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꽂이 교황의 언어 / 이광재 / 시공사 「교황의 언어」는 제261대 성 요한 23세 교황부터 성 바오로 6세, 복자 요한 바오로 1세, 성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여섯 교황의 말씀을 엮은 책이다. 1부에서는 경제·사랑·용서·정의·환경·평화 등 개인의 삶과 사회를 이루는 본질적인 주제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실천할 방향을 제시하는 교황의 메시지를 모았다. 2부에서는 여섯 교황의 궤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며 교황명에 녹인 결심과 짧은 사목 표어에 담긴 시대와 공동체를 향한 책임감, 신앙심, 인류를 향한 사랑과 연민을 들여다본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국회사무총장 등을 지낸 저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을 추진하면서 역대 교황들의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시대와 지역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향한 교황님들의 언어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고 전했다. 영어 성경 필사 노트 / 가톨릭출판사 「영어 성경 필사 노트 – 루카 복음서」가 나왔다. 가톨릭출판사가 펴낸 네 복음서 영어 필사 노트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는 루카 복음서는 하느님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가닿는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웃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강조한다. 장면 설명과 인물 묘사가 뚜렷해 말씀을 묵상하며 특히 문맥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휘를 익히는 데 적합하다. 영어 성경 본문은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New American Bible」(NAB)을 바탕으로 한국 신앙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됐다. 필사 노트는 하루 한 페이지 분량이며, 우리말 성경 구절과 주요 영어 단어에 대한 뜻풀이도 수록돼 있다. 신유년에 핀 꽃 / 황보윤(프란체스카) / 바오로딸 ‘조선 천주교의 짧은 봄날’을 배경으로 성직자 영입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신앙의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신해년(1791년)부터 신유년(1801년)까지 10년, 이존창(루도비코)과 주문모 신부를 중심으로 정약종(아우구스티노)·최여겸(마티아)·이도기(바오로)·강완숙(골룸바)·황사영(알렉시오) 등 각 계층 인물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세 번이나 배교한 이존창의 신앙 여정과 심리 변화, 사제품을 받기까지의 우여곡절과 조선에서 겪은 여러 박해를 편지 형식으로 전하는 주문모 신부를 만날 수 있다. 꽃 말씀을 만나다 / 신성근 신부 / 기쁜소식 산림교육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해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성근(성사전담사제) 신부의 신간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뜰을 떠올리며 지난해 주마다 하나의 들꽃을 기록했다. 모두 직접 보았거나 돌보며 마음을 나누었던 꽃들이다. 꽃말에 따라 이야기를 적었고, 끝에는 꽃말과 어울리는 성경 말씀을 담았다. 낯선 꽃 이름과 달리 앙증맞은 사진들이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게 한다. 그냥 살자 / 김홍신(리노) / 작가 김홍신 작가가 21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그냥 살면 되거늘’ ‘겪어보면 안다’ ‘인생 사용 설명서’ ‘왜 사냐고 물으면’ ‘흔들리며 살자’ 등 세상살이의 경험과 지혜가 60여 편의 시에 함축되어 있다. 누구나 고민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제목처럼 ‘그냥 살자’라고 가장 쉽고도 어려운 답을 제시한다. 비유와 압축이라는 시어의 특별함을 택했지만 소박하고 편안한 필치로 수필처럼 읽힌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5.08.20

성스러우면서 친숙하고, 거룩하면서도 한국적인.... 최봉자 수녀, 50년 영성의 여정최봉자 수녀 80대에 연 첫 개인전 ‘하늘 향한 그리움’ 전시장에서 만난 최봉자 수녀. 최봉자(레지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의 50년 작품 세계가 한자리에 펼쳐졌다.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흰물결갤러리에서 개막한 ‘하늘 향한 그리움’ 전. 성상과 성경 말씀을 묵상한 그림, 드로잉과 인터뷰 영상 등이 다채로운 형태와 빛깔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1942년생, 1960년대에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로마 국립미술대학에서 유학한 최 수녀는 1973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 입회했다. 로마에서 공부할 때에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마음을 열어둔 채 4년여간 여러 수도원을 방문했으나 별다른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졸업하기 직전 독일에 있는 지금의 수도회에서 드디어 확고한 성소를 느꼈다. “한 수녀님이 재봉틀로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도생활은 이렇게 사는 거다, 특별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졸업하고 귀국할 때는 입회를 결정하고 들어왔죠.” 전시 개막식에서 만난 최 수녀는 작은 체구에 미소 짓는 모습이 꾸준히 작업해 온 성상의 이미지들과 닮아있었다. 제1회 가톨릭 미술상을 수상하고, 서울대교구청 성가정상, 가톨릭 의대 성모상 등 국내외 성당의 성상과 십자가, 십자가의 길 14처 등을 작업해 왔지만, 개인적인 작품 활동은 하지 않았고 개인전도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전’이라는 말에 최 수녀는 바로 난색을 표했다. “윤학(미카엘, 흰물결아트센터 대표) 변호사님이 예수님 그림 한 점을 보시고 전시회를 하자는 거예요. 계속 못 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연말에 바자회 하면서 조그맣게 공간을 마련하자고, 준비하다 보니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웃음) 예수님, 2008(왼쪽에서 첫번째). 예수님, 2025. 50년 전 입국할 때에도 작품 활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서원하면서 주문이 자꾸 들어왔고, 작가가 아니라 수도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성경에 다윗왕이 백성이 몇 명인지 조사하라고 명했는데, 하느님이 크게 벌을 내리셨거든요. 사흘 동안 흑사병이 돌게 했는데, 그때는 그저 인구를 헤아리는 게 왜 안 될까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인구가 많으면 그만큼 임금의 힘이 세지잖아요. 저도 작품 수를 헤아리고 돈이 들어오는 걸 보게 되면 교만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느님께 작품하는 건 모두 바친다는 생각만 했어요. 하느님께서 주관하시고 함께하신다는 마음으로, 모두 주님의 은총이라는 마음으로 늘 감사드려요.” 최봉자 수녀 개인전 전경. 잃어버린 양을 찾아, 2025. 십자고상, 2014. 성모상, 2015. 갤러리 3개 층의 전시 공간에는 최 수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26점의 성상과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함축적으로 담아낸 ‘뜻 그림’ 700점 가운데 20여 점, 드로잉 등이 펼쳐진다. 50년 작품 세계를 총망라했지만, 대규모 돌조각은 대부분 성당이나 학교, 병원 등에 가야만 감상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소품들로 구성된 셈이다. 그러나 성스러우면서 친숙하고, 거룩하면서도 한국적인 작품들에는 특유의 작가 정신이 배어 있다. “모두 성상이니까 기도의 매개체잖아요. 내 작품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기도하는 데, 신앙생활 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특히 성모님이나 성모자상을 많이 작업했는데, 그냥 아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팔을 연결하면 십자가가 돼요. 또 그냥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인데, 성모님이라고 하면 하늘에 계신, 나와는 먼 분처럼 느껴지니까 내 안의 어머니로 느낄 수 있도록 한국적인 이미지로 표현했죠. 기도의 매개체가 되도록, 도움이 되려고 작업했던 작품들을 내보이는 거니까 관람객들이 보시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기도할 수 있는 성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최 수녀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작품보다 아름답다. 그 다감한 표정들,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닮은 미소를 짓게 된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주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토요일은 오후 6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2-536-8641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12.09

