티나라는 곳에서 있다 보니까 이제 가톨릭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그리고 가톨릭 안에서 성장하신 건 맞는데 그 교황님께서 특히 이제 교황님한테 영향을 준 곳은 교황님께서 예수회에 입회를 하십니다. 사제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예수회 입회를 하는데. ▷그게 몇 살 때인 건가요? ▶교황님께서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들어가신 걸로 지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 들어가셨고 그 예수회 활동을 하시면서 교황님께서 예수회의 모토 같은 거를 굉장히 특히 받으셨던 걸로 영향을 받은 것도 나오고 그리고 교황님께서 이제 검소한 생활을 좀 많이 하셨잖아요. 우리가 지금도 많이 알고 있고 그런 것이 교황님께서 이제 교구 사제가 아니라 저처럼 교구 사제가 아니라 수도자로 사셨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다른 교구 사제와 수도자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청빈 서약을 하거든요. 나는 더 가난하게 살겠다. 뭐 물질에 매어 있지 않겠다 서약을 하는데 그것을 교황님께서는 예수회 활동을 하시면서 회원으로 하시면서 그걸 체험하신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고 특히 예수회 정신 중의 하나가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거예요. 그것을 더 체험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제 그동안의 여정을 보면 33살이 되던 해에 사제가 되었고 4년 후에 종신서원 같은 해 6년 임기인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으로 선출되고 또 6년 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좌주교, 5년 후에는 후 교구장 주교 다음 해에는 대교구장, 3년 후에는 추기경으로 서임이 됐는데 아니 뭐 아무리 요즘은 평균 수명도 길어지고 그때는 좀 더 역동적인 시기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빨리 추기경까지 되신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교황님께서 이렇게 빨리 뭐 이렇게 어쩌면 사회 눈으로 본다고 하면 성장하신 거, 승진하신다고 표현할 수... ▷승진이 초고속 승진인데 이 정도면. ▶그렇게 표현하기 좀 그렇지만 하여튼 승진이라고 표현을 한다고 하면 이제 기본적으로는 교황님께서 열심히 하신 게 있겠죠. 열심히 당신이 예수회 회원으로서 열심히 투신한 것도 있을 거고 그리고 또 다른 것 중 하나를 보면 당신이 거기에 투신하겠다는 마음이 굳건하셨던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제로서 그리고 교구장으로서 그리고 예수회 회원으로서 더 투신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더 있었던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2013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뒤를 이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는데 이 남미 출신 교황은 처음, 보통은 이제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했고 그러다가 이제 유럽 사람들도 좀 하다가 그러다가 이제 남미 출신으로 어떻게 보면 이 교황의 세계화 뭐 이런 게 좀 이루어졌다 이런 평가도 있었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콘클라베도 이제 우리가 앞두고 있는데 그때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좀 소개해 주시죠. ▶이게 유럽을 벗어난 교황은 중세 시대 때 시리아 출신 교황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래서 유럽을 벗어난 최초의 교황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상 그 중세를 벗어난 근대 현대에 들어와서 첫 번째 유럽을 벗어난 교황님은 맞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님이었고 그리고 교황님 자신도 당신이 그 콘클라베에서 선출될 걸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 아르헨티나에서 왔을 때는 왕복 티켓을 끊었다고 합니다. 편도가 아니라. ‘내가 혹시 되지 않을까’ 뭐 이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바로 가야지 뭐 긴박하게 끊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이게 후보가 있는 게 아니라 누가 추천을 하는 거죠? ▶저희 콘클라베 방식은 80세 이하 교황님 중에서 130명을 추기경이 모입니다. 그럼 왜 130명이냐 그러면 옛날에 추기경님들이 묵었던 숙소가 있는데 그게 방이 130개밖에 없었대요. 그러면 더 지으면 되지 않느냐. 그렇지 않고 그냥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130명이 모이는데. ▷전 세계의 추기경이 그러면 130명밖에. ▶그렇지 않습니다. 200명 가까이 되는 걸로 지금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30명이 모이는데 거기서 원래는 처음에는 전원일치였습니다.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모두 그 사람을 찍으면 투표를 하면 그분이 교황님 되시는 거였습니다. ▷전원 일치가 잘 안 나오잖아요. ▶그래서 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해서 이걸 베네딕토 교황님께서 고치십니다. 3분의2로. ▷그렇군요. 예전에 제가 가톨릭 역사 보니까 중세 시대 때는 몇 년 걸린 적도 있다고, 교황 뽑는 데 몇 년 걸린 적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맞습니다. 콘클라베라는 말 자체가 ‘잠그다’거든요. ‘걸어 잠그다’ 가둬 놓고 ‘너희 중에 한 명 뽑아라’ 뭐 이런 식으로 되는 거라서 우리 우리나라 선거랑 다르죠. 우리나라 선거는 내가 되고 싶어서 나오는 건데 근데 콘클라베는 ‘네가 해라’식으로 이게 그러니까 그 방식이 좀 다릅니다. ▷출마 등록하고 후보자 등록하고 이런 게 아니라 조승현 신부님이 이게 교황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여러 명이 이렇게 적어서 내서 그렇게 되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콘클라베 130명 중에 선출을 하는데 아마 그 시기 안에 현대 교회가 필요해야 될 것들 그리고 교회가 사회 안에서 해야 될 것들 이런 것들이 추기경님 안에서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성령이 임하시면서 거의 공유가 된 거죠. 