고운 글귀 깃든책으로의 여행추석 연휴 추천 도서길게는 열흘간의 추석 연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니 쉼의 한 자락은 책과 함께하면 어떨까. 특별히 고운 글귀가 깃든 책들로 골라봤다. 시편에 설레다 / 임미숙 수녀 / 바오로딸 독일 본대학교에서 시편으로 구약성서학 박사학위를 받은 임미숙(툿찡 포교 베데닉도수녀회) 수녀가 시편의 주요 본문을 풀이한 책이다. 히브리어로 ‘찬양의 책’이라는 뜻의 ‘시편’은 율법서나 예언서처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형식이 아니라, 사람이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책 또는 사람이 하느님에 관해 말하는 책이다. 임 수녀는 “시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온갖 감정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시편은 성경에서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신학적인 책”이라고 말한다. “시편 1편은 ‘행복하여라’라는 말로 시작하고 시편 2편은 ‘행복하여라’라는 말로 끝납니다. (중략) 시편 1편은 복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의로운 사람이 살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고, 시편 2편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15쪽) “우리 마음이 헝클어져 한 품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략) 시편 22편의 시인처럼, 우리가 맞닥뜨리는 압도적인 절망의 순간마다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역설 곧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를 빕니다.”(110쪽) 성경 속 동물과 식물 / 허영엽 신부 / 가톨릭출판사 뱀·비둘기·낙타·어린양·말·무화과나무·포도·밀·올리브나무·가시나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신앙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성경에 등장하는 동식물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데 개구리·모기·귀뚜라미·하이에나·달팽이·합환채·오이·수박·헤나·박하 등이 등장하는 말씀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까? 서울대교구 허영엽(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신부가 피조물 하나하나에 깃든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한 권의 책에 실었다. 과거 가톨릭평화신문에 3년간 연재한 내용을 엮은 책의 개정판이다. 이 책에 소개된 동식물만 78종으로, 저자는 성지 순례를 거듭하며 축적한 현지 상황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각 동식물에 얽힌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상황을 설명하고, 성경에서 어떤 비유와 의미로 등장하는지 소개해 말씀의 이해를 돕는다. “‘너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각종 메뚜기와 각종 방아깨비, 각종 누리와 각종 귀뚜라미다.’(레위 11,22) 이 구절에서 귀뚜라미는 정결한 곤충으로 언급된다. (중략)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교도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경고를 하시려는 것이었다.”(96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불평하며 원망하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민수 11,5) (중략) ‘이집트 멜론’이라고 불리는데, 이집트 카이로 주변 나일강 홍수로 비옥해진 평야 지역에서는 현재 털이 있는 오이가 널리 재배되고 있다.”(243쪽) 허 신부는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 해와 달, 동물과 식물 등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드신 뒤,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다고 전한다”며 “성경에 나오는 동식물에 깃든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꽃송이보다 달콤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가끔은 허당이어도 좋다 – 봉달이 신부의 행복 이야기 / 나봉균 신부 / 성바오로 「가끔은 미쳐도 좋다」에 이어 10년 만에 출간된 대전교구 나봉균(천안쌍용동본당 주임) 신부의 두 번째 에세이다. ‘봉달이’는 나 신부의 애착 별명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보이지 않게 품어 주고 위로를 담아내는 모습이 까만 봉다리(봉지)를 닮았다고 붙여졌다. 책에는 별명만큼 소박하고 일상적인, 하지만 꼭 품어야 할 소중한 성찰과 고백, 삶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자학’적이면서도 엉뚱한 유머감각은 책장을 넘기는 윤활유다. “세상 웬만큼 좀 살아봤다고 툭하면 지적질에다가 고집불통이다. 자기가 예수쯤 되는 줄 착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정말 큰 병에 걸림 셈이다. 결코 사제는 예수가 아니다. 사제는 예수를 닮아야 할 평범한 또 하나의 신앙인일 뿐이다.”(24쪽) 나 신부는 “평범한 한 사제의 일상을 엿보면서 독자들이 한 번이라도 웃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로를 받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 / 샘터 고 장영희(마리아) 교수의 마지막 산문집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의 개정판이다. 저자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편지와 사진 등을 실어 유고집의 성격이 강했던 초판을 장 작가의 문장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1부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에는 저자가 생전 각종 매체에 연재했던 칼럼 중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드러난 이야기를 모았고, 2부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는 평생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쳤던 영미문학에 대한 글들을 실었다. “10월입니다. 오곡백과가 풍성함을 자랑하는 성취와 감사의 달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연이 또 한 번의 치열한 삶을 마감하며 순명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 만족과 겸손이 공존하는 달입니다. (중략) 무엇보다 10월은 아쉬움의 달입니다. 올해만은 꼭 잘 살아봐야지, 굳게 마음먹었던 계획은 하루하루 버거운 살림살이에 이미 잊었는데, 인생 기차는 어느덧 또 하나의 정거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233쪽) 편의점에서 잠깐 / 정호승 / 창비 정호승(프란치스코) 시인이 3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50여 년 시를 길러낸 시인의 15번째 신작 시집으로, 125편의 사유가 실려 있다. 제목 ‘편의점에서 잠깐’처럼 낙엽·연필·순댓국·담배꽁초·현관문·점심·기도·숟가락 등 일상의 낯익은 모습을 매개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생에 깃든 진실을 이야기한다. 시인은 “더 이상 시를 못 쓰게 될 줄 알았으나 시를 쓰기 시작하자 말라버린 시의 샘에 조금씩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며 “사랑이 결핍되고 증오가 팽배한 이 시대에 이 시집이 마음에 필요한 수선화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9.30

좌로 우로, 우왕좌왕, 이제 미래로![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7) 우리말 사전에 ‘갈팡질팡’이란 말은 순우리말로서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와 유사한 사자성어가 ‘우왕좌왕’(右往左往)입니다.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는 심리적 상태를 들여다보면 불안하기 때문이며, 윤리적 상태로 보면 책임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갈지 확실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택의 책임 앞에서 스스로, 그리고 아무도 불안한 상태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이에 자신도 사회도 더 불안에 떨며 멍들어가게 됩니다. 아침 해를 바라보며 일어나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 오히려 극복되어집니다.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백성을 보살필 책임을 짊어진 제나라 왕에게 맹자가 말합니다. “왕의 신하가 벗에게 처자식을 맡기고 초나라에 갔습니다. 그가 돌아와 보니 처자식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왕이 말하길 “절교해야 하지요.” 다시 맹자가 말했습니다. “만약 감옥에서 죄수 관리를 관장하는 관리가 직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왕이 말하길 “그를 면직시켜야 합니다.” 맹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만약 나라 안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찌해야 할까요?” 왕은 좌우로 고개를 돌아보고 딴소리를 합니다.(왕고좌우이언타, 王顧左右而言他) 「맹자, 양혜왕 하」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도탄에 빠진 백성을 나 몰라라 하는, 제나라 왕을 일깨우기 위해 맹자가 유도한 말입니다. 제나라 왕은 남의 허물은 잘 판단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딴소리하면서’ 책임을 회피합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미루는 일이 많습니다. 좌로 우로 고개를 돌리며 딴소리할 때 주변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우왕좌왕, 갈팡질팡,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헤매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라는 얼굴은 항상 ‘좌로 갔다’ ‘우로 갔다’ 역할분담하며 역사를 반복하지만, 딴소리하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회가 진정 바라는 것은 좌와 우가 목적이 아니라 좌우가 화(和)해 길을 선택하고 책임감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입니다. 그것을 위해 남의 얼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얼굴을 먼저 볼 수 있도록, 자기방어가 아니라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책임감 있게 헌신해야 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객관적 진리’보다 ‘주관적 진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머리로 아는 상식적 진리보다 자기가 직접 체험하여 얻은 진리가 참된 의미로 주어진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이 아닌 헌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은 주관적 진리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 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신이 짊어져야 합니다. 십자가! 그것은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짐을 진 사람만이 참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과 세상의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불안하기 때문에 책임을 미루고 우왕좌왕하지만,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불안에서 벗어나 미래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11.25