그리고 그 당시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그 사람이 또 이 필요한 것을 누가 제일 잘할까. 이것들이 아마 교황님한테 투표로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콘클라베에서 교황께서는 세 번째 투표에서 77표로 선출이 됐고 당시 교황에게 다가오는 우메스 추기경은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세요’라고 조언을 해 주셨는데 이게 사실은 이 가난한 사람 뭐 빈자 이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 같아요. ▶맞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때 번뜩 떠올랐던 성인이 이제 콘클라베가 되면 자기가 교황의 선출로 3분의2가 됐다 그러면 이제 많은 추기경들이 이제 공표를 합니다. 그 사회 보시는 추기경님이 계신데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됐다고 공표를 하면 이제 그 사회 보는 추기경이 물어봅니다. ‘교황명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그때 이제 옆에 있던 브라질 추기경님이 계셨습니다. 브라질 추기경님이 이제 ‘가난을 잊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 당신께서 번뜩 떠오르신 성인이 이제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근데 성 프란치스코 성인은 지금까지 프란치스코 교황님까지 266대 교황이 있었는데 그중에도 한 명도 선택하지 않았던 교황명이 있었던 거예요. 첫 번째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첫 번째였던 겁니다. ▷이게 좀 겹치는 이름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러면 예전에 제가 어렸을 때는 요한 바오로 2세 뭐 이런 교황님이 계셨고 그랬는데 이게 예전에도 있었던 이름이거나 그랬을 수도 있네요. ▶근데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처음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택하시고 보통 이제 요한이라든가 바오로 아니면 이제 베드로 이런 걸 좀 많이 선택하신다고 합니다. ▷12사도 그러니까 제자들 중에서 많이 선택을 하죠. ▶그걸 하시고 이제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제 가난함과 청빈의 대표적인 수도자시거든요. 특히 이제 가난한 사람들과 특히 자연을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이 성인을 또 사랑하시고 당신을 이제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그리고 성인한테 맡기면서 이제 교황의 삶을 시작하신 거죠.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신부님. 우리 6시 되면 예전에 이제 삼종기도가 나오다가 지금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가 나오잖아요. 그 성 프란치스코가 그러면 이 교황님이 선택한 그 성 프란치스코와 같은 인물인 건가요? ▶네. 맞습니다. ▷그 기도가 너무 뭐라고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좀 울림도 있고 그리고 또 이게 시사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뭐 예를 들면 이렇게 그 내용 자체가 굉장히 좀 잘 맞는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 기도문이 이제 그 학설이 있는데 그 기도문을 프란치스코 성인이 썼다는 것과 아니면 프란치스코 성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기도문을 쓰고 성인에게 바쳤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확실하지는 않은데 하여튼 그 기도문 자체가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이 담겨 있는 건 맞다. 그래서 우리가 좀 많이 기도를 바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알겠습니다. 교황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는데 특히 이제 우리 한국, 우리나라에 관심 있는 거는 한국 방문하신 일이에요. 교황 선출된 지 얼마 안 되시고 오셨죠? ▶선출되시고 이제 바로 그다음 해에 한국에 오셨는데. ▷2013년에 선출이 됐는데 2014년에 한국에 왔어요. 그런데 노란 리본도 달고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맞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신 게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이제 하나가 이제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그리고 하나가 문재인 대통령을 바티칸으로 소통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 방문했을 때 특히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에 방문하셨을 때 사건이 이제 교회사적으로 좀 보면 이게 요한 바오로 2세가 광주를 방문했을 때랑 약간 비견이 돼요. 어떤 일이 있었냐면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에 전두환 정권 시절 때 이제 한국에 오셨는데 교황이 한국에 온 건 첫 번째였습니다. 그때 한국에 오시고 그다음 날 바로 광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광주로 가셨는데 원래 계획은 헬기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해서 광주 무등경기장 미사를 하는 광주 무등경기장 바로 가는 걸 정권에서 원하셨다고 합니다. 근데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광주에 도착을 해가지고 광주의 아픔이 있는 금남로나 도청 앞을 지나가는 걸로 당신이 직접 동선을 옮긴 거죠. 