예수님 사랑 안에 매일 기도 다짐한 ‘예수 성심 수호대’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분원서 12일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 분원에서 봉헌된 예수 성심 대축일 미사 중 예수 성심 수호대 서약식이 진행되고 있다. 17세기 ‘성 알라코크’, 환시 중 체험 예수 성심 전파·공적 신심으로 자리 19세기 ‘예수 성심 성월’ 정식 인가 예수 성심 성월을 맞아 예수 성심의 발원지인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 분원에서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과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 분원(원장 율리안나 수녀)은 12일 예수 성심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는 예수회 신부들을 비롯해 신자 100여 명이 함께하며 예수 성심의 사랑을 기념했다. 이날 미사에 참여한 이들은 전대사도 받았다. 한현배(예수회) 신부는 강론에서 “성녀 알라코크에게 주어진 메시지는 결국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예수님의 크고 자비로운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어떤 죄인이라도 하느님께서는 품어 안고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예수 성심께 감사드리는 이유도 바로 그 사랑 때문”이라며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버지 하느님께 마음을 내어놓고, 자신의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으로 변화되도록 의탁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예수 성심을 전파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의 소속 수녀회인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 분원에서 12일 예수 성심 대축일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예수 성심은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소속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1647~1690, 프랑스)가 예수 성심의 메시지를 받으면서 교회의 공적 신심으로 자리 잡았다. 성녀는 1673년 12월 27일부터 1675년 6월 16일까지 네 차례 환시 중 예수 성심 발현을 체험했다. 예수님은 환시에서 심장 모양의 불길을 꺼내 성녀의 가슴 속에 넣어주며 예수 성심의 전파 사명을 맡겼다. 예수 성심을 공경하고 다른 이에게도 권하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 사랑을 부어줄 것을 약속하며, 축일 제정과 매월 첫 금요일 신심, 성시간 장려를 당부했다. 복자 비오 9세 교황은 1856년 예수 성심 축일을 전 세계 축일로 확대했고, 1873년 예수 성심 성월을 정식 인가했다. 성녀는 1920년 5월 13일 베네딕토 15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이 신심은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는 데서 나아가 그 사랑에 응답하는 차원까지 이른다. 응답하다 보면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게 되고 결국 더 큰 사랑과 위로를 받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12일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 분원에서 봉헌된 예수 성심 대축일 미사 중 예수 성심 수호대 서약식이 진행되고 있다. 방문수녀회는 성녀에게 전해진 메시지를 이어받아 전 세계 수녀들이 매월 첫 금요일에 성체조배를 하고, 매일 정해진 기도 시간 외 1시간 30분씩 묵상한다. 창에 찔린 예수님 마음을 위로하고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께 다가가도록 지향을 둔다. 콜롬비아에 모원을 두고 있는 방문수녀회는 한국에 2005년 진출해 현재 2명의 한국 유기서원자 포함 8명이 함께 살고 있다. 수녀원 담장 안에서는 봉쇄 수녀들의 기도로, 밖에서는 예수회원들의 활동으로 신심이 전파되고 있다. 1863년에는 ‘예수 성심 수호대’가 결성됐고, 이듬해 비오 9세 교황은 이 단체를 공식 인준하면서 자신을 첫 번째 회원으로 봉헌했다. 이날 미사에서도 신자 8명이 예수 성심 수호대 서약식을 통해 새 회원이 됐다. 회원들은 하루 중 자신이 정한 한 시간 동안 예수 성심 안에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창에 찔린 예수님의 아픔을 위로한다. 현재 한국에는 250명 넘는 수호대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분원장 율리안나 수녀는 “예수 성심께서 여러분 마음에 넘치는 사랑을 가득히 내려주시길 기도하고, 그 사랑 안에서 기쁘고 힘찬 하루하루 보내길 바란다”며 “저희도 각자 지닌 기도 지향을 열심히 봉헌하겠다”고 약속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6.16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 깊이 읽기세속적 쾌락에서 하느님께로 나아간 여정 안내하는 책 두 권성 아우구스티노(354~430)의 「고백록」(Confessiones)은 루소·톨스토이의 고백과 함께 세계 3대 참회록으로 불린다. 젊은 시절 진리와 행복을 찾아 각종 철학과 종교를 접하고, 육체적 쾌락과 야망, 학문과 명예를 좇았던 성인의 「고백록」은 교회 안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전적 고백 문학의 효시이자 그리스도교 신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을 다각도에서 살펴보자. 고백록 / 아우구스티누스 / 성염 역주 / 한길사 성염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 번역하고 주석 더해 “제 나이 열아홉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9년이라는 세월 동안 온갖 욕정에 호리고 홀리기도 하고 속고 속이기도 하면서 살았습니다. 공개적으로는 자유학예라고 부르는 학문을 내세워, 은밀하게는 종교라는 허울을 내세워 그리했습니다.”(157쪽) “저는 누구이며 도대체 어떤 인간입니까?”(389쪽) 「고백록」은 33세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43세에 쓴 책이다. 지난 삶의 사상적·도덕적 방랑을 글로 옮긴 책으로, 모두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10권은 어린 시절의 방황과 회심의 과정, 수도자이자 사제로 살아가던 심경을 기록했고, 11~13권은 창조와 시간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다. 주교황청 대사를 지낸 성염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번역하고 주석을 더한 「고백록」은 성인이 절대 진리를 찾아 나아간 여정을 꼼꼼하게 뒤따른다. 라틴어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성인에 대한 오랜 연구로 역사적·사상적·신학적 맥락을 짚은 설명은 독자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된다. 책에는 ‘밀라노 정원에서의 회심’ 등 이탈리아 산지미냐노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 재단에 있는 성인의 생애를 담은 베노초 고촐리가 그린 벽화들도 실려 있다.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 / 로마노 과르디니 / 김형수 신부 옮김 / 최대환 신부 감수 / 가톨릭출판사 성인의 영성 현대적으로 계승한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해설집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영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사상가인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해설집이다. 저자는 성인이 겪은 하느님을 향한 회심의 여정을 도덕적 회고나 심리분석, 단순한 철학적 전환으로 치부하는 모든 해석을 명확하게 거부한다. 저자는 「고백록」이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고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는 실존적인 기록이라고 강조한다. 즉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의 진리 안에 자신을 놓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자신의 수치심과 자기주장의 저항 속에서도 하느님의 인식에 결합하는 것이다. “「고백록」 안에서 그리스도교적인 모든 것을 제거해 본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경험한 사람이라면, 아우구스티노가 겨우 그 외에 남아 있는 것들 때문에 그토록 고뇌했다고 믿지 못한다. (중략) 회심의 과정은 그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서 모든 것을 요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로 향한다. 아우구스티노가 회심하고 자신의 고백록을 기록해 바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께서는 철학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서 증언하는 거룩하시고 살아 계신 분이시다.”(10쪽) 책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내면적 투쟁을 통하여 저자의 핵심 개념인 ‘마음’과 ‘인격’을 설명한다. 청년 아우구스티노가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통해 지혜에 대한 열정에 불타올랐을 때에도,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결국 뒤로 물러났던 것처럼, 철학적 진리가 하느님 계시와 은총 없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과르디니 신부는 베를린·튀빙엔·뮌헨 대학교 등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쳤고, 청년들의 신앙을 길러주는 가톨릭 청년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5.10.29

전례의 ABC[월간 꿈CUM] 전례 _ 미사 해설 (02) 출처: 전례와 신심행위 전례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전례와 신심행위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전례(Liturgy) :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근본 바탕을 둔 “거룩한 전례는 교회의 머리이신 우리 구세주께서 하늘에 계시는 성부께 드리시는 공적인 경신 예배인 동시에 또한 신자 단체가 그의 창시자와 또한 그를 통하여 영원하신 성부께 드리는 공적 예배이다.”(교황 비오 12세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 따라서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을 그의 지체로 하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완전한 공적 경배이다. 전례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 ①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가 공적으로 행해야 한다. ② 그리스도의 이름이나 교회의 이름으로 성부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이어야한다. ③ 교회의 권위로부터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사람(성직자)이 전례를 거행하여야 한다. ④ 교황청으로부터 인준된 전례서를 따라서 거행되어야 한다.(미사경본, 성무일도서, 성사예식서) 신심행위(devotional practices) : 전례의 네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거행되는 단체적 경배행위를 신심행위라고 한다. 신심행위는 교회 권위로부터 임명된 성직자가 있든 없든 간에 관계없이 거행될 수 있다. 이러한 신심행위는 신자들이 전례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기도회 등은 여러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지만 전례가 아니라 신심행위이다. 이러한 신심단체나 신심행위의 내용과 기도는 교구장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전례헌장」 13항) 전례의 능동적 참여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왜냐하면 사도직 활동의 목적이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가 한데 모여, 교회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희생제사에 참여하고, 주님의 만찬을 받아먹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례헌장」 10항) 그러므로 “신자들은 천상 은총을 풍부히 받도록 올바른 마음의 자세로 전례에 참여해야 하며, 사목자들은 신자들이 잘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도록 적절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전례 중에 봉독되는 성경과 강론은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 해설로서 전례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봉사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의 자세로, 모든 이가 올바로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을 선포하여야 하며, 신자들은 존경심을 가지고 귀담아 들어야 한다.”(「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 40-41조) 전례와 신자 생활과의 조화 “애덕과 신심과 사도직의 모든 활동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한 활동으로 그리스도 신자들은 이 세상에 매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상의 빛이 되고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전례헌장」 9항) 그러므로 신앙인은 ‘예수님 공경’만이 아니라 ‘예수님 모방’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 말하는 전례 전례는 교회 생활의 정점이며 원천 :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 인간 성화와 하느님 찬양이 가장 커다란 효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전례헌장」 10항) 전례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 : 구원 사업을 완수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는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집전자의 인격 안에 또한 특히 성찬의 형상들 아래 현존하시어, 미사의 희생제사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친히 그때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고 계신다.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어 누가 세례를 줄 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다.”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마태 18,20 참조)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 그분께서 현존하신다.(「전례헌장」 7항)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수행 : “참으로 하느님께서 완전한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는 이 위대한 행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당신 신부인 교회를 언제나 당신과 결합시키시며, 교회는 자기 주님을 부르며 또 주님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께 예배를 드린다. 모든 전례 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 몸인 교회의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다.”(「전례헌장」 7항)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cpbc2026.02.12

작심삼일 뒤 다시 신앙의 끈을 묶으며새해 마음가짐 다잡는 책 구글 제미나이 제작 1월도 벌써 절반이 지났다. 새해 다짐도 이미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남은 1년을 대충 보낼 수는 없지 않나. 일상에서 또 신앙적으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도록 돕는 책들을 소개한다. 아직은 용서할 수 없는 당신에게 / 조 켐프 신부 / 서영필 신부 옮김 / 성바오로 일흔일곱 번 용서하라 하셨지만… “당시에는 용서를 생각한다는 것조차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 고통의 일부는 언제나 제 삶의 일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상처들은 제게 거의 힘을 쓰지 못합니다. 저는 훨씬 더 생기 있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용서가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9쪽)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뼈아픈 배신·거짓·상처 등을 경험해 본 사람은 사랑보다 힘든 감정이 용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해가 시작됐지만 지난해 묵은 부정적인 감정에 신앙인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져 힘들다면 「아직은 용서할 수 없는 당신에게」가 실질적인 위로를 건넬 것이다. 조 켐프(미국 미주리주 유레카 거룩한 성신본당 주임) 신부는 ‘지금 당장 용서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증오·복수·원한 등 고통의 감정에서 벗어나 진정한 치유가 깃들 수 있도록 천천히 그리고 다정하게 동행한다. 성경 속 이야기를 예수님이 전하는 용서의 관점에서 되새기며 빛과 평화의 길로 안내한다. 시기심으로 죽을 것인가 사랑으로 살 것인가 / 카트린 오방 수녀 / 안영주 옮김 / 바오로딸 시기심은 관계를 파괴하고 삶을 망가뜨린다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이 책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동시에 다루기 어려운 감정인 시기심과 질투심을 신앙의 차원에서 극복하도록 돕는다. 책은 시기심과 질투심이 누구에게나 있지만, 잘 다스리지 못할 경우 관계를 파괴하고 삶을 뒤흔들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시기는 다른 영적 병폐와는 다르다. 탐식은 음식의 맛이라도 주고, 탐욕은 재물을 소유하는 기쁨이라도 주며, 음욕도 그 나름의 쾌락을 준다. 그런데 시기는 그것을 겪는 사람에게 아무런 즐거움도 주지 않는다. 시기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 감각적인 즐거움도, 겉으로 드러나는 기쁨도 없다. 시기는 아무것도 보태거나 채워주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32쪽) 카트린 오방(도미니코회) 수녀는 카인,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등장하는 큰아들, 자캐오 등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닫아야 할 내면의 문과 열어야 할 내면의 문을 제시한다. 감사와 찬미 안에서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아가는 법을 일러준다. 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 / 미헬 레메리 신부 / 최정훈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사회교리란 무엇입니까 미헬 레메리(네덜란드 로테르담교구) 신부가 집필한 「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가 출간됐다. 사회교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 및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신앙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현대적으로 해석한 가르침이다. 이 책은 특별히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 청년 사목과 디지털 미디어를 결합한 사목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아 온 저자는 ‘하느님과 트윗을’ 시리즈를 통해 신앙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청년들과 세계청년대회와 성지 순례를 다니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 강연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과 직접 소통했다.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은 세계 청년들로부터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음식 낭비라는 죄와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교적인 행동입니다. (중략) 오늘 밤 여기에서 내 밥그릇을 깨끗이 비운다고, 저 멀리 사는 사람의 배고픔을 달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속뜻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많이 낭비할수록, 세계의 다른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듭니다.”(45쪽) 책에 실린 질문은 구체적이다.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지, 왜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을 돕지 않는지, 그리스도인은 채식을 해야 하는지, 왜 성경은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쳤는지, 교회와 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스도교 신자인 정치인을 뽑아야 하는지⋯. 저자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이웃이라면 어떨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되묻는다. 또 “우리의 사명은 모두가 불완전한 이 세상을 가능한 한 견딜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영성챙김 / 채정호 / 선율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명상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가 집필한 책이다. 