그러면서 사람들이 많은 세계인들도 보고 광주 시민들도 보게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광화문에 오셔서 미사를 하셨을 때 카퍼레이드로 이제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도셨는데 원래 경호처에서는 제가 듣기로는 경호처에서는 그냥 경호상 이유로 그냥 빨리 도시라 그러고 빨리 미사를 하시라 이렇게 요구했는데 그렇지 않으시고 중간에 내리셔가지고 세월호 유가족분 손을 잡고 눈을 맞춰주셨죠. 그래서 그 모습이 교회사적으로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광주 방문과 좀 비견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항상 이제 제의 수단에 세월호 배지를 달고 계셨는데 사실 사제가 입는 미사 때 입는 제의에는 성경에 관계된 그림 외에는 달지를 못합니다. 안 그러면 제의가 광고판이 돼요. 이쪽에 자동차 광고 아니면 이제 이쪽에 기호 1번, 기호 2번 이렇게 광고판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의에는 성경과 관련된 그림만 달 수 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직접 그냥 이렇게 스캔들이 되더라도 세월호 배지를 다신 거죠. 그리고 나중에 어떤 분이 어떤 분이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게 공개를 하신 거죠. 세월호 배지를 떼라. 그리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라. 어떻게 보면 제 생각에는 용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외교사적으로도 이제 스캔들이 될 수 있는 거였는데 그냥 공개하신 거잖아요. 그리고 얘기하신 게 이제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다. ▷너무 유명한 말씀이죠. ▶그래서 이 자체가 하나의 우리 교회가 나갈 곳 그리고 세상에 나아갈 지침이 됐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군요. 요한 바오로 2세 광주 가셨다는 얘기도 옛날에 들었는데 오랜만에 환기가 된, 제가 그때 여의도가 지금 공원이 아니고 아스팔트로 돼 있을 때 그때 거기에서 미사 집전하셨는데 저도 어렸을 때 갔던 기억이 좀 생생하네요. ▶요한 바오로 2세 오셔가지고 그때 큰, 지금 광주 무등경기장은 지금 야구장이 됐습니다. 챔피언스 필드로 바뀌었는데 근데 그 정신을 잊지 말자고 역사는 잊지 말자고 광주 챔피언스 필드 옆에 광주 교구에서 조그맣게 그 기념비를 하나 세웠습니다. 이곳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오셔가지고 미사를 했다. 그래서 혹시 광주 분들 한번 방문하셔가지고 그 기념비를 방문하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그리고 전 세계에 남긴 메시지 교훈 이런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그러니까 뭐 여러 가지 수식어가 있었는데 ‘빈자의 교황이었다’라는 것도 있고 ‘가톨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교황이었다’ 이런 얘기도 하고 여러 가지가 있거든요. 신부님은 좀 어떻게 보셨습니까? ▶교황님께서는 이제 많은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이제 가장 최근에 좀 관심 갖고 보신 거는 이제 극단주의 좀 극우에 대해서 좀 많이 염려를 하셨어요. 교황님께서는 작년 같은 경우에 이제 유럽에 극우 정당이 좀 바람이 좀 일었습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는 어느 한 미사에서 강론 중에 ‘지금 민주주의는 건강하지 않다’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지금 우리 혐오와 차별이 정치의 언어가 되지 않을까 좀 경계를 좀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특히 이제 작년에 미국 대선이 있었잖아요. 그때도 이제 직접 얘기하시면서 ‘차라리 차악에 투표해라. 저기 있는 사람 다 아니다’ 그런 것까지 얘기하시면서 좀 극단주의, 지금 극우에 좀 경계하셨는데 그 이유가 뭐냐 하면 그 극단주의가 결국은 전쟁의 씨앗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폭력의 씨앗이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그래서 교황님께서도 3차 세계대전을 얘기하시면서 전쟁에 대한 씨앗이 커지고 있다 뭐 이런 걱정을 많이 하시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그런 극단주의 용어를 많이 쓰는 정치인을 조심하라고 거기에 휘둘리지 말라고 그런 얘기도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말씀하신 대로 이 극단주의가 결국은 이제 분열과 그리고 테러 폭력 이런 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또 우리나라에서의 극단주의도 지금 서부지법 폭동사태라든지 이런 걸로 이어졌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많은 교훈을 남긴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데요.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이제 마지막으로 지금 이제 향후 일정이 장례 절차와 그리고 이제 다음 달부터 콘클라베가 다시 시작된다고 하는데 그런 것 좀 소개해 주시죠. ▶내일 명동대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한 추모 미사를 봉헌을 합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바티칸 장례식은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에 열리고요. 그리고 저희 CPBC 가톨릭평화방송을 통해서 중계되니까 많이 보시고 함께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 재밌는 거 그냥 짧게 얘기하면 지금 한국에서 추기경 분들은 총 네 분이 계셨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님 그리고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 그리고 염수정 안드리아 추기경님 그리고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님 계셨는데 네 분의 추기경 님 중에서 두 분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임명하신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네 분 중에 반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임명하셨다는 거는 그만큼 이제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렇게 볼 수 있는 증거인 것 같고요. 