「영성챙김」이라는 익숙한 제목에서 채 교수가 가톨릭 신자라 예상했으나 개신교 장로란다. 40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저자는 국내 대학병원급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정규적인 명상과 마음챙김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많은 치유 사례를 확인했으나, ‘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 사탄에게 문을 여는 것은 아닐까’라는 신앙적 두려움으로 참여를 망설이는 많은 개신교 신자를 만났다. 불교의 좌선, 뉴에이지의 환상, 이단 종교, 무분별한 영성운동과 연결해 마음챙김과 명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신의 언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저자는 다양한 종교와 철학 및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정의한 명상을 언급하고, 교회사에 드러나는 영성챙김도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삶과 기도, 십자가의 성 요한 및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 수련, 렉시오 디비나와 향심기도, 동방정교회의 예수기도 등 초대 교회부터 이어진 관상적 전통이 영성챙김의 뿌리라고 설명한다. “기독교의 풍성한 영성 전통은 모두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무는 존재적 기도’라는 공통된 지향점을 갖고 있다. 영성챙김은 이러한 전통을 현대의 심리학적 언어와 훈련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기독교인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 중심의 깨어 있음’으로 구체화한다.”(90쪽) 저자는 가톨릭 신부·개신교 목사·심리학자 등이 등장하는 가상 토론을 통해 마음챙김과 명상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정리하는가 하면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의 견해 차이도 짚는다. ‘영성챙김’이라는 신학적 토대 위에 그리스도교적 명상의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오랜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학자로서 명상을 통한 ‘종교 간 일치’의 시도인 셈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1.13
![[신앙단상]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시작된 나의 신앙](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5/06/CET1778044953421.jpg)
[신앙단상]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시작된 나의 신앙 “제 이름은 유은총입니다. 두 살 터울 남동생 이름은 충만입니다.” 자기소개를 마치면 늘 같은 반응이 돌아옵니다. “참 좋은 이름이네요. 누가 지어주셨어요?” ‘은총’과 ‘충만’. 신자든 비신자든 한 번 들으면 쉬이 잊히지 않는 이름입니다. 우리 형제의 이름을 지어주신 분은 아버지입니다. 작명소도, 항렬 돌림자도 아닌,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골라 두 아들의 이름에 담아주셨습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 밤샘 기도를 다니시던 말 그대로 ‘열혈 신자’셨던 아버지는 세상에 곧 나올 자녀들을 하느님께서 굽어 돌봐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으셨다고 훗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형제 이름에 가려졌지만, 사실 아버지 성함도 범상치 않습니다. ‘경사로울 경(慶)’에 ‘북돋울 배(培)’, 이름 하여 ‘경배’. 어쩌면 할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셨던 걸까요. 어릴 적 온 가족이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면, 아버지는 미사 중에 자신의 이름이 들릴 때마다 괜히 엉덩이를 들썩이곤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뜨거운 신앙은 이름 속으로, 그리고 우리 형제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 역시 제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랜 세월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신 어머니는 일상 속에서 늘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익숙했던 풍경은 방 한 켠 작은 기도 공간에서 촛불을 밝히고 고요히 묵주기도를 바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일까요. 저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어색하거나 주저되는 일이 아닙니다. 어느새 신앙을 삶처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가방 안에는 기사를 작성할 때 쓰는 노트북과 취재수첩 사이에 5단 나무 묵주가 늘 함께합니다. 취재 현장으로 향하는 길, 차 안에서 조용히 묵주 알을 굴리며 기도합니다. ‘주님,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제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잘못이 없도록 이끌어 주소서.’ 제 부모님은 성모님이나 요셉 성인 같은 특별한 분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어느 성당에서나 만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다만 교회 가르침에 따라 자녀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고, 충분한 양분과 물을 주며 싹이 트길 기도하신 분들입니다. 부모님의 기도 안에서 자라며, 저 역시 복사와 레지오 마리애 단원,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자녀의 얼굴에서 부모의 얼굴이 보이듯, 신앙도 그렇게 닮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요즘 저는 황혼을 바라보는 주름진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기도드립니다. “저희 부모는 저희를 낳아 기르며 갖은 어려움을 기쁘게 이겨 냈으니 이제는 그 보람을 느끼며 편히 지내게 하소서.” (「부모를 위한 기도」 중) 그러면 어머니는 혼기를 넘긴 아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며, 오늘도 아들을 대신해 주님께 기도를 올리십니다. “은총의 빛을 비추어 주시고, 겸손하고 진실된 마음을 간직하여 새로운 만남이 당신의 부르심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 되도록 이끌어 주소서.”(「미래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 중) 그 기도를 마음에 새기며, 저도 조용히 두 손을 모읍니다. “주님, 모두 이뤄지게 하소서. 아멘” cpbc2026.05.06

성화 속 복숭아에 담긴 구원의 비밀[‘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11. 복숭아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복숭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희망을 상징하는 과일로 자주 그려졌다. 성서와함께 제공 복숭아는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프루누스 페르시카(Prunus persica)라는 학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오래전 페르시아(현재 이란 지역)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널리 재배되던 과일이다. 이후 이탈리아·스페인 등 일조량이 많고 건조한 기후를 가진 유럽 국가에도 전파되었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대 플리니우스가 1세기경 남긴 「박물지」에는 ‘부드러운 과육과 단단한 핵, 핵 안에 든 씨앗으로 구성된 열매’라고 언급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요소들이 세 위격을 표현한다고 생각해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과일로 여겼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엘 그레코의 작품 ‘성가정과 마리아 막달레나’에는 과일 그릇을 들고 있는 요셉, 그릇에 담긴 과일을 꺼내 아기 예수님에게 건네는 마리아, 마리아의 무릎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기 예수님이 등장한다. 투명한 유리 그릇에 들어있는 사과·체리·복숭아 등 형형색색의 과일은 마치 정물화처럼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사과는 인간의 타락, 체리는 그리스도의 성혈, 복숭아는 구원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마리아가 과일을 집으려고 손을 뻗거나 어린 예수님에게 과일을 건네는 장면은 아들 예수님의 사명에 대한 마리아의 깊은 인식과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충실한 믿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외에도 아기 예수님이 손에 복숭아를 들고 있거나 성모 마리아의 뒤편에 복숭아가 그려진 성모자 성화도 있는데, 이들 그림에서도 복숭아는 구원의 열매를 뜻한다. 복숭아는 종교화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인물화나 정물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16세기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하느님의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듯, 우리도 말한 바는 즉시 행동으로 옮기고 늘 말과 행동을 같이해야 합니다. 옛사람들은 의인을 복숭아와 복숭아 꼭지에 달린 잎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복숭아는 심장, 복숭아 잎은 혀의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혜롭고 의로운 사람은 말을 잘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만 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 같은 믿음을 반영하듯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의로운 사람을 표현할 때 복숭아와 복숭아 잎을 함께 그려 넣었다. 그런데 그림 속 복숭아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때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누군가 반쯤 먹다 남긴 상한 복숭아는 평판이 좋지 않은 여성의 부도덕함을 나타내고, 특히 정물화에 그려진 벌레 먹은 복숭아는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장치로 읽힌다. 복숭아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이집트로 피난 가던 중 복숭아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꿈에서 천사로부터 피신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길을 떠났으니 당연히 고단하고 시장할 터. 탐스러운 복숭아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본 마리아가 열매를 따려고 했지만, 복숭아는 요셉이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린 아기 예수님이 나무에 말을 걸자 나뭇가지는 순순히 아래로 구부러졌고, 요셉은 복숭아를 따 마리아에게 주었다. 이와 조금 다른 버전의 이야기에서는 천사들이 나타나 하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지에서 복숭아를 따 마리아와 요셉에게 건네주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구전을 거치며 복숭아 대신 무화과나 대추야자로 언급되기도 한다. 과거 동양권에서도 복숭아와 복사나무는 천상과 연관된 것으로 여겨졌다. 무릉도원은 복사나무가 숲을 이루는 곳, 복사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이상적인 장소를 말하며, 천도복숭아는 신선들이 즐겨 먹는 과일이다(도원·천도의 ‘도’는 모두 복숭아나무 도(桃)). 구원과 천상을 꿈꾸는 인간의 오랜 소망이 담긴 복숭아. 세상에 이처럼 감미로운 과일이 또 있을까. cpbc2026.07.22