그리고 이번 콘클라베 유흥식 추기경 님이 참석하실 것 같습니다. ▷지금 바티칸에 계신 거죠? ▶네. 맞습니다. 성직자성 장관으로 계신데 참석하신 다음에 김수환 추기경님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선출되던 1978년 이후 거의 오랜만에 지금 다시 콘클라베에 한국인이 들어가는 거거든요. 많은 분들이 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내실지 한번 지켜봤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보통 콘클라베는 얼마나 걸리나요? ▶지금 뭐 길게도 있는데 최근에 있었던 통계를 보면 한 이틀에서 3일 정도 걸리고요. 그리고 이틀에 몇 번의 콘클라베 회의를 할지는 정해진 건 없습니다. 빨리빨리 여러 번 하는 콘클라베도 있었고 아니면 그냥 듬성듬성하던 콘클라베도 있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장례 절차도 다 무사히 마치고 또 새로운 교황님을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CPBC주간 조승현 베드로 신부님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준일의 뉴스공감2025.04.23
교황의 새해 첫 미사는?…여성, 여성 또 여성 [앵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첫 날인 어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자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교황은 "구원의 시작에 천주의 어머니, 우리의 거룩하신 어머니께서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맹현균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자들에게 새해 첫 강론을 전합니다. 교황은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라는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교황이 주목한 건, 시간의 충만함과 여성입니다. 때가 되자 하느님은 여성인 마리아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설명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경은 여성이라는 단어로 우리를 시작인 창세기로 돌아가게 합니다. 어머니와 아기는 새로운 창조,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시작에 천주의 어머니, 우리의 거룩하신 어머니께서 계십니다." 교황의 강론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여성'의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성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여야 하고, 여성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황은 이어 보살핌, 배려, 인내, 용기로 대표되는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했습니다. 가정뿐 아니라 세상의 평화도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올해도 주님의 위로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올해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어머니 마리아의 부드러운 모성애로 가득 차길 바랍니다." 이어 교황은 새해 첫 삼종기도를 집전했습니다. 교황은 새해에도 성모 마리아의 중재를 통해 매일 평화주의자가 되기 위한 노력과 헌신을 계속해달라는 당부를 전했습니다. cpbc 맹현균입니다.맹현균2024.01.02

정순택 대주교 “하느님 찾는 여정 자체가 성소” [앵커] 이번 주일은 성소 주일입니다. cpbc가 성소 주일을 맞아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에 ‘성소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성소 주일 특집 토크쇼 ‘응답하라, 부르심에’에 출연한 정 대주교의 성소 이야기를 송창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정순택 대주교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3학년에 재학하던 때. 명문대에 입학했던 정 대주교가 사제 성소를 발견하게 된 건, 가족과 함께 참여한 ‘마리아 폴리’에서였습니다. 정 대주교는 포콜라리안 모임에서 한 부제의 성소담을 듣게 됩니다. 정 대주교는 그 순간을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그분이 저를 붙들고 다시 한번 더 당신의 성소담을 이제 아주 이렇게 상세하게 나눠주시면서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각각 다른 모습으로 부르신다" 이런 말씀을 주셔요. 그러면서 그때 얼핏 ‘이게 하느님께서 이 순간이 이렇게 저에게 다가오시는 뭔가’라는 생각을 이제 한번 해보면서” 정 대주교는 “당시 마음속에 예수님의 말씀처럼 살지 못할 것 같은 신앙적 딜레마가 있었다”고 청년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성경에는 어린이처럼 돼라, 단순하게 되라는 말씀이 있는데 저는 생각이 많고 복잡해서 어린이처럼 되지 못하는데 이런 저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겠느냐라고 이렇게 질문을 드렸더니 그 부제님 대답하시는 말씀이 쉽게 데워지지 않는 온돌은 한 번 데우기는 어렵지만 그 대신 한 번 데워지고 나면 좀체 잘 식지 않는다라는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그렇듯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정 대주교는 그때 그 부제 덕분에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생생하게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온전히 이처럼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그 사랑이 그냥 막 느껴지고,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이는 거예요.