빌렘 신부 “나를 따라 독일로 가자” 안봉근에게 제안[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문화 독립운동가, 안봉근 요한 세례자 - (1) 안봉근(요한 세례자). 어린 세 아들 둔 가장 안봉근 새 세상에 대한 갈망과 미안함 사이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아내 손 잡고 성경 구절 속으로 되뇌어 안봉근(安鳳根, 1887~1945?, 요한 세례자)은 안중근의 사촌 동생이다. 오늘 우리가 그를 주목하는 것은 독일에서 동아시아 문화 전문가로서 문화 독립운동을 한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이미륵에게 독일 유학과 정착의 길을 열어주었고, 손기정에게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여주어 그를 민족주의자로 변화시킨 사람이다. 받고 싶은 도움을 타인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내준 안봉근을 삶을 통해 “과거가 현재를 살리고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리는” 역사를 경험하기를 바란다. 빌렘 신부의 뜻하지 않은 제안 1914년 1월, 4년 전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토마스에게 종부성사를 준 빌렘 신부가 안봉근 요한에게 물었다. “요한아, 나를 따라 독일로 가겠니? 가서 공부도 하고⋯. 토마스는⋯ 그렇게 죽었지만 헛된 죽음은 아니다. 토마스의 뜻은 살아 있고 조선은 어떻게든 다시 살아날 거야. 그때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지.” 안중근의 사촌 동생 안봉근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빌렘 신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신부님, 제가요?” 빌렘 신부가 온화한 표정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하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요.” “너도 기억하지? 지난번 청계동에 왔던 베버 신부님과 포겔 신부님 말이다. 너를 데리고 가고 싶다는 뜻을 비쳤더니 수도원에 머물게 해주신다고 하는구나.”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네가 하고 싶다는 기계학 공부도 하고 교리 공부도 하면 좋을 것 같구나. 조선 선교를 희망하는 선교사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칠 수도 있고. 그럼 너도 덜 미안하지 않겠니?” 빌렘 신부는 봉근을 볼 때마다 안중근과의 마지막 3일이 떠올랐다. 죽음을 앞둔 안중근 토마스는 종부성사를 볼 수 있게 사제를 보내달라는 전보를 뮈텔 주교에게 보냈었다. 주교는 거절했으나 빌렘 신부는 주교의 뜻을 거스르고 토마스를 찾아 뤼순 감옥을 찾아갔다. 빌렘 신부에게 안중근은 특별했다. 그가 열여덟 살 때 세례를 주었고 자신의 복사로 곁에 두었다. 감옥에서 마지막 미사를 할 때 안중근은 복사가 하는 라틴어 응답문을 한 구절도 잊지 않고 있었다. 빌렘 신부는 일부러 더 천천히 미사를 드렸다. 안중근이 가능한 한 오래 하느님을 느끼기를 바랐다. 안중근에게 성체성사와 노자성체를 주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 제의를 벗고 미사를 마쳤다. 빌렘 신부는 스무 살의 안중근이 상해나 동경에 가서 몇 년간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또 신앙을 잘 지키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니 보내도 되겠다”는 편지를 뮈텔 주교에게 직접 보냈었다. 그러나 그의 유학은 실현되지 않았다. 빌렘 신부는 안중근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봉근에게 해주고 싶었다. 봉근 역시 사촌 형 안중근 토마스처럼 빌렘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복사를 했기에 가까운 사이였다. 안봉근·최 루갈다 부부와 세 자녀. 왼쪽부터 둘째 창순 에우세비오, 첫째 창익 프란치스코, 셋째 창준 라우렌시오. 안기명 제공 빌렘 신부의 뜻하지 않은 제안을 받은 봉근은 가족을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일견 새로운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어 쿵쿵거리는 심장을 한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봉근은 만주로 상해로 돌아다니는 형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부러웠다. 안중근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경의 감시를 받는 것도, 이웃들이 예전과 다르게 거리를 두고 대하는 것이 속마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상했다. 봉근이 빌렘 신부와 헤어져 집에 들어서자, 마당에서 놀던 두 아들이 달려들었다. 인사를 하면서도 네 개의 똘망똘망한 눈동자는 아버지 손에 든 신문 뭉치에 더 눈이 쏠렸다. “프란치스코야, 친구들과 나누어 먹어라.” 봉근의 허락이 떨어지자 큰아들 프란치스코가 수제비떡을 싼 신문 뭉치를 냉큼 받아들더니 동생 에우세비오의 손을 잡고 부리나케 나갔다. 프란치스코는 청계동을 찾은 베네딕도회 베버 신부 일행에게 꽤 귀염성 있게 굴어 이쁨을 많이 받았다. 다섯 살 프란치스코가 쪼그리고 앉아 신부들의 담뱃대를 순서대로 받아들고 담뱃잎을 채워넣을 때면 평생 담배를 태운 누구보다 솜씨가 좋다고 칭찬했다. 아이들 뒷꼭지를 흐뭇하게 쳐다보며 돌아서던 봉근의 눈길이 부엌에서 젖은 손을 치맛자락에 문지르며 나오던 루갈다와 마주쳤다. 12년 전, 빌렘 신부의 복사 열다섯 봉근은 일곱 살 많은 루갈다와 결혼했다. 그날 봉근은 솜을 넣은 바지와 소창의를 입고 상투를 틀고 머리에 정자관을 썼다. 루갈다는 황해도 여자들이 하는 얹은머리를 하고 녹색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었다. 치마는 풀 먹인 다듬이질을 너무 세게 했는지 햇살을 받을 때마다 번쩍거렸고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날 빌렘 신부는 봉근의 가족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 뒷면에 “교황의 조선 선교사 니콜라스 조셉 빌렘”이라고 새겨진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사진 속 봉근은 어렸고 루갈다는 시집 식구들 사이에서 멋쩍게 서 있다. 본관(本貫)이 해주인 루갈다의 아버지 최형규 시몬 역시 빌렘 신부의 복사이고 전교회장도 했다. 한자에 조예가 깊은 장인은 사립 해동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바쁜 와중에도 빌렘 신부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신부가 써준 편지를 들고 서울 종현 주교관을 찾아가곤 했다. 빌렘 신부는 2년 전 성모 성탄 축일(9월 8일)에 새 종 축복식을 하고 해주에 본당을 세웠다. 성당을 짓기도 전에 400원짜리 프랑스산(産) 종을 마련할 수 있었던 연유는 공소집 주인이었던 김 베네딕토의 유언 덕분이었다. ‘본당 종 구입비 300원을 반드시 본당 신부에게 기부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두 아들이 300원을 가져왔고 감동을 받은 빌렘 신부는 거기다 100원을 보태서 종을 주문했다. 초대 본당 회장을 맡은 장인은 더 바빠졌다. 신자들의 수가 늘었고 빌렘 신부는 성당을 지을 요량으로 해주 남문밖 서영정 땅을 구입했다. 그때부터 장인은 그 땅에 딸린 집에 들어가 살면서 본당 부동산도 관리했다. 안봉근의 장인 최형규 시몬. 빌렘 신부의 복사였으며 황해도 해주본당 초대 전교회장이었다. 안기명 제공 “막내 라우렌시오는 자우?” “네.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서 형들이랑 신나게 놀더니 지도 부치는지 낮잠을 좀 오래 자네요. 그저께부터 콧물 바람이에요. 형들과 달리 약해서 걱정이에요. 그것보다 신부님이 갑자기 왜 부르셨어요? 또 무슨 일이 있나요?” 빌렘 신부가 뮈텔 주교님뿐만 아니라 다른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과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아버지와 남편을 통해 들어 대충 알고 있던 루갈다도 걱정이 앞선 목소리였다. “신부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실 것 같아. 다시 오기는 힘드시겠지. 같이 가자고⋯. 독일 가서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네.” “아이고⋯ 신부님 떠나실까 걱정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요? 그런데 임자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하셨단 거죠?” “신부님이 장인어른과 이미 말씀을 나누었나 봐. 큰물을 보고 문리도 더 틔워야 교회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고⋯.” 루갈다는 얼굴을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씨 집안 남자들의 성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촌 아주버님들이 그동안 한 일들을 생각하면 남편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졌지만 애써 눌러두었을 뿐이었다. 지난해 부활 첨례날에 남편은 신자들 앞에서 예수 부활하신 후부터 그날 저녁까지 일어난 여러 가지 신묘한 기적을 구구절절 잘도 풀어냈다. 신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서 있던 빛나는 봉근의 모습이 자랑스러워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었다. 머릿속이 아득해진 루갈다는 어릴 때부터 품고 다니던 몸고상을 만지작거리며 두서없이 말을 이었다. “언제요? 얼마나 걸릴까요? 가시는 곳은 어디랍니까? 여비는 어떻게 마련하죠? 옷 한 벌이라도 새로 장만해야 하는데⋯.” 봉근은 루갈다의 거칠어진 손을 잡았다. 그리고 빌렘 신부가 독일로 함께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머리에 떠올랐던 성경 구절을 속으로 되뇌었다. “주께서 쓰시겠답니다.”(루카 19,34) <계속> 송란희(가밀라, 한국교회사연구소 학술이사)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6.06.09
![[신앙단상] 도쿄에서 만난 세 천사](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6/17/0I21781671590291.jpg)
[신앙단상] 도쿄에서 만난 세 천사 최근 일본 도쿄로 나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고교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운 덕에 가타카나와 히라가나 정도는 읽을 수 있고, 또 ‘한자 세대’라는 자부심으로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짧은 일본어를 더듬어 사용하고, 손짓 발짓에 표정까지 동원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흔히 외국에 나가면 긴장이 풀려 실수가 잦아진다는데, 그 말이 꼭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도쿄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도쿄도청 전망대를 찾아 도청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정작 입구를 찾지 못해 한 시간 넘게 같은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땀이 온몸을 적시고, 초조함에 머릿속이 하얘질 무렵, 일흔 후반쯤 돼 보이는 경비원 한 분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분은 온화한 목소리로 어디를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일본어로 ‘전망대’라는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았던 저는 영어와 이른바 ‘만국 공용어’인 몸짓을 섞어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경비원은 직접 저를 데리고 전망대 대기열까지 안내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도쿄의 아름다운 야경을 마음껏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당혹스러운 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숙소 객실 카드키를 방 안에 둔 채 문을 잠가버려 꼼짝없이 호텔 프런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서양인 직원은 제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저는 점점 더 난처해졌습니다. 그때 한 동양인 직원이 다가와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순간 얼마나 반갑던지 “동포세요?”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한국어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고, 직원은 친절하게 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혹시 한국 분이세요?”라고 묻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일본인이라고 답했습니다. 가장 큰 실수는 귀국하는 날 벌어졌습니다. 도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나리타공항으로 향하던 중 어찌 된 일인지 중간에 내려 공항과 정반대 방향의 전철을 타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목적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야 하는데 역까지는 멀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서둘러 목적지로 향했지만, 잃어버린 시간까지 되돌릴 순 없었습니다. 결국 역에 도착했을 때는 반드시 타야 할 시간대의 열차표가 모두 매진된 상태였습니다. 모든 걸 포기한 채 망연자실해 있던 순간, 한 여행객이 자신의 표를 제게 양도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찔한 위기의 순간마다 귀인들이 나타나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천사, 곧 하느님의 사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을 찾아와 노년에 얻을 아들 이사악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토빗기에서는 천사 라파엘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토비아와 동행하며, 시력을 잃은 토빗을 치유하고 사라를 괴롭히던 악령을 물리쳐 줍니다. 세 천사도, 라파엘도, 평온한 시기가 아닌 어려움과 시련의 한가운데에서 그들 곁에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이 다가오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 일상 속에 당신의 천사를 보내십니다. 길을 잃은 이에게 길을 안내하는 경비원일 수도 있고, 낯선 여행자를 돕는 호텔 직원일 수도 있으며, 곤경에 처한 이에게 선뜻 표 한 장을 내어주는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절실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넘어지기 쉬운 때,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때, 주님께서는 당신 자녀를 구하고자 따스한 손길을 내미십니다. ‘신앙단상’을 쓰는 이 순간에도 주님의 천사가 제 손끝에 머물러 당신 말씀을 글 위에 내려주시길 기도해봅니다. cpbc2026.06.17

교황, 이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와 서울 WYD’ 논의 이 대통령, 교황과 30분간 단독면담… 교황 방북 등 거론된 듯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레오 14세 교뢍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바티칸 미디어 레오 14세 교황이 15일 이재명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티칸 미디어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바티칸에서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염원을 전하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깊이 논의했다. 이 대통령은 교황에게 내년 2027 서울 WYD를 계기로 방한해줄 것을 공식 초청하기도 했다. 레오 14세 교황과 이 대통령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으로, 분단 80년이 넘은 남북 상황에 평화가 절실히 필요함을 직접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과 이 대통령과의 면담은 30분가량 이뤄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이 대통령의 교황과의 만남 후 가진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교황에게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국민적 염원과 정부의 구상을 말했으며,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황청의 변함없는 지지와 관심을 재확인했다”며 “양 정상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황과의 만남에서 남북관계 개선 방안 또한 폭넓게 논의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여러 남북관계 개선 방안이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됐던 교황 방북도 거론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교황과의 만남 이후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도 한반도 평화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 대통령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파롤린 추기경은 “인내뿐 아니라 희망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9일 유럽 순방길에 올라 17일까지 벨기에·EU·이탈리아·바티칸·프랑스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교황을 비롯해 각국 정상들과 만나 회담했다. 이 대통령은 순방 기간 중인 14~15일 바티칸에서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고,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에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교황과의 면담에 앞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 주례로 거행된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는 6·15 남북공동선언 26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봉헌됐다. 이 대통령은 미사 직후 특별연설에서 “저는 지금도 (남북 대화의)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굳게 믿는다”며 “정전 상태를 넘어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사에는 김혜경 여사를 비롯해 신형식(스테파노)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 각국 외교관, 청와대 관계자, 로마 현지 사제·수도자·신자 300여 명이 참여했다. 이 대통령은 특별연설에서 2027 서울 WYD가 종교 행사만이 아니라 국가 행사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이 대회가 평화와 연대를 향한 희망이 되고, 청년들에게 위로와 용기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교황청과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이 함께한 자리에서 다시금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WYD가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며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전선(戰線)과 철조망, 국경의 제약을 넘어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며, 대한민국 정부 역시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는 약속드린다”고 피력했다. 우리 대통령이 교황청에서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미사에 함께한 것은 문재인(티모테오) 전 대통령이 2018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봉헌한 미사에 참여한 이후 7년 8개월 만이다. 앞서 12일에는 이 대통령과 함께 유럽을 방문 중인 김혜경 여사가 로마 한인신학원을 찾아 서울 WYD를 준비하는 성직자와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바티칸=김혜영 기자 justina81@cpbc.co.kr이준태 2026.06.16