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러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 하느님께 온전히 나를 바쳐야 되겠다. 이제 그런 마음이 그냥 그대로 들었던 거고. 그 순간이 저로서는 하느님께 나를 사제로 바치겠다는 마음이” 이후 정순택 대주교는 예비 신학생 모임을 거쳐 가톨릭대 신학대학에 편입합니다. 그 시기, 정 대주교는 군 입대를 앞두고 허리를 다쳐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되는데, 그때가 정 대주교의 또 다른 성소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교구 사제는 어떤 사목, 사도직 이걸 통해서 하느님께 열매를 이렇게 말하자면 드리는 삶이다라고 한다면 수도자는 존재로서 어떤 사도직의 활동이나 사목 활동을 통해서 하느님께 열매를 드리는 게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어떤 이런 삶이라고 이제 느끼는데, 그 삶, 소화 데레사 성녀 자서전을 읽는 순간 내가 찾던 삶이 바로 이거다…” 정순택 대주교는 1986년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해 1992년 종신서원을 했습니다. 정 대주교는 주교 임명과 교구장 착좌 등 모든 순간, 하느님께 순명하는 길을 먼저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제 성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 어떤 것에도 옳은 답은 없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한국 청년들을 격려했던 말을 언급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수도자가 되거나 혹은 사회에 남아서 전공을 살리거나 어느 곳으로 가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선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수도자가 되건 혹은 사회에 남았던 어느 쪽은 다 성소다.” 정 대주교는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 자체가 성소”라며 중요한 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cpbc 송창환입니다.송창환2024.04.22

교황이 영적 투쟁을 강조하는 이유는? [앵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이나 메시지를 통해 '영적 투쟁'을 자주 강조합니다. 영적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당부인데요.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영적 투쟁을 해야 하는 걸까요? 윤재선 기자가 살폈습니다. [기자]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우리에게는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복음을 선포할 힘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8년 발표한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158항)에서 영적 투쟁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남겨 주신 '주님의 기도' 중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마지막 구절은 추상적 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정확히 옮기자면 '악한 자'이며, 우리를 공격하는 인격적 존재를 가리킨다고 상기시켰습니다. 악마를 하나의 신화 혹은 표상, 상징이나 비유 또는 관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경계를 풀 때, 악마는 이를 이용해 우리의 삶과 가정,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악마는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닌다"(1베드 5, 8)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 율법에 어긋나는 중대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심각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교황이 영적 타락을 "편한 자기만족의 눈먼 형태"라고 꾸짖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하기"(2코린 11,14)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영적 타락으로 이끄는 자기 기만에 대해 경고하신다고 교황은 말합니다. 어떤 것이 성령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세속적 영이나 악마의 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식별'이라고 강조합니다. "영적 투쟁의 도구인 식별은 우리가 간청해야 하는 은총"이며, "식별의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모든 지나가는 유행에 좌우되는 꼭두각시가 되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기에 "성령께 식별의 은사를 내려 주십사 간청하고 기도와 묵상, 독서 등을 통해 식별을 증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영적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을 거"라고 독려합니다. 여기서 놓치지 않아야 할 건, 흔히 중요해 보이지 않는 소소한 것들 안에서 식별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라고 교황은 강조합니다. 이는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의 무덤 비문에 적힌, "가장 미소한 것에 담겨 있는 것이야말로 신적인 것"이라는 글을 떠올리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위대한 것은 단순한 일상 생활에서 드러납니다." 식별은 악의 영향을 떨쳐 버리고 주님의 빛으로 올바른 행동 양식을 찾는 겁니다. 작게 보일지라도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의 삶 안에서 주님께서 승리하실 때마다 기뻐할 수 있기에 식별의 은사를 통한 영적 투쟁은 달콤하다"고 역설합니다. CPBC 윤재선입니다.윤재선202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