“어서 오이소” 대구대교구, ‘착한 목자’ 김종강 대주교 환영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김종강 대주교 임명 발표 현장 김종강 대주교(가운데)가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와 악수하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오른쪽은 총대리 장신호 주교.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의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 임명은 5월 26일 오후 7시(로마시각 낮 12시)에 교황청 공식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를 통해 공식 발표됐다. 대구대교구는 같은 시각 교구청 경당에서 새로운 부교구장 대주교를 맞이하는 임명 발표식을 마련하고 김 대주교를 환영했다. 임명 발표식에는 대구대교구 교구청 사제단과 대리구장, 평협 임원을 비롯해 주교회의 사무국장 송영민(대구대교구) 신부, 청주교구 사무처장 주영길·선교사목국장 박규선·교구장 비서 김인환 신부 등이 함께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가톨릭교회에서 주교는 교황 명에 따라 움직이며 사제는 교구장 명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원칙이고, 이런 원칙을 지켜왔기에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이어져 왔다”면서 “이번에 명에 따라 오신 김종강 대주교님께선 정말 훌륭하신 분이고 4년 이상 교구장 경험을 하셨기에 우리 교구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신호 보좌 주교는 “우리 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응원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축하인사를 전했고, 교구 평신도위원회 김성교(루카) 총회장은 “신자들을 대표해 대구대교구에 오심을 환영하며, 교구 일을 잘 해나가실 수 있도록 평신도들이 함께 대주교님을 위해 기도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김종강 대주교는 인사말에서 “그저 저의 바람이라면 빨리 이 시간이 끝나는 것”이라며 부담스러운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으면서도 “그나마 이 자리에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신부님들과 선배님들이 계셔서 조금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 뜻을 잘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은 항상 저를 앞서 가기에, 그 부르심에 따라가고자 이 자리에 왔다”면서 환영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이어진 축하식에선 샴페인과 간단한 다과가 차려졌다. 참석자들은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고 환영과 축하 인사를 건넸다. 건배사를 맡은 김준우(5대리구 교구장대리) 신부는 “사제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위로받는 성경 말씀이 요한 복음 13장 1절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이라면서 “대주교님께서도 우리 대구대교구 사제들과 신자들을 끝까지 사랑해주시고 항상 품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명 발표식 후 열린 축하식에서 대구대교구 평협 임원과 사제들이 박수를 치며 김종강 대주교를 환영하고 있다. 이튿날 오전 교구청 로비에선 직원들이 마련한 김 대주교 환영 행사가 짧게 진행됐다. 로비에는 김 대주교의 사진과 함께 ‘Deo Gratias 김종강 시몬 주교님의 천주교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 임명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적힌 초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장신호 보좌 주교, 교구청 사제단도 함께한 가운데, 임수빈(헬레나) 관리국 직원이 김 대주교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박지현(프란체스카, 문화홍보국) 직원회 회장은 축하 인사를 하며 “교회를 향한 깊은 사랑과 헌신이 새로운 사목 안에서 더욱 빛나시기를 기도드린다”고 전했다. 김 대주교는 “이곳에서 하루 지내면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드라마 대사가 생각났는데, ‘사랑은 변하는 건가’라는 복잡한 마음도 들었다”면서 “제가 이곳에 와서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머무르며 여러분 안으로 더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편집팀 조은일2026.06.01

신앙이 어우러진 색채의 향연, 샤갈의 세계 속으로신앙인 눈으로 본 ‘마르크 샤갈전’ ‘마르크 샤갈 특별전’ 전경 탈출기 등 성경 연작 눈길 사로잡아 스테인드글라스 미디어아트로 구현 원화 7점 첫 공개… 170여 점 한자리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의 작품 17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마르크 샤갈 특별전: BEYOND TIME(비욘드 타임)’. 샤갈 서거 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원화 7점을 포함해 회화·드로잉·석판화·유화·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 비텝스크(지금의 벨라루스)에서 태어나 러시아혁명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파리·베를린·뉴욕·예루살렘 등을 오가면서 국경과 언어·시대를 초월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예술의전당 큐레이터 장윤진 과장은 “샤갈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에 가족·유다인·인류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98년이라는 긴 생애 동안 굴곡진 세상사를 겪었지만 시대사조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유년기 추억이 어린 러시아정교회 성당의 독특한 돔들이 어우러진 비텝스크와 유다인 공동체 마을, 생의 후반기를 중심으로 50년가량을 머문 프랑스의 파리와 니스 등 지중해의 다채로운 모습, 강렬한 존재감으로 일상의 덧없음과 삶의 연약함을 반영하는 꽃다발 작품 등이 걸려 있다. 국내에서 몇 차례 열렸던 샤갈전과 비교해 작가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신앙인들의 눈길을 더욱 사로잡는 건 샤갈이 작업한 ‘성경’ 연작이다. 1923년 파리에서 샤갈은 저명한 미술상이자 출판인인 앙브루아즈 볼라르로부터 고골의 「죽은 혼」과 라퐁텐의 「우화」, 「성경」 같은 작품의 삽화를 의뢰받아 뛰어난 판화 기법을 선보였다. 샤갈은 특히 성경의 땅을 직접 보고자 1931년 팔레스타인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빛과 땅, 그리고 물질을 동시에 발견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 ‘홍해를 건넌 사람들’ 등으로 이어지는 성경 연작은 1931년부터 1939년 볼라르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고, 전쟁과 망명의 시기를 지나 1952년 다시 시작해 1956년 완성했다. 샤갈은 “어릴 적부터 성경에 마음을 빼앗겼고, 성경은 언제나 그리고 지금도 인류가 가진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처럼 느껴진다”며 “성경은 ‘자연의 울림’과 같고, 나는 그 비밀을 그림 속에 담아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탈출기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다. 진열된 석판화 연작은 1966년 출판인 레옹 아미엘에 의해 출간됐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이야기,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구약성경의 탈출기는 억압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지만, 혁명과 전쟁으로 여러 차례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샤갈은 한 시대의 종교적인 사건뿐 아니라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보편적인 갈망을 표현했다. 파리 위의 신부 ‘탈출기’ 혹은 ‘탈출기의 배’, 1948. 탈출기 이야기. 샤갈이 작업한 예루살렘 하다사 의료센터 내 회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몰입형 미디어 아트로 구현, 관람객들이 체험하고 있다. 특히 1948년경 제작된 ‘탈출기’ 혹은 ‘탈출기의 배’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다인들이 겪은 고통과 추방의 현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난민들의 집단 이주 등을 생각하게 한다. 노란빛으로 떠오른 십자가 위의 인물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유다인의 고통을 상징하고 그림 전체적으로는 절망과 상실·어둠이 느껴지지만, 화폭 왼쪽 위에서 스며드는 희미한 백색의 빛은 꺼지지 않는 희망을 내포한다. 장윤진 큐레이터는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란 샤갈은 망명과 전쟁 등을 거치며 종교에 많이 의지했던 작가이며, 성경 연작은 그가 평생을 바쳐 만들어낸 거대한 예술적 여정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샤갈은 익히 알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를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이나 믿음·사랑·희생처럼 우리 삶 속의 이야기를 같이 녹여냈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가 하면 샤갈은 1958년 프랑스 랭스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 후 1959~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하다사 의료센터 내 회당에 설치한 12개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제작했다. 각 창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주제로 삼고 있으며, 성경 말씀에 바탕을 두고 색과 상징·시적 은유를 결합해 섬세하게 배치했다. 빛에 따라 색감과 깊이를 달리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샤갈의 걸작 중 하나로, 이번 전시에서는 하다사 의료센터 스테인드글라스의 밑그림뿐만 아니라 미디어아트로 실물 크기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구현해 현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파리 오페라하우스(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도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연출했다. ‘꿈의 꽃다발’로 불리는 이 천장화는 샤갈이 1964년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의 요청으로 제작했다. 220㎡에 달하는 오페라하우스 천장에 샤갈은 글루크·베토벤·베르디·비제·아당·차이콥스키·스트라빈스키·라벨·드뷔시·라모·베를리오즈·바그너·모차르트·무소륵스키 등 자신이 사랑한 음악가 14명의 작품세계를 펼쳐 보였다. ‘마르크 샤갈 특별전: 비욘드 타임’ 전은 9월 21일까지 이